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회개


선지자선교회 1983년 2월 13일 주전

 

본문 : 출애굽기 20장 3절-17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일도 하지 말라 이 주일학교공과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네 부오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칠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  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집에 가셔서 거기를 계속해서 삼장까지 읽어 보시면 우리가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말씀이 무엇인가 하고 구할 때에 요엘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엘서를 제가 약간 읽었습니다. 집에 가서 몇 번이든지 읽고  거기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하나님이 멸하시면 참 뽀스래기도  남지를 아니합니다.

 지금 우리 남한의 교회들이 하나님이 불로 소멸하신다는 그 징조를 계속 보이고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예배당을 불 사르는 것으로 한 징조를 보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렇게 쉽게 멸하지 아니하시고 오래 동안 깨달을  만한 경고도 주시고 징조도 주시고 징계도 주시고 길이 참으나 하나님의 심판이  물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참다가 참다가 그 죄악이 관영할  때에는 당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어느 시대라도 약간의 징조를  보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주권 능력의 섭리를 믿는 자들이 그 징조를  보고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지 역할을 해서 전달해서 깨달을 자는 깨닫고  마음이 강퍅하고 완패하여 그 모든 것을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은 무시해 버리고  그렇게 순위를 삼아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도 왔고 또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도  왔던 것입니다.

 이 요엘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심히 진노하셔서 그때에 아주 인명만, 인명만  남았지 다른 모든 물질에 대한 그런 재앙들이 하나씩 둘씩 이렇게 나나타서 징조가  됐던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참 남음이 없이 전멸이 될 만한  그런 하나님의 계획한 재앙이 있었지마는 그들이 모두다 애통하며 회개를 하라  이랬습니다. 애통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시고 다시 이 땅 위에  축복을 주셔서 소제와 전제를 드릴 형편이 되리라 말했습니다.

 소제와 전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는 일이 많아서 그저 이 일에 대해서도 감사,  저 일에 대해서도 감사해서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일이 계속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거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했습니다. 2장 l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우리가 회개한다 하는 것은 과거에 잘못된 것을 원통히 여기고 앞으로 바로 해야  될 그런 각오를 가지고 현재에, 과거에 원통한 그 일을 되풀이하지 아니하고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그 각오한 것을 현재에서 실행하는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현재에 있는 것이지 다른 데는 없습니다. 과거를 크게 후회하는 것으로 회개의  일부가 된 줄 알고 앞으로는 내가 이렇게 고쳐서 살겠다 하는 각오로서 또 일부의  회개가 된 줄로 아는 이것은 전부 악령이 우리 회개를 미끌어지게 해서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니다. 그것을 가지고 원통해서 눈물을 흘리고 어떻게 한다 해도  안됩니다.

 과거에 대해서 원통한 그것이 현재를 주장하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각오가  현재를 주장하게 되어, 과거의 원통이 현재를 주장하니까 현재에는 그런 원통한  일을 하지 아니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그 소원과 각오가 현재를 주장하니까  현실에서 앞으로의 원하는 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회개라는 것은 현재에서만 되지 과거와 미래에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그 원통한 것을 돌이키고 소원하는 것을 실행하는 그 현실로  향할 때에 비로소 그것이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저 우리가 말로만 하는 그것도 소용이 없고 또 행동으로만 하는 것도  그것도 껍데기입니다. 말보다 행동이 힘있고 행동보다 그 마음이 힘이 있습니다.

마음의 아픔의 행동으로 각오로 눈물로 이렇게 나올 수 있어야 되는 것을 가리켜서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껍데기 사람 보이는 것이나 네 보이는 외부의  행동보 다도 네 마음 속에 과거에 대해서는 원통하여 마음이 아파 마음 아픔이  눈물로 변하여서 나오고, 앞으로 당할 환난의 그 멸망이 기막히고 두려워서 그  마음의 아픔이 눈물로 나오고 그저 주위 환경을 돌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만치 그렇게 되는 그 회개를 여게 말을 했습니다. 눈물이 없는 회개는 그 회개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과거에 대해서 마음에 원통하고 후회가 된다 해도,  마음으로 원통하고 후회가 돼도 참 눈물로 화해서 나올 만치 그렇게 원통과 후회가  안 되면 그것은 다 외식입니다. 참 회개해야 할 그 정도로 느끼지를 못한 것입니다.

