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의와 건설적인 의


선지자선교회 1986년 4월 29일 새벽(화)

 

본문 :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장 10절에는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하신 공로 없이는 한 의인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여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이 의인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만 한해서 의인으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의인은 자기의 행함의 의로 의인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로 의인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세 가지 하나님의 노를 푼 의와 또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이행한 의와 하나님과 피조물인 택자들이 서로 안에 있을 수 있는 이런 친밀을 이룬 의와 이 세 가지 의를 합해서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사람만으로는 우리 각자들이 하나님 앞에 노엽게 한 그 세 가지룰 죄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밖에는 담당 못 하고 죄 없는 한 사람과 무한하신 하나님과 한 격위 한 위가 돼 가지고, 한 직위를 가져 가지고 택자들을 대신해서 이 의를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세 가지 노를, 노라 말은 성낼 노(怒)자, 하나님의 분노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노를 다 제해 풀어드린 그것은 택자들을 대신해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택자들은 누구든지 자기가 하나님의 세 가지 노를 완전히 풀어 드려서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점이 나나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행위로 된 것이 아니고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대신해서 행하셨기 때문에 자기가 행한 것이 된 것입니다.

자기가 행한 것이 된 것은 대신해서 행한 것이 된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행하지 안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세 가지 노의 형벌을 다 받아서 노의 형벌을 받음으로써 그 노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하나님에게 세 가지 노엽게 해서 이것으로 영원한 사망을 당해야 되는 우리들을 대신 당신이 사망하심으로 이 세 가지 노가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택한 자들을 자기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자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는 하나님의 노를 푼 것이 하나도 없는데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이 노를 영원한 사망을 당하심으로 없어졌기 때문에 자기가 행하지 아니한 예수님의 행하신 것을, 자기를 대신 행하신 것을 믿어 자기 행함으로 자기가 삼기 때문에 자기는 대신 형벌 받아 죽으신 예수님의 것이요 자기 것아 아닌 것입니다. 자기를 자기 것으로 삼으면 대형하신 예수님의 세 가지 노를 푼 이 대속한 것은 예수님의 것이요 자기 것은 안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 것 삼을라고 하면 자기는 예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대속한 것은 본인이 믿든지 안 믿든지 하나님 편에서 대속을 하셨기 때문에 대속은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부정해도 대속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속한 그 실지의 효력이 행동적으로 자기에게 오는 데에는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이 대속의 능력의 효력은 오지를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본인이 부인하든지 말든지 기본적으로 대속을 입은 자들은 다 택한 자들은 다 대속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 가운데에 이 대속 입은 의인인 것을 믿고 이 의가 자기 의가 된 동시에 자기는 주님의 것이 된 것인 것을 믿는 자에게는 의의 능력이 역사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건설적인 이 의는 자기에게 상관이 없기 때문에 건설구원의 그 능력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안 믿는 그 효력의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없이 택한 자들은 다 대속이 웠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제 대속 받은 이 의인으로서 사는 것, 대속 받은 의인이 의인으로 살아 의인이 의인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과 영광을, 권세를 받아 누리는 것은 본인이 믿어야 하지 믿지 안하면 안 됩니다. 믿을 매에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인됐다 하는 말은 이 하나님의 의를 믿을 때에 의인이 된다. 의인의 능력을 가졌다 그 말입니다. 믿을 때에 의인이 된다는 말은 믿을 때에 의인의 효력이, 능력이 자기에게 온다 그 말입니다. 믿는 것은 주님이 자기를 대신해서 이렇게 죽으심으로 의를 설정했기 때문에 자기가 죽어 없어진 것이요 이제 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신해서 죽을 것이 죽지 안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예수님의 것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것이 뭐가 믿는 것인가? 자기와 자기의 모든 것은 예수님의 것인 것을 알고 예수님의 것으로 살 때에 믿는 것이요 자기가 자기의 것이라고 아는 사람은 믿는 행위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는 살아 있으나 자기는 예수님의 대속과 같이 죽었고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의 공로를 내것 삼았으니까 살아 있는 나는 예수님의 것인 것을 확실히 인정할 때에 대속의 공로는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자기는 자기대로 살 것이 아니라 대신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으로 사는 것, 예수님의 지체로 살고 예수님의 몸으로 살고 예수님의 것으로 사는 거기에 지극히 큰 능력은 역사하지 그게 없으면 능력은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의는, 이제 반을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의 반 남았으니 반은 뭐이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세 가지. 이것도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것 신인양성일위되신 예수님께서 내 대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내 대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세 가지를 하는데 세 가지 다 생명을 바쳐서 했습니다. 생명을 남겨두고는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의를 행하셨는데 세 가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 중에 첫째가 뭐인가? 첫째는 하나님의 노여워하시는 이 세 가지를 다 풀어 드려서 하나님의 노를 다 없이 한 것, 하나님의 노를 없앤 것,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그 일을 없애 버린 것, 그걸 다 절단내 버리는 것, 아주 소멸시켜 버리는 것 그것은 뭘로 소멸했는가? 예수님께서 세 가지 노엽게 하는 이 죄 값의 형벌을 받음으로써 없앴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 중에 하나는 뭐인가? 하나님의 진노의 죄 셋을 형벌 받아서 없앤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노를 푼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노를 푼 것은 세 가지 노를 푼 것입니다. 또 고거 말하면 복잡해지니까 세 가지 노 뭣 뭣 그거는 내가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벌써 수십 번 들었기 때문에 알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의 중에 하나는 노를 푸신 것이요, 또 하나는 뭐인가?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가 입법한 그 입법을 완전히 이행한 것입니다.

