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9 01:42
둘째 빛
1988. 08. 31. 수저녁
본문: 마 5:14-16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 자신은 빛이 못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이 참 빛이신데 우리는 그 빛을 세상에게 반사하여야 할 직책을 가진 빛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빛 자체가 아니고 빛을 세상에게 비취는 그 직책을 가지고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게 비추는 그 직책이 우리의 직책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한다 하는 말씀은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리 자기의 모든 생활을 은밀하게 하려고 해도 그것이 안 되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믿는 사람은 옳은 행위도 그 행위를 하나님이 드러나도록 역사해서 안 믿는 사람과 비교 못 할 만치 옳은 행위도 잘 드러나고 또 잘못된 행위도 하나님이 다 드러나게 하십니다.
불택자들, 안 믿는 사람들은 잘못된 행위를 한 그것을 얼마든지 숨겨 가루어 덮을 수 있습니다. 구변으로 덮을 수 있고 또 권세로도 덮을 수 있고 재물로도 덮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수단 방법으로 덮을 수가 있지마는 믿는 사람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잘못된 그 일은 덮지 못 합니다. 하나님 그것을 들추어 내서 기어코 들내게 됩니다.
산 위에 있는 동리가 높이 들려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숨길 수가 있느냐? 모든 사람 눈에 다 뜨인다, 보여진다 하는 것으로 비유한 것은 믿는 사람은 잘잘못의 모든 행위가 다 환하게 드러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아예 안 믿는 사람과 같이 잘못을 숨겨 가루어 덮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드러납니다.
그래서, 잘못 행위한 사람은 저렇게 하기 때문에 저렇게 망했다 하는 것으로서 잘못한 자를 하나님이 망치시는 예수님이라 하는 것을 증거하게 되고 또 잘 바로 산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저렇게 사는 사람에게 복을 주어서 잘되게 하신다 그렇게 그런 하나님으로 증거하게 됩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이 말 아래 놓고 엎어 버리면 등불이 안 보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안하고 등경 위에 등불 놔 가지고 환하게 온 집안 사람에게 비추는 거와같이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이 사람 저 사람 불러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시켜 가지고 예수님 믿게 만든 것은 잘났든지 못났든지 그 사람을 다 온 세상에게 환하게 보여서 증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에서 자기의 잘못된 행위를 숨길라고 하는 그런 생각은 아애 계획을 가지지 안해야 됩니다. 자기 잘못된 행위를 숨겨 덮으면 혹 숨겨 덮어지지 안할까 그런 어리석은 요행심을 가지지 안해야 되고 또 믿는 사람들이 옳은 행위 한 것은 뭐 모든 사람이 다 몰라도 언젠가 그 옳은 행위 한 거는 또 드러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옳은 행위를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몰라주는가 하는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고 또 믿는 사람이 자기가 잘못된 행위라도 수단 있게 덮으면 그것이 가루어지리라 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는 그 제 목으로 다섯 주일 가르쳤습니까? 넷 주일? 다섯 주일 아니고? 다섯 주일이지? 다섯 주일 가르쳤지? 다섯 주일 가르쳤습니다. 이제 오늘 저녁 이 말씀은 또 여섯 주일째 오는 주일날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 알고 잘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공과에 기록한 그 공과 본문을 네 주일이나 계속 읽고 따라 읽고 이라기 때문에 벌써 학생들 머리에는 다 외워져 가지고 있습니다. 다 외워져 있습니다.
그랬는데 이제 외워져 있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뜻을 가르치는 그 주해를 해도 될 것이기 때문에 지난 주일은 첫째 빛에 대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그랬는데 첫째 빛에 대해서 증거를 했는데 제가 증거하는 그 부장들의 통반 증거를 들을 때에 어떤 반에서는 그 증거하는 것이 좀 분명치를 못하고 좀 흐려졌습니다.
첫째 빛 둘째 빛 셋째 빛으로 이렇게 나누어서 증거를 했는데 첫째 빛은 자체에 대한 빛이요, 자체가 빛이 되어지는 자체에 대한 빛이요, 자체 빛, 자기 자체의 빛, 또 오늘 저녁에 증거할라고 하는 둘째 빛은 가정의 빛 곧 사회 빛입니다. 사회 빛. 자체의 빛, 둘째는 사회의 빛, 셋째는 모든 소유에 대한 그 빛으로 그렇게 해서 공부를 나누어 했습니다.
자체 빛은 지난 주일날 가르친 것이 우리 사람들이 할 일이 세 가지 하면,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를 하면 곧 하나님을 경외해 섬기는 것도 되고 그렇게 이 세 가지를 우리가 하면 하나님께서 세 가지 해 주시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우리 사람이 세 가지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세 가지 일을 해 주십니다. 자체 온전과 또 자기의 모든 행위 온전과 자기의 소유 온전이 되어진다 하는 그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것이 셋이요 그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실 것이 셋 이라.
그런데 사람들은 다 꺼꾸로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은 제가 할라고 날뛰고 제가 할 일은 자기가 할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가 할 일이요 그라면 하나님은 우리 자체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 자기의 모든 움직임의 활동이 온전한 활동이 되어지는 것, 또 자기의 모든 소유가 다 온전해지는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지 사람은 못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사람이 할라고 달라들어 가지고 애를 쓰는고로 다 스스로 실패를 하고 맙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요 우리는 이 세 가지, 이 사죄, 칭의, 화친으로 하나님을 바로 높여 섬기는 이 일만 우리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세 가지 결과를 맺도록 해 주십니다.
