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공부

 

1984. 10. 19.금밤

 

본문 : 골로새서 3장 1절 4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아침에 오늘 새벽에 1절 해석은 간단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1절 선두에  '그러므로'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그러므로' 하는 것은 그 위에 읽어 보면 이렇기  때문에 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위에 하는 말을 간단하게 말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이나 운동은 다 그것이 저주 아래에 있고 악령의 권세  아래에 있는 자들이 이미 죽음으로 선고를 받은 자들이 선고 받은 대로 죽는  행위를 하는 것들이요 또 다 속이고 속는 것들이기 때문에 속는 자들이 생각할  때에는 '참 권위 있고 기묘하고 아주 높은 지식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실은 너희들이 죽여야 할 그 옛사람을 죽이는 데나 또 영생하는 그 새사람의  생활을 하는 데에는 하나도 유익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데에 얽매이지  말아라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러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혹 이렇게 뭐, 말씀을 증거 할 때는  너무 간추려서 그 결말을 말할 때도 많고 시작을 말할 때도 많고 양극을 말하고  중간 것은 자기가 생각하면 알 수 있으리라 해서 그렇게 설교도 하고 해석도  하기 때문에 오만 자기가 실지로 살라고 하지 안 하는 사람은 그만 빙빙 돌면서  자기로서 그냥 흘러 떠내려 보내기가 쉽습니다.

 그러기에, 지식도 세상에는 두 가지 지식이 있다, 배암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두 가지 지식이 있다 하는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한 말이지마는 그것을 새겨서  자기가 살라고 하는 데는 얼마나 복잡하고 힘드는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지식 속에 파묻히면 그래도라는 그런 단서가 들어서 그  사람이 멸망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저 둘로만 구별해야 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배암의 지식 둘뿐이다 배암의 지식은 그것은 배암이 점령한  모든 사람들과 배암이 그 속에서 주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낸  지식이니 그것이 한 말로 말하면 세상 지식이다 그 말입니다. 이 세상 지식  이거는 아주 교만한 거. 같고 훌륭한 거 같지마는 그는 다 자타를 속이는  것뿐이지 육체를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육체란 말은  하나님이 주권자신데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아야 될 터인데 제 마음하고 싶은  대로 또 제 몸뚱이하고 싶은 대로 마음과 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다  사망인데 그것을 금지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함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한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양성원에서 경건회 예배드리는 것도 제가 들었고 또 공부하는  것도 제가 거기에서 청강을 했는데 오늘 경건회 인도하는 그 목사님이 얼마  전까지는 정신을 못 차려서 마치 끈 떨어진 두레박이 바다 위에 떠돌아다니는 거  모양으로 둥둥 떠서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정처 없이 날려 가고 그랬는데 이번에  ○○교회입니까? ○○교회지? ○○교회에 가고 난 다음에 좀 정신을 이제 좀  차린 거 같습니다. 이래서 생수의 샘물을 파는 고것을 좀 시작한 거 같은데  그렇게 하면 앞으로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옳은 말이면 신앙 선배들이 하는 말을 단단히 기억해야 되지 잘못  사람들을 접촉하게 되면 완전히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주의할  것은 하나님 접촉을 제일 주의해야 되고 하나님인지 악령인지 성령인지 모르기  때문에 제일 주의를 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사람 접촉이 둘째로 힘듭니다. 악한  동무인지 선한 동무인지 모르기 때문에 힘듭니다.

 그리고, 양성원에서 요새 조직 신학을 배우는데 아주 좋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배우면서 종전에 혹 저에게 배운 것과 조금 차이가  다른 거 있는가 같은가 고런 것을 잘 살펴서 다를 때에는 그냥 뭐 이래도 말하고  저래도 말하는갑다 하는 그런 생각 가지지 말고 고런 것을 딱 찾아서 고것을  한번 더 연구하고 물어보고 그래서 하도록 그래 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보니까 아주 복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조직 신학에 대해서 잘 세부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여러분이 잘 새겨서 배우면 도통이 됩니다. 하나님의 도가  하나님의 진리가 이리 통하나 저리 통하나 결국 보면은 하나이고 다 하나도 서로  마찰되고 모순 되는게 없습니다. 모순 같으나 결국은 그것이 일치가 되고  맙니다. 거기에 들어가야 자유로 이 세계를 다닐 수 있고 이것도 저것도  접촉해도 다 미혹을 받지 안하지 아직까지 단일성이 되지 안하고 단일성이 되지  안한 그 진리에 있으면 그 사람은 분주하고 복잡해서 언제든지 서로 시종이나 또  모든 장광적으로 종적으로 횡적으로 모순됨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를  어지럽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도는 어지럽지 않습니다. 이리  가도 한 길 저리 들어가도 한 길 마지막에 한 길로 생명길을 찾게 됩니다.

 2절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요 말씀까지 오늘 아침에  했습니다. 위엣 것이라 말은 사망선을 초월한 모든 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저주선을 초월한 그 축복의 것을 말을 하고 모든 멸망이나 불완전이나 하는 그런  것들을 다 초월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생명이며 능력인 그런 모든 성질의 것들을 가리켜서 위엣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천국도 위엣 것이 되겠고. 또 하늘에 속한 희로애락 그런 것도 다 위엣  것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의 근심도 해야 되고 하늘의  기쁨도 가져야 되고 또 하늘의 성공도 해야 되고 하늘의 실패를 우리가 지금  삼가서 그런 것을 다 정리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땅엣 것이란 것은 이  세상에 속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그런 모든 것들을 가리켜서 땅의 것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의 것만 하면 땅의 것은 아무 것도 안  하면 일도 안 하고 아무 것도 안 하고 고만 그래 그저 예수 믿는 그런 말이나  하고 찬송이나 부르고 기도나 하고 그렇게 할 것인가 고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것이 아니고 위엣 것. 위엣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또 예수님의  공로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대속의 공로 안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만이  우리의 것입니다.

 대속의 공로 안에 있는 것, 영감대로, 진리대로. 주의 대속에 합당한 대로  그대로 사는 생활을 어디서 하느냐? 그 사는 생활, 어떤 사람은 가정부에서 하고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하고 어떤 사람은 태짐 지면서 하고 어떤 사람은 시장에서  하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하고 어쨌든지 그 생활을 우리들은 각각 자기의  현실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은 천도 만도 종류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  현실에서 사는데 장사하는 현실도 있고 공부하는 현실도 있고 정치하는 현실도  있고 전쟁하는 현실도 있고 형벌 받는 현실도 있고 또 억울하게 매장당하는  현실도 있고 존귀한 현실도 있고 또 실패하는 현실도 있고 성공이 되고 어쩐  현실이 모든 현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현실에서 위엣 것만 소망을  하고 위엣 것을 잘 마련하려고 자기 그 소망과 목표를 삼고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에서 위엣 것 마련하는 일 합니다 그 일만 합니다. 직장에서도 그 일하고  정치라는 그 자리에서도 그 일하고 학교라는 그 자리에서도 그 일하고 장사하는  그 자리에서도 그 일하고 그저 다만 이 세상 천태만상의 현실은 위엣 것을  마련하는 장소요 또 위엣 것을 만드는 그 공장이요 또 위엣 것을 마련할 수 있는  온갖 원료와 재료들이 있는 것이 이 땅의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엣 것을 버리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고 땅엣 것을 잘 이용해서  썩을 것으로 썩지 안할 것을 만들고 모든 저주와 멸망거리를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입니다. 그것만 하면 그것만 하면 먹을  거 입을 것은 저절로 됩니다.

 어떤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위해서 자기는  농사를 짓습니다. 그러면 일어날 때도 위엣 것을 생각하면서 일어나니까 그  사람이 게을 부릴 수 없고 부지런히 일어나게 되고 또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도 하나님의 계명 지키면서 농사를 지어야 되겠고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지어야 되겠고 또 농사지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지어야 되겠고 또  복음이 빛나도록 하면서 지어야 되겠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지어야 되겠고, 이라니까 자기는 위엣 것만 생각하고 그 일을 했는데  하나님의 축복과 자기가 또 바로 돼 가지고서 올바른 행위와 이래 가지고 아주  농사는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농사를 잘 지을라고 그라는 거  아니고 위엣 것 생각해서 하다 보니까 그 일이 잘 됐습니다.

 또,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자기는 그 군에서 큰 보배 창고를 지키고 있는데  그 보배 창고에는 잡수입이 많고 아주 도둑질하기가 쉽기 때문에 모두 다 서로  차지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 사람이 위엣 것만 생각하고 신앙 생활하니까 위에  상관이 가만히 볼 때에 '아무 것이 저 사람이라야 아무래도 아주 보배 창고의  책임자를 둘 수 있겠다' 이래 가지고서 그 보배 창고에 책임자로 떡 세워  놓으니까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딱 열쇠 하나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가 어떤 오면  받아 들이 놓도록 문 끌러 열어 주고서 들여 놓도록 하고 또 나갈때 그저 문  끌러서 검사하고 아, 편키도 하고 그러한데 그걸 잘하니까 이제 그만 그 사람이  유명해지니까 '아, 이 사람은 아무래도 이 중앙청에 제일 뇌물 많은 그 요긴한  자리에 이 사람을 앉혀 놓으면은 뇌물 없이 잘 하겠다.' 거기까지 올라갑니다.

