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자유

 

1988. 10. 26. 밤(수)

 

본문:갈라디아서 5장 13절∼15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형제들아」 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총칭해서 형제들아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자유를 위해서 부르심을 우리가 입었습니다. 부르심이라 말은 예수님 믿게 된 것을 가리켜서 부르심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택함이 있고 부르심이 있는데 부르심으로 우리가 중생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유를 위해서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 택하기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영원 전 택함을 받았지마는서도 우리가 하나님에게 부름을 받아 가지고 예수님 믿기 시작한 것은 자기가 나고 난 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래서, “부르심을 받았다” 중생시켜 예수 믿게 했다 그말이오. 중생시켜 예수 믿게 했다. 그러면 뭐할라고 예수 믿게 만들었느냐? 무엇을 할라고 예수 믿게 만들었느냐, 하나님이? 예수 믿게 만든 이유는 자유를 위해서 예수님 믿게 만들었다 그말입니다. 자유를 위해서 예수님 믿게 만들었다. 자유하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 믿게 만들었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에 대해서 잘못 깨닫는 데에서 폐단들이 많이 생깁니다. 자유는 크게 분류하면 산 자유 죽은 자유, 산 자유 죽은 자유, 죽은 자유는 점점 그 자유로 인해서 죽어가고 산 자유는 그 자유로 인해서 점점 자라가게 됩니다. 이 자유라면 자유라는 이것이 뭐이 자유인가 하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자유하기 위해서 예수님 믿게 만들었다 이라니까 이 자유를 잘못 알고 자유하면은 전부 멸망받습니다.

이러니까 이 자유를 바로 알고 자유해야 되는데 자유는 어떤 게 자유인고 하니 다른 것에게 강제나 억제나 당하지 아니하고 제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사는 그것이 자유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참 기묘합니다. 자유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데 우리를 예수님 믿도록 만든 것은 자유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 믿게 된 것은 자유할라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런데, 이 자유에 대해서 올바른 정의를 별로이 말해 준 데가 없습니다. 여게서는 암만 말해야 그뭐 말해도 모르면 무조건 이단이라고나 정죄하고서 내나 믿고 따라오던 자도 그만 이단이라고 뒷걸음치고 귀신하고 합작해 가지고 자기 구원 절단내는 그런 망령이나 부리지 바로 배울 그런 생각을 가지지를 안해요.

이러니까 좀 성경을 읽고 자기가 성경에 대해서 연구를 한 사람이라면 ‘자유를 위해서 부름을 입었다. 그러면 이 자유는 어떻게 하는 게 자유냐?’ 이걸 좀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말해 주면 그만 알아 듣고 잘 알 터인데 자기 속에 마음에 심긴 도, 자기 속에 이 자유에 대해서 자유에 대한 그 깨달음이 자기 속에 있으면 그 사람은 이 자유를 말하면 아멘 하고서 받아 들입니다. 그 속에 이 자유에 대한 진리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 말을 해도 들리지 안하고 그저 예사롭게 들려지고 또 무슨 말을 하는가 하고서 그렇게 마음에 단 맛을, 가미를, 단 맛을 모르고 그렇게 듣습니다.

벌써 그 영이 그 혼에게, 영이 그 마음에게 와 가지고 이 도리를 증거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지금 영이 그 마음에 들어올래야 들어오지를 못하고 지금 바깥에 쫓겨나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영이 그 마음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은 깨닫지마는서도 영이 마음 밖에 있고 마음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은 이 말씀을 들어도 잘 모릅니다.

이래서, 마음에 심긴 도라 그렇게 요새 양성원 학생들에게는 그 말씀을 가르쳤는데 “마음에 심긴 도를 네가 온유함으로 받아라” 이렇게 하는 말씀에서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벌써 그 사람에게 이 도가 들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도의 말씀을 들으면 딱 알아 들리고 도가 그 속에 없는 사람은 암만 들어도 안 들립니다.

안 들리면, 안 들려도 그 말씀을 한번 들었으면 그 속에 벌써 이 도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속에 점령을 해서 그 속에 생겨집니다. 마치 여자가 암만 그래 쌓아도 남자의 그 정충이 들어가 버렸으면 벌써 그거는 임신이 되고 그만 그게 속에 전체를 주장합니다. 이거 모양으로 하나님의 도는 권세가 있어서 이래 한번 들으면 그 사람이 처음 들을 때에는 반대를 해도 한 번 듣고 두 번 들으면 벌써 그 속에 이미 심긴 도로 인해서 그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깨닫고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도리를 들을 때에 이해가 되어지고 아멘이 되면 그 사람 속에는 벌써 이 도가 내재해 가지고 있는 증거입니다. 내재해 있는 증거고 말씀을 들어도 무슨 말씀인지 전혀 깨달아지지 않는 것은 그 속에 이 도가 들어 있지 않는 증거인데 안 들어 있는 사람은 이제 이 말씀을 한 번 듣고 두 번 들으면 이 도가 그 속에 내주해 있기 때문에 뒤에 들으면 깨달아서 알게 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로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그런데, 이 자유는 제 하고 싶은 대로 제 마음대로 하는 게 자유인데 여게 있는 자유는 어떤 자유냐 하면, 요거 좀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입니까 우리 속에 사람이 둘입니까? 한 사람이요 두 사람이요? 두 사람 있습니다, 두 사람.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 있소. 새사람도 있고 옛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도 그렇소. 자유도 새사람의 자유도 있고 옛사람의 자유도 있고 자유가 둘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자유는 어떤 자유인고 하니 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대로, 놀고 싶은 대로, 취하고 싶은 대로,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것이 자유입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의 자유는 무슨 자유인고 하니 전부 우리로 말하면 옛사람의 자유입니다, 옛사람의 자유.

