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부음 - 양심

 

1986. 7. 24. 새벽(목)

 

본문:요한1서 2장 27절∼29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사람들은 금을 캘라면 많은 광석을 파 내고 거게서 금을 캐 내고 또 많은 광석을 파 내고 난 다음에도 금은 돌과 함께 섞여 있기 때문에 돌을 다 도정해서 제해 버리고 금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어떻게 욕심이나 모든 것이 고속 그런 시대기 때문에 뭐 당장 뭣을 찾을라고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물질도 그저 여러 달 할 일을 당장에 해 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과학이 발달돼 가지고 있으니까 예수 믿는 것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학이 발달되어 과학자일수록 예수님 믿는 일은 못 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일은 그와 정반대가 되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거게 대해서 몰랐어. 어제 여기 식자실에 가니까 똑 뭐 요만한 거 필림 같은 조그만한 거 요런 거 세 개인데, 세 개 얄팍하게 아주 종이 두꺼운 종이 요만한 거 세 장 같은데 그 안에다가 설교록 한 권이 다 들어 가지고 있다 이래서 그거 나는 지금 뭐 저거 말은 믿지마는 그 어째 들어 가지고 있노 그걸 지금 아직까지 그 이치를 못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거와같이 이 설교록을 봐서 그만 저거가 생각하는 거 무엇인가 그런 것 하나만 딱 들어 내서 그것만 좀 알면 싶어 하는데 그것만 말하면 아느냐 하면 또 모릅니다. 이러니까 상품으로 이 도를 팔 사람은 그런 정신을 가지고 설교록을 보니까 자꾸 읽어 보면 필요한 말은 말이지마는서도 자기가 생각하는 그게 안 나오니까 그 하나 진리를 깨달을라면은 그래도 몇십 페이지 읽어야 그게 나오는데 다른 데는 몇백 권을 읽어도 그게 안 나오는데 몇십 페이지 읽는 것이 뭐이 거석하겠습니까? 사람은 그래도 그만 그것만 딱 들어 내면, 그것만 내놓으면 또 모릅니다. 모르는데 그걸 원하는 시대기 때문에 이래 섞어서 이래 놓으면 저거가 이런 것은 암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되기 때문에 그걸 편집할 때에 연결시켜서 좀 해 놓으면 자기네들이 알아서 깨닫기가 쉽겠습니다.

27절에 보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사람에게 배우고 또 배운 대로 이는 정확 무오하고 틀림이 없다 하는 이 사실을 자기가 믿으라 이랬습니다. 정확 무오한 이 사실을 인정하라 확신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배우고, 배우라 말은, 모든 선배들이 깨달은 교리와 신조를 무시하지 말고 교리와 신조를 자기가 성경을 연구하는 데에 참고로 삼으라 그말입니다. 이것은 성경은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사람이 가르칠 필요도 없고 또 사람이 가르쳐 줄 그런 실력도 없고 한 것은 뭘 가리켜 말하느냐 하면은 네가 그 현실에 어떻게 행해야 되느냐, 어떻게 행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은 사람이 가르칠 수도 없고 또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받아야 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네 현실에서 행할 모든 것을 너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이 바로 가르치나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주 안에 살라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성경은 배우지마는서도 자기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거는 사람이 가르칠 수도 없고 또 자기는 사람에게 배운다 해 봐야 그거는 다 헛된 것이기 때문에 배우지 말고 현실에서 어떻게 되느냐 하는 그것은 기름 부음에게만 배워라. 기름 부음만 너희를 바로 가르치고 있고 참되게 옳게 가르치고 있지 기름 부음 외에 인간으로서는 그거는 가르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현실에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하는 그것은 기름 부음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지 기름 부음 외에는 너희에게 가르쳐 줄 자가 없다. 아무리 신령한 목사님이라도 가르쳐 줄 수 없고 장로님도 권찰님도 가르쳐 줄 수 없다. 다만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게 가르쳐 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은 배울 수 있습니다. 지금 이래 말하는 건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성경을 지금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 그 현실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그것을 가르치는 건 아닙니다. 이 성경을 가르칩니다.

