2015.10.31 11:17
믿음
본문 :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금년 첫 주일은 순전한 도의 젖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둘째 주일은 믿음에 대하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오늘도 믿음에 대한 세부적인 면을 더 보충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에 필요한 믿음 몇 가지를 증거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 구약 성경에 나타난 모든 것은 기록하기는 사람이 기록했지마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친히 기록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우리 택자들이 어떻게 해야 된다는 이것과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들이 기록된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하나님을 인류들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고 알고 있지마는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나는 이런 하나님이라 당신이 성령으로 가르쳐 주신 그대로의 하나님으로 우리가 알고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뜻이 수없이 많다고 사람마다 제가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의 뜻이 바르다고 말들 하지마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신구약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대로 알고 믿는 것이 옳습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아래에서 사는데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많은 방편을 말하지마는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 방편대로 알고 그대로 믿고 사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그 결과가 이렇게 된다 저렇게 된다 말씀하시는 그것은 그대로 얼마 안 가서 이루어지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가져야 한 첫째 것은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계시해 놓으신, 계시라 말은 하나님이 보이셨다 말인데 신구약 성경으로 우리에게 보여 알게 해 주신 이것을 확인해야 됩니다. 사실이 그러나 안 그러나 확인을 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안하고 다른 책을 읽으면 그 책에 말하는 그대로 따라가기 쉽습니다. 어쨌든지 성경을 많이 읽어야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기록해 주신 그것을 확인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나 저렇게 말씀했나?' 확인한다 말은 확실히 안다 말입니다. 인정이라는 그 인자는 알 인(認)자입니다. 알 인(認).
확인을 하고, 그 다음에는 확정을 해야 됩니다. '이것은 이렇다 저것은 저렇다.' 변동 없이 못을 박듯이 확정을 합니다. 확인 확정 이것을 인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요새 세상서 쓰는 인정이라 말은 너무 그 응용이 거리가 멀기 때문에 좀 세상서 쓰는 것을 비해서 보면 잘 모르기 쉽습니다.
확인하고 확정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확신을 해야 됩니다. 확인한다 말은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알았다.' 확정한다는 것은 '이는 틀림없다.' 확실히 정하는 것이오. 확신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제 소망하고 따라간다.' 하는 그것이 확신입니다.
이것은 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오. 또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음의 믿음이요 마음의 소망입니다. 첫째는 이것을 가져야 됩니다. 지난 주일에 이것을 많이 말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알아야 되고, '신구약 성경에는 이렇게 이렇게 말씀 하신다.' 마치 불교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불교에서는 이렇게 이렇게 말하더라' 그래 아는 게 아니고, 처음에는 그렇게 알고, 확인이라 하는 것은 '예수교의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이렇게 이렇게 말한다.' 지식만 하고 인식만 하는 것입니다.
지식하고, 그 다음에는 확정을 합니다. '이는 틀림 없다. 천인 만인이 말해도 나는 이게 사실이요 이게 실상인 것으로 확실히 정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확신이라. '나는 이렇기 때문에 여게 소망하고 이를 좇겠다, 이를 따라가겠다. 이대로 나는 소망하고 살아가겠다.' 하는 그것이 확신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확인에서 확정으로, 확정에서 확신으로 나아가는 마음의 믿음, 마음의 소망을 우리가 가지는 것이 첫째로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나님은 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뭣이 필요한고 하니 행신이 필요합니다. 행신. 행하는 믿음. 행신이 필요합니다. 위에 것은 심신인데 이것은 행신입니다. 행신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몸으로 믿는 것입니다. 신신. 몸 신(身)자 믿을 신 (信)자. 신신. 