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실상은 하나

 

1988. 10. 10. 월새벽

 

본문:베드로전서 1장 3절∼4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생명의 구원을 말씀으로 주셨는데, 생명의 구원을 말씀으로 주셨는데 이 말씀이 곧 구원의 실상입니다, 구원의 실상. 이 말씀이 구원의 실상인데 그러면 말씀과 실상, 우리 구원의 사죄해서 죄를 없이 하시는 것이든지 또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것이든지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케 하시는 것이든지 그것은 실상인데, 우리에게 또 영생을 하도록 영생을 주신 것이라든지 이런 것이 다 실상이 됩니다, 실상. 구원의 실상이요, 이것이 구원의 실상인데 이 구원의 실상과 또 이 실상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시고 또 실상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들은 말과 그 실상이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말과 실상이 다른 점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말과 실상이 추호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말을 해 놓고 실상이 만일 뭐 만분의 하나라도 말한 것과 실상이 다르면 그게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그런 것이 다 정죄 받습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은 말씀하신 이 말씀과 실상이 꼭 같은데 말씀하신 그것이 바로 실상입니다.

그러면, 말씀하신 게 바로 실상인데 사람들이 이 말씀은 들은 사람들이 많고 이 말씀은 아는 사람들이 많지마는 그 실상은 사람들이 다 받아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적습니다. 그러면 ‘영생’ 하면 영생을 주님이 하게 해 주신 이 영생을 말하는 것은 말씀으로 말했습니다. 말씀으로 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이 계시의 말씀이요 또 영생을 실상으로 하고 있는 그 영생은 영생을 하는 것은 실상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많았지마는서도 그 실상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를 못합니다. 영생을 자기가 가졌다고 하면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면은 죽음을 두려워할 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기가 두려워서 뭐 맞아 죽는 것뿐 아니라 굶어 죽는 것, 병들어 죽는 것, 또 어떻게 뭐 칼에 죽는 것, 무슨 어떤 박해로, 어떤 뭐 폭탄으로, 무엇으로 전쟁으로, 죽는 건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영생을 자기가 실상 가지고 있다고 하면은 죽음을 두려워할 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여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한없는 그 긍휼을 가지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하는 거듭났다 말은 영생을 준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거듭나게 하사」 그러면 중생된 사람들은 영생을 가졌습니까 안 가졌습니까? 중생된 사람들은 영생을 가졌습니까 앞으로 이제 얻어 가질 것입니까? 영생을 가졌습니다. 실상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말씀은 문서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실상으로 영생을 가진 것은 그것은 실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도 있고 또 주셨다고 하는 말씀도 있는데 이미 주셔 가지고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 주신 것을 말씀하는 구원도 있고 주실 것을 말씀하신 구원도 있습니다. 앞으로 주실 구원을 말씀하신 것도 있고 이미 주신 구원을 말씀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에 관한 것들은, 이것을 전부 기본구원과 이래 구별 안 하면은 모릅니다. 기본구원은 우리가 사죄 칭의 화친을 받은 것이라든지 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라든지 이미 영생을 가진 것이라든지 우리가 영원한 그 신령한 부활을 가질 것 이것도 벌써 결정 다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우리가 받은 것이고, 또 우리가 받을 것은, 대개 영 구원에 대한 것은 받은 것이고 이 심신 구원에 대한 것은 받을 것으로 그렇게 기록이 돼 있는데 받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심신의 구원은 아직까지 받지 못해서 받을 것으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전히 이 심신 구원도 우리의 것이 다 돼 가지고 있습니다. 다 주셨습니다.

주셨는데, 이 심신의 구원, 심신의 형체 구원이 있고 심신의 기능 구원이 있는데 형체 구원은 우리가 이미 받아 있어서 예수 믿는 그 택하고 중생받은 사람이라면 이 심신의 형체의 구원은 다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행동을 어떻게 나쁜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그 형체는 다 부활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부활하셔서 부활하면 그때에 다 압니다. 우리가 여기 지금 보고 누구누구라 하는 걸 아는 것처럼 전부 다 압니다. 얼굴이 어째 생기고 누구라 하는 걸 환하게 다 알도록 그 형체의 부활은 다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기능 구원이라는 이 심신의 기능 구원도 법적으로 받아 가지고 있는데 법적으로 받아 가지고 있는 이것을 실상으로 자기 것이 되어서 다시 변동없이 실상으로 자기 것이 되어지는 데에는 언제 되어지느냐 하면 자기의 현실에서 이 구원을 자기가 배척하지 안하고 이 구원을 가지고, 어려움이 있어도 이 구원을 가지고 살면은 가지고 산, 그 현실 한 시간이나 십 분이나 뭐 일 초나 가지고 산 그것은 완전히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완전히 자기 것이 됐습니다. 법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 실상으로 자기 것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에서 법적으로 되어 있는 자기 심신의 기능 구원을 현실에서 벗어 던져 버리면은 법적으로 됐던 것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둘째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처음에 원죄와 본죄로 죽었던 것을 예수님이 다 심신의 기능도 다 예수님이 대신해 가지고서 살려 놨는데 그것을 제가 현실에서 벗어 버렸기 때문에 살았던 것이 죽기 때문에 둘째 죽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의 심신의 기능은 단번에 죽은 것이고 우리 구원 얻어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심신의 기능은 단번에 죽는 게 아니고 죽었던 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난 것이 다시 죽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둘째 죽음의 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 구원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오셨고 또 실상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오셨는데 영은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실상이 우리에게 오셨고 심신의 그 본체, 심신의 본체의 구원도 변동없는 구원으로 우리에게 왔고 우리의 기능 구원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법적으로만 와서 있습니다. 법적으로만 와서 있습니다.

법적으로 와서 있는 것이 언제, 법적으로 와서 있는 것이면 실상으로 와서 있는 건데 법적으로 와서 있는 것이 영원히 다시는 변동없는 자기 것이 되어지는 것은 언제 되어지느냐 하면은 현실에 되어집니다. 현실에서 자기가 이 구원을 버리지 안하고 이 구원을 가지고, 자기 것으로 가지고 현실을 통과하면 이 기능 구원이 영원히 변동없이 자기의 심신의 기능 구원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심신, 마음이라든지 몸이라든지 이것은 단일체가 아니고, 하나만 돼 있는 게 아니고 이 수많은 종합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백 가지를 살려도 또 살릴 것이 남아 있고 안 살리면 죽을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심신의 이 기능 구원이라 하는 것은 뭐 열 번 살리면 다 되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살려도 다 살리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기능 구원이라는 것은 이것은 변동할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우리 구원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이 기능 구원이요 또 그 본체 구원은 영 본체라든지 또 우리의 심신의 본체라든지 그것은 영원히 변동할 수 없도록 우리의 구원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변동할 수 있는 것은 그 현실에서 변동할 수 있는 것이 현실에서 변동하지 안하고 요대로 살았으면 요것은 요 구원이 다시는 변동할 수 없는 것으로 돼 버리고 요 현실에서 벗어 버리면 그것이 법적으로 살았던 것이 죽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이래서, 우리는 이미 영은 완전히 영원히 영생을 가졌고 우리의 또 이 육이라는, 육이라는 것은 심신이 육인데, 육은 심신이 육인데 오늘까지의 모든 신학자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이 영과 마음을 구별하지를 안했습니다. 영이 마음이요 마음이 영이요 이렇게 했기 때문에 실은 성경에 영이 있다고 하니까 영을 말은 하지마는서도 영이 뭐이 영인지를 아직까지 하나님이 가르쳐 주지 안해서 성경에는 말해 놨지마는서도 그것이 뭐인지 깨닫지 못해서 영이 마음이요 마음이 영이라 이렇게 오늘까지 생각해 나왔습니다.

