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00:57
말씀 순종의 세 가지 난제
1982. 6. 25. 금새
본문:누가복음 1장 30절~38절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신약교회가 사람 보기에 시작된 것은 마리아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구약교회가 사람 보기에 끝난 것은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의 잉태로 끝을 맺었습니다.
세례요한은 구약교회의 끝이요 신약교회의 소개요 신약교회는 마리아의 잉태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시작이 될 때에-가브리엘 천사는 좋은 소식만 전하는 역사를 한 천사인데-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소식 전하기를, 아직까지 결혼하지 아니하고 또 결혼할 때도 되지 못한 어린 처녀에게 ‘네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가 아주 지극히 큰 자가 될 것이다.’ 말했습니다.
그때에 마리아는 세상적으로 자기 형편을 볼 때에는 도무지 이치에 안 맞는 말입니다. 왜 이치에 안 맞는고 하니, 자기는 약혼한 자는 있지마는 아직 그 나라 법칙에 결혼할 수 있는 그런 연령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고, 또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결혼을 해 가지고 하면 하지마는 당장 그 시간에 아이가 배겠다고 말을 하니 이치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유대 법에는 처녀가 음행하면 사형을 거저 주는 것이 아니고 돌로 먼데서, 가까이 무엇을 접해 죽일 수 없이 더럽기 때문에 돌로 먼데서 던져서 죽입니다. 이러니까 커다란 돌무더기가 모입니다. 그 모든 족속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일 대로 다 한 집에 하나씩이나 또 먼데는 또 한 집안에 하나씩 모여 가지고 사형을 시키는데 돌을 던져서 사형을 시킵니다.
그러면 그 돌무더기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오래 갑니다. 몇백 년도 가고 어떤 것은 몇천 년도 갑니다. ‘이 돌조산은 어느 족속에 어떤 이름을 가진 자의 칠계범으로, 처녀로 칠계범을 해 가지고 사형받은 돌조산이다.’ 그렇게 이름을 가지고 대대토록 큰 수치가 됩니다.
이러니까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와서 하는 이 말은 이치적으로 절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이치적으로 절대 맞지 않는 말이요, 또 자기에게 대해서는 말로 할 수 없는 큰 모욕이요 큰 수치요, 자기 족속까지 큰 수치와 패망에 들어가는 그런 아주 모욕스러운 말이면서 돌에 맞아 죽는 그 사형을 받는, 당장 죽임을 당하는 그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있어서 아주 무서운 말이요 자기와 자기 집안에게 크게 모욕이 되는 이런 말입니다. 이러니까 마리아가 노했습니다.
‘내가 어떤 입장에 있는 사람인 줄 알면서 이런 소리를 하느냐?’ 그때에 이스라엘은 모든 관념이 천사를 만난다는 것은 그것은 참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했습니다. 또 한번 천사를 만난 일이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아주 존귀히 대접을 합니다.
이러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을 때에는 아주 기쁜 일이었지마는 막상 가브리엘이 와 가지고 마리아에게 하는 그 일에 대해서는 절대 이치에 안 맞는 말이며, 또 자기에게 말할 수 없는 두려운 사형을 받는, 죽음을 당하는 두려운 말이며, 또 자기와 자기 집안에 대해서는 크게 모욕이 되는, 모욕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이러니까 거부했습니다.
거부할 때에 천사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못할 것이 없다. 또 말씀하시는 그대로 다 된다. 못할 것이 없다.
