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7 22:14
능력이 나타나는 비결
1980. 7. 8. 화새
본문 : 마태복음 8장 5절 - 13절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믿은 대로 되리라'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은 대로 되리라' '믿은 대로 되리라' '네가 믿은 대로 되리라' 네가 어떻게 믿든지 믿는 고대로 되리라 이럴 때에 백부장은 주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상대해 가지고 지금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상대해 가지고 대화하고, 주님을 상대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믿으라고 하시는 그대로 자기가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을 자기가 인정하는 고대로 되리라, 네가 나를 어떻게 인정하든지 인정하는 그대로 되리라 네가 네 하인이, 내가 말만 해도 나을 것을 인정하니 인정하는 그대로 되리라 이렇게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이 백부장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니까 벌써 하인이 나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인이 나은 시간을 조사해 보니까 주님하고 자기하고 둘이 얘기하고 '낫게 해 주옵소서' 그러면 '내가 너희 집에 가서 낫게 해 주겠다' '우리 집까지 오실 것 없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나을 것을 제가 믿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고 또 남의 수상에 있는데 위에서 명령하면, 내가 군인이기 때문에 나도 복종하고 내 밑에 사람들에게 명령하면 또 복종하고, 또 하인들에게 이것 저것 하라 해도 또 하는데 주님이 무엇이든지 말씀하시면 그대로 될 걸 내가 믿습니다. 그러니까 오실 것 없이 말씀만 해도 나을 것을 믿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내가 가나 안 가나 내가 낫게 하면 나을 것을 네가 믿으니, 낫게 하면 나을 것을 네가 믿으니 네가 입으로는 나을 것을 믿습니다 해도 속으로 인정하지 아니했으면 그거는 이루어질 수가 없고 네가 나을 것을 참 인정하고 네가 내가 같이 안 가도 나을 것을 인정하고 네가 가면 그대로 되리라 네 믿은 대로 되리라 네 믿음이 말 뿐이라면 말 뿐이지 실상이 안 될 것이고 네가 진실로 진실되이 참 인정하고 행동하면 주님이 자기 집에 가지 안 하고 뭐 기도하지 안 하고 그래도 주님이 낫는다 하시면 나을 것을 인정하고 인정하므로 주님을 같이 모시고 가지 안 하고 자기 혼자 나은 것을 인정하고 안심하고 갈 때에 그대로 나아질 것이고 네가 인정치 안 하고 껍데기 말로만 인정하고 참 인정치 아니하고 인정하지마는 아무래도 주님이 가셔야 되겠는데 해서 그러면 가셔야 되지 가시기 전에는 안 된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인정을 하고 틀림없이 나았을 것을 인정하고 자기는 갔습니다. 가니까 나아 있는데 나은 그 시간을 조사해 보니까 주님과 자기와 말하고 자기가 인정하고 이제는 나았다 인정하고 거기서 출발할 그때에 인정하고 출발할 그 시에 나았다 하는 것을 여기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나따나 인정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아, 주님과 자기와의 마주 상대해 가지고, 마주 상대를 해 가지고 주님이 거기 대해서 된다. 된다. 주님이 직접 된다. 이렇게 하시는 그것을 자기가 된 줄로 여기는 의심없이 틀림없이 자기가 된 것으로 인정을 하고 된 것으로 인정해야만 그 행동을 하지 인정하지 안 한다면 그 행동은 할 수 없는 고 행동하는 것, 인정하고 되었기 때문에 자기는 조금도 의심없이 자기가 고 행동을 하는, 인정하고 행동하는 것, 인정하고 행동하는 것, 고 둘이 되면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요것을 잘못 알고 아무때나따나 그렇게 된다고 자기 혼자 주님은 이것이 된다, 요렇게 내가 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을 고게 아니고, 주님은 예를 들면, 이 사건을 말씀할 때에는 '네가 요렇게 해라 그러면 일이 된다' 된다고 하시니까 될 것을 믿고 자기가 고렇게만 될 줄 알고, 요게 좀 알기 어려운데 자기가 주님이 인정하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그대로 행동하면 고 일이 이루어지는데 선택하기를, 주님이 인정하라 하는 그것이 아닌 인정하라고 하시지 않는 그것을 요것도 내가 인정하니까, 인정하고 행동하니까 됐다. 