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근원


선지자선교회 1982년 2월 5일 금새

 

 본문 :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어제 아침에 증거한 말씀입니다. 그 위에 1절로 내리보면 우리가 무엇을  소망해야 되는가 하는 우리의 소망을 거기에 기록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은 주님과 따로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비유하면 등불을 켜는데 안에 불은 조그만할지라도 등 외부에 그 불  외부에 등이 크면 그 불은 크게 보입니다. 조그만한 안에 촛불을 켰으면 그  촛불은 자체는 조그만하지마는 그 등을 한아름 되도록 이렇게 종이로 만들든지  유리로 만들면 아주 그 불이 커단하게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것은 불 자체가 그렇게 큰 것 아니고 그 불이 비추어서 그 불을 나타내는  등이 큰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볼 때에 '저게는 한아름되는 그런  -흐미하기는 흐미하지마는 -한아름되는 저 불이 저게 한 개 있다' 그렇게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이, 주님은 한 분이시요 그분만이 빛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빛이  우리를 통하여서 나타날 때에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볼 때에는 하나님과 꼭 같은  그런 자로 봅니다.

 그러면 우리가 빛이 아니고 빛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이것으로서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꼭 이런 것은 이런 것 가지고는,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 가지고는 그대로 다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지마는 비유를  한다면 이와 비슷한 것입니다.

 한아름되는 불이 있다가 그 촛불을 들어낸다면 그만 그등은 새카맣게 됩니다.

또 촛불을 안에다가 세우니까 커다란 불덩어리가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과 같이 되지마는 같이 되는 것이 순전히 주님의, 그 찰나뿐 아니라  모든 면으로. 주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반사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하는 행사는 주님이 하시는 행사요 또 우리는 주님과 제삼자들에게  같이 보여 집니다.

 항상 주님과 우리 사이는 같지를 못해서 주님은 밝은데 우리는 어둡고, 주님은  곧은데 우리는 굽었고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틀린 것이 많이 있지마는 우리 밖에  것이 볼 때에는 주님과 꼭 같이 보여지는 이런 것으로서 영원히 소망을 가지고  또 주님으로 피동됨으로 점점 우리는 커지고 영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곡식 종자가 없으면 아무리 옥토에 오랫동안 머문다 할지라도 종자 없는  것이 자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종자가 있으면 자라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가 모든 준비하는 이 생애는 영원함에 종자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마련된 그것만 무궁세계에 믿음 소망 이 사랑 이 세  가지가 있어서 영원히 또 바라고 바라고, 바라는 것을 순종으로 또 이루고 또  소망하는 것을 또 순종으로 이루고 이 역사는 영원합니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비유컨대 기초적인 구원이요 종자적인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의 씨입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에서 씨를 마련치 아니한 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새로 생겨지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마련한 그것이 영원히  영원히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지는 것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나타냄으로 우리 밖에 것들이 볼 때 우리가 꼭 하나님과 같은 것이지 억만 년  지나고 난 다음에라도 하나님과 끊쳐진다면 우리는 역연 공심판을 받아야 하는  그런 죄인이 그대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아버지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는,  아버지는 하나님만을 가리켜서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이고, 나를 믿으라 말은  하나님과 사람이 일체가 된 이 중보자를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신인양성일위는 억만 년 있다가 변할 게 아니 라 영원  불변의 신인양성일위입니다. 신인양성일위는 영원합니다. 신인양성일위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결합하는 이 결합을 위한 중보자요 그 일위를 인해서 결합이  됐기 때문에 영원히 불변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과 결합이 됨으로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집에는 샘이 없지마는  수도꼭지를 틀면 저 많은 저수지에 있는 물이 우리 집에 다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수도를 놓지 않은 집에는 그 물이 갈 수가 없습니다.

