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7 13:25
노아의 아들들
1981. 6. 17. 밤(수)
본문:창세기 9장 21절~27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노아에게 세 아들 셈, 함, 야벳이 있었습니다. 맏아들 셈은 황인종의 조상이 되었고, 함은 흑인종의 조상이 되었고, 야벳은 백인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노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동행하던 하나님과 차차 멀어지고 자기 사업에 가까워졌습니다. 마지막에는 자기가 만든 포도주에 취해서 포도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포도주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옷을 벌거벗고 장막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수치스러운 모습을 둘째 아들 함이 보고 형제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술이 취해서 옷을 벗고 드러누웠더라’ 하고 흉을 봤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장자 셈과 마지막 아들 야벳은 놀라서 즉시 옷을 가지고 들어가되 아무렇게나 뭉쳐서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깨에 매고 두 형제가 간신히 뒷걸음질을 해서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었습니다. 덮은 후에도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고 그대로 나왔습니다.
노아가 술이 깬 뒤에 자기를 흉본 둘째 아들 함에게 대해서 장자의 자손들의 종이 되고 또 마지막 야벳의 자손들의 종이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또 장자 셈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복과, 또 야벳은 세상으로 풍부하게 흥왕될 것과 맏형의 하나님 섬기는 장막에 참가할 것을 예언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노아가 아무리 의인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기도를 했다면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십니다. 노아가 세 아들에게 말한 대로 이루어졌으니 하나님이 옳게 여기시고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은 간단한 일이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쉬운 실수들인데 대대손손이 참혹한 저주와 패망을 당했고, 또 장자에게서 만민의 구세주가 나와서 구원 계통이 이루어지고, 야벳의 자손되는 백인종은 예수님 재림 때까지 흑인종이나 황인종보다 세상에서 축복을 뛰어나게 받는 일이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언제든지 성경에 기록된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이치를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인간들의 마음의 구조를 통해서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자연계시라 합니다. 계시라는 말은 구원 도리를 열어 보이신다,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것을 알려 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 신구약 66권 도리는 특별히 선택받은 백성들에게 구원의 이치를 알려 주는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로 성경에 기록하셔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고, 또 그 사실을 통해서 구원 도리를 가르치신 것을 재차 문서로 기록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노아와 세 아들의 역사적인 사실과 형식으로 구원 도리를 가르쳤고 또 4천여 년 전의 일을 선지자 모세를 통해서 문서로 기록해서 가르쳐 주셨는데, 이 사실을 옛날 이야기로 듣는다든지 또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으로만 듣고 지나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때 노아가 세 아들에게 말한 대로 수천 년을 내려온 사실이 예수님 재림 때까지도 계속될 것이고, 하늘나라에서도 우리는 모르지마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는 말씀을 근거한다면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사실이 인간의 금생과 내세 영원을 결정한 것을 알고 잘 살펴서 거울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아들 함과 같은 일로 무서운 저주와 패망이 나와 내 자손 대대에 계대되지 않도록 방비해야 되겠고, 또 셈과 야벳 같은 행위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와 우리 자손과 후배 대대 영원 무궁토록 계속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이 사실을 하나의 옛 이야기처럼 듣고 보낼 수 없는 것은 여기서 노아가 몇 마디 말한 대로 영원 계속입니다. 지금도 흑인종은 인류 중에 제일 천대를 받고 제일 축복이 없습니다. 신앙적으로도 기독교인들이 많지를 못합니다. 또 육체적으로도 항상 비참하고 또 그들의 행위도 다른 민족들보다 사납고 어두운 것이 많습니다.