어데 까지든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위엣 것을 찾는 이 생활하면은 못 먹을 줄 이래  알지마는 그 사람이 회사 사장 노릇하면서 회사를 잘되도록 사장 노릇 할라  하면은 어느 틈에서 저는 끌려 가 가지고서 실패할란지 모릅니다. 그러나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에게 손해보지 안하고 그 일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만  애를 썼더니마는 그 회사는 절로 잘되고 모든 직원들은 다 그 사장을 좋아해서  모두 복종하고 충성되이 하니까 그만 회사가 잘될 수 있다 그거요. 그런 거 좀  생각하면 그런 건 잠깐 알 수 있습니다.

 3절에, '이는' '이는 너희가 죽었고'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가 죽었단 말은  너희가 죽었단 말은 우리는 우리가 둘입니다. 내가 둘입니다. 여러분들도 둘,  나도 둘 내가 둘인데, 예수 믿지 안할 때에 내라고 생각한 그 나는 자기가  아닙니다. 영이 자기요 또 그 다음에는 마음과 몸이 자기인데 영은 안 믿는  사람은 죽었기 때문에 꼼짝을 못하고 있고 또 마음과 몸은 그 마음과 몸이 제가  이래 독립적으로 하면 좋을 건데 그만 이 악령과 그 악성이라는 원죄와 또  악습이라는 본죄 이것에게 사로잡혀서 우리 마음과 몸이 그것에게 점령을 당해  가지고 내 마음과 몸을 점령 하니까 그게 자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자기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자기 아닌 자기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되고 자기  아닌 자기 그것은 자기를 죽인 자기요 자기에게 유일한, 원수가 되는 자기요  그것은 항상 참 나를 망칠라고 하는 내 마음을 망치고 내 몸을 망치고 내 생활을  다 망치고 소유를 망치고 전체를 망치기만 위해서 나를 꾀우고 미혹시켜 가지고  내 마음이 꼬임 받고 내 몸이 꼬임 받아 가지고 그것이 주인인 줄 알고 내라고  이래 했지마는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자기, 원수인 자기 그것이 자기인 줄 알고 이 마음과 몸덩이는 그것에게  순종하고 그거 마음대로해서 하도록 하니까 그 놈이 일생 동안 거머쥐고 하나도  산 생활하지 못하고 완전히 멸망하는 그런 일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너희가 죽었고' 하는 이 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쫓겨 나갔습니다. 그게 죽었다는 말은  우리에게 왕권을 가지고 있다 했었는데 왕권이 죽어버렸습니다. 왕권이 죽어서  우리에게 왕권 노릇할 그런 권세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죽은 것이 뭐인가? 나 아닌 나, 나를 죽인 나, 원수인 나, 일생을  망칠라고 내 마음과 몸덩이를 꾀와 가지고서 살살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망할  일만 하게 하는 그 나 아닌 나, 그 놈이 뭐인데? 악령하고 악성하고 악습하고 이  셋이 단합해 가지고 되어 있는 자입니다. 그 자가 이제 죽었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우리에게 왕권을 가지고 있던 왕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우리에게서는 완전히 쫓겨 나갔고 우리에게는 그 세력이 완전히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옛사람 죽은 것을 가리켜서 '너희가 죽었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죽었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악령이  우리에게 주인 노릇을 못 합니다. 또 악성도 주인 노릇 못 합니다. 악습도 주인  노릇을 못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치 6·25 때에 패전하고 나서, 산에 있는 인민군들이 공비가  돼 가지고 와서 침노하고 괴롭혔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죽었지마는 우리  마음이나 우리 몸 밖에 완전히 쫓겨 나간 것이 아니고 그저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자꾸 이랍니다.

 이라는데, 우리에게 그것의 소유가 하나도 없어서 악령의 소유가 하나도 없고  악성의 소유가 하나도 없고 악습의 소유가 하나도 없이 깨끗이 회개를 하면은 그  놈은 발 붙일 곳이 없이 절로 쫓겨 나가게 되는 것인데 우리에게 그런 죄가  있으면 죄 그 놈이 저의 것이기 때문에 이 죄를 가지고 우리 안에서 나가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나가라 해도 호령 쳐도 안 나갑니다. 하나님이 호령을  쳐도 안 나갑니다. 왜? 내것이 있는 데 내것이 있는데 어떻게 나갑니까? 내 집이  있고 내것이 있는데 내가 여기 내 소유가 있어서 있는데 뭐 내 소유를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갈까 소유 주기 전에는 '안 간다.' 이랍니다. 이러니까 그때 죄를  회개해야 그것이 그만 쫓겨 달아나지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나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하는 것은 옛사람이 죽었고 옛사람이 죽었고. '너희  생명이' '너희 생명이' 이 생명은. 이 생명은 영생하는 생명이요 영생하는  힘이요 영생하는 지혜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뭐로 된 것인가? 이것은 주님의  피공로와 또 진리와 성령 이 셋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생명입니다. 살아난 생명,  이 생명으로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다. 우리 영이 살아났고 지금은 우리의 마음과  몸을 살릴려고 지금 애쓰는 중에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이 육의 구원의  노력입니다.

 '너희 생명이' 이러니까 진리와 연결된 그 힘을 가졌고, 또 하나님과 연결된  영감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힘과 모든 지능을 가졌고, 또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공로와 연결이 딱 돼서 하나가 된 이 공로를 제  공로로 삼아 가지고 있는 이것으로서 된 생명입니다.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절대 보호, 또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  이런 모든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 안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에, '나는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라' 그  농부라 한 것은 하나님은 전부를 다 기울여서 이 포도나무 위해서 노력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그 모든 능력의 역사. 모든 소유를 가진, 그 은혜 그  모든 하나님 전부는 자존하시고 창조주시요 주재자시요 주권자시요 만왕의  왕이신 만주의 주이시고 전지전능하신 이 하나님은 예수님의 대속을 위해서  전부를 기울이고 있다 하는 그것을 표시해서 포도원 농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포도원 농부라.

 이제 '하나님 안에 감추었다.' 하나님 안에 감추었다 말은 하나님이 이  무한하신 은혜. 그 축복, 보호, 모든 그 기업이 전부를 다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그, 하나님의 은혜 안에 감추어 있다. 감추어 있다 하는  그 말은 숨어 있단 말이 아니고 감추어 있다는 말은. 말하자면 비유를 할라면  뭐로 비유 할꼬? 그 곡식 종자가 땅 속에 감추어 있다, 잉태된 아이가 어머니의  태 중에 감추어 있다 하는 그와 같은 그런 성질의 뜻을 말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다 라는 말은 사람들이 볼 수 없고 이런 그 피조물이  가까이 가지를 못하고 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보호. 절대 능력. 절대 은혜.

절대 섭리 이 속에서 자라고 있다 그 말이오. 감추어 있다는 말은 자라고 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다' 우리가 생명을 받은 것은  세 가지로 말미암아 생명을 받았는데, 이 생명이라는 말은 이거 참 좀 뜻을  알기가 힘듭니다. 생명이라 하는 것은 힘이라, 지혜라. 생명이라는 거는  능력이라 그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육체의 생명이 오면 그 사람의 육체의  생명 오면 그 고기 덩어리 속의 것은 생명 오면 고기 덩어리에게 제일 필요하고  요긴한게 생명보다 더 중한 거는 없습니다. 생명 오면 모든 것을 치료도 되고,  활동도 하고, 경영도 하고, 욕망도 있고 모든 거 다 하지만 생명이 딱 끊어지면  그만 송장되면 전부 헛일입니다. 이렇게 생명은 제일 귀한 것입니다. 귀한 건데,  우리의 생명은 이런 피조물로 된 생명이 아니라 그 말은 피조물인 우리지마는  우리의 생명은 피조물로 된 것이 아니고 모든 만물을 창조할 수 있는 그 생명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영원히 창조할 수 있고 주권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닌  순전히 영원 자존자이신 그분에게서 나온 그 절대성 완전성, 영원성이 있는 그  힘으로 그 생명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은 아무도 죽일 자가 없습니다. 늙지도 쇠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진리가 안 늙고 안 죽고 그 성령이 안 늙고 안죽고 하나님이 안  늙고 안 죽고 하는 거와 같은 그로 인하여 생겨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생명이  이러한 참 실력 있는 아주 실력 있는 생명이라 뿌리가 튼튼합니다. 우리 생명의  뿌리가 튼튼합니다. 우리 생명의 뿌리가 뭐인가? 우리 생명의 뿌리는 그 진리  하나님 좋은데, 진리, 하나님 좋은데 우리가 끊어져서 진리와 하나님과의 연결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연결을 가질 수가 없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진리와 하나님과 딱 연결돼서 다시 끊어질 수 없는 이런 연결을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피의 이 능력과 또 진리의 능력과 하나님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살아난 이 삶이요 이 생명이요 이 지능입니다. 이 힘입니다.

힘인데, 이런 참 힘을 우리가 가졌으니까 이런 생명을 가졌으니까 이 생명이 뭐  얼마나 보배인지 모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 다음으로 가는 생명입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나온 생명인데 하나님 다음에 생명이라. 천군 천사들도  있고 하늘에 있는 모든 땅에 있는 피조물들이 많지마는 이런 생명을 가진 자는  없습니다. 이런 생명 가진 자는 우리뿐입니다.

