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탄생


선지자선교회 1983년 12월 28일 수야

 

본문 : 눅 2 : 1-14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녜 이것이 다음 공과인데 조금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이 탄생에 대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을 입고 오시기 전에는  그리스도라, 말씀이라 그렇게 이름했으나 이제 사람을 입고 오고 난 다음에는  이름을 예수라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는 신성과 인성의 양성 일위를 가지실  때부터 예수님이라는 그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전 이분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요, 또 홀로 계신  분이시요,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또 모든 것을  예정하신 분이시요, 지금도 모든 것의 주인이요, 또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모든 것을 홀로 주권적으로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섭리하시는 지극히  크시고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무슨 이종교의 종교의 그 교주와  같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이종교의 교주는 이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는 다  이분이 지으신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는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전에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늘 생각하고 많이 명상해야 됩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전지하신 분이시다. 하늘도 별도 저 넓은 바다도 이 우주도 공중도 온  세계도 이 주님이, 다 지으신 분이라, 지금도 크고 작은 것을 홀로 관리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사람이 아니고는 사람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형벌을  대신하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책임진 인생의 의무를  대신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고,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대신 원수의  그 학대를 받으시고 해결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이 주님이 이렇게 가지신 모든 것을 다 내가 잘못된 죄의 값을 내시느라고  형으로 형벌을 받는 데에 다 제공하셨고, 또 내가 행할 것을 대신 행하시는 데에  다 제공하셨고, 내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해결하고 화친해야 될 터인데 우리는  화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희생해 가지고서 화친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있는 세 가지 멸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세 가지 멸망은 어떤 것이 세 가지 멸망인가? 하나는 고난입니다. 고난은  고난의 그 마지막이 영원한 사망입니다.고난이 멸망 중 하나요. 또 하나는  소망이 끊어진 영원한 절망이 하나의 멸망입니다. 절망, 희망이 없는 것.

사람들은 죽음만 큰 걸로 알고 있지마는 절망은 죽음보다 더 아픈 것입니다.

절망을 못 견뎌서 사람들은 죽음을 취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가난입니다.

지금은 모두 다 부요해 있기 때문에 가난이란 것을 그렇게 잘 실감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홍포입은 부자가 불꽃 가운데에 있으면서 견디지를 못해서 물 한  방울을 요구했지마는 서도 물 한 방울의 부요도 없습니다. 물 한 방울도 자기는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물 한 방울도 소유할 수 없는 그런 궁핍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하나는 고난이요 하나는 절망이요 하나는 가난이요. 이 세 가지  고난을 말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제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것으로 다입니다.

고난 또 절망 가난, 이 세 가지가 지옥의 영원한 것입니다. 지옥에는 이 세  가지고통입니다.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 고난, 아무런 소망이 전혀  없는 것. 소망이 전혀 없는 것 절망,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털끝 만한 것도  없는 가난, 이 세 가지가 인생의 멸망입니다.

 또, 그러면 인생은 무엇으로 살고 있느냐? 인생은 다섯 가지로 살고 있습니다.

다섯 가지. 제일 외부는 물질입니다. 물질로 살고 있습니다. 금생도 물질로 살고  있고, 내세도 물질로 살고 있습니다. 제일 겉은 물질로 사는 것, 또 그 다음에는  일로 사는 것. 일, 일은 자기의 활동입니다. 활동으로 사는 것. 그 안에는  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육으로, 몸으로 삽니다. 그 안에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 안에는 영으로 삽니다. 다섯 가지로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고난도, 이 금생 고난 내세 고난, 금생 고난 고생과 내세 고난, 또 하나는 금생  절망과 내세 절망, 또 금생 가난과 영원 내세 가난, 이 세 가지가 인생의  멸망입니다. 세 가지 멸망인데 사람은 이 세 가지 멸망을 몇 가지고 받느냐?  다섯 가지로 받습니다. 하나는 물질로 받습니다.-여러분들이 잘 안 들으면 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이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모르나 자꾸 애를 쓰면은 알  수 있을 것이요. 껍데기이기 때문에 모릅니다. 이 반사 선생님들은 단단히  기도하고 자꾸 새김질을 많이 하면 여러분들이 알게 될 것이고 알게 되면  여러분들에게 큰 능력이 될 것입니다.-이고난, 금생에도 이 다섯 가지가 고난을  받을 수도 있고 이 다섯 가지가 행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고난. 물질 고난,  물질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 있습니다. 물질이 없어서 고난 되는 것도 있고  물질이 있어서 고난 되는 것도 있고, 물질로 인한 고난입니다. 물질로 인한  고난, 물질 고난 물질 평안, 금생의 물질 고난 내세 물질고난, 금생의 물질 평안  내세의 물질 평안. 단단히 기억하십시요.

