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10:49
모든 존재의 목적
1981. 10. 25. 주일오전
본문 : 로마서 11장 33절 - 36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으리로다 아멘
세상을 어두움이라 말씀하신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지만 타락한 인간으로 인해서 삐뚤어져 있다는 것을 어두움으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모든 지식이 삐뚤어져 있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의 소원과 목적이 삐뚤어져 있고 쓰는 방편들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죽자껏 노력하는 것이 사망을 향하여 찾아가는 결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빛을 보내셨다" 하는 말씀은 세상에 삐뚤어진 것을 발리워서 삐뚤어짐으로 사망된 것을 바로 됨으로 생명으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을 가르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두움에서 나와서 빛 안에 있어야 하고 빛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름만 믿는다는 이름을 가지고 믿는 한 제도와 형식이 되는 주일날 교회에 또 성경이나 보고 기도나 하고 전도나 하고 이렇게 하면 구원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런 아주 허욕적인 요행심적인 신앙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삐뚤어진 것을 바로 가르쳐주신 그 가르치심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이종교에도 종교마다 다 경전이 있으니 성경도 그러한 경전 중에 하나라 이렇게 사람들이 일반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을 기계와 같이 유기적으로 쓰셔서 획 하나도 틀림이 없는 정확무오의 기록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식을 주셨습니다. 이 지식은 천지가 없어지는 것보다 획 하나 가감하는 것이 더 불가능한 것을 보증을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공로의 은혜를 입지 않는 자는 믿을 수 없고 은혜로 중생된 사람이라야 믿기 시작하는 것인데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신구약 성경 말씀은 정확무오한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천하에 있는 말들이 다 반거짓말입니다. 왜 사람을 복되게 살리게 평안하게 한다는 말인데 실상은 다 죽어 멸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살게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이 성경 말씀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얻는 길이 없다고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신구약 성경을 어떤 그 성현의 저작한 경전으로 이렇게 보고 거기에도 다소 잘못됨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나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대로 믿어야 하는데 성경은 획 하나를 가감하는 것이 천지를 없애는 것보다 어려워 절대 변동없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은 번역한 성경을 말하는게 아니고 처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원문성경 그 한 권을 말합니다. 그 성경은 사람들이 번역하는 번역은 틀리는 것이 종종 있습니다마는 근본 이 원본성경은 틀림이 없습니다. 원문으로 기록한 것이라도 근본 이 성경에 다 사본으로 그렇게 낸 것은 또 틀림이 있지마는 근본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로 주신 성경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는 것이 무엇이냐? 중생된 자가 믿는 것은 피로 구속받은 자들이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모든 것을 지식하고 지혜하고 소망하고 방편을 정하여 노력하는 것이 그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떠나서 다른 어떤 그런 방편이라도 그는 혹 성경을 근거한 것이라면 우리가 참고는 하지마는 성경과 위반된 것이면 그것은 다 우리에게 유혹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모든 존재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여기 간단하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영물이나 이 물질계에 있는 것들이나 또 자존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나 다 존재인데 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밝히 알아야 합니다. 이 목적 이하에 수많은 목적들이 단체마다 각각 따로 있고 개인마다 있지마는 이 목적은 전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에 자기라는 존재도 이 전 존재에게 소속한 한 군자인 것을 깨닫고 이 목적을 자기 목적으로 삼아야 살지 이 목적에 위배되면 다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영계에 그 영계나 영계의 것이나 이 물질계라는 이 우주나 우주하면 모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그 하나님이 사람이고 오시기 전 하나님으로 계실 그때의 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셔서 그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분에게서 나왔다 말은 그분의 본체가 흐려져서 그 분자가 나와서 만물됐다 말 아니고 그분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영원 불변자십니다. 그분의 그 무한하신 사랑과 기쁨과 온전하신 뜻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셔서 생겨진 것입니다.