 이런데 이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다 하는 이 그리스도와 함께라 말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이름인데 이 이름은 직명이라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직책의  이름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슨 직책인가? 이는 그 후에 신정 국가에서 나타났는데  제사장 직, 또 선지 직, 왕 직, 제사장 직은 어떤 직인고 하니 자존하신 그 분과  자존하신 분과 자존하신 분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모든 것과의 그 사이가 그  사이가 서로 모순될 수도 있고 마찰될 수도 있고 삐끌어 질 수도 있고 대립될  때도 있고 이렇게 어긋날 때도 있는데 이 두 사이를 잘 조화를 맞줘서 잘 조화를  맞춰 가지고서 하나님도 이 피조물 억만의 삐뚤어진 것도 이 제사장이라는 고  구멍을 통해서 제사장이라는 그 순위를 통해 가지고서 피조물의 모든 잘못이  하나님에게 갈 때는 그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어서 잘못되지 안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가지고 또 하나님의 진노도 오다가 거기에 와 가지고서 변화가  돼 가지고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꾸어지게 되고 이래서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이거 참 제사장 직이 없으면 하나님도 낭파요 이 피조물도 낭파됩니다. 뭐  하나님도 낭파 피조물도 낭파되는 것은 하나님도 당신 혼자만이 있지 당신이  암만 지어봤자 그거 다 저주 받을 거고 다 멸망 받을 건데 이 꼭 제사장이라는  이 직책을 가지고서 모든게 해결된다 말이오. 그러니 제사장 직책이 얼마나  보배인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원수된 것도 이 제사장 여기에서 해결 짓고 하나님이 이  놈들 내가 전멸을 하겠다 하는 진노도 이 제사장 직에 와 가지고는 그만 이래  서로 무마가 되고 이래 그만 다 이래 돼 가지고서 하나님이 진노해서 전멸할라  하던 것을 있는 것 다 아낌없이 네게 다 주겠다. 이런 하나님으로 변해지고 이런  피조물로 변해지는 이런 이 중보의 중요한 그 일을 가리켜서 그 제사장 직이라  하는 것인데, 그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는 이 일을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요 또 이  일을 하실 뿐만 아니라 이일을 할 수 있는 자들을 만드시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만드시는 것이.

 그러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다' 그리스도가 뭐 하려고 이  완전한 생명을 얻은 우리, 전지전능의 생명을 얻은 우리하고 뭐 하려고 하나님  안에 같이 계시는가? 이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당신의 그 직책, 당신의 본분,  당신의 의무, 책임 그 뭐? 곧 우리를 그리스도를 만들라고, 그리스도의 모형적  그리스도를 만들라고, 당신은 원형적 제사장이요 우리는 모형적 제사장이요.

당신은 원형의 원형적 선지자요 우리는 모형적 선지자요, 당신은 원형적 왕이요  우리는 모형적 왕이라. 이렇게 그 그리스도와 꼭 같은 자를 만드시는 그 직책을  가지신 그분이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완전한 생명을 얻은 우리하고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다. 하나님의 절대 보호, 하나님의 전부를 다 가지고서 이를 위해서  전심 전력 모든 소유를 다 기울여서 역사하시는 이 역사의 보호 안에서 자라가고  있다 그 말이오. 자라가고 있다.

 그러면, 뭐로 자라갑니까? 자라가고 있다, 성화되어 가고 있다. 뭐로 성화되어  가고 있으며 뭐로 자라가고 있습니까? 자 누가 한번 말해 봐요. 첫째,  제사장으로 성화되고 자라가고 있습니다. 둘째, 선지자로 성화되고 자라가고  있습니다. 왕으로 성화되고 자라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구원을 가졌습니다.

이 구원을 좀 우리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옛사람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사는 우리는 죽었고 이제  죽었다는 것은 완전히 우리에게서는 왕권을 다 박탈당해 버렸고 우리에게서는 다  죽은 거와같이 권세가 하나도 없는 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꼬울 권세  있습니다. 우리를 유혹할 것만 유혹할 그런 유혹만 있지 우리를 억압하거나  강제하거나 그런 권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유혹할 유혹하고 침노하는 것 그런  권세만 있습니다.

 '죽었고'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그 너희가 다시 살아난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너거를 제사장 만들고 선지 만들고 왕 만드는 그 전능하신 이  공사자 전능하신 이 성화자, 제작자, 이 전능하신 창조자 이분하고 하나님의  모든 보호를 입는 그 속에서 너희들이 자라가고 있다, 감추어 있다, 자라가고  있다 그 말이오.

 감춘 거는 이런 종자가 땅 속에 감춘 것은 감추어 있는 것은 땅 속에서 차차차  자라면은 이제 자라면은 움이 터 나오겠지요 또 어머니 뱃속에서 그 태속에서  아이가 감추어 있으면 그것이 차차차 장성하면은 열 달 되면 어머니 배 밖에  분만돼 나오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돼 가지고 있는 자니까 우리가 참 희망이라 하는 것 뭐 비교할 수 없는 희망이  있고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가 가진 자들입니다. 또 지극히 큰 자본을 우리가  가졌습니다. 또 지극히 큰 배경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다 사람들이 믿지 못합니다. 믿지 못해. 그 위안제를  마셔도 분수가 있지. 위안제를 마셔도 분수가 있지, 그 기만을 해도 분수가 있지  물에 넣어도 붓도 안할 그런 얼토당토 안한 기만의 그런 논설을 하고 있다, 그런  얼토당토 안 한 소리를 하고 있다. 이거는 도무지 피조물의 지식과 배암의  지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왜? 그 지식이 아니고 생명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거하고는 반대입니다. 이해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실은 진리의 힘과 성령의 힘과 주의 피의 힘과 이 세 가지  힘이라야 이 사실이 알아지고 믿어지지 그리하지 안하면 못 믿어 진다 말이오.

이 세 가지가 알아지고 믿어지는 것은 벌써 그거는 만물의 그 하나님의 대리  왕노릇을 할 자요 세상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심판하고 통치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스도의 지체 노릇을 할 수 있는 그런  자격을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그 그리스도에 대해사 양성원에서 공부하는데 이제 이렇게  배우면 좀 눈이 뜨여질까, 거기에서는 좀 세밀히 이런 걸 저런 걸 이래 가르쳐서  그렇게 배우는데 이제 조금 그라면 학생 눈이 떨어질란지 몰라. 참 예수 믿어도  덩더꿍으로 믿습니다. 이러니까 무슨 말만 하면은 그만 다 부인이야, 이단이다,  부인이라. 이단이라. 그분이 이단이라고 하니까 못 깨달을 텐데 그분이 바로  깨닫도록 할라 하면은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며 얼마나 노력을 해야 되느냐?  요는 시작을 해 봤으면 믿어 봤으면 될 터인데 믿어 보지 안했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니까 믿어 보지 못하니까 행해 보지 못하니까 참 변화가 되지 못하고 참  제자가 되지 못하고 제자가 되지 못하니까 알지 못하는 것이라. 그거요.

 오늘 그리스도 공부했는데 요 다음에 또 뭐 그리스도. 그리스도 공부를 잘하면  참 유리합니다.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의 생명이신' '우리의 생명이신' 우리의  생명, '우리의 생명이신' 우리의 지혜와 능력이신, 우리의 영존이신 영존이신.

완전 지혜이신. 완전 능력이신,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여기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

예수님이 우리 생명이라. 예수님이 우리 생명이라 말이나 그리스도가 우리  생명이라 말이나 꼭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가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전에 자존하셔 가지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창조 하실  때에 그리스도가 창조했습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 정한 그 목적을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예정되었고 모든 것이 창조되었고 모든 것이  보존되다가 그리스도가 때가 되니까 사람이 되어 가지고 우리 사람들 대속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오셨습니다. 사람되어 가지고 오셨으니까 그분을  가리켜서 사람되어 오시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람뿐인가? 아, 요번에 온 ○○○이 잘 가르쳐 주던데  교수님은 참사람이요 참하나님이십니다. 그래 신성과 인성 양성이 한 인격을  가진 거 아니고 양성이 양 인격을 가졌고 다 양 인격을 가진 자인데 양 인격이  그 일위의 격위를 이루고 있다. 일위의 격위를 이룬 것, 하나님은 신격을 가졌고  인성은 인격성을 가졌는데 이 둘이 둘이 아니고 한 격위를 이룬다. 둘이 한  격위를 이룬 후에 이름을 가리켜서 예수님이라, 신인 양성 일위가 된 후에  이름을 가리켜서 예수님이라 말하고 그전에는 신성으로만 이 역사를 하실 때는  그리스도라 그리스도의 영이라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여기에는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라고 말하지 안하고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말은 이 생명  위에 말했습니다. 이 생명은 전지전능이라야 생명이 되지 아무리 큰 능력이 있다  해도 그 능력을 멸할 수 있는 권세가 있으면 그 생명은 생명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진 생명을 가진 자라도 그 생명을 죽일 수  있는 어떤 세력이 있으면 그때 갈 때까지는 생명이지마는 그때 가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그거는 완전한 생명은 아니요 영원한 생명은 아닙니다. 우리 생명은  완전한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왜? 그 자존하신 지극히 크신 그분 더  이상이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 생명은 완전한 생명이라 그 말이오.

