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의 기념생활

 

1988. 12. 4. 주일오전 

 

본문: 누가복음 22장 15절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마태복음 27장 46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고린도전서 11장 23절∼26절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연경회 광고입니다. 연경 통신과를 수료하신 분들께서는 예배 후 연경실에서  수료증을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수료하신 분의 명단, OOO, OOO, OOO,  OOO, OOO, OOO, OOO, OOO, OOO, 다른 분들은 그전에 다 수료를 했고  이분들은 이번에 이제 다 마쳐서 수료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연경실에서 그  실장이 책임을 잘 충실히 해서 우리 교회서는 신구약 성경 통신과를 마친  사람들이 많이 있게 됐습니다. 통신과는 초등강과 고등강이 있습니다. 초등강은  신구약을 다 읽으면서 거게 묻는 말을 답을 하는 것인데 대개 한 권,  마태복음이면 마태복음 그런 한 권에 문제가 한 오십여 문제 됩니다. 그것을 다  자기가 성경을 읽고 답안을 쓰고, 그게 초등강이고 또 고등강은 그것을 자기가  외워 가지고 가 가지고 강사 앞에서 다 낱낱이 외워서 통과할 때에 고등강  졸업을 합니다.

 그러면 초등강과 고등강을 마친 평신도들이 우리 교회에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실 것이고 아주 큰 축복의 일입니다. 여기 장로님들도  성경에 뭐 있는지 모릅니다. 성경 권수가 그저 육십육 권 이라 이렇게만 알고  있지 찾으라 하면 순서도, 잘 못 찾고 집사들도 그렇고, 이런데 이 성경을 이렇게  열심히 공부 안 하면 안 됩니다. 아주 연경회에서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또 우리가 그 날과 그 시는 알지는 못하지마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우주는  다 불타 버립니다. 뭐 큰 나라도 작은 나라도 잘난 자도 못난 자도 옛날 홍수  때에 다 홍수에 다 매몰돼서 몰사한 거와같이 이렇게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전체는 불로 소멸되는데 다만 의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이래서,  의인은 누가 의인인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이  의인입니다.

 이런데 언제가 종말인지 모르니 우리가 전도한다고 해도 그저 터먹터먹이  그렇게 하고 전체를 전하지를 못했습니다. 그 6·25 때에 그때 다 이제는 죽는 줄  알았고 뭐 살 희망은 없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랬는데 그때 우리 속에서 자백  나오기를 '어쩌든지 살려 주시면 호호가가에 다니면서 복음 전하겠습니다.' 하는  그런 것을 다 스스로 본능적으로 자백을 한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래서 오늘도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만일 불에 탄다면, 우리가 이 전해 주면  그 사람이 살 터인데 이 영생과 천국을 가로맡아 가지고 우리가 전하지  아니함으로 그들이 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런 큰 구원, 생명과 영원한 평강 이  천국을 받아 놓고 전해 주지 않는 이 죄가 우리가 얼마나 클 것이며 그 일이  얼마나 우리가 도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죄가 되겠는가 하는 그것을 생각해서,  그전에도 우리 서부교회서는 이 시내에서 유별하고 전국에 유별합니다.

 이래서 작년에도 전도지 백만 장을 박아 가지고, 뭐 그 일시에 한 그저 형식에  지나지 못한 그런 일이지마는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해마다 제가  여기 온 이후에 탄일 축하는 대개 이 전도하는 것으로써 거의 그날에 하나님의  성탄을 축하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이랬는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저에게 좀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보여 주시는 일이 있고 이래서 아무래도 이 전해야  되겠다 해서, 부산 시민이 삼백육십오만이 작년에 계산인데 삼백칠십만 될  요량하고 삼 백칠십만 장을 전도지를 박아 가지고서 이것을 탄일 안에 그렇게  우리가 전하려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전도비가, 전도지 박는 돈이 얼마나 들겠는가 이렇게 계산을 해 보니까  천삼백만 원쯤 들겠다고 그렇게 됐었습니다. 이래서 천삼 백만 원만 하면 되니까  그 이상은 필요가 없으니 천삼백만 원이 오는 데에는 순서대로 먼저 온 것을  받아서 여기 쓰고 남은 것은 받지를 못하겠다 그렇게 했었습니다.