영계에게나 물질계의 것이나 모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이신 하나님 이분에게 지음을 받아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천하 사람이 다 반대해도 이는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세상은 부인하는데 하나님이 없다 인간이 제일이다 해서 무신론 을 주장하고 인간이 제일이 아니라 물질이 제일이다 해서 유물주의를 인정하고 이렇게 세상이 어떻게 흉용한 인간사상의 물결이 흘러내려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 물들지 아니하고 거기에 요동치 아니하고 크고 작은 것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우리 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사실을 요동치 않고 믿어야 합니다.
이 신앙을 요동 안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주의 그자들도 주님이 다 지으신 것입니다. 거기 속한 모든 필요로 한 것들도 다 주님이 지으셔서 그런 것들을 다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믿는 사람 뿐만 아니라 안믿는 사람 땅의 것만 아니라 영계의 것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은 이분의 창조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계에 높은 지식을 가졌다 하는 자일지라도 그 자가 모든 존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됐다는 이 사실을 제가 부인하면 저희의 지식은 생명이 없고 뿌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저에게는 확정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추론 추측 가정 그 거짓뿌리 뿐이지 그가 참 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둘째로 주로 말미암고 주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창조되어 있는 이 모든 것은 주님으로 인하여 살고 주님으로 인하여 보존되고 주님으로 인하여 먹고 마시고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여 살게 하려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또 하나님의 은혜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인 그 진리의 법칙대로의 모든 것이 이렇게 살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또 지음을 받은 피조물들의 존재 목적인 것입니다. 땅 위에는 점점 타락이 짙어져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다는 것부터 잊어버리고 스스로 생겼다 자존한 것같이 스스로 생겨 있다. 어떤 피조물로 말미암아 자기는 생겼다 그러면 자기가 생긴 그 피조물은 어디서 나왔는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고 지음 받은 것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이랬는데 인류 시조가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물질계의 모든 것에 주인공으로 하나님이 지위를 세워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특수 권위를 주어서 이 물질계의 피조물 중에는 인간이 성경에 최상의 권위의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것은 다 인정하고 그의 것으로 사는 줄은 알면서 '그로 인하여 살라 그로 말미암아 살라 그를 바라보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법칙의 인도대로 살아라 만일 어기면 네가 죽는다' 말씀했는데 인류 시조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그 선악과 먹은 그 행위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법칙을 어긴 죄값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한 죄를 범한 한 죄값을 받아 사망당했습니다.
사람들이 땅 위에 살면서 이것 저것 자기가 싫어하는 것이 많고 두려워하는 것이 많지마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 죽음이요,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왜?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벌로 받았기 때문에 제일 두렵고 제일 싫고 제일 불행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이 제가 대대로 많은 백성들을 제 부하를 삼아 가지고 하나님 없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 그 무신론자들 그들이 제 눈을 제가 뽑고 제 목을 제가 자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값으로 죽는다 하는 그 죽음에 제가 동참한다는 것이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한 것이 하나님을 어긴 그 한 행동의 값으로 사망을 저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무시론을 주장하려면 하나님의 창조를, 그 법칙을 부인하려면 제가 안죽어야 합니다. 보라 '성경에는 죽는다 하는데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거기서 벗어났다' 나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면 안죽으면 큰 소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늙어지고 뒤지거든 소리를 하지 말라 그말이오. 앞으로 받을 심판이 커. 그 존재의 목적은 첫째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중심 위주로 해서 하나님의 법대로 세상살이를 해라 하는 이것이 조물주의 목적이요, 피조물들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 지음을 받을 것이라면 자기는 땅 위에 이런 위치 저런 위치 이런 부분 저란 부분 이런 종류 저런 종류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고 살든지 제가 존재한 것은 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이고 제 생명이 보존되고 유지되는 것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제가 살 것은 저를 지으신 그분을 위하여 그분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법칙대로 사는 것이 저희의 삶이라는 것을 알고 살면 끝이 있고 이걸 모르고 반항하고 살면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는 지식으로 나는 주의 지음받은 피조물이라 알면 됐고 하나는 그분의 요구가 있으니 그분의 요구에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인정하고 당신만 두려워하고 당신만 사랑하고 당신의 법칙대로 사는 이 범위 내에서만 살고 이 범위를 벗어나면 죽는다 이 범위 내에서만 산다 하는 요것을 알고 살면 죽지 아니하고 이 범위를 벗어나면 죽습니다.
