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기억할 것 5가지

 

1988. 1. 1. 밤

 

본문:히브리서 12장 1절∼6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여게서 우리가 기억하고 또 이 도리에 복종을 해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고 또 설교를 많이 듣는다 할지라도 거게서 깨달음이 있어야 되고 또  깨달은 것이라도 기억함이 있어야 하고 기억하는 것이라도 실행을 해야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모든 허영심과 허욕심이 이것이 다 원죄와 본죄 사이에 있는  것들인데 이것 때문에 무엇이든지 다 허욕과 허영을 가지고 세상일을 하듯이  예수 믿는 것도 그렇게 할려고 달라듭니다. 예수 믿는 도는 하나님의 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속지를 아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새 방언이니 불이니 그런 소리를 많이 하고 다닙니다. 방언은  어떤 게 방언인고 하니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능력의 역사를 방언이라고 하고 또  하나님의 도를 전함을 받을 때에 깨닫는 능력을 가리켜서 방언의 능력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방언의 근본은 사도행전 2장에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거게서 불이 혀같이  갈라진 모양으로 성령이 강림하셨다는 이 말씀을 사람들이 빙자해 가지고 ‘성령은  우리에게 불로 온다’ 이래서 자기 몸이 뜨끈뜨끈 하든지 화끈화끈 하든지  그래야만 성령이 오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또 자기가 추운 날 기도할  때에 몸이 뜨거워지고 하는 그런 것으로써 성령이 임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녜, 몸이 뜨거워지는 것은 성령은 내비두고 다른 세상일로도 그 마음에 자극이  아주 기분 좋고 좋은 것으로써 자극이 되면은 몸에 열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슨  좋은 일 기쁜 일만 봐도 몸에 열이 생기고 추운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또,  두려운 충격을 받게 되면은 몸이 또 아주 차워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혹 하나님의 도를 들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뜨거워지는 거  추위가 없어지는 거 그것이 꼭 성령의 은혜라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러니까, 물론 성신의 감동이 오면 잘 깨닫게 되고 또 믿어지게 되고 또 간절히  소원하게 되니까 그 몸에는 필연적으로 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거는 좋은 것이지마는 열이 일어나는 그것은 성령과 상관이 없고 다만 자기가  깨닫고 믿어지고 알려지는 것이 그것이 성령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바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로 중요합니다. 바로 깨닫는 거. 이래서 ‘방언보다 예언하기를  힘쓰라. 일만 마디 방언보다 한 댓 마디 깨닫는 것이 낫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침에 방언에 대한 걸 말씀했는데, 요새 모두 사람들이 말하는 방언은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에 자기의 심령의 눈이 열려지면 자기가 하나님에게 구할  것은 많은데 그 많은 구함을 이 혀를 놀려서 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입은  둔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말을 하다가는 말의 그 모든 어음이 정확해지지를  아니하고 속에는 자꾸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할 때에 자기의 혀로는 바로 하지  못하고 속에 그 마음으로서는 기도를 바로 하게 되는 일 있습니다. 그러다가  심해지면은 나중에 마음으로도 피곤해서 기도할 그런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성령이 대신 오셔 가지고서 기도해 주시는 것을 그렇게 보고만 있게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이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듣든지 읽든지 하고는 꼭 바로 깨닫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입니다. 바로  깨닫는 것이 성신의 감화요. 또 설교를 할 때에는 하는 사람에게는 방언의 은혜가  설교할 때에 듣는 사람들이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전하는 그 능력이 방언의  능력이요 방언의 은혜입니다. 또, 듣는 사람들은 설교를 듣든지 또 성경을 읽든지  할 때에 깨달아지는 그것이 방언의 은혜요 읽어 깨닫게 되는 것이 성신의  은혜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와서 무슨 일 하는고 하니 하나님의 도를 접하게 하고 깨닫게  하고 또 소원하게 하고 믿어 실행하게 하도록 고렇게 역사하는 것이 성령의  은혜요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신의 감화는 성경을 기록한 기록 영감이 있고, 성경을 기록한 기록  영감이 있고, 또, 성경 안에 있으면서 읽는 사람에게 깨닫게 하는 역사를 가리켜서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경 안에는 성경을 읽는 자에게 깨닫게  하는 영감이 있습니다. 또,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그 사람 속에 성경을  깨닫게 하는 영감이 있어서 그 영감을 가리켜서 내재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내재 영감이라.

또, 성경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할 때에 자기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일이  있습니다.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가리켜서 조명의 영감이라 그랍니다. 자기 마음  속에 환하게 빛을 비추는 조명 영감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또, 자기가 그 말씀을 읽든지 들었는데 그 말씀이 자기에게 기억이 돼져 가지고서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안하고 기억되는 게 있을 때에 그를 가리켜서 기억 영감이라,  기억하게 하는 영감이라 또 그렇게 말합니다.

그라고, 자기가 그 듣고 깨달은 말씀을 실행하도록 하는 또 영감이 있습니다. 그  영감을 가리켜서 역사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거는 성경에서 찾아낸 것을 가지고 하는 건데, 방언이라는 것은 그것은 아무리  자기가 방언을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유익을 주지 못하고 자기는 자기의  심령으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 삼자들을 거게 대해서 모르고 혹 거게 대해서 번역을 하고 통역을 하면은 제  삼자들이 알아서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성령에 충만한 사람인가? 그것은  신구약 성경을 그 사람이 많이 기억한 사람이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요, 또 많이  깨달은 사람이 성령에 충만이요, 깨달은 것을 믿는 데도 그 믿음이 약한 거 있고  강한 거 있는데 강하게 믿는 믿음이 성령에 충만이요, 또 그대로 실행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그것이 성령의 충만입니다.