 또 앞으로 자기의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서 멸망받는다는 그 멸망에 대해서도  '내가 이런 멸망을 앞으로 받을 터이니까 어찌 되나?' 하는 그런 두려운 정도가  아니고, 그 두려움을 지내면 지당하다는 그 자기의 행위가 밉고 자기에게 있는  죄악이 미워서, 죄악의 요소와 죄악 속에 들어있는 그 부패성의 원죄의 요소 본죄  요소 그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 대해서 마음에 분하고 밉고 원통하고 한 그것이  자기에게 눈물화되어지는 그게 필연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거는 뭐 아직까지  급하지 안해서 그렇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처음에 십계명을 읽었는데 십계명에 대해서 뭐 이제 해석은 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일계명은 하나님 한 분이면 우리의 영과 육의 모든 좋은 것에 전부가 됩니다.

넉넉합니다. 충만합니다. 넘쳐서 무한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을 믿지 못한데  대해서 원퉁히 느낄 만치 느끼게 되면, 믿지 못한 데 대해서는 눈물이 안 나와도  믿지 못한 데 대해서 느낄 만치 느끼는 끝에 이렇게 지극히 크신 분이 자기와의  관계를 가진 그 소망이 자기에게 깨달아질 때에 감사의 눈물이 안 나는 사람  없습니다.

 이렇게 지존하신 분과, 그분이 어떤 분인데 그분에게 내가 속하다니, 그분에게 내가  속하고 그분과 나와의 관계를 가져 그분이 내 아버지 되고 그분을 의지하게 되고,  세상에 사람들이 쓸데 없는 것을 의지해 가지고, 모두 다 잘나나 못나나 인간들은  전부 저 의지하랍니다.

 저 의지하라 하니까 모두 이런 것 저런 것 다 의지하고, 뭐 돈 제 지식 별거 의지  하는데, 만유의 대주재를, 참 의지할 만한 만유의 대 주재, 의지하기에 한 분밖에는  할 만한 이가 없는 이분을 내가 어떻게 의지하게 됐으며, 이분을 어떻게 내가  바라보게 됐으며, 내가 어떻게 이분에게 속하게 됐으며, 내가 이분에게 배움을  가지고 인도를 받게 되고 모든 일들을 의논하게 되고 그분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이  모든 것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누구나 감사의 눈물이 안 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일계명에 대해서 우리에게 감사의 눈물이 참 나야 됩니다.

 감사의 눈물이 날 그때는 우리에게 후회할 일이 없었고 참 극히 평안했고  안정됐고, 그럴 때는 자기가 자기를 봐도 정상적인 사람이고 모든 판단이나 평가나  소원이나 경영이 다 옳지마는 실은 아 눈물이 끊어졌을 때에는 마치 자동차가 가던  속력에, 자기의 기름의 힘이 아니라도 가던 그 속력으로 달리는 것처럼 그렇게  딜려지는 것이지 그 기름 힘으로 가는 것은 아닌 거와 같이 거게서 얼마 가면 고만  중지하고 맙니다.

 이것 모양으로 실은 일계명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감사의 눈물이 멈춘 지 얼마  안돼서 그분과 연결은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감격한 그 눈물이  계속되고 또 마를 만하면 계속되고 또 어떤 사건이면 계속되고 이렇게 그저 끝날  사이 없이 계속될 그때가 가장 지혜로운 때요 또 평안한 때요 정상의 때입니다.

