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9 22:45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본문 :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세상에는 좋은 것 나쁜 것, 또 의로운 것 불의한 것, 또 좋은 것도 차이가 많고 또 잘못된 것들도 차이가 많습니다. 좋은 것 중에도 극상의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 중에도 아주 극악으로 나쁜 것이 있는 세상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하는 것은 이 만물이라 말은 모든 피조물 전부를 가리켜 말합니다. 마귀도 주에게서 나오고, 또 모든 성자 성녀들도 다 주에게서 나오고, 의인도 죄인도 다 주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리켜서 만물이라 그랬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이러니까 모든 것이 생길 때는 주로 말미암아 생겨졌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것이 나올지라도 그런 것은 다 근본 주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행사적으로는 마귀의 행사를 우리가 미워하고 대적하고 그 미혹에 빠지지 안하도록 이렇게 노력을 하나 마귀를 저주하지는 못합니다. 왜? 그것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그것은 그것대로 쓰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마귀는 마귀대로 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마귀도 제가 마귀 되고 싶어 제 힘으로 된 것 아니고 하나님이 마귀를 반드시고 마귀가 되게 하셨고, 또 어떤 의인이라도 의인이 제가 의인 되고 싶어 제 힘으로 의인된 것 아니고 하나님이 의인되게 하셔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잘 돼 있어도 스스로 된 것같이 그렇게 교만할 수 없고, 또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도 그것을 보고 우리는 멸시하고 천대하지 못합니다. 왜? 나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저 하나님이 나를 좋게 만드셔서 많은 사람 가운데 예수님 믿어 구원 얻게 됐으니까 감사하고, 또 기뻐하고 예수님 안 믿고 아주 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신 데 대해서 감사하고, 또 그것에 대해서는 그저, 희망이 없는 것이면 그로 인해서 내 자신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셨으니까 감사할 것이고, 그것이 다문 얼마라도 다시 고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까지는 우리는 그에게 하나님의 긍휼 베풀어 주시는 것을 구할 것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상한 사상이요 태도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로 말미암고' 그 하나하나의 모든 움직임이 그게 제대로 움직이는 것 아닙니다. '주로 말미암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인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다가 판 그것이 가룟 유다 제가 은 삼십에 팔라면 팔고 안 팔라면 안 팔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팔게 하셨으니 팔았습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판 것이 일시에 그 가룟 유다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영원 전 하나님의 예정 속에 가룟 유다가 있고 예정 속에 은 삼십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 것이 예정돼있고 예수님은 거기에 팔려서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서 대속하실 것이 벌써 예정돼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셨고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 목적이 뭐이냐? 그 목적이 곧 우리를 선택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목적인 선택구원, 선택구원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우리가 있을 때에 선택이 아니라. 세상에서 정통 가운데에 그 택함에 대해서 한 서너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것이 있는데, 많은 죄인들이 있는데 '이 사람은 구원하자 저 사람은 구원하자' 그렇게 존재 후에, 창조 후에 그 사람을 이 사람은 구원하고 이 사람은 버리자 이렇게 선택했다, 창조 후에 선택했다는 그런 주장도 있고 또, 창조 전에 없는데 이런 이런 것을 하나님이 만드시겠다 하는, 없는 가운데 창조 전에 선택하셨다 이렇게 하는 것도 있고, 또, 감리교에서는 그 사람을 보고, 사람을 보고 '이거는 택해서 구원하면 되겠다' 사람을 보고 택해서 구원을 하신 것이라 그렇게 해서 감리교에서와 또 장로교 가운데도 두 파가 있어서 그렇게 깨달음이 다릅니다.
우리는 존재하고 난 다음에, 우리가 있은지 후에-이거 다 그냥 창조한 거 아니라 하나님 의지 속에서 말합니다. 하나님 의지 속에서 그 예정할 때 말입니다. 예정할 때에 창조 후에 우리를 택한 것으로, 그것을 가리켜서 후택설이라 그랍니다. 뒤에 택했다는 후택설이라 그렇게 말하고, 또, 창조하기 전에 택했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선택설이라, 먼저 택했다, 이라는데 우리는 후택설을 믿습니까? 선택설을 믿습니까? 후택설을 믿는 사람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네, 다 선택설을 우리는 믿습니다.