 또 그 다음에는 사건입니다. 사건. 금생의 사건 고난.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고난스럽습니다. 그러면 돈이 암만 있고 건강이 암만 있고 자기에게 뭐  그런 게 있어도 그 사건으로 인한 고난으로서 그 사람이 편틀 못하게 됩니다.

사건 고난.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기를 주님이여 오늘 종일 나에게 고난의  사건이 닥치지 않게 해 주옵소서 그 기도합니다. 또 어떤 고난의 사건이 와도 그  사건으로 인해서 범죄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또 그렇게 기도합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좀 사람답게 살아봤으면 그것을 많이 체험했을 것입니다. 일이 고난,  일로 인해서 고난받는 것, 일로 인해서 평안한 것, 일로 인해서 평안하면 그것은  몸이 평안한 것보다도 나을 수 있습니다. 일로 고난과 평안.

 그 다음에는 몸이, 몸의 고난과 평안, 몸의 고난과 평안, 몸의 온갖 뭐  질병이든지 또, 그 몸이 무슨 원치 안하는 그런 처소를 당했다든지 해서 몸으로  당하는 고난. 사람들이 몸으로 당하는 고난이 심할 때에는 몸이 없어지기를  원합니다. 몸으로 당하는 고난이 너무 심해서 그만 그 몸이 없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 것을 체험 못하는 사람은 못했을 것입니다.

 또 마음의 고난 마음의 평안, 마음의 고난, 자기의 이성의 고난 자기의 무슨  욕심의 고난 감정의 고난 모든 자기의 성격의 고난 모든 분개의 고난 양심의  고난, 그 마음의 고난. 마음의 고난도 종류가 심히 많습니다. 마음의 고난.

 그 다음에는 영의 고난입니다. 중생된 영은 그 자체의 고난은 없으나 자기가  가진 소유에 대해서, 심신에 대한 고난과 사물에 대한 고난을 주격 위치에서  느낍니다.

 그러면, 세 가지 멸망 세 가지 구원, 세 가지 멸망을 이 다섯 가지 종류로 받을  수 있고, 세 가지 구원을 다섯 가지 종류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걸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이 다섯 가지고난 중에, 다섯  가지고난 중에 자기는 네가지 고난은 당하고 있으면서 한 가지 행복을 가졌으면  그것 가지고 좋아서 만족을 하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다섯 가지 중에  네가지 고난받고 한 가지가 형통해서 행복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잠시 후면  그 고난이 한 가지 행복에도 다 감염돼 와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다 고난으로  화해지고 맙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의 그 평강만 가지고 그만 그만하면 좋다고 만족하고서  하지마는 물질의 평강에게, 그가 일의 고난이 와도 모르나 그 고난이 오면은  물질 평강이 없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재산을 넉넉히 가지고 있는데 일의  고난이 와 가지고서, 한 사건이 잘못돼 가지고 그만 자기가 도장 하나를 잘못  찍어 줬다든지 보증 하나를 잘못 서줬든지, 일의 고난이 오면 물질을 알뜰히  모아 놓고 평안했는데 일의 고난 그것으로 인해 가지고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삶은 물질의 그 평안이 오니까 그것만하면 만족하다고 이  네가지를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몸만 튼튼하고, 몸만 신체만 튼튼하고  몸에 아무 질병도 없으니까 그 신체적 평강 그거 가지고서 안심하고 만족을  합니다. 그러나 신체적 그 평안은 나중에 어떤 그 심령의 불안이 와 가지고  신체적 평안이라는 그 사람이 당장에 기절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살기를 영으로 삽니다. 영으로 살고 마음으로 살고 몸으로  살고 이 활동하는 모든 일로 삽니다. 일이 잘되면 살이 찝니다. 다른 것이  평안해도 그 일이 잘되면, 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면은 그 사람이 다른  평강이 다 그것이 그만 헐어집니다. 또 다른 것 평안해도 어떤 사람은 물질로  말미암은 고난 그것으로 인해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평안이라 하는 것은 물질 면으로도 평안을 가져야 되고, 모든  그 사건 면으로서도 평강을 가져야 되고, 또 자기 신체 면으로도 평강을 가져야  되고, 마음 면으로도 평강을 가져야 되고, 양면으로도 평강을 가져야 되고, 이  다섯 가지 면으로 평강을 가져야 되고 구원을 받아야 되지, 이 다섯 가지  면으로서 행복을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의 행복이라 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언젠간가 그거는 깨질 때는 다 사망으로 바꾸어지고마는 것입니다.

