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구속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23일 수야

 

본문 :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다음 주일 유치반과 중간반 공과입니다. 별 일이 없으면 공과에 대한 것을 한  번 더 삼일예배 때에 증거할려고 생각을 합니다.

 제목은 그리스도의 구속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사랑, 사랑은 희생으로 발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그 넓이도 무게도 깊이도 다 희생으로 나타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쉽고 또 사랑하는 것을 다 원하고 또 노력을 하고 입으로 다  사랑한다고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은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원하고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하기 때문에 사랑의 그 진상을 알기에는 힘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나타나는 것은 그의 희생으로 사랑의 그 자체와 형체를 완전히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을 측량하는 방편을 알면 볼 수 없는 그 사랑은 정확한  측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 상대방으로 인해서 자기가 어떤 유익이 있을  때에 사랑하는 그 사랑은 모든 사람이 다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방적이어서 그것만 가지고는 잘 모릅니다.

 사랑은 희생이요 주는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받는 것도 사랑으로 받는  것 있고, 또 욕심으로 받는 것 있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극단은 받는  것에서 외부를 알 수가 있고, 또 희생해 주는데서 그 내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은 첫째가 예수님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예수님을 사랑하심으로 주시는 것을,  주신다고 하신 것을 하나도 의심없이 확실히 믿었습니다. 또 주신 것을 남김없이  다 받았습니다.

 이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나의 기뻐하는 자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예수님만치 믿은 이가 없었고, 예수님만치 받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셨고, 모든 선지자들이 있지마는 '너희들은 저의  말을 들어라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것을 받는 그것이 사랑이었고, 또 아버지에게 바치는  것이 그것이 사랑이었습니다.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나는 그와는 상관이 없다.

다만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그 명령 지키는 것이 나타날  것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십자가 상에 어려움을 당하셔도 아버지를  사랑함이 요동치 않았고, 또 아버지 명령 순종함이 요동치 아니했고,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모든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데 있어서 흠이 없었고,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당신의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희생되기까지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기뻐하션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주셨고 만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당신의 모든 소유가 다 없어져도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당신의  모든 소유를 우리 위해서 희생하지 않으면 우리가 복되지 못할 경우이기 때문에  있는 소유를 다 내놓아야 사랑하게 될 그때도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또 우리를 위해서 참 하늘에 있는 모든 영광 존귀 권세 그 모든 것을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것을 주님이 내놓지 않으면  안될 그런 경우에 우리 위해서 하나도 지체하지 않고 다 내 놓으셨습니다.

