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탄생

 

1985. 12. 29 주일새벽

 

 본문:누가복음 2장 1절∼14절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리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리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오늘 주일 공과인데 오늘 주일 공과가 좀 어렵습니다. 어렵고 뜻이 깊어서 알기가 좀 어려운데 혹 반사 선생님들이 거석한 분은 그저 오늘 아침에 이 공과 공부하는 말씀을 듣고 고 한 가지나 두 가지나 거머쥐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도록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반사 선생님은 그 진리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 됩니다. 알아야 학생들에게 자기가 가르치는 것이 알고 가르치는 것과 모르면서 가르치는 거와는 아주 다릅니다. 자기가 알고 가르치면 배우는 사람이 아는 은혜를 받게 되고 자기가 영감을 받아 가지고 가르치면 배우는 사람이 영감을 받는 은혜가 되고 또 자기가 그 실행을 하면서 가르치면 실행의 능력을 그 배우는 사람이 받게 되고 또 자기가 그러한 사람이 돼 가지고 가르치게 되면 배우는 사람이 그렇게 사람되는 그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사가 중요합니다. 늘 말하지마는 반사들이 어린 학생이라고 그렇게,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보면은, 사람들이 난지 후로 차차차차 성장하고 발달해 가는 줄로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사람들은 점점 타락하고 점점 못 써져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이들은 들을 수 있는 걸 지혜있고 통달한 사람들은 못 듣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어른들은 부패해져서 심령의 눈이 어둡고 귀도 어둡고 모든 총명도 다 어두워져 가지고 모든 것을 들을 줄도 볼 줄도 정평 정가할 줄도 모르지마는 어린 아이들은 타락이 시작하는 것이고 타락이 적기 때문에 더, 옳은 데 대해서는 명철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은 몰라도 어린 아이들이 다 호산나를 부를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러기에 그 아이들을 인도하러 갈 때에, 여러분들이 다 알지 않습니까? 자기대로 자기 아는 사람대로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그렇게 딱 들어맞게 정평 정가는 못 하지마는 그래도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하는 것을 다, 상을 볼 줄 몰라도 상을 보고 또 그 사람에게, 안 믿는 사람 사주라 하는 사주를 볼 줄 몰라도 그 사람의 사주를 보고 또 그 사람의 모든 심리라든지, 보이지 안하지마는 보이지 안하는 심리 그 행동 또 그가 목적하고 있는 거 이런 걸 잘 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 어떤 반사를 말하면 그 반사는 어떠한 반사라 대개 그 윤곽을 짜 가지고서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다 부모가 자녀 아끼는 것은 꼭 같은데 자기는 살인 강도를 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자녀는 의인되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들의 욕심인 것입니다.

또 나쁜 사람을 친하면 나쁜 사람 되어지고 좋은 사람을 친하면 좋은 사람 되어지는 줄 알기 때문에 지혜있는 사람들은 그 공부만 열심히 시킬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좋은 동무를 정해 줄라고 애를 씁니다. 자녀들에게 좋은 동무를 정하면 고만 그 아이는 안심할 수 있지마는 나쁜 동무 하나만 친하면은 그만 그 아이는 절단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세상에서 모두 자기네들은 참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옳은 사람 바른 사람 참,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인간의 정의와 공의와 진실이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우리 자녀가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소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자, 좋은 동무 사귀어 주고 싶지 또 그런 사람되고 싶지 이러니까, 어데 좋은 동무를 하나 정해 줄까 어데 좋은 지도자를 하나 만나게 해 줄까 이렇게 자꾸 갈망하고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반사 선생님들이 가 가지고 그 모든 언행 심사를 행동하는 거 보니까 그렇게 길게 사귀지 안해도 잠깐이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물이 돼 놔서 이상하게 명철합니다.

이러기에, 잠깐 만나 보면은 ‘아, 그 선생 참 아주 귀한 분이다. 젊은 사람인데 귀한 분이다.’ 벌써, ‘젊은 사람인데 귀한 분이다.' 이렇게 평가되게 되면은 그 부모는 그 아이를 어짜든지 그 선생님에게 붙여 줄라고 애를 쓰고 그 선생님이 와서 자주 접촉해 주기를 원하고 나중에는 그 자존심도 다 버리고 ‘어짜든지 우리 아이를 잘 좀 맡아서 지도해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까지 있게 됩니다.

그러면 부모네들이 다 그렇게 원하지 또 그 아이들도 아이들 자체도 그렇습니다.

아이들 자체도 선생들을 다 평가합니다. 평가하기 때문에 이래 말 들어 보면 그걸 그저 너무 엄청한 게 나올까 싶어서 안 해 그렇지 반사들에 대해서 말 들어 보면은 그 반사에게 대해서 싫다고 이랍니다. 싫다고 이래. 쪼그만한 것들이 어찌 아는지. 국민학교 있는 아이들이야 뭐 어리다 싶으지마는 사람에게 대해서 정평 정가하는 것이 어른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보면, 그 선생님은 원치 안하고 또 어떤 선생님으로 갈아 달라 하는 그 보면은 그 아이들이 어떻게 평가를 정확하게 하는지.

