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9 01:41
둘째 빛
1988. 09. 04. 주새
본문: 마 5:14-16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번 공과에 둘째 빛을 가르치는 우리가 공과로 정했습니다. 그것은 가정에서 부모에게 효를 잘 하고 또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고 또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하는 이것이 곧 가정 교회의 빛이요 이것이 사회 교회의 빛이요 또 온 인류사회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과거 네 주일은 공과에 있는 본문을 먼저 읽고 또 부장이 읽을 때에 반사 보조반사 학생들이 따라 읽었고, 또 분반할 때에는 반사가 읽을 때에 보조반사 학생들이 따라 읽어서 그것을 기억했습니다. 모두 학생들이 거의 다 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주입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서 이 말씀이 그 속에 박혀지고 담겨지도록 그렇게 가르치는 방법을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와 이번 주는 그렇지 안하고 이미 학생들이 다 근본을 본문적으로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설명하는 것이니까, 해석을 해 주는 것이니까 얼마든지 개별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효하는 데 대해서 효를 효도라고도 하고 효행이라고도 하고 하는데 효도라 말은 효하는 도덕이라 말이고 효행이라 말은 효를 행한다는 말입니다.
이런데 '효' 하면 됩니다. 효도 효(孝)자 효.
요새 보니까 나한테 누가 사탕을 사 왔는데 그 사탕을 내가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효(孝)자를 써 놓은 효 사탕이라 이래 가지고서 그래 '효' 자 써 놓은 사탕을 사 가지고 옵디다. 그거 효라는 그것을 아마 사람들이 기억해서 이 노인들 대접하는 데는 효 사탕을 사다 드려야 된다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라. 그것도 누가 안을 냈는가 그 아마 사탕 장사가 돈을 상당히 벌었을 것입니다.
효에 대해서 전 어느 시간 증거한 일이 있으니까 거게서 여러분들이 생각나는 대로 깨달은 대로 가르칠 것이오.
그런데, 효를 하는 것은 첫째가 하나님이 명령하셨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직접 공경하는 것 있고 또 간접으로 공경하는 것 있는데 이 효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계명 중에 직접 계명이 됩니다. 그래서 일계명은 하나님 공경하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첫계명은 부모 공경하라 이렇게 효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다른 이종교에나 이방에서도 효라 하는 이 효는 다 하라고 권면했고 가르쳤습니다. 효를 하라는 효를 장려 안 하는 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이 부모가 내게 대해서 큰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으니까 사은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모에게 효도해라 하는 그 효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뿌럭지가 거게 있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오계명은 우리가 효하는 것이 하나님이 당신이 명령하신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효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에 내게 대해서 제일 첫 은혜 베푼 것이 부모를 통해서 나에게 은혜 베푸신 것이 은혜의 첫 순서입니다. 또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효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동양 도덕에는 군사부이랍니다. 임금을 제일 먼저 섬기고 그 다음에는 자기 선생님을 섬기고 셋째는 그 부모를 섬긴다 이라지마는 기독교에는 그게 아니고 첫째 부모 섬기고 그 다음에 자기 선생을 섬기고 그 다음으로 이제 임금을 섬기라 하는 이것이 순서가 정반대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효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또 그분이 이 효하는 것을 당신 대접하는 것으로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효를 하고, 또 셋째로는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온갖 축복을 주셔서 자기가 사는 그 본토에서 망하지를 아니합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나라에서 망하지 안하고 밑바탕이 되도록 그렇게 흥성하고 축복받고, 또 미국 사람이면은 미국 그 자기 본토에서 거게서 자기가 망하지 안하고 길이 살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만 그것만 되면은 축복 중에는 제일되는 축복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에게 큰 축복을 받는 일이 되기 때문에 효를 해야 됩니다.
