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에 대하여

 

1980. 4. 1. 화새

 

본문: 빌립보서 3장 10절-11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위에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약간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니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모든 것보다 크고 모든 것보다 크고  중요해서 거기에 전부를 다 기울이다가 보니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다 절로  자기와의 관계가 끊어지게 됐다.

 또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가 접촉할 때에는 거게서 그리스도를  얻는 그 수입만이 자기 수입으로 삼고 그 수입 삼는 그것만으로 세상과 세상  것을 접했고 그것을 자기 것 삼은 그 다음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자기와의  관계가 없어졌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얻는 그 점에서만 관계가 있었지  그 점 외에는 관계가 없었다 하는 것을 위에 말했습니다.

 "배설물로 여겼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무엇이기에 그러한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인데 하나님께서 이  그리스도의 직책을 가지시고 그리스도와 같은 자를 만드시는 이 역사를 감당하신  하나님을 가르쳐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인데 하나님의 이름이신데 하나님께서 어떤  직책을 하실까 그 직책을 나타내서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이라.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부음이란 말인데 기름 붓는 것. 기름 붓는다는 말은 안수,  요새 말로 말하면 안수한다는 말과 같고 장립시킨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 기름부음이란 뜻을 가졌는데 기름부음이란 무엇인가, 무슨 뜻인가? 이것을  하나님께서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친히 다스리는 그 신정국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히 다스릴 때에 기름 붓는 이 예식을 하나님이 행하게 하셨습니다.

기름 붓는 예식을 행하게 하셨는데 기름 붓는 예식을 세 군데만 행하게 했지  다른 데는 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는 제사장 될 때에는 기름부음 받는 이 안수를 받아야 되고, 또 선지자 될  때에는 기름부음 받아야 하고, 또 왕 될 때에는 기름부음 받아야 하고 이 세  가지 직책을 맡길 때에는 기름을 부어 가지고서 맡겼다. 머리에다가 마치 물로  세례 주는 것처럼 머리에 뿔에다 기름을 담아 가지고서 머리에다 부어서  기름부음으로 장립을 시켜서 제사장이 되도록 제사장을 시켜라 마치 요새 보면  장로도 안수를 해 가지고서 장로 장립을 시킵니다. 또 목사도 안수를 해  가지고서 목사 장립을 시킵니다. 또 집사도 그 중에 집사 중에 좀 독실하고  뛰어난 그런 집사는 안수해 가지고서 안수집사를 세웁니다.

 그러면 지금도 안수해 가지고서 장립시키는 것이 안수집사, 안수장로,  안수목사, 안수를 해 가지고 그렇게 장립을 시키는 거와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때에 이 세 가지 직책을 줄 때에는 기름 부어서 세워라.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인데 그리스도라는 이 직책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가지시고 제사장, 선지자, 왕을 만드시는 이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쳐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 기름을 부어서 그렇게 장립을 시켰다 또 기름부음은 무엇인가? 왜 기름  부었을까? 이랬는데 신정국가에는 기름부음에 대해서 그저 기름 부어서  얼굴까지도 흐르게 하고 또 기름을 가지고 선지자 가정이 선지자가 죽고 그 남은  자손들이 생계가 어려웠을 때에는 그 기름장사를 해 가지고 이렇게 생계를  유지하고 그런 것이 보이는데  그러면 기름부음이라는 건 왜 하필 기름을 부어 가지고서 그렇게 장립 시켰을까  했는데 신약교회에 와 가지고서 성령님이 똑똑히 나타냈습니다.

 성령님의 은사를 기름부음이라 이렇게 표시해서 기름부음은 곧 성령의 은사라  그렇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되는 데에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된다. 지금은 인제 성령의  세례가 신약교회에 와 가지고는 성령 세례라 이렇게 말했는데 또 그 후에는  기름부음이 너희들이 성령을 배우지마는 어떻게 행할 것은 사람에게 배울 것은  없다 사람에게 배워 가지고는 모른다. 너희 안에 있는 기름부음이 너희들을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가지고서 알게 했으니 그대로 행하면 된다.

 이 기름부음을 우리를 중생 시킨 성령 또 우리 안에 내주 하셔 가지고서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바로 하게 하는 이 기름부음 성령의 역사의 기름부음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내신 이 말씀은 세상 사전에서 봐 가지고서 알아야 될 그런  단어도 있지마는 대개는 세상 사람들이 이 말은 어떤 데에 쓰며,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아는 거와 같은 그 식으로 알아 가지고는 안됩니다. 성경에  있는 단어는 보면 성경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기에 기름부음이라 함은 뭐 기름 붓는 거야 다 그 말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렇지마는 기름부음이라는 기름 붓는다는 이 기름 붓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런 것은 성경에서 찾아서 알 수 있는데 그것을 해석해 놓아서 아는 것도  있지마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은 어떤 때에 사용하셨는가 그것을 봐 가지고서  그래 뜻을 찾아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젠가 어제 아래 인지 어젠지 어떤 사람이 저에게 목회학이라 하는  책을 한 권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보내 주겠다고 기증으로 선물로 보내  주겠다고 하기 때문에 자기가 성의로 그래하는 것을 사양하다가 그만 보내라  이랬더니마는  목회학이라 해서 목회학이라 목회에 대해서 목회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건 전부 요긴한 책이겠는데 '보자' 하고서 봤습니다. 목회학이란 이  목회학이 바로 되어 가지고 나온 그 책이 '어려운데 보자' 하고서 몇 페이지  보니까 그 목회학이 전부 성경에서 하나님이 목회하시는 그것을 발견하지를  못하고 이 사람들에서 나온 이것을 전부 가지고 엮어 놓았는데 처음에 보면 몇  페이지는 말이 술술 내려가고 아주 문장을 잘해 놓았습니다.

 아주 읽기 좋게 읽기 쉽게 해 놓았는데 그 속에 깨달아서 말해 놓은, 전부 세상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이 학문에서 저 사상에서 전부 이끌어  가지고 이래 놓으니까 그것을 알려 했으면 참 힘 많이 들겠는데 많은 독서를  해야 되겠고 글을 많이 읽어야 되겠고 또 그걸 많이 기억해야 되겠는데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헛되다 그 말이오. 전부 아무것도 아니라 집어던져 버리면 싶고  잡아 째 버리면 싶어 다 그만 아무것도 아니요.

