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9 01:48
드리는 자의 복
1981. 1. 19. 월새
본문:로마서 12장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에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으로 권하신 모든 권면은 다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말씀은 다 섬기라는 말씀이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말씀은 다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섬기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다 자기의 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라는 말입니다.
자기의 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라는 말이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시는 말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말씀, 또 우리를 돕는 말씀, 우리를 복되게 하는 말씀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에게 드리라 하는 말씀이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신 주님을, 내나 주님이나 하나님이나 성령님이나 성부나 한 분이십니다. 같은 분이시오. 예수님의 신성이 내나 성부요 성령이요, 또 성부가 성령이요 성자가 성령이요, 성령이 성부요 한 하나님이십니다. 위만 그렇게 달리 나타났지, 이런 하나님으로 저런 하나님으로 위가 다르지 한 하나님이십니다, 한 하나님.
그러기에 ‘주님’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들어가고, ‘예수님’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들어가고, '성령님'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들어가고, ‘성부님’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들어가고, '하나님'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들어갑니다. 대해서 하는 말이오.
이런데 하나님을 섬기라, 섬기는 것은 드려서 섬기는 것이지 얻어 섬기는 일이 있습니까? 섬기는 것은 다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섬기든지 뭣이든지 내게 있는 것을 드려야 섬기는 것이 되지 드리지 않으면 섬기는 것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라 하는 말은 하나님에게 드리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드리라 하나님을 섬기라 이랬는데 이 초두에다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들에게 권한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한다’ 이 말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불쌍히 여기고, 너희를 복되게 하고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섬기라고 한다.’ 이 말을 붙일 필요가 없는데 왜 이 말을 붙였느냐? 인간에게 원죄가 있기 때문에 이 말을 붙였습니다. 인간에게 부패성이 있어서 인간에게 어두움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모든 해석을 정반대로 꺼꾸로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걸 붙였습니다.
왜? 자기에게 무엇을 ‘받아라. 네가 취해라. 네가 얻어라. 네게 뭣이 더해지도록 유익되게 해라.’ 이렇게 말하면, 받는 것은 말하면 이것은 좋은 것인 줄 알고, 복된 것인 줄 알고, 유익된 것인 줄 알지마는 주는 것은 해가 되는 줄 압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생각해 주면 이것은 참 자기를 사랑하는 것인 줄 알고 유익되게 하는 것인 줄 알지마는 자기를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를 삣고 깎으면 이것은 해되는 줄 압니다. 삣고 깎는 그것은 해가 되지를 못합니다. 그로 인해서 자기는 좋아지요.
그러기에 근심이 기쁨보다 좋은 것은 왜 그러냐? 근심이 기쁨보다 좋은 것은 기쁨으로는 그 마음이 못쓰게 돼지지마는 근심으로 인해서는 그 마음이 좋아진다 말씀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이 꺼꾸로 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말을, 하나님에게 섬기라는 말을 이것을 ‘우리 손해보이는 말이다. 우리 손해가게 하는 말이다.
우리 해되게 하는 말이다.’ 이렇게 여겨지니까 그런 게 아니다 하는, 특별히 하나님의 자비로 가지고 너희를 권하는데 하나님의 자비한 말은, 자비의 말은 뭣이냐? 너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라. 뭘 바쳐 섬기라? 몸을 드려 섬기라.
몸 드리면 몸을 드리는데 그 소유 그까짓 것 드리기야 문제가 뭣입니까? 몸 드리는 건 소유 드리는 것보다 더 크지요. 몸을 드리라 말은 소유와 몸과 생명과 그 세 가지면 우리 다인데,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이라면 다인데 그중에 몸이 한가운데 들었습니다. 몸이 한가운데 들었어. 이래서 몸을 말하는 것은 소유와 생명을 다 드려서 섬기라 그말이오.