성경을 가르치면 여러분들이 성경을 배워서 자기 신앙 지식으로 삼고 현실에서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기를 기다리고 기름 부음에게 가르쳐 주심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름 부음은 뭣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기름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기름은 성령을 말하는데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은 하나인데 이 셋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 셋이 우리에게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는데 그러면 가르쳐 줌을 받을 때에는 무엇으로 받을 수가 있느냐? 받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신앙 양심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받지를 못합니다.

비유컨대, 무엇을 주면서 손으로 받으라 이라는데 다 손이 있는 사람은 다 이래 받을 수 있는데 손이 없는 사람, 손이 그만 탐박 끊어진 사람은 받을래야 받을 수 없습니다. 손으로 다 받으라 이라는데 손으로 받으라 할 때에 손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걸 뭐 다리로 받겠소 뭘로 받겠소? 못 받는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양심은 하나님의 것을 받는 손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것이 양심이요 하나님의 것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양심이요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고 또 받지도 못합니다.

그러기에, 양심을 죽여 놓은 사람은 그 사람은 예수를 암만 믿어도 구원의 실상은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는 살지는 못합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대로 대충 산다고 하지마는서도 그것은 다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신 그 외의 거는 전부 마귀가 유혹시켜 가지고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상 신앙 생활은 하나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계명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이 십계명은 양심을 기르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십계명대로 하면은 양심이 자랍니다. 십계명을 어길 때마다 양심이 절단이 나 버립니다.

양심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하면 옳게 바르게 할 수 있나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양심입니다. 그러면 양심을 잘 기르는 것은 양심이 하나님의 뜻대로 할라면 요렇게 해야 된다 할 때에 양심이 시키는 대로 자꾸 하면 양심의 권위가 올라갑니다. 또 양심을 자꾸 귀중히 여겨서 양심에게 가르침을 받을라고 애를 쓰면 양심의 권위가 올라갑니다.

그만 양심의 인도를 받을라고 애를 쓰고 ‘양심이 어데 있나?’ 양심의 인도를 받을라고 지금 애를 쓰면 양심의 세력이 자꾸 올라 가지마는서도 이 도둑놈, 욕심 말이요, 미혹의 욕심, 돈 욕심, 지위 욕심, 행락 욕심, 어짜든지 편할 욕심, 어짜든지 저 좋구로 하는 욕심, 이 욕심의 이름을 가리켜서 미혹이라, 꾀우는 욕심이라 했습니다, 미혹의 욕심.

욕심도 육체의 소욕이 있는데 육체의 욕심은 마귀가 우리를 꾀워서 가지게 하는 욕심이요, 성령의 소욕은 성령이 우리를 감동시켜서 가지게 하는 욕심인 것입니다.

이런데, 그 사람은 양심은 짓밟아 버리고 마귀가 주는 욕심, 돈 욕심, 권세 욕심, 밤이나 낮이나 자기 좋게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할라는 그 욕심, 그러면 뭐 아주 예수 잘 믿는 척 해도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기 때문에 자기 위신이나 자기 그뭐 자존심이나 그걸 좀 꺾어 버립니다. 네 자존심은 지금 요렇게 요렇게 하니까 틀리지 안했느냐? 요거 고치라 하면은 그만 자기 자존심에 걸리고 모욕받았다 싶어서 팍 올라가 버립니다.

그런 건 예수 암만 믿어야 헛일입니다. 자기를 죽이기 전에는 절대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늘과 땅의 것을 상속받는 것인데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여기는 뭐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이렇게 적용을 시키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찬동을 안 합니다. 그러기에 이 성경 말씀대로 요렇게 변명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요랬기 때문에 요렇게 한다 할 수 있지마는서도 성령이 감동시켜 주지 않는다 말이오. 옳다 그렇게 인정해 주지 안하고 동의해 주지 안해요. 동의해 주지 안하면 그게 큰 권세도 있고 지위도 있고 모든 문제 해결이 대번에 한 마디로 될 수 있어도 자기 양심에 가책이 되기 때문에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릴 때는 이 십계명 위주로 살지마는서도 그것은 그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십계명 위주로 살지마는서도 십계명 위주로 산다고 해 가지고서 그것이 의가 되는 것 아닙니다.