이 찬양대 지휘도 그렇습니다. 찬양대 지휘도 보면은 기술이나 그런 걸보지 안하고 사람을 보는 것으로, 내가 그 찬양대들, 우리 교회서 찬양대가 세 팀이나 있지 않습니까? 있는데 이래 가끔 이래 하나씩 둘씩 이래 들어서 이 아이도 물어 보고 저 아이도 서서 이래 물어 보면은 고만 벌써 선생한테 멸시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구 그 선생 어떻고 뭣이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이라면서 그거 생각도 못 하는 소리를 더러 합니다. 하면서 또 어떤 좀 거석하면 ‘아, 그 선생은 나는 뭐 그 선생이 좋다고, 기술도 아무것도 없지마는.’ 요는 통틀어서 결산을 해 보면은 그 아이들이 다 진실을 원한다 하는 거, 저는 뭐 개망나니 같아도 원하기는 진실을 원하고 존경은 진실을 존경합니다.

그라니까, 여러분들이 이 심방갈 때에 그 학부형들의 마음을 감화 줄 수 있어야 되고 또 학생을 감화 줄 수 있어야 되고. 학생을 감화 주면은 학부형 감화하고 학부형 감화되면은 그 모든 일은 다 수월하게 다 이루어집니다. 이러니까, 어떤 반사들은 보면은 그 반이 크기를 돌같이 큽니다. 돌같이. 그저 하나씩 둘씩 쪼끔식 쪼끔씩 올라가지 내려가는 일은 없어. 벌써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그 아이를 가 가지고서 운동해서 ‘오이라’ 차를 불러 가지고 ‘차 타라. 차 타라.

토큰 여기 있다. 토큰 돈 있다. 돈 있다.’ 이래 가지고서 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을 보여 주고 사람이 가 가지고 심방하니까 벌써 사람을 보고서 평가해 가지고 따라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뭐 변동이 없어 자꾸 그대로 성장돼 나갑니다. 성장돼 나가는데 나중에 반사가 바꿔져도 중간반에 가도 잘 그라다가 얼마 동안 잘 나가다가서 그 선생이 삐뚤어져 버렸으면 그만 그다음에는 안 돼요.

그래서 우리 중간반 반사에 대해서 참 문제입니다. 국민학교, 그 주일 학교 반사들 보다 중간반 반사들은 벌써 학생들이 그만큼 장성해졌기 때문에 그래도 보는 시야가 넓습니다.

이러니까, 학생들이 원하고 동경하는, 학생들이 이상적으로 꿈꾸는 그런 선생이 된다고 하면은 고만 그 학생들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달라붙습니다. 자기가 ‘아, 저런 사람이 됐으면’ 하는 자기가 꿈꾸는, 자기가 이상적으로 동경하는 그런 사람이 되면 문제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선생이 오면 ‘저 선생은 저 껄렁이.

머리해 가지고 다니는 거 보니까 껄렁이. 낯빤데기 보니까 껄렁이. 얼굴에 있는 피부 보니까 껄렁이.’ 다 안다 그말이오. ‘눈초리 보니까 껄렁이. 입 보니까 껄렁이. 걸음걸이 보니까 껄렁이.’ 다 안다 그거요. 이러니까 전부가 그래 가지고 막 막는 일인데 돌아다니며 암만 그 부지런히 노력을 하고 힘을 쓴다고 해 가지고서 되어집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은 모르는데, 아무도 모르는데, 자기가 남 모르는데 나쁜 부끄러운 일 했으면은 그 사람이 모르지마는 그 사람을 대할 때에 그 피부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타나서 아, 저 사람이 보지 안했는데도 백지 본 거같이 얼굴이 벌개지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거 사람이라는 것은 참 기묘하게 만들어진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공과에서는, 이거는 반사들이 주의하는 것이고, 그래 가지고 자꾸 내가 그들이 원하는, 원하는, 학생들이 원하고 부모들이 원하는 사람이 돼 가지고 가야, 속속들이 못 됐으면 임시 가장으로 연극적이라도 그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돼 가지고 가야 일이 되어지는 것이지 그분들이 볼 때에 ‘아, 저런 사람 멀리 해야 되지 삼가해야 되겠다.’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 가면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데는 우리가 일시라도 기도를 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자기가 참 양심을 써서 성신이 동행하시기를 기다리고 동행해 주시기를 바라고 이라면 고만 그 동안이라도 그 사람이 완전히 용모가 변해지는 것입니다. 용모가 변해지고 태도도 변해지고 얼굴 빛도 변해지고 그 언행 심사가 다 변해진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렇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라고 오늘 공과는 좀 어려워서 부장들이 가르칠 때, 여기 다 참석하지 안했으니까, 가르칠 때에 그것을 가르치면 아마 반사들이 부장들이 가르치는 그것을 듣고서 그렇게 분반 공부할 때에 가르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이 돼집니다. 오층에서 들으면은 처음에 가르칠 때에는, 분반 공부를 하면은소리가 쪼그매 나고 또 두번째 가르칠 때에는 분반 공부할 때 보면은 오층에서 들으면 소리가 왁씬왁씬 소리가 크게 나고 혹 어떨 때는 세 번 거듭 가르치게 될 때에는 뭐 야단입니다. 북썩북썩거립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은 반사들이 자기가 깨닫고 좀 확신을 좀 가졌다 못 가졌다 하는 그 증거라 그말이오. 그대로 학생들도 또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 오늘 세 가지만 생각을 하면 되겠습니다. 첫째는 우리 주님, 도성 인신하신 주님, 우리 주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전에 어떤 분이시며 또 지금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우리가 잘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영원 자존하신 분입니다. 홀로 계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가 생겨졌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보존이 되고 있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모든 것이 접선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주권 섭리, 주권의 능력 또 자존자의 그 창조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창조되었고 보존되고 또 그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고 모든 흥망 성쇠가 다 그분에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움직임이든지 그 움직임을 볼 때에 하나님이 이런 물건 이런 피조물을 통해 가지고 움직인다고 그것만 보면 그 사람은 그것이 반드시 나중에는 우상이 되고 맙니다. 어떤 움직임이든지 움직임의 원인은 주권자 주님이십니다. 또 있는 것도, 이런 모든 이런 거 보존, 있는 것이 없어지고 없는 것이 있어지고 이렇게 보존되어지는 거 이런 것도 다 그분의 주권 섭리로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 이거 별스러운 게 있네, 이 못쓸 게 있다.’ 못쓸 게 있어도 그거 다 누가 만든 거냐? 주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아무리 좋고 아름다워서 야 이거는 참 좋다 하는 그것도 내나 주님이 만드셨어. 주님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요 또 모든 것을 다 보존하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시요 있는 것을 파괴해서 없애는 분이 주님이시요.

