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

 

1982. 6. 5. 토새

 

본문:베드로전서 5장 1절~1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지난밤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장로의 성질의 위치와 직책도 가졌고 또 젊은이  성질의 위치와 직책도 가진 양면 위치를 가진 사람이요 양면 직책을 가진  우리들인 것입니다.

여기에 장로라고 한 것은 교회 감독을 두고 말씀한 건데 그 안에 내적에, 내부에  들어가면 성질은 그러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는 장로라고만, 장로의  위치와 그 직책만 가졌다고 생각하면 일방적이어서 치우쳐서 실패합니다. 또  자기는 젊은이로 언제든지 배울 자로만 이렇게 위치와 직책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그도 치우쳐서 실패합니다. 양면 위치를 실상으로 가졌고, 또 직책을 실상으로  가져 행하여야만 하는 우리들입니다.

사람들이 인간 알기에 세운 그 성직과 위치와 직책도 있지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워 준 실상의 직책과 위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상이요 이것은  사람들의 그 제도에 의거하는 것입니다.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여기는 장로 직책을 할 사람은 누구든지 이렇게 해야  장로 직책이 됩니다. 지난밤에는 젊은이의 직책에 대해서 말씀을 한 것입니다.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이 성경 기자는 베드로인데  베드로도 자기는 함께 장로 위치의 직책을 가진 사람이라 하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러면 우리는 전부 실상으로는 함께 장로의 위치와  직책을 가진 자인 것을 알고 이 장로의 위치의 직책을 감당하는 데에는 이  권면을 받아야 합니다.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고난 받은 그 고난을 누구든지  장로 직책에서는 이 고난을 받아야 하고, 또 이 고난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하고, 또 이 고난을 다른 사람들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증인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은 내나 예수님의 영이신데 그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도성인신 하시기 전에는  그 이름이 말씀이라, 그리스도라, 성자라 이랬으나 그 후 사람으로 나타나실  때에는 예수님이라 이렇게 이름이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신성이신데 그 직책을 말할 때에 특별히 그리스도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라 말은 예수님의 고난이라는 말인데, 왜  그러면 예수님의 고난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했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을 완성하신 우리 구원의 근거를, 근거의 공로를 설정하신  역사를 했고, 그리스도는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신 그 목적과 이유를  달성시키시는 책임을 지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때에 그리스도라, 그리스도의  영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자 왕, 그러면 자신이, 예수님께서 제사장과  선지자 왕의 이 직책을 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또 이 그리스도의 고난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이 세 가지의 권위를,  세 가지의 권위를 당신이 책임 맡은 자들에게 입혀 주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또 이 세 가지 직책을 당신이 감당하기 위해서 당한 고난과 맡은 자들에게 이 세  가지의 은혜를 입혀 주기 위해서 당한 고난과 또 이 세 가지를 입혀 줄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입혀 줄 수 있는 이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삼중적인 고난이요,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이 예수님의 고난이십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은 그 직책을 뚜렷이 들어서 세 가지를 발표해서 그리스도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어떤 것이 제사장인고 하니,-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지난밤에도 설교하기가 어떻게 힘이 드는지, 여러분들에게 이거는  뭐 마구 쇳덩어리에다가 송곳으로 뚫으려 하니까 뚫려집니까? 쇳덩어리인데,  아주 깜깜한 어두움의 무지의 덩어리, 덩어리라도 얼마나 야문 쇳덩어리 같은 데  암만 정을 대고 때려 봤자 그 참 안 뚫린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힘이 듭니다.

계속 증거한 말씀을 지난밤에 증거했는데 이제 새벽으로 증거할 때는 좀  알아들으니까 되는데 지난밤에는 더 이제 고통스럽습니다. 왜? 목회자들이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그 말이오. 가짜라, 가짜.

진짜가 별로 없어. 가짜. 모두 자기 속는 줄을 자기가 모르고 있어.

제사장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조화를 잘 해서 하나님도 좋아하시고 피조물도  좋도록 그 사이를 잘 화친 화목 서로 친교 상통을 만드는 그것이 제사장  역할입니다.

선지자 역할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그 모든 비밀, 이 비밀이 창조되고 이  비밀이 나타나고 거기에 모든 것이 다 그분에게서, 그분의 비밀에게서 나온 것이  이 세상이요 무궁세계인데 그것을 피조물들에게 갖다 주는 직책이 이  선지직입니다.

그러기에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골이 빠진다 그말이오. 제일 진액이  빠져. 이런데 이것을 생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부흥강사로 청하면 ‘아, 이거  영광스러운 강사로 청하니까 이만큼 내가 자기를 영광스럽게 대우해 주니까,  내가 사경회로, 우리 교회서 부흥회를 강사로 청할 터이니까 우리 교회 좀 보조  좀 해 줄렵니까?’ 그자는 그 교회의 삯군 목자요, 양의 껍질 입은 이리요  도적이요 강도이기 때문에 그 밑의 양떼들이 참 불쌍합니다.

그게 깨닫지 못하니 ‘이것을 한번 그래도 살리는 데까지는 살려 봐야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그래서 갑니다. 가면 그 교회에 제일 대마귀가 뭐이냐?  교역자입니다. 이래서 그 이름을 붙이기를 소방대라, 소방대라. 성신의 역사를  불을 끄는 소방대라. 불을 붙이는 게 아니고 소방대라. 불을 끄는 자라. 그게  간첩이라. 그런 교역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거의 다 그런 교역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거요.