 마음의 어떤 멸망이 오는가? 마음의 고통의 멸망. 고난의 멸망. 마음이 마음이  고난을 받습니다. 또 마음의 절망의 멸망. 그 마음에 아무것도 소유,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 아무것도 하나님의 은혜나 이런 물질의 아무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에게 소유가 없어. 마음의 이 세 가지 멸망, 몸의 이 세 가지 멸망,  자기 하는 일의 세 가지 멸망, 또 물질의, 물질적으로 세 가지 멸망, 영의 이 세  가지 멸망. 또 이 다섯 가지의 세 가지 구원. 평강, 소망, 부요, 이 세 가지가  그에게 구원이 됩니다.

 그러면, 이 다섯 가지가 우리는 다 평안해야 되지, 다섯 가지가 평안치 않으면  안 됩니다. 다섯 가지가 평안해야 됩니다. 다섯 가지가 평안한 것은, 물질은  물질이 많이 있다고 평안한 것 아닙니다. 물질 면으로 평안해야 됩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물질면으로 평안한 사람 있습니다. 물질을 수십 수백 억을  가져도 물질로서 그 사람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심히 고통을 누리고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기에, 물질의 고난보다는 일의 고난이 더 강합니다. 일의  고난보다는 몸의 고난이 더 아픕니다. 무겁습니다. 몸의 고난보다도 마음의  고난이 더 무겁습니다. 마음의 고난보다는 영의 고난이 더 무겁습니다. 평강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가, 고난받는 종류는 세 가지뿐인데 다섯 가지가 세 가지  멸망과 세 가지 구원이 있는데 그 멸망과 구원이 세상에서 되는 것도 있고  내세에 되는 것도 있고 금생과 내세에 되는 것이 있습니다. 있는데 이  멸망이라는 이 멸망을 사람들의 이 일반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느끼고 자기  이성으로 판단해 가지고서 느끼는 그 멸망은 다 외부적인 멸망입니다. 외부적인  멸망은 사람들이 구원할라고 애를 씁니다. 이 불우의 이웃 돕기를 하라고 하는  그것도 외부적인 그 고난 당하는 것을 도와 줄라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외부적인 그 멸망이라는 멸망, 세 가지 멸망, 하나는 고난이요 하는  절망이요 하나는 가난인데 이 세 가지 멸망이라는 멸망이 외부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지마는, 안 믿는 사람들도 그 사람의 마음의  고난이라든지, 몸의 고난이라든지, 또 자기 일의 고난이라든지, 물질의  고난이라든지 그런 어려운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자기의 힘 있는 대로  도와서 협조를 할라고 그렇게 애를 쓰는 그런 것이 다, 불우의 이웃 돕기라는  것도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요 그것의 원인이 있습니다.

 외부적인 이 멸망의 원인이 있으니까 그 원인을 해결해 주지 안하고 외부적인  그것만 해결을 해 주면 그것은 마치 밑구멍 떨어진 그 동이에 물 갖다 붓는 것  한가지고, 불난 집에 석유불로 석유 붓는 거와 한가지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부적인 구원을 우리가 하는 일도 해야 되겠고, 외부적인  구원의 그 일 그 속에 외부적인 그 멸망의 원인 되는 그것을 찾아서 우리가  해결을 해 주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고난의 원인은 뭐인가? 고난의 원인은, 조물주요 주권 주재자이신  그분의 법칙을 어긴 죄입니다. 그 고난의 원인은 죄입니다. 죄 때문에 고난이  옵니다. 죄를 없애기 전에는 그 사람의 외부적인 고난을 아무리 해결해줘봤자  그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원인이 되는 죄를 인간이 해결해  줘야, 그 죄를 해결해야 되는데 인간이 그 죄를 해결해 줄 자가 없습니다.