이런데, 이제 비로소 하나님이 이 세대에 가르쳐 주셔서 영과 마음은 다르다, 마음이라는 것은 육에 속한, 영육이라고 말한 육에 속한 것이 마음이요 몸도 육에 속한 것이요 영은 이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영물이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이 영이요, 그거는 영물이요, 이 물질계 있는 것이 아니고 영물이요, 이 심신이라 하는 것은 물질계에 있는 신비한 물질이 마음이요 또 좀 둔하게 그렇게 되어 있는 육이 곧 몸이라.

이래서, 이 마음은 물질계에 속한 물질로 보는 사람은 없었고 대개 영물로 이렇게 보는데 마음은 영물이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영물이라 이렇게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말세가 되어지니까 이 영을 알려 줘야 될 것이기 때문에 영과 마음을 구별해서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셔 가지고서 이것을 깨달아서, 영과 마음은 다르다. 영은 영계에 속한 영물이요 마음이라는 것은 이 물질로 되어 있는 물질계 속한 물질이라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마음이라 하는 것은 사람만 가진 것이 아니라 영이 없는 짐승도 마음을 가졌다, 마음을 가져서 성경에 말하기를 짐승의 혼은 내려가고 사람의 혼은 올라간다고 혼을 가리켜 말했는데 혼 그것이 곧 성경이 가리켜 말한 혼 그것이 뭐이냐? 곧 마음이다. 이래 가지고 몸과 마음을 혼과 몸, 영 혼, 영과 혼과 관절이라 하는 것을, 관절이라 하는 그것은 몸을 말합니다. 영과 마음과 몸 이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성경에다가 말을 해 놨는데 사람들은 모두 영육으로 이래 둘로만 볼라고 말을 해서 영육이라고 이래 말하나 영도 모르고 육도 모르고 이렇게 이제까지는 그것을 모르고 내려왔습니다.

칼빈 선생이 아주 위대한 선생으로 우리에게 귀한 구원 도리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잘 가르쳐 주셨지마는서도 영에 대해서는 그분도 내가 거게 대해서 찾아 보니까 영은 그것은 그저 이성적 존재라, 이성적 존재라 말은 모든 거 옳고 그른 것 모든 것을 다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이성인데 이성적 존재라 그렇게 표현을 해 놨고 영이 뭐이라 하는 것을 뚜렷이 말하지를 못해 놨읍디다.

그런데, 이성 존재라는 이성은 그게 뭐이냐? 이성은 곧 우리 마음에 속한 마음의 요소이기 때문에 이성적 존재라 하면은 영도 곧 물질에 속한 것이라, 그러나 그것을 어데까지 물질이라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이래서 어떤 목사님들은 해석하기를 이 손은 손인데 이 손은 손 안팎이 있다. 안팎이 있는데, 안팎이 있으니 어데까지가 안에 붙었고 어데까지가 손 겉에 붙었느냐 이것을 쪼갤라고 하면 어데까지가 손바닥으로 붙었고 어데까지가 이 손등으로 붙었느냐 그걸 구별하지 못한다. 이게 어데까지가 손바닥이냐? 어쨌든지 손바닥하고 손등하고 둘이 한테 붙어 있다 하는 것을 그런 것으로써 비유를 했습니다.

이래서, 영과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어데까지가 영이고 어데까지가 마음이라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렇게 말해서 마음과 영은 다 물질계에 속한 것으로 말을 했는데 이제 하나님이 말세가 되니까 당신이 알려 주셔서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영물이요, 물질계 아니요 영물이요, 마음이라 하는 것은, 이성이나 마음이나 그런 것은 순전히 물질계로 되어 있는 물질이다. 물질의 신비한 것이 마음이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 없어지면 마음도 없어진다.

이래서,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영이 없는, 어데서 알 수 있느냐? 마음이라 하는 것은 영이 없는 짐승에게 마음이 있다고 해서 성경에 말하기를 짐승도 혼이 있다, 몸과 혼이 있다 했는데 그 혼이 곧 사람으로 말하면 마음, 우리 마음을 혼이라고 이렇게 말했는데 그 마음은 짐승도 가지고 있다, 영이 없어도 그거는 짐승이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물질계에 속한 것이지 영계에 속한 영물이 아니라 하는 그것을 구별해서 냈습니다.

이래서, 짐승도 영은 없으나 마음하고 몸하고는 있는데 다만 사람은 고급이고 짐승은 저급인 것 그것만 다르지 사람에게 희로애락이 있는 그 사람의 희로애락만은 짐승이 못하지마는서도 짐승도 희로애락이 있다. 이래서 짐승도 슬플 때는 슬퍼서 눈물도 내고 또 기쁠 때는 기뻐하기도 하고 또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이렇게 짐승에도 우리 마음의 작용이라는 그 작용이 비슷한 것이 있는데 다만 사람에게 있는 것은 고급이고 짐승에게 있는 것은 저급인 것만 차이 있는 것이지, 예를 들면은 아주 무식한 사람과 수양이 많은 사람의 그 마음이 차이 있는 것처럼 짐승과 사람의 마음이 차이가 있는 것뿐이지 물질은 물질이다 해서, 이제 우리는 보기를 영은 영계에 속한 영물이요 이 마음과 몸이라 하는 것은 물질계 속한 것이라 이렇게 둘로 구별해서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구원이 영의 구원도 있고 이 심신의 구원도 있고 또 심신의 기능 구원도 있는데 영의 구원은 영의 본체와 영의 기능이 다 한꺼번에 구원을 얻었고 또 이 심신의 구원은 심신의 그 형체, 심신의 본체는 구원을 얻었으되 그 구원이 변동없는 구원으로 얻어서, 그 사람이 뭐 어떻게 죄를 짓든지 말든지 어떻게 되든지 그 마음이나 몸이나 심신의 본체 구원은 그는 변동없는 구원으로 얻어져 가지고 있고, 마음이나 몸인 심신의 그 기능 구원은 어떻게 되느냐? 기능 구원은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느냐? 기능 구원은 얻기는 얻었는데 기능 구원은 법적으로 얻어 가지고 있다. 법적으로 얻어 가지고 있는 이 기능 구원은 언제 그라면 이것이 변동없는 구원이 되어지느냐? 변동없는 구원은 현실이라는 그 현실을 통과해 가지고서 법적으로 살아난 그 기능 구원이 이것이 현실을 통해서 죽을 수도 있고 영생할 수도 있다.

이래서, 그것이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살면 영원히 변동없는 영생이 되고 그것이 이 구속을 벗어 버리면은 그는 얻었던 그 구원을 다시, 법적으로 얻었던 구원을 잊어버리게 되고 세상에게 빼앗기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고 성경에 말씀을 했다.

