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7 22:12
능동믿음-죽은믿음
본문 : 출애굽기 20장 1절∼3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우리는 모든 것을 생각하고 또 연구하고 할 때에 언제나 양면을 상대해야 합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가 있고 위에 줄기가 있는 것인데 뿌리가 먼저요 줄기는 그 다음입니다. 그러면, 뿌리 없는 줄기가 나무노릇을 못하고, 또 줄기없는 뿌리가 나무노릇을 못 합니다. 그러면 둘이 합해야 비로소 나무의 구실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그 원인과 결과를 생각해야 되지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면을 생각해야 되지 양면을 생각하지 안하고 단면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시작과 끝이 다 있는 것인데 시작도 생각하고 끝도 생각해서 시작에 대해서 잘못됨이 없도록 해야 되고. 또 그 결과에 대해서 잘못 됨이 없도록. 언제든지 시작에서는 그 결과를 생각하면서 시작을 잘 수립 해야 되고, 또 결과에 대해서는 시작을 항상 생각하면서 하는 것이 크게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것도 크게 말하면 사계명까지는 시작에 대해서 말한 것이요, 또 뿌럭지에 대해서 말을 한 것이요 원인에 대해서 말을 한 것이요, 또 오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는 끝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결과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양면적으로 생각지 안하면 치우쳐서 실패하기 쉽습니다.
일계명으로부터 사계명까지에도, 일계명은 원인을 말하는 것이요 시발을 말하는 것이요 뿌럭지를 말하는 것이요.-그 다음에 이계명으로부터 사 계명까지는 그 다음에 줄기를 말한 것이라 그렇게 우리가 계산 할 수 있습니다. 또 오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에는 사람에게 대해서 말씀 하신 것인데 거게도 오계명은 근원을 말한 것이요 원인을 말하는 것이요 부리를 말한 것이요 그 다음부터 육계명부터는 그 모든 줄기, 결과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원인과 결과 가운데에 두 가지가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이 무엇인가? 먼저 생각할 것은 그 원인이요 시발이요 뿌럭지를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순서는 성경이 그래 놨습니다. 원인을, 시발을.
뿌럭지를 먼저 생각하라 하는 것으로서 십계명 순서도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면은 과거는 뿌럭지에 속한 것이요 미래는 줄기에 속한 것이요 현재로 말하면 그 과거와 미래와 그 사이를 연결시킨 한 토막이라고, 한가운데 가운데 토막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사은의 도라.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도라. 그러면 사은의 도라고 하니까 사은의 도라 말은 사은은 과거에 속했습니까, 현재나 미래에 속했습니까, 어데 속했습니까? 사은은 어데 속했습니까? 예? 사은은 현재에 속했습니까. 과거에 속했습니까? 예? 사은은 과거에 속한 것입니다. 사은은 과거에 속했소. 또 기독교는 결과의 도입니다.
결과의 도요 심판의 도입니다. 결과의 도요 심판의 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언제든지 무슨 일이라도 크나 작으나 그 일을 시작할 때에는 결과도 생각해야 됩니다. 결과를 생각해서 결과적으로 모든 일을 합니다. 계산을 따질 때도 결과적으로 계산하고, 경영할 때도 결과적으로 경영하고. 또 결과적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사은적으로 해야 됩니다. 근원을 생각해서 그렇게 해야 되지 그것이 없이 하는 사람들은 이리저리 치우쳐 가지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과 그 결과를 두고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사은을 앞세웠습니까. 결과를 앞세웠습니까. 어떤 것을 앞 세웠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그 모든 것을 성경을 보고서 이렇게 하신 일을 우리가 찾아보면은 사은에 대해서 먼저 말했습니까 결과에 대해서 먼저 말했습니까? 사은에 대해서 먼저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순서인데 사은을 그것을 잊어버린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 기독교는 사은의 도라 그렇게, 다른 말로 말하면 기독교는 감사의 도라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은과 원인과 동기와 시발 이 모든 것의 그 전부는 뭐인가? 그 전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것의 원인이시요 시발이시요 또, 동기입니다.
그러기에, 여기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0장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뭘 말했는가? 2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것을 선두에 말했습니다. 이걸 선두에 말하고 난 다음에 그 뒤에 이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양면을 가진 것이 기독교라. 그러기 때문에, 크나 작으나 다 양면이 있는 것이다. 일면만 하면은 치우친 사람이 돼서 못 씁니다.
또, 형체를 말해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보이는 거와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은 다 그러합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우리는 사람을 바로 알아야 되겠고. 사건을 바로 알아야 되겠고, 또 물건을 바로 알아야 되겠는데 그 모든 사물이나 모든 피조물을 심사할 때에는 우리는 보이는 면을-우리가 보이지 않는 면은 모르기 때문에-보이는 면을 먼저 잡고서 그 다음에는 보이지 않는 면을 생각해야 됩니다. 보이지 않는 면을 생각해서 보이지 않는 그 면이 원인이요 근원이요 뿌럭지요 그것이 시발이요 그것이 원동력이요 종자와 같은 것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은 그래도 유무식간에, 잘났든지 못났든지 유무식간에 그, 사람은 철학이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을 하고 '아, 그 사람은 상대할 사람이 못 된다. 철학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뭐 요새는 자꾸 그런 말이 별로이 없지마는.