그 옛사람을 가리켜서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육신의 사람이라 그렇게 말했고 또 겉사람이라 말했고 옛사람이라 말했습니다. 옛사람이라 말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옛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옛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까?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옛사람이라고 말하지 안 믿는 사람에게는 옛사람이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는 사람 하나뿐이오. 하나뿐인데 그 사람은 무슨 사람이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 사람 하나뿐입니다.

이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새사람이 생겨졌으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 새사람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게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그러면 자유를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다 자유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제 마음대로 하는 게 자유인데 여게 자유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옛사람도 있고 새사람도 있고 두 사람이 있는데 옛사람은 악령, 자기 중심의 영이 악령이요 악성은 자기 중심의 인간성이 악성이요 악습은 자기 중심으로 행동한 버릇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여게 자유는, 자유는 둘이 있는데 여게 있는 이 자유를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 하는 이 자유는 무슨 자유인고 하니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의 자유입니다, 새사람의 자유. 그러면 새사람의 자유는, 이 새사람은 어떻게 살아난 사람인가? 진리로 살아난 사람이요 영감으로 살아난 사람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살아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의 성질이나 마음이나 소원이나 그 모든 것은 다 이 중생한 새사람, 이 새사람의 성질은 어떠한가? 새사람의 성질은 진리가 새사람의 성질이요, 새사람의 마음은 진리가 새사람의 마음이요, 새사람의 욕심은 진리가 새사람의 욕심이요, 또 새사람의 소원은 진리가 소원이요, 또 새사람의 그 취미는 뭐인가? 진리가 새사람의 취미요, 이 새사람은 이것이 새사람입니다. 여러분들 새사람이 뭐인지 뭐 만일 오랫 동안 수십 년 예수 믿은 부흥사노릇 한 그런 사람에게도 가서 물으면 새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이래 말하면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그러면 새사람의 성질은 뭐입니까? 새사람의 성질은 진리가 새사람의 성질이요, 또 새사람의 마음은 뭐입니까? 진리와 영감이 새사람의 마음이요, 또 새사람의 욕심은 뭐입니까? 진리와 영감 예수님의 피요, 욕심. 또 새사람의 그 본능은 뭐입니까? 새사람의 본능은 진리와 영감 예수님의 피공로 이것이 새사람의 본능입니다, 새사람의 본능.

그러니까, 새사람이 좋아하는 취미는 뭐이겠습니까? 내나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요, 이러니까 여러분들도 아마 새사람이 속에서 작용하는 것도 더러 봤지마는 새사람을 잘 모르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새사람은 이게 새사람이오.

또 옛사람의 소원도 있고 욕심도 있고 성품도 있고 뜻도 있고 취미도 있으니까 옛사람은 어떤 욕심을 가졌습니까? 옛사람은 악령의 욕심을 가졌소 악성의 욕심을 가졌소 악습의 욕심을 가졌소.

악이 뭐인데? 악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입니다. 옛사람이라 하는 옛사람은 전부 욕심도 자기 중심의 욕심이요 자기 위주의 욕심이요 또 자기 성품의 욕심이요 자기 뜻의 소원이요 전부 자기 것입니다. 자기 뜻, 자기 소원, 자기 욕심, 자기 성질, 자기 마음, 자기 취미, 자기 뜻 이것은 다 옛사람의 것입니다, 옛사람의 것.