이래서, 이 성령에 대한 잘못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꾸 잘못 깨달아서  신령한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말하는 그것을 자기가 받을라고 애를 쓰다가 마귀  시험에도 들고 또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실은 설교를 할 때에 고함을 지르고 이렇게 웅변으로 이렇게 하는 그  은혜보다 이 도리를 자기가 가르쳐서 바로 깨닫도록 하는 그 은혜가 더욱  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혹 자기에게 감화되는 일이 있어도 감화되는  그것을, 실은 그 감화를 버리고 진리를 배워서 깨달아진 그 깨달음을 가지고  고요히 자기 혼자 산에서든지 들에서든지 집 안에서든지 예배당에서든지 그  말씀을 자기가 고요히 생각해서 그 말씀과 자기와 연결을 시켜보고 그 말씀과  자기의 형편과 연결을 시켜보고 그 말씀과 자기의 과거를 조사해 보고 자기  미래를 그 말씀과 연결시켜 볼 때에 깨달아지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도 몇 가지를 간단하게 말할라고 합니다.

히브리 11장은 믿음장이라 이렇게 다 말합니다, 히브리 11장은 믿음장. 믿는 것만  모두 말해 놓은 것이, 아주 이런 믿음 있다 저런 믿음 있었다 하는 믿는 믿음을  말해 놓은 것이 히브리 11장입니다.

「이러므로」 이렇게, 이런 믿음 사람 저런 믿음의 사람, 이런 어리석은 사람  저런 어리석은 사람 다 그런 사람을 여게 11장에 많은 사람들을 다 열거해 놓고  난 다음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하는  이 말은 내 현재 있은 데나 과거에나 현재에나 가깝게 멀게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고 간 사람들이 있다. 또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보아서 깨달으라 그말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아서 깨달으라.

다른 사람은 이래 있고 저래 있는 걸 자기와 상관없이 ‘아, 이런 사람, 저 사람은  저래 산다. 저 사람은 그래 산다. 이 일 한다. 저 일 한다. ’ 그렇게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사람의 생애를 자기가 살펴 가지고서 그 사람의 그 생애의  성패가 어찌 되며 이해가 어찌 되며 또 영광과 수치가 어찌 되나? 그런 것을  남의 사람의 생애를 아무 뜻없이 그저 보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저래  사니 그 결과가 어찌 되나, 저 사람은 또 이런 현실을 당했으니 그 사람의 과거는  어떤 생애를 보냈나?’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과거 현재 미래 그런 것을 자기가  말하지 안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를 하는 일을 해라 하는 뜻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거 뭐 그 사람이 이래 살거나  저래 살거나 상관없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사는 그 생애를 실은 우리들이  낱낱이 다 기억하고 그것이 어찌 되나 하는 그것을 잘 심사해서 ‘그 사람이  생애한 원인은 어떠며 그런 원인의 결과는 어떤가?’ 이래서 모든 사람의 생애의  그 원인도 자기가 기억하는 게 좋고 또 그런 원인의 보응으로 그 결과로  맺어지는 것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인간 무식에서 인간 유식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해서 신에 대해서 무식한 것이 제일 불행스럽고, 무식하니까 귀신을  자기 복 주는 신이라고 삼아 가지고 일생 동안 귀신 삼아 가지고 망치는 사람들  많습니다. 이러기에, 점쟁이, 또 귀신 섬기는 그 모든 풍수들 오행꾼들 그거 신을  바로 구별하지 못해 가지고서 스스로 망하는 그런 일들입니다.

이래서, 신에 대해서 무식한 것이 제일 불행스럽고, 또 그 다음에는 사람에게  대해서 무식한 것이 둘째로 불행스럽습니다.

이래서, 신에 대해서 유무식은 자기가 스스로 믿어도 나에게 이런 이런 감동,  자기 주관이 있고 자기에게 감동되는 것이 자기에게 있을 것입니다. ‘내게는 이런  감화가 오니까 이 감화는 뭐인고 보자. 또 저런 감화가 오니까 그런 건 뭐인고  보자. ’ 자기를 연구해서 보면은 얼마 안 가서 이 감화는 마귀 감화다, 이 감화는  사이비한 아주 교묘한 미혹의 감화다, 이 감화는 이거는 참 반석 같은 든든한  곧은 깨끗한 감화이다. 이렇게 영을 구별하는 것도 자꾸 자기가 노력하고  연구해야 이제 영에 대해서 무식한 사람이 되지 안합니다.

이래서, 요한일서 4장에는 영을 구별하는 지혜를 우리들이 가져야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별별 미혹으로 빠져가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도, 어떤 사람은 ‘자기는 성령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예, 나는 뉘  집에든지 가 가지고서 고만 자다가 오줌을 싸면은 그때는 하나님이 가지 말라  하는 집을 갔다고 그렇게 깨달아집니다. ’ ‘예, 또 그러면 그뿐입니까?' `그러다  어데 가서 그 의외에 그만 똥을 싸게 됩니다. 그라면 더 하나님이 가지 말라 하는  그런 곳을 간 것으로 그래 알고 속히 돌아섭니다. ’ 그 사람은 또 그것으로써  짐작을 한다고 그렇게 말을 합디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에 으쓱 그러면 그게 영감이니까 설교할 때도 뭐 이  말씀을 증거할까 저 말씀을 증거할까 할 때에 으쓱 할 때는 그 말씀을 증거해야  될 줄 알고 그걸로 짐작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거 다 전부  잡탱이오.