그러나 자기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가지고 사람들에게 무한하신  하나님의 그 비밀을 그들에게 알려주려고 할 때에는 무한함을 유한한 그 속에  들이 담으려고 하니까 어떻게 담겨집니까? 조그마한 접시에 태산이 담겨질 수  있겠습니까?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는 무한하신 능력이 그걸 또 와서 키워야 된다. 그 말이오. 성령이  와서 그 사람에 대한 그릇을 넓혀야 되지, 또 하나님의 이 비밀의 무한함을 그  무지한 유한한 인간에게 속에다 넣어 줘야 되지, 이러니까 하나님의  성령님밖에는 할 수가 없는 일인데, 이 일을 성령님이 하시니 자기도 있는  힘대로 다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것이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라  그거요.

권찰님들은 말합니다.‘참 목사님 그렇게 수고하시고 피곤할 건데, 피곤할  건데’ 자꾸 피곤하다고 말하지마는 다른 사람은 ‘이번에 영광을 받았다’  이렇게 말합니다. 집회 하고 나면 ‘영광 받고 재미 봤다’ 이렇지마는 경험있는  사람은 ‘많이 피곤하실 거라’ 하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이라 그거요.

장로 된 자는 하나님에게 있는 비밀 그 비밀을 자기가 이제 받았으니 그것을  자기 이상의 사람은 만들지 못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그것은  그에게 알려서 자기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소망에 대해서 어떠함  같이 그 사람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자기 장로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는 고난이라 그 말이오. 선지 고난.

제사장 고난. 독사와 시랑이와 같아서 만나면 이간을 붙이고 이간을 붙여서  어쩌든지, 교역자끼리도 보면 이간 붙이는 마귀, 대마귀 이것을 하고 있는  자에게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화친을 일으키는 그것이 제사장직인데 이 일을  하려 하니까 고난을 당합니다. 이 사실을 자기가 감당을 해서 이 직책을 제가  하려고 하니까 당하는 고난이오.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이러한 제사장 인격인 인격의 사람으로, 선지  인격의 사람으로 이렇게 만드는 역사를 하려 하니까 고난이 있는 그것이 장로가  첫째로 당하는 일이라 그 말이오.

자기가 이 일을 감당하려고 하니까 고난이오. 상대방이, 과연 내가 이렇게  함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변화가 되어야 될 터이니까 변화를 시켜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왕은 하나님에게만 통치를 받는 것이 여기 있는 왕인데,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내게 어려움이 있고, 또 그 사람을 이런 사람으로 변화를  시키려고 하니까 또 어려움이 있고, 또 그 사람이 저만 변화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참 다른 사람에게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려고 하니까 또 고난이라 그 말이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 누가 봐도 그 사람의 고난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이요 또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고 다른  사람에게 이 고난을 전해 줘서 이 고난을 실지로 받는 사람, 당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그것이 증인이라.

증인이라 말은 그리스도의,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이 고난을 기념한다는 말도  되고 이 고난을 전달한다는 말도 되고,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과 꼭 같은 그  고난을 이제 자기가 당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떤 고난이라는 것을 환하게  다른 사람들로 인식하게 해 준다 하는 그런 뜻을 가리켜서 증인이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권면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있어야 장로의 위치 직책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예수님께서 이 장로 직책을 잘 하고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심같이 이 장로 직책을 잘한 자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자라 그 말이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자, 참예할 자, 자기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제사장 노릇을 했으니까 모든 피조물들이 좋아하지, 또 피조물들에게 그 자체들이 이 제사장 선지적인, 왕적인 이런 은혜를 입혀  줬으니까 그들이 좋아하지, 또 이런 직책을 입을 뿐만 아니라 전하기 위해서  고난, 입히기 위해서 고난, 입힐 뿐만 아니라 저도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이것이 향나무입니다. 향, 향품이라는 향 열매를 맺는,  아가서에 모두 향나무들이라 그 말은 향나무에는 향내가 나지를 않습니다. 별로  안 나요. 그러나 향나무가 연 그 나무에는 향내가 난다 그거요.

꽃이 피어서 향기가 나지마는 그 나무에는 맡으면 냄새가 안 난다 그거요.

그러나 꽃이 피면 향이 향기가 나는 것처럼, 이렇게 향기를 만들어 내는 나무라.

향나무라 하는 그 말은 이렇게 세상에서 빛된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많은  참 의인을 만들어 내는, 인재를 만든 사람들을 가리켜서 향나무라 그렇게  아가서에 표현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너무도 사람을 만들어 내는 여기에 높은 도수에 올라가기 때문에 밑에  있는 사람들이 그에 대한 향기를 모른다 그 말이오. 그에 대한 향기를 몰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무도 몰랐고 선지사도를 그 당시에 아무도 몰랐던  것은 성인이라야 능지 성인이라고 성인이 되어야 이제 성인을 알지 그렇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과 같은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영광에 참예할 자라” 예수님께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은 이  그리스도의 고난 받고 이 그리스도 일을 성공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니 이렇게 너도 이 장로 직책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아버지  우편에 앉는 거와 같은 그런, 앉을 수 있는 그런 희망이 네게 왔고 소망이 네게  왔으니 이 소망과 이 희망의 노력을 달성 조성하기 위해서 네가 먼저 그리스도의  고난인, 그 실지의 방편인 그 방편을 네가 쓰도록 해라, 쓰는 데에는 이 영광을  생각하면서 네가 쓰도록 해라 말씀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네게 있는 그 양 무리는 네가 전도해  가지고 모인 교인이니까 네 교인으로 알고 그것은 네게 속한 자로 알지마는  하나님께서 너에게 맡겼기 때문에 네 것이 됐지 네 노력으로 된 것 아니다.