선택설 믿는 것은 그것은 참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변증하다가 '있어야 택하지 어째 없는데 택할 수가 있느냐?'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모두 다 성경을 바로 알고 잘 믿은 사람들은 대개는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말을 잘 못 하는 사람들이오.
그러나, 성경은 잘 모르고 유식한 사람들은 말도 잘하고 지식도 넓고 또 뭣을 책도 잘 씁니다. 이래 그 사람들의 설이 섰었지마는, 후택설이 섰지마는 차차차차 후택설은 꺾어지게 되고 선택설이 서게 됩니다. 이래서, 택한 것을 우리를 보고 택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이런 이런 자로 만드시겠다 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택하셨다 말이오. 그러면 택하셨는데, 없는데 택하셨는데 그 택한 것이 누가 택함 받았는지 그때는 하나님만 아신 것이지 피조물은 모릅니다.
이랬는데 고 다음에 하나님께서, 예택하신 후에 하나님이 예정하셨습니다.
예정하실 때는 그때 벌써 존재는 없어도 하나님의 의지 속에, 하나님 당신 의지 속에서 벌써 의지적으로 예정적으로 우리가 존재케 됐습니다. 그때 예정적으로 존재케 돼 가지고 고 다음에 창조할 때에 비로소 창조가 돼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움직인다 그 말입니다. '주로 말미암고' 주로 말미암아 움직인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앞에서는 뭐 별별 움직임이, 움직임이라 말은 마음의 움직임도 있고 몸의 움직임도 있는데 그 움직임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움직임을 크게 나눈다고 하면은 그 움직임이 악한 움직임이라 선한 움직임이라 그래 둘로 그렇게 말하면 간단하지만 그 속에 이런저런 움직임을 헤아릴라 하면 뭐 천도 만도 억도 넘기 때문에 굉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크게 나누면 선한 움직임 악한 움직임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한 움직임은 자존자 하나님을 중심 위주로 해서 움직이는 것이 고 악한 움직임은 피조물인 그 자체를 중심으로 위주로 해서 움직이는 움직임이라 그렇게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악한 움직임을 볼 때에 우리는 자꾸 그런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그 움직임을 그만 움직이는 그것만 보고 움직임의 근원이 어데서 나왔나 그것을 안 보기 쉽다 말이오.
그것을 안 보기 때문에 '저 움직임을 어떻게 저런 자가 있을까?' 자꾸 이래 가지고 그게 스스로 된 것처럼 해서 그에게 정죄를 해 가지고서 그걸 악평을 하기 쉽다 말이오.
그 악하게 움직이는 것을 그저 점잖하게 그것도 뭐 괜찮다든지, 또 그거는 그건 또 그럴 수 있지 않겠나 이라든지 이게 아니고 악하게 움직이는 것은, 악이라는 것 '저거는 인간 중심이다. 저거는 제 중심이다.' 그것은 똑똑히 정의해야 됩니다.
똑똑히 정의해서 그 악한 것은 얼마나 악하다는 그것을 아는 대로, 아는 그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적은 자도 있고 많은 자도 있고 확실하다 보는 자도 있고 거기에서 백분지 일만 보는 자도 있는데 전체를 다 보고 그렇게 악하다고 말하는 게 옳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덧붙일 것이 뭐이냐 하면은 저것이 악하니까 저걸봐서 '저렇게 악으로 나갈 수도 있다. 그러면 성경에 저렇게 악으로 나가면은 결국은 멸망이다. 나는 저렇게 안 나가야 되겠다.' 고거 인제보고서 그 다음으로 제가.
