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22:09
미혹의 시험과 강압의 시험
1986. 8. 27. 새벽(수)
본문:마태복음 4장 1절∼5절 상반절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이번에 장생골 집회에서 마태복음 4장 1절로부터 11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공부하고 난 뒤에는 반드시 우리들에게 이 실상을 이루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각자들에게 각양의 시험을 하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령이 둔한 사람은 그런 것을 모르고, 시험이 닥쳐도 시험이 닥친 줄도 모르고, 또 시험에 대해서 낙제를 했는지 합격을 했는지 그것도 모르고, 또 제가 천해져가고 있는지 존귀해져가고 있는지 그것도 모르는 그런 아주 그저 짐승과 꼭 같은 그런 사람도 우리가 되기 쉽습니다.
뭐 그런 사람이 따로 있는 것 아니고 깨지 안하면 그만 그런 사람 됩니다. 깨면 깨끗하고, 밝고, 실력 있고, 용감스러운 그런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깊이 잠들었을 때에는 그거 뭐 송장이나 별수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깨어 있지 않고 자면 그렇게 그만 아주 실력이 다 자 버리기 때문에, 실력이 다 자기 때문에 아주 못쓸 사람 돼 버리고 맙니다. 또 아무리 못난 사람이도, 부족한 사람이라도 깨어 있으면 그것은 제대로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한 일 년 좀 못 됐는데 그때 저는 믿은 그때부터 설교는 계속했습니다. 늘 전도 강연하고 또 교역자 없는 교회 가 가지고 설교하고 이랬는데, 내가 그때 그런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차이는 좁쌀내끼, 서숙. 좁쌀내끼의 차이도 못 된다. 아무리 구비하고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장 못나고 못쓸 그런 사람과의 그 차이는 높이가 좁쌀내끼 차이 난 더 이상이 차이가 없다.’ 사람들은 뭐 사람의 차이가 그래 큰 줄 알지마는.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고 안 입은 차이는 얼마나 크냐? 대속을 입으면 마치 하늘같이 높고 대속을 입지 안한 자는 땅과 같이 낮다.
성경에그래 놨어. 이렇게 차이 있다.’ 하는 그것을 참 그때 절실히 깨닫고 많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설교할 때는, 지금 그런 말 쓰지 안하지마는 그때는 반드시 가정 예배에 가든지 어데 가든지 가서 설교할 때는 그런 말 하고 설교합니다.
‘지금은 이 성구의 말씀을 가지고 주님이 찾아오셔서 친히 이 성구의 말씀을 하신다. 주님이 이 시간 찾아오셔 가지고 이 말씀 하신다.’ 그 말을 꼭 선포해 놓고 내가 설교했지 한번도 그렇지 안하고 설교한 일은 없었습니다.
여기 서부교회 와 가지고도 한 근십 년 동안은 늘 그렇게 말하다가 지금 안 합니다. 왜? 그만하면 다 알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을 그렇게 별로이 쓰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잘나고 못난 사람의 인간만의 차이는 그렇게 좁쌀내끼 하나 높이 더되고 덜되고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뭐 그까짓 거 무슨 차이가, 높고 낮은 차이가 그렇게 있다고 볼 수 있을 게 뭐 있습니까? 좁쌀내끼 하나 차이니까.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못나도 자기가 예수님의 대속의 이 생명, 이 생명과 연결이 되면 그는 하늘같이 높고 아무리 잘나도 이 생명과 연결되지 안한 사람은 좁쌀 두 내끼 포개 놓은 거와 같은 정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깨어 있다 말은 자기가 중생된 이 세 가지 대속을 연결해 가지고 이 대속을 입고 사는 그것이 깬 생활이고 이 대속을 벗고 사는 생활은 그것은 자는 생활입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잘나도 대속 벗고 산 그 사람은 실은 그 사람이 참 좁쌀내끼 두 내끼 포갠 정도밖에 안 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살면 아무리 천치 바보 못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은 하늘같이 높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깨어 있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방편을 배웠다 할지라도 그 방편을 쓰지 안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거창 가서 이 시험에 대한 공부를 아주 세밀히 했고 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셔서 알기 쉽게 간략하게 간단 명료하게 그렇게 우리가 공부를 했습니다.
했으면, 자기가 그 한 말씀을 가지고, 깨어 있다는 것은 그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보면 분명히 여러분들이 다 시험을 만났을 것입니다.