왜? 드려 섬기는 것이 무엇 때문에 그것이 자비가 되는고? 뭘 얻어야 되지. 이 섬기는 것이 이것이 왜 유익이 되는 고 하니 유익되는 이유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첫째 유익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지으시고 그 지어놓은 만물 중에 사람이 제일 거기에 으뜸이 가는 특수 창조물인데 천군 천사보다 위에 있는 위치를 가졌는데 만물을 지으실 때 만물이 다, 만물이 다 하나님에게 이미 자기 있는 것 가지고서 하나님 섬기면 또 하나님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더 주시고, 더 주시니까 더 섬기고, 더 섬기니까 더 섬기도록 더 많이 주시고, 이렇게 해서, 있는 것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것이 피조물의 하는 일이요 섬기는 자에게 섬길 수 있는 것을 더 주시고, 한번 섬기니까 이제는 더 주시고, 더 주신 것 가지고 다 가지고 섬기니까 하나님께서 더 많이 섬길수록 더 많이 주시고, 이렇게 해서 사람이 하나님 섬기도록 이렇게 지어놓은 것이 인간이 그만 하나님 앞에 축복은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았고 하나님과 끊겨져서 사망을 받았습니다.
사망 그 왜 받았습니까? 어쩌다가 사망을 받았습니까? 사망받은 이유를 여기 남반에 한번 말해 보십시오. 사망을 왜 받았지요? 예? 죄라고 자꾸만 그럴 것이 아니라, 사망을 왜 받았지? 순종하지 안함으로? 말씀을 어긴 것. 어? 하나님 섬김으로 살게 한 것이 하나님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섬겼습니다. 그것 아닙니까? 자기 섬겼소. 그것 가지고서 영원한 멸망입니다.
왜?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당신의 법칙이 자, 하나님이 지어놓으니까 지어놓은 요것 하나 지어놓으니 요것이 하나님 버려버리고 제가 제 위해서 사는 것으로 다부랭이 떠나가 버립니다. 그러면 그것이 지어놓은 그것이, 한번 지음받은 그것이 뭣 먹고, 살며 뭣 가지고 보존하며, 뭣 가지고 존재 유지하겠습니까? 없는 가운데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에게 계속 받아야 그게 유지가 됩니다.
받아야 유지될 것이 이것이 하나님 섬기지 안하고 제가 저 섬겼으면 하나님과 그 사이가 끊어지지 안했습니까? 끊어지니까 그건 영원히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없는 가운데 하나님이 짓지 아니하면 있는 것이 없고 전부 하나님께 지음받아 있는 것이고, 지음받아 있는 것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되고, 우리가 하나님께 지음받아 놨습니다. 이 시간부터 하나님께 지음받았지마는 하나님에게 다시 계속해서 받지 안한다 합시다.
공기를 안 받으면 그게 얼마나 유지가 되겠소, 이 광선을 받지 안하면 얼마나 유지가 되겠소, 하나님의 지으신 이 식물을 받지 안하면 얼마나 유지가 되겠소? 이것은 어떤 것은 아마 공기를 하나님에게 받지 안하면 이것은 한 몇 분 동안이면 그만 죽어버립니다. 몇 분 동안이면 죽고 나면은 그 다음부터는 뭣이 됩니까? 한 십 분 되면 속에 썩을 걸. 아마 숨 떨어진 지 십 분 되면 저 속에서 벌건 썩는 물이 나옵니다. 왜? 십 분 동안 하나님께서 공기를 넣어 자꾸 소생시키고 자꾸 이것 불을 때 가지고 소생을 시켜서 하지 안하면 이게 십 분만 나가도 그만 이게 속에 썩는다. 그 말이오. 잡아서 고기를 내놨으면 그게 십 분 동안에 썩지는 안하지마는 이 속에 기관이 그렇게 된 건 십 분만 거석하면 그만 썩어버려요. 얼마 동안 지내면 그것이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뭐 있습니까? 하나님이 지은 그 근원이 있어요. 우리를 지으신 근원이 있어요. 지음 받은 우리가 또 하나님으로 계속 받아야 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등불을 켜놓은 그 불이 이것이, 이것이 보면 불이 가물가물 가물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름을 받아야 될 것이 기름을 받지 못하면 그 불이 제가 꺼지지 어쩔 것입니까? 불이 보니까, 불이 보니까 점점 커집니다. 커지면 보이지 아니하는 기름이 그에게 많이 보급된다. 그것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이 차차 차차 꺼져 들어갑니다. 꺼져 들어가면 ‘뒤에 보급되는 기름이 없구나.’ 그것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것 모양으로, 없는 가운데 생겨진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또 생겨진 것이 보존되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또 커 나가는 것도 순전히 하나님의 것 가지고 하나에 둘 보태니까 서이 되고, 서이에 둘 보태면 다섯 되고 자꾸 이래 많아져 간다 말이오. 하나님께 받는 것이 자꾸 많아지면 자꾸 많아집니다.