이러니까, 모든 존재가 주님의 창조로 주님이 지어서 있게 됐고 이 있는 것이 보존되는 것도 있고 파괴되는 것도 있는데 그것도 다 주님이 하시고 또 이런 것이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이는 것도 다 주님이 혼자 하시고 또 내게 이렇게, 이렇게 이것을 내게 이렇게 접선을 시킨다 저렇게 접선을 시킨다 우리에게 접선시키는 것도 다 주님이 하십니다. 그러기에 없는 것을 있게 하신 이가 주님이시요 있는 것을 그대로 잘 보존하시는 이가 주님이시요, 사람 보존하려면 먹고 입어야 되지 않습니까? 이러니 말하자면 사람 보존할라면 먹여야 되고 입혀야 되고 자꾸 살려야 된다 그말이오. 보존하는 것을 주님이 하시고 또 없애는 거를 주님이 하시고, 그러니까, 모든 걸 있게 하신 이가 주님이요 보존하는 것도 주님이요 없이 하는 것도 주님이시요 움직이게 하는 것도 주님이시요 또 이런 거 저런 것에 서로 상호 관계를 가져 가지고서 이렇게, 상호 관계 가져서 좋은 관계를 가졌다고 뻥긋뻥긋 웃지마는 그것도 주님이 하시는 것이고 ‘하, 이런 원수지는 일이 닥쳤다’ 하는 그런 것도 다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 주님이 창조자시요 주님이 주재시요 주님이 주관자시요 개별 섭리자시요 이렇게 요것만 알면 됩니다.

요것을 알려야 됩니다. 오늘 공과에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다. 지금도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다 관리하시고 섭리하시고 계신다.

망하는 거 흥하는 거 이 모든 것도 다 주님이 그런 것을 홀로 주권 능력으로 다 주관하고 계신다. 요것을 학생들에게 자꾸 말을 해서 인식을 시켜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하는 거 보면은 ‘주님은 주권자십니다. 주님은 주권자십니다.주님은 주권자입니다.’ 그저 그걸 하루면 하루 이틀이면 이틀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습니다. ‘주님은 주권자이십니다. 주님이 주권자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주권자이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주권자에게 맡깁니다.’ 자꾸 주권에 대해서 자꾸 믿을라고, 자기의 모든 이성이나 감각이나 신경이나 정신이나 그 모든 기억성이나 그 정서나 모든 데 대해서, 주님이 주권이라는, 주권되신 주님이신 것을 꽉 배도록 할라고서 애를 쓴다 말이오. 꽉 물을 들인다 말이오. 또 주님은 전능 전지 창조주 대주재 만왕의 왕 모든 것을 다 주권으로 통치하고 섭리하고 계시는 이 주님이신 것을 자꾸 인식을 할라고, 자기가 자기 전체에 밸라고 마음에 가뜩 배고 행동해서 자기 몸에 가뜩 배고 몸에 배고 마음에 배고 영에, 영에는 가뜩 차 가지고 있고 이러니까 그게 자꾸 성화되는 것입니다.

이분이 이렇게 하고 계시는데 사람은 몇 가지로 살고 있느냐 하면은 사람은 다섯 가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로 살고 있는 것은 첫째는 물질로 살고 있습니다. 물질로 가지고 살고 있어. 물질로 살고 있고 또 그다음에는 이런 저런 움직이는 그 모든 활동의 일로 살고 있습니다. 또 사람은 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영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로 살고 있는 것을 이 공과에다가 말을 했습니다. 물질로 살고 있다 말은 물질 그것이 바로 내요.