어제도 어떤 데에서 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저 시외전화가 왔는데 이렇게 이렇게 어려움을 닥친 일이 어려움을 만났는데 어려움에 대해서 나는 그 소리를 들으니까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상대방은 근심을 가뜩 하고 말했는데 저는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오, 하나님이 이제는 착수를 하셔서 시험을 치르는 것 보니까 이번 공부를 잘했으면 올라가겠구나.’ 그랬는데 그쪽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이번에 거창 가서 시험에 대한 공부를 했으니까 잘 배웠고 충분히 배웠으니까 어짜든지 이번에는 담대히 승리를 하도록 그렇게 좀 혹 목사님이 한번 권고해 줄 수 없습니까?’ 그렇게 말을 합디다.
그래서 내가, ‘내가 시간 있으면 한번 전화하겠다.’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하니까 그때는 그저 약간의 말을,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시험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내가 말해서, ‘예수님은 성령님이 인도하셨는데 오늘 우리도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성령님이 마귀에게 시험 받으라고 광야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광야로 인도합니다. 그래 가지고 일차적인 그 시험은 물질 시험이었습니다.’ 요걸 말하니까 대답이 ‘예,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끊었는데, 내가 좀 미심스러워서 지난밤에 한 아홉시쯤 됐던가 다시 전화를 새로 했습니다. 새로 해서 내가 그걸 재독을 다시 약간 한, 한 이 분 가량 하니까 그 상대방이 말하기를 ‘예, 감사합니다. 생명 내놓고 싸우겠습니다. 생명 내놓고 싸우겠습니다.’ 인제 그런데 그런 것이 작은 일만 그런 게 아니고 어떻게 큰 일이라도 그러합니다. 그전에 우리 나라에 ○○○외무부 장관이 여기 있었었는데 그분이 이런 성경 도리를 바로 배웠다고 하면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일인데 그걸 모르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분명히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당하고 있으나 시험 당한 줄도 모르고 시험장에 있지마는 시험장을 노는 장소로, 시험장을 뭐 먹는 장소로, 시험장을 자기 취미와 욕심을 누릴 장소로 이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시험에 떨어집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시험 치르기 전보다 천해집니다.
사람이 천해지는 거는 전부 시험에 낙제 낙제로 천해지고 사람이 기독자가 존귀해지는 것은 시험에 합격 합격으로 존귀해지지 그냥 되는 일은 없다는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몇 번이든지 말했습니다.
기독자가 뭐 사장이든지, 장관이든지, 대통령이든지, 동장이든지, 또 점포 주인이든지, 직공이든지, 또 가정부든지, 뭐 점원이든지, 교역자나, 권찰이나, 장로나, 집사나, 무슨 어떤 사람이든지 다 기독자라면 절대로 시험 없이 ‘어제보다 오늘 못하다, 오늘보다 내일 못하다.’ 천해지고 약해지고 가난해지고 그렇게 내려가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기독자가 시험 없이 내려가는 일 절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기독자가 시험 없이 절대 내려가는 일이 없습니다. 요걸 알아야 됩니다. 절대 내려가는 일이 없습니다.
또 기독자가 시험 없이 올라가는 일도 절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험으로 천해지고 귀해지고, 이 시험으로 가난해지고 부강해지고, 이 시험으로 병들고 건강해지고, 이 시험으로 행복되고 불행하다는 요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진리가 외부에 나와 가지고 있는 것은 여러 수백 수천도 넘습니다. 그러나 어느 진리든지 그 진리를 거머쥐고 들어가 보면 모든 진리가 거게 다 있습니다.
만일 만 가지 진리가 있는데 만 가지 진리가 예를 들어서 한 발을 들어가면 한 발 들어가면 만 가지 진리가 똘똘 뭉쳐서 백 가지 진리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백 가지 진리가 돼 가지고 있소. 만 가지 진리가 백 가지 진리로 결합돼 있어. 또 백 가지 진리를 한 발쯤 더 들어가면 열 가지 진리가 돼 있습니다. 열 가지 진리를 한 발 더 들어가니까 하나가 돼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라. 진리는 하나. 그러기 때문에 어느 진리를 잡고 들어가든지 두 발만 들어가면 이 진리나 저 진리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단일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워도 이 말씀을 무시해 버리면 자기에게는, 이 말씀은 전부 하나님의 충만한 걸 우리에게 갖다 주시는 실상인데 하나님의 모든 면으로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에게 갖다 주실 때에 뭘로 주십니까? 저 ○○○집사님? 녜, 진리로 줍니다. 말씀으로 준다 그말이요, 말씀으로.
