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가치

 

1987. 1. 11. 주일오전

 

본문: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세상에 살도록 하나님이 둬 두시는 목적 곧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목적 소망 이것이 무엇인가? 구원에 이르는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소망이요 또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그는 다 멸망을 향하여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고 또 예정과 창조의 구원을 입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구원을 입은 사람들은 세상에 사는 목적이 불택자들과는 아주 다릅니다. 불택자들은 세상을 저희의 분깃으로 받은 자들이요 내세에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준비시키시는 일도, 간섭하시는 일도, 또 은혜를 베푸시는 것도 아주 판이합니다.

택함을 입고 중생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땅위에 사는 목적과 소망은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구원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나타나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놓은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고, 또 사람으로 사람 생활을 삼십삼 년 동안 하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또 삼 일 만에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심으로 이 구원이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죽고 사심으로 이루어 놓은 구원은 일곱 가지 구원인데 이 구원은 순전히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참하나님이시요 참사람이신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이루시는 데에 배경은 성부와 성령과 진리가 배경되고 협력해서 이 일곱 가지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곱 가지 구원은 완전한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다음의 위치와 권위와 가치와 영광을 가진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이 구원은 이미 주님이 다 완성시켜 놓은 구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구원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고 완성해 놓은 그 구원을 우리가 얻어 가는 것입니다.

혹 사정에 따라서 그때 그때에 발표한 그 발표가 잘못 보면 우리가 구원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은 그런 표현으로 되어 있으나 그것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진리가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완전 구원이며 영원한 구원이며 불변의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의 모든 요소는 인간을 초월하는 초인간적이며 초피조물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이 구원에 털끝만치도 자기 노력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구원에 대해서 항상 성장하는 성질의 말을 썼고, 점점 전진하는 성질의 말을 사용했고, 점점 향상하는, 위를 향하여 올라가는 향상하는 성질의 말을 썼습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은 피조물이 할 수 없는 창조주만이 할 수 있는 구원인데 창조주가 피조물을 붙들고 피조물을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 기관으로 이용당하기는 피조물이 당했지마는 실은 이 구원을 이룬 그 능력과 권위와 가치는 순전히 초피조물인 자존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을 자기의 노력으로 이 구원을 만들어 가는 줄로 그렇게 생각하면 교리가 틀리고 신조가 틀립니다.

사람들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영생을 얻으라” 하는 것은 이렇게 사람의 전부를 기울인 것이 이 구원을 만드는 역사는 아니고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구원을 은혜로 주시는데, 순전히 공으로 주시는데 공으로 주시는 이 구원을 자기가 받는 방편이요 노력인 것입니다. 은혜로 받는 노력이요 방편이지 자기 힘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구원에 도달하는 지혜가 있게 한다. 그러면 이 구원은 이미 되어 있는데 그 구원에 점점 가까이 나아가서 구원에, 비유컨대 백분지 일에 도달했고, 어떤 사람은 백분지 십에 도달했고, 어떤 사람은 백분지 오십에 도달했고, 어떤 사람은 백분의 구십구에 도달했고 어떤 사람은 백분의 백을 다 자기가 도달해 가지고 세상을 뜨는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우리는 논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구원을 점점 이루어 간다 그 말은 구원을 만들어 간다 말이 아니고 구원에 이르러 간다, 구원에 도달하여 간다, 구원을 얻어 가고 있다, 또 이 구원으로 점점 장성하고 부강해 가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건 순전히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 구원을 공으로 받는데 인간의 노력은 전부 공으로 받는 데 받는 노력이요 그 방편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구원은 어떻게 해야 이 구원이 이루어 가며 구원에 도달해 가느냐? 구원을 내가 얻어져 가느냐? 그것은 그 방편이 순전히 믿음뿐입니다. 이 구원으로 차차 부강해 가는 것도 믿음이요, 성장해 가는 것도 믿음이요, 얻어져 가는 것도 믿음이라.