이래서, 어쨌든지 구름 같은 허다한 간증자들이 있다. 간증은 들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간증자가 있으면 간증을 들어야 되지 안해요? 간증 시간이라 이라면  나는 이런 이런 은혜를 받았고 이런 경험이 있었고 이런 체험이 있었고 이리  됐고 무슨 일 했고 그런 것을 얘기하면 그것이 자기 당한 그 은혜받은 것을 말할  때에 간증한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기 허다한 간증자들이 많다 그말은 모든 사람들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살고 있고 살고 갔고 또 살라고 경영을 하고 있는 그런 데 대해서 무심히 보지  말고 그 모든 것이 너를 바로 구원 이루도록 가르쳐 주고 있는 실물 교과서와  같은, 실물 교재와 같은 것이니 그런 데에서 네가 보고 듣고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 하는 것을 여게 성경에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을 보고 많이 연구를 하면 인무식이 안 됩니다. 사람에  대해서 무식하지 안하고 사람에 대해서 유식합니다. 그만 무슨 행위하면 ‘저 사람  저래 하면 뒤에 얼마 안 가서 요리 되고 요리 되고 요리 되고 요리 돼 가지고  요리 된다. ’ 그만 그것을 판정해서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의사들이 사람의 몸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기 때문에 저 증세가 있으면  그 다음에 따라서 인제 무슨 병이 생기고 무슨 병이 생기고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 어떻게 된다 하는 것을 그들이 다 미리 알고 발표할 수가 있는 것처럼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뭐이든지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해야 되는 것이지 저절로 알아지는  거 없습니다. 저절로 알아지지 않소. 그러기에 우리는 ‘허다한 간증자들이 있으니’  구름 같다 말은 많이 흩어져 있다, 꽉 찼다는 말이오.

이런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간증자들이 있으니’ 하는 이 말은 사람이 별별,  네가 너에게 대해서 실물 교재로, 교재라 하는 것은 학교에서 가르칠 때에 돈이  없는 그런 학교는 ‘꿩’ 하면 글로만 `꿩' 하지마는서도 이제 돈이 있는 학교는  꿩을 여러 가지를 만들어 가지고서 이거는 큰 꿩, 이거는 수꿩, 이거는 암꿩,  이거는 새끼 꿩, 이거는 알 안는 꿩, 이거는 새끼 데리고 다니는 꿩 뭐 그런 걸  많이 그래 가지고서 실물로 보여 주면서 가르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실물  교재라, 가르치는 재료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 부자 학교는 그런 실물  교재가 많고 가난한 학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의사가 알듯이,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것은 거게서  내가 보고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허다한 간증자들이 살고 갔고 현재 살고 있고  또 살라고 경영하고 있고, 요래 살다가 실패한 사람 실패를 시작한 사람 성공을  시작한 사람 이라다가 또 자타를 속이고 만 사람, 천태만상의 이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것을 네가 하나도 네게 상관없는 것은 없으니까 그런 것을 보고서  네가 깨달아라, 남을 보아서 깨달아라 그렇게 하는 말씀으로서 허다한 간증자들이  구름같이 둘러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할라고 그렇게 살피는 것을 못씁니다. 그러나 자기가  사람에 대해서 연구를 해 가지고서 ‘그 사람은 저래 사니까 그 결과가 어째되는고  보자, 저 사람은 저래 사니까 그 결과가 어째 되는가 보자. ’ 학생들로 말하면  학교 공부하는 학생을 저거 반에서 한 오륙십 명밖에 안 되니까 오륙십 명  그것만 연구하면 뭐 환하게 압니다. ‘저 학생은 조래 사니까 뒤에가 어째되는가  보자, 저래 사니까 어째 되는가?’ 고것만 연구하면은, 그런데,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나는 누구하고 같으냐? 아무 학생하고  나하고 같다. ’ 그러면은 제가 자기에게 대해서는 정평 정가를 못 하지마는서도  다른 학생에 대해서는 ‘그러면 그 학생은 어떻겠느냐? 그 학생은 실패다. ’ 이  면이 실패다 저 면이 실패다 정확하게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돼  놓으면 고만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나의 이 자연  계시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그저 상관없이 보지말고 그런 것을 살펴서  내가 구원의 깨달음을 가지라. 깨달음을 가지는 데는 수많은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의 모든 생활을 보고 너와 같은 사람을 찾아라. 그거 안 찾으면 상관없어.

너와 같은 사람을 찾아라.

‘아무것이 저 사람은 나하고 비슷한 생활한다. 그런데 저 사람은 나보다 요면이  조금 틀렸다. 다른 면은 같다. ’ 이렇게 모든 사람에서 나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있으며 나와같이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있으며, 성질이 나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있으며, 사상이 욕심이 또 그 오기가 또 그 감정이 또  게을하기가 부지런하기가, 뭐 그런 거 전부 다 이렇게 사람을 살펴서 그 사람은  어떻다 하는 것을 알게 되니까 너는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을 확정지워  가지고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건너보고서 ‘저 사람이 저래 살면 어떻게 될  건가?’ 그 결과에 대해서 거의 정평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만 자기에게 대해서는  정평을 잊어버려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너도 그와 같은 사람이니까 너와 같은  사람은 어느 사람인가 하는 것을 찾아 가지고서 모든 사람 가운데서 너도 ‘나는  아무것이와 같은 사람이다’ 하는 고것을 네가 찾아라. 찾아 가지고서, 그러면 그  사람이 어찌 되는고 봐라. 또 그 사람이 네맘에는 어떻게 되겠는고 봐라. 이런  가운데서 인무식을 벗게 됩니다. 사람의 무식을 벗게 됩니다. 이것을 여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있으니, 첫째 이제 모든 사람에게서 자기를 찾아서 연구해라. 모든 사람에게서  자기를 찾고 또 모든 사람의 그 결과에서 자기 결과를 찾아라. 그 사람은 결과에  그런 행위해 가지고서 이런 결과 맺었는데 나는 그런 행위하지마는서도 그런  결과를 안 맞는다 이럴 수는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모든 사람에게서 너를 찾고, 모든 사람의 그 행위에 원인과 결과의 그  인과에서 네 인과를 찾아라 그것을 여게서 말씀합니다. 요것을 첫째 말하고,