말씀으로 주니까 그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말씀을, 겉으로 보면 다 말씀이라 이래 보지마는 그 말씀이 이 사람에게는 돈의 실상으로, 저 사람에게는 권세 실상으로, 이 사람에게는 병의 치료의 실상으로, 이 사람은 회개의 실상으로, 그렇게 그 실상을 우리에게 말씀으로 줍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은 하나님의 온갖 충만한 은혜의 실상이라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배우고 듣고 읽은 그 말씀을 버리지 안하고 그 말씀대로 행해 보니까 그 실상이 나와 버립니다. 알겠습니까? 행해 보니까 그 실상이 나왔다 그거요.
이런데 말씀을 아무리 읽고 듣고 배웠지마는 자기가 행하지 안하니까 실상이 나오지 안해. 행하면 실상이 나와요.
이러니까 이번에 그 시험에 대한 공부를 했는데 자기가 깨어 있어 ‘시험의 공부를 했으니 내게 대해서는 시험이 없나?’ 하면 그 시험이 치뤄집니다. 제일 아주, 하나님이 요래 해 놓고 가르쳐 놓고 요렇게 또 우리에게 실행을 시키기 때문에 요 순서가 틀림이 없습니다.
제일 처음이 물질 시험이고, 그다음 시험이 실력 시험이고, 권세, 실력 시험이고, 그다음이 모든 것을 정복하는 정복 시험입니다. 그 순서가 그래 와요.
이러니까 아마 물질 시험을 닥쳐 가지고 물질 시험인 줄 안 사람은 이겼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벌써 져서 천해졌을 것이고 이러니까 ‘천해지기가 싫으냐?’ `네가 자꾸 시험에 낙제하지 안하도록 네가 모든 것을 준비해라’ ‘네가 올라가고 싶으냐?’ ‘올라가고 싶거든 시험을 자꾸 치르라' 시험을 치러야 올라가지요. 기독자는 시험을 치러서 합격이 돼야 올라가고 기독자는 시험을 쳐서 낙제가 돼야 내려오지 낙제되기 전에 절대 내려오지 않습니다. 또 합격되기 전에 절대 올라가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내려가기 싫거들랑 낙제만 하지 말아라. 올라가고 싶거든 자꾸 시험마다 합격을 해서 그래 올라가라. 이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이것도 들으면 알기 쉽지만 이것을 성경에 아무리 읽는다고 해 가지고 껍데기 읽는 사람은 자기가 평생 예수 믿어도 모릅니다. 성경을 여러 뭐 수십 독을 읽고 외워도 모릅니다. 평생 목사 노릇을 해도 모릅니다. 깨닫지 못하면 모르는 거라.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요 시험이라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예수님은 성령님이 시험을 받도록,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시험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뜻 아닙니까? 우리 시험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우연입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시험을 닥치는 것이, 시험 닥치는 것이 우리에게 불리합니까 유익합니까? 시험 닥칠 때에 준비한 사람은 유익하지마는 준비 안 한 사람은 시험 안 치는 것만 못합니다. 시험을 안 치르면 그 자리 앉았을 터인데 시험을 치러 가지고, 과장 시험을 치르는데 과장 시험에 뚝 떨어졌으면 그만 내려와 버려야 됩니다. 또 준비한 사람은 과장 시험을 치렀는데, 계장이 과장 되는 시험을 치렀는데 합격되니까 그만 과장으로 쑥 올라가 버립니다.
그러면 시험은 어떤 사람에게 불리하고 어떤 사람에게 유리합니까? 예? 뭐요? 예.