 완전한 생명인데, 이 생명이 무슨 생명이냐? 다시 말하면 이 생명은 그리스도  생명이라. 그리스도 생명이라. 그리스도 생명이라 말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우리 생명은 무슨 생명인고 하니 제사장으로 자라가는 생명이요.

선지자로 자라가는 생명이요, 왕으로 자라가는 생명이라.

 이러니까, 대제사장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서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은 우리 택한  자들만이 아니고 모든 우주를 다 예수님이 대속하셨고 영계도 다 예수님이  대속하셨습니다. 대속하셨는데, 이 세 가지 대속을 하신 이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제는 이 대속의 공로를 사용해 가지고서 뭘  할 건가? 대속의 공로를 어데다가 사용할 건가? 대속의 공로를 사용하는데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여기에 이 대속의 공로를 사용 합니다.

 그러면, 대속의 공로를 사용하는데, 대속의 공로를 위해서 수종 들 대속의  공로를 수종드는 그 수종드는 큰 일군이 둘 있으니 수종드는 그 일군이  무엇인가? 곧 영감과 진리입니다. 영감과 진리가 수종들어 가지고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자라게 하고, 선지자로 자라게 하고. 왕으로 이렇게 자라가는 우리의  생명이신. 우리의 생명이신 이 생명은 무슨 생명이냐? 근본으로 말하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제 된 생명인데, 이 생명이 무엇으로 자라 가느냐 하면은  제사장으로 자라가고, 선지자로 자라가고, 왕으로 자라가는 이 자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여기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으로 우리가 자라가니까 제사장은 뭐하는 건가? 우리가 아무리  무엇을 잘한다고 이렇게 해도 우리가 하나님과 뻐뚤어져도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비뚤어져도 안 되겠습니다. 또 모든 피조물과 비뚤어져도 안  되겠습니다. 또 하나님하고 피조물하고 둘이 사이가 벌어져 가지고  박작박작하고서 이래 막 이렇게 감정도 나고 여기 이렇게 대립 원수가 돼 가지고  있는데, 또 그것을 그 가운데 끼여 있는 이렇게 그 가운데에 끼여 있는, 그러면  하나님과 피조물이 대립되는 날이면은 결국은 피조물은 망하고 하나님만 서게 될  터이니까 그런 싸움의 틈바귀 속에 우리가 어떻게 살 건가 말이오.

 이런데, 우리는 뭐로 자라느냐 하면은 대제사장은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그  일을 하셨기 때문에 만물이 주라 칭하는데 우리 각자들도 가진 그 요소가 양은  다 각각 다르지마는 제사장 요소를 가지고 제사장 실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데든지 척 가면 말이요, 어데든지 척 가면 그만 나와 관련된 그  피조물과 나와 관련된 하나님과 그 사이는 그만 딱 들어붙어서 그만 합해 가지고  떡 들어붙인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우리의 가는 곳마다 우리의 하는 일마다  우리의 맡은 일마다 전부 제사장 실력이 있으니까 이 모든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제사장 실력으로 자라가고, 선지 실력으로 자라간다. 그러면 선지는 어떤게  선지냐 하면은, 하나님이 그 무한하심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가진 그것은  무한한데 이 무한함을 사람에게 주실 때에는 그 무한함을 그것을 물건으로  주느냐? 돈도 돈으로 주지 안하고 권세도 권세로 주지 안하시고 무슨 아무  것이든지 그걸 주실 때에 그 실상으로 주시지 앉습니다. 실상으로 가지고서  주시지 안하고 실상으로 주시지 안하고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말씀으로  창조했으니 실상으로 주시지 안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주실 때에 그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살면 그게 실상이 된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실상이 돼.

이러니까, 하나님의 그 무한한 것을 인간들에게 갖다 주는 그 직책이 선지  직책입니다. 선지자가 가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은 이렇다, '일어서라' 할 때에  일어서니까 일어선게 행복됐고 '가라'하는데 가니까 행복됐고 또 거기에서는  '말하지 말아라' 하는데 말 안 하니까 행복됐고 '거기에는 또 성을 내라' 성을  내니까 행복됐고, 이러니까 그 하나님이 당신이 선지자를 통해서 시키시는  그것은 다 생명과 평강과 부요와 모두 쾌락인데 이것을 이렇게 자꾸 하나님 걸  갖다 주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갖다주는 직책이 선지  직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선지 직으로 자꾸 자라 가고 있습니다. 선지 직으로.

 또, 왕 직으로, 왕의 권위로 자라간다. 왕 직이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이  통치하는 하나님 한 분이 통치하는 이 단일 통치인데 이 통일 통일 통치인데  하나님 한 분이 통치하는데 이 통치에 배치된 것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멸망입니다. 이 한 분이 통치하는데 그 통치에 배치되는 거는 다 멸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북에 김 일성이도 자기 그 통치에 배치되는 것은 다 사형  아닙니까? 또 민주주의도 그렇습니다. 민주주의도 실은 자기 통치에 대립이 되면  감옥에 가두든지 죽여 버리든지 하지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말이오. 민주주의만  아니라 모든 힘이라는 건 다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힘이 대립되는 힘이 서로  한테 화목해 가지고 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존자, 주권자. 전지전능자 이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분이 통치하는  그 통치는 하나뿐인데 이 통치 가지고서 모든 존재 우주와 영계 모든 존재가  그분의 통치에 따라서 그분 통치대로 다 움직이고 있는데 이 통치에 마찰되고  통치에 모순되면 다 멸망받는 것인데 우리가 통치하는 통치권은 그분의 통치권을  가지고서 자기에게 소속한 것을 그분 통치 이 단일 통치로 다 통치해 버리니까  그것이 내가 통치한 것이 자존자와 딱 들어붙어서 자존자와 한 덩어리되니까  여기에 대해서 아무런 그 마찰이나 충돌이나 뭐 분요나 이런 것들이 없게  됩니다. 이런 것으로 우리가 자라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께서 나타 나실  그때에' 이제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는 어떤 때냐 하면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요, 재림 후에는 그리스도의 심판이 베풀어질 때에  나타나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요. 또 그리스도의 심판 너머에 영원  무궁한 세계,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무궁세계 그  무궁세계 그때에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이제 당신이 오랫 동안  수고하셔 가지고서 이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이렇게 좌정하실 때  우리도 거기에 분자. 또 거기에 소속, 거기에 지체 이래 가지고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이래 나타나니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이 영광이라 하는 것은 자체가 암만 잘 나도  영광되는 거 아니오. 아무리 말이오. 어떤 마을에 가면은 아, 그 집에 집도 제일  좋고 재산도 제일 많고 사람도 제일 똑똑하고 인물도 제일 잘 낫고 또 살기도  제일 잘 살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뭐 모든 면이 제일 특물입니다. 그  가정에 특물이라. 특물인데, 다른 동네 사람이 가서 물어 보니까 '아, 이 집에  그분들은 그 가정은 그렇게 참 아주 모든 면이 구비하고 뭐 굉장하고 도무지  다른 사람이 따라갈 수 없을 만침 그렇게 아주 행복스럽고 그렇게  부강하다지요?' 이라니까 어떤 노인이 있다가 물으니 그리하니까 노인이  있다가서 입이 비쭉 거린다 말이오. 입이 비쭉거려. '와 입을 비쭉 거립니까?'  '말 마이소' 입이 비쭉거린다 말이오. 또 청년한테 가서 떡 물어 보니까 입이  비쭉거리면서 '여보시오 뭐 듣기도 싫습니다. 깐 놈의 새끼 뭐. 그까짓 놈의  새끼 있으면 저 있지 무슨 소용입니까?' 아 이라더만 또 조그만 아이들한테  물으니까 '아, 고 우리 동리에 제일 악질. 고 악질입니다.' 어려도 악질이라  한다 말이오. 그라면 그 영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광이 없는 거야.

 이랬는데, 거기 또 어떤 사람 한 사람은 참 수고하고 고생하고 그저 뭐 그냥  조반 석죽을 하고 지내고 옷도 뭐 잘 입지도 못하고 모든 면이 모두 약하고  부족하고 참 아주 인간 중에 서민 중에 서민이라 그거요. 이런데 그 사람을  말하니까 말하니까 '아, 그 사람아 참 불쌍하고 가련하다 하지요?' 이라니까  노인이 있다가 '으음 이 사람이 뭐 어디서 온 사람이야. 벌로 그래 말하면 안  돼.' '왜 그래요?' '그런 분은 우리가 말하기가 아까운 분이야. 어떻게 그렇게  그런 귀하시고 점잖으신 그런 참 귀한 분을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해.' 허, 이거  보니까 그리 떡 노인한테 물으니 그렇지. 젊은 사람한테 가서 말하니까 그만  젊은 사람이 핏대를 올려 가지고서 '이 어디서 온 자식이야 이 자식이. 어데 말  함부로 해. 그 어른이 어떤 어른인데.' 허, 이란다 이거요. 또 인제 조그만  아이한테 가 물으니까 아이가 있다가서 '이 양반 참 모르네 그 어른이 어떤  어른인데요. 그 어른은 참 귀한 어른이요 우리 동리가 그 어른 없으면 못 사는  동리입니다.' 그는 참 뭐 아이들도 뭐 감격해서 못 견뎌한다 말이오. 그래  있다가서 '그 집 어데 있는지, 거기 좀 가르쳐 줄래?' 하니까 아이들이 있다가  '내가 가르쳐 주지. 내 가르쳐주지, 내가 가르쳐 주지.' 네. 뭐 서로 안내할라  하고서 이러니까 자, 그것이 자기는 아주 졸하게 아주 서민 중에 서민으로  사는데 그 사람에게 영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광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  봐요. 네, 또 그 부자에게 영광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봐. 없어.

