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제사장


선지자선교회 1983년 9월 15일 목새 

 

본문 : 골 3 : 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우리는 전인류는 두 종류인데 두 종류 중에 택함을 입은 종류에 속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련 가진 그 관련을 여기에 다섯  가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라고 하면 영원 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실 때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목적을 세우실 때에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세웠습니다. 우리가  그때 있어서 우리룰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목 적이 곧 우리의 택하심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았는데 그 목적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두었습니다. 하나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 두었고 그리스도가 그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직책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직책의 이름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  하나님이 그리스도직을 맡은 그 하나님을 제이위라 성자라 그렇게 나타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직을 다 감당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성만 있을 때에 예수님이라고 부르지를  안하고 신성과 인성이 갖추여 가졌을 때에 예수님이라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은 곧 그리스도의 직책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직책을 챈할 수 있는 그 모든 근거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직책을 하는 데에는 순위적으로 죄가  없어야 그리스도 직책을 하지 죄가 있으면 그리스도 직책을 못 합니다. 그리스도  직책은 죄를 없이 하는 것이 그리스도 직책이요 또 하나님으로만 피동되는 그  의를 이루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직책을 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과 화친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의 직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게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함께 살아나고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 타나리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예수님으로 오시기 전 그 신성이 그리스도신데  그리스도의 그 직책을 이루시기 위해서 도성인신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먼저가 아니고 그리스도가 먼저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만의 이름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피조물된 우리 택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피조물이 되어  오신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는 것은 근본 그리스도로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예수되어 오셨다 하는 그 순서를 말할  때에 그리스도 예수라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런고로 마치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는 비유건대 나무 둥치와 같고 우리는 거게 속한 가지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했습니다. 가지는 자체가 생긴  것도 둥치에서 나와 가지고 생겨졌고 또 자체가 자라는 것도 둥치의 진액받아  생명받아 자라고 모든 것을 둥치로 인하여 생겨졌고 살고 자라고 열매맺는 것과  같이 우리는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겨진 자요 또 자라가는  자요 또 결실을 맺는 우리들입니다.

 그것을 여게 나타내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고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살다가 그리스도가 영광으로 나타날 그때에 우리도 그 영광 중에 함께  나타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직이 무엇인가? 제일 모든 존재들에게 환영을 받는 영광된  직책이요 또 제일 중요한 직책이요, 제일 존귀한 직책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합니다. 하나님만 계시고 만일 그리스도의 직책을 하나님이  하시지 아니했다고 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다 멸망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후에 그리스도 직책을 행하셨기 때문에 멸망받을 피조물이,  멸망받은 피조물이 다 완전히 영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늘나라는 어떤 것이 하늘나라인고 하니 모든 피조물을 그 이하에  두고 하나님 한 분을 그 위에 두고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중보 위치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직이요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에는 어떤 자들만 가 있는고 하니 그리스도인들만 가서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것 안에 있는고 하니 영계와 물질계의 만물 안에  있습니다. 만물은 그리스도인들을 모시고, 그리스도인들을 모시고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옹호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천군 천사도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모시고 옹호하고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모시고 옹위하고 있습니다.

 왜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인들을 옹호하고 모시고 있느냐? 근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지마는 지음을 받은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나, 먹는  것이나, 형통한 것이나, 힘이나, 피조물 그 자체에게 필요한 모든 생명과 신령에  속한 영원의 완전에 속한 그 모든 것이 이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만물들에게 충만케, 모든 면을 충만케 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그렇게 충만하게 해 주는 역사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 인인데 그리스도인  저희들이 무엇이 있어서 만물에게 모든 존재에게 모든 이름, 모든 종들, 모든  나라, 모든 존재들 그 전부들에게 이렇게 충만케 해 줄 수 있는가?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것만을 가지고서 그렇게 옮겨주는 전달해 주는 그 위치를  가지고 역할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역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것을 피조물들에게  운반해 주는 시은의 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베푸는 시은의 기관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죽었고 살았고 자라고  일하고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그 영광 중에 같이 나타나는  그때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늘나라는 어떤 것만 하는 자들이 모인 것이  하늘나라인가? 다시 말하면 피조물과 자존자와 그 사이 중보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중보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그 위치는, 중보의 위치는, 하늘나라는 그  나라는 어떤 것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느냐? 그리스도직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또 어떤 자들이 있느냐? 그리스도직을 하는 데에 수종드는 것들이  모였습니다. 천군 천사는 옹위를 해서 그리스도인들의 하는 일을 수종들어 돕고  있는 것이 영원한 천사의 직책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4장에 사탄으로 더불어 투쟁해 가지고 사탄을 이겼을 때에  광야에서 공생활을 출발하신 후로 제일 처음 승리가 마태복음 4장 광야 금식기도  하시면서 이기신 이기심입니다. 그때 이겼을 때에 사탄은 물러가고 천사들은  와서 수종들더라' 거게 마태복음 4장에 그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고로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직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인 신인양성일위이신 그분이 원둥치가 되고, 비유입니다.