그것은 안 믿는 사람들은 첫째 사망에서 영육이 다 죽는데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중생될 때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 중생될 때에 다 입었는데 이것이 다시 벗기 때문에 다시 살았다가 죽으니까 두번째 죽는 두 번 죽는 것이 되어진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요 구원 얻은 요것을 요걸 똑똑히 구별해야 되겠는데 우리 구원이 말씀으로 왔고 또 실상으로 왔습니다. 말씀으로 왔고 실상으로 왔는데 말씀으로 온 것은 사람들이 다 받아 가지고 있고 실상으로 온 것은 사람들이 받아 누리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으로는 택자들에게 다 왔는데, 다 온 이 구원을 다 받았는데 다 이 구원을 받아 있으나 이 구원을 자기가 실상으로 가지고, 실상으로 가지고 이 구원을 자기가 누리고 이 구원을 사용하고 이 구원을 자기가 지금 이 구원으로 살고 이 구원을 누리고 이 구원의 그 존영함이나 혜택이나 그 귀한 이 구원을 자기가 실상으로 가지고 누리는 사람이 있고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면은 그 사람이 자기 호주머니에 그 나라의 수표를 십만 원짜리 수표를 하나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있으면 바로 그 수표 그것은 종이쪼가리지마는서도 수표 그것이 바로 현금이라, 수표 그것이 바로 현금이요 자기는 현금 십만 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수표 가지고 있는 것이나 꼭 같은 그 수표는 현금인데 현금을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그 사람이 그걸 믿지 안할 때에는 십만 원 현금을 가지고, 수표로 되어 있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사람이 점심 사 먹을 것 천 원만 주면 배부르게 잘 사먹을 수 있는데 돈이 없어서 사먹지를 못하고 곯고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십만 원짜리 수표를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그 수표를 자기가 누리지를, 사용하지를 못 하는 사람이라. 그렇지 않습니까? 사용하지를 못하는 사람이라.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구원을 가졌으나 구원을 누리지 못하는 것, 알고 그 십만 원 수표를 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다른 사람에게 누가 구만구천구백 원을 주면서 이 종이쪼가리하고 바꿀라 하니까 안 바꿔 준다 말이지. 그것보다는 이게 백 원이 가치가 더 있기 때문에 안 바꿔 줄라 해. 또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살 때에 구만 원짜리 물건을 사고 난 다음에 이 십만 원짜리 수표를 주고 난 다음에는 아이구 이거 종이쪼가리 하나 주고, 종이쪼가리 하나 주고 구만 원짜리 물건을 가지고 왔으니까 이거 감사하다. 이거 도로 물릴라 하면 어짤꼬 싶어 겁을 내는 게 아니고 그 실상으로 가진 사람은 십만 원짜리 수표를 주고서 구만 원짜리 물건을 가지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합니까? 뭐라 하요? 만 원 돈을 내라 합니다, 돈을 내라 한다 말이오. 내라 하는데 이 사람은 그 십만 원짜리 수표의 가치를 누리는 사람이라.

누리는 사람인데, 이거 모르는 사람은 이까짓 종이쪼가리, 점심 한 그릇 식당에 가서 천 원짜리를 하나 먹어 놓고 난 다음에 이게 돈이 없으니까 ‘어짜노? 이게 혹 이거 가지고 되겠나?’ 십 만원짜리 주면서 ‘하이구, 내가 돈이 천상 없으니까 이걸 어떻게 받고 말 수가 있습니까?’ 하니까 그 주인이 있다가서 ‘아이구 자기앞 수표 십만 원짜리네, 십만 원짜리인데 돈 천 원어치 먹었는데 십만 원짜리 수표를 줘요? 그거 내가 돈을 가전을 내 줘야 되지.’ 구만구천 원을 떡 돈을 내 준다 말이오.

구만구천 원 현금 내 줄것 아닙니까? 내 주고 난 다음에 이 등신 같은 것이 그때사 ‘하, 이거 종이쪼가리 이거는 가치 없는 줄 알았는데 이거 밥을 사 먹고 나서 줘 보니까 돈을 이거 종이쪼라기 줘 놓으니까 밥 사 먹고 이랬는데 구만구천 원을 가전을 내 주네.’ 비로소 알 거라 말이오.

그런데 그것이 그래 해 보기 전에는 이 등신 같은 것이 십만 원 수표를 가졌지마는 ‘이까짓 거는 돈 백 원도 못 당하는데 누가 백 원이라도 바꿨으면 좋겠다.’ 백 원이나 바꾸면 배가 고프니까사과라도 한 개 사 먹구로 이래 ‘백 원하고 바꿨으면 좋겠다’ 이 가치를 모른다 말이오. 가치를 모르는데 그 사람이 그 등신 같은 것이 가치를 아는 데에는 어떻게 가치를 알게 되느냐? 그것을 사용해 보면 가치 알 수가 있다. 사용해 보면.

가치 그걸 알 수가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말씀으로 온 이 구원은 순전히 구원의 실상인데 실상의 구원을 내가 받아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이것을 어떻게 해서 이 구원을, 영생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전지 전능으로 연결이 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그 능력이 보호하고 있다, 이 모든 우주와 영계가 다 너희 것이다 이렇게 성경에 말한 이 성경 말씀은 추호도 틀림이 없는 이 정확한 말씀이지마는서도 이 말씀을 사람들이 다 받아 가지고 있기는 있지마는서도 실상으로 자기가 가지고 누리지는 못합니다.

누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은 그러면 실상을 가지지 안해서 누리지 못합니까 실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 구원에 대한 모든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과, 이 말씀, 영생이면 영생은, 영생한다는 말씀은 말씀이요 영생하는 말씀이요 영생을 실지로 영생을 하고 있는 그것은 실상인데 이 말씀과 실상이 차이가 있습니까 차이가 없습니까? 말씀과 실상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말씀과 실상이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아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저 뒤에는 모르네. 손을 들어. 없어. 말씀이나 이 실상이나 차이가 없어. 꼭 같애. 알겠습니까? 꼭 같은데, 꼭 같은데 이 말씀과 실상,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전능의 아들이 된 것과, 그러면 전능의 아들, 뭐 대통령의 아들도, 대통령 부인만 돼도 공연히 다른 인간들이 그래 가지고서 ○대통령 저거 좀 어리석은 사람 같아, 내가 보니. 그만 남자가 여자에게 꾀이기 시작하면 그거는 남자 축에 안 가고 그만 신세는 갑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그만 꾀이기 시작하면 헛일이라. 여자의 사람되면 헛일이라.

자기 부인이 뭐이더라, 이름이? ○○○인가? OOO를 배경을 삼아 가지고 뭐 거석하면 대통령 있다가서 안 된다고 호통 한번만 치고 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 지금 몰려 가지고서 뭐 죽을 지경이라, 보니. 이거 뭐 짓밟혀 똥이 되기를 자꾸 뭐 오늘도 나오너라 뭐라 이래 이렇게 천대가 돼지는데 그게 뭐이냐 하면 성경대로 남자는 여자를 주관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모해야 된다는 요 성경대로 돼야 되는데 요새는 남녀 동등이라고 세계에서 떠들고 있는데 미국 나라가 남녀 동등이라 해도 그것을 아무도 때려잡을 신학자가 없소. 때려잡을 신학자가 없어.

