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01:29
믿는 자의 세가지 성패의 길
본문 : 창세기 13장 1절∼18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이 말씀은 저 지난번 대구 집회 때에 거의 전시간을 걸쳐서 이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으로 인한 효력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있으며 또 어느 정도의 그 효력을 보았는가 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간단하게 증거하겠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조카 롯도 함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애비 친척집을 떠나서 내가 너희들에게 명하는 곳으로 가라 내가 인도하는 인도를 따르면 내가 너희들에게 복을 줘서 너희 자체들도 창성하게 될 것이고 너로 인해서 세계 모든 민족이 또 복을 받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그 말씀을 듣고 즉시 아브람과 롯이 모든 것을 정리해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나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라 가다가 벧엘이라는 곳에 가 가지고 '너희들이 여기에서 머물러 있어라' 하는 말씀을 듣고 거기에 장막을 치고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랬는데, 그 후 그곳이 심한 흉년이 들어서 매우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브람과 롯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벧엘까시 왔고 벧엘에 머물라 해서 머물기까지 했으나 그 들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만나게 되니까 그만 견디기가 어려워서 하나님 앞에 묻지 안하고 차차 차차 저들에게 조금 어려움을 면하는 그런 곳을 향하여 간다고 하는 것이 애굽까지 내려갔었습니다.
애굽에 가 가지고 아브람에게 참 못 당할 큰 곤욕을 당했고 아브람 자기 망하고 다른 사람 망하고 다 망할 수 있는 그런 어려움의 환난을, 하나님의 징계를 만났습니다. 그래 가지고 아브람이 그때에 자기도 죽고 가족도 죽고 전부 몰살을 당할 만한 그런 죄 가운데에 빠졌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애굽 왕을 감동시켜 가지고 현몽을 시켜서 네가 만일 아브람에게 어떤 행위든지 나쁜 행위를 하면 너와 네 모든 나라가 다 망하리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꿈에 현몽을 했습니다. 이래서 바로가 그 말을 듣고서 두려워서 아브람을 불러 가지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했느냐' 하고서 반문할 때에 아브람은 말할 만한 아무런 염치가 없으나 사실대로 얘기를 했습니다. '자기네들이 내 생명을 해할 그런 염려성이 있어서 내가 부득이 그와 같은 거짓말을 했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현몽하셔 가지고 이것을 알려서 내가 이런 죄를 짓지 않겠다.
그러니까 네 아내를 데려 가거라' 하면서 약간의 예물을 줘서 내보냈습니다.
그때에 아브람이 그 자리에서 회개를 하고, 하나님이 벧엘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는데 벧엘에 있으면서 좀 생활의 어려움이 온다고 해서 하나님의 허락도 받지 안하고 애굽으로 내려온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생각하고 다시 벧엘로 찾아서 올라갔습니다.
벧엘로 찾아서 올라가는 도중에, 모두 다 목축업을 하니까 목축을 그저 슬슬 먹이면서 이렇게 올라가니까 제법 세월이 거쳤습니다. 세월이 걸리는 동안에 아브람과 롯은 육축과 모든 은금이 심히 풍부해져서 애굽에서 떠나서 처음 장막 쳤던. 제단을 쌓던 벧엘로 올라가는 그 걸음에서 대단히 부유하게 됐습니다.
벧엘에 도달했을 때에는 벌써 아브람도 모든 면이 다 부유해졌고 롯도 또 모든 면이 다 부유해졌습니다.
이러니까 두 사람이 크게 부유하게 되고 나니 그 두 사람이 그곳에 함께 살기에는 너무도 땅이 좁고 해서 안 돼서 자연히 그 목자들끼리 서로 다툼이 있고 이렇게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시비를 진정을 할라고 해도 시비가 진정되지 안하고 자꾸 심해져서 그 아브람이 조카 롯을 불러 가지고서 말씀하시기를, 나나 너는 혈육이 같은 혈육의 동족이요 또 숙질간이요 또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로서 출발했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이런 물질을 가지고 시비하는 것이 이것이 윤리에도 합당치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도 합당치 아니하니까 네가 네 마음대로 해라. 여기는 지금 소돔 들이라 하는 아주 넓은 들이 있고, 또 거기에는 비옥하고 초원도 좋고 이러니까 얼마든지 목축하기에 아주 좋은 소돔 들이 있고 또 이쪽의 가나안은 그저 비가 자주 오지 안하고 하니까 붉은 자산이나 내가 꼭 좋은 옥토를 내가 취할라고 하는 그런 생각 가지지 아니하고 그저 나는 네가 소돔 들을 택하면 나는 이 붉은 그저 풀 없는 이 자산인 가나안을 내가 택할 것이고 또 네가 가나안을 택하면 내가 소돔 들을 택할 터이니까 네게 자유를 맡기니까 의논해 가지고 어느 것이든지 마음대로 취해라. 그러면. 네가 좌 하면 나는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내가 좌 하고. 네가 택하고 나머지기 그것을 내가 취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럴 때에 아브람의 가족들도 그 목자들이 많은 논리가 있었고, 또 롯에 소속한 그 모든 목자들과 온갖 종업자들도 다 많은 논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목축업을 하는데 이 가나안은 풀 없는 붉은 자산인데 흙을 먹고 어떻게 육축들이 자랄 수가 있으며 또 유지가 되겠는가? 또 소돔 성은 비옥한 곳이니까 차라리 그걸 반반씩 나누든지 하지 이렇게 어데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시비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벧엘에서도 좁아서 두 가족이 목축을 할 수 없는데 소돔 들을 가 봤자 또 거기에도 두 가족이 가면은 목축 할 수 없는 형편이니 아무래도 서로 시비가 없을라면 나누어져야 되니까 그저 롯에게 전권을 맡겨서 롯이 하는 대로 하고 나머지기를 우리가 하기로 하자 그렇게 아브람이 가족들에게 의논하고 또 롯도 그 가족들에게 '아무래도 우리 큰집이요 우리 삼촌이요 또 우리 삼촌을 따라서 우리가 이렇게 왔으니까 큰집부터 먼저 생각해야 되지 우리가 이 좋은 소돔 들을 택해서 되겠느냐?' 이러니 저러니 많은 시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 장기간 시비 있는 가운데에 아브람이 이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네가 좌 하면 내가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내가 좌 할 터이니까 마음대로 택해서 해라.
