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증거-성령-방언

 

1985. 2. 21. 목새

 

본문 : 사도행전 10:39-48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이 말씀을 두 번째 봅니다. 지난 새벽 예배 때도 이 말씀을 봤습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다 아담 해와의 자손입니다. 아담 해와의 자손이 아닌  사람은 하나만 나타났으니 예수님은 아담 해와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는 어머니는  마리아였지만 아버지가 없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마리아의 몸을 갈라 입으시고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전 인류는  예수님 외에는 다 부정모혈로 난 것이 사람들입니다.

 부정모혈로 난 사람들은 다 해와가 유혹을 받아서 범죄 하기를 시작했고 해와를  통하여 아담이 유혹 받아서 범죄가 됐던 것입니다. 해와가 선악과를 먹어 봤자  하와에게는 하나님께서 제약의 당사자로 세우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계약의,  신인,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계약한 계약의 당사자가 아담이기 때문에 아담이  하와에게 유혹 받아 가지고 선악과를 먹었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과 사람이 계약한  이 계약 상대자가 계약을 어겨서 정죄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할 때에는 자기 개인만이 한 게 아니고 전  인류를 대표해서 계약했기 때문에 아담의 범죄로 정죄된 그 정죄는 부정모혈로 나는  인류는 누구나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정죄받고 저주와 사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정죄받아 하나님과의 연결되어 있는 영은 죽었고, 하나님과 연결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심신입니다. 영이 없이는 하나님과 연결을 못합니다. 그 사이에  중보가 끊어졌기 때문에 연결을 못 하고 다만 영이 살아났을 때에 그 영이 인간의  육과 하나님과의 그 사이에 중보가 되어져서 비로소 하나님과 연결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과 영은 하나 됐는데 사람의 자기의 영과 몸이 직접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마음이 그 속에 중보가 돼 가지고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의 영이 죽었는고로 심신으로 된 육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부정모혈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그 영과 심신, 영육이 다 정죄와 저주  아래에 있어서 죄로 물들었고 저주로 물들었고 또 악령으로 물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악령화됐고, 악령으로 물이 드니까 악령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악령화됐고 또 사람이 악성화됐습니다. 악성이라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악성화됐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악성이 된 것이 아니고 악성의 감화를 받아서  악성화 되었고 또 그래 가지고 한 행동 한 행동 하는 것은 악한 행동이 되어서 악한  행동이 차차 차차 모여지면 그것을 가리켜서 악의 연습이라 그래서 악습이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과 육이 다 악령화 악성화 악습화 되어 가지고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된 것이 사람인데, 거기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절단된 그 절단이 잇기게 되었고 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그 악습  악성 악령화됐던 그 값을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형벌 받으신 것은 세 가지 형벌을 받았습니다. 어떤 형벌을 받았는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그 죄의 형벌을 받았고, 또 두 번째는 하나님에게 피동  되지 안하고 제 마음대로 제 주장대로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주로 해서 산 그  값을 다 형을 다 예수님이 다 받으셨고, 또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 되어서 살도록  하나님이 그 위치를 정해 놨는데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지 안하고 제 단독이 살려는  이런 자를 만들어 놓은 이 죄값을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받음으로 사죄되었다, 세 가지 형벌을 받음으로 사죄가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이 세 가지 죄, 자기 주장대로 산 죄, 하나님을  배반한 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 이 세 가지 죄의 형벌을 받은 것이 그것이  우리에게 사죄를 주신 공로입니다. 사죄를 주시기 위해서 이 세 가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시다가 순종으로 죽으셨습니다. 그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한 모든 순종을 대신 순종하시는 그 순종을 하심으로써  우리들에게 칭의의 공로를 입혀 줬습니다. 칭의. 그러면, 칭의는 예수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에게 순종하신 그 순종으로 인해서 칭의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래서, 성경에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 율법의 요구를 다 예수님이 이루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율법의 요구라 말은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요구하시는 그 요구에 입법해 놓은 그 입법을 예수님이 대신해서  입법을 다 지켰습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습니다. 이 칭의 주신 걸 그래서 대행으로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다 이렇게 성경에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대신 행동하심으로써, 우리가  행할 것을 대신 순종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하나님과 화친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이 화친을 이루기  위해서 죽기까지 이 화친을 이루기 위해서 다 바쳤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화친을 우리 대신, 우리가 원수된 그 원수는, 원수의 죄값은 다  대형으로 받았고 하나님과 화친해야 될 터인데 우리는 화친할 그런 실력이 없어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화친을 하셨을 때에 이 화친이 이것이 이루지 못할 만한 그런  애로가 심히 많았습니다. 우주 적인 애로입니다. 그 애로를 우리가 아무리 하늘  나라 가서 또 물론 깨닫고 깨닫고 깨닫지만 영원히 깨달아도 그 깨달음을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신 화친하실라고 할 때에 여러 가지 하나님이 저주도 하셨고  또 사망케도 하셨고 이렇게 온갖 방해가 많이 있어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대신  화친하는 것으로써 끝이 나 버렸습니다.

 악령은 이 화친을 삐뚤어지게 해서 화친 달성을 하지 못하게 할라고 온갖 방해를  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온갖 조롱, 온갖 그 형벌을 다한 것은 하나님과  화친을 이루지 못하도록 할라고 그렇게 심히 했지만 예수님은 화친을 삐뚤트리지  안하고, 화친을 놓지 안하고 화친한 그 화친으로써, 모든 방해가 어떻게 와도  하나님과 화친을 놓지 안하고 이 화친하는 이것으로 인해서 그만 죽었습니다.

죽어서 끝나 버렸습니다. 죽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화목의 제물이라 그랍니다.

주님이 화목하기 위해서, 당신이 이 화목을 위해서 끝까지 계속하다가 마지막에  죽으신 이 죽으심을 인해서 화신을 이루는 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의 심판을 예수님의 대형으로 우리가 다 벗게  됐고, 또 하나님의 율법의 그 무한한 세밀하고 무한한 그 율법의 요구를 예수님이  대신 응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다 완전히 이행한 자로 인정을 받아서  공심판에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다 완전히 율법의 요구를 이룬  자가 되어 가지고 칭의를 받게 됐고, 또 하나님과 화친되는 그 화친에 대한 온갖  조건을 하나도 없이 그 화친의 조건을 다 이루시는 그 일을 위하여 화친으로  죽으셨습니다.

