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9 01:35
두려워할 것 몇가지
1987. 12. 8. 새벽 (화)
본문: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에 두려워할 것, 우리가 두려워해야 될 몇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여야 할 몇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는 주를 보지 못하는 이 두려움, 주를 보지 못하는 두려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하고 여러 방면으로 힘쓴다 할지라도 주님 못 만나면 우리 한 일은 다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 야곱이 신앙 생활을, 전력을 기울여서 신앙 생활을 했지마는 얍복강 넘어서 에서로 더불어 그 화평함을 가지지 못했다면 야곱의 그 생애는 다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왜? 그로 더불어 불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해결 안 되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야곱이 얍복강 이편에서 산 생활과 심히 죽을 만치 어려운 그런 불화였지마는 얍복강을 건너서 에서로 더불어 참 두렵기를 심히 두려워했지마는 거게 대해서 많은 기도하고 노력해 가지고서 화평을 가졌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참 그로 더불어 특별히, 뭐 물질 축복 그런 하나님은 만났지마는 자기의 구원의 성결한, 성결케 하는 주님은 그후에 만나서 얍복강을 건넌 후에는 야곱이 후회할 것이 없는 그런 생애 걸음을 걸었습니다.
만일 그때 그걸 걷지 안했으면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을 것이요 야곱은 거게서 또,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다고 말씀하신 그 말씀은 이루어지지도 안할 것이고 또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으면 주를 보지 못한다는 이 일도 그들에게는 해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창세기 45장에 요셉이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됐지만 그후에 자기 형제들 온 그것이 그로 하여금 큰 시험이었는데 그 최고의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시험이었는데 자기로 더불어 과거 경력을 생각하면 그 참 뭐 원수 중에 원수지 자기 생명을 없애려고 하는 그런 도모가 여러 차례 있었으니까 원수 중에 원수라고 할 수 있지만 그때에 그 원한을 품고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하는 이것을 그가 실행하지 못했더라면 주를 만나지 못합니다.
요셉이가 모든 정치하는 것은 그것은 다 주님을 만나서 주님과 동행하는 그 지능을 가지고서 행정했는데 주님 만나지 못하면 그는 자기 모든 가는 길은 실패할 것이고 또 주님 만나지 못하면 애굽에서 견디지 못하고 그는 자기도 죽고 자기의 족속도 다 거게서 전멸을 당할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애굽에서 많은 공적을 베푼 지 그후에도 마지막에 그들이 이스라엘 족속을 씨종을 다 멸하려고 그렇게 계획을 가지고 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과 같이 하심으로써의 그런 초인간의 모든 귀한 행정을 했지 그렇지 않으면 그 행정은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곧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는 이것을 우리가 그냥 그저 ‘하나님 말씀은 원 이렇게 엄격하게 한다. 우리와 탁월해 있다.’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것도 여러 층어리요 여러 계단이 되는데, 어쨌건 이 화평함과 거룩함이 있어야 주 만난다는 요것을 깊이 생각하면 단계적으로 항상 그러합니다.
여게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다는 것은 그 화평이 이루어지고 싶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화평보다 앞에 있는 그 전제가 있으니 그것이 곧 자기를 깨끗게 하는 회개입니다. 깨끗한 그 회개가 이루어지는 그 나무에는 필연적으로 화평이 이루어지고 화평이 이루어진 그 나무에는 거룩이 이루어집니다.