고다음에 둘째로는, 이러니까 이걸 찾고 나면 우리에 자연히 주관이 서지고  자기의 살아갈 길이 나옵니다. 나는 이래 살아야 되겠다 저래 살아야 되겠다는  자기의 생애의 자기 노선을 자기가 찾게 됩니다. 자기의 노선을 찾게 돼 가지고  ‘나는 이래 살아 볼란다 저래 살아 볼란다. ’ 이렇게 살아 보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이 죄.

자기가 이와같이 자기 생애를 확정을 짓고 이 목표를 향해서 가겠다 저 목표를  향하여 가겠다, 나는 이런 방편으로 가겠다 저런 방편으로 가겠다. 자기가  사람답게 살아 볼라고서 애를 쓰면 그 생애에서 자기를, 이렇게 활동하고 저렇게  활동하고 할라는 자기 활동성, 자기가 이렇게 활동을 하고 저렇게 활동할라고  하는 자기의 활동을 할라고 할 때에 활동을 할라 하니까 뭣이 거리껴 가지고서  활동을 못 하게 해서 자기의 활동을 이 힘있게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게 여게  거리끼고 저 걸리고 붙들리는 그런,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 놓은 밧줄을  네가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이제는 자기가 이런 활동 저런 활동 아주 가치 있는 활동, 유력한 활동, 모든  활동을 할라고서 애를 쓰는데 그 활동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 밧줄이 있다.

너는 꼭 동으로 가야만 되겠는데 동으로 갈라 하니까 서쪽에 뽈끈 붙들어 매  가지고서 동으로 못 가게 만든다. 그러면 제가 앞으로 가야 될 때에는 앞으로  갈라 하니까 뭐이 붙들어 매서 못 가게 하고, 그러면 뒤로 가면 되는데 또 뒤로  갈라 하니까 뒤로도 못 가게 되고, 자기를 붙들어 매어 놓은 그런 밧줄이 있는  것을 네가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밧줄을 찾아라.

이러니까, 자기 마음대로는 살지 못하고 자기를 붙들어 매어 놓은 그 밧줄을  따라서, 밧줄이 놔 주는 데만 갔지 그 밧줄이 못 가구로 붙들어 맨 데는 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 밧줄은 보면은, 그 밧줄이 무슨 밧줄인고 하니 죄의  밧줄이라. 죄의 밧줄이라 말은 삐뚤어진 밧줄이라는 말이오. 이렇게 사람에게는  삐뚤어진 데로 걸어가고 바른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밧줄이 가득히 얽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네가 그 네게 보배로운 활동성  남보다도 민첩한 활동성 그 활동성을 네가 써먹지 못하도록 그 활동성을 붙들어  매서 꼼짝 못 하게 하는 그 활동성을 잡아매서 네 소원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밧줄이 있으니 그 밧줄이 뭐이냐? 곧 죄다 그말이요, 곧 죄다.

죄는 개인 관계의 죄도 있고, 또 어떤 단체에 대한 죄도 있고, 사회에 대한 죄도  있고, 국가에 대한 죄도 있고, 하나님께 대한 죄도 있는데 어떤 죄든지 죄가 있는  것만치 자기는 거게서 붙들려 매이게 된다.

또, 「무거운」 무거운 것, 그러면 우리 사람이 무엇이든지 용감스럽게 할라고  하는 자기의 모든 용기, 자기의 모든 용기를 써먹지 못하도록 그 용기를 발끈  눌러서 용기를 써먹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 뭣이냐? 죄다.

그러기 때문에, 요게 둘째로는 너를 자유 활동하지 못하게, 네 활동성이 있는  사람인데 그 활동성을 마음대로 잡아 부려야 큰 성공을 하겠는데 활동성을  이것을 억제해 버리는 것이 죄요, 또 너희에게 용감성을 그것을 다 좌절시켜  버리는 것이 그것이 죄다. 인생이 다 불쌍하고 가련하게 되는 것은 활동성과  용감성을 이것을 다 빼앗기고 이것이 자기에게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  인간이 비참하고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그게 뭐이냐? 죄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죄를 벗어버리는 것, 올해 지금, 금년에 이제 88년 1월 첫  오일 예배로 우리가 드리는데 오늘 새벽예배도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증거했는데, 이제 첫째로 금년에는 모든 사람에서 나를 발견하자, 모든 사람에서  나를 발견하자 그것을 하나 여게 우리가 작정을 해야 되겠고, 이제는, 이러니까  그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다 배울 것이 있어요.