영광은 자체로 말미암은 거 아니고 자체로 인해서 혜택을 입은 제 삼자들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그 삼자들이 그 혜택에 감사해서 사은하는 사은하는 그  사은에 모든 소리와 그 사은에 그 모든 그 분위기와 운동들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면 뭐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광이라. 영광이라. 모든  피조물이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고 '아무 저, 아무 저 집사님' 막 이렇게 영광을  돌리고 '아무 반사 선생님' 이렇게 영광을 돌리고 '아무 목사님' 이렇게 영광  돌리고 장로 영광을 돌리는데 그 영광을 돌리는데 뭣 때문에 영광을 돌립니까?  뭣 때문에 뭐했다고 영광 돌리지요? 뭣 때문에 영광 돌리고 영광 받습니까? 자  몇 가지 때문에 영광을 받는지 손가락으로 한번 가르쳐 보이소? 몇 가지 때문에  영광 받는지 네, 잘 압니다. 이거 알면 대신학자라. 여러분들이 알면, 왜? 이  제사장 선지 왕의 실력으로 자라갔어 어데든지 가면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해결이 돼. 피조물과 피조물 사이에도 해결이 돼. 모든 나쁜 것은 다 해결되고  좋은 것은 또 다 이렇게 다 승리를 시킬 수가 있어. 이렇지 뭐 무진장으로 있는  하나님의 것 갖다가서 자꾸 갖다가서 얼마든지 부자 만들 수 있지 얼마든지  존귀한 자 만들 수 있지 하나님이 자꾸 가르쳐 주니 말 만 해 주니 말해 주는데  그대로 하면 다 돼 버려요.

 하나님께서 선자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대로 하면 그만 그것이 돈의 실상도  되고 권세의 실상도 되고 평강의 실상도 되고 영광의 실상도 존귀의 실상도 전부  실상이 다 돼 버려요.

 이래서, 이 세 가지로 자라서 무궁세계 하늘과 땅의 것이 다 통일된. 그  나라에서 우리가 영생할 터인데 그때 갈 때에는 그 나라의 영광은 무슨  영광입니까? 그 나라의 영광은 제사장 영광입니다. 그 나라의 영광은 선지자  영광이요, 그 나라의 영광은 왕의 영광입니다.

 이러니까, 저 억억만 년 지나고 난 다음에 이제 돌아다니기가 어떻게 뭐 너른지  뭐 다 돌아다닐 수 없어. 그러니까 억억만 년 후에 '이제 오늘은 아무데 가야  되겠다' 하고서 억억만 년 후에 어떤 데를 가는데 그 뭐 거리는 억억억억억억 몇  뭐 광년으로 말해도 광년의 속도로 해도 얼마나 몇천 년이나 몇만 년이나 가야  될 만한 그 먼 거리인데 먼 거리인데 아, 거기에도 가니까 내가 간다 했는데  간다고 뭐 기별은 언제 갔는지 가니까 모두 우우 모아 가지고서 환영식한다고  야단입니다. '여기에 무엇 오느냐?' 이라니까 '아, 아무 제사장이, 아무  선지자가, 아무 왕이 그래 오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환영하려고 환영식을 베풀고  지금 잔치를 꾸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래. 그래 나는 몰랐다 말이오.

몰랐는데 '내가 뭐했는데 이렇게 환영해?' '아이구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고  이렇고 하지 안 했습니까? 우리 제사장. 당신이 이렇게 함으로서 나에게 제사장  노릇해서 이런 혜택이 왔고, 선지자 노릇해서 이런 혜택이 왔고 왕 노릇해서  이런 혜택이 왔고서' 이라면서,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내가 언제 그렇게 한 일도  없는데' 이라니까 옆에 성령이 있다가서 말씀하시기를 '그게 예수님의 대속이라.

예수님이 네 대신하지 안했느냐? 예수님이 네 대신 한 그 제사장 노릇이  이들에게 혜택이 있기 때문에 이제 네 대신 했으니까 너는 그런 제사장의 그런  공로가 있고 네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그 공로를 네가  입고 있기 때문에 너는 예수님의 지체요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의 그 부하요  예수님의 그 종이기 때문에 그렇게 곧 그리스도의 것이 너의 것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네 영광이 된다.' 이라면서 찬양을 합니다.

 이러니까 오늘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이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소. 아무리 독사  혀바닥 같은 이 사람들이라도 실은 이 제사장 일. 선지 일. 왕 일 여기에 영광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그 사람을 만났는데 아, 그 사람을 만나니까 서로  이렇게 막힌 것이 그 사람으로 인해서 틔워지고 또 모두 다 삐끄러지고 잘못된  것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잘 해결이 되고 이라면 그 사람이 감사할 것  아니겠습니까? 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몰라서 지금 큰 실패를 당할 뺀 했는데  그분이 와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바로 지도 해 줘 가지고서 내가 일생 동안 망할  것을 안 망하게 막았다. 그 은혜가 어디 갑니까? 또 자기가 이것을 이렇게  처리할까 저렇게 처리할까 도무지 어떻게 통치해야 될까 어떻게 행정을 해야  될지 몰랐는데 와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모든 것을 처리하고 이렇게 다스리라  하기 때문에 아 그대로 다스려 가지고서 큰 도움을 입었다 말이오. 그러면 다  좋아합니다. 실은 안 믿는 사람들도 이 세 가지 가치로 그 속 양심 깊이는 이 세  가지를 평가해 가지고서 대우합니다. 또 원수는 뭐이냐? 이 세 가지로 원수된 그  원수를 복수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도 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신성을 따라서 인격성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래요.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 얻는 것은 이것이 구원 얻는 것이요 우리의  성공은 이것이 우리의 성공이기 때문에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네  표본으로 먼저 걸음 가 가지고 이렇게 성공하고서 모든 것의 피조물로 제일  승리자로서 인성은 다같이 피조물이지마는 예수님의 인성은 제일 피조물로서  승리한 고귀한 자리에 앉아 계신다. 이러기 때문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아라. 너희는 죽었다. 너는 죽었는데 왜 죽은 자의 생활을 또  할라 하느냐? 죽은 자가 죽었는데 죽은 자를 또 끌어 들이 가지고서 네가 와 그  생활할라 하느냐?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어 있다.

그리스도 이 큰 지극히 큰 소망을 가진 이런 희망을 가진 네가 이 희망에 책임을  지고 완성해 줄라 하는 그 능력자이신 그 하나님이 너와 함께 지금 하나님의  절대의 보호 아래 있지 않느냐?'  그런고로, 이렇게 '우리의 생명이신' 우리는 이것으로 사는게 우리 생명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도 그 영광중에 함께 나타나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거는 껍데기로 해 가지고 몰라요. 좀 눈을 감고  생각해서 그래야 알지' 껍데기를 가지고는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이 목회하는 사람들도 뭐 이 책 들여다 보고서 이런 웅변이  있다 어떤 목사가 말하기를 '진리는 여기에서 배우고, 또 뭐 방편은 어데 가서  어짜고, 또 모두 다니며 장점만 거튼거튼 가려 가지고서 어떻게 해야 된다.' 이  대단히 수단 있고 지혜 있는 사람이지마는 그 사람 목회 못 합니다. 항상 쫓겨  다녀요.

 내가 오늘도 '샘물을 ○○○ 목사님이 샘물을 좀 파는 걸 좀 배웠는데 열심히  파면 된다.' 이랬는데, 껍데기로 예수를 믿지 말고 예수를 믿지 말고 이제  우리가 다시 살아났는데 다시 살아난 것은 옛 나는 죽어 버렸고 나 아닌 나는 그  놈은 죽여서 쫓가냈고 이제 참 내가 살아났으니 이 살아 난 자는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으니 살아난 자. 살아난 자 참자기  자기를 찾아 가지고 자기가 자기로 살아야 됩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그러면  참자기를 잊어버려. 참자기 잊어버리면 누가 옵니까? 참자기 잊어버리면 자기  죽인 자기 죽인 원수인 거짓 자기가 옵니다. 거짓 자기, 자기 원수인 거짓 자기  그놈은 악령 악성 악습이 돼 가지고서 나를 죽이고 속일라고 온 것인데 참자기  잊어버리면 죽인 자기가 다시 이제 들어와 가지고서 나한테 와서 산 노릇을  하려고 오는데 그렇게 하면 온 천하를 얻어도 너는 실패다. 사람들이 뭐  얻을라고 뭐 수입 볼라 하다가 자기를 잊어버리는가? 뭐 수입 볼라 하다가  참자기를 잊어버리는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거 수입 볼라 하다가 참자기를  잊어버리는데 네가 세상에 있는 거 세상 그걸 차지하려고 해봐도 좋은 빌딩도  하나 옳게 못 차지하면서 온 천하를 다 차지해도 너 잊어버렸으면 소용없다.