 또, 절망, 그 절망의 원인은 뭐인가? 절망의 원인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데에서  그것이 절망된 것, 절망의 원인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립이  된 것이 절망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계속적으로 그  은혜가 흘러 내려오는 그걸 가지고서 매일 매일 살고, 또 영원히 그분으로  말미암아 소망하고 사는 그것이 인간에게 희망이요, 소망이 거기에서 나오고, 또  소망하는 것이 또 현재에서 실상으로 이루어지고, 소망이 실상으로 이루어지고  하는 그것이 전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인데 하나님과 그 관계를 맺어서  하나님을 찾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는 절망된 것을, 무슨 물질로 절망됐다  사건으로 절망이 됐다 몸으로 절망이 됐다 심령의 절망이 됐다 영의 절망이 됐다  무슨 절망된 것을 자기 힘있는 대로 어떤 것이라도 일시일시 면제해서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주지마는 그것은 그 원인을 해결하지 안하면 그 해결해 준 그 모든  소망은 즉시 절망으로 다시 값쳐질 때에 그것을 인간은 해결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망의 원인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없게 된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대항해서 하나님 없는 그것이 인생에게 영원한  절망입니다.

 또 사람에게 가난은 무엇이냐? 사람이 왜 가난해지느냐? 가난한 것을 물질의  가난이다. 무슨 권세의 가난이다. 또 무슨 그 사람에게 무슨 활동적의 가난이다.

무슨 지식의 가난이다. 무슨 어떤 가난을 사람들의 힘으로서 해결해 준다  할지라도 가난의 원인은 뭐이 가난의 원인인가? 조물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조물주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을 통해서 조물주의 것이 계속 물줄기 내려오듯이  인간에게 내려와 가지고서 인간에게는 그것 가지고서 일용 생활을 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것을, 순종이라는 그 수도관과 같은 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한한 것이 사람에게 와 가지고서 사람은 뭐 백으로  천으로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무한들이 다 부요해지는 것인데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이 없고 제 독단으로 제 생각대로 제 욕심대로 제  마음대로, 제가 독립적으로 독립적으로 독행하는 그것이 가난의 원인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해결해 줘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원인을 해결해 주는  데에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신인양성일위로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이분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믿는 사람 되도록 해 가지고서 자기를  대속하신 구주를 그 사람이 자기 구주로 영접했을 때에, 영접했을 때에 고난의  원인인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또 절망의 문제의 원인인 하나님과 절단된 것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또 가난의, 모든 가난의 원인 되는 그 자기 인간 단독이 독립할라는,  독립할라는 그것이 가난의 원인인데 절대자이신 시은의 주, 은혜의 주, 모든  것을 주시는 주 그분이 모든 걸 주시는데 그분과 연결을 가져야 될 터인데  그분에게 피동될 수 있는 그런 것은 사람은 못하는데 예수님의 대행으로 인해서  칭의를 받은 이 칭의를, 그 사람이 칭의의 공로를 입으면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께 순종할 권리가 있고, 하나님은 그를 인도할 책임을 지신 그것이 이제  칭의로 되어진 것입니다.