인간은 인류시조 아담 해와때에 이 범위를 벗어남으로 부정모혈의 일반 생육법으로 출생한 자는 누구든지 다 그 정죄 아래에 있어 이 범위를 벗어난 값으로 영원히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안죽을 자 없습니다. 다 죽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안죽을 자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죽습니다.
셋째로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이 세상살이를 주의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 살고 범위를 벗어나 살고 주의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고 하는 이런 각각 그 층어리 있게 각 종류의 생애를 제가 어떻게 살던지 살고 난 다음에는 세상살이를 끝내고 가야 합니다.
잘살았든지 못살았든지 가야 합니다. 그 생애를 벗어나 살든지 그 생애 내에서 그 범위 내에서 살든지 그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명령 순종으로 그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든지 혹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생애 권리의 그 범위 밖에서 혹은 범위 안에서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 셋 종류로 계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생살이를 하고 가야 합니다.
어떤 자는 이 범위를 벗어났다가 범위 안으로 들어갔다가 벗어났다가 들어갔다가 이 범위 안에서 살다가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좀 살다가 하나님의 범위 내에서만 살다가 하나님의 위해서 살다가 이렇게 몇천번 몇백번 중복했든지간에 그의 언행심사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책에 기록해놨다 성경에 그렇게 해놨습니다.
하나님의 책에 기록해놨다 하는데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들도 필림에 사진 찍어 놓으면 그대로 딱 되는 것처럼 요새는 테이프에 녹음하면 고대로 녹음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인간의 행동이 인간의 언행심사의 흔적이 당신이 박혀지게 하는 그 책에 박혀있다 이랬습니다. 그대로 심판받습니다.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자기가 이래 살았든지 저래 살았든지 일생살이의 그 생애를 가지고 주님에게로 갑니다. 공자도 말하기를 '사람이 나는 것도 모르고 죽는 것도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났으며 어데서 어떻게 죽어가는지 모른다' 그분이 정직한, 그래도 불신자로서 양심 가진 사람의 말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이 아는척, 불교에도 요렇다는 말이 없습니다. 중간에 무책임한 자들이 말했지 이럴 것이라 추측 추론을 말했지 요렇다는 말 없습니다. 이러면 죽는다 산다 하는 것은 성경 뿐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어떻게 살았든지 자기가 애착하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물 한방울도 못가져갑니다. 다만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것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상대하고 대우해서 살았느냐 어떻게 하나님을 무시했느냐 고 행동 고 행동대로 된 자기 요것만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무신론자라도 죽었으면 주님 앞에 지금 가게 되고 범신론자 안에도 죽었으면 주에게로 돌아가고 정신없이 갈팡질팡 방탕에 생활한 너도 주에게로 돌아가야 되고 큰소리를 텅텅한 너도 늙으니 죽으니 주에게로 돌아가야 된다 이것이 성경에 말씀하시는 모든 존재에 대한 목적이요 법칙이요 결말인 것이요 시작인 것입니다.