바라보면서 좇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소원이 되고, 소원하게 되면 결심이 되고, 결심하게 되면 실행이 시작되고 이래서 마음의 믿음과 몸의 믿음 이 두 가지 믿음이 화합이 될 때에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 하는 그 믿음은 마음의 작용인 마음 역사의 믿음 그것이 있어야 몸의 역사의 믿음이 생겨질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하신 것은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도 알기 어럽고 다른 사람은 더욱 더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으면 마음도 변화가 오고 몸도 변화가 옵니다. 이 마음과 몸은 하나입니다. 마음이 기쁘면 몸에 그 기쁨이 나오고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그 몸에 근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확실히 믿어 마음과 몸이 변화가 됐느냐 안 됐느냐 하는 그것은 몸으로 행하여야 할 때에 몸의 행함이 되고 안 되는 것을 보아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행함을 재촉하고 행함이 마음이 믿는 그 믿음을 힘입어 가지고 행하게 될 때에 그 믿음은 산 믿음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확인 확정 확신 자기가 했다 할지라도 그로써 마음의 변화도 몸의 변화도 일어나지 안하고 자기가 지식적으로만 그렇다면 그 지식은 참 믿는 게 아니고 알기만 하는 것으로써 그쳐집니다. 확실히 자기가, 첫 주일날 말한 대로 '하나님은 지존하신 분이다. 그분이 어떻게 우리가 아버지가 됐다.' 그분의 목적, 그분의 주권 역사, 그분의 도성인신의 대속, 지극히 큰 셋 보증이 역사하는 이 사실을 믿게 되면 믿는 것만치 자기 마음도 변화되고, 지식도 변화되고, 욕망도, 비판도, 평가도, 경영도, 소원도 모두 변화가 됩니다. 변화가 되면 변화된 것만치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변화된 줄 알고 마음으로 믿는 줄 알았는데 행하려고 하니까 행해지지 아니하고 실상을 닥치니까 그 믿음이 없어집니다. 아무리 나 위해서 만물을 지었다 해도 만물 그것이 나를 해할 때에 나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 인정이 안 되고, 아무리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작은 것 큰 것을 혼자 섭리하시니 하나님께서 움직이지 아니하신 일이 자기에게 닥칠 것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까 '이것 다 사랑하는 주님이 내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는 것이다.' 말로는 해도 실상 변화가 안 됐기 때문에 닥칠 때에는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안하고 인정되지 안하고 여전히 안 믿는 사람들과 같다 그거요.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서 달라들 때에 하나님의 주권의 개별 섭리를 믿으면 분명히 주님이 그 일을 섭리하신 것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주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하는 일이야 안심하고 기뻐하고 환영할 수 있는 일이겠는데 그렇게 되지를 안하고 두렵고 떨리고 염려 고통이 있어지니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안 믿는 증거라 그거요. 이래서 확인 확정 확신을 가지게 되면 가진 것만치 변화가 된다 변화된 것만치는 챙하지 말라 해도 행하게 돼진다. 그러기에 마음의 믿음이 몸의 믿음과 둘이 합해서 행동하게 될 때 그때에 마음에 믿음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을 확정할 수 있고 몸의 믿음도 그러하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두 믿음이 온전함을 이룬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믿음에 두 가지 필요한 것을 지금 말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에서 내라는 사람이 변화를 받되 어떤 변화를 받느냐? 행할 수 있는 기회만 닥치면 행하고자 원하고 행할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변화가 되어진 그런 마음의 믿음을 가져야 되고, 또 둘째로는 몸의 믿음인데 몸의 믿음이 마음이 믿음에서 혹 좀 약한 것이라도 몸의 믿음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 그 일을 척 행하고 보니까 그 다음에는 몸의 믿음도 마음의 믿음도 둘 다 온전함을 이루어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의 믿음과 몸의 믿음, 행함의 믿음 말입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셋째로는 이 두 가지를 가져도 이 셋째 것을 가지지 못하면 실패를 합니다. 이 셋째 것을 또 가져야 이 셋이 합해야 참 믿음에 성공을 하게 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을 다 성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되느냐? 바라보고 참고 견디는 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사람들이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믿으면서도 자기가 소망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기까지 기다리지를 아니 하는 이 인내가 없어 가지고 사람들이 실패를 합니다.
마음으로도 신구약 성경 말씀은 정확 무오라, 하나님에 대해서도 확실히 자기가 인식하고 인정하고 확신하고 이렇게 하고 또 행동도 그리 다 따라서 하면서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 주신다' 하는 하나님께 대한 계시도 믿고 또 순종도 더러하고 하면서 하나님께 대해서 이 소망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소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대해서 마음으로 믿는 것도 힘을 써서 그렇게 철투철미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행함도 아무것도 아니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걸 좋게 해 주시리라' 이렇게 바라기만 바랍니다. 바라기는 바라나 그 사람은 마음의 믿음 행함의 믿음이 모자라서 바라는 것이 헛일됩니다.