이 화평이라는 이것은 세상에 화평이 많지만 그런 화평이 아니고 하나님을 중심한 화평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구속을 중심해서 구속적인 화평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자신을 먼저 깨끗게 해 가지고서 자기가 흠없이 된 것만치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이라 하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이지, 자신을 깨끗게 하는 회개의 나무가 없는 데에는 이 화평은 이루어질 수 없고 또 거룩은 더욱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우리가 심히 두려워하고 항상 이런 일이 없도록 내게 불화나 불결한 것이 있어 가지고서 하나님을 못 만날까 주님을 만나지 못할까 하는 이 두려움이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하겠고 다음에는 또, 자기에게 대해서 두려움이 있고 다음에는,
15절에 “너희는 서로 돌아보아 가지고서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그러면 자신이 주님 못 만날까 두려워하는 이 두려움을 항상 가져야 되겠고 또 자기 밖에 다른 사람들을 서로 돌아보아서, 이 돌아본다는 이것은 서로 돌본다는 뜻만 가지고 있지 안해. 돌본다는 것 서로 이래 두루두루 살펴본다는 그 뜻만 있는 게 아니고 속 깊은 속에는 자기가 앞서 가면서, 앞서 가야 된다는 그런 뜻이 여게 그 깊은 속에 알맹이로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에 자기가 미치지 못할까,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다 말은 이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취득, 취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종류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들의 힘으로 가지고서 취득할 수 있는 그런 이 자연 수평선 이하에 있는 것들이 있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고 초인간의 순전히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런 아주 인간을 탁월한 고차원의 그런 은혜도 있습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데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하는 그런 모든 것도, 자기가 노동해 가지고 농사 지어서 추수하는 것도 그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지만 그런 것들은 다 없어질 것이고 다 썩어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여게 하나님의 은혜라 말하는 것은 썩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고 낡아지지 안하고 하는 완전한 것, 영원한 것, 불변한 것 그런 것들을 특수 은혜를 가리켜서 여기 은혜라 말하는데 사람들이 아무리 밥 잘먹고 옷 잘입고 뭐 모든 것이 풍성하게 산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 특수 은혜, 타지 안하고 없어지지 안하고 변하지 안할 수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 생명과 평강 영원에 속한 이 은혜를 받는 그 접선이, 그 은혜를 받는 하나님과의 관계 맺는 이 관계를 맺지 못한 그런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는 것 요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못 만날까 두려워하는 요 두려움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이 은혜를 받는, 그 신인 관계를 맺지 못한 그런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고,
“또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이 쓴뿌리라는 이것은 사람이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의 것만 생각하고 땅의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이렇게 참, 지난밤에 ○○목사님 설교하는 데 보니까 그저 주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우리가 가질 이 소망만 두고서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 이 쓴뿌리라 하는 것은 주님에게 소망 두는 소망이 아니고 땅에 있는 모든 세상 소망 또, 뭐 세상 소망이라. 물질이나 육체나 뭐 땅에 있는 소망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쓴뿌리가 나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세상 염려, 모든 물질 염려, 육체 염려, 땅에 속한 그런 것을 소망하고 그런 데 대해서 욕망을 품고 하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다 주님에게 맡겨놓고 자기 생각 없이 이래 살아버리면 그런 것 염려 없는 것인데 그것을 자기가 하려고 이러니까 항상 “돈을 탐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부하려 하는 자마다 자기를 깊은 그 함정에 빠뜨리게 된다” 하는 말씀과 꼭 같이, 이래서, 내 자신이 먼저 되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쓸데 없는 헛된 욕망을 가지고서 자기가 괴로움당하고 또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 이 다시 말하면 자꾸 교회가 속화돼 나가는 것, 속화돼 나가는 것, 쓴뿌리가 난다 그말은 세상 소용 없는 우리가 가지지 안해야 될 그런 모든 욕망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폐단되는 모든 죄악의 역사 그것을 가리켜서 여게 쓴뿌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공연히 그것 염려해야 되는 게 아닌데 세상주의 물질주의 육체주의 그런 것 때문에 자꾸 사람들이 괴로워지고, 그러면 한 사람만 괴로워지는 게 아니라 그것이 또 자꾸 전염병 모양으로 퍼져나가서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지는 것, 그러면 교인 자기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세상주의 육신주의 이것 때문에 공연히 자기를 더럽히고 또 더럽히고 난 다음에 괴로워지고 이것이 자꾸 번져 물들어 나 가지고서 모든 사람들이 더러움 있는 거게 대해서 우리는 두려움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올바른 욕망을 가지지 안하고 자기가 가져야 될 그런 욕망은 성령의 소욕은 가지지 안하고 육체의 소욕을 가지고서 자꾸 이렇게 속화돼 나가고 타락돼 나가는 그것을 두려워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16절에 “음행하는 자와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기업을 판 에서와 같은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이 음행하는 자라 말은 하나를 예를 들어서 말한 것이지 음행이나 도적질이나 뭐 살인이나 미워하는 것이나 탐심이나 거짓말이나 이런 모든 죄악을 다 하나 대표해 들어서 음행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에 사람이 이런 죄나 저런 죄나 형제들이 범죄하는, 범죄하는 그 일에 대해서 내가 두려워하는 그런 사람이, 그 범죄에 대해서 참 두려워하는 사람,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범죄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을 가지는 우리가 되어져야만 합니다.