또,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이요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그것이 효 중에 큰 효인데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형제끼리 서로 우애 있고 사랑하면 부모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 부모를 공경을 하기는 하면서도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치 안하고 시기 질투하는 그런 것은 어떤 그 공경을 한다 할 때도 부모는 절대로 그에게 그 효행스러운 아름다움을 대접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애 있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하는 것, 이것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요 이것이 인류를 아끼는 것이니 자기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럴 때에 모든 인간은 자기에게 아주 평안한 보금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보금자리가 뭐인지 아십니까? 보금자리가 뭐이 보금자리지요? 자기가 새들도 짐승들도 보금자리라 하는 것은 그게 제일 좋아하고 뛰놀고 자기 좋아하는 그곳이 보금자리입니다.
자기가 그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들간에 우애 있고 또 이웃을 제몸같이 사랑하는 그것은 자기가 가장 평안하고 기쁘고 즐거운 그 세계에서 사는 그 세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를 마련하는 것이오. 먼저 자기에게 모든 두려움이 없어지고 다 평안과 기쁨이 생겨지고 또 모든 존재들이 자기를 다 협조하고 응원하는 그 응원하는 자기편 속에서 사는 것이 이것이 오계명을 지키는 방법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제일 네가 평안한 보금자리, 자유 있는 보금자리, 모든 것이 너만 자꾸 사랑하고 위해서 위해 주고 너를 사랑하고 마치 자녀가 없다가서 자녀를 하나 낳아 놓으면 그 가정에 그거 뭐 보배 덩어리로 여겨서 온 가족이 다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사랑, 전 인류에게서 그와 같은 사랑, 하나님에게서 그와 같은 사랑 또 만물에게 포근한 그 사랑, 자기의 가장 행복된 보금자리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부모 공경하고 형제 우애 있고 또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하는 이 방법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그저 다른 말하면 복잡하니까 부모를 잘 공경해서 효도하는 것 부모를 잘 공경하는 것, 또 형제끼리 서로 우애 있고 사랑하는 것, 또 이웃을 제몸같이 사랑하는 것 이것인데, 내가 그런 말을 며칠 전에 들었습니다. 어떤 집이 아주 그 집에 아 들들은 많이 있지마는서도 부모를 모실라 하는 집이 없어서 이랬는데 그 어떤 막낭 아들이 하나 그 부모를 모시게 됐다고서, 모시게 됐는데 부모를 떡 모시고 오니까 그 부모가 아파서 똥오줌을 이래 받아내는데 이 손자 손녀들이 그저 할머니가 조금 '아이' '어데 뭐 소변하실랍니까 용변하실랍니까' 하면서 서로 그 똥오줌을 받아 낼라고서 애를 쓰고 서로 먼저 할라고 애를 쓰는 그런 것을 자기 부모네들이 보고 이거는 참 상상도 못할 일인데 놀랄 일을 만났다고서, 봤다고 이라면서 그렇게 기뻐하고 자랑을 하더랍니다. 그것이 위에서 바로 돼지니까 이제 그게 바로 축복입니다.
그것이 자식을 암만 낳아서 뭐 고관대작이 돼 봤자, 그거 아주 큰 재벌가가 돼 봤자, 또 어떤 권력가가 돼 봤자, 대학자가 돼 봤자 그까짓 거 부모 모르고 형제 모르고 하면 뭣합니까? 그거 짐승이지. 그거 기르는 것은 맹수라.
내가 어떤 사람 봤어요. 장관이라요. 장관인데 그뭐 공부도 많이 해서 일본서 동경제대도 나오고 아주 뭐 이렇게 공부 많이 한 사람이라. 장관인데 그 가정에서 전부 저만 알고 이렇지 형제끼리나 부모끼리나 우애도 없고 효도 없어. 그러니까 그 사람은 그 가정에 맹수라. 그 가정에서 그 사람은 하나도 좋아하지 안하고 다 맹수라. 벌벌벌벌 떨고 맹수라. 맹수고, 또 사회서도 벌써 그걸 알기 때문에 아주 깔봅니다. '저놈의 집구석은 망할놈의 집구석이라. 저거는 참 저렇게 저거는 참 저렇게 저런 인간이라.' 겉어머리로 어허 이 좋아해도 속으로는 맹수 취급하니까 맹수를 누가 돕겠소? 맹수는 도울 자가 없어.