 이래서 고난을 사죄로 해결을 짓고, 또 절망을 화친으로, 신인 화친으로 해결을  짓고, 모든 가난을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이 칭의로 해결을 지을 때에 그 사람은  완전히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는 이 삼중적으로 구원을 해야 됩니다. 삼  층으로 구원해야 합니다. 일층 구원하고, 그 다음에 일층 위에 이층을 구원하고,  이층 위에 삼층을 구원해서 이래야 인생 구원이 완전히 되는 것인데, 우리가  인생 구원은 대속하신 예수님을 그의 구주로 영접시켜 줘야 된다 이것이 종말  완전 해결은 해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의 대속주를 사람들에게 아무리  전한다고 해도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이 원인인 참 진수를 그들에게, 열쇠,  열쇠를 그들에게 줘 가지고서 해결을 지울려고 주지마는 그들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를 아니합니다. 받아들이지 안하니까,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 사랑을 우리가 보았고 받았고 깨달았으니까,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우리도 그와 같은 절망 가운데 있었고, 참 제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고 아는 절망보다 모르는 절망이 많습니다. 무한한 절망입니다. 무한한  고난입니다. 무한한 궁핍입니다. 그 말을 해야 지금 모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구원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사람이 아주 수십 억을 수백 억을 가지고, 자기는 큰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서 뭐 오늘에서 내일 내일에서 모래 자꾸 이렇게 소망 소망에서, 희망에  희망이 넘쳐 가지고서 그저 연달아서 이 일을 이루겠다고 하고 있지마는 그  사람은 눈이 소경이라서 몰라 그렇습니다. 제가 깊은 절망 속에 있는 것을 몰라  그렇습니다. 그라다가 갑자기 죽음이 닥치면 깜짝 놀라 어디로 갈지 뭣도 모르고  당황하고서 그만 끝을 숨지고마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 한없는 절망 속에  있고 참한 없는 고난 속에 들어 있습니다. 또 한 없는 가난 속에 들어 있습니다.

지옥에는, 지옥에는 죽는 게 지옥 아니요, 지옥에는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 없다 하나님 은혜 필요 없다 한  자들만을, 그러면 하나님 없이 살아라, 하나님의 것 없이 살아라, 하나님의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지옥이요. 하나님이 안계시는 것이 지옥입니다. 이러니까,  거기에서 홍포입은 부자가 불꽃 가운데 있으며 내가 견디지를 못하겠으니까,  물을 한 그릇을 청했습니까 한 말을 청했습니까? 혀끝에 물 한 방울만  적셔달라고 요구했지마는 서도 그 소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지옥의 입문의  궁핍입니다.

 한없는 궁핍 속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모릅니다. 모르고  외부적인 궁핍은 압니다. 밥해 먹을 양식이 떨어졌다. 그 사람이 지금 병이  들어서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다 어려운 사건을 만나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다가 그만 낭파가 돼 버리고 나니까 그 사람이 그만 낙망을  하고, 낙망을 하고 지금 탄식하고 들어앉았다 그런 것은 봅니다. 외부적인  낙망을 보고 외부적인 고난도 보고 외부적인 가난도 봅니다. 이러나 그것의 원인  되는 것도 모릅니다. 그 원인도 모릅니다. 그 고난이 금생 것만 알지 영원 내세  것을 또 모릅니다.

 이러니까, 자 이들은 금생 것밖에 모르지 영원 내세 것을 모르지 멸망의 원인도  모르지 이 영원한 구원도 모르지 구원의 원인도 모르지, 이러니까 이것을  구원하는 데에는 예수님의 그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이 방편을 가지고  우리가 그들을 구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에서 구원하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길,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당신이 친히 사람되어서 대형을 하고 대행을 하고  대원수의 이 쓰라림을 당하지 안해도 될 수 있다고 하면 당신이, 창조주가  사람될 필요도 없고 사람되어서 죽기까지 복종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의  고난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멸망 받은, 제 마음대로 한  것으로 가난해졌고, 하나님을, 하나님의 법칙을 어긴 것으로서 고난 당했고,  하나님을 배반한 것으로 당한 이것으로서 인간이 이 세 가지 멸망을 받고 있는  것이 인간인데 이 세 가지 멸망을 받고 있는 이것을 사람이 모르는데 모르고  멸망 가운데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은 날마다 그래도 산다고, 어짜든지 살아보겠다  어짜든지 살아보겠답니다. 어짜든지 희망을 가지고서 자꾸 희망을 거머쥐고  희망을 또 이 희망을 거머쥐고 희망 거머쥐고 어짜든지 희망이 좋은 줄 알기  때문에 희망을 잡을 라고 애를 쓰고 희망에서 희망을 잡을 라고, 또 거기에서  평강에서 보다 평강을 잡을 라고 좀 풍부를 잡을 라고 이렇게 해서 되는 것같이  일생동안을 노력하지마는 서도 심령이 어둡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가 노력 노력하지마는 서도 시작할 때에는 호호양양한 희망을 가지고서  소망을 가지고서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보다 나는 좀 평안하겠다 보다 좀  풍부하겠다 보다 더 큰 소망에서 살겠다 이랬지마는 마지막에 결론은 완전 고난  완전 절망 완전 가난, 털끝 만한 것도 제 소유는 가질 수 없는 이것으로서 끝을  마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루 하루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게 아니라 그 절망이 점점 심해져서 완전 절망으로, 고난이 점점 더  이루어져서 완전 고난으로, 가난이 점점 이루어져서 완전 가난으로이래 멸망을  완성시키는 것이 인생 살이지 인생이 구원되는 것 아닙니다. 제가 보건 데는  사는 걸로 이래 살지마는 서도 그 심령이 눈을 악령이 어둡게 했기 때문에  날마다 죽는 것이건마는 저는 사는 줄 알고 자꾸 살고 앉았습니다. 이렇게 이  어둡고 비참한 가운데 애쓴 것이 사람들입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에 다른 길이 있으면 하나님이 피조물  되어서 올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길이 있으면 당신이 그렇게 멸망. 천대. 고난.