 또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유익을 위해서 끝까지 한 시간도 변함이 없이  우리 위해서 희생을 하셨습니다. 이것으로서 주님의 사랑이 그러면 어떠한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부모와 자녀가 참 서로  사랑하고 좋아한다 할지라도 그가 무슨 병이 들어서 치료하는 데에 전 재산이 다  들면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할지라도 그 부모네들이 식구가 많고 하면 혹  꺼려하는 그런 부모도 있을 것이고 아낌없이 다 희생하는 그런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소유가, 소유를 다해서 사랑하는 그런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도  있을 것이고, 또 부부의 사랑도 있을 것이고, 또 친구의 사랑도 있을 것이고,  형제의 사랑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 따라서 어느 정도 그 소유가  희생될 때까지는 사랑하지마는 그 소유가 어느 지경까지 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랑이 그쳐지고 오히려 원망과 시비가 생겨지고 사랑은 그쳐지는 그런 것을  우리가 많이 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그 사랑이 자기의 소유가 어디까지 희생될 수 있느냐 하는  그것은 보이지 않는 사랑의 양입니다. 자기의 명예나 권위 지위 또 자기의 그  모든 취미 쾌락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희생되기까지는 사랑을  유지할까? 무엇이 희생될 때에는 그때는 우리의 부부의 사랑이 그대로 유지가  될까? 형제 사랑이 유지가 될까? 또 부모와 자녀의 사랑이 유지가 될까? 그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 상대방의 사랑이 상대방의 어떤 것까지는  나를 위해서 희생해도 희생을 당해도 이 사랑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어느  지경까지 가면 그때는 이 사랑이 하나도 없어질 것이라 그러면 그게 사람마다  달라서 자기의 소유의 몇분지 일까지는 견디지마는 어느 정도 가면 그 사랑은  끝나겠다. 또 사랑 사랑 하지마는 자기 소유의 하나도 희생이 없을 때 하는  것이지 희생이 시작되면 그만 그 사랑은 없어지고 말 것이라. 자기의 소유나  자기의 권세나 쾌락이나 지위나 자기의 성질이나 자기의 건강이나 그런 것이 이  사랑에는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하는 그것을 측량하면 그 사랑의 양은 바로  측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랑함으로 그 노력하는, 그 희생뿐 아니라 수고하는 그 노력, 참고 견디는  그것은 어디까지 참고 견딜 것인가? 나를 사랑하는 이 사랑에 대해서 어디까지  참아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수고할 수 있을까? 만일 생명이 끊어지게 된다고  하면, 나로 인해서 생명이 끊어져도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희생의  양을 측량해 보면 사랑의 양을 측량할 수가 있고 또 노고와 수고하고 고생하는  그 인내의 양을 측량해 보면 사랑의 양이 측량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좋도록, 우리를 구원토록, 우리를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그것을 우리가 측량해 보면 주님의 사랑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이것을 말로만 아니라 모르면, 사랑을 가진 자라야 사랑을 알고, 사랑을  행한 자라야 사랑을 알고, 사랑을 받은 자라야 알고, 사랑을 준 자라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성질을 자기가 사람을 사랑함으로 사랑의 성질은 이런 것이다,  또 사랑은 상대방에 대해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희생이 생겨진다, 희생하는 것이 그것이 피곤치 아니하고, 희생 안하면 불만하고  희생을 해야 만족이 되어지고, 희생을 하되 그 희생의 양이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희생이 될 때에 그때에 자기의 동작이 어떠한지 이걸 가지고 인간끼리  사랑하는 사랑도 정확히 측량할 수 있고, 여기에서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어떻게 하셨나 하는 그것을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면서 해 보면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떻다는 것을 측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없는 그 확신을 거기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랑해 보지 아니한 사람은 주의 사랑을 모릅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주의 사랑을 모률니다.

 받는 것이나 주는 것이나 그것이 다 넓이나 깊이가 같습니다. 자기가 사랑을  받는데도 상대방에 대해서 어느 정도 믿고 바라는지, 어디까지 상대방을  인정해서 믿고 의지하고 바라는지 그 면을 측량하면 자기 위에 있는 그 사랑도  자기가 어느 정도 사랑한다 하는 것 그것이 정확히 측량이 나옵니다.

 또 자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도 그 희생의 양을 희생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희생을 할 건가, 희생의 준비와 희생의 각오 그것을 측량해 보면  자기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양이 어느 정도라 하는 것을 정확히 측량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상대방의 사랑을 받는 것과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랑하는 것은  희생하는 것이요 또 사랑을 받는 것은 믿고 의지하고 바라는 것인데, 믿고  의지하고 바라는 것인데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하는 그 양을 측량하면 사랑을  측량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는 어떤 인인관계의 사랑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희생하신 그 희생의 종류의 것을 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또  그 양을 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종류도 없고 양도 없고 또 질도 없습니다. 있는  것을 다해서 우리에게 사랑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자기  재산이 어느 정도까지지 그 재산이 다 들어가야 된다고 할 때에, 다 들어가도  모자라는데 '다 들어가고 남은 모자라는 것은 자기가 보충해 나가야 된다.'  이렇게까지 되어질 때에 그 사랑이 지속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얼마  가다가는 다 낙망에 빠져버리고 낙망하고 다 포기하고 원망 불평하고 말지  그렇게 있는 소유가 다 희생하기까지 사랑하는 그런 관계는 없습니다.