생각할 것이고, 그러면, 저렇게 악으로 나가는 것이 저것이 제가 저렇게 되고 싶어 된 것이냐? 아니다. 하나님이 저와같이 되게 하셔서 됐다. 그러면 되게 하셔서 됐으면 '나는, 내가 선에 속한 자로서 된 것은 나도 하나님이 나를 선하게 작정하시고 그렇게 하셔서 내가 돼지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선하게 된 것 아니다. 내가 있기도 전에 벌써 선하게 되기로 하나님이 정하셔 가지고 됐다.' 인제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감사함이 나오겠습니다. 감사함이 나오겠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뭐이냐? 그러면 내가 듣든지 보든지 하는 저 악이 저것이 왜 있느냐? 왜 저 악이 내 눈에 보이고 내 귀에 들리고 나에게 접하게 되느냐? 악이 저 왜 있느냐? 그것을 내가 보게 됐고 듣게 됐고 접촉하게 됐고 했는데 저 악이 뭣 때문에 있느냐? 뭣 때문에 있느냐? 뭣 때문에 있습니까? 그건 여러분들이 인제 하나 알아 보이소. 뭣 때문에 있습니까? 악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 저거는 악이다 똑똑히 구별해서 똑똑히 알수록 이, 그것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는 것도 다른 사람은 백분지 일을 알았는데 저는 백분지 백을 다 알았습니다. 다 알았으면 안 저는 어째야 됩니까? 아, 저 사람은 백분지 일밖에 몰랐는데 나는 백의 백을 다 알았으니까 내가 교만할 수 있습니까? 나에게는 더 많이 알려 주셔서 많이 알았으니까, 모르게 하면 나도 모르는데. 거기에 대해서 감사가, 제가 제게 대해서 장점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감사할 것, 다른 사람의 그 단점에 대해서는 '저거는 짧다. 저거는 잘못됐다. 그러나 잘못된 것이 주님이 그렇게 잘못되게 하셨기 때문에 잘못됐다.' 가룟 유다를 하나님이 가룟 유다 되게 하셔서 가룟 유다가 됐지 가룟 유다 제가 된 것 아니다.' 가룟 유다 볼 때에 나는 가룟 유다 아닌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감사할 것, 또 가룟 유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 행동은 나쁘다는 것을 똑똑히 정평 정가 이렇게 하지마는 왜 저런 것이 됐는가? 그렇게 우리는 저주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저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저런 것을 내 눈에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고 접촉하게 하셨으니 이 이유가 뭐인가? 왜 이렇게 내가 이런 것을 보고 듣고 저 악한 자를 보고 듣고 접하게 하셨는가? 이유가 뭐인가? 그 이유가 뭐입니까? 악을 없애기 위해서? 고것도 좀 맞았습니다.
그런 것을 실은 악을 있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그 악을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그런 악을 없애도록 하기 위해서, 없애도록. 누구에게? 성도에게 그것을 없애도록 하기 위해서 '저런 악이 있으니 이런 종류의 악은 네가 하면 안 된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그를 보고서 깨닫고 우리로 하여금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구원을 위해서 그것을 그와같이 예정하신 것을 우리가 또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로 말미암고' 모든 그 움직임이 있는데 마음의 움직임 몸의 움직임 뭐 짐승의 움직임도 있고 사람의 움직임도 있고 모든 귀신들의 움직임도 있는데 그 모든 움직임은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여진다. 그런데 그걸 나누면 선한 움직임 악한 움직임 둘로 나눌수 있다.
선한 움직임은 하나님 중심의 움직임, 악한 움직임은 자기중심의 움직임 이래 있는데 그걸 보고 '저거는 하나님 중심의 움직임이다, 선이다. 조거는 제 중심의 움직임이다, 조거는 악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주로 말미암고' 주로 말미암아 모두 다 존재한 것이다.