또 이제는, 동양에는 남존여비라 남자가 높고 여자는 천하다고 이래 가지고서 그뭐 여자들은 얼마나 천대를 받았습니까? 이제는 꺼꾸로 돼서 또 여존남비라 해 가지고 미국 나라는 또 굉장합니다. 이런데 거게 하나님의 말씀에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하나님이라 했는데 미국 여자네들이 다 뚤뚤 뭉쳐 가지고서 이제 여존남비로 여자가 높다 남자는 천하다 이래 돼 버리고 말았으니까 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 하는 걸 마구 때려대서 고함을 지르고 말이지 ‘하나님 법 어겼나 안 어겼나?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 하니까 시뻐 봤지마는서도먹고 난 다음에 인생이 죽나 안 죽는 인간 있나? 다 죽지 않느냐? 이와같이 하나님 말씀 너희들이 어겼기 때문에 망하지 않느냐?’ 이렇게 해야 될 터인데 이 복음이 그렇기 때문에 이걸 말 못 한다 말이오.

오늘 이 복음은 하나님이 이십세기에 세상을 이기고 모든 걸 다 이길 수 있는 이 복음을 줬는데 이 복음을 가진 인간이지마는서도 돈을 십만 원 수표 가지고도 이거 빵 한 개를 못 사 먹고 배가 고프지만 사과 한 개를 사 먹지 못하는 그런 인간과 꼭 같은 인간이 오늘 우리 서부교인들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수표를 가지고 십만 원짜리 수표를 가진 그거는 십만 원 현금과 꼭 같은 것인데, 그 발행한 나라가 없어지기 전에는 꼭 같은 것인데 이걸 십만 원짜리 가치를 가지고 있는 줄로 알지 못하는 것인데 옆에서 있다가 말하기를 ‘야, 너는 이 종이쪼가리 가진 이게 현금 십만 원과 꼭 같애.’ 아무리 말해, 백 목사는 지금 뭣 하고 있느냐 하면은 이 서부교회 오늘 아침에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이 수표 십만 원짜리 수표 이거는 현금과 꼭 같은 것이라 하는 걸 여러분들에게 지금도 내가 설명하고 있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설명하고 있는 거라. 하나님의 이 구원, 영육에 주신 이 구원은 이런 구원이라, 영생이라, 하나님의 자녀라, 이는 전지 전능의 실력을 가진 자라 이거 자꾸 성경에 말하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안 믿기 때문에 자꾸 나는 지금 이렇게 설화를 해서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은 십만 원짜리 수표를 가지고서 있으며 이걸 현금인 줄 모르고 종이쪼가리, 급하면 똥닦이도 할 것이고 급하면 그뭐뭐 코도 풀어 내버릴 거고 이렇게 이 수표와 현금이라 하는 것이 같다는 이것을 인식을 못 하기 때문에 내가 자꾸 이거 인식을 시키는 것이 이 백 목사라 하는 것이 인정이 됩니까 안 됩니까? 인정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이렇게 하고 있다 말이오.

있는데 암만 내가 말해 봤자 몰라요. 말해 봤자 모르는데 그 아는 비결이 뭐이냐 하면은, 암만 설명해도 안 들어. ‘네가 그러면 이 수표 가지고서 한번, 수표 가져 가 물건을 사 보든지 이 수표 가지고서 음식을 사 먹든지 이 수표 가지고 뭐 사탕을 사 먹든지 이 수표를 가지고 네가 한번 사용해 봐라.’ 수표를 사용해 봐야 안다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수표를 사용해 보면은, ‘이까짓 게 무슨 이게 뭐 돈이 천 원이 돼?’ ‘가 봐라, 네가. 요거 가지고서 천 원짜리 밥먹고 요거 줘 봐라.’ 천 원짜리 밥을 먹고서 이거 주며 미안해서 ‘이거 밥값 안 된다고 인제 뚜드려 맞고 쫓겨나고 욕당할 것 아닌가?’ 하면서 십만 원짜리 수표를 턱 내 주니까 ‘하이구 이거 거스름 이거 많이 내 줘야 되는데’ 이라며 구둥구둥거리더니마는서도 구만구천 원을 딱 세어다 주거든. 세어다 주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 ‘아이구 그게 현금이로구나. 현금과 같은 것이로구나. 그거 참 우리 선생님이 이거는 수표 이거는 현금이나 꼭 같다고 이래 쌓더니마는서도 나는 그 말을 거짓말로 이래 듣고 말같잖이 들었더니마는서도 실상 이 수표와 현금과 꼭 같구나.’ 하는 걸 제가 그때사 알 거라 말이오.

이러기에,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얻은 이 모든 구원을 우리가 실상으로 알지 못하는데 알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백 목사는 자꾸 알도록 할라고 자꾸 이렇게 하고 있는데 백 목사가 설명 가지고도 안 돼요.

암만 알릴라 해도 뭐 안 믿으니까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것을 실상을 아는 데는 어떻게 하면 알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알겠어요? 저 뒤에도. 사용해 보면 알아, 사용해 보면. 이 말씀대로 살아보면 안다 말이오.

하나님은 전능의 능력으로너희들을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면 아무도 죽이지 못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너희가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이 불미 속에 집어 넣어 던진다’ 이라며 ‘이래도 네가 안 하겠느냐?' 이래도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너를 능히 이 불구덩이에서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느냐?’ ‘하나님이 얼마든지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 있는데 당신이 나를 이렇게 우상숭배 안 할라 한다고서 불구덩이 넣을 때에 불구덩이에서 죽어서 영원한 영광의 순교의 상을 주시든지 그리 아니면 살려 내시든지 당신의 뜻이 어데 있는지 그거는 당신 뜻대로 할 것입니다. 살려 낼 수도 있고 이 불에서 순교자로서 죽게도 할 수 있을 거니까 당신의 능력에 있지 불이 암만 그래도 불이 나를 죽이지 못하고 사자가 나를 죽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말했는데, 그러니까 ‘그러면 우상숭배 안 하면 이제 불구덩이 집어 넣는다’ 불미 가운데 집어 던져 버리고 나니까 나중에 나왔는데 불 냄새도 나지 안하고 타 죽지 안하니까 그 느부갓네살 왕이 깜짝 놀라 가 가지고서 버선발로 뛰어가 가지고서 ‘저 서이 잡아 넣었는데 너이가 다니니 하나는 아마 그 인자 같다, 하나는 신 같다, 이러니까 빨리 거기 나오라 해라.’ 가 가지고서 빨리 나오라 하니까 나왔는데 보니까 불 냄새도 안 나.

그러니까 자,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 말씀대로 말씀을 사용해 봐서 알았습니까 이 어떤 사람이 설화를 해서 알았습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은 당신이 능력으로 지키시면 당신이 허락지 안하면 죽을 자 없고 당신이 또 허락지 않으면 살릴 자도 아무도 없다, 당신에게 주권되어 있다 하는 것을 말로만 가지고서 그들이 들었는데 이제 실제로 과연 하나님은 주권하고 계시는구나, 전지 전능자시로구나, 당신의 계명 지키는 데에는 아무도 죽일 자 없고 또 계명 지키다가 죽을 시기가 되면은 당신이 죽게 하시면 죽지 계명 지킬 때에 계명 지킨다고 온 세상이 달라들어 박해 준다고 이제 죽거나 해를 당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 하는 그 사실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말씀을 듣고 알았습니까 실지로 행해 보고 알았습니까? 어째 보고 알았습니까? 행해 보고 알았어.

그분이 행했기 때문에, 그분이 행해 보고서 그분은 알았고 그 당시 사람은 알았는데 행한 것을 우리에게 성경에 기록해 놨으니까 기록해 놓은 것 보고 우리가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 믿기는 뭘 믿어? 그저, 또 그렇지. ‘그때 그런 거는 그렇지마는 우리에게는 그런가?’ 이렇지.