자꾸 속화가 돼 나가니까 사람들이 지혜 있는 것 같지마는 망할 지혜만 찾지 사람의 지혜는 전연이 모릅니다. 요새 이십 세기의 아주 지식이 많이 발달됐다 이렇게 말하는데 사람에 대한 지식은 점점 파묻혀 가고 물질에 대한 지식만 자꾸 발달돼 나갑니다. 그러면, 이십 세기의 뭐 발달된 지식이 그것이 사람에 대한 지식이면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사람에 대해서, 윤리도 그만 완전히 다 파묻혀져 버렸고, 도덕도 파묻혀졌고 예의도 파묻혀졌고. 체면도 파묻혀졌고, 의리도 파묻혀졌고, 뭐 양심도 파묻혀졌고 다 파묻혀져 버렸고 인간에 대한 지식은 다 묻혀서 짐점 어두워져 가고 이 물질에 대한 지식은 아주 많이 발달이 됐습니다. 물질은 보이는 것이요 사람은 물질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철학이 없다 그말은 무엇이든지 그 결과를 척 만나면. 결과를 만났으면 그 결과에서 원인이 뭐인가 그 원인을 찾는 사람이 철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 무슨 물건을 척 하나 만나면 그 물건의 원인인 사람을 찾습니다. 또 자기가 어떤 사건을 만났으면은 그 사건을. 그 사건에 대해서는 결과도 있고 원인도 있는데 그 사건에 대해서 결과만 지금 연구해 가지고서 결과를 좋게 하려고 결과를 주력하고 애쓰는 사람은 그 사람은 외식자요 그 사람은 어리석은 만용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 사람은 실패합니다. 현재에 당한 그 사건이라면 이 사건의 결과가 어찌되느냐, 그 중요하기는 중요하지마는 그 결과만 좋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외식자요, 그 사람은 만용 사람이요, 그 사람은 영웅입니다. 영웅이니까 그 사람은 속히 성공하는 것 같으나 속히 망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게서 원인이 뭐이냐? 그 원인을 미루어 찾아 가지고 거게 가서 더듬어서 그것을 바로 잡을라고 하는 그런 사람은 실패가 별로이 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와같이 지금 말하고 있는 그런 것은 뭘 원하느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첫째로는 원인인 하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 결과요 피조물은 결과요 창조주는 원인입니다. 언제든지 무슨 존재를 대하든지 무슨 사건을 대하든지 할 때에는 반드시 양면을 생각해야 되는데 첫째로 그 원인인 창조주를 생각해야 됩니다. 무슨 물건. 뭐 무엇을 아, 좋다고만 이래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데서 나왔느냐?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창조주를 먼저 발견하고. 그러면, 그 다음에 '이것이 우리에게 뭐 필요하냐, 그런 것보다도, 창조주를 발견하고 창조주가 이것을 지으신 때에 지은 목적이 뭐이겠느냐, 창조주 그분은 뭐하려고 이걸 지었겠느냐, 창조주의 목적이 뭐이겠느냐? 이랬는데, 창조물을, 창조주의 목적과 상관없이 창조주의 목적에 위배되는, 정반대되는 그런 일을 사고하는 것은 반드시 그 일에는 멸망이라 고렇게 단정을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주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이 창조했기 때문에 그분이 원인이요 그분이 거게 대한 근본적인 모든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그분의 목적을 깨달아서 그분에게 맞도록 모든 일을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면은 이 나라는 누가 만들었는가, 나라의 원인이 뭐인가 이 나라를 만들고 이 민족을 만든 그분의 목적이 뭐이겠는가? 아 그분의 목적을 자기가 찾아서 이렇게 내가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 정권을 나에게 어떻게 유익하게 지금 이용을 해 먹을까 앞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어 갈까 그까짓 거 암만 생각해도 저는 꺼꾸로이기 때문에 그만 그 결국은, 년수가 지나 갈수록이 망하는 것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권불십년이라' 권세라 하는 것은 십 년을 가지 안한다. 십 년 가기 전에 다 망해 버리고 맙니다.-그것 뭐이냐 하면은 치우쳐서 근원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 이는 이 민족과 이 국가를 만드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이 무신론자들은 모르지마는 그렇기에 무신론 국가는 다 망합니다. 공산주의는 뭐라고 쌓아도 그거는, 이름을 가리켜서 그거를 멸망이라 그렇게 이름을 지어 놨어. 계시록에는 멸망이 나왔는데 멸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나왔는데 그게 공산주의입니다. 이런 것도 여러분들 지금은 이래 설교하는 것이지마는 앞으로는 이것 가지고서 무슨 심문이 올란지 모릅니다. 설교하는데 여게 새벽에도 여게 공산주의자가 없다고 봐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지 공산주의가 고걸 다 필기하고 그래 가지고서 이다음에 그것을 자꾸 정보에 올리고 올리고 이래 가지고 고것이 이다음에 심문 나올 때는 고게 나옵니다. 6·25 때에 제가 설교한 것을 그것이 위에 까지, 저희들의 말하자면 중앙청까지 다 올라가 가지고서 그 설교한 것이 다 그것이 지금 조사가 돼 가지고 이 사람을 찾으라고 이랬는데, 이 사람이 거창 지방에 있으니까 거창에 가서 찾으라 하고서 그 명령이 하달됐는데 그 이름이 글자가 틀렸어. 영희가 아니고 영기라. 영기라는 사람을 각 교회서 찾아서 그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을 찾은 것이 그 사후에사 밝혀졌습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 설교 그것 때문에 그랬는데 하나님이 가리워 놓으니까 글자를 빽 틀어 버리니까 영기가 되어서 그 찾아도 아, 그런 사람은 없다고서 자꾸 그래 돼 가지고. 