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설교

 

1986. 11. 26. 밤 (수)

 

본문:요한복음 8장 31절∼40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날씨가 점점 추워집니다. 예배 끝난 뒤에 아래층에서 결혼식이 있습니다. 많이 참석하셔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날씨가 추워지니까 이 주일학생들이 자꾸 요동이 되고 죄를 범하기 쉽겠습니다. 부모되는 분들 부형되는 분들은 자기 자녀를 자기가 죽여 놓고 뒤에 후회하지 말고, 사람의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또 행복된 것이나 불행한 것이나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하나님께 달렸고 안 믿는 사람은 어느 정도는 다 방종해 둬 버립니다. 방임해 둡니다. 그러나 택한 자들은 세밀히 간섭합니다.

그러기에, 어릴 때부터 신앙을 길러 줘야 되지 어릴 때 기르지 못한 신앙을 장성해서 못 넣어 줍니다. 세상에 그 열심히 추워도 더워도 변함없이 배우는 그 학교 지식은 절대 사람을 살리는 지식은 아닙니다. 절대 살리는 지식은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그것이 들어서 사람을 행복되게 절대 못 합니다. 또 해 봤자 이 세상에 있는 동안뿐이지 영원한 멸망에서 구출 못 합니다.

이 세상은 하룻밤 나그네와 같고 죽어 부활해 가지고 심판 너머 있는 세상은 불신자도 영원하고 신자도 영원합니다. 불신자는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에서 영원한 사망의 고통을 당하고 있고 믿는 사람은 자기 행한 대로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은 하는데 그 기능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영광이 없고 모두 다 무능자이니 천국 갔으나 불 가운데 있는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짜는 우리는 모릅니다. 얼마가 남았는지 정확한 날짜를 모릅니다. 그러나 징조를 보아서 알라 하는 것은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이천 년이면 예수님 재림한다 그렇게들 모두 다 말하고 있고 기독교뿐 아니라 이종교들도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예수 이천 년이면 세상 끝난다, 안 믿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합니다.

얼마 전에는 크리스마스 그 축하를 아무래도 이 모든 징조를 보니까 지금이 끝이 아니겠느냐 하고서 모두 분발해서 그때 크게 아주 참 축하를 했는데 아직까지 예수님이 재림 하지는 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만일 이천 년에 재림한다고 하면은 지금 남은 숫자는 구 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제 다 돼 가니까 이 해가 지나가면 팔 년 남은 셈입니다. 팔십육년이니까 십사 년 남은 데서 오 년이 계산이 잘못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 년인데 금년을 지내면 팔 년밖에 안 남은 셈입니다. 그 날짜는 우리가 똑똑히 모르지만 어쨌든지 예수님의 재림은 가까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후회하지 말고, 자기 자녀에 대해서 후회하지 말고, 말해도 안 듣는 거는 어짤 수 없습니다. 어짤 수 없지마는 안 들으면 기도하고 또 말하고 이렇게 해서 어릴 때부터 신앙을 준비해 줘야 되지 어릴 때 신앙 준비 안 시키면 나중에 헛일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구 년에 온다면은 예수 믿는 걸 등한히 하고서 세상 일에서 분망하게 날뛰는 그 자의 모든 생활이 크게 원통할 것 아니겠습니까? 부모님들이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집에 주일학생이 있으면 아예 그걸 사정 두지 말고, ‘공부하느라고 그저 시간 들였으니까 피곤할 거다’ 그래 생각지 말고 새벽으로 꼭 깨워서 새벽기도 나오도록 하고, 저 혼자 못 나오면 데리고 나오고 해서 강제로 새벽기도 시키십시오. 말라 뒈져도 시키십시오. 새벽기도 하다가 뒈지면 그게 축복입니다. 새벽기도 안 나오고 살찌워 가지고서 자꾸 키워 봤자 지옥불에 탈 것 그까짓 거 만들면 뭐 할 겁니까? 수족이 다 타 버리고 말 건데.

어리석지 맙시다. 새벽기도도 꼭 데리고 나오도록 하고 주일날은 일찍부터 준비하고, 또 그러고 이 장년반들도 우리가 전도를 열심히 해야 되겠습니다. 6  5 때 보니까 뭐 신자들이 모두 다 자복하는 것은 공동입니다. 공동 자복을 하는데 전부가 복음 전하지 안한 것을 다 후회하면서 회개합디다. 누가 가르쳤을까마는 각각 모두 자기들이 속에 성신의 감동이 와 가지고서 크게 후회하고 원통하고 자복하기를 ‘내가 이번만 살려 주면 내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복음 전하겠습니다’ 안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

이북에서는 월남하면서 하는 사람들이 ‘이번에만 살려 주면 나가서 내가 물질 저축하지 안하고 어찌 됐던간에 단벌 옷으로 있는 거 전부 복음에 바쳐 살겠습니다’ 이북 사람들 월남한 사람들은 그랄 수밖에 없습니다. 월남한 사람들은 그 죄 회개할 것밖에 없어. 이북은 유물주의입니다. 이북에 있는 기독교는 유물주의 기독교요. 그러기 때문에 이북이 공산주의에 저래 가지고서 완전히 삼켜지고 말았습니다.

이북에 월남한 사람들 여기 많이 있지마는 월남한 사람들은 그들이 월남할 때에 ‘이번만 살려 주면 내가 물질 위주로 살아서 물질 저축주의로 내가 살지 않겠습니다’ 그 죄밖에는 회개할 거 없습니다. 남한에서 환난당한 사람들은 그런 물질에 대해서는 그는 회개하지 안했습니다. 안 하고 ‘그저 내가 살려만 주시면 전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이북 신앙과 이남 신앙이 아주 다릅니다.

일본 신앙과 한국 신앙이 아주 다릅니다.

이거 말씀을 해도 깨닫지 못하니까 자꾸 엉뚱한 짓을 합니다. 겨우 만들라고 뭣을 힘을 써서 만들면은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엉뚱이 짓을 하라 하니까 그만 엉뚱한 일 해 가지고 그만 헛일하고 헛일하고 그러니까 만들다가 깨지고 만들다가 깨지고 그래 놓으니 항상 우리 서부교인들이 복을 못 받습니다.

이 교훈을 주는 것이라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것을 보면 마구 복 덩어리로 들이 복을 감당 못 할 만치 복을 받을 터인데, 무슨 건강의 복은 많이 받는지? 아마 그렇츰 병이 고쳐졌으니까 건강복은 엔간히 왔을 것입니다. 세상에 한 사람이 열두 가지 열세 가지 되는 걸 육백여 명이 나았고 그 뒤에 다 치면 천여 명이 나았으니까 엔간히 나았을 거 아닙니까? 건강하니까 죄만 짓지, 건강하니까 더 죄지어. 건강하니 죄지어 놓고 또 지어 놓고 또 죽는다고 야단치고, 참 우리는 이거 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서를 여러분들에게 읽어 보라 했는데 몇 번이나 읽어 봤는지? 그 갈라디아서가 쉬운 성경이오. 그러나 간단하고 명료하게 구원 도리를 잘 가르쳐 놓은 성경입니다.

