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22:21
그리스도의 심판
본문 : 고후 5:8-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의 생애의 양극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마음먹은 것이나 생각한 것이나 말한 것이나 행동한 것이 나 혼자 한 것이나 여럿이 합해서 한 것이나 우리의 움직임, 마음과 몸의 움직임이라는 그 움직임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다 드러난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다 이대로 드러나는데 우리는 이것을 잊어버리고 자기 주관대로 여기 대해서는 상관없이 그렇게 삽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몸으로 우리가 지식으로 이렇게 움직이는 그 모든 움직임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검사를 맡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하나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우리가 될 수 있는 대로 땅에서 살고 싶은 이 마음을 이것을 어쩌든지 죽여야 됩니다. 땅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죽여야 됩니다. 그러면 세상을 떠나는 자살 행위를 할 건가? 그것은 안 되지마는 땅에서 살고 싶은 그놈은 옛사람이요 악령의 유혹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서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에 가 살고 싶은 이 사람이 되려고 자꾸 연습하고 애를 쓰고, 그러면 그것 되는, 그만 세상에는 낙망이 되고 세상에 있기 싫은 그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왜 있느냐? 있는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하기 위해서, 또 썩을 것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바꾸고,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바꾸고, 모든 혈육의 것으로 신령한 것을 바꾸어 가지는 이 일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만 되기 때문에, 어제 오전 오후에 말씀하신 그 말씀, 참 우리의 심령이 너무도 어두워서 에누리해 그렇지, 세상에서 조금 큰 자를 사귀려고 큰 자를 배경으로 삼으려고 또 큰 자에 힘입으려고 얼마나 우리가 그런 지혜가 있습니까? 이런데 오늘 우리의 이 모든 행동은 사람으로 더불어 하든지, 물질로 더불어 하든지, 짐승으로 더불어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행동은 최종은 주님과 관련된 행동입니다. 그 행동 하나 하나가 사람하고 해도 그 행동의 종말은 주님과 관련됐고 또 내가 물질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 그것도 그 행동의 종말은 주님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과 관련된 이 영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세상에 주님이 살게 하시면 사는 것이지 땅에 있는 욕망을 가지고 살고자 하는 그것은 죽여야 됩니다. 어쩌든지 죽이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땅에 있는 욕망으로 땅에서 살고자 하는 그것은 옛사람이요 새사람 아닙니다.
이러니까 차라리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이것이 소원이지마는 우리가 반드시 행동한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 행한대로 영원한 갚음을 받을 수 있는 영원을 마련할 수 있는 그 중대한 일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살지 그것 아니면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하고, 우리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기가 힘들고 또, 뜻을 분별하기도 힘들고 행하기도 힘드는데 우리가 분별해서 원하면 벌써,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원하면 원하는 그 속에는 절대자가 내주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기뻐하시는 그 소원을 우리 속에 넣어 줘 가지고 우리가 그 소원을 행하려고 할 때에 당신이 그 일을 이루십니다.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에게 소원으로 주시고 이루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 살이하는 데에 가장 지혜롭고 간편하게 하는 것은, 바울은 이 비결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세상에 있든지 떠나든지 언제나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 될까?' 요것 하나 가진 요것 가지고 지혜가 다, 지혜의 판단이 다 됐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거하든지' 세상에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의 마음의 눈, 지혜의 눈에 아주 밝은 것이 되겠습니다.
무슨 일 하든지 '이 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겠느냐? 이 일을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이것은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이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겠느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냐 주님을 섭섭하게 하는 일이냐 요 한 가지를 가지고 우리의 눈은 아주 밝아서 모든 것을 정평 정가하고 후회할 것이 없는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아주 요령의 일입니다.
따라합시다.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저절로 되는 것 아니야. 자꾸 힘써야 돼. 그저 한번 두번 자꾸, '내가 이 생각 가지는 것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거기에서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섭섭하시겠느냐?' 요것만 검토해서 지나가면 우리에게는 그래도 대충 지혜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진리가 벌써 들어 와 있고 성신의 감화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그러면 자기의 마음도 생각도 사람에게 대해서나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겠느냐 주님이 섭섭해 그러는 일이겠느냐?' 요것 하나를 가지고 우리의 지남침, 지침, 지침을 삼아서 이래 갈 때에 우리는 심령의 지혜의 눈이 밝은 자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그 행한 대로 갚음을 받으려 함이라' 그런고로 이 심판을 기억하고 살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