됐으니까 요것을 인정하고 행하니까, 됐으니까 이것도 인정하고 행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요것은 인정하고 행하라 한 것을 주님이 하라 했기 때문에 그게 됐는데, '아! 그러면 뭐든지 인정하고 행하면 되는구나' 하고 그다음에 무엇을 인정하고 행하니까 안 됩니다. 그 이상하다 또 주님이 '너 야 이것을 인정하고 행해라 그러면 된다' '아, 그렇습니까?' 인정하고 행하니까 또 됩니다. 아 주님이 인정하라 하시고 행동하라 할 때에 하니까 되는데 어째 뭔 일 그거는 인정을 해도 안 되느냐 또 한번 그래 보자. 요것을 인정하고 행하면 주님이 해 주실 것이다, 주님이 해 주신다, 자기가 틀림없이 인정을 하고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어떨 때는 인정하고 행하니까 되는데 어떨 때는 인정하고 행하니까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될 때는 왜 되고 안 될 때는 왜 안 됩니까? 왜 그렇지요? 자 될 때는 되고 안 될 때는 안 되는 그것이 왜 그런지, 안 될 때는 왜 그런지 안 되는 이유를 여러분들이 잘 알았든지 몰랐든지 자기대로의 무엇 때문에 그렇다 고것이 마음에 판정되는 분들은 손 한번 들어봅시다. 무엇 때문에 인정하니까 되고, 인정하고 행하니까 되고, 무엇 때문에 인정하고 행해도 안 되는, 안 될 때 인정하고 행해도 안 될때, 그때 왜 안 되는지 아는 분 손 한번 들어봅시다. 이래 다 이래 모릅니까? 왜 그런지 모르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봅시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뭐야. 요것이 판명되지 안 해서 사람들이 낙심도 하고, 또 공연히 헛된 행동도 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요걸 판정 못 하기 때문에 헛된 수고도 하고, 또 낙심도 하고, 헛된 자랑도 하고, 또 헛된 근심도 하고, 헛된 위로도 받고, 이 잡탱 신앙들이 일어 나가는 것입니다.
될 때는 왜 됐습니까? 될 때는 주님이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지시고 네가 요걸 인정하고 행동해라 하는 고 건은 됐고, 그 건은 됐고, 안 되는 것은 저 혼자 그것을 주님이 인정하고 말씀을 안 하는데 저 혼자 그 종별을 선택해 가지고 제가 인정하고 제가 행동하고 백 번 인정하고 백 번 행동하고, 만 번 인정하고 만 번 행동해도 그 일은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하고 행동할 때에 인정하고 행동하는 그 힘으로 그 일이 이루어집니까? 인정하고 행동하라고 할 때에 하라고 하신 주님이 그 일을 실지로 당신이 이루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집니까 우리가 인정하고 행동하는 그 힘으로 그 일이 이루어집니까? 인정하고 행동하라고 할 때에 내가 인정하고 행동하면 인정하고 행동하라고 하신 그분이 그것을 이루어서 이루어집니까 인정과 행동으로 인정과 행동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까? 인정하고 행동할 때에 인정하고 행동하라는 그분이 이루기 때문에 이루어집니까? 뭐지요? 뭐지요? 인정하고 행동하는 힘으로 이루어집니까 인정하고 행동하라고 인정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하신 분이 이러면 되니까 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그대로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하니 된 것은 내가 인정하고 행동한 그게 능력이 있어서 그 일을 이루게 했습니까? 나더러 그렇게 인정하고 행동하라고 하신 그분 시키는 대로 하니까 그분이 해서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까? 인정, 행동한 인정과 내 행동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습니까? 그 둘을 구별해 보십시오. 자기가 인정하고 행동하는 그 능력이 인정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그것을 이룬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녜. 또 인정하고 행동한 고것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해라 하신 그분이 내가 인정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인정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하라 하신 그분이 그 일을 이루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아는 분 손 한번 들어봅시다. 녜. 이것입니다. 이것이오.