 이계명은 자기가 죄를 지어서 자기도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서 비참해진 그 형편을  바로 깨닫고 마음에 원통해서 눈물이 날 뿐만 아니라 자기로 인해서 신앙의 후배,  주일학교 반사는 주일학교 학생들이라든지, 목사라면 모든 교인이라든지 또 혈육의  자손이든지, 참 우리가 죄지은 그 죄로 인해서, 복의 기관으로 하나님이 세웠는데  복의 기관으로 자손들이 복받는 것보다도 오히려 화의 기관이 돼 가지고 소속자들이  그 화를 받고 천해지고 모든 것이 형통치 안하니까 고생을 하고 또 모두 다 변질이  된, 변질된 사람들이 되고, 이런 모든 이걸 볼 때에 눈물이 안 나올 수 없고,  또 앞으로 회개 안 하면 그 일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재앙만 오지 축복이 오지 안할  터이니까 미래에 대한을 재앙이나 또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  희망의 것이나 자기와 자기 자손을 인하여 눈물이 없는 그 회개라면 그 회개는 너무  낙관이고 거기 대해서 실감은 가지지 못한 사람이요 실재의 그 사실을 느끼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계명에서 자기와 자기의 육체, 믿음의 자손들에게 해독을  끼치고, 아브라함은 복의 기관이 되어서 아브라함의 여러대 후에도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인해서 내가 이렇게 해 준다 했는데,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우리들인데 우리가 죄를 지어 그 모든 후배 후손들이 형통치 못하고 비참하게 된  그것도 생각하면 원통하고 또 앞으로 될 걸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기가 차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깊이깊이 생각하면서 참 눈물 없는 회개를 하지 말고,  눈물을 역부러 낼라 할 게 아니라 깨닫고 깨닫고 느끼면 아무리 강퍅하고 완패한  사람이라도 눈물을 흘리지 아니할 수가 없는 처지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요엘서에  말씀하신 그보다도 우리는 더 급급하고 참혹한 데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삼계명, 하나님이 대규모를 가지고 이렇게 섭리를 하시는 데, 우리 조브라운  생각대로 그분이 어데 합니까? 지존 지성 지대하신 분이 영원을 두고 계획을 해  가지고 이렇게 모든 일을 이루시니까 우리 조브라운 생각으로는 이해를 못 합니다.

이해를 못 하는데 자기 조브라운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불만 불평하고, 또 자기  견해에 맞았다고 좋아하고, 그러니까 맞았다고 좋아하는 것도 그것도 참 믿을 수  없는 것이고 또 슬퍼하는 것도 원망 불평하는 것도 그것도 아닙니다.

 택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섭리하시는 것이 어떤 섭리로 오든지 내 현실은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에 현실 당할 때에 우리는 별별 천태만상의 현실을 만나나 우리는 거게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고, 믿음으로 소망하면서 소망과 믿음만 가지면 그 모든,  내가 이해 하든지 못 하든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내 현실은 다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현실이든지 우리 조브라운 견해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바라보면서, 믿고 바라보며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그  모든 전체를 다 종합해 가지고 우리의 구원이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삼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 연약성, 우리의 조급성, 우리의 무지성,  경거망동 참 너무도 소인되어 있는 이런 것을 우리가 마음에 참 아파서 눈물이  날만치 그렇게 우리가 느껴서 하나님에게 부르짖어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에는 눈물 없는 회개, 요엘서는 눈물 없는 회개를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실  것을 말했습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마음에 아픈 그 아픔의 눈물.

그러니까 마음이 아파서 그것이 눈물로 나올 만치 그렇게 그 실상을 실상의 다만  몇분지 일이라도 느끼면 우리는 기절합니다.

 과거에 6·25때도 그 일이 닥쳤을 때에 뭐 안 우는 사람이 없었고 안 놀라는  사람이 없었고 기절 안 한 사람이 없었고 그때에 마음이 환장 안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공산주의들하고 손잡은 회색들은 괜찮았지마는 회색이 아닌 그런  사람들은 다 기절할 만치 됐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우리가 실지로 앞으로 그와  같이 된다는 이 사실을 느끼면 오늘에 우리는 눈물이 나오기 마련이고, 또 그만치  느껴서 하나님께 구해야 그게 참 기도도 되고 참 회개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주일을, 사계명에 주일 지키지 못한 것 우리가 회개를 합시다. 어쩌든지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서 그날 정한 시간 정한 장소로 오되 저먼저 우리가 공부한  대로 자기대로는 바쁜 중에라도 몸도 씻고 의복도 제일 깨끗한 것을 세탁해서라도  갈아 입고, 왜? 제일 큰 분 앞에, 큰 분이 모아 놓은 그 회에 참석하기 때문에, 큰  분이 은혜 베푸는 그 은혜 자리에 나아가기 때문에,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 나아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새로운 깨달음이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 주시는 구원의 깨달음이,  약속에 대한 깨달음이 이렇게 있어서 우리 마음이 변화가 되어서, 우리 마음이  변화가 돼, 이 변화된 마음이 앞으로 가서 현실을 살 때에 이 변화된 마음이 그  현실에서 오는 충격보다 더 강해서 그 현실을 다스릴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될 만치  우리는 변화를 받아야 되겠고,  또 이렇게 이렇게 살면 된다는 그 법칙을 배운 그 법칙이 도로 실상인데 그 법칙이  복입니다. 깨달아서 기억해야 되겠고 이것을 예배 마치고 가면 가족들 모아 놓고 이  말씀을 가르치고 또 외우고 또 새김질하고 변화를 입고 어쩌든지 이제는 평안한  예수를 믿지 말고 참 발을 벗고 나서서 신앙 생활을 바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는 효성을 합시다. 이 세대가 효성이 없는  세대입니다. 시장에도 가면 물건이 귀할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은 효성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효성이 높이 평가됩니다. 하나님 앞에 크게 평가됩니다.