'중생된 너는 온 천하보다 귀하다' 그랬습니다. '한 생명이 우주보다 귀하다' 그  말은 고기 덩어리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됐으면  우주보다 가치가 크다. 우주의 주인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은 무슨 소용 있는가? 빼앗긴다 말은  고 현실에서 현실에서 자기가 제사장 요소, 선지 요소, 왕 요소로 서고 현실에서  조금 한 마디가 자라가고 또 현실에 자라고 이래 자라갈 터인데 그만 자라갈  것을 제사장, 선지, 왕으로는 자라가지 안하고 내나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말미암아 조금 더 썩어졌습니다. 조금 썩어지고 자꾸 내려간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러면 온 천하 얻어도 네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기에, 자 한번 따라합시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아, 그래요.

 이제 아무리 장사라도 육체의 생명도 이거 신령한 생명은 아니지마는 육체의  생명도 생명이 떡 떠나가면 아무 장사라도 그만 옆에 와서 뭐 어린 아이가 뺨을  때려도 꼼짝 못 합니다. 또 누가 왔다가 뭐 칼로 찔러도 뭐 꼼짝도 못 합니다.

욕을 암만 해도 소용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그만 입에서 불그스름한 물이 나오고  고만 자꾸 썩어서 고만 얼마 있으면 송장돼 버리고 맙니다. 육의 생명도. 그러나  생명이 척 돌아오면 모든 나쁜 것은 다 제거하고 새로 소생 돼 가지고서 이제  수족도 놀리고 모든 오관이 다 활동을 하고 이와 같이 합니다.

 이 모양으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신데 이 생명이 떠나면 우리의 영에게는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영원히 떠날 수 없는 생명으로 내주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지마는 우리의 마음과 몸에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 될 때도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 되지 안할 때도 있습니다.

 중생된 영과 그리스도는 하나인데, 우리 중생된 영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함께  와 가지고서 우리의 마음과 몸을 살리는데 들어오면 우리 마음은 살아나고 우리  몸은 살아납니다. 마치 송장에게 송장에게 생명이 오면 그 송장이 다 새로와지고  팔팔 살아나고 힘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있다가 생명이 떠나면 그만 그 아무리  장사라도 그 몸이 그만 썩어서 냄새 나고 이래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심신에 우리 심신에 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심신에 들어오면 우리  심신이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면 그만 우리 심신은 살아납니다.

 우리 심신은 살아나는데, 그러면 살아나는데 이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시요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신데, 그리스도라 해도 좋고 주님이라 해도 좋고  예수님이라 해도 좋고 하나님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일 부르기 쉬운 것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으로 부르면 다 돼 버렸습니다. 이랬는데 주님과 우리와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고 주님을 사모하고, 첫째는, 주님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주님의 성전이 돼 가지고서 항상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주님과 연결이  되어서, 길을 가면서도,  그래 나는 그거 좋아요. 그전에는 날라다녔어요 훌훌 날라다녀요. 뭐  조그만해도 힘도 세고 날랬어. 여기에서 제가 서부 교회 처음에 왔을 때에는 저  수원지 한 꼭대기 거기에까지 갈라 하면은 뭐 안 뛰어갑니다. 슬슬 가도 사십  분이면 저 만당에 가. 사십 분이면 그만당에 가 가지고서. 그러니까 거기 가서  기도하고 또 내려올 때는 한 삼십 분이면 또 예배당에 들어와요 이러니까 거기  가서 기도하고 또 새벽에 또 내려와 가지고 여기에서 이라고 하는데 이랬지만  지금은 이제 영 기운이 없어. 기운이 없고 이라니까 자꾸 넘어갈라 해. 그때는  뭐 훌훌 다녀도 훌훌 다니니까 그런 일 없었는데 지금은 쩔벅 쩔벅하면 그만  넘어가면 낙상만 되면 늙은이 낙상되면 병신 돼 가지고 다시 못 일어나요.

 이러니까, 늘 가면서 그래 기도합니다. '주님 낙상되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이러니까 순간도 그 길을 가면서는 나를 붙들어 달라는 그 주님하고 연결이  끊어지지 안해요. '주님, 어쩌든지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이라며 가끔 가다가  또 거기에서 한 마디 넣을라 하면 '주님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전지자십니다. 주님은 전능자십니다.' 또 좀 또 새참 더 먹을라 하면 '주님이여  고문과 고형 가운데서도 그때 아주 기쁨이 충만이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또 그라고 또 이런 것 저런 것 자꾸하면서  주님을, 몸이 약해지니까 병드는 것은 안했는데 주님과 접촉하는게 좋으니까  건강하고 '주님 잊어버리는게 났나, 연약하고 주님 안 떨어지는게 낫나?  연약하고 안 떨어지는게 나은거 같애요. 위로가 되는 건지 몰라도 실상 그런 것  같애요.

 이러니까,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우리와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면, 그러기  때문에, 그저 잘 때나 깰 때나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그저  주님을 잊어버리고 주님을 잊어버리고 사람하고 이야기 할 때에 주님 잊어버리고  일을 보고 일을 할 때에 주님 잊어버리고 무슨 사건을 내가 생각할 때에 주님  잊어버리고 무슨 물건을 접촉할 때 이것이 바로 음녀하고 간음하는 것이든지  간부하고 간음하는 것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음행의 포도주를 지금 마시고  취해 가지고 있는 것이든지 서이 중에 하나라는 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하고  주님을 잊어버리는 그 시간, 잊어버리는 그 행동, 주님 잊어버리고 저 혼자  행동하는 거. 저 혼자 말하는 거. 저 혼자 모든 대인 관계를, 저 혼자 사물  관계하는 그것이 내가 미혹을 받아서 그것의 세력에게 내가 끌리고 거기에  달려서 살지 안하고 미혹을 받았으면 내가 음녀로 더불어 음녀의 미혹 받아  가지고 음녀로 더불어 간음한 죄가 되겠고, '내가 이거 이 덕택을 봐야 되는데  이거 없어지면 안 된다' 그것이 내게 큰 혜택을 입을 권위자로 인정했으면 내가  간부로 더불어 음행하는 것이 되어지고, 또 내가 아무 그런 관계도 아닌데 이런  사람의 말 듣고 저런 생각 이런 생각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주님 잊어버리게  되는 그런 걸 가지면 내가 요거는 음행의 포도주에 내가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어쨌든지 이 우리의 생명이신 주님을 자기 마음으로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을 잊어버린다 말은 생각할 때에 주님 잊어버리고 또 원할 때에 잊어버리고  욕심낼 때 잊어버리고 모든 비판할 때 잊어버리고 어쩌든지 자기 마음에  움직임이 움직일 때에 주님 잊어버리고 움직이는 것은 그것이 죄라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고, 또 자기몸이 움직일 때에 주님 잊어버리고 주님  없이 혼자 움직이는 그것이 다 간부로 더불어 음행이나 또 음녀로 더불어  음행하는 것이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것이나 이런 것인 것을 알고 우리가  주님으로 더불어 에녹같이 이렇게 동행하고 사모하고 항상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서 나를 주관하도록 처음에는 그게 안 되면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이 일을  할 때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나는 나대로 있고 주님은 주님대로 있어서  서로 마주 서 가지고서 내가 주님을 향해서 의논하고 대화해 가지고 하는 이  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아, 자꾸 그럴 거라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주님이 내  안에서 움직이시면 움직이 고 내 안에서 주님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고 또  행동하면 행동하고, 그러기 때문에 말을 할라면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하라  성경에 우리에게 그래 놨습니다.

 이것이 다 우리 신자의 보편 생활이라 그 말이오. 주님이 내 안에서 말씀 하실  때 그 말씀을 받아 가지고서 내가 말하는 것이 그것이 신자의 보통 생활이지  그뭐 어데 특수 생활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그거야. 그러기 때꾼에, '말을 할  자는 하나님께서 말하라 하시는 그 말을 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어데든지  말할 때에 네가 어떻게 말할 것을 생각지 말아라 네 안에서 말씀하시는 이는 곧  하나님의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마치 육체의 생명이 몸에 돌아오면 그 몸도 다 소생이 되고 활동이  되고 얼굴도 빛깔도 다 좋아지고 생명이 툭 떠나면 푸르죽죽하이 송장 같이 그만  그래 가지고 썩은 냄새나고 또 생명만 떠나면 그 사람의 소유도 그만 먹습니다.

그만 집도 그만 절단입니다. 토지도 절단입니다. 소유물도 절단이오. 아, 그  사람 생명 떠나 놓으면 모든 것 다 헛일이오. 생명이 오면 그 다음에 몸을  챙겨서 몸을 단속해서 몸이 새로와지고 그 다음에는 자기 뭐 소유. 자기의 모든  경영 이런 것을 다시 살려 가지고서 활동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우리가 '주님' 해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십니다. 다만 예수님이라 하는 것은 신성만 다른  것이지 그리스도는 인성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인성이 없고 예수님만 인성이  있는데 이제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에게 대해서 우리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라.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 죽었다가 살아났다고도 말씀 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라는 거 이 세 가지 직책을 가리켜서 이렇게 나타내서  말씀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이 생명이신 주님을 떠나지 맙시다. 주님 놓지  맙시다. 오늘 저녁에 설교하려는 그 설교의 목적은 그것입니다. 주님 놓지  맙시다. 주님과 떨어지지 맙시다. 주님 잊어버리지 맙시다. 주님 혼자 두고  모시고 다니다가 그만 조금 좋은 일 있으면 주님 그만 잊어버려 버리고 저 혼자  인간이면 인간, 돈이면 돈, 사람이면 사람, 물건이면 물건, 이리 접촉해 가시고  실컷 저거끼리 이렇게 날뛰고 뭐 이런 거 저런 거 이 모든 거 뭐 이런 경험 저런  경험 이런 거 실컷하고 나서 이제 심심 하니까 다 하고 나니까 마지막에 가서  '아이구 참 주님' 이거 너무 우리가 생명인 것을 몰라 가지고 그렇습니다.