부강해 간다는 것은 제가 만들어 부강해 가는 것이 아니고 얻고 또 얻고 또 얻으니까 부자가 된다. 얻어 가지고 얻어 가지니까 점점 성장해 간다. 구원 자체는 순전히 초피조물의 자존자가 이루신 이 구원인데 인간들은 이 구원을 향하여 지금 얻어져 가고 있고 또 구원에 도달해 가고 있고 이 구원을 얻어 이 구원으로 차차 부요해지고 성장해 간다 하는 것입니다.

또 이 구원을 얻어져 가는, 구원에 도달해 가는 것은 믿음인데 믿음도 그러합니다.

믿음도 그것이 고정성을 가지지 안하고, 또 과거성을 가지지 안하고, 현재와 미래와 과거성을 가져서 계속 믿음도 자라가는 믿음이라, 믿음도 점점 강해져 가는 믿음이라, 또 믿음도 점점 온전해져 가는 믿음이라.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에는 보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데까지의 믿음을 가졌든지 그 믿음이면 다인 줄로 이렇게 여길 것이 아니고 또 그 믿음으로 그 다음 믿음을 또 받아야 되겠고, 그 다음 믿음에 도달해야 되겠고 그 다음 믿음을 또 갖추어 가져야 되기 때문에 이 믿음도 전진적이며 향상적이며 성장적이며 다 취득적인 것으로서 취해서 또 자기 것 삼고 삼아서 이렇게 그런 성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데, 이 구원을 얻게 하는 유일한 방편이 되는 이 믿음은 어데서 이 믿음을 길러갈 수가 있으며 자라갈 수가 있느냐? 믿음이 자란 것만치 구원은 많이 얻고 믿음이 어린 것만치 그 사람에게 구원은 어립니다. 구원이 어리다 말은 그 사람이 적게 만들어 그렇다 말이 아니고 이 구원에서 멀다는 말이요 이 구원을 얻은 것이 극소량의 구원을 얻었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믿음인데 이 믿음은 어떻게 하면 이 믿음이 자라가게 되느냐? 이 믿음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지혜를 받아 가지고 이 지혜로 믿음이 자라간다 이렇게 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데 성경에게 지혜를 받으면 지혜 받은 것만치 믿음이 점점 자라가게 된다. 믿음이 점점 견고하게 된다. 믿음이 점점 향상하고 전진해 간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에 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구원에 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부자된 것만치 구원이 부자됩니다. 그러면 이 구원은 자존자 하나님 한 분 다음 가는 존귀한 것이며 권위 있는 것이며 능력 있는 것이며 가치 있는 것이며 영광과 존귀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이 믿음을 보고 좋아하기 때문에, 이 믿음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무궁세계에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평가받는, 대우받는, 인정받는, 존대받는, 영광받는 것은 그것은 다 이 구원으로 인한 것입니다. 구원이 없으면 그 나라 무궁세계에서 가치도 존대도 환영도 아무것도 없고 이 믿음이 제일이라고 하면은 그 사람은 무궁세계에서 영광도 제일이요, 존귀도 제일이요, 권세도 제일이요, 능력도 제일이요, 모든 존재의 대우도 제일이라 이렇게 이 구원은 존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이 구원이 뭐인가 구원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이 구원을 멸시하고 등한히 합니다. 이 구원의 가치를 아는 것도, 구원의 가치를 아는 지혜를 누가 주는고 하니 성경이 줍니다.