우리가 시비하는 이것은 같은 혈육의 윤리상 할 수 없는 일이고 또 하나님 섬기는 우리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여기에 대해서 네가 자유로 선택하면 남은 것을 내가 취하겠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말 하고 난 다음에, 롯도 옳은 걸 주장을 했고또 아브람도 옳은 걸 주장했지마는 롯을 따른 모든 식구들도 많은 시비가 있었고 아브람을 따른 식구들도 많은 논단이 있었습니다.
있다가, 롯이 '그러면 뭐 부득이 가족들이 이러고 이라니까 할 수 없이 제가 이거 큰집 보기에 예의는 아니지마는 소돔 들을 택하겠습니다.' 하고서 소돔들을 택해서 장막을 소돔으로 옮겨 치고 그랬습니다. 그때에 소돔 고모라 도시는 아주 요새 일본 나라 같고 미국 나라 같고 또 소련과 중공 같고 우리 나라 같습니다.
아주 뭐 어떻게 과학이 발달되고 모든 물질이 풍성하던지 아주 살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리 롯은 장막을 옮겨 치고 그곳을 차지하고, 또 아브람은 풀 없는 가나안 그곳을 차지하고 그 곳에서, 여기 13장에 보면은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기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13장 18절에 있습니다.
롯이 이제까지는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할 때도 그 삼촌과 롯이 함께 출발을 했고, 또 그 명령에 따라서 벧엘에 이르러 벧엘에서 하나님 섬기는 제단도 같이 쌓고 같이 섬겼고, 또 어려워서, 애굽까지 내려가기도 같이 내려갔고, 또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벧엘로 다시 돌아오기도 같이 돌아왔고, 벧엘로 오면서 아브람과 꼭 같은 그런 축복을 받아서 모든 따르는 인부들도 많았고 또 은금도 많았고 육축도 심히 많이 번성하게 됐습니다. 이랬는데 고만 이 벧엘에서 서로 두 가족이 시비하는 그 시비를 인해서 숙질간에 나누어졌습니다. 나누어졌는데, 나누어질 때에 롯은 그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꺾지를 못하고 가족들이 원하고 또 소돔 들은 아주 비옥한 곳이니까 비옥한 것을 택했고. 아브람은 많은 시비들이 있었지마는 아브람은 그래도 그 가족들을 이해도 시키고 눌르고 꺾고 이래서 가나안에 헤브론 상수리 수풀 있는 데 장막을 옮겨 치고 거기에 또 하나 뭐 제단을 쌓았습니다.
롯이 아브람으로 더불어 같이 출발도 했고, 벧엘에 제단 쌓기도 같이 쌓고, 또 어려움을 당해서 애굽으로 타락도 같이 타락해 내려갔었고 또 거기에서 회개하고 벧엘까시 다시 돌아와서 오면서 하나님의 축복도 받고 이랬었는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모든 물질이 심히 두 집이 다 풍부하게 됐고 또 딿는 그 모든 식구들이 인부들이 심히 많게 되고 이래서 뭐 물질 축복 사람 축복 모두 축복을 심히 많이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그 축복 받고 난 다음에 그 뒤에 시비가 일어나서 그 시비로 인해서 숙질간에 서로 나누어졌습니다. 나누어져서, 롯은 소돔 들로 옮겨서 장막을 쳤고, 아브람은 헤브론 상수리 수풀이 있는 데다가 장막을 치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롯은 이 제단 둘째 재단을 쌓을 때부터 벌써 그만 롯은, 첫째 제단에는 참석을 했지마는 두번째 제단 쌓는 그 제단에는 참석을 하지 못하고 아브람만 혼자 제단을 쌓았습니다.