 했는데 어젯날로, 어제 아침까지에 들어온 것이 천사백구십 얼마가 들어왔는데  OOO권사님의 낸 것은 다 내지 못하고 백구십 얼마는 떼놓고 한 백 얼마만  거기에 들게 되고 나머치기는 도로 반환해 드릴 것입니다.

 이랬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뒤에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그렇게 관심이 없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뭘 가지고 우리가 배짱을 내고 하나님 앞에 달라들  것이요? 잘나도 소용 없고 뭐 건강해도 소용 없어. 이래서 그래 인제 내지 못해도  이 전하기는 알뜰히 전하도록 합시다.

 제가 어제 부산 시내에 있는 동을 물으니까 백사십 동? 이백십칠 동인데  그동안에 좀 늘고 해서 아마 이백 한 사십 동 안 됐겠는가 그랬는데 아직 그저  확실히 모릅니다. 그래서 그걸 월요일날 똑똑히 알아 가지고 이럴 터이니까 여게  있는 가운데에서 나는 어느 동리를 맡아서 전하겠다고 구역장들이 그렇게 짜서  자기네들이 나는 뭐 대신동을 맡는다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무슨 저게 무슨  두구동을 맡는다든지 김해 무슨 동을 맡는다든지 그 한 동리를 자기 몇이 단합해  가지고 가서 맡아서 전하겠다 그렇게 그 신청을 하시면 그대로 허락해  주겠습니다.

 이러니까 모두 자기 구역이 몇 사람이 되든지 '우리 구역에는 어데 가 전하자'  이래 가지고 자기 구역끼리 해서 책임지고 그렇게 전하도록, 전하면 그날 전하는  게 아니고 이제 전도지가 월요일부터는 나옵니다. 나오니까 가지고서 한 달 동안  전하면서 좀 알뜰히 전해서, 호수는 그렇게 안 되니까 아마 한 집에 그저 몇 장씩  거듭 가도 될 터이니까 이렇게 해서 한번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구원 소식을  그래도 우리는 큰 구원 얻었는데 이 구원 소식을 전하기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남의 생명을 맡은 셈인데, 맡아 놓고 무관심하고 이래 있다가는 불심판이  올 때에 그때에 우리가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불 속에 안 들어가고는 안 될  것입니다. 그때 피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죄를 생각할 때에 마땅하다고 불  속에 자원해 들어갑니다.

 그러고 오늘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우리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기쁨 없는 생활은 못 합니다. 기쁨이 없는 생활은 다 비정상의 생활이지  그게 정상의 생활은 아닙니다.

 제가 그때에 내원사에 가서 그 입구에 어떤 여관에서 한 달 동안을 거게  있으니까 거게 유흥지라서 오는 사람들이 그때 많았습니다. 그래 내가 거게서  앉아 느끼기를, 오는 사람마다 모두 그날은 기뻐서 뭐 술먹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또 기뻐합디다. 그때는 모두 기뻐하는 사람틀만 거게 옵니다.