또 마음의 믿음과 몸으로 행하는 믿음을 참 가져서 좋은 믿음을 가졌으나 그러면서도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것,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해 주실까? 요런 세밀한 것까지 해 주실까? 이거야 눈 앞에 천인 만인이 해결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 이것까지 이 자잔한 이것까지, 이렇게 큰 것까지, 하나님이 성경에야 말씀해 놨지마는 해 주시겠느냐?' 성경에 기록한 것을 소망하는 이 소망이 빈약해 가지고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믿음을 가지고, 몸으로 하는 몸의 믿음을 가지고, 셋째로는 소망하면서, 소망하면서 기다리는 인내, 소망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두 가지 믿음과 인망, 참을 인(忍)자 바랄 망(望)자. 인망, 심신, 신신, 인망, 기다리면서 바라볼 것. 이것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서 다 실상으로 만들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을 무엇이 어떻게 기록돼 있느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열심히 읽고 설교를 듣고 그대로 자기가 인식하고는 확정을 지우고 '이는 틀림없다.
이렇다. 천인 만인이 뭐라고 말한다 해도 나는 요대로 알겠다. 요대로 확정을 지웠다. 요대로 나는 따르겠다. 확신을 가진다.' 이게 다 마음의 작용입니다.
마음에서 요것을 가지면 필연적으로 몸으로 행해야 될 그런 기회가 오면은 속에 확정된 이 확신된 마음의 힘이 그 몸을 붙들고 행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몸도 행하고 싶어서 합니다. 두 가지가 합해 가지고서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집니다.
이렇게 믿으면서도 자기가 하나님의 계약에 나타난 것을 소망하면서 어떤 것은 소망하지만 어떤 것은 소망을 안 합니다. 소망에 대해서 제한을 합니다. 에누리를 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해 놨지마는 나에게 뭐 그런 것이 해당하지 않다.
그렇게까지 해 주시겠느냐?' 하는 것은 겸손한 것 같지마는 안 믿는 것은 전부 교만입니다. 이러니까 두 가지 믿음을 가지고 셋째로 길이 길이 바라보는 것, 길이 길이 끝까지 바 라보는 요 소망의 믿음을 가지지 안하기가 쉽습니다.
요 세 가지는 합해서 하나인데 그 순서는 첫째 둘째 그 순서는 그러나 그게 논리만이지 되기는 동시에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 세 가지 믿음을 우리가 가지면 사람으로 왔다가, 택한 사람으로 왔다가, 구속 받은 사람으로 왔다가 우리가 세상에 온 성공을 하고 갈 것입니다.
많은 세월을 지내보내도 짧은 세월에라도 될 수 있습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될 수 있다' 그말은 가속도로, 이 심신의 변화요 하나님께 대한 망종이니까 바라보면서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속도로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하는 신앙은 요거는 참고로 해서 어떤 믿음이 실패를 하느냐? 첫째로 하나님꼐서 신구약 성경에 말씀해 놨지마는 자기는 그 사실이 인정 안 된다, 마음으로 인정하지 아니하는 그 믿음은 헛일입니다. 인정할 때까지는 교회 나와도 그래 나오다가 인정이 될까 해서 그렇지 인정 안 되는 믿음은 그거는 헛일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5절에 보면 '말세가 되어갈수록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에 있는 말씀을 역부러 자꾸 잊어버리고 거짓말이라고 부인하려고 애를 쓴다' 이랬습니다.
말세가 되어갈수록 주위 환경에서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게 하고 업신여겨서 지나가는 무슨 신화같이 그렇게 여기게 자꾸 권위 없이 이렇게 만드는 거게 물이 들어서 '부러 잊어버리려 하는도다' 했습니다.
그런고로 마음으로 자기가 믿지 않는 그것이 실패고, 둘째로는 마음으로는 믿고, 마음으로만 믿고 몸으로 믿을 수 있는, 마음으로 인정하고 몸으로 행할 수 있기까지 변화된 그 마음의 믿음을 가지지 못해서 마음의 믿음과 몸의 믿음 둘이 화합이 돼야 되는데 둘이 화합이 안 된 그런 믿음도 헛일입니다. 마음의 믿음이 없어서 헛일, 또 마음의 믿음이 있으나 몸의 믿음이 없어 둘이 화합이 안 된 믿음도 실패, 행하기는 행하면서 마음의 믿음이 없이 행하는 그것도 실패.