십계명 위주로 사는 그것이 양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양심을 길러 가지고서 현실에 양심이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하는 그대로의 하는 그것이라야 비로소 옳고 바르고 참되기 때문에 그것이 의가 되고 그것이 하나님과 연결돼서 생명이 되고 그것이 전지 전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금생 내세, 또 영육, 자기와 모든 이웃, 만물에게 유익된 것은 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데, 저는 털끝만한 것도 만들지 못하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데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주실 때 뭘로 주시느냐? 주실 때에 기름 부음이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하는 거 가지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면 뭘로 가르쳐 주느냐? 신구약 성경 범위 내에서 가르쳐 주지 신구약 성경 외에 거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 신구약 성경을 다 해 놨는데 그 범위 내에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시는 그것을 내가 깨닫는 데는 신구약 성경을 알면 그 범위 내에서 문제가 나오고 그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지도가 나오기 때문에 알아 둘 상식으로 알아 둘 필요가 있는 것이지 성경 안다고 그대로 한 절 한 절 또박또박 한다고 되는 것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만 그것을 하실 수 있는데 하나님에게만 받는데 하나님에게 받을 때에 내가 언제 받느냐? 현재라는 그 시간에 받습니다, 현재라는 그 시간에.

그러기 때문에 뭐 천 시간 만 시간 있어도 내게는 그 현재라는 그 시간만이 중요합니다. 그 외에는 내게 상관 없어. 그 외에는 나와 상관이 없어. 현재라는 그 시간만 중요합니다.

과거를 생각하는 것도 현재라는 그 시간에 생각하는 그것이 필요하지, 미래 대해서도 그렇고 시간에서는 그만 현재라는 그 시간만 내게 필요합니다. 그 외에 거는 필요가 없는 것이오.

또, 모든 만물도 내게는 다 필요한 것 아닙니다. 현재에 내게 관련되어 있는 그 현실을 조성하고 있는 만물, 현실을 조성하고 있는 그 만물 그것만이 내게 필요합니다.

또, 뭐이 필요한고 하니,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이 많지마는서도 현재인 그 현실에서 ‘요렇게 하라’ 하는 기름 부음이 가르친 그것만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 기름 부음을 받는 데에는 내 온갖 이성 지식 감각 오만 것들이 다 있습니다.

이성도 있고 감각도 있고 정서도 있고 뭐 오만 것이 다 마음의 요소가 뭐 수많은 요소가 있지마는서도 내게 제일 필요한 것은 양심입니다. 양심이라야 그걸 받는다 그말이오.

양심이 일단 받아 가지고, 받아 가지고 그 다음에 양심이 내 이성에게 혹은 내 욕심에게 모든 것에게 양심이 이제 지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지도를 양심이 받아 가지고 양심이 이제 내 마음에게 지도를 합니다. 마음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때에 양심이 지도하는 대로 순종하면 양심의 권위가 커지고 순종 안 하면 양심의 권위가 점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대통령 권위가 올라가는 거는 대통령이 말하는 대로 온 국민이 순종하면 대통령 권위가 올라가고 대통령이 말하는데 온 국민이 맞아 죽어도 순종 안 하면 대통령 권위는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꼭 같소.

우리 심신의 요소에는, 우리 내라는, 내라는 자의 요소 중에는 제일 귀중한 게 뭐인가 하니 영입니다. 영이 주격입니다. 주격이요 또 소유격인 내 심신에는 뭐이 귀중하냐? 내 심신에 제일 귀중한 것은 양심입니다. 제일 귀중한 것은 양심이오.