그런고로 이 중대한 결과를 보면서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 옷 벗은 것을 흉본 일이 무슨 큰 일이며, 또 맏아들과 막내아들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옷을 메고 거꾸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은 후에 그 모습을 보지 않고 그대로 나왔는데 그게 무엇이 중요하다고 대대 손손 영원 무궁토록 영향이 있었는지 여기서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요즘 계속 이 말씀을 증거하는데, 오늘 저녁에는 세밀하게 말할 시간은 없고 간단하게 하겠으니 여러분들이 돌아가서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기가 하나 있고 자기 밖에 자기 아닌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자기 밖에는 물건도 있고 짐승도 있고 무생물도 사람도 또 창조주 하나님도 천군 천사도 나라도 족속도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자기라는 것은 없는 가운데 스스로 생겨진 것이 아니라 자기 아닌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생겼습니다. 그 모든 것의 요소가 모이고 운동과 역사들이 합해 가지고 내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마음도 영도 그러하고 또 우리의 지식도 소원도 그렇습니다. 또 내가 가진 전부도 나 아닌 다른 것에게서 나왔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라도 다른 것들과 관계를 완전히 끊으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 잠깐이면 없어지게 됩니다. 시체도 모든 것과 관계를 끊어 버리면 즉시 없어집니다. 시체가 보존되는 것도 그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유지되는 것도 그로 말미암아 유지되고, 또 어떤 원소로 변질되는 것도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나 아닌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생겨졌고 나 아닌 그것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나 아닌 것에게서 내가 받고 나 아닌 그것들에게 내가 주는 것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나 아닌 모든 것에서 내가 나올 때 값을 내고 나왔느냐? 값을 낼 것이 없습니다.
창조로 또는 유출로 생겨난 나는 은혜의 존재입니다. 모든 것으로 인하여, 그것들이 노력하고, 그것들의 것으로 생겼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들에게 받은 은혜로 됐습니다.
그러면 나를 말할 때 은혜 뭉텅이라고 하겠습니다. 또 나 아닌 모든 것들은 우리가 만든 것들이라 말하겠습니다. 나 아닌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었다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모든 인간 만물이 만들어서 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를 가지고 나 아닌 모든 것을 만드는 자요, 나 아닌 모든 것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요, 나는 모든 것들에게 지음을 받았고 은혜를 받았고, 나는 나 아닌 모든 것을 짓고 만들고 또 은혜를 베풀어야 할 자입니다. 이것이 인생이요 이것이 또 모든 만물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무성하게 자라게 되는 것은 나 아닌 모든 것에게서 많이 받음으로 됩니다. 모든 것이 내게 대해서 힘을 써 줘야 됩니다. 그래야 내 지식도 인격도 지위도 권세도 모든 행복도 무성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박토에 심긴 식물처럼 죽지는 않더라도 겨우 견디면서 자라지 못하게 되는 것은 모든 것에게서 받는 은혜가 빈약하면 그렇습니다. 이웃이 나를 위해서 노력하면 나는 무성해집니다. 내가 은혜를 많이 받으면 무성해집니다. 그것이 빈약해지면 나는 빈약해집니다. 그것이 없어지면 나는 마릅니다.
또 내가 모든 존재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과의 관계성 연결성에 대해서 주력하면 모든 것도 내게 대해서 주력하기 마련입니다. 주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내가 많이 주니까 나에게도 많이 오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의 존재요, 은혜로 된 은혜 뭉텅이요, 우리는 은혜를 받고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존재하고 보존되고 성장이 됩니다. 세밀한 것은 또 뒤에 말하겠습니다.
그러면 은혜라는 것은 이런 것인데, 둘째 아들 함이 왜 이렇게 됐습니까? 무엇 때문에 저주를 받아서 종의 종이 되었고 영원 무궁토록 비참하게 되어졌느냐? 그것은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은혜로 존재하고 보존된다는 이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또 자기가 은혜 베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이러니까 함에게는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습니다. 받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습니다.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것에게서 왔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다른 것에게 주기 위해서 가진 것인데 이것을 잊어버렸으니까 자기는 있으되 실은 없어졌습니다.
예를 들어서, 금 뭉텅이에서 금을 다 뽑아 버리면 금 뭉텅이가 그대로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은혜 뭉텅이로 된 것인데 그 은혜를 다 잊어버렸으니 그는 없는 것과 한 가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함은 받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에게서 갈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저주를 취했고 종이 되는 길을 취한 것입니다.