오늘 본 말씀은, 언제 이 말씀 해석은 다할 수 없는데 그저 간추려서 강령된 뜻을 여러분들에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성경을 가지고 집에 가서 무릎을 꿇고 자꾸 읽고 눈감고 명상하면 진리가 나올 것이고 또 자기가 실행하면은 능력이 나올 것입니다.

여게 자유라는 말이 있는데 자유는 어떤 것이 자유냐? 종되지 아니한 자가 자유요, 또 자기 소원대로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자기 소원대로 하는 것이 자유요 억지로 강제로 종노릇하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세 가지 줬습니다. 영생하는 자유를 줬는데 죽지 안하고 영생으로 사는, 영생으로 사는 자유를 줬는데 영생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과 성령과 진리와 자기와 하나가 돼 가지고 사는 생활이 영생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에서 해방을 시켜 가지고 우리에게 자유를 줬습니다.

하나는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죄에 대해서 자유하게 했습니다. 죄에 대해서 자유한다 말은 어떤 죄가 와도 우리를 범죄케 못하는 것이 죄에 대해서 자유하는 것입니다. 죄가 와 가지고 범죄케 할 때에 범죄하면 죄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 되면 사망입니다.

영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대로 영감대로 사는 생활을 어떤 죄악이 와도 그 죄악에게 굴복하지 안하고 자유하는 그 자유를 우리에게 줬습니다. 죄가 어떤 죄가 와서 어떤 현실에서 어떤 방편과 어떤 그 기관들을 가지고 우리를 범죄하도록 이렇게 해도 범죄하지 안할 수 있는 그 자유를 가진 우리가 돼야 됩니다.

뭐 촉망 중에, 또 분주한 데에, 또 피곤한 데에, 어떻게 예를 들면은 바다 가운데 가 가다가서 그만 배가 파선돼 가지고서 바다 가운데 빠져 가지고 있은 그런 거와 같은 그런 때라도 죄짓지 않는 그것이 죄에 자유입니다. 그렇게 어떠한 형편 사정 환경 현실에서도 죄짓지 않는 자유를 우리에게 줬습니다. 죄에게 종되지 안하고 어떤 죄가 와도 거게서 자유하는 그것이 영생입니다. 우리가 영생하는데 죄가 와 가지고 우리를 범죄케 해서 범죄하면 벌써 영생은 죽어 버렸습니다.

영생은 뺏겼습니다. 죄에서 자유해야 영생을 하는 것입니다.

또, 마귀에게서 자유를 해야, 마귀가 어떤 그 방편을 가지고 우리를 영생하지 못하도록, 영생은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감과 진리대로 우리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이나 마음이나 뜻이나 모든 것을 영감과 진리대로 하는 그게 영생인데 우리가 영생할라고 할 때에 마귀는 우리를 영생하지 못하도록 할라고 날뜁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가 우리를 성신의 감화대로 살지 못하도록 진리대로 살지 못하도록 그렇게 마귀란 놈이 우리를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유혹도 하고 강제도 하고 합니다. 어떤 방편으로 하든지, 그 사람이 마귀에게 꼬여서 넘어갔든지 강제에 못 이겨서 넘어갔든지, 이 세상은 마귀들이 권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도 마귀가 고문도 고형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고문과 고형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고문과 고형을 못 견뎌서 자기가 영감과 진리를 굽히면 그것도 그만 자유를 뺏긴 것입니다. 영생을 뺏겼습니다.

또, 하나는 사망. 이 사망이 와 가지고 우리를 영생하지 못하도록 영감대로 살지 못하게 진리대로 살지 못하게 이 사망이라는 사망 세력이, 사람들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사망 아닙니까?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사망입니다. 뭐 아무리 떠들어 쌓아도 사망 앞에서는 사람들이 꼼짝을 못 합니다.

혹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안하고 내놓은 사람이 있어도 그것도 이 죄를 내나 죄악의 종이 돼 가지고, 죄악의 종이 돼 가지고서 죄가 시키는 대로 해서 악을 가지고서 자기 생명을 내놓고 하는 그것은, 기독자 외에는 뭣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문화를 위해서, 뭐 국가를 위해서 생명을 내놨다고 해도 그것은 그 속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민족 중심 민족 위주, 자기 국가 중심 국가 위주, 어쨌든지 그걸 악이라고 하는데 그 악에게 이용돼 가지고서 하는 것이지 인간이 사망을 이긴 자는 없습니다. 인간 단독이 사망을 이긴 자도 없고 마귀를 이긴 자도 없고 죄를 이긴 자도 없습니다.

이 셋을 이기면 하나님의 율법대로 다 이행할 수 있고 영감대로 다 살 수 있고 진리대로 살 수 있고 하나님과 화친의 이 결합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 세 가지 세력이 들어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자유하리라” 하는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이 세 가지가 암만 달라들어도 세 가지에게 털끝만치도 복종하지 안하고 그것들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너희들은 죄와 마귀와 사망을 완전히 승리하고 그것에게 털끝만치라도 패전하지 안하고 굴하지 안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자유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힘쓰고 노력하는 것은 뭣인고 하니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온갖 방해하고 시험해도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영생할라 하는 것입니다. 자유를 뺏기면 영생을 뺏겼습니다.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가졌으면 영생입니다.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가진 것은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뭐 생명이 끊어져도 상관없고 자유만 뺏기지 안했으면 그거는 영생이기 때문에 도리어 크게 영광스러움으로 뒤에 나타나지 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지금 최고의 목적은 뭐이냐? 자유하는 것입니다. 자유하는 것인데 그러면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인간 단독으로서는 자유할 자가 없습니다.

왜? 벌써 범죄해 놨기 때문에 사망도 인간을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죄도 인간을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귀도 인간을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의 종, 마귀의 종, 사망의 종 아닌 사람이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인류는 다 사망의 종이요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입니다.

이런데 기독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대신 그 죄의 형벌을 받으심으로써 비로소 죄를 멸하시고, 죄를 멸하니까 사망은 저절로 멸해졌고, 죄와 사망이 멸해지니까 마귀는 저절로 멸해져서 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가지고 자유를 주셨지마는 우리가 이 자유를 가지면 영생인데 이 자유하지 못하고 다 영생을 뺏깁니다. 예수님이 자유 주신 그 자유를 보존하지 못하고 이 자유를 뺏깁니다. 뺏기는 그 시간은 다 사망입니다. 둘째 사망입니다.