영희라는 사람은 있어도 영기라는 사람은 없다고 이래도. 하나님이 가리워 놓으니까 그 이름이면 그러면 한번 찾아와 볼 건 데 그거 다 이래 와서 뭐 봤던지 그것도 몰라요. 그런 것이 언제든지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걸 알고 해야 돼요.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 없다 하기 때문에 원인 없는 결과만 바라보는 사람들이요, 뿌럭지 없는 둥치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연히 그 결과는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을 성경에는 기록하기를 멸망이라 요한계시 17장에 보면은 그렇게 기록을 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것의 양면을 생각해야 되는데 논리적으로 순서하든지 우리가 접촉할 때에 먼저 무엇을 접촉하느냐? 우리가 우둔하기 때문에 보이는 그 결과 밖에는. 보이는 것 밖에는 접촉 못 합니다. 그 보이는 것을 접촉했으면 반드시 접촉하고 난 다음에는 즉시 보이지 않는 면을 가 더듬어 가지고서 어떻게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그 모든 사고 방식이나 계획이나 모든 노력이 다 실패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여게도 보니까 과거를 말했습니다. 과거 너희들이 애굽 나라에서 어떻게 됐던가? 그 과거를 생각하라고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그러면 '애굽 땅' 이라니까 '애굽 땅' 하니까 애굽에서부터 시작하라 말 아닙니다. '애굽 땅' 할 때에는, '애굽 땅' 할 때에는 벌써 쭈욱 미루어서 생각하는 사람은 야곱이 자기 형 에서로 더불어 한 집에 있을 때에 그때에 무엇 때문에 분쟁이 났으며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시비나고 또 거게 장자의 명분을 팔고 쭈욱 그 원인을 생각할 때에 이제 야곱을 쭈욱 생각하면 야곱이 왜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했느냐? 사랑한 그것은 야곱이 그 뒤에 행위를 잘해서 하나님이 사랑했습니까, 사랑한 것이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도록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서 그 예정이 되어 있어 그렇습니까. 무엇이 원인입니까? 예정이 원인입니다. 나기 전부터,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 내가 어제 양산동에서 미국에 전화를 해 가지고서 '오늘 여덟 시에 OOO선생하고 OOO선생하고 둘이 한 자리에서 너거가 전화를 해라. 전화를 하는데 요금을 한국에다가 위임을 시키고 그렇게 하라.' 이랬는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할 사람들이라. 그래서 전화가 오면은 내가 전화 번호를 알아 가지고는 다시 여게서 새로 전화를 해서 거게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 말할라는 것은 거게 가서 공부를 하니까, 원인과 결과에 대한 그것을 잘 구별을 못 해서 좀 얼떨떨한 일이 있어서 편지가 왔었습니다. 와서 그래 거게 대해서 내가 똑똑히 좀 가르쳐 줄라고 그래 지금 전화를 하려고 합니다.
그걸, 과거를 생각하기를 '아, 나기 전부터 에서와 야곱은 구별돼 있었다.' 이걸 생각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아, 모든 일이 절대자의 그분의, 그 예정에 따라서 되어지는 것이로구나.' 이것을 알 수가 있을 거라 말이오. 그분이 또, 그랬는데, 와 가지고서, 형은 사냥하고 오니까 배고프니까 죽 좀 죽 한 그릇 달라' 이라니까 '장자의 명분을 나한테 주면 죽을 주지' 이러니까 장자, 내가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 있나? 네 하든지 말든지 하고 나 배고프니까 팥죽 한 그릇 달다.'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거게서부터 벌써 그 인품이 나옵니다 쭈욱 그 다음에서 나와서, 야곱의 열 두 아들이 있었는데 열 두 아들이 요셉에게 대해서 어떻게 박해를 가한 것과 압박을 가한 것 그것을 주욱 미루어서 생각하고, 요셉이가 그런 고독하고 마찰되는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켜 나온 그것을 주욱 연상해서 생각하고,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와 가지고서 애굽 나라의 총리 대신이 됐는데 그분이 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고 모든 걸 하나님에게 물어 가지고 하고 들어 가지고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 했지 자기가 능동적으로 한 일은 없었다 하는 그것을 주욱 생각해 오고, 자기들의 민족이 애굽에서 아주. 요셉이 말하기를 '나를 바로의 아비를 삼았다' 이랬어. 아비를 삼았다 이랬는데, 그렇게까지 존대하고, 야곱이 죽었는데 애굽 나라 사람들이 칠십 일을 애곡을 했습니다. 얼마나 존대했습니까? 칠십 일을 애곡했어. 야곱 죽었는데 요셉이 때문에 그 사은을 그렇게 했다 말이오.
그렇게까지 한 그것이 뭣 때문이냐? 그라던 사람들이 차차 차차 이스라엘을 박해해 가지고 마지막에는 그 멸종을 하려고 그렇게까지 해서 그때는 멸종을 당하지 안했느냐? 순서를 과거를 주욱 연상해서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그들에게 알 수 있는 것이 확실히 있다 말이오.
그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걸 기억하라.' 그러면 그 원통이. 과거에 이러니까, 이거는 멸망이다 이거는 구원이다 하는 것을 환하게 알 수가 있다 말이오.