여기에 한 길이 생겼습니다. 어떤 길이 생겼는고 하니 지음을 받은 피조물 중에 천사와 인간이 타락했습니다. 만물은 그대로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끊어졌고 하나님과 끊어지고 난 다음에는 제 생각 제 이치 제 욕심 자율 사욕 주관 모든 인본의 것대로 산 이 불의, 이러니까 하나님과 대립되고 원수된 이 값 이것으로 영원히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인류는 영원히 사망하게 됐습니다. 영원히 사망하게 된 이 사망 속에 영원히 사망해야 되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멸망 가운데에 영원히 빠져있는 여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오신 하나님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온 그 형체가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출하려고 할때에 어떻게 하여야 구출할 수가 있는가? 죄의 값은 형벌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출하시는 데에 우리가 범한 죄의 댓가를 당신이 대신 형벌 받아야 되시기 때문에 유한한 수많은 피조물에 그 형벌을 한 사람이요, 무한하신 분이 이 형벌을 대신 받았기 때문에 한 분으로 받고 남습니다. 유한은 암만 많아도 무한의 그 하나를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혼자 모든 사람의 죄값은 형벌을 어떻게 당할 수 있느냐, 불의의 값을 어떻게 당할 수 있느냐, 원수의 값을 어떻게 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무한하신 신성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죄의 값의 형벌을 받으시되 당신이 있는 것 다해서 죽기까지 받으셔 가지고 죄 문제를 해결 지웠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대신 했기 때문에 내가 빚을 졌지마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대신 갚아줬으니까 그 빚이 내게는 청구 못합니다. 내가 안 갚았지만 나를 대신한 이가 갚았기 때문에 그 죄값을 내가 받지 안했지마는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에게 정죄함이 없습니다. 죄의 형벌이 없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그 요구와 명령을 다 지키지 못한 그 값을 대신해서 당신이 우리 대신 아버지의 요구와 명령을 순종해서 죽기까지 순종해 가지고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과 소원에 만족한 그 만족이 순종을 이루어서 아무 순종없는 우리 죄인들이 예수님이 대신 순종해주신 이 순종의 공로를 입어 내가 하지 못했지마는 주님이 대신 했기 때문에 주님으로 인해서 나는 그것을 한 사람으로 주님 앞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우리는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들이지마는 예수님이 내 대신 순종의 하나님의 요구 명령에 복종한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을 만족시킨 이 공로를 나 대신 당신이 했기 때문에 공로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에 만족을 드린 이 의가 완전한 영원한 의가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 심판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이 원수의 값으로 죽음의 형벌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죽기까지 원수의 값으로 우리 대신 하신 주님에게 원수의 벌을 줬지마는 죽음은 심판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하는 이 화평을 변동 안했습니다. 화평의 화목의 주를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의 줄을 잡고 화목하신 그 화목으로 끝을 마쳤습니다.
이것으로서 하나님이 원수된 그 원수풀이에 만족을 해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에 이 삼대 대속의 구속을 우리에게 입혀 주셔서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죄없는 사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과 화친한 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살아났어. 우리는 혼자입니다. 죄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범죄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산영이었습니다.
그들은 산영이라. 살아있는 자들이지마는 위험성 가진 죽을 수 있는 그 생명으로 살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법적으로 살아났지마는 법적으로는 살아났지마는 우리들이 법적으로 살아난 이것이 법적으로 살아난 자가 되어지는 이 순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으로는 죄없는 자요, 의로운 자요, 하나님과 화평된 자로 이렇게 우리가 살았지마는 아직도 죽을 수 있는 이 위험성,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가 입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입었지마는 우리의 실질면이 남아있습니다.
아무리 법은 있지마는 실지가 우리가 범죄할 때에는 법이 실지를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실지 문제가 남았는데 우리는 영과 육인데 영은 스스로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에 영을 법적 이 생명을 가진 자를 실질적으로 예수님의 공로를 인한 성령님과 진리가 우리 영을 영원히 책임을 졌습니다. 영원히 책임지고 이 영을 다시 살렸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으로 이제 법적으로 산 영이 영원히 죽지 아니할 영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은 법적으로는 살아났지마는 실질적으로 실질적으로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나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요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심신은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에서는 예수님의 공로로 살아났지마는 실상 그 실물은 아직까지 법으로는 살았지마는 살아나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이것이 법으로 살아난 것이 실제로 살아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보지 아니하는 영생으로 영원히 삽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살아났지마는 실질적으로 실상으로 이것이 살아나지를 못하고 실상으로 죽어버리면 이것이 법적으로 살아난게 소용없습니다.
둘째 죽음의 해를 받게 됩니다. 영원히 사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신이 이 기능이 영원히 사느냐 공로로 살아난 것이 영원히 죽느냐, 영원히 죽는 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고 말했습니다. 영원히 사느냐 이것을 가리켜서 부활 영생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문제는 이 심신이라는 이 육이 이것이 영원히 살아나느냐 영원히 죽느냐 하는 것이 이것이 문제인데, 이 살아난 이것이 다 같이 하늘나라에 갔지마는 하늘나라의 그 실력, 하늘나라의 실력이 많고 적고 크고 작은자 하늘나라에 구원얻은 자의 그 영광과 가치가 차이있는 것은 여기서 차이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차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요게 지금 결론입니다. 요게 대말입니다.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둘째 사망의 해를 보지 안하고 살아난 것이 영원히 산 것 있고 법적으로 살아난 것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서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는 것 있고 영원히 사는 것이 요게 문제입니다.
