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용받는 영광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8일 화새 

 

본문 : 살전 5:1-2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끌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 하신 이 말씀은 주님이 도적으로 오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이 도적으로 오신다는 말씀이 아니고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적과 같이 되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러 오는 것인데, 주인의 것을 훔쳐 가든지 빼앗아  가든지 하는 것이 도적입니다. 몰래 훔쳐 가는 것은 절도요, 강제로 빼앗아 가는  것은 강도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도적같이 온다는 그 말씀은, 주님이 모든 사람의 것을 빼앗아  가려고 도적질하려고 주님이 오신다는 그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것이라고 하는 그것을 다 빼앗기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제것이라고 하는 것을 그 시간에 전부 다 잃게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은 내 몸인데, 이것은 내 몸인데' 다 자기 몸인 줄 알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에는, 자기 몸을 자기 몸인 줄 알았는데 그날에 다  빼앗겨 버립니다. 자기 몸으로 다시는 가지고 살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자기 몸이기 때문에 그 몸둥이를 제 마음대로 사용합니다. 인간이 그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뜻대로 사용하는 그것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뿐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영원히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뜻대로는 사용하지 못합니다. 또 예수님의 재림이 아니라도 개인에게 대한  재림이 있습니다. 개인이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도,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은 그  사람이 제 몸둥이를 영원히 자기 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그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그렇게 모든 것이 구비한 부자이지만 자기의 생명 끝나는  시간이 되어서 딱 생명이 끝나니까 다시는 자기의 몸도 물 한방을 떠오는 그런  사용도 못했습니다. 영원히 사용 못했습니다. 그 몸으로 고통만 당했지, 그 몸을  원치 아니하는, 그 몸을 원치 아니하는 영원한 형벌만 받았지 그 몸을 제  욕심대로 제 마음대로는 털끝만치도 사용 못했습니다.

 또 홍포 입은 부자가 모든 것이 구비하고 풍성하고 부요했지만 자기의 부요한  것, 영원히 사용 못했습니다. 돈도 사용 못했고, 모든 구비해 놓은 자기의  소유도 하나도 사용 못했고, 심지어 물 한 방울도 사용 못했다 했습니다.

아무것도 사용 못합니다.

 이러니까 인생이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은 자기 것이라고 가지고 있던 것은  영원히 다 빼앗깁니다. 믿는 사람이고 안 믿는 사람이고 다 빼앗깁니다. 자기  것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은 다 빼앗깁니다. 또 예수님이 재림을 하셔도,  개인적으로는 자기가 안 죽고 살아 있어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시간에는  한꺼번에 다 세상살이는 끝나고 마는 것이요, 또 자기의 소유는 그 시간으로  영원히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말씀하시기를 2절에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저희가" 하는 것은  제것인 줄 알고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되 그날이」 그 날이  말이오. 그 날, 날짜, 그날,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니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과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이라」  우리는 낮에 속하여 있고 또 깨어 있기 때문에 도적맞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깨어 있으면 도적 안 맞고, 안 믿는 사람 같이 자고 있으면 다  도적맞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밤에 속해 살면 다 도적맞습니다. 낮에 속해  살면 도적맞지 않습니다.

 밤은 무엇을 가리키는고 하니, 이 세상을 가리켜서 밤이라고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해서 세상을 보고 살고 세상대로 살면 그 사람은 택한  자라도 영은 구원 얻었고, 또 그 몸은 부활하지만 자기의 심신의 기능도 세상에  속해 살았으니까 다 도적맞았지, 다 뻬앗겨졌지. 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생활한 모든 생활 전부, 전부 다 빼앗겼습니다. 다 빼앗깁니다. 누구한테  도적맞는가? 세상에게 도적맞습니다.

 또 깨어 사는 것은, 믿는 사람이 깨어 사는 것은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그것이  깨어 사는 것이고, 자는 생활은 진리와 영감의 생명은 가지기는 가졌는데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이 사는 것이 자는 생활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은 죽은  생활이라고 하는데, 믿는 사람들의 생활은 자는 생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행동은 꼭 같지만, 생활은 꼭 같지만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잔다' 말했고,  또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죽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믿는 사람을 "다 잠잘 것이 아니요" 그말은 '다 죽어 있을 것이 아니요'  그말입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 있지만 죽어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을  가리켜서 '잠잔다' 이랬습니다. 죽어 있는 생활은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을 만나든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시간을 만나든지 그때는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고 제 마음대로 사는 것 다  빼앗깁니다.