제일 실력 있고 제일 유식하고 제일 깨끗하고 제일 민첩한 것은 양심입니다.

양심이 제일 귀중합니다.

왜? 양심이 왜 귀중하냐? 양심이 도적질하는 데에는 방해를 합니다. 양심이 무슨 나쁜 일 하는 데는 방해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나쁜 일을 할라 할 때에는 온 모든 지체가 떨립니다. 거짓말 해야 될, 거짓말 할라 하면은 온 지체가 떨고, 온 몸이 떨리고 피부가 떨리고 자기 얼굴이 새파래져. 도둑놈은 안 그래. 도둑질 할라 하면 막 기분이 좋아서 얼굴이 번들번들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이 불의와 악을 행할 때에는 양심이 방해가 됩니다. 왜? 이거는 옳은 데 속해 있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가지는 데에는 양심이 제일 대가리입니다. 양심만 장성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지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이 없는 자는 예수를 믿으나 죽은 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자기 양심부터 길러야 됩니다. 양심을 길러서 양심이 장성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고 또 세밀히 들을 수 있고 양심이 어린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는 들으나 윤곽적으로만 듣지 그 세밀한 것은 듣지를 못합니다. 또 양심이 약한 자는 하나님의 그 음성이나 하나님의 지도를 받되 그저 초보나 받지 그 세밀한 그 전체를 받지 못하고 윤곽이나 받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성이 둔해지면, 이성이 없으면 그 사람 미친 사람 아닙니까? 이성이 없으면 미친 사람입니다. 또 눈이 없으면 보지 못합니다. 그런 것보다도 이 양심이 제일 중요합니다. 눈이 어두워도 상관없고 자기 이성이 둔해도 상관없고 양심만 강건하다면, 양심이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하는 그 연결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그 연결이 내 마음에 건너왔기 때문에 그 연결이 내 마음에 와 가지고서 일할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일할 수가 있으니까 이성이 둔한 사람이 이성에 명철한 사람을 다 압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의지가 약한 사람이 그 의지가 천하에 의지 강한 사람보다도 양심으로 말미암아 이 기름 부음의 능력이 건너왔으면 그 사람의 의지가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으로 말하면 현재가 제일 귀중하고, 현재 조심 안 하면 헛일이오. 내일 할란다 모레 할란다, 뭐 과거에 한 거 암만 후회해도 소용 없고, 암만 후회해도 소용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암만 결심해도 소용 없고 당장 이 현재를 내가 해야 됩니다. 현재 안 하는 건 아무 소용 없소.

현재밖에는 자기 시간이 없습니다. 왜? 이 시간 현재 내가 살아 있지마는서도 예배당에 나가다가 저게서 꺼꾸러져 가지고 직살할지 압니까?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 앉았다가 넘어져 가지고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야 되지 층층대 저 가다가도 뭐 아주 그만 모가지가 뿔라지고 다리가 뿔라지고 다 뿔라지고 그만 즉사할 수도 있어. 이렇기 때문에 우리 생명은 몰라. ‘너희 생명은 무엇이뇨’ `너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음 시간은 내 시간이라고 인정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현재에 내가 주님의 음성과 주님의 지도를 받아서 그대로 하면은 그거는 전지 전능의 행위라. 만능의 행위라. 아무도 침노하지를 못해.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잘난 사람, 성령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나 무엇이 있으면 일이나 물건이나 좋은 거 있으면 사람한테 비리 붙을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붙을라고 하지 안하요.