이러니까 아버지께서 보내시면 오지 않을 자 없고 아버지가 보내지 않은 것이  오는 것은 전부 마귀 놀음 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버지가 보내지 않은  것을 인본적으로 자꾸 주 끌어 모아 놓으니까 그게 어떤 거냐 하면 교회에  사건만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염소새끼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네 친구는  사망과 음부가 네 친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맡기워 준 자들에게」 ‘맡기운  자들에게’ 그러면 맡긴 분이 있고 나는 맡았다 이거요.

그러면 교회에,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 오게 하신 분이 있고 오게 하신 것을 나는  맡은 것뿐이지 내가 오게 한 것이 아니라 그거요. 그러니까 주님이 내게 맡겨서  내가 그 감당을 신실히 할 수 있다면 자꾸 맡길 것이고, 벌써 맡겼던 양을  하나님께서 도로 찾아가는 것은 그 양떼가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하나님의  양들을 찾아 가지고 가는 줄을 알아야 되지, 뭐 교회 목회 못 하는 자는 만날  말하기를 그 말 합니다. ‘아, 핍박이 있어서 참 전도하기가 안 됐습니다.’  ‘무슨 핍박이 있노?’ ‘백파라는 핍박이 있어서 전도가 안 됐습니다.’ 아,  백파면 왜, 백파면 너희는 무슨 흑파가? 흑파보다야 백파가 낫지. 너희는 파가  있지만 우리는 파가 없다고 말하지. 아버지가 보내 주는데 무슨 파가  상관있는가요? 이러니까 제일 내게 대해서 핍박 많이 하는 사람은 ○○교파인데 ○○교파가  제일 성한 곳은 부산입니다. ○○교파의 제일 근거지인, 제일 왕성되어 있는  대세를 가지고 있는 곳이 부산인데, 또 제일 나를 핍박하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아버지가 보내시니까 자꾸 사람이 모여들어서 부산에 제일 큰 교회의 삼 배는  된다 말이오, 장년이. 주일학교는 몇 배가 되고.

이러니까 맡겨 준,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시는 이것을 알고 ‘주님이 나에게  맡겨 주실 수 있도록 내가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지는 않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만 교인을 붙들려면 간교하게 붙들고, 간교하게 그 사람을 살살  꾀워 가지고, 오늘 꾀운 것이 폭로될 상 바르면 내일 꾀고 내일 꾀운 것이  폭로될 상 바르면 또 모레 꾀우고 자꾸 이래 가지고, 공산주의가 석 달이면  해방된다고 석 달 석 달로 꾀우니까 순전히 거짓말로 해 가지고 이북에 있는  백성들을 아주 어둡게 만들어 가지고 꾀우는 것처럼 이래 꾀워 가지고 목회하는  자들이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암만 그래 봐도 아버지가 찾아가니까 할 수 없다 그거요. 맡기워 준  자들인데 이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이런 깨달음  없는 데에서 네가 해 가지고는 마귀 노릇이나 하지 장로 노릇은 못 한다. 네가  장로 노릇을 하려고 하면 장로의 무궁세계의 그 영광, 네가 핍박하는 그 핍박이  너를 찬양할 것이며 너를 대적하는 대적 그것이 너를 환영한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이 장로의 직책을, 그리스도의 직책을 함으로 인해서 욕하는  사람 그 사람이 장차 너를 찬송할 사람이라는 것을 네가 알아라. 그 대적하는  사람이,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거는 이단이라고 대적하는 그  사람들이 이 후에 가면 무릎을 꿇고 ‘과연 이 진리가 옳았습니다. 우리에게  옳은 선지자 노릇 했는데 우리가 이것을 듣지 않고 패역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욕하는 사람이 찬송할 사람이요, 대적할 사람이 환영할 사람이요, 밟는 사람이  너를 떠들고 높이 메고 있을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가 어찌 되며, 진리와 영감과의 관계가 어찌  되는가 이 점이나 네가 생각할 일이지, 인간이 올리면 뭐 얼마나 올라갈 것이며  내리면 얼마나 끌어내릴 줄 아나? 내리지도 못하고 올리지도 못한다. 그러기에  올리고 내리는 것은 오직 전능자 그분에게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부담한  일이요 그분이 하시는 일이요, 인간은 공연히 월권적으로 덤비기만 덤비는  것이지 아무 실권은 하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데 대해서 네가 인간을  통해서 올라가려고 내려가려고, 그런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을 가지지를 말아라  하는 말입니다.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이 진리를 깨달아 가지고 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라” 네가 이 일을 하되 네가  조그만치라도 하는 실지의 행위는 그 행위가 네게서 나오면 안 된다. 장소도  하나님이 택해 준 장소라야 되고, 시간도 하나님이 정해 준 시간이라야 되고,  종류도 하나님이 정해 준 종류라야 되고, 그 모든 이치도 하나님이 정해 준  이치라야 되지,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장소가 틀리면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틀리면 안 된다.