 사람만 복잡하게만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도리는 성경을 가지고 해석을 해서  성경을 깨달아야 되겠는데 성경에 있는 이 단어를 전부 세상 사람들이 쓰는 그  말을 찾아보고서 그 말을 이렇게 쓰니까 누구는 이 말을 이렇게 인용했고 저랬고  뭐 전부가 세상 것뿐이지 성경에 인용한 것은 없다.

 이래 놓으니까 아주 그거는 참 그런 책을 읽어 가지고서 목회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복잡해지고 애를 쓰는데 헛길만 갑니다.

 또 성경 깨달음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서 가지고서 성경 깨달음을 찾아내려고  하니까 세상에 제가 온 세상을 다 파 보았자 암만 단합해 봤자 다 열람하고 다  제가 연구하고 다 안다 할지라도 세상에는 없는 겁니다.

 세상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 가서 찾으려고 하니까 제 딴에는 진짜라고  죽자 것 찾아 가지고 나왔는데 성경과는 정반대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거기 많이 그런 것을 많이 듣고 많이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그  사람들에게 성경 든 것이 없고 이게 길가에 뿌린 씨입니다. 길바닥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다져 놓으니까 성경도 아무리 정확무오로 죽어라 하면  죽으랬다는 것을 암만 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진다 이거야  이러니까 성경은 읽는 것뿐이지 성경과 자기와는 실지로 상관없는, 자기를  위해서 성경을 쓰는 정도지 성경에서 자기가 쓰여진다는 이 고개를 넘어가는  이것을 초월하는 이 선을 넘는 그런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숫자가 믿지마는 다 쭉정이고 알곡이 없다 이거요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때 선천고을에서는 내가 듣기에는 '네 집이 안 믿는다'고  했는데 거기서 온 목사님을 만나 가지고 보니까 '한 집도 안 믿는 집이 없다고  그것은 오래 전 말이라고'서   그런데 신사참배 때는 한 사람도 신앙으로 이기지 못했어. 전부 신사참배 다  했어 이래 가지고 그분이 그 형제분이 목사인데 전치령 목사님이라는 그 목사님  형제간입니다. 전치령 그분은 죽었는데 그 동생은 아마 지금 목회할 겁니다.

 자기네들이 받은 복음이 아주 헛되고 잘못 됐다는 것 생각하고 제게 따라  다니면서 계속해서 이랬는데 그래도 그 선입관념이 있어서 고신과 저와에 갈라진  후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그 뒤에 어찌 되었는지 그 형을  만났는데 그 동생은 만나지를 못했소.

 성경에 있는 단어는 성경에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 이 말씀을 줬느냐? 그것을  찾아 가지고 그 단어를 알아야 되지 사전에 가서 찾고 또 어떤 철인은 이 말을  어떤 때 이 단어를 어떤 때 썼노? 어떤 학자는 어떤 때 썼노? 또 어떤 도덕가는  이것을 어떻게 어떤 때 썼노? 어떤 종교가는 이런 이 말을 어떤 때 썼노? 이것을  제가 다 들으려고 하니까 머리를 앓지요. 이렇지마는 그 안 것이 다 잘못 알았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잡것이 없는 이 바른 것을 받아 가지고 바른 것을 배워 가지고  옳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옳은 것은 하나뿐이고 옳지 않은 것이 그와 비슷한  것이 천 도 만 도 넘을 수가 있습니다.

 옳은 것 하나 배워 가지고서 삐뚤어진 것을 뒤에 대조해 보니까 삐뚤어졌다고  아는 요것이 참 복 있는 배우는 길인데 요게 얼마나 복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콩은 하나 배우려고 하는데, 요 콩은 하나뿐인데 콩 그것 하나를 배워  가지고서 콩이 아닌데 콩과 비슷한 것 천 개 만 개라도 콩 한 개도 똑똑히 알아  놓으니까 요것 콩이 아니다 콩이 아니다 만 개를 들어도 콩이 아니라는 것을 요  배우는 길이 배움의 길이 있고 배움의 식이 있고 콩이 아닌 그 놈을 만 개나 뭐  억만 개나 배워 가지고서 요건 콩이 아니다 콩이 아니다 이건 콩이 아니다 콩이  아닌 그 숫자를 많은 숫자를 배워 가지고서 콩이 아닌 것을 배워 가지고서 콩을  알도록 이것도 아니라 아닌 것을 다 배웠으니까 콩만 보면 요건 콩이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는 방식이 있는데 그런 두 가지 식이 있습니다.

 두 가지 식에 있어서. 뒤에 말한 콩이 아닌 것을 알아 가지고 콩을 알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찾아 돌아다니다가 다 못 찾고 맙니다. 옳은 것을 배워 가지고  옳지 않는 것을 닥치면 알고 안 닥치면 알 필요가 없고 요렇게 아는 식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걸 지름길 첩경이라고 말했는데 하나님이 요렇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요 그러나 옳은 것만 배워 놓은 이 자가 옳은 것만 배워 놓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말을 하는데,  하나는 저는 하나만 알았는데 다른 사람은 백 가지 천 가지를 아니까 암만  알아도 삐뚤어진 것인데 아니까 한 가지 안 이것을 오히려 무가치한 것으로서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한 가지 안 이것을 오히려 무가치한 것으로서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한 가지 안 이것을 무시합니다.