 부엌 같은 우리와 그 저수지와의 그 사이에는 수도관에 연결이 돼야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 연결이 된 것만치 가늘게 연결되면 그 물이  적게 나올 것이고 큰 것이 연결되면 많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과 나와의 그  연결이 가늘고 굵고 크고 약하고 강한 여기에 따라 하나님의 그 충만은 나를  통하여 내 밖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나타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결합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결합은 무엇으로 되는가?  결합은 깨끗으로 되는 건데 깨끗은 무엇으로 되는가? 믿음으로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소망을 무슨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가? 주와 같이 되는 이  소망이 우리 소망입니다. 주님과 같이 되는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오. 주님과  같이 된다 그말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인데 "주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씀하신 것은 주님은 인성을 가진 후에,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다  그거는 인성을 표준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면 어찌 되느냐?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예수님의 형상을 입어서 예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우리가 되어지는 이것이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소망은 하나님이신 주님과 꼭 같이 되는 이것이 우리 소망이요  또 우리의 기쁨은 깨끗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장사하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쉴새없이 그렇게 바쁜데 한  사람은 기뻐서 입이 벙긋거리고 한 사람은 짜증을 냅니다. 짜증내는 사람은  품꾼이니까 돈벌이 하는 것이 자기 돈벌이가 아니니까 소망이 없으니 기쁘지  않는 것이고 그렇게 되지마는 기쁜 것은 돈이 제 돈이 되니까 소망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이래서 소망을 투구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소망을 항상 주의 형상을 온전히 갖추는 이것을 소망으로 해야  됩니다. 물론 이 소망을 위한 소망,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한 아주 부스러기  가루와 같은 그런 소망들은 우리가 많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우리의 소망이  아니고 그 소망은 소망을 이루기 위한 자원으로, 자본으로, 그것의 원료로  가지는 소망입니다.

 그러면 원료 그것은 다 썩을것이요 약한 것들이요 욕된 것들이요, 썩을것이요  약한 것이요 욕된 것이요 혈육의 물질의 것들인데 이것을 가지고, 이거 재료인데  이것을 가지고 강하고 영광스럽고 썩지 않고 신령한 것 이것을 만들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비용적 소망, 또 원료적 소망,  이 큰 소망을 위하여 땅에 있는 그런 모든 '내가 공부를 하겠다.

 내가 또 돈을 벌겠다. 뭐 하겠다.' 이런 저런 모든 소망, 그런 것은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이 소망을 우리가 가지는 것이어야 되지 이 소망을 위한  소망이 아닌 소망은 우리가 가지면 안 됩니다.

 우리가 가질 소망은 하나뿐입니다. 요 소망을 위해서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한  이런 것 저런 것을 재료로 비용으로 원료로 이렇게 가지기 위해서 소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료라면 우리가 빛이 되는 원료, 하나님이 되는 그 원료된다 말이 아니고  하나님은 생명과 빛이신데 이 생명과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등을 키운다  말입니다. 등이 조그만하면 불덩어리가 조그만할 것이고 등을 차차차 크게  만들면 불덩어리가 누가 보면 커단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반사 작용을 할  수 있는 우리가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소망은 주와 같이 되어지는 이 소망을 우리는 언제든지 가지고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한 이런 것 저런 것 가지는 것이라도 그것을 모두 소망하는  것이 어떤 사람은 '내가 공부를 해 가지고 어떻게 하겠다, 또 돈을 벌어 가지고  어떻게 하겠다, 내가 건강한 몸을 이루어 가지고 어떻게 하겠다' 하는 그런 것도  사람들이 소망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이라고 하다 보면 소망이라는 말이 착각도 되고 혼잡도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소망이라는 것보다도 '이 썩을 것을 준비 좀  해야 되겠다. 약한 것을 준비해야 되겠다. 욕된 것을 준비를 해야 되겠다.

혈육의 것을 준비해야 되겠다. 물질의 것을 준비해야 되겠다.'  뭐 하려고? '이것을 구속하려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강한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신령한 것으로, 이것이 있어야 그것을 바꿀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소망에서 그것을 갖춘다' 하고, 참 실은 '땅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는 소망이  없다. 주와 같이 되어지는 요것 하나만 소망이다.' 요렇게 말까지라도 만들어  가지는 것이 그것이 그 단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와 같이 되고자 하는 이 소망을 이루는 자는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같이 자기를 깨끗게 한다" 그러면 자기를 깨끗게 하면 어떻게 하면  깨끗해지는가? 깨끗해지는 것은 그것은 우리에게 깨끗한 그 표준을 신구약  성경에다가 기록해 왔습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은 우리의 구주가 되신 이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그려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이라면 지혜, 지식, 능력, 다 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여덟 가지 속성으로,  열두 가지 속성으로 발표한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기록한 것이 신구약 성경이고, 또 하나님의 그 존재의 역사에  대해서,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그는 시작 시간이 없는 영원 전에 존재하신  분이며 또 영원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라, 영원까지가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라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이요, 또 이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이요, 또 하나님이 이런 분이 이  목적을 두고 어떻게 움직이나, 어떻게 역사하나 그 역사를 기록한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이 성경대로의 자기가 되어지는 것은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이요, 또 성경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와 같은 역사를 하는  것이요, 또 성경 목적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대로 하는 것이라서 이렇게  되면 이것이 주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목적이 같을 때에 목적적으로 연결이 됐고, 또 속성적으로 주님과 같이  됐을 때에 속성적으로 연결이 됐고, 역사적으로 같이 됐을 때에 역사적으로  연결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이 나를 통해서 나타내실 수 있도록  우리가 거기에 피동돼서 그분에게 동화가 돼서 그와 같이 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충만이 피조물들에게 나타날 수 있도록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에 '사람은 요런 사람이 돼야 된다' 하는 그대로 하는  그것이 바로 주님의 모형이 되는 것, 주님의 형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너희들이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우리의 기쁨 이 기쁨은 이런 저런 많은 기쁨들이 일지마는 그 기쁨이 한 가지  기쁨을 인한 준비 기쁨, 그것을 향하는 기쁨, 그 뽀스래기 기쁨, 이런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기쁨은 뭐이냐? 우리 기쁨은 자기가 깨끗해지는 것,  자기를 깨끗게 하는 요것이 취미가 돼야 됩니다.

