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신앙

 

1981. 6. 4. 목요일 새벽

 

본문: 창세기 9장 21절~27절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가나안이 가나안의 아비 함은 노아의 둘째 아들로서 지금 세계에 흑인종의  조상입니다. 이 함은 노아로 통하여 저주를 받았고 셈은 장자인데 노아를 통해서  인간의 구원이 그 셈의 줄기에 있을 축복을 받았고 야벳은그 아버지의 노아를  통해서 세상에서 창대케 될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일계명에 해당된 것이요. 또 오계명에 해당된 것입니다.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기 때문에 단순이 노아가 술취해 둘째 아들이 그 벌거벗고 술취해서  두러눕는 것을 보고 그렇게 멸시하고 그 흉을 보다가 그렇게 저주 받았다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된 것이 하다가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영원 전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처음도 따로 없고 마지막도 따로 없는 언제나 억억만 년 후나 영원  전에나 그분의 아시는 것은 꼭 같애.

우리는 시간에 따라서 지식이 달라지지마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요  전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꼭 같은 참 처음과 나중 알패와 오메가이신 완전  지식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런 일을  예정을 해 놓으신 예정 그대로 되는 것이고 또 이런 사람들이 나서 이런 형식을  갖추게 된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대로 하나님의 창조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살아가다 보니까 그런 일이 생겼다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영원  전부터 이 일을 하나님이 예정하시 가지고 이 일이 이루어지게 한 것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그로 통해서 구원 이루고 우리에게는 그  사실을 문서로 알려서 거기에서 우리가 구원얻는 도리를 깨닫고 멸망받는 도리를  깨달아서 멸망을 피하고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뜻이 영원 전부터 전지 전능자의 이 계획 속에 들었던 뜻이 깊고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의 필요해서 이런 것을 계획적으로 이렇게 하시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 얻는 도리를 가르치시는 이 사실인 것을 깨달아야 되지 우리가 볼  때에 허다한 이 역사의 사건들이 매일 수억억만건도 더 많게 지나가는데  미국에는 뭐 7분만에 운명이 하나고 24분이더나 만에 내가 24분이라 그랬나  그전에 살인이 하나고 그런 나라도 그런데 이렇게 참 놀랠만한 그런 일들이 많이  지나가는데 그런 일 중에 하나를 우리에게 기록해서 이렇게 나타냈다 생각하면  아주 그것은 잘못입니다.

여게 기록한 성경에 기록한 것은 그 모든 사건들이나 또 꿈 하나 생각 하나 말  하나 그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로 주신 것입니다. 구원의 도리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중량은 한 획이 우주보다 크고 무겁다는 걸 알아야 되지  이런 것을 그저 평범히 세상에 지나가는 어떤 한일과 같이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 기록할라면 온 세상에도 모지랄만한 그런 많은 건 중에 간추려서 66권에  기록한 이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얼마나 우리에게 귀중해서 우리에게는 천하보다  필요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이 말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말은 이 말이 성도에게 있어서 유효의 가치는 이 천하보다  크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게서 무엇을 가라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이렇게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조심있게 바로 깨달을라고 애를 써야 되지 아무나따나 자기가 부족해서  모르는 것는 할 수 없지마는 이렇게 귀중한 것이고 또 큰 결과를 맺는 잘못하면  죽고 잘하면 사는데 이런 결과를 맺는 귀중한 것인 줄을 알고 자기의 인기 끌기  위해서 해석하는 것도 미친자, 또 다른 사람에게 감화 감동을 주기 위해서 여게  들어가서 해석하는 자도 그 사람 미친자 정신빠진 사람이요 미친 사람이요.

일시 이것을 뭐 어떻게 해석해서 다른 사람에게 호감에서 인기를 끌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또 감화 감동을 받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 가지고  감동받아서 돈내면 돈을 수입하기 위해서 대접을 잘 받기 위해서 이것은 내가  했든지 누가 했든지 미친 행위입니다. 이거는 완전히 정신빠진 행동인 것입니다.

얼마나 중한 것인데 이런 이런 따위에 욕망을 가지고서 이 성경을 해석을 할  수가 없는 손을 델수 없는 두렵고 무서운 말씀인 것입니다.