 이래서, 인생이 하나님과의 이 관계점, 하나님과의 관계점은 하나님의 율법의  관계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점은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법대로의 관계점이라  말이오. 하나님과 관계점은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그 완전하신 그 율법적으로  율법대로의 관계점 이 관계점을 예수님이 대신하심으로써 이 관계점을 다 이행하고  관계점을 완료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이 관계점이 이 대심판 할 때에는, 공심판  할 때에는 하나님과 관계에 대한 법칙이 있어서 법칙을 가지고 심판하는데 이  법칙이 하나도 정죄할 수 없도록 완전한 관계점을 이룬 이것을 인해서 우리는 다  하나님의 공심판을 면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물들어 있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써 물들어 있는 이  물듦을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이것을 탈색시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탈색시킬 수 없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의 지공 지성 법적으로서 이렇게 모두 다 삐뚤어 잘못되어 있는 것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해결했기 때문에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거로써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물들어 놓은 이 감염을, 이거  비유입니다. 물들었다 말은, 물들었다 말은 사람이 거기 감염됐다 말이요 또 거기  소속하게 되었다 말이요 거기 정죄를 받았다는 말인데 그런 것을 알아듣기 쉽도록  물들었다,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는 그런 성구를 근거해서 이제 비유로  물들었다 하는 말로 그렇게 지금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피'라 했습니다. 피, 피로 가지고 이 물든 물을 탈색할 수가  있고 또 이 피로 하나님으로 물을 들일 수가 있습니다. 또 뭘로 가지고 탈색을  시키느냐 하면 성령의 감화를 가지고 탈색을 시킬 수가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서는  우리 속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물들어 놓은 것을 이것을 탈색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지공법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이와 같이 지금 탈색을 시켜 놨지만 그거는 법적의 모든 것을  다 탈색을 시켜 놨고 실지로 우리 마음에 이거 물들어 놓은 이 모든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감화로 물들은 감화를 이것을 변화시킨다는,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 몸을 변화시키고 우리 영을 변화시키는 것은 또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안됩니다. 또 성신의 감화로 탈색시키고 염색하고,  또 뭘로 하느냐 하면 이 성신의 감화는 감화로만 이래 하지만 거기 이치가 가  가지고 이거 탈색을 시켜야 되겠고 또 염색을 해야 되는데, 이치의 이 능력, 없는  가운데에서 우주와 영계를 지으실 때에 지으신 것을 감화로 지어라 하는 이 감동 준  이 감동은 하나님이 감동을 주습니다. 이게 성신의 감화입니다. 감화로 이렇게  감동을 시켰고 감동을 받아 가지고 실지로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만든 창조는  뭐가 했느냐? 실지의 창조는 진리가 했습니다. 진리가 창조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비유가 맞지는 안하지만 좀 비슷하게 할라고 하면 우리가 이  예배당을 지을 때에 그때에 제일 먼저는 무엇이냐? 온 교인들의 대표가 되어 있는  내가 이 예배당을 지을라고 그렇게 계획을 가지고 이 예배당을 지을려고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을 했는데. 예배당을 이걸 지을 때는 내가 시작을  했고 또 그 다음에는 여기 그 O 소장이 감독을 해 가지고 모두를 다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감독하는 대로 따라서 이 모든 합판을 붙이고 떼고 세멘을 바르고  하는 그거는 또 누가 했느냐 하면 이 모든 기술자들, 모두 기사들 인부들이 다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 시공할 때에 실제로 건축할라고 그 공사를 실지로 시공자는  누구냐 하면 내 밑에 O 소장으로부터 모든 인부들이 똘똘 뭉쳐 가지고 다  시공자들입니다.

 그러면, 그 시공자들은 그것은 뭘로 비유가 되느냐 하면 진리로 비유가  되겠습니다. 진리가 다 그렇게 시공한 것같이 진리로 비유가 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 성신의 감화로 이렇게 만들었는데 성신의 감화는 누가 되느냐 하면 성신의  감화는 내가 되겠습니다. 성신의 감화는 내가 되고, 또 그러면 그 다음에 성신의  감화 위에 하나님 아버지가 모든 것을 경영했는데 거기는 누구로 하느냐? 그거는  기본교권이라고 하는, 우리 교인들이라는, 서부 교회라는 이 교인들 전체가 돼  가지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전체, 교인들의 전체가 들어서 이 일을 하고, 그것을 대리로 맡아 가지고  하기는 내가 대리로 맡아 가지고 했고, 또 그 다음에 대리로 맡아 가지고 하는 것은  O 소장이 맡아 가지고 모든 인부들과 통합해서 했고, 한 동안은 그 중간에 OOO  장로님도 한테 뭉쳐 가지고 그래 가지고 해 가지고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래서, 우리에게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물이 들어 가지고  우리 마음이나 생각이나 우리 몸의 행동이나 전부가 다 어떻게 됐느냐 하면 전부가  다 악령화됐습니다. 악령이 아니면서 우리가 악령이 돼 버렸습니다. 악령이 아닌데  악령이 돼 버렸습니다. 또 악성이 아닌데 악성이 돼 버렸습니다. 또 우리의 전  움직임은 악습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뭘로 가지고 탈색을 할 수가 있느냐? 탈색할 수 있는 것이  이 세 가지로만 탈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 성령, 진리 이 세 가지로만  탈색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걸로는 탈색을 못합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악령과 죄와 사망이 우리에게 왕 노릇하지 못한다 그 말은 이  탈색은 절대성의 권위를 가졌기 때문에 이 탈색을 할라 할 때에 탈색 못 하구로  방해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탈색을 하는 것을 우리에게 자유를 줬기  때문에 우리가 '아, 나는 이 색깔은 싫다. 이 색깔은 벗겠다' 하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그 색깔이 벗어져 버립니다. 벗어지고,  또 내가 성령과 하나님 중심인 믿음과 또 모든 역사와 진리의 영감으로 이렇게  내가 변화되는 것, 그러면, 새로 물들이는 것, 그러면, 물은 뭘로 들였느냐 하면  우리 물은 세 가지로 물을 들였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물을 들이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탈색을 하고, 탈색도 이래 탈색하고, 탈색하고 물들이는 것이 다 이  세 가지로 탈색도 되고 물도 들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어떻게 해 가지고 탈색되고 물들이느냐 하면, 비유컨데  우리에게 어두움이 꽉 찼습니다. 어두움이 꽉 들어 가지고 있는데 이 어두움을 뭘로  가지고 이 어두움을 없애느냐? 빛이 살살 들어오면 어두움이 차차 녹아집니까  그대로 있습니까?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어두움이 녹아져 버립니다.