 우리가 그전에 전도지 박을 때에 제가 제일 처음에 와서 기쁜 소식이라는  전도지를 박았는데 요새는 뭐 기쁜 소식이란 말이 모든 교계나 사회나 지면에 꽉  깔려 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이라는 전도지 박을 때 거기에 '취미를 바꾸라'  하는, 전도하는 그 첫 문구에, 몇절 기록하는 데에 취미를 바꾸라 하는 그런  말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재미를 바꾸어야 합니다. 소망은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이 우리  소망이요 재미는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데에는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라.

자기를 깨끗게 하는, 자기를 깨끗게 하는 요것이 우리의 취미라.

 그러면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이 나타난 요 성경  말씀대로 자기와 자기 행위를 만드는 요것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요것이 자기의 취미가 되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 성경 말씀대로 하나 둘 행해  나가는 것, 요것이 자기에게 취미가 돼야 됩니다. 재미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떨 때는 참 범죄했을 때에도 자기가 돌이키고 난 다음에는 취미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알게 되었고 깨닫게 되었고 또 거기에서  사람이 되어져 버립니다.

 그러기에 '슬픔은 기쁨보다 좋은 것은 얼굴에 슬픔으로 인해서 마음이  좋아진다' 이렇게 말했어. '얼굴에 슬픔을 인해서 마음이 좋아진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 취미가 돼야 된다 말이오. 우리의 재미 우리의 취미는 자기를  깨끗게 하는 이것이 우리 취미가 돼야 되고, 이 깨끗해 뭐 하려고? 천하 사람이  다 거짓말 하는데 자기 혼자 거짓말 안 해 가지고 저만 혼자 손해보는데 뭐  하려고? 주와 같이 되어지는 이 소망으로 인해서 깨끗함을 가지기 때문에  깨끗함을 가질 때에 피곤치 아니하고 기쁩니다. 소망으로 인해서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쁨은 자기를 깨끗게 하는 이 기쁨 요것 하나만을 가져야  되고 소망은 주와 같이 되어지는 요 소망 요것 하나를 가져서, 우리가 주와 같이  되어지는 요 소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것은 내 자신이 깨끗게 되어지는  그것이 나의 취미가 되는지 그게 아닌 다른 무엇으로, 뭐 땅에 있는 그런 것으로  취미가 되어지는지?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아는 것처럼 우리에게 그 기쁨을 찾아 보아서 기쁨을  보아서 내 소망이 무엇인지? 기쁨의 나무는 소망에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주와 같이 되어지는 그것이 소망이 되어 있는지?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고 또 나무를 보아 열매를 아는 그것이 필연한 일인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예수믿는 사람이 믿을 맛이 없습니다. 가치도 없고. 항상  이를 잊지 않아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모든 우주에 만물들에게 우리가 하나님 노릇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노릇 하요.

 그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 이래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말하요. 피조물들에게  대해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 모든 만물은 발등상이라 그렇게 말씀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나 광고합니다.

 우리가 이제 좋은 것을 본받아야 되는데 우리는 기도회를 시작한 것은 다른  데에 아무 말을 듣지 않았고 '아무래도 기도를 해야 된다. 기도에 대해서 위급한  시기를 우리가 당했다.' 이래서 우리가 기도회를 시작해 가지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각처에서, 이번에 모두 시찰하러 갔던 분들이 교회에서 행정하는 모든  제도들 움직이는 모든 동태들 그것을 그대로 주보도 가져오고 거기에 모두  관련된 그런 서류들도 가져 왔는데 보니까 거기에서도 모두 기도에 지금 힘써야  된다는 그런 것을 느껴서 기도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중에도 이 오일예배 드리고 난 다음에는 거의가 다 철야기도들을 모두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데는 수요일날 밤도 철야기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  주일날도 거기 모두 다 밤예배 보니까 밤예배 보고는 가지 않고 모두 철야기도를  하는데, 그러면 어떤 데는 오일예배, 어떤 데는 삼일예배, 어떤 데는 주일날까지  그렇게 철야기도를 하는데 아마 이것 하나님께서 모두 다 시급하니까 기도하라고  이렇게 우리에게 감화를 주신 것 같습니다.