이거 안 들으면 몰라. 들어 깨달아야 돼요. 그냥 와서 졸아 가지고 구원되는 것 아닙니다. 깨닫고 인정하고 행해야 됩니다. 그전에는 구원이 안 돼요, 기본구원은 다 얻었지마는. 그러면 우리가 지금 노력하는 것은 구원의 영광을, 구원의 실력을 소망하는 것이지 뭐 하늘나라 가는 것을 소망하는 것 아닙니다. 그거는 이미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가치를 아는 것도 성경이 가르쳐 주고 또 이 구원에 도달하게 하는 믿음도 성경이 가르쳐서 믿음이 자라고 강하게 합니다. 구원을 가르쳐 주는 것도 성경이요 믿음을 가르쳐 주는 것도 성경이요 구원의 가치가 땅위의 모든 것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모든 것보다 구원을 높이 평가하고 구원을 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유물주의자가 구원이 물질보다 뛰어나게 자기에게 유익된다는 걸 깨달으면 물질을 다 포기하고 이 구원을 잡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이십세기의 문화 건설이라고 하는 온갖 문화 온갖 과학보다 이 구원이 크고 무한히 완전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과학을 이 구원을 위해서 투자하지 과학 위해서 이 구원을 등한히 하거나 버리거나 손해보거나 그런 일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생명도 이 구원만 못하고 구원은 자기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생명을 위하여 구원을 팔지 안하고 구원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이 보화와 진주, 이 보화 진주라 하는 것은 구원을 말한 것인데 이 보화와 진주를 발견하고 깨달은 사람은 자기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 이 구원을 산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구원을 깨달은 사람은 땅위에 있는 자기 생활이나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자기의 어떤 장기든지 하나도 이 구원 위해서 투자하지 안하는 사람 하나도 없고 이 구원에 거리낄 때에 그까짓 거 헌신짝같이 버리지 안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의 가치를 누가 가르쳐 주는가? 이 구원의 가치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가르쳐 줍니다. 또 이 구원에 이르는 그 지혜를 누가 가르쳐 주는가? 그 지혜도 성경이 가르쳐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믿음도 얻어야 되겠고 구원에 대한 지식도 얻어야 되겠고 이라면 구원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지마는 구원에 대한 가치와 지식을 자기가 확실히 얻어 놓으면 이 구원에 대한 유일한 소망이 생기에 되고 이 구원을 이루는 유일한 방편이 되는 그 믿음에 주력하고 됩니다. 믿음에 주력하게 됩니다.

믿음에 주력한다 말은 사실을 아는 것과 아는 그대로 확실히 인정하는 믿음과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구원에 대한 지식을 점점 자기가 갖추어서 지식으로 자라가고 점점 확실히 인정하는 인정으로 자라가고 점점 그대로 실행하는 실행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사이 성경 공부를 하라고 그렇게 많이 우리가 권면도 하고 또 교회서 많은 원조를 해 가지고 성경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보니까 어떤 장로님은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그 학생들을, 도시락은 집에서 싸라고 했는지 차비는 어쨌는지 모르지마는 학생들을 데리고 저 양산동 산에다가, 한적한 곳에다 데려다 놓고서 기도를 시키고 성경을 가르치고 하루 종일 그래 하다가 그래 내려가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우리에게 보배이기 때문에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예수님이 사활의 일곱 가지 이 대속 다음으로 가치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독자적 권위를 가졌습니다. 창조의 권위를 가진 것이 성경입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만물과 영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라고 명령하신 이는 하나님이시요, 명령한 이는 하나님의 감동이요 그 모든 것을 실지로 창조한 그 실제의 시공 역사는 순전히 말씀이 했습니다. 진리가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성경의 권위와 가치를 깨닫고 땅위에 있는 모든 지식보다 성경 권위를 높이고 성경에게 자기는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마다 세상 지식을 무한히 탁월한 사람이 됩니다. 없어질 지식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완전한 그 지식에 도달해서 그 지식으로 점점 자라가고 부강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니엘이 다 같은 사람으로서 그 특수 학원에서 공부할 때에 그 나라에 많은 그 학자들보다 십 배 뛰어난 지혜를 가졌다 하는 것은 이 말씀을 존귀히 여기기 때문에 말씀이 그 사람의 심령을 열어서 그렇게 명랑하고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새롭게 해 주신 연고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학생들이나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이 성경 말씀의 도움, 하나님의 축복으로 무엇을 해 나갈라고 하는 사람들은 슬기 있는 사람이지마는 제힘으로 할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고 미련하고 골만 빠지지 결국은 성공 같은 것도 다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 성경 공부에 제가 물어 보니까 주일날 설교 했는데 수요일날 아침에 ‘월요일 화요일까지에 입학한 학생이 얼마나 되느냐?’ 성경 공부 입학한 학생이 얼마나 되느냐 물으니까 사백 명이 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후에 또 이틀인가 지나고 나서 물으니까 오백 명이 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단히 지혜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이 구원의 가치를 알게 하고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편인 그 믿음을 자라가도록 한다고 하는데 성경이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구원에 대한 지식을 자라게 하고 또 믿음을 점점 견고케 하고 성장케 하는가 하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의문이 되겠습니다. 성경 육십육 권 도리가 어떻게 그리 되는가? 뭐 불교 이종교에는 그 경이 팔만 대장경이니 억만 경이라도 거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과 연결이 없습니다. 없는 것을 확고히 말하는 것은 성경에 보면 모든 그 우상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적이라 했는데 우상 섬기는 것으로 도가 되어 있고 또 미사드리는 그런 게 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을 하는데 하나님과 화친이 될 리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확고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믿음을 가치를 알려 줘서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보다 이 구원이 가치 있다 하는 것을 어떻게 성경이 가르쳐 주는가, 또 이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데 구원 얻는 유일한 방편이 되는 그 믿음을 어떻게 이 성경이 믿음을 성장시켜 주는가 하는 거게 대해서 사람들이 의문이 되겠고 또 갈급함이 있겠습니다.

