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구속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24일 목새

 

본문 :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서는 첫째가 주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또 둘째는  주님이 어떤 업을 택했었는가, 주님이 무엇 때문에 이 업을 택하셨는가? 주님이  택하신 이 주의 구속 사업을 알아야 하고,  셋째는 여기서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 가도록 노력을  하며 또 어떤 업을 취해서 투자할 건가? 이것을 연구해 가지고 확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과 사랑을 비교해 봐야, 비교해서 많은 사랑 가운데에 주님의  사랑을 잡아야 되겠고, 또 수많은 사업과 사업을 비교해서 주님이 택하신 이  사업이 어떤 사업인 것을 알아서 잡아야겠고,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영광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도, 권세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도, 지혜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도, 민첩한 사람이 되려는 것도, 용감스러운 사람이 되려는 것도, 아주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는 것도, 사람에 대해서 모두 다 '나는 이런 사람이 돼  보겠다.' 하는 사람에 대한 욕망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세상에 참 사람들이 자기는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 하는 욕망이  있어 이것을 두고 날 때부터 노력입니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노력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돼 보겠다' 각각 다 자기의 욕망을  가지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비교해서 우리는 성경을 보고  알아야 되겠고 또 이 자연계시 이 세상을 보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 12장에 '간중자들이 구름같이 있다' 그 말은 세상에 왔다간  사람들이, 구름이라는 그 구름은 한 뭉텅이지만 구름은 수많은 수증기가,  수증기라는 그 세포가 합해 가지고 구름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구름은 수를 헬  수 없는 그 많은 숫자를 가리켜서 구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가고 저렇게 살고 가고, 이 사람은 뭐, 저는  어쨌든지 '나는 씨름 잘하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사람을 잘 두드리는 무슨  운동가가 되겠다. 나는 세상에 미인이 한번 돼 보겠다. 미남이 한번 돼 보겠다  또 자기는 어떤 노래쟁이가 돼 보겠다. 춤쟁이가 돼 보겠다. 권세자가 돼  보겠다.' 해서, 일생을 이게 되겠다 저게 되겠다 하는 그 욕망에서 산 사람들이  참 구름 같습니다. 숫자가 구름 같소. 그 사람들이 '나는 이래 살았다.' 하는  말을 안 하지마는 자기는 이래 살고, '나는 일생동안 이거 위해서 살다가 간다.

나의 일생동안 산 가치는 어떻다.' 하는 것을 벌써 그 사람이 죽었으면 알게  되고, 또 죽고 난 다음에 세월이 갈수록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참 사람들이 보잘것 없는 그런 사람으로 봤지마는 그가  벌써 세상을 떠난 지가 3천여년이 됐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 사람은 점점 커지고  세계에 충만해. 인류 가운데 충만해졌습니다.

 구름 같은 간증자들이 둘러 있으니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저렇게 '나는 이래  살고 가다가 망했다. 나는 이래 살고 갔다가 헛일 했다. 이렇게 했는데 이것도  헛되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어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노래도 그런 말이 많이 있어. '산절로 수절로  하니 산수간에 너도 나도 절로라.' 어떤 사람은 돈을 흩으면서 일생동안 돈으로  늙고, 어떤 사람은 돈을 모으면서 돈을 지키면서 일생동안 돈으로 늙는데 이래도  저래도 다 늙는 것이 헛 생활 했다 그 말이오.

