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성 선지자선교회

 

 1980. 1. 8. 화요일 새벽

 

본문: 이사야 261-7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높은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기독교는 이종교와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진화적이 아니고 계시적입니다. 진화적이 아니고 계시적입니다. 진화라 말은 그것이 차차 차차 변화돼 가지고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니까 미리 무엇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차차 차차 시대에 맞춰서 경전을 기록하고, 또 그 종교의 신념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와 달리 완전히 완성되어 있는 것이나 인간들의 그 지능이 어리기 때문에 성장에 따라서 차차 열어보여서 알게 하시는 도입니다. 그런고로 최초의 최종적으로 나타내시고 이루실 일을 예언하시고 또 그 일을 이루시는 도입니다.

 

창세기 315절에 '여인의 후손' 이라고 말씀하신 그 여인은 곧 동정녀 마리아의 그 몸에서 메시야가 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길을 나타내시고 역사 하실 때에 그 방편까지도 가장 외부적인 이 형식을 방편으로 삼아서 나타내셨다가 그 다음에는 문서로 또 문서와 형식으로 계시하시고 계시의 그 완료는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모든 것을 바로 가르치고 인도하셔서 그리스도의 것과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말세에는 성령으로 물 붓듯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 붓듯 부어 준다는 이런 말은 우리 육적이고 신령면을 모르는 우리에게 적합한 표현 방편을 쓰신 것뿐인 것입니다.

 

1절에 '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노래하리라' 그 날이라고 하신 것은 곧 신약 시대를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말일이라고도 말일 말일이라고도 예언을 하셨고, 또 히브리서에 보면 다른 한 날을 정해서 안식일과 같이 하나님의 창조함을 받은 것들이 영원한 생명과 평강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실 때에 그 날에 이 음성을 듣거든 너희들의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고로 '그 날' 이라고 하는 것은 곧 신약 시대를 말하고 '유다 땅에서' 하는 것은 유다 지파 족속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분할된 지역이 있었는데 그 지역을 이렇게 가지고 표시한 것은 하나의 그 근거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 땅이라고 하는 말은 야곱이 그 열 두 아들에게 마지막 축복할 때에 유다에게 이 메시야가 탄생하실 것을 축복으로 예언하셨습니다. 예언했습니다.

 

그런고로 유다땅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 받을 선택자, 예수님에게 속한 자들을 가리켜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창조 이후로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을 사람들은 다 예정되어 있는데 이는 창세 전에 벌써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 전이라 말은 이 시공 세계, 이 물질 세계나 영계나 이것을 창조한 그 창조를 말씀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예정적 순서에서 창조하는 그 창조 전, 하나님의 목적을 가리켜서 선택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정통에서도 창조 이후 선택, 이전 선택으로 선택설 후택설이 이렇게 각각 주장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택설이라야 맞지 후택설은 모순됨이 많고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학자들이 변증을 해도 그 변증이 전체면을 보지 못하고 했기 때문에 그 변증은 서로 갑론을박을 했지만 후택설은 성경에 변증할 그 길이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이 노래를 부르리라 이 말은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기 견고한 성읍이 있다고 표시한 이 견고는 시간과 공간 어떤 존재의 해를 받지 않는 이런 것을 모두 방비할 그런 것이 해할 수 없는 그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을 표시해서 '견고한' 말한 것입니다.

 

'성읍이 있음이여' 성읍이라고 이렇게 표현한 것은 하나의 표현 방법으로 이 모형을 쓴 것입니다. 성이라는 것은 외적이 해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외적은 침략하지 못하고 이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외적을 용이하게 격파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을 가진 것을 가리켜서 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이라고 하는 것은 적이 있다는 그 적을 전제로 하고, 또 보호라는 그 보호를 두고서 있는 것이 성인 것입니다. 안에는 보호가 있고 외부적으로는 방어가 있는 것을 성으로 이렇게 삼기 때문에 이것을 모형해서 외적으로는 영원 무궁의 시간을 시간이 흘러도 해할 수 없는 것과 또 물질계, 영계, 또 그 안에 있는 이런 지역 저런 공간, 어떤 것도 해할 수 없는 또 수 많은 종류들, 신이나 어떤 다른 신이나 또 어떤 영물이나 어떤 인간이나 어떤 무생물이나 자연체, 영체, 물체 어떤 것의 해도 행할수 해할 수 없는 완전한 방위가 되어 있는 그런 것을 표시해서 성이라.