그러기에 우리가 '믿은 대로 되리라' 하는 그 말은 그렇게 될 것, 내가 믿습니다. 이러니까 네 믿음이 귀하다 내가 하면 가나 안 가나 될 것을 네가 인정하고 말만 해도 될 것을 네가 인정하니, 인정하니 그러면 낫습니까? '네 믿은 대로 되리라' 이러니까 '믿은 대로 되리라' 이러니까 네가 인정하고 행동한 대로 되리라, 믿은 대로 되리라, 믿었으니까 됐습니까? 믿은 대로 되리라 했으니까 되리라 하신 그때에 됐습니까? 언제 됐지요? 되리라 하는 고때에 됐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것은 믿고 고대로 행동하는 요것이 힘이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신 고대로 인정하도록 이게 인정하는 게 아닙니까? 인정하고 행동하는 요게 힘이 있는 것 아니고 고대로 하라고 하신 고대로 하니까, 고대로 하라고 하신 그분이 말한 책임이 있고, '인정하고 행해라, 고대로 믿고 행해라, 고대로 인정하고 행해라' 말한 그분의 말에 책임을 집니다. 그분의 말에 책임을 져요. 이래서 고대로 내가 하니까 말한 그분이 책임을 지고 고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네가 요렇게 해라 이러면 된다 네가 요렇게 알고 내가 말하는 요대로 알고 요대로 행동하라' 하니까 이 일이 됐습니다. 그러면 백 번 일이 됐습니다. 됐는데 한번은 일이 안 됐습니다. 그러면 백 번 일이 될 때는 왜 백 번이나 일이 됐는데 한 번 일이 안 될 때는 왜 안 됐습니까? 왜 안 됐지요? 그것은 주님이 요렇게 네가 알고 요렇게 네가 행동하라 하는 고대로 알고 고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자기 혼자 인정하고 혼자 행동했기 때문에 주님과 연락이 없고 연결이 없기 때문에 안 됐습니다. 주님과 연결이 없기 때문에 안 돼요.
주님과 연결이 없는 인정과 행동은 천 분 만 분 해야 하나도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결이 되어서 주님 인정하라 하는 대로 인정하고 행동하라 하는 대로 행동할 때에는 인정하고 행동한 고대로 알고, 인정이라는 말은 그건 부인, 인정치 않는다, 인정한다. 그 두 가지 반대말 아닙니까? 주님이 요대로 네가 하면 된다. 고대로 인정을 하고 고대로 행동을 하는 주님이 말씀하시고 주님 말씀하신 대로 행동할 때에는 고것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만 번이고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는데 주님이 말씀을 하신 것이오.
또 요대로 네가 인정하고 행동하라 하기는 했는데 그 일이 너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니까 엄청나게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참 너무 큰 일이요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주님이 말씀하시면서 요대로 인정하고 요대로 행동하라고 하시기는 하셨지마는 어떤 일은 그렇게 힘이 안 드는 일이 있고, 어떤 일은 굉장히 힘이 드는 일인데 그 일은 도저히 될 가망성이 없는데 어찌 됩니까? 주님이 '요렇게 알고 요렇게 행동하라 요라면 된다' 하는 고 말씀에 대해서 좀 어렵고 쉬운 일이, 어렵고 쉬운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렵고 쉬운 일이 있지요. 그렇지 안해요? 어렵고 쉬운 일이 있는데, 그러면 그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어렵다고 이루어지기가 좀, 이루어지기가 힘들 것이고 쉽다고 이루어지기가 쉬울 것이고, 이루어지는 데에는 어렵고 쉬운 일은 있기는 있지마는 그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어렵든지 쉽든지 상관이 없겠습니까 상관이 있겠습니까? 상관이 없습니까? 어려운 일도 있고 쉬운 일도 있습니다.
어려운 일도 쉬운 일도, 어떤 일은 쉬운 일, 억억만개를 뭉쳐도 어려운 일 한 개만 못할만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있다 말이오. 어려운 일도 있고 쉬운 일도 있습니다. 있는데 주님이 시켜서 고대로 순종했을 때에 고 일이 이루어지는 데는, 그러면 이루어지는 일을 누가 합니까? 주님이 하시는 것이지요. 주님이 하시는 것이니까 그 일이 이루어지는 데는 어렵다고 고게 이루어지기가 어렵고, 쉽다고 이루어지기가 쉽고, 그 이루어지는 데에는 어렵고 쉬운 것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겠습니다. 말했습니다. 왜 없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은 전능자시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어려운 일이나 쉬운 일이나 당신이 하는 데에는 어렵고 쉬울 것이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안해요? 어렵고 쉬울 것이 없지요. 당신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당신이 할라 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상관없고 쉬워도 상관없고 그 힘이 약한 자에게는 쉬운 거는 쉽고 어려운 거는 어렵지마는 하나님이 하시는 데에는 어렵든지 쉽든지 당신이 할라 하면 다 한다 그말이오.