 예수님과 관련되지 않고 예수님에게 맡기지 못한 것, - 주님에게 맡긴 것,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줄 알고 주님에게 맡긴 것은 하나도 세상이 빼앗지  못합니다. 사망이 빼앗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하나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속받은 자라도 주님의 구속과 상관없이 '이것은 내 것인데' 하는,  제것이라고 하는 몸, 제것이라고 하는 지식, 제것이라고 하는 소유, 제것이라고  하는 행동 전부는 다 그때는 영원히 자기와는 상관이 없게 되는 이 무서운 일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제가 죽자껏 공부를 해도 주님의 구속받은 자이기 때문에 공부도 주님이 하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니 주님의 법도 안에서 하는 그 공부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법도를 버리고 '이거는 내  지식인데' 하는 그자들의 지식은 죽는 그 시간에는 영원히 빼앗겨 다시는  만나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빼앗겨서 영원히 다시는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이것이 알기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 그말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는 인간들이  주의 것이 아니라고, 제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 빼앗기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주님이 오셔도 빼앗기지 않을 것 있습니다. 어떤 것을 빼앗기지  않을 건가? 주님의 구속 안에 있는 것은 빼앗기지 않습니다. 구속 안에 있는  것은 아무도, 사망도, 죄도, 하나님의 심판법도, 마귀도 해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의 것이라. 주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대신  화친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케 하신 주의 피로 구속한 주의 것이라' 하는  이것을 깨닫고, '주의 것인 것을 인정하고, 주의 것으로 알고, 주의 것으로  인정하고, 주의 것으로 알고, 주의 것으로 살아라' 하는 그말은, 노아의 방주  안에 들어가고 방주밖엔 나가지 말아라. 그러면 멸망받는다. 주님 안에 들어오면  영원히 사망이 해하지 못하고 주님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다 사망하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이렇게 대속했기 때문에 주님의 공로  안으로 들어오라. 주님의 공로 안에 들어오면 이것이 깨어있는 것이고, 이것이  도적맞지 않도록,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아무리 구속받은 자라도 주님의  구속 밖에 있으면, 자기가 구속 밖에 있다고 인정을 하고, 자기가 구속 밖에  있는 것으로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자유성을 강제해 가지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다 영원히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 이것을 는 사람은 하나도 도적맞지  않는다. 깨어 있는 자는 도적맞지 않는다. '자는 자들은 다 도적 맞는다.'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안에 있으면 사람이 과실을 맺고 나를 떠나서는 인생이 털끝만한  것도 자기에게 유익된 일을 하지 못한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한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피로 구속한 것이니 정죄하지 못합니다. 구속한 것이니  심판하지 못합니다. 구속하신 것이니 사망이 해하지 못합니다. 마귀가 해하지  못합니다. 구속받은 것이 구속받은 것으로 알고, 구속받은 것으로 가지고 있고  구속받은 것으로 살면 영생입니다.

 이렇지만 구속받은 것이 구속을 집어던져 버리고 '이것은 내것이라' 하기  때문에 구속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의 피로 구속해서 주의 것이 된 것인데,  주의 것이 됐다는 말은 주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생명의 것이 됐다 말이오.

완전의 것이 됐다 말이오. 완전의 소유이니까 해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것을 누가 죽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이 안보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자. 피난을 하자. 주 안에  있는 자는 다 영생한다. 주 안에만 죽음이 없고, 생명과 평강이 있느니라' 하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구속, 주님의 구속이 된 것은 멸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구속이 된 것이지만 본인이 기어코라도 구속 그것을 버리고 '이것은 내것이라'  할 때에는 도로 찾아가는 것이니까 구속은 거기에 효력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인간의 마지막 시간도 자기가 모르고 주님의 재림도 모르는데, 주님의  구속과 상관없이 제 것이니까 제 마음대로 하지. 주의 것이면 영생하는데, 주의  것이라면 주님 마음대로 하지 제 마음대로는 못하지. 제 마음대로 못하고 주님의  마음대로 하는 것은 전부 영생이요, 영원히 제가, 주님의 것을 제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구속을 받았지만 이것은 주의 것이 아니고 내것이라 하는 그것은  다 멸망이고, 주의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것을 가지는 것이나 움직이는 것이나  그것은 제것으로 알고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은 다 멸망받습니다. 이것이 증대한  문제입니다. 주의 것으로 알고 주님에게 맡겨 주님 마음대로 하는 여기서 다  영생이고, 제것으로 알고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은 전부 영멸입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런지 모릅니다.