여게 셈, 함, 야벳 삼 형제가, 졸면 이걸 깨닫지 못하면 자기 맡은 식구에게 가  가지고 ‘나오시오. 나오시오.’그런 생명 없는 역사는 암만해야 골만빠지지  마지막에는 그 사람은 제게 속한 사람이 안 되고 맙니다. 구역장이니까 저렇게  그저 대우를 해도 속속들이 중심으로 양심으로 대우하지는 않습니다.‘나 위해서  수고 많이 했고 심방도 많이 했고 애를 많이 썼다’이렇지 속에 진정 존경심이  가거나‘아 이를 따라야 되겠다. 이를 본받아야 되겠다. 이에게 속해서 가야  되겠다.’이런 그 욕망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설교 할 때에 요 말씀을 듣고 제가 내가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지고 또 그에게  그래 가르쳐야 그 소망이 금생뿐 아니라 영원토록 있지. 그거는 완전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죽는 날 까지 존대할 기요. 죽고  났으면 그 다음에 존경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와서 그저 심방하면서 오라 오라 또 그에게 주는 것이 이 세상 것뿐이면  주는 것이 부자되는 것이든지 병낫는 것이라든지 이 세상에 출세하는 것이든지  그러면 그게 좋지마는 그게 끝날 때가 될 때는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주면 세상에도 필요하고 무궁세계에도 필요하고 영원도 필요하기 때문에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기라.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깨닫든지 가르침을 받아 깨닫든지 깨달아야 되지 여기에  셈과 함과 야벳이 노아에게 이렇게 한 것은 사람이 자기 스승에게 하는 것이나  자기 상관에게 하는 것이나 자기 상전에게 하는 것이나 부모에게 하는 것이나  동생이 형에게 하는 것이 또 이웃에 대해서 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다 여게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데 대한 이치가 여게 똘똘 뭉쳐서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이치를 하나 깨달아 놓으면 어데든지 그 종류와 같은 그런  종류에는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잣대 하나 그 잣대 하나뿐이 더 되요 이  잣대 하나 가지고 쓰면 잣대 하나 가지고 쓰면 몇치 명자 몇치하는 이 치수에  대해서는 나무가 천개가 있든지 만개가 있든지 억억만개가 있든지 이 잣대로  가지고 다 잴수 있소.

그와 마찬가지로 요 진리를 참된 이치를 하나 깨달아 놓으면 이 이치와 같은  종류의 것은 천 가지나 만 가지나 어데든지 다 거기에 해당되고 이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녀가 부모에게 이와 같이 한 그것이나 또 후배가 선배에게 대해서 한  것이나 제자가 선생에게 대해서 하는 것이나 부하가 상관에게 대해서 한 것이나  또 아우와 형에게 대해서 한 것이나 종이 상전에게 대해서 한 것이나 전부 다  같은 종류의 이치입니다.

이렇게 가르쳐 줘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참 좀 불행한 사람이요. 왜 그렇게  깨닫지 못하는가? 성령이 오시 가지고 역사하는 역사 중에 제일 큰 역사가  뭐입니까? 제일 큰 역사가 뭐이지요? 성령님이 오시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하는  중에 제이 큰 역사가 뭐이지요? 뜨겁게 하는 역사입니까? 깨닫게 하는 역사요.

깨닫게 하는 역사, 하나님께 대해서 깨닫고 천국에 대해서 깨닫고 죄에 대해서  깨닫고 의에 대해 깨닫고 심판에 대해 깨닫고 부활에 대해 깨닫고 영생에 대해  깨닫고 모든 면에 인간에 대해서 깨닫고 사물에 대해서 깨닫고 자기 대해서  깨닫고 깨닫게 하는 그것이 성령님이 오셔서 역사하는 제일 중한 첫 역사입니다.

요새 모두 방언이라 하면 우두두두하는 그걸 그 방언이라고 그리 그만 그것도  거게도 방언도 그런 방언도 있습니다. 있지마는 흘러가야 많소. 그 방언은 일만  마디 방언이 몇마디 깨닫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나 외나 방언의 진수는 누라도  기독교의 진수를 편집할라면 그 방언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야 될 것이요.