그러면, 옳은 것도 교만해서 잘못된 걸 보고 멸시 천대할 수 없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이고, 또 잘못된 그것도, 잘못된 그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택자라면은 '왜 내가 이런 실수를 했을까? 왜 요 한 토막은 내가 악으로 살았을까?' 한 달을 악으로 살았다. 하루를 악으로 살았다. 십 년을 악으로 살았다. 몇십 년을 악으로 살았다. 일생을 악으로 살았다. 내가 왜 이렇게 악으로 내가 이렇게 살았을까?' 그러면, 악으로 산 이유가 뭐이냐? 날 구원하기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악으로 산 거기에 대해서 낙망이나 원망이나 시비하지 말고 거기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며 이 악이 내게 대해서 무슨 이유로 내가 이 실수를 했는가? 이 실수를 내가 무슨 이유로 실수했는가?' 이래 가지고 낙망하지도 말고 원망하지도 말고 내가 이와같이 실수된 것도 하나님의 예정 중에서 된 것이니 뭣 때문에 이런 실수가 되도록 됐는가 하는 고것을 자기가 깨달을라고 애를 써서 고 실수된 고게서 자기 구원을 위해서 앞으로의 구원을 위해서 실수가 됐다는 것, 자기는 더 겸손키 위해 실수됐다는 것, 그 교만을 꺾기 위해 됐다는 것, 어짜든지 그것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거 전부 다 내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하신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거기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의 것도 그렇고 자기 것도 그렇고 그러니까 교만할 수 없고 멸시 천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것을 보고서 멸시 천대한 수 없고 악한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저건 악하다' 이렇게 정평 정가는 똑똑히 하지마는 그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그것을 멸시할 수 없다 말이오, 그거 자체가 스스로 된 것처럼.' 나도 나 된 것이 하나님이 되게 하셨고 그도 그 된 게 하나님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나는 떨면서 주님이여 나도 저와 같은 것 만들었다면 큰일 나는데 하나님이 내게는 이렇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거는 왜 내 눈에 보이게 하는가? 너도 내 은혜가 아니면 저와같이 만들어지면 저런 자 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자로 만들어주셨으니 감사하면서 네가, 옳은 자로 만들어 줬으니 옳은 자로의 사는 일을 단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라.
이 전부는 하나님이 택한 자의 구원을 위해서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고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결국은 그게 다 주님 앞으로 다 돌아간다. 주님에게로 돌아간다 말은 주님의 심판 앞에 돌아간다 말이요 주님이 작정하신 대로 그대로 돌아갑니다. 사람이 다 싫다고 안 돌아가는 것 아니오.
사람이 다 죽는 거는 싫어하지마는 주께로, 주님이 죽어라 하는 대로 죽습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에 가서받습니다. 또 심판받아 가지고서 영원한 하늘나라와 영원한 지옥으로 그렇게 갈라 가지고 다 갑니다. 이래서,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모든것이 조물주 그에게 돌아감이라.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계획을 가지고, 큰 계획을 가지시고 이렇게 역사하시니까 이 큰 계획의 역사를 자기가 차차차차, 벌로 이 세상 일만 생각하면은 모른다 그거요.
이 세상 일은 오늘 떠날지 내 일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은 그저 되는 대로 합니다. 되는 대로 하는 것은 뭐 아무나 따나 한다 말이 아니고 그저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하는 것으로 그저 합니다. 이 직장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저 직장에도 그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법칙을 줬기 때문에, 우리의 생에 법칙을 줬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법칙대로 저게서도 하나님의 법칙대로 하나님의 법칙대로 우리는 살 것뿐이라 그 말이오.
그라다가 우리가 주님에게로 다 돌아갑니다. 결국은 안 돌아가는게 하나도 없어. 전부 돌아가, 돌아가는데 '너는 잘했다. 못했다. 어쨌다.' 그러면 잘했다 못했다 하는 그것을 제가 잘하고 싶어서 제가 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잘하게 하셨으니, 못하고 싶어서 못한 게 아니고 못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그러니까 성경에 그 말씀이 있어. '왜 나는 내가 못하게 한 것 내가 하고 싶어 했나?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주권의 능력으로 하셨기 때문에 못하게 한 것도 하나님이 하셨지' 하나님이 필요 있어서 하셨다 그 말이오.
그 가정에 가 보면은 아주 위해서 뭐 닭도 있고 소도 있고 개도 있고 뭐 쌀도 있고 생선도 있고 물고기도 있고, 연못에 보니까 고기도 있고 있는데 이거는 고기도 다 같은 존재인데 잘 노는 고기도 잡아다가 그놈을 먹이고, 또 소도 잡아서 그놈 먹이고, 개도 잡아서 그놈 먹이고, 또 농장에, 있는 모든 식물들을 쪼개고 익히고 짜고 이래 가지고서 베를 만들어 가지고 내나 그놈 입히고 나중에 보니까 모든 존재가 그것 위해서 있습니다. 그게 뭐인데? 주인의 아들이라.