이래 가지고 물질로 받다가, 나중에는 진리 받다가, 영감 받다가 이래서 점점 신령한 것을 받으니까 이렇게 점점 커지고 많아진다 그거요. 이것은 하나님이 주는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게 뭣입니까? 하나님을 위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야 그것을 주지 하나님을 위하지 안하는 것을 자꾸 줘 가지고 커지면 하나님 대적이 커지겠소 작아지겠소? 대적이 커지지. 이러면 하나님과 대적이 되면은 그것 대적되면 완전자와 대적이 되면 그건 완전히 죄악인데 그 죄악을 키우려고 하나님이 두시겠습니까? 둘 수 없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런고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에게 더 받고 받아서 부요해지고 성장해지고 존귀해진다는 이 원리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게 진리요.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안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 하나님이 섬김을 받으면 당신이 우리가 섬기는 그것을 당신이 받습니다. 당신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섬겨야, 당신의 것이 우리에게 오면 벌써 더러워졌소. 우리가 하나님 섬긴다고 해도 완전자에게 가까이 가지도 못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게 뭣입니까? 하나님 섬긴다는 것이 당신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은혜 주신 그걸 가지고 하나님의 법도에 맞춰서 살 때에 그것을 하나님 섬긴다 이랍니다, 하나님 법도에 맞춰 살 때. 하나님 법도에 맞춰 사는 게 뭣입니까? 하나님이 은혜 주시니까 죄짓지 안하고 바로 산다 그말이오. 하나님 섬기는 게 뭣입니까? 인간 생각으로 하나님에게 바쳐 섬기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가져갑니까? 가져가지 않소. 내가 섬긴다는 그것이 하나님이 지어서 내어놓은 것이오. 내어놨는데 지어서 내어놓으신 그분이 그것을 인간에게 지어내 놓으면 그만치 더러워졌는데 그걸 당신이 거둬 가지고 가서 뭣하구로? 얼마든지 당신은 창조할 수 있는 분이신데.
그러기에 이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실 수 있게 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 섬긴다는 것이 그것이 은혜 주시니까 그것 가지고서 악을, 저 망할 짓을 하지 안하고, 그것 가지고 남 망치는 일을 하지 안하고, 그것 가지고서 하나님이 더 주실 수 있도록 인간으로서는 그래도 바로 쓰고 바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주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오. 그러기에 하나님을 섬기지 안하면 안 돼.
그러면 하나님 섬긴다고 자기가 뭘 드려서 섬긴다는 것이 그것이, 자, 우리가 하루 밤 새도록 하나님을 섬긴다고 기도를 합시다. 섬긴다고 기도하면 내 마음을 하나님께 가져가서 하나님이 내 마음을 내 정성을 받아 가지고 그것 뭐 하겠소? 완전자에게 내 정성이라 하는 그것은 완전자에게, 완전자가 금이라면 내 정성이라 하는 것은 똥과 같은 것이오. 이것 하나님께 받아 가지고 뭣 하겠소, 그 더러운 것 받아 가지고 하나님 밤새도록 섬긴다고 정성을 들인 그것이 완전자에게서 그 자기의 정신이 깨끗해지고 깨끗해지고 새로와지고 온전해지고 더 좋아지는 것이지 하나님께 드린 것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것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 이것이 자기가 하나님으로 인해서 더 깨끗해지는 방편이요, 더 좋아지는 방편이요, 하나님이 더 줘서 부강하게 되는 이 유일한 방편인데 이것을 사람들은 꺼꾸로 된 멸망받은 마귀 생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자기가 손해가는 것으로 잃는 것으로 이렇게 보여진다 그거요.