원둥치가 되고 그로 인해서 거게서 생겨져 나오고 그로 말미암아 자랐고 그로  말미암아 좋은 결과를 맺게 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나라에서 그리스도직을  행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은 그리스도직을  완성하신 그 가치로, 그 공로로, 그 비판과 평가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자존하신 하나님 외에 피조물로서는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되고  예수님이 제일, 자존자 다음으로서는 존귀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것이 제일 존귀한  가치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성뿐이라면 신성이 피조물인 이 피조물과의 관계가 초절되었습니다.

그 관세가 초절되어서 초절된 관계를 다시 결합을 시키는 데에는 피조물이 되지  안하면 결합될 수 없어서 창조주가 피조물로 오셨습니다. 피조물로 오셨으나 고  창조주가 변질된 것은 아닙니다.

 창조주가 피조물로 오신 데 대해서도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로 오신 그때부터 창조주는 없어졌고 창조주와 피조물과 둘이 섞여서 한테  혼합돼 가지고 된 것이 예수님이시라 그렇게 주장하는 그것도 다 틀려서  이단입니다. 또 창조주는 알맹이요 피조물은 껍데기라 그렇게 말하는 것도  그것도 또 틀렸습니다. 이단입니다.

 하나님은 참 하나님으로 그대로 계시고 또 사람은 아무리 예수님의 인성이 돼도  언제나 그것은 피조물로 사람으로 그대로 있는데 하나님과 사람이 한 격위를  이룬 것입니다. 한 격위를 이루었다 말은 하나님과 사람이 전 움직이는 그  움직임이 하나되어 움직이고, 또 하는 일이 한 일 하고, 결과를 맺은 그 결과가  한 결과를 낳는다 그러기 때문에 인격의 위라, 격위라, 지위라, 직분이라는  직위라 그렇게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순전히 그리스도직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 생활은 무슨 생활인고 하니 그리스도직을 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생활입니다. 그런고로 하늘나라의 실력은 어떤 것이 하늘나라의  실력인가? 하늘나라의 실력은 그리스도직을 하는 그 실력이 하늘나라의  실력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가치로 알아서 대우하는 것은 어떤 것을  대우하는가? 그리스도직을 행하는 그것을 가치로 알고 많이 행하면 가치가 많고,  크게 행하면 가치가 크고, 작게 적게 행하면 그 가치가 적고 환영도 대우도 적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늘나라에 다 가서 살기는 살지마는, 택한 자들은 다  거게 가서 삽니다. 딴데 가서 못 삽니다. 택한 자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늘나라 가서 사는데 그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다시 살아나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안으로  피난하는 그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한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영광이  없습니다.

 영광이 없다 말은 하늘나라에 실력이 없고, 할 일이 없고, 대우받을 일이 없고,  필요한 필요성이 없고, 그러니까 거게서 영생을 하지마는 아무런 가치적 존재나  권위나 지위나 환영이나 대우나 영광이나 모든 것에게 봉사하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 생활은 다른 말로 하면 봉사의 나라라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그리스도직을 한다 하는 그것은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 직책을 하는 것인데 제사장직은 어떤 것이 제사장직인가?  제사장직을 우리가 다는 알 수 없으나 구약에 제사장직을 어떻게 했나 하는  그것을 가지고서 제사장직을 강령적으로는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제사장직을 흠이 없이 완전히 그 직을 완료하신 완성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사장 노릇을 어떻게 했으며, 선지 노릇을 어떻게 했으며,  왕의 노릇을 어떻게 하셨는가 하는 그것을 예수님께서 나타나셔 가지고 하신  일을 보아서 우리가 다소 짐작하고, 또 하신 일을 보아서 알지 못하는 것은 구약  때에 하나님께서 제사장직은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 것으로 제사장직을 가르쳐  주셔서 신정국가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신정국가에 제사장도 있었고 선지자도  있었고 왕들도 있었는데 그 셋 직분을 다 기름을 부어서 장립을 시켰습니다.

 기름을 부어서 장립을 시켰는데 그리스도라 말은 기름부음이라는 말의 뜻인데  기름부음이라는 것은 제사장직으로, 뿔에다가 기름을 담아 가지고 제사장 장립을  시키고, 선지 장립을 시키고, 왕의 장립을 시켜서 신정국가에서는 이 세 가지  직책을 세울 때에 그 뿔에다가 양의 뿔에다가 기름을 담아 가지고 그 기름을  머리 위에 부으면서 장립식을 합니다. 오늘에 목사들은 목사님들이 손을 머리  위에 얹어 가지고 안 수하면서 장립시키는 것과 같이 그렇게 그 직책을  맡깁니다.