낮아짐. 가난해짐. 죽음 이것을 취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이렇게 멸망 받는 배후에는 하나님 당신이 세워 놓으신 절대적인  입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법을 당신도 어기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법대로 해결할 라고 하니까 당신이 사람되어 오는 이 길밖에는 없고  고난받는 이길 밖에 없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법이 있는 그로 이 고난과 절망과 가난 가운에 있는 자,  제가 아는 이 세상 것, 제가 모르는 영원 무궁한 내세 것, 이 무한한 것이  있는데 여기서 구출하는 데에는 방법을 딴 것 없습니다. 희생뿐입니다. 방법은  희생뿐입니다. 있는 걸 가지고서 줘서 되고, 형은, 받지 안할 자기가 대신 형을  받고, 대신 형을 받고 대신 행하고 대신 원수의 학대를 받고 이래서 대신 멸망을  받고 대신 행하는 이 두 가지의 희생으로만 구원할 수 있지, 다른 방편으로는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멸망에서 구출됐으니 우리가 이 사랑을 알고 이  멸망가운데에 있는 형제를 우리가 구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지마는 우리가 어떤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는가 아직까지 예수님을 십 년 이십 년 몇십 년을 믿어도 이것을 모르는  사람을 모릅니다. 어떤 고난에서 구원을 받았는가? 어떤 절망에서 구원을  받았는가? 절망도 모르고 구원도 모릅니다. 그저 한 마디 한 마디 순종해 따라  가니까 이루어 나가는 것인데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차차차 연구해서, 금생  고난도 있고 내세 고난도 있고 금생 절망도 있고 내세 절망도 있고 금생 가난도  있고 내세 가난도 있고 금생 평강도 있고 내세 평강도 있고 금생 소망도 있고  내세 소망도 있고 금생 풍부도 있고 내세 풍부도 있으니까 이 양면을 우리가  구원, 우리가 받았으니까 법적으로 받았으니까, 영 외에 육으로는 우리도 받아야  되겠고, 또 형제에게 이것을 줘야 되겠는데 주는 데에는 희생 외에는 방편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을 하는 데에는 우리가 이 삼중적으로 구원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삼중적으로, 자기가 주일 학교 반사로서 만일 학생을 구원해도 이  삼중적으로 구원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또 자기가 어떤 목회자가 돼 가지고서  이제 인생을 구원한다 해도 삼중적으로 구원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평신도가 돼 가지고 구원한다 해도 이 삼중 적으로 구원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하나는 외부 구원, 하나는 그 근원 구원, 근원 구원, 멸망의 근원에서 구원해야  된다 말이요. 외부 구원, 근원 구원, 그 다음에는 이 구원 구원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완전 구원, 이 삼중적인 구원을 해야 되겠는데 우리가 잘못하면 외부  구원 그것도, 뭐 안 받아도 됩니다. 또 근원 구원 그거와 완전 구원만 받으면  되지마는 서도 사람들이 근원 구원과 완전 구원은 모릅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아무리 말을 해도 잘 모르고 또 잘 안 받아들입니다. 이러니까, 부득이 우리가  구원을 시작할 때에는 외부 구원에서 시작해 가지고서, 외부 구원에서 시작하면  그 사람들은 구원인 줄 압니다. 외부 구원에서 시작해 가지고서 근원 구원으로  들어가 근원 구원을 그들에게 전해 줍니다.