말씀하신 그대로 다 된다.’ 이러면서 증거를 보이기를 ‘너거 나라의 대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그는 수태하지 못한 여인이요 또 나이가 늙어서 벌써 다 쪼그라진 노인인데 아이를 배어 가지고 여섯달이 됐다. 하나님이 하시려면 못할 것이 어데 있겠느냐?’ 이렇게 증거 대는 소리를 마리아가 듣고 ‘아! 하나님이 하시려면 못할 것 없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은 다 그대로 되지’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도 안될 그런 일도 있고 될 일도 있다.’ 이렇게 생각을 가졌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되지’ 하는 이 믿음을 가지고 회개를 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는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를 할 때에 그 시로 마리아에게는 성령으로 예수님께서 잉태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교회의 볼 수 있는 표면 역사의 시작이요 성질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누구든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믿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에게 닥쳐오는, 반드시 그의 당한 형편과 사정 그것을 해결짓는, 그에게 구원이 되는 말씀은 올 때에 이 세 가지 성격을 띠고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세 가지 성격 가운데에 한 가지 성격은 무엇입니까? 한 가지 성격은 무엇이오? ○○○씨, 철야한다고 와 가지고 여기서 미적미적 하다가 예배볼 때 졸고 그래 하지 말아요. 그것보다 예배볼 때에 안 졸고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들어가야 무엇이 변화가 되지 하나님 말씀은 안 들어가면 변화 안돼. 아무리 제가 일을 잘하는 척 해도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안 들어가고 일하는 것은 마지막에 보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었고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끝이 없어. 죽자껏 잘된다고 했는데 끝이 없다 말이오. 끝을 보면 알아. 끝이 없어.
중간반 반사들 말씀 새김질하는 일 다 하기 싫어서 하고 말았는데, 그러니까 이게 참 가짜로 농구 모양으로, 농구는 일년 내 농사 짓는 데 제일, 비 맞고 떨고 이렇게 농사 짓는 데는 제일 밥도 못 먹고 이용당했지마는 농사 다 짓고 난 다음에는 농구는 갖다가 창고 안에 넣지 그 농구에게 ‘농사 잘 지었으니까 밥 먹어라’ 하면서 밥상에 앉혀 놓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도구인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없이 제가 세상 수단 방법 열심 그런 거 가지고 아무리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일을 많이 했지마는 하나님이 그걸 들어서 변화시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변화를 안 받고, 말씀은 싫어하고 이 세상 수단 방법 세상 꾀 이런 것, 테레비나 보고 거기에서 아주 못된 것들 접촉해 가지고 고 못된 행위 배운 거, 다시 말하면 악의 선구자요. 악의 선구자 그런 능력 가지고 복음의 일을 하면 뭐 무슨 운동이, 요새는 보내지 말라고 하는 것도 어떻게 책 뭐 이런 팜플렛트 오는지, 어찌 알고 뭐 오는지 하루 수없이 옵니다. 그걸 무엇이 오는고 해서 좀 보니 헛일이라.
이래서 그저 그놈을 주 찢어 가지고, 다른 사람 줘도 다 죽일 것이고 휴지통에 넣으니까 휴지통이 매일 한통씩 가뜩 가뜩 돼.
그래 가지고 제가 무슨 회장 무슨 회장 전부 제가 장자를 만들어 놓고 제가 회를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야단을 지기고, 다른 사람을 업어 가지고 ‘아무것이도 우리 회원들이다. 또 기독교 방송에서 찬조하고 있다. 어데 어떻다.’ 이래 끌어다 붙이고, 또 그러면 또 명예 거석하면 마치 여기 기사증이 있으면, 약 파는 데 매약면허증인가? 그 면허증 하나 척 주면 한달에 몇만 원씩, 뭐 10만원도 받고 뭐 15만원도 받고, 그 명예 빌리는 삯을 받는 같습디다.
이렇게 세상 수단 방법 가지고 목회하는 것이나 모든 일하는 자들이 그것 가지고 일을 합니다. 사람 보기에는 아주 일 잘합니다. 또 사람을 살살 꾀워 가지고 이렇게 운동시키는 데에는 그게 아주 요긴한 것 같고 보배로운 것 같습니다.
만나면 척 듣고 이렇게 하니까 좋은 것같이 여겨서 이래 하지마는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농구에 도구와 같아. 농장의 도구, 농구, 농구가 일을 많이 하지마는 농사 잘 지었다고 농구에게 밥 먹으라고 하는 사람이 어데 있어? 농구가 농사 잘 지었다고 ‘이제 농사 짓는다고 수고했으니까 이제 요 위에 누워 자십시오’ 하고 방안에 모실 자가 누가 있어? 저 곳간에 처박아 버리지.