두 숙질간의 가족이 이렇게 나누어지게 되는 그 시비 끝에 나누어져서 롯은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소돔 들을 택했고, 또 아브람은 그 가족들이 원치 않는 가나안을 택해서 이렇게 서로 나뉘게 됐습니다. 나뉘어서 롯의 온 식구들이 소돔 들로 다 이사를 하고 나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람아, 네가 있는 이 곳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줄 터인데 이곳에서 너희들이 복을 받으리라'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서 '이곳을 네가 종으로 횡으로 모두 다 답사해 봐라.' 그때 답사하라 할 때는 아주 허무한 곳입니다. 발간 자산입니다. 그 까짓 거야 공으로 줘도 할 수 없는 그런 아주 발간 자산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세계의 제일 유명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후 자손들이 거기 갈 때에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한다고 해서 그곳이 무슨 세계의 제일 비옥한 곳은 아닙니다. 아주 일 년에 비가 두 번밖에는 안 오는 아주 박토였습니다. 박토인데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주 상상 토지라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하신 대로 나중에 그곳은 그런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하신 것은 현재에 그 토지가 비옥한 것을 말씀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사막도 옥토가 되고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아무리 상상 옥토라도 거기에가 다 박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소돔 고모라성을 저주했기 때문에 그렇게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고 물풍하고 문화가 풍성하고 예술이 제일 높고 가장 세계에 사치하고 아주 아름다운 소돔 고모라였었는데 그곳을 하나님이 저주를 해서 지금은 사해라는 바다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이 완전히 망해서 바다 보다 훨씬 깊은 곳으로서, 사해라는 그 사해가 지금도 사해 돼 있는데 요단강물 그 큰 강물이 다 사해로 들어갑니다. 그 사해로 들어가 가지고는 들어가면, 물이 죽습니다. 물이 죽어서, 사해는 제법 큰 바다이지마는 그 바다에는 생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단강에는 갈릴리 바다에서 내려오는 물이니까 심히 고기들이 많지마는 사해에는 고기 한 마리도 없고 모든 것이 죽어 있는 바다라 해서 사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사해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말하기를 염해라 그렇게도 말합니다. 소금 바다라 그렇게도 말합니다. 바다 물은 중량이 높고 아주 또 조금 독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책을 보니까 '말세에 세계를 소멸시킬 이 소멸시킬 재료들이 사해에 들어 있다. 그 사해에 있는 모든 약품들은 온 세계를 일시에 다 소멸할 수 있는 약품이 사해 속에 들어 있다' 하는 그런 것을 모든 학자들이 발견을 하고서 발표를 하나 제재하는 데 따라서 그것을 많이 폭로하지 못해서 약간 발표만 됐으나 그렇게 은연중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사해는 앞으로 온 세계를 전멸하는 바다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람과 롯이 숙질간에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아 가지고 신앙 걸음을 출발해서 아브람은 가나안을, 남겨 둔 가나안을 차지했고 롯은 소돔 들과 소돔 고모라 성을 차지했었는데 롯이 차지한 그곳입니다. 그곳을 하나님께서 그 뒤에 유황불비로 사뤄서 사해라는 바다가 됐는데 이 사해라는 바다는 앞으로 또 그것이 온 세계를 불사를 것이라 하는 것으로 그렇게 어떤 책에 제가 약간 봤는데 제 의견에도 딱 맞습니다. 그렇게 신앙의 사람이 잘못 걸은 그 걸음의 결과라 하는 것은 비참하고 참혹하기가 천 년 가면 더하고 만 년 가면 더하고 억만 년 가면 더한 것입니다.
이래서, 이 아브람과 롯은, 아브람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요 롯은 또 믿음의 멸망의 조상입니다. 이래서 아브람과 롯을 창세기 12장으로부터 죽 기록해 가지고 나온 이것은 그 형편과 사정이 된 그 역사적인 현실이 우리에게 신앙 노선을, 신앙 노선을 계시해 주고 있는 계시입니다. 이래서 단순히 아브람과 롯의 이 신앙 걸음을 일시 역사적 한 사실로 지나가고 만 것이라고 그렇게 우리가 보면은 안 됩니다. 이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종류는 두 종류가 있으니, 신앙의 노선은 두 노선이 있으니 이 노선이 아니면 저 노선이요 저 노선이 아니면 이 노선인데, 아브람이 택한 그 노선인 가나안은 지금도 세계에서 우러러 보기를 가나안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롯이 택한 소돔들 사해는 온 세계를 전멸할 독약품이 그 속에 들어 있다고 말을 하는데 그것도 넓은 범위에서 이렇게 함축해 가지고 있는 것을 깊이 궁구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은 아브람과 롯의 그 신앙 걸음을 대구 집회 때에 증거한 것을 다시 한번 간단하게 증거를 합니다. 여기에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이 아브람에게 속했는지, 아브람의 노선을 걷고 있는지 롯에게 속해서 롯의 노선을 걷고 있는지 스스로 비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롯이 걸어간 그 걸음은 얼마 후에 그 소돔 고모라 성이 전쟁을 만나 가지고 전멸당한 것을 아브람이 한번 구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롯은 아브람에게로 회개하고 돌아오지를 안했습니다. 돌아오지 안한 것은 그 뒤에 유황불비가 내려왔을 때에 그때에 보면 롯의 형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 성이 그렇게 죄악으로 관영한 그 죄악을 인해서 의로운 롯의 마음을 상했다 하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아브람은 죄로 인해서 마음이 상한 있이 없습니다. 아브람은 그렇게 좁게 곧게 바른 길을 걷지마는 죄악으로 인해서 상한 일이 없었는데 롯은 의인이나 죄로 인해서 상한 일을 많이 봤기 때문에 롯의 의로운 마음을 상했다 이랬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그 죄에 동참했으면 그 죄로 말미암아 많은 상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그 상당한 보응으로 받는 것이오 죄에 동참하지 안한 그 죄악은 땅 위에 아무리 많아도 그 죄로 인해서 자기는 회개 운동만 했으면 했지 그로 인해서 상함은 받지 않는다는 이 비밀도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때에 이 아브람과 롯은 가족끼리 시비하는 이 시비, 하나님이 축복을 많이 주셔서 그 축복이 풍성함을 인해서 일어나는 시비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이는 우리 신앙의 근원이요 신앙의 근본 원인이 되는 하나의 갈래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예사로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브람과 롯이 하나님을 따라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벧엘까지 왔으나 벧엘까지 오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고 했지마는 축복보다는 그때에 아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근본의 신앙의 종자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신앙 걸음을 걸을 때에. 신앙 걸음 걷는 걸음은 하나님 앞에 다 축복받는 걸음인데 신앙 걸음을 걸으면 하나님의 축복보다도 먼저 어려움이라는 그 어려움을 만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려움 만날 때에 어려움을 피해서, 애굽은 세상을 상징한 것인데, 신앙 생활이 어려우니까 어려움을 피해서 속화돼 가지고 세상으로 차차 차차 물들어 나가게 되면은 그 뒤는 크게 참 전멸 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아브람이 당한 거와 같이 우리도 그런 일을 당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고, 그럴 때에 거기에서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깨달음을 받고서 다시 벧엘로 회개하고 돌아갈 때에 그때에 도중에서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신 것을 우리는 신앙 노정으로 삼아야 됩니다. 우리 신앙의 노정이 요와 같이, 길, 노정이 요와 같이 돼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 반사, 열심 있는 반사, 성경을 알고자 하더니마는 배울 때는 눈 감고 뭐 하고 있어? 학생들만 인도하고 자기는 졸면 어짜는고? '내가 오늘 아침에는 아침도 안 먹고 학생 인도에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힘이 많이 들어서 피곤해서 존다.' 마귀 고놈이 '네가 아침도 안 먹었지, 일찍 일어났지, 또 심방한다고 돌아다니며 네가 피곤하지 네가 안 졸 수가 있나? 피곤 하니 졸아라' 마귀 고놈이라. 지금이라도 만일에 공산주의가 죽인다 해봐. 마구 지금, 아마 여기 백 목사 지금 십 배나 뛰어 달아날 거다. 곤한 게, 피곤한게 어디 있어? 우리가 그런 마귀 유혹에 들면 안 됩니다.) 이런 현실을 닥친 거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주님에게 순종해서 신앙 걸음을 걸을라고 하면은 제일 처음에는 고통이 온다 하는 요것이 우리 신앙 노정입니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벧엘에 있을 때에 큰 경제 고난을 당했습니다.