어두움이 녹아지는데 녹아지면서 차차 차차 밝아집니다. 밝아지는 것만치 어두움은  없어지고 밝아지는 것은 더 확실히 밝아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 피와 성령과 진리는 빛이시요 이는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을 완전히  해결한 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의 능력이 들어오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것은 차차 차차 물러갈 수밖에 없고 그거는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떤 사람은 이 세 가지로 충만한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입혀 주신 이 영은 이 세 가지를  입었지만 이 심신으로 된 육은 이 세 가지를 하나도 입지 안하고 이 세 가지를 평생  원수 삼아 가지고 이 세 가지를 대적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입는 것도 다 싫어하고  영감도 싫어하고 진리도 싫어하고 내나 중생은 됐지만, 중생은 영만 중생된 것이지  심신 중생은 아닙니다. 중생됐지만 항상 좋아하기는 악령을 좋아하고 악성을 좋아,  악성을 좋아한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악성을 좋아한다 말은 제 중심으로 살기를  좋아한다 말이오. 제 중심으로 살기를, 저를 위주해서, 저를 위주해서 살기를  좋아한다 그거요.

 보면 사람들을 참 자기 중심으로 사는 이것이 원수인 줄 알고 자기 위주로 사는  것이 원수인 줄 알고,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위하지 안하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위하고, '자기 위주로 하는 이것이 원수다. 자기 중심으로 하는 것이  원수다' 이걸 원수인 줄 알고 이놈을 죽이기 위해서 일생 동안 노력을 해야 그게 참  죽어질까 말까 하는 이런 것인데 자기 중심 위주를 죽이려고도 하지 안하고 지금도  자기 중심 위주로 살아서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중심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날  때부터 이게 있습니다. 자기 중심 하는 것을 좋아해서 자기 중심의,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모든 사람을,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또 나도 나를 중심으로 할라고, 나를 위주를 할라고 애를 씁니다. 나도 그렇지,  자꾸 이래 놓으니까 자기 중심 이놈만 자라고 이놈만 튼튼해지지 자기 중심을  죽인다는 것은 이거는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번연히 옳아도 자기 중심을  자기를 꺾을라 하면 안 돼 버립니다.

 이래서, 내가 어제 아침에 여기 저 뭐고? OO이 왔어? 손들어 봐. 요새 새벽기도  인도하는 O 뭣이 없어? 그랬지? 어제 인도했지? 어제 아침에 인도했지? OO  이라든가, 뭐, 어제 설교하는 가운데 내가 그 매력을 느낀 것은, 저거는 뚱뚱하이  저거는 만날 뼈도 없는 인간같이, 마누라는 사랑하고 아이는 잘 봐요. 그라고 또  주일학교도 잘하고, 주일학교 몇등이제? 예? 삼등? 그래 놓으니까 내가 그렇게 보들  안해요. 그렇게 잘 보들 안해.

 저거는 그저 저런 건데. 사람은 좋기는 좋다만, 저게 교역자 목표를 하고 원하기는  원하는데, 저거 마누라는 내가 신앙이 좋은 줄 알아요. 저거 마누라는 신앙이 저거  남편보다 나아요. 저거 남편도 신앙이 좋다고 O 권사님이 자꾸 그래 쌓는데. '그게  무슨 신앙이 있겠나?' 그저 좋은지 안 좋은지 저게 뭐인고 해서 시켜 보라 했어.

어제 아침에 처음으로 설교를 했어요.

 하는데, 설교하는 가운데 제일 내가 매력으로 느낀 거는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우리는 꺾어야 되지 자기를 꺾지 안하면 안 됩니다. 어디서든지 자기 꺾기를 우리가  얼마나 힘을 써야 되고 자기 꺾을 줄 알아야 된다.' 자기를 꺾어야 된다는 그것을  보니까 말을 하는데 그거 깨달았어. 깨달아 자기를 꺾을라고 애를 써.

 그러니까, 자기를 꺾으니까 그게 다른 사람 보기에 등신 비슷하고 이래도 오래  동안 겪은 그 회사에서는 좋다고 그 사람을 아주 참 아주 신임을 해 주고 이러니까  '아, 저게 자기 꺾어야 된다는 그걸 알았구나' 그래서 아, 저게 괜찮다.' 가르치는  거 보니까 제법 괜찮게 가르치요. 그래서, '요런 것들만 촐촐 추리면 이제 세계를  구원할 수가 있겠다.' 세계를 구원할 수 있겠다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설교를 모두 시킨 게.

 그래서, 내가 그것들을 좀 시키면 이거 차차 되기도 되겠고 좋겠는데도 내가  욕심이 들어서 안시킵니다. 왜? 내가 병들어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살려 주셨는데,  이렇게 살려 주셔 가지고 지극히 거룩한 강단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는데  이 생명의 말씀을 내가 전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면 내가 전할 수  있는 이 기회에 이 권세를 뺏기니까 이것 참 이거 안된다 이래서 안 뺏길라고 이래  하다가 어쩌다가 이래 한번씩 이렇게 하는데, 서부 교회 강단에서 이 권세를 뺏드는  그걸랑 하지 말고,  이제 여기 중간반이 왜 좋으냐? 중간반 반사가 왜 좋으냐? 좋은 것은, 하루 몇  번이든지 설교할 수 있습니다. 또 남권찰이 뭣 때문에 좋으냐? 남권찰님이 그래  좋습니다. 이거는 뭐 자기는 설교할 사람이요 그 밑에 있는 양떼는 설교 들어야 될  사람이니까 딱 이게 벌써 멤버가 짜여 가지고 있다 말이오. 조직이 딱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주일학교 반사가 뭐가 좋으냐? 남녀 권찰이 뭐가 좋으냐? 반사도 자기는 자기 맡은  학생들에게는 내가 설교를 해야 되고 또 그것들은 설교를 들어야 되도록 하나님이  딱 만들어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일을 하다가 점심 시간이라도 그만 설교하고 싶으면, 설교하고 싶으면  그만 쫓아갑니다. 쫓아가 가지고 만나 가지고 '야,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여기 보자.' 한 서넛 모아 놓고 '이렇고 이렇고' 설교를 실컷 할 수 있다 말이오.