한 시간 이 자유를 뺏겼으면 한 시간 산 생활은 다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사망됐고, 열 시간 뺏겼으면 열 시간 사망됐고, 일생 동안 이 자유를 뺏기고 살았으면 그 사람은 고기덩어리만 살았지 영생할 기능은 다 죽어 버렸고 영생할 기능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성공은 자유입니다. 요걸 알아듣고, 그러면 공산주의의 독침이 오고 독약을 먹이고 어떤 고문과 고형을 하는 그거는 뭣이 들어 그래 합니까? 죄하고 사망하고 마귀하고 그 세 놈이 합작해 가지고서 성도들을 그렇게 괴롭히는 것입니다. 죄에게 굴복하고 마귀에게 굴복하고 사망에게 굴복하라고, 사망의 종 사망의 것이 되고 죄의 것이 되고 마귀의 것이 되라고 그럴 때 우리가 안 할라고 하면은 고문과 고형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다 순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의 하나는 우리의 죄의 형을 대신해서 죽으셨고,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 법을 이행하는 자유를 하실라고 하는고로 우리 대신 자유하실라고 하니까 자유를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문과 고형으로 하다가 예수님은 끝까지 자유하셨고, 그들은 고문 고형으로 자유를 뺏들라 하다가 생명이 끝나 버리니까 더 이상 시험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자유를 뺏들 권리가 없었습니다. 뺏들 권리가 없는 것은 다 그걸로 끝마쳤기 때문에 자유를 뺏을벌써 그 시기가 지나가 버렸어. 이래서 예수님이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대로 지나가지는 안할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야 시험하나 안 하나 다 아시지마는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시험해서 자타가 알도록 다 할 것입니다. 참으로 자유를 가졌나? 영생을 가졌나? 자유를 가지고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뭐 목사 장로가 되고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그는 죄가 오니까 당장 죄의 종되고 마귀가 오니까 마귀의 종되고 사망이 위협하니까 사망 종되고 그러면 그는 영생은 다 뺏겼습니다. 그저 기본구원이나 얻어 가지고 가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이 자유하는 영생인데 자유하는 것이 오늘 자유하고 영생했습니다. 오늘 자유하고 영생했습니다. 했으나 마지막에 패전하면 다 헛일입니다. 마지막에 패전하면 다 헛일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뭐 가정에서나 어떤 사회에서나 직장에서 이런 저런 모든, 죄라는 것은 삐뚤어진 건데 이런 저런 삐뚤어진 게 와도 그런 데 삐뚤어진 데에 내가 같이 달라들어서 삐뚤어진 것에게 정복당하고 설복당하고 감염당하고 거게 속화돼서 삐뚤어진 것을 했으면 삐뚤어진 것에 벌써 종이 됐고 삐뚤어진 것의 부하가 됐습니다. 삐뚤어진 것에 피동이 됐습니다.

그렇게, 모든 데에서 자유를 하고 어떤 직장에서 죄가 오고 또 어떤 뇌물 받아 먹는데 죄가 오고 또 불의를 행하는데 죄고 오고 뭐 이런 것이 많이, 죄, 마귀, 사망 이것은 셋은 하나입니다. 하나가 이래 가지고 돼 가지고서 우리를 해서 매일매일 승리 생활 해 나왔습니다. 승리 생활 해 나왔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최종 시험에 합격이 안 되면 헛일입니다.

마지막에 최종 시험은 뭣이 최종 시험이냐? 그런 것이 최종적으로 오는 시험도 내나 죄, 사망, 마귀 이 셋이 와서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방편을 가지고 죄는 죄 저에게 굴복해서, 죄가 범죄케 할 때에 범죄하면 죄의 종 됐습니다. 마귀가 와 가지고서 영감과 진리대로 살지 못하게 할 때에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것을 뺏겼으면 마귀의 종 됐습니다. 사망이 와 가지고 위협하고 협박하고, 고문과 고형을 주는 건 사망 아닙니까? 고문과 고형을 가지고서 우리를 사망시킬라고 위협을 할 때에 그때에 우리가 그 고문을 못 이겨서 죽음이 두려워서 그 죽음에게 굴복하고 살려 달라고 죽음에게 죽음의 협박에 빠져 가지고서 굴복해서 우리가 범죄하면 그거는 사망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우리의 승리는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살고 마귀에게 굴복하지 안하고 죄에게 굴복하지 안하고 사망에게 굴복하지 안하는 그 생할로 끝이 딱 마쳐져 버리면 완전히 승리입니다. 끝이 마쳐지면 승리합니다.

그러나 제가 칠십 살 살다가 죽었는데 예순아홉 살 해 가지고서 칠십 살 되는 해에 죽기 열 시간 전까지도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이라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에 그만 죄에게 종 다 되고 마귀의 종 다 되고 사망의 종 다 돼서 주님이 주신 그 해방의 자유를 다 내줬다면 이제까지 산 거 그거는 다 헛일 아닙니까? 그거는 뺏겼기 때문에 패전자요. 그건 영생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신의 기능은 부활할 때에, 우리가 부활이야 하지요, 부활해 가지고 영생하지요, 먹을 거 입을 거 많습니다. 아무 일 할 것 없소. 그러나 기능이 죽었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가 쓸모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죄와 마귀와 사망 어떤 게 와서 해도 그것을 이긴 것만이 하늘나라에서 그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고 영생하고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통일된 그 나라에 모든 것을 맡아 가지고서 만물을 다스리며 만물에게 은혜를 베풀고 하나님의 것을 충만케 해 줄 수 있는 것이지 그까짓 거 죄 뭉텅이가, 요만한 죄가 오니까 거기서 죄 안 짓고 하다가 주먹덩이만한 죄가 오니까 푹 넘어지면 무슨 쓸모 있겠습니까? 죄는 다 달라들어도 죄를 이겨야 됩니다. 마귀는 다 달라들어도 이겨야 됩니다.

사망은 다 달라들어도 이겨야 됩니다. 이긴 자가 죄와 마귀와 사망을 다 이겼으니까 우주나 영계나 이 세 놈을 이겼으니까 다시 그 사람을 아무것도 범죄케 하거나 유혹하거나 무슨 사망케 하거나 그런 것이 없습니다. 비로소 하나님에게 쓰일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이 영생 얻을라면은, 그러기 때문에 영생을 얻을려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영생 얻는다” 했습니다. 지금 실상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자꾸 감언이설로 듣기 좋구로 자꾸 이라는 것은 다 그라면 그만 낙망하고 돌아갈 터이니까 자꾸 이렇게 듣기 좋은 말로 이래 가지고서 자꾸 이라니까, 실은 하늘나라의 이 건설구원 이루어지는 거는 이만침, 길이가 이만해야 건설구원 이룬다면은 일 푼도 안 되는 거 가지고 구원됐다 이렇게 해 가지고 사람들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전부 다. 실은 속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들여다보면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도다” 왜 죽었느냐? “내가 네 행위의 옳은 것을 찾아 보지 못했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옳은 행위라면, 오늘 옳은 행위 말하겠소, 시험 없을 때 옳은 행위를 말하겠소, 끝까지 옳은 행위라야 옳은 행위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건설구원, 참 영광스러운 건설구원을 이루는 거는 건설구원의 가치가 있습니다. 건설구원을 받을 만한 예수님의 대속을 주신 대속을 보존하기 위해서 과연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주신 자유를 보존하지 그래 안 하면 보존 못 합니다.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이 셋을 이겨서 자유할 자가 없습니다. 자유할 자가 없는데 자유하는 방편이 있습니다. 자유하는 방편. 비유컨대 천 미터 되는 높은 산을 아무도 단번에 뛰어올라 갈 수 없다. 천 미터 되는 높은 산을 아무도 단번에 천 미터를 올라갈 자는 없다. 그러나 천 미터라도 한 치씩 두 치씩 한 자씩 반 자씩 이렇게 올라가면 아무리 누운뱅이가 기어 올라가도 이렇게 올라가면 결국은 천 미터 올라갈 수 있다. 그것을 성경이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유할 수 없는데 자유할 수 있는 길을 말해 준 것이 오늘 저녁에 봉독하신 이 말씀입니다. 자유를 누가 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자유, 독침 앞에서 우리가 독침이 암만 와도 독침이 와서 나를 조금 와서 휘고 꺾고 내가 독침에게 그 고문과 고형에게 내가 굴복하지 안하고 그거야 고문과 고형 하든지 말든지, 제 독침으로 하든지 말든지, 내 생명을 뺏아 가든지 말든지 생명은 뺏길지라도 이 진리와 영감대로의 예수님의 대속으로 주신 진리와 영감 생활은 뺏기지 안하는 그것이 자유하는 것인데 이렇게 사는 데에는 인간으로서는 못 산다.