그러니까 자, 하나님의 이 말씀이 실상이라는 것을 요것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라든지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대로 요와같이 순종하면 그 전지의 지혜요 그라면 전능의 능력이 동행해 주신다 하는 것을 성경에 모든 것 다 말씀해 놨는데 이 사실을 우리가 곧 신구약 성경에 계시한 이 말씀이면 곧 실상이라.

말씀과 실상이 하나라.

이렇게 믿어지는 것은 설교를 많이 들어야 됩니까 이 말씀대로 실행을 해 봐야 됩니까? 설교를 많이 들어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 실행을 해 봐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 이러니까 실행을 못 할 때에는 실행하도록까지 자꾸 말씀을 듣고 읽고 이래 가지고서, 말씀을 듣고 읽어 가지고서 이제 말씀을 듣고 읽는 가운데서 실행하고자 하는 그런 믿음이 생겨질 때에 그때 내가 실행을 해 보면 알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자꾸 말씀대로 살게 되고 말씀 어긴 사람은 자꾸 어기고 피하는 사람 자꾸 피하게 된다 그거요.

오늘 아침에 또 이 말씀을 시작했다가서 말았어. 말았는데 내가 오늘 아침에 설교할라 하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주님이 수고하신 사랑이라, 수고라 말은, 수고라 말은 사람들이 조금 애쓴 그런 걸 말한 게 아니고 주님이 고난 받은 것을 말하기를 수고라고 할 수밖에 없어, 고생보다. 고통 고자라. 죽음도 고통이요, 가난도 고통이요, 매맞는 것도 고통이요, 천대받는 것도 고통이요, 조롱받는 것도 고통이요, 짓밟히는 것도 고통이요, 낮아지는 것도 고통이요, 만유의 하나님이 거지되는 것도 고통이요 전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통당한, 그러면 수고의 사랑이라 그말은 주님이 어떤어떤 수고를 하신 사랑이다. 주님의 사랑은 어떤, 주님의 사랑은 어떠냐? 주님의 수고를 우리가 연구할 때에 주님의 사랑, 내가 그런 그 수고를 당할 때에 아무리 내가 뭐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웃을 내가 사랑하는데 어떤 사랑을 가지느냐?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인해서 내가 어떤 수고를 하느냐 수고 하는 걸 봐서 그 사랑을 알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누가 모두 다 뭐 좋아서 야단지겨도 아내나 남편이나 당장 죽음이 오면은 제가 남편 사랑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칠 사람들이 있기는 있겠지만 많지를 못해.

또 자녀도 죽을 지경이면 뭐 자녀를, 저는 죽고 자녀 산다고 하면은 저 사는 것이 더 급하지 자녀 사는 게 급하지 안해요.

이러니까, 이제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어떤 수고를 하셨나 하는 그것을 우리가 이 이성 판단으로 연구를 해 보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어떤 수고를 했나 수고한 것을 봐서, 그분이 이렇게 나를 사랑하셨다 하는데 우리가 지식적으로 연구를 하다가 실지로 내가 주님이 나를 사랑함으로써 이런 고난을 받았으니까 나도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런 고난을 한번 받아 볼라고, 또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아 볼라고, 고난을 받아 보면 자기가 비로소 깨달을 게 있을 거라, 깨달아져. 나는 그 백분지 일도 나는 못 하는데, 백분지 일도 못 하는데 주님은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하셨다 하는 것을 자기가 실지로 해 보면 주님의 사랑을 알게 돼.

이래서, 오늘 기독자의 구원이 이 말씀과 실상의 그 속에, 말씀과 실상이라는 그 속에 큰 장벽이 들어 있습니다. 아주 뭐 이 지리산보다도 큰 장벽이 막혀 있습니다.

이 장벽을 뚫어야 됩니다. 이 장벽을 뚫어야 되지 이 장벽을 뚫지 안하면은 말씀이 실상이라는 것을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 장벽을 뚫어야지.

말씀과 실상은 하나입니다! 말씀과 실상은 하나인데 이 말씀으로는 사람들이 다 듣고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실상은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없으니까 이 말씀과 실상 사이에 뭐이 들었느냐 하면 큰 태산 같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어. 가로막혀 있는 이 장벽을 뚫어서 말씀과 실상이 일치되는 것을 자기가 보고 난 다음에는 놀라. 보고 난 다음에는 놀래서 사람들이 믿음으로 믿음에 더 나아간다고서. 보고 놀란 사람들은 자꾸 들어가.

안 들어간 사람들은, 그러니까 이 말씀과 실상을 일치된 것을 자기가 보는 데에는 어떻게 봐야 됩니까? 자꾸 연구해 봐야 돼요 생각해 봐야 돼요 어떻게 봐야 돼요? 연구하고 말해 보고 생각해 보고 따져 보고 이라다가는 마지막에 실상을 실행을 해 봐야 비로소 뚫어진다 말이오. 실행으로 이거 말씀과 실상의 장벽이 막혔기 때문에 이걸 뚫어야 돼. 이 말씀과 실상의 장벽이 막혀 있기 때문에 이 장벽을 뚫어야 돼.

이 장벽을 뚫지 못한 인간들은 항상 말씀 밖에 실상이 없는 그 거짓 말씀으로 듣고서 사람들이 이 실상의 구원을 이루지를 못하고 있다 말이오. 이거는 뭘로 뚫어야 돼요? 실상으로 뚫어야 돼요.

이러니까, 실상으로 뚫어 본 자는 뚫어 본 자의 설교를 들으면 아멘 아멘 되고 뚫어 보지 안한 자는 뚫어 본 자의 말을 하면은 그거는 붇지도 안하니 재미없이 여깁니다. 재미없이 여겨. 재미없이 여기고 뚫어보지 안하고 말씀으로만 듣는 자는 말씀으로만 해야 재미가 있습니다. 왜? 말씀으로만 하면 막 거짓말 참말 주 대서 이래 과장을 하거든. 실상을 뚫어 본 사람은 그 거짓말 할 게 아니라 한 설교를 가지고서 여러 수십 번이라도 하는 그 사람은 뚫어 보지 안한 사람이 자꾸 다른 사람이 한 소리 또 하고 또 한다 해도 자기는 실상을 봤기 때문에 이래 말하지마는서도 이제 실상을 보지 않고 말씀만 본 사람은 두 번 들으면 듣기를 싫어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실상을 가지고자 원하는 자는 실상을 가진 자의 설교를 듣기를 좋아하고 은혜를 받고 실상을 안 가지고 말만 가진 자는, 말만 가진 자는 말만 가진 자의 설교를 들을 때에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했지마는서도 그때 하늘에 속한 말 들으니까 하늘에 속한 말을 듣는 사람도 있고 땅에 속한 말을 듣는 사람, 너희들은 땅에 속한 말은 듣지 하늘에 속한 말 듣지 안 하는 것은 너희들이 마귀에게 속했고 땅에게 속했기 때문에 내가 하늘에 속한 실상을 너희들에게 말하지마는서도 너희들이 실상으로 듣지를 않는다 그렇게 말씀했어.

이러니까 이제, 어제 오전 오후에 설교가 굉장한 설교인데 그것은 지식으로 암만 들어 봤자 저 무슨 별 미치괭이 소리로 듣고서 그거는 무슨 쓰지 못할 소리로 듣고, 그게 뚫어지지 안해. 그러면, 어제 그 말씀과 실상을 말을 했는데 그 말씀과 실상을 자기가 뚫어서 말씀과 실상이 하나로 그렇게 알라고 하면은 뭘로 해야 돼요? 실행을 해야 돼요.