방언은 하나님의 도를 그것을 자기가 잘 받아 드릴 수 있는 자기를 받아드리게  하는 것이 왜 타국어로 말해도 자기에게그 말하는 것이 자기에게 알려졌습니다.

받아 드리게 하는 것. 또 전하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잘 하나님의 도가  전해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방언의원 근본 역사입니다. 오순절 역사가 그기요.

그때 뭐 우두두두 다 그렇게 말했으면 다 미쳤다고 하지 않았겠소.

바울도 말했다 그 후에도 말했다 말이요. 자기가 뜻도 모르고 하는 그런 것은  말하면 모든 사람에게 다 오랑케가 적이 된다 그말이오. 다른 사람이 너희들을  미쳤다고 하지 않겠느냐 말했다 말이요. 무엇이든지 바로 알아야 되는데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깨닫게 합니다.

깨닫게 하는 건 뭐이요? 뭘로 나타났소? 갈라진 혀, 갈라진 혀 구별이라  그말이오. 이것이냐, 이것이냐? 이것이냐, 이것이냐? 또 바람으로 이것은 이  모든 것을 바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안하지마는 와서 불면 동풍인지  서풍인지 안다 그말이오. 이제 그 사람 속에 역사하면 그 사람의 생활에 모든  변동된 기 나타난다 이기요.

보이지 않는 역사나 이 성신의 역사가 임하고 나면 그 사람에게 외부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이 변동들이 일어난다 그말이오. 또 불로 나타났다. 모든  면이 뜨거워진다 말이요. 죄를 미워하는 것도 뜨겁고 의를 사랑하는 것도 뜨겁고  하나님께 대한 것도 인간에게 대한 것도 자기에게 대한 것도 사물에 대한 것도  금생과 내세에 대한 것이 뜨겁다 그말이오.

이거는 이거고 이거는 이거냐 그 일에 그 느끼는 것이 심각하고 거게 대한  자기의 사상이 뜨겁다 그말이오. 죄는 이거는 죄라 뜨겁게 아는 것, 이거는 의라  뭐 죄면 죄지 의면 의지 미직근한 그게 아니라 그말이오.

성령이 오시면 깨닫게 되는데 깨닫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양성원에서 제가  경건회때 말을 했는데 거룩이 없으면 믿는 사람의 구원는 헛일입니다. 거룩이  뭐요? 자꾸 쪼개는 기라 말이요. 구별하는 것, 이것이냐 이것이냐 이것이냐 자꾸  구별하는 것. 그거 없으면 믿는 사람의 구원이 헛일입니다.

거룩을 지키지 안하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을 보면 압니다. 거룩을 지키지  안한 사람을 보면은 알아. 그 사람이 두루뭉실이라. 말에 대해서 어니 아니 몰라  콩이니 팥인지 몰라. 아무것도 대해서 구별성이 없어. 일생 동안을 자기가  구별하는 연습을 했으니까 얼만 숙달이 됐겠소. 그 사람 말 한마디면 그 속에  심정에 제게 대해서 어데서 나왔고 목적은 뭐이고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있다는 것 환하게다 안다 말이요. 말 발표를 안해요.

어제 여게 방속국에서 기독교 방속국에서 뭐 몇사람을 처음에 몇사람 찾는다  했지요. 여섯 사람 장로님 처음에 몇사람이라 했소? 아이 처음에? 가기 전에,  가기 전에 숫자와 갔다온 숫자가 보고 숫자가 다르다던데 그런데도 어제가 안  갔습니다. 안 가는 것은 내가 이제까지 고신에 있으면서 이렇게 대립이 되고  그들에게 욕을 얻어 먹고 이래 제명을 당해서 쫓겨나오게 된 그 이유는 내가  걸리는 말을 자꾸 해싸서 그래 됐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거 참가를 안 할라고 애를 씁니다. 유엔군 그때 철퇴한다  할 때에 교회에서 혈서를 써서 진정서를 내고 또 시가 행렬을 하고 하면 안  된다고 제가 고신에 있을 때에 고신에서도 거게 대해서 공문을 내 가지고  교회마다 내서 이걸 반대하라 반대하는 이 일을 해야 된다고 그걸 공문을 다  받았다 그말이오.