거게서 또 그렇게 전멸되는데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 가지고 역사해 가지고 그들을 구출한 그걸 다 이렇게 주욱 생각해 나오니까 그만 이스라엘에게는 그만하면 족합니다. 이런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문제가 뭐이냐 이래 가지고 그들이 그게 사는 길이요, 피난처요 그것이 전 생명의 줄기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서 애굽 종 되었을 때에 너희들을 인도했다 하는 것을 기억하라 이랬어.
그런데 우리 교회서는 그걸 반대합니다. 반대해요, 여기 대구 대창골 기도원에 가 가지고 그때에 하나님이 역사한 그 은혜를 보이는 고기덩어리에 대한 역사를 받은 사람들이 육백여 명이 그때 나았으니까 그뭐 도무지 그런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츰 많지마는 그때 무슨 뚜렷히 뭐이 보였습니까? 간추려 보니까 그렇지마는다른 사람은 거게 대해서 같이 그 자리에 있어도 '뭐 보얀 거짓말이지 뭐 그런 일이 있을까?' 보얀 거짓말이라 할 거라. 그래. 또 자기에게 그와 같은 그런 일을 한 그것을 과거를 죽 생각해서 아,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
나에게 대해서 주님이 이와같이 하셨다. 그분은 변치않는 분이신데 변치 않는 그분이 나에게 대해서 이와 같이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이렇게 착수했으니 자기에게 그분 한분이면 다 됐지 모지랄 게 뭐 있으며 염려할 게 뭐 있습니까? 우리가 과거를 끊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에게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고 교만하고, 과거를 끊어 버렸기 때문에 거게서 교만이 나오지, 잘된 것은 제가 했다고 교만이 나오지, 또 과거를 끊어 버렸기 때문에 어려운 일 당했으면 죽을 지경이라. 어려운 일 당했으면 그만 공포와 비겁에 쌓여서 사지를 쓰지 못하는 그런 인간이 돼져 버리고 말지. 또 자기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의 답답한 일이 있으면은 과거를 그랬으니까, 아이구, 이러니까 나는 그만 절망이 돼 버려. 이러니까 나는 무슨 희망이 있나? 절망되는 인간이 된다 말이오. 과거를 생각하면, 과거에 그럴 때에 당신이 해 주셨는데, 그분이 계신데 무슨 문제가 있겠소? 그런고로, 과거를 생각해야 되는데 과거 그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견디지를 못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자복을 하고서 '이거 하나님이 영병을 고친 것이라든지 마음병 고친 것이라든지 고기덩어리병 고친 데 대해서 다른 것은 다 많지마는 사람들이 모르고 우선 고기덩어리병 고친 거는 다 자타들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록해 가지고, 기록해 가지고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이것을 책을 만들어서 출판을 하겠습니다. 사은에 대해서, 사은에 대해서, 범죄한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것 감사한 줄 모르고 다 잊어 버리고 하는 이런 죄를 그 책을 만들어 가지고서 나눠서 주님의 노를 풀겠다고 그래 몇 번이나 약속을 해 가지고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 책이 몇 권 만들어졌습니까? 오백 권 만들어졌는데 그 책은 다 나갔고, 또 요번에 부록으로 만든 거는 몇 권입니까? 그게 오백 권? 처음에 만든 것이 오백 권, 똑 같은 권 수요? 오백 권인데 지금 남아 있소? 서른 다섯 권 남았어. 서른 다섯 권 남았다 하는데, 그걸 만들어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우선 내가 노를 면 했습니다.
하나님의 노를 면하고 사은을 모르는, 배은 망덕하는, 은혜를 배반하는, 배은하는 그 죄를 주님 앞에서 우선 노를 좀 풀고 이래 가지고 있으면서. 또 기도하면 또 그것이 자꾸 독촉을 합니다. 이래서, 그래 내가 이차적으로 또 하나님 앞에 내가 용서를 구한 것은 이것을 누구에게든지 읽혀 가지고서 잘 읽도록 그렇게 연습을 해 가지고 이것을 대예배 때에 내가 이것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도록 할 때에 온 교인은 삼천여 명의 교인이 그거 듣기를 좋아하느냐 하면은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한 십분지 일쯤 있을 것이고 십분지 구는 듣기가 싫어서 '아, 뭐한다고 그런 걸 자꾸 잃고 지금 뭐 하나님 말씀 들으러 왔지 그 따위 소리 들으러 왔는가 이렇게 욕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꼭 내가 읽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노를 지금 멈추고 있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내가 재촉을 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약속하기를 이것을 녹음을 해 가지고서 이것 테이프를 팔아서 어쨌든지 저희들이 자면서 누워서라도 들어도 자꾸 들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렇게 이런 일을 해 주셨다 하는 그것을 자꾸 기억하고 읽혀서 '아, 하나님이 이 일 해 주셨으니 이 일도 해 주실 수 있지 않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우리가 공연히, 불교인들이 나무를 깎아 세워 놓고 돌을 깎아 세워 놓고 이 부처님이 우리를 도와 준다 자꾸 그렇게, 자기 주관적 공상 가지고 자꾸 이렇게 하는 것 모양으로 그런 것 아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가 손대지 안한 그런 일을 해서 역사해 주신 그런 것을 이제 자꾸 알리고 알려 가지고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가구를 들으시고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신다 하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떻다는 그것을 자꾸 이렇게 녹음을 해 가지고 자꾸 들리도록 내가 하겠습니다. 뭐 미워해도 하겠고 어떻게 해도 하겠습니다.' 내가 그것을 또 하나님에게 약속을 해 놓고 지금 그 읽히고 있습니다.
