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소망과 연성

 

1980. 3. 20. 목새

 

본문: 빌 1 :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우리는 하나씩 둘씩 성결 지식으로 비판하고 평가하고 성경지식을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또 우리의 주관을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해서 성경지식은  절대성이요 우리의 주관은 다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거짓된 것이 많기 때문에 이  두 지식이 서로 시비하는 이 시비를 가져 성경 지식이 내 주관을 완전히 이겨 내  주관이 성경지식에게 복종하는 이 단계에 이르게 하고 또 이렇게 확정된 이  확정을 자기가 실행하고,  또 경험하는 실행과 지식에서 또 수정되고 또 보강돼서 수정되고 보강돼서 경험  지식, 체험 지식 자기의 주관 지식 또 하나님의 지식 이 셋 지식이 많은 충돌한  너머에 하나가 되는 하나가 되는 평가적이며 비판적으로 하나가 되는 이 단정에  나아가야 하고 이 단정에서 자기의 소망과 목표와 방편 이 세 가지와 또 이  지식을 한테 섞어서 많은 투쟁과 시비한 결과로 하나가 되어나가는 이 단정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이르는 모든 전투의 원인은 내 자신이 타락했기 때문이고 또 세상이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기 때문이고 악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있을 때에는 이 세 가지는 하나로 단정되어 섞인 것이 없는  타락으로만 나아갔던 것인데 중보자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이것들과 대립되는 생명과 축복과 평강에 속한 것이 왔기 때문에 이러한 투쟁이  생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전투를 벗어날 수 없는 자들이며 또 이 전투가 구원 때문에  생겨진 전투인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화평을  주러 옴이 아니고 전투를 주러 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이런 대립적인  이질적인 생명의 것이 사망 안에 오게 됐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비하고 투쟁해서 모든 것에 단정을 짓고 달려야 합니다.

 우리의 받은 시간도 한정 있고 또 우리가 받은 모든 자원들이 다 한정 있는  자원들을 가졌습니다. 한 시간 허비하는 그만치 구원은 미완성되고 조그만한  양의 자본이라도 허비하면 그만치 구원은 미완성되는 이런 절대적인 제재를 받는  유한한 존재로 머물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다리, 오그라진 다리 이것을 가지고 곧은길을 택해서  달리라 이리저리 헤매는 갈 지(之)자 걸음 같은 그런 방황하고 뒤돌아보고 옆  돌아 보고 또 가면서 머뭇거려 지체하고 시비하고 하는 사람은 이 구원에 성장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터를 닦고 다시 터를 닦지 마라" 말씀했습니다.

"터를 닦고 다시 터를 닦지 마라" 하신 것은 무슨 일이든지 단정짓고 심각하게  단정짓고 단정 지웠으면 그것이 자기의 생활에서 틀린 것이 나타날 때까지 빨리  전진만 해라 이렇게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단일의 마음으로 달릴 때에 모든  것을 다해서 달릴 때 삐뚤어졌으면 주님이 다 운전사 같이 조정해 주시는 것이  그대로 행하라 어데까지 이르렀던지 그대로 달려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몇 가지 단정할 것을 며칠 전에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자연 은총 우리의 육의 생명도 자연 은총이요 이 살고 있는  몸도 자연 은총의 것이요 시간도 햇빛도 공기도 자기 기능도 모든 소유도 다  이것은 변동될 것들이며 다 불의에 속한 것들입니다. 다 죽음에 속한  것들입니다. 약함에 속했고 욕됨에 속한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이제 구속하기 위해서 변개하기 위해서 우리가 받은 선물입니다. 이런  것들이니 이런 것들을 나는 이것을 모으고 이런 것들을 모으고 보존하는 길이  하나 있고 이런 것들을 이미 있는 것은 없어지지 아니하도록 이것을 잘  보존할려고 하는 보존하는 길이 있고 적은 것을 많게 작은 것은 크게 적은 것을  많게 하는 이 길이 하나 있고 이미 있는 이것을 쓰는 길이 하나 있고 없게 하는  길이 하나 있으니 이 두길 중에는 우리는 어느 길을 택해서 우리 할 일이라고  알아야 하는 하는데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말하는 것에 속하지 안하고 뒷번에 말하는 데에 속했습니다.