완전히 행한 것입니다. 신인양성일위가 행하셨는데, 완전히 행하셨는데 신인양성일위는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행할 것이 없이 하나님이십니다. 또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를 대신해서 행하는데 인성만이 행했으면 당신 모가치나 하지 우리 모가치는 못합니다. 인성과 신성이 일위가 돼 가지고 행했기 때문에 유한한 숫자의 인간 대신 무한하신 하나님이 그 곤욕을 당하셨기 때문에 다 대행이 됐습니다. 대신 이 율법을 행함으로써 완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의가 하나입니다.

그러면, 의가 이제, 노를 푼 의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행하심으로써의 의와 의가 둘이 됐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완전히 화목해서 하나님과 화친을 이루어서 하나님과 하나가 돼 가지고 하나님 안에 우리 있고 우리 안에 하나님 계시고 하나님과 우리와 동거 동행할 수 있도록 이렇게 죽으심으로써 화친의 화목의 제물이 예수님이 되셨습니다. 화목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신인양성일위가 죽기까지 이렇게 하셔 가지고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화목을 이루었음으로써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또 우리가 성령님 안에 있고 성령님과 우리와 동거 동행이 되는 것이, 성령은 여호와의 영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성부의 영이 성령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입니다.

삼위일체, 하나이기 때문에 이 성령은 성부의 영이요, 성자의 영이요, 성령의 영이 성령이십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과 우리는 상호 내주해 가지고 하나가 된 이 의를 이루었습니다.

이 세 가지 의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이룬 이 의는 우리 대신해서 당신이 죽으심으로 이 의를 이룬 이 의를 내것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대신 죽으신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주님의 것이 됐으면 어느 정도까지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느냐? 주님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의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마지막에 주를 위해서 죽는 것으로 전부를 다 바쳐서 사는 것이 그것이 법이요, 그것이 당연한 이치요, 그것이 합법적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합법적 예배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쁘시게 하는 의 하나님의 노를 푼 의 이 두 가지를 합해 가지고 하나님의 의라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신인양성일위가 설정하셨는데 이 의는 내 대신했기 때문에 곧 내 의입니다. 이 의를 입은 사람들은 다 의인이 됐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는데 왜 여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했는가? 하나님의 의인 없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아니한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못 입은 사람은 하나도 의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은 다 의인입니다.

의인인데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의인되는 것은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믿든지 안 믿든지 의인이 됐습니다. 나기 전에 의인이 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하신 이후에 난자들은 전부 다, 아직까지 나지 안한 자들도 그때에 다, 예정적으로 날 자들이 다 의인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대속하기 전에 예택 받은,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대속이 안 됐지만 앞으로 대속할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미래에 소망적으로 의인이 됐다가서 예수님이 대속하실 때에 그때에 의인이 완전히 된 것입니다.

의인이 완전히 된 그것을 가리켜서 휘장이 위로부터 쪼개져 가지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완전히 가리워진 게 없어졌다 그거는 택한 사람들을 위해서 없어진 것이지 불택자 위해서 없어진 건 아닙니다. 불택자들에게는 그 휘장이 지금도 가리워져 있습니다. 택자들에게만 이 휘장이 열려져서 하나님과 인간이 그 사이가 완전히 틔여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의, 노를 푼 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의 이 두 가지 의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입는 데는, 근본적으로 입는 데에는 택한 자들이 입기 때문에 순전히 공짜배기로 공 하나도 안 들이고도 다 입었습니다. 몰라도 입었습니다.