 이래서 누가복음에는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주의 날이 그물같이 온다.' 또  그렇게 말했소. '주의 날이 덫같이 온다' 말은 그물같이 온다, 그물, 고기 그물,  '그물같이 온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는 주님의 것은 싹 다 거둬 가지고 가  버립니다.

 주님의 것은 다 거둬 가지고 가 버려요. 주님 밖에 있는 자유는 전부 다 그물에  걸린 것처럼 그날 다 빼앗긴다 그말입니다. 왜? 당신의 것인데 무엇 때문에  내버려 두겠소? 먼지 하나도 안 내버려 두고 당신이 다 가지고 갑니다.

 이러니까 그런 자는, 다 빼앗기는 자는 어디로 갈 것인가? 주의 것이 하나도  없는 음부로 갑니다. 그것은 주의 것을 도적한 그 값으로 영원히 받아야 됩니다.

주의 것이 주의 법도를 어긴 그 죄값을 영원히 받아야 됩니다.

 지옥에는 물 한 방울도 없습니다. 지옥에는 먼지 한 개도 없는 곳입니다.

지옥에는 쌀 한 알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지금 제것으로 알고 살고 있는 이것,  제것이니까 영원히 가질 줄 알지만 지윽에는 자기 것이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공기도 없습니다. 공기가  없소. 산소니 뭐니 이런 공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빛도 하나도 없소. 주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주의 것은 하나도 없이 다 하나님께서 다 빼앗고, 다 취해 버리고, 다  도로 찾아 버리고, 다만 형벌만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죽지 않습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소. 거기에는 숨 쉬는 호흡이 없습니다. 주님의 것은 다 찾고 자기와  형벌과 이 두 가지만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의 구속을 받았지만 내것으로 산 그 분량은 전부 지옥 가  가지고 그 지옥의 형벌과 그것으로만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그런 줄 알고, 오늘  이것은 구속받은 것이라 내것이 아니라. 주님이 피로 값 주고 구속하신 주의  것이라. '나도 주의 것이라' 하는 그것이 영원한 사망을 벗어나는 것이요,  그것이 영원한 사망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로 구속하신 것이니 주의  것인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자기가 주의 것인 것을 인정하고, 주의 것으로  인정하고, 주의 것으로 알고, 주의 것으로 있는 것이 그것이 영원한 멸망을  피하는 한 길뿐인 이 한 길입니다. 멸망을 피하는 한길이오. 또 자기 것은 주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 마음대로 쓰시지 제 마음대로는 쓸 수 없는 이 사실을 알아  주님 마음대로, 주님이 이래 쓰라 하면 이래 쓰고, 저래 쓰라 하면 저래 쓰고,  이렇게 서라 하면 서고, 앉으라 하면 앉고, 주의 것이기 때문에 주로 인하여서  움직일 줄 알고, 주의 것으로 움직인 것, 주의 것으로 움직인 것, 주의 것으로  사용된 것 그것은 영생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주의 것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지금 내 입술이지만 내 입술이 아니라 주의 피로 구속받은 구속하신 주의  입술이라. 이럴 때에 그 입술은 사망이 해하지 못합니다. 주의 입술이니 이  입술은 어떤 귀한 인간, 권세있는 인간, 내가 좋아하는 가족, 어떤 인간의 어떤  사건이, 어떤 물건이 내 입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주님 것이기 때문에 주님만이  사용할 수 있다 하는 것을 깨달아, 주님으로 인하여 사용된 것은 내가 말했지만  주님이, 주의 입술이기 때문에 주님이 내 입술을 사용하는 이 사용으로 입술  사용한 그 사용은 영원히 주의 것으로 자기가 영원히 사용합니다. 이것이 큰  비결입니다.