이러니까 마음의 믿음과 몸의 믿음 이 둘이 화합이 돼야 될 터인데 이 둘이 화합이 되지 아니하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 없고 저것 있으면 이것 없는 그런 화합이 안 된 그 믿음이 실패의 믿음입니다.
또 셋째로 실패되는 믿음은 마음의 믿음도 있고 몸의 믿음도 있으면서 이 소망하는 것을, 마음에 믿고 몸으로 믿으면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하는 것을 끝까지 소망하지 아니하고 소망하는 한정을 제가 정해 놓고 '언제까지는 내가 참고 기다려 보겠다' 제가 참고 기다리는 그 기간이 지나가 버리면 그만 낙망해 버립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 몸으로 믿는 믿음 이 두 가지 믿음이 화합이 됐으니까 이는 참 성공한 사람인데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을 바라보는 이 바라보는 바람이 한정이 있어 가지고 실패한 사람 많습니다. 이것은 한정 없이 끝까지 바라봐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소망하다가 바라보다가 제가 기간을 정해 놓고 그 기간 내에 안 이루어지면 낙망하는 사람, 그 기간을 아에 자기가 정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일임시켜서 하나님이 언제 이루어 주시든지 상관 없이 기다리는 그런 신앙, 기다리다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죽을 때까지 안 이루어지니까 '에이고, 이제야 헛일이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죽을 때까지 이루어지지 안하니까 그만 낙망 포기하고 해서 헛일인 사람,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안 이루어지는 그것을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믿고 '내 생전에 이루어 주시지 아니하시는 것 보니까 더 좋은 것으로 무궁세계에 이루어 주시려고 하는 것이로구나'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으니까 오히려 더 확대하고 크게 소망했지 그 소망이 끊쳐지지를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소망하다가 소망하되 제 주관대로 소망해서 실패한 사람 소망하되 죽을 때까지 소망하다가 죽을 때에 낙망해서 실패한 사람 죽을 때도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맡겨두고 소망을 가지고 죽은 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큰 믿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를 했고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역사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믿음은 이렇게 큰 믿음이기 때문에 광대한 믿음이기 때문에 이방인까지의 이 구원을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구원하시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믿음의 조상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l7절에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신이 죽은 것이라' 마음으로만 믿고 몸으로 믿는 그것이 없으면 마음으로 믿는다는 그게 제가 속았지 실상 마음으로 믿는 게 아니라 그말입니다.
마음으로 믿는데 '내가 확실히 믿는데, 의심하지 안하고 믿는데' 해도 행하려고 하니까 행함이 안 될 때는 마음으로 믿는다는 그 믿음이 조작배기 믿음이지 그게 생명 있는 믿음이 아니다. 죽은 믿음이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에는 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돼 버립니다. 변화됩니다.
변화가 돼야 그것이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바로 된 것인데 변화가 됐는지 안 됐는지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행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십니다. 주시면 행해질 때에 자기도 알고, 막상 행하려 하니까 얼떨떨 하고서 달라집니다. 그러면 안 믿는다는 것을 자기도 알고 그래 가지고 우리를 연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l9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을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도 이 마음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귀신들도 마음의 믿음을 가졌는데 그들이 행동의 믿음을 가지지 안하는 것은 인식은 하고 있지마는, 인식은 하고 있지마는 소망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인식한 것만치 반대 역사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귀신 믿음입니다. 자기가 알기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거게 대한 소망을 안 가지면 반발이 나옵니다. 교회서도 번연히 옳은 일인 줄 알아도 그 옳은 일에 욕망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옳은 그 일에 대해서 반발심이 생겨 가지고서 방해하는 역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의 믿음을 가졌으나 소망이 없으면 행함의 믿음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귀신의 믿음이 된다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고 모든 선지자들을 보면 이 소망을 안 해 가지고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룟 유다가 잘 알았습니다. 어느 제자보다도 교훈에 대해서 잘 알았지마는 그가 예수님을 팔고 난 다음에 배가 갈라지기까지 원통해서 후회를 했지마는 후회가 소용이 없습니다.