이번에는 둘째 빛인데 둘째 빛은 곧 사회 빛이요 가정 빛입니다. 공과에는 자기 가정에서 부모를 잘 공경하고 또 서로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고 또 이웃을 제몸같이 사랑하는 이 세 가지를 둘째 빛으로 하라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곧 사회 빛입니다.
사회라는 것은 가정을 넓혀 놓은 것이요 또 가정이라는 것은 사회를 좁혀 놓은 것이요 사회의 종자를 가리켜서 가정이라 말하고 또 가정이 확대 번식됐을 때에 그것을 사회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다음 주일에 가르칠 거 오늘밤에 증거하는 것은 가정 빛이라, 사회 빛이라. 그러면, 가정은 사회의 종자 움싹이요 그것이 커지면 사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정이 바로 되지 안하면 그의 사회는 바로 되지를 안합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도 그 통계를 말하기를 '제가 평천하라' 자기 가정을 다스린 다음에 온 천하를 그렇게 그 평안하게 다스릴 수가 있다 그렇게 그 통계들을 말을 했습니다.
성경 출애굽기 20장 십계명 말해 놨는데 그 오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허락한 땅에서 네가 오래 살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십계명 중에 이계명과 오계명이 특별히 하나님의 약속이 거게 붙어 있습니다. 이 계명에도 천대까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이 붙어 있고 또 오계명에도 네가 거하는 그 땅에서 오래 살리라 하는 그런 약속이 붙어 있는 계명입니다. 일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계명이요 오계명은 부모를 섬기는 계명인데 일계명과 오계명이 같은 성질의 계명입니다. 일계명은 하나님에게 사은하는,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하는 계명이요 오계명은 부모에게 사은하는 사은의 계명입니다. 일계명과 오계명은 다 사은의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에게 효성하라, 그라면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산다 그말은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땅에서 그 족속이 자손 대대가 망하지 아니하고 흥왕한다 그말입니다. 개인의 수명이 긴 것도 긴 것이지마는서도 개인의 수명 긴 것보다도 그 가문이 그 가족이 또 그 크게 많아지면 인제 족속이 안 되겠습니까? 족속이 망하지 않고 계속 흥왕하고 축복 살이를 할 수가 있다 하는 그 말입니다.
제가 진주 성경학교 다닐 때에 김용구 목사라는 그 목사는 역사가면서 큰 학자입니다. 그래 그분이 오계명에 대해서 말하기를 세계에서 오계명 지키기를 중국 사람들이 제일 오계명을 잘 지키는데 이래서 중국이라는 그 나라는 유사 이래로 아직까지도 다른 민족에게 뺏기지를 안했고 언제든지 그 민족은 그 민족이 통치했지 다른 민족이 와 가지고서 빼앗아서 통치한 일이 없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약속하신 오계명 그대로 하나님이 지키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 이것은 사은의 계명이요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계명이요 또 자기의 근본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계명입니다. 나무가 아무리 무성해도 뿌리가 절단나면 그 나무는 다 말라 죽고 마는 거와 마찬가지로 부모를 공경하는 효성하는 이 일은 자기의 뿌럭지를 잘 가꾸어서 뿌럭지가 병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민족이든지 그 민족이 효성을 잘 지켜서 효성을 한다고 하면 그 민족의 뿌럭지가 생생하게 살아서 그 민족의, 뿌럭지가 병들지 아니하고 어떤 그 대적이 와서도 그 민족을 병들게 상하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개인 가정이나 좁으단한 그 사회나 또 민족이나 지방이나 세계나 그 모든 전부는 다 사은하는 데에서 그 자체가 다 잘 유지되고 흥왕된다 하는 말입니다. 사은에서.
이제 예를 들면은 만일 우리 나라가 망하지 안하고 흥왕해서 잘 될라고 하면은 효성을 해야 된다. 효성을 해야 된다. 뭐 지나간 모든 역사는 좀 내비두고 근경 역사를 말한다고 해도 이 나라가 잘될라면은 초대 대통령 이 대통령의 한 일을 잘한 일을 낱낱이 생각하면서 그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을 하는 박 대통령이 돼야 되고, 또 박 대통령 한 일을 사은하는 전 대통령이 돼야 되고, 또 전 대통령 한 일을 사은하는 노 대통령이 돼야 되고, 또 노 대통령 한 일을 그 다음 대통령이 사은하는 이 성격을 띠고 가지 안하면은 망한다. 요거 하나님의 선포한 법칙입니다.