 그저 있든지 없든지 효성이라는 것은 첫째는 자신이 조심을 해서 자신이 잘 되는  것이 첫째 효성입니다. 암만 부모에게 어떻게 한다 해도 그 자녀가 망하는 것을  부모는 보면 그 이상 더 아플 수 없습니다. 조심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자손이  잘되면 그것이 첫째 효성이요, 둘째로는 모든 사람들이 칭찬을 하면 그것이 둘째  효성이요, 그 다음에는 이제 그만 부모에게 거슬리는 일은 하지 안하고 뭐 있으면  힘있는 대로 봉양하고 하면 됩니다. 이러니까 효성을 할려고 하면 절로 복을 받는  사람이 되고 잘되고, 효성을 잊어 버리면 헛일입니다.

 이래서 일계명도 사은의 계명이요 오계명도 사은의 계명입니다. 일계명은 사은의  계명이오. 하나님께 뭐 바쳐 드린다고 우리가 하는 것이 이게 다 실은 진리를  깨달으면 받는 것입니다. 제물을 짐승 잡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달라는 그  요청이오, 그게. 하나님이 뭐 받을 게 있습니까? 그저 당신이 어떤 분인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그 사은의 계명이요 오계명도 사은의 계명입니다.

 사람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면 희망이 없습니다.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유컨대 나무가 제가 심기워져 있는 흙을 다 파내 버리고 뿌리만  바짝 드러나면 며칠 가서 마르겠습니까? 바짝 말라 버리지요. 사은은 모든  피조물로써 이웃으로 자기를 보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쩌든지 효성을 하도록  합시다.

 또 여섯째 계명에, 사람을 사랑할 것. 사람을 사랑할 것. 사람 사랑하는 게 참  중요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좋은데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는 거게는 위험물이 끼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는 잡 것이 끼이지 안하고 자기에게 유일한 평강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고 마음이 자기 속에 있으면 자기 속에 벌써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사람을 자기보다 귀중히 여기고 그래  여길 때에 그 사람이야 뭐 어떻게 오해를 가지든지 말든지 상관할 게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귀중히 여겨야 됩니다. 존대해야 됩니다.

 또 일곱째, 우리는 간음하는 칠계를 마음으로나 행동으로나 범한 죄를 회개를  합시다. 말세는 이 신령한 칠계 또 육적인 칠계 이 칠계범이 시대를 다 망쳤습니다.

어덴동산도 그게 망쳤고 소돔 고모라 성도 그게 망쳤고 노아 때도 그게 망쳤고  예수님 재림 때도 그게 망친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음란해지니까 고만  그것이 예사롭게 돼서 벌써 그 칠계명이라는 칠계에 대한 햇빛은 다 없어졌습니다.

칠계에 대해서는 햇빛이 없기 때문에 칠계에 대해서는 무엇이 죄인지 의인지 하는  그 구별에 감각조차도 없을 만치 흐려졌습니다.

 이러니까 이럴 때에 우리가 주의하고 힘쓸 것은 이 칠계에 대해서 아주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이 그에게 특이하게 올것이고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그 계명을 지키면 세상과 이렇게 배치되는 자체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얻을 영광을 족히 비교할 수 없다' 말씀하신 대로 칠계를 지킬려  하면 이 세상에서 대부분의 죄악이 다 멀어지게 됩니다.