 또 소유는 희생할지라도 자기 자존성이나 자존권이나 또 자기 주권이나 자기  감정이나 그런 것을 희생해야 되는 그런 경우에는, 다른 소유는 다 희생한다  할지라도 자기의 감정이나 명예나 권세나 위신이나 자존에나 그런 데에 있어서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는가? 자기도 측량하면 알 수 있고,  상대방도 이런 면에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상대방을 측량해도  정확하지는 않지마는 대략은 짐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자, 사랑을 받는 자, 믿고 의지하고 사는  자 그와 예수님과의 비교를 하면 그 차이점이 우리에게 깨달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점점 연구해 가면 자기는 주님에게 대한 소망이 달라질 것이고  의지가 달라질 것이고 그에게 맡김이 달라질 것이고 그의 인도에 대해서  순종함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모든 것을 다 남김없이, 자존자요 주권자요  만왕의 왕이시요 창조주시요 완전자이시지마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다 희생하셨습니다. 그 희생하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에 못견뎌서  사랑의 힘 때문에, 사랑 때문에 그 희생을 하셨지 무슨 이유나 부득이나 어떤  세력에게 쏠려서나 하신 것 아닙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행복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는 데에는  그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희생 했습니다.

 그러면 이건 순전히 주님의 사랑이 들어서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다 희생했으니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어떤 희생을 했는가 하는 그 희생의 양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는 주님이 창조주시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얼마나 그 사업이  분주하고 그 사업이 큽니까? 우주와 영계를 통치하는 이 전권을 다 가지셨지, 그  모든 것을 다 경영하시고 유지를 하시지, 또 그 모든 것을 다 살리고 기르고 또  심판하시고 하시니까 일이 심히 광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전지 전능, 주재, 창조주, 주권자, 주재자, 만왕의 왕,  왕이시지마는 주님이 하신 일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주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 주님은 한 가지 일만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당신과 같은  온전한 자로, 완전한 자로, 영원한 자로 우리를 완전자를 만드시는 이 하나  외에는 아무 일도 안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당신이 이런 실력을, 이런 지혜를, 이렇게 많은  것을 다 설치해 놓고, 심지어 버러지 한 마리도 고물거리는 것이 그분의 섭리가  아니면 그것이 다 중단될 수 있는 이런 복잡한 일을 맡아 가지고 계시는  주님이시지마는 주님이 하신 일은 모든 것 포기하고 한 가지 일만 하셨습니다.

무슨 일만 하셨느냐?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하나만 했습니다. 딴거 안하고  우리를 구원 하시는 이 일만 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금도 춘하추동 사시나 일월성진이나 이 모든 피조물들이  이렇게 저렇게 죽고 살고 움직이는 그 모든 것을 누가 하느냐? 그분이 하시는데  그분이 혼자 천군 천사들과 또 물질에 있는 피조물들을 거머쥐고 역사하시는데,  그 역사를 하시지마는 그 하나 하나의 그 역사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구원하시는 그 일입니다. 그 일 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저 뭘 할려고 지었는가? 지으신 그것도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구원하시는  그 일 위해서 지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며, 전지자시며,  전능자시며, 완전자시며, 그분이 우주와 영계의 모든 것을 홀로 일하시는  분이지마는 실은 가서 뚫고 들어가 보면 우리 위해서 하는 일 그 하나만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 아주 뭐 먹을 줄도 모르고, 입을 줄도 모르고, 된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이 욕을 하는 줄도 모르고, 욕을 해도 들은 척 만척, 되도  된지 만지, 자기가 몸이 아파서 위중해도 아픈지 안 아픈지 모르고 죽자 살자  합니다.

 그 중심을 따져 보니까 자기의 사랑하는 처자, 뭐 처자를, 아내 사랑하고  거기서 난 자식을 사랑하니까 그만 거기에 마음이 쏠려 가지고 그를 위해서 이건  병이 들었는지 된지 뭐 피곤한지 남이 욕을 하는지 뭐인지 그 처자만을  사랑함으로 모든 걸 다 부숩니다.