이것이 나는 그걸 보고서 깜짝 놀래기를 신사참배는 강제로 자기 정조를  빼앗겼지마는 이거는 아무것도 강제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정조를 내준 화간의  죄다. 강간죄보다도 강간죄 당한 그 여자보다도 강제로 말이지요 강제로 당한  그거보다도 제가 원해서 당한 그것이 남편에게 더 큰 그 변절이지. 그런 것인  줄을 알았기 때문에,  왜? 죽일라 하니까 신사참배를 죽기 두려워서 신사참배했지마는 이거는 그래서  죽기가 두려워서 하나님 배반하는 신사참배를 했다 그말이오. 이것은 아무도  강압하지도 않는데 유엔군 물러간다고 이제 우리는 죽는다 유엔군이 우리를  지키지 하나님이 지키는 줄 아느냐. 이러니까 유엔군가면 우린 죽는다 이래  가지고 마구 대모를 하고 시가 행렬하고 신연회 하고 혈서를 쓰고 고신에서도  그때 그것을 메세지를 내고 각 교회 공문을 돌리고 이랬다 말이요.

 이래서 고신에서 낸 메세지 그놈을 찾아 가지고 다시 회수해서 문공부에 있기  때문에 그걸 곡간에 있어서 있는 걸 찾아내 가지고 그걸 빼낼라고 그때는  변영태씨가 국무총리로 있을 때기 때문에 그 줄을 타 가지고 가서 사흘을  찾았습니다. 문공부 그 문서 곡간에 가 가지고 그거 고신에서 메세지 낸 그걸  빼낼라고 사흘을 찾았어. 이영민씨 한테 이야기 해 가지고 가 가지고 찾아도  어데가 들었는지 몰라. 원층 문서가 많으니까.

이랬는데 이것을 그때 이인제 목사님 큰 아들 약혼식 한다고 날 오라고 이러는데  가면 필연코 날 설교를 시킬 모양이니 설교 시키면 내 이걸 말하지 안하면  하나님 나에게 벌을 줄 것이라. 그러니까 그 자리 안 가면 될 것 아니겠느냐  하고 안 갈라고 빼고날 쳤다 말이오. 빼고날 쳤지마는 그분이 그때 다른 사람 다  날 반대하는 그분이 날 옹호하고 이랬는데 그 안 가면 또 대단히 섭섭히  여길기라 말이요.

그러나 나는 약혼식이 반대라 그말이오. 반대지마는 부득히 그 사람을 섭섭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갔다 말이요. 가 가지고 약혼식 하고는 앉았다가  다른 사람 앉았는데 살모시 빠져서 지금 다른 데로 나갈라고 이러니까 이러니까  거서 있다가서 좀 가만 있으라고 이라디만 내일 아침에 새벽 기도를 한상동  목사님에게 모두 말하니까 아니라고 한상동 목사님이 있다가서 오종동  목사님에게 맡기라고 오종동 목사님에게 미루니까 오종동 목사님이 나한테 떡  미룬다 그말이오.

이래서 그걸 아나 여 내가 집에 있을 때부터 그것 때문에 지금 기도하고 갔기  때문에 내가 내일 아침에 설교를 맺기는 날이면 만일 그걸 증거하지 안하면  하나님께 벌을 받지 증거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 막 이렇게 되질 모양이지  이거 사람 죽을 일이라. 이래서 내가 그것을 꼭 그렇기 때문에 반대를 하고  하니까 오종동목사님이 성을 내가 또 한상동 목사님도 노하고 이인재 목사님도  목사님이 그래 그러면 그 순종해서 해야 되지 그렇하고 있느냐고서 이래서 할 수  없어 이제 책임을 졌다 말이오.

그날 아침에 설교하러 나가는데 시간은 됐는데 나갈 수가 없어. 나가면 그말  해야 되놓으니까 그말하면 당장 다 대립이 되야 될터이니까 그 사람들 그거 다  찬동한 사람들이요. 그러니까 자꾸 흠점만 꼬집는 것같이 그러니 안 되겠다  이기요. 이래서 안 나갈라고 있으니까 이인재 목사님이 사회를 하면서 안 나온까  자꾸 이름을 부르네요. 이름을 부르니까 이제 안 나갈 수가 없다 말입니다.