 도적맞지 않는 것,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도적맞지 않는 것, 주의 구속을 입을  때에 영원히 주의 것으로, 내가 주로 인해서 사용할 수 있는 주의 것으로, 주로,  주의 것을 주로 인하여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오늘  주님으로 인하여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구원에 대해서 전부입니다. 구원의 전부, 멸망을 피하는 것은  주의 것이 될 때에 멸망을 피하고, 영원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주의 것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잘난 자들이 제것인 줄 알고 뻐기지만 참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이것도 모르고 공부하는 학생이 우등만 바라서 하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자입니다. 죽은 송장이오. 그것을 부러워하는 줄 압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불쌍하고 가련하고, 그걸 안 알아주면 그게 도망칠 것이기  때문에 '하, 좋다 좋다' 하지만 속으로는 참 '가련하다, 가련하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두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날에는 다 도적 맞습니다.

 내가 요즘 반사들 써 낸 것 보니까 그거 모두 다, 전부 멸망 가운데 있소.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영원히 살 것으로 사용한 것은 주일날 그 학생들  구원한다고 보조반사, 반사들 좀 활동한 것 그거나 있을까, 주로 인해서 움직인  것이 그거나 있을까 나머지기는 전부 제것으로, 저 위해서 제 마음대로 다  사용했소. 아마 주로 인해 사용한 것이 부스러기도 없을 것 같아. 살펴 봐요.

주님의 피로 구속한 것이니 주의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며,  주의 것으로 인정하기를 몇백분지 일이나 인정하는지, 몇천분의 일이나  인정하는지? 자유성입니다. 다 주의 것으로 인정하는 거기서 영원한 멸망은  벗어났습니다. 멸망은 벗어났지만 사용되지는 못해. 주의 것이니 주님이  사용하신 것만, 주님이 사용하신 것만 영원히 사용됩니다.

 주님이 사용하다니? 뭐 있지만 주님이 내게 마음을 주셔 가지고 당신 소원대로  사용했으면 주님이 사용한 것이지. 나도 주님에게 사용을 당해 가지고 내 손도  주님이 사용하시는 대로 사용된 것이지. 그것만 영생입니다.

 참 너무 비참하고 불쌍합니다. 이 교회들을 뭐, 얼마 운동, 무슨 운동 무슨  운동 뭐 어떻게 하고 있지만 멸망이냐 멸망을 벗어나느냐 하는 것은, 멸망이냐  멸망을 벗어났느냐? 멸망 안에 있느냐 멸망을 벗어났느냐 하는 것은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구속을 받은 것이냐, 주님이 구속하신 것이냐 구속 안 하신  것이냐 하는 그것에서 결정됩니다.

 우리에게 자유성이 있고 인격성을 가졌기 때문에 주와 우리와의 관계는 전부  유기적으로 됩니다. 유기적으로. 내 자유 의사를 가졌는데 자유 의사를 가지고,  이 자유 의사를 가지고 주의 것으로 인정될 때에 주의 것이 되는 것이고, 자기가  아무리 말로는 그래 해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이 통과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되면 멸망은 벗어났지만, 반신불수, 팔은 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멸망은 벗어났지만 주님이 사용한 기능이 없으니까 영생을 가지지 못했어.

그러니까 그는 부활해도 기능없는 것으로 부활합니다. 기능이 없는 것으로  부활하니까 하늘나라에 쓸모는 없어. 주의 것이 됨으로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이  되고, 주님이 사용하신 것, 주님에게 사용 된 것, 주님이 사용하신 것, 주님에게  사용된 것 그것만이 영생합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하든지 주님에게 사용되는 입장을 가지려고 애를 써요. 나는  남자들에게는, 지금 그렇게 큰소리 할 남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 모릅니다.

똑똑한 것 같지만 모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남자들 가운데는 그렇게 큰소리 할  남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여자들 중에는 몇이 있습니다.

 '네가 이 직책이 아니면 죽는 날까지 네것으로, 네 가정 위해서, 너 위해서  사용할 것인데 이 직책으로 말미암아 원치 않으면서도 주가 사용하는 그 사용을  많이 당했으니까 너 손해 간 것이 뭐이냐? 하기 싫거든 지금도 하지 말아라' 큰  소리 탕 합니다.

 이말출집사에게는 내가 사정해서 시키지 않습니다. 옆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알 것이라. 박합니다. '하기 싫으면 마시요.' ○○○집사에게도,  ○○○씨에게도, ○○○집사에게도, 이복순, 추순덕 거의 다 그렇습니다.