다만 성도들이 이렇게 사는 데는 살게 하는 능력이 두 가지 있습니다. 살게 하는 것. 본문에 보십시오. 누가 살게 합니까? 누가 살게 합니까? 진리가 살게 한다 했습니다, 진리가.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자유케 합니다. 진리가 자유케 하면은 아무리 약하고 비겁쟁이고 못난 사람이라도 진리가 그 사람을 붙들고 자유케 할 때에는 자유합니다. 천하가 달라들어도 굽히지 안하고 자유합니다. 진리가 자유케 할 때 자유합니다.

또 누가 자유케 한다 했습니까? “아들이 너를 자유케 하면 자유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36절에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자유케 하는 것과 이 진리가 자유케 하는 것 두 가지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자유를 못 하느냐? 앞으로 지금, 저 먼저 손을 들라 하니까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이 전부 순교할 사람 손 들어라 해서 전부 손 다 들었는데 참 좋습니다. 이 서부교인들이 다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거는 이만하면 하늘나라 거의 다 차지해 버리요. 억억억? 수 많지마는 이겨서 자유한 사람 많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 합니다. 만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해 가지고 만물을 봉사하고 만물이 그 사람 아니면 살 수 없는 그런 시은의 존재가 됩니다.

이런데, 그러면 자유는 어떤 자가 자유하는가? 말씀이 자유케 하면 자유하고, 진리 말이오. 진리가 자유케 하면 자유하고, 예수님이 자유케 하면 자유하고 이 둘밖에는 우리를 자유할 자가 없습니다.

둘밖에는 자유케 할 자가 없는데, 예수님이 저희를 자유케 하면 자유한다 했는데 그러면 예수님이 어데 있으면서 자유케 해 줍니까? 예수님이 자기 몸 밖에서 자기를 자유케 해 줍니까 자기 몸 안에서 자유케 해 줍니까? 자기 몸 안에서 예수님이 자유케 해 줍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면, 자기 안에 계시면 어데서든지 자유합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이 잉태됐을 때에 유대법에는, 그 유대법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공부하면은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쳐 죽입니다. 그 친척들이 다 알고 있는데 어찌 돼 그 마리아를 죽이지 안하고 마리아를 손도 안 대고 하나도 욕도 안 했습니까? 속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그를 자유케 하기 때문에 아무 방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안에서 계시는 그 한 방법이 이렇게 자유할 수 있는 방법이고, 하나는 진리가 자기 속에 와서 계셔서 자유케 하면 자유합니다. 진리도 자기 속에 와 가지고 자기를 자유케 하고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도 자기 속에 와 가지고 자유케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진리가 자기 속에 있으면 자기는 자유합니다.

예수님이 계셔도 자유할 수 있고 진리가 있어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데,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셔 가지고서, 우리 안에 계신다 말은, 우리 안에 계셔서 자유한다 말은 우리 영 안에 계셔서 자유한다 말입니까 우리 심신 안에 계셔서 자유케 한다 말입니까? 뭐이지요? 우리 영 안에는, 우리 영 안에 계시면서 자유케 한다고 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자기 그 심신 속에 계셔서 자유케 한다고 아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알기는, 맞았소. 손 들어요, 됐어. 심신 속에.

그러면 우리가 자유하는 것은 영이 자유하는 걸 말하고 있습니까 이 심신이 자유하는 걸 말하고 있습니까? 심신이 자유하는 걸 말합니다. 영은 자유합니다.

영은 어디든지 자유하요. 죄나 사망이나 마귀가 근방에 와서 해하지도 못합니다.

영은 그런 것들이 와 봤자 상관이 없습니다.

자유하지마는 이 심신이 지금 이 자유를 해야 되고 심신이 자유하면은 영생이 되는데 심신 영생을 지금 할라 하는 것이지 영의 영생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심신 영생을 할라 하면은 심신 속에 진리와 주님이 계셔 가지고서, 계셔야 자유하고 자유해야 그게 영생이 되는 것인데, 자유해야 영생되지 자유를 뺏겨 버리면 영생이 됩니까? 사망 돼 버리지.

그러면, 주님이나 진리가 우리 심신 속에 와서 계셔야 되는데, 심신 속에 계셔야 되는데 계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의 심신 속에 계시지 못하는 이유가 뭐입니까? 37절 한번 읽어 보십시오. 37절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내 말은 뉘 말입니까? 주님의 말씀이면 뭐입니까? 진리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다음에 40절에 말하기를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진리라고 그다음에 40절에 말해 놓지 안했습니까? 그러면, “내 말이” 진리가 말이요. “내 말이” 진리가, “너희가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그 속에 진리가 그 속에 있으면 죽어도 주님은 내 주지 안할 터인데 그 속에 진리가 없으니까 주님을 팝니다.

그 속에 진리가 없으니까 뭐 있습니까? 진리가 없으니까, 예수님을 죽일라 하는 것이니까, 죄 중에 제일 큰 죄가 무슨 죄입니까? 예수님을 죽일라 하는 그 죄보다 더 큰 죄가 있습니까? 그보다 더 마귀 놀음하는 게 있겠습니까? 그보다 더 큰 사망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알라 해야 되지 이거 넓은 걸 이 간단하게 해 가지고 몰라요. 주님의 말씀 진리가 너희 속에 없기 때문에 나를 팔라 하고 나를 배척한다. 진리가 없기 때문에.

왜 예수님의 그 진리가 그들 속에 있으면 될 터인데 왜 못 있습니까? 진리는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은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을 말씀이 불사른다 했습니다. 이 진리는 하늘도 땅도 다 불태웁니다. 앞으로 이 천지를 불태울 때 누가 태울 줄 압니까? 이 진리가 태웁니다.

또 히브리 4장 12절 이하에 보면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이한 검보다 더 날카로워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다 감찰하시리라” 감찰하시고 만물을 벌거벗은 것같이 다 해부해서 다 내뜨리는데 이게 진리입니다. 이게 하나님 말씀이오.