물질을 먹으면 물을 먹으면 몸에 수분이 생겨지고 또 물을 안 먹으면 수분이 빠져지고 또 자기가 이 물질 그게 없으면 이 고기덩어리가 힘이 없어지고 고기덩어리가 힘이 없어지면 마음도 힘이 없어지고 마음이 힘이 없어지면 영도 활동하는 데 자유하지 못하고 이렇습니다. 이 물질이라 하는 거 중요합니다.

물질로 살고 있고 또 모든, 아무리 배 부르게 먹어도 자기 할 일이 없으면은 그 사람은 고통스러워요. 할 일이 없으면.

또 자기가 아무리 고량 진미를 먹어도 할 일을 못 하고 있어도 고통스럽습니다.

한 시간이면 할 일을 고 일을 안 하고 하루 종일 있어 보면은 한 시간 하면은 개운하게 ‘하 됐다’ 그만 개운하게 다 정리해 버리고 시원하게 될 걸 한 시간 할 일을 안 하고 미루면은 하루 종일 그 사람이 스물 네 시간, 스물 네 시간 내내 일하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못 한 고통을 당해. 이러는데 고걸 착착 고 일을 착착 해 버리면 그 얼마나 우리 영육이 다 깨끗해지고 힘이 납니다. 고 일을 해서 일이 하나 턱 형통하게 돼서 고 일이 잘 되면은 굉장히 사기가 올라가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일 하나가, 그 사람이 밥도 있고 옷도 있고 다 있는데 고만 사색이라. 사색이 돼 가지고 있어. 왜 그런가?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하나 잘못 돼 가지고 그만 그리 돼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사람은 물질로 살고 일로 살고 또 이 고기덩어리로 살고 마음으로 살고 영으로 살고, 그라면 몇 가지입니까? 다섯 가지입니까? 녜. 다섯 가지로 살고 있다 말이오. 다섯 가지로 살고 있는데 사람이 고통은 뭘로 고통을 당하느냐 하면은 가난으로 고생을 당하고 있습니다. 가난으로 고생당하고 있고 또 절망으로 고생당하고 있고 또 고난으로, 고난이면 사망입니다. 고난으로써 절단당하고 있고, 이 세 가지로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섯 가지, 세 가지,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고 다음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그것을 기억해서 가져야 될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이 물질이 열 가지 있어야 될 터인데 한 가지만 있어도 고난이오.

물질이 가난해서 고통이요. 또 물질에 대해서 희망이 없어 고통이요. 물질에 앞으로 잘될 그 희망이 없다 그말이오. 희망 없어 고통이요 또 있는 물질 그것도 자꾸 없어지니까 고통입니다. 물질에 대해서도 가난으로 망하는 것이고 절망으로 망하는 것이고 이것이 차차 없어지므로서 감퇴되므로서 망해지는 것이오.

그러면 또, 물질 다음에는 뭐이라 했습니까? 일. 일도 말이오. 일이, 일이 무엇이든지 그 일이 그 사람이 할라면 이 일도 되고 저 일도 되고 일이 열 가지가 잘 돼야 될 놈의 일이 한 가지만 되고서 아홉 가지가 안되면 절단이라.

그게 가난이라 말이오. 자기가 어떤 것에 대해서든지 그 일이 구비하면 풍부한 것인데 그게 모자라니까 고통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일이. 종류나 수나 양이나 구비 조건이 다 되지 안하고 가난해서 적으니까 고통이지 그것이 앞으로 그래도 앞으로 희망이 있어서 자꾸, 이렇지만 자꾸 앞으로 잘돼 나갈 희망이 있으면 되는데 희망이 없으니, 절망이니까 또 고통이 된다 말이오. 그것이나마 있는 것도 자꾸 절단이 나 가지고 없어진다 말이오. 그게 고난이라. 적어서 고통. 절망이라 고통, 또 없어지니 고통, 이게 고통이라. 이게 멸망이라 말이오. 그라면 물질하고 그 다음에는 일이 그렇다 그말이오. 일.

고 일 다음에는 뭐입니까? 몸이라 말이오. 몸도 그 몸에도 몸이 가난해 그렇다 말이오. 몸에 필요한 것이, 필요한 것이 천 가지라면 천 가지인데 한 백 가지쯤 있으면 그 사람이 어찌 견디겠습니까? 왜 지금 수명이 짜르냐? 옛날에는 구백 몇 세까지 살았는데 지금은 왜 이와같이 수명이 짜르냐? 수명이 짜른 것은 몸에 필요한 요소가 자꾸 없어졌다 말이오. 필요한 요소가 없어졌으니까, 필요한 요소가 가난해졌어. 그런데 그 필요한 요소가 몸에도 그렇게 필요한 것이 많은데 필요한 요소가 자꾸 적어지고 가난해지니까 못 견디겠다 그말이오. 또 이러면 앞으로 자꾸 그게, 가난해졌으면 좀 더 구비해질 수 있는 희망이 있으면 하지만 구비해질 수 있는 희망이 없어. 절망이기 때문에 또 절단이야. 아, 있는 것이나마 자꾸 적어지니까 절단이라 그말이오. 사람이 죽는 것은 몸이 죽는 것도 있지마는 옆에 있지마는 먹지 못합니다. 있지마는 먹지 못해.