그와 같이 시키다가 시키다가 안 들으면 나중에는 듣지 않을 때는 그런 것처럼 던져 처박아서 ‘이놈은 이용이나 해 먹자’ 하고 하나님께서 도구로 이용합니다. 이용하니까 사람 보기에는 일은 했지마는 성화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자기에게 해 놓은 그것이 자기 성화요 구원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해서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것으로 된 것 그것만이 자기 구원인데 그게 안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깨달아 이 말씀이 자기 속에 역사해 가지고 해야 되는 것인데 안 듣고 교만하게 못되게 해 가지고 불탈 일이 뭐 얼마나 많은지, 서부교회도 불탈 것이 아마 이게 반수가 더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러니까 진리를 들어, 진리를 들을 때에 변화가 되고, 이 말씀을 가지고 새김질할 때에 변화가 됩니다. 이래 기도하다가 여러분들이 새벽으로 기도할 때도 이래 들은 진리를 생각할 때에 자기 속에 힘이 푹 들어가서 ‘주여!’ 이러면서 고함을 빽 지르고 힘이 벌컥 나와. 자기도 모르게 그만 나오는 그때 그게 뭐이냐? 그 속에 진리로 인해서 변화된 새 힘이라 그말이오.
그 힘 가지고, 사도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그 힘이 나와서 찬송을 부를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 역사해 가지고 지진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모든 승리자들이 이 힘 가지고, 감옥에 들어가서 맞고 첩첩 감옥에 쌓여 있지마는 이 진리 말씀을 새기고 새기니까 이제 고함이 터져 나온다 그말이오.
이제 엊저녁에 보니까 ○○○ 집사,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성구를 새기면서 ‘믿습니다. 주께서 몇장 몇절에 어떻게 말씀했습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믿습니다. 이 계약은 변함이 없습니다.’ 자꾸 그 계약의 신실성, 책임지는 절대성 이걸 인정하려고 자꾸 다지며 다지며 들어가는 그 힘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그 힘 가지고 죽음 앞에서도 담대히 나가는 그 힘이 거기에서 다 자라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데 말씀 듣기는 싫어하고, 뭐 두 시간 듣는 것이 지루해 가지고 주리를 틀고, 죄지으러 돌아다니는 것은 어쩌든지 되지 아니하고, 고런 데는 민첩해서 어떻게 물샐 틈 없이 계산을 대는지, 망합니다. 안돼요. 하나님께서 하다 하다 안되면 버려서 망합니다.
기독교는 올 때에 다 이렇게 옵니다. 어떻게? 오늘 아침에 몇 가지로 온다 했지요? 오늘 아침에 몇 가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이래 세 가지로 옵니다.
세 가지로 오면, 자 그러면 첫째는 뭘로 온다 말이오? 첫째는 뭘로 오요, ○○○ 선생? ○○○ 선생, ○○○ 선생, 모두 송장들이구만. 자는 자는 송장 한 가지지 뭐. 자, 첫째는 뭘로 온다고 했소? ○○○ 조사님, 이것 참, ○○○, 예. 이치에 안 맞는 일, 이치에 안 맞는 그 순서로 옵니다, 이치에 안 맞는 순서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해결이 되는, 자기가 ‘이거는 도무지 멸망 가운데서 이거는 벗어날 수 없다’ 할 때에 그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올 때에 말씀으로 꼭 오는데, 구원은 말씀으로 꼭 오는데 이 말씀이 올 때에 그 말씀이 첫째 무슨 순서로 옵니까? 믿을 수 없는 이치의 순서로 옵니다. 믿을 수 없는 이치의 순서로.
또 둘째로는, 말씀대로 하면, ‘말씀대로 하면 이거는 절대 안된다.’ 믿을 수 없는 이치로 오고, 둘째로는 이 말씀대로 하면 어찌 된다는 그 순서로 옵니까? 죽는다. 너는 죽는다. 죽는다는 순서로 와. 이걸 몰라.
마지막 순서는 뭐입니까? 자기와 자기 집안 전체가 다 매장되는, 전체가 매장되는 이 이치로 와.