 그래 제가 느끼기를 '사람들은 무슨 기쁨이든지 기쁨이 있어야 되지 기쁨이  없이는 못 산다'하는 것을 저도 느꼈습니다. 물론 기쁨 가운데는 기쁨이 즉시  슬픔되는 것도 있고 슬픔과 고통이 너무 극도로 심해서 발광증으로서 그와같이  기뻐하는 그런 것도 있겠고 어쨌든지 사람은 기쁨이라는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래서 모든 철학자들의 그 철학을 통계를 하면 그 결론은 다 쾌락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쾌락이라 하는 것이 모든 철학자들의 총 결론입니다. 이래서  이렇게 모두 다 기쁨을 가지고 저렇게 살고 있는데 믿는 사람들은 기쁨이 없기  때문에 그거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어깨가 축  쳐져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 그런 소리를 들을 만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쁨이 없이 다 축 늘어져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개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기뻐하는 사람들은 살펴 보면 죄짓는 사람들이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기뻐하는 사람들은 죄짓는 사람 죄짓는 그 재미로, 예수라는  이름은 갖다 붙여 놓고 속으로는 그것을 간판같이 팔아 가지고 오히려 이용해  가지고 죄짓는 행위, 또 천국 지옥 있는데 천국은 가 놨고, 또 영생은 얻어 놨고  하나님 아버지가 됐고, 이러니까 얼마나 든든합니까? 이러면서 생활은 제  욕심대로 마음대로 하니까 그래 기쁜 그 기쁨도 썩은 기쁨 장구 치고 춤추고  술먹는 그것도 썩은 기쁨, 다 그것이 그저 달은 철판 위에 있는 그 곤충이 못  견뎌서 뛰고 굴리는 그 놀음이지 그거 속에 기쁠 것은 없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기쁜 사람도 있고 축 어깨가 처진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처진  사람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주님 앞에 가서 영원히 설 것,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 세상이 언제 불탈지 모르는 것 자기 모든 행한 것은 다 죄뿐인  것,  이래 놓으니까 어깨가 처지고 마음에 항상 안심을 가지고 담대를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살지 못하고 께꾸름하게 이렇게 기가 죽은 그런 생활을 하게 되는 그  속에 쓸모 있는 사람이 더러 있기는 있습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는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가 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저 사람 죽는 걸 생각해 보니까 자기도 반성하니 뭐 어깨가 축  처지지마는 그래도 거게서 얻는 유익이 있고 잔치집에 가면 좋아서 뛰놀지마는  거게서는 허송 세월하고 자기를 모르는 멸망을 자취하는 그런 일들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은 과연 이 쾌락이 없이 살아야 되는가 하는 데 대해서  그때 제가 생각해 봤고 또 종종 생각해 봅니다. 저도 여게 대해서는 장담할 만한  그런 자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 간혹 간혹 그저, 쾌락이 있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살기도 하지마는  가다가는 또 구름이 끼어서 고통이 될 때도 있습니다. 고통은 뭐 세상에서 살고  싶은 고통이나 부자되고 싶은 고통이나 세상 사람이 가진 그런 고통은 제가 믿은  이후로 가져보지를 안했습니다.

 다만 가져보는 것은 너무 나 행한 것이 죄뿐이기 때문에 죄를 이기지 못한 그런  것으로서 고통을 당하는 그것도 비정상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가 있기  때문에 고해서 사유함받고, 사유함받고 깨달아 고한 후부터 범죄하지 안하면  깨끗하게 얼마든지 우리는 살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떻게 살으셨는가? 예수님은 기쁨으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 옥중에서 그가 말하기를, 감옥에 갇혀 가지고 묶여 가지고 있으면  보낸 편지에 '너희는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는 옥중에  있으면서도 자기는 기뻐했고 다른 사람에게 그 계속되는 기쁨을 가져라 하는  것을 그것을 권면했고,  또 주님은 마태복음 27장 46절에 보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실 때에 그때  뭐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고난은 우주적인 고난이기 때문에 그뭐 아프기로  말하면 굉장히 아플 수 있는 그 고통인 것입니다. 신짜의 신경적으로도 아플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의 형을 대신 담당했기 때문에 굉장히 아프신 그런  고통입니다.

 그럴 때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 말로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렇게 하는 뜻입니다. 이것을 이 성구를 사람들이 해석을 할 때에, 주님은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이시고 하지마는 참 이 죽음이라 하는 고통이 심하다. 주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얼마나 어려웠기에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 이렇게 말을 했다고 그렇게  해석하는 신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신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시면서 '어떻게 나를 하나님의 원수인 이 죄인들을  구원하는 이 대속 제물로 나를 쓰셨습니까? 모든 죄인들이 멸망하는 그 멸망을  대신 멸망받아 형벌받고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이 영광스러운 직책, 이 참  깨끗하고 아름다운 직책, 이 존귀한 직책을 어떻게 나에게 맡기셨고 또 이 일이  완전히 완성이 되도록 이렇게 도와 주셨습니까?' 마지막에 죽음으로서 유언 같은,  마지막에 운명하시면서 최후로 찬송하며 기뻐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는 이 노래입니.다. 이거 예수님이 기뻐서 찬송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나 그런 분들도 다 순교당할 때에 기쁨으로, 순교와 같은  그 순교 예비의 고문과 고형을 당할 때도 기뻐했고. 마지막에 운명하실 때는  기뻐했는지 그거는 기록되지 안했기 때문에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이 고문  고형을 당할 때에는 기뻐한 걸 봤고, 또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빌립보 옥중에서  심히 고문과 고형을 당해서 그 참 살 기망이 없는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기뻐서  밤중돼서 기도 하다가 못 견뎌서 기뻐 감사의 찬송을 외쳤을 때에 옥터가  움직이고 죄수들이 다 해방되고 거게 진동이 나고 지진이 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종이요 최고가 되는 십자가에서 모든 택한 자들의 형을 다 대신  맡았기 때문에 공평된 공의의 법에서 그만한 중량이 안 되면 대속이 안 됩니다.