 왜? 모든 사람은 다 칠계에 대해서 칠계를 무관심하고 그저 마음으로 행동으로  눈으로 수많은 종류의 칠계범을 안 하는 사람이 없어. 이래 돼 가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만일 칠계범을 안 할려고 지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아주 새카만 밤중에 똑  반딧불 켜 드는 것처럼 이색질 것입니다. 이러니까 앞으로 말세가 돼 갈수록 칠계  하나를 지킬려고 하면 수많은 사람과 마찰이 될 것이고 거기서 이색 질 것이기  때문에 그 한 가지로서 수많은 세상과 죄악을 이렇게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아주  칠계에 대한 계명 효력이 말세가 되어 갈수록 그 효력이 크고 많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주신 분수가 있는데 아등아등 거린다고 절대로 하나님의 예정 이상의  부도 안 되고 존귀도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불변의 절대성의 예정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자기가 이렇게 아등 거린다고 해 가지고 지위 하나 올라가리라고,  무슨 소유를 좀 더 많이 가지리라고, 어리석소. 하나님의 절대자의 주권 예정이  있습니다. 고 예정 그대로요. 또 주권 능력이 그 일을 성취해 나갑니다. 그 속에서  우물거리면서 어떤 사람은 의로 살고 어떤 사람은 죄로 살고 사는 것뿐입니다.

 이러니까 마음에 하나님의 예정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자기가 어떻게 함으로  된다는, 인색함으로, 욕심을 품음으로, 또 자기가 열심히 함으로 뭐 된다고 생각지  말고, 열심도 열심을 품을 때 품어야 되지 '내가 주일날 일을 부지런히 해야 되겠다.'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법도대로, 쉬는 것도 하나님의 법도대로, 그저 빈부귀천 생사  화복은 당신에게 딱 맡겨 놓고 다만 빈부귀천이라는 현실이 오든지 생사화복이라는  현실이 오든지 어쨌든지 거게서는 나는 믿음을 지켜서 화가 올지라도 그 화를 내  구원의 양식으로 삼아서 구원이 되게 하겠다. 요 믿음 하나로만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에 조심을 해서 '다른 사람을 해할려고 거짓증거하지 말아라.' 우리  입술이라 하는 이 입술 가지고, 이 입술로써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한다고 해서,  무지한 사람이 남에게 유익하게 한다고 해 가지고 그건 선인 줄 알고 벌로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웃에게 대해서 선인지 악인지  그걸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저 이웃을 대할 때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이  법도대로 살고 내 양심대로 살면 그것이 고만 이웃에게 대해서 제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웃을 해할려고 거짓증거하지 마라 하는 것은, 우리 입술 가지고 이웃  해하기 쉽습니다. 거짓 증거는 뭐이 거짓 증거냐? 예를 들면 '네가 이 장사를 하면  돈을 많이 번다.' 그 사람이 그 장사해 가지고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거는 거짓  증거 아니고 참 증거인 줄 압니까? 그것도 거짓 증거이기 쉽소.

 우리는 사람을 상대할 때에 그 구원을 생각하고 '이걸 하면 돈은 벌기는 벌지마는  이 사람이 믿음을 팔아 가지고 구원에 손해 가겠다.' 싶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걸 말해서 '그 장사를 하면 너 이 장사하다가는 믿음을 손해 봐서 네 구원에  손해가 가겠다. 이러니까 네가 이 장사를 말고 저 장사로 바꿔라.' '그 수입이  적은데' '수입이 적어도 바꿔라.' 이 사람이 이웃을 향하여 참말을 해주는 사람이고,  아무리 자기가 콩을 콩이라 한다 해도 그 사람에게 유익되게 한다고 해 가지고,  유익의 주체는 구원 유익이지 임시고 시간에 유익 한 것이 고 다음에 화가 되는  그런 것은 유익이 아니기 때문에, 장원한 유익을 유익으로 표준으로 삼고 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에 언제든지 그 사람의 구원에 유익하도록, 그 사람이  사람됨에 유익이 되도록, 그 사람이 장구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조심해서 그렇게 대하는 것이 거짓말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라합이 거짓말 했지마는 그걸 의로 하나님이 삼으셨습니다. 그게 와  거짓말? 그건 거짓말이 아닌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이 참일에 협조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속이는 일 하고 하나님의 구원할려 하는 그 구원으로써  사람을 유익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의로 여겨서 구원을 했습니다.

 또 이웃 것을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 우리 이것도 그저 하나님의 계명대로 해서  오는 것이면 그게 내게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우리에게  죽이 오면 죽이 내게 제일 좋은 것이고 밥이 오면 밥이 제일 조은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삶으로 직장이 뚝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 좋은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함으로 직장이 생겨지면 생겨지는 게 좋은 것이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함으로서의 닥쳐진 것은 전부는 나에게 행복이요 영생이요 다 좋은  것입니다.