모두가 다 그거 위해서 있어.
이것뿐 아니라 또 보니까 그 집에 있는데 어떤 거는 쇠로 만들었는데 자꾸 불에다가 굽고 굽고 하니까 나중에 이렇게, 뚱뚱하게 이만치 뚱뚱하게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불에 타서 똑 젓가락짝 같이 가늘 어졌어, 불에 타서. 그거 뭐이요? 불집게 말이요, 연탄집게 안 그렇소? 타서 젖가락 짝같이 가늘어졌다 말이오. 가늘어진 그것은 '나는 평생 불에다 굽히기만 한다' 그거 분할 일 아니요? 그래도 '네가 누구기에 네가 불평을 하고 분해하느냐? 네가 그래 분하게 여긴다고서 네가 불에 안 굽힐 것이냐? 너는 만들기를 불집게하기 위해서. 그 주인이 만들었다. 너도 주인의 아들을 위해서 그 연탄 넣어서 방 따시라고 아들 위해서 너 불집게 만들었다.' 모든 만물이 다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어. 이런데 우리가 그 목적 속에 들어서 하나님의 선택자가 됐으니까 뭐 이거는 좋아서 뭐 뛸라면 얼마를 뛰어야 되고 기뻐하면 얼마나 기뻐해야 되고, 이렇게 우리는 참, 이러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이러니까,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영광이라 말은 찬성하는 말 아니요, 찬성하는 말? 인제 불집게만 보면 불평이 있고 또 닭만 보면 아주 날개치면서 아름답게 소리내고 울고 하는 그 닭을 꼭 잡아 가지고 어떤 자를 해 먹여 버린다 말이오.
이러나, 나중에 전체를 보니까 하나님의 목적 달성, 주인도 자기 아들을 기르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좋은 아들을 만들기 위해서 그와같이 만물을 다 쓰는 것이니까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서 아들 위해서 쓰기 위해서 만드는 게 마땅하다 그 말이오.
이거 감자를, 감자 눈을 요만한 것을 땅에다 심어 가지고 뭐 가꾸고 애를 쓰니까 감자가 막 이렇게 굵은 것이 한 자루 열었다 말이오. 한 자루 이렇게 많이 열었어. 그래 가지고서 그걸 보니까 나중에 삶아가지고 아들 다 먹입니다.
삶아 가지고 아들 다 먹여. 그 감자가 있다가서 '왜 나를 자꾸 나는 먹히기만 하고 마느냐?'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존재하기를 그거 위해서 존재했지 그거 위하지 안하면 네가 존재하지 못해' 이러니까, 토기장이가 같은 흙을 가지고서 귀하게 쓸 그릇도 또 천하게 쓸 그릇도 만드는데 그 토기장이 뜻대로 만드는 것이지 네가 무슨 이의를 다느냐 그렇게 말했어, 성경에 말하기를.
이러니까,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나중에 보니까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존재 목적이 뭐 어데, 어데 쓰기 위해서 그것을 존재했는지 존재 목적이 다 있어. 그러니까 모든 존재는 제가 존재하게 된 그 존재 목적에 달성이 되고 존재 목적을 다 성취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족해야 돼.
이러니까, 소는 만날 끌기만 하고 힘만 들고 이렇게 죽도록 일하다가서 나중에 죽어서 살도 다 먹혀 버리고 뼈도 하나도 없애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소는 소로 만들었기 때문에 소가 저 죽어서 썩어지는 것보다도 사람에게 먹혀지는 것이 그것이 복이고 소가 또 사랑에게 이렇게 이용돼서 자기 의무와 직분을 한 그것이 자기로는 가치라 그 말이오.