요거 결론이요 요게 결론입니다. 요걸 잘 알아야 됩니다. 요게 결론이요. 이제 영원히 살고 영원히 죽는 것 요게 있습니다. 죽는 것은 어떻게 해서 죽느냐 우리의 심신과 그 기능이 주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받아 주의 구속을 받아 지공법 지성법으로 산 것이 지성과 지공법에 속하고 정죄함을 받지 않는 주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공로의 것입니다. 주의 공로의 것, "너희들을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니라" 말씀하신대로 주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이 다시 됐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있는 것같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데 주의 것이 아닌 이 타락한 것들 악령들 죄 사망 주를 배반함으로 생겨진 주의 것이 아닌 이 모든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 세력이 구속받은 내 심신을 주의 것으로 있지 말고 저의 것으로 있으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주의 법도대로 살지 말고 제 법도대로 살라 합니다. 여기서 시비가 있습니다. 있는데 사망은 스스로 제가 주의 것을 주에게 속한 소속을 버리고 주의 명령을 버리고 주의 명령에 적이 되고 주의 것이 아닌 이 사망의 것 그것에게 속하기를 원하고 그 법칙대로 살기를 원해서 그 법칙대로 삶으로 주의 구속의 것이 자유권이 있기 때문에 자유성을 가지고 주의 구속의 것이지마는 피로 값주고 사. 구속해줬지마는 나는 주께 속하기 싫고 이 악령과 죄악과 세상에 속하고 싶습니다 하여 소속을 제가 바꾸고 행동의 법칙을 바꿔서 그 법칙대로 했습니다. 했으면 한 고것은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것은 생명에서 떨어져서 사망의 것이 됐습니다. 요게 둘째 사망입니다.
또 어떤 자는 주의 구속받은 주의 것으로 주의 뜻대로 살려고 하니까 세상이 위협을 주고 박해를 주고 온갖 세력들이 와 가지고 주의 것이 되지 말고 세상 것이 되라고 주의 법대로 살지 말고 저희 법대로 살라고 강제로 꾀우고 달래고 온갖 전법을 써 가지고 하는 그 전법에 원치 안했지마는 넘어가 버렸습니다.
패전을 했습니다. 그러면 원치 안했지마는 실력 모자라는 부족으로 주에게서 소속을 바꾸어서 주님과 대립되는 이 사망에게 소속이 되고 악령에게 소속이 되고 죄악과 사망의 소속이 되고 그 법칙대로 산 것이 되어서 요것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았습니다. 제가 원해서 사망으로 달아난 자 있고 둘째 사망을 취한 자 있고 제가 원치 안했지마는 못견뎌서 둘째 사망의 해를 취해서 사망한 자 있고 요것이 사망되는 법칙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원히 사는 영생을 얻는 그 법칙이 무엇이냐? 영생을 얻는 법칙도 두 가지입니다. 요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영생을 얻는 법칙도 얻는 법칙도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피의 구속함을 받아 사죄를 받았고, 죄없는 자로 구원함을 받았고, 의로운 자로 구원함을 받았고, 하나님과 화평한 자로 구원함을 받아 지공과 지성법에도 해결을 지워서 공심판을 면하는 이런 우리가 되었으니 이제는 나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 주님을 주님의 것으로, 주님의 것으로 주에게 속해서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 하여 주님의 뜻대로 삽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면 주님의 뜻대로 산 고것은 고 부분적으로 뜻대로 산 고것은 한번 시험을 타올 때에 자기가 현실을 마귀하고 씨름을 해서 악령과 우리 (자) 시비입니다.