마지막 아들 야벳은 어떻습니까?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와 아버지의 신앙 지도의 은혜로 모든 사람이 홍수에 다 멸망받는 가운데서 구원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러니까 야벳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아버지를 통해서 자기에게 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아버지의 은혜로 된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이 은혜를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주시고 아버지가 나에게 줬듯이 나도 자손에게 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야벳은 은혜와 은혜 베푼 자와 은혜 베풀어야 하는 것을 깨달았고, 또 앞으로도 자기는 은혜를 받아야 하고 또 계속 은혜를 베풀어 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그는 얼마든지 은혜를 받아서 풍부해질 수 있는 기관이 뚜렷하게 있었고 또 그것을 가꾼 사람입니다.
이렇게 야벳은 모든 것이 자기에게 은혜로 왔기 때문에 은혜의 기관에 고장이 생기면 바로 자기의 고장이라는 것을 알아서 자기의 근원이 고장난 것을 알고 함과 같이 흉보는 자리에 있지를 못했습니다.
도리어 옷으로 덮어서 흉한 것을 가렸는데 이것은 자기의 근원이 지금 병들고 깨지는 것이니까 당황하고 놀라면서 어떻게 수습하고 보강해서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기관을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고쳐서 자기에게 은혜가 계속 쏟아지도록 하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은혜의 기관에 대해서 안타까워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야벳은 창대해집니다. 아주 부자가 되고 대대 손손이 잘됩니다. 왜? 그는 얼마든지 받아야 하는 것을 알아서 은혜의 기관을 아끼고 가꿨습니다. 옷을 벌거벗고 술 취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뚤뚤 뭉쳐서 휙 던져서 덮어 버려도 될 터인데 그렇게 어깨에 메고 간 것은 은혜의 기관을 아주 소중히 여긴 것이요, 옷으로 덮은 것은 은혜의 기관을 가꾼 것입니다. 은혜 기관의 흠을 할 수 있는 대로는 없애서 그 은혜가 계속 이어지도록 애쓴 것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은혜 계통을 잘 아는 것만큼 아래로 은혜의 계통에게도 잘 베풀어야 할 것을 깊이 느꼈기 때문에 대대 손손에게 은혜 베푸는 것이 풍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백인종은 자손이나 자기 아닌 옆에 사람이나 밑에 사람에게 자기가 은혜 베풀어야 될 시은하는 면으로서는 황인종보다 뛰어납니다. 또 하나님께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하나님께 받아야 된다는 이 면도 황인종보다 뛰어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에게 받는 것도 삼형제 중에 제일 뛰어나게 된 것은 「야벳을 창대케 하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한 거기에서 야벳이 어떠한 사상을 가졌다는 것을 노아가 예언한 것을 보면서 추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셈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통해서 주신 은혜에 대해서 야벳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또 자기 자손에게 대해서는 은혜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것을 깊이 느낀 것도 야벳과 꼭 같습니다.
그러나 야벳이 깨닫지 못한 것,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 베푸신 목적이 무엇이며, 내 후배 후손들에게 내가 은혜를 베푸는 목적이 무엇인줄 알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위하도록 하시려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은혜를 베푸신 것이요, 내가 자손들에게 은혜 베푸는 것도 자손들이 은혜 받아서 그들도 하나님을 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이러니까, 함은 은혜를 잊어버린 사람이요, 야벳은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요, 장자 셈은 은혜의 목적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세 아들에게 예언이라면 예언이요, 축복이라면 축복이요, 실상대로의 인과응보를 말한 것이라면 인과에 대한 보응률이요, 보응을 예고한 것이라면 예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대대손손 영원 무궁토록 그렇게 됐습니다.
오늘도 작은 일이나 큰 일을 당해서 은혜를 잊어버리면 둘째 아들 함과 같이 되는 줄 아십시오. 여러분들에게 해석을 했지만 어렵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이해가 잘 안 될 것입니다.