경제의 고난을 당하고, 모든 생활 모든 면에 고난을 당했습니다. 고난을 당하니까 고난을 못 견뎌서 세상으로 속해 내려가다가, 세상으로 차차 물들어 내려가다가 크게 패망을 당해서 전멸을 당할 뻔 하다가 거기에서 깨닫고 다시 벧엘로 회개하고 돌아가니까 돌아가는 도중에 하나님이 축복을 하셔서 이렇게 모든 것이 풍성해졌다 요게 우리의 신앙의 노정입니다.
믿음 지키면은 처음에 고통 오고 고통 면할라고 세상으로 속화돼 가면은 전멸 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당하고 거기에서 다시 돌이켜서 근본 벧엘인 그 신앙 본자리로 하나님의 뜻으로 도로 돌아오게 되면은 돌아오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이 두 사람에게 이런 어려움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것이 그 두 사람에게 당한 현실입니다. 이 현실에 현실을 만나서 그 현실에서는. 아브람이나 롯이나 똑 같은 만난 그 현실을 만났는데 거기에서 첫째는, 자, 하나님 좋게 하는 것보다 자기 좋게 하느냐 자기 좋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 좋게 하느냐 요것이 딱 걸렸습니다. 고 두 가족이 시비하는 시비의 고 시비를 분석해서, 고 속에 중심을 분석해서 발견하면은 요것에 딱 걸렸습니다.
롯도 하나님 기뻐하시도록 할라고 하면은 자기가 큰집에게 양보를 해야 되겠고.
또 자기 좋게 자기에게 속한 가족들 좋게, 고만 뭐 자기 가족들이고 뭐고 자기 좋게 하려고 하면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소돔들을 자기가 차지해야 되겠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네가 좋게 하느냐, 하나님보다 너 좋게 하느냐 너보다 하나님 좋게 하느냐 요 두 가지 판단에 딱 봉착된 것이 요 두 사람의 만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서 롯도 아무래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지 나 좋도록 해서 되느냐, 아브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지 나 좋도록 해서 되느냐 이렇게 많은 논단이 있었지마는 단순히 그것은 고렇게 결정될 수가 없고. 많은 가족들이 뒤에 따라서 웅얼거리고 있고, 또 많은 종업자 들이 뒤에서 웅얼거리고 있고 또 현재에 많은 가축들이 당장 가니안에 가면은 아무것도 먹일 게 없으니까 큰 난리가 나겠고 이런 어려움이 있으니까 롯은 그만 어려움을 못 견뎌서 아무래도 하나님 좋게 할라면 내가 삼촌한테 양보를 하고 내가 가나안을, 이 풀 없는 목축하기에 안 됐는 이곳을 차지하고 우리 큰집을 목축하기에 좋은 소돔 들을 이렇게 차지하도록 양보를 해야 되지마는, 이래야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겠고 하지마는 아무래도 이거 뭐 가족들이 있으니까 가족들이 이래 쌓아니까 어찌할 수 없고 종업자들이 이래 쌓아니까 할 수 없고 이렇게 육축들이 이래 쌓고 이렇게 지금 곤란을 당하고 있으니까 어짤 수 없다 해 가지고서 하나님 좋게 하는 것보다 자기 좋게 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요것이 롯의 걸음이고 아브람은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고 할 때는 벌써 시비해 가지고서 자기 마음에서 판정을 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나 좋도록 해서는 안 되겠고 하나님 좋도록 해야 되겠으니까 그저 롯이 원하는 대로, 만일 그래라 한다 하면은, 그래라 해 가지고서 네가 이리 가라 해 가지고 뒤에 망해 버리는 날이면은, 소돔들에 가서 망했으니까, 망해 버리고 나면은 '삼촌이 망할 줄 알고 공연히 이 소돔들을 차지하라 했다' 이렇게 말할 터이니까 이제 아브람이 소돔으로 가라 소리를 못 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할 터이니까 네 좋은 대로 선택해라' 한 그것은 내가 좋은 것보다 하나님 좋아하는 대로 해야 되지 하나님 좋아하는 것보다 나 좋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고것을 판정해서 아브람은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현실에서 나 좋은 것보다 하나님 좋아하시는 길을 내가 택해야 되겠다 아브람은 이랬고. 롯은 하나님 좋아하시는 길이 좋지마는 하나님 좋아하시는 길을 택할라 하면 나와 내 가족이 절단이 나고 가정이 시비가 나 가지고 망하고 큰 분쟁이 일어날 터이니까 할 수 없다 하면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길보다도 자기 좋아하는 그 길을 택한 것이 롯이 택한 걸음이었습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어떤 현실이든지 현실에, 그 현실에는 깊이 심사하면 그 현실은 반드시 하나님보다 자기냐 자기보다 하나님이냐 그 시비가 없는 현실은 없습니다. 제 눈이 어두워서 '이럴 때야 뭐 하나님보다 내냐 나 보다 하나님이냐 할 것 없이 두 길이 없고 한 길 뿐이라' 이라지마는 좀 깊이 들어가서 한 꺼풀 벗겨 보면은 거기에 하나님의 좋아하시는 길 자기 좋게 하는 길 그 두 길이 갈래길로 돼 가지고 있으니까 거기에서 우리는 멸망과 구원이 결정되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반드시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보다 나 좋게 하는 면을 택하느냐 나 좋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 좋아하시는 그 길을 택하느냐 요 둘이 현실에 반드시 놓여 있습니다. 없는 거 없습니다. 요 현실이 둘이 놓여 있으니까 거기에서 나보다 하나님을 낫게 여기면 생명과 축복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보다 나를 좋게 하면, 암만 현재는 소돔 고모라 성이 그렇게 좋아서 비옥하고 굉장했습니다. 소돔 고모라 성은 또 굉장히 문화가 발달돼 가지고 있고 아주 사치스러운 곳이오. 굉장히 사치스러운 곳입니다. 아주 사치스러운 곳입니다.