나가 가지고 그날 거게 대한 것을 다 이야기를 해서 해석을 해 증거를 했다  그말이오. 증거하니까 한상동 목사님은 마구 이래 되어지고 한명동 목사님도  새파래지고 이인재 목사님은 낮이 벌개져 가지고 예배 딱 마치고 기도하고 나서  사택에 들어가니까 우리가 아마도 안됐어. 이거 회개 해야 돼. 우리가  총회적으로 이걸 해야 되겠어. 그때 총회라. 총회적으로 회개를 해야 돼.

하나님의 노를 풀어야 되지 큰일 낫어. 큰일 낫어.

이러는데 다른 사람들은 입이 삐죽삐죽거리며 나갔습니다. 이래서 내가 그때까지  늘 해나온 기 그기요. 그말 안 할라고 해도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들하고 충돌을  안 할라고 하지마는 하나님 때문에 피할 수 없을 때는 어찌 할 수 없다 말이오.

어제 방송에도 나오라 그래 싸았지마는 난 안 갑니다. 안 가는 그 이유는 그  자리가 뭐 두려워서 안 가는 것 아니요. 또 뭐 할 말이 없어 안 가는 것  아닙니다. 가면 바른 말 해야 되니까 바른 말 하면 또 소용없이 충돌된다 말이오  필요없이 충돌할 수 없다 말이오.

거게서 어제 내리하기를 지금 오억을 마련하면 그 자금만 가지고 늘 이자만  배써도 되니까 오억을 마련하는 데에는 이리 이리 마련해야 된다 하니까 모두 다  찬동했다 말이요. 내가 가면 또 반대라 말이오.‘오억 자금을 마련해 가지고 그  돈 가지고 이자 가지고 자꾸 방송국 경영해 나갈 것이 아니라 한 해 한 해 필요  있는 그것을 교회에서 내고 또 여게서는 그 받아 가지고 방송해 나가고 그래  하는 것이 좋습니다’그말을 했을 기라. 내가 그말 않고는 그 자리 못 견뎠을  기라 그말이오.

왜? 자금 마련해 놓으면 교회야 좋아하든지 말든지 교회 모든 공평 교회  전평이야 틀렸다든지 옳다든지 자기네들 편리한대로 이래 할기라 그말이오.

그렇지 않겠소. 다 요새 모든 언론 기관들이 그 정권에 다 거게 피동되 가지고  이래 하고 있는데 그 나중에 어떤 시기가 올런지 몰라. 지금은 자유지마는 어떤  시기가 올런지 모르는데 그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고 교회에 불리한 것이라도  위에 정권에서 하라 하면 하게 될기라 말이오.

해도 유지비는 딱 마련해 되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그말이오.

이렇지마는 교회서 다 그래 해놓으니까 그리되면 자 교회에 거리끼는 일하면  월정한 그걸 안 낼기라 말이오. 안 내면 유지가 안 되고 이러니까 이거 했다  이거 안 되면 유지가 안될 때는 문제가 아니가 이것이 관련이 될 터이니까  그분들은 자유가 없는 갓같지마는 그러니까 탈선되지 안하니까 방송국 자체들도  좋고 교회도 좋고 왜 좋은 길인데 왜 그런 길을 택하지 안해.

내가 가면 그걸 말하지 안할 수 없소. 말하면 그 사람들하고 또 이리되고 만다  말이오. 방송국 자체하고도‘아 오억을 지금 마련하고 하고 있는데 저 사람이  들어서 지금 방해를 하고 있다’이럴터이니까 내가 안 가는기 좋다 그말이오.

내가 두려워 안 가는 기 아니라.

대구에 집회 때에 거게 기독교 방송국에다가 청탁을 하니까 마지막에는 해주기로  했지마는 처음에는 거부하더랍니다.‘왜 거부하노?’‘우리 대구 이 기독교  방송국은 고신에 협조를 많이 받는데 만일 백영희 목사님의 지금 집회하는 것을  여게서 방송을 하면 고신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만일 거게서 아니면 뭐 유지가  힘든다’하더랍니다. 그말도 그러면 그러면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우리가 모든 면에 깨닫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요. 요새는  지금 공산주의 민주주의도 합하는데 아무리 원수의 나라도 서로 합하는데 교회와  교회를 합하지 못해. 기독교는 통일하자. 기독교만 통일할기 뭐고? 종교는 다  통일하지. 종교만 통일할기 뭐고? 종교에는 비종교인은 사람 아니가. 사람은 다  통일하지.