 그러기에 신정국가서는 기름부음을 받지 안하면 왕도 못 되고, 선지자도 못  되고, 제사장도 못 됩니다. 기름부음을 받아 가지고 제사장 선지 왕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구약에서 제사장직을 어떻게 했는가 살되보고 또 신약에  와 가지고 제사장직의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 가지고 그 제사장직을  완성을 했는가 살펴봐서 구약에 제사장들을 신약에 제사장 예수님이 하신 것을  보아서 깨닫고 신약에 제사장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나 하는 것을 구약을  보아서 깨닫고, 그러기에 구약은 신약에서 깨닫고 신약은 구약에서 깨닫도록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 말이 다 거게서 연관성 있는 말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에는 우리가  제사장들이 어떻게 했나, 선지자들이 어떻게 했나, 왕들이 어떻게 했나 그것을  보고 배워 가지고 우리가 그대로 하면 되고, 또 신약에 완전한 제사장이시며  선지자시며 왕되신 주님이 어떻게 하셨나 하는 것을 우리가 배워 가지고 그렇게  우리의 상식으로 또 기존 지식으로 우리가 행하면 그 나머지는 성신의 감동이  와서 우리에게 세밀하고 깊은 부분은 가르쳐 가지고 그 직책을 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구약 때에 제사장직은 간단합니다. 양을 잡아 가지고, 짐승을 잡아 가지고  속죄제를 드려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 지은 것을 다 도말하는 것이  제사장직입니다.

 그러면 그 죄를 도말할 때에는 반드시 그 죄값으로 희생되는 것이 있어야  되는데 그 죄값으로 희생되는 것은 구약 때는 짐승이 희생이 됨으로 사람이  범죄한 것을 짐승이 대신 그 벌을 받음으로써 죄가 속죄 됐습니다.

 짐승의 벌받는 걸 가지고 사람이 죄지은 벌이 없어질 리가 없는 것인데 그것은  참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의 지은 죄를 다 대신  형벌받으실, 대신 형벌받으실 그 일을 예표해 가지고 하나의 제도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셔서 그 제도를 사용한 그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그때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때사 비로소 짐승 가지고 제사 지냈던 그 예표로 했던 것이 완성이 돼서  성전과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갈라져서 죄 문제가 해결됐다. 또 바위가  터져서 갈라졌다. 인간에게 강퍅하고 완패한 원죄 본죄의 부패성이 깨지게 됐다.

또 죽어 무덤 가운데 들어 있던 성도들이 다 살아남으로 비로소 예수님의 부활로  이제 부활이 완성됐다.

 이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율법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왔다' 말씀을 하신 것은 율법은 구약 시대의 그 모든 제도로  가지고 하던 그 제도를 가리켜서 율법이라 하는데 그 제도가 실상으로 이제는  완성하기 위해서 왔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말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그렇게 예수님을 가리킬 때에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그렇게  말씀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에 있는 제사장들은 무슨 일 했느냐? 첫째는 그 죄값으로 짐승이  죽는, 죄를 멸하는 데는 죄값으로 죽음이 있어야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거게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의 형벌로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써  속죄제가 됐습니다. 또 속건제가 됐습니다. 속건제는 허물의 값으로 죽은 것을  속건제라 하고 허물이라. 알고 지은 죄 모든 그 죄를,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가 다 속죄제에 속하고 속건제는 자기가 알고 모르고 짓는데 그 죄를 안  지으려고 애를 쓰는데 잠깐 실수해 가지고 짓게 되는 것을 가리켜서 허물이라 해  가지고 속건죄라, 허물을 속하는 제사라 해서 속건제라 이랬습니다.