신사참배하는 것이 죄라고 했지마는 8·15 해방되고 난 다음에 신사참배하는  것이 죄라 하는 그것은 네가 회개나 할 일, 회나 할 일이지, 사유함이나 받을  일이지 네가 회개는 되는 것 아니다. 안 하는 것은 8·15 해방 전에,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일려고 하는 그 세력이 있을 때 그때 안 하는 사람이 안 하는  사람이지 그거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이제 안 한다는 주장하는 그것은 네가  알기나 하는 것이지 소용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도 하나님이 정해야 되고 때도 하나님이 정해야 되고 장소도  하나님이 정해야 되고 종류도 하나님이 정해야 된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장로직을 감당하되 주의 뜻을 따라서 그 뜻대로 해라 하는  말입니다. 주의 뜻을 좇으라 말한 것은 주의 뜻은, 뜻은 그 뜻 속에 능력도  들었고 사랑도 들었고 그 뜻만 가지면 다입니다. 그것이 실상인 것입니다.

하고, “더러운 이를 위해서 하지 말고” 더러운 이는 무슨 이가 더러운 이인가?  ‘그 영광에 참예할 자라’ 이 영광 이것이 자기를 참 유리하게 하는 것이요,  다른 사람을 유리하게 하는 것인데 이 영광에 찬미할 이 유익, 그리스도의  직책을 하는 이 수입 이것만이 네 수입이지 이거 외에 다른 유익, 장로가 내  사람 되어 가지고 나를 돕도록, 교인들이 내 사람 되도록, 내 편이 되도록,  그까짓 유익, 온 교인이 네게 죽자 살자 달아 맺혀도 그거 다 썩을 것이요 벌  받을 것뿐이지 아무 소용없다.

그리스도의 직책을 감당하게 되는 그것이 네 수입이요, 이 영광의 위치, 이  영광을 마련하는 것이 네 유익이지, 영광을 마련하는 것이 네 유익이요 이  영광을 마련하기 위해서 네가 그리스도의 직책을 조금씩이라도 진행하고  달성시키는 이것이 네 유익이지, 이 유익을 위해서 네가 해야 되지, 더러운  유익은 이거 아닌 유익은 전부 더러운 유익입니다. 이거 아닌 유익은 전부  더러운 유익이오.

요새도 보면 제 이름을 높이려고, ‘아무것이 저서가 몇 권 나왔다’ 하는 이  소리 들으려고 쓸데없이 인간을 어지럽히는 그런 저서를 책만 자꾸 내어 가지고  어지럽게 만들어. 그 사람들에게는 그 낸 것만치 벌이 있습니다. 그런 것 다  더러운 유익이라 그 말이오. 어떻게 운동해 가지고 사람을 제 사람 만들려고  마구 운동을 일으켜서 자기를 유명하게 하려 하는 그런 것도 아무리 유명하게  하긴 해도 그것 다 더러운 유익입니다.

더러운 유익이라 말은 불탈 유익이라 말이오. 심판받을, 다 정죄받을 유익이라  그 말입니다. 그런 인본에서 하지 말아라 그 말이오. 그런 인본에서 하지  말아라. 더러운 유익을 구해서 하지 말아라. 네 유익은, 네 수입은 그리스도의  직책이 감당되어서 그리스도의 이 직책을 감당한 것, 이런 사람들을 만든 것,  이것을 준 것,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든 것 그게 최고입니다. 이것이  네 수입이라.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즐거운 뜻으로 하라” 이것은 참  한없이 소원할 것이며 한없이 기쁜 것이며 한없이 다행스러운 일이라. 이 일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님은 십자가에서 ‘어떻게 나에게 이 직책을 줬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떻게 날 이렇게 화평의 제물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로서 내가, 피조물을 살리는 이 희생의 제물로 나를 세워  주십니까?’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그겁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게 어떻게 해서 이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을 맡겼으며, 맡겼을  뿐 아니라 이 삼직을 다른 사람에게 감당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 삼직을  입히고 이 삼직을 행할 수 있는, 또 그리스도의 고난을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을 만드는 이런 일을 맡기셨는가? 이 일의 큰 것, 이래서 사명감을,  사명감을 느낍시다. 이 사명의, 부르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등용하신 이  등용하심에 대해서 이 가치를 깨닫게 하려고 기도를 할 때마다, 권찰회 할  때마다 이 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 기도, 여러 수백 번 수천 번  했을는지 모르겠어. 이런데도 아직까지 말만 들어서 자꾸 그런 ‘원 저 말이라’  습성으로만 듣지 요 말을 듣는 귀가 열리지 아니한 사람은 참 그 권찰회  참여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요 설교 듣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오.

「즐거운 뜻으로 하며」 즐거운 소원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주장하는 자세, 그이에게 지금 내가 세도 부리고 나  나타내고 하는 그것보다도 너는 그리스도의 이 직책을 감당하기 위해서,  감당하려고 하니까 고난당하는 이 고난이 네게 오는 열매요, 너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직책 감당하려는 이것이 너희에게 전부가 되어야 될  터인데 벌써 이거 외에 영광 받으려고, 값을 받으려고, 너는 값을 받는 날이  아니라 그 말이오.