읽히고 있는데, 내가 처음에 말하기를 'OOO씨나 OOO씨나 두 분이 아마 좀 제일 나을 것이다' 이랬는데. 요새 내가 '연습해 보니까 어떻더냐?' 이라니까 보고 들어온 대로는 '소리는 OOO씨가 또록또록하고 좀 더 낫습니다' 이랬는데, OOO씨, 몇 번 읽어 봤어? 몇 번 읽어 봤어. 그래 인제 그래 가지고. 그래 녹음은 또, 녹음도 뭐 했더라는데, 녹음을 앞으로 그건 이제 해 가지고서 그랄 겁니다.
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이런 일 해 줬다? 자꾸 감사하고,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 가지고 우리가 살아나는 건데 왜 그것을 싫어합니까? 그 말을 하면 말이지 백 목사가 한 것같이 '아, 또 백 목사 자랑한다.' 백 목사가 했으면 백 목사 자랑이지마는 백 목사가 한 게 아니라 말이오.
백 목사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 그랬지마는 백 목사는 발에 무좀 있는 것 지금도 하나도 안 나았습니다. 무좀 있는 게 하나도 안 나았어 또 눈썹이 이래 가지고서 지금도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장 수건으로 이래 딱아야 되는데 그것 뺄 시간은 사실상 없어 뺄 시간이 없어. 내가 빼면 하지마는 다른 사람을 오라 하면 그사람도 시간 바쁜 사람이지. 이 젊은 사람들은 뭐 어데 있는지, 젊은 사람도 보니까 또 눈 밝은, 병신 아닌 사람이 없어요, 모두. 전부 보면 똑똑하이, 예민 하기는 예민한데 눈이 나빠서 또 안 돼. 그래 가지고 늙어서 지금 할머니가 되어 가지고 있는 OOO권사님을 소리해 가지고 항상 뺍니다 돋보기를 쓰고서 말이지, 이랬는데 그저에는 OOO이라고 여기 교환실에 있던 그 O선생이 와서 잘 빼 줬는데 그분은 그만 가 버렸고, 그래서 OOO선생의 부인 O선생을 이렇게 빼 달라고 이랬는데 와서 그래 빼 주기는 잘 빼 줘요. 빼 주는데 아이가 주렁주렁 셋인가 뭐 몇인가 이래 주 딸렸으니까 그것도 또 동원시키기가 또 안 됐다 그거야. 그런데 그렇츰 고통스러워도 눈썹을 하나님이 빼 주시지를 안해. 그거 하나님 당신이 할라 하면 뭐 암병 고치고 갈비대가 푹 내려앉은 거 쑥 올린 거 요량하면 쉽지 않소? 이런데 그거 내가 하는 것 같으면 내게 하는 거 하지마는 그걸 안 고쳐 주신다 그거야. 여게 있는 사마귀 조그만한 거 있는 거 그거 암만 기도해야 안 나아요. 안 낫는데 요새 보니까 조그매 흔적만 있지 없어졌구먼요.
주님의 하시는 일을 자랑하는 것이 사람 자랑이 아닌데 왜 그리 시기심이 가득 찼는지 말세가 돼 시기심은 더 많습니다.
내가 요새 말 들으니까 아이를 낳았는데. 우리 교인 중에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둘째 아이 낳았는데. 아이 낳으러 가고 난 다음에는 사흘이 되어도 아버지하고 같이 있고 어머니 찾지를 안하더랍니다. 찾지를 안하는데. 어머니가 아이를 하나 데리고 오니까 마구 그만 울면서 뭐 영 죽을라 하더랍니다. 이래. 아이를 뭐. 그래 그만 집어뜯고 뭐 그만 얼마나 울고 슬퍼하든지 아이가 뭐. 내가 그 말을 들으니까 똑 나무 잎 이파리같이 됐다 이래요. 그 말 표현하기를. 그 사람이. 나무 잎사귀와같이 그렇게 바짝 말랐다. 그 시기심은 말이지, 그 시기심은 갈수록이 그 아이들 낳은 걸 보면 아기 낳는데 과거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별로이. 아기 낳는데 그 아기 난 아기에 대해서 아이들이 시기하는 그것이 뭐 과거의 몇백 배 더, 강 해. 그만 막 이래 가지고서. 젖을 먹이니까 막 입에서 손가락을 넣어 가지고 젖꼭지를 훔쳐 내고 빼내고 이래 막, 울며 막 이래 달라든대요. 우리 클 때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얼마나 죄악이 강해집니까? 이라면서 또 그래 놓고 난 다음에는 제가 젖꼭지 헤벼낼라고 손가락을 넣었으니까 제가 그랬는데 그뭐 또 어린 아이 그게 뭐 물더라도 얼마나 물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막 손가락 물렸다고 하면서 고함은 뭐 응 파득이 울고 막 이래 억지를 지기고 이라더래요 그거 연극도 잘하지 시기도 많지 욕심도 많지, 점점 갈수록이 인간은 점점 악해져 갑니다. 점점 악해져 가. 이 악해져 가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점점 악해져 가는데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은, 점점 악해져 가는데 점점 선해져 가지고서 자기를 이 세상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밤낮 바쳐 가지고서 모든 것을 인간 구원에 바치고자 하는 그런 사랑의 사람이 점점 되어져 갑니다. 그러니까, 깨끗한 자는 점점 깨끗해지고 더러운 자는 점점 더러워진다고 이 세상을 말씀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이 사은을 가져야 될 터인데 도무지 사은을 가지지 안해요. 이러니까, 자,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가르쳐 준. 하나님이 내게 와서 낫아주셨는데 돈 들여 가지고 낫았으면 그까짓 거야 뭐 자기돈 벌어 놓은 자기 피를 가지고 내나 낫았기 때문에 그럴 게 없지마는 하나님의 은혜로 낫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공으로 낫아주시니 공으로 낫아준 거 좋고. 