암만 부인을 해도 택한 자는 입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이 의인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죽는 그 시간까지 반대하다가도 택한 자들은 고 죽을 때라도 예수님을 믿고 죽는 고 사람은 택자라는 그 증거인 것입니다. 고 믿은, 택자로 의를 입은 증거를 마지막에 일 분 동안 증거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고, 또 증거 안 하고 낙태해서 죽은 사람이나, 그거는 다 의인이 한번 나 보지도 못하고 의인으로서, 생겼다가 죽은 사람 있습니다.

요새 자꾸 저거 욕심대로 동침은 하면서 밴 아이는 전부 유산시켜서 한 것은 그거 전부 살인인데 저를 통해 살인된 것이 그것이 사람 노릇해 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서 있기는 있습니다. 택자면 가 있습니다. 택자면, 가 있으면 그자가 그 부모에게 '네가 들어서 나를 유산시켰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 나 가지고 사람 노릇으로 영원한 영광의 구원을 이루어 보지도 못하고 말았다' 하는 그것이 그때에 책임이 있으리라 우리가 추측할 수가 있고 판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약을 써 가지고 그와같이 지금 한 것은 그것은 약을 썼기 때문에 생겨진 것을 한 것보다는 그것은 더 어릴 때 했기 때문에 그에게 책임이 적겠습니다. 약을 써서 한 그것은 생겨지지 안하고 했기 때문에 책임이 적습니다.

그러면, 생겨지지 안한 그거는 어쩌냐? 생겨지지 안한 그것이 만일 예택됐다면 어찌 되느냐?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생겨지지 안했었기 때문에. 생겨지지를 안한 사람이라도 예택됐다고 하면 그는 그 값은 약을 먹어서 치료된 그 자에게 책임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자기가 금욕 생활을 해서, 우리의 책임은, 자기가 정욕대로 행함으로 아이가 생겼지 정욕을 없어 금욕 생활을 해 가지고 없었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는, 욕심대로 행함으로 생겨졌는데 욕심대로 행하지 안해서 없었으니까 자기는 욕심으로 하지 안했기 때문에 거기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것이 우리가 공평된 판단이겠습니다.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금욕으로 그것을 산아 제한을 할라고 애를 쓰고 약품으로 할라고 하지 안하고, 임신된 것을 유산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대개 신앙 있는 사람은 임신됐으면 유산하지는 않습니다.

또 약을 쓰거나 무슨 그런 방편을 쓰지 않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또 약을 쓰지 안하고 아예 저희들이 정의 교제는 하지만, 정교는 하지만, 이 성의 교제는 하지만 그 성이 서로 결합되지 안 하도록, 배란과 정충이 만나지지 못하도록 경계를 해 가지고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방편 쓰는 것, 그러면 그것은 약 써 가지고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거는 자기가 좀 회생이 되고 약 써 가지고 하는 것보다 낫고, 또 약 써 가지고 하는 것은 유산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유산하는 것은 자기가 생산해 가지고 없애 버리는 것, 죽여 없애 버리는 것 그보다는 또 더 낫겠습니다.