또 에서와 같이 한 그릇 식물에 자기의 참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인 장자의 명분을 판 것과 같이 이 세상 잠깐 있다가 없어질 정함이 없는 그런 모든 세상 것 그것을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 기업의 시기를 놓치고, 우리는 참 영원한 것을 소망하고 있는데 이것을 돌아보지 안하고서 그저 오늘 없어질지 내일 없어질지 모르는, 분명히 없어질 것이고 그 또 없어지는 기간이 빠르련지 더디련지 모르는 그런 데다 자꾸 욕망을 두고 사는 그런 생활 하는 사람을 우리가 보고서 형제를 보고서 두려워하는 것, 두려워하는 건 제가 빠질까 두려워하는 것도 있어야 되겠고 그 사람이 그와같이 지금 자살하는 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마음에 안타까와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또 두려워할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후에 축복의 기업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면 이 기회라 하는 것은 자꾸 지나가는 것인데 자신도 그럴 뿐 아니라 자신을 돌아봐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하는 거게서 자신을 단속하는 것이고 자신을 단속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이런 모든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데, 그 두려움 중에는 사람들이 자꾸 그 세월은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인데 자꾸 기회를 아까운 줄 모르고 이 기회를 자꾸 놓치고 있으니 그렇게 놓치게 하는 그 모든 것이 그 사람의 그 심신이 발표는 합니다.
겉어머리 나타내기는 그 사람의 마음이 나타내고 그 사람의 몸이 나타내고 심신이 그 행동을 나타내고 있지마는 우리는 그 심신에게다 책임을 지워서 그를 상대하다 보면 원망도 하게도 되고 미워하게도 되고 서로 대적하게도 이래 되지만 그 심신 그것이 하는 게 아니라 그 심신은, 그것 죽는 행위인데. 심신은 죽는 행위인데 자살하는 행위를 할 리가 없는데 그 심신이 하는 것이 아니고 심신이 어리석어서 악습 그놈에게 붙들려 가지고서 그와같이 하고 있습니다.
악습이라 하는 그것이 본죄인데 자기가 자기 중심으로 한 행동 그것이 한 번 하고 두 번 하면 그것이 자꾸 습관이 되고 그 버릇이 돼서 연습이 돼서 자꾸 그런 것이 심해지는 것인데 악습 그놈이 들어서 자꾸 그 사람을 과거에 한번 그런 일 했기 때문에 또 도둑질 하고 과거에, 또 거짓말 했기 때문에 또 거짓말 하고, 과거에 안 된 취미를 누렸기 때문에 또 서로 만나 가지고 그런 저러니 논인장단 하면서 취미를 누리고 자꾸 이렇게 한다 그말이오.
그러면 악습 그놈이 그러고 또 그 속에는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하는 것,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것이 들어서 그와같이 하는 것이고, 그 속에 보면 악령 그놈이 거석하는 것인데, 그러면 악령이나 악성이나 악습 그것이 옛사람이라고 하는 자기인데, 그건 자기 아닌 것이 그것을 똑 잡아떼서 탈색하듯이 그것을 완전히 수술하듯이 끊어서 악령과 자기 중심의 인간의 본성과, 타락의 본성과 또 악습인 자기 중심의 모든 행동 그런 것은 떼 버릴 수가 있습니다.