우리는 적은 것을 많게 하려는 우리가 아닙니다. 적은 것을 바로 쓸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취할 길입니다. 있는 것을 없어지게 하려는 것이 우리의 취할  길입니다. 많은 것은 적게, 큰 것은 작게, 있는 것은 없어지게 하는 이것이  우리가 취할 방편입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될 때에는 옛사람으로  돌아갈 때에는 역연 이전과 같이 적은 재산을 많게, 없는 명예를 있게, 작은  권세를 크게, 자기의 소원 하나 이루어진 것을 보태서 둘 셋을 이루어지게  하려는 그것이 세상 사람이 취하고 있는 생애 방편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망에  속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단정짓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가진 이 모든 것은 주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다해서 우리를  구속하신 이 구속을 이미 법적으로 받아 가지고 있지마는 이것을 실제로 내가  받아서 누릴 수 있는 데에는 내가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변화가 되어야 하는 데는 주님이 주시는 이 구원, 이 법칙, 이 영감,  하나님과의 결합된 생명, 이것을 주님이 다해서 전부를 다 자본으로 투자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이것을 우리 것이 되어 있지마는 이것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내 것으로 누리는 데에는 이것을 받아 가지고 내 것으로 누리는 데에는  또 이것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을 다하지 안 하면 가졌으나 내 것으로 누리지를  못합니다. 가졌으나 내 것으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게 있는 것을 이것을 인해서 다 써야 합니다. 이 구속의  은혜의 것이 다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구속의 은혜의 것이 다 되어야  합니다. 이 구속의 은혜가 내게 있는 것을 다 자유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구속은 나보다 큽니다. 나를 살렸습니다.

 그러기에 내 모든 것이 구속의 것이 될 때에 구속은 산 것이요 이는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성의 것이기 때문에 이 구속에게 내 모든 것이 삼키어져서 구속  안에 들어가면 거기는 사망이 없습니다. 이 구속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구속은 하나님에게 완전히 쓰여져 이 구속은 하나님의 것이 되고 또 우리는  이 구속의 것이 되고 내 몸밖에 있는 모든 것이 모든 내 것이 이 구속의 것이  되면 그것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양심을 쓰면 잘 알 수 있는데 양심 안 쓰고  세상 지식을 가지고 쓰는 자는 말은 알지마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인정되지  않습니다. 인정 안되면 미혹시키는 마귀가 그를 혼미케 합니다. 어둡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 말은 맞고 하나님 말씀은 맞지 않습니다. 하늘의 소리는 들리지  안하고 멸망시키는 땅의 소리만 들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처음에 말하는 대로 모든 면으로 시비하고 투쟁하고 대결하고  대조해 보고 비교해 보고 비판해보고 이래 가지고서 단정짓고 가자 했습니다.