 이래서 우리는 왜 주님이 이 길을 취했을까? 주님이 무엇 때문에 당신은 이런  자체가 될려고, 이런 자신이 될려고 했을까? 왜, 그분이 참 전지자요 전능자요  대주재자요 창조자요 주권자요 만왕의 왕이신데, 그분이 왜 이렇게 사랑의  자체가 될려고 끝까지 이것을 노력했을까? 왜 사랑의 자체가 될려고 노력했을까?  과연 그분이 사랑의 자신이 될려고 노력한 그 사랑을 택한 것이 가치가 있는가  어리석었는가?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는가?  또 그분이 자신은 그러하고 자기가 역사하는 그 사업에 대해서는 왜 그분이  구속사업, 인간들이 세상에서 보면 제일 못나고 천한 인간인데, 천한 생활인데,  남 위해서 자기가 무엇을 한다는 것, 다 양보하고 빼앗긴다는 것, 이랬는데,  그분이 왜 구속사업을 택했을까? 왜 이 사업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투자를  했을까? 사업과 사업을 우리가 비교해 볼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업과  사업을 비교해서 비로소, 수많은 구름같이 살고 간 사람들이 다 살고 난  다음에는 그 끝을 마쳤으니까 그 끝이 환하이 나타난다 그 말이오. 이것을 위해  살고 간 자도 그 끝이 벌써 결말이 났습니다. 결산이 났어.

 이러니 그 모든 종류들이 많지마는 그 결산을 비교해 보고 비판해 보고 평가해  보니 '과연 주님의 취하신 그 사랑의 자신이 되겠다는 그것이 가치있다.' 이게  자기가 확정돼야 됩니다.

 '나는 정치가가 되겠다. 나는 권세자가 되겠다. 나는 재벌가가 되겠다. 나는  용사가 되겠다. 나는 미남이 되겠다. 나는 미인이 되겠다. 예술가가 되겠다.'  별별 것이 있지마는 과연 영원을 향하여 준비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사랑의 사람이 되는 이 일을 연습해서 사랑의 사람으로, 얼마가 이루어지든지 이  자신으로 이루어지는 이것이 제일 행복되고 온전하다, 가치있는 일이다 이것이  판정이 되어야 모든 것 다 능가하고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판정되지 않은  사람은 제가 아무리 일시 열심을 가지고 한다 할지라도 그 다음에 '그것보다  이것이 더 가치있지 않느냐?' 할 때에는, 가치있다고 인정이 될 때에는 자연히  그 사람 되고 맙니다. 그리 기울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과 또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그 사람 그것과  비교해서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이것이 제일 가치있다. 그러면 사랑의  사람이 되면 사랑도 하도 수가 많기 때문에 어떤 사랑의 소유자가 될 것인가?  어떤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인가?' 또 사랑과 사랑을 또 비교를 해 봐야  되겠습니다. 사랑과 사랑을 비교해야 됩니다.

 그러면 사랑과 사랑을 비교하려면 그 사랑을 뭘 보고 알 것인가? 사랑을  심사하는 방편은 소망과 희생입니다. 희생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가진 사랑도 그  희생과 상대방에 대한 소망, 희생과 상대방에 대한 소망 요 두 가지가, 두  가지의 양이 어느 정도의 양을 분량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그 양은 자기가 가진  사랑의 양입니다.

 또 나를, 서로 인간끼리 사랑하는 사랑이 많은데, 그 사랑은 그 희생의 양이  어느 정도며 또 그 사랑이 서로 상호간에 소망하는 소망의 양이 어느 정도인가  이것을 헤아리면 대번에 답안이 빨리 나옵니다. 나오요. 빨리 나옵니다. '이  사랑은 요거는 참 한닢푼치도 안된다. 요거는 두닢푼치도 안된다. 요거는  얼마동안 갈 것이다' 이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차차 차차 사랑의 그 실력과 그 양을 자기가 여기서 저기서 측량해  가지고 주님의 그 사랑의 양도 알고 자기도 따라서 '아무래도 나는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이다.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이것이 제일이라면 사랑에  대해서 이런 사랑도 있고 저런 수많은 사랑이 있으니 주님이 가지신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그것을 자기가 측량해 보고 짐작하며 '나도 사랑을 가지겠다.

그러면 내가 지금 가진 이 사랑은, 내가 복음을 전하고 희생을 하고 한다  하지마는 내가 가진 사랑의 그 양은 어느 정도인가?' 이것을 자기가 측량하고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자기는 전부 '나는 참 이거는 뭐 인간' 바울이 말하기를 '만삭되지  아니해서 낳은 자와 같다' 한 것처럼 자기는 만져 보면 알맹이 하나도 없어.