 이래서 여러 가지를 말하니까 그걸 배우려고 하는 그 사람이 영감이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한 가지 안 옳은 것을 배운 사람은 고걸 가지고서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해서 그  경험해서 옳은 것을 배운 그것이 경험해 보니 그 지식이 경험의 지식이 보태  가지고 그 확실한 경험의 지식이 그 지식이 옳다는 것 보증을 하고 체험해서 그  체험의 지식 그 지식을 확실하다고 보증을 하고 옳은 것을 배운 데다가 자기가  실행함으로 경험이라는 것과 체험이라는 것이 요 배운 지식이 옳다는 것을  확실히 확고히 긍정을 세우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자기가 그렇게 됨으로써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되는 그  변화에서 요것이 옳다는 요 옳게 배운 지식과 자기의 경험과 자기의 체험과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되어지는 요거와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어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 옳은 것 그거와 같은데 옳은 것이 아닌 옳은 거와 같은 고거 같은데  옳은 것이 아닌 삐뚤어진 것 틀린 것 그 잘못된 거 그것에 대해서 잘못된 것  그것에 대해서 그럴 듯 하지마는 잘못된 것 그 잘못된 거 그것이 나옵니다.

 나오면 '아이쿠, 나는 이것 하나로만 알았는데 이 사람은 또 하나를 아는구나  아이구, 나는 샘 안에 개구리 모양으로 나는 너무도 좁은 지식을 가졌고 이 참  무식한 지식을 가졌구나' 또 하나가 나옵니다. 눈이 휘둥그레져 가지고 '아이쿠,  그래' 또 이래 됩니다. 또 하나가 나옵니다.

 셋이 나오니까 이것이 이렇츰 '자, 여기에 대해서 세 가지 지식이 있는데 나는  한 가지 지식 밖에는 몰랐구나' 이래 가지고 놀래서 그 지식을 배우기를 시작을  하니까 그 지식을 배워야 되겠지 그 지식을 배워서 시험을 치면 또 그게 합격이  되어야 되겠지 학점을 얻기 위해서 그 지식을 자기가 자꾸 배우고 힘을 기울려야  되겠지 또 그 지식을 보니까 자기는 하나밖에 몰랐는데 그와 같은 지식이 세 개,  네 개, 다섯 개 있으니까 그만 자기는 푹 쭈그러진다 말이오. 나는 하나만 알고  전 사람은 세 개, 네 개를 '아이구, 여게 보니까 지금 열 개가 나오는데 그  지식이 열 개가 나오는데' '아이구, 백 개가 나오는데' 그만 기압이 돼서 이제  이거나 저거나 다 같이 되어 버렸소.

 처음에 배운 옳은 지식이나 그 지식이나 같은 지식이니까 거게 대한 지식이  둘이 나오니까 셋이 같고 거게 대한 지식이 열이 나오니까 열 한 지식이 같고  거게 대한 지식이 백 개가 나오니까 제가 처음 배웠던 한 개와 백 개와 백 열  개가 나왔다 말이요.

 이러니까 '이처럼 넓은 지식이 있는데 이거 하나 그것만 배웠으니까 얼마나  무식하고 얼마나 좁으냐' 이래 가지고 그 지식을 배워 놓았단 말이야 배워  놓으니까 이제는 우쭐해집니다. 뒤로 저뻥해집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 여기에  백이 있다 이 교만하고 그만 깔보고 이래 됩니다.

 그러니까 그만 그 사람은 처음에 배웠던 것, 처음에 배웠던 것 그것 그와 같은  것이 나오는 거기에서 처음의 것이나 뒤에 나온 것이나 가치가 꼭 같은 거니까  가치를 같이 보지 같은 가치 있은 것이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둘이 나왔고 셋이  나왔고 넷이 나오고 했으니까 이제 처음 본 것은 그거는 나중에 배운 거와  무시해. 나중에 배운 거와 같은 동등 가치를 가지게 되다 보니까 처음에 배운 그  계통은 무시할 수밖에 없다 그 말이오. 계통 무시할 수가 있어.

 그 학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좁고 미개하고 무식하다. 이 학교가 낫다  아이구, 이 학교보다 이 학교가 낫다. 이 학교보다 이 학교가 낫다. 그만 그래  되다 보니까 처음에 자기가 평신도로 예수 믿고 성경보고 어떻게 그래 가지고서  좁은 그 바른 정통에서 배워 가지고서 어떻게 성경만 보고 그런 것 보지 아니  하고서 성경만 보니까 예수를 요렇게 믿어야 되겠다. 믿어야 되겠다 해서 예수를  믿어야 되겠다 라는 요런 열심도 나오고 예수 믿는 목회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예수로 자기는 그만 전공자와 전업자가 전문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그래서 신학교도 왔는데 신학교 와 가지고서 요런 것이 나오니까 요기다가 눈을  떠 가지고 요러다 보니까 신학 그만 4 학년을 떡 지내다 보니까 처음에 있던  열심은 하나도 없어져 버리고 그건 없어져 버리고 전부 지식 그것만 배워 가지고  나섰습니다.

 이러니까 참 꿀 먹은 벙어리라는 말이 있지만 저만 혼자 좋지 그걸 가지고서  아무리 양떼에게 증거 해야 양떼가 들어야지 제가 처음에 그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무식할 때에는 설교로만 교인들이 마구 은혜를 받고 따르고 저도 설교를  하면 힘이 나고 은혜롭게 이랬는데 이제 거기 가서 넓은 지식 많은 지식을 배워  가지고 이제 떡 와서 가르치니까 교인들이 안 듣는다 이거요. 또 저도 설교를  하니까 힘이 없다 이거요.

 이러면 거게서 '아이쿠야, 이거 내가 병들었다' 요렇게 깨달았으면 될 건데 또  그렇지 않습니다. 복 없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미련하게 하는 척 '내가 과거에  무식했을 때에는 자기네들이 이렇게 듣고 은혜 받았지마는 자기들이 무식하기  때문에 내가 유식해 가지고 설교를 하니까 무식하기 때문에 유식한 설교를 못  들어 무식해서 그렇다' 이래 가지고 자꾸 자기는 많이 아는데 무식해 그렇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유식해졌으니까 처음에는 펄펄 뛰는 그 신앙은 아주 미개한  신앙이라 그렇고 이제는 유식해졌기 때문에 그 신앙이 아무리 그렇게 요게  제일이라, 제일이라 하는 그런 열심도 없고 그 힘도 없고 교만도 없고 이제는  유식해 졌으니까 사람이 겸손해졌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 그거요.