단정짓고 목표를 향하여서 주저하지 말고 무슨 어떤 사건이 하나 닥치면 또  어떻게 할까 이래볼까 저래 볼까 이렇게 또 그 터가 흔들려서 새 터를 닦으려고  다시 터를 닦지 말라 했는데 새 터를 또 닦으려고 날뛰지 말고 세상 끝 날까지  세상 뜨는 그 시간까지 일관적으로 단정짓고 달려야 하는데 달려야 하는 것 중에  하나를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뭐이냐?  그러면 내게 있는 것을 써서 없애기 위해서 나는 세상에 살고 있느냐 내게 있는  것을 더 많게 하기 위해서 이것이 없어지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해서 있느냐?  하는 이것부터 단정지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쓰기 위해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요 없어지기 위해서 세상에  있는 사람입니다. 쓰기 위해서 없어지기 위해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자살인가 세상을 싫어하는 불교와 같은 염세주의인가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자살이 아닙니다. 고행도 아닙니다. 그러면 고행이 아니고 자살이  아니고 염세가 아니데 이미 있는 것을 어떻게 없앨 것이며 어떻게 쓸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 구속이 왔으니 쉽게 윤곽적으로 말하면은 사죄가 왔고 칭의가  왔고 새생명이 왔으니 죄를 없애는데 이것이 다 투자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없이 하는 것으로 죄를 없이 하는 것으로 죄 없는 것으로  이것이 변화되어야 됩니다. 죄 없는 것으로 끝이 나야 됩니다. 죄 없는 것으로  끝나야 됩니다. 죄를 짓지 아니할려고 하므로 없어지는 그것도 죄 없는 이것의  것이 된 것입니다. 죄 없는 것이 됐소. 죄를 안 지을려고 하므로 없어지는 것,  또 죄를 안 짓는 데에 사용돼서 없어지는 것 죄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죄를  가지지 아니할려고 죄의 것이 되지 아니할려고 하므로 다 빼앗기고 깨트림을  받고 파괴를 당해서 없어지는 거 어쨌든지 죄를 없이 하는 이것으로 인해서  쓰여져서 없어졌던지 뺏겨져 없어졌든지 어쨌든지 죄 없게 하는 이 문제 때문에  없어지는 거 이것이 우리의 없어질 것들입니다.

 또 의를 보존하기 위해서 없어지는 거 또 의를 만들기 위해서 없어지는 거,  의를 파수하기 위해서 없어진 거, 의를 만들기 위해서 없어진 거 의를 만드는  데에 있는 자본이 들지 않으면 의가 조성 안됩니다.

 의를 빼앗기지 아니하고 보존할려고 하면 의를 내주지 아니할려고 하면  우리에게 있는 것을 내 줘야 되지 그래 안 하면 안됩니다. 의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있는 것을 그들이 빼앗고 빼앗아도 다 빼앗겨도 의를 내주지  아니할 때에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다 빼앗겨져서 생명이 딱 끝나 버리면은  저희들이 이 의를 뺏들기 위해서 우리를 아무리 괴롭혀 가지고 더 괴롭힐 수는  없는 없습니다. 끝났습니다.

 이러면 이것이 무죄, 사죄를 인하여 다 쓰여졌고 의를 인해서 다 쓰여졌고  하나님과의 결합이 끊쳐지지 않기 위해서 없어지는 것도 있고 하나님과의 결합을  가질려고 하므로 이것을 이용해서 없어지는 것도 있고 하나님과 결합 때문에  없어지는 거, 작아지는 거, 이것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가진 모든 것이 이것이, 이것이 이용되지 않고는 사죄,  칭의, 새생명 이것이 이루어지지를 아니하고 이것이 투자되지 아니하고는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가 없고 이것이 확대할 수가 없고 빛낼 수가 없고  이것을 빼앗기지 아니할려고 할 때에는 그들은 내가 가진 것을 해하려고 할 때에  가진 것이 손해 보지 않을려고 하면 이것이 빼앗기게 됩니다. 이걸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자기 가진 것이 다 손해 되고 없어지는 이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기 위함이 아니고 없어지기 위함이요, 많기 위함이 아니요  적기 위함이요, 크고자 함이 아니요 작아지기 위함이요 아주 뿌스러기,  뿌스러기라도 보존되게 하려함이 아니고 아주 없어지기, 이것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다만 조그만치라도 요거는  없애지지 아니할란다 요것만은 없앨 수 없다' 그러면 세상은 거기서 거기다가  낚시를 딱 걸어 놓고 '요것만은 없앨 수 없다 요거는 버릴 수 없다 요거는  내놓을 수 없다' 하면은 거기다가 세상은 낚시를 딱 걸어 놓고 잡아당깁니다.