자세 부리지 말라 말은 이 그리스도의 계대적인 이 직책을 함으로 상급을 받고  존대를 받고 칭찬을 받는 것은 무궁세계 가서 받을 일이지 너는 이런 데는 눈뜰  수가 없고 눈코를 뜨지 못하고 이 직책을 감당하는 것, 이 고난당하는 것  이것만이 너는 전부가 되어져야 되지 그거 외에 네가 무슨 이렇게 함으로써, 이  직책을 감당함으로써 알아주는, 대우받는 이런 것을 지금 할 때가 아니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도 어렵습니다. 이것을 기도 가운데서 딱 쪼개야 된다 그  말이오.

내가 자세하고 있는 이 성격이 내게 이런 요소가 내게 돋아 오르는 것과 내가  그리스도의 직책을 감당하기 위해서 고난 받는 것, 고난이 안 보여야 됩니다,  실은. 고난이 안 보여야 된다 말이오.

그리스도의 직책을 감당하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 제삼자가 볼 때에 그 고난이  보여지지, ‘아, 저래도 저 고난당하는 저 사람 지금 저래 뭣 때문에 저래 하고  있다’ 이렇게 보여지지 네가 이 고난을 받기 위해서, 고난이 보이지 않고 직책  감당하기만 전부가 다 되어지고 보니 그 결과로 고난이 오나 그 고난이 이 직책  감당되는 것을 인해서 기쁘고 즐겁고 아무,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면  이루리라’ 피곤치 아니해야 되어지는데 엉뚱이 같이, 이 고난만 생각해도 안  되는데 여기서 칭찬받고 영광 받고 대우받고 알아줌을 받으려고 할 때에도  고통입니다.

그걸 우리가 연약한 사람이라 자주 체험합니다. 이것이나마 ‘아, 내가 이렇게  하는데 이걸 알아주지 않는다. 대우하지 않는다.’ 하면 그만 지옥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을 상대방에게 말할 때 있는 것은 그를 살리기 위해서, 정말  내게는 그런 것이 없는데 살리기 위해서 ‘네가 눈이라도 빼 줄 만치 이렇게  사모하는 게 옳지 않느냐’ 그만 위해서 할 때는 유익이 있지마는 자기가 거기서  자세적인 그런 입장에서, 대우 받으려는 입장에서 할 때에는 자기에게는  암흑이요 사망인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도는 세밀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이 말은, 나를 본받으라 하는 그게  ‘내가 모본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그게 아니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도 너를 보아서 다 네게 속한 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지도록 네가 이렇게 하라 그 말이오.

‘나를 본 받아라’본보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런 모본을 보이기 위해서  행동할 때는 벌써 죽었다 그 말이오. 그게 아니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이것을 제삼자들이, 너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할 게 아니라 네게 속한 자들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이런 자가 되기까지 해라.

향나무를 만들어라 하는 이것을 말씀하는 것인데, 자기를 본받게 하려는, 바울이  있다가 ‘나를 본받으라.’ 그 말은 성경 기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기자.

정확무오한 그 결과를 맺은 영감의 그 위치 성경 기자 그것을 말하는 것이니까  내나 성령을 본받으라는 말이지 자기를, 자기라는 사람을 본받으라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할 때에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장로가 할, 장로가 받아야 될 권면, 장로는 이런 본질과 본성  이런 방편을 가지고 이런 목표를 두고 이런 결과가 맺어지도록 하는 것이  장로직이오. 우리는 일방적으로 내가 은사 위치에 있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히는 위치는 오늘 예수 믿고 오늘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해도 전도하는  사람은 장로 위치에서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거요.

이러고 젊은이, 암만 목사도 은혜를 받는 것, 자기가, 지난밤에 한 말씀이 참  귀한 말씀이요 어려운 말씀입니다. 자기가 장로만 되면 실패요 젊은이만 되면  실패입니다. 어디서든지 목사도 젊은이가 되어야 됩니다. 어디든지 가면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라. 너는 죽는 날까지 배우는 사람으로 너는 살아라. 죽는 날까지  너는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라. 복종하는 사람으로 살아라. 복종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연습을 해라. 이것이 능하신 손 아래 복종하는 것의 제일차적인,  초보적인 힘이다. 이것이 초보적인 힘이다.

그 다음에 완성하는 힘은 어떤 힘이라고 말했습니까? 자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완성하는 힘은 무슨 힘이지요? ○○○목사님. ○○○목사님. 예?  욕망의 힘. 백점이야. 욕망의 힘. 지난밤에 이걸 뭐 기진맥진하기까지 말했다 그  말이오. 욕망의 힘.

첫째는 자기가 이렇게 배우는 사람으로, 순복하는 사람으로, 꼬리가 되는  사람으로, 종으로 이렇게 자기가 처세를 해 봤으면 이것이 얼마나 자기를 동이는  것이며,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얼마나 자기를 튼튼케 하는 것이며, 얼마나  강하게 하는 것인 것을 네가 경험하고 체험해서 이렇게 하는 생활에서 유익을  현저히 네가 많이 봤기 때문에 이 경험과 체험이 너에게는 일차적으로 제일 큰  힘이 된다. 이차적으로 힘은 욕망의 힘. “때가 되면 너를 높이리라.” 이렇게 지극히 커지는 이 욕망 이것을 네가 깨닫고 이 두 가지 힘으로 하고, 이  두 가지 힘으로 할 때에 방해자를 방어하는 것은 그 밑에 기록해 놨습니다.