불란스보다 더 사치스럽고 아주 사치스러운 곳입니다. 이러니까, 뭐 거기 가니까 만사가 평안입니다. 남녀 구별할 것 없이 뭐 전부 쟁쟁 쟁그랑 쟁그랑 하고서 뭐 얼마나 좋은 곳인지. 그곳을 택하고 난 다음에 아마 롯의 마누라한테 롯은 사랑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 남편이 제일이야 제일이야 하면서 롯을 간질러 주고 안마 해 주고 달개 주고 어찌 됐던가 롯이 참 마누라한테 호강 많이 했을 것입니다. 벙긋벙긋하고 호강 많이 했을 것입니다. 왜? 저 좋아하는 대로 하니까 소돔으로 가 놓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딸들도 '아빠 아빠, 우리 아빠가 제일이야, 우리 아빠가 제일이야. 우리 아빠가 제일이야. 나는 시집가면 우리 아빠와 같은 그런 남자에게 시집 갈 거야 그런 남자 아니면 시집 안 가.' 요 말 다 속지 마십시오. 별소리 다 그라고 아주 딸들에게 호강 받았을 것이고, '우리 주인 어른 주인 어른' 굉장히 거석하고 '오늘은 풀이 어떻게 좋은지 새끼가 얼마가 났습니다. 뭐 얼마 젖이 얼마가 났습니다. 번들 번들합니다.' 좋았지마는 소돔 고모라 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눈을 좀 멀리 보고 떠야 되고 멀리 못 보거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행위의 등불이니까 말씀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해야 됩니다.
오늘도 그래도 셋째 주일인가 뭐 노는 날이라고 했는데. 내가 처음에 와서 보니까 여기에 훌빈하이 비어서 '이 우리 서부 교회 교인들 망할 교인들이 많이 있다, 많이 있다' 그렇게 생각이 됐는데 언간히 차기는 찼습니다.
다른 주일은 주일 못 지키다가 첫째 주일 셋째 주일은 주일 지킨다면 그 주일은 다른 주일 못 지키는 배나 마음과 성의를 다 들여 가지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해야 되는데. '이날 모처럼 노는 날이니까 오늘 놀러 가자' 놀러 가자 하는데 따라가는 계집도 망할 것이고 남편도 망한다 그 말이오! 자식들도 망하고! 왜 이리 망하는 길을 가고 있어 세어보면 알지.
오늘은 셋째 주일이라 노는 날인데 하나님 기쁘게 할까 우리 기쁘게 할까 하나님 좋게 할까 우리 좋게 할까? 오늘은 모처럼 노는 날이니까 한번 저 명승지에 한번 관광도 가고 또 동물원도 가고 식물원도 가고, '야, 아이들 너거 한 번도 데리고 놀지 못했는데 오늘은 실컷 한번 데리고 가 놀자.' 저거 좋게 하는 길은 소돔 고모라 성 같이 사해와 같이 망하고. 요거 알아야 됩니다! 망합니다! 망하고, 남편이 '오늘은 뭐 모처럼 하루 쉬는데 오늘은 한번쯤 도시락이나 싸 가지고 가도록 좀 해 놓지' 이라면 도시락은 싸 놓고서 '여보, 그렇지마는, 그래도 롯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좋게 하도록 해야 되지, 오늘 가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소 예배당에 가야 좋아하시겠소? 어떤 걸 좋아하시겠소?' 이래 가지고서 '도시락은 싸 놨는데 그만 이거 가지고 그만 예배당으로 갑시다' 요렇게 말하면 하나님이 고 마누라에게 축복을 줘서 그 남편에게 얼마든지 사랑도 받도록 요래 할 것이고, '예. 그라지요. 오늘은 한번 놀러 갑시다.' 앙기장 앙기장. 구쯔베니나 발라 가지고 요라면 하나님이 '요놈' 탁 때려서 병신을 만들든지 그리 안하면 가다가 차사고를 만나든지 안 해도 뒤에 자손이 소돔 고모라 성이 되고 만다 그 말이오. 요거 알아야 돼요.