 

또 내적으로는 창조주가 이 성안에 계셔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그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시는 이 내적 보호를 표시해서 견고한 성읍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그런데 그 성읍이 무엇이냐?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여호와라 말은 구약에서는 썼지만 신약에서는 쓰지 않습니다. 아니하는 것은 여호와가 변해 그런 것이 아니고 이제 우주에 둬도 천하에 둬도 둘 만한 곳이 없을 만큼 복잡한 무한한 이 생명의 도이기 때문에 간단 명료하게 표현해서 진실함을 가지면 영감으로 자기에게 사명적으로나 본분적으로나 자기 구원적으로 필요한 도리를 다 알 수 있기 때문에 66권으로 끝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라는 이 이름을 신약에 안 쓴다고 해서 안 나타낸다고 해서 달리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호와는 영원히 여호와십니다. 여호와라는 뜻은 창조주 하나님이 계약을 나타내시고 그 계약대로 이행하심이 영원하다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이제 인간에게 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선포해 놓으신 이대로 하나님이 이 계약에 선포해 놓으신 대로 구원하시는 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셨다. 이제 성에 대해서 간단하게 위에서 증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이대로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시는 이것 때문에 노래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선포해 놓으신 이 규범 안에서 이 범위 안에서 구원의 성곽을 삼으시기 때문에 곽이라는 것은 윤곽을 말하고 그 성은 내부까지를 다 포함한 것입니다. 성곽을 삼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이 방편, 이 범위, 이 요소, 방편, 범위, 요소 이것으로 된 이 구원만이 모든 외적을 막을 수 있고, 또 내부의 수호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는 이것을 절대 제한 시켜서 말씀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밖에서는 안 늙고 안 쇠하고 안 낡아지고 더러워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 안에서만 썩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것이 이 안에만 있고 어떤 종류가 어떻게 부딪히든지 결과적으로 그만 해가 되고 여기에는 그 해를 받지 아니하고 유익만 되어지는 결과를 이루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악한 것이 만지지도 못하고 해하지도 못한다는 그 말씀이 별 말씀이 아니라 성경을 전면적으로 안다면 그것은 필연적 해석이 나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서 시비할 이유가 없소. 중생된 영이 이것은 실질적이 아니고 하나의 비유적이다. 말하는 것은 너무도 옛날 깨달음입니다. 옛날 깨달음 하나님께서 시대 시대마다 당신의 무한하심을 그 시대에 따라서 계시해 주시는 그 계시를 우리가 따르지 아니하면 그 시대를 감당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요 외에는 구원이 없는 것, 자기의 은신처가 요 외에는 자기의 은신처도 없고 자기 안정처도 없고 자기의 영주처도 없는 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이는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동양 있어도 상관없고 서양 있어도 상관없고 시골에 있어도 상관없고 또 인간이 꺼풀 입혀 놓은 것 건강 병신, 유식, 무식 상관없이 하나님이 여호와가 주시는 구원, 여호와가 주시는 요 구원으로된 요 성, 요 성은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요 성은 고 들어갈 수 있는 방편만 있으면 들어갑니다. 다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두시지 않는데 역부로 공산주의 안으로 기어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있는 지역에 공산주의가 온다면 하나님이 섭리로 다 옮길 때에는 역부로 거기 있을 필요 없지만, 피할 필요 없습니다.

 

? 그 가운데서도 이 성은 제한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은 이 성은 공산주의가 해하지 못하고 가까이 오지 못하는 성입니다. 그들이 손 양원 목사님을 총으로 그렇게 살해했지만 결단코 공산주의의 그 무기는 손 목사님의 구원을 추호도 해하지 못했고, 그 구원을 가장 영광스럽게 결과를 맺게 한 것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호와의 구원으로 성곽을 삼은 이 성, 이 성을 자기의 피난처로 은신처로 영주처로 안락처로 자기의 살 곳으로 이렇게 삼는 이것이 신앙인데 이것이 일조일석에 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을 만드시느라고 우리에게 이런 현실, 저런 현실로 교체해서 이 성을 자기의 영주처로 피난처로 삼느냐 다른 어떤 것으로 이것을 대신해서 그것이냐 이것이냐 하는 것은 자기의 현실 생활에서 다 결정지고 또 삼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공산 침략으로 아주 위험이 접근되어 있는 여기라고 적화의 위험성이 있으니 어떤 강대국으로 피난가자 하는 그 사람은 이 구원을 부인하고 간 것입니다. 자기가 거기에 가서 어떻게 할지라도 발람이 걸어간 그 걸음과 같은 걸음이기 때문에 다시 와야 합니다.

