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981. 2. 25. 밤 (수)

 

본문:누가복음 18장 1절∼8절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니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초두의 말씀대로 이 비유의 중점은 낙망하지 말 것과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가르쳤는데,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낙망이냐, 소망이냐’ 하는 그때에 기도하면서 낙망을 버리고  소망하는 것이 참 기도요 소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낙망으로 기도할 수 없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그것이 바른 기도요, 또 기도할  때 기도의 응답이 오지 않고 낙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형편과 사정에 도달했을  때 기도하는 그 기도가 참 기도라 말입니다.

자기의 기도하는 것이 자기 힘이나 누구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고 또 ‘하나님도  이런 기도를 들어 주실까?’ 할 만큼, 어디를 봐도 낙망만 되고 소망할 것은  하나도 없는 가운데서 낙망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하는 기도가 참  기도입니다.

만일 이런 기도가 아니면 그 사람이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셔도 좋고 안  들어주셔도 낭패될 것 없는, 마음에 별로 절망될 것 없는 그런 기도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 그 자체를 볼 때 도무지 희망은 만에 하나도 없고, 자기나 다른  사람을 봐도 그렇고, 하나님을 생각해 봐도 하나님이 해주실 수 있겠느냐 할  수밖에 없는 이것이 묘합니다. 전혀 희망성이 없는 이것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왜? 만에 하나도 희망성이 없다고 자기에게 느껴지는 것은 연결 줄이 실낱만큼도  붙은 데가 없다는 증거요, 아무데도 연결이 없고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도록  완전히 그것은 공중에 뚝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붙들고 그  일을 착수하십니다.

왜? 하나님에게 구해도, 백의 일이라도 낙망이 덜 되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의  연결 줄이 있고 희망성이 있고 소속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럴 때  기도한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게 되면, 세상에는 불한당이 가득합니다.

불한당이라 말은 아닐 불(不)자, 땀 한(汗)자, 무리 당(黨)자인데, 다른 사람이  수고해 놓으면 아무 수고한 것도 없는 것이 얼른 와서 제가 수고했다고 하는  그게 불한당이요, 이 불한당을 가리켜서 성경에 마귀라고 말해놨습니다.

마귀는 불한당입니다. 얼토당토않은데, 추호의 관련도 없는 것을 제가 했다고 척  나서서 ‘이건 내가 했다.’ 해 가지고 사람들을 백방으로 꾀어서 유혹합니다.

이게 불한당 마귀입니다.

또 제가 사람을 꾀고 속여서 삐뚤어진 행위를 하도록 만들어 가지고 낭패를  당하게 해놓고도 낭패가 되면 ‘하나님이 이렇게 낭패를 시켰다. 너 하나님  믿어야 아무 소용없다.’ 엉뚱하게 하나님이 낭패를 시켰다고 뚝 떼다 붙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거짓말쟁이도 되고 거짓말쟁이 아비도 된다고 한 것인데, 근본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또 거기 속한 사람은 전부 거짓말하는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거짓말쟁이 아비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무엇을 구할 때 백의 하나라도 절망되지 않는 끄나풀이  붙어있는데 그 일이 이루어지게 되면 ‘하나님이 해주셨으니까 하나님께 더  달라붙고 소망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관계를 맺자!’ 이런 사람이 될 리  없습니다.

‘주여, 이제는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완전 절망에서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해주셔도 마귀란 놈은 엉뚱하게 ‘야, 인간에게는 그런 일도 있지 않느냐? 이럴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는데 그렇게만 생각하는 건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이라.

골짝이 있으면 만당이 있고 만당이 있으면 골짝이 있는 것처럼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으로 말미암아 됐다는 것을 인간들이 알아서 당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기를 원하시는데, 그 일을 마귀가 방해도 하고 또 하나님이 해놓으면  엉뚱하게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고 의지하지 말고 다른 것도 바라보고  의지하라.’ 합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바라지 말고 다른 것을  바라보라.’ 이렇게 합니다. 이게 악령의 유혹입니다.

그러기에 절망이 일을 해결합니다. 절망이 희망 있는 좋은 재료는 됐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지만 성경을 보고 생각해봅니다.

아무것도 없고 혼자 계실 때 당신 혼자 당신의 사랑이 발동해 가지고, 당신의  기쁨이 발동해 가지고, 당신의 온전하신 뜻이 발동해 가지고 당신의 목적을  정했습니다.