 어쨌든지 내 모든 것이, 나와 내 모든 것이 주의 것으로 인정 안 할 수 없는  그런 형편과 입장을 많이 당하는 것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내 맘대로 쓰지 말고,  누워 자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주님 당신 소원대로 당신이 많이 쓸  수 있는 요 입장과 처지와 여기에 매인 것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 일에만 분망한데, 자기 일이라니? 전도하는 일 외에는?  아니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자기 일 하나도 안 하고 주의 일 하는 사람  있습니다. 주님이 쓰셔서 주님에게 쓰여지는 사람 있습니다. 이러니까 한 밭에서  일 하는데 하나는 데려 가지. 주님이 쓰신 것은 다 영생이니까 가져가지. 돈이  써서 돈에게 쓰여지는 자 있고, 주님에게 쓰여지는 자 있고, 권세에게 쓰는 자  쓰여지는 자 있고, 다른 야심에게 쓰여지는 자 있고 다 각각 다르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인데 아파 드러누웠어도, 곧 병이 날것 같아도 주님이 쓰시니까 안  쓰일 수 없고, 병이 나서 곧 드러누우면서 도,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주님에게  쓰여지게 된 그것이 복이라 그 말이오.

 티끌 모아 태산인데, 조금씩 조금씩 하는 것 같아도 주님에게 쓰여지는 그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되는 것인데, 자기는 말 한 마디도 주님이 말하시는 그말이  아니면 할 수가 없고, 그말 할 수 있는 입장이 돼 가지고 있어도, 예수 믿는  자기가 구역 식구에게 '예수 믿지 말아라' 그말 할 수가 있어야지? 말 한마디도  주님이 하시는 말만 하게 되지. 권면 하나라도, 생각 하나라도 주님이 하시는 그  생각만 그에게 하게 돼 버리지. 이것이 복있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그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주일학교 반사들 그것들이 할 때에  슬슬 슬슬 추켜 잘한다고 이러니까 그 바람에 지금 신이 나서 하다가 이제는  그거 없으니까 다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아무 것이가 일등이다, 일등이다. 지금 학생이 얼마다.' 이러니까 그 바람에  하다가 이제 그거 없으니까 말았습니다. 나중에 분석을 하면 무엇이 일했을런지?  분석해 보면 주를 위한 요소는 얼마 안 돼.

 명예 위해서, 감정으로, 적개심에서 '너만 그러냐? 나도 한번 해 보자.'  적개심에서, 또 자기 기분에서, 이런 충격에서 저런 충격에서, 순전히 나를 피로  구속해 주셨으니 주의 피의 구속을 받은,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나라. 요것을  인정하고,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맘대로 쓰면  도적질하는 것이라. 말을 하려면 주님이 하시는 말 하고, 움직임은 주님이  움직이는 일 하고, 주의 것으로, 살아도 주의 것으로 죽어도 주의 것으로,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먹고 마시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는 요것만  영생입니다.

 우리의 소유나 몸이나 모든 것은 주님이 쓰신 것만 영생입니다. 주님이 쓰신  것만 영생이오. 주의 것 된 것만 영원한 멸망을 피한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언제가 이것이 결말짓는 마지막 시간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방편이 몇 가지 아닌 줄 아요. 늙어 죽는 그 방편만 알고 있는  자는 '나는 아직까지 젊은데, 그러면 죽을 날이 멀었다.' 이렇게 생각하지요.