염려가 우겨 들어옵니다. 또 뭐이냐? “근신하라” 네가 이거 경험과 체험  얻었는데 조심 안 하면 이거 잊어버려. 잊어버리면 헛일이라. 깨어라 그 말은,  깨라 말은 이 욕망을 굳게 잡으라 그 말이오. 근신하라 말은 네가 이제까지의  경험 체험한 이 위치에서 이 사람으로 산 그것을 네가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  말이오.

그러면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너를 삼키려 하는 걸 볼 거다. ‘이제는 아내가  마귀가 되어 가지고 나를 삼키는구나. 남편이 마귀가 되어 가지고 삼키는구나.

목사가 마귀가 되어 가지고 나를 삼키는구나.’ 하는 걸 볼 수 있을 거라  그거요. 마귀를 눈으로 보는 것이 있을 거라 말이오. 자기를 넘어 트리려고 하는  것이 있을 거라 그말이오.

이러면 그때는 네가 인본으로 가지고 ‘이런 일은 이렇게 처리해야 되겠다.

저렇게 해야 되겠다.’ 암만 해 봤자 안 된다. 거기서 네가 ‘여기 대해서  하나님의 뜻 내가 행할 것이 뭐이냐?’ 그것만 찾아서 행하면 마귀는 쫓겨가고  물러가고 이기는데 이기는 방편은 그렇게 해라. 그런데 이걸 네가 예비지식으로  가지고 있어야 방어가 되고 네가 승리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아니하지 이렇게  하면서 네가 ‘이런 어려움을 당한다’ 할 게 아니라, 세상에 썩을 일, 썩어질  결과를 맺는 데도, 썩어질 성공을 하는 데도, 썩어질 그 모든 풀의 꽃과 같은  그런 영광도 마련하려고 하면 애로가 있는 것은 필연한 일인데, 애로 끝에  무엇이 좋은 게 있지 애로없이 있는 게 아닌데 네가 이렇게 지극히 큰 이 소망을  가지는데 애로가 없을 것이냐? 애로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요 인식을 네가  가져라.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동일하다 그말이오.

가지라. 그런데 또 네가 가질 것은, 너는 잠시 잠깐 네가 이 애로를 겪어  가지고, 애로를 겪는 데에서 네가 온전해지고 네가 굳세어지고 네가 참되어진다.

이러면 너에게 대한 목표가 달성되어진다. 이분에게는 사랑과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니 이것을 네가 예비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으라. 그러면 된다.

그러기에 언제나 가르침 받기를, 가르침 받는 사람으로 꼭 살아야 되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왜 이 말을 했느냐 하면 사망하는 법칙은,  죽는 법칙은, 이 법칙은 왜 죽습니까? 죽는 법이, 여러분들 죽는 법은 살려  하다가 죽는 것이 죽는 법이오. 떨어지는 것은 올라갈려 하다가 떨어지는 것이  떨어지는 법이오. 선생될려 하다가 무식한쟁이 모르는 자 되는 것이 이것이  사망의 법입니다. 전부가 그 이치대로라.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는 정반대라. 죽을려고 하는데 살았고, 떨어질려고  내려갈려고 했는데 올라갔고, 자기는 무식한 사람으로서 배우는 사람 될려고  했는데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됐습니다.

이러기에 ‘선생은 한 분뿐이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니 너는  어디서든지 배우기를 힘쓰라.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라. 그러면 자기 아들하고  둘이 있어도 배우는 사람 되어라. 너는 배우는 사람 위치에 서고 가르치는 사람  위치에 서지 말아라.’ 이것을 신실히 당부한 것입니다.

거기서 배우는 위치에 어떻게 살 건가? 거기서도 그 학생에게, 그 아이에게,  아이를 데리고 앉아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고 말을 해 가지고 그  아이가 ‘아버지 이게 옳습니다.’ 말하면 ‘아, 네 말이 옳다. 그 참 옳다.

그렇게 해야 되겠다.’ 이거는 형식이오. 속으로는 그 아이에게 슬슬 이리  가르치고 저리 가르치고 빙빙 둘러서 말함으로 그 아이가 깨닫고 난 다음에  ‘아버지 이렇게 하면 좋지 않습니까?’ ‘야, 네 말이 맞다. 그렇게 해야  되겠다.’ 외부의 형식은 벌써 복종하는 사람 됐다 말이오.

이렇게 인간 대 인간으로 살 때에는 인간에게 너도 복종하는 사람으로 살려고  애를 써라. 이렇게 처세를 해 보면 맛이 있다. 참 튼튼하다. 재미가 있다.

그러면서 암만 해도 그 사람이 못 깨달아서 나에게 지도하고 있는 그런 것을  깨달아 가지고 말하지 않을 때에는 내가 그때는 어떻게 순복하는 사람으로 살  것이냐? 그때는 하나님에게서, 하나님께서 너에게 알려 주신 그 알려줌에 네가  순복으로, 그 사람에게 말하는 그것도 순복으로 해라. 네가 가르친다는 그것은  너에게는 사망이다. ‘이제 하나님이 시키시니 하나님께 순종으로 내가 이와같이  합니다.’ 너는 순종 순종으로, 배우는, 배우는 것으로 여생을 살아라. 이것이 겸손이다.