 속건제 속죄제 또 화목제, 화목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불목된 것이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불목된 것이나 모든 불목된 그 불목을 양이 죽음으로 없애는 그  제사를 가리켜서 화목제라. '이제 제사 하나 남았는데 하나 남은 것은  번제입니다. 이제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다 바치지 못한 죄를 이것을 속하기  위해서 양이 죽음으로써 이것은 하나님 앞에 다 바치는 그런 의식을, 바친다는  의식을 하는 그것이 번제입니다. 이 번제 이 네 가지 제사를 지낸 것이  제사장직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제사장직을 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렇게 당신이  대신 죽으심으로써 속죄제물이 됐고 속건제물이 됐고 화목제물이 됐고 번제물이  된 예수님의 공로를 끌어다가 이 사람들에게 입혀, 예수님의 공로를 끌어다가  사람들에게 전달해서 이 공로를 입도록 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희생되는 그것이  뭣이냐? 제사장직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희생해 봤자 우리 희생으로서 털끝만한 죄악도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대속의 제물의 그  훠생을 우리가 전달하는 데에는 모형적으로, 그 곁가지로, 거게 돋아 오르는  움가지, 움싹 가지처럼 예수님에게서 우리가 자라나와 생겨나와 가지고서 하는,  예수님의 하늘에서 땅에까지 낮아지심같이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따라서 우리가  낮아지고, 예수님의 가난해지심에 따라서, 가난해지지 안할 건데 다른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 가난해지는 그 가난, 또 예수님께서 오셔서 온갖 사생활  공생활에서 여러가지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서 온갖 참고 견디시고 희생하시고  하는 그것을 본받아 거기에서 힘을 얻어 거기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생겨난 그  희생을 가지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번제 이  제사로 사람들을, 내가 그렇게 예수님의 공로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전하는데  예수님의 모형으로 내가, 거게는 양이 죽는데 예수님이 죽는 것인데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된 그 대속을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할 때에는 우리가 죽음으로  전해야 되고 우리가 희생으로 전해야 되기 때문에 그 희생은 말하자면 낮아지는  희생이요, 가난해지는 희생이요, 한번도 자유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시키는 대로  우리는 주님의 법도대로 하는 그 희생이요, 마지막에는 소유와 몸이 모두 다  희생되어지는 그 희생과 길이 길이 참고 견디는 예수님이 하신 꼭 그 모형대로  그대로 해서 예수님의 공로를 전달해 가지고서 사람들을 죄에서 구출하고  하나님에게 다 속해서 바쳐서 살게 되고 하나님과 그 사람과, 또 그 사람과 모든  사람과, 또 그 사람과 모든 만물이 서로 이렇게 화평하도록 화목하도록 하는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제사장 역할이요,  그 다음으로 하는 것은 제사장이 모든 곡식으로 소제 요제 또 전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모든 물질 축복을 이것을 머리를 떼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이것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로 된 하나님의 것을 제가 받아  가지고 사는 것을 알아 이제 이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이것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용하고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사용하고  이것 사용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어겨 사용하지도 보관하지도  아니하고 이것을 사용하여 다른 무엇을 섬기지 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 일을  하도록 그렇게 알려 주고 그 일이 되어지도록 역할하는 그것이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그러면 이 구약에서 제사장이 어떤 일 했느냐 제사장 일 한 것은 구약에서는  그렇게 나타났고, 신약에서는 당신이 하나님으로서 지극히 큰 지위를 완전히  내놔서 지위가 하나도 없었고, 지위가 하나도 없었고, ○○집사? 손 들어 봐. 안  나왔나?  그래,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지극히 높은 지위에서 음부까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기까지 낮아지심으로써 그 직책을, 또 그 부요를 다 주셔서  가난해짐으로써의 그 직책을, 또 하나님이시면서 절대 복종의 순종의 희생으로써  그 직책을,  그러면 낮아짐으로 가난해짐으로 심신의 자유를 다 희생함으로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가져  사람의 모양을 가졌으니' 창조주가 피조물같이 천해졌으니, 그래 가지고  죽기까지 복종깼다 이랬습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께서 제사장직을 행했고  제사장직을 행해서 이루어 놓은 그 공로의 혜택을 우리에게 입히기 위해서 또  창조주가 영원히 피조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피조물을 입은 것입니다.

 육체로 말하면 우리는 죽었던 것이 살아났으니까 좋은 걸로 알지마는 하나님이  영원한 피조물을 다시 입게 된 것,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된 그것은 우리로  말하면 우리가 구더기같이 된, 우리가 구더기 됐으면 우리가 구더기 된 그  천하게 된 것과 하나님께서 인간이 된 그 천하게 된 것과 그 둘이 어느 것이  멀겠습니까? 어느 것이 멀겠습니까? 우리가 구더기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 피조물과 피조물, 피조물 중에 피조물 차이 있는, 피조물  중에 귀한 것이 피조물 중에 천한 것 됐지 창조주가 피조물 된 것과 같은 그렇게  천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다시 우리를 대속하신 그 은총을 우리에게  입혀 실효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다시 사람되신 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하시기까지도 그 사랑과 그  공로와 그 희생이 지극히 크지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셔 가지고 하나님이 지금도  송장과 갚은 우리 속에 들어오셔 가지고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공로를 입어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온전한 제사장, 당신이 제사장 직책을  완수한 것과 같은 그 제사장 직책이 완전히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사람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러면 크게 말하면 제사장직은 깨끗게 하는 직책입니다. 제사장직은 자기의  전부를 희생해 가지고서 더러운 상대방을 깨끗게 하는 것이 제사장직이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원수된 그것을 깨끗해서 하나님과 화친케 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 가지고서 화친을 이루게 하는 것이 제사장직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모든 만물과의 관계가 조금도 권세부리지 아니하고 자기의  희생으로써 만물과 만물과의 관계, 만물과 조물주와의 관계 그 관계가 바로  맺어지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자신이 희생되는 그것이 제사장 직책입니다.