또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를 만들려는 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걸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오늘까지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섭리하십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이 친히 사람 되어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공로를 입히시고 또 우리를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시키심으로 새사람의 새생명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이 깜깜한 세상에서 당신과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보이는 모든 것보다 보이지 않는 당신을 더 크게 여기도록 하시려고 ‘구하라  주실 것이요, 구하는 자마다 얻을 것이라’ 이렇게 약속하시고, 또 ‘네가  어려움을 당하느냐 기도하라, 기쁜 일을 당하느냐 찬미하라’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 전체는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셨고,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어도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누구의 말을 들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때문에 인정하고 기도하는 그것이 참 기도요. 이것이라야 하나님은  가장 일하기 쉬운 일이요 일하기 좋은 일거리가 되는 것이라 말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응답 받는 기도는 대개 ‘이는 아무래도  안 된다, 될 희망성은 억만에 하나도 없다!’ 하는 그런 일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해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그런 일은 하나님이 해주셔도 크게 헛일이 되지 않지만, 달리도 될 듯 될 듯한  그런 일을 기도하는 자는 틀림없이 영광을 딴 데 돌리고 그것에게 들어붙지  하나님에게 들어붙지 않을 것이니까 하나님이 일하기가 참 까다롭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달라고 해도 하나님이 해 줄 수가 없다 그거요.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고 만족한 사람을 만들어서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살기만 하면  영생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만드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에게 구하는 것은 당신에게는 어렵고 쉬운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당신에게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당신이 엿새 동안에 하신 그런 정도의 것이지 별 어려운 게 없다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에게 제일 어려운 난제는 무엇이냐? 모든 면에 절망된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말하면 하나님이 얼마동안 실랑이를 합니다. ‘참으로 희망이  없느냐? 희망이 없느냐?’ 묻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아무 희망이 없으니까 절망해서 그만 나중에는 기도도 못 하고  ‘주여 내가 무슨 기도를 하겠습니까?’ 하고 낙망하고 쭉 뻐드러지는 그걸  하나님은 소망하고 있습니다.

쭉 뻐드러져서 ‘이제는 아무리 봐도 희망이 없다.’ 하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소망하고 간구하면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대개는 이런 문제들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될 만한 아무런 희망이 없는,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기만 하면 꿈에라도  다른 것으로 됐다고 할 조건은 하나도 없도록 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또  그런 일은 일하시기도 단순하고, 또 그런 일은 하나님이 투자해도 손해 갈 것이  적은 견고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잘 들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낙망될 그런 건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잘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셔서 하나님과 우리가 밀접하게 결합되는 것,  완전자와 결탁하면 우리에게 손해 갈 게 무엇입니까?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지만 하나님이 제일 답답하게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 외에 딴 걸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 제일 답답하고, 제일 밉고, 제일 근심거리가  됩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다 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줄 알면 하나님만 좋아하고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지만, 엉뚱하게 다른 데서  왔다고 생각하고, 제가 뭘 어떻게 해서 됐다고 생각하면 제 맘대로 더 악용  남용할 것이니까 그 결과가 더 큰 문제라 말이오.

그러기에 하나님이 능력이 없거나 싫어서 해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요는  우리가 영광을 다른 것에게 돌릴까 하는 그 문제요, 또 주시면 그걸 악용해서  없을 때보다 더 악한 사람이 되어서 구원을 절단 낼 것이니 이 문제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문제입니다.

그런고로 될 희망이 없는 그런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을 여기서 지금  하나 가르쳐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 본문에 원수의 원한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악한 자가 원수가 된 것인데,  성경에 기록한 이 과부는 아주 늙어서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가족도  없고, 돈도 없고, 지능도 없고, 아무 기반도 없습니다. 꼴막거리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과부라 해놨습니다. 성경에는 남편 없는 걸  과부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자체가 이런 자요, 그 자체가 아무 힘이 없으니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또 자기를 벌써 깔보고 해친 원수가 무슨 좋은 일을 해주리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법관이 아주 무례하고 악하고 불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법관인데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겠습니까?  그러니까 과부는 전부가 절망입니다. 삼면이 절망이오. 자기 자체를 봐도 절망,  자기 원수인 상대방 그 악한 자를 봐도 그자가 자기를 좋게 해 줄 리 없습니다.

또 불의의 법관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 절망을 극복한 과부에게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 「하물며 」 했습니다. 세 가지가 다 절망된 가운데서도 과부가  간구해서 이루어졌는데 택하신 자들이 밤낮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그 기도를 원하시고 또 들어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러니까 너희들이 기도하면 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물며 」 하신 것은 이런 조건이 있는데도 왜 너희가 기도하지  않느냐 하는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시니라 」 이 사실을 인정하고  아무 희망 없는 절망 뭉텅이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자를 내가 보겠느냐  말입니다.

또 간구할 때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은 공중에서 뭘 내려주십니까?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주시기도 하고, 나라를 통해서 이루어주시기도 하고, 뭐 이런 무슨  그런 것을 통해서 이루어주십니다.

그런데 자기가 퍼뜩 무엇을 구할 때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면 ‘기도 안 해도 될  뻔했다!’ 해서 그만 당신의 목적인 우리와 한 덩어리 되는 것은 헛일이 되고  영광도 다른 것에게 다 돌릴 것이라 말이오.

성도들이 기도해서 이루어지는 단계는 어떤 때인가 하면, 자기가 무슨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아, 이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 같다, 이 일은 성공될 것  같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디에 좀 붙어있는 것입니까, 똑 떨어져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좀 붙어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자기 생각에 ‘이것은 아무리 봐도 희망은  없다.’ 하는 절망된 일이라면 모든 것에게서 똑 떨어져 있는 것이 되겠습니다.