또 새사람의 것은 어떤 게 새사람의 것인가 하면은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인데 이 진리 영감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 이거는 누구의 것입니까? 이거는 누구의 것이요? 새사람의 것인데 새사람도 가지고 있는데 이거는 누구의 것을 새사람이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 이래서,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강이요 육체의 소욕은 사망이라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새사람, 이제 안 믿는 사람들은 새사람이 없어요.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내나 그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은 사망 아래에 있는, 우리로 말하면 옛사람, 옛사람 그것뿐이지 새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부터 새사람이 됐는고 하니 중생되는 그때부터 새사람이 됐고 또 새사람이 된 원인은 언제 됐느냐 하면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받을 때 그때부터 이제 시발된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 새사람 옛사람 이걸 알아야 될 터인데, 새사람 옛사람 이것을 알아야 예수 믿는 사람이 뭣을 일을 할 터인데 새사람 옛사람을 모르면은 예수 믿는 일이 다 실패되고 맙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돈을 욕심을 냅니다. 돈을 욕심을 내면은 돈 욕심내는 것은 옛사람의 욕심입니까 새사람의 욕심입니까? 그거 참 문제입니다. 옛사람의 욕심일 수도 있고 새사람의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돈만 욕심내는 그것은 옛사람의 욕심입니다. 이 돈을 가지고 내 구원을 잘 이루고 인간 구원을 이루는 데에 요게 쓰기 위해서 이게 없으면 내 구원도 남의 구원도 이루지를 못하고 지금 이 토큰 없으면 학생들 데리러 가지도 못하지, 또 내가 지금 차비 없으면 오십 리나 칠십 리나 되는데 교회에 차타고 오지도 못하지 이러니까 이 주일날 차타는 것은 그거는 거석한 일이지마는서도 자가용 같으면 ‘이거 아무래도 내가 주일날 예배보러 가는 데에는 이거 차를 하나 사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차를 샀습니다. 차를 샀는데 그 차 살 욕심을 가졌으면 그것은 옛사람의 욕심인데 차를 사는 것이 주일 잘 지키고 예수를 잘 믿기 위해서 차를 샀습니다. 샀으면 그거는 누구 욕심입니까? 새사람의 욕심입니다. 그러면 사람 보기에 그 사람은 차 산 거 보면 옛사람의 욕심 같지마는서도 그것이 속에 알맹이 들어가 보니까 새사람의 욕심으로 차도 살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이 구원 이루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뭐 과학에, 과학자도 될라고 하면은 힘이 드는데 그 과학자가 돼 가지고 자, 과학자가 돼서 무슨 과학자라고 할까? 나는 많은 걸 몰라서, 그러면 쉽게, 의사라는 과학자가 된다고 합시다. 의사 과학자가 되면 보배입니다. 그것도 의사 과학자가 됐으면 과학자의 그 효력이 얼마나 가느냐 하면 그거는 세상에서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런 것도 할라 하면은 몇 해 걸리요? 국민학교 육 년, 또 중고등학교 육 년, 그러면 십이 년. 또 의대 졸업할라면 또 사 년, 십육 년. 또 전문의 딸라면 또 이 년 그라면 얼마라? 십팔 년. 십팔 년을 머리를 싸짜매고 비오든지 춥든지 뭐 눈오든지 무릅쓰고 이렇게 해서 이제 그것을 얻는 것인데 그 얻어 봐야 그렇게 효력이 찍해야 한 사오십 년 있거나 뭐 오륙십 년, 오륙십 년 못 있어요. 공부할라 하면 한 삼십 세 되니까 오십 년만 있을라 해도 팔십 세 되는데 팔십 세 되면은 잘 못 해요.

여기 저, 무슨? ○○○안과라고서 그 ct4“““이라고 그전에 나이 많은 이가 그이가 ○○인가 그런데 한 팔십됐는데 내가 한번 병원에 갔어요. 병원에 가니까 병원은 유명한데 이분이 뭐 손도 떨리고 눈이 어두우니까 못 해요. 그래 그 백내장을 내가 물으러 갔는데 그 막 주 내놔요. 내놨는데 이런 병에, 백내장 그거 빼내 가지고서 모아 놓은 것이 뭐 이런 병으로 여러 병이라요. 내가 이렇게 수술했습니다 이래 내놓는데 그래도 지금은 수술을 못 해요 그만, 나이가 많아서 인제 못 해 먹어.

그래 그런 것도 알라고 하면 힘이 드는데 영원 무궁토록 우리에게 구원이 되는 참 영원 무궁한 이 구원을 이거 바로 성공할라 하면은 얼마나 힘이 들 건데 사람들은 그것만치도 힘을 안 들입니다. 그것은 그래도 몇 해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줄 알지마는서도 예수 믿는 것 이거는 잘 믿고 바로 배워 가지고 옳게 믿을라 하는 여게 대해서는 가치를 그렇게 두지를 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여서 예수를 믿을라고 하지를 안 해요. 그것을 우리가 고쳐야 되겠습니다.

오늘밤에도 인제, 옛사람 새사람. 그러면 옛사람으로 사는 생활은 논을 사도 헛일, 집을 지어도 헛일, 출세를 해도 헛일, 고관대작이 돼도 헛일, 옛사람으로 사는 건 대통령이 돼도 헛일. 새사람으로 살면 대통령되는 것도 그것도 복, 장관되는 것도 복, 새사람으로 살면 품드는 것도 복, 사장도 복, 종노릇하는 것도 복, 새사람으로 살면 전체가 복이라.

이러니까, 옛사람 새사람 이것을 잘 구별해 가지고서 알아서 옛사람노릇은 피해야 되겠고 새사람노릇은 이것은 어짜든지 우리가 힘써 해야 되겠는데 뭐 예수 믿은 지 몇십 년 된다 하지만 옛사람이 뭐이 옛사람이고? 자, 옛사람은 성경에 죽이라 했습니까 살리라 했습니까? 죽이라 했는데 옛사람이 뭐인지 알아야 죽이지. 그 옛사람이 뭐인지 그것을 생각해 보지를 안했기 때문에 옛사람이란 말만 들었지 옛사람을 모른다 그거요. 이 목사님들도 잘 모르고 장로님들도 잘 모르고 권사님들도 잘 모르고 모두 잘 몰라요. 옛사람을 그러니까 그거는 옛사람을 공부를 하면 돼요.