이게 우리에게 특권입니다. 특권. 딱 정해 놨거든. 이런데, 이제 그게 없는 사람은,  '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고 했으니까 나는 어디든지 할 수가 있다.'  이러니까, 그만 일을 하다가도 마음이 쑥쑥 하이 이러니까 아무래도 이거 좀  증거를 해야 되지 이 권위를 안 쓰면 안 되겠다 싶으니까 점심 시간에 점심은 그만  급하게 둘러 마시듯 먹어 버리고 난 다음에, 기도하고 안 체하게, 소화 잘되게 해  달라고 하고 둘러 마셔 버리고 그만 그 시간에, 이십 분 있는 동안에 막 쫓아가서  이 집에 가 가지고 '예수 믿읍시다' 자꾸 이라면, 그라면 욕을 얻어먹어도, 욕  얻어먹어도 또 전하고 욕 얻어먹어도 또 전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 해서 이렇게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할 때에, 이 말씀을 전하면 전하는 그게 무엇이냐?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처음에 무슨 힘으로 전하는 것입니까? 그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자, 요한일서 5장에 보면 성령하고 진리하고 피하고 있는데, 제일 처음에 말한  것을 뭣을 말했지요? 피를 말했오, 진리를 말했오. 성경을 말했오, 뭘 말했오? 제일  처음에 무엇이지? 성령. 제일 처음에 성령이라. 또 두 번째는? 물, 또 세 번째는?  피. 이래 돼 가지고 있어. 이거 거꾸로 말한 거라. 알겠오? 거꾸로 말했는데, 이제,  왜 거꾸로 말했느냐? 제일 완료는 성령이 와 가지고 완료한다 말이오. 성령은 완료  작업할라고 왔어요, 제일 처음에 이거 시작하기는 무엇이 시작했습니까? 피가  시작했어. 그 다음에는 진리가 시작했어. 그 다음에는 성령이 시작했어요.

이랬는데,  그러면. 이 세 가지가 들어서 탈색을 시키고 염색을 시키는데, 우리가 성경은 다  말해. 성경은 영생하는 말씀인데, 성경은 영생하는 말씀이라서 책 중에는 성경이  제일이다, 또 성경을 제일 두려워하고 성경을 제일 열심히 보고 성경을 제일이라  이래 가지고 하는데, 어떤 사람 있다가 '에이, 성경 그거는 전부 거짓말만 주 모아  놓은 아무짝도 못쓰는 책이다' 이라는데, 성경을 어떤 사람은 제일이라 존귀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성경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래 여기고 이라는데, 성경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여기고 '성경은 거짓말이다.' 성경을 미워서 성경을 불에  태우고 싶고 '성경 저거는 없애 버리면 좋겠다' 이렇게 성경을 싫어하고 성경을  미워하는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며, 성경이 제일 귀하다 좋다, 성경이 제일 참  권위 있는 말씀이요 예수님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을 뭐라고 말했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은' 예? '영생이라.'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이라 이랬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말씀을 제일 이렇게 권위 있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중에도 성경 말씀을 제일 귀하게, 덜 귀하게, 아주 대립으로 이래  하는 그게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이 와 성경을 제일 귀하게 여겼느냐 하면 예수님은  이 피의 주인이라. 알겠습니까? 예수님 이, 이 피를 만드신 이가 주님이시라.

주님이 이와 같이 지금, 주님은 피라. 피를 만드신 이가 주님이오. 알겠습니까? 이  세 가지 대형 대행 대화친을 만드신 것이 예수님의 피라.

 이러기 때문에, 피가 주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을 제일 귀중히 여기고, 그  다음에 말씀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이오?  예수님은 피의 주인공이요 이분이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공로를 만들었다  말이오. 이랬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귀중히 여기고 덜 귀중히 여기는 그  사람은 그 원인이 어디 있소? 어디 있어? 대답해 봐. O장로님, 문제 내놔도 다 낙제  할세?  예수님이 말씀에 대한 가치를 제일 많이 알았습니다. 그분은 피의 주인이라 피의  주인. 그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 말씀에 대해서 가치와 권위성을 더 많이 여깁니까?  그 원인이 뭣 때문에 그래 됩니까? 예수님의 피 때문에 그렇습니다 알겠습니까?  피의 공로의 은혜를 많이 입고 적게 입고 모르는 사람, 피와 상관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우리는 성경을 볼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습니다. 이 말씀이 만물을 심판할 말씀이니까 그까짓 거 학교에 가 가지고 대가리  아파서 공부할 게 아니라 이 말씀을 통달해서, 왜? 이 말씀이 최고로 인류를 심판할  말씀이기 때문에, 법칙이기 때문에 이 말씀의 법칙만 공부해서 여기만 맞춰 놓으면  심판 문제가 없지.

 또 하나님께서 땅 위에서 가치 있는 생활 영생이 되는 생활, 영원히 멸해지지  안하는 생활, 완전한 생활. 이는 병들어 쇠해지지 않는, 낡아지지 안하는 거 전부  좋은 거 완전한 거 영원한 거 또 변치 않는 거 이런 것은 다 뭣대로 한 것입니까?  뭣대로 한 것이 이와 같이되는 것입니까? 저 O선생, OOO장로 아들. 뭐대로 한  것이오? 예? 진리? 엉뚱한 소리, 말씀대로 한 거. 이 말씀대로. 내나. 왜 연관성을  그렇츰 몰라서, 사람들이 그렇게 적응성을 모르냐 그 말이오. 엉뚱한 짓 모두 하고  있으니 머리가 모두 둔해 그래.