 또 그 다음으로 하나 남은 것은, 이렇게 해 가지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매달려야 살고, 하나님에게 속해야 살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의 법도로 그의  제도로 그의 능력에 그의 본질과 본성의 연결돼야 이것이 살지 하나님의 본성에  연결된, 다시 말하면 성결이 아니면 그 것은 하나님이 그걸 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 관계지 하나님에게 멸함을 받습니다. 멸함을 받지 않는 데에는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생명을  얻었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것이 제사장직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게 와 있네. 내가 말을 들으니까 어데든지 다른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데에 밑에 발돋음이 돼 가지고서 디딤판이  돼야 된다. 모든 사람을 서게 하고 살게 하는 데에 거기에 자기는 이용되는 자가  돼야 된다 하는 그 말을 자각을 했는지 누구한테 배웠는지 그 묘한 말입니다.

묘한 말이나 그것이 말하자면 그것이 제사장직의 하나의 부류에 속한 말인데 이  길 그 외에는 사람들이 박애주의를 가지고서 다 희생을 해도 소용이 없어. 그게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람에게 참 그에게 발돋음이 되고 그이의 거처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 이렇게 그들에게 참 치료하는 치료가 되고 이래 되는 것이  좋지마는 이 제사장직을 하는 이것 외에 다른 것으로써는 그 일이 되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제사장직으로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무궁세계는 그렇습니다. 무궁세계는 강제가 없습니다. 강제가  없고 무궁세계는 버러지 한 마리도 다 자유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래  지어놨습니다. 풀 한포기도 자유권을 가져서 풀도 그것이 상당한 논리를 할 수가  있고 상당한 비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풀 한포기가 사람들을 대해서 논평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제가 만물 재판이라 그렇게 표시를 해서 여러분들에게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만물 재판이라.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비판적인 나라요 평가적인 나라요 영원 무궁한  평가적인 나라라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궁한 나라는  모든 자기에게만 유익이 있고 남에게 유익이 없으면 그 평가가 내게는 유익이  있지만 다른 데는 유익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이것은 존재할 수 없다. 찬성을 못  합니다. 다른 이에게 유익이 되고 내게 유익이 없어도 그 찬성을 못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에게 유익이 되고 없어서는 안 되고 필요하고 또 모든  것에게 자기의 희생의 공로가 거기 가 가지고서 내 희생이 거게 가 가지고서  피와 살이 되고 그 힘이 되고 행복이 되고 이렇게 되어진 그것만치 영광을  돌리고 찬성을 하고 존대를 하고 대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경에 묘사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신 것은 그 하나의 묘사한 말씀인데 소금은 그 자체가 녹아짐으로 그  소금이 다른 식물이나 어데 가 가지고 효력을 나타냄으로서 깍두기면 깍두기라  하는 존재가 생겨졌고 또 무슨 방부면 방 부라는 것이 존재가 생겨졌고 이렇게  해서 자기가 녹아져서 모든 대 들어가 가지고서 역할 함으로 그것이 되어지는  그것이 기독자의 생활이라 그말입니다.