 하나 형의 중량을 대형해야 하나가 대속되고 천 명의 형을 대속하려면 천 명의  형의 고난의 중량을 당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평 앞에서 하시는 것이니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실 때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고통스러울 때에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이렇게 대속의  제물로 이렇게 써 주시고 이 대속하는 이 대속 일을 완성을 하도록 해 주십니까?'  하는 기쁨에 넘친 그 기쁨,  그 기쁨은 아주 육덩이들이 생각할 때에는 '하, 예수님도 참 죽음이 되니까 못  견뎌서 그렇게 했다.' 만일 그들 해석하는 대로 그래 해석을 한다고 하면 그거는  일종의 단단한 원망이기 때문에 원망은 자원하는 대속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우리 대속은 안 됩니다. 예수님은 그만하면 정죄를 받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거는 인간 생각으로 그와같이 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그렇게  기뻐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22장 15절에 '내가 유월절 먹기를 윈하고 원하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유월절은 그것은 하나의 예표의 모형이요 곧 그 떡을 떼는  것은 예수님의 살을 찢어서 우리 대속할 걸 말했고 또 잔을 주어서 포도즙으로  포도잔을 이렇게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예수님의 생명과 피를 주어서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는 것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위해서 대속하셔서 이렇게  우리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를 원하고 원하셨고, 또 우리 대신 모든 의를 더신  행하시기를 원하고 원하셨고,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이것을 어쩌든지  화친시키기를 완하고 원하셨고 이게 평생 소원이었습니다.

 주님의 평생 소원이 무엇이었는가? 유월절 제물되는 것이 예수님의 평생  소원이었습니다. 이 소원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되셔 가지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땅위에 안간으로서 삼십삼 년 사 개월을 지내시면서 이 일을 원하시고  원하시다가 마지막에 이 일이 십자가상에서 완성이 될 때에 최종 완성 단계에 와  가지고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떻게 나를 이 대속의 제물로 나를 이렇게  쓰시고, 대속의 제물로 쓰시고, 무슨 창조의 기관이나 이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는  통치의 권위나 영광이나 존귀의 기관으로 쓰시지 안하시고 이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의 제물로 쓰시고 이 대속하는 일을 완성하기까지 해 주셨습니까?'  하는 그 넘치는 기쁨으로서 마지막에 최종에 이 찬송을 아버지에게 올렸던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이 성만찬을 베풀면서 말씀하시기를, 떡을 주시면서 '이는 내가  너희를 위해서 주는 대속의 살이니 먹을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포도주를  주시면서 또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또 그다음에는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오늘 이 말씀을 봉독하는 제 소원의 뜻은 우리들이 주님이 원하시는 그  소원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우리들이며 그 소원 외에 다른 소원이 무슨 가치  있는 소원이 있을 것인가? 주님이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셨다고 하는 이  소원 외에 우리의 가질 소원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과거에는 진리를 몰랐고, 하늘나라를 몰랐고, 영생을 몰랐고, 하나님의  심판을 몰랐고 만물의 심판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깜깜 어두운 세상에서 먹장  같은 제 욕심만 만족하면 그것이 제일인 줄 알고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래서 '인간의 영광은 다 부끄러움에 있다' 수치스러운 그것만을 영광이라고  그러면 우리 나라에서는 참 좋은 이 자연 계시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온 전국이  부러워하는 그 영광이 그 종말이 다 비참한 것을 우리는 여러번 구경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소원을 바꾸는 것을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전하는 것입니다. 소원을 바꾸자. 우리가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없어질 것, 썩어진 것, 없어질 것 이런 것을 소원하지 말고 주님이 소원하신 이  소원을 우리 소원으로 만들어서 우리도 이 소원 가져 보자.