이것이 너를 튼튼케 하는 것이다. 이게 뭐이냐? 자기에게 대해서 무식하지 않고  자기에게 대해서 바로 알았다. 하나님께 대해 유식한 사람이다.

이런고로 하나님과 자기에게 대해서 유식한 것을 가리켜서 겸손이라. 무식해서  되지도 못하고 과대평가해서 어리석게 자기 망치는 그 무지한 행위가 교만이라  하는 것입니다. 많이 가서 새김질하면 깨달아질 것입니다.

이것을, 어제도 말하기를 이 녹음 복사를 해 가지고 이것을 하나 안 하나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것을 내가 여러 번 거절했습니다. 저 ○○○선생이 ‘목사님들이  이렇게 하라고 해 달라고 하시니 어째야 됩니까? 목사님한테 허락을 받아 해  달라 하는데 어째야 됩니까?’ 물으면 내가 있다가 거절입니다. ‘하지 말아라.

가만 있거라. 아직 참아 기다려라. 의논하고’ 자꾸 뒤로 미룬 것은 여러분들이  녹음이 여러분들의 지도자이고 선배이지 산 선배는 잊어버렸습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에게 생명없는 것이 전하는 이 전달만 여러분들이 받았지 능력과  감화는 이것은 여러분들이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도록 하고, 말 신자,  앵무새 모양으로 생명없는 것이 말만 전달해서 말 팔아먹는, 이 진리를 팔아서  사복을 차리는 이 말 판매자, 말 장사 이런 자가 되지 않고 실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복사를 이제까지 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원하고, 이제 다른 사람들은 이 복사를 해 가지고  가서 말 상인들이, 말 상인들이 이 밑에 있는 사람보다 다른 데 있는 사람들이  말 상인이 앞서 갔으니까 할 수 없이 이것도 말 상인을 뭐 하도록 허락 안 할 수  없어서 어제 허락했습니다. 이제 복사를 얼마든지 해 가지고 얼마든지 팔든지 뭐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는 데는 마지막으로 하나 권면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는 이 한 마디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지난밤에는 권능이 쏟아져 가도록 하려고 애를 썼는데 이제 오늘  아침에는 시간 없고 가야 되니까 말을 전달하는데, 이 말에 대해서 지난밤을  지냈으니까 들려지기는 잘 들리지마는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 이 진리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이 여러분들을 충족시켜서 여러분들에게 강한 힘이 와야 이 힘  가지고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고, 빌립보 옥중에서 찬송을 부르니까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다 석방되어지는 이런 역사가 일어났다  그거요.

그런고로 외식 신자가 되지 말아야 됩니다. ‘자, 내가 설교가 은혜가 없다 하니  기가 찹니다. 내가 꼭 한 마디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졸졸 노트를 읽어 주는데  무슨 은혜가 있고 뭐 없고 말합니까?’ 그분이 지금은 그런 사람 안 되어서 딴  사람이 됐는데 정말 그 사람은 속에 진정한 솔직한 말이라. 말이면 되는 줄  알았거든. 그 말 전하는 속에 감화와 능력이 같이 가야 되지 그게 없으면  하늘나라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만 가면 뭣 됩니까? 지식 됩니다. 그 지식은 그 사람을 어떻게 만듭니까?  지식은 그 사람을 어떻게 만들어요? 교만케 만들어. 하나님께 물리침 당합니다.

그러니까 1년 지나고 10년 지나고 마지막에 죽을 때 되어서는 하나님과 영  멀어진 사람 돼 버렸소.

이러니까 이래만 늘어 가지고, 마치 배우가 연극할 때 많이 연습해 가지고  하듯이 배우 노릇만 하고 있는 것이지, 옛날 하던 것, 뛰던, 굴리던, 주먹  때리던 것 암만 때려 봤자 새로운 깨달음에서 영감에서 할 때에는 무슨 역사가  있지마는 마지막에 역사가 없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부흥사가 다 껍데기가 되어 가지고 버림을 당하고 부흥사는  부흥사 노릇이나 하지 목회는 못 합니다. 목회는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이 있어야  목회가 되어지지, 만날 듣던 말 그것만 들으면, 만날 듣던 말이라도, 듣던 그  말이라도 속에 새 영감 더 강한 능력이 오면 그 말을 날마다 해도 은혜가 자꾸  된다 그말이오. 이래 이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봉사할 분들 대야, 고무다라이 가지고 와서 이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깨달으니까 자꾸 연보를 더 많이 내는 모양입니다. 첫날 낸 것은  3억 8천 얼마인데 이제 4억 2천 얼마라 그러니까 2백만 원 모자라니까 또 더  나서 한 4억 3천 얼마나 될는지. 나는 모릅니다.

요 공사에 필요한 것을 당신이 주시리라 하는 그것만 나는 믿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내 예산은 줄잡았고 당신 예산은 늘잡아서 연보 나오는 그 연보대로  뒤에 일하고 나면 그 일이 완성돼.

이제까지 제가 여기 서부교회 목회할 때에는 그대로 됩니다. 여러분들도 다  깨달았을 것이오. 이러니까 공사비를 연보하는데 많이 났을 때에는 우리가  모르는 돈이 뒤에 보니까 더 많이 들어 가지고 되더라 그거요. 감사합니다.