 이런데 이 지극히 큰 법칙을 생각지 아니하고 공연히 자기가 탐심을 내고 욕심을  내면 되는 줄로, 지극히 크신 분이 위에 딱 보고 조절하고 있는데 그러면 저만  상하지 뭐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요 십계명은 간추려서 해 놓은 건데, 이 십계명을 살펴 보면 십계명은  어떤 것인고 하니 우리에게 오는 모든 화를 다 방어 하는 것이 십계명이오. 십계명  지키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는 다 방어가 돼 버렸습니다. 또 십계명을 지키다가  보면 내가 빠질 함정을 나는 만나지도 안하고 빠지지 않습니다. 또 이 십계명을  지키다 보면 나도 날 위하려 하나 그렇게 못 위하는데 전체가 나를 위하는 것이 돼  버렸소. 뭐 전체에게 혜택을 입게 돼 버렸습니다. 또 십계명을 지키다 보면 외나  근본을 찾아 버렸어. 근본. 제일 근원을 찾았어. 제일 근원 근본을 찾았기 때문에,  근원 근본을 찾아 가지고 근원 근본에 딱 들어 붙었으니까 그 이상이 없어.

 그러기에 십계명은 우리의 모든 불행을, 사망을 방어하는 것이 십계명이요, 원수를  방어하는 것이 십계명이요, 또 내가 내 자신을 빠지게 걸리게 해치게 하는 그 모든  그물 같은 것을 다 지워서 시온의 하늘나라에 가는 길을 환하게 대로를 만드는 것이  이 십계명입니다. 또 십계명은 내게 필요한 모든 요소, 근본이신 하나님, 하나님  계시니까 다 되는데 또 그 위에 필요한 걸 다 받아요.

 이러니까 내 모든 멸망을 다 방어하는 것이 인간이 암만 요걸 요래 방어해도 안  됩니다. 나는 계명 지키는 것, 어떨 때는 그 멸망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고 멸망을  초래하는 것같이 보여졌지마는 오래 지낸 후에 보니까 그것이 참 방어가 됐소. 그저  무조건 계명은 우리의 멸망을 다 방어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천국 가는 우리의 천국로, 인생로, 자기 길을 환하게 밝혀서 시온의  대로를 평탄케 대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계명입니다. 또 이 계명은, 내가 하늘나라  가려할 때에 이 세상살이에서 필요한 것 있지 않습니까? 모든 필요한 요소를 다  구비해 주는 것이 계명이오. 사계명은 뭐 자기에게 돈이나 뭐이나 필요한 대로는 다  구비해 주는 것이 사계명입니다. 사계명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그거대로 하면 그게 돈도 되고, 권세도 되고, 지위도 되고 다 돼요. 이러니까 내가  천성을 향하여 가는 이 걸음에 내게 필요한 노자를 다 구비시켜 주는 것이  십계명이오.

 또 이 십계명은 제일 크신 분 제일 강하신 분 주재되신 분 그분을 내가 찾아  가지고 그분의 품안에 안기게 하는 것이 십계명이오.

 이러니까 십계명은 참 피난처요, 십계명은 방어요, 십계명은 시온의 대로요,  십계명은 모든 구비의 부요요, 십계명은 근본이 제일 크신 근원에 내가 소속하게  하는 이 가장 큰 분에게 내가 안기게 하는 그의 품속에 안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은 우리가 너무 눈물 없이 껍데기 회개를 합니다. 요엘서에 보니까  아이들도 다 한군데 모여 가지고 회개하라, 젖먹이 들도 전부 모여 가지고 회개하고,  젖먹이 유아들 아주 젖먹이들도 와서 회개하라 했소. 젖먹이들도 회개하라. 또  금식하고 애통하면서 회개하라 이랬습니다. 이제 우리가 회개를 느끼기는 느끼는데  우리에게 애통이 없습니다. 또 금식이 없습니다.