 이 다른 것은 다 이렇지마는 생명은 자기가 가졌다가 내어놨다가 그래 못  합니다. 내어 놓으면 죽어 버리며 내어놓으면 썩어 버려요. 육체의 생명도  생명이 떠나면 그 시부터 썩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더우기 우리의 그 신령한 우리들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서  떠나면, 주님이 우리와 끊어지면 끊어지는 그 시간은 내 마음도 죽었고 말도  죽었고 생각도 죽었고 뜻도 죽었고 소원도 죽었고 경영도 죽었고 뭐 선한 일 한  것도 죽있고 뭐 성경 읽는 것도 죽었고 다 죽었어. 주님과 떨어지고 난 다음에는  하는 것이 다 죽었습니다. 주님과 연결되고 난 다음부터 우리에게는 생명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과 연결되면 주님이 오늘밤 여기에 말씀하신 대로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

 이러니까, 내가 주님과 연결되면 그분이 내게 와 가지고서 어떤 생명으로  역사하시는가? 제사장 생명으로 역사합니다. 이러니까, 내가 하는 일이 일이  그게 전부 제사장적인 일이라. 하는 일이 전부 제사장의 본질과 본성의 일이라.

또 그 일의 모든 결과가 나는 모르지마는 현실 줄 때에 거기에서 주님과 같이  하고 보니까 아, 그것이 여러 억억만 년 후에 어떤 존재에게 내가 제사장 노릇해  가지고서 그가 환영하고 감사하고 아, 아무 것이 당신, 이 제사장님 당신 때문에  살았습니다. 백 영희 목사님 이 제사장 그 역사로서 살아났습니다. 선지  역사로서 이제 부자가 됐습니다. 평안합니다. 그 왕의 역사로서.' 이래 가지고  만물들이 찬양하고 기뻐하면서 하는 거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러니까, 만물이 다  환영해요. 환영하며 더 환영을 또 어째야 됩니까? 자기가 혼자 취합니까? 이  환영 이것은 이렇게 환영 뭉텅이가 많이 왔는데 '이거는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셔서 이와같이 됐으니까 이 환영을 당신이 받으시옵소서' 또 이제 면류관을  벗어서 당신에게 드린다 말이오. 당신에게 드리면 또 좋아하셔서 그분이  좋아하시면 모든 좋아하심으로 말미암아 또 우리에게 온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참 이런 오묘한 하늘나라 이것을 생각합시다.

 그래서, 장사도 그래요. 장사도 주님을 모시고 장사하면 그 장사하는 데에서  제사장이 자랍니다. 선지자가 자랍니다. 왕이 자랍니다. 선지 수입 보고 제사장  수입 보고 왕 수입 봅니다. 이러니까 하나도 썩는데 이르지 안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살림으로써 전부가 영광됩니다. 영광. '그리스도께서 영광으로  나타나실 때에' 그리스도는 영광으로 나타날 것밖에 없지. 아, 제사장  노릇했는데 모든 피조물이 감사할 것 뿐이지 뭐 불평할 거 뭐 하나나 있습니까?  땅의 것은 권세 있으면 죽이기를 원합니다. 권세가 주먹만 하면 절 죽일라 하는  원수가 주먹덩이만 합니다. 권세가 이 한아름 되면 절 죽일라 하는 권세가  한아름 됩니다. 왜? 세상 것은 다 다른것을 빼뜰어 가지고 해를 지기니까 전부  작은 것은 작은 해 지우고 큰 것은 큰 해 지우니까 모든 것이 다 멸할라 하니까  그것은 사망이 되어지지마는 이 그리스도의 구원은 작으면 작은 것만침 모든  것에게 작은 유익이 되고, 크면 큰 것만침 덕을 보이고, 아주 더 크면 더 큰  것만침 이래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 외에는 아무것도 있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를 잊어버리지 맙시다. 가정도 그렇고 공부도 그래요.

공부도 내가 주님 모시고 주님 떠나지 안하고 공부하면 그 공부하는 그것이  제사장 노릇이 돼. 공부하는 그것이 제사장 노릇이 돼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더 큽니다. 우리가 한 시간 주님 모시고 산 그것이 그것이 얼마나 크게  효험있게 쓰일란지 우리는 측량 못 합니다. 그것이 어데 가 가지고 크게 효험  있게 쓰일란지 그 효력이 뭐 얼마나 큰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래서, 박 윤선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지극히 작은 의를 하나 행했을  때에 그 의가 어데 쓰일란지 모른다. 그 의가 쓰여지는 그 효력은 얼마나 큰지  우리는 그걸 측량 못 한다.' 그거 깨달은 말씀이오. 깨달음의 그 증거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오늘 밤에 다시한번 주님을 잊어버리고 살던  그 생활을 회개해서 그저 밤이나 낮이나 누구하고 이야기를 하든지 뭐이든지  주님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 잊어버리지 말고,  그러면, 주님만 이래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면은 주님 생각하면 딴 죄는  못들어 와요. 주님 생각하면 좋습니다. 주님 생각하면 그만 더러운 거나 악한  거나 그런 거 들어오지 못해요. 대충 그게 정리돼 버려요. 또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은 어떤 주님이라는 것을 내가 이제 주님 얼굴 한번 더 봅니다.'아, 주님은  성질이 어떻다, 주님은 어떤 구변을 가졌다. 주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셨다, 주님  얼굴 보니까 무얼 소원하신다.' 이제 주님을 가르친 것이 신구약 성경은 주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주님을 나타내는 주님의 사진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나타내는데, 이제 주님을 자꾸 생각합니다. 이래 생각하니까  무엇이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몰라요. 어데 쓰일지 몰라요. 그 현실에서 주님과  동행한 그것이 어데 쓰일란지 몰라요.

 이제 아주 큰 집을 짓는데 그 야하다 철공소에 제가 봤는데 뭐 일본 야하다  철공소에 어찌 그 공장이 긴지 그때 공장 그 길이가 칠십 리라 하던가, 차를  타고도 한참 가요. 칠십 리라 하던데 거기에 모두 여기에서 만드는 거 저게  만드는 거 만드는 사람들한테 묻기를 이거 어데 쓰이는 겁니까? 모릅니다. 그  만드는 데에서 일생 동안 고거 만들고 있는데 이거 어데 쓰이는가 가서 물으니까  하나도 몰라요. 그저 그는 만들기만 만들어 놨는데 나중에 가 요거는 요래  붙이고 조래 붙이고 해 가지고서 그것이 다 큰 모두 가 다 조립이 될 때에 그  위대한 조성품이 되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현실에서 주님 잊어버리지  안하고 살 그 생애가 그 생애가 분명히 성경대로 제사장, 선지, 왕의 그  실력으로 자라가는 것인 줄은 알지마는 어데가서 제사장 노릇할 건가, 어데가서  선지자 노릇할 건가, 이 왕 노릇은 어데가 쓰일 건가. 어데가 쓰일지 모릅니다.

이 전체를 혼자 예정하시고 이 전체를 혼자 경영하시고 혼자 이 모든 것을  운영하시는 그분이 지금 그 전지한 지혜로 해놨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딱딱하고 보니까 이 모든 것이 각각 들어 맞아 가지고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이 영광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하는 이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령한 것도 그러하고. 물질 이 세상에도 그러합니다. 주님을  자꾸 잊어버리지 안하고 생각하고 살면 그 사람이 그 장사를 하루 종일 주님  생각하고 일했어요. 또 하루 종일 사장이 주님 생각하며 사장 노릇 했어요.

그러면 그 사람 하루 사장 노릇하는 그것이 그것이 제사장의 효력을 많이  나타냅니다. 제사장의 효력을 나타내고, 선지의 효력을 나타내고, 왕의 효력을  나타내고 그것이 다 영생이오. 이러니까, 그 사업이 이루어지되 독사와 시랭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원수를 사고 다른 사람을 망쳐야 이루어지는 그런게  아니고 그저 하나님의 위로부터 하늘에부터 내려오니까 저도 좋고 남도 좋고  잘되고 자꾸 이런 그 좋은 면으로 이래 가지고 되어지는 거 그걸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 좀 한번 새김질 해 보십시오.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주님과 같이 모시고 동행하면 모든 일이 모든 일이  성공이 되되 독사의 성공이 되지 안하고 도적의 성공이 되지 안하고 사기 협잡의  성공이 되지 안하고 남을 침략하는 침략의 성공이 되지 안하고 도적질의 성공이  되지 안하고서, 그 악질의 성공이 되지 안하고 뒤에 가서 원수를 받는 그 원수를  만드는 성공이 되지 안하고 전부가 제사장, 선지 그 왕직인 이런 성질적인  성공이 다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과 동행함으로서의 성공 외에는 그것이 다 속이고 속는  것이요, 다 하나도 자기에게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이제는 고걸 연습을 합시다. 그저  어데든지 연습을 해요.