악령과 이 세상과 죄악이 주님에게 속한 것으로 주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 어려움이 있어도 살았습니다. 반대라도 살았습니다. 어쨌든지 산 것은 세상을 배척한 것이요, 세상 악령과 죄악을 이긴 것이요. 하나님의 속한 것으로 행동하고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으로 살고 하나님 법대로 살았기 때문에 산 그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완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하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영생을 취하는 것 있고, 하나는 악령에게 속한 것이 하나님의 법대로 하나님의 것으로 살지 못하게 박해를 줍니다. 박해를 주니까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려고 하니까 방해를 하다가 꼭 살려고 하니까 방해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방해를 하니까 방해를 해도 변동 못하니까 박해를 주다가 박해를 줘서 바싹 깨버렸습니다. 멸망을 시켜버렸습니다.
이 죄악 세상과 악령의 것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고 절단을 내버렸고 하나님 법도대로 살려고 한다고 절단을 내버렸습니다. 절단 내버렸으면 끝장나버렸습니다. 이것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법을 자기가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께 소속하는 것이 있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하려고 함으로 악의 세력에게 깨어져서 없어짐으로 끝나는게 있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자기가 살면서 살기는 살고 이래 살면서 하나님의 것이 완전히 되어지는 이것으로 살다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생활을 함으로 구원에 이르는게 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순종도 못하고 순종하려고 함으로 순종으로 그 일을 할라 하니까, 순종하는 그 일을 할라 하니까 순종하는 일 하지 못하게 해서 하지도 못하게 부숴버렸다 말이오 죽였단 말이오. 아무데 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복음을 전할라 했는데 복음 전하지도 못하고 복음 전한다고 그만 때려서 그만 죽여서 없애버렸다 말이오.
예 그는 하나님의 법을 행함으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법을 행하려고 하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행하려고 그대로 하려고 하다가 악의 세력에게 상해를 당해 가지고 그것이 끝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에게 영원 완전 구속이 끝나 결정되는 것이 있고,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려고 함으로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께 소속한 자로 살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악의 세력에게 깨어짐으로 하나님의 것이 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지되, 하나님 법대로 삶으로 하나님의 것이 되어진 그것과 하나님의 법대로 살려고 하니까 살지도 못하게 해서 살려고 하다가 살려고 하는 그때문에 자기의 존재가 바싹 깨짐으로서 하나님의 것이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법대로 살고 자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하나님 법대로 살고, 자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것이 된 것 있고, 하나님 법대로 삶으로 자기가 남아있지 않고 하나님 법대로 살라 하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도 때문에 없어진 그것이 있고, 이 두 종류의 방편이 하나님의 것이 된 그것이 영원히 하나님의 것으로 결정되는 일인데 이제 우리가 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은거와 같이 우리는 다시 지음 받은거와 같습니다. 타락했었는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아 죄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한 자로 우리가 됐소.
그러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을때 타락 전 창조받은 고대로 위치에 있는거와 비슷하게 우리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받아 죄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한 자로 우리가 됐습니다.
됐으면 우리의 지금 할일이 몇입니까? 우리의 할일은 둘입니다. 우리의 할일은 둘입니다. 할일 중에 하나는 무엇입니까? 주로 말미암고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 우리 할일입니다.
그다음에 할일 하나 있는데 그거는 뭐입니까? 누가 한번 대답해봐요. 그건 뭐입니까 예 뭐이지요?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 우리는 일차 타락됐던 것이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구출됐고 타락했던 것이 타락하지 아니한 자와 같이 이 본 지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죄없는 자로 예수님의 공로로 의로운 자로,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새로운 한 지위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한 지위를 받은 우리가 할일이 뭐이냐? 주로 말미암은 이 일을 다시 재독합니다. 재연습합니다.