 무슨 소원? 대형, 대행, 대화친의 제물되고 싶은 소원. 썩을 것을 심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것 심어서 영광스러운 걸로 다시 살고, 약한 것  심어서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 혈육의 것 심어서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사는,  바울이 말하기를 과거에 가치로 여겼던 그런 것은 다 똥오줌과 같이 다 버렸다.

이제는 내 소원이 뭐이냐?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그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고자  하여서 나도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죽음 같은 그 죽음을 죽어-대속의  죽음이지요-대속의 죽음을 죽어 그 부활의 영광에 나도 참여하고자 하는 이것이  일편단심의 소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같은 그런 분들도 그런 소원이고 주기철 목사님 같은 그런 분도  다 그런 소원이었고 다 참 가치 없는 멸망받는 소원을 가졌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알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소원은 완전히 바꾸어졌습니다. 주남선  목사님도 접할 때마다 그분의 사적으로 공적으로 언제든지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은 이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원하고 원하였노라' 이제 주님이 걸어가신 이 발자취, 모든 피조물을 힘대로  긁어서 쪼개고 깎아서 삦어서 볶아서 제 배 채우는 이런 썩은 일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이제는 내 모든 것 다 위로 주님을 위하여 주님 소원하시는 일 곧 인간을  멸망에서 구원하는 일, 만물을 구원하는 일 이 일에 내게 있는 남은 것을 다  바치겠다. 심으면 거둔다.

 심는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15장에 '썩어진 것 심고' 우리는 다 가진 건 다 썩어진  것입니다. 다 썩어진 것이요 다 욕된 것이요 다 약한 것이요 혈육의 것밖에  없습니다. 심는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밭에다 심으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종류 따라서 서숙 같은 거는 삼천 배 사천 배도 됩니다. 한 알 심었는데  삼천 배 사천 배의 결실을 맺을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심은 그대로 뒤에 다  추수해서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 같으니라' 똑똑히 명문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깨달은 사람들이 주님이 소원하시는 대솎의 제물되기를  소원하신 이 소원을 자기의 소원들로 다 가졌던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나에게 대속해, 이렇게 큰 힘들여서 대속해 주셨으니 내가 이  대속을 내가 보존해서, 이 대속을 보존하기 위해서 나는 전부를 다 기울이겠다, 이  대속을 형제에게 전하기 위해서 다 기울이겠다 하는 것이 이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으니 우리가 썩을 소원을 다 버리고, 이제는 깨달았으니까 차차 차차  노력해서 이 예수님의 가지신 소원, 선지 사도들과 모든 성자 성녀들이 가진 이  소원, 참 사람들이 가진 소원, 무궁세계에서 해와같이 빛날 그 사람들이 가진 소원  이 소원을 우리 소원으로 바꾸어 가지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이런  소원에서 오늘 이 말씀을 보았고,  또 우리는 쾌락을 가지되 이 세상 사람과 같은 그 썩어진 쾌락, 남을 죽임으로써  따그르르 웃는 걸주와 같은 그런 쾌락, 그런 쾌락을 우리 쾌락으로 과거에  가졌었지마는 그런 것 다 버리고, 이제는 땅위에 있는 피조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그런 쾌락도 버리고, 주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신 이  마지막에 운명하실 그때에도 우리의 대형을 다 짊어지고 운명하시면서도 이제  그렇게 그 쾌락을 가진 그 쾌락을 우리 쾌락으로 삼아서,  '내 피를 기념하라, 내 살을 기념하라.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피는 어떤 피며  살은 어떤 살인가? 예수님의 피와 살은 죄를 없애기 위한 피와 살입니다. 죄를  없애기 위해서 흘리신 피와 살입니다. 또 예수님의 피와 살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찢은 살이요 흘린 피입니다. 또 예수님의 피와 살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위해서 찢은 살이요 흘린 피입니다.