 어떤 때 내가 그 목사가 나 욕하는 목사 중에 한 목사입니다. 그 목사가 그  집회 때 나한테 한 번 당했으니까 최의부 목사라는 목사인데 지금도 살아있을  겁니다. 아마 어디에 목회 할 것인데 목회 해봤자 그렇소. 벌써 고려 신학교  본과 생입니다. 본과 생으로 본과 생, 우리는 원어를 배우는데 원어도 모르고  영어도 모르고 한 그 별과 학생이라는 하는 학생이고 그 본과학생은 이제 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고, 별과 학생은 이제 성경만 공부하는 사람들인데 별과 학생  쳐 놓고서 목회 못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본과 학생 쳐 놓고서 목회 잘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학자라도 목회를 해 봐야 안 된다 그거요. 그분이 나하고 같은 학교인데  나보다 위에 학년이죠. 학년인데 그분은 처음 들어와 가지고 했고 나는 그때  나흘하고 가 버렸습니다.

 이랬는데 그래 자기 교회에 집회를 해 달라고 이래요. 집회를 해 달래서 가서  설교를 하는데 그 사람이 맹꽁이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어.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데 교인들은 알아들어서 마구 야단이 났다 그거요.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새벽까지 했는데 마구 내가 올라가니까 교인이 하나도  안 빠졌어. 전부 역에 다 나와 가지고 막 대성통곡이야. 이래 놓으니까 이  목사가 지금 죽을 지경이야.

 이랬는데 그 자기는 그렇게 목회해야 자꾸 싫다고 자꾸 배척을 해서 목사 갈아  달라고 지금 배척운동이 나고 막 야단인데 아, 나흘 동안에 막 교인들이  뒤집어져 가지고 저거가 이라니까 이제 부러운 것보다 시기심이라 질투심이 난다  이거요. 그 안색이 없소. 그래 놓으니까 그 말씀을 한 마디도 못 들어. 못 듣고  반대만 되어져.

 이래 가지고서 그 교인이 나와 말하는데 안 들으니까 그 무엇을 책을 두고 책을  가지고서 원서입니다. 이거 원서입니다. 이거 원어입니다. 이걸 이라면서 이래  가지고서 원어에 막 원어에 뭐 어떻고 어떻게 이래 말하는데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만 알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이고, 예수 처음 믿으러 나온  사람도 다 아는 것인데 그걸 가지고 말하니 양식이 되어지느냐 고서 자기만 좋은  거라.

 그래 가지고 그 교인들이 그 뒤에 막 왔다가 '한 번 더 청해서 이러자'고 이래  싸도 그 반대를 하고 이랬는데 가고 난 다음에 그 뒤에 갔습니다. 그 가는 걸 그  뒤에 부근에 집회를 하니까 전부 싹 다 와버렸어. 그 부근에 집회를 하니까 그  양떼들은 아는데 고것을 잘못 길들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 말이 있습니다. 신학교 4년에 제가 가졌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으면 목회 성공합니다. 신학 4년에 가졌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면은 그만  헛일입니다.

 제가 어떤 그 가정에 초대받아 가지고 갔었는데 그때 홍반석 박사가 처음  나왔을 때입니다. 나왔을 땐데 여게 석원태 목사님이라고 지금 그 고신에서  송상석 목사님 나가 달아 나가 가지고서 제일 머리 노릇 하는 그 석원태 목사님  아닙니까?   그분이 그때 같이 나하고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집에 받았는데 이제 초대한  사람은 목적이 무엇인고 하면은 그 목사님이 유망하게 보이니까 그분하고 나하고  접선을 시키면 어떻게 좀 융화가 될까 해서 그래 접선을 시키고,  그분이 말하기를 '아, 백 조사님(그때 내가 조사인데) 백 조사님 설교 하나  들으면 자기는 그 설교 가지고 서른 개 한다. 마흔 개 한다.'는 사람인데 서른  개도 마흔 개도 더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분이 쫓겨나기 전에 고신에서 '아무래도 백 조사님을 내가 목사  되었을 때 백 목사님을 우리 고신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분은 우리 고신에  눈이다 그분이 나가고 난 뒤에 눈이 어두워졌다. 그분이 눈이다 그분을  끌어들이자' 그분이 저를 끌어들이려는 그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영도 제일교회 있을 때 그러다가 나중에 거기서 그만 배척을 당해 가지고서  배척당하자 배척당해 가지고서 이리 저리 멀리 다니다가 고소파 반소파가 설 때  그때 고소를 반대한다는 그 주류부대 주류측과 주류측에 배척당해 가지고 있다가  주류측과 대립되는 일이 생겨서 거게 같이 따라 나서 가지고서 깃발을 들어서  그때 그분이 같이 나가 가지고 반소파에 제일 머리가 석원태 목사님입니다.

 그랬는데 그분과 그때 같이 초대를 받았어. 초대를 받았는데 동정녀 마리아라  하는 동정녀에 대해서 이분은, 그분은 히브리어 박사인데, 히브리어 박사이니까,  박사인데 인제 그 사람도 원어 자랑하기 위해서 원어 아는 그 원어 자랑이, 원어  내나 원어라는 것이 히브리어, 헬라어인데 그때 말로서는 제일 발달된 말입니다.

그 시대에는 제일 발달된 제일 문화 된 말인데 그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말은  그때에 문화로 말하면 제일 세계에 제일 앞장선, 앞장 서있는 그 문화를 가졌다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그때 히브리어를 그때에 헬라어는 신약을 기록할 때,  히브리어는 구약을 기록할 때는 히브리어, 그 말은 지금의 말에 비하면 제일  미개국 말보다 훨씬 미개합니다. 한 가지 말한, 한 가지 말속에 한 열 가지 뜻이  있습니다. 지금은 열 가지 뜻을 다 발표해서 단어가 생겼지마는 그때 뭉쳐  가지고 하는 미개 때라.