늙어 죽는 방편뿐입니까? 갑자기 심장마비가 돼 가지고 죽는 것 그 방편이  있는데? 늙어서 죽는 그걸로 말하면 저는 안 걸리지만 심장마비로 되는  죽음이라면 자기는 언제 심장마비가 될런지 알겠습니까?  또 그런 병 아니고 갑자기 나가다 자기는 정신이 있는데 어떤 것이 와서 탁  부딪혀서 즉사하는 것 있어. 그 죽음은, 젊은 것이 소용 있습니까? 그 죽음이  자기에게 언제 닥칠런지 압니까? 무슨 급살병이 올런지 압니까? 갑자기 무슨  자기에게 살해가 올런지 압니까? 보니까 멀거이 가는데 옆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던 폭발물이 폭발해 가지고 그만 죽어 버렸어. 그 죽음이 언제 닥칠지 아요?  죽음의 방편이 백도 천도 넘습니다. 간추려 본다고 하면. 이러니까 그 죽음의  방편이 '나는 그거는 안 죽는다.' 어떻게 알 수 있고, 그러니까 무슨 방편으로  내가 죽을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제가 '오늘은 안 죽겠다.' 이렇게 망령된  말을 하겠습니까?  '너희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들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도 할 것이거늘 너희들이  허탄한 자랑으로' '나는 내일은 살 수 있다. 뭘 할 수 있다.' 그게 다 허탄한  헛된 장담이라 그 말이오. 실력없는 장담이라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공연히 반사들이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 어리석게 제가  그러니까, 제가 그러니까 그런 줄 알아. '나는 오늘 좋은 곳에 갈련다.'  이러니까 '어디로 놀러 갈렵니까? 무슨 구경 갈렵니까?' '나는 꽃마을에 지금  기도원에 갈려고 지금 나는 오늘, 복잡하게 붙들리는데 좋은 곳에 갈련다.'  하니까 자기 마음 짚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 본위로 해  가지고 해석하기 때문에‥‥  반사들은 복이 있습니다. 참 이 직책을 맡은 것이, 여러분들이 어떻게 인간을  시기해서 '저놈이 일등해? 내가 일등해야지.' 시기 질투 살해 전부 인간을  해치는 요 마음에서 살던, 섞임없이 요것만 가지고 살던 인간이오.

 어떻게 내가 들어서 모든 사람 위에 가 가지고 착취하고 이렇게, 전부  도적이요, 살인이요, 강도요, 요것으로만 스물 네 시간을 꼬박 살던  여러분들인데, 인간을 구원코저 그 인간이 옳은 일을 할 때에, 주일 지키는 걸  볼 때에 기쁜 그것이, 얼마나 옳은 일을 할 때에 기뻐합니까? 인간이 옳은 걸 할  때에 기뻐하고, 옳은 것 하기를 원하고, 옳은 사람 되기를 원하고, 옳은 길  가기를 원하는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그 입장을 가졌기 때문에 그걸 가지게  됩니다. 이러니까 얼마나 복이 있습니까?  남 잘 되기를 원하는 그 심정을 여러분들이 가질 때가 아닌데 가졌고, 남을  위해서 수고하고 남을 위해 걱정하게 되다니? '복이다 복이다.' 말해도 제가 그  사람이 안 됐기 때문에, 억지로 그 일을 해서 복 있는 일 하기는 하지만 제  비판으로서는, 제 마음 짚어 남의 말 한다고 제 마음이 그렇고 그런 인간이 돼  놓으니까 '아, 저렇게 지금 목사님이 지금 자꾸 막 추켜 올려 가지고, 추켜 올려  가지고 주일학교 반사 노릇 열심히 하라고 꾀운다. 살살 달래서 추켜 올린다.'  그렇게 썩은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뒈지고 만다 그 말이오. 하기 싫으면  말지! 어리석어! 학교에 가 가지고 우등생으로 평생 공부하는 것보다도 제가  하루 아침 심방하는 것이 낫아! 학교에 교편잡고 유명하게 되는 평생 생활보다도  그게 낫아!  왜? 교편 생활은 그러면 나쁜 것인가? 그것도 주를 위해서 할 수 있지. 돈의  종이 돼 가지고 할 수도 있고, 인간의 종이, 명예의 종이, 오만 것 다 있지.

가족의 종이 돼 가지고 있고, 주를 위해 주의 종이 되어서 할 수 있지. 주의  종이라면 주님이 하라 할 때 하고 하지 마라 하면 안 하지. 그것을 봐서 어디에  매였는지 알지. 어리석소.

 멸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구속으로만 멸망을 벗어납니다. 구속받은 주의 것인  그것만 멸망을 벗어나 있습니다.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주관으로, 주관  구원이오.

 이러기 때문에 자기 주관에서 주의 것인 것을 인정하고 주의 것으로 되어 있는  자기의 것은 다 구원이 됐습니다. 멸망에서 벗어났습니다.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영원히 움직이는 것은 주님이  써서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인 그것만 영원히 움직일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원반사들이, 구역장들이 아무 철없는 그런 학생들에게 부득이  중간반에서 뽑아내니까 어쩔 수 없어서 분반해야 되겠고, 이래서 힘없는,  보조반사도 안될 사람들을 자꾸 이래 세워 놓고 한 것은 위에서 뒤에서 관리를  해 가지고 좀 기를려고 이랬는데, 아무 것도 힘없는 것에게 맡겨 놓고 난 다음에  뒤에 관리 안하니까 그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차가 휘발유가 없는데 가던 바람에 한 몇 미터는 쭉 간다 할지라도 속이 힘이  없는데 그게 뭐이 갑니까? 휘발유를 넣어 줘야 되지.