일차는 인류시조가 패전했고 우리가 지금 주로 말미암은 것 내가 주의 것으로 주에게 속한 자로 주의 법도대로 주를 바라면서 주를 숭배하면서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마지막에 하나 남은 것이 뭐이냐?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이제 조물주로 돌아가는 이게 영생인데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아가는 그 법칙이 둘이 있으니 어떤 자는 자기가 살아 있으면서 주의 법칙대로 살아 살고 주의 법칙대로 살아 주의 것 되는 것 하나 있고 주의 법칙대로 살려고 하다가 주의 법칙대로 사는 그 일도 성사하지 못하고 주의 법칙대로 살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에게 깨어져서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 있고 그러면 자기가 살아 남아 있으면서 주의 뜻대로 살아 주의 것 되는 것 있고 주의 뜻대로 살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깨어짐으로 없어짐으로 주의 것 되어져가는 것 있으니 요 두 가지 방편이 있으니 하나는 주의 것으로 살아 영생을 가졌지마는 자기를 다 들여서 영생을 가진 것이 아니고 자기를 들여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에 너를 그러면 직장을 떨어트린다, 네 자유를 속박해서 감옥에 가둔다, 너를 마지막에는 사형을 시킨다.
있는 것을 다 없애려고 해도 주에게 속한 것으로 주의 것으로 주의 뜻대로 하는 이것을 하지 못하게 하니까 그 대적들이 조금 많이 자꾸 이래 하다가 마지막에 있는 걸 다 이제 이러면 마지막에 절단낸다. 절단내도 나는 주에게 속한 것으로 주의 것으로 주의 법도대로 살겠다 하는 이것으로서 다 그것이 그것 때문에 없어진 이것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순교의 종류라 순교의 구원이라 이것을 가리켜서 순생의 구원이라. 남은 하나를 가리켜서 주님의 뜻대로 한 의 구원이라 이렇게 성경에는 대우 차별을 둬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별거 아닙니다. 우리가 요것만한 조그만한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만드는 내가 내 소원을 따라 만듭니다. 요것 만드는 내가 만드는 목적이 있소 내 소원을 따라서 만듭니다. 만들때에 내 소원을 위해서 만들어 가지고 내 소원대로 되면 잘 보장합니다. 내가 만들때에 내 소원대로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놨는데 고것이 만들어 놓은 것이 내 소원대로 안됐으면 바짝 부숴버립니다. 우리가 이거 본능 아닙니까? 우리가 이성 아닙니까? 안믿는 사람 말하기를 '인심이 곧 천심이라'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 그들은 몰라도 그렇게 통계를 맞추어 가지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목적없이 무슨 일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노고를 했는데 노고된 그 조성금이 자기의 목적대로 되지 안할 때는 그거는 다시 패기해 버립니다. 유기해버립니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모든 걸 지었고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살고 그러면 그것은 한토막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산 것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대로 의롭게 거룩하게 사랑으로 진실로 이렇게 사망과 고통과 쇠하는 것과 더러워지는 것과 죽는 것이 없는 이 영생의 나라에서 삽니다. 하나님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하고 저로 말미암았든지 어떤 존재로 말미암았든지 살면 그것은 영원히 멸망을 시키고 이래서 하나님께로 난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요 순서가 모든 존재의 순서입니다.
이런데 인간이 일차 그 인류시조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지 안한 것으로 영원히 사망했습니다. 사망한 여기에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본 지위에 올려 세웠습니다. 죄를 대형으로 멸했고 불의를 대행으로 멸해서 하나님과 원수를 대신 화친으로 화친시켜서 죄없는 자 의로운 자 하나님으로 화평된 자로 세웠으니 우리의 남은 일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남은 일 두 가지 하는 "주로 말미암아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말마암아 살리라 나로 말미암는 자는 살리라 나로 말미암은 자는 살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죽은 것도 살아나고 살아난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할일 두 가지 뭐이냐? 우리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났으니 이제 할일이 뭐이냐? 주로 말미암으면 아버지의 나라에 가고 주님으로 말미암지 안하고 주를 배반하면 둘째 사망의 해로 멸망으로 돌아가는 것 우리의 영과 이 형체는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주의 나라에 가기로 벌써 결정이 됐고 선정됐지마는 우리 마음과 몸의 기능, 우리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 사람들이 생명도 있고 종자도 사람이고 몸체도 가지고 있지마는 그 속에 실력은 천인만인이 달라 인간의 가치가 뭐입니까? 인간의 가치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이인데 인간과 인간사이의 차이는 그의 도덕의 기능 그의 모든 지위의 기능 모든 접촉의 기능 활동의 기능 인내의 기능 모든 것 기능이라 그말이오.