자기가 옛사람, ‘요것은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그만 새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으로 된 사람이 새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 나머지기는 다 옛사람이라는 것, 그러면 그다음에 이거는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이거 옛사람의 일이냐 새사람의 일이냐 그래 따지면 다 아는데 거게다 시간을 들여서 연구를 하지 안해서 모르지 알 만한 그런 기초 지식이 없어서 모르는 것 아닙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기 때문에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으니까 소원은 옛사람과 새사람 사람이 둘이 있으니까 소원은 몇 가지겠습니까? 소원도 두 가지지요, 소원도 두 가지지요. 또 욕심도 두 가지지요, 또 성질도 두 가지지요, 뜻도 두 가지지요. 두 사람, 사람이 두 사람이니까 둘 있을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자유도 둘이라 그말이오.

자유도 둘인데 옛사람의 자유가 있고 새사람의 자유가 있고 자유가 있는 것인데 여게 너희들이 자유를 위해서 부름을 입었다 하는 이 자유는 옛사람의 자유겠습니까 새사람의 자유겠습니까? 이거는 새사람의 자유입니다. 새사람의 자유인데,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육체의 기회,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 말은 육체가 하고자 하는, 기회라 하는 거는 때인데. 육체가 하고자 하는 그대로 네가 하는 자가 되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 이 자유가 들어서 도리어 육체의 욕심의 기회를 삼아서 육체의 소원을 이루는 그런 기회가 되기 쉽다. 그러면 이 자유는 새사람의 자유인데, 새사람의 자유인데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는 이 육체의 기회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새사람의 자유를 옛사람의 자유 삼지 말라 그말입니다. 새사람의 자유를 옛사람의 자유 삼지 말라.

그러면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새사람의 소원대로 살라고 하나님이 피흘려 구속해 놨는데 새사람의 소원대로 살라고 했는데 새사람의 소원대로 살라고 해 준 것을 옛사람의 소원대로 사는 것으로서 이렇게 꺼꾸로 되바꾸지 말아라 하는 그말입니다. 요걸 좀 알아 들으면 참 좋을 건데. 이게 어려워요.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물었지마는서도 이걸 몰라요.

자유를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네가,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그 자유 가지고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라 하는 이것은 육체의 소원을 이루는, 육체의 소원을 이루는 데에 이용되는 그런 자유가 되지 않도록 해라. 육체의 소원을 이루는 데에 이용되는 자유가 되지 않도록 해라.

이제 이거 뭐 알맹이는 가르칠라 해야 안 되니까 알맹이는 그만 그래 두고서 껍데기만 여러분들에게 말하겠어. 이라면 자꾸 알고 싶은 사람 알 수가 있어.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돈의 종도 되지 말아라, 사람의 종도 되지 말아라, 또 권세의 종도 되지 말아라, 부모의 종도 되지 말아라, 또 친구의 종도 되지 말아라, 하나님의 종만 돼라. 이게 또 진리라 말이오. 이러니까 그만 거게서 해방을 당했습니다. 해방을 당해서 이것은 아무데도 매인 데가 없는 사람이라. 매인 데가 없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제 ‘하, 뭐 돈 그까짓 거, 권세 있으면 제 권세 있지.’ 이래 가지고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주 매인 데 없는, 매인 데 없는 방종한 이 자유자가 됩니다.

매인 데 없는 방종한 자유자가 돼서 과거에 예수 믿기 전에는 권세한테 닥치면 권세한테는 복종을 해야 되고 돈 많은 사람한테는 또 머리를 숙여야 되고 이렇게 했는데 이제는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뭐 ‘권세 있으면 제 권세 있지 내 권세 있나, 권세에 종이 되지 말아라.’ 또 ‘돈에 종되지 말아라.’ 이라기 때문에 아무데도 눌리지 마라 이래 이래 가지고서 눌리지 말라고 이라니까 이제 아무데도 안 눌리는 그걸 딱 배워 놓고 연습을 해 놨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게 안 믿을 때는 무슨 말하면 겁도 내고 떨기도 하고 이리저리 하지마는서도 이제 믿고 난 다음에는 아무것도 겁내는 게 없어. 겁내는 게 없어 가지고서 그뭐, 겁내는 게 없어 가지고서 자, 이거는 뭐 경제 문제도 겁을 안 내지 목숨이 달아난다 해도 죽는 것도 겁을 내지 안하지 아무것도 겁내는 것이 없고 떨리는 게 없고 매인 데가 없이 그만, 그 매인 데가 없는 이런 사람으로서 이 자유자가 됐다 말이오. 자유자가 됐어.