 그말은 자기의 희생이 다른 이에게 생명이 되고, 행복이 되고, 평강이 되고,  모든 형벌을 면하는 사죄가 되어지고, 칭의가 되어지고, 그이의 모든 근심이 다  사라짐이 되고, 안심이 되어지고, 그들에 지식이 되어지고, 지혜가 되어지고,  힘이 되어지고, 실력이 되어지고 전부 자기가 녹아져 가 가지고서 그 녹아진  것이 거게서 배 가지고서 되어지는 것이 마치 소금이 녹아져 가지고서 배면은  썩는 것을 방부하기도 하고, 또 거게서 그것대로의 식물의 맛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것이 또, 링게르가 내나 소금물인데 그 소금이 들어서 염분이 들어서  다른 것에게 힘을 주어서 강하게도 만들고 이렇게 소금이 녹아져 가지고서 다른  각 종류의 존재대로의 효력을 나타내고 그것을 성립되고 그것이 조성되어지도록  하는 그것이 소금이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소금과 갈은 그런 성질의 생애가  기독자의 생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제사장직, 내게 제사장직이 아닌 것으로 사는 자는  제사장직을 안한 그것 때문에 대신 죽은 주님과 함께 죽어서 내 생활에서는  제사장직이 아닌 자로 사는 것을 날마다 죽이고, 선지직으로 살지 안한 것을  날마다 죽이고, 왕직으로 살지 안한 것을 날마다 죽이고, 또 날마다 제사장 선지  왕직으로 사는 사람이 새로 생겨나고, 새로 나 생겨나고 어제는 예를 들면  하나였는데 오늘은 서이 되고, 어제는 서이인데 오늘은 너이 되고,  이래서 자신들이 자꾸 이렇게 제사장 선지 왕, 다시 말하면 서이를 합해서  그리스도직인데 그리스도직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생겨나고 또 자라가고, 이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으로 감추어지고,  하나님 안으로 피난을 들어가고, 하나님 안으로 숨고, 내가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을 하면 그 직책을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하나님께로 피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26장에 '성들로 들어가라 '잠깐  동안 이 성 안에 들어가서 숨어 있으라 '문들로 들어가라' 말하는 그것이 그런  것을 다 표현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안에 감추었다 그말은 내가 제사장직 한 그것은 그것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피난하는 것입니다. 고거 영생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완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모든 존재에게 환영받을 자로 승격하는 것이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그것이 영원한 권위 속으로 들어가서 영원한 권위 속에 들어가서 영원한 권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 안에 감취이는 것, 또 그러면 그게 된 것만치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에 영광 중에 함께 나타나리라 예수님의 재림 때부터, 지금은 희생의  때입니다. 지금은 희생의 때나 이제 재림 그 때부터 영광의 때인데 영광으로  나타날 때에 '그때 함께 나타나리라'  그러면 영광으로 나타날 때 우리가 함께. 나타나는데 그 영광은 모.든 것에게  대접을 받는 영광입니까 희생하는 영광입니까? 그 영광은 받는 영광입니까 주는  영광입니까? 그러면 주고 주고 하면 나중에. 가난뱅이가 됩니까 점점 더  부요해집니까? 어떻게 부요해집니까? 녜, 그것은 식물에서 잘 계시하고  있습니다. 원둥치에서 진액을 받아 가지고 그 다음에 가지들에게 자꾸 주면,  받아 쭈고 받아 주고 받아 주고 하면 그 가지가 차차 커집니까 작아집니까?  커집니다. 저는 제게는 없어. 등치에서 받아 가지고 주면 제게서 받아 가지고  가지가 하나 나 가지고 막 온 들을 덮을 만치 이렇게 많아지면 그 가지는 저  아니면 죽기 때문에 그 가지는 저만 바라봅니다. 그러면 저는 받아 가지고  줌으로써 자기가 커집니다.

 그러면 모든 걸 주고 주고 이렇게 줘도 줌으로써 자기가 줌으로 생겨진 게  많아지니까 그것이 자기 영광이요 자기의 상급이요 자기의 기업인데 그렇게 받아  줌으로 점점 자기가 커져가는 것이니 우리에게 주는 분은 누굽니까? 주는 분은  누굽니까? 받아서 자꾸 그 다음에게 주려고 받는데, 받아 가지고 주는데, 주는  그 영광인데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또 잊어버렸다 말이요, 또 벌써 지나가니까.

주는 영광인데 그러면 주는 영광이면 받아서 줘야 되는데 받아서 주면 자체가  작아지지 안하고 받아 줄수록'커지고 받아서 줘서 생겨진 것은 전부 제게  속했습니다. 받아서 줘서 생겨진 건 전부 제게 속했어.

이러기 때문에 여게 오권찰이니 뭐 원반사니 하는 것은 제가 받아 가지고 그  다음에 준 것을 그걸. 반대해도 그대로 있는 것인데 네가 어데서 배웠는지 네가  알라' 하는 것인데 그걸 받아 가지고서 준 것이 제가 어데서 받은 은혜의 기관을  또 끊어버리면 그것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둥치에서 끊어졌습니까 안  끊어졌습니까? 끊어졌소 안 끊어졌소? 왜 대답 못 해? 끊어졌소 안 끊어졌소?  끊어지면 마릅니다. 끊어지면 마릅니다.

 그러기에 시은의 기관을 배척하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 오계명을  말한 것은 시은의 기관을 귀중히 여기라, 그로 통해서 네게 연결이 됐기 때문에  호박 줄기와 같으니 그것을 네가 네 부모를 공경하면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살리라' 하는 것은 그 땅에서 망하지 안하고 잘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하늘나라는 털끝만치도 흠과 점이 없는 완전의 나라입니다.