그것보다도 대통령이 와 가지고서 손수 이래 가지고서 무엇을 손수 내가 무슨 그럴 때에. 저 어데가 떨어져 가지고 있을 때에 대통령이 와서 업어 가지고 왔다든지 그리 안 하면 나를 주물러 가지고 이와 같이 한 데 있으며 그것도 거석할 거라. 하나님이, 하나님이, 대주재 자존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내게 와 가지고 이렇게 해 준 데 대해서 잊어 버렸으니까 그런 자는 뒈져야 되지 않겠소? 여게 육백여 명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걸 잊어 버린 그런 자는 뒈져야 마땅하다 그말이오. 안 그렇소? 자, 그 은혜를 다 잊어 버려 버리고 사람에게 거석한 것은 이거 담배 피울라고 성냥 한 개만 달라 해도 성냥 한 개 주며 성냥 한 개를 주든지. 그리 안 하면 나이터라 하나 뭐라 하나? 요래 똑 거석해 가지고 불 가지고 요래 딱 대 주는 그만 해도 담배불만 하나 댕겨줘도 '아, 감사합니다.' 절하며 이래 할 줄 알면서 도무지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런 게 전혀 없어.
그래, 내가 언제 누구 말해 보니까, 자, 우리 교회서 돈 빌려 준 게 얼마 있는 고 이거 다 챙겨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빚을 다 이것을 확실히 학인해 가지고서 정리해라 이라니까, 여기 뭐 어째 구십만 원인가 얼마인가 우리 OOO집사에게 빌려 줬대요. 빌려줬다 하는데 '그러면 이거 뭐 하려고, 뭐하려고 빌려 줬노?' 이라니까 '아, 그때 병원에 입원해 가지고서 있을 때 빌려 준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라는데. 빌려 줬다 하는데 그래 해 봐야 나은 거 하나도 없었다 말이오. 병원에 가서 나은 거 하나도 없었어. 간도 간염이 돼 가지고서 뭐 두 달 치료해야 된다고 하라 하는데 아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돈 한 푼도 안 받아 썩 낮아 주셨는데 거게 대해서는 감사하는 무슨 연보, 그걸 하는 게 아니라 항상 하나님이 나에게 이거 고쳐 줬다, 내 갈비대가 뿔라져 몇 개가 뿔라졌는데 이 가슴이 이 주먹이 들어갈 만치 푹 들어갔었는데 쑥 올라와 낫게 해 주셨다 주님이 낫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낫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해 주셨으니 전능자가 이렇게 해 주셨으니 전지자가 이렇게 해 주셨으니 만왕의 왕이 나에게 이렇게 해 주셨으니 아, 생명도 바쳐주셨지 이렇게 해 주셨으니까 아, 그분이 계시니까 염려할 게 뭐입니까? 이제 자꾸 생각할수록 이 자기에게 복되도록 하라 그말이오.
하나님 앞에 뭐 감사해서 하나님 좋게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자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함으로써 자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고 그분 한 분 가지고서, 그분이 뭐 돈 달라 합니까? 그분 한 분 가지고 모든 것 되어지니까 그분 한 분에게 구하면 모든 것 다 주시마 했는데,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데, 그분 한 분만 보고 사는 분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이런데, 도무지 사은을 생각지 안해. 그것을 여러분들이 오늘은 특별히 그걸 한번 좀 생각해 보십시오, 가서, 나에게 뭘 했다, 뭘 했다, 뭘 했다. 그래 내가, 어떤 사람이 그걸 과거에 내게 대해서 이렇게 했다, 이렇게 했다 쭉 그것을 생각하니까 참 힘이 되고 은혜가 되는 모양이라. 기도하러 가 가지고 딴거 생각지 안하고 기도하러 가 가지고 떡 거석해 아, 내가 과거에 이렇게 하나님세서 왜정 말년때에 나에게 이렇게 하셨다, 6·25 때에 나에게 이렇게 하셨다, 이렇게 하셨다. 이렇게 하셨다, 과거에 자기에게 대해서 하신 일을 다 생각하니까 소망이 확 생겨지지, 용기가 생겨지지 예수 한 분 외에 딴것을 더 구할 것이 없어.
그분만 한 분만 하면 돼요.
저도 금족령이라 하는, 금족령이라 말 압니까? 금족령이라, 나라에서 금족령 내린 금족령을 아는 사람 손들어 봐. 예, 금족령이라 하는 것은 딱 고 자기 집안 울타리 안에만 있지 울타리 밖에 못 나가구로 발을 금해 금족 발을 딱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함양은 그때 금족령이. 지리산에 있는 공비 토벌하기 위해서. 하도 섞여 있으니까 뭐이 뭐인 줄 몰라. 좌우간 삽짝 밖에 나가면 총 쏘아 죽입니다. 이래 가지고 금족령을 내렸는데, 그러니까 그때에 해망에 집 안 뜯어 땐 사람이 없어요. 추워서 뭐 이런 시설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전부이 나무로 때는데 산에 나무하러 못 가니까 전부이 집을 서까래를 다 뜯어 가지고 해. 서까래 뜯어 대다가 제일 처음에 서까래 때다가 나중에 안 되면, 기둥은 때면 무너질 터이니까 문을 뜯어 때다가. 서까래 뜯어 때고 나중에 거석하다가 위에 것 뜯어 때고 그래도 나중에 없어 안 되니까 문을 뜯어 때고, 집을 뜯어 때고 이래 했을 때입니다.