물론 거기에서는 잘못된 시시비비가 있겠지마는서도 시시비비는 시시비비대로 그것은 가릴지라도 언제든지 그가 입었으면 없다는 근본이 거게서 나와 가지고 있다는 그것을 생각해서 사은하는 이 도리 사은하는 이 법칙을 지키면 망하지 안하고 그 단체든지 개인이든지 또 족속이든지 나라든지 전인류든지 무엇이든지 사은하는 여기에 망하지 아니하고 그것이 복받는, 보존되고 복받는 것은 사은에 있다 하는 것으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확정을 지워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역사를 나벼볼 때에 그런 것이 뭐 많이 있기 때문에 사은의 반대는 뭐이냐? 배은인데, 사은의 반대는 은혜를 배반하는 배은인데 배은하는 족속, 배은하는 가정, 배은하는 개인, 배은하는 그 민족 배은하는 나라, 배은하는 인류 그 배은은 망하는 것이요 사은은 하나님 앞에 축복받는 것이라 하는 것을 여게서 우리가 알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일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사람이라면은 하나님에게,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것은 뭐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에게 대접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은혜를 잘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 공경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사람은 부모도 잘 공경합니다. 또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공경할 수 있습니다. 벌써 그것을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은 하나님을 잘 공경하지 못합니다. 물론 사람이 깨닫지 못해서 불효했다가도 뒤에 그 사람이 회개해서 부모에게, 부모가 죽었으니까 효를 할래야 할 수도 없지마는서도 그래도 잘못한 걸 후회를 하고 부모에게 효성을 하는 것만치 그 사람은 하나님을 잘 공경할 수가 있지 부모에게 불효한 그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 못 합니다. 또 제가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기 자녀에게는 아주 효성하도록 할라고 애를 쓰나 그것은 벌써 뿌럭지가 병들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양산동에 우리가 밭을 우리가 이 교회서 거게 다른 사람이 터 사 가지고 집 지으면 안 되겠다 해서 그 밭을 우리 기도산 때문에 역부러 그것을 참 힘을 들여서 샀는데 비워 놓자니 그러니까 깨를 심었습니다. 깨를 심었는데 깨에 보니까 잘 됐는데 거게 밑에부터 까뭇까뭇한 무엇이 꺼먹점이 생기더니마는서도 그것이 들어 가지고서 그만 번져서 전부 다 헛일입니다. 그래 싹 베다가 저 개울 등천에다가 등천을 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자기가 사은하지 안했으면 벌써 그것이 제 뿌럭지 되어 있는 제가 병들어 있기 때문에 그 다음에 자녀에게 아무리 효를 하라고 어떻게 가르친다 할지라도 제가 효를 먼저 하기 전에는 그 자녀가 효를 하는 그런 자녀가 날 수가 없고 제가 사은하지 안하면 절대로 사은하는 그 후손은 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나는 우리 나라 요새 지금 이 O대통령에 대해서 뭐 굉장히 모는데 나는 그분을 내가 그분이 정치할 때는 내가 반대한 일이 많았어. 내가 그거 내가 보지도 안 했고 찬성 안 했습니다. 그래 나는 모든 원리를 생각할 때에 우리 나라를 생각하고 우리의 자손 대대를 생각하고 우리 나라에 이 정권을 생각한다고 하면은 정권들이 사은하는 일을 해야 될 터인데 사은하는 일을 이것을 망각하고 그전에 보니까 O대통령도 O대통령에 대한 사은의 성의가 모자라는 것을 내가 봤고 또 O대통령도 O대통령에 대한 사은의 그 모든 성의가 모자란 걸 봤고 또 지금 O대통령도 O대통령에 대해서 사은을 뭐 할래야 할 권리가 없는지 몰라도 그러하고 이런 것이 다 나라에 대해서는 흠이요 이게 좋은 현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면 오계명 잘 지키고 오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면 일계명을 잘 지키지 또 저는 일계명을 지키지는 안하고 난 다음에 다른 계명 암만 지켜봤자 그거 다 헛일입니다. 인인관계에서는 오계명을 지키지 안하고 그 다음 계명을 암만 지켜봤자 밑에 뿌럭지가 병들었기 때문에 결국은 다 병화되고 말고 희망은 없는 것입니다. 아주 이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부모를 통해 가지고서 온갖 은혜를 끼쳐 주셨는데, 뭐. 진 자리 마를 자리 갈아가면서 하나님이 그 부모를 통해서 나를 어떻게 애호해서 잘 보양한 그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이 이것이 첫째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 하나님이 오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기 때문에 이제 이 효를 하는 것, 하나님 생각하고 효를 하는 것이 이것이 그 효를 하는 기초입니다. 효를 하는 그 효의 씨종자요 바로 터전입니다.
뭐, 물론 부모니까 해야 된다는, 모든 단체마다 다 이거 효는 말하는 것이나 기독교의 효는 부자의 관계에서 효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셔 가지고서 효를 하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생각하고 효를 하고 하나님이 그 부모를 은혜 기관으로 삼아 가지고 부모를 통해서 자기에게 은혜 베푸신 그것을 생각하면서 효를 하는 것이 제일 첫째 효가 되는 것입니다. 또 둘밑 효는 효를 하면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산다. 오래 산다 이랬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또 효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효를 해야 합니다. 또 셋째로는 이 사은하는 이 절대적인 이거 윤리, 이 세상 입법을 초월한 이 윤리의 이 법도를 지키기 위해서 효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효를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둘째로는 효를 하고, 자기가 인류에 윤리 제도라는 이 제도를 자기가 지켜야 이 제도가 대대 손손이 쭉 퍼쳐 나가지 이것을 지키지 안하면, 제가 지키지 안하면 그 제도가 다 박살나 버리기 때문에 이제 모든 윤리 존재를 이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가 효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위해서 효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기에게 아주 은혜를 베풀고 사랑을 베푸신 그 은혜를 자기가 생각하면서 부모가 자기에게 어떻게 그래 은혜를 베푸셨는가 하는 그것을 생각하면 자연히, 젖도 먹이고 뭐 이런 저런 진자리 마른 자리 가려서 기르고 한 자기가 어렸을 때에 부모가 어떻게 했다는 그것을 추억해 가지고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모가 자기를 애껴서 사랑하고 자기를 뭐 아무리 잘못 길렀다 할지라도 그래도 그 애끼고 보호하고 사랑하고 한 그 부모가 자기를 어려서 사랑하고 애끼고 했다는 그것을 자기가 연상할 때에 자기가 어린 아이가 됩니다. 아주 자기가 어겋 아이가 돼 가지고서 어린 아이 자기를 부모가 잘 보양한 그것을 연상하게 될 때에 그것이 가장 자기를 젊게 만듭니다.