10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내일  주일에는 제직회가 있을 것입니다. 제직회 하는 것은 다른 것은 아니고 이제 이  공사를, 요번 공사가 한 연평 9백평 가량 되니까 우리 교회로서는 제일 큰  공사입니다. 이런데 이 공사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지고 누구에게 맡길 건가  이제 제직회에서 맡겨야 일을 하지, 내가 이제까지는 여러분들이 맡겨서 일을 해  나왔는데 이제까지 해 놓은 일로서는 흠이 없이 했습니다. 밑에서 내가 심부름  시키는 사람들이 좀 둔해서 내가 골만 빠져 그렇지 일은 기어코라도 바로 해  냈습니다.

이랬는데 이번에 공사도 어떻게 할런지 맡겨 줘야 되지 중구난방으로 이 사람도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도 저래 말해 가지고 이제, ‘이거는 교회 일이기 때문에  대중이 들어서 의논해서 해야 된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 의논하려 하면 이런  것, 집 짓는 것 이런 것 몇 배 골이 빠질 터이니까 나는 그런 일 안 합니다.

나는 그런 일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누가 할 이가 있으면 그걸 맡겨 가지고 하도록 내일 제직회에서는  요것이 결정되어야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 일을 맡겨 가지고 이 일을 한다든지,  그러면 열 명이 맡는다든지 스무 명이 맡는다든지 두 명이 맡는다든지 그렇게  맡아 가지고 일을 해야 되는데 맡아 가지고 하려고 하면 두 명 되면 두 명이 그  의논이 좋은 것 같아도 그것은 꼭 같은 자에게는 거기에서 뭐 나올는가 몰라도  두 명이 하면 두 명이 하는 것만치 서로 이해하고 협동하려 하면 대단히  곤란스러울 것입니다.

미국 나라가, 그 나라가 지금 아주 정치에 뛰어난 사람이 있지마는 의회가 있어  가지고 꼭 의회를 통과해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 나라는 지금 현재 뭐 어림도  없소. 환해요. 소련서 원자탄을 던져도 그 나라에서는 원자탄 던질 이가  없습니다. 던지면 그 사람 절단나기 때문에. 회의, 의회를 거쳐 가지고 빨리,  이제 그 사람들은 또 연구하기를 밑에다가 만일 전부 폭탄으로 폭격해 버리면  어찌 되느냐? 공중 의회 장소를, 공중 회의실을 만들어 놨답니다.

공중 회의실을 만들어 놔서 공중에 올라가서 회의한다고. 야! 이 바보들아,  공중에 올라가서 회의할 동안에 다 타 버리는데 무슨 소용 있노? 그거 어떤  사람이 한번 발표를 했어.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라. 마당이, 그 말 있어. ‘마당  갈라지는데 솔뿌리 걱정한다.’ 솔뿌리 가지고 깁거든. 박지기 갈라진 데 솔뿌리  가지고 기워. ‘마당 갈라지는데 박지기 기울 솔뿌리 걱정한다.’ 그게 그런  사람들이라.

이러니까 건축에 대해서 좋은 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 내어 놓아 가지고,  또 의논해서 하나가 되어 가지고 이와 같이 지금 일을 해야 될 터인데 하나가  되는 데에는 머리도 있고 꼬리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고 다 있어야 될 것이라  그거요.

이제 내일은 여러분들이 건축하는 데에는 건축위원들을 내가지고, 건축위원회를  내가지고 건축위원회에서 건축을 하게 되든지 또 누구에게 맡겨 가지고 하게  하든지 그것을 내일 결정을 해야 이 일이 될 것입니다.

그걸 집에 가서 다 의논해 가지고 내일 회의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단단히 연구해 가지고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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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그리스도에 대하여/ 빌립보서 3장 8절-12절/ 800331월새 선지자 2015.10.25
650 그리스도에 대하여/ 빌립보서 3장 10절-11절/ 800401화새 선지자 2015.10.25
649 그리스도안에 우리 생명/ 골로새서 3장 1절-6절/ 820408목새 선지자 2015.10.25
648 그리스도안에 우리 생명/ 골로새서 3장 1절-4절/ 820411주새 선지자 2015.10.25
647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골로새서 3장 1절-5절/ 841019금새 선지자 2015.10.25
646 그리스도를 모시는 방법/ 에베소서 3장 14절-21절/ 870215주전 선지자 2015.10.25
645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야/ 골로새서 3장 1절-6절/ 870213금야 선지자 2015.10.25
644 그리스도로 사는 것/ 골로새서 2장 20절-3장 11절/ 830911주후 선지자 2015.10.25
643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 베드로전서 1장 20절-22절/ 820815주전 선지자 2015.10.25
64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갈라디아서 2장 17절-21절/ 870110토새 선지자 2015.10.25
64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사람 나/ 베드로전서 1장 23절-25절/ 890611주전 선지자 2015.10.25
640 그리스도 삼직/ 누가복음 16장 1절-9절/ 840416월새 선지자 2015.10.25
639 그리스도 삼직/ 빌립보서 3장 3절-11절/ 800411금야 선지자 2015.10.25
638 그리스도 공부/ 골로새서 3장 1절 4절/ 841019금야 선지자 2015.10.25
637 그리스도/ 골로새서 3장 1절-4절/ 1983년 38 공과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