 예를 들면은 제일 처음에 말할 때는 문 하나 뿐이고 문을 닫아라, 문을 열어라,  문을 반만 닫아라, 문을 조금만 닫아라, 문을 조금 열어놔라, 문을 확 열어라,  이제 문 여는데 대해서 말이 뭐 열 가지 말이 나왔지마는 그때는 '문' 하는  거라. 문하면 이제 그 뭐 그만 여는 것 다 '문' 열라 말도 '문' 닫아라 말도  '문' 조금만 열라 말도 '문' 이와 마찬가지로 그때 미개한 때에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미개한 때의 말이기 때문에 그 한 말속에 백 가지나 들어  가지고 있으니까 이걸 어학 공부하는 사람이 이 백 가지 속에 여게 쓴 말은 이  말로 번역할까 저 말로 번역할까 번역하는 범위가 넓으니까 어느 걸로  번역할까가 문제라 그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실은 원어를 자랑하는 사람이 그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네  원어를 참고로 하고 그 뒤에 하나님께서 섭리해 나가는 것 또 다른 성경을 봐  가지고서 해석하는 그게 없으면 원어 아는 것 가지고는 깜깜 무식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라면서 히브리어는, 구약 성경은 예수 안 믿는 히브리어 박사들이 예수 믿는  이 유력한 목사들 그분들보다 그 구약 성경에 대해서는 확실히 더 뜻을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런 말했다 그 말입니다.

 이제 모이면은 자기 교수 자랑하려고 말한 거라. 우리 교수는 히브리어  박사이기 때문에 히브리어 구약,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은 예수 안 믿는  히브리어 학자들이 구약 성경에 대해서는 예수 믿는 그 목사들보다 더 훨씬 거게  대한 진의를 더 깨닫고 있다고 하더라,  인제 자기가 히브리어 박사이니까 아마 그런 어리석은 소리를 했던 모양이라,  내가 있다가 '누가 그러더냐 히브리 박사 홍반석이 그렇게 말하던가?' 그라니까  '예 그런데 그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안 믿는 히브리어 박사들이 믿는 목사들보다  더 히브리어에 대해서는 확실히 더 똑똑히 알고 있는 것 같고 친밀히 알고  있다고 합디다' 이래.

 내가 '그러면 우리 한글로 되어있는 그 한글 성경은 한글학자 무신론  한글학자가 믿는 목사들보다 훨씬 진리를 더 깨닫고 있을세' 이라니까  히브리어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머니까 그만 무슨 막 히브리 우상같이 이랬는데  원어가 우상이 되었는데 이 말하니까 조금 멈춤 하면서 막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조금 빈약해져요.

 '성령으로 된 말씀을 성신의 감동으로 감동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자가 없고 하나님 말씀을 참되다 인정할 자가 없다고 했는데 그만 성령이  없어도 어학만 공부하면 그것이 그거는 영의 성령의 말씀이 아니고 성경도리가  아니로구만 그 목사는 성경 도리를 배우지 아니하고 순전히 인본 도리를 배워  가지고 왔구먼' 이라니까 중얼중얼하는 걸 내가 고함을 질러 버렸어 거기서  '어데라고 지금 그 따위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당장 돌이키지 않느냐'고서  내가 뭐 그 자리 ○○○ 씨의 집입니다. 고함을 질러 버렸어. '그따위 소리를  하는 그런 신학 교수가 어디 있느냐고 있기를' 야단을 치고,  동정녀 마리아를 말해 '동정녀 마리아의 말에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거게 대해서  말을, 나는 그 히브리어 박사가 아니더라도 백 가지를 주워 댈 수 있다. 동정녀  마리아는 시집 안 간 처녀라 어떤 처녀라, 어떤 처녀라, 몇 가지를 주어 댈 수  있어, 그게 성경도리가! 동정녀 마리아는 그런 거 알 필요가 없소.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된다는 그 말은 부정모혈로 나지 아니한 아이라 하면 다 됐어 그  이상이 없어, 뭐 처녀막이 뚫리지 않은 것이니 어린것이니 뭐니 그게 알 필요가  뭐 있노? 남편 없는 여인이 아이 놓은 것이 내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이라 남편  없이 부정 없이 놓은 것, 남편이 없어도 인공수정도 되니까 인공수정해서 낳아도  그게 아니라. 부정, 남자의 정이 없이 정충 없이 놓은 것이 그것이 내나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이다. 그 이상 뭐 있노?' 그래 가지고서 야단을 쳤소.

 그라고 난 다음에는 다시 만나 보지를 못했어요. 그래도 그분이 그 뒤에도 저를  그리로 끌어들이려고 운동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왔었습니다. 거창에서도  합하자고 왔었고 여게서도 그 노회장님이 총회장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왔었는데 내가 가면 또 물의를 일으켜서 그것 때문에 구원 이루는데 또 지체될  것이고 또 안 맞아 나오면 또 그 때문에 시비하고 항상 구원 이루지를 못하고  들어가고 나가고 합하고 나뉘고 나는 그런 짓 안 하니까 그만 나는 이제 나는  내대로 나갈 터이니까 나는 안 들어 갈 것이니까 아예 단절하려고  거부했었습니다.

 그분들이 야단이라고 하나 들어오기를 원해서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좀  교섭하는 걸 제가 거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옳은 것을 배워 가지고 아닌 것을 아는 것과 아닌 것을 배워 가지고  옳은 걸 찾으려고 하는 거와는 이거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옳은 것을 배워 가지고 요 옳은 것에 자기가 고대로 살아 봤다 말이오.

고대로 살아봐서 경험이 있다 말이오. 고대로 행해 봐서 체험이 있다 말이오.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이 됐다 말이오. 요 사람은 이제는 그 다음에는 그와 같은  삐뚤어진 것을 하나 나옵니다. 나오면 웃습니다.

 이런데 저걸 옳지 않은 걸보고 환하게 아니까 그거 틀렸다, 틀렸다 이러니까  하나 알아 가지고서 옳지 않은 거 백 가지면 백 가지 다 틀렸다고 당장에 옳게  정평해서 버려 버립니다.

 이렇게 되니까 그만 그 말하는 것이 무시가 돼서 책에 많이 말한 것이 다 정죄,  요거는 요렇게 돼서 틀렸고 요거는 저렇게 해서 틀렸고 이거 다 틀렸다  무시하니까 이래 되니까 자신 있고 확신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뭐 머리 아프게  읽을 것이 없어.