 과거 신사참배 때에, 그 목사님은 지금 살아계십니다. 그 목사님이 알도 못하고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일본에 가 가지고 신호 신학을 하다보니까, 신호 신학은 뭐  신신학이기 때문에 그렇게 힘은 안 납니다. 힘이 못 납니다. 이래 가지고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이래서 그걸 회개하느라고 제가 알기는 삼년인가 얼마를 한목 금식은 못 하고 하루  한끼씩을 굶었습니다. 뭐 집회를 가든지 언제 가든지 하루 세끼 먹는데 한끼씩을  굶어서, 그러면 일년이면 넉달 굶은 셈입니다. 넉달 금식한 셈이오. 하루  한끼씩이니까 삼분지 일 굶었으니까 넉달 아닙니까? 삼년을 금식을 그래 해 가지고  하나님의 노를 풀고 그래서 그분이 신사참배했지마는 참 위대한 사람으로,  OO교파에 위대한 사람으로 지금도 역사하고 있고 아주 권위있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도 이 말씀대로 아무래도 내게는 눈물이 없으면 눈물의 회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기도해서 마음에, 과거에 대해서 느낌이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올 만침 과거에 잘못한 데 대해서 마음이 아픈 느낌을 가져야 되겠고,  앞으로 회개치 안하면 하나님의 이 진노의 재앙에 대해서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이 멸망에 대해서 마음에 기막힌 그 마음의 아픔이 눈물로 나올 수 있는  이런 마음의 아픔이 있어야 되고 이것이 상한 심령이라, 이것이 상한 심령을  하나님이 멸시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마음에 참 과거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현재의 이 마음에  아픔이 내 모든 생동을 생활을 주장해서, 내가 역부러 돌이키려 할 게 아니라  돌이키는 거게 대해서는 그대로 돌이켜졌고, 껍데기는 돌이켜서 돌이켜졌고  돌이켜진 거기 껍데기는 저절로 돌이켜졌고, 우리는 돌이켜진 그 껍데기 속에  마음에는 아파서 견딜 수 없는 그것이 뭐 껍데기 행동이 고쳐졌는가 말아졌는가  알지 못할 만침 저절로 고쳐지고 마음이 아픈 그런 애통하는 마음, 애통하는 마음은  위로함을 받는다 했습니다.

 애통하는 회개가 있어야 되겠고, 또 자기 몸에 너무 상하지 아니 할지라도 우리는  금식도 합시다. 금식도 해서 자기 건강에 따라서 혹은 하루 한 끼라도 내가 거기  대해서 더, 밥만 굶으면 소용있는 게 아니고 참 과거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마음  아피 회개하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그저 부르짖는 것보다도 마음에  고통스러워서 밥을 한끼를 굶으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이번 기회에 어쩌든지 하나님의 노를 풀고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로 돌아서도록,  그러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전군은 동방으로 그 후군, 전군  그 앞에 있는 군대는 동해로 그 뒤에 있는 군대는 서해로 들어가게 만들어 버려서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라'  이렇게 우리의 대적에 대해서 회개할 때에 그 대적을 하나님이 멸하시지 회개  외에는 멸하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대적이면 어떤 사람이 뭐  멸해지는지 그저 그런 걸 우리가 소원하는 게 아니고, 어쩌든지 우리는 껍데기 사람  대적보다도 사상 대적, 사상 대적이 무섭고, 사상 대적보다도 이거 신앙 대적이 더  무섭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회개하는 이것으로서만 어쩌든지 영적 육적으로  우리의 대적이 되는 그 대적을 소멸하고 그 대적을 우리에게 붙여 줄 수가 있는  것이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눈물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이 강퍅합니다. 눈물 없는 이 강퍅이  이것이 아주 강퍅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눈물 없이는 못 간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을 가는 노자는 눈물이라 했어. 눈물이라. 어떤 학자가 '천국 가는 노자는  눈물이라. 눈물을 흘리면 천국 갈 때에 배가 부르고 힘이 나고, 눈물 없을 때에는  기진 맥진해서 쇠약해진다.'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기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위하여 심한 통곡으로 아버지에게 부르짖어 우리의 구속의  공로를 완성하신 주여! 오늘은 우리에게 애통하는 회개가 필요한데 우리 마음들이  말세를 당하여 강퍅할 대로 강퍅하고 완패할 대로 완패하여 눈물의 심정이 없는,  마음이 심히 마비되어 있는 저희들입니다.

 주님의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우리는 참 얼마나 큰 것도 큰 줄 모르고, 비참한  것도 비참한 줄 모르고, 위급한 것도 위급한 줄을 모르고, 행복된 것도 행복된 줄을  모르는 완전히 우리의 심령이 마비되고 둔하기가 목석 같이 되어 있는  저희들입니다.

 주님이여 불쌍히 여겨 주사 우리 각자들에게 주의 공로로 인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충만시켜 주사 한 사람도 남김이 없인 진정 깨닫고 애통하면서 회개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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