그때, 지금은 옷이 많고, 지금 우리 나라 참 부자 됐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는 그 양복이 없습니다. 보면 뭐 구제품이 왔는데 그 사람들 어째 양복이나 한벌 왔으면 그 양복이 나왔으면 그 구제품이 이렇게 큰 뭉텅이가 한 뭉텅이 왔는데 그 속에 뭐 그걸 뒤벼볼라 하면 그래도 몇 시간 뒤벼야 될 터인데 그거 왔다 하면은 그만 쫙 압니다. 그 좋은 양복이 몇벌 들었다. 무슨 양복 무슨 양복을 환하게 막 알고 뭐 그만 그게 신학교 소문이 확 도요. ‘거게 양복이 몇 벌이 들었는데’ 막 그래 가지고 모두 눈이 휘뜩휘뜩해 가지고 이 신학생들이 양복 그놈을 좀 내가 가졌으면 좋겠다 싶어서 야단을 지깁니다. 뭐 그라면 뭐 그만 공부 못 하요.

지금 말하면 거짓말 같지요? 그때는 양복이 없었어. 아주 해방 직후에는 모두 양복이라고 있다 해도 뭐 명베나 그런 것 여름에는 삼베로 만들어 입고 또 얄궂은 거 그래 가지고 있고 그 양복 참 없어요.

제가 술도가 할 때에, 그때 그거는 불란서제 원단인데 그걸로 양복을 해 가지고 입고 거창읍에 가니까 모든 사람이 다 구경을 하고 보고 이래. 그 모두 다 뭐 쓰지 못할 뭐, 그때는 아직 발달이 안 돼 국산 이거 가지고 했는데 불란서제를 입고 가니까 저거 어데 옷이고 참 보기 좋다, 옷해 입은 거. 모두 뭐 그렇게 모두 침이 말라 그래 쌓아요. 그래서 지금은 그거 내 버려 버렸습니다.

그랬는데, 그때는 그렇게 그래.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보니까 아예 거게 대해서 그라니까 그 양복에 탐을 내지 안하고서 그 구제품은 하나도, 하나도, 우리 교회는 하나도 안 가져 갈랍니다. 하나도 안 가져 갈라 해. 암만 줄라 해도 안 가져 갈라 해.

안 가져 갈라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 사람은 속으로 말이지, 기도하기를 ‘아버지, 나는 무슨 서자입니까? 나는 뭐 거짓부리 아들입니까? 누구는 왜 당신이 줘서 먹이고 입히는데 우리는 꼭 미국 사람을 통해서 입어야 되고 먹어야 됩니까? 나 그따위 짓 안 합니다. 줄라면 주시고 안 주면 말고 내가 벗고 살지 뭐 못 먹고 살아도 살지 그런 거 안 합니다. 당신이 주시면 하고 그러면 안 주면 안 할랍니다. 안 줄 이유를 말하십시오.’ 그래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분해서 이렇게 따지면서 기도하지 그거 그렇게 달라 소리 안 해.

이러니까, 모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기의 어려운 일 있어도 하나님이신 주님, 자기에게 소원이 있어도 주님, 그뭐 인간 붙들고 해결할라고 칙칙하게 하지 않습니다. 뭣이 없는데 뭐 많은 사람, 권세 많은 사람이면 권세 많은 사람에게 붙어 가지고서 그 권세를 뭐 얻어야 되겠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또, 무슨 돈 많은 사람 있으니까 사업 많으니까 거게 붙으면 돈 좀 많이 벌겠다 싶어서 사람에게 붙어 말하지 않습니다. 의논도 사람에게 붙어 하지 않습니다.

간구도 사람에게 하지 않습니다. 부러워하기도 사람에게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부러워하는 게 있으면 하나님에게 해, 직접. 하나님 외에는 상대하지 안해. 이것이 뭐이냐 하면은 신부라 그말이요, 신부.

신부라 말은 그걸, 이 신부라 하면 그만 육덩이 이 음란한 더러운 남녀 이것만 알기 때문에 이거 우리를, 교회를 하나님의 신부라 했는데 신부라는 이 해석을 해 주지를 못해, 다른 데는 하지를 못해요. 이 서부교회는 많이 했어. 그래 내가 또 그걸 뭐라 하든지 해 줬으니까, 교회는 신부라 이걸 말을 하기는 하는데 신부라 말은 하나님의 배우자라 말이요, 하나님의 짝이라 말이요, 말하면. 하나님의 짝.