 이 말씀대로 한 것만 남아 있습니다. 알겠오? 이 말씀대로 한 것만 완전하고  말씀대로 한 것만 영원하고 말씀대로 한 것만 변치 않고 말씀대로 한 것만  하나님께서 다 환영해서 보배를 하늘나라로 올리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에  가면 이 말씀대로 된 것만 '합격 합격' 자꾸 영원 무궁 세계로 옮기고 이 말씀대로  한 것 외에는 공자 석가모니 누구 누구 세계 과학자 하나도, '다 불살라라. 쏵 태워  버려라.' 영원히 불 탈 것만 가득히 찬 그것 있고, 이 말씀에 있는 대로 한 것만  타지 안하고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영생이 되어지는 것이니까, 자, 이 책  외에 존귀한 게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런데, 이 말씀의 가치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은 이 말씀을 아주 제일 미워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상관이 없는 사람은 이  말씀과 상관이 없고, 예수님의 피를 미워하는 사람은 이 성경을 제일 미워하고,  예수님의 피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성경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피의 공로는 내 전부  다 하는 사람은 이 성경은 내 전부 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과 물과, 물은 진리를 말합니다. 이 성경 말씀을 말하는거라.

물과 피 이 세 가지인데, 처음에 성령 말했지 물 말했지 피 말했지 이랬는데, 실은  이랬으나 이제 꺼꾸로 말한 것이라. 거꾸로 말한 거, 순서로 말하면 이제 꺼꾸로라  그 말이오. 제일 처음은 예수님의 피공로요, 예수님의 피공로요 그 다음에는 진리요  그 다음에는 성령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공로는 우리가 다 입었지만 예수님의 피공로를 입은 것 만치,  예수님의 피공로의 은혜가 내게 오는 것만치 성경을 볼 수 있고 성경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듣는 것도, 많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여기 와서 성경 말씀  듣는 것도 예수님의 피의 은혜의 도움을 입은 것만치 여기 와서 듣게 되고 이 피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은 여기 못 옵니다. 옷 오는 것은 예수님의 피의 은혜가  그에게 빈약해 그렇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래서,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는 벌써 예수님의 피의  공로는 내게 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과 물과 피는 이 셋인데  하나라 이렇게 했습니다. 이 셋 이 탈색을 합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피공로를 가리켜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참된 음료수라. 이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이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겠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라 말은, 예수님의 피와  살은 인격의 양식입니다. 우리 인격의 양식. 우리 고기 덩어리의 양식이 아니오.

고기 덩어리 양식 같으면 예수님의 참 피를 마셔야 되겠지만 그는 인격의 양식,  인격의 양식, 예수님이 대속하신 그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그 공로를 사실을 내가  생각하고 인정할 때에 내 인격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 인격은 살이 찌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생각하면 성경과 가까워지고 성경과 가까워지면  그 다음에 뭣 들어옵니까? 예수님의 피가 먼저 일호로 들어오고, 예수님의 피를,  '나는 구속받은 자라. 나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자라. 나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 자.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 또 영생을 받은 자라, 나는  새사람이라, 나는 천국 시민이라. 나는 특수인이라 이게 다 뭘로 된 것입니까?  예수님의 피공로로 됐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공로를 생각해서 예수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나에게  돼진 이 사실을 내가 생각할 때에 그때에 성경이 보고 싶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을 볼 때에 그냥 '성경이 있으니까 한번 보자' 그래 봐도 좋소.

그래 봐도 그 사람에게 속에 예수님의 피공로가 가서 역사 하는 것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성경 보는 순서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시작해 가지고 성경으로 들어가고  성경으로 들어가 가지고 성령을 만나게 돼야 이게 순서로, 논리적 순서는, 논리적  순서는 이렇습니다. 논리적 순서는 이러나 그만 성경 보면, 성경 보다 보면  예수님의 피공로와 나와 가까워졌고 내가 확신 있게 되고 또 예수님의 피공로와  가까워지는데 따라서 성령의 감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봉독한 이 말씀에 보니까 베드로가 가 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이방인에 전도하는 처음의 시작입니다.- 가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그들에게 말해 줍니다. 대속의 공로를 말해 줬어. 대속의 공로를 말해  주니까 그들이 대속의 공로를 듣는 그 동시에 그들에게 뭣이 왔습니까? 예?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이 오고 나니까 그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깨달음을 가졌다,  방언을 말한다고, 요새 방언 한다고 두두두두 하는 그게 방언이 아니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방언은 어떤 것이 방언이냐 하면 사도들이 설교를 하는데, 그 사도들은  다 유대인이라서 유대 말밖에는 모르는데 그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가도 그냥 유대 말은 못 하고  통역을 해 가지고 이래 말하고 전부 그런데, 통역을 가지고라야 말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이 거기 보면 아주 내가 그때 좀 헤아려 보들 안했는데 열 몇 나라인가  됩니다. 그런 나라의 사람들이, 그런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 제자들은 유대인으로  유대 말로 하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저거 말로 다 들려. 다 들린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상하다. 저 사람이 현재 유대인인데 우리 나라 말을 모를 건데 우리  나라 말로써 저렇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네?' 모두 이래 가지고 그때 은혜를  받았다. 그게 방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방언이라고 하면 무엇이 방언인고 하니  일본 말은 일본 나라 방언이요 한국 나라는 한국 말. 한국 말은 한국 나라 방언이요  미국 말은 미국 나라 방언이라, 미국 그 지방의 말을 방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면 무슨 일하는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을 하게 된다 말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걸 깨달아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높이고 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지 하나님과 떨어지면 망한다 하는 것을 차차  알게 된다 말이오.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알고 온 세상 생활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자꾸 바로 된다 그거요. 이거 참 복잡한데,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 속의 내부를 다 말하면 모르기 때문에 내부를  말하지 못하니까 그저 시키는 대로, 어린 아이에게 기역 자를 말하며 '이게 기역  자이다.' 기역 자 해석을 해 주면 그. 아이가 못 배워요. 못 배우니까, 기역 자  해석을 해 주면 안 되니까 그저 '기역 해 라' '기역.' '요거 기역 자다. 기역으로  기억해라.' '니은' 이래 배워 나가다가 보니까 한글 배우고 마지막에는 한글로 쓸  줄도 알고 써 놓은 걸 읽을 줄도 안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지금  모르면 주입식으로 가지고 그만 기억만 해 가지고 행하면 돼. 또 아는 사람은 거기  대해서 배워서 좀 세밀히 이치를 깨닫고 하면 더 확고하고 견고해지고,  이러니까, 어쨌든지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예수님의 피가 어데 들었습니까? 피가  성경 말씀 안에 들었습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피가 성경 말씀 안에 들었어.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온 것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왔지만 예수님의 피의  공로는 이 성경 말씀 안에 지금 싸여 가지고. 성경 말씀이라는 보따리 속에 싸여  있습니다. 또 보따리 속에 뭐 싸여 있습니까? 영감이 싸였습니다. 영감이 싸여  있소.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만 자꾸 읽고 자꾸 듣고 새김질하고 이라면, 이 말씀  보따리를 열어 놓고 자꾸 자기가, 인격이 먹는다 말이오. 인격이, 무슨 좋은 말은  마음의 양식이 돼지 않습니까? 인격의 양식은 밥 먹어서 됩니까? 무슨 좋은 말이나  좋은 일이나 그런 거 보고 듣고 하면 우리 인격은 소생돼지고 기뻐지지 않습니까?  이러기에,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자꾸 새김질을 이래 하게 되면, 그 보따리를 열어  놓고. 말씀을 자꾸 읽고 하는 것은 보따리를 열어 놓고, 성경 말씀을 자꾸 읽다  보니까, 읽다 보니까 뭣을 공부한 게 됩니까? 예수님의 피를 공부한 게 됩니다.