준비한 사람에게는 유리하고, 준비한 사람에게는 자꾸 시험이 있어야 되고 준비 안 한 사람에게는 시험을 안 치르는 게 좋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안 치를라고 한다고 안 치러집니까? 또 시험을 치르고 싶다고 자꾸 뭐 제맘대로 시험을 한 시간에 몇 군데든지 치를 수가 있습니까? 그래 안 됩니다. 이 시험은 조물주가 대속주가 주권자가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시험은 응하지 안할래야 안 할 수 없고 또 이 시험을 제가 하나님이 주시는 그 시험 외에 딴 시험을 제가 개별적으로 쳐 가지고 올라갈라고 뭐 해도 그렇게 치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요거는 꼭 일정하게 하나님께서 기독자에게 시험을 치르도록 일반적으로 쪽 순서대로 그 시험을 우리에게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험은 성령님이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치르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인도하셨는데 오늘도 성령님이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시험을 치르도록 계속 인도하십니다. 시험을 치르도록 계속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를 시험 치르도록 인도하시는 그 인도가 여러분들에게 믿어집니까? 성령님이 우리 시험 치르도록, 시험을 치르도록 인도하신다는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녜, 믿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예수님은 광야로 인도하셨는데 오늘 우리는 성령님이 어떻게 인도합니까? 성령님 인도를, 우리가 눈에 성령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 인도를 보지를 못하는 건데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어떤 것이, 성령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성령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성령님이 우리를 시험치르게 할라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현실은 시험 치르는 시험장이라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을 해야 됩니다. 모든 현실은 시험장이라. 그런데 인도하실 때에, 시험 받게 하실라고 인도하실 때에 도시로 인도했습니까 광야로 인도했습니까?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도시는 오만 인간에게 필수한 것들이 가득찬 것이 도시요 온갖 행락와 취미를 누릴 수 있는 모든 필요한 것들이 가득 찬 것이 도시입니다. 그런데 광야는 뭐입니까? 어떤 게 광야입니까?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는 것이 광야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는 것이 광야라 하는 걸 그만 알면 됩니다. 도시의 반대가 광야요 광야의 반대가 도시라.
그러면 인도하실 때는 광야로 인도합니다. 광야로 인도하는 것은 광야는 아무것도 없어. 자기에게 필요한 필수한 것이 하나도 없어. 아무것도 없고 그저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 생활 가만히 해 보면은 현실이 닥쳤을 때에 아주 분주한 현실도 오고 또 아주 쓸쓸한 현실도 오는데 우리 시험은 두 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유혹의 시험도 있고 아주 압박하는 그 무력의 그 탄압적인 시험도 있고 시험이 두 가지가 있는데 유혹의 시험을 받도록 인도할 때에는 어데로 인도하겠습니까? 어데로 인도하지요? 예? 녜, 도시로 인도합니다. 도시로 인도하요.
도시로 인도해서, 어떤 현실을 닥쳐 놓으면 필요한 것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막 그런 것이 구비하게 꽉 차서 자기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것들이 가뜩 차여오는 그런 것은 도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도시로 인도할 때에는 잘못하면 자기에게 좋고 필요한 것이 많이 있으니까, 자기가 기도하다가도, 기도하다가도 기도하는 데 성령님이 나를 도시로 인도할 때도 있고 또 광야로 인도할 때도 있습니다. 기도하면 기도하는 중에 이런 필요 저런 필요, 기도하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이것도 해야 되겠다 저것도 해야 되겠다’ 할 일이 많이 생겨지고 또 필요한 일이 많이 생겨지고 그 안 하면 그만 낭패될 그런 일이 많고, 기도하기 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기도하고 나니까 뭐 생각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그러니까 기도하다가 그만 그거 생각하기 쉽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중에 나에게 알려 주신 것이니까 이거는 분명히 하나님이 알려 주신 것이니까 이거는 필요하다 요긴하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기도하는 가운데에도 필요하고 요긴한 것이 자꾸 생각나는 그런 것은 다 도시로 자기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도시로 인도하는 것이오.
또 기도하지 않고 이래 눈을 뜨고 있으니까 이 사람이 와 가지고 필요한 것 저 사람이 와 가지고 필요한 것, 뭐 좋은 것, 요긴한 것, 유익될 것, 수입될 것, 장사 잘될 것 그런 것을 자꾸 얘기도 하고 그런 물건도 자꾸 옵니다. 이라니까 그것이 도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인도하니 사람이 그 좋은 것 있으니까 그만 거기에 마음이 기울어져서 한참 얘기하고 이것 저것 하다 보니까 하루 종일도 주님 잊어버리고 그만 며칠도 주님 잊어버리고 어떤 사람은 거게 붙들려 놓으면 몇 달도 몇 해도 그만 주님 잊어버리고 끌려가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많이 나타날 때는 나를 미혹으로, 미혹의 시험을 줄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 그럴 때는 그런 것을 다 버려야 됩니다. 아무리 기도 중에 생각나도 그거 사탄이 가르쳐 주는 줄 알고 그런 거는 ‘물러가라’ 이래, 이래야 됩니다. 물리치고, 또 마귀란 놈이 시험할 때는 그렇습니다. 아주 요긴한 것을, 요긴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평소에는 생각 못 했던 것을 딱 가르쳐 주며 ‘요게는 요렇게 요긴한데 요 일은 요렇게 해결해야 된다’ 하는 것을 아주 좋은 지혜를 알려 줍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두 가지 시험이 됩니다. 알려 줄 때 ‘요거 됐다’ 그러면 기도한 것 중지하고 그것을 생각해 가지고 연구해서 기도하던 것이 그리 졸졸 따라나가면은 마귀의 미혹의 시험에 떨어진 사람입니다.