하나님의 짝이라 말은, 하나님만 상대해서 산다 그말이요, 하나님만 상대해서.

이러니까 급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만 상대, 좋은 일에도, 무엇이 크게 좋은 일 있습니다. 아이구 이렇게 좋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아도 하나님에게 하나님만 상대해서 감사하고 어려워도 하나님에게만 간구하고 또 없어도 하나님에게만 달라 하고 하나님만이 상대해서 이렇게 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간으로 제일 필요한 것은 현재, 또 우리에게 모든 만물로 필요한 것은 현실에 관련돼 있는 모든 구비되어 있는 그 만물들, 그 외에 거는 필요가 없어요.

또 신구약 성경 말씀이 그렇게 많은 절수가 있지마는서도 내게는 그 현실에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는 그거, 그거.

또, 내 몸뚱이에, 내 심신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천도 만도 넘는 우리 심신의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 고기덩어리도 천이 아니라 억만도 넘습니다. 우리의 두뇌에도 요새 모두 다 뭐 과학자가 발견했는가 심리학자가 발견했는가 천억, 하도 들어 인제, 천억이라는 컴퓨터가 여게 안에 들어 가지고 있대요. 그게 들어 있어도, 그거 들어 있어도 다 필요 없어. 제일 요긴한 게 뭐이냐? 이 심신에 제일 요긴한 것이 뭐입니까? 심신에 제일 요긴한 게 뭐이요? 양심! 요게 제일 요긴해.

그거 왜? 양심을 짓밟는 자는 교만한 자가 돼, 자기를 모르는 자가 돼. 자기를 아는데, 자기 근원도 알고 다 아는데 뭐인지 아는데 모르는 척하고, 어떤 거는 또 뭐 부끄러운 거는 없고 다 펴놓고 이래 가지고서 이거는 아예 나는 창기다 하고 돌아다니는 거 있어, 예를 들면은.

그런 거 모양으로 아주 그렇게 그 양심이 마비가 돼서 부끄러울 줄도 모르고 무슨 말 들어야, 무슨 말 들으면 좀 부끄러운 말 들으면 그래도 좀 안색이 달라지고 좀 얼굴이 붉어지고 이런 건데 뭐 이러나 저러나 철면피라서 감각 없는 그런 인간은 아무 소용 없어. 그런 인간은 그거 삼가야 됩니다. 삼가 조심하고 다만 그것에게 할 것은 살려 줄 것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로 살려 줄 거나 바라지 딴거는 서로 손 잡고 일할 거나 그런 것은 바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걸 알면 사람을 접촉할 때 사람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그러니까 죽었으니까 살리기 위해서 접하는 것이지 그에게 무슨 필요가 있다고 접하는 건 하나도 없어.

그런고로, 우리가 양심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기름 부음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하면 우리가 됩니다.

그래 오늘 아침에는 이거 또 시간 다 갔는데, 자 시간으로 말하면, 시간으로 말하면, 만일 자기가 백 년 산다 할지라도 시간으로 말하면 자기에게는 뭣만 필요합니까? 현재만 필요하지. 현재 외에 거는 내것이 아니라. 다음 시간을 내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헛일이라. 또 지나간 시간은 내게는 소용 없어, 암만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어. 현재만이 내 시간입니다. 시간으로서는 현재.

또, 모든 창조의 천상 천하 모든 만물로서는 무엇이 내게 필요합니까? 내 현실에 관련된 그것만 필요합니다, 그것만.

또, 성경 지식으로서는 내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는 그것만 필요합니다. 알겠습니까?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준 그것만 필요하요.

내 심신의 마음과 고기덩어리에 요소가 수없이 있는데 심신의 요소 중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양심이 필요합니다. 인제 양심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이성도 필요하고 감각도 필요하고 기억성도 필요하고 총명도 필요하고 모든 게 다 필요합니다. 양심 다음에, 양심이 산 걸 가지고 와서 나눠 줄 때에 그것들이 받아 가지고서 요리하고 공사 시공을 하고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지 양심이 없으면 눈이 멀었기 때문에 소용 없어.