제가 어릴 때에, 옛날은 그때 양식이 귀할 때인데 과객들 오면은 밥을 다 안 해  줄라 해요. 모두 양식이 없는데 과객들이 자꾸, 뭐 과객 치른다 하면은 그저  과객이 얼마나 많이 듭니다.

우리 집에 그때 사랑이 있고 하니까 과객을, 과객이 많이 오면 주인이 못 먹어도  식사를 차려 주고 과객 대접을 이래 하는데 그래 제가, 저희 아버지가 저한테  말을 해요. ‘얘들아, 아무도 공밥 먹고 가는 사람은 없다. 공밥을 먹고 가는  사람은 없느니라. 그 사람이 실은 밥을 먹고 무슨 물질이나 그런 것을 주고 가는  그 사람은 오히려 값을 적은 값을 내고 오히려 아무 밥값도 내지 안하고 그저  밥을 공으로 먹고 가는 그 사람은 더 큰 밥값을 내느니라. ’ 이래요. 그래 나는  ‘무슨 소리인고?’ 이라니까 그 모두 보면은 그 사람에게서 다 배울 것이 있고  깨달을 것이 있다.

이래서, 빌어먹는 사람에게서 빌어먹는 것을 깨달아 가지고 빌어먹는 것을  방지하고, 또 거지에서 거지를 연구해서 깨달아 가지고 거지되는 연구를 깨달아서  거지 방지를 하고, 또 무슨 낭파되는 사람에게서 연구해서 낭파를 방지하고,  그러기 때문에 이 모든 천태만상의 이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성공하는, 인간으로서 성공하는 길, 실패하는 길, 욕 얻어먹는 길, 천한 길, 자손이  망하는 길, 자손대 갈수록 잘되는 길 그 모든 것을 다 이렇게 실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교재다, 교과서다. 이것이 지금 말로 말하면 그것이 자연  계시다.

이러기 때문에, 금년은 모든 사람에게서 내 자아를 발견하자 깨닫자 하는 것이고, 이제 두번째는, 우리에게는 참 보배로운 활동성이 있고, 보배로운 그 용감, 용기,  그 용감성이 있는데 인생의 용감성과 활동성은 죄 이놈이 들어서 전부 얽어매  버려 놓고 위에다가 무거운 돌담 같은 걸 짊어지워 놓으니까 꼼짝을 못 하게  된다.

그 사람의 용감이 어데서 죽어졌느냐? 분명히 그 사람이 사회적인 죄나, 또  가정적인 죄나, 또 무슨 국가적인 죄나, 제일 큰 죄, 하나님 앞에 무슨 지혜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다 용기가 절단나고 활동성이 절단난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을 다, 얽매이고 무거운 짐이 되는 이 죄를 벗어 버리라,  벗어 버리라 그것을 여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저 어짜든지 이 죄를 벗어버리는 데는 담대해야 됩니다. 회개는  담대해야 되지 회개는 담대하지 않으면 회개 못 합니다. 회개는 담대해야 됩니다.

오늘 새벽에는 그런 데 대해서 많이 말씀했었는데, 사람들이 경제에 대한 죄에도  담대해야 벗어날 수 있고, 또 인인 관계의 죄도 담대해야 벗어날 수 있고, 이성  관계의 죄에도 담대해야 벗어날 수가 있고, 모든 운동 사상에 붙들려 매인 그  죄도 담대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담대하지 못하면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래서, 누가복음 15장에는 보면은 양 잃은 비유에 양이 제대로 갔었는데 그 양을  찾아 가지고서 목자가 어깨에 매고 온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죄든지 자기가 목자를 떠나서 가는 것은 범죄의 길로 나가는 것을 말하고  목자를 만나 가지고 목자가 데리고 이제 양 우리로 데리고 오는 것은 회개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그러면, 목자의 우리로 가는, 회개해서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그 길은  목자가 어깨에 매고 가는 걸음이라. 기독자들이 어떤 회개든지 회개하는 데에는  담대히 회개하라. 왜? 회개하는 걸음은 전능자의 품에 안긴 걸음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지금 이걸 회개하면 당장 큰일나겠다. 이 가정적으로 큰일이 나겠다.

사업적으로 큰일이 나겠다. 사회적으로 큰일이 나겠다. 또 모든 활동적으로  큰일이 나겠다. ’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그 회개를 못 합니다. 아닌 줄 알면서도  간이 작아서 그 죄를 딱 끊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하고 죄를 툭 털어  내놓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담대히 내놔라. 하나님께서 보장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그런고로, 「얽매이고 무거운 죄를 벗어 버리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  걸음은 이 죄를 벗어 버려야 용감스럽게 양심 생활도 하고 신앙 생활도 하고  자유 생활도 하고 성공 생활도 하고 이렇게 승리 생활도 하지 이런 거 있으면  승리 생활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환난 때에 승리하는 이런 승리를 할라 하면은 평소에  거리끼고 얽매인 이 모든 죄를 정리해야 되지 이걸 정리하지 안하면 순교 못  합니다. 순생도 순교 못 하요.

주를 위해서 ‘죽든지 살든지 주만 위해서 살겠다’ 주님 앞에서 자유할 수 있는  사람,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 하는 이것은 신앙의 자유인데 이  자유할라면 자기가 깨닫는 대로 죄를 청산해야 되지 죄를 청산하지 안하고는  절대 못합니다. 자유를 못 합니다. 밧줄이 매여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거  자유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유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것을 여게서  가르칩니다.