사람들이 어린 아이는 아무 아이라도 만나면 다 좋아하고 쓰다듬어 주고 손을 대고 싶고 좋아한다는 거, 그게 뭐이냐 하면은 그 속에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올바른 인간노릇을 하기 때문에 죄를 안 짓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죄 없으면 그래.
그래 나는 요번에 어제 세상 떠난 이복순 집사님을 내가 보고서 느낀 것은 '참 사람이 저래 살아야 되는데' 보니까 그 속에 악이 하나도 없어. 사람들은 말할 때마다 속에 깨갱이가 있어. 그게 이 미련해서, 깨갱이 있는 그것이 자기를 좀 나타내고 자기를 알아 주도록 하고 자기의 무기고 자기의 권위고 자기의 위엄인데 그 말할 때에 속에 더러운 깨갱이가 없는 사람이 별로이 없다 그말이오.
없는데 그분에게는 깨갱이가 하나 없어. 깨갱이가 하나도 없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해 속에 악이 하나도 없어. 자기 중심인 자기 위주인 그런 게 하나도 없어 그 내가 놀란 것은 '뭐 이런 것도 하나님께 -내가-기도하십시오' 이라니까 말하기를 '저는 뭐 내가 뭣이든지 그렇게 구하지는 아니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좋은 거 주실 터인데 그 내가 뭐 이리저리 구한다는 것이 도리어 무지해서 낭파 세우지 뭐 그거 좋을 게 뭐 있겠습니까? 당신 주시는 대로 받는 것이 제일 좋은 줄 알기 때문에 뭘 이래 주십시요 저래 주십시요 아프니까 좀 안 아프게 해 주십시오. 뭐 고통스러우니 고통을 없게 해 주십시오, 뭐 어째 해 주십시오 이렇게 않고 그저 내가 당신을 믿고 바라보고 모든 것 맡겨 놓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그거 외에 딴것이 없는 걸 알았습니다.' 그분이 그래요.
그래 또 자기, 구역 어떤 식구가 하나 와 가지고서 말하기를 '그렇게 기뻐하고' 사람이 죽음이 제일 고통입니다. 죽음이 제일 고통이오. 아파서 안 찡그리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그 죽음이 제일 고통인데 고통스러운 그 고통이 열흘 동안 계속하는데, 그뭐 아무것도 안 먹으면, 사람이라는 건 속이 안 먹으면 바로 썩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침으로 아무것도 안 먹으면 다 모가지에 다 썩는 내음이 나옵니다.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모가지 입에 대고 맡으면 속에서 똥내가 나와요. 그 썩는 내가 나와요. 그 뭐이든지 좀 마시면, 물이라도 마시면 안 그렇고.
이런데, 자꾸 썩는 것인데, 산소가 안 들어가면 썩고 또 이게 식물이 안 들어가면 썩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고통은 굉장해. 그라면 죽는 거라. 최고의 고통이 죽음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이 그렇게 오는데도 그 모두 요번에 본 사람들은 죽음을 그렇게 겁을 냈는데 죽음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안하고 죽음이 그렇게 기쁘고 즐겁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느꼈어. 죽음이 고통 아닌 것이 아니오.
그러니까 그 죽음의 고통 그것을 누르고 밟고 일어설 수 있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감사와 기쁨이 그 위에 넘쳤어.