‘눈이 밝으면 온 몸이 다 환하고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두운 것처럼 너희에게 있는 빛이 어두워지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크겠느냐’ 그 빛은 뭘 가리킨 것입니까? 양심을 가리켰어.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요것을 깨닫고, 아무리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라고 해도 우리는 이 받을 수 있는 그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되지 준비가 되어 있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 준비는 뭐이냐? 양심입니다, 양심.

그러면 양심을 지켜서 양심대로 해야 된다 이렇지마는서도 양심을 지켜서 양심대로 말하는 것이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양심을 지켜서 양심대로 행동하고 양심대로 하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양심대로 하면 됩니까? 양심대로 하면은, 양심대로 하면은 됩니까? 양심대로 하면은 옳습니까 바릅니까? 어찌 돼요, 양심대로 행하면? 양심대로 행하면 의가 됩니까 안 됩니까? 양심대로 행하면 의가 됩니까 안 됩니까? 불교인의 양심은, 불교인의 양심은 불교대로 행합니다.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대로 해도 안 되고 양심은 무슨 역할하느냐? 양심은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시는 그것을 받는 역할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받아 가지고서 모든 이성과 마음에게 지도합니다. 마음을 지도합니다. 마음을 지도하면은 마음이 양심의 지도를 받고, 또 지도를 받고 난 다음에는 지도받은 마음들이 몸에 지도하면은 몸이 지도를 받고 이래 가지고 또 그 몸이 그라면 모든 사물에게 대해서 그대로 취급을 할 때에 취급이 바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양심이 필요한 것은 양심 단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양심이 필요한 것은 어데 필요하냐? 양심이 필요한 것은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심을 받는 데에 필요하고, 받은 그것을 마음의 모든 요소들에게 이렇게 배급해 주니까, 나눠 주니까 모든 마음의 모든 요소들에게 나누어 주는 데에 필요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모든 요소와 하나님과 그 사이에 중보자가 누구냐? 양심입니다, 양심. 그런데 여게 기름 부음이라 했는데 기름은 뭐입니까? 기름은 뭐입니까? 기름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기름은 세 가지, 기름은 세 가지.

또 기름 부음이 가르친다.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친다, 기름 부음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네 가지. 녜, 네 가지. 기름 부음은 네 가지.

기름은 세 가지. 피, 성령, 진리 요 세 가지를 표시해서 기름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셋은 하나라 했습니다, 이 기름. 하나라 했기 때문에 이 기름이라 할 때 요 셋을 말합니다.

또,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뭐이냐 하면은 네 가지라 하는 것은 피, 성령, 진리, 거게 하나가 더 들어가야 되는데 하나 더 들어가는 것은 뭐입니까? 중생된 영입니다, 중생된 영.

이래서, 로마인서 8장 몇절이고? 거게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에게 증거해 준다’ 했는데, 그 몇절 19절? 16절. 녜, 16절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해 준다’ 그러면 자녀된 걸 증거해 주는데, 자녀되는 것을 증거해 주니까 증거를 받는 자는 누구입니까? 증거를 받는 자는 누굽니까? 증거를 받는 자는 누구지요? 심신.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증거를 받습니다. 마음이 받고 마음이 몸에다 받아 줘서 증거를 받습니다.

받을 때는 심신이 순서적으로는 논리 순서는 마음이 받고 그 다음에 몸이 받지마는서도 그 실상은 동시에 받는 것으로서 이 마음과 함께 받는 것도 있고 또 순서적으로 받는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논리 순서는 마음이 먼저 받고 몸이 다음에 받는다고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 넷이 우리에게 증거해 줍니다.

이러니까 자, 대속의 피, 성령, 진리, 중생된 영, 중생된 영은 누굽니까? 남입니까 내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자기입니까? 자기입니다. 자기 속에 주인공이오.