이러니까, 이 산소가 있지마는 산소를 호흡을 못 하고 보니까 그 먹지 못하니까 산소 호흡을 시키지 않습니까? 약한 사람 건강한 사람 있으니까 나이 많은 노인하고 젊은 사람하고 있으면은 나이 많은 노인이 먼저 죽는다 말이오. 그거 방 안에 있는 한정된 공기가 있는데 이 건강한 사람이 훌훌 다 빨아 먹어 버리고 나니까 그 나이 많은 사람은 그 공기를 산소를 빨아 먹지 못하니까 저절로 죽는다 그말이오. 자꾸 이것이 없어지니까 죽는 거라. 가난해 죽고 없어지니까 죽고 앞으로 희망이 없으니까 죽고.

또 마음도 그래요. 마음도 이 마음이라는 것이 이게 참, 이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에 영감을 받아야 이 마음이 자꾸 살고 살고 이래 가지고 자꾸 막 뛰어나고 이거 굉장해질 터인데 이게 자꾸 영감은 없어지지 옳은 마음은 없어지지 의로운 마음은 없어지지 깨끗한 마음은 없어지지 악령 악성 악습 이놈으로 말미암아 자꾸 마음이 더러워지고 추접해지고 삐뚤어지고 어리석어지고 이라니까 말이오. 안 된 욕심 하나만 가져도 죽습니다. 그 욕심은 마음 아닙니까? 마음에 안 된 거 하나만 들어가도 죽는다 말이오. 그 사람 다 건강하지마는 암병 하나만 해도 죽어. 암병 하나만 해도. 그러니까 없을 거 하나만 있어도 그렇다 말이오. 없을 것을 자꾸 세도가 자꾸 강해지지 몸에 해로운 것은 자꾸 강해지지,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도 마음에 해로울 마음 마음을 절단, 마음을 죽일 것은 자꾸 많아져 오지 마음을 살릴 것은 없어진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죽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거 또 희망도 없어. 앞으로 좋은 희망이 있으면 하지만 절망이라.

영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영도 사람들이 영이 부절히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이 돼서 자꾸 이리 와야 될 터인데 그거 없으니까 이 영이 하나님과 자꾸 멀어진다 말이오. 하나님하고 딱 들어붙어 가지고서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은 내 안에 이래야 될 우리 영인데 하나님과 자꾸 멀어지니까 차차차 하나님과 멀어지는 거만치 자꾸 우리의 영은 죽게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에 물질이라는 것도, 물질이라는 것도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옛날 사람은 오래 살고 지금 적게 사는 거 단명되는 것은 필요한 것이 없어져 그래. 자꾸 필요한 것이 없어지고 필요 없는 것이 많아진다 말이오. 그러니까, 물질로 사는데 물질이 가난하다 그말이오, 물질이 가난해. 또 자기에게 활동할 작용도 뭐 이거 번개같이 움직여 살아야 될 수 있는 사람인데 악령 이놈이 와 가지고서 둔하게 만들고 어둡게 만드니까 안 할 일만 자꾸 한다 그말이오. 안 할 일만 자꾸 하고 할 영감은 받지를 못하게 된다 그거야. 또 그 몸뚱이도 그래 몸뚱이도 몸에 필요한 것이 자꾸 없어져. 몸의 자체의 기능도 자꾸 쇠퇴해지지. 늙어 죽는 사람이 자꾸 이리 몸에 자꾸 온갖, 아이들 보담은 자꾸 이 기능이 감퇴된다 말이오. 감퇴되니까, 마음도 그렇고 영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가난해지느냐? 어떻게 해서 그래 가난하냐? 가난한 이유가 뭣 때문에 가난한 줄 압니까? 가난한 이유가, 가난한 이유가 뭐이지요? 공과 공부에서. 가난한 이유가 뭐입니까? 사욕 때문에 가난해졌어. 알겠습니까? 사욕. 사욕. 하나님이 이거 욕심 내라 했는데 그것만 내면 자꾸 이제 모든 게 부요해질 터인데 제 사욕이라는 것은 마귀란 놈 악령 악성 악습이 준 욕심이기 때문에 그 욕심은, 그 욕심대로 하면 좋을 거 같고 성공 같은 데 망한다 그말이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보니까 욕심이 나서 좋았지마는 그 욕심대로 막상 먹고 나니까 전부가 절단나 버리고 말았어.

사욕으로 인해서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사욕으로 인해서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이렇게 절망은 뭘로 절망 절망이 됩니까? 앞으로 자꾸, 뭐이 자꾸 와서 도와 주고 희망이 있어야 될 것인데 절망은 뭘로 절망이 됩니까? 절망은 우상으로 절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그걸로만 될 터인데 하나님은 바라보고 의지하려 안하고 이 피조물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 빼빼 마른 저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니까 제가 희망이 있을 게 뭐입니까? 올 게 뭐 있습니까? 피조물을 바라보고 저를 바라보니까 거기서 뭐 나올 겁니까? 빼빼 말랐는데, 모두 다 우상 섬기는 것으로써 모든 면에 다 절망이 돼 버리고 만다 그거요. 절단나는 것은 뭐이 절단나는 것입니까? 자꾸 이거 망해지고 자꾸 적어지고 없어지는 것은 뭐 때문입니까? 없어지는 것은 그거 뭐 때문에? 제 맘대로 제 주관대로 해서 없어진다 말이오. 제 주관대로. 제, 우리 주관이라 하는 건 자꾸 죽이는 것이고 자꾸 망치는 것이고 자꾸 없애는 것이고 자꾸 절단내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제가 들어서 자꾸 없애고 제가 들어서 망치고 자꾸 절단나는 것이라.그러니까 요것을 여러분들이 다 가르치지는 못할 터이니까 고것을 간추려서.