이러니까, 그 일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안해요. 이게 또 장이 암인데 장암인데 장이라 하는 이것은 굉장히 아픈 것입니다. 이래서 식중독이 되면은 사람 못 견뎌요. 식중독이 되면 그만 막 온 방을 구불러요. 매고. 그거 누가 식중독 앓은 사람 봤어요? 앓아 봤어요? 나 한번 앓아 봤어. 여기 처음에 여기 서부교회 와 가지고. 그런데 마구 못 견디겠어. 뭐 막 뭐 어짤 줄을 모르고 그저 매서 온 네 구석을 매고 돌아다녀야 돼요. 이런데 그거는 일부 거석이지 마는 그거 몇 배 되는 고통인데 그런 고통에, 그 고통이 안면에 나오지 안하고 감사와 기쁨과 소망과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넘쳐서 그것밖에 없어. 그저 말 한 마디도 하는 걸 볼 때에 그거뿐이라.
그래 그 구역 식구가 와 가지고서 '하, 집사님은 그렇게 밤이면 그저 하루 종일 일하고도 비가 오든지 눈이 오든지 산에 가 가지고서 하룻밤도 빠지지 안하고 그렇게 그 첩첩산중에 높은 만당에 가 가지고 혼자 그렇게 기도하고 하는 것이 이런 기쁨을 맛볼라고 그랬다.' 옆에 그래 말하니까 그래 말하기를 '기쁨을 맛봐? 맛봐?' 이라더래. '맛봐? 맛봐? 영원한 기쁨이야. 이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갈 자가 없어.' 그라면서 또 누가 오면 '이 기쁜 걸' 참 좋아 그러니까 '기쁜 것이 부러워? 부러우면 됐어. 이 기쁨은 곧 주님의 기쁨이요 내 기쁨이요 여러분들의 기쁨이라. 어짜든지 기쁨을 원하면 돼요. 이것은 다 평소에 또 노력해야 되지 노력 없이는 기쁠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평소에 자기가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신 것이라고. 그 말에 어떻게 많이 깨달아지는지! 하늘나라 가서 영생하면은 이 세상에 행한 그대로 가지고 하늘나라 살터이니까 하늘나라는 기쁜 나라니까 찡그리는 그런 거는 없어요. 그 사람에게 찡그린 거는 다 제해버리니까 이제 짚동 같은 사람이 이거저거 다 하늘나라의 본질 본성에 맞지 않는 것은 다 그것은 유황불 구렁텅이로 끊어서 다 찍어버리니까 나중에 짚동 같은 사람이 똑 비교하면은 요 빈대 새끼만하게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인간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갓난 아이만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참 훌륭하고 큰 것도 있고, 비유컨대 말이지 그렇다 그거요. 이러니까 세상에서 행한 대로라.
그래 그 죽음을 초월한 그런 감사와 기쁨과 이웃을 생각하는 그거 있어. 모두 말하기를, 너무 기운이 없으니까 사람을 접하지 말라고서 이라니까 '아니, 내가 할 일이 이거기 때문에 내가 숨 있는 동안까지는 내가 형제에게 이 기쁨을 나눠줘야 되고 형제에게 다문 얼마라도 내가 말씀을 전하고 가야 된다.' 하면서 얼마든지 오는 대로 한번도 찡그리지 안하고 자꾸 오라 하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그렇게 끝까지 기쁨을 보여 주고 감사를 보여 주고 하늘나라의 이 영광의 자리를 보여 줬습니다. 이라면서 그저 내가 앞서 가면은 다, 가 있다가서 오면은 뒤에 내가 마중 나올께.' 이라고 그뭐.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하늘나라 것이 환하게 그렇게 보여져. 그런 것도 다 그것을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그런 것을 많이 노력하는 가운데에 그게 되어진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은 부모에게 효하고 형제끼리 우애 있고 또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데 요 세 가지를 가르칠 때에 세 가지를 생각하면서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자기가 만일 그렇게 하지 못했으면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후회하는 느끼는 후회하는 그 감동의 마음을 가지고 가르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그것을 참 진정 소원하는 감동의 마음으로 가르치든지 또 자기가 그와같이 지금 했으면 반드시 거게 경험하고 체험한 게 있을 것입니다.