이러니까 무조건 섬겨봐라. 섬겨볼 때 이게 깨달아지는 것이지 인간이 어두워서 섬기기 전에 그걸 이해를 해서, 이해를 하고 분해를 해서 과연 깨달을 수 있는 심령은 그 심령은 밝은 심령입니다. 밝은 심령이지마는 인간이 그렇게 밝은 심령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섬겨보니까 깨달아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섬기는 그것이 예수 믿는 것이요 그것이 자기 유익되게 하는 것이요 복되게 하는 것이라. 왜 그러냐? 그 이유가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시은자시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오면 더러워지고 낡아지고 쇠해지고 없어집니다. 또 하나님에게서 와야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내게 와야 이것이 내게 있고 내게 오면, 하나님에게서 좋은 것이 내게 오면 더러워지고, 있는 것이 내게 오면 없어지고, 내게 오면 더러워지고 없어지고 자꾸 그럽니다. 그러니까 자꾸 새것이 와야 되겠소.
그것은 비유도 온전히 되는 것이 아니지마는 예를 들면은 여기 그릇에 저 생수 샘에서 물이 나와 가지고서 물이 나오면 이 논에는 마릅니다. 물이 나오니까 논에는 좀 있으니까 마르고 또 나와야 되고, 수원에서는 물이 나오고 자기 토지에서는 물이 말라져 버리고 나오고 말라지고 자꾸, 이것 마르는 것밖에 없어. 마르는 것밖에 못 해. 위에는 나오는 것만 하고. 이런 가운데 뭣 또 작용이 되고서 역사가 된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으면 깨끗한 걸 받아 가지고서 우리에게 오면 더러워집니다. 또 그게 없어집니다. 없어지면 또 새로 깨끗한 걸 또 받아야 되겠소. 양적으로도 받고 받아야 우리가 유지가 되고 또 결백면으로도 받고 받아야 이 결백이 유지가 됩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하나 받아 가지고 우리에게 둘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것 그것보다도 더 깨끗해지는 일이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는 유지가 되는 것이오. 당신에 새것 받아 가지고 낡아지는 그 가운데 우리가 유지가 되고 당신에게 많은 것 받아 가지고 이것이 소비되는 것으로서 유지가 된다 그말이오. 소비가 되는 것으로 우리 자체가 유지가 돼.
하나님의 그 양을 소비하는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하나님의 깨끗을 이것을 더럽히는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있다 말이오. 우리 자체라는 것이 유지가 됩니다. 그게 유지비입니다. 우리 자체 유지비라 말이오. 우리 자기의 자체 유지비라. 하나님께 받는 것 가지고 유지되는 유지비라.
이러기 때문에 드려야 되는 것이 이것이 우리에게 사는 길이고, 또 한 가지 법칙은 뭣이냐? 법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것은,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천사에게나 천군에게나 모든 불택자에게나 만물에게나 이 우주나 영계의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에게 우리로 하여금 주는 자의 위치에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는 자 위치에 살게 하신 것이오.