뭣이든지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 좋게 하랴 나 좋게 하랴 아브람은 하나님 좋게 했고 롯은 저 좋게 했어. 롯은 처음에는 반대했지마는 가족들이 막 달라드니까 못 이겨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데에 가족들이 달라들면 가족이 죽든지 말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죽든지 말든지 '아, 나는 그래 하나님 좋게 그대 하면 나 자살할란다' '자살할라면, 뒈질려면 뒈지거라.' '아이구 나는 죽을랍니다.' 하고서 뭘. 뭐 거품을 빠글빠글 내 놓거는 '옆에 저 뭐꼬? 콩 재. 콩대를, 콩대를 태워 가지고서 재를 만들면 그 재가 제일 독한 재라. 재를 입에 툭 털어 넣어 버려.
아주 죽어 버리구로. 그라면 훅 불고 훅 살아나옵니다. 겁내지 말아. 하나님께서 자살하게 해야 자살되지 자살하게 안 하면 자살 안 해요. 자살로 위협하고, 뭐 공부도 '나공부 안 시키면 나 자살할랍니다.' 그런 협박에 떨어지지 말아요.
하나님의 뜻대로 할라 할 때에 자살도 나오다가 안 되면 죽일라고도 나오고, 죽일라 해도 하나님이 죽여야 되지 네까짓 게 죽일 수 있나? 자살한다 해도 상관없어. 하나님 좋게만. 하고, 저 좋은 거 치우고 하나님 좋게만 하면 하나님이 같이 하기 때문에 아무도 방해 못 합니다. 겁내지 마십시오. 죽음도 겁 내지 말고.
내 죽음도 겁내지 말고 저 사람 죽음도 겁내지 말아요. 담대히 나가요.
현실에서 나 좋게 하랴 하나님 좋게 하랴, 오늘도 보니까 여기 거득하이 차기는 찼습니다. 찼는데, 오늘도 아마 저거 좋게 하기 위해서 남편이 거석하니까 알랑알랑 흔들면서 지금 그래 가지고 구경하러 가고 아이들도 가자 하고 갔을 거라. 간 거 있을 거라. 오늘 당장 뒈지지는 안하고 벌은 안 받지마는 하나님이 축복하지 안하고 저주하니까 마지막에는 망하고 만다 말이오. 그러구로 그래 가지고 자식들 믿음을 다 떨어뜨려 가지고서 뒤에 가서 늙어 죽을 때야 '저놈이 믿음이 없어' 이래 끙끙 앓고. '이놈아 네가 젊을 때 너 좋게 했으니까 그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니가? 원인이 네게 있어.' 우리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좋게 하느냐 나를 좋게 하느냐, 따른 모든 가족들은 다 이제 저 좋게 하라 합니다. 아브람도 그랬오. 아브람도 그랬지마는 눈 찔끈 감고 다 버리고 '너희들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좋게 한다. 너거를 다 버렸으면 버렸지 하나님 버릴 수는 없다' 이게 아브람의 신앙이라.
둘째로는, 이렇게 마구 시비가 일어나니까 롯에게 문제가 닥쳤습니다. 자, 하나님의 내가 뜻을 따라야 되겠느냐 이 모든 인간들의 뜻을 따라야 되겠느냐 어느 걸 따라야 되겠느냐 이것 때문에 많이 고민했고 아브람도 고민했습니다.
하다가, 롯은 '아무래도 이 가족들의 뜻과 이 모든 목장들의 뜻을 따라야 되겠다.
이 많은 사람들의 뜻을 따라, 내 혼자 고집대로 할 게 아니라 이 많은 사람늘 따라야 되겠다.' 제 고집인가? 하나님 뜻 따르니까 만유의 대주재의 뜻인데, 그러기에 우리 현실에서 현실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딿느냐 하나님의 뜻보다도 인간들의 뜻을 딿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브람은 자기와 사람들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생명이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지 이래서 자기 뜻도 인간 뜻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 아브람이었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는 자 가족들의 뜻. 가족들의 뜻, 직장의 직원들의 뜻 상관들의 뜻, 사회 여론의 뜻, 국가 정권의 뜻 내나 그게 그거라. 현실에는 누구의 의사를 딿느냐 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현실에는 봉착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제 단독의 제 개인 의사를 딿든지, 가족의 사를 딿든지 온 사회의 여론의 의사를 딿든지, 시대의 의사를 딿든지, 전 인류의 의사를 딿든지, 뭐 어떤 정권의 의사를 딿든지 어쨌든지 그거는 인간의 의사요 인간의 의사와 하나님 의사가 있으니 인간 의사를 버리지 안 하면 하나님 의사를 딿지 못하고 하나님 의사를 버리지 않고는 인간 의사를 딿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닥친 고 현실의 이 기로를 가지고 있는 이 현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기와 모든 사람들의 의사, 다수의 의사, 대대수의 의사, 세계가, 시대가 세계가, 세계 시대가 이렇게 말한다고 '시대가 이렇게 말한다. 온 세대가 이렇다. 시대가 이렇게 말한다' 한다고 거기에 따라서 가느냐,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은밀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 뜻을 따라서 갈라고 하는 사람이냐 이것이 우리의 기로입니다.
얼마 전에도 다시 그것이 재론됐습니다. 자, 한국 교회가 전부 교단 등록을 다 하고 있으니까 이제 교단 등록을 해야 이런 편리도 있고 저런 편리도 있고 이런 혜택도 있고 저런 혜택도 있으니까 교단 등록을 하느냐 안 하느냐, 이제 모든 교회들이 다 교단 등록 다 하고 있는데, 이러니까, 다수들이 다 이 의사를 따라가고 있으니 하나님의 뜻이 교단 등록을 하는 것을 좋아하시느냐 안 하는 걸 좋아하시느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고 하지 안하고 다수를 따라가는 그 길을 따라서 갈라는 사람들이 우리 진영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어나도 내가 죽기 전에는 안 됩니다. 안 갑니다. 그러면 저거대로 가라 하지.