그때 가롯 유다가, 그렇게 될 수 없지만 만일 가롯 유다가 '주님은 이러기 때문에 내 허물을 위해서 대형 대행하시고 대화친하셨다.' 믿고 소망을 가겼다고 하면-가정을 가진-소망을 가졌다고 하면 어찌 되느냐? 성경에 본다면 그 소망을 가졌으면 그는 살아났습니다. 그는 살 아나고 그는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알고 후회를 해도 하나님이 능히 여게서 구원해 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망하지 아니하는 후회는 멸망뿐이지 딴것은 없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구약에 모든 이스라엘들이 마음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확인도 했고 확정도 했고 이랬지마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이적에서 '홍해 바다 어찌 건너왔노?' 홍해 바다 건너온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너온 것 그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 내린 것을 모르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 알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와 같은 일이 척 닥칠 때에는 그만 절망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이리 이리 해 주셨고 이렇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이며 하실 능력도 있고 하셨지마는 앞으로 미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해 주실런지 안 해 주실런지 모른다.' 하나님이 말씀을 해도 안 믿어. 그것이 그들이 멸망하는, 알고 소망하지 않는 것으로 멸망받은 것입니다. 모든 선지 사도들이 다 그랬고 신약 교회의 성도들이, 이제 하나님의 도가 참 교회에 가득 찼기 때문에 지금 어느 교회나 주일학생도 아는 것이 옛날 속사도 교부들보다 더 많이 압니다. 사도들 다음에 교부들 보다 많이 압니다.
초대교회 그분들보다 더 많이 압니다. 많은 지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지 않는 것, 마음으로만 믿지 또 몸으로 믿지 않는 것, 마음과 몸으로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계약한 것을 소망하지 않는 것, 소망을 해도 끝까지 소망하지 아니하고 제 마음 주관으로 한정했다가 그 도수가 지나가면 그만 불신합니다. 이래서 실패한 것이니까, 둘째 주일날도 말씀했고 셋째 주일날 또 말씀을 합니다. 마음으로 확신을 가질 것, 몸으로 행함을 가질 것, 몸의 믿음, 몸으로 실상의 믿음을 가질 것, 마음의 믿음 몸의 믿음 요 둘이 화합이 돼야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마음의 믿음이 몸의 믿음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믿음이 돼야 그것이 산 믿음입니다. 마음의 믿음과 몸의 믿음이 둘이 합한 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자기가 소망하는 소망이 '이러면 하나님께서 이것 저것을 해 주신다' 하는 소망하는 소망이 없어 가지고 안 되는 사람, 소망을 하다가 중단해서 안 되는 사람, 이러니까 마음의 믿음과 몸의 믿음과 끝까지 소망하는 요 소망, 우리는 소망하고 죽는 게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믿음은 아브라함을 제일 기뻐하셨는데 하나님이 가나안을 주신다고 해 놓고 삼 대나 약속을 해도 안 주셨습니다. 이래도 낙망하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주시마 해 놓고 안 주시는 일은 없다. 더 좋은 걸 주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약속으로 선포해 놓은 것을 바라보면서 자기가 바라보는 요 바라보는 것을 죽을 때까지 안 이루어져도 바라보는 것을 변동 없이 소망하면서 세상을 끝냈기 때문에 그 믿음 가지고 천하 만인간을 다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끝없는 소망, 끝을 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미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속지 않습니다. 그저 그분이 한번 말했으면 그대로이기 때문에 내게 전지한 지혜 가지고서 가장 적절하게 해 주시지 그분이 변하지 안하니까 끝없는 소망, 끝없는 마음의 믿음, 끝없는 몸의 믿음, 또 끝이 없는 요 믿음으로만 나아가면 우리에게 해당된 구원은 완전히 이루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실패 하는 믿음 세 가지를 잘 기억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축도) 감사합니다. 주께서 계시하신 이 다섯 가지를 우리의 성장 성공의 양식으로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피공로로 인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끝없는 마음의 믿음과 끝없는 몸의 믿음, 끝없는 소망의 믿음을 가지게 하시옵소서. 이를 방해하는 모든 주관과 자율을 피조물의 역사를 다 물리치고 이것을 제거하여 능히 극복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사 금년에는 믿음으로 연한 순같이 자라가게 하사 참으로 주의 영광의 찬미되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