다 화합으로 통합하지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요한계시 17장에  보면 열뿔 가진 것이 한 짐승에게 열뿔이 났습니다. 그건 뭐요? 짐승은  세상입니다. 뿔은 힘이요. 열은 만수요 인간의 있는 모든 힘은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됩니다. 이기 막바로 최종말이요. 이걸 뭐할라고 어린양하고 싸웁니다.

어린양하고 교회와 싸운다 말이요. 싸우는데 교회가 그때 어떤 교회는 이 세상에  앞잡이가 되어 가지고 교회는 교회지마는 그 편에 서 가지고 참된 교회를 먹을라  하는 이런 일이 있습니다. 그게 성전밖마당이요.

이런데 택함을 입고 예수를 믿는다고 다 이길 줄 압니까. 어림도 없소. 뭐이  있어야 이긴다 했어.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라. 진실이 있어야 돼. 진실은 당장에  진실이 있으니까 거룩 끝에 맺어지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 구별하고 구별하고  바른 걸 찾을라고 구별하고 구별하고 자꾸 찾아 들어가다 보니까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같은 사상 하나님과 같은 사람 참은 하나뿐인데 그게 도달한다 말이오.

그게 도달해 범사를 자꾸 이것이냐 저것이냐 자꾸 구별해 가지고 이렇게 구별해  가지고 그 참에게 자기가 무식해서 참에게 도달하지 못해 중간이라도 이기라  하는 그것을 자기 양심에‘이는 틀림없다. 이기다.’하나인 자기 양심에  요기라고 자기 지식에 요기라고 하나라도 판정되는 그게 가서 이기라고 하지.

이긴지 저긴지 모를 때는 전부 미결로 두고서 이래 있는 이것이 구별을 가진  거룩을 가진 사람이요. 또 이것도 저기나 뭐 다 같다. 다 이기나 저기나 다  같다. 이것도 인정 저것도 인정 이것도 정통 저것도 정통 어떻게 참이 둘이 있을  수가 있소. 이건 거룩을 버린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되 거룩을 버린 사람은 두루뭉실의 인간의 되고 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칼같은 사람이 되어지고 안팎에 눈이 있어서 서로 친하다고  만났지 말하다보면 탁탁탁탁 요거는 요러니 요렇고 탁탁탁탁 자꾸 갈라서  걸러진다 말이요. 이런데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외유내강은  좋습니다. 외유내강은 좋소.

바울이 율법 아래 있는 것 율법 아래 있는 것처럼 야만한 자는 야만한 자와  유식한 자에게는 유식한 사람으로 이렇게 처세하는 건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한다고 그 끄트머리가 부들부들 하는 거는 좋지마는 부들부들 접촉한 것이  뭐이냐? 옳고 바른 참된 것을 인도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하고  화평을 하는 것이지 껍데기가 물렁물렁하고 이거는 좋다하는데 속속들이 그런  것은 썩었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우리가 뭣 하나라도 그걸 구별하는 요걸 가지고 애를 써야 되는데 자  그러면 천하에 둬도 모지랄 책을 간추려 가지고 66권에 뒀는데 여게 있는 노아가  술취해 가지고 벌거벗고 있으니 아들 함이 보고‘아버지 술취해 벌거벗고  있더라. 가봐라.’그말 한마디 했다고 저주를 받았는데 그 저주가 그냥 인간  말로 저주한다고 됩니까? 천인 만인이 저주한다고 해도 저주 받을 것이 없으면  어찌됐소? 상급이 크리라 했습니다. 상급이 크리라 했소.

이 저주해서 저주대로 된 것은 저주받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서 함을 저주를 했기 때문에 그 저주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재림  때까지 계속될기라 말이오. 흑인종에게 그러니까 이런 것을 뭐 사정도 많고 술챈  사람이 우리가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 몇을 보는데 그런 것 중에 하나같이 이렇게  봐지고‘아 저 술챘다.’그 조롱하는 그 하나로 보여지고 또 아버지가 술먹고  이래 거석하니까 아들들이 씩씩씩 웃으며 하는 것 그런 것 중에 하나로 이렇게  봐서는 안된다 그말이오.