첫째는,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분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 하나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 하나님은 모든 것의 원인이라.

그분으로 말마암아 모든 것이 존재해졌고 지금 보존되는 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파괴도 절단나는 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절단나고 또 움직이는 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들이 딱 고정돼 가지고서 그만 죽어 버리고 송장이 돼 버리고 썩어지는 것도 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되어지고 모든 내게 좋은 접촉 나쁜 접촉 내게 접촉되는 그 모든 것이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된다 그거요. 이분 한 분인 걸 알아야 돼요. 알아야 되는데, 이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 이것을 자. 물질로 살고 일로 살고 몸으로 살고 마음으로 살고 영으로 살고, 사는 것인데 이 모두가 다 전부 이 마귀란 놈이 들어서 막 망치는 일 한다 말이오. 전부가 망하기는 그것이 가난으로 망하고 절망으로 망하고 이 모든 없어지는 것으로 다 망하고 만다 말이오.

이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해결하는 데는 뭐 해결되야 되느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사람들이 사욕이 변해서 성신의 소욕으로 바꿔져야 되겠다 그말이오. 사욕으로 망하니까, 사욕으로 가난해지니까. 사욕으로 가난해지니까 이 가난해지는 사욕을 바꾸어서 성령의 소욕으로 바꾸어져야 되겠다 그거요. 우상 섬기는 이것으로써 절망이 되어지니까 이제 대주재인 이분 한 분만을 믿고 바라보도록 만들어져야 되겠다 그거요. 자기 주관으로 살고 있는 이것을 바꾸어서 이 대주재에게 피동되도록 만들어져야 되겠다 말이오. 이걸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사람 입고 올 수밖에 없다 그거야. 사람 입고 오셔 가지고서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줘야 되지 그리 아니면 안 되겠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도성 인신하셔 가지고서 신인 양성 일위로서 우리 대형하기 위해서 대행하기 위해서 대화친을 해서 인간을 대신할라고 하니까 사람이 되어 오셔야 되고 사람으로만 오면은 하나밖에는 대신 못 하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을 대신 할라고 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전능 전지 완전 무한의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서 신인 양성 일위가 돼야 되겠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사실을 여러분들 반사들은 알아야 되고 그 아는 것이 그냥 이렇게 자꾸 껍데기로 이렇게 가르치고 이래 가지고서 안 돼. 그리기에 내가 그 전에도 많이 말했지마는 명상 많은 사람, 눈감고 가만히 생각 많은 사람이 나중에 가서 하늘나라 가 보니까 봉사를 제일 많이 했고 구원을 제일 많이, 많이 이루었고 제일 자유하고 범위가 넓었다 이랬습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가, 마귀란 놈은그러기 때문에, 내 마음을 하나님에게 두라고 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못 두도록 자꾸 이랍니다. 기도하면 기도하는 가운데도 ‘이게 필요하다’ 내나 그날 그 예배 보러 온 사람이 하나님께 향할라고 하니까 ‘야, 지금 저 무슨 일 있다.’ 어떤 부흥사가 말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사람이 은혜받는 줄 알고, 이래 눈감고 있기 때문에 은혜받는 줄 알고 있었다 말이오. 있다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워어’ 하더라고서 워어 하는 것은 닭후치는 소리라. 시골에 가 보면 이거 나락을 널어 놓고 지금 닭 보는데 닭이 못 오도록 자꾸 ‘휘이’ 하는데 이제 이래 가지고 있다가 눈감고 듣는 줄 알았더니마는 ‘후우’ 하더라고서, 그 닭 후치고 있어, 지금. 마음이 거기 가서 말이지. 또 눈물을 쭐쭐 흘리고 있기 때문에 아마 은혜 받았는갑다 싶어 그라니까 뭐 저거 뭐 손자가 죽었다더나 아들 죽었다더나 지금 그 아들 죽은 그거, 손자인가 죽은 거 그거 생각하고 지금 그래 그 부흥사 앞에 지금, 사경회 참여하러 와 가지고서 그래 눈물 흘렸어.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 진리에 두지 못하도록 자꾸 옮깁니다.

자꾸 옮기요.

이러기 때문에, 기도하면 이놈이 필요한 거로 옮긴다 말이오. 기도하면 필요한 게 떡 나오니까 ‘아, 내가 기도하니까 평소에는 몰랐던 것을 이렇게 가르쳐 주시니까 기도하니까 이런 걸 가르쳐 줬는가 보다.’ 성신의 감화인 줄 알고 제게 복인 줄 알지마는 기도 못 하도록 딴데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라 말이오. 시선을 돌리는 거라. 방향을 돌려 버리는 거라. 이러니까, 고걸 깨달은 사람은 기도할 때 이래 하면, 어떤 사람은 기도하다가 처음에 기도하다 안되니까 ‘휫’ 이라고 또 뭐 `휫휫' 또 이래 하는 사람. 그 쫓아내는 방법을 휫휫 하는 뭣 쉿쉿 이래 하고 그래 가지고 이놈 못 들어오게 쉿쉿 이래 또 어떤 사람은 그 소리하면 옆에서 들을 때는 머리를 가지고 이라며 또 뭐이 들어올라 하면 또 이라고 이라고 이래 가지고도 해서 어짜든지 우리 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야 돼요. 마귀란 놈이 딴걸 향하게 해요. 딴것만 향하면 죽어요.