그러면 당신이 시키시는 그 일을 우리가 시키시는 고대로 인정하고 하면 될 줄 알고 고대로 실행을 하면 어려운 일이라고 이것은 안 될 터인데 어려울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쉬운 일이라고, 아! 이 일은 될 것이라고 이렇게 거기 대해서 내 보기에 일이 참 어렵고 쉬운 일이라고 해서 내가 믿을 때에 이루어지는 그것도 이 일은 어렵겠다 쉽겠다 그렇게 우리가 구별을 해야 됩니까? 어렵든지 쉽든지 당신이 하는 데는 상관이 없으니까 우리가 당신이 하라고 하는 그 일은 쉽고 어려운 것이 상관없이 다 되는 것이겠습니까? 좀 어렵고 쉬운 일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이나 소망이 하는 거, 이거는 어려우니까 백분지 일이 소망이다.
백분지 구십 구가 소망이다. 이거는 백분지 백이 틀림없이 된다.
이 일은 어렵기 때문에 이 일은 아무래 좀 반은 될 것 같고 이 일은 확신은 안 되는데 백분지 일이라도 혹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안 될 것이 안 되기 쉽겠는데 그렇게 우리가 그 일에 대소에 대해서 우리가 이루어질 것으로 소망하는 이 소망에 차이가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자 안 드는 분들 있는데, 녜 없습니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없습니다.
당신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니까 어떤 일을 닥쳤든지 그 일에 대해서 크든지 작든지 그 차이는 두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차이가 있지마는 당신에게는 차이가 없습니다. 당신이 하는 데에는 차이없소. 아, '이거 어려우니까 하나님이 하겠나' 하나님을 불신임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쉬운 일이 없소. 크고 작은 그런 것은 차리를 가지지 마십시오. 요거 굳게 잡고.
또 하나는 믿은 대로 되니까, 믿은 대로 되니 인정하고 행한 대로 됩니다. 믿은 대로 되니까, 믿은 대로 되니 뭐 '믿기만 하면 된다' 말은 믿은 대로 되니까 '믿사옵나이다' 하면 된다.
그러면 이 사람이 병이 들었는데, 이제 어쩌든지 믿은 대로 된다, 믿은 대로 된다. 이러니까 내가 낫게 해 주실 것을 인정하고 네가 그대로 나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낫는다. 그러면 그 병이 낫습니까 안 낫습니까? 낫겠습니까 안 낫겠습니까? 안 낫겠다고 생각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또 낫겠다고 생각되는 분 손 한번 들어봅시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나을지 안 나을지 그거는 봐야 안다는 분들 손 들어봅시다. 그러면 주님이 그렇게 말씀해서 주님에게 피동으로 그렇게 했으면 나을 것이오. 저 단독이 요대로 나을 것으로 인정을 하고 행동하면 나을 것이라. 제 단독 선택이면 안 될 것이고, 주님이 원인이 돼 가지고 주님 당신이 말씀하셔 가지고 인정하고 행동하는 것이면 될 것이라.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은 될 것이고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제 단독이 한 것이면 안 될 것이라. 고렇게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녜. 고것입니다. 고것.
그러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 그러면 우리가 밤이나 낮이나 어데서든지 언제든지 주님이 계속 '요걸 인정해라 요대로 행동해라 계속 고것을 인정해라 행동해라' 하는 그런 종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계속 요거는 '네가 인정하고 요대로 행동해라' 하는 계속 주님이 밤이고 낮이고 뭐 그저 바쁠 때고, 수월하고 언제든지 계속 요대로 인정하고 요대로 네가 행동해라. 그렇게 끊침이 없이 계속적으로 인정하고 행동하라는 그런 종류의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녜 있습니까? 있습니까?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 손 들어봅시다. 있습니다. 요겁니다.
고거는 내가 인정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요것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했지요? 기본 구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본 구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요것은 시간도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계속입니다.
요거 인정하는 데에서 능력이 나옵니다. 요것은 주님이 직접 계속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요것은 계속 말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행동하면 고대로 됩니다. 이는 지극히 큰 일이요 어려운 일이오. 그런데 그러면 당신이 인정하라고 하시는 것도 있고, 인정하라고 하시지 않는 것도 있는 것은 어떤 것이냐? 기본 구원 외의 것은 전부 다 그런 것입니다. 기본 구원 외의 것은 다 그런 것입니다.