누가복음 1장 37절에는 보면은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자, 진리는 죽은 자를 살리는 진리는 생명입니다. 진리는 소멸하는 불입니다. 만물을 태우는 불입니다. 진리는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다 찔러 쪼개서 해부해서 속을 확 해부해 가지고 속을 다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의 뜻과 비밀을 다 나타내는 게 진리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우리 속에 오면 좋습니까? 진리가 오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진리가 우리 속에 와서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진리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계시면 좋겠다고, 손을 버뜩 들어 봐요, 녜.

진리가 왜 못 들어옵니까? 여러분들이 진리를 입술로 말하고, 입술로 백 번 설교해도 진리 그 속에 있는 것 아닙니다. 그저 진리를 나타내도록 하는 그 소리, 이 종이, 글, 말, 이것만 가지고서 귀로 듣고 입술로 말하고 이렇지 속에 생명인 진리, 모든 것을 다 해부해서 진상을 드러내는 진리, 죄를 다 멸해서 소멸하는 진리, 하늘과 땅도 죄악이 올 때는 진리가 멸합니다. 알겠습니까? 지금 진리가 이 우주에 착수하지 안하고 있어. 진리가 이 우주에서 왔지마는 진리가 와서 감추어 가지고 있고, 감추어 있지 이 진리가 만일, 예수님의 재림 때는 진리가 나옵니다. 진리가 나오면은 이 우주에 죄악과 관련된 것은 전부 다 태워 버립니다. 다 태워 버리요. 이 진리가 오면은 인간들의 영과 혼과 그 마음의 뜻 모든 걸 해부를 해서 다 골수와 뭐 관절까지 다 쪼개서 막 해부해서 싹 내뜨려 버립니다.

여러분들이 이 진리가 오기를 원합니까? 여게 진리 오면 여기 다 소멸해서 다 뒈집니다. 다 죽소, 우리가. 알겠습니까? 진리가 오면은 우리가 다 죽습니다.

진리의 흔적이 되는 음성이 오고 글로 쓴 이 글자로 오고 말이 오지 진리 자체는, 이 진리 자체가 없는 가운데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진리가 무슨 일 하는고 성경에 가서 집에 가서 뒤벼보십시오. 진리가 무슨 일 하는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진리입니다. 살릴 수도 있고 산 자를 죽일 수도 있고 모든 비밀을 다 드러내고 불의한 것을 소멸하고 이라는데,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 3장에 “너희들만 올라가라. 천사는 내가 보내지마는 나는 같이 가지 못한다. 왜? 내가 같이 가면 너희들을 도중에서 다 전멸해 버릴 터이니까 내가 갈 수가 있겠느냐? 네가 가다가는, 하나님은 죄를 소멸시키는 하나님이신데, 죄를 소멸시키는 하나님인데 너희들이 죄뭉텅이가 돼 버리면 내가 당장 소멸해 버려야 되니까, 소멸하니까, 내가 너거와 가다가는 결국 광야에서, 애굽에서 인도해 가지고 소멸하는 것밖에 안 될 터이니까 모든 온 세상이 하나님은 사람들을 인도해 가지고서 다 소멸시키는 하나님이라 이렇게 오인할 터이니까 내가 부득이 너희들하고 가지 안하고 너거들을 피해서 사자만 보내고 가지 안하겠다.” 이랬습니다.

이 전능의 진리가 우리 속에 오면, 전지의 진리가 우리 속에 오면 이 진리는 완전이요 거룩이기 때문에 죄를 태웁니다. 모든 외식과 더러운 것을 다 소멸해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진리가 우리 속에 오면 좋겠는데 우리 속에 우리가 죽습니다. 멸망을 받습니다. 진리가 못 옵니다. 왜 못 옵니까? 진리가 오면 우리가 소멸될 것밖에 없기 때문에 진리가 못 옵니다.

그러면 진리가 우리에게 못 옵니까? 올 수 있습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진리가 들어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화되어서 참으로 내가 깨끗이 회개를 해서 깨끗이 해서 진리가 와도 자기에게 타고 죽을 건 없고 이 진리의 그 무한한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서 진리의 이 생명과 사랑과 능력이 발휘만 할 수 있다면은 이 진리가 오겠는데 이 진리가 오면 먼저 태워 죽여 버려야 되니까 진리가 올 수가 없어.

이러니까 진리가 우리에게 오면 우리가 자유할 수 있고 자유하는 능력이 갈 수가 있는데 진리가 우리에게 오지 못해서 탈입니다. 못 오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받기는 받았지마는 바꾸지를 안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은 내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이 돼서 바꿔졌으면! 바꿔졌으면 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것은 이제 바꿔진다 말입니다. 주님의 것이 된다 말이오.

“참 내 제자가 되고” 우리의 몸인데 주님과 꼭 같은 거 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제자면 선생과 꼭 같은 것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면, 행하면은 대번 되는 게 아니고 행하는 것만치 자꾸 되고 되고 이래 가지고서 이제는 진리가 우리에게 들어와 가지고서 어서 역사하고 싶지마는 진리가 들어오면 타 죽을 터이니까.

번연히, 모여서 저거끼리 모여 가지고 있는데 사람이라도 내가 들어가면 저거들의 하는 것은 전부 내 눈에 다 거슬리는 거, 내 비위에 다 거슬리는 거, 그걸 보고는 다 벌하지 않을 수 없고, 형벌하지 안할 수 없고 전부 거슬리는 거 전부 그런 것밖에 없으니까 부득이 들어가면은 그걸 잡든지 치리를 하든지 처리를 하든지 해야 될 터이니까 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리가 우리를 살리면 살고 진리면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지는 것인데 그 진리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좋겠는데 우리에게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왜 못 들어옵니까? 우리 속에는 진리가 있을 곳이 없어. 진리가 있을 곳이 없으니까 뭐이 있기에 진리 있을 곳이 없습니까? 악령, 악성, 악습, 이 마귀, 죄악, 사망 이놈만 가득 차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가 들어오면 그걸 당장 소멸해 버리고 없앨 터이니까,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 뭘로 소멸합니까? 이 세상에 죄악이라 하는 것을 말씀으로 소멸합니다. 말씀의 불로서 하늘과 땅을 다 소멸한다고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그때는 물로 소멸했지만 지금은 말씀의 불로써 하늘과 땅을 다 소멸한다 하지 안했소? 들어오면 그 하늘과 땅을 다 불태울 터이니까, 그 진리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은 우리가 얼마든지 자유해서 얼마든지 마귀와 죄와 사망에게 자유해서 영생하고 능치 못함이 없고 전지 전능자가 되어지는데 이 진리가 들어오면 되는데 이 진리를 우리 속에 넣어 줄라고 아무리 애를 써도 진리 들어가는 방법이 내가 아는 대로 진리대로 행하면, 행하는 거는 진리대로 행하는 건 그 교훈대로 행하는 것이요,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교훈대로 행하는 것이라. 진리가 아니라.

교훈대로 행하면 내가 성화되고, 성화되면은 진리가 우리 속에, 진리 자체가 우리 속에 와 가지고서 역사할 수 있어.