사람들은 될 것같이 보이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입술뿐이고 실은 제 눈에 다른 피조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희망이 있는 그게  소망입니다. 피조물에게서는 똑 떨어지고 하나님이 단독으로 해주신다는 그런  소망으로 되는 일들은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데 뭘 기다리지요? 한번 대답해 봐요. 뭘  기다리겠습니까? 네, 낙망. 똑 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희망 없다!’ 하고 똑  떨어지는 그것을 기다립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될 희망은 하나도 없어지게 되기를 기다립니다. 자기가 자체를  봐도 희망이 없고, 배경을 둘러봐도 희망이 없고, 피조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희망은 전혀 없는 것이 인식될 때 그것을 극복하고 하나님에게 소망하고  간구하면 바로 그게 이루어지기 직전의 단계요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예 기도하기 전에 전혀 희망 없는 일이  이루어지기 쉽습니다. 기도는 해도 좀 희망성이 있고 또 ‘누구로 인해서 되지  않겠느냐!’ 할 수 있는 그런 조건으로 털끝만큼이라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님은 애 터지게 기다리면서 가만히 계시는데 어디까지 기다립니까?  낙망하기까지 기다립니다. 낙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조건이 이르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희망이 없어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너 지금 이루어주면 내게 영광  돌리고 나와 친밀해질래, 다른 것이 해줬다고 할래?’ 하나님이 묻지 않는데도  양심을 통해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럴 때에 제가 똑똑히 단정 짓고 하나님에게  간구하면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에 능력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절망을 하나님에게  내놓고 기도해서 이루어지면 불한당이 와서 ‘야, 어떻게 해서 됐다!’ 하거나,  자기 속에서 그런 것이 나오더라도 ‘사탄아 물러가라! 그때 내게는 전혀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전적 하나님이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전적 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일들을 많이 겪어 가지고,  이제는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자기를 유익되게 하는 것은 오직 주님 한 분이요,  어머니가 아이에게 밥을 주먹밥이나 숟가락으로 밥을 주지만 그런 것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라를 통해서, 사회를 통해서, 인간을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무엇을  통해서 주시든지 자기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은 주님 한 분만이 주시는 것이고,  주님이 주시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망치는 것뿐이라고  확정짓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만 되면 그는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다른  것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도 얼른 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다른 사람은 평생에 한 가지를 이루는데 그 사람은 백 가지 천 가지 만  가지도 이룰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과부가 자기를 봐도 원수의 원한을 해결할 만한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과부에게 잔인한 일을 한 악한 원수가 선한 사람이 될 리 없습니다. 악하고  잔인한 인간이 좋게 해 줄 리가 없으니까 상대방에 대해서도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또 불의한 법관도 하나님도 무시하고 모든 사람 다 무시하는데 천한 과부가  찾아가봤자 퉁퉁거리면서 ‘쫓아내라!’ 할 것이니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모든 면으로 절망이 될 그때도 그 절망으로 꺾이지 않고 낙망치 않고  간구한 그것이 승리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물며 」 하신 것은, 너희들이 밤낮 기도하기를 기다리시고 또  이루어 주시기를 기다리는 하나님께서, 네 난제나 사건은 네가 너를 봐도 도무지  희망이 없고, 상대방을 봐도 희망이 없지만 과부가 불의한 법관에 대해서 절망을  가지고 이루었다. 그러니까 네게 희망 없이 보이더라도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간구하라. 이 순서만 이루어지면 빨리 이루어주신다.

왜? 네가 영광을 다른 것에게 돌리지 않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더 밀접해지고  ‘하나님 한 분이면 다 되는구나!’ 이렇게 하나님을 소망하고 밀접해지고,  영광을 딴 데 돌리지 않으면 즉시 이루어지지 오래 지체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사실을 너희가 깨달아서 이 권능을 써라.

「그러나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내가 올 때에 이 사실을  알고, 이 사실대로 활용해서 사는 자를 보겠느냐!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전혀 희망 없는 낙망되는 문제를 하나님에게 구할 것입니다. 또 우리가  기도하다가 전혀 희망 없는 그것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데도 달린 데가  없는 완전 절망, 완전 낙망,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것을 하나님을 바라보고  구하면 즉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줬습니다.

기도합시다.

감사합니다. 아무 의지하고 바랄 것 없는, 무엇이든지 어떤 피조물로서도 나로서도  할 수 없는 문제, 크고 작고 간에 모든 것은 주님 앞에 구하면 다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지극히 큰 약속, 유한한 것뿐만 아니라 무한한 것은 전혀 할 수 없지만  어떤 피조물로도 할 수 없는 무한한 것 영원한 것 온전한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들어주시고, 땅위의 난제 어려움도 다 주께서 들으시고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주의 약속을 감사합니다.

이 계약을 확신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주님에게 받아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빛이 될 만큼 영육의 축복 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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