마리아가 처음에 이 세 가지 이치로 왔기 때문에 환영했습니까 거부했습니까? 거부했지. 그러면 마리아는 천사 만나는 천사가 싫어서 거부했습니까, 천사가 와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이 자기에게 못마땅해서 거부했습니까? 천사는, 참 천사 한 번만 만나면 일생 먹고 삽니다. 그 지방에서 천사가 와 가지고 그분에게 무슨 말을 했다 하면 그분은 그만 일생동안 이렇게 높이 모시기 때문에 천사 한 번만 만나면 일생동안 존귀한 사람으로 대우를 받아 가지고 그거 하나면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라. 요새 붉은 테두리 박사 그런 거 백 개보다 나을 수 있는 그런 존귀함을 받는 일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왔을 때에 얼마나 기쁘고 즐겁지만 막상 그 천사가 마리아에게 큰 복을 갖다 주시는 그 복의 말은 이 세 가지 순서를 통해서 왔기 때문에 기막힌다 말이오.
하나는 뭐이요? 복된 말이 도무지 이치에 안 맞는 말로 왔기 때문에 이걸 환영할 수 없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자기는 돌무더기에 사형을 받아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기막혀서 환영하지 않았어. 셋째로는 자기뿐만 아니라 대대손손이 ‘어느 족속 누구의 손녀 누구의 딸’ 에스라서에 보면 거기에 죄를 말할 때는 꼭 그걸 말했어. ‘누구 족속의 누구의 손자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 누구라’ 요렇게 말해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대대로 자기 집안과 자기에게 수치가 되어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어디 있을 수 있습니까? 이런 인사가 어쩐 일입니까?’ 놀라면서, 그렇게 반가운 천사이지마는 거절했습니다.
이러니까 천사가 말하기를 ‘얘, 그런 게 아니라 들어 봐!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어! 엘리사벳이 수태도 못하는 사람인데, 늙어 쪼그라진 할마이인데 아이 밴 지가 6개월이 됐어.’ 이러니까 마리아가 퍼뜩 경성해서 ‘아,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이치가 내 조브라운 생각에 이치에 안 맞다고, 또 내 비판으로 볼 때는 사형을 받는다고, 내 비판으로 볼 때에는 크게 수치가 된다고 이까짓 게 문제가 뭣이냐!’ 하고 돌이켜 ‘주여!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니까 당장 잉태되었다 말이오. 예수교는 다 이런 성격으로 신약교회가 옵니다. 우리에게 모든 해결되는 것이 이렇게 옵니다.
38년된 병자도 ‘아! 나는 인간 중에 제일 비참한 인간입니다. 나는 깊은 궁지에 빠졌습니다. 헤어날 수 없는 궁지에 빠졌습니다. 첩첩 죄 속에 빠졌습니다. 패가 중에 패가, 망신 중에 망신에 빠졌습니다.’이런 일로 인해서 절망된 자에게 주님이 그 절망된 것을 완전히 성공으로 일으켜 주시려고 왔을 때에 요 자기의, 참 자체의 형편이 비참한 걸 인해서 낙망된 요 낙망을 주님은 능치 못하실 것이 없음이라는 요 믿음을 가지고 고 낙망한 고 죄를 완전히 소망으로 바꾸었다 그말이오.
또 ‘나는 조그만한 힘도 없는 무능한 자이니 내가 뭣 하겠느냐? 내가 구불구불하이 구불어 가지고 가는 동시에 다른 사람은 열 번도 더 갔다 올 터인데 내가 뭣 됩니까? 나는 무능한 자라.’ 이렇게 무능으로 인한 낙망을 주님 앞에서 회개를 했다 그말이오.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들어다 넣어 주지 않습니다.’ 협조 없는 일로 인해서, 협조 없음의 낙망을 또 주님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인해서 회개를 했다 그말이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인해서 회개를 했어.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방해합니다. 나는 아내가 들어서 방해를 합니다. 나는 자녀가 들어서 방해합니다. 나는 남편이 들어서 방해합니다. 나는 동무들이 방해합니다. 친구들이 방해합니다. 무엇이 사회에서 방해합니다. 나라에서 방해합니다.’ 그까짓 것들이 크지마는 방해하면 무슨 상관이 있는고, 주님 앞에서? 만유주 앞에서? 방해로 인한 모든 낙망이 완전히 회개가 되어야 됩니다.