그러니까, 이제 주님만 향하고, 주님이라면은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라, 주님만 향하고 영감만 향하고 진리만 향하고, 요 셋을 자꾸 향하면 우리 사람이 자체가 변화가 돼. 자체가 변화돼 정신 변화되지 생각 변화되지 마음이 변화되지 그러니까 나중에 행동이 변화되지, 그러니까 모든 사물들이 내게 대하기를, 변화가 된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이 사람이 막 성을 내 가지고 대하면 백지 그 사람하고 상관도 없는데 성을 내 가지고 대하면 그 사람이 있다가 그 사람도 그 불쾌하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도 좋은 안면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웃는 얼굴 밉상 없고 성낸 얼굴 곱상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 상대방이 그렇게 본다 말이오. 내 자체가 변하니까 그 관계되는 모든 것이 다 변화가 돼지지 내 자체가 악화되니까 모든 것이 다 악화되고 만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제, 갓난 아기가 젖을 사모하는 거와같이 너희들이 하나님의 도의 젖을 사모하라, 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샛별이, 새벽별, 새벽별이라 하는 거는 내나 작년에 해석하지 안했습니까? 새벽별. 새벽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이 도를 사모하는 것이 옳다. 그러면 새벽별은 뭐이냐 하면 새벽별 뜨고 나면 뭐 옵니까? 새벽별 뜨고 나면 뭐 오지요? ‘태양이 온다 그말이오.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이제 샛별인데 샛별은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 말씀을 자꾸 사모하면은 성령의 감화가 네 속에 떠오르고성령의 감화가 오면은 주님 만나게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우리가 사모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공과 가르치는 그걸 공과를 이거 퍼뜩 가르쳐 버리고 고만 잊어 버려. 던져 버리고 일 주일 내내 딴거만 생각하니까 마귀만 들어와 가지고 가뜩 찼는데 거기 이 진리가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이거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어짜든지 하나님 말씀을 새김질 많이 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기도해야 된다는 건 자꾸 그것을 말하는 것이고 자꾸 기도해서 인제 기도할라 하면 눈감고 기도할라 하면 시간이 없어. 이러니까 또 인제 가만히 앉아 기도할라 하면 또 시간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눈을 감으나 뜨나 일을 하면서도 기도하고 길을 가면서도 기도하고 누구하고 얘기하면서도 기도하고 기도하는데 뭐이 하나 하면은 이제 신인 양성 일위이신 주님을 고만 사모해. 주님 사모하면 거기서 사죄 칭의 화친은 자연히 사모하게 되고 그러면 승리하게 돼.

그러니까, 어제 아침인가 언제 아침인가 말했지요. 우리가 일을 암만 해도, 아주 실력있는 남편이요 실력있는 당당한 남편은 아내가 아주 돈을 벌어 가지고 오고 오늘은 춤 추는 거 해 가지고 돈을 벌어왔습니다. 오늘은 지금 다방에 가 가지고서 심부름 해 가지고 돈을 벌어 가지고 왔습니다. 오늘은 상점에 가서 돈 벌어 가지고 왔습니다. 이래도 그 실력 있는 남편은 싫어 합니다. ‘네가 상점에서 돈 벌라고 했으면 다른 사람에게 이런 아부 저런 아부 이런 간교 저런 간교 다 해 가지고서 나 좋아할 거 전부 거게 다 주어 버리고 난 다음에 이제 돈하고 바꿔 가지고 왔구나 싫다.’ 돈 집어 던진다 말이오. 돈 가져 오는 걸 집어 던질 거라 말이오. 집어 던지고 ‘꼼짝 말고 집에서 이제 나만 바라보고 나오도록만 지키고 뭐 어떻게 할까 고렇게만 하라 그라면 내가 죽도록 돈 벌어 가지고 올께’ 그게 남자 아니겠소? 실력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 그런데 주님은 어떻겠냐 말이오. 주님은.

이러니까, 우리가 전도 심방 암만 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주님 잊어 버리고 하는 거 싫어합니다. 주님 사모하고 주님을 갈급하고 이렇게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성미가 뭐이며 그분의 소원이 뭐인가? 그분 비위 맞출라고 애 쓰는 그것을 당신이 제일 소원하고 계신다 그거요.