완전의 나라요 완전의 방법이요 완전의 제도요 완전의 법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는 진실로만 가지 진실이 아님 허영이 있으면 그만치 자기는  망해버리고 말지 여게는 서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영광 중에 같이 나타나리라 하는 것은, 거게는 이 세상이  모르요.세상에 그날 '아따 오늘은 수입을 많이 받았다' 이래 기뻐하고  벙긋벙긋하고 '오늘은 나를 높여서 이렇게 나를 높여서 아주 존귀하게 하는데  모르드개 저놈은 나를 높이지 안해. 오늘 다른 사람들은 나를 높여서 내가  이렇게 올라갔는데 모르드개 저놈은 나를 높이지 안하니까 저놈을 어떻게 해야  되나? 나무 오십 자 길이 되는 나무를 세워놓고 그 위에 모르드개를 달아 죽여야  되겠다' 하고 제가 죽일 수 있는, 하만이가 제일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높이 올라갔고 자기를 높이지 안한 사람은 원수로 봤는데  원수로 본 원수는 멸해지지 안하고 자기를 높이지 안 한다고 멸하는 자기가  멸해져서 다른 사람이 높인 그것 때문에 하만이가 오십 척 나무에 달려서  죽었다. 이러기 때문에 높이는 것을 왼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자기를 높여 주지 않는 자를 적대시하지 말고 네가 높이지 않은 거게서 삼가  거게서 네가 내려오라.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자꾸 아래로 내려가면서 커지는 것이 그것이  하늘나라요 세상은 올라갈라 하다가 잡아 던지니까 툭 떨어지고 올라가다  떨어지고 올라가다 떨어지고 이래 가지고 떨어져서 지옥 밑층까지 떨어지는 것이  마귀가 시키는 방법이요 마귀의 법칙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영광은 줌으로 영광이니까 줘 가지고 무슨 영광이며  높임으로 영광이니까 높여 가지고 무슨? 제가 높임을 받아야 되지. 그게 마귀의  법칙이라 그말이오. 마귀의 법칙과 하나님의 법칙이 이렇게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한일서 3장에 '세상아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도 알지  못합이니라 우리가 힘쓰는 것도 모르고, 우리가 자라는 것도 모르고, 우리가  영광 있는 것도 모르고, 우리의 기쁨도 그들은 모른다. 왜? 죽은 것이 산 것을  알 리가 있느냐? 요한복음 1장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두운 것이 어찌 빛을  깨달을 수가 있겠느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 다음에 이제 선지 왕에 대해서 시간  있으면 증거하겠습니다.

 제사장세 대해서는 간단하게 증거했는데, 그러기에 내가 제사장으로,  제사장으로 살지 않는 그놈을 죽여야 돼. 이런데 제사장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그놈을 죽이고 내가 제사장으로 제사장으로 살지 못하다가도 이 시간에 또  제사장으로 사는 생활로 또 살아나고 또 제사 장으로 나는 살아서,  제사장으로 살면 어데로 들어갑니까? ○조사님? 제사장으로 살면 어디로  들어가요? 이것 또 모르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세째 뭐이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님 안으로, 제사장직을 함으로 하나님 안에  감취어진다 그말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인데 들어가는 것은 완전 속으로  들어가고, 영생 속으로 들어가고, 참 가치 속으로 들어가고, 권위 속으로  들어가고, 환영 속으로 들어가고, 만물에게 혜택을 입힐 수 있는 만물의 봉사자  자격 속으로 들어간다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어리석지 말고 마음을 넓혀서, 마귀란 놈은 우리를 어떻게  해요? 좁혀요 넓혀요? 좁혀요. 하나님은? 우리를 넓혀요. 하나 알던 자를 둘  알고, 하나만 보고 살던 자를 둘 보고 살세 되고, 하나에 맞추던 자를 둘에  맞추고, 둘에 맞추던 자를 셋에 맞추고, 셋에 맞추던 자를 넷에 맞추고, 넷에  맞추던 자를 여럿에게 맞추고, 여럿에게 맞추던 자를 모든 존재에게 다 맞춰서  살도록 자꾸 우리를 넓혀서 온전하고 구비하도록 우리를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귀란 놈은 자꾸 조불트려요, 조불트려 가지고서 제일 조부라진 데에 제일  조부라진 것은 어디로 조불트려서 가둔 감옥, 제일 좁은 감옥이 무슨 감옥이라  했지요? 신경 감옥 꽉 쥐고 놓지 마십시오. 신경 감옥. 신경 감옥.

 하나 예를 들면은- 낚싯대를 쥐고 요렇게 요렇게 하는 그게 신경 감옥에  갇혔어. 요새 노름 하는 건 내가 잘 모르는데 그전에 노름하는 것은 저도 해  봤고 그걸 잘 압니다. 투전이라고 있는데 투전이 요걸 장땡이라 하는 것은 열십  자 둘하고 한 일자하고 그라면 장땡인데 요래 가지고 요래 열십자 둘이 나오면  그 하나를 거머쥐고 요게 한 일자가 나와야 되는데 한 일 자가 나오면 돈을 다  거머닥치는데 한 일자가 나와야 되는데 그때 신경이 막 기울어져 가지고서 한  일자가 나오나 나오나 해 가지고서, 그러기에 이걸 얼른 몌 보지를 못합니다.