또 그렇게 안 따라나가고 ‘이거는 마귀가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걸 물리쳐야 된다. 물리치고 마귀가 준 것이기 때문에 다시 내가 안 해야 된다. 이거는 다시 안 해야 된다.’ 자기에게 닥친 그 일을 할라면 그 일을 해야 되지 안 하면 안 되는데 마귀가 자기를 미혹하기 위해서 준 시험이니까 ‘이것은 마귀가 준 시험이니 앞으로도 내가 이 방편은 안 써야 된다’ 이 마귀란 놈이 떡, 그걸 따라서 가지 안하고 물리친다 말이오. ‘이거는 사탄아 물러가라. 내가 기도하는 데 이래 잡탱이 넣어 는 것은 사탄의 시험이다.
물러가라.’ 이랬다 말이오.
물러가라 하면 이놈이 패전했습니다. 마귀가 패전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기도하는 데 기도하다가 그리 따라 나가지 안하고 물리쳤으면은 마귀가 패전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패전해. 뒤에 저 말을 해요. 그래야 내가 따라서 오는 줄 알지.
패전했습니다.
패전했으면 마귀가 ‘아이구 패전했다. 그만 가자.’ 보따리 싸 가지고 갑니까? 아니오. 패전했으면 그다음 이차 전술이 있습니다. 이차 전술은 딱 이제 ‘네가 이것은 기도 가운데 이래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탄의 시험이요 유혹이라고 해 가지고 물리치지 안했느냐? 이거는 분명히 사탄이 준 것이고 사탄이 너를 미혹할라고 시험한 것이니까 이런 방편은 네가 앞으로도 안 써야 된다. 안 써야 된다.’ 그러면 그 방편을, 앞으로 자기 걸어나가는 데에 그 방편을 안 써야 됩니까 써야 됩니까? 안 써야 됩니까 써야 됩니까? 자,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안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것도 저것도 모른다 그말이오.
자기가 기도 가운데에, 이제까지 이랄까 저랄까 몰랐는데 아주 좋은 방편을 썩 나왔습니다. 마귀가 줍니다. ‘네가 이제까지 몰라서 이리 이래 생각을 가지고 이 못 했지마는 이 방편이면 된다.’ 좋은 방편을 마귀란 놈이 척 갖다 줬습니다.
갖다 줬는데 그럴 때에 그 방편을 내가 기도를 중단하고 그리 따라가면 마귀의 시험에 졌습니다. 요거 똑똑히 배워요. 마귀의 시험에 졌습니다.
그럴 때에 ‘이 사탄이 물러가라. 내가 기도하는데 그게 무슨 필요 있나?’ 물리쳐 버리고 이제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면은 마귀란 놈이 재차적으로 와 가지고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잘했다, 그거 그걸 기도하다가 그런 미혹이 들어왔는데 미혹 드는 것을 물리쳐서 물리친 것이 잘했다. 이것은 물리친 것 이것은 잘했다. 이것은 사탄이 너를 시험할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방편은 네가 앞으로도 하면 이거 마귀가 너를 인도한 그걸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안 해야 된다.’ 그렇게 말합니다.
‘앞으로 안 해야 된다’ 하면 그 말대로 앞으로 그런 방편은 사용 안 해야 됩니까 사용을 해야 됩니까? 그럴 때에 이차 시험입니다. 그럴 때에 또 말하기를 ‘사탄아 물러가라. 내가 기도만, 내가 기도만 안 뺏기고 지금 하고 있는데 그 방편이 필요한지 안 필요한지 그거는 내가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고 앞으로 필요하면 얼마든지 쓸 것이고 필요 안 하면 안 쓸 것이지 그거 내가 그것으로 안 쓴다고 단정 지울 줄 아느냐? 사탄아 물러가라.’ 이라면 이차 시험을 이겼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자꾸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다시 재독인데 여러분들이 현실을 닥칠 때에 그 현실은 누가 그 현실을 만들어 줬습니까? 성령님이 만들어 줬습니다. 그 현실은 뭐할라고 만들어 줬습니까? 그것은 나로 하여금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서 시험 치르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 줬습니다.
