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0 02:39:59)
선지자선교회
■ 사도신경에서 문제되는 표현들에 관하여
<서문>
우리 한국교회는 교회사에서 나타난 여러 신조 중에서 사도신경을 특별히 권위를 두고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신경이 사도들이 정한 신조로 말하기도하고 또 아니라고도 말들을 합니다. 그러한 논제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을 해본다면 사도들이 제정한 신조는 아닌 것 같고 다만 초대교회에서 가진 신조가 중세교회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내용의 사도신경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초대교회는 성경적이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초대교회의 성경적에서 점차 인본적으로 변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교계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에서 인본적으로 표현된 부분을 몇 군데 찾아서 성경적으로 검토해보려고 합니다.
<본문>
1. 외아들/ 독생자
1) 외아들
잠언 4:3에는 유약성을 나타낼 때 ‘외아들’이라 하셨습니다. 이래서 눅9:38에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외아들로 표현한 것은 문제가 있다하겠습니다.
▪(잠4:3)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눅9:38)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질러 가로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2) 독생자
히11:17에 약속을 받은 자를 ‘독생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이 약속을 받은 자로되 번제로 드린 것처럼, 주님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지만 십자가 대속의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래서 요일4:9에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즉 십자가 대속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외아들 대신에 독생자로 표현하는 것이 성경적이라 여깁니다.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2. 거룩한 공회/ 거룩한 교회
1) 공회
구약에서는 겔13:9에 ‘백성의 공회’라 하였고, 욜2:16에는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마522에 ‘공회에 잡히게 되고’ 하셨고, 마26:59에는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행22:30에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하셨습니다.
구약 백성의 공회가 신약에 와서는 유대인들의 공회가 되었습니다. 이래서 공회는 유대인들이 송사하는 공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공회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겔13:9)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욜2:16)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26: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마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2) 교회
고전1:2에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하셨습니다. 또 교회의 장로들의 모임이 ‘장로의 회’였습니다. 딤전 4:14에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하셨습니다. 그 장로를 약5:14에 ‘교회의 장로들’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27:1에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하고’ 하셨으니, 백성의 장로들은 곧 유대인들의 장로로써 공회의 장로들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공회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거룩한 교회로 표현하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겠나 하고 그 안을 제시해 봅니다. 그리고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해서는 ‘장로의 회’와 관련을 시켜봅니다. 연구 검토할 부분으로 여깁니다.
▪(고전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딤전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약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마27: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3. 저리로서/ 구름을 타고
1) 저리로서
성경에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2) 구름을 타고
막13:26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하셨고, 막14:62에는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하셨습니다. 이래서 구름을 타고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로 표현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막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막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4. 음부에 내려가시고/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1) 음부에 내려가시고
한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에서는 ‘음부에 내려가시고’ 하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세계 교회가 사용을 많이 하고 있으니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인본적 학자들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 많이 어두워져서 그 틈을 타고 이렇게 주장을 하지만 이 주장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에 없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음부에 내려가시고’ 하는 내용이 왜? 비성경적인지 성경을 근거하여 살펴보겠습니다.
2)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12:39-40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하셨으니,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으나 죽지 않고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음부에 내려가시고’는 벌써 성경에 맞지 않는 말인 것이 확인 됩니다. 그러함은 성경에는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음부에 내려가신 것이 아니라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셨습니다.
행2:29-32에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셨으니, 그러므로 ‘음부에 내려가시고’는 성경에 맞지 않는 말인 것이 확인됩니다. 그러함은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눅23:43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결문>
현재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은 본래 초대교회에서 가진 내용보다 변경이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도신경을 대할 때 사도신경 자체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면 안 되고, 다만 사도신경의 성경적 교리에 대해서 그 신조를 가지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