 이러니까 분반되고 난 다음에 제가 그려 놓은 걸 보니까, 분반하고 난 다음에  그때 많이 분반할 때 주일학교가 제일 왕성입니다. 제일 숫자가 많이 올라갔소.

분반해서 떨어진 것 아니오. 분반해서 처음에는 일을 했는데 원반사들이 '어,  이렇게 분반시켜 버렸으니까 이제 짐 벗었다.' 또 '내가 관리하던 학생들을 다  이래 떼 줘 버렸으니까 섭섭하다.' 그놈이 마귀입니다.

 언제나 제게로 하면 도적이지. 양 도적이지. 주의 것이니 어떻게 하든지 주님의  것을 구속한면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주님이  그렇게 계산이 둔합니까?  요즘 뭐 전자계산기인가, 뭐이라 하더라? 그것을 만들어 내신 이가 하나님이요,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만드신 이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둔하지 않소.

계산이 빠릅니다. 어리석게 손해 가리라 여기지 마십시오.

 어쨌든지 주의 구원을 많이 되도록 해서 많이 한 사람이면,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상을 결단코 잃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분반 되니까 그만 게을이  들어와 가지고 그렇게, 그것을 그때 조금씩 자꾸 도와서 가꾸었으면 그것이 됐을  터인데 손 떼 버렸지.

 또 '이것은 다 나를 통해서 구원하는 것이니 어쨌든지 이것을 잘 해야 되겠다.

내게 책임지운 것이니 내가 사람을, 그 사람을 대리 세워 놔도 속에 힘은 내  힘이 가야 된다.' 이렇게 해서 바로 깨닫고 했으면 우리 주일학교가 만오천을  말한 그것이 거의 달성돼 갑니다. 그 속에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 다 그 작용을  일으켜 가지고 이렇게 실패된 것입니다. 그 계획이 나빠 그런 것 아니오.

 내가 '중간반을 보존하려면 중간반 반사를 거기서 차출해야 되는데, 차출할려  하면 거기에서 실력있는 반사들을 차출해야 되겠는데, 또 실력있는 반사들을 다  차출하면 주일학교가 안 되겠으니까 몇몇 모범적으로 몇몇은 두고 해야 되겠다.

그러면 이거, 다 그러면 이 주일학교가 어찌 되겠느냐?' 거기서 오랫동안 고민  고민하고 고민을 하다가, 두 가지로 고민을 하다가, '이 학생들 어떻게 이것을  다 어거 할 수가 있겠느냐? 분반을 해 가지고 반사 한명에 20명씩 계산하고  분반하면 위에서 가꾸면, 자기가 하는 것처럼 이 반사들을 가꾸면 일이 된다'  하는 그것을 내가 기도 중에 얻었고, 또 하나는 '이 장소가 모자라니 어찌되노?'  갑자기 돈 없어 안되니까 그것 때문에 고민하다가 '이것은 장소가 모자라면  주일학교를 2부제나 3부제로 하면 된다' 하는 그것을 제가 깨달았고, 2부제만  해도 그만하면 만오천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기도 중에 두 가지를 듣고 해결을 받고 확신을 가졌었는데 우리가  범죄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낭패가 돼 가지고 있소. 이번에 나는 '그것은  그렇지 않지' 이랬는데 쭉정이라. 이번에 보고서 보니까 환하게 다 드러났어.

공연히 중간에 그 전에 보고서 이런 보고 저런 보고 한 것은 전부 가짜라. 내가  그것을 다 작대기로 긋고 한 두 가지만 채용했는데 이제 이번에 보고서를 받아  보니까 그 진짜가 다 나와요.

 우리가 깨어서, -주의 것이, 주님이 쓰셔서 일하는 것이라야 되지 그 외의 것은  다 멸망입니다. 요것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아무리 학생이라도 알고 살아야  돼요.