가장 자기를 젊게 만들고, 아주 아름답게 만들고 귀하게 만들어서 아주 자기를 애끼는 중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애끼는 건 다 자기를 애끼고 자기를 애낄 줄 알고 자기를 애끼지마는서도 자기를 암만 애낀다 해도 그 애끼는 것은 삐뚤어진 법칙으로 애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어렸을 때에 어떻게 기르셨느냐 그것을 연상하면서 애끼는 고 애낌이 자기를 진정 애껴지는 그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거는 해석으로 할 것이 아니라 해 보면 자기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중국에서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해서 이 머리털 하나 가죽 껍데기 하나도 다 부모에게 받은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나를 이렇게 애껴서 애중히 해서 기른 고것을 생각해서 부모가 자기를 애껴서 기른 그것을 생각해서 자기의 몸을 그래 아주 벌대로 취급하지 안하고 애껴서 취급해서 머리털 하나를 그것을 벌로 취급하지 안하고 이런 뭐 손톱 발톱도 벌로 취급하지 안하고 그렇게 부모가 자기를 어떻게 애꼈다는 그때의 고 현상 그것을 연상하면서 자기는 이렇게 부모가 애껴서 기른 자기라는 걸 생각하고 자기를 애끼기 시작할 때에 그때에 자기라는 것은 굉장히 바로 애껴지고 바로 소중히 여겨져서 그것을 바로 보양해서 그것이 아주 자기의 수명 장수에 대해서는 유일한 비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부모에게 이렇게 효성하는 것은 첫째는 나를 구속하신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이 불효를 없앴습니다. 또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효성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또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이 효성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그 은혜가 연결되도록 그렇게 예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이래서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신 것이 많지마는서도 첫째가 오계명 부모에 대한, 부모를 통해서 주님이 나를 나게 하셨고 나를 기르시고, 내게 온갖 은혜가 있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서 나에게 은혜 베푸시는 그 은혜가 제일 근본 씨종자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예수님의 대속도 소용이 없습니다. 대속이 소용없습니다. 제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해가 돼요? 예수님의 대속도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서 은혜 베풀어 주신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닫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은혜가 그 은혜 기관인 부모를 통해서 자기에게 미쳐 온 그것을 생각하고 또 그 은혜 기관이 자기를 기를 때에 어떻게 애지 중지 길렀다는 이것을 생각하는 데에서 비로소 인간의 근본을 한번 궁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을 궁구할 수 있습니다. 여게서 인간의 아주 근본의 밑바탕 뿌럭지를 자기가 한번 살펴봐 가지고 거게서 흠점 있는 것을 치료하고 거게서부터 바로 북돋아서 돼 나오는 그것은 든든하고 아무도 상울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은을 하는 사람은-이거 뭐 여러분들 듣기만 해 놓으십시오-사은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애끼는 사람입니다. 사은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애끼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사람들은 근본 난 것은 생각지 않고 내 팔 내 수족, 내 몸뚱이, 내 피, 내 살, 내 얼굴 이러니까 이것만 사랑할라고 애를 쓰는데 그것은 다 초절되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한다 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망쳐 버리고 맙니다.
그 근본인, 근본인 하나님이 나를 부모를 통해서 어떻게 나를 만들어서 땅위에 나게 했으며 내가 났을 때 어떤 존재인데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서 어떤 사랑과 보호 속에서 내가 보호를 입고 양육을 받아서 자라왔다는 그때에,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사람으로 나고 난 후, 나고 난 그 후 자기가 부모에게 가장 애지 중지, 아주 사랑하고 중하게 여겨서 애중한 고 토막을, 제일 중한 토막을 생각하는 것이 자기를 제일 애끼는 것이요 그것보다도 자기를 어머니 모태에서 자기를 어떻게 길렀다는 그것을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올 때에 자기는 아주 깨끗한 자기로 아름다운 자기로 얼마든지 자기는 잘 양육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자기로 발견해서 보호하지마는서도 이거 다 치워 버리고 중간에서 하는 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이래서, 이 효라는 것은 첫째는, 예수님이 뭣 때문에 죽었느냐? 죄 때문에 죽은 것은 이 인인관계는 제일 큰 것이 뭐이냐? 인인관계는 오계명이 제일 큽니다. 뭐 오만 죄가 있지마는서도 제일 인인관계에는 배은하는 그 죄가 제일 크고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도 배은하는 게 제일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우리는 이 배은하는 것 사은하지 않는 요게 죄인데 이 죄를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요 죄를 대신했습니다. 또 사은하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가지고서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의를 입혔는데 의 중에는 사은하는 것이 제일 큰 의입니다. 알겠습니까? 일계명은 사은의 계명이요 오계명도 사은의 계명이오. 다른 계명은 다 거게 속한 계명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구속을 생각하고 이 오계명을 지켜서 효성을 할 것, 둘째로는 하나님의 온갖 축복과 온갖 은혜는 이 사은하는 오계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온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바로 되지 안했기 때문에 자꾸 일을 해도 자꾸 헛일이 되고 맙니다.