이런데, 진리가 들어오지 안하고 그 속에 마귀가 있기 때문에 지금 그 속은 뭐이 속에 있느냐? 그 속은 마귀하고 죄하고 사망하고 불의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찼기 때문에 진리의 근본 원 본체인 예수님을 대적해 죽일라고 하는 것들만 그 속에 가득히 찼다 말이오.

이러니까 “너희 속에 내 말이 거할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일라고 너희들이 한다” 예수님의 대적만 가득 찼으니까, 예수님의 대적만 가득 찼는데 그때 예수님이 그 속에 들어가든지 진리가 그속에 들어가면은 어찌 됩니까? 빛이 어두움 속에 들어가면은 어찌 됩니까? 어두움이 어찌 됩니까? 어두움이 소멸돼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우리가 소멸되기 때문에 진리도 우리 속에 못 들어오고 주님이 우리 속에 못 들어옵니다. 거할 곳이 마련되지 안했기 때문에.

마련되는 방법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의 이 교훈대로 살아, 교훈대로 사는 것은 진리의 그 외형의, 진리의 그 소개가 우리에게 왔을 때에 진리의 그 소개를 받고 내가 그대로 실행을 하면은, 실행을 하면 실행하는 가운데서 내가 진리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진리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다음에 진리가 와 가지고서 “너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와 가지고 너를 자유케 하리라” 사망에서도 자유하고 마귀에게도 자유하고 죄에게도 자유해. 어데서든지 자유해.

뭐 시간 많이 됐기 때문에 또, 이걸 여러분들이 좀 알아서 깨달아야 될 건데, 이거 가르쳐 가지고서 살릴라고 기껏 하면은 엉뚱한 소리, 냉장고에서 나왔다는 거 내가 테이프 들어 봤어요. 거게는 생명이 없어! 알겠습니까? 그거는 도덕을 말하고 있어, 도덕. 그건 불교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고 아무데도 있는 거라. 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지금 이거 결합이 이것만 되면 다 되기 때문에 이걸 지금 기독교 진수를 지금 이걸 맺을라고 하고 있는데 이라니까 마귀란 놈이 엉뚱한 일 자꾸 하고 있어.

집을 지을라 하니까 자꾸 길가 집 짓는 거로 이 사람이 말하고 저 사람이 말하고 자꾸 이 말 듣고 저 말 듣고 돌아다니니까 암만 해 봐야 뭐 만들지는 못해.

그랄라면 딴데로 가요.

자기 집에 다른 뭐, ○○○목사님 설교고 어떤 설교라도 그 설교 나쁘다 말 아니요. 여게서는 여게서 지금 하나 제작을 하는 거라. 여게서는 서부교회서 지금 하나님의 그 은혜 받아 가지고 하나님 사람 하나 만들라고 하고 있는데 그분들은 딴데 만들어. 이거 만들라고 해 놓으면 엉뚱이 와 가지고 자꾸 그라니까 집을 지을라고 하니까 하나가 맡아 지으면 지어야 될 터인데 엉뚱한 이가 와 가지고서, 집 지으니까 또 이래야 된다 하면 그말 듣고 저래야 된다 하면 저 말 듣고 하니까 무슨 집을 짓습니까? 무슨 제작이 됩니까?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 수가 없어. 만들 도리가 없어.

그러면 그거 나쁘다 말이 아니요. 그 말씀은 그 말씀대로 만들어야 되니까 그리 가야 돼요. 그런 사람은 ○○○목사님이 나쁘다 말이 아니라. 그 ○○○목사님이 만드는 거 있고 또 하나님이 나한테 맡겨 가지고 만드는 게 있으니까 내가 만들면 자꾸 만들어 놓으면 자꾸 그게 들어와 가지고 헛일할라고 할라면 그리 갈라면 거기 가서 만들어요. 여게 있는 그 사람도 헛일하고 나도 헛수고하고 다 헛일이라. 여게 다른 설교든지 다른 테이프를 듣고 할 사람은 가 버려요. 가야 제 구원도, 그리 찾아가요. 그리 찾아가면 거게서 만드는 대로 만들어 구원이 될 거라. 또 거기 가 가지고 또 딴거 들으면 헛일이라. 어데든지 들으면은 옳은 길로 그 사람을 만들라 하면 만들어져서 거게서 만들어져야 되지 만들어지지 안하고 여기 와 만들라 하면 딴거 오고, 길가 집 짓기로 이래 돼 놓으면 못 짓습니다.

당나귀 판다는 부자 모양으로 이래 되면은 헛일이라.

기껏 만들어 가지고 겨우 이래 근근히 해 가지고 가르쳐 놓으면 마귀란 놈이 어만 거 해 가지고 다른 테이프 듣고 들으니까 그만 ‘이게 좋다, 그래도 되겠다.’ 하니까 이건 다 헛일이라. 이러기 때문에 여러 수백 번 쌓다가 무너뜨리고 쌓다가 무너뜨리고 이제 골병이 들어. 이러니까 그런 사람은 가 버려요.

뭐 서부교회 교인 많이 모이는 게 문제 아니라. 많이 모이면 심판 받습니다, 내가.

왜? 구원 못 시키면 심판 받아. 이렇기 때문에 나도 불행스럽고 여러분들도 불행스럽고, 다른 테이프나 뭐 그런 걸 듣고 싶거들랑을랑은, 그거 나쁘다 말 아니요. 거기는 또 그거 가지고서 사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각각 달라.

이 세상에도 분야가 각각 다르지 않소? 반열 찾아 모시라고 하지 안했소? 계통이 다 있어. 이러니까 그랄라면 거기 가서 그 계통으로 어서 구원을 이루어야 되고 여기서 할라면 딴거 들으면 안 되고 여기서 자꾸 듣고 배워 가지고서 요대로 구원을 이루고, 안 할라면 그리 가야 돼요.

그러니까, 그 설교가 나쁘다 말 아니요. 거기서는 거기서대로 지금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 사람 만들고 여기는 여기대로 만들기 때문에 거기서 만들라면 그리 가 가지고 만들어지든지 여기 있으면 여기서 만들어져야 될 건데 여기서 만들어 놓으면 어만 거 와 가지고, 자, 집을 짓는데, 하나가 맡아 가지고 집을 짓는데 또 어만 사람이 와 가지고서 ‘이거 해야 된다.’ 순서가 있고,순서가 있고, 재료의 종류가 있고, 시간이 있는 것인데 이거 지금 이거 할 시간에 저거 하라 하고. 아이고 참.

집 짓는데 이 재료는 ‘이 재료는 아직까지 필요가 없다’ ‘그러면 아주 필요 없습니까?' `필요 있지만 아직까지는 지금 시기가 지금 시기는 필요 없다.’ 지금 어서 파고 어짜고 이거 이거 뭐 공굴해야 되는데, 공굴도 하기는, 공굴 내가 나쁘다 말 아니오. ‘궁굴 하기는 해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공굴할라 하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땅을 파야 되는 시기다’ 엉뚱이 자꾸 그라니까 이 건축이 안 된다 그말이오. 그래서 길가 집 짓기라 말이 있어.