무엇이든지 다 그렇습니다. 인간 의사와 하나님 의사가 같을 때도 있지만 같이 하나 되면 좋고, 대개는 승패가 있을 때에는 인간의 의사와 하나님 의사와 대립됩니다. 대립되는데. 인간의 의사는 많은 세력들을 가지고 있고 다수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의사는 그는 겉으머리 나타나지도 안하고 깊이 살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의사인데 하나님의 의사는 배반해 봤자 아무 소용 없어. 상관 없어. 암만 배반해 봤자 조그만한 말썽 하나도 없습니다. 암만 배반해 봤자 조그만한 손해도 안 옵니다. 인간 의사는 배반하면 당장에 환난이 옵니다.
이래도, 환난이 와도 그 환난이 뒤에 상급이 되고 영광이 되고 축복이 되지마는, 하나님의 의사를 배반하고 인간 의사를 딿는 것은 현재에는 무슨 어려움이 없지마는 형통이 그것이 다 병이 돼 가지고서 전멸을 당하는 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 인간 의사와 하나님 의사 이 둘이 마주 서고 있을 때에 하나님 의사를 따르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축복을 받고 자기나 인간 의사를 따르면 망한다 하는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엄마, 오늘은 주일이지마는, 오늘은 주일이지마는 아버지도 모처럼 일하다가 쉬고 이라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아빠 엄마 다 이래 같이 다니고 놀러도 다니고 이라는데 한 번도 못 해. 오늘은 주일이지마는 엄마가. 엄마 오늘은 아빠하고 저 구경 가.' 이렇게 하고, 아이들도 가자 하고 딸도 가자 하고 아들도 가자 하고 또 남편도 가자 하고 요럴 때에 아내가 '아, 이런데, 그래도 오늘 주일 범해서는 안 될 건데. 안 될 건데,' '아, 엄마, 오늘 그라면 우리 주일 잘 지켜. 이다음에는 주일 잘 지킬 거라. 가자 가자' 이럴 때에. 고 때에 옆에 있는 모든 다수에 끌려서 어짤 수 없어서 '아이구, 오늘 이거 안 됐는데, 이거 하나님 섭섭하게 주일 범하고 가다가는 무슨 일 날지 모르는데 안 되겠는데, 이래도 너거가 하도 그래 쌓아니까 이거 참 안 됐다' 하며 끌려가면 그게 뭐입니까? 그게 아브람입니까 롯입니까? 롯. 롯. 고게 망치는 거라, 망치는 거.
'안 된다. 너거가 오늘 무슨 화를 당하려고 그러느냐? 하나님이 오늘 주일 범하고 구경 가는 걸 좋아하시겠느냐? 하나님의 뜻이 그거겠느냐? 안 된다.' 이래 가지고서, 거기에서 그려면 남편이 있다가 '저 계집은 예수를 믿어도 더럽게 믿어.
그래 믿기 때문에 내가 예배당에 안 간다. 오늘 같이 놀고 오면 내가 저녁에 가지. 오늘 같이 오늘 주일 오전에 구경하고 이라면은 나중에 저녁 일찍 먹고 예배당에 나도 같이 따라가지.' 고거 꼬우는 말이라, 꼬우는 말. 의를 행하기 위해서 죄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망하고 흥하는 것이 됩니다.
그저 직공도 그렇고 사장도 그렇고 공무원도 그렇고 대통령도 그렇고 다 그래.
누구든지 꼭 같애. 대통령도 '자, 이 현재에서는 하나님의 뜻은 뭐이겠느냐 이 국민들의 뜻은 뭐이냐?' 이래 가지고, 사울 왕이 국민들의 그 모든. 국민들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려 가지고서 나중에 자살하는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그때에 국민들이 따라가서 '이건 종자가 좋기 때문에 놔 둬야 됩니다.' 아무리 말해도 '하나님의 명령에 전멸하라 했는데 네가 하나님 명령 거역하니까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면서 호령을 쳐버리든지. 그래 안 하면, 호령을 안 치고 참 용사이니까. 사울 왕은 용사이니까 칼로 가지고서, '이거는 남겨 둡시다' 하면 칼로 가지고 목을 착 베어서 너는 날 넘어지게 하는 자라 하고서 집어 던졌으면 하나님께서 막 이랬을 (주 : 박수를 치심)것입니다.
'아 사울 왕아 사울 왕아 잘 한다 잘한다 네가 내게 합당한 자다' 얼마든지 축복했을 거라. 여러분들. 이런 하나님이오! 감정의 하나님이요 의지의 하나님이시오, 비판의 하나님 이시오, 지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시기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질투라고 말했어.
이런고로 반드시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뜻이냐 인간의 뜻이냐 하는 것이 마주서니까 거기에서 인간 뜻 따라 따라가지 않는 것이 나도 살고 인간의 뜻으로 따라가자 하는 그 사람도 살리고 다 살리고, 내가 하나님 뜻 버리고 인간 뜻 따라가면 나도 죽고 그 모든 것도 다 망칩니다. 여러분들의 가족들을 구원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왜 구원을 얻지 못 하고 왜 멸망을 자꾸 취하고 복을 받지 못하고 이렇게 저주를 받아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다 여기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거기에 또 한 가지는 이 아브람과 롯이 둘이 시비할 때 보니까 가족들이 말하기를 '여보시오. 이 가나안은 지금 풀 한 포기도 없지 물도 없지, 저게서 무슨 목축을 한다 말입니까? 풀 없지 물 없지, 무슨 목축을 한다 말입니까? 소돔들에는 물 좋지 풀 좋지, 평지지, 얼마나 좋습니까?' 이럴 때에 롯은 '아, 암만 그래도, 좋지마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되겠느냐? 하나님의 축복이라야 되니까 그리 가야 축복을 받겠나 저리 가야 축복을 받겠나?' 이라는데 '아, 그래도 현재 풀이 없는데 뭘로 가지고 목축을 먹인다 말입니까? 당장 '지금 소고 낙타고 모두 다 못 먹어서 막 뻐들거리는데 어짤랍니까?' 이러니까, 롯은, 눈에 보이는 현재의 조건들이 소돔이 좋습니다. 현재에 조건 좋은 그 조건 좋은 조건의 가치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축복의 가치와 두 중량을 비교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 축복하지마는 그래도 조건이 좋아야 되지 조건이 좋지 않으면 되는가' 이래서 하나님의 축복 보다 좋은 조건을 택했고, 아브람은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하나님의 축복 없으면 안 된다' 이라니까 모든 좋은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여겨서 조건보다 축복을 낫게 여겨서 택한 것이 아브람이었습니다.