기능이 없으면 사람이 그만 천물되지 사람이지마는 부자집에 있는 개만 못하지 다같은 인생 가졌지마는 기능이 높으면 인생 중에 인간 중에 제일 존귀한 자가 되어지지. 무궁세계에 기능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입니다. 이 기능을 어떻게 마련할건가 주로 말미암아 사는 그것으로 됩니다. 이제 주에게 속한 주의 것으로 산다. 아무리 세상이 거슬려도 그대로 사는 것 힘이 들어도 사는 것. 어떤 자는 힘이 드니까 십분지 오가 희생을 당하면서 사는 것. 어떤 자는 주의 법도대로 살라 하니까 대적이 강해서 그 십의 십이 주의 법도 때문에 주에게 소속한 그것 때문에 속한 것을 떼지 안하려고 배반치 안하고 주님 법도를 배반치 안하고 하다가 그들에게 바싹 깨져서 끝나는 것이 이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의로 구원을 얻은 자요, 하나는 순생으로 구원을 얻은 자요, 하나는 순교로 구원을 얻은 자이니 성경에 보니까 순교가 제일 상급이 크고 제일 높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할일이 있다는 이것을 기억하지 안하면 안됩니다.
하나는 뭐 나는 주님의 구속을 받은 새로 지음을 받은거와 같은 자다. 첫째 사망은 내가 벗어났다 이런데 지금 주로 말미암으면 둘째 사망을 벗어날 수가 있고 주로 말미암지 안하고 또 주를 배반하면은 영원히 둘째 사망으로 사망된다 이래서 주로 말미암아 삶으로 주에게 가는 것 있고 주에게로 가려고 하다가 큰 손해를 보고 주에게로 가는 것 있고 (주에게로 가려고 하다가 큰 손해를 보고 주에게로 가는 것 있고) 주에게로 가려고 하다가 있는 것 전부 손해 다 봐 버리고 완전히 소유와 몸과 생명을 원수에게 대적해 완전히 다 빼앗겨 버리고 가는 자 있으니 그자가 순교라, 그자가 주를 사랑하고 주를 대우하되 주님이 모든 것 다해서 나를 사랑하고 대한 것처럼 나도 모든 것 다하고 생명까지 다해서 주를 사랑하는 자. 어떤 자는 약간 손해가 가도 사랑한 자, 어떤 자는 손해 하나도 안보고 사랑하는 자. 이것이 우리의 앞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소 땅에 있지 않습니다. 잠시 잠깐 후에는 우리가 가서 볼것입니다. 우리의 종말 시간은 모릅니다. 우주의 종말도 가까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 거듭난 자이니 첫째 몸에게 속한 자들이 죽을 것을 보고 땅에 없어질 것을 보고 그것 탐내서 살지마는 예수의 공로로 말미암아 새로 지음받은 새지금 새노선에 섰습니다. 새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출발을 했습니다.
우리의 할일 두 가지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 이 두 가지를 우리가 하는 것이 우리의 할일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는 생각하고 생각해야 나오는 것이고 생각해도 양심을 똑바로 써서 생각해야 깨달아지는 것이지 허영과 허욕 교만 망령 패역 소용없는 썩은 것을 우상을 삼아 가지고 그것을 하나님이 높히 보는 그런 것을 가진 자가 보이지도 안하고 들리지도 안하고 알아지도 안하고 잡혀지지 않습니다. 이루지 못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법칙을 따라야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새김질하면서 확정지웁시다. 판정합시다. 이 자리를 떠나면 안됩니다. 여기서 확정을 짓고 일어서면서 그 자리에 놓고 이 진리를 놓고 나서지 말고 일어서면서 마음 가운데 새겨서 오늘 이 사귀는 것을 오늘 부활하는 것이니까 이걸 새겨 가지고 오늘 해 가지고 열두시가 지나기까지 자꾸 생각하면서 길러야 됩니다. 기르고 다음 엿새 동안에 요대로 살아 기르고 그러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자로 장성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