성령을 공부한 게 됩니다.

 이러니까, 말씀을 자꾸 읽고 듣고 설교를 듣는 거는 듣고, 그러면, 성경 말씀  읽다가 또 마음에 무엇이 좀 둔해지는 상바르거든 설교 말씀을 들으면, 설교록을  읽으면 설교록에 또 해석해 놓은 것이 있으니까 단맛이 있으니까 또 그라고 또  묵상을 하고 이렇게 여러 가지로, 장 떠먹고 국 떠먹고 밥 떠먹고 하는 거 모양으로  자꾸 성경을 펴놓고 보따리를 펴놓고 이렇게 먹다가 보면 나중에 배부르기는 뭘로  배부르냐? 예수님의 피로 배부르고 성령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자꾸 피가 들어오지  성령이 들어오지 진리가 들어오지 이래 들어오니까 이 셋이 합해서 무엇이라  했습니까? 어두움이라 했오 빛이라 했오? 예? 이 셋이 뭐입니까 합해서? 빛,  빛이니까, 우리 속에 어두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이 어두움이 이 셋이 자꾸  들어오니까 이 어두움 이것이 삭아지겠오 안 삭아지겠오? 삭아집니다. 이게  삭아져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거는 해석을 해서 아는 사람은 이 해석을 '아, 이러니까  이렇다 이렇다' 이걸 알지만 여러분들은 이 세밀한 해석을 들으면 아직까지 좀  어려서 모른다 그 말이오. 모르니까, 그래 못하거든 성경을 자꾸. 비유로 자꾸 이래  말해 주는 것인데, 성경을, 성경 보따리를 턱 펴놓고 말이오. 책을 보따리라 하는  게 아니고 예를 들면 성경이라는 이 말씀의 보따리를 펴놓고 자꾸 읽어요. 읽고  늘고 새김질하고 설교록도 읽고 자꾸 이렇게 하면 차차 차차 무엇으로  배불러집니까? 뭐로 배불러져요? 피로 배불러지고. 성령으로 배불러지고, 또 진리로  배불러지고 배가 불러집니다. 배가 불러지면 이 진리 성령 피로 강건해집니다.

양식이라고 하지 안했오, 양식? 이래 먹으니까 몸에 배가 부르니까 든든하고 허리  힘이 나고 마음이 든든한 것이 힘이 납니다.

 자, 그라면 무엇이 물러갑니까? 악령 악성 악습이 물러갑니다. 이러니까 우리  마음이 변해 버려요. 우리 마음이 변하고 또 우리 지식이 변하고, 우리 마음이  변하고, 지식이 변하고, 뜻이 변하고, 소원이 변하고, 성질이 변하고, 계획이  변하고, 평가가 변하고, 비판이 변하고 이라니까, 우리의 모든, 이 모든 것이  마음이 다 변해 버립니다. 마음이 변하면 그 다음에 뭣 변해지겠오? 행동 변해지지.

마음 변해지면 행동 변해 지지. 마음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그러면, 변하는 것이  잘 변해지요 나쁘게 변해지요? 예? 잘 변해지지.

 그러기 때문에 이 변하는 걸 가리켜서 성화라, 거룩하게 화해져서 성화라,  거룩하게 화해진다. 자, 마음이 변해 몸이 변해, 이러니까, 몸이 행동이 변하는  것이지. 마음이 변해 행동이 변해. 그러니까 그 다음에는 무엇이 변합니까? 해 놓은  일이 변하지. 안 그래요? 해 놓은 일이 변해. 해 놓은 일이 변하다니? 해 놓은 일이  전부 복 받을 일 이지. 전부 성공할 일 이지. 실패할 일은 하나도 없지.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돈벌이 할라고 뭐 할라고 야단지기는 거보다 제일 우리가 먼저 착수해  가지고 힘쓸 일이 뭐입니까? 보따리 펴. 자꾸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이것부터 해요.