그러니까, 낳아서 키우는 것은 낳아서 죽이는 것보다 낫고, 자기가 고의적으로 죽인 것, 고의적으로 죽인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낳아 가지고 죽인 것보다는 배 안에서 유산시킨 것이 좀 죄가 적겠고, 배 안에서 유산시킨 것보다는 약을 먹어서 임신되지 않는 것이 죄가 적겠고, 또 약을 먹어 임신되지 안한 것보다는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기구를 사용해 가지고 이와같이 임신되지 않는 것이 죄가 적겠고, 그것보다는 금욕 생활을 해 가지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는 상관이 없겠다고 그렇게 판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그렇지 안하고 자기가 과학적으로 연구를 해 가지고 자기의 신체의 그 모든 조직을 조사를 해 가지고 임신되지 안할 그 시기를 자기가 타서 관계를 하고 임신될 그 시기는 자기는 그때는 금욕 생활해서 하는 그런 것도 자기 지혜 쓰는 것은 복술을 쓴 것이지만 그것도 자기에게는 상관이 없지 않느냐 그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이것을 다 상식적으로, 다 알고 하지만 그것을 금욕을 옳게 못 해 가지고 그렇게, 못 해서 그렇게 된 것 있습니다. 또 그러나 하나님께서 꼭 나게 할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나게 할 것은 아버지가 뭐 아무리 수술해도 소용없고 어머니가 어떻게 해도 상관없고 하나님이 기어코라도 또 날 것은 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연히 죄만 짓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 내가 보니까 그 아버지가 다 수술해서 절대, 생산 못 한다고 하고 있는데 생산이 되니까, 임신이 되니까 그만 분해 가지고 아마 이거 무슨 죄를 지었는가 보다 하고, 이거 꼭 죄 지어서 이거는 덮어 쓸 수밖에 없는 일인데, 사실은 안 그런데 억울하다 말이오, 그래 말하기를 '그러면 병원에 가 봅시다' 병원에 가 가지고 가보니까 수술을 철통같이 해 놨는데 이게 그만 해제가 돼 버려서 그만 수술이 다시 복구가 돼 버렸다 말이오. 복구가 돼 가지고 임신됐어.

그래 가지고 그런 사람 있던 것을 내가 여럿을 들었고 또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목사한테 물으니까 와서 압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목사한테 와 가지고 묻든지 구역장한테 묻든지 이래 물어 가지고 하지 안하고 저거대로 하는 통에 다 망합니다. 오면 살 길이 있는데 저거대로 하기 때문에 망합니다.

여게 지금 아마, 내가 보니까 아까 어디 보이던데, OOO씨라고, 그거는 인제 말해도 괜찮지 싶어서 내가 말합니다. OOO씨 손 한번 들어 보이소. OOO씨 손 한번 들어 봐요. 저기 드네. 내가 저 대티에 기도실에 가니까, 내려오면서 배가 이래 가지고 내려옵니다. 그때 생활이 참 곤란했습니다. 지금은 뭐 경제가 지금은 돼지죽만 갖다 먹어도 그때보다 낫습니다. 그때는 그것도 없는 때라. 아주 좀 경제가 어려운 때입니다. 내려오니까 나한테 '그래도 목사님을 찾아가 만날라고 했는데 그만 여기 와 만났습니다.' 이래서 '어디 갑니까?' 이라니까 병원에 간다고.

'왜 갑니까?' 유산하러 간다고. 그때 뭐 만삭이 됐었었소, 유산하러 간다고 암만 해도 키울 수는 없고, 그거 참 그 가정이 굉장했었습니다. 지금은 뭐 큰 거부가 됐습니다. 그때 요량하면, 이랬는데,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내가 말하면서 안 되니까 낳고 난 다음에 경제가 없어서 못 키우는 것은 그거는 경제 있는 대로 키우고 못 키우면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 너한테 경제를 안 줘 가지고 못 먹여 살리고 이러면 그러니까 그러고, 또 그러면 하나님이 키울 사람을 줄 것이다. 이라니까 그 유산하면 안 된다.' 그래서 도로 저하고 도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 가지고 갔었습니다.

갔는데, '만일 낳고 나서 키우지 못하거들랑 낳고 난 다음에 나한테 기별을 해라 내가 그 아이를, 못 키우면 내가 키울 수 있도록 내가 그거 책임을 지고 내가 이와같이 할 터이니까 그래라.' 그라니까 '그라면 낳고 난 다음에 그때 내가 조사입니다. 조사님이 그라면 좀 이것을 좀 책임을 져 주십시오.' '그래라' 그래 갔는데 아이 낳고 난 다음에 그 뒤에 기별이 오는가 이라니까 자기 아버지가 있다가서 제일 막내로 낳은 것이 효성 있다 하면서 얻어다 먹여도 꼭 안 줄라 해서 그때 데려다가 탁아소에 보내지를 못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저 아래도 여기서 만났어. 새벽 기도 나왔어, 보니까. 얼굴이 잘 생겼어요. 그래 '네가 뉘고?' 이라니까, 그거 그렇다 해. '네가 막내 쌍둥이가?' 그래 쌍둥이를 낳았다 말이요, 또. '쌍둥이가?' 쌍둥이라고. '그래 너거 어떻게 해서 난 거 알지?' 이라니까 '예, 압니다.' 그게 그만 내 아들이 돼 버렸어. 내 아들과 같애. 왜? 그거 내 씨야 아니지만 완전히 죽을 걸, 완전히 그때 죽이는 건데 뭐 죽는 걸 내가 살려 놨으니까 활인자도 부모 아니오? '생인자도 부모요 활인자도 부모라' 죽음에서 살려 놓은 자도 부모라 말이오. 내가 부모라 말이오. 그래, '네가 나를 알지?' 하니까 '예' 아주 저도 나를 참 아버지같이 생각하고 나도 아들같이 생각하고 그래 내가 더러 자랑합니다. 내가 낳은 아닌 아들 둘 있는데 그거 우리 아들보다 더 좋아. 그거 그놈 뭐 지금 뭐 만일 어떤 것 시켜 놓으면 내 아들보다 훨씬 효성 있게 잘 할 거라 그 말이오.