 그러니까 책을 봐 가지고 몇 군데 뜨문뜨문 보면은 요거는 어느 면으로 지금  탈선해 나가는 것이라 어느 면으로 탈선해 나간다 알 수가 있어.

 그랬는데 그분이 어떤 분이고 그 유래를 한 번 보라고 했더니마는 보니까  그분이 유니온 신학교에서 졸업을 해 가지고서 왔어. 유니온 신학교 졸업생이라  그 저자가 유니온 신학교는 뭐이든지 요새 말하면은 칼측과 같은 종합  신학입니다.

 말하자면 종합 신학은 그 신학이 종합이라 그 말이요. 무엇이든지 같다는  말입니다. 종교 통일될 수 있는 그 사상을 가진 그 신학입니다. 거게서 신학교가  그 유니온 신학교가 이거는 세상 학교지 완전히 신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섞었기  때문에 거게서 지금 개혁해 나온 것이 프린스톤 신학이요 프린스톤 신학도  썩어져 나가니까 프린스톤 신학에서 개혁에 나온 것이 이제 웨스트민스터  신학이요.

 웨스트민스터도 개혁해 나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도 개혁해 나온 것은  매촌 박사라 하는 분이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개혁해 가지고 나와 가지고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그 계통을 모르면 안 돼요.

 이러니까 여게서 배운 것을 자기가 실행해서 살아온 자는 아무데 갖다 놔도  절대 요동 안 합니다. 송 목사님은 여게서 있을 때와 그분이 거게 갖다 와  가지고는 딴 사람입니다.

 갖다 와 가지고는 가 가지고 그분이 편지 오기를 가보니까 참 한심합니다. 모든  걸 다 보니 다 그 거짓뿌리를, 자꾸 틀린 걸 말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갔다 와 가지고는 여기 와서는 목회를 힘있게 했습니다.

 서 목사님도 갈 때 말하기를 여기서 어짜든지 좀 요걸 보내 달라고 보내 주는  데는 사람들이 모르는 좀 그 자잘한 소리 잔소리 같은 거 다른 사람 예사롭게  여기는 그것을 기록해 달라고 그 눈이 띄었습니다. 자기가 실행하는 사람은  실행하는 사람은 실행하는 설교를 듣고 말 팔아먹는 사람은 말 팔아먹는 설교를  듣고 거짓뿌리 사람은 거짓뿌리 설교 듣습니까?

 그러기에 자기가 신앙생활을 실행하는 사람은 실행하는 사람은 실제에 바른  것이 아니면 그 실행하는 사람은 거게서 제거해 버립니다. 왜? 실행하는 사람은  그대로 받아 가지고 살아 보려고 하니까 안 된다 그 말이요. 안 돼. 해 보면 안  되는 걸 알아.

 그러기 때문에 이 과학자들도 논리 연구가 있고 실험 연구가 있습니다. 처음에  논리 연구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이렇게 구사해 가지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걸  실제로 실험을 해 볼 때에 그것 수정이 되고 그라면 됩니다.

 실험만 하고 논리 연구가 없어도 안되고 논리 연구만 있고 실험이 없어도  탈선돼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도리는 배워 가지고 제가 그대로  실행해서 살아봐야 되지 살기 전에는 삐뚤어진 것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도리를 배웠든지 읽든지 해 가지고서 실천을 하면 옳게 깨달은  것은 자기에게 남아 있고 삐뚤어진 것은 제거되고 실행하지 안하고 이거  팔아먹기만 하는 그런 녹음기와 같은 그런, 지금 목회자는 자기는 옳은 것은  담겨 있지 아니하고 삐뚤어진 것만 자꾸 자기에게 채워집니다.

 이러니까 저 혼자 잘났는데 교인들이 들어올라 해야지 생명이 살아야지 저 혼자  좋지 또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하면 견딜 수가 있어야지 환란을 당하면 이기기를  해야지 난제를 닥치면 극복할 수 있어야지 자기가 매장되는 것이 있을 때나 자기  녹아지고 깨지는 것이 있으면 깨질 수가 있어야지 훌쩍 뛰어 나가야겠지.

 이러니까 옳은 것을 배워 가지고 이것 삼는 사람은 그대로 자기가 실행을  해봐야 됩니다. 옳은 지식을 배운 거기에 다 경험이 있어야 되고 그대로 해 보니  경험이 딱 들어맞다 그 말이요. 해 보니까 딱 들어맞거든 자기가 체험해 보니까  딱 들어맞다 그 말이요.

 인제 그런 가운데서 자기가 그대로의 사람이 돼 놓으면 옳은 거 하나 안 것은  콩을, 참 진짜 콩 한 개 안 그 사람은 진짜 콩이 아닌 콩과 비슷한 게 천 개 만  개 있어도 그거 다 아닌 거라. 그런 것이 있는 줄을 모르지마는 닥치면 '아,  요거는 콩이 아니라 또 콩이 아니다' 만 개가 와도 콩 아닌 것은 아닌 줄 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옳은 것을 알아 가지고서 삐뚤어진 것을 아는 그 길이 있고  삐뚤어진 것을 알아 가지고 옳은 걸 찾으려고 하는 그 사람은 찾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님이 가르치는 예수님의 중보자의  이 은총을 입어 가지고서 성령님의 가르침으로만 되어지지 인간의 지식은  불택자가 암만 연구해 봤자 모르는 것입니다.