실행을 해야 되는 것은 자기가 자꾸 마음으로 연구하고 실상으로 자기가 현실에서 사랑을 할라 할 때 거기는 수고가 되는 것이니까 사랑을 하므로서 자기가 수고를 해 볼 때에 비로소 느껴지게 돼.

이러니까, 다문 그거라도 이 반사들은 자기가 학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학생 이해 못하는 수고를 하고 고생을 하고 하는 그걸 해 볼 때에 비로소, 자기가 이 학생을 사랑할 때 학생이 선생의 사랑을 모른다 그 말이오. 모를 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가 몰랐다 하는 것을 자기가 체험을 해서 알게 돼.

자식을 길러 봐야 부모의 수고를 안다는 말과 같이 자기가 이와같이 지금 사람을 사랑해 보고 하나님을 사랑해 봄으로서 고난을 받아 봐야 주님의 이 고난 받으신 그 사랑이 어떠한가, 어떻게 사랑이 뜨겁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받았는가, 이런 고난이 와도 어떻게 그 사랑이 변동 못한 것은 그 사랑이 얼마나 강하고 진실했기 때문에 그렇다 하는 것을 짐작을 할 수가 있다 그거요.

이거 뭐, 말로 하면 알 건데 암만 들어 봐도 모르지. 이러니까 참으로 가르친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이상해요. 나는 이거 내가 주일학교만 할라 하면은 이 장년반이 안 되겠지. 내 재미는 주일학교에 있어. 내가 주일학교 반사가 돼 가지고 주일학교 부장이 돼 가지고 나는 가르치고 싶어요. 가르치고 싶고 장년반들은 가르칠 취미가 하나도 없어요. 이거는 강퍅하고 미련해서, 이 세상에 지식이 있으니까 유식하면 그 유식하니까 잘 뭐 알 수 있느냐 하면은 마귀 지식만 들어 있으니까, 틀린 지식이 들어 있으니까 바른 지식은 자꾸 못 알아 들어. 암만 말해도 못 알아 듣는다 그거요.

아이들은 잘 알아 들어요.

아이들은 잘 알아 듣는데, 이거 참 아이들을 내가 가르쳐야 되겠는데 이래도 내가 아이 가르치러 가면 장년반이 없어져 버리겠지? 장년반 없어지면 아이들 이거 또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기반이 안 돼지지. 이러나 내 소원은 아이들에게 있지 장년반에 있지 않습니다. 장년반에 있지 안해.

또 노인들에게, 노인은 봐야, 나는 젊은 사람이 이거 희망이 있다 이래도 ‘그거는 뭐 철이 없어서 하루비둘기 모양으로 변동이 많다.’ 아니야. 젊은 사람이 살았어.

그보다도 아이들이 살았어. 이 나이가 많아질수록이 좋은 것으로 채워서 성화가 돼야 될 터인데 좋은 것으로 채워 성화가 되지 안하고 나쁜 걸로 채워서 나쁜 것만 가득 찼어. 나쁜 지혜만 가득 찼기 때문에 이거는 암만 요리 뒤적여 보고 저리 넘겨봐도 사람 가치가 없어. 사람 가치가 없고 사람 맛이 없어. 사람이 실력이 없어.

사람의 소요가 없어. 전부 마귀 요소 죄악의 요소만 가득 차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왜 그러냐? 이 말씀을 듣고 내가 실행을 해 봐야 뭣이 변동이 되지 실행 안 하면 변동 없습니다.

이런데, 이 실행을 말한다고서, 실행을 말한다고 떡 미국서 박사 받아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양성원에 ○○○목사님도 여게 가르치기를, 학생들에게 말하기를 자꾸 행함을 자꾸 이렇게 주장하다 보면은 율법주의 된다 이라니까 학생 이 등신, 학생 여기 없구나. 이 학생들이 등신 같은 것들이 ‘그래, 행함을 자꾸 주장하다 보면 나중에 율법주의 된다. 행함을 주장하다 보면은 믿음이 없어지게 된다.’ 그런 말을 그것을 펴놓고 하는데 이 목사들이 다 따라가고 있어. 그말이 맞아요 마귀 말이요? ‘그저 행함에 힘을 쓰면은 율법주의 된다’ 율법주의는 멸망이요, 율법주의는 구원이 없어. 행함을 힘을 쓰다 보면 율법주의 된다. 행함을 많이 하다 보면 믿음이 없어진다.’ 행하면 믿음이 없어져요 행하면 믿음이 더 생겨져요? 생겨져요 없어져요? 이거 마귀 말이요 하나님 말씀이요? 그래, 행하면은 믿음이 없어진다, 행하면 율법주의 된다 이렇게 말한 게 마귀 말인가 목사의 말인가? 자꾸 행함을 힘을 쓰면 믿음이 없어진다, 행함을 말하다 보면 율법주의 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의 말이요 마귀 종의 말이요? 똑똑히 말해! 하나님의 종의 말이요 마귀 종의 말이요! 똑똑히 말해! 마귀 종의 말이요 하나님의 종의 말이요? 여러분 죽어! 무더기 죽어! 무더기로 죽어! 암만 살려 봐야 살릴 희망이 없어. 이라면 뒈져요, 안 돼요. 백 목사도 헛일 여러분도 헛일입니다. 이 어린 학생들은 어찌 될란지 몰라도.

그런 말이야, 이걸 말씀 보고 안 행하니까 행하지 안한다고서 자꾸 오늘 아침에도 자꾸 행하라고 이라는데 행하라고 죽도록 하니까 이게 막 똑 문둥이 같은 것이 겨우 지금 허물 벗을라고, 행하라고 하니까 이게 참 똑 덤바꾸 같은 게 억지로 찍찍 끌려오고 억지로 끌려오는 걸 ‘행함 너무 강조하면 율법주의 된다. 자꾸 행함만 이래 지금 주장하게 되면은 믿음 없어진다.’ 그 말을 들으니까 ‘그 맞다, 아멘.’ 이래 가지고 양성원에서 그말 듣고 아멘 하고서 ‘이 목회가 옳다. 박사가 말하고 백 목사는 국민학교 오학년밖에 안 한 무식한 자니까.’ 오학년 해도 성경에 대해서 오십오 년을 연구했어. 오늘날까지 이천 년 동안 학자들이 연구한 그 연구에서 못 한 걸 내가 발견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다른 데는 몰라도 성경에 대해서는 내가 그들이 지금 평생 연구해도 나 연구한 걸 못 따라와. 왜? 내가 저거보다 시간을 더 많이 걸렸어. 저거 지금 해 봤자 지금 몇 해 할 것이야? 지금까지는 성경 연구하지를 못했었어.

이래도 학생들이 그말 듣고는 ‘하, 됐다. 이거 너무 열심히 하면 일찍 죽어. 열심히 하면 일찍 죽기 때문에 서 목사 봐라. 서 목사 열심히 하니까 일찍 죽었지, 홍 목사 열심히 해서 일찍 죽었지, 또 전성수목사 열심히 하다가 일찍 죽었지. 이렇게 다 일찍 죽었다.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래도 조절해야 되지 너무 하면 안 된다.’ 이러니까 서울에 가면 살이 뛴뛴하게 쪄 버려, 목사들이. 살이 뛴뛴하게 찌고.