이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걸 간추려서 우리에게 이걸 줬느냐? 이것이 요걸  깨닫지 못하면 후배으로서 망합니다. 요걸 깨닫지 못하면 제자로서 망합니다.

요걸 깨닫지 못하면 하관으로서 망합니다. 요걸 깨닫지 못하면 종으로으로  망합니다. 요걸 깨닫지 못하면 부하로 망합니다. 요걸 깨닫지 못하면 동생으로  망합니다. 자녀로 망합니다. 요걸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종 하나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망합니다. 기본구원이야 있지마는 망한다 그말이오.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렇게 중요한 걸 여게 들었다는 것을 생각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내일 아침에 시간 되어서 내일 아침에 증거하겠는데 여러분들이 가서 좀  깨달아봐요. 왜 이렇게 대대손손이 저주로 망할수 있는 이 일이 됐는가? 이것을  영원 전부텀 예정하시 가지고 우리에게 기록해주신 것인데 여게 무슨 큰 뜻이  있는가?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위에 사람와 밑에 사람, 앞에 사람과 뒤에  사람,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이 관계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다 망하고 만다.

내가 셈과 야벳에 속하느냐? 둘째 아들 함에 속하느냐? 내가 어데 속했느냐?  이거 모르면 나만 망할 기 아니라 나로 통한 내게 속한 모든 계통들도 다 망하게  된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바로 깨닫지 못하는 데는 구원이 없습니다.

세상에 나타난 보이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알겠소.

안팎에 눈이 있다 그말은 영물은 안팎에 눈이 있다 그말은 영물은 우리로 다  영으로 말미암아 영물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안팎에 눈이 있다 말은 볼 수 있는 것만 보는 기 아니라 볼수 없는  것도 본다 그말이오. 깊이 말하면 피조물이 피조물이 보는 것만 피조물이 아는  것만 아는 기 아니라 피조물이 모르는 조물주가 아는 것 그까지도 알 수 있다  그말이오. 그게 속눈이라.

이런데 뭐 새벽기도 안 나오고 만날 거석해 가지고 장 하는 말 한다. 제 귀가  눈이 어두워서 만날 가 보니까 흰거는 종이요 검은 거는 먹이라. 장 두 가지  내놓고 말하데 장 두 가지데 오늘도 가보니 종이하고 먹하고 보니까 시커머이  글인가 하고 거 글있는 게 오만 걸 다 들었다 말이오. 다 말했다 그말이오. 그것  모양으로 껍데기만 아니라 장 하는 말 또 한다. 내 역부러 문제를 내주면 설교한  데에 그 들은 거 가운데에 열 가지 열 가지 문제를 내줘도 너는 답안을 하나도  할 수 없는 박사다. 뭐인줄 알고 하느냐?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같다  이랬습니다.

아무리 존귀한 자리에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과 꼭 같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요동이 된은 기라 깨달으면 요동이 됩니까. 빌라델비아 교회가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 그것을 다 드려서 하나님의 말세의 말씀과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고 말일에 이것다 없애도 그 둘을 가지게 된 그런 것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의지에 나왔소? 결심에 나왔소? 아니요. 그 사람의 깨달음이  나왔어.

자기가 불에 지금 들어가서 빠져서 불에 옆에 있는데 너 가면 죽을 지경이니까  거게 안 빠질라고 죽는 시간까지 힘과 생명 다해서 그 안 들어갈라고 애써. 왜?  불에 들어가면 타 죽을 줄 아는 그 지식이 들어서 그 깨달음이 들어서 그렇게  강해지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가 이렇게 주님의 말씀과 주님은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보다도 가진 자기것 다 받아도 귀한 줄 알기 때문에 이건 낼줄 알고  그는 죽이지 않고 연약한 힘 가지고 지켜서 해나간 것은 원인이 뭐입니까?  거룩함과 진실 요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꾸 구별하고 찾아 들어가는 요것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그런 깨달은 사람이 됐더라 그말이오. 구별하지 않고 뭘  깨닫겠소. 두루뭉실한 사람 되지 말아요.