식구야 굶어 죽든지 말든지, 너도 천국 가야 되고 나도 천국 가야 되겠으니까  우리가 첫째는 변화가 돼야 되지, 마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돼 가지고는 만날 그놈  소원대로만 하니까 그놈 소원은 우리를 망치는 것이 그의 목적이기 때문에 망쳐질  일만 생각하지 하루 종일 자꾸 생각해도 머리만 앓고 골치만 앓지요. 암만 해야  망할 일만 자꾸, 생각도 망할 생각, 욕심도 망할 욕심, 성질도 망할 성질 전부 망할  것뿐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그거 치워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읽고 듣고 새김질하고 자꾸  이라니까 그게 진리 아니오? 진리가 들어오니까 진리가 들어오는 데 진리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진리 따라 들어오는 거 보니까 따라 들어오는 것이 예수님의  피로, 처음에 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왔지만 예수님의 피도 따라 들어오지 영감도  따라 들어오지. 성경 한참 읽다가 보니까 그만 예수님의 피공로 성신의 감화 진리  이 셋으로만 가득 차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것은 쏵 다 물러가고 없다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의, 자, 언행 심사가 누구를 닮았오? 하나님 닮았지, 진리 닮았지,  피흘려 대속하신 예수님 닮았지. 이러니까 그것이 우주의 주인공이 되겠오 안  되겠오? 성공이 되겠오 안 되겠오? 예수님의 말씀만 청종해도 죽은 자도 살아나고  병신도 성해지고 고기도 잡히고 오병이어로 배불리기도 하고 다되는 거 아닙니까?  이게 믿는 자만이 되지 안 믿는 자는 안된다 말이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이 사실을 믿고 그대로 해 나가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처음에 은혜 받고 난 다음에 그가 그렇게 그랬지만  아라비아 가 가지고 삼 년 동안 거기서 굶고 먹으면서 하나님하고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삐뚤어진 것을 다 해결을 짓고 삼 년만에 아라비아에서  나왔습니다. 나와 가지고 그분이 일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만 자꾸, 다른 거 아무것도 없어. 그만 신구약 성경만 들고,  찬송은 좀 노래 부르고 싶으면 또 찬송하고 이래 가지고, 만일, 설교록은 많으니까  설교록은 그만 안 들고 가도 돼요. 성경 말씀, 성경 찬송 둘만 딱 들고 또  무겁거들랑 찬송 내 버려 버리고 그만 성경만 들고 가도 돼, 성경만 들고 가 가지고  그만 바울이 아라비아 삼 년 모양으로 어디든지 가 가지고 성경 말씀만 그만 그저,  내가 그때 여기 저 OOO권사님 아들 OOO, 그 사람 사장이라. 모두 부르기를 나가면  사장으로, 자기 회사 사장이니까, 이런데, 언제 부도가 나 가지고 이러기 때문에  '가거라. 너는' '어째야 되겠습니까?' '다 저질러 놓고 어째야 되기는 어째 돼?  그러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가?' '하겠습니다.' '그러면 해 봐라. 하면 되지. 저  대구 기도원에 가 가지고 네가 신구약 성경을 열 독을 읽고 오너라.' 이러니까, 한  시간도 만날 생각하고 하는 이게 열 독 읽어라 하니까, 열 독을 읽어야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언간히 다 죽지는 안할 것이고 그놈이 육 대 사(6 : 4)가 될 거라  말이오. 알겠오?  여기 모두 국회의원들 다수, 종다수 가결하는데 열인데 여섯만 되면 이기는 거라.

너이니까, 육 대 사면 이기지 안해요? 이것 모양으로 말하자면 피와 성령과 진리가  조금 더 세력이 강하고 악령 악성 악습이 조금 세력이 약해지도록 하려면 네가  신구약 열 번 읽어야 된다. 이랬디만 이게 다섯 번 읽고 나니까 '이제 되겠습니다.'  그만 그렇게 죽자껏 지금 어데 가서 죽을까 싶어서 겁이 나고 지금 하던 그게  말이지, 잡혀가면 지금 어떻게 할까 그래 겁나던 것이 얼마나 간이 커졌든지 '이제  괜찮습니다. 됐습니다. 이제 나가도 되겠습니다. 이제 나가도 되겠습니다.' 이제 다  해결, 앉아 들으니까 해결 다 돼 버렸거든. 들으니까 해결. 생각해 보니까 해결이  다 됐거든. 이래 나온다 하기 때문에 '안된다. 너는 지금 다섯 번밖에 안 읽었기  때문에 이제 반밖에 안 됐으니까 네가 또 그라면 다시 재판한다.' 다섯 번 읽고  나왔어. 나와 가지고 이래이래 하다 가서 지금 고생 많이 하고 있지. 지금도 딴 거  없어. '사업을 해 가지고 뭣을 빚을 갚겠다 어쩌겠다' 백 날 해 보지, 되는가. 절대  안 됩니다. 절대를 붙여요. 안됩니다. 안 돼. 될듯 될듯 하고,  그래 그걸 가리켜서 '노고지리 개 속인다' 이래. '노고지리 개 속인다.'  노고지리라고, 저 시골 가면 노고지리라고 새가 똑 이만한 게 있습니다. 이만한 거  그게 내나 히바리라고 하고, 노고지리라고도 하고, 아, 종달새, 종달새라고 하고,  종달새라 하는데. 이게 조그만한 게 이래 가지고 날면서, 날아도 똑 개가, 땅에서  한 서너 자, 이 지금 강단으로 말하면 한 이만치 떨어지게 이래 납니다. 이래 날아  가지고 그 날개를 나불나불나불 거리니까 개 이놈이 그거 그만 팍 물면 될  상바르거든. 이게 또 멀리 안 날아가요. 물릴듯 물릴듯 나불나불 그렇지만 훅하면  그놈이 날아가니까 이런데, 개 이놈이 그거 물면 되겠다고 이래 가지고 막 달려들어  이러면 쌕쌕 혀를 빼 물고 이래 야단지겨도 이래 자꾸 이라다가서 또 지금 훅  올라갔다 또 거석 하면 밑에 내려가고, 곧 물릴 듯이 날아가요. 이래 가지고 한  시간만 그라면 그 개 죽입니다. 한 시간만 그라면 그 개가 죽어요, 그만. 나중에  가서는 축 늘어져서 그만 못 따라가요. 인제는 옆에 와 가지고 암만 이래도 안  따라가. 이제 늘어져서. 그래 '노고지리 개 속인다.'  마귀가 모두 속여서 될듯 될듯 하니까 되겠다 되겠다 야단을 지기고 이라지만 암만  해 보지 잡혀지는가. 안 돼. 헛일이라. 잡혀졌다고 하면 그거는 독약을 먹었어.