 이래서 '내가 올 때까지 내 피를 기념하라, 이 떡을 먹을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네가 네 현실에서 이 대속으로 네 살이 찢겨지고 네  피가 흘려지고 네 생명이 끊쳐져서, 끊쳐지는 그럴 때마다 네 당면한 네 행위로서  내가 이렇게 원하고 원해서 흘린 이 대속을 기념하라.'  기념이라 말은 어떤 한 때에 있던 그 일을 그 후에 한 때 있을 때에 그때와  같은 그 현상과 사상과 모든 움직임의 역사를 그후에 하는 것을 가리켜서  기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힌 그 생활이 너희 일생 동안  전생활에 이 생활이 되어질 것을 네가 기억하고 이대로 하라.' 부탁한 것입니다.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결단코 그 상이 없어지지 않는데 만유 주재 그분이  앞으로 구름 타고 오시고 무궁세계에서는 이것을 당신이 베풀기 위해서 오십니다.

 지금은 당신이 우리에게 무조건 용서 은혜를 주시지마는 그리스도의심판대 그  너머서부터는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그 공로를 입은 것을 인해서 형벌의 심판을  면케 하실 것이고 우리가 그 피와 살을 기념한 그 기념 고 양대로 그 질대로  무궁세계에 당신이 대우하는 것이 우리의 영원 무궁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획 하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먼지 만치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신 차려서 살아야 되지 오늘 끝날지 모릅니다. 젊다고  장담해? 오늘 끝날지 몰라요. 뭣 보고 살랍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소원을 바꿉시다. 쾌락을 바꿉시다. 내 생활 방편을 바꿉시다. 생활 방편은 주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으로 우리의 생활 방편을 삼을 것이요 우리의 쾌락은  주님의 쾌락 최종의 십자가상에 쾌락, 우리의 소원은 항상 대속의 재물되기를  원하는 이것이 우리의 소원되는 것이 정상의 사람의 소원입니다.

 (기도)  감히 생각도 못 하고 들어도 측량 못 할 지극히 높은 이 구원을 주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에 주님이 선포하사 주님의 소원을 우리 소원으로  바꾸도록 명하셨사옵고, 주님의 쾌락을 우리 쾌락으로 바꾸도록 명하셨사읍고,  주님의 승리 생애의 방편을 우리의 방편으로 바꾸어 가지도록 말씀하였사오니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여게 참여한 남녀 성도들이 다 이렇게 완전히 주님의 형상을 갖추어 주와 꼭  같은 주의 모형적 인격과 생애와 모든 소망을 가져 영광의 찬미의 실상이  이루어지고 영원히 가고 가도 후회 없는 이 올바른 생애를 완전히 시작하도록  모두 전환하고 출발하고 용감스럽게 끝까지 인내로 도착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생명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어두움에 있다가 하나님이  저희 아버지 된 것을 이제 깨닫고 작정하였사오니 주님의 사랑의 품안에  품으시고 저들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주님에게 문의할 때에 의논하시고 다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그 심령을 평안케 하사 이렇게 참  사나웁고 거짓된 유혹 많은 세상에서 염려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날마다 자기를  만들어 가며 하늘나라의 군비를 준비해 나가는 저희들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려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랑의  뜨거움이 그 속에 날로 더하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저들이 주님의 명령받아서 부산 시민 매인 매인에게 이렇게 전도지를  전하려고 경영을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대로 한 것이요  또 이렇게 했다 할지라도 이루시는 이는 주님 이십니다.

 주께서 이 일을 끝까지 같이 하사 전할 힘을 우리에게 주시고 여게 대해서  구비한 준비가 있도록 은총을 주시고 또 받을 자들을 다 마음 준비하고 환경  준바를 하셔서 받게 하시고, 그리하여서 중생될 자는 중생하고 회개할 자는  회개하고 다시 믿음에 새롭게 될 자는 새롭게 되고 해서 주님의 영광의 구원의  이 뜻이 이 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서 또 수고하는 종들 또 그 물질을 낸 종들 그 종들에게 주님이  축복하셔서 더욱 더 앞으로 주의 복음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씨를 많이 주시고  양식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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