중생된 영. 이 넷이, 이 넷이 우리 마음에게 가르쳐 줍니다. 기름 부음이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준다.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준다는 이 기름 부음은 몇 가지라요? 손가락으로, 기름 부음이 몇 가지? 녜, 네 가지. 그러면 누가 가르칩니까? 내가 내게 가르칩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내 마음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마음에게 가르치고 있어.

이러니까, 내 마음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그 심신에 가르치고 있는데 가르치고 있는 것을 제일 먼저 마음에서 제일 먼저 받는 자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양심.

양심은 영에 속했습니까 육에 속했습니까? 요걸 구별해요. 요게 지금 세계의 조직신학에 구별이 잘 안 돼 가지고 있어요. 구별 안 해요 깜깜해 어두워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기 배웠다고 해 가지고 나가서 그렇게 그 말하면 되는가 막 거게서 대학자들이 마구 변명을 해 가지고 이와같이 해 가지고서 다 압도해서 절단을 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능가할 만한 그 모든 지식의 배경이 없으면 안 돼. 그 전체를 다 아는 것은 그 사람들이 말할 때에 그 미혹받지 안하고 요렇다 조렇다 말하면 돼.

어제 저 미국에서, 유학 간 신학 연구하러 간 사람들이 전화를 했어. 그래 내가 부탁하기를 너희들이 뭐인가 모르는 거, 모르는 것과 또 의문이 되는 거 또 여기서 배운 데와 반대가 되는 거 그런 거는 다 낱낱이 다 똑똑히 기록을 해 가지고서 오라. 그것을 다 낱낱이 똑똑히 배우지 안하면 너희들이 이 모든 승리의 길을 걷지 못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말해서 다 똑똑히 기억하고 오라 했어요.

저는 공부 안 했어요.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서 알았어요. 이러기 때문에 모든 학자들이 다, 이번에 공과를 했는데 그 공과를 쓰지 안했어요. 그 공과는 모든 세계 유력한 주석을 보고서 내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는 그것을 해석한 것과 모든 주석들이 해석한 거와 다르기 때문에 내가 한 것에 반대되는 그런 해석을 낼 때에는 당당히 수많은 주석을 다 찾아보고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래 했는데 그게 틀려서 내가 가르치지를 안했습니다. 요다음에 팔월 집회 때 내가 시간 있으면 그것을 말해 줄란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줘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성경 해석도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줘야 돼요. 이래 성령이 가르쳐 주지 안 하는데,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에 이제, 내가 성경을 읽을 때에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시고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시고 기억하게 하시고 요대로 실행 실천하게 하도록 해 주옵소서 그렇게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간구를 가지고서 지금 성경을 읽어야 되지 이것을 하나의 그냥 이 세상 책과같이 그렇게 읽을 때에는 안 돼요. 그래 읽다가도 얼른 깨달았으면 다시 기도하고 새로 읽기를 시작하십시오.

여기 간단하지만 여기 가르칠 게 얼마나 많은데, 오늘 아침에 간단하게 요령만 들어 말할라 했지마는서도 또 이걸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들, 28절에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요 절수를 여러분들이 연구를 하고 가서 주석을 찾아 가지고서 보십시오, 뭐라고 돼 가지고 있는고? 나는 주석을 보지 안했어요, 주석을 보지 안했는데 요 해석이 만일 바로 돼 가지고 있다면은 그 주석은 굉장히 그 주석한 사람은 아주 신앙이 깊고 높은 사람입니다. 가서 좀 참고를 해 보십시오.

요걸 지금 계속해서 가르치겠는데, 새벽으로는 가르치고 공과는 수요일날 말한 그것을 공과를 할라 하는데 그 공과는 금요일밤에나 하고 요게 끝나기 전에는 요 새벽으로는 요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는 여러분들이 전도를 해서 죽은 자를 살려서 많이 깨어 나왔습니다, 많이 깨어서 나왔어요. 오늘 아침에는 한 사오십 명 더 나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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