거게 대해서 그 다음에 16절에 말씀해 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말은 하나님의 역사로 된 것이 성경이라 말입니다. 역사로, 하나님의 역사로 된 것이 성경이라.

그런데 성경이 교훈을 해 준다. 성경이 교훈해 주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교훈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가르치고 지도하신다. 교훈이라 말은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을 가리켜서 교훈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치고 지도하시는 일을 한다.

가르치고 지도하시는 일을 하다. 그러면 이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직접 가르치고 지도할 수가 없으니까 영감으로 만든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가르치고 지도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고 지도를 받으면 이 구원의 가치가 어떻게 크다는 것을 차차 배워서 알게 되고, 또 믿음은 어떻게 하면 믿음이 자라가는 것을 지도하는 대로 따라서 순종하니까 믿음이 자랐고, 가르쳐 준 대로 내가 기억을 하고 인식을 하니까 자랐고, 인정하니까 자라고 자꾸 자랍니다. 교훈으로 구원의 가치를 알게 하고 믿음을 자라게 한다.

또 하나님이 직접 책망해 가지고 구원의 가치를 알고 믿음을 자라게 한다.

하나님께서 “네가 이거 잘못됐다, 요거 고치라. 요거 고치라 조거 고치라, 네가 요 말버릇을 고치라, 요 행위를 고치라, 요 생각을 고치라, 요 뜻을 고치라, 네 욕심을 고치라, 네 취미를 고치라, 네 성질을 고치라.”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책망해서 고치라고 하시는 이대로 자꾸 고쳐 가니까 구원이 환하게 보입니다. 구원이 보입니다. 세상이 보입니다.

세상에 그렇게, 마치 부자의 자식이 창기 꼬임에 빠져 가지고 죽을똥 살똥 모르던 그 자와 같이 세상 꼬임에 빠져 그렇던 자가 주님이 책망하시는 것을 고치고 가르치는 것을 배우고 지도하는 것을 듣고 이라고 보니까 세상이 환하게 보입니다.

환하게 보일 때에 ‘이것이 풀과 같고 그 영광은 꽃과 같은 것이구나’ 이렇게 봤는데 자세히 보니까 ‘아이쿠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를 끊게 만드는 바로 이것이 음녀구로나, 이게 음녀로구나. 이게 음녀의 포도주로구나.’ 이 세상에서 이런 거 저런 거, 이런 사상 저런 사상, 이런 교훈 저런 교훈 받으니까 이것이 인간의 정상을 도취하구로 해 가지고 사람이 정신 없는, 술에 취하면 술의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세상에 도취해 가지고 세상 사람이 돼 버리고 마는구나, 멸망의 사람이 되고 마는구나 하는 이것을 안 사람이 계시록에 기록하기를 이거는 음행의 포도주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이십세기의 문화의 아름다운 것은 이게 음녀가 자주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으로 장식해서 꾸민 이거 음녀로구나, 음녀의 손에 이 금잔이 있는데 금잔 속에 보니까 가증한 것이 가득히 들었구나.