이거 길가 집이라. 이래 놓으니까 암만 해 봐야 나도 수고가 헛수고 여러분들도 헛수고. 이러니까 여게 서부교회 백 목사 설교만 듣고 요것만 들어 가지고서 만드는 대로 만들어질라면 여기 있어 만들고 안 할라 하거든 그 테이프 들어요.

딴 테이프 듣고 딴 녹음기 듣고 방송에서 설교 듣고 그라는 사람은 여기서 암만 있어 봤자 나도 헛일 자기도 헛일 다 헛일입니다. 안 만들어져요. 그런 사람은 가 버려요. 다 가도 좋아요. 왜? 하나님이 기뻐하실 터인데.

여기 있으면서 안 만드는 거는 나도 내가 하나님의 제품을 만드는데 하나님의 제품을 만드는 내가 나도 헛수고니까 불쌍하고 헛 애쓰고 저도 헛일하고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거기 가서 만들든지 여기서 만들든지 따로 만들어져야 되지 이라니까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가라 했습니다.’ ‘잘 했다.' 주님이 잘했다 할 거라 말이오.

잘하고, 그저 사나 죽으나 이 말씀만 가지고서 구원 이룰 사람은 여기 있고 딴 말씀 가지고, 그 말씀이 나쁘다는 말 아니오. 잡탱이 가지고는 구원이 안 돼.

뭣이든지 제작을 할라 하면 제작하는 순서가 있고 또 시기가 있고 종류가 있는데 이 재료에 쓸 거야 다 필요 있기야 필요하지만 이 재료를 써야 될 때에 저 재료를 쓰면은 안 된다 그말이오. 이거 할 때 저거 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여기서 만들라 하는데 전부 헛일하고 말아. 그런 사람은 변화가 없어요.

어느 방송 어느 뭐 설교 라디오 방송 듣고 이래 하는 그 사람은 여기서 봐도 반드시 망합니다. 비참하고 가련합니다. 보십시오.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리 가야 되지. 사업을 해도 성공이 하나도 안 돼. 그 속에 믿음의 생기도 없어. 아무 힘 없어. 자기가 살펴보라 그말이오. 힘이 있는가 없는가? 하나님이 자기 하는 일에 도와 주시는가 안 도와 주시는가? 안 도와 줘. 망해. 그리 가야 축복 받지.

여기서는 안 돼. 여기서는 안 돼요. 거기 가 축복 받고.

또 거기 있는 사람들이 이 설교 들으면 여기 와야 돼요. 이 설교 들을라면 또 거기 안 있고 이리 오든지 이래야 되지 한 줄기에서 하나님이 영감으로 가르치면 요거 하고 조거 하고 자꾸 영감으로 가르치는데 영감으로 가르치는, 이거야 뭐 영감 아닌 그 아무나따나 마구잡이 귀신 설교야 암만 해 봤자 상관없어. 그거는 해 봐야 설교 효력도 없고 들어 봐야 그렇고 고칠 거도 없지만 이거는 참으로 영감으로 하나 둘 고쳐서 새사람 만드는 데 대해서는 이게 뭐 한 시간이 무섭고 한 마디가 무서워. 실컷 해 놓으면 딴거 한 마디 들으면 다 깨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뭐 냉장고 설교 무덤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거, 내가 그거 봤소. 뭐인지 이걸 뭐인지, 누가 테이프를 꽂아 놨어. 보니까 이거는 순전히 인간의 도덕 설교 뭐 이래 뭐 어떻게 하라 하는 그런 거, 그거는 믿는 사람이 이런 거 저런 거 행동하는 것인데 여기서 지금 만드는 것은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돼 가지고 하나되면은 하나님이 역사한다 그걸 말하는 거라. 그런 거는 부스러기 중에 부스러기라요. 간단하게 말해서 그 설교는 생명이 없어. 알겠습니까? 생명이 없어.

이 설교가 나갈 터인데, 뭐.

보니까 목사는 되게 추 놨더구만. 목사를 추어서 목사를 막 참 하나님 종같이 아주, 그 목사 물론 좋은 목사야 그렇지. 이래 추 놓으니까 아무라도 목사가 듣고 ‘그이 우리 교회 왔으면 우리 교인들이 목사 대우 안 하니까 목사 대우하겠다’ 이래야 교회 초청하는 사람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그것도 가지고 있어.

어쨌든지 여러분들이 나를 죄짓게 만들어. 다른 어떤 사람의 설교라도 그 설교가 이단이라는 말도 나쁘다 말도 아니오. 어짜든지 여게 있으면 지금 설교 가지고 지금 사람을 만들어서 제품을 만들어야 되는데, 하나님 앞에서 예술품, 하나님 앞에 이 보배 뭘 만들어야 되는데 만드는 여기 대해서 자꾸 잡게 들어오니까 헛일이라 그말이오. 내가 뭐 밥을 못 먹어서 그렇소, 뭐 하고 있어 하는 거라? 나도 하늘나라 갈 걸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거라.

그러니까, 아예 그런 걸 다른 테이프 뭐 어떻게 녹음으로 듣든지, 방송 설교 들을라면 아예 이 설교는 안 들립니다. 방송 설교 듣고 이 설교는 귀에 안 들어갑니다. 방송 설교는 그거는 자며 들어도 듣고 땅에 속한 말이요 인간 속한 그런 것이 많이 섞여 있고 이것은 하나님과 이거 직접 결합하는 이걸 말하기 때문에 이 말이 안 들어간다 말이요, 암만 말해도. 이러니까 한 설교 가지고서 세 시간 네 시간 암만 해도 헛일이라.

그것을 단정을 지우십시오. 지워서 라디오 방송 설교 들을라면 이 설교는 절대로 라디오 방송 설교 들으면 이 설교가 속에 들어가지를 안합니다. 왜? 그런 설교와 다릅니다. 제가 있는 심신을 막 생명을 바쳐 놔야 들어가지 그래 안 하면 안 들어갑니다. 그저 테레비 틀어 놓고 만담하는 거 그런 거 듣기 좋은 거와 같은 그런 말이 아니오. 자기 마음과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다 바쳐 이걸 살라고 각오해야 이 진리가 속에 들어가지, 깨달아지지 그리 안 하면 못 깨달아지는 진리요. 그래 쉬운 거 아니라.

그러니까, 방송 설교든지 이 다른 테이프 설교든지 그런 것을 들을라면, 그거 이단이라 말이 아니오. 그리 가요. 여기 있으면 안 돼. 여기 있으면 저주받아.

알겠소? 그거 들으며 여기 있으면 저주받아. 자기 구원이 망해, 저주받아.