내가 볼 때에는 믿음이 없어. 믿음이 없고 모두 7, 8월에 수수 잎사귀가, 7, 8월에 바람이 많이 불지 않소? 7, 8월 수수 잎사귀 같은 사람이라 합니다. 7, 8월에 수수잎은, 수수는 또 키가 크니까 바람 많이 타거든. 그 수수 잎사귀, 수수 잎사귀는 이래요. 이래 이래 이러고 이럽니다. 요렇게 옳은 일에는 요랬다 조랬다 요렇게 변동되는 것이 죄악은 그건 막 무쇠덩어리 같아서 흔들리지 않아.
도무지 변동이 안돼. 회개가 없어. 그게 안 망하고 어쩔 것입니까? 네 가지 절망을 돌이키고 시키는 대로 하니까 해결됐어.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믿으니 그분에게 제한이 있는가요? 이 회개를 해야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우리의 구원, 주님이 우리에게 이 세상적으로 경제의 구원이나 신체의 구원이나 명예 구원이나 직장 구원이나 가족 구원이나 모든 구원이 올 때에는 꼭 이 세 가지 순서를 통해 옵니다. 말씀대로 들으면 ‘물에 넣어도 붓지도 않을 말, 하나님의 말씀은 이때에 이렇게 하라 하는데 그래 하면 뭐 어찌 되려고? 나는 죽고? 가정은 망하고? 그 수치는 어찌 당하고? 물에 넣어도 붓지 않을 이치’ 이것으로 오는데 순종하면 된다 그거요.
왜 그런 것으로 오느냐? 그런 것으로 오는 것은 저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지 제 주장대로 나가는 자에게 줄 수가 없어. 전부 제 생각대로 해 가지고 나가니 모두 꾸리는 것이 풀과 나무와 짚이라.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제 생각대로 예수 믿고, 제 뜻대로 예수믿고, 제 비판대로 예수믿고, 제 주장대로 예수믿고 자기를 부인하고 순종하는 일은 별로 없어.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은 네가 이러면 희망이 있다 하는 그런 거 안 보여요.
빌립이 ‘주여 이리로 가면 어디로 가십니까?’ ‘나 가는 행선지를 묻지 말아라. 오려면 따라오라. 와 봐라. 뭐 네가, 뭐 네까짓 게 뭐 안다고 지금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 앞을 말하면 네가 알겠느냐? 십자가에 못박히는 걸 말하면 알겠느냐? 죽었다가 부활하는 걸 말하면 네까짓 게 알겠느냐? 이래 꼬박꼬박 따라와 볼 일이지.’그거 하나로 됐소.
여러분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돼요. 교만하면 꺼꾸러져요. 제까짓 게 뭐인데 하늘을 쓰고 도래를 할 만치 떠드는 인간도, 김일성이 저런 것 암만 떠들어 봤자 하나님께서 요래 버리면 오늘 이 시간에 코르륵 팩 해 버립니다. 하나님이 못해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거 안하시니까 막 남한에서 이렇츰 자꾸 야단을 지기고 세계에서 그 사람을 마음대로 못해서 이렇게 하지마는, 세계에서 김일성이 마음대로 못 합니다.
미국도 마음대로 못하요. 아예 모두 다 손들고 있습니다.
이런데 하나님이 고 보턴을 딱 누르면 코르륵 팩 하고 송장이 되어 버리고 말아.
시체가 되어 버리고 말아. 이 능력 가지신 분이 우리 가운데 있는데 이분은 무시하고, 이분은 시시하이 여기고, 이분은 멸시하고 엉뚱한 것 가지고, 제가 제 힘, 제 실력 가지고 뭐 하겠다고, 교만한 자는 물리침을 당해. 교만하면 안돼.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돼. 진실되이 해요.