이래 놓으니까 이 사람이 어떤 사람 되는고 하니 그 자유 가지고, 그 자유는 어데 쓰라고 그 자유를 주셨느냐 하면은 네가 하나님에게만 복종하고 진리에게만 복종하고 영감에만 복종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만 네가 살고,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은 하나인데 이 셋에게만 네가 피동되어 살고 이 셋에게만 붙들려 살고 이 셋에게만 네가 순종해서 살고 이 셋 외에 모든 것에게는 네가 순종하지 말고 거게 매이지 말고 붙들리지 말고 살아라 하는 이 말씀인데, 요거 큰일 나요.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세상에는 전부 세상이 죄악 가운데 있는 죄악의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전부가 하나님의 도리에 대해서 삐뚤어진 그런 주장이요 그런 권세요 그런 사상이요 그런 지도요 그런 권리요 이런 것이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의 법도에 지금 중생된 진리 영감 예수님의 피공로로 중생된 네, 중생된 네가 이 세 가지가 네 소원이니 이 세 가지로 사는 것을 아무데도 꺾이지 말고 굽히지 말고 거게 제재받지 말고 이 세 가지로 살아라. 이 세 가지로 사는 데에는 아무것에게도 눌리지도 말고 꺾이지도 말고 붙들리지도 말고 제재도 받지 말고 생명을 만일 죽인다 하면 죽어도 생명을 줬지 이 자유일랑 주지 말아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해 놨다 말이오.

말씀했는데 이 말씀을 한 것은 어떤 데에 종되지 말고 매이지 말고 순종하지 말고 거게 눌리지 말아라 했는고 하니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말아라 이말이라. 죄의 종이 되지 말아라. 이랬으니까 그러면 죄는 뭐이 죄요? 죄는 진리에 위반된 게 죄요 영감에 위반된 게 죄요 예수님의 이 대속에 위반된 게 죄이니까 위반된 그런 것들에게 종되지 말아라. 위반된 그런 것들에게 네가 종되지 말고 눌리지 말고 너는 그런 것들에게 눌리지 말고 자유해라.

또 자유하라 말은 무슨 말이요? 자유하라 말은 내나 네가 영감대로, 그러면 자유라 하는 것은 자기 소원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데 새사람의 자유는 뭐이냐? 영감대로 살고 싶고 진리대로 살고 싶고 사죄, 칭의, 화친대로 살고 싶으니까 살고 싶은 그것이 네 중심이요 네 본질이요 본성이요 새사람의 인격이니까 네가 그와같이 네 소원대로 살라, 네 소원을 뺏기지 말아라. 그래 자유를 뺏기지 말아라 하는 그말인데 그 소원은 네가 진리 소원, 영감 소원, 그 사죄 소원, 칭의 소원, 화친 소원 이 소원을 아무데도 뺏기지 말고 네가 자유로 살아라.

다시는 종되지 말아라 한 그 말은 삐뚤어진 거 죄의 종 되지 말아라. 삐뚤어진 데 종 되지 말아라. 그러면 하나님의 진리에 위반된 것에게 종되지 말아라. 위반된 권세에게, 위반된 세력에게, 위반된 보배에게, 위반된 보화에게, 위반된 영광에게, 위반된 취미에게, 위반된 모든 재미에게, 모든 위반된 그런 것들에게 네가 종되지 말아라.

다만 종되지 말고 어데서든지 네가, 네가 자유해라. 이렇게 한 것인데 육체의 기회를 삼기 쉬워. 육체의 기회를 삼는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네가 이렇게 자유하라고 하나님이 해방을 줘서 자유를 인식해 놓으니까 너는 아무데도 종되지 안하는 이 인식을 가져 가지고 그 인식을 뭘로 삼느냐 하면은,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라” 그걸 가지고 뭘 삼느냐 하면은 아무데도 여게도 매이지 안하고 저게도 매이지 안하고 매인 데가 한 군데도, 예를 들면 한 백 군데 매였었는데 백 군데 매인 데 하나도 매이지 안하고 다 거게서 끌러졌어. 끌러진 거는 뭣 때문에 끌러졌느냐? 진리대로 살기 위해서, 그 삐뚤어진 데 붙들려 매였던 게 다 끌러져 가지고 이 진리에 붙들려 매이고 이렇게 살게 됐는데 그랬는데 이제 그 다 어데든지 해방이 돼서 매인 데가 없어. 매인 데가 없는 매인 데 없는 그것 가지고서 뭣하는고 하니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라.

이거 참 내가 말을 잘 못해 그런지, 내가 자꾸 이래 쌓으면 여러분들이 무슨 말 할라 하는지 알지요, 벌써? 알겠지?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라” 이렇게 지금 이 매인 데가 없이 다 끌러 놨다 말이오. 매인 데가 없이 다 끌러 놓은 것은, 매인 데가 없이 다 해방을 받았습니다. 다 매인 데가 없이 끌러 놔 가지고 제 소원대로 하는 사람을 만들어 놨습니다.

매인 데서 다 풀어 놨는데, 끌러졌는데, 풀렸는데 어떤 매인 데서 풀렸느냐 하면은 죄에 매인 데서 풀렸습니다. 삐뚤어진 것에게 삐뚤어지게 매인 데서 다 풀어져 가지고서 이제 자유는 옳은 걸로 자유하도록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육체의 기회를 삼는다” 아무데도 매인 데 없는 이 해방된 이 자유 가지고서 자기, 자기 욕심. 육체라 하면 자기 옛사람 아니요? 자기 욕심, 자기 욕심을 달성해서 자기 욕심을 달성하는 데에 이 자유를 쓰는 사람 되지 말아라 요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듣겠습니까? 이 나도 말해도 좀 아마 여러분들과 도와 좀 거리가 먼 모양이라.