그래서 '너거 형이 지금 요새 더러 만나나?' '예, 한 달에 한번씩이나 이래 옵니다.' '오거들랑 내가 찾는다고 어디 그 말 전해라' '예' 하며 나 보면 좋아하고 아주 좀 어리광도 하고, 아마 제가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와 가지고 흉금 열어 놓고 다 얘기를 할거라. 그래서 구출한 게 아는 거는 그런데 그렇게 야나지게 안 되게 말해 가지고 유산하지 말라 해서 낳은 아들은 아마 그것도 아마 여러 수십 명 아니라 수백 명 안 되는가 이렇게 싶은데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이 기본적인 이 의는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기본적인 의를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설적인 의는 내가 이 건설하는 행위를 해야 건설적인 의가 있어 가지고, 건설적인 의가 있어야 그게 이제 하늘나라에 영광이 되는 것인데 건설적인 의를 이루는 것은 전지 전 능의 능력이라야 이루지 전지 전능의 능력이 아니면 이루지 못한다 말이오. 전지 전능의 능력이 아니면 이루지 못해.

그러면, 전지 전능의 능력이 아니면 이루지 못하는데 전지 전능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우리에게 없다 그 말이오. 없는데, 이 기 본적인 하나님의 의를 자기가 입어서 의인된 것을 자기가 확실히 깨닫고 '나는 의인이다. 나는 의인이다.' 의인은 새로, 첫째 아담에게 속한 생명이 아닌 새생명을 받았습니다.

새생명 받은 그게 뭐이냐 하면 중생입니다. 중생으로 새생명 받았습니다.

새생명 받았는데, 새생명 받아서 의인된 사람들은 새생명을 받을 때에 새생명이 무엇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생명이 됐습니까? 무엇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생명이 됐습니까? 기본적인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의인된 자가 살아났는데 의인된 자가 살아날 때에 몇 가지 능력으로 살아났습니까? 두 가지. 기본적인 의를 하나님의 의를 입어 놨거든. 하나님의 의를 입어 놨기 때문에 이제 두 가지만 입으면 되지.

'우리가 어떻게 중생했습니까?' 이라면 세 가지요 '피' 하는 것은 기본적인 하나님의 의를 입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의.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는 이 두 가지, 하나님이신 성령과 진리와 이 두 가지로 우리가 살아났다 말이오.

그러면, 중생된 자의 이 영생하는 힘은 몇 가지 힘입니까? 세 가지. 이거는 또 두 가지 하면 안 돼. 세 가지. 몇 가지로, 그러면 기본적인 의를 입은 사람이 몇 가지 능력으로 살아났습니까 하면 그때 또 둘이라 해야 된다 말이오.

이렇게 가르쳐도 이걸 모르면 안 돼. 참 이거, 기도 많이 해요. 성령님이 가르쳐 줘야 되지 여러분들이 모두 둔하다 그 말이오. 우리가 모두 둔해. 죄를 짓기 때문에 막 둔해 가지고 있어요, 이거 다. 둔해 가지고 있고, 또 안 둔한 것은 안 둔한 동시에 고게 믿음이 없어.

이러니까, 자기가 이 두 가지 지극히 큰 능력으로 중생됐는데, 이제 세 가지로 중생됐다 할 수도 있고 두 가지로 중생됐다 할 수도 있고, 의인된 자는 두 가지로 중생됐고, 의인된 그것까지는 말하지 안하고 어떻게 중생됐느냐 하면 그 세 가지를 다 합해서 말해야 된다 그 말이오. 처음의 것이 빠져 버리면 다 안 돼요.