중간반 말씀 새김질 하는 것 싫다고 그걸 억지로, 저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거기에 속한 학생들이 많이 있어서 학생 살리기 위해서 이러니까 그게 싫어서, 고만 그 시간 빼고 나니까 죄지으러나 돌아다니고, 고런 죄짓는 순서나 꾀나 파고 고런 일이나 하고 돌아 다니고, 망해. 안돼. 복있는 자리에 암만 있어도, “비록” 뭐라 했소? “존귀한 자리에 처하나” 또 뭐라 했습니까? “깨닫지 못하면” 뭐라 했소? “멸망할 짐승 같으니라” 좋은 위치면 소용있는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고 목회자 양성원에 다른 데서 오는 교역자들 와 가지고 나쁜 본 보이지 말라 해. 오면 만나 가지고, 뭐 한다고 응접실인가 뭐인가 거기 앉아 가지고 이야기만 수근수근하니 이야기만 배워 놨다 말이오. 양성원 학생들 내가 이 스피커 들어 보면 무슨 이야기가 그런지 하루 종일 계속이라. 옆사람 공부하는데, 보통 공부도 그런데 거기에서 성신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공부를 해야 될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가 들어오지 이야기를 초월해서 영감 받을 사람은 거기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어. 한 사람도 없다고 내가 확정을 지어. 어림도 없어. 교학실장도 어림도 없어. 한 사람도 없어.
이런데 옆에서 자꾸 이야기를 하면, 최권능 목사님 공부할 때에 옆에서 웅얼웅얼 공부를 하지마는 거석하니까 그 속에 말씀이 공부가 안 들어온다고 책을 뺏들어 획 집어 던져버린 그런 청년은 그래도 희망이 있어.
이야기 하면 ‘여보시오. 이야기 하려면 저 밖에 나가서 이야기 하십시오.’ 이럴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되고, 하다 안 되면 욕을 해도 돼. ‘이 자식 무슨 자식이야? 순 개망나니 같은 자식이 와 가지고 양성원을 더럽히고 있네. 이놈아 너 여기 무슨 이야기하러 왔어 자식아!’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돼요. 그게 베드로라. 그냥 되나 안 되나 순하기만 하고 자꾸 어질어 빠지면 되는 줄 알아도 안돼. 할 수 있어야 돼.
나는 신학교 다닐 때에 그랬어. 뭐 보니까 돈은 잘 쓰는 사람들이, 교안을 인쇄하는데 돈 적게 들인다고, 돈 적게 들인다는 꼭 고것들이 돌아다니면서 날뛰는 그런 것들이라. 돈 적게 들이려고 얼마나 깎고 그랬더니마는 글자가 옳게 박혔어야지? 글자가 바로 됐어야지? 이래 가지고 이걸 교안을 딱 냈기 때문에 내가 말하기를, ○○○ 목사님이라. 손을 드니까 말하라 해. ‘목사님, 이 교안은 우리가 이거 지금 배우려고 왔는데, 돌아다니면서 못쓸 돈은 많이 쓰면서 이거 돈 몇푼만 더 주면 깨끗하게 활자가 나오고 잘 수정해 가지고 나올 터인데 이게 뭐입니까? 이걸 교안이라고 해 가지고 나누어 줍니까?’ 이러니까 ○○○ 목사님은 웃으면서, 나 말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해. 웃으면서 ‘잘 해야지요.’ 이러니까 그분이 지금까지 흐리멍텅한 걸음 걷습니다. 내가 교수 같으면 ‘이거 뭐이라? 여러분들이 여기에 들일 만한 돈이 없어서 이럽니까? 다른 돈은 벌로 쓰면서 이게 뭐입니까? 저분의 말이 옳습니다.’ 나 같으면 막 이렇게 들어 올리겠어.
그 사람에게 조그매 장점 있으면 막 들어 줘야 됩니다. 말 한 마디라도 옳은 말 했으면 그걸 들어 줘야 돼. 왜? 그게 뭐이냐? 성령의 역사를 칭찬하는 것이라.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이라. 뼈 없는 인간으로서 좋기만 하면 될 줄 압니까? 얼마든지, 덕이 뭐이 덕인데? 땅에 있는 썩은 덕은 다른 사람 좋게 하는 것이, 비위 맞추는 것이 그게 덕이지마는 덕은 하나님의 비위 맞추는 그 비위에 인간들을 다 집합시키는 것이 그것이 덕입니다. 신앙의 덕이 어떤 게 덕인데? 어제 ○○ 목사 왔기 때문에 ‘양성원에 가지 말아라. 뭐 한다고 거기에 가 가지고 이러니 중얼 중얼 이야기 해 가지고 학생들 공부도 못하고 이야기하는 본만 떠 가지고 …’ 보니까 이야기는, 지금 이야기 하는가 보니까 또 이야기 계속, 그거는 하루 종일 이야기 계속이라. 이야기 잘하는 학생 퇴학시켜 버려요.