제가 다니는 곳은 공동 묘지를 통과해 다니는데 사람들이 혹 자기 뭐 부모의 묘인지 혹은 형제의 묘인이 부부 묘인지 모르나 그 성묘하러 온다고서 옵니다.
묘에 성묘하러 오는 그 사람은 반드시 그때에 그 마음에 악이 없습니다. 악이 없고 그 인간다운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어떤 시장판이나 어데나 어떤 데를 가도 거게 가는 사람은 참 사람을 잊어버리고 다 가장 못쓸 사람이 돼 가지고 가지마는서도 성묘 가는 사람은 아무리 등신이라도 갈 때는 그때는 그 사람이 성묘 갈 그때는 그래도 성묘 가면서 그 부모를 생각하고 할 때는 자기 일생 동안에 제일 아름다운 시간이요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 인품이요 그 행위요 그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째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를 해야 되고, 둘째로는 '약속 있는 계명이라' 네가 효를 해야 네가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산다. 오래 산다 말은 뭐 오십 세 살 사람이 육십 세 살고 칠십 세 사는 그것도 물론 그 수명도 길지마는서도 고것만 단순히 말한 것이 아니고 거게서 네가 망하지 안하고 그 땅에서 망하지 안하고 그 땅에 주인공이 돼 가지고 네가 누리게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효를 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효를 하면은, 효를 하면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인데 하나님도 주고 싶은 걸 다 줄 수 있고 은혜의 기관인 부모도 주고 싶은 것을 다 줄 수 있고 또 밑에서도 질서 있게 그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을 다 받을라고 이라기 때문에 질서가 정연하기 때문에 거게는 얼마든지 축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소련에서 그때 소련 그 수상되는 사람들이, 내가 그 이름을 지금 뭐 다 잊어버렸는데. 그때에 꼭 삼대입니다. 삼대를 대로 그 권세를 잡았고 삼대가 계속됐습니다. 삼대 계속되고 난 다음에 완전히 공산주의는 다 깨지다시피 크게 권위 나갔는데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서도 그 후배를 기른다는 것이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후배를 길러야 된다는 그 아름다운 힘 있는 그 양육 제도는 끊어졌습니다. 그 뒤에 지금도 회복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부득이 자라기는 제맘대도 자랍니다. 자라기는 제맘대로 자라지 위에서 그거 애호해서 그 밑거름이 돼 가지고서 이렇게 기르는 일은 없습니다. 제맘대로 자라서 크니까 아예 좀 커지니까 미리부터 '저놈이 그중에 제일 큰 놈이니까 저놈이 나를 죽일 놈이로구나' 하고서 지금 적대시 해 가지고서 그라니까 그 자라는데 여러 가지 방해가 돼지지 유익이 되지를 안하는 것입니다. 그거 누가 역사에 기억합니까? 소련에 스탈린까지인가 삼대가 그래 나왔습니다. 기억합니까? O장로님 기억해요? 몰라요? 나이가 어리니까 모르는가? O장로님 알아요? 허허, 참. 녜, 그렇게 됐었습니다. 자기 수제자가 다 암살을 시켜서, 삼대는 그래 됐어.
이래서, 우리가 부모에게 효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가 입고 사는 것이요, 둘째로는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약속 있는 계명. 무슨 약속? 네 혈통과 네 자손 그것이 이 육의 사은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데 육의 사은에서 하나님이 땅위에 잘되게 하는 은혜를 주신다 요거 약속을 해 놨어. 그러니까 배은하는 데는 망하고 맙니다. 아무리 그 가정이 뭐 일시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벌써 효가 없는 가정이면 그거는 망합니다. 효가 없는 가정이면 망하고 또 효가 있는 가정이면 그 가정은 절대로 망치지를 못합니다.
저는 가정에 희망은 그 가정에 효가 있나 없나 그렇게 봅니다. 우리 교회서도 보면 아주 참 다른 사람에게 자랑을 할 만치 그렇게 효성스러운 그런 가족들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은 아주 뭐 망하고 희망 전혀 없다 하는데 자꾸 부흥이 돼져. 아주 흥왕하요. 그런데 이 권찰님들은 이런 것도 배워 가지고서 우리 구역에는 누가 효성이 있는데 그런 걸 봐서 효성 있는 그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아주 불효한 가정이 망한다는 그것을 똑똑히 알아 가지고 자꾸 증거를 해야 됩니다.
증거를 해서 미리 보인다 말이오. 네가 이렇게 불효하면 너거 망한다. 자꾸 이라고 난 다음에 뒤에 망하면 '봐라 망했다' 또 '네가 이렇게 아무리 이렇게 효성을 하면은 네가 괴롭고 피곤하고 이렇지마는서도 앞으로 하나님께서 너에게 축복을 한다' 나 저 지금 OOO씨 가정을 나는 좀 이상하게 봐요. 이상하게 보는데 그 가정이 뭐 대외 관계는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는데 어짜든지 그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성해. OOO씨가 그렇게 병환에 있어도 다 효성을 해요.