이래 놓으니까, 내가 있다가서 ‘서울에 오니까 이거 살만 찌고 이라니까 교회 배척당하러구나, 은혜가 없겠구나.’ 은혜가 없어. 배척을 당해. 이러니까 요새는 살쪘던 사람이 살은 안 찔라고 살을 말려서 조금 뭐 줄어졌어. 살 마른 거 기도해서 살 마른 줄 알았더니만 그게 아니야. 요새 살찌면 일찍 뒈진다고 어짜든지 지금 이거 음식도 이거 조절해서 자꾸 어쨌든간에 몸은 살은 안 찌고 건강만 가지도록 하기 위해 한다고서 그래서 지금 뭐 자연식이니 뭐이니 한다고 이거 해 가지고서 이제 몸이 날씬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지 기도해서 살 줄은 게 아니라. 이러니까 이래 살릴라 해도 안 되고 저래 살릴라 해도 안 되고, 안 되면 망하는 거야 어짭니까? 하는 대로 하고 말지. 딴거는 없어.

그러면 사람의 수명이 정해 있소 일 많이 하면 일찍 죽소? 사람의 수명이 정해 가지고 있어. 정해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정해 가지고 있는 수명까지 산다면은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죽는 게 낫소 게을부리다 죽는 게 낫소. 저 ○○○장로님 한번 대답해 봐. 게을리 하면 오래 사는가? 못 살아. 수명은 하나님에게 달렸어.

그러니까, 이제 앞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 자연법을 줘서, 이렇게 당신의 자연법 하는 것도, 밥먹을 때 밥먹고 잠잘 때 자라 하는 그것도 하나님의 자연법이기 때문에 그거 자꾸 규칙적으로 하는 것도 그것도 하나님께 순종이라. 하나님을 무시하고서 그렇게 뭐 하면 된다 하는 그것은 전부 하나님이 멸망을 시킬 것입니다.

자, 오늘 아침에 또,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과 실상이 그 사이에 장벽이 막혀 가지고서 말씀은 다 가지고 있는데 실상을 가지지 못해서 실상으로, 수표 십만 원짜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 백 원짜리 가치도 없는 줄로 이래 아는데 그것은 그 어리석은 사람이 사용해 보니까, 십만 원짜리 수표를 사용해 보니까 이게 현금이라 하는 걸 안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졌는데 구원의 실상은 가지지 못했으니까 이 실상을 아는 데에는 어째 봐야 됩니까? 실행해 봐야 돼.

사용해 봐야 돼.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이 뺏겨지는, 다니엘처럼 그렇게 생명을 뺏겨도 계명을 지켜 봐야 안다 그말이오. 공산주의에서 그들이 잡으러 왔는데 공산주의 왔을 때 ‘예배보는데 어데 방해지우노’ 고함 지르며 않으라고 하고, 나오라 하는데 예배보는데 나오라 한다고 야단을 치고 이랬으니까 대번 죽임 당하는 것이라. 죽임 당하는 것이지마는서도 그렇게 했지마는 죽이지를 못했어. 알겠어요? 이래 해 보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이 지키시니까’ 그때 그들은 매일 내가 두 달 동안이나, 두 달 동안 항상 사형이요. ‘저거는 오늘 죽이자 내일 죽이자’ 두 달 동안 사형선고로서 자꾸 기별이 와. 자꾸 기별이 오는데 그래도, 여기 ○장로라고 지금 거석한 걸 거기 같이 있기 때문에 내가 여기 오라 했어. 이랬는데 그 두 달 동안 그랬지마는서도 나중에 그래 있다가 ‘저거는 너무 무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지금 죽이면 오히려 백성들의 소란이 나겠으니까 그리 말고 우리가 후퇴할 때 죽이자’ 그렇게 마지막에 결의가 됐어. 후퇴할 때 죽이자 이랬는데, 저거 후퇴할 줄도 알아요. 후퇴할 때 죽이자 이랬는데, 주남선 목사님하고 나하고 둘을 후퇴할 때 죽일라 했는데 후퇴할 때 저거 죽이도록 하나님이 냅둬야지? 후퇴할 때 그러면 그라는 사람들은 다 가서 죽어 버리고 급해 놓으니까 뭐 언제, 그날 우리는 ‘오늘은 이게 어짠지 이거 인민군들이 안 설친다’ 이랬는데, 보니까 그날은 찬송하고 우리는 놀았어. 사택에서 모여 가지고 이래 가지고 찬송하고 이라는데 보니까 이상해서 ‘야, 이상하다. 어째?’ 이라니까 누가 쫓아오더니만 ‘인민군들이 자꾸 올라갑니다’ `그 왜 올라가는가 물어 봐라’ 가 물어 보니까 작전상 잠깐 후퇴 거석하고 올라간다고 그래 올라가는데 보니까, 나도 봤어. 뭐 되게 배가 고프니까 왔는데‘어째 그 어데서 걸어왔는데 이렇츰 모두 발병이 났습니까?’ `야로에서' 야로에서 걸어온, 야로 거기 찍해야, 야로가 위천까지의 이수가 얼마입니까? 저 ○○○장로님 알 거야. 얼마나 됩니까, 야로에서 위천이? 한 팔십 리 될까? 한 팔십 리 되는데, 저 평양서 걸어와도 발병이 안 났는데 팔십 리 걸어왔는데 전부 절룩거리고 발이 절룩거려서 그 걸음을 옳게 못 걸어.

이러니까, 하나님이 남한을 때릴 때는 그들에게 힘을 주니까 평양서 걸어와도 하나도 발병 하나도 안 났어요. ‘어데 나섰습니까?’ ‘평양서 나섰습니다' `평양서 꼭 걸어왔습니까?' `녜, 꼭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발병이 하나도 안 났습니까?’ 발병이 하나도 안 나. 나는 그걸 알기 때문에 자꾸 그래 물어 봐. 발병 하나도 안 났어. 이랬는데 올라갈 때에는 팔십 리 걸었는데 전부 발병이 다 났어요.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이라. 이러니까 그래 겪어 보니 그들이 그래죽이고 싶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도 죽이지를 못 했어.

주재소 가 가지고, 그때 뭐 신사참배 안 한다고 전부 잡아다 가두고 전부 죽일라고서 다 이렇게 뭐 사형선고를 하고 이랬는데 주재소 가 가지고 일본 부장하고 순사하고 다 있는데 저거들이 신사참배 하라 하기 때문에 ‘그거 그 우상에게 절하면 안 된다. 그거 우상이다.’ ‘그러면 이거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가 우상이가?' `우상이다' 그거 그런 소리 하면 벌받는다고. ‘그라면 벌 받거든 나한테 달라. 내가 너거 앞에 불 태워 볼께.’ 일본 국기를 태워 보겠다,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 저거 신당을 태워 보겠다 이렇게 해도 안 죽은 것은 하나님의 보호라.