이럴 때인데, 그때에-그걸 모르고-사근에 여기 OOO집사님의 아버지 시무하는 그 교회 사근 교회인데, 그 사근 교회에 사경회하기로 약속을 떡 했다 말이오.
사경회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금족령이 내려 가지고 있어. 그렇지마는 하나님 앞에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내가 가야 된다고서. 그래 갈라고 나서니까 어떤 군인 차가 하나 있는데 '어데 가냐?' 하니까 그 함양 간다 해요. 함양 가는데 함양서 그 사근이 얼마 안 되거든. OOO권찰님 얼마 요거기? 함양서 사근이 얼마요? 그거 몰라? 나는 거기 사람인 줄 아는데. 뭐? 삼십 리? 아, 삼 킬로. 녜, 삼 킬로. 그래 인제 그만 거게 가서 턱 그만, 태워 달라니까 태워 줘요. 거게다가 떡 내려놨다 말이오. 내려놨는데 뭐, 거게서 함양읍에 내가 집회를 가 인도했는데 함양은 저거 집사 가운데에 똑똑한 자가 하나 있는데 그 자가 신문 기자라요. 신문 기자인데 이 집사를 찾아 가지고서 하면 제가 좀 뭐 알 것 아닌가? 거게 찾아갔어. 그래 찾아가서 '집사' 하니까 '하이구 지금 우리 보이소. 전부 지붕 다 뜯어 때고 이랬는데 삽짝 밖에 못 나갑니다. 이 교회 못 갑니다. 지금 무슨 집회를 하겠습니까?' '이 좀 말 좀 네가 할 수 없느냐?' '하이구 말 하나 마나 대번 쏘아 죽입니다. 어찌 왔습니까?' 이래 '에히 이것도 다 아무 힘 없는 인간이로구나.
똑똑한 척 하더니마는.' 그래 그만 거기서 나서 가지고서 그래 이제 사근까지 걸어갔지요.
걸어갔는데, 거게서 초소가 뭐 다섯인가 여섯인가 돼요. 이제 그만. 가면 그만, 그러니까 들에 하나도 사람 없습니다. 무조건 뭐 나오거든 발사 해 죽여라. 그만 전부 다 공비라고 죽이라 하는 건데. 이제 거기를 가니까 뭐 집회가 됩니까? 앞집 사람이 뒷집에 못 오는 판인데. 그래 거게 가 가지고 할 수 없이 집회를 못 해서 하룻밤 자고 나서 가지고서 또 갈라 하니까 그 뮈라 하는 거 아니라, 그 여기서 동리에 있는 초소서 말이오, '여기서는 그러면 자기가 갈라 하면 내보내지마는 가면 요 다음 초소에 가서는 죽습니다. 거기서 무조건 발사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그뭐 자기가 죽으러 갈라 하는거는 그렇지마는 여게서는 우리가 한다 해도 가면 죽 습니다.' 안 된다 이래. 그래 내가 '당신들만 허락하라' 그래 허락을 받았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는, 꼭 그렇다면 뭐 가십시오. 가나 그만 한 초소를 못 지나갑니다.' 그래 가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서 거게 가니까 또 그래 통과돼요.
그래 통과되고 통과되고 칠십 넷 그 초소를 그때 거쳐 가지고서 그 위천까지 걸어서 갔어요, 내가. 뭐 아무것도 차는 없으니까, 차는 전혀 못 다니니까.
하나님이, 그런 것도 내가 생각해. 그때 내가 '하나님이 뭐하려고 이렇게 하는가? 이거 뭐하려고 독보의 걸음을 이래 거석하며 사망을 자꾸 꿰뚫고 가는 걸 이런 걸 뭐하려고 하는가? 이거 뭐인가 필요 있을 때가 있을 거다.' 그거 지금도 생각하는데 앞으로 언제 필요가 있을란지 모르겠어, 지금. 과거 그런 것도 생각하고 이런 것도 생각하고 자꾸 생각하니까 그만. 자꾸 생각하니 하나님의 전능자의 품 속에 딱 내가 안겨 가지고 있어. 전능자의 품 속에 아듬겨 가지고 있다 말이오. 아듬겨 가지고 있으니까 그 염려할 게 뭐 있습니까? 그라니까 어떻게 평안하고 좋은지.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도 같이 이런 은혜를 나누자 해서 이 말씀을 지금 봉독한 것입니다. 과거에 여러분들,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주신 것을 그것을 낱낱이 생각해서 그 하나님이, 어제 차를 타고 오면서도 어찌 기쁜지. 자, 세상 모든 사람 보니까, 자기가 의지하고 바라 보고 참 믿고 맡겨 놓고 든든한 그게 있는데, 그게 다 있는데, 그게 차차 차차 늙어지니까 쪼글쪼글해지니 힘이 없지 아, 그게 태산같이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맡겨 놓고 복종하고 든든히 자기의 전부로 알고 대상으로 삼았는데 그게 가다가 그만 쭈굴쭈굴하이 늙어지더니마는 꼬르르르 팩 하고 죽어져 버리니까 죽어졌을 때에 그분들의 절망들이 어떻겠느냐? 이런 데 내가 바라보고 의지하는 이분은 이분이 늙지 안하니 좋다. 시들지 안하니 좋다. 쇠해지지 안하니 좋다. 어데든지 제시니 좋다.