이랬으니까, 이제 중생된 의인이니 중생된 의인은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중생된 의인입니다. 중생된 의인 생활은 그 법칙이 뭐이냐? 신구약 성경이 법칙이라 말이오.

그러면, 중생된 의인이 다른 사람한테는 말 못 해요. 나는 완전한 의인이라. 시편 기자들은 자기는 완전한 의인이라 하는 것을 시편에 많이 기록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시편 주석가들이 주석을 해 봤자 그 주석이 다 껍데기 주석이기 때문에 주석을 옳게 못 했다 말이오. 나는 완전한 의인이라는 이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엉뚱한 소리 '사람 쳐 놓고는 의인이라' 이거 엉뚱도 않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해 놨다 그 말이오.

'이는 완전한 의인이라' 완전한 의인이라 말은 제 자랑입니까 하나님 자랑입니까? 제 자랑입니까 하나님 자랑입니까? 하나님의 자랑이오 그것이 하나님의 대속을 송축하는 것이라.

이제, 자기가 하나님의 의로써 완전한 의인된 자기인 것을 깨닫고 의인된 나는 지극히 큰 두 가지, 진리와 성령의 두 가지 능력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내가 이 새사람으로 살 때에는 지극히 큰 두 가지 능력으로 살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이 두 가지 능력으로 자기가 사는 것인 것을 알고 이 능력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하라는 거는 할라고 달라들어서 이 믿음을 가지고 할 때에는 이 능력이 역사하기 때문에 못 할 게 없다 말이요, 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뭐라 했습니까?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요거 더 맛이 있는데 개역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 말은 그 말이지만 이제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는 그 말이 더 꼬숩고 맛있고 그렇다 말이오. 그거 구역이라. 이거 자꾸 지금 번역도 자꾸 변해 나가 가지고 뭐이냐 하면 믿음 떨어뜨리기 위해서 자꾸 하는 이거 번역이 된다 말이오.

이번에는 OOO하고 합동 번역이 됐기 때문에 이거는 뭐 엉터리 성경으로 번역을 해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해 놓으니까 못 한다는 것도 있고 한다는 것도 있'는데 그러면 '모든 것 할 수 있느니라' 하니까 '못 할 게 없다' 하는 그 말이 없다 말이오. 반쪼가리 말이라 말이오. 그 번역이 반쪼가리 번역이라.

그러니까 반쪼가리 번역이라. 이러니까 그전에는 온 쪼가리 번역이었는데 반쪼가리 번역을 해 놨어.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면 뭐이 능치 못할 게 없는가? 무슨 능력 가지 고?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 가지고 못 할 것 없다.

그러면 이 신구약 성경은 성령과 진리 가지고 했기 때문에 이 말씀은 다 행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런데, 뭐입니까? 믿으면 능력이, 믿음으로 하면 그 능력이 역사 하고 믿지 안하면 부인했기 때문에 그 능력을 부인하니까 역사할 수가 없어. '믿는 대로 되리라. 믿는 대로 되리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믿고 물 위로 떠뻑떠뻑 걸어갔는데 이제 풍랑보고 두려운 것이, 무서워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벌써 전능을 믿지 않는 것이라 말이오. 무서워하는 것이 안 믿는 증거라 말이오. 이런데 안 믿는. '무서워' 하는 그 말했는데 안 믿는 증거라고 말할 수 없지만 주님이 딱 고게다 해석을 해놓기를 '믿음이 적은 자야' 그러면 처음에는 믿었지만 안 믿었다 그 말이오. '왜 의심하느냐?' 완전히 믿음을 버렸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물에 빠지지 안했습니까? 내나 그 사람이 그 행동, 그 노력, 그 힘, 그 방편, 처음에 물 위에 걸어가던 그 방편도 꼭 같은 방편이요, 애도 꼭 같이 쓰는 것이요, 또 발자국도 꼭 같이 떼 놓는 것이요, 걸어가는 것이요, 주님 앞에 갈라 하는 거요 목적도 같고 전부 다 같습니다.

다 같은데, 꼭 같은 데 왜 물 위로 걸어가다가 물에 빠졌습니까? 꼭 같은데 뭐이 하나 틀려 가지고 그렇습니까? 뭐이 하나 틀려 가지고 그렇소? 네, 믿는 게 끊어졌다 말이오. 믿는 게 똑 끊어지니까 물에 폭 빠졌다 그 말이오. 요거 알아야 돼요. 믿는 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안 믿으면 헛일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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