이래서,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 믿을 때는 여게저게 매여서 체면에도 매이고, 예의에도 매이고, 인정에도 매이고, 윤리에도 매이고, 뭐 이거 집안에도 매이고 막 이래 얽혀 매여 가지고 있는데 그 얽혀 매여 가지고 있는 그거는 전부 죄악에 매여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게 진리에 매인 게 아니라 그말이오.

이래 매여 가지고 있으니까 이게 이래도 못 하고 저래도 못 하고 좀 제맘대로 하지 못하고 이래 가지고 조그매라도 그래 매여 가지고 있으니까 조금 그래도 뭐 아주 못쓸 인간은 안 되고 매여 가지고 있으니까 이것 때문에도 못 하고 저것 때문에도 못 하고 제맘대로 못 해서 조금 그래도 악인 중에 조그매라도 정신 차린 악인으로 살고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이제는 그런 것 매인 것이 다 풀어졌습니다. 그런 거 매인 게 다 풀어졌어.

그런 게 다 매인 게 풀어진 것은 거기에 다 풀어져 가지고 이제 진리에 매이고 영감에 매이고 예수님의 대속에 뽈끈 매여야 될 터인데 그 양사방 풀리기만 풀려 놓고 매인 데는 한 군데도 없어. 이래 놓으니 이게 어찌 됩니까? 풀리기만 풀리고 매인 데는 한 군데도 없으니까 이제는 이 사람은 아무데도 매인 데 없어.

너 그라면 죽인다 하니까 ‘아, 죽으면 죽지 뭐 죽으면 내나 한번 죽을 것.’ 이게 또 이거 뭐 간이 크다 말이오. ‘너 그라면 너 그만 직장에서 쫓아내서 감원시켜 버린다.’ `아, 감원 시키면 하나님이 뭐 먹고 살 것 주시지 뭐 감원당하면 뭐 무슨 문제가 있어?’ 이거는 뭐 간이 어떻게 커 놓고 이거 매인 데가 없어. 아무데도 붙들려 매인 데가 없어.

붙들려 매인 데가 없지. 하나님의 진리에도 붙들려 안 매였지 이러니까 하나님의 진리에게 붙들려 매였으면 하지마는 세상의 온갖 제도에게 매여 있는 거게서 다 해방되고 해방된 이것이 마치 말하면 이 범을 양사방 짜매 가지고 이래 해 놨는데 이 범을 거게 풀어 가지고서 더 실한 밧줄에다 매 놨으면 그거야 괜찮을 것인데 풀기만 풀어 놓고 매여 있지는 않다 말이오. 풀기만 풀고 매이지 안했으니까 그 범이 재를 많이 저지르겠소 적게 저지르겠소? 이 과거에 예수 믿기 전에는 ‘그래도 집안 어른들이 보면 안 된다. 집안에서 흉본다.’ 남의 흉본다는 것도 알고 예의도 알고 체면도 알고 염치도 알고 또 다른 사람이 욕하는 것도 알고 뭐 이러니까 다 이런 데서 이런 게 있기 때문에 그런 데 다 얽매여 가지고서 그래도 그게 아주 제맘대로 못된 행위를 못 했는데 요것이 예수 믿는 게 돼 놓으면 그것도 다 뭐 거게 매이지 말아라 하니까 다 거게 매이지 안했다 말이오. 그거 뭐 ‘사람들이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에게 매일 게 뭐꼬?’ 이래 가지고 전부 이 세상 온갖 제도에 매인 데서는 다 풀려 나왔습니다. 다 풀어졌습니다.

이 푸는 것은, 예수 믿는 거는 여게 풀려 가지고, 거게 풀린 것은, 거게 죄악의 세력 그 삐뚤어진 것에게 붙들려 매였던 그것을 예수님이 와 가지고 푼 것은 어데 붙들어, 거게 풀어 가지고서 진리에 뽈끈 붙들어 매고 영감에 뽈끈 붙들어 매고 이 예수님의 사죄에 붙들어 매고 칭의에 붙들어 매고 화친에 붙들어 매서, 이제는 죄없는 데 붙들어 맸고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에 붙들어 맸고 또 의롭게 살아야 되는 데 붙들어 맸고 또 하나님을 꼭 모시고 살아야 되는 데 붙들어 매 놓고 이래 놓으니까 과거에 매인 그것보다 몇천 배도 만 배도 더 된 강한 세력에게 딱 붙들려 매였기 때문에 이제 과거에는 이 세상 이런 것 저런 것 붙들려 매였다 할지라도 그런 것은 제가 생명이 죽을 지경이면 다 그까짓 거 집어던져 버리지마는 이제 두번째로 붙들려 매인 데는 이거 생명을 끊어져도 벗어날 수가 없을 만치 강한 밧줄에서 매여 놓은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인데 여게서 풀리기는 풀렸지 여게 매이지는 안했지 이래 놓으니까 자, 이 사람은 어찌 되겠소? 세상에 그 모든 매인 그것 때문에 마음대로 못 하던 게 그거 다 풀려 버렸지 하나님께 매이지 안했으니까 아무 붙들림이 없지. 그러면 이 사람은 어떤 사람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 되겠소? 이거는 세상 사람 중에 제일 악한 사람됩니다. 알겠습니까? 세상 인간 중에 제일 악한 사람, 제일 무례한 사람, 제일 악독한 사람, 제일 체면 없는 사람, 예의 없는 사람, 제일 욕심 많은 사람, 제 마음대로 그만 제 한 마음뿐이라. 과거 아무데도 매인 데도 다 풀어 버렸고 하나님께도 안 매고 진리에도 안 매였고 영감에도 안 매였고 그만 이제 제가 독단 왕이라. 이래 놓으니까 제맘대로 하니 그 사람은 세상에 악인 중에 악인이오. 그 사람은 누가 뭐 붙들 수가 없어.