영원히 영생하고 계시니 좋다. 이분이 암만 좋다 할지라도, 이분이 암만 좋아서.
자기 배경이나 부모나 남편이나 그 대상이. 자기가 의지하는 나라가 국정이, 자기의 나라, 대상하는 배경의 사람이 든든하면 얼마나 좋지마는 든든하니까 행복 가운데 들어 있는데 아, 자기가 꼴막꼴막해 가지고서 좋은 배경과 환경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 자기가 꼴막꼴막해 가지고서 병이 들어서 죽어집니다. 꼴막거리면 그거 기가 찰 것 아닙니까? 이 좋은 배경을 다 두고서 제가 지금 병들어서 지금 죽게 되면은 그 죽은 송장이 안심하고 가지를 못할 거야. 송장이 영 그렇게 좋은 배경, 좋은 환경, 그런 지위, 권세 다 두고서 제가 약해서 뒈지니까 얼마나 그 마음에 슬프겠소? 기가 찰 거라.
이런데, 이 하나님은 좋고 다 좋지마는 내가 한 백 년 살고 이백 년 살고 죽어 버리면 탈인데 나도 영생이라. 아, 이래 놓으니까 뭐 좋아서 어떻게 좋은지, 차 타고 오면서 기사는 모르지마는 나 혼자는 좋아서 어떻게 좋은지. 그분이 내가 배경으로 장대하는 분이 그분이 그렇게 큰 분인데 그 분이 내게 대해서는 조그만 사정도 다 알았어. 과거에 보니까 뭐 죽음에도 통과했고 아, 왜정 말년에 그 사람들 앞에서 천조 대신을 나한테 달라. 내가 불에 태워 볼께 해도 그분이 입을 막으니까 꼼짝도 못 했지, 또 공산주의가 막 와 가지고 포위해 가지고 이럴 때도 호통을 치니까 공산주의가 퍽 주저앉았지, 아, 이거 뭐 어떻게 좋아놨는지 그 분이 좋은데. 내가 만일한 백 년만 살고 죽는다면 기가 찰거야. 천 년 살고 죽어도 기가 찰 거라. 영생을 내가 가졌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좋고. 좋고, 좋고. 좋고. 뭐 어떻게 좋은지. OOO목사님이 저번 설교할 때 좋고 좋고 하는데 나도 그 뒤에 아, 좋고 좋고 좋고도 좋다. 얼마나 좋소? 이제, 우리가. 이걸 공연한 공상입니까? 공상 아니오. 실지로 당장에도 내가 믿은 대로 효력을 봅니다.
이러니까, 과거 자기와 주님과의 과거 이것을 생각하고. 주님이 나와의 약속한 그것을 생각하고. 현재를 생각하고, 미래 앞으로 나갈 그 모든 걸 생각할 때에 우리에게는, 산 믿음이 뭐이요? 산 믿음이 어떤 게 산 믿음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된 게 산 믿음이라. 산 믿음이 언제 있습니까? 언제 있소? 자기 현실에 있어.
현실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산 믿음. 자 한번 해. 산 믿음! 산 믿음! 산 믿음! 자, 산 믿음보다 귀한 것 있습니까? 온 천하, 온 천하 우주하고 산 믿음하고 바꿀 가치가 있습니까? 없어. 이렇게 말이오. 자꾸 생각해 산 믿음 산 믿음, 이거 이래 생각하니까 산 믿음은 전지 전능이요 완전이요 영생이요 다 평강이요 승리요 성공인데 산 믿음 주고 바꿀 것 있습니까? 산 믿음주고 바꿀 것 있소? 바꿀 게 있습니까? 저 좀 한번 대답해 봐. 저 저 여반에 저 저 이름이 뭐이지? O집사 한번 말해 봐. 산 믿음하고 바꿀 게 있는가? 예? 없어? 산 믿음 주고 바꿀 것 없어. 이러니까, 산 믿음의 가치를 자꾸 내가 새겨 보니까 산 믿음보다 더 중요한 거 없다. 산 믿음은 우리 그러면 생명하고 산 믿음하고 바꾸겠소? 못 바꿔. 죽어도 산 믿음은 줄 수 없다. 내가 망해도 산 믿음은 줄 수 없다. 온 천하를 차지해도 산 믿음은 내가 줄 수 없다. 내가 어떻게 재미있고 취미 있고 좋고 뭐 뭣이 있다 할지라도 산 믿음은 절대 양보 못 한다. 산 믿음은. 절대 양보 못 한다. 따라합시다. 산 믿음은! 절대! 양보 못 한다! 산 믿음주고! 바꿀 것은 없다! 자꾸 익히십시오. 요것만 안 주고 뺏기지 안하면은 우리는 성공입니다.
우리는 전부가. 전생애가 다 영생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기도록에 등록한분들 어짜든지 빠지지 말고 꼭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이렇게 매일, 매일 지금 이 독촉하고 있는 기도록에 등록하고서 기도하는 거 이거 예사로 듣지 마십시오. 이것이 뒤에 가서 우리를 살리고 죽이는 것을 좌우하는 이 중대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