그러나 오래 동안 이래 믿은 사람은 그 사람은 사람 좋은 사람 무걸호인이라.

뼈없는 호인,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은 믿어갈 수록이  칼날같습니다. 말은 안 해도 옳고 바른 기 딱딱딱딱하기 때문에 거 가서러  거짓이 나타날 수 없어. 말 안 해도 다 이리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몰라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이 알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고 또 말해도 인간이  못 들어 그렇지. 그저 타협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깨닫지 못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것이 길가 뿌린 씨  아니요. 그게 첫째라. 깨닫는 것, 깨달아도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돌짝 밭에  뿌린 씨가 돼. 깨달아도 세상을 이기지 못하면 덤불 밑에 뿌린씨가 돼.

깨닫고 자기를 이길만침 깨닫고 세상을 이길만침 깨달아야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것입니다. 어데 모임이든지 뭉침이든지 껍데기는 이 진리의 깨달은 이것이  주동이 되고 그 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주동이 되야 되지 그게 주동되지 않고  껍데기 다른 것이 주동된 것은 그거 다 수명이 짜르기 때문에 다 그게 변해지고  그게 절단날 기회가 오면 다 절단나 버립니다. 이 둘은 절단내게 할 것이 없소.

영원이요.

그러기 때문에 그 모임을 척 가보면 이 힘이 어데서 나왔느냐? 이 힘도 있다. 이  힘도 있다. 이 힘도 있다. 이 힘도 있다. 이 힘도 있다. 이 힘도 있다. 내가  오전에 가 보니까 여섯 가지 힘이 그 합류되어 있어. 진리의 힘도 있고 영감의  힘도 있어. 합류되어 있어. 그런데 이 힘이 있는 가운데에는 어느 힘이  주력이냐? 그걸 인자 구별해야 돼. 어느 힘이 주력이냐? 다 있지. 다 있지만  어느 힘이 주력이냐? 그 주력되는 힘 거게서 그 수명을 한정합니다. 요거는 얼마  가겠다. 얼마 가겠다. 수명을 한정해.

아 이 뭐 썩어지고 없어질 이 영원히 소유될 우리의 피소유 될 그 이 과학도  이렇게 세밀한데 하물며 이것을 점령할 이것이 그렇게 아무나따나 두루뭉실  모양으로 그래야 되겠습니까.

금정산에 집회하니까 어떤 목사가 나하고 친근한 목사인데 오니 오니 보니까  처음에는 듣디마는 잠이와 못 들어. 나중에 자꾸 이래 막 깔아 자꾸 구별해  싸으니까 머리가 아프고 싫다 그말이오. 날 가만히 만나 가지고 아이 목사님  그렇게 이래 뭐 하나님 말씀을 성경 말씀을 쪼개고 쪼개고 찢고 쪼개고 막 삣고  깍고 이래 가지고 이 할머니들이 듣습니까? 성령 오면 다 되지.

사람의 입으로 거게대한 것을 그 안에 합류되어 있는 것을 말해도 못 알아  듣는데 말 안 해줘도 알아. 그 성령은 그런 성령 아닙니다. 요것을 요 안에  든것을 요렇게 조렇게 깨달아서 깨닫게 하는 것이 성령이요. 그냥 두루뭉실 힘  안쓰는 그런 자를 알려주는 그런 성령 그거는 다 미신의 자기네들이 만든  금송아지 하나님이요.

이랬더니마는 그분 듣기 싫어 하디마는 그분이 보니까 세일교회로 갔다가 이리  교회로 갔다가 저리 갔다가 뭐 가는 길을 잡지 못해. 질팡 갈팡이라. 바로 잡은  길에 왜? 변경이 됩니까. 바로 잡은 길에는 변동없고 바로 잡지 않는 길에 또  변동 없는 것입니다. 이기 제일이다. 무조건 제일이다. 비판은 이기 제일이다.

그러니까 천구교는 이 교파가 제일이다 하니까 변동없어. 그거는 그들은 이  교파가 제일이다 하는 그거 하나 잡았기 때문에 변동없어. 아무리 성신의 감화가  와도 변동 못시킵니다. 거룩이 있어야지 요 구별하는 기 있어야 틀렸으면  고쳐지지. 구별이 없는데 무슨 고칠 게 있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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