그러면, 쌀은 쌀의 가치가 있고 콩은 콩의 가치가 있고 또 기계의 부속품은 부속품의 가치가 있으니 그 가치가 뭐이냐? 자기의 존재의 목적을 달성해서 자기의 구실을 다 해 가지고 자기가 자기의. 존재의 가치의 일을 다 감당해서 된 그것이 가치라 그 말이오. 그게 자치라. 콩의 가치는 뭐이 가치냐 하면은 그것이 사람에게 먹혀 가지고서영양이 있어서 사람에게 건강이 되어지면 가치가 됐고 그것 먹고 사람이 설사해서 그만 사람이 건강을 못 가졌으면 그 콩은 가치 있는 일은 하지 못하고 할라 하다가 실패된 자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 한 분이 모든 것을 창조하셔 가지고서 이렇게 당신의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요걸 우리가 잘 알고 헛되게 말이지 아주 제가 제된 것처럼, 나쁜 걸 보고서 '왜 어떻게 저런 게 있을까? 왜 저래 됐을까? 사람이 저래 됐을까?' 하면은 틀렸다 말이오.
'저건 나쁘다'하는 거는 좋지마는 모든 더러운 것도 더러운 것이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고 모든 좋은 것도 제가 되고 싶어 된 게 아니라 모든 걸 하나님이 고렇게 하셨는데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이 되는 순서가 더러운 것을 원하고 그래 가지고 더러운 게 됐고 좋은 거는 좋은 것을 원하고 순서가 돼 그렇게 됐지마는 그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서 나왔고 주로 말미암았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니라' 이런데, 끄트머리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이러니까 그분이 온전한 마음, 착한 마음, 선한 마음, 사랑의 마음 이것을 가지고당신이 모든 것을 계획해 가지고 이렇기 때문에 통틀어 말하니까, 통틀어 함께 보니까 그게 선이요 그게 사랑이요 그게 온전이요 그게 거룩이요 그게 깨끗이라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그분이 모든 것을 계획해가지고 이 완전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그렇지 않소? 이 집이 되어지는데에는, 집이 되어지는 데는 톱으로 썩썩 썰어서 톱밥으로 썰려 나가는 것도 있고 뭐 오만 것 다 있지마는 집 한 채를 바로 짓기 위해서 그런 모든 건재를 다 사용해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건재는 건재로 사용됐으면 좋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이 길다란 나무니까 끊겨야 그게 쓰게 되니까 끊어 가지고 쓸라고 하니까 거기에는 톱밥이 나가야 된다 말이오. 톱밥은 톱밥이 나가야 그게 끊겨진다 말이오. 톱밥은 톱밥으로 나감으로써 저희 존재의 그 목적의 직분을 다 한 거라? 이러니까, 이런 광대함을 깨닫고 '영광을 하나님에게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나님이 이 광대하심이 선하신 마음을 가지고서 이 선하신 계획으로 모든 선한 것을 이루는데 거기에서 자기 개체라는 악을 생각하면 '나는 왜 불집게를 만들었노?' '나는 왜 뭐할라고 내가 사는 것을 잡아 가지고 저자의 입에 들어가노?' 이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자기의 존재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존재 목적에 그 달성이 되면 된다 그 말이오. 존재의 가치가 다 이루어지면 되는 거라.
이러기 때문에 이제, '영광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영광스러운 이것을 깨닫고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세세토록 그분이 하시는 이 선한 일이니 참 범위가 광대하다. 그분의 범위를 측량할 수가 없어. 이러니까 그분을 두려워 떨면서 자기를 본되게 예정하신 것, 모두가 다 복되게 예정하신 것이라. 이러니까 그것을 깨닫고 감사하고 그 조부라운 마음을 가지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이래서, 이 말씀을 내가 오늘도 아침에 설교하게 된 것은 저 마산에 ○○교회는 ○○○목사님이 자기가 가지고 갔습니다. 또 서울에 ○○○교회는 그 뭐 ○목사님은 그 집 짓는 데 꼬쟁이 하나도 대지도 안하고 아무것도 해 놓지는 안했습니다. 지어 놓은 집에 육칠 년 있으면서 자기 낭탁만 하고 그 돈도 다 자기가 다 쓰고 자기 대로의 모든 걸 했으니까 뭘 했는지 모르겠소. 아주 농장을 짓고 이래 가지고 하다가 그래 이번에 그것을 육 년 동안 공을 들여 가지고서, 육 년 동안 공을 들여 가지고 요번에 그것을 몽땅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교회는 ○목사님이 가지고 갔습니다. 우리에게서 탈퇴하고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이래서, 그 사람은 또 그대로 가는 것,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예정하셨고 그 사람은 거기에서 그렇게 예정하셨고, ○○○교회도 그렇게 예정해서 그렇게 했고, ○○교회도 그렇게 예정하셔서 그렇게 했고, 또 ○○○교회서도 그렇게 예정해서 그렇게 했고 이러니까 옳고 그른 걸 저거는 틀렸다는 것은 판단하지마는 왜 사람이 저런 사람이 됐을까 하는 그런 말은 우리가 조심해서 해야 돼. 왜? 하나님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
그러면 유리는 그렇게 안 됐으니까 감사할 것뿐이지 교만하면 안 돼요.