경험하고 체험한 게 있어서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부모에게 효하고 형제에게 우애하고 이웃을 제몸같이 사랑했으면 그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던가? 주님이 기뻐하신 그 기뻐하심을 자기가 맛봤을 것이라. 주님이 내 행위에 기뻐하시는 것을 맛봤을 것이고 주님이 기뻐하심으로써 그 기쁨을 자기에게 나눠줘서 자기가 뭐 세상에 돈이나 일이나 모든 그런 것이 형통하는 가운데에서 얻었던 기쁨, 또 혈육의 뭐로 얻었던 기쁨 그런 기쁨이 아닌 그 깨끗하고 참 맑고 수정같이 깨끗한 기쁨 그 기쁨을 자기가 맛봤든지, 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그 포근한 자리, 아주 말할 수 없는 평안한 그 자리. 참 그래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사랑의 온전함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세 가지. 자기가 그 후회의 느끼는 마음, 후회의 감동이 자기에게 있어 가지고 가르치든지 간절한 소원의 감동이 있어 가지고 가르치든지 참 자기가 실지로 경험하고 체험해서 몸으로 경험했든지 자기가 마음으로 경험했든지 모든 행사에 하나님이, 그와같이 하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부모에게 효하고 형제에게 우애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난 다음에 무슨 일이 형통해서 하나님이 '분명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 나를 도우신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마치 '겨울 깡깡 얼어 붙은데 하, 이 해동된 것 같네.' 해동이라 말은 봄바람이 뜨뜻하게 불어오면 모든 만물이 다 움이 트고 새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이 인간 생활할 때에 자기에게 경험이 있어서 '하나님이 모든 면에 나를 도우신다, 내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 내 마음이 한없이 포근하고 기쁘고 평안하다.
소망이 든든해진다.' 자기가 실지로 행해서 경험하고 체험한 그걸 가지고서 가르치든지 그리 안 하면 자기가 행해 보지는 못해도 진정 이제 소원을 가지는 그 소원의 안타까움을 가지고서 가르치든지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 내가 그와같이 하지 못한 데 대해서 후회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가르치든지 요 속에 마음이 있으니 요 마음과 입술과 같이 가르쳐야만 알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 아까 그 아이 보고 내가 그말 했어. 그거 참, 내가 죄가 제일 많다. 이거 네 주일을 효를 가르쳤는데 제이가 효인데 그 아이들에게 효력이 있어서 벌써 그러니까 할머니 똥오줌을 먼저 받아 낼라고서 자꾸 야단을 지기니까 이렇게 이 가르침은 바로 될 수 있고 깨끗하게 될 수 있는 좋은 재료들인데 이 목사가 이 교훈을 잘못해 가지고서 이런 참 의를 분발하지 못하도록, 아름다운 빛의 행위를 분발하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이 그거 목사의 게을에 있다 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가르치면 둘째 빛을 가르칠 때에 반드시 그 효험이 있어서 그 사람. 가르친 그 반사 선생님이나 부장이나 그 학생이나 그 자체들이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서광의 빛을 볼 것입니다. 빛을 봐서 광명의 세계를 만날 것입니다. 광명의 세계의 맛을 봐요.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요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평안하고 포근한 보금자리를 차지하는 것이고, 자기를 위하는 악이 속에 붙어 있을 때 그것이 암병같이 그 사람에게 가장 고통을 주고 멸망을 취하는 그 원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번에는 둘째 빛에 대해서 이제 이것은 본문대로 외워 주기도 하고 또 자기 생각나는 대로 어짜든지, 그 생각나는 대로가 뭐이냐 하면은 후회의 느낌이 있든지 소원의 느낌이 있든지 또 자기의 경험과 체험의 느낌이 있든지 뭐이 있어야 입술을 말할 때 그 알맹이가 있는 것이지 그거 없이 입으로만 말하면 안 되니까 그걸 가지고서 가르치도록 그렇게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