효성해 나는 저 가정이 뭐이 인제 앞으로 잘 될 거다 그래 보고 있는데 그 효성한 것들은 하나님 다 잘 믿어요. 이상합니다. 효성한 것들은 다 예수 잘 믿소, 효성한 것들은 예수 잘 믿는데 불효한 것들은 다 하나님께도 불효합니다.
이러니까 일계명이나 오계명이나 꼭 같은 계명이오. 하나님이 약속하기를 벌써 오계명을 지켜야 네 족속이, 네 가정이, 네 나라가 그것이 안 망하고 잘된다 이렇게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또, 그러고 셋째로는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계통이 그렇게 함으로 저와 자손의 이 윤리 계통이라는, 윤리 제도 윤리 법칙이라는 이것이 생생히 살아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이것은 큰 세력을 가진 것인데 이것 때문에 그 가정이 또 잘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
그래서, 우리는 어짜든지 효성하는 것이 이것이 빛입니다. 그래서 효성을 하는 데에는 조금 전에 말한 거와 같이 다 큰 사람이 뭐 나이가 늙어서 한 육십이나 칠십이나 된 사람이 그 사람이 자기 어머니 배 위에서 젖먹고 어머니 젖가슴에서 이래 하고 어머니가 자기 기른 거 그것을 연상해서 생각해 본다는 게 우스운 것 같지마는서도 그럴 때 연상해 생각할 때에 그것보다 자기를 더 애끼는 일이 없고, 애끼는 일 없고 자기를 젊게 하는 일 없고, 그보다 더 자기를 젊게 하는 일이 없고 애끼는 일이 없고 그보다 자기를 깊이 살펴서 자기를 사랑해 보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거게서 자기의 어릴 때에 부모가 자기를 어떻게 사랑했으며 부모에게 어떤 사랑을 받은 것이며 할 때에 이 수족이나 모든 전신은 이거는 애른애른한 갓난 참 아주 꽃 같은 어린 아이의 몸이 되어지고 이 몸은 아무나 따나 벌로 남용할 수가 없다. 너무 기르고 그때 소망하고 기른 그걸 생각할 때에 너무 더럽게 버려 놨기 때문에 아무짝도 못쓰게 버렸기 때문에 새로 씻어야 되겠다, 이거 목욕을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강보에 두더기에 싸인 그 어린 아이와 같은 자기 가 종종 되어져 가지고서 그 아이로 자기를 새롭게 하고 깨끗게 하는 것이 젊어지는 유일한 비결이요 그것이 장수하는 유일의 비결이요 또 자기의 모든 것을 애껴서 보호하는 비결입니다.
그게 원천인데 그렇지 안하고 다른 것으로써 뭐 약을 어떻게 하고 무슨 비결 쓰는 그런 것은 다 그 하나의 자살 행위지 아무 그거 해 가지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의 계통이 서지지를 아니합니다.
그러고, 그 다음으로 이제 효성하는 것은 자기가 부모를 생각하면서, 하나님도 자기가 어떤 사람되기를 원하지마는 부모도 자기가 어떤 사람되기를 원하는, 부모가 자기를 어떤 사람되기를 원한다는 것, 하나님이 어떤 사람되기를 원한다는 것 이것을 생각하면서 자기 부모 밑에 어린 아이가 돼 가지고서 생각할 그때에 사람은 성화가 되어지고 사람은 장수가 나오고 사람은 참된 그 가치와 평강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 자체를 애끼는 것이 효성입니다. 자기 자체를 애끼는 것, 이래서, 달리는, '내가 위생을 주의해야 되지 이거 뭐 이 잘못하면 안 되겠다' 그런 것 백 번 생각하는 것보다도 '내 부모가 나를 기를 때에 나는 어떤 자가 되기를 원하셨는데 내가 오늘 내가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느냐?' 부모가 자기를 기를 때 어떻게 원하셨다는 그것을 생각하면서 한번 생각하는 것이 자기가 다른 방편으로 백 번 천 번 생각하는 것보다도 자기는 더 성화돼지고 온전해지고 깨끗해지고 그 참 인간의 가치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의 몸만 그런 게 아니고, 그러기 때문에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은 부모에게 효성해서 삼 년 시무한다고 무덤에서 이렇게 가 하는 사람들은 횐죽 먹고 이래 가지고서, 이가 떨어져도 그걸 안 죽이고 이거 부모에게 받은 바의 이 살을 먹고 산 이인데 이 이를 애껴서 떨어지면 잡아 올리고 손톱도 깎지 안하고 그래 가지고 삼 년 시무를 하는 그것도 아주 폐풍으로 지내갔지마는서도 요새로 말하면 그런 것도 아주 그 속에 참 큰 능력의, 우리 능력의 자기를 기르는 아주 자기를 보호하는 애끼는 그런 큰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사람들이 다 모르고 지금 썩어져 버리고 말았어. 요새는 지금 그런 것 다 없고 뿌럭지 없이 지금, 마치 모가지 끊어 놓은 지금 닭이 막 뛰고 날뛰는 거와 같이 아무 생명의 근원이 없이 끊어져 가지고서 날뛰기 때문에 이거는 뭐 패망뿐이지 그 딴게 있을 것이 없습니다.