이러기에 기본 구원이라는 것 구별하는 것이, 이것이 중요하다 그말이오. 자 그러면 자기가 아픕니다. 병이 들었습니다. 병이 들었으면 주님이 낫아 주실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낫는다, 그 병 낫는 그거는 인정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인정한 것도 있고, 인정 안 한 것도 있으니까, 그러면 그 인정한 것은 그게 낫습니까 안 낫습니까? 녜. 낫지요. 인정 안 한 것은 안 낫습니다. 인정을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그걸 뭘로 알 겁니까? 뭘 보고 알지요? 당신이 명하셨는지 제 단독이 행동했는지 그 결과를 봐서 알 수 있습니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지라' 그 결과를 보아서 그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 도리를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이 병들었을 때에 그것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틀림없는 기도만 합니다.
어떤 기도를 하니까, 틀림없는 기도하는 것은 '요것을 낫는 것이 저희 신앙에 유익되면 낫게 하시고, 낫지 않는 것이 신앙에 유익되면 낫지 않게 하시고, 요것이 서서히 낫는 것이 당신의 뜻이면 서서히 낫게 하시고, 당신의 뜻에 따라서 해 주십시오.' 요렇게 말하고 또 간구할 것은, '그러나 내 소원에는 내가 생각하는 내 소원에는 요것이 나았으면 좋겠는데, 요것을 낫고 안 낫는 것은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 고게다 딱 그것을 부칩니다.
그러면 자기의 기도가 한마디 헛된 기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든지 틀림없는 것은 뭐이냐? 요 사람, 요 병이 들었는데, '요 병이 구원에 유익되도록 자기 구원과 남의 구원에 유익되도록 요것을 없애든지 있게 하시든지 계속하게 하든지 더하게 하든지 덜하게 하든지 요 구원을 위하여 요것을 조절해 주십시오' 하는 고것은 항상 주님이 그렇게 지금 원하시고 명하고 계시는 그것은 항상 그대로의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것이 변동되는 뜻입니까? 뭐요? 그 변동되는 뜻이오 계속되는 뜻이오? 저 (상남) 교회 (김) 조사님. 안 들려. 그것은 계속되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님이 당신이 말씀한 대로 안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고대로 내가 인정하고 행하면 고대로 됩니다. 되는데, 다만 계속 주님이 지금 이 시간도 여기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닌지 그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제가 제 단독이 제 생각대로 선택하기 때문에 실패를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계속적으로 이렇게 인정해라 하는 그 건이 있고, 그 건을 계속적으로 하는 그거는 언제든지 자기가 인정하고 행동하면 그대로 됩니다.
다음에 계속 하겠는데 여러분들이 요걸 바로 알고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믿음을 안 가지기 때문에 이거는 인간적으로 생각할때 목사가 되어도 하루종일 말해봐도 전부 인본 뿐이지 신본은 하나도 없는 사람 있다 그거요. 인본은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신앙이 평소에는 있는데 환난을 닥치면 아무것도 없어. 왜? 제대로 믿었거든. 제 마음대로, 제 소원대로, 제 뜻대로, 제 주장대로, 제 주관대로, 제 욕심대로, 제대로 믿었기 때문에 전부가 그거는 제가 했지 하나님은 상관없습니다. 제대로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봐서 안 되게 한다 말이오. 되게 하는 것은 남의 구원이오. 되게 하는 것은 남의 구원 뿐입니다.
남의 구원은, 그거는 도구라도, 도구라도 그걸 사용해 가지고 하는 것이니까 자기는 구원은 안 되지마는 구원 운동에 이용은 해먹어. 하나님이 이용을 하신다 그말이오.
히브리 6장에 거기에 보면 이 사람이 도구가 돼 가지고 하나님 일을 많이 했습니다. 성신의 감화 감동도 받고 전하기도 하고 이랬는데 마지막에는 멸망이라. 그거는 뭐냐? 도구로 이용은 당했다 그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농사 지을 때에 우리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면 농사 지을 때에 제일 수고 많이 한 것이 뭐입니까? 수고 많이 하는 것이 나보다도 수고 많이 하는 것이 괭이입니다.