 이 외부 구원 받았지마는 서도 이 외부 멸망의 원인인 근원이 있기 때문에 그  근원을 이것을 해결 지워야 된다 하는 근원 구원을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경말씀으로 알려 줘야 되겠습니다. 알려 주고 난 다음에, 이러니까 내가 근원  구원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다 인간은 아무도 할 수 없다. 이러기 때문에  근원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대속하신 이 구세주가 오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형이 있고, 대행이 있고, 대화친이 있어서 대화친으로  영원한 절망이 해결되고, 대형으로서 영원한 고난이 해결되고, 대행으로서  영원한 가난이 해결되는 이 대속주가 있으니까 대속주를 네 주로 믿어 주로  영접해서 믿고, 그의 공로를 힘입어서 해결 받고, 이제는 대속주 그분에게  따라서 동하고 정하면 너에게는 이 세 가지 멸망이 다시는 오지 않는, 이것이  없는 빛과 사랑만 넘치는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천국 시민으로 잠시 후면  옮겨간다 하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줘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오늘 밤에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이 세상은 모릅니다.

자기 멸망할 것도 모르고 그 사람에게 그걸 모르고서 그 사람이 강팍하게 한다고  강팍하다고 원망할 것 없고, 미워할 것 없고, 이 진리를 대적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슨, 괘심하게나 분하게나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왜? 제가 멸망하는  것도 모르고 멸망할 일을 제가 취하는데 저 멸망하는 것도 모르고 취하는 그것은  무지해서 자살하는 것 한가지이니까, 자살하는 사람에 대해서 분개하는 사람이  정신없는 사람이지요. 분개할 수 없는 일이지요. 분개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거슬리는 그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 멸망할  것도 모르고, 몰라서 그런 것이니까 측은히 여기고 안타까워 마음에 아파서  안돼서 우리는 참 그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 거기에 대해서  원망이나 불평이나 괘심하다 무슨 원한이나 품는 다면은 그거는 우리가 그  사람보다도 아주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모르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에는 주님이 나를 구원하신 그 방식과  같이 나도 희생 하나로서만 구원할 수 있지, 다른 것으로는 구원할 수 없다.