 

그 외에는, 그 외에는 사유하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는 입술로 이 구원성을 외칠지라도 그는 가증 스런 것이요. 이중의 말이요. 믿음의 말은 아닙니다. 그 말에는 하나님께서 고 말에는 같이 하시지 않습니다. 자기가 인정치 아니하는 말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도 그건 거짓말이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니라 자기로서는 거짓말입니다.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문들을 열라' 문은 이것은 여호와의 이 구원에는 이 문이 닫혔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문은 예수님의 대속으로써 열려진 것입니다. 다른 데로 넘어오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 문으로 들어 오는 자라야 양이요. 또 들어가고 나오면서 꼴을 얻는다. '나는 양의 우리의 문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아니하고 이땅 위에 인간을 구원한다는 그 모든 것은 다 인간을 죽이고 삼키는 역사지 이 외에는 없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이 문들을 열고 들어가라 문은 이는 열 수 있는 것은 또 성경에 말하기를 '내가 천국 열쇠를 주노니 네가 매면 매이고 풀면 풀린다.' 해결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 천국 열쇠는 곧 영감을 가리켜서 말씀하시는 것인데 이 영감은 택함을 입고 중생을 입어 사죄, 칭의, 순서 다음에 중생을 입어 예수 믿는 신앙 행위를 시발해서 주님이 주시는 여호와의 구원, 여호와의 말씀,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조건대로 자기의 생활, 자기의 소유, 자기 자제를 자기대로 자기 정도대로 정비, 정돈, 정리가 될 때에 된 것만치 그 사람은 진실의 양을 가진 사람입니다. 진실의 양을 가진 것만치 그는 영감됐다는 것입니다.

 

영감이 다 같은 게 아니라 영감도 천층 만층 다릅니다. 어떤 극 세부의 일면만 영감되고 전면 영감 안된 사람 있고 이렇게 영감이 한목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영감이 자기 현실 현실에서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지 않 을 때에 이 영감은 그 면으로 자기와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이 진실이 될 때에 진실이 될 때에 영감에 접했을 때에 예수님의 사죄는 보입니디. 정말 보입니다. 예수님의 사죄가 보이고 예수님의 칭의가 보이요. 예수의 새생명이 보이요. 이거 보이는 사람은 사욕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는 사욕과 자기의 주관은 철두철미한 원수입니다. 이것을 죽이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영감 됐을 때에 이 문들을 열고 문을 열고 들어가고 들어 가고 너희 앞에 열린 문이 있으니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올지어다. 이 나라 안에는 신을 지킵니다. 신을 지킨다는 말은 약속을 전제로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전제로 하고 약속은 기본 약속, 다시 말하면 필연적 약속이 있고 활동적 약속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침해서 자녀를 낳았으면 그것은 활동적 약속입니다. 벌써 자기가 말 안해도 그는 자기가 한 개인으로써 살수 있을 때까지 성장시킬 벌써 계약을 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니하면 위약이요. 부모가 그것을 기르지 아니하면 위약입니다. 기본적 약속이라 말은 피조물이 활동하지 아니하고 맺어진 약속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에 지음받은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이것이 기본 적으로 약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조할 때에 하나님이 목적을 두시고 창조했기 때문에 창조의 목적 곧 하나님을 위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 되어 있는 것이 기본적 약속이요. 또 그의 보호로 되기 때문에 그의 것으로 그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편은 필연적으로 그의 주시는 방편으로 그에게만 피동 되어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는 이 말씀들이 다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계약을 어겨서 이 계약을 어겼으므로 그 어긴 값으로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 계약을 첫째아담이 어긴 것을 둘째아담이 대속해 가지고 다시 이것을 회생시켰습니다. 재생시켰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이 세 가지 계약을 받아 가지고 이 계약 어기지 아니하면 안 죽습니다. 이 계약 어기면 또 죽습니다. 영은 이 계약을 어길 수 없는 자로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 결말을 지웠소. 우리 몸이 부활 하고 난 다음에 다시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영은 중생이 됐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자꾸 논의하는 그런 사람들의 심령이 다 발견은 못하지만 자기가 발견하지 않은 것이라고 정죄하고 다른 사람이 발견해 놓은 것도 모른다면 너무 거리가 멉니다.

 

영은 그러나 이 육은 지금 이 계약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으로 받아서 이 계약을 가진 자로 났습니다. 이 계약을 어기지 않으면 우리 심신의 육의 기능은 죽지 않습니다. 이거 어기므로 죽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현실 현실은 이 기능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이 계약을 범하지 않느냐 이 계약을 범하느냐 하는 데서 둘째사망 두 번째 계약을 어기는 일들이 발생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기본적 약속은 하나님과 모든 존재와의 관계고, 이 나무 한 포기도 이것이 하나님과의 기본적 약속이 되어 있고 또 그 다음에 행위적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심어 가꾸는 자의 욕망에 차지 아니하면 베어 없애는 것은 그것은 왜 베어 없애느냐? 그것은 행위적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베이는 것입니다. 어기지 않고는 베이지 않습니다. 행위적 계약은 인인 관계의 모든 약속이 행위적 약속입니다. 이러기에 인인 관계의 약속을 지켜야 신인관계의 기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데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밑에서 인인 약속을 지켜 신인 약속까지 향상하고 신인약속의 기본 약속에서 행위 약속까지 번져 나오는 것이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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