괭이. 이거는 뭐 언제든지 파고 꺾고 어디든지 안 그러는데 없어. 밭에 가도 이거, 논에 가도 이거, 논두렁이도 이거, 어쩌든지 뭐 하든지 이렇게 사랑하고 쓰고 참 귀하게 일 년 내내 농사 짓는, 농사 짓고 난 다음에 밥 한 떡거리도 안 줘요. 안 주고 농사 애써서 지니까 이것을 '자 우리가 이 농사 지어 가지고 쌀 내 가지고 비단요 만들어서 너도 같이 누워 자자' 하고 비단요 눕히지도 않는다 말이오. 그걸 쓰고 난 다음에는 참 필요한 도구라고 할지라도 저 창고에 딱 걸어 놓습니다. 그렇지 안해요?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어떻게 제가 믿지 아니하고 행동하면, 인정하지 안 하면 하나님께 그걸 도구로 써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오만 운동을 하지마는 자기 자체의 성화는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이용만 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껍데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환난을 당한데 제가 믿지 안 했기 때문에 인정치 안 하고 제가 말로만 그와 같이 했기 때문에 환난이 오면 다른 것 다 없애버리고 자기 단독이 붙었는데 인정이 됩니까? 인정이 안 되니까 전능자가 나를 지켜줄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오.
나는 죽어도 산다. 내 생명은 영생을 가졌기 때문에 내 생명을 끊을 자가 없다.
믿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육의 생명 그뿐으로 아니까 그 생명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암만 하나님이 전능자가 지킨다고 해도 인정이 되어져야지. 인정이 되니까 전능자의 품 안에, 입술로 전능자가 나와 함께 있다.
안고 있다. 아무리 아듬고 있다고 말해도 전능자가 아듬고 있으면 그까짓 것 무슨 상관 있겠소. 또 전능자가 아듬고 있으면 그들이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전능자 품 안에 안겨 놓으니까 죽는 것이 안 죽는 것보다 더 낫게 아듬겨 있을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기에 그에게 평강이 있을 건데 평강이 없어.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왜 평강이 없느냐? 평강이 없는 이유는 제가 평소에 진실되이 믿지 안 했기 때문에 제가 제 꾀에 속았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은 이루었는데 이용은 되었지마는 제 구원은 없어. 믿은 대로 되리라. 믿은 대로. 그러니까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가 버림이 될까 두려워해서 자기가 싸우는 것은, 싸움의 대상은 자기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싸우지를 안 한다. 내가 나를 쳐서 복종한다. 자기하고 자기하고 싸웁니다. 부인하려 하고 인정하려 하고 옛사람 자기 그놈을 제거하는 그 싸움해서 왜 그리 싸우는가? 뭐 때문에 그리 싸우는가? 다른 사람 구원만 이루게 해 주고내가 버림 당할까, 내 구원은 이루지 못 하고 버림 당할까 해서 내가 이렇게 한다고 고린도전서 9장에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러기에 신앙은 진실이오. 진실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이 복음을 가지고 목회자든지 일군들이 이 복음을 가지고 다른 구원하는 데만 이루고 팔아 먹기만 하고 설교하는데 인기나 끌고, 또 목회나 다른 사람에게 인기나 끌고 제 구원 이룰 줄 모르는 사람은 헛일이오.
요번에 (문) 조사님 설교한 것, 그 일면에 좋은 것이 있습니다. (문) 조사님 어디 있소? 손 들어봐요. 녜. 아무래도 자기가 행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목회를 해도, 목회를 해도 교회 부흥이나 교회 커지는 거나 그런 거나 지금 욕망하고 그것을 자기 구원은 이루는 일로서 생각을 하고 자기 구원 이루는 고 일로 그 일 하지 안 해서 자기 구원 이루는 일이 안 이루어지고 다른 사람 구원 이루는 교회가 부흥이 암만 많이 된다 해도 자기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고것은 자기가 내나 농사 짓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고 말은 잘 했습니다.
그러나 틀린 게 왜 틀린 것이냐? 그날 한 것은 교회가 부흥되는 고게만 그걸 만짜를 붙이고 그것만 하고 자기 구원 이루는 고게 대해서는 상관하지 안 하고 목표와 소망이 고것 뿐이고, 자기 구원은 소망 그것이 아니라면 고걸 자꾸 밝혀야 됩니다. 그걸 밝히지 안 하니까 그만 교회 양적으로 부흥되는 것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무시하는 게 돼 버리니까 그 사상 가지면 평생 가야 교인 열댓명 스물댓명 고까짓 것만 데리고 그냥 낸기고 말거라.
그러니 ( )열매지만 지금 교인이 몇이지? (문) 조사님 대답해 봐요. 장년반 몇이야? 장년반 몇? 이십 명? 처음보다는 많이 불었지마는 이십 명. 이십 명.