내가하나님 앞에서 말해요. 여게서 그 잡탱이 들으면 자기 구원은 절단나요. 자기 구원이 저주받아. 다 망치고 말아. 이러니까 가라 말이오. 거기 가서 듣고, 또 거기 가서도 그냥 아무나따나 잡탱이로 이것 저것 전부이 잡탱이로 이래 주 듣는 거 같으면은 상관없어. 그까짓 거 뭐 들어 봤자 만들어질 것도 없고 안 들어 봤자 탈될 것 없는 것이지마는 참으로 영감대로 순서로 하나하나 영감 받아서 딱딱 만드는 데에는 어데 가든지 가면은 또 거기 가서 들어야 되지 그거 듣다가 딴거 오면은 다 헛일 돼 버리고 맙니다.

한 설계를 가지고서 건축을 해야 될 터인데 이 설계 건축하다가 ‘아, 여기 또 좋은 설계 있네.’ 또 건축하다가 또 며칠 후에 저 설계 가지고 건축하다가, 그라면 뭣이 집이 되겠어? 그거는 다 재료만 헛일되고 다 헛일되고 말지.

이러니까, 함부래 그런 사람은 여기 서부교회 다니면서 다른 테이프든지 방송 설교든지, 그거 나쁘다 말 아니오. 그거는 그대로의 만듭니다. 여기는 여기대로 서부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라고 지금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순서가 있어. 이러기 때문에 그런 거 듣는 사람들은 그리 가요. 그 이단이라 말 아니오.

거게는 또 그대로 만들기 때문에 그 만드는 그대로 가 만들어야 되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라면 다 헛일되고 말아요. 나도 헛일하고 본인도 헛일하고, 왜 남을 헛일 자꾸 그래 시키고 있어요? 이러니까 여게 있으면 저주받는다 말은 자기 구원은 저주받습니다. 건설구원은 저주받아. 다 헛일이야, 다 헛일. 내가 담대히 말해요, 이걸 지금. 깊이 내가 깨닫고 말하고 있는 거라, 지금. 여러분들이 살라면 그런 말 듣고 난 다음에 이 설교를 들으면 이 설교는 어두워. 설교는 몰라. 설교는 뭘 말하는지 몰라. 또 그 속에 느낌을 느끼지 못해.

신구약 성경 전부는, 신구약 성경 전부는 뭘 가르치고 있느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가르치고 사활의 대속을 입는 걸 가르치고 사활의 대속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의 것 된 것을 가르치는 이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학식이 많지마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못박혀 죽은 그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는데 여러분들은 뭐이 유식해 자꾸 오만 거 다 알라 합니까, 다 알라 하기를? 냉장고 들어갔다 나온 사람 있으면 그 사람 말 다 듣고 또 죽었다 살아난 사람 그 사람 말 듣고 뭐 오만 거 다 들을라 하니까 이걸 언제 할 도리가 없어. 그런 사람은 가야 돼요.

이제 봐서 그런 사람 있으면 그런 사람은 우리 교회 나오지 못하도록 가도록, 왜? 그래야 제 구원도 얻고 나도 헛수고 안 하고. 공연히 듣지 안하는 그런 거 여기 내비둬 가지고 뒤에 주님 앞에 가면은 나 만드는 거 내가 딱 내놓고 지금 ‘이거 네가 만들었지?’ 할 터인데, 내 말 안 들은 거 내가 만들라 하니까 심판은 내가 받지 안해요? 내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아. 그래 가 버리는 게 좋아. 짜다라 주 많이 모이면 뭐 할 겁니까? 여기서 요대로 만들어져 가지고, 만들어져 가지고 앞으로 어떤 환난이 와도 세상을 이기고 마귀와 죄와 사망을 이기는, 어데서든지 자유 할 수 있는 자, 자유할 수 있는 이 자 만들라 하는 것이오. 팔방미인으로 창기 모양으로 그래 가지고, 그뭐 냉장고 설교가 어데 예수님과 하나님과 자기와의 결합되는 것이 어데 있읍디까, 있기를? 한 마디도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내일 새벽에 다 나와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자유 못 해. 여기서 새벽기도 나온다고 손까지 들어 가지고서 하루 새벽을 못 나와. 들면은 월요일날 새벽에는 좀 많이 나오고 화요일날은 푹 줄어지고 수요일 말해 놓으면 목요일 아침에 좀 많이 나오고 푹 줄어지고, 그렇게 죽은 자의 능력 없는, 아무것도 능력 없는, 완전히 죽어서 힘 한 내끼도 없는 그것이 앞으로 독침 앞에서 자유를 가져? 인민군 앞에서 자유를 가지요? 고문과 고형 가운데에서 주님을 부인하지 안해? 어림도 없어. 거짓부리 하지 말아요, 다 죽은 것인데.

주님과 진리가 자기 속에 자기를 주관해야 되는데 이 주관하는 일을 가르치지마는 겨우 가르칠라고 애를 쓰면은 엉뚱한 소리 냉장고 속에서 뭐 방송 설교 하나 들어 가지고서 그만 다 풀어져 버리고 하니까 다 헛일한다 말이오.

여기 방송 설교 가지고서 자기 구원을 이룰라 하는 사람들 다 가요. 그런 사람 한번 손 한번 들어 봐요. 방송 설교 듣고 구원 이룰라고 하는 사람. 듣는 사람 손 들어, 듣는 사람? 없지 안해. 모두 그것도 거짓말도 자꾸 하고 있어. ○○○집사 안 들어?  ○○○집사 지금 안 듣나? 안 들어? 듣는 사람들은 이 구원이 안 돼요.

변화를 못 시켜. 하나님이 와도 뭐 변화를 못 시키요.

못 시키니까, 그 설교 나쁘다는 게 아니라. 여게 만드는 순서대로 요 지금 요대로 자꾸 따라서 만들어지면 만들어질 터인데 만들어지지 안하고 엉뚱한 짓 하기 때문에 나도 헛일 주님도 헛일 여러분들도 헛일 다 불쌍하고 가련해. 여기 있으면 저주받아. 그리 가야 축복받지. 그 교훈을 거기 들을라면 그리 가야 되지 이 교훈 자꾸 돌아다니며 무슨 무슨 지금 뭐 자꾸 돌아다니면서 그런 호기심 가지고서 여기서 한 마디 저기서 한 마디 듣고 그렇게 해요, 하기를.

내가 오늘 아침에 어떤 학생 만났는데 자기가 여기서 배운 진리를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니까 뭐 모르니 아니 뭐 그 소리해. 내가 야단을 쳤어. ‘들었으면 네 구원이나 이뤄. 네 구원 이루고 네 구원 이뤄서 네라는 사람으로 보여주고 네라는 행동으로 보여주지 네가 논리로 말하면 그 사람들 죽이고 너도 죽고 다 죽어. 네가 교만이 가득 찼다.’ 이랬어. 나무랬어. 여기 지금 어데 앉았을 것이라.

열심쟁이인데 그래요.

이 집짓는 거 한가지입니다. 여게서 만드는 데는 여게서 만들어져야 되지 그리 갈라면 그리 해야 되지 이 교훈 저 교훈 다 이렇게 섞어 놓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사람 애먹이지 말고, 자기도 불쌍하지 말고, 여게 있으면 저주받아요. 그 교훈 가지면 여기 있으면 저주받아. 그리 가야 돼. 왜 그런 영원을 망칠라고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자꾸 그렇게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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