이래서, 금년에는 둘째로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모든 밧줄을 다 끊고 우리  등어리에 큰 돌을 짊어진 거 모양으로 이렇게 죄가 들어서 내 용감을 다 누르고  꺾고 있으니까 이놈을 다 완전히 벗어내 던지라. 그 벗어내 던지면 ‘이 서로 친한  친구끼리 이거 이럴 수가 있겠나, 친한 안면에 이럴 수가 있겠나, 또 섭섭해  그러지 않겠나?’ 그거 생각지 말고 죄만 있으면 너는 반드시 그물 속에 먹힌 것과  마찬가지로 이 밧줄에 걸려서 너는 결국 망하고 말고 또 그 무거운 짐에 눌려  가지고 결국은 망하고 말기 때문에 너는 그저 얽매이고 거리끼는 죄를 벗어  버리라. 이래야 네가 네 용기가 그대로 다 살아날 수가 있고 네 활동성이 살아날  수가 있지 이 무슨 죄라도 죄가 있으면은 활동성도 모든 용감도 다 그대로  썩어져 버리고 만다 하는 그것을 여게 말씀합니다.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제 세째로는 달음질하라.

달음질하라. 여기 경주하라는 건 달음질하라. 달음질하는 데에는 어데를 향해서  달음질해야 되느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향해서 달음질하라.

그러면, 예수님을 향해서 달음질하라 하는데, 오늘 아침에 들으니까 어떤 학생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이걸 자꾸 외우는 것  좋습니다. 그라면서, 주님은 나에게 온전케 해 달라고 자꾸 그렇게 기도하는데  요것도 배워서 깨달아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돼.

예수님이 ‘믿음의 주요’ 그러면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에게 효력을 주는 주님이요,  ‘온전케 하는 이이신’ 또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그분이시다. 그러면 이것은  주님이 믿음으로 온전케 했습니다. 믿음으로 온전을 이루었습니다. 믿음으로  온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이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온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믿음을 가지고 온전 이루었으면 예수님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서  온전을 이루었느냐? 예수님께서 세 가지 가지고서 믿음을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하나는, 당신이 사람되셔 가지고서 아버지께 순종해서 사활하심으로,  사활하심으로써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완성했을 때에 아버지가 기뻐하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그 이름을 주시고 모든 존재의 구주가 되도록 이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첫째는 이 대속을 완성하신 것이 그것이 예수님이  믿음으로 온전케 한 것입니다.

그러면, 대속으로 온전케 한 것은 대속은 언제부터 시작했느냐? 대속은 창세 전  하나님의 목적에서부터 시작돼서 나온 대속입니다.

이 대속으로 완전하셨고, 그 다음에는 성신의 감동으로 온전함을 이루었습니다.

또 진리로 온전함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 경주하는 우리 경주가 무슨 경주하느냐? 우리 경주하는 것은  세 가지로 경주합니다, 세 가지로 경주해요. 우리가 예수님의 피의 경주, 또  영감의 경주, 또 진리의 경주. 그러면 우리가 피의 경주도 져서는 안 되고  승리해야 되고, 영감의 경주도 승리해야 되고, 진리의 경주도 승리해야 된다.

그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 현실에서 이미 주님은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이것은  죄를 완전히 멸했고 마귀를 멸했고 사망을 멸했고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  통과됐고 하나님과 완전 결합된 이 참 완전을 이루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인데 예수님은 완전을 이루시느라고, 이 완전한 공로를 설정하는 그 일을  완성했고, 또 그 일을 완성하는 데에는 영감대로 하나도 소멸하지 안하고  영감대로 순종 완성을 해 가지고 그 일이 됐고, 진리 행위하는 것을 완성해  가지고 그 일을 완성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 가지 가지고서 완성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 경주하는 것은 세 가지로 경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피의 공로를 설정하느라고, 친히 설정했지만 우리는 설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설정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설정해 놓은 것을 내가 잡고 뺏기지만 안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 경주해 가지고 이기는 것은 이 현실마다 지금 달음질치는  것인데 현실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이 대속을 벗어 놓으라 하고 나는 안 벗어  놓을라 하고, 안 벗어 놓으면 내가 이 경주에 이겼고 벗어 놓으면 이 경주에 졌고  이 현실에서 영감대로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영감대로 살면은 이 영감의  경주를 이겼고 영감을 이 환경에 뺏겨 버렸으면 영감의 경주에 패전했고 또 내가  현실에서 진리의 법도대로 살면 진리의 경주를 승리했고 진리를 현실에서 뺏겨  버렸으면 진리 경주에서 나는 패전해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경주하되 인내로 경주해라. 곧 뭐이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바라보자 말은 예수님을 목표하자.

예수님이 완성하신 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피의 공로는 나는 이 완성을  빼앗기지 안하고 입고 있음으로써 나는 승리하고, 예수님이 영감으로 가지고서  승리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영감으로 승리했는고로 이 영감은 우리에게  줬으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영감을 나는 영감을 뺏기지 안하고  영감대로 사는 것으로써 성공하고 진리로 성공하고, 그러면, 우리에게 진리가 어떻게 왔으며 영감이 어째 왔느냐? 예수님의 성공을  인해서 우리에게 진리와 영감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영감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진리를 만드는 것도 아니요,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러면, 대속의 공로도 우리가 만드는 것 아니고 영감도 우리가 영감을 자꾸  구하고 해서 우리가 이와같이 지금 마련하는 게 아니고 진리도 우리가 애를 써  구해 가지고 마련하는 게 아니고, 이 피도 성령도 진리도 주님이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공으로 다 줬습니다. 우리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돼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빼앗기지 안하면 됩니다. 뺏기지 안하면 이것이 우리의 경주를  경주해 가지고서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당한’ 하는 것은 현실을  말합니다.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제 이러니까 이 경주를 우리가 경쟁, 생존 경쟁하는 거 모양으로  경주를 하고 달음질하는데 우리 달음질을 잘못하면 뭘로 달음질할 건가? 자꾸  ‘주여, 온전케 하는 이이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어짜든지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주님 나를 온전케 하시옵소서. 나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 이렇게 말해도 그게  안 된다 말이오.