그래서, 그 둘은 갔는데 이제 앞으로 우리 총공회에서 고통을 하기를 이거 앞으로 지금 이걸 어째 돼야 되느냐?' 늘 생각한 것은, 그 파가 많아요. 그거 지금 말하자면 넓은 파라. 이런데 그 파가 많은데 그렇게 하는 것을 이것을 ○○○이도 나갔지 그거 좀 다 그런 사람, 이런데 이안에도 지금 많이 있어요.
많이 있는데 이제 이번에는 저래 나갔기 때문에 요번 교역자회 때는 내가 모여 가지고 '이제 너거와 같은 사람들이 지금 깃발을 들고 나갔으니까, 나갔으니까 인제 그리 가서 속할 사람들은 아예 그리 가가지고 또 너거 대로 구원을 이루라.' 하나님의 뜻이 뭐 요런 것 저런 것, 붉은 것 푸른 것 다 각각 있기 때문에 그래 이루고 여기에는, 그래요. '나는 목사님 가까이는 못 따라갑니다. 멀찍하게 그래 따라가지. 내가 그렇게는 내가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좁게는 못 갑니다.' 이래요. 내치 그래 나는 그래도 웃는 말로 그라는 줄 알았는데 참 그래 돼졌어.
이래서, 여기에도 서부교회서도 지금 그래요. 나오는 가운데 이 새벽기도 나온 사람 몇 사람 있어? 사천 수백 몇 가운데에서, 주일날 오전 오후에 사천 수백 몇 가운데, 그러면 재적으로 말하면 근 만 명 되는 사람들이 이제 요것밖에 새벽기도 안 나왔어.
요거밖에 새벽기도 안 나왔는데, 그러면 그 사람들 다 지옥 갈 사람인가? 지옥 갈, 사람 아니라. 새벽기도 나온 사람 요것뿐이니까 또 고대로의 종류인데, 요 새벽기도 나온 사람 가운데에도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사랑할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또 얼마 안 된다 그거요.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예수 믿는 사람은 또 얼마 안 된다. 그 믿는 것이 천층만층이라. '행한 대로 갚으리라' 이것이 뭐이냐? 이게 자, 기본구원입니까, 이렇게 행동이 천층만층이 있으니까 이게 기본구원입니까 건설구원입니까? 이거 건설구원이요 건설구원.
알겠습니까? 이거 건설구원이라.
자 이제,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줄 알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혹 ○○○목사님이나 ○○○목사님에 대해서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하지 마. 하나님이 그건 사람되게 하셨기 때문에 그런 사람 됐으니까 너 안 됐으면 감사할 일이지 네가 그 사람을 보고서 멸시 천대하고 그럴 게 아니고 사람들이 저래 변해지니 나도 변하기 쉽겠다 그걸 생각해서 조심해야 돼요.
이래서, 그리 알고 거기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논평하지 말고 우리는 이제 조심해서, 주님 재림이 가까왔어. 가까왔으니까 그저 어짜든지 믿기는 우리가 믿는 게 좋습니다.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 이게 예수 잘 믿는 게 아니라. 이게 예수 잘 믿는 게 아니라. 더 열심히 믿어야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