잡아당기면서 '자 이것 내가 없애지 안 할려면 죄지어라 이거 없애지 않으려면  의를 양보해라 이것 없애지 않으려면 잠깐 동안이라도 머리 한번이라도 숙여 절  한번이라도 해라 하나님을 잠깐이라도 배반하라' 해서 그것 없애지 않으려고  하면 결국은 이 세 가지로 인하여서 시험을 받고 또 끝까지 없어지지 않으려고  하면 세 가지를 내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또 "하나라도  잡으려고 하는 자는 그들에게 붙들리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썩은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이고 죄악의 것이 무죄의 것이 되고 불의의 것이 의로운  것이 되고 하나님과 원수 되어있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과 화평의  결합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있기 위해서 있는 자가 아니요 없애기 위해서 있는 자자  나는 많고 크기 위해서 위하는 것이 나의 사는 길이 아니고 이 사죄와 칭의  새생명 이 구속을 인하여 작아지고 적어지고 아주 없어지기를 인하여 있는  것이라.

 이래서 "살든지 죽든지" 이 말은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도 이 세 가지지 구속 이  구속 이것 때문에 이것을 위해서 이것에 유익화 되면 존재도 하고 살기도 하고  이것에 유익화 되면 죽는 것도 죽고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이 구속을 위해서  구속 유익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딴 것이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어질 것을 단정지어야 하고 또 하나 단정지은 것은 그러면 내가 이  모든 것을 사용하기는 사용하는데 무엇을 위해서 사용할 건가 이것을 가진  이것이 이제 사용하기로 단정을 지었으면 무엇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 사람을  위해서 사용을 할 것인가 일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 그 물질이나 그런 걸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 이것을 무엇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속해 주신 이 구속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 나를 구속해줄 뿐만이 아니요  근본 자존자시오 창조주시오 주재시오 주권자시오 만 왕의 왕이신 완전 영원  불변의 존재인 이분을 위해서 내가 사용할 것인가 뭘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  그분에게서 만들어 놓은 일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 그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  그분을 위해서 사용을 하는데 그분을 위해서 사용을 할려고 보니까 그분이 주신  구속을 위해서 사용하게 됐다 구속을 위해서 사용함이 아니고 그분을 위해서 다  사용할려고 하니 그분 위해서 사용하는 방편이 그분은 완전자기 때문에 그분  위해서 사용할 수 없다. 그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곧 그분이 나에게 베푸시는  구속을 위해서 사용하는 이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그분 위하는 것을 사용처는 구속에다가 사용한다 요것이 우리가  사용할 길입니다. 사용할 길, 요것을 단정짓고 우리가 가야 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두 가지 단정, 두 가지 단정, 저 여러 날 전에 증거한 일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합니다. 이 말을 알아듣지를 못하고 시원치  못하고 갑갑하다 그는 시원치 못하고 갑갑한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왜? 자기가  자기 주관으로 이해되고 납득되고 환하게 상통되는 거 자기와 꼭 같은 거 자기  좋은 것, 자기에게 있는 거와 같은 그것만 찾아 돌아다니면 항상 사망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어데까지 자랐던지 자란 거기서 전진이나 향상이 없습니다. 못  알아들으니까 고민입니다. 고민 그 요소가 알아들으면 기쁨이 됩니다. 못  알아듣는 그것이 노력하는 거기서 이제 알아듣게 되어지는 것이니까 그것이 없는  데는 성장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사랑에 대해서 설교할 때에 여러 시간 말했지마는 깜깜해서 자기네들  생전 모르는 별세계의 말, 딴 세계의 말하니까 이해가 전혀 안 돼, 납득이 안  돼. 이러니까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들에게 대적이 되고 말을 듣는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서 서로 충돌이라 통하지 안 해.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자꾸 그 전투를 하면은 결국은 승패가 나옵니다. 그 전투가 싫다고  도망치는 자는 헛일입니다. 하는 자는 승패가 나옵니다.