 그만 시간이 돼서 다음에 계속할 터이니까 양성원 학생들이 잘 듣고 여러분들이  남을 보아서 깨친다고 요대로 듣고 실행을 하나 안 하나 여러분들이 자기를  모르면 목회자를 다 이렇게 지금 그 자기 대로를 비판해 봐요. 남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접촉하기 위해서 사람을 폄론하라 했습니다. 폄론해야 되고 안  해야 돼. 남을 정죄하기 위해서는 폄론 안 해야 되지마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비판해 가지고서 접촉해야 되지 비판 안하고 접촉했다가는 그  사람에게 끌려가서 죽겠다 이것은 폄론하라 했다 말이요   가만히 생각해 봐요. '아무것이 보자 아무것이 그 사람은 그대로 그걸 인정하는  것이 빈약하나 그대로 제가 실천을 하나 실천 안하고 지금 팔아먹기만 하나' 그  제대로 좀 생각해 봐요. 그러면 그 사람이 목회 관에 대해서 어찌 되는고 자기  혼자만 좋은데 속으로 교인들은 전부 배척입니다.

 그러기에 목회자로서 배척을 당하는 그 사람과 환영을 당하는 그 사람으로서  첫째로 알아야 되고 또 둘째로는 환영을 받는 사람 가운데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환영받는 사람이라니 제사장이 있고 다시 말하면 자기를 희생해서  하는 사람 있고 자기를 위해서 복음을 팔아먹는 사람이 있다 말이요.

 그 사람은 뭐이냐? 자기 자랑을 많이 해. 이거 내가 미친 소리를 지금 하는  거라. 여러분들이 모르기 때문에 자꾸 이런 말을 하게 된다 그 말이요. 이거는  과거이기 때문에 과거 역사를 말하게 돼.

 설교하면서 공연히 자기 역사는 환한데 역사를 말하는 거는 다릅니다. 과거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그것도 어리석은 일인데 그것도 없는 일 이거는 내가 제일  잘 깨달았다 이거는 내가 제일이라 이 나만 아는 나만 아는 사람 없다 나만치  아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 이렇게 말하는 거는 위험하다 그 말이요.

 우리와 같이 나오면서도 그 점이 많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은 그것을 고쳐야  돼. 고치기 전에는 자꾸 교인들이 배척을 당해서 목회가 안되고 가는 곳마다  실패거든. 고쳐지는데 따라서 살살 목회가 돼져 나가고 감탄을 받아서 은혜를  받아도 그 사람도 죽으니까 교회 가면은 많은 사람 다 떨어져 버리고 몇 사람만  막 죽자살자 달라붙고 이랬는데 그게 진짜냐 하면은 또 나중에 가 보면은 그것도  그 사람 떨어져 놓으면은 예수 안 믿는다 그거요 이 교회 가 보면 그 꼴 당하고  저 교회 가보면 그 꼴.

 ○○○ 목사님이 다니는 데마다 교회를 실패를 시켜 버렸다 그 말이요. 뭐  얼마나 갔소. 간 곳마다 다 교회가 절단 나버렸어. 이랬는데 인제 그걸 좀 저  서울에 가 가지고는 조금 나았고 지금 여수에 가서는 좀 정신을 차렸습니다. 저  청도는 보내놨더니마는 다 떨어져 버리고 청도에 갔다가 다 떨어져서 저 ○  조사님 요새 목사 되려는 그분하고는 마구 예배당에서 말씨름을 했는데 그 젊은  사람을 잡아 넘겨 이겼더라 그 말이요.

 그러고 두 서너 사람 막 저 지지하는 그 사람 예수 잘 믿는다 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가짜라. 그 사람 지금 낙심해 가지고서 예수 안 믿고 이 년인가  돌아다니더니마는 지금 뭐 이제 믿기는 믿는답니다.

 그때에 자랑하는 교회는 '이거는 내가 깨달은 것이 이거는 백 목사님에게 배운  것이 아니고 이거는 내가 깨달은 것이다 모두 이거는 내가 깨달은 것이고 백  목사님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이래 가지고서 그래 했었는데 그때는 가짜  그러하다가 '너는 그걸 버리고 네가 네 중심의 인본이란 것을 그걸 버려야 된다'  이랬는데 그걸 고치고 나니까 은혜가 좀 있고 이랬었는데 이번에 또 여게 한 번  설교를 시켰다 그 말이오.

 이번에 졸업하고 난 그 이튿날 '보자' 하고 한 번 설교를 시켜봤더니마는 그  날밤에 내가 졸업자들에게 주님의 원하시는 것은 이것이라 하는 그것을 그 하나  말했는데 엘리야 엘리사의 설교에 대해서는 그것 저거에게 해당된 것이 하나인데  그걸 지금 말했는데 제가 그걸 받았으면 지금 그게 눌려서 '우리가 이걸 참  하나님의 일을 받았는데 이걸 어떻게 감당할까?' 이말 할 것인데 그 명령받은  것이 하나도 감당하지 않은 것이 그 이튿날 그거 다 내버려 버리고 딴 것 어만  것만 막 들어서 고함을 지르니까 이 어리석은 교인들은 아무 연관성이 없다  말이오.

 저 어제 지금 옷 입으라고 예를 들면은 옷 안 입고 옷 벗 벗고 있다고 야단을  치고 옷 입으라고 야단을 쳤는데 엊저녁에 옷 입으라고 야단을 치고서 옷 안  입었다고 야단을 쳤는데 오늘 아침에 옷은 훌떡 벗어버리고 옷은 벗어버리고  이제 옷 입으라고 가르치니까 이제 밥 먹으라고 야단을 친다 그만 밥 먹으라고  지금 제가 야단을 치니까 옷 입으라고 야단치는 그 말씀을 가지고서 밥 먹으라고  야단을 치니까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이요 안 들은 사람이요.

 엊저녁에 자기 사명은 하나도 안 들었다 그 말이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목회를, 나간지가 오래 됐지마는 성과를 못 거두고 있어. 지금 인제 다소 조금  낫습니다. 서울에서도 진전을 못 봤어. 서울에 동문 교회에 있으면서 내나 백  명이나 잡고 그 꼬라지라 거게서 옳은 목회자라면은 당장에 몇 백 명됩니다.

 이러니까 여기 와서 양성원 공부를 해도 저 위해서 하는 사람 그것부터  돌아서야 되지 '내가 목회자가 돼 가지고 이래 해야 되겠다 내가 뭐 유명해져야  되겠다 목회자가 돼 가지고 내가 무슨 그 잘 사는 사람되겠다' 헛일입니다.