너무 허무해요. 너무 엉터리고 너무 허무해 알맹이가 없다 그 말이오. 사랑에도  알맹이가 너무 없어. 또 너무 좁고, 너무 작고, 너무 빈약해. 또 질도 너무  허무한 그 잡질이라. 이래서 자기가 사랑에 대한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를 자기가 측량하게 될 것이고 또 자기도 측량하게 될 것이고 이럴 때에  자기가 사랑에 대한 동경하는 것이 범위가 달라지고 질이 달라지고 그의 중량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주님이 택하신 업, 세상에는 수많은 업들이 있어서 모두 다  자기는 어북 민족운동이라, 뭐 독립운동이라, 해방운동이라, 건국운동이라, 또  문화운동이라, 예술운동이라, 체육운동이라 별별 것들 종류 수많이 많습니다.

그런 모든 사업 -자선사업, 구제사업, 문화사업, 뭐 박애사업 별것들이 많지마는  업과 업을 비교해 가지고 주님이 택하신 이 업이 과연 이는 참 모든 존재들이  존경할 만하고, 따를 만하고, 의지할 만하고, 바랄 만하고, 맡길 만하고  가치있는 업을 주님이 택하셨다. 이것을 자기가 비교해 가지고, 업과 업을  비교해 가지고, 업과 업을 비판해 가지고 주님이 택하신 구령사업, 인간을  구원하는 사업, 죄에서 저주에서 악령에게서 사망에게서 저주의 그런 데서  해방시켜 영원히 자유를 주고 영생을 주고 참 평강을 주는 이 구속사업 이  사업이 무슨 사업보다도 뛰어난 사업이다. 이것을 깨닫고 복음에 헌신하는,  목사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다릅니다.

 '목사가 보니까 영광이 있고 존귀가 있고 과연 사람 구원하는 그 업이 괜찮다.

나는 젊을 때는 다 이런 거 이런 거 하고 늙을 때는 그걸 하겠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 '그게 있는 게 수입이 많겠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 이 업을 택한 것이  어느 정도 그 사람이 업과 업을 비교해 보고 인간의 생애와 생애를 비교해 보고  비판해 보고 택했는가 하는 거기에서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진주를 구하는 사람이 진주를 만나매 있는 것을 다 팔아 산  거와 같고, 오다 가다가 보화를 만나니까 그 만난 사람이 있는 걸 다 팔아 산  거와 같다.' 자기는 무슨 그런 아무 사색이 없이 예수믿는 도를 찾아 가지고 이  도의 진리를 깨닫고 보니까 남은 것 아낌없이 있는 것 다 투자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고, 어떤 사람은 이 도를 찾기 전에 벌써 많은 도를 가지고 이  도도 저 도도 인생살이도 오만 것 이렇게 찾고 찾은, 이거 찾다가 예수믿는 도를  찾고 난 다음에 비로소 그 가치를 알고 나서 자기 있는 걸 다 투자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예수 교인이 되기 전에 언제든지 많이  울었다고, 변소 가서도 울고 침대에서도 울고, 인생이 불쌍하다는 것,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 인생이 이 일 저 일 수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참 인생들이  가련하다. 갈 길을 모르고 끝장도 모르고 살고 있으니 인생보다 불쌍한 게 없다.

인생을 아주 그만 저런 풀잎파리 모양으로 아주 있다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인생에 대해서 비교 비판 평가를 하고 울고 이런 종교 저런 종교의  종교가들을 찾아다니면서 하고 그런 사람은 진주를 찾다가 만난 사람입니다.