구체적으로 뭐이냐 하면은 이제 피와 성령과 진리를 내가 빼앗기지 안하면,  빼앗기지 안하면 나는 승리하는 것이고 이제 한 시간 이 현실에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았고 또 고다음 현실에 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고 이라면 한 발자죽,  오른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 현실, 또 고 다음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써 왼쪽발,  또 그 다음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써 또 오른발. 이 발 떼놓고 이 발 떼놓고 이 발  떼놓고 이 발 떼놓고 이 발 떼와 가지고 부지런히 떼 놔서 이제 이 경주를  경주하자.

그러기 때문에, 우리 앞에 있는 경주장, 우리 앞에 있는 거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현실을 얼마나 정해 놨는지 모르지마는 그 현실은 내가 걸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이기면 면류관 얻고 지면은 수치를 당하는 그와 꼭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경주해라. 경주하는 데에는 네가 인내해야  된다. 그 경주할라 하면은 이런 장애 저런 장애물, 온갖 장애물과 어려움이  있으니까 어려움 있는 그걸 개의치 아니하고 기어코라도, 마치 태산 위에 떨어진 물방울이 그게 나중에, 결국은 그 목적이 저 바다로 가는  게 목적인데 바다로 갈라 하면은 이게 온기를 통해서 증발돼 가지고 공중을  통해서 바다로 가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이게 땅 속으로 배어 가지고 가든지  가다가서 또 바위가 있으면은 둘러가고, 또 있으면 얼마든지 세월을 지나  가지고라도 그러면 아무데도 갈 수 없고 딱 갇혀 놨으면은 이제 그 공기와  햇빛을 이용해 가지고서 증발돼 가지고 가도 기어코라도 저 목적지 바다로 물이  흘러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네가 이 경주를 할라 하면은 너는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하지 안하면은 안 된다.

그것을 가리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당한 경주, 우리가 자기  노선이 있는데 자기 노선을 걸어갈, 다시 말하면 자기 현실이 있는데 마지막  시간까지 자기 현실이 연결돼 있는데 그것이 당한 경주입니다.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제  주님을 푯대로 삼아서 나아가자. 그러면 우리는 이 세 가지로 경주하는 이 경주를  잃지 안해야 하겠습니다.

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제 예수님은 어떤 주의인고  하니 예수님은 현실주의가 아니고 그 결과주의다. 예수님은 현실주의가 아니고  결과주의다. 예수님이 현재로만 본다면은 그 십자가 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요  손해가는 일이요 망하는 일이요 모든 사람에게 다 억울하게 당하는 그런 일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현재에 당하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이지마는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보지 안하고 고난 너머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았다. 요 십자가  주의, 십자가 사상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된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서 십자가를 참아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승리했다’ 그러면 현재에는 모든 것이 다 불리하고 손해가  갔지마는서도 현재에 손해가니까 현재에 손해 안 볼라고 살지를 안했고  현재보다도 이 현재가 이러면 현재가 반드시 이것이 과거가 되어지고야 말고  미래는 현재가 되고야 마는 것인데 ‘그러면 내가 이렇게 살면 현재 내가 손해가고  이렇게 억울하고 해가 되고 고난스러우니 어떻게 하나?’ 이걸 보지 안하고 그  현재 너머 앞으로 닥쳐올 그것을 보고서 살았다 그것을 여게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도는 이것은 현실주의가 아니고 그 현실의 보응으로 그다음에  보응으로 닥쳐오는 그 결과주의다. 그러기 때문에 결과를 보고 이제 살아야 된다  그것을 여게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또 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거야 완전히 억울한  짓이지요. 억울한 짓이고 그거야 당당히 말하면 예수님은 억울치 안한 일이  하나도 없지요. 다 억울하지요. 억울하나 그 억울함을 당하지 안했으면 예수님은  승리하지 못했다. 그 억울함을 당하지 안하고 그저 정당 방위로 모든 일을  공정되게 다 행했다고 하면 공정되게 행했다고 하면 그 일에는 대속이 될 수도  없고 승리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기가 언제든지 정당성으로 살지 말아라. 정당성으로  살고 인간뿐이라면 일대 일로 이와같이 살지마는, 일대 일로 살지마는 일대 일로  살면 인간대 인간으로 이라기 때문에 거게서 다 정당한 판정이 나 가지고서  정당한 보응을 받지마는서도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를 아니하셨고 인간에게는  완전한 억울함을 당했는데 보내신 아버지를 생각하고 억울함을 당하니까 이제  억울함을 당한 예수님에게 아버지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이러니까, 이 세상살이 할 때에 일대 일로서 네가 살라고 하지 말고 일대 일로  살면 내나 네 힘 가지고서 네 독립 생활하고 네 자립 생활하는 것이고 모든  이와같이 이 죄악으로 세상이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일대 일로 살지 말고, 일대  일로 살면은 거게 분쟁이고 사망되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일대 일로 네가 살지  말고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일대 일로 싸워서 서로 살해하는 거기에  있지 말고 일대 일로 살지 말고 위에 분을 보고서 네가 억울함을 참는  이것으로써 위에 있는 그분의 도우심을 네가 받는 요 비결을 네가 깨달아라  요것을 여게서 가르쳐서 말씀해 줍니다.