 목회자가 되면서 제가 유명한 사람되려고 목회자 되는 것은 헛일입니다.

목회자는 주의 은혜를 깨달아서 '주님 나 위해서 이렇게 큰 희생해서 내 구원  주었으니 내가 주를 위해서 어떻게 큰 희생하느냐?' 희생하는 데는 모든 길이  있지마는 목회자로서 희생하는 것이 이것이 제일 첩경이고 많이 희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자기가 깨지고 녹아지고 아무것도 없어지기 위해서 목회자 되는  것인데 이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 유명하기 위해서 목회자 되는 이 자는 해 봐야  다른 사람 구원 얻는다 할지라도 도구입니다. 도구, 도구.

 농사짓는 데에 도구가 얼마나 요긴합니까? 그렇지마는 도구는 농사 다 짓고 난  다음에 저 곳간에 집어 던져 버리지 그 밥 먹으라고 요 위에 눕히지는 않습니다.

식구는 아니요. 하나님께 이용은 된다 그 말이요. 이용이야. 막대기를 가지고서  모세에 긴 막대기를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니까 내나 같은 막대기인데  그 별 막대기인줄 압니까? 내나 작지 말이오. 이 작지 이거 드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하니 오만 것 다 하지 안 했습니까?   어떤 인간이라도 하나님이 붙들면 일하지마는 생명 없는 막대기와 사람과  다르다. 그걸 알아서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냥 여기 나는 모두 목회자로 지식  있는 사람들, 저거는 지식 지식 하는 데 그 헛일이라.

 떡 와 가지고 말해 '왜 너 지금 예배당 지을텐데 예배당 못 짓는다 너 예배당  지을 자격 없어' 교인들이 은혜를 받아야 예배당을 짓지. 은혜 참 내 그건  이상합니다. 은혜라 노트 그대로 읽습니다. 그대로 하는데 어떻게 해서 은혜를  받고 못 받습니까? 그러니까 너는 탈이라 그럴 진데 녹음기 듣지 뭐 하려고 너  월급 많이 주고 너들이 세워  그것은 하나 표현인데 그 속에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되지 다 같은 노트를  읽었는데 왜 너 노트 읽은 거는 왜 모든 교인들이 다 죽어지고 다 흩어지는데  다른 사람은 그 말씀 증거해도 막 교인들이 모아들고 그 말씀 듣고 죽으려는  각오도 다 가지고 있느냐 왜 그래 그래도 몰라. 그러니까 헛일이라. 뭐 말만하면  되는 줄 알아.

 그랬는데 그때보다 나은데 지금도 아직까지 감감합니다. 돌아서지 않으면 안  돼요. 바로 돌아서면 배울 필요가 없어. 뭐 배운다 말이요. 지금 그러면 여기서  양성원에 졸업하면 목사 안수 받고 이라는 그것 때문에 그렇지.

 그런 것 때문에 그렇지 배울 필요가 있는가 성경 한 권이면 다 되는데 성경보고  자기가 깨달은 대로 실행하면은 또 더 깊이 깨달아 또 그대로 해, 또 깨닫고  성경보고 그대로 실천하므로 깨달아지고 실천하므로 깨달아지고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그렇게 깨달아진 것이 제일 정확무오합니다. 사람들에게 배울라 해야  배울 때 어디 있습니까? 바로 가르치는 사람이 그렇게 어디 별로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성경 읽고 그대로 실행하고 그라면 제일 쉬운 것부터 일 학년으로  깨달은 것이 있어 그것 실행하면 이 학년 과정을 깨닫게 되고 그대로 실행하면  삼 학년 과정을 깨닫고 그저 깨달으면 실행만 하면 자꾸 깨달아집니다. 이  방식이 제일 좋소.

 그러기 때문에 저 심신 산골에 아무 소통도 없고 배우는데 없이 성경보고  실행하고 실천하는 거기에 다 권위 있는 종들이 다 나왔습니다. 모두 시대마다  큰 시대를 울린 그 경성 시킨 사람들은 세상에 속화되지 안하고 다 거게서 나온  사람들이라 그 말이요. 이러니까 그것을 알고 공부를 해야 되지 자기를 위해서  예수를 이용하고 복음을 이용하고 목회를 이용하는 사람은 아예 그것부터  돌아서야 됩니다.

 어제 아침에도 제가 말했습니다. 무슨 죄보다, 무슨 죄 하나가 해독이 더 크고  그랬는데 마지막에 자기 바꾸지 못한 거, 주를 주인을 모시지 안하고 제가  주인인 그것을 바꾸어야 되지 그것이 제일 해독이 큽니다.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에는 내나 연관시킨다 그 말입니다.

 옳은 것을 알아 놓은 사람은 삐뚤어진 것을 안 사람에게 속지 않습니다. '서울  남대문 문턱은 무엇으로 만들어 놓았소?' 이라니까 하나가 있다가 '남대문  문턱은 아름드리나무로 만들었다. 참 많이 다니니까 그럴 거라' 또 하나가  있다가 '네가 남대문 문턱을 보지를 못했구먼 잘못 봤구먼 대추나무로 만들었다  야, 그럴 거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니까 대추나무로 만들었을 거다.'  남대문 문턱이 없는 것을 환하게 아는 사람은 대추나무로 뭐 쇠로 만들었느니,  아름드리나무로 만들었느니 뭐 그 말에 모두 속습니까? 우습기만 하지 '그거 참  보지도 못하고 공연히 저란다' 웃음이 나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실지로 남대문에 가서 본 인간이 그러니까 그 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 '아  그럴까 내가 잘못 봤던가?' 그러겠습니까? 우습기만 우습지요 저거 참 이렇구나  거짓뿌리로 알지 속아 넘어 갑니까?   자기가 말씀 듣고 실행하여 또박또박 이래 나간 사람은 그 인간들이 어떤 것을  말해도 미혹 안 받습니다. 경험 있고 체험이 있는데 자기가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졌는데 옳은 것을 본 사람은 거짓뿌리 그것을 믿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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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 그리스도/ 골로새서 3장 1절-4절/ 1983년 38 공과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