그까짓 거 안 와도 돼. 없어도 돼.
또 ○목사님 내가 보나 안 보나 그랬을 것이오. ‘이거 목사님이 자꾸 꾸중하시는데 이러면 안됩니다. 이러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좀 조심해서 공부합시다.’ 아주 순하게 거석하니까 ‘우리 ○목사님은 덕이 있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우리 백목사는 각박한 사람이고 아주 딱딱한 사람이라.
취미없고 비위없다’ 이럴 것이라.
가 가지고 ‘목사님이 이렇게 염려할 뿐 아니라 이거 무슨 짓입니까?’ 그럴 때 성을 내야 될 거라 말이오. 그 성은 하나님의 진노요. 이러면 자기는 희생하지만 그 행정은 고쳐지지. 그게 십자기의 희생입니다.
이야기하지 말아요. ○○○ 목사님 내가 어제 말했어. ○○목사님 거기 못 오게 하라고 했소. 그 말 했습니까? 뭐 한다고, 자기 집에 가 있든지 여기 오든지 해 가지고 기도해 가지고, 그뭐 마누라 불평 뭐 불평하는 것 그런 것 지금 기도해 가지고 소화를, 그까짓 거 날뛰면 하거나 말거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아? 까치가 찌진다고 사자가 죽어? 하다 하다 안 들으면, 마누라야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만 주님하고 한덩어리 되어 달아나면 되는데 뭐 그것 때문에 끙끙끙 그래 가지고 병도 낫지 못하고 그러고 돌아다녀요? 처음보다 병이 더해, 보니까.
며칠 전보다 요즘 더해. 나아 가지 않아. 내가 보면 알아요. 그러려면 그 병으로 그만 뒈지든지. 뭐 그러다가 뒈지지 어쩔 거라? 그 병 있으면 나중에 죽지.
대구서 좀 있으면 죽지 어쩔 거라? 이러니까 갔다가 와 가지고는 예배당에 와 가지고 기도하고, 내가 집짓는데 저 뭐 ○○교회가? 거기 무슨 교회지? 거기 이름이 뭐이요, 거기? ○○교회가, 짓던 데? ○○교회 예배당 짓는 것 헛된 돈 많이 들였다 말이오. 안 지을 걸 지었어.
잘못되었어. 그 설계 잘못하고 계획을 잘못해 가지고 돈 외의 돈 많이 들었어.
이러니까 ‘집짓는 거나 배우자’ 하면서 그거나 슬렁슬렁 배우면서 또, 기도하고 또 성경 보고 또 그것 배우고 여기 와서 공부하고 이러면서 그만 그 취미에 거석해 버리면 자꾸 병이 쑥쑥 나아 버릴 건데 … 사모님도 정신 안 차리면 과부 돼. 죽어 버리면 과부 되지 어쩔 건고? 죽어 버리고 어데 과부 되면 딸들이 잘할 줄 알아도, 그래도 과부가 되어서 딸한테 가 있으려면 설움일 걸? 아무리 거석해도, 능력 없어도 영감이 낫지. 잘 봉양해요.
○○목사도 회개하고. 이제 양성원에 가지 마.
거기 오는 사람 뉘든지 오거들랑 벙어리 되고, 꼭 할 일 있으면 요쪽에 교수실 안에 문 딱 닫고 가 가지고 소곤 소곤 이야기하고, 학생들도 말 못 하게 하는 것 아니라. 꼭 이야기 할 일 있거들랑 말로, 입일랑 다물고, 그 안에서 말 못 하게 해요. 질벅질벅 하고 따라 나오면 거기 가 가지고 서로 의논이나 이야기할 일 있거든 하라 그말이오. 왜 남 공부하는 데 뭣 때문에 거기서 씨부렁거리고 이래 가지고 방해하고 있어? 그거는 안 그런데, 세상 사람이라도 좀 수양있는 사람이면, 도서실에 가 보지.