사람도 그래요. 저희 집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래요. 식사하는 사람도 뭘 아무리 마련해 놔도 아무리 음식을 잘해 놓았다 해도, 사람은 영물이라 알아. 잘해 놓았다 해도 정성이 안 들었으면 보기 싫어. 정성이 안 들었으면 보기가 싫어. 먹기 싫다 말이오. 그러고 내나 딴 일 이런 마음은 딴데 둬 가지고 이리 이리 하다가서 근방에 오니까 뭘 똑 저 음식 집에서 척 그래 주듯이 그리 돼지면 그것은 이거는 소용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그때 서부교회에 부임하고 난 다음에 이제 부임시켜 준 데는 ○○ 교파에 제일 대가리 일곱 목사가 합해 가지고 부임을 시켰다 그거요. 그래 내가 여기 못 올 건데 그때 왔다 말이오. 일곱 목사가 연명 날인해 가지고 ○○○ 목사님이 ○○ 교파에 이거 아닙니까? 그분이 두 번이나 올라왔다 말이오. 나 때문에, 안 올라고, 내가 안 올라고 하니까 그래 인제 그라니까 그래도 대접을 하자 하면서, 그라면 다른 데 같으면 뭐 환영식하고 이라는데 내가 환영식을 내가 못 하게 이라니까, 인제 이 집사님들이 말하기를 그래도 수고한 목사님들이 있으니까 한번 대접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뭐 그거는 하라 이랬다 말이오. 이랬는데 그래 그 다 와서 음식을 차려놓고 이래 먹는데 다른 이는 다 아무 말도 안 하고 ○○○ 목사님은 있다가 턱 거석하며 ‘이거 돈뿐이로구만, 돈뿐이로구만.’ 이래. ‘무슨 말씀이오?' 이라니까 `정성은 하나도 없구만.

돈뿐이지. 전부 사 가지고 왔네.’ 그때 요리 집에다 맞춰 가지고 사 가지고 왔다 말이오. 이러니까 고만 그거 그 잘 안 자시요. ‘돈뿐이로구만. 정성은 하나도 없고.’ 그런데, 자기네들이 못 해도 이 우리 목사님들을 초대하니까 우리 교역자 보내 주신 목사님들을 감사해 초대하는 것이니까 하고서 이 손으로 이거, 못 해도 꼼짝거리고 정성 든 그걸 원한다 그말이오.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인격이 있어갈수록이 더 그렇습니다. 사람은 인격이 있어갈수록이 그러기 때문에 영사언즉 불원진부귀라,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진나라 녹은 먹지 않겠다.

봉비천연에 기불탁속이라, 봉이 천연에 날라 가지고서 굶어 죽을 지라도 곡식도 먹지 않는다. 절개가 있고 정조가 있다 그말이오.

이런데 이 사람이, 사람도 좀 잘난 사람이면 그이가 아무리 못나도, 아무리 못 나도 그게, 천치 바보라 등신노릇하고 죄를 저질러도 성심 성의를 다 내게 기울이고 나만 바라보고 내가 죽으라고 해도, 죽으라고 독약을 줘도 의례히 좋은 줄 알고 이 독약 있으니까 이거 먹어라 하면 벌컥 입에 떡 둘러 마실라고 달라드는 이럴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인격 있는 사람은 책임 안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책임을 집니다. 그 이상 다른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책임을 지고 그에게 힘두고는 두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사모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이렇게, 그저 그분을 비위에 맞추고 그분의 뜻을 알라고 이라는 이것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 말이오.

주님은 전부의 전부 전부의 전부, 전부라. 이런데 인간이 자기. 하나님이 이거 욕심 내라 하니까 하지 안하고서 제 사욕으로 제 주관대로 제 사욕을 취해 가니까 사욕은 자살입니다. 사욕은 자살이요. 또 주님 외에 저나 딴것을 바라보는 요게 우상 섬기는 것인데 그것도 다 망하는 행동이라 그말이오. 자기가 이렇게, 사욕을 행해도 그렇고 자기가 어만 우상을 섬겨도 그렇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 자기 주관대로 하는 것은 그것은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주관이 들어서 소멸시키고 우상이 들어서 절망을 시키고 사욕이 들어서 아주 쩔쩔 가난한 자를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부 제가 들어서 다 사망해. 그러니까 여게서 돌아서라 그말이오. 여게서 돌아서서 이제 이것을 돌리기 위해서 오셔서 예수님이 돌려 놨으니까, 이 방향을 확 돌려 놨으니까, 돌려 놨으니 이제 돌려 놓은 대로 요대로만 살면 된다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도 전도 갈 때에, 심방 갈 때에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과 동행을 하십시오. 이 셋을 가야 그 사람의 심리를 움직여서 돼지지, 그거 마음은 마귀란 놈이 볼끈 붙잡고 있는데 껍데기 가지고 오늘 나온나 나오이라 이거 가지고 뭐 되겠습니까? 이제 그 속에 마귀를 쫓아낼 것이 주님의 피요 쫓아낼 것이 성령이요 쫓아낼 것이 진리입니다. 이러니까 진리와 동행해 가지고 주여 이제 이 속에 악령 악성 악습이 주관하고 있는데 이걸 뭘로 쫓아내고 하겠습니까? 주님의 피라야 됩니다. 피의 공로라야 됩니다. 성령님이라야 됩니다. 진리라야 됩니다.

나와 동행해 주옵소서. 그래 이제 말은 안 해도 이 세 가지 능력으로 내가 전해.

믿음으로 내가 전해. 세 가지 능력이 나와 같이 한다는 능력 전하면은 세 가지 능력이 가 가지고서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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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 구하고, 믿고, 사람되어야/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61016목새 선지자 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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