‘너 그라면 죽여 버린다.’ ‘하, 죽으면 뭐 순교하지.' `너 그라면 직장을 그만 다 파괴시킨다.' `직장 파괴시키면 뭐 하나님이 계시는데 직장 파괴시키면 문제가 뭐 있는가? 하나님이 다 먹을 것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 했는데.’ 이래 놓으니까 이거는 아무데도 붙들리지 안했지 하나님께 붙들리지 안했으니까 이 사람은 제맘대로 하는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제맘대로 하는 사람이.

요 사람을 가리켜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그 자유 가지고서 네맘대로 하는 그런 인간이 되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하지 말고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인계받았으니까 네가 지금 인계받아 가지고서 내 계명을 지키라 그러면 내 안에 있다 하는 것 모양으로, 내가 아버지 계명을 지키고 내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있으리라 내 계명은 뭐인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그것이 내 계명이다.

이러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해방을 받은 그것은, 해방을 받은 그것은 진리 영감 그리스도의 대속에 뽈끈 붙들려 매인 자이니 붙들려 매인 진리, 영감,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밧줄에 매였는데 세 가지 밧줄을 다른 말로 하면 뭐입니까? 사랑. 다른 말로 말하면 사랑이라 그말이오. 사랑의 밧줄에 네가 매여 가지고 지금 살아야 될 터인데 이거 풀리기는 다 풀렸지 이거, 자, 진리에 매여 가지고 진리대로 하면 그거 뭣 돼요? 진리대로 하면은 그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게 참 사랑이라. 영감대로 하면 더 사랑이라. 사죄로 살고 칭의대로 화친대로 살면 더 사랑하는 거라.

이렇게 해 가지고서 해야 될 터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잘못 깨닫고 자유라 자유라 말만 들어 가지고서 어짜든지 이거는 양사방 붙들린 데는 해방을 다 됐지 하나님께는 붙들려 매이지 안했지 진리도 영감에게도 예수님의 대속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에도 붙들려 매이지 안했으니까 이거는 세상에 인종지 말자요 아주 악인 중에 최악인이 됩니다.

이래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가, 기독교를 세상에 정치가들도 못 막소.

정치가들도 못 막고 도덕가들도 못 아. 이거는 뭐 양사방 매인 데가 없이 딱 풀려 놔 놨으니까 아무데도 매인 데 없이 제 마음대로 하는 인간들이라. 이래 놓으니까 세계가, 세계가 지금 전부 자유주의 세계가 됐습니다. 자유주의는 어데서 나왔는고 하니 기독교서 나왔습니다. 자유주의. 제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다 하는 이 자유주의가 나와서 서양에는 일찍부터 자유주의가 나와 가지고서 휩쓸어서 사람들이 다 변질 사람이 돼져 가지고 있는데 이제 한국에도 자유주의가 나왔어.

자유주의가 나와서 예수 믿는 사람들 지금 서울 같은 데도 뭐이냐 하면은 ‘이제는 뭐 교파도 소용 없고 노회도 총회도 아무데도 그런 데 안 붙들립니다. 이제 제 마음대로 예수 믿고 제맘대로 삽니다.’ 제맘대로 사는 세상, 제맘대로 사는 거라.

제 마음대로 사는데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제 마음대로 산다 해도 ‘너 그라면 감옥간다’ 뭐 이라는데 예수 믿는 사람 이거 `감옥가면 뭐 상급받지 뭐’ 이라고 감옥을 간다 하니 겁을 내나 이거 밥을 굶으니 겁을 내나 아무데도 매인 데가 없기 때문에 가장 강퍅하고 악독한 사람이 되어져서 지금 되어져 있는 것이 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 기독교가 돼야 될 건데 세계를 타락시키는 것이 이 기독교가 됐습니다. 세계를 타락시키는 일로에서 앞장 서 가지고서 세계를 타락시켜서, 뭘로 타락시키느냐? 세계를 자유주의로 타락시켜, 자유주의. 제맘대로 살아. 자유주의. 누구한테 굽힐 게 뭐 있나? 제 마음대로 살아.

과거에는 뭐 심지어 매이기를 ‘야, 그라면 탈난다. 탈난다.’ 과거에 우리 그랬어요.

못을 한개 박을 터인데 ‘보자, 손이 여게 있나 저게 있나 어데 손이 있노? 손 있는 데 못을 박으면 눈에 쌈이 나와요, 쌈이 나. 쌈 병이 나. 쌈. 눈에 쌈 알지요? 이랬는데 이제 예수 믿고 나니 그런 것도 없어, 인제.