얘기하는 인간 들어오면 내버려 두는가? 쫓아내 버리지. 얘기하면 듣다 듣다 안 되면 몇이 어울려 가지고 ‘저 사람이 자꾸 얘기하고 저 안됐다. 저거 우리가 대표로 가자.’ 여럿이 가 가지고 ‘좀 무슨 얘기인지 할 얘기 있으면 밖에 나가 하고, 우리는 여기 공부하러 왔는데 우리 공부에 지장이 돼 안되니 얘기하지 마십시오.’ 가 얘기해 보지, 내버려 두는가? 그런데 인간을 최고로 지도할 수 있는 목회자 양성원에서 하루종일 성경 공부하라 하니까 이야기로 전부 계속되니 그런 인간이 뭐 할 거라, 하기를? 내가 어제는 욕을 한마디 했어. 여러분들이 못 들었기에 내가 하는 거라. ‘어데 사회에도 쓰지 못할 자식이 와 가지고 그 행세를 하고 있어? 어떤 자식이야, 그 자식이?’ 내 이랬어.
‘아! 목사가 돼 가지고 그런 말 한다.’ 조롱하지마는 나는 고런 말을 죽는 날까지 할 수 있는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그 더러운 그런 뼈없는 무골호인으로서 그렇게 하는 그런 것 나는 배우기 싫어. 까글까글 하게 주님이 노할 때 노하고, 기뻐할 때 기뻐하고, 환영할 때 환영하고, 책망할 때 책망할 수 있는, 주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고런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떨어져서 저 혼자 신사가 되면 어쩔 것이며 의인이 되면 어쩔 건고? 소용없어.
이러니까 여러분들, 암만 밥이 많이 있어도 먹어야 배가 부르지? 구슬이 백말이라도 꿰어야 구슬이 되지, 소용이 있는가? 말씀 암만 배워 놔도 실행을 해야 되지? 여러분들이 과연 이치에 거슬려 오는 것을, 전 인류 통계 이치에 거슬려 오는 하나님 말씀도 그 자리에서 순종할 건가? 자기 생명이 끊어지는 말이라도 순종할 건가? 대대로 수치가 되는, 모든 자존심이 다 절단나는 그런 말씀이라도 순종할 건가? 되나 안되나 이것을 여기서 작정되어야 되는 것인데, 이런 절망 저런 절망 모든 절망을 다 주의 말씀에서 완전히 박살을 내 버리고 주의 말씀으로 인하여 모든 몰아오는 절망을 다 깨고 소망으로 바꾸어 가질 수 있는 것, 이래야 오지.
기독교는 전부 자기를 부인하는 데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똑똑한 자가 기독교에서는 큰 구원 이룬 사람이 많지를 못합니다. 세상 지식 부자, 모든 세상 것 부요한 것이 오히려, 부요를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지 못한다면 부요한 그것이 저주요 가난한 것만 못합니다. 부자가 부자로 인해서 멸망을 받았어. 어리석은 부자.
오늘은 뭐 봉사 없소? 오늘 아침에는, 저 은행나무 저걸 저 서대신동에서 우리가 몇 사람이 메어다가 심어서 잘 살았는데, 이건 지을 생각하지 않고 집을 짓다 보니까 그 은행나무가 또 이사를 가야 됩니다. 이사를 가야 되는데 저리 가야 되는데, 어제 한 열 댓 됐지? 열 댓이 달려드니까 꼼짝도 안 합니다. 오늘은 아침에는 아마, 바쁜 사람들은 가고 남반들 전부 다 가 가지고 한 번 메어다가 그래 심으면 이제 저기에 심어 놓으면 고만 예수님 재림 때까지 있지 않나 합니다.
저런 나무 지금 사려 하면 갖다 심어 주는 데는 50만원 줘도 안 됩니다. 돈이야 50만원 있지마는 잘 그런 나무 옮겨 심으려면 없소. 뭐 당장 심으려면 100만원도 줘야 돼. 나무집에 가도 저래 큰 나무는 없어요,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