 저 사람이 끙끙 앓고 짐을 지고 가면서도 땀을 줄줄 흘려도 된 줄도 모르고, 또  죽자 또 태짐지러 옵니다. 저거 돈 보고 하는가 보니까 실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자녀, 그 처자, 처자에 대한 그 애착에서 견디지 못해서, 그저  지고 가면서도 거기 생각, 돈을 받으면서도 거기 생각, 피곤할 때도 거기 생각,  그러니까 넘어질 때까지는 다른 걸 모르고 모든 전부가 기울어지기를 자기의 그  처자를 사랑하는 거기 지금 쏠려 가지고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 그것만 보고 사는  사람, 우리가 그런 것을 이 세상에서 좀 볼 수 있습니다.

 '저 집에는 저런 사건이 생겼으니까, 저 아내 때문에 생겼으니 당장에 이혼을  할 것이고 야단이 날 것이다.' 했는데 도무지 살림살이가 다 엎어지는 그런 일이  있어도 그 아내에게 원망이 하나도 없고 불평이 없고 어쨌든지 그걸, 그걸  해결지워서 자꾸 해결 지을려고만 애를 씁니다.

 그러면 그게 말하자면 사람이 '저 사람은 애처가가 아니라 그 아내 사랑에  미쳤고 자녀 사랑에 미쳤다.' 할 만치 모든 움직임이 여겨지고 움직이면  움직이지마는 그 중심이 지금 어디 가 있느냐 하면 거기에 가 있는 것처럼,  주님이 이 넓고 큰 이 많은 일을 하시지마는 주님이 하신 일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구원 사업 하나만 했습니다. 구원 사업 하나만 주님은  하셨습니다. 성경에 다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이 구원 사업 하나만을 당신은  하셨고, 또 이 구원 사업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만들기도 하셨고, 쓰기도  하셨고,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있게도 하시고, 있는 것을 다 사용해서 없게도  하시고, 우리의 구원 이거 위해서 모든 것을 제조했고, 제조해 놓은 그것을 다  투자했고, 당신의 자체까지도 다 투자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천상 천하좌 모든  것을 다 두고 이 한 가지 업을 가지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빌립보 3장 9절 이하에 보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과 모든 것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을 다, 물속에 있는 지옥에  있는 것도 주님을 주라고 시인을 하면서 이렇게 찬양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잘 좀 분석해서 짐작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렇게 복잡한 일인데, 복잡한데도 그 복잡한 것조차도 나  때문에 복잡합니다. 복잡하고 분주하지마는 복잡하고 분주한 그것이 나 위한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나를 구속하시는 이 업에  전무했다, 이 업만을 전무해서 여기 다 기울였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주님이 희생하신 그 희생을 벌써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그 희생이 나타나 있습니다. 나타나 있고, 또 지금도 많은 순교자들이, 얼마  전에 신문 보니까 루마니아에, 루마니아 거기에도 청년들이 성경을 가지고  가다가-아마 거의 다 잡혀 죽었을 것이오. 하나님의 권능이면 또 안 죽을 수  있겠지요. -굉장히 박해를 당해서 아주 고문과 고형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그때  신문에 보도가 됐는데, 그런 사람들이 다 예수님의 그 사랑에 녹아져 가지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짐작을 해서 찾아야 되겠고, 또 예수님이 나  위해서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 예수님이 무슨 일만 하고 계시는가? 예수님이  창조도 나 위해 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것도 나 위해 하고 있습니다. 구름 끼는  것 나 위해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떠들고 지금 공산주의 특공대 10만명을 지금 양성을 하는데 세계에  제일 1위 간다 합니다. 세계에 어느 나라보다 제일 1위 가는데 그래 가지고  남한을 이렇게 복잡하게 하고 어쨌든지 파괴 살인 이래 가지고 게릴라전을  전쟁을 시작하려고 그래 한다는 것이 신문에 보니까 미국 군부 연구소에서  발표를 했습니다.