미신에도 붙들리고 인간에도 붙들리고 오만 거에 붙들려 가지고 이러니까 이거 그래도 이 악을 만행하지 못하고 좀 이래 제재를 받고 이래 좀 조절이 됐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거게서 완전히 해방을 다 받아 버렸지, 해방 주는 것은 참에게 붙들리라 하고 이 진리에 붙들리고 영감에 붙들리고 이제 죄를 짓지 않는 데 붙들리고 의롭게 사는 데 붙들리고 하나님 모시고 사는 데 붙들리고 이걸 통틀어 말하면 사랑인데 사랑에 붙들리도록 이렇게 해 놨는데 이거 해방만 돼 버리고 줄만 다 끊어 놔 버렸지 붙들려 매인 데 없으니까 이거는 가둬 놨던 사자를 맹수를 내놓은 거와같이 막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러니까 한국 교회도 이거 뭐 신부들이니 모두 목사들이 이래 가지고 막 마구 설치니 이거 정치가도 꼼짝 못 해. 어짤 수 없어. 이걸 뭐 죽인다 해도, 죽인다 해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이것도 저것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이래 가지고서 자유주의로 이래 해서 지금 사회는 점점 더러워지고 악해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한국은 그렇지 안했는데 한국에 교회는 지금 자유주의가 들어와 가지고서 전부 제맘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 며칠 전에 어떤 목사님이 나한테 와 가지고 ‘목사님, 내가 목사님이 참 목사님이 너무 안타까와 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서울에는, 여기는 뭐 좀 덜하는데 서울에는 교역자 쳐 놓고 어데든지 매이기를 싫어합니다. 아무데도 안 매이고 그저 뭐 그 교파 이거나 저거나 상관 없이 아무데도 안 매이고 제 교훈 받고 싶은 대로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이래 가지고서 각각 하나의 제 구멍가게를 만들어 가지고서 제 마음대로 하는 지금 이 교회가 됐기 때문에 이런데 목사님은 지금 이 총공회는 뭐 교역자들을 뭉쳐 가지고서 지도를 할라 하고 또 잘못됐다고 간섭하고 이 지금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말해.

이렇게, 기독자가 내 보기에는 온 세상을 타락시키는 앞잡이로 돼 가지고서 이렇게 모든 사람이 한 군데도 매이지 안한 방종, 아주 방종 방탕의 일로의 사람들 아주 방종해 이거는 아무도 붙들을 수도 없고 이거 붙들 수도 없는 이런 인간을 만든 것이 이 뭐이냐? 기독교가 만들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지금 세상을 구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제일, 과거 이스라엘이 격노케 해 가지고서 진노받은 것처럼 진노받을 것은 세계의 기독교입니다.

세계의 기독교가, 세상의 양심이라 했고 세상의 생명이라 했고 세상을 선도하는 지도자라 했는데 이거 기독교 자유주의가 이와같이 자꾸 흥왕해 가지고서 가장 **을 수 없는 마구잽이 인간들이 됐기 때문에 여게 물들어서 이 교회들이 다 절단나니 오늘 여러분들 우리들은 여게서 깨야 되겠습니다.

깨어 가지고서 이제 우리는 자, 우리는 매인 사람이 돼야 되겠소 풀린 사람이 돼야 되겠소? 풀린 사람이 돼야 되겠소 매인 사람이 돼야 되겠소? 자, 매인 데 없이 풀려 가지고 살고 싶은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꼼짝 못하고 옳은 데 매이고, 참에게 매이고, 바른 데 매이고, 의에 매이고, 죄를 지을 수 없는 무죄에 매이고, 또 하나님, 꼭 하나님이 가 하면 가 하고 절대 복종하는 하나님에게 매이고, 진리에 매이고, 의에 매이고, 이렇게 영감에 매이고 이렇게 매여 가지고서 숨도 못 쉬고 꼼짝 못 하고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여게 매여 가지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거야 돼.

이래서, 따라합시다.

자유주의로! 세계는 망한다! 자유주의로 세계는 망한다! 자유주의에 제일선자는! 예수교다! 벌 인제 잘 받을 거로구만. 정신 차려요.

여게도, 그만 예수 믿는 사람 돼 놓으면 그거는 붇들을 도리가 없어. 매인 데가 없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옛사람은 자기에게 매인 사람, 옛사람은 자기에게 매인 사람이요, 자기 중심 자기 위주에 매인 사람이요,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에 매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꼼짝 못 해.

이러니까 기독교는 하나님의 독재에 모가지를 뽈끈 매여 가지고서 꼼짝도 못하고 숨도 못 쉬고 하나님이 숨 쉬라 해야 숨 쉬어. 하나님에게 뽈끈 매여 가지고 사는 것이 기독교인데 하, 얼마나 건방졌던지 이제 ‘기독교는 독재가 아니고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니까 저거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 숫자만 많으면 득세를 하지.

한번 본문 읽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이러니까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매인 데 없으면 헛일입니다. 이 매이는 것은 자유의 율법에 스스로 매이요. 양심으로 매이고 스스로 매여. 스스로 매일라고 해야 매여지는 것이지 누가 강제로 끌어다 매는 게 아니오. 양심으로 매여지고 영감으로 매여지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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