그러면 다시 재독해서, 모든 사람에게서 자기를 발견하라. 모든 사람에게서  자기를 발견하라.

또, 우리의 모든 활동성과 용감성, 우리가 모두 다 건설하고 승리하고 있는 모든  건설하고 승리하고 성공하는 모든 우리의 정력, 우리의 능력 말이오. 우리의 정력,  우리의 능력. 우리의 모든 능력은 죄가 들어서 다 박멸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네  능력을 박멸시키는 이 죄를 벗어 버리라 하는 이것이 둘째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를 벗은 용사 아닌 사람이 없고 활동성 없는 사람이 없고 능력  없는 사람이 없고 죄를 입고 지고는 활동성이나 능력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있는 것 같지마는서도 인간이 하는 그 일은, 인간이 하는 그 일은 하는 데까지  돼지지마는서도 인간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이것을 벗으면 인간에게만 얻는  게 아니고, 이걸 벗으면 인간의 힘만이 아니고 이것을 벗으면 그 모든 실력의  능력이 절대자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 무한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이상을 초월해서 되어지는 그것이 있다 하는 것을 여게서 말해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네 인간의 모든 실력을 멸망시키는 죄를 벗어 버려라. 이걸  벗어 놓으면 네게 있는 실력은 무한하다. 무슨 무한하겠느냐, 인간에게 실력이,  죄를 벗은 인간의 실력은 무한하니 죄를 벗은 자의 그 실력에는 절대자가  연결되어서 배경이 되어 가지고 있다 고것을 여게서 말을 합니다.

또, 그러면 이래 가지고서 세째로 뭐 하겠느냐? 달음질 쳐라. 달음질치는 데에는  어떻게 사느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그러면 예수님이  이렇게 완전 승리한 거와 같은 이 승리를 네가 이루도록, 이 완전 승리를 완전히  네가 점령하도록, 완전한 승리를 가지도록 네가 달음질하라.

달음질하는 데에는 세 가지로 달음질하라. 세 가지로 달음질. 예수님이 세 가지로  달음질 해 가지고 성공했으니까 너도 세 가지로 달음질 해 가지고 성공할 수가  있다, 이 외에는 딴것이 없다. 세 가지로 달음질하는 것은 네 앞에 당한 경주, 네  앞에 당하는 네 노선, 현실 현실로 계속되어 있는 네 앞길 이것은 셋으로만  달음질할 수 있다. 세 가지로만 달음질 할 수 있다. 이 현실 이 경주장은 세  가지로만 달음질해서 예수님에게 도달하지,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께  도달하지 이 세 가지로 경주하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써는 도달할 수가 없다. 이  세 가지로 경주해서 도달하라.

왜? 예수님이 이 세 가지로 경주해 가지고서 승리의 언덕에 섰다. 언덕에 섰는데  너도 이 세 가지로 경주하면 언덕에 선다. 예수님은 없는 가운데서 창작적인 이  세 가지를 한 분이시지마는서도 너는 이미 해 놓은 것을 보수만 하면 된다.

이해가 됩니까? 또, 경주하라.

또 넷째로는, 너는 언제나 현실에서 살지 말고 결말을 보고 살아라. 너는  언제든지 이 현실을 이거 좋다 나쁘다 그랄 게 아니고 ‘이 결과가 어찌 되나?’  너는 결과에서 살아라. 결과를 보고 현실을 살고, 현실을 보고 현실을 살지 말고  결과를 보고 현실을 살아라. 결과에서 살아라.

또, 다섯째로는 뭐이냐? 네가 인간으로 더불어, 인간으로 더불어 일대 일로 살지  말고, 일대 일로 살지 말고, 일대 일로 살아서 인간 그까짓 거 승리해 봤자 거지  그거 승리해 봤자 얼마 될 게 뭐 있나? 일대 일로 살지 말고 너는 위에 계시는  그분이 너에게 갚아 주심을 받는 그 큰 지금 말하자면 아이들 말로 큰 구찌가  있다 하지마는 참 큰 구찌가 있으니까 이제 그것을 생각하면서 땅 위에 살고  네가 거지 사람들하고 일대 일로 사는 그런 일 하지 말고 네가 위에 그분이 그  충만한 것으로 너에게 주실 수 있도록 하는 그 방편을 취해서 살고 네가 인간대  인간으로서 그렇게 똑똑한 사람으로 살지 말아라.

악인의 거역한 것을 당신이 참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받았지 만일에 거역한  걸 참지 안하고 일대 일로 했으면은 우리도 죽고 당신도 실패하고 다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기 때문에 일대 일로 살지 안하고 억울함과 애굴함을 당하면서  그분의 갚는 그 도우심을 바라는 그것을 네가 그 면에 눈을 뜨고서 그 방편을  취해 가지고 살아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밤에 몇 가지 배웠습니까? 몇 가지 배웠소? 녜, 이 다섯 가지  배웠는데 요것을 금년에 기억합시다. 금년에 요 기억하면 금년 내내 이거  가지고서 먹어도 양식이 남고 배가 부르고 얼마든지 능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 듣고는 실행을 해요. 실행 안 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실행만 하면 막  영육의 축복이 막 쏟아져 나오요, 실행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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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2 근본 교리 신조/ 창세기 26장 1절-5절/ 860517토새 선지자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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