 이래서 우리 교회서도 오일예배 일주일에 하룻밤만 이렇게 철야하는 그런 일을  시작해 보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추우니까 또 추운 데 와서 기도하다가 또  뜨뜻한 데 내려갈 수 있도록 아래층에는 난방 장치가 돼 가지고 있으니까  열두시부터 보일러를 피워 가지고 아주 뜨뜻해서 추운 것이 하나도 없도록  그렇게 아래층을 만들어 가지고, 이층에 와서 기도하다가 가는 분들은 가고,  그래서 신관에는 남반이, 화장실이 그리 따랐기 때문에. 신관은 남반으로  가운데 휘장을 치겠습니다. 치고, 또 이 구관에는 여반이 그렇게 철야를 하도록.

그러면 여반은 이쪽에 화장실이 있으니까 사용할 수 있고 남반은 이쪽에  화장실을 사용할 수가 있고 저 부엌 앞에 있는 측문은 잠글 것이고 그러면 저  정문으로 여반은 출입할 수 있고 남반은 이리 출입할 수 있겠습니다.

 있겠는데 앞으로 할 수 있으면 남반은 이쪽에 요 사이에 철문이 있으니까 그  철문을 열어 놓겠습니다. 열어 놔서 그리 언제든지 자유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그리 출입하고, 화장실도 거기 있고, 그러면 거기에다 뭘로 이래  가루겠습니다. 그러면 남반과 여반이 밤에는 섞이지를 않겠습니다. 이렇게 서로  내왕하고 섞이지 않겠으니까 그렇게 해서 하려고 생각하니까 미리 함부레 오늘밤  예배드리러 올 때는 밤에 여기서 지낼 그런 준비를 해 가지고 왔으면 좋겠다  싶어서 지금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철야하면 오늘 밤에는 은혜있는 교역자들이  많이 오니까 중간 중간 그 철야에 인도를 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이렇게 믿었었습니다. 제가 거창 있을 때에는 밤이면  언제든지, 저녁마다, 매일 밤입니다. 매일 밤 저녁 먹으면 모여 가지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또 설교하고 간증하고 이래서, 그 때는 뭐 딴것 없으니까 지휘하는  꼬쟁이, 꼬쟁이 이것 가지고 이래 박자를 맞춥니다. 맞추면 하루 저녁에 몽둥이  같은 꼬쟁이가 한 두 개씩 피어서 달아납니다. 그러니까 강대상 해 놓으면 얼마  안 가서 또 쪼개지고 피어서 달아나고 그래 막 이래 뚜드려 대며 이랬는데 이  도시에서는 아마 그렇게 하면 안면 방해라고, 인제 우리가 차차 집을 좀 사서  엔간히 되기는 됐는데 그렇게 우리가 좀 기도를 열심히 하면 아마 그런 말들이  날 겁니다. 말들이 나면 하나님께서 또 어떻게 해 줄 겁니다.

 이러니까 오늘 저녁부터 다시 이제 시작을 합시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고, 나중됐다가도 또 시작만 하면 뒤에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경남에 그뭐 불파 또 신비파라고 제일 먼저 욕 얻어먹은 그 파가  거창서 나왔습니다. 거창서 시발됐어. 됐었는데 그만 그 동안에 그만 중단이  됐었습니다.

 오늘 심방하는 대로 하면 그것을 알려서, ○목사님이 이번에 갔다오신 데는  서울에 가서 본 교회들마다 철야기도 할 때는 뭐 팍팍 차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같이 움직여서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지  우리만 냉냉하게 이래 있으면 주님이 섭섭해 하실 터이니까 이렇게 준비해  가지고 이북이 밀고 내려오든지 이북이 그만 교회로 그만 교회화돼 버리든지,  이뭐 지금 싸움은 붙은 것이니까 인제 신앙으로 살든지,  나는 며칠 전에 내가 생각하기를 아무래도 이것 모든 뭐 방송이나 뭐이나 이런  이것 볼 때에, 교계서 뭐 하는 소식을 들을 때에 뭐 종이 쪼가리 날아오는 것도  볼 때에 '인제 안됐다. 이제는 희망이 없다. 이제는 죽을 준비나 해야 되지 뭐  희망이 없다.' 이랬는데 또 거기에 갔다 온 모든 이 소식들을 들어보고 또  소망이 생겨집니다. 인제는 밀고 갈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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