이러니까, 눈에 보이는 모든 복되게 하는 모든 조건들 그거 좋고 또 하나님의 축복 있고 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혹 마주 설 때는. 눈에 보이는 조건 좋은 것을 택할라고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겠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라고 하면은 나쁜 조건을 택해야 되겠고 좋은 조건을 택할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겠고 요렇게 마주 설 때에 우리가 가는 걸음이 어느 걸음이냐? 마주 설 때가 있고 마주 안설 때도 있는 줄 압니까? 없습니다. 언제든지 현실에는 요 둘이 마주 서는 줄 아십시오. 요거는 언제든지 따릅니다. 롯은 현재에 조건 좋은 걸 택했어.
아무래도 우리가 여기에서는 그럴 터이니까, 장사는 아무 도시에 가야 장사가 잘 될 터이니까 그 장사를 해야 되겠고, 또 좀 거리끼는 거리끼지마는 무슨 장사로 사업을 갈아야 되겠고. 여기에는 월급이 적으니까 거기 가면 월급이 많으니까 거기 월급 많은데로 그리 아무래도 옮겨야 되겠고. 이래서 자 이런 조건 저런 조건, 월급 많이 받는 조건. 평안한 조건. 또 편리한 조건, 손님 많은 조건, 또 위치가 좋은 조건 별별 조건이 있겠지요. 그 조건을 하나님의 축복보다 권위있게 생각하느냐 하나님의 축복을 모든 조건보다 권위있게 생각하느냐? 그러면, 여기에서, 현실에서 조건을 볼까 하나님의 축복을 볼까 무엇을 보고 선택을 할까? 하나님의 축복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브람의 자손이요, 보이는 조건 좋은 걸 보고서 선택 하는 것이 롯의 걸음을 따라가는 멸망의 신앙인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 현실에는 요 것이 없는 때가 없습니다. 세밀히 구별해 보십시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라, 먼저 망하고 뒤에 성공한다 그거요.
먼저 망하고 뒤에 성공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모든 조건보다 앞세워서 하나님의 축복 위주로 살라 하니까 애로 있지, 인간의 모든 여론보다도 하나님의 뜻 위주로 살라하니까 애로 있지, 인간 좋게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 좋게 하는 것을 택할라 하니까 애로 있지, 애로가 있으나 잠시 후에 삼 일 만에 새벽에 부활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애로가 있어야 애로 지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와서 성공되는 것이 그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전 설교에서 우리 현실 만날 때에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해야 됩니다. 반드시 여기에서 나 좋게 하랴. 나 좋은 거보다 하나님 좋게 하랴 하나님 좋게 하는 것보다 나 좋게 하랴, 보다, 하나님보다 나 나 보다 하나님, 의사도 인간 의사보다 하나님 의사 하나님 의사보다 인간의사, 여기에는.
오늘 설교에는 보다가 다 붙었어. 세 본다가 붙었어. 눈에 보이는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축복보다 현재에 보이는 조건. 어느 것을 택해서 어느 길을 갈 것이냐? 여기에서 망하고 흥하는 것은 결정됩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해. 여기에서 결정됩니다. 곧 그날부터, 그날부터 거기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함께 하시고 거기에서부터 모든 애로가 붙어.
그러기 때문에, 믿는 신자들은 하나님보다 인간. 하나님의 의사보다 인간의 뜻.
하나님의 축복보다 땅위에 보이는 조건 이 길을 택해서 감으로서 기독자들이 다 곤고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아, 야, 이리 가면은 하나님의 축복은 받지마는 현재에 이거 참 뭐 볼 거 여러 가지 조건은 참 아주, 조건은 아주 나쁘다. 이러나, 하나님이 분명히 축복을 할 수 있는 그 길이다.' 이렇게 해서.
현실에서 자기가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인간의 여론보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 좋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 좋게 요 길을 택해 가지고 망한 사람이 없습니다.
요 길 택한 사람은 다 기적을 봅니다. 다 기적을 봅니다. 오늘부터라도 요 길을 택해서 가보십시오. 요 길 택해서 안 가기 때문에 다 저주를 받아서 맛 잃은 소금으로서 사람에게 밟힘이 되는 것이지, 요게 소금 맛인데, 요게 소금 맛인데 요게 진리인데, 요게 믿음인데, 믿음으로 하면 점점 영접함을 받고 높임을 받고 필요있는 인간이 되고 이렇게 귀중하게 대우받을 터인데 요 자기가 요 진리요 믿음의 길을 버리니까 쓸 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힘이 되고 말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요런 거는 확실히 아니까 작정을 해요. 여러번 들었으니까 알기는 쉽지마는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실행하면 하나님 취하고 전인류를 버려야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취하고 모든 조건들을 다 버려야 되고 하나님을 취하고 인간들과 다 대적이 되어지고 이래 되는 것인데 그게 쉬운 줄 압니까? 그래도 믿음으로 이기면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