 말을 안 들었는데 내가 말을 새로 한번 물어 봤소. 물어 보니까 어떤 반사는  '저 먼데 대연동에서 차를 타니까 혼자 타고 온대요. 버스를 타고 온대요.

집에서는 야단을 지기고, 가도 야단을 지기고 그래 가지고 장림에 가면 네시  얼마인가 다섯시 얼마인가 됐는데' 그때부터 다니니까 청승맞다 하지만 그것을  주님이 받습니다. 그게 나드향 옥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를 위해서  자기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놀고 쓰고 나머지기 하는 그것은, 찌꺼기는 주님이 대접을 안 받습니다. 찌꺼기  대접받는 그런 주님은 아니시고 그걸 대접을 받으면 그 사람을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수지 머리를 떼어서, 첫 열매, 다해서,  구역장들도 분반해서 반사 맡겨 놨다고 안심하고 게을하게 있지 말고 반사들도  자기가 그걸 길러서 내야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소? 그렇지 않으면 되겠는가?  원반사가 그러면 나는 뭣 하겠소? 나도 그래 마음 먹으면 여러분들도 다 없어져  버리고 서부교회는 없어져요. 그래 마음먹고 그대로 하면 다 슬슬 흘려 가지고  교인 다 흘러버리고 집만 남으니까 뭐 있겠소, 있기를?  이번에 중간반 반사로서 일등 이등을 이래 매겨 보니까 놀랄 만치, 위에 일등  이등 우등으로 다닌 사람들이 저 밑에 꼼뱅이에 가 있고 생각 못한 사람들이  전부 위에 와 있어. 중간반 학생만 가지고 성적을 내니까. 그러니 중간반 학생이  벌써 몇해 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이 몇해 돼서 없어지겠습니까? 몇해 안 가서 그  구역은 저 밑에 떨어져 내려가게 됩니다. 그래서 제일 힘쓸 것을 내가  구역장회의 때 권찰회 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다가 제일 주력해야 되느냐?  주일학교에 제일 주력을 해야 된다. 그다음에는 중간반에게 주력해야 된다. 그  다음에 장년반에게 주력을 해야 된다. 일하는 것을 거꾸로 했으니까 바로 해야  된다.' 그말을 여러 수십번 했을 것이오. 공연히 말하는 것 아니오. 그래  꾀운다고, 추켜 올린다고? 그래 가지고 뭐하려고? 어떤 사람은 '아 목사님이  지금 명예심에서 지금 자꾸 이래 슬슬 우리를 추 가지고 하는 것 아닌가? 에이  목사님의 명예심에 이용 당하고 우리를 추켜 올린다고 거기 피동되고 아니꼽다.

에이 추하다.' 힘 다 떨어지지. 명예심을 취하려고 하면 지금도 얼마든지 취할  수 있소. 명예심을 취하려면 나도 당장 박사학위 받을 수 있소. 주려고 원하고  있는데도 있어. 괜찮은 곳인데도. 명예 영광 존귀 원했으면 나도 각국에 한번 삥  돌고 왔어, 초청으로. 어리석소. 그런 생각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또 교단 등록, 교단 등록은 말만 그때 그렇게 했지 교단 등록할 것 같으면  우리가 벌써 교단 등록했지. 2만명이 못되어서 모두 우리를 다 청해서 왔습니다.

○○○목사님도 고려파에서 세 군데로 갈라졌는데 여기 고소파 말고 반소파가  둘로 갈라졌는데 거기는 다 2만명씩 합니다. 이러니까 다들 합해. 우리는 9만8천  얼마라. 지금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어. 그런 데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  가지지 말고 하늘나라만 바라보고 지금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김장한다는데 김장할 사람들 오늘 씻어 가지고 김장해야 된답니다.

이러니까, 남반도 두 사람뿐 아니라 봉사할 사람들 와서 좀 봉사하십시오.

남자들 있으면 더 잘 씻지 뭐.

 그리고 어쨌든지 자기 구역에 있는 반사들 새벽기도 참석하도록 해요. 그게  죽어 가지고 무슨 학생을 구원할 것입니까? 또 모반사들 자기 밑에 새끼로 낳아  놓은 것 다 죽어 버리고 그래 되면 뭐 영광될 게 뭐 있겠소? 모반사들 어쨌든지  자기에게 분반된 반사들 다 챙기십 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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