행여나 한 일자가 안 될까 싶어서 요래 가지고, 그걸 조운다 하요. 요래 가지고  요래 손가락으로 요래 쪽 요래 요라며 끝어머리를 조그매 보려고 요래 가지고  아주 신경을 거기다가 그래 가지고 요래 조우다가 그게 어째 한 일자가 안 되면  그만 턱 쓰러져버려. 한 일자 그중에 되는 상바르면 한 일자가 떡 나오면 막  방바닥을 때립니다. '자! 장땡이다.' 그게 장 땡이다 말이오. 그것은 그것도  신경 감옥에 들어가 버렸다 그말이요 신경 감옥에.

 또 어떤 자는 남녀 이성 그 성신경 속에 들어가. 신경 감옥에 들었어. 그것밖에  몰라. 그것밖에 몰라서 그것으로 인해서 가정도 망치지, 자 기의 지위도 망치지,  재산도 망치지, 사업도 망치지, 권위도 망치지, 신용도 망치지 모든 것 다  망치고 거게 그만 그 감옥에 들어 가지고 아무것도 몰라.자기 영원한 수치도  영광도 하늘나라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 신경 감옥에 들어 가지고 그렇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이랬어. 그거 필요성 이상을 없애  그걸 죽이라. 살리고 숙달을 노력지 안하고 죽이기를 노력해. 요걸 뽈끈  거머쥐고 놓지 마. 이것만 해도 사람들은 큰 광명자가 돼지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데 잡고 놓지를 말아야  됩니다. 자기네들이 못 알아들어 그렇지 허탄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짜든지 알아듣도록 노력하고 요대로 살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 나는 장로인데, 나는 부자인데, 나는 고관대작인데, 나는 박사인데, 암만  그래도 이 자리 안 오면 몰라요. 모릅니다. 안 배웠는데 뭘 아요? 아무것도  몰라. 어떻게 살아야 될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살겠소? 어떻게 살아야 될 걸  알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안 살아지니까 자기를 마구 벌을 주고 이렇게  해도 안 되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인 줄 압니까? 자기 죽이는 일을  하려고 애를 쓰는데 날마다 자기 지옥 갈 자기를 살려서, 남이 대우 안 해 주면  그리고, 없는 것도 있는 체하고 간판을 내 걸고 이래 가지고 광고를 하고 자기  선전하고 다니는 그것도 하나 이치는 있지마는 어째 보면 참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결심을 가져야 돼요. 변하면 죽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4876 그리스도인이 준비하는 것/ 고린도전서 15장 50절-58절/ 1976년 42 공과 선지자 2015.10.26
» 그리스도-제사장/ 골로새서 3장 1절-4절/ 830915목새 선지자 2015.10.26
4874 그리스도직의 나라 천국/ 빌립보 3장 10절-12절/ 800406주전 선지자 2015.10.26
4873 극열한 풀무의 날/ 말라기 4장 1절-6절/ 820507금야 선지자 2015.10.26
4872 근본 교리 신조/ 창세기 26장 1절-5절/ 860517토새 선지자 2015.10.26
4871 근심하지 말라/ 요한복음 14장 1절-11절/ 850630주전 선지자 2015.10.26
4870 금맡은 자의 칭찬과 진노/ 마태복음 25장 14절-30절/ 870816주전 선지자 2015.10.26
4869 금년에 기억할 것 5가지/ 히브리서 12장 1절-6절/ 880101금야 선지자 2015.10.26
4868 금년에는 멸망의 원인인 죄를/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80101금새 선지자 2015.10.26
4867 긍휼이 제일/ 야고보서 2장 1절-13절/ 821114주전 선지자 2015.10.26
4866 긍휼이 제일/ 빌립보서 3장 4절-14절/ 820731토새 선지자 2015.10.26
4865 기능구원/ 베드로전서 3장 21절-22절/ 870703금새 선지자 2015.10.26
4864 기능구원/ 고린도전서15장36절-42절/ 880522주후 선지자 2015.10.26
4863 기능구원/ 빌립보서 3장 4절-16절/ 791227목새 선지자 2015.10.26
4862 기능구원/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870617수야 선지자 2015.10.26
4861 기다림과 간구 두 방편/ 출애굽기 12장 15절-51절/ 871117화새 선지자 2015.10.26
4860 기도/ 누가복음 18장 1절-8절/ 810225수새 선지자 2015.10.26
4859 기도/ 창세기 5장 21절/ 790724화새 선지자 2015.10.26
4858 기도/ 야고보서 5장 16절/ 800805화새 선지자 2015.10.26
4857 기도/ 마태복음/ 26장 40절-46절/ 831016주전 선지자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