이래 가지고서 나로 말미암아 이 우주가 유익을 보고, 나로 인하여 인간이 유익을 보고, 나로 인해서 만물이 유익을 보고, 나로 인해서 천군 천사가 유익을 보고 이제 제일 말단에, 제일 말단에 천한 것이 나에게 유익보다가 조금 높은 것이 유익보고, 조금 더 높은 것에게 유익을 주고, 조금 더 높은 것에게 유익을 주고, 더 큰 것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 다음으로 인간 다음으로 최고의 것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자가 하나님 다음 위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 이것 때문에 지었소. 이러기 때문에 만물 가운데에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교회라, 그리스도인이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깨끗하시고 완전하시고 부요하신데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뭣 합니까?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뭣 합니까?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우리가 사용했으니까 받을 때만 못합니다. 받을 때만 못하요. 받을 때만 못한 그것을 나 아닌 다른 것에게 줍니다.
하나님에게 하나 받았으면 내가 하나에게 보태 가지고 둘을 만들어 가지고 다른 이에게 주는 줄 압니까? 내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 도수가 높은 도수의 것을 받아 가지고서 더 높은 도수로 강도로 다른 것에게 주는 줄 압니까? 아니오.
하나님에게 받은 그것을 내가 받아 가지고 다른 것에게 준다고 해도 그대로 받은 깨끗을 그대로 주기 어렵습니다, 못 줍니다. 받은 그것을 그대로 주지 못하고 반 더러워진 걸 줬으면 줬소. 백분지 구십구나 더러워지고 백분지 일이나 깨끗한 그것을 그대로 전달하기가 쉽다 말이오. 인간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영감 받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영감을 그대로 여러분들에게 전하지 못하요. 영감이 낡아지고 흐려진 뿌스러기를 주요. 내가 만일 이만치 받았으면 여러분들에게 요만치밖에 못 주요. 내가 하나님께 영감 받을 때에 이만치 깨끗한 것이라면 여러분들에게 전할 때는 요 십분지 일도 안 되는 영감의 깨끗한 그것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깨끗도 그렇소. 양도 그러합니다. 우리 인간이 만물에게 대해서 다 그러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근본 지으실 때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이, 이 손 들어 봐. 이? 이가 죽었어. 신앙이 죽었어.
이하고 친한 사람 손 들어 봐. 가서 전달해. 집사, 가서 말해.
오늘 아침에 이 불러 가지고 없다고 이 신앙이 죽었다고 야단치더라고 그래. 어제 중간반 반사로 임명했는데 뭣이야? 왜 씨는 뭣 때문에 인제 와, 또 오기를? 예배 다 드리고 난 다음에. 모르면 죽어! 멸망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께 드려 섬긴다는 것이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이 소유하는 게 아니야. 하나님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것은 근방에 가지를 못해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에게 위함을 받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 하나님에게 받는 것이요,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하나님의 것이 내게 밀려오게 하는 것이요, 내가 다른 사람을 깨끗게 하는 것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깨끗게 하게 하는 것이오.
수도관이, 수도관이 있는데 그 수도관 속에 있는 그 물이 저리 딴데로 나가야 뒤에 위에 수원지에 있는 물이 들어옵니까? 안 나가도 들어오는 수가 있습니까? 안 나가도 들어오는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봐요. 이 수도관에 있는 물이 저리 나가야 위에 수원지에 있는 물이 이리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봐. 이것이야, 이것. 우리는 마귀의 생각과 사망의 생각을 완전히 벗어나야 됩니다. 벗어야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뭣 하는 것입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내게서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로 이렇게 뽑혀 나가는 것은 뭣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들어오게 하는 것이오. “자비한 자는 자비함을 받을 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니라”(마5:7) 그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이 어리석어서 죽는 생각만 자꾸 하고 사는 것이오.
그런고로 회개하라는 것은 이것을 여기에서 방향을 돌아서라 말입니다. 돌아서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뭣 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높이게 하는 것이요, 높이게 하는 것. 있는 높음을, 있는 높음을 내어버리니까, 있는 높음을 자기가 겸손으로, 높음을 뭘로 합니까? 겸손하면 낮아지지. 있는 높음을 자기는 스스로 낮춰서, 낮추니까 높음이 없으니까 이것 높음만치 하나님께서 높음을 줘야 됩니다. 이게 사는 법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