 지금은 좀 여러분들이 깨달아질 것입니다. 며칠 전에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보니까 가르치는 그 사람들은 조금 깨달은 것 같애 깨닫고 말하는 것 같애,  자기가 실행해 보고 말하는 거는 그것은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환하게 다릅니다.

종류가 다릅니다.

 그런고로 이제 오늘 아침에는 단정짓고 갈 것, 무슨 단정? 내가 이미 가진 것을  이것을 없애지 않을려고 하는 그것도 썩은 생각입니다. 가진 것을 많게 할려는  그것도 썩은 생각입니다.

 가진 이것은 쓰기 위해서 써야만 이것이 성공이지 쓰지 안 하면 성공은  없습니다. 써야 성공입니다. 없어져야 성공입니다. 예수님은 다 쓰고  없어졌습니다. 그 시체는 남아있지마는 다 쓰여졌소 시체는 썩는 것뿐이지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 다 돼버렸소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생기가 오니까 그 토막을 지나고 난 다음에 삼일만에  부활했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몸은 썩을 몸이요 완전히 죽을 몸이요  다시 사흘만에 새생명에 연결돼서 그렇지 그러나 그 마음과 몸이 완전히  죽었지마는 이는 죽은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기 때문에 우리 대신 죄를  담당하니까 죽어서 죽은 것으로 완전히 죄 값 다 해버렸소 다 해 버렸지마는 다  하신 예수님의 마음과 몸은 틀린 것만치도 되는 범하지 안 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마음과 몸은 불가불 살아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가불  살아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이 사람 보기에는 살아났지 그는 죽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불 죽는 것이 그를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산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죄 값으로 죽으셨으나 실은 그 자체는 죽지 안 했습니다. 형벌만 받았지  자체는 죽지 안 했소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자꾸 들어야 돼요.

 쓴다는 것, 쓴다는 거는 어떻게 써야 되느냐? 죄 없이 한 죄 없이 한 무죄가  쓴다 말이요 무죄에게 쓰여지고 의에게 쓰여지고 하나님의 결합에게 쓰여집니다.

하나님에 결합 때문에 이용이 되든지 결합 때문에 박살이 나든지 의 때문에  이용이 되든지 의 때문에 박살이 되든지 죄 없는 무죄, 무죄에게 무죄를 위해서  이용이 되든지 무죄에게 이용이 되든지, 무죄 때문에 뺏겨버리든지 무죄 때문에  박살이 났든지 어쨌든지 사죄 칭의 새생명 요 세 가지로 인하여서 없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고로 없어지기를 인해서 그러면 있게 하는 거는 누가 할 것인고 그거는  주님께서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게 있는 것이 이 세 가지로  인해서 쓰여질 것, 없어질 것 다 그것에 것이 되어질 거 이것하면 또 쓸 것 있는  거는 당신이 필요하면 이전에 있던 것 열 배도 주고 백 배도 준다 했습니다. 네,  필요가 없으면 쓰여진 그것으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언제든지 끝나는 시간이 있는데 끝나는 시간이 됐으면 끝나고 끝나는 시간이  안됐으면 자꾸 더 이제 작은 것 주니까, 되니까, 잘 쓰니까, 많은 것 주고 큰 것  주고 해서 이제 끝날 때는 끝나고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당신이 주실 수는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은 당신의 할 일이요. 마련하는 것은 당신이 할 일이요. 우리 할  일은 쓸 일이라 그 말입니다.

 쓰는데는 어떻게 쓰느냐 그것을 단정짓는 거 이 두 가지를 단정짓고 가는  사람은 가다가 주저하지 않습니다. 가다가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지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근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은 이거 잘 되게 하는 것인데 잘  쓰이도록 세상이 도와주는데 뭐 때문에 불평이 있겠습니까? 기다리고 있는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는 그대로 되는데 무슨 불평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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