그게 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안 죽는 거나 꼭 같아. 다릅니까?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봐야 말씀이 참이요 실상이란 것을 알고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점점 믿어지게 됩니다. 안 믿는 사람은 점점 안 믿어지게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믿음, 하나님 제일로 지켜요. 그까짓 뭐 땅위에서, 에녹 시대에 보니까 시집 장가 가 가지고 아들 네피림 많이 낳았소. 유명한 명철한 자식들 많이 낳았고 박사 많이 낳았고 학자 많이 낳았고 기술자 많이 낳았고 아주 전쟁 용사들 많이 낳았고, 낳았지마는서도 홍수 때 다 매장됐는데 무슨 가치 있어? 그거 사람, 구백 몇 살? 구백육십아홉 살, 그라면 서른한 살 더 먹으면 천 살이라. 천 살 먹으면 뭐할 거라? 인생의 가치가 어데 있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있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하나님과 동행하면 영생이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이러니까 이런 것을 어째 세상이 모르는데 우리에게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으니까 얼마나 복이요? 이렇지마는서도 이걸 믿고 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자기에게는 아무 복음이 되지 안해. 효력이 없어. 행해 봐요! 뭣 때문에 겁을 내? 하나님이 죽게 하실 때 죽지 지금은 암만 말해도 안 죽여. 이런데 이 뚤뚤 뭉치면 죽을 때 되면은 ‘너 백 목사 요랬지 요랬지’ 하면서 잡아다 죽이면 그거 순교하지. 그러기 때문에 벧세메스의 암소가 법궤 끌고 간 그거 가지고서 거게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우리가 증거하는 증거 요것 때문에 죽임당하는 그것이 진짜 순교자입니다. 알겠습니까? 6.25때는 인민군들이 저 위에서 파수군이 내려왔어. 거게서 ‘백영기 잡아라. 그놈이 우리가 고제서 그렇게 인민공화국 기성식할라 할 때에 못 하게 했으니까 그놈을 잡아라.’ 그런데 내 이름은 백영희라. 백영기 잡을라고 백영기를 교회 가서 물어, 교회마다 물었어. 백영기라는 사람 있나, 백영기라는 사람? 교회마다 물어도 백영기라는 사람이 있어야지, 백영희를. 그 사람들이 한 자가 틀려 버렸어. 하나님이 한 자를 틀리게 했어. 이러니까 여게 저게 뭐 백영기를 물어도 백영기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찾을라고 분주해서 그렇게 찾을라고 특명이 내려왔지마는서도 그때 내가 내나 거게서 집회하고 있지마는서도 하나님이 가뤄 놓으니까 못 죽였어.

이런 하나님이라.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것이지 그거 인간의 수단과 방법 단체에 못 이기고 끌려서 인간들이 많이 달라들면은 그만 아이구야 백영희 목사, 백영희 너 내가 보호할라 했지마는 원청 많은 사람이 달라드니까 할 수 없다, 군대들이 달라드니까 할 수 없다, 이 정부에서 달라드니까 할 수 없다, 막 공산주의가 막 들이 모이니까 할 수 없다, 너 원자탄 속에 들었으니 할 수 없다. 그런 하나님 같으면 나는 안 믿어. 나나 그 하나님이나 꼭 같은데 뭐 믿을 게 뭐 있는가?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어데서든지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당신이 주권하셔 가지고서 당신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는 당신만 주관하시지 아무도 해하지 못해요. 죽을 때 되면 그분이 죽게 하셔서 죽고 떠날 때 되면 그분이 떠나게 해서 떠나는 것이고 매 맞아도 그분이 매 맞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매 맞게 하시는 것이지.

예수 믿어서, 나는 예수님 믿고 예수님 때문에 매 맞은 것은 크게 매 맞은 거는 한 번밖에 없어. 그거 항상 자랑이요. 맞을 때는 좀 아프지마는서도 그 맞은 것이 그게 뒤에 지금 생각하면 좋아. 주를 위해서 매 맞은 것이 고난이 별로, 주를 위해서 참 한번은 몽둥이가 몇 개 뿔라지구로 맞은 그것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말이오. 그때 매를 맞았는데 다른 사람은 모두 ‘아마 이 죽었다. 저거 인제 백영희는 죽었다.

백영희는 저거 맞아 죽었다.’ 그때 내가 거게서 바로 살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죽었다. 예수 없다. 예수 믿지 마라. 예수를 믿으면 그렇츰 독실한쟁이 백영희가 저래 뚜드려 맞는데 예수가 있느냐?’ 다 그렇게 말하고 그때 휘떡 뒤벼지는 그런 일이 있었어. 이랬는데 나는 기적을 봤어. 그래 맞으니까 다른 사람은 저거 죽었다 했는데, 저거 다 인제 죽었다고 그래 쌓으며 인제 그라다가, 몽둥이 세 개나 뿔라지고 이래 됐는데 그래 나는 일어나 가지고서, 하나도 아프지를 안해.

아프지 안하고 일어나 가지고서 내가 지서로 갔어. ‘너거 이거 토벌대라 하더니만 토벌대가 아니라 의인 토벌하는 이거 순전히 공산주의다. 이 토벌대가 이거 이것이 참 뭐 민주주의 아군이 아니고 이거는 완전히 토벌대가 공산주의 이거는 순전히 인민군들이다.’ 내가 이말 하면서 ‘이걸 냅둘 수가 있나?' 가서 고발하러 지서로 내가 들어가니까, 아프지도 안해요. 서서 내가 들어가니까 그분들이 막 빌면서 부디 참으라고서 이래서, ‘이 바로 된 거 본부장한테로 어서 전화해라’ 그 본부장이 그때 장로 아들인데 이렇게 전화하라 해도, 그러니까 뭐 막 살살 빌어.

그래서, 그래 내비두고, 또 청년들이 올라왔어. 거창 청년들이 지금 백 집사 지금 곤란당했다 해서 왔다고서 이거 사실대로 말하라고, 가면은 부대장에게 말해 가지고 그놈들 전부 처벌 다 하겠다고. 그래 그때 뭐꼬? 찬양대 대장이 누구지? 시계방 하는 사람 있지 않아? 저 순천사람. 알지? 그때 옛날 이야기라. 이래 와 가지고서 하는 걸 내가 안 들었어. ‘하나님이 복수해야 되지 우리는 복수하면 안 된다. 나는 안 하겠다.’ 내가 반대하니까 삐꿔서 가 버렸어. ‘헤, 백 집사 그거 맞아 죽든지 말든지 냅둬라. 암만 우리가 그래 할라 해도 그렇게 욕을 당하고 마는데 어짜노?’ 이랬는데, 그때 열다섯 명이 간첩이 속에 들어 왔었어. 토벌하는 토벌군 속에 간첩이 열다섯 명이 들어와 가지고 그 사람들이 들어와 가지고서 나를 그렇게 지금 몰아 가지고서, 주변에서 저게 독실한 예수쟁이다 하니까 몰아 가지고서 그렇게 뚜드리고 욕을 봤는데 열다섯 사람이 그때 바로 제주도로 이동이 됐어. 제주도로 이동이 됐는데 한 열흘 있으니까 하나가 왔어. ‘우리 열다섯 명이 가 가지고서 열네 명이 다 몰사하고 나만 하나 나왔습니다’ 전달하러 왔어.

하나님이, 그 하나 없으면 모를 건데 하나가 와 가지고 열네 명이 다 죽었다, 몰사했다 하기 때문에 비로소 알았어. 내가, 몰사하기를 내가 원하지 안했어.

원했으면 지금 내가 회개를 해야 되지.

녜, 하나님이 계십니다. 실행을 해 봐요. 실행해 보면 하나님이 계시는 걸 알아요. 뭣 때문에 염려해 자꾸 이래 죄를 짓고 살고 자꾸 이렇게 불의를 해 가지고 살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하나님은 모르는게 없어요. 사람끼리 암만 소근소근 이래도 하나님이 아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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