진주를 찾다 만난 사람이나 오다 가다가 만난 사람이나 이 구속의 이 사업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자기 소유와 몸이나 시간이나 정력이나 이 일을 위해서  투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이 일 위해서 투자하고도 마음에 항상  모자라서 아직까지 '나는 빚진 사람이다. 내가 다 투자할 것을 투자하지 못해서,  많은 사람이 내 투자로 말미암아 살아나고 행복될 터인데 이걸 투자하지 못해서  지금 그들이 이 살아나지를 못하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사람이나 나는 빚진 자이다.' 마지막에 이 도를 위해서 순교를 당하는 그 직전에  쓴 증거에 '이제는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고 나의 싸울 싸움을 다 싸웠다'  그 싸울 싸움은 대외의 싸움도 있지마는 자기하고 싸운 싸움이 제일 큰  싸움이라는 것을 고린도전서 9장에 기록해 놨습니다.

 자기와 싸운 싸움이 제일 큰 싸움이다. '내가 싸우는 것을 허공을 친 거와 같이  싸우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발견 못하고 싸우는 싸움이 아니라.' 그러면 어떤  싸움 싸운다는 말이냐? 내가 남에게 전파한 뒤에 내가 버림 당할까 해서 내가  나를 스스로 쳐 복종시키는 자기와 자기 더불어 싸우는 일. 왜? 이 업을  택했다가 나중에 속에 잘못하면 이 업을 택했다가 저 업으로 돌아갑니다.

성령으로 시작 했다가 육체로 마칩니다. 이래 가지고 이 업을 택했다가 저 업을  택했다가 이렇게 요동되니, 이 업을 택해 가지고 있는데 다른 업을 택하는, 자기  아닌 속에 옛사람 원수 그놈은 들어 다른 업을 자꾸 택하자 합니다. 그놈하고  싸웁니다.

 요새는 마음에 참 위험합니다. 왜 위험한가? 이 세상은 으레 그렇지마는 세상이  별별 것을 내 놓으면서 화려하고 찬란하게 이렇게 모두 내과서 20세기의 문화,  20세기의 발달의 지식, 이래 놓으니까 그것 가지고 자랑을 하니 참 믿는  사람들도 보니까 눈이 놀랄 만침, 깜짝깜짝 놀랄 만침 별별 아름다운 세상들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믿는 사람의 마음이 천국의 욕망으로 예수믿기 시작하고 난 다음에도  원층 세상이 아름다우니까 그만 세상에 대한 욕망이 하늘나라 욕망보다  커집니다.

 이래서 오늘은 교회 부흥되는 교회들이 전부 하늘의 욕망보다도 세상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가 있고, 예수님 앞에 기도가 있고, 모두 다 성경이  있고 믿음이 있다 믿으면 세상 욕망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하면, 세상 자기  혼자 가지고 욕심내도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이 많은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니까 모여 들지마는 그것이 내나  기독교 세상주의라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세상과 천국 있지마는 어느 것을 더 중점적으로 평가하느냐?  그것은 지식이고, 어느 것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느냐 하는 그건 지식이고, 어느  것을 중점적으로 자기가 현재에 상대하고 있느냐? 행동하고 있느냐? 그것은  실체인 것입니다. 지식적인 것도 있고 실제의 것이 있으니 실제의 것은 다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말이오. 또 그러면 자신에 대해서 그리스도화되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자기가 성화되는 이 성화되는 것, 하나님의 형상화되는  이 가치보다도 육체의 가치가 훨씬 앞서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어려서 그렇지마는 화요일마다 중매에 그 상담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사람에 대해서 성화의 평가라는 것은 말은 하지마는 별로 가치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성화 평가가 돼서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 어느 정도  부요하며 진리로 어느 정도 부요하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어느 정도 변화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그것은 가치로 여기지 않습니다. 전부 육의 가치, 육의  가치, 육의 가치있는 사람은 총각이 나오면 뭐 처녀가 꽉 찼습니다. 육의 가치가  나오면 권찰님들도 막 여기도 저기도 어떻게 그 청원자가 많은지, 그러나 영의  가치를 내놓으면 사람들이 다 깔봅니다. 육의 가치없고 영의 가치있는 사람은  깔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목표는 육체의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이 구속된  이 성화된 것 이것을 만들려고 썩은 것을 썩치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욕된 걸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이거 만들기  위해서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우리가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주  기울어졌습니다. 지금 세계 교회가 다 기울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보다도  육체의 것을 훨씬 높이 평가합니다.