이래서, 그저 자기가 언행심사에 행동할 때에 나를 기른 부모를 생각하면서 '내가 이라면 부모가 어떻게 생각할까? 부모가 나를 기를 때 어떻게 길렀는데 내가 이렇게 하면 부모가 지금 여기 계신 날이면 어떻게 생각할까?' 부모를 생각하고 자기의 옳은 행실을 가질라고 할 때에 그때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효력을 오고, 또 하나님이 나를 대속 하시면서 대속하신 주님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걸 생각할 때에는 초인간의 효력이 오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고, 이제 그 다음에는 자기가 힘 있는 대로 부모를 도와서 뭐 이런 물질을 돕든지 무슨 또 자기의 무슨 봉사하는 노력으로 돕든지 이래 해서 부모에게 효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옛날은, 지금도 그런 집은 그래요. 자기가 어데 갈 때 꼭 간다 하고 가고 갔다오면은 또 갔다왔다 하고 갔다오면은 먼저 부모에게 가 가지고서 오늘 이렇고 이렇고 이런 무슨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고를 하고 하는 그것이 아주 그 어리석은 일 같지마는서도 거게서 가정이 돼. 거게서 큰 화를 면하는 수가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 보니까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면은, 자기 어머니는 노망을 해서 아무것도 모르요. 노망을 해서 벽에다 자꾸 똥을 눠 가지고 벽에다 자꾸 쳐바르는 그런 할마이라 말이오. 뭐 알겠소? 알아도 꼭 무슨 일을 하면은 '나는 노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노모님에게 가서 의논해서 허락을 받아야 되지 그전에는 안 된다' 꼭 그래 가지고 크고 작은 아주 사소한 일 아니면은 그 노모님에게 알려 가지고 노모님 허락을 받아 가지고서 이래 하는 그 집은 절대로 무너지지를 않습니다.
무너지지를 안해요. 뭐 그거야 너거 어머니가 뭐 어짜겠노? '하, 뭐 어머니야, 내가 하면 되지. 내가 하면 되지.' 그놈의 자식은 망합니다. 그놈의 자식은 천 명이고 만 명이고 망해요. 망합니다.
이러니 어데 갔다오면 늘 살피고 이래서 의논하고. 부모를 애끼는 것이 자기를 유일로 애끼는 것이오. 부모를 애끼는 것이 자손을 유일로 애끼는 것이오. 그것이, 내가 부모 애끼는 것을 자손들이 보면은 자손들이 그 본 뜨니까 그거 그만 자기가 어떤 복을 줘도 그 이상 복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교회서도 어짜든지 부모에게 효성하는 일을 합시다. 저도 효성을 못 했습니다. 효성을 뭐 그때 부모로서는 효성이 있다고 장 자랑을 하고 이래 했지마는서도 그거 그때는 효성할, 만한 아무 힘도 없고 이랬지만 지금 생각하면 뭐 후회되는 것뿐입니다. 후회되는 것뿐이오. 어짜든지 그때 또 효성에 대해서 그렇게 뭐 알지도 못했고 이랬는데 참 효성 못 한 것이 자녀에 대해서는 사랑치 못했다 하는 그런 것은 후회가 없어요. 자녀에 대해서 사랑치 못했다 후회가 없어도 부모에게 대해 효성 못 했다 하는 그런 후회는 많이 듭니다.
부모에게 대해서 효성 못 한 데 대해서 후회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다 우리가 다 후회될 것입니다. 어짜든지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서, 그래 내가 어떤 사람 보니까 그 어머니가 노망을 해 가지고서 우습지도 안하지마는서도 그래도 그 아들이 한다는 그 말 듣고 그놈의 집구석이 인제 하나님의 큰 축복 받는다. 뭐 벌써 그 축복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그러고 어짜든지 부모에게 우리가 효성해야 되겠습니다. 벌써 처녀들에게 결혼할라 하면 부모 모신다 하면은, 부모 모신다 하면은 부모라 하는 것도 아이구 부모 모시게 되면 안 된다고 꺼리는데 부모 안 모시는 그런 남자에게 시집가도록 딸새끼를 그렇게 기를라 하는 그 에미부터 망해야 돼요. 애비부터 망해야 돼요.
이거 시집 보내면 부모를 모시고 있어야 되니 부모를 모신다 하면 이거 고생스러운데. 그만 뛰뛰하게 여기고 이제 저거 단둘이 살고 부모 안 모신다 하면은 좋아하고 고놈의 심보를 가진 거는 에미 애비부터 망해야 된다 말이오.
고런 거는 왕창 불효를 당해서 고통을 당해야 마땅하요. 안 그렇소? 당해야 될 것 아닙니까? 어리석소.
부모를 봉양하는 그보다 더 맛있는 일은, 부모를 봉양하는 그보다도 재미있는 일 없어. 봉양해 보면 재미가 있고 기쁨이 그보다도 좋은 기쁨이 없어. 하나님이 기쁨을 줘요. 그래 봐요. 자기 부모를 기쁘게, 부모에게 효성을 해서 부모가 감사하면서 아이구 이렇게 너거 한다고 이렇게 감탄할 수 있는 그렇게 해 봐요.