그러면 시험 치르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 만들어 줬으니까 그 현실은 우리를 어떻게 하는 그 결과를 맺는 현실입니까? 그 현실은 내가 잘 준비했으면 푹 올라가는 현실이 되고 내가 준비 안 했으면 푹 떨어지는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요만치만 하고 오늘 아침에는 또 그치고, 그만 시간이 또 많이 갔어. 십사분, 다섯시 십사분이니까, 요거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시험 공부했기 때문에 ‘이 현실은 전부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라.’ 하나님께서 현실을 요런 현실 만들어 주면 거게 합당한 성구를 지켜야 되고 저런 현실을 만들어 주면 거게 해당한 성구를 지켜야 되니까 하나님께서 요 성구를 지키게 할라고 하면은 거게 해당된 현실을 만들어 주고 저런 또 성구를 지키구로 할라면 저런 현실을 만들어 주면 되고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면 현실을, 주님이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시험 문제를 자꾸 이래 바꿔서 자꾸 이렇게 교체해 준다 말이오. 그러니까 예수님은 성령님이 그 시험을 받게 할라고 광야로 인도했는데 오늘 우리도 시험을 받게 할라고 성령님이 현실을 만들어 주는 것이 마귀에게 시험받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을 만들어서 주시는 것이라 말이오.
그런데 현실은, 현실 시험은 몇 가지 시험이 있습니까? 현실 시험은 몇 가지 시험이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그래. 둘이야. 시험은 무슨 시험 둘? 미혹 시험, 미혹의 시험. 또 하나는 우리를 강제로 강압의 시험 이 시험 두 가지 있어요? 미혹의 시험은 어떻게 어떤 현실이 오는 것이 미혹의 시험이요? 도시 시험.
도시라 말도 이것도 하나 비유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많은 도시 시험. 또 강압의 시험, 강압의 시험은 어떤 시험입니까? 광야. 요것만 알아서, 요것만 알아도 마구 이 세상, 요번에 시험 받은 거 세 가지 요것만 알면 뭐 어떤 세상이라도 척! 척! 척! 척! 자꾸 올라가. 떠뿍떠뿍 올라가서 뭐 잠시 올라가면 저 위에까지 올라가 버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그거와 지난 주일에 일곱 가지 도적질 한 회개한 것과 내나 그게 한 가지라. 그게 하나가 돼야 돼, 하나. 일곱 가지 도적질 회개해요. 회개하면 자꾸 부자되겠는데. 부자가 돼야 우리가 분교도 저거 전부 지교회를 다 만들지. 지교회 그것만 만들라 해도 이십육억은 있어야 돼. 이십육억은 있어야 되니까 여러분들이 이십육억 할라 하면 ‘나는 우리 교회에 몇분지 일은 해야 될 터이니까 얼마 되느냐?’ 그렇게 여러분들이 부자가 돼야 뭐 연보를 하지 할 수 있습니까? 부자는 어떻게 해요? 도둑질 해야 부자 돼요? 사기 협잡해야 부자 돼요? 어떻게 해야 돼요?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면 네가 너를” 어떻게 했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한다” 했어. 요거 쉬운데, 한번 시험해 봐요.
그 일곱 가지 회개를 한번 일곱 가지 도적질을 회개해 봐요. 당장 자기 속에 변화 있는 것이 자기에게 환하게 보일 거라. 변화돼요. 사람이 변해져 버려. 사상이 변해져 버렸고, 평가가 변해져 버렸고, 비판이 변해져 버렸고, 계획이 변해져 버렸고, 소원이 변해지고 확 변해져 버려. 그러면 자기가 봐도 ‘야, 복받을 만하다.’ 그렇게 평가될 것이라 그거요.
새벽기도 꼭 나와요. 자꾸 계속해 나와야 되지, 오늘 아침에도 뭐 오늘 아침에는 한 팔백 명 될까, 이러니까 자꾸 전도해요. 믿는 사람에게 자꾸 전도해.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래도 지난밤에는 재독에 참석한 수가 구십칠 명밖에 없어. 참, 이 재독 한 시간 참여하면서 거게서 작정하면 얼마나 큰 복이 오는데 뭣이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이렇츰 바쁜지? 인제 제일, 장로님도 제일 철거리, 제일 꼼뱅이 장로 철거리가 이제 선봉장이 됩니다. 앞에 선봉장이 돼. 그러니까 성경에 말하기를 “먼저된 자 나중되고 나중된 자 먼저된다” 이랬지. 뭐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힘만 쓰면 잠깐 올라가 버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