 내가 어떤 할머니 하나 보니까 팔십인데. 보니까 무슨 권찰 일도 하고 뭐 몸도  기운도 좋고 이래. 이 양반이 뭘 하나. 이 뭘 지금 일자 무식인데 하는고 싶어서  보니까 가만히 보니까 이래 좀 있다가 좀 뭣하면 '주여' 또 '주여' 이래 말할  때도 속으로 누구 만나도 인사하면서 '주여' 해놓고 주님한테 인사 하고 또  이야기 해요, '주여' 자꾸 '주여 주여' 이래요. 이라는데 그 주여 주여 이거  벌소리는 아닌가 했는데 무식한데 유식한 사람을 전도를 했어요. 전도하는데  물어 봤어. '그러면 그분에게 전도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고 이렇고  이렇게 말했다 하는데 그 말이 성령의 말이라. 성령의 말.

 이러니까, 주님만 접하면 여러분들, 아무리 일자무식이라도 일자무식이라도  박사 집에 가 가지고서 한 달만 같이 밥먹고 지내면 이제 박사의 전문 지식은 못  따라 가지마는 일반 지식이면 박사 다 따라가요. 언뜩 만나면 이 박사가  말하듯이 아주 고급 언어를 쓰지 또 이렇게 그 뭐 모든 언행 심사가 다 그렇지  이라니까 '아마 저분도 적어도 아마 대학은 졸업했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국민학교도 졸업 안 해도 됩니다. 사람이 제일 닮아 가기는 실물 사람 접촉하는  데에 제일 닮아갑니다. 잘 닮아가요.

 이러니까, 주님을 닮아 가는 데는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주여' 그저  밤낮으로 주님 생각하고 주님 잊어버리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하고  있으면 '주님 이 일을 어찌해야 됩니까? 이거 지금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까?'  이렇게 하되 성경을 근거해 가지고 하지 안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로서 나중에  위험한데 빠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을 성경대로의 주님을 만나고, 또  '주님 이래야 됩니까 저래야 됩니까?' 물을 때에 '이래라 저래라' 가르쳐 줄  때에 그 가르쳐 주는 것을 성경대로 가르쳐 주면 주님이시고 성경대로 가르쳐  주지 안하면 마귀가 가르쳐 주기 때문에 '아, 이거는 주님이 가르쳐 주는 거  아니라 마귀가 가르쳐 주는 거다.' 이래서 성경과 나와 함께 주님 동행하면은  고만 거기에는 튼튼합니다. 아무 염려할 것이 없소. 뭐 거기에 만 가지 성사가  다 있어요. 이러니까, 이제 주님 잊어버리지 말고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주님  모시고 동행하고 주님을 순간이라도 잊어버릴 때에는 그것이 바로 음행 음녀로  더불어 음행이나 간부로 더불어 음행이나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나,  그렇지 안해요?  남편하고 둘이 가니까 이래 떠 갈 때는 둘이 갈 때는 뭐 좋아서 '여보' 어짜고  이래 쌓더니마는 아, 어떤 무엇이 남잔가 여잔가 뭐 여자도 그렇지요 하나  오니까 그만 간다 소리도 안 해. 간다 소리도 안하고 그만 거기 빠져 버려서  있는지 없는지 잊어버리고 그만 거기에 마을이 그래서 그만 따라 가 가지고서  실컷 놀다가 남자든지 여자든지 말이오 실컷 놀다가 해가 거울 거울 해가 넘어  가니까 그때사 와 가지고서 그때 '아이구 이거 미안하다. 내가 올 때 인사도  안하고 왔지.' 이라면서 떡 와 가지고서 '아이구 미안합니다. 아이구 오늘 그만  만내서 내가 간다 소러도 못하고 왔습니다.' 그럴 때에 그 남편이 어떻겠소?  어떻겠소? 거기 또 올 때까지 마음이 얼마나 섭섭하겠소? 이러니까, 그래 가지고  우리가 주님과 자꾸 멀어져요.

 그럴 때에 떡 만나면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그 남편만침 친구가 없으니까 그  인사하고, '여보 저분은 언제 그분이고 우리 선생님이고 또 우리 뭐 거석인데'  그렇다고 이라니까 아, 그만 잠깐 그라면 좀 전송하든지 그래 하고 오라고,  그라면 오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오라고, '아이구 뭐 안 해도 괜찮습니다.' 자꾸  남편이 가라, 하니까 가니까 '그래도 만나면 아무래도 한 한 시간쯤이면 이야기  할 터이니까 갔다 오시오.' 갔다 오면 갔다오면 금방 와 버립니다. 갔다 금방  와. '와 갔다가 금방습니까?' '아 가서 그만 차 한 잔 대접하고 그만 그래  왔습니다.' '그 실례했구만. 그래도 모처럼 여기까지 찾아 왔는데 좀 시간을  삽아 가지고서 이야기도 하고 이라지 그만 그래 왔어?' 이래 보니까 남편이  가만히 보니까 남편 못 떨어져서 그만 가기는 갔지마는 퍼득 오차 한 잔 대접해  놓고서 그만 못 있어서 남편에게 달려 왔다 말이오. 그걸 남편이 그럴 때에  싫어합니까? 좋아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런 하나님이오 뭐 하나님이 없는 것이 없이 다 있습니다.

있는데 우리가 우리의 인격이 당신의 신격에 이래 거석해서 신격과 인격과  인격과 격과 격이 이래 가지고서 교제하는 이것을 당신이 원하십니다. 딴 걸  원하거나 그런 걸 뭐 원했습니까? 돈 내라 뭐 그리 했소? '마음 다하고' 마음이  제일이라, 그 다음에는 마음. 첫째 마음부터 말했어. '마음 다하고' 그 다음에  목숨이라.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그 다음에 행동이라. 그 다음에 '뜻  다하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어쩌든지 우리가 참 좋은 기회입니다. 주님 잊어버리지 말고 자꾸  거석해서 독침 앞에서도 공산주의 앞에서도 주님 모시고 요동치 않는 우리가  되어지고, 지금부텀 주님의 도우심에 혜택을 현저히 제가 보는 것을 경험하고  체험해 가지고 얼마든지 도우심을 봐서 독침 앞에서도 고문과 고형 앞에서도  주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지금 아주 좋은 때입니다.

 연습해서 우리가 연습하고, 그 다음에는 인제 연단 받고 연단을 방해해도  계속한다 그 말이오. 연단 받고. 그 다음에는 연성 받고 이래서 이 고요한 때에  주님 잊어버리지 않고 주님과 동거 동행하는 이 생활을 연습해서 능숙해서  밤이나 낮이나 우리가 주님 잊어버리고는 살 수 없고 주님 없이 말할 수 없고  주님 없이 생각할 수 없고 주님 없이 일할 수 없는 주님과 동거 동행 에녹이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주님과 동행한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었어. 산채로  승천했어. 고거는 하나 계시입니다. 주님과 동행에는 죽음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영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 말은 중생 한 사람이 주님을 딿는 그 생활은  하나도 죽지 않습니다. 다 영생입니다.

 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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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56 그리스도의 고난/ 베드로전서 5장 1절-11절/ 820605토새 선지자 2015.10.25
655 그리스도의 것/ 고린도전서 3장 21절-23절/ 830902금새 선지자 2015.10.25
654 그리스도의 건설/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1978년 6공과 선지자 2015.10.25
653 그리스도은 만유시요/ 골로새서 3장 8절-17절/ 880501주후 선지자 2015.10.25
652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골로새서 3장 1절-11절/ 830911주전 선지자 2015.10.25
651 그리스도에 대하여/ 빌립보서 3장 8절-12절/ 800331월새 선지자 2015.10.25
650 그리스도에 대하여/ 빌립보서 3장 10절-11절/ 800401화새 선지자 2015.10.25
649 그리스도안에 우리 생명/ 골로새서 3장 1절-6절/ 820408목새 선지자 2015.10.25
648 그리스도안에 우리 생명/ 골로새서 3장 1절-4절/ 820411주새 선지자 2015.10.25
647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골로새서 3장 1절-5절/ 841019금새 선지자 2015.10.25
646 그리스도를 모시는 방법/ 에베소서 3장 14절-21절/ 870215주전 선지자 2015.10.25
645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야/ 골로새서 3장 1절-6절/ 870213금야 선지자 2015.10.25
644 그리스도로 사는 것/ 골로새서 2장 20절-3장 11절/ 830911주후 선지자 2015.10.25
643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 베드로전서 1장 20절-22절/ 820815주전 선지자 2015.10.25
64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갈라디아서 2장 17절-21절/ 870110토새 선지자 2015.10.25
64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사람 나/ 베드로전서 1장 23절-25절/ 890611주전 선지자 2015.10.25
640 그리스도 삼직/ 누가복음 16장 1절-9절/ 840416월새 선지자 2015.10.25
639 그리스도 삼직/ 빌립보서 3장 3절-11절/ 800411금야 선지자 2015.10.25
» 그리스도 공부/ 골로새서 3장 1절 4절/ 841019금야 선지자 2015.10.25
637 그리스도/ 골로새서 3장 1절-4절/ 1983년 38 공과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