새벽으로 나오면 좀 들을 수 있는데, 은혜를 잊어버리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모든 면으로 가난해지기 때문에 종 노릇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은혜 잊어버리는 것은 저주와 종의 원인이나 되지 자기 성장이나 발전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둘째로, 은혜로 된 것을 아는 것이 자기를 바로 아는 것이요, 은혜로 됐으니 귀중히 여기는 그것이 자기를 아끼는 것이요, 앞으로도 은혜로 자기가 커지게 되는 것이니 은혜의 기관을 소중히 여기는 것, 또 자기도 위에서 받은 것처럼 밑에 후배 자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된다는 것, 이렇게 은혜를 받고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커지고 온전해지는 것을 깨닫는 데에서 자기가 창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땅의 것이요 하늘의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야벳은 창대했지마는 셈의 장막에 우거합니다. 셈의 장막에 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렸던 사람이 은혜를 깨달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은혜의 기관을 귀중히 여기고 또 은혜를 베풀어서 창대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세상에서 아주 창대해지고 부강하게 됩니다.
부모도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알면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글자 한 자를 가르쳐 줘도 감사히 여기면 더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엎어진 것을 일으켜 세워 주니까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히 생각하는 아이에게는 더 협조해서 도와 주고 싶습니다.
은혜의 대가는 감사입니다. 은혜 잊는 데서 사람에게 암흑이 오고 마지막 결과는 자살 행위가 됩니다. 그런고로 은혜를 잊어버린 자가 은혜의 기관이 아니면 자기는 존재할 수 없고 자랄 수 없는 것을 깨달아서 은혜의 기관을 소중히 여겨서 어떻게 하든지 잘 대접하고 높여서 튼튼하게 연결을 가지면 자기가 자라는 데는 제일 좋은 방편이 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베풀어야 할 자에게 은혜를 베풀게 되면 마치 신진대사가 되는 것처럼 이미 있던 것은 가고 새 것 좋은 것이 오게 됩니다.
이것이 여기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섭리의 원리 원칙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것은 은혜로 됐는데 뭣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는지, 은혜를 베푸셨다는 말은 내가 있게 됐다는 말입니다. 은혜에 대해서 처음에 잠깐 말했는데 여러분들이 가서 깊이 생각하면 도가 들리게 됩니다. 이치가 깨달아집니다. 억지로 예수 믿는 것 아니오. 이 도는 참 생명의 도입니다.
은혜의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은혜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그것이 목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보다 먼저 목적을 정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같은 자를 만들어서 당신을 위하도록 하려는 것인데 우리가 그 목적 중에서 나지 않았습니까? 이 은혜의 목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 됩니다.
그러기에 나는 은혜로 존재하게 됐고, 은혜 받아서 은혜 베풀어 주도록 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하는 이 목적으로 은혜를 받은 것이요, 내가 받는 것도 하나님 위하는 목적이요 주는 것도 하나님 위하는 목적으로 한다면 만세 반석 위에 서서 넘어지지를 않게 됩니다.
그런고로 은혜를 잊어버리면 망한다. 은혜를 바로 깨달으면 창대하게 된다.
은혜의 목적을 깨달으면 금생으로 영원 무궁세계를 마련하게 된다는 것을 간단히 생각하면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주 어렵습니다. 간단하지마는 인생의 영원 흥망의 원인이 되는 것이니까 은혜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해야 될지 모릅니다. 나는 은혜 뭉텅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도록 자꾸 새김질을 하십시오.
나는 은혜 뭉텅이라, 나 아닌 모든 것들은 나를 그들의 조성물로 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은혜와 은혜의 기관과 자기가 베풀어야 할 시은의 대상을 잊어버리면 망하고 죽습니다. 은혜와 은혜의 기관과 내가 은혜 베풀 시은의 상대를 바로 깨달으면 창대해집니다. 이 은혜의 목적을 바로 깨달아야 우리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영원토록 이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