하나님이 자기에 직접 뮐 주는가? 받는 증거가 있을 거라 그말이오.
그라고, 어짜든지 우리는 이 효성하는 것으로 빛을 보여야 되겠고, 또 형제 우애 있는 것으로 빛을 보여야 되겠습니다. 우리 가정은 형제의 우애가 이거 없어서 이거 너무 극단으로 돼 가지고 지금 얄궂게 이런데 하나님께서 언젠간가 이거 지금 한번 잘해 주리라 그렇게 소망은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좀 불하고 불하고 하니까 와닥닥 와닥닥 이래 쌓는데 어짜든지, 그래 내가 어떤 집에 가 봤어. 보니까 그 자기 부모네들은 그렇게 형제 우애 있구로 기르지를 못했는데 그 자녀들은 그게 포원이 돼 가지고 자녀들에게 형제 우애 있도록 길렀어. 길러 보니까. 기르는데 보니까 내가 보니까 이제 맏새끼 있고 그 다음 둘째 새끼 있고 셋째 새끼 있고 이런데-나는 새끼라 합니다. 새끼 그거. 이 새끼라 하니까 그거 좀 실감이 있고 좀 재미가 있어요-이런데 보니까 벌써 어릴 때부터 그 길러 놔서 제일 맏새끼는 그 둘밑 새끼가 어떤 무례한 일을 해도 다 감당하고 이해하고 참고 견디고 고 책임을 딱 지는 거 봤어. 고 어린 데도 고게 제일 맏새끼가 둘째 새끼 셋째 새끼를 책임지고 또 둘째 새끼도 저거 첫째 새끼한테는 뭐뭐 이렇게 마음대로 이래 해도 그 다음에 또 그 다음 셋째 새끼한테는 책임을 지고 이래서 어북 그 맏새끼 노릇을 하고 이 하는 것을 봤어 그러면 그런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벌써 안된 놈의 집구석은 맏새끼가 되면은 '내가 장자인데'해 가지고 장자 세도나 부리고 장자의 자세나 부리고 장자의 권리나 부리고 장자는 모두 다 위해 바치니까 위함이나 받고 하는 그놈의 집구석은 망합니다. 뭐 아무리 지금 천금 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망합니다. 그거 망해요, 그런 일 있으면 망하기 전에 어서 회개하라고요. 형이 동생을 책임지지 안하면 망해요, 그거는. 부모는 자녀를 책임지고 자녀는 형은 동생 책임지고 동생은 또 그 다음 동생 책임지고 이렇게 해서 이거, 이것이 내나 오계명이오 이래서, 형제 우애가 있도록 이렇게 기르는 거 참 우리는 벌로 살았어, 벌로 살았는데 어떤 뭐 젊은 사람들 보니까 어떻게 그 가정에 형제들이 그래 우애하는 것과 또 이렇게 부모에게 순종하는 거 이런 것을 가르치던지 뭐 가르치는 거 보니까 절대 복종이라. 절대 복종이고 그뭐 아무 그 사이 가리운 것이 하나도, 외식이 하나도 없어, 보니까 그라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하라는 이것, 우리가 이거 할 때에 평안이 옵니다. 평안은 어데서 오느냐 하면은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우리 믿는 사람은 꼭 사람노릇 하는 데에서 행복이 오지 사람노릇 하는 데에서는 뭐, 돈에서 행복이 안습니다. 돈에서 행복이 안 오고 돈에서 기쁨도 안 오고 돈에서 평강이 안 오요. 꼭 우리는 사람노릇 하는 데에서 행복도 오고 평안도 옵니다.
이러니까 그저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저 이웃 사랑하기를 내몸같이 할라고 이것을 자꾸 기도하면서 애를 써서, 이래 가지고 그 미운 사람이 없어야 그 사람이 행복되지 미운 사람이 있는 그 인간은 제가 아무리 웃고 뭐라고 쌓아도 미운 사람 있는 그 인간은 절대로 속에 평강은 없는 것입니다. 미운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이 다 사랑스럽다고 하면은 그 속에는 그 사랑이 없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그 사람에게 고통을 넣어 주지 못합니다. 폭탄을 넣어도 그 속에 안 들어가요.
그래서, 둘째 빛, 부모에게 효성하고 형제끼리 우애 있고 이웃을 제몸같이 사랑하는 이것을 둘째 빛으로 우리가 했는데 이것이 사회 빛입니다. 사회 빛.
이제 고게 대한 원리를 뭐 간단한 시간에 좀 말했으니까 어짜든지 앞으로는 우리는 그 부모 형제 이웃을 사랑하고 공경하고 질서 있게 그렇게 살도록 이것을 단정을 지웁시다. 단정을 지웁시다.
자, 그러면 우리가 다 후회돼요. 뭐 아까 우리 후회되는 사람 손 들라 하니까 다 들었는데 우리가 후회되는데 뭐 지금은 후회되면은 부모 죽으면 뭣 해? 부모가 죽었으니까, 부모가 죽었으니까 남의 부모도 내 부모요. 남의 부모에게 그와 같이 하면 그거 좀 포원이오. 어떤 사람은 효성을 못하고 그만 부모를 세상 뜨고 나니까 다른 부모를 모셔다가 그래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는 그런 사람 내가 많이 봤어. 그래도 마음에 위로가 되고 평강이 되는 거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