 그것도 주님이 그 배후에는 다 하시는데, 그들의 생명을 주님이 딱 끊어버리면  못해. '김일성이 너 오늘 끝났다.' 하면 끝났어. '김정일이 오늘 끝나라.' 하면  끝나는 거라. 그것들 그래 가지고 모두 다 일으킨 것 우리가 이해 못하나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움직임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일 하나를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를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그 희생으로 우리가 측량해서 연구하고, 모르면 제가  상대방을 인인끼리 사랑하면서 거기에서 주님의 사랑을 연구를 하고, 또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제가 측량하고 연구하면서 주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연구하면 주님의 사랑이 탁월하고 완전해서 나를 능히 맡길  만하고 의지할 만하고 그분이 불에 들어가라 해도 안심하고 들어갈 만한 이런  답안이 나을 것입니다.

 또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사업하는 것, 주님은 참 할려면 많은  사업이 있지마는 나를 구원하시는 이 사업 이것 하나만 했습니다. 이거 하나  위해서 모든 것 다 투자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하신 일이 창조주시요, 전능자시요, 주재자시요, 주권자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얼마나 일이 분주하겠습니까? 이만한 콩쪼가리 같은 그 한  나라를 차지한대도 그 정권자들이 일이 분주한데, 우주와 영계를 혼자  통치하는데 얼마나 분주하겠습니까? 그렇지마는 성경에 보면 그분이 분주한 일  그 하나, 많은 분주가 있지마는 그 일을 뚫고 들어가면 뭐할려고 그래 분주할  것이냐? 그 분주가 전부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조사님이 뭐 사십 몇일인가 감옥에 갇혀 가지고, 넉달 얼 마인가 갇혀  가지고 있다가 오늘 와서 날 만나러 왔는데 내가 못 만났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봉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거기서 만들어질 게 있기 때문에 했습니다.

분명히 안 들어가면 안됩니다. 한번 들어갔다 나와야 됩니다. 그래 정신  차려지고 좀 바로 되어집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속하시는 이 업 외에는 다른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을  했든지 이 업체를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는 이 구원 사업 이거 위해서  일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자꾸 연구해서 찾아봐야 됩니다. 우리 그걸  찾아보면 이 마귀에게 속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게 속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명과 평강과 사랑이 넘친 이 포근한 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를 떠나서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가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어리석어서  어만 데 빠지고 미혹을 당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렇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과 또 당신이 하신 그 구속사업 이  두 가지를 우리가 깨달으면 우리 할일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할일.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사랑할까? 그러면  주님이 사랑하심으로 역사하셨으니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랬으니까, 우리는 그러면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가 받았으니까 우리는 형제를 어떻게 사랑할까? 요것이  우리의 할일 하나 되겠고,  또 그러면 주님이 이 한 사업을, 이 업체를, 뭐 구제사업 자선사업 또 문화사업  또 건국사업 별것들이 다 있겠지요. 있으나 주님이 이 한 업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이것만을 하라고, '죽은 자는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가족을 작별,  가족을 작별하려 할 때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리라.' 앞만 보고 가라. 가라 가라. 이렇게 주님이 이 구원사업  하나만을 우리에게 맡겼고,  또 이 사랑으로 인하여 희생하는 이것을 우리에게 부탁했고 했으니까 우리 할  일은 이거 두 가지뿐입니다.

 주님이 날 사랑하심 같이, 내가 주님에게 대해서는 그 사랑을 의심없이 믿을  것, 주님이 불에 들어가라 하면 불에 들어간 그것이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것이요, 사랑을 받는 것이요, 그것이 나를 가장 유익되기 때문에 하신다는 것.

불 속에 들어가라 할 때에, 당신이 그 불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그때에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심으로 하는 것이요, 그것이 전지 전능자로 사랑하신다  하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가장 행복된 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이 사람이  우리가 점점 돼 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어디서 배우느냐?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가운데에서 주님의 사랑을  알게 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 보면 내가 이렇게 이만치 사랑해도 상대방에  대해서 어떤데 주님이 나에게 사랑한 것은 그 억억만배도 더 크니 그분이 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권찰님들이 자기가 맡은 식구를 그 사랑하는 그 사랑의 도수를 알 겁니다. 그  식구를 사랑하는 도수를, 이 식구를 사랑하는 데에는 내가 어느 정도의 것을  희생할 수가 있느냐? 그 이상 희생이 되면 어찌 되겠느냐? 그 이상 희생이 되면  내 사랑은 그때 가 가지고는 변해질 것이고 중단될 것이고 없어질 것이다.