잡혀진 그게 뒤에 확 게워 내고 또 죽을 지경이라 알겠어?  이러니까, 그저 주의 음성 들으니까 주관적 평안이 왔다, 주님 모시니까 풍랑이  잔잔했다 이 말씀 이것을 잡고 놓지 안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모두 다 그런 사람  있으면 좀 어디로 그만 산으로든지, 쌀 한 되만 싸 가지고.

 손 양원 목사님이 그렇게 유명한 목사님이 된 것은, 그랬오. 그분은 쌀 한 움큼 싸  가지고 갔는데, 한 움큼, 한 되 안돼. 한 되 쌀 라면 한 달 가야 돼요. 한 움큼만  이래 딱 싸 가지고, 수건에 싸 가지고 그만 담요 한 장 들고 그만 어디로 가 버려.

어데 가 있는지 몰라. 어데 가 가지고 그래 한 주먹 가지고 가면 한 열흘 먹고  온대로. 이거 가지고 거석하면 또 입에 넣어 가지고 꼭꼭 씹고 이래 가지고 또 말씀  듣고 이러니까 빠짝 말라 가지고 오지.

 후란시스라는 그 성자도 후란시스가 되는 데에는 삼 년을 가 가지고, 참 수도원에  가 가지고 이래 있었는데 돌아오니까 뉘가 알아야지? 보니까 어떻게 말랐는지.

마르고 귀신같다 말이오. 귀신같아서, 저거 동네 가니까 저거 친구들 또 저거  동네의 모두 아이들 모두 다 삼 년이니까 얼마 됐어요? 삼 년이니까 얼마 안  됐는데, 오니까 '아이구 저기 귀신 온다' 이라면서 전부 돌을 던져 가지고 못  오구로, 소문이 귀신이 여기 들어온다고. 원청 얄궂이 말라 이래 놓으니까 귀신  들어온다 이래 야단지겼는데 그게 후란시스라. 나중에 자꾸 말을 하니까, 내가  후란시스라고 이래 말을 하니까 '너 임마 왜 그래 말랐노?' 도를 받고 난 다음에  그래 가지고, 빠짝 마르게 그래 가지고 있으니까 저거 부모네들도 보고 몰랐어요.

이라고 난 다음에 그분이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하고 이와 같이 말씀을 인해서, 딴거  아무것도 안 들었오. 말씀만 가졌오.

 이러니까, 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진리로 충만하니까 그 사람의 생애는  완전히 변화돼서 성자 쳐 놓고 많은 성자가 있지만 후란시스같은 그런 성자가  없습니다. 그런 성자가 없어요. 그분은 어디든지 가면 모든 짐승들, 호랑이고  여우고 노루고 이런 것이 막와요. 위에 와 가지고 막 옆에 온 몸에 지시 붙고 이래  가지고 있고, 새들도 전부 머리고 몸이고 막 와 가지고 이래 앉아 가지고 이래  지글거리고, 그분은 모든 동물과 만물들이 그렇게 다 존대를 했어. 후란시스 전기를  보고 저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분들 다 이 말씀 하나로 녹아져 버렸어. 이러기 때문에, 말씀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해서, 저는 그런 사람 모양으로 그렇게 못 하고 말았는데 참 원통합니다.

지금은 성경을 볼라 해야 성경을 볼 수가 없어. 볼 시간도 없고 이런 거 저런거  자꾸 이러니까, 설교해야 되지 설교 준비해야 되지 또 자꾸 전화 와서 사건이 있는  데 그 사건을 해결 안하면 안 되지 이래 놓으니까 이런데, 그때는 성경을 좀 많이  봤더라면 좋은 건데, 그때 성경을 봐서 그때는 거의 성경을, 신구약 성경을 절수는  다 못 외워도 거의 대충 이래 글자는 틀리기는 틀려도 외울 만치 외웠는데 다 잊어  버려 버렸오. 지금은 성경을 어데 있지는 깜깜해 모르겠오. 이래 놓으니까 이거  나는 이거 부산 와 가지고 영 목사 버려 버렸어. 영 나는 부산에 하나도 정이 안  들어요.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 이것뿐이고 이래 가지고 아마 여기서 복음을  전하니까 무엇이 됐다 싶은 그것뿐이지 아, 주 와 가지고 성경 많이, 성경 다 잊어  버렸지 주님하고 밀접한, 그때는 잘 알았어요.

 제가 8.15 해방된 것도 제가 넉 달 전에 알았습니다. 넉 달 전에 알아서 이북은  저래 되고 삼팔선 갈라지는 거 말하고, 제가 책에다 써 놨어. 내가 교인들에게  선언했어. '지금 넉 달만 지나면 이제 해방이 된다. 해방이 되는데 이 삼팔선이  갈라져 가지고' 삼팔선이라는 말은 안 하고. 그건 몰랐고, '가운데가 갈라져 가지고  이북은 깜깜한 암흑이요 남한은 광명으로서 이와 같이된다.' 이런 것도 하고 이래  무엇이든지 이랬는데, 지금은 영감이 어떻게 둔해졌는지, 둔해져서 요새는 지금  내가 인제 아프고 난 다음에 아프면서 좀 그때 결심하기를 '내가 이제는 성경 읽는  거 기도하는 거 또 전도하는 거' 설교 말이오. '요 세 가지만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만 하기로 작정을 했는데도 엉뚱한 일이 자꾸 다된다 말이오. 엉뚱한 일이 그게  다 나를 속이는 것이고 날 다 죽이는 거라. 암만 필요한 거 같아도 그게 필요가  없는데, 이 세 가지만 해야 되는데. 세 가지만 해야 될 줄로 알면서도 안된다  말이오.

 누구든지, 그저, 여러분들, 성경을 읽는 이것만 자기 할 일로 알고 하면 얼마 안  가서 광명이 옵니다. 우리 속에 우리 망칠 일이 속에 가만히 들어, 병이 들어  그렇지 이거 병만 다 치료하면 우리가 날아다닐 건데.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성경 읽고 새김질해야 됩니다. 성경 읽다가 맛이 없으면 설교록 읽고  설교록 읽다가 맛이 없으면 묵상하고 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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