희생의 이 방편으로 구원할 수밖에 없는데, 희생의 방편으로 구원하는데에는 그  순서가 있으니 저 내부부터 시작하지 말고 외부부터 시작하라, 외모의 구원에서  그 근원이 그 구원을 그들에게 소개하고 근원의 구원을 그들이 느끼고  필요성으로 느끼고 근원의 구원을 해결을 원하는 그자가 된 갈 급한 자에게  예수를 전해 줘라, 그러면 그 구원이 바로 된다 하는 것을 오늘 저녁에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거 기억합시다. 사람에게는 셋 종류의 멸망이 있습니다. 셋 종류의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또 구원을 받고 있고,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줘야만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구원은, 세 가지 구원과 세 가지 멸망은 금생것도 있고  내세것도 있습니다. 금생 멸망도 세 가지 내세 멸망도 내세 멸망도 세가지,  금생구원도 세 가지 내세 구원도 세 가지 내세 구원도 세 가지. 금생의 구원되면  내세도 구원되고, 금생이 멸망되면 내세도 멸망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멸망이 우리에게 몇 가지 면으로 부딪혀 오느냐? 이 세  가지 멸망이 우리에게 몇 가지 면으로 부딪혀 오느냐? 다섯 가지 면으로 부딪혀  옵니다. 하나는 내가 물질과의 관계되는 거기에 멸망과 구원이 있습니다. 내가  활동하는 이 모든 활동 이것을 가르쳐서 일이라고 말합니다. 내 활동의 구원과  멸망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 몸의 이 구원과 멸망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의 멸망과 구원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 영의 이 멸망과 구원이 관련되어  있는데 영의 것은 벌써 이것이 해결 지워졌기 때문에 없이 구원이 다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깊이 깊이 눈을 감고 명상을 해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이 일에 힘써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늘나라에서 영광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이 권세가 어떻다 지위가 어떻다 이렇게,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지마는 서도 하나님의 그 권능에 그 지혜에, 권능과  지혜에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영광을 안 돌립니다. 하나님이 친히 독생자를  보내서 이 멸망한 자를 구원하신 그것으로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을 하늘나라에 평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어서 다 모르는 것이 없고 가리워진 것이 없고 다 투명체와 같이  환하게 다 알게 되는 그 세계에서, 그 세계에서 인정받고 환영받고 대우받고  칭찬받고 존귀하다 영광이라 하는 그것은 이 세 가지 구원을 예수님께서 이루신  이것을 인생들에게 전해서 이걸 효력 있게 그들이 받은 그 일에 노력한, 이것  위해서 희생한 요 가치만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또 만물이 환영하는 것도  요것만이 환영합니다. 또 모든 피조물이 얻은 평화와 행복은 다만 우리가  희생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전하는 요것으로만, 요 독생자를 하나님이  희생해 시킨 요 독생자 희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요것으로만 그 기쁨을,  '기뻐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평화로다' 고 기뻐함을 입은, 기뻐함을, 하나님의  기쁨은 뭐입니까? 이걸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희생시킨 독생자를,  희생시키므로 구원한 그것이 당신의 기쁨입니다. 당신의 기쁨을 입은 자들  당신의 독생자의 희생을 입은 자들 그 말입니다. 입은 자들에게는 다 평화다  이거 외에는 피조물에게 평화의 길이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짜든지 우리는 연습합시다.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 같이 하는 요것을  연습합시다. 아주 우리는 이 일을, 오늘 아침에도 말했지마는 서도 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위하는 자기 중심 이것이 자꾸 나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늘 입에 달아야 되겠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하라, 이웃을  나보다 낫게 여겨서 무슨 일이 닥치면 나보다 저 사람을 먼저 생각할 것, 저  사람에 대해서 먼저 생각할 것 요것을 연습해서 우리는 자기를 점점 본질과  본성을 변화시켜서 하늘나라의 본질과 본성으로 변화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래  하늘나라에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그 생애가 우리가 이루어지도록 변화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아침에도 말했지마는 보면 자기가 사업을 하면서도 이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지마는 서도 사업하면서도 이  일이 좀 어렵습니다. 이러기에, 지기가 사업을 하되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무슨 자선 기관이나 또 구제사업이나 또 무슨 위로 사업이나 이런 것을 하면서  자기는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서 자기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하는 이 일이 가장 연습되기 좋습니다. 그것보다도 다른 사람을 그 사람을  회개시켜 예수믿어 구원얻구로 하려는, 요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하려는 요  일에는 아무리 독사 같은 자라도 요 일 하다 보면은 자기는 예수님이 희생하신  요 희생의 요 성격의 것으로 자꾸 바꿔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반사 반사끼리 만나면, 반사 반사끼리 만나면 독사 시랭이  강도 같은 그런 반사라도, 살인 강도 같은 그런 반사라도 그 반사가 자기의 맡은  학생을 구원할 라고 학생을 놓고서 구원하라 할 때에는 거기에는 학생을 위해서  희생하는 예수님의 희생 같은 그 희생의 성질로 마음으로 중심으로 화해져서  중심에 자기 희생되는 것을 모르고 그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그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나라의 그 속성 본질 본성으로 세상에 있는 동안에  빨리빨리 연습해서 자꾸 변질 변성을 시키야 되겠는데 그 하는 처소나 그런  방편에는 이런 사업보다도 무슨 그 동정하는 것 선한 사업, 또 선한 일, 또  나눠주는 일, 구제하는 일, 시제 하는 일, 자선하는 일, 또 자기가 무슨 사람을  치료해서 의료 하는 일, 또 자기가 인간을 구원하려는 무슨 전도의 복음의 사업  일하는 그 중에 제일 복음 사업하는 것이 제일 쉽고 가속도로 많이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거기에 얼마 안 가서 자기 먹는 것도 주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먹고, 자는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고, 말하는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고, 자기 위해서는 하나도 하지 못하고 전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으로 전부가 되어지는 그 생애가 얼마안 가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강팍한 것을 연습하고 이기주의를  연습하고 자기 사욕을 연습하고 다른 사람을 희생해서 자기 좋게 하는 자기  중심에서 사람 만나면 다른 사람을 헐고 삣고 자기 높이는 이런 이것을 언제  죽일 것입니까? 언제 이것을 개조할 것입니까? 이것을 빨리빨리 개조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서 그거 다 삣어 깍아 버리고 벗고 가야되기 때문에 우리는  가봤자 빼빼 마른 자로서 이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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