이것도 짐작한다 말이오. 이만한 사랑을 가졌으니까 주님이 날 사랑한 사랑과  비교하면 어찌 되느냐? 이만한 사랑을 가졌는데도 내가 그를 인도할 때, 그를  인도할 때는 내게 지능을 두고 그의 행복된 길을 두고 다른 길로 인도할까? 내  지능대로는 다해서 행복된 길로 인도하지 않을까? 이걸 생각할 때에 자기의  사랑과 주의 사랑을 비교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어떻게 지도하고 어떻게  복되게 원하는 그것을 측량해서 주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고 바라볼 수도 있고  짐작할 수 있어서 자기가 변화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이 날 사랑하는 이 사랑을 우리가 받았고, 이 사랑을 이  세상에서 완성을 하고, 또 주님이 하신 이 사업에 우리가 가담해서 이 업을 하게  하셨으니까 이 업을 완성을 하고 하는 이 두 가지만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런 데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면 사랑도 수가 심히 많고, 사랑도 수가  많고 할일도 수가 많고, 또 사업도 수가 많고, 영광있는 그 희망도 헬 수가  없지마는 그 가운데 어떤 것을 우리가 하는 것이 이것이 슬기로운 일일까?  우리는, 그 수많은 인간살이에서 우리가 어떤 자로 살까? 과연 이 사랑을 잡아  가지고 이 사랑으로, 이 사랑을 완성하라는 이 사랑을 자기의 욕망으로 삼는  것과 자기가 노력하는 노력은 이 구속업을 자기 업체로 삼는 것, 자기는 어떠한  그 종류의, 성질의 것을 택하며 어떤 사업에 투자할까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비교하고 비판하고 평가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비록 개인이 어두울지라도, 가정이 어두울지라도 차차 그 개인이나  가정에 빛이 와서 그 어두움이 물러가고 차차 광명해져서 어리석음에 속지 않고,  어리석음에 속지 않고, 차차 차차 범위가 넓어지고, 모든 것이 정확하게  보여지고, 샛별이 떠오르면 깜깜하던 천지가 어름어름하이 동이 트는 것이 좀  차차 밝아지고 이러다가 나중에 햇빛이 나와 환하이 보이는 것처럼, 이렇게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사업을 연구하면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사업의 그 투자를  연구를 하고 주님과 나와 비교를 하고 또 주님과 모든 사람을 비교를 하고 이럴  때에 우리는 사랑으로, 사랑의 빛으로 우리가 밝아지고, 또 이 사업의 빛으로  우리가 밝아져서 어두움을 벗고 광명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우리가 죽기 전에 우리의 할일은 이 일 외에 없는 것을 우리가 판정지워야  되겠고, 또 우리 자체라는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는 이게 제일  귀하다. 지혜있는 사람, 능력있는 사람, 권위있는 사람, 위엄있는 사람보다도  사랑의 사람으로 자기를 만들어야 된다는, 자기를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며  자기는 어떤 사업에 투자하는 사람이 되어야 될 건가 하는, 자신과 자신의  업체에 대해서 이 두 가지를 비교해 가지고 확정을 지우고 여기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확정을 지우고 일생동안 기도하며 노력해도 참 희미해지는데, 이것도 판정하지  못하고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업이, 큰 업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업체를  거머쥐고, 무슨 뭐 정치 업이나 문화업이나, 자기는 어떤 업체든지 그 많은  가운데서 아직까지 결정도 지우지도 못하고, 자기를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야 될런지 이것도 결정지우지 못하고 하면 안됩니다. 주님은 사랑의 당신  완성을 할려고 애를 썼고, 당신의 그 업은 구속업을 완성할려고 요 두 가지에만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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