 이러니까 말로는 그렇지마는 주님이 보실 때에 실지로 생애는 다 육체에 있어.

그러기에 예수 잘 믿어 늙은 사람은 천합니다. 예수 잘 믿어 늙은 사람은 천해  가치가 적고 젊어서 애른 애른하게 아주 날씬하게 믿고 한 그 젊음은 가치가  있습니다. 젊음은 가치가 있고 늙음은 가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모두 다  생각하기를 그 젊음을 생각해요. 그러니까 '옛날이 지금보다 낫다.' 다 옛날을  사모합니다. '너 지금 예수믿어 성화된 이게 낫나 지금 젊은 사람이 되고 싶나?'  뭐 다 버리고 젊은 사람 되고 싶다 하는 것이 아마 백의 99 될 것입니다.

 이러니까 나라도 달라지지 자기 자체도 달라지지 자기의 소유도 달라지지  이렇지만 이거 비교를 안 한다 말이오. 이거 비교를 하라고 비교를 말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기가 비교 못하지 전부가 다 그리 기울어져 막 그리 내려가고  있지, 이래 놓으니까 어떻게 여기서 반성해서 알 수가 있겠느냐 말이오. 전체가  홍수처럼, 뭐 홍수처럼 마구 내리 세상으로 향해 달리고 있으니까 자기가  올라오려 해도 올라오기 어려운데, 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그래 놓으니  자기가 그것을 반성하고 깨우칠 수가 없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믿는 것은 지성적인 신앙이어야 됩니다. 지식적인 지성,  지식의 신앙, 지식으로 신앙해 가지고 지식으로 신앙하고 또 그다음에는  실질적인 신앙이 되어서 비판 비교, 비판 비교 평가 이래 가지고 모든 것보다  주님의 취하심이 탁월하다. 별별 사람이 되기를 다 원하는 사람들 뭐 천 종류 만  종류도 넘습니다.

 이러나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되고저 하는 것보다도 '나는 사랑의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예수님은 사랑의 사람이 될려고 거기 전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또  예수님은 모든 그 업 중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이 구속업, 이 구속업을  예수님은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선택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여기다가 다  투자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롭게 모든 것을 비판하고  비교하고 평가해 가지고, 보다가 무엇인지? 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는  보다 어떤 업을 취할 것인지? 이것을 바로 평가하면 자기의 생애가 나타날  것입니다. 자기는 어떠한 사람이 되려는, 또 자기는 어떤 사업가가 되려는 것,  자기는 그러면 이 사업에는 어느 정도 충실하게 자기가 투자하고 있는가? 자기는  이 사랑의 사람이 어느 정도 되어 가고 있는가? 이것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희생과 소망으로 가치가 대번에 나옵니다. 그 가치가 대번에 나오요.

양이 나오고 질이 나오고 그 중량이 대번 나옵니다.

 이것을 간추려서 이래 말하니까 무슨 말인지 벙벙벙하이 들어서 잘 몰라. 지난  주일에 말한 것은 더우기나 더 모를 것이고 또 지난밤에 말한 것도 또 모를  것이고 자꾸 이렇게 말을 하면 차차 알아질 것이라.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세상에 모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영감으로 모를 게  없어. 다 내가 미쳤나 안 미쳤나, 내가 정신 있나 없나, 내가 어떤 자에게,  원수에게 매였나 안 매였나, 내가 자유하나 다 알 수 있다 말이요. 어쨌든지  알아서 자기를 지혜롭게 자기를 아껴야 됩니다. 자기를 귀중히 취급하고 자기를  아끼고 얼마든지 하나님처럼 이렇게 존귀한 사람 될 수 있는 것인데 어리석게  자기를 망쳐 버리기가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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