떼버려 보면, 떼버려 보면 심신은 하나도 상하지 안하고 그놈만 떼 버리면 심신은 아주 더 깨끗해지기 때문에 심신이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입술로 그런 말을 하고 수족으로 그 행동을 하고 하지만 그 심신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심신에 대항해서 책임을 지우지 말고 그 심신은 지금 그 위에 그를 사로잡고 있는 그 사람이 악습에게 사로잡혀 가지고 그와같이 하고 있고, 악성에게 사로잡혀 가지고 그와 같이 하고 있고, 악령에게 사로잡혀 가지고서 그와같이 하기 때문에 우리가 싸우고 대적할 것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 그놈으로 더불어 싸워서 그놈에게서 그 형제의 심신을 구출해 가지고 거게서 해방시키는 그것이 우리 일이기 때문에 그와같이 지금 멸망 가운데 빠져가는 그런,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행위, 또 쓴뿌리가 나 그런 것, 이런 죄 저런 죄 죄를 지어서 그런 것, 또 에서와 같이 잠깐 있는,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 무한한 것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인, 우리는 이 세상에 오늘 없어질지 모르는 정함이 없는 모든 땅의 것 그것을 인해서 영원을 팔고 있는 이런 망령된 이런 행위 하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하면서, 두려워하는 건 뭣 때문에 두려워하느냐? 범죄하는 그것으로 인해서 그 심신이 망하고 있고 그런 하나님 아들들의 좋은 기회를 다 놓쳐버리고 있기 때문에, 무지한 심신이 멸망받고 있기 때문에 그 멸망받는 그 일에 대해서 무지한 그 심신이 악령 악성 악습에게 붙들려 가지고서 그렇게 자기 자살하는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안타깝고 또 그런 데 대해서 우리는 두려워해서 거게서 어떻게 하든지 건져내지 못함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 그런 데 자꾸 빠져들어가는 데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 이런 그 두려움이 있는 것이 우리의 성도의 행위입니다.
여게 이런 두려움이 없으면 그것은 주를 보지 못한 증거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런데 주를 만나면 만난 증거는 뭘로 나오느냐? 주를 만난 그 증거는, 다 뭐 각각 모두 자기는 굴에서 만났다, 산에서 만났다, 또 어데서 만났다, 어떻게 만났다 이렇게 말하지만 기독교는 전부 필연성입니다.
주를 만났으면 주를 만난 그 필연성으로 맺어지는 그 결과는 모든 사람을 제몸같이 여겨서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것, 이 은혜에 이르지 못한다 말은 이것은 일반 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안할 것을 거두는데, 썩지 안할 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여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또 공연한 이 쓴뿌리 때문에 그 괴로움당하고 있는 것, 괴로움 당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심신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데 괴로움 당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책임을 지울 게 아니라 그게 악령 악성 악습에게 꼬여 가지고서 그와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놈에게 대해서 분개를 하고서 “내가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하지 않는다. 내 몸을 탈환할라는 데 대해서 이것이 나의 전투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 두려움이 우리에게 맺어지고, 이 망령된 자, 자기를 더럽히는 자, 모든 쓴뿌리 나는 자, 그래서 하나님 아들들의 귀한 기회를 자꾸 잃어버리는 자, 자꾸 귀한 기회를 이렇게 가면 다시는 그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데 이런 기회를 뭐 척척 이와같이 자꾸 뺏기고 있는 이런 데 대해서 마음에 우리가 안타깝고 두려운 이것이 있는 것이 주를 만난 증거요 또 주님을 만나는 그것은 회개한 증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하는 이것이 신앙 생활에 단계를 말하는데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랬는데, 회개는 천국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는, 회개라 하는 것은 자기의 모든 잘못된 것을 주님의 이 대속과 관련을 맺어 가지고서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 회개인데 자기를 깨끗게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그 시금석 그 표현은 뭘로 나타나느냐? 자기를 깨끗게 하고 안 했는 그 표현은 화평으로 나타나고, 화평이 됐나 안 됐나 하는 그 표현은 거룩으로 나타나고, 자기가 아무리 거룩하려고 해도 이 순서대로 해야 되지 순서가 되지 안하면 안 됩니다.
또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면 만난 그 증거는,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하라” 그말은 다른 사람의, 우리 구원은 육체의 구원입니다. 우리 구원은 육체의 구원이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자기 구원같이 그렇게 여겨지고 동일시되는, 이것을 가리켜서 요새는 단일 교회라 모두 이렇게 말하는데 너무 말이 쉬워서 자꾸 이래 그만 지나가 버리고 마는데 다른 사람의 구원이 자기 구원으로 여겨지는 그 결과가 맺어지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만난 증거라 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많이 명상하고 자기가 또 실천 생활을 하면서 거게서 깨달아진 것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자기 맡은 학생들의 명단을 상고해라, 매일 그것을 살펴 봐라. 그것 살피면 돈벌이 된다 하는 그 말까지 내가 했는데, 자기가 맡은 학생들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을 하다 보면 자기 하는 모든 생애가 다 형통해진다 그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염려할 때에 자신이 깨끗해지고,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은 주실 수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성화돼 간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