몇해지요? 몇해야? 간 지가. 일 년 다 돼 가? 일 년 다 돼 가? 그러면 많이는 안 됐네. 고것 뽑아버려야 돼. 바짝 일을 해요. 일 년이 됐으면 벌써 그 교회가 선 지가 얼마나 됐는데 부인한 지 일 년 되었으면 그 교회가 거석한 사람 같으면 불이 붙었지. 지금 그가 벌써 불이 붙어. 지금 수십명 교회가 된다 이거라. 안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바꿔가면 당장 그 교회가 부흥이 되어 버려요. 그 밑에 있는 것도 다 돌아와 버려요. 우리가 요 진리기 때문에 요래 다르고 요래 다릅니다.
예수를 믿어. 믿으면 다 됐다 하는 그런 사람은 구원을 못 이룹니다. 요 진실이라 하는 하나에 도달해야 돼요. 요 말은 요래 다르고 조래 다르고 성경을 한자로 울고 불이 달으고 알로 불이 달으고 요렇게 세밀하게 구별이 있는데, 그 아이면 구원은 다 헛일이라. 과학도 말이오. 물리보다는 인리가 더 큽니다.
인간의 이치가 물리에 억억억억억억만 배도 더 세밀하고 크요.
이런데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인리인데, 사람 이치 이 인격에 말이오. 자유성 있는, 인격성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이치라 말이오. 이치인데 물리도 그거 병 같은 것, 거석할 때에 고기다가 머리카락 한 개가 들어갈 빈틈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 게 있어. 머리카락 하나가 들어갈 틈 있으면 안 돼. 또 그러면 그 틈이 없이 들이 붙어도 안 돼.
힘 있는 기계, 힘있는 기계, 또 아주 보배로운 기계, 값비싼 기계,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계, 그런 것은 물질 그것도 머리털 하나를 가지고 시비를 합니다.
이런 걸 뭐 집 짓는 거야 머리털 하나 주먹 하나 들어가도 비어도 되고 또 요만큼 짤라도 되고 요만큼 짤라도 되고 좀 길어도 되지 않소. 그거는 힘이 없는 것이오. 가치가 적은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것도 그런데 예수님 믿는 것도,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 그저 이름만 부르면 구원 얻는다. 녜 그렇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그 얼마나 세밀하고 얼마나 구별이 있고 이런 것이니까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바보되면 예수를 잘못 믿어 그렇습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그만 그 사람은 모든 면이 철저하고 세밀하기 때문에 아무리 세상에 지혜있는 사람이 제딴에는 무슨 잘한다 해도 예수 잘 믿는 사람 벌써 저 위에 쑥 올라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 말하는 그 밑에 지금 누워서 구불고 다니는 그 자리고 서서 돌아다니는 게 아이라 말이오.
그 사람이 이걸 말하면 벌써 그 사람은 심리를 '저 사람은 어떤 심리에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저런다' 하는 그것을 다 알고, 그러면 그 앞에 쑥 앞에 나가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시비를 안 하고 싱강을 안 하고도 일을 해 나가지 예수 믿는 사람이 바보같이 그만 무저항주의로 그저 되면, 하면 된다 하는 주의로 또 그만 그냥 뭐 양보해라. 양보하는 주의로 이러니까 예수 믿는 자가 그만 바보가 돼 버려. 바보가 돼. 예수를 잘못 믿어 그렇습니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처럼 지혜롭고, 하나님처럼 세밀하고, 하나님처럼 철저하고, 하나님처럼 그 복수성도 강하고, 책임성도 강하고 이런 것입니다.
좀 세밀히 배워야 될 터인데 주일날만 나오는 사람은 신앙 생활 바로 못 합니다.
아무리 명철해도, 아무리 명철해도 말하는 게 다 틀렸는데 뭐.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새벽기도 나오도록 하고, 대중이 있을 때는 진리를 못 가르쳐요.
주일날 오전 오후에는, 왜 거기는 이걸 말하면 사람들이 들을 줄도 모르고 하기 때문에 ( )으로 죽을 먹여야 되지 미음을 끓여 먹여야지 병든 자가 깔닥깔닥 거리면서 왔는데 미음 끓여 먹여야 되지 그 진미만은 어떻게 고기 덩어리를 입에 넣어줄 수가 있겠소. 이러니까 새벽으로 나와야 믿는 도리를 배웁니다.
한 십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