금잔 속에 이 세상에 모든 세상 지식이라 하는 지혜라 하는 그 금잔 속에는 가증한 것,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는데 아무 털끝만치도 주권 없는 것이 제가 무슨 주권이 있는 척 이렇게 날뛰고 있으니 그것으로 말미암아서 마지막에는 결말로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몰아넣고 만다 이걸 알게 된다 그 말이오.

교훈 받고 또 책망 받고 또 “바르게” 네가 이래야 바르다 저래야 바르다. 네 마음은 이래 가져야 바르고, 네 생각은 이래 가져야 바르고, 네 욕심은 이런 욕심은 버려야 되고, 이런 욕심을 가져야 되고, 또 이렇게 모든 것을 네가 편벽되게 보지 말고 전체를 봐라.

시간도 전체를 봐라! 영원을 봐라, 네가! 일시만 보지 말고! 네가 공간도 조그만한 이 공간만 보지 말고 우주와 영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터이니까 이 전체의 영계를 봐라. 존재로 볼 때도 ‘이 사람 지금 권세가 있다, 고위층에 있다, 이 사람이 지금 제일 유력한 인물이다.’ 그렇게 잘난 인물만 볼 거 아니라 그 인물을 만들고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도 같이 봐라. 존재는 모든 존재를 같이 봐라, 네가. 전체를 봐라. 이렇게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래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자꾸 이 바르게 합니다. 그래 가지고 뭐할라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의는 뭐입니까? 의는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라 말했는데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시는 그 인정하시는 것이 몇이나 됩니까? 하나님이 몇 개 인정했습니까? 이 피조물에게 대해서 몇을 인정했습니까? 이는 참되다 옳다, 이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도 이는 완전타, 이는 참되다, 이는 영원하다, 이는 불변하다, 이제 이는 나하고 제일 친밀하다. 이렇게 하나님이 온전타 인정한 것이 몇 개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하나님이 인정한 것이 옳다 인정 하는 것, 의로 인정한 것이 몇 개인지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쳐 보십시오. 또 다 잊어버렸네. 일곱이라, 일곱. 하나님의 의 일곱. 잊어버리지 말아요. 일곱.

이거는 완전해요. 죄를 영원히 이기기 때문에 완전합니다. 마귀를 완전히 이겨서 마귀에게 자유하기 때문에 완전합니다. 죽고 망하는 것을 완전히 이겼기 때문에 이거는 완전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영감대로 진리대로 살기 때문에 이거는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다 완전 이행했기 때문에 완전합니다.

하나님과 완전 화친이 됐기 때문에 완전합니다. 이 완전한 거라. 이게 의라. 이걸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말합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의를 길러가는데 유익하다 말이오. 의를 길러가.

의를 길러가. 일곱 가지 구원을 길러간다 말은 구원을 우리가 만들어 간다는 말이요. 그 구원이, 길러가는 것은 그 구원이 내것이 된 것이 조금 차차 차차 자꾸 되어져 가기 때문에 내 구원 되어지는 그것이 자라갑니다. 얻어 간다 말이오.

얻기는 공으로 얻지마는 하나 얻은 사람, 둘 얻은 사람, 열 얻은 사람, 백의 구십구 얻은 사람, 백의 백을 다 얻은 사람이 달라. 자기 얻은 편에서 자라간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래 가지고 뭐할라고? 17절에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이는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타 말은 예수님의 사활로 우리에게 주신 일곱 가지 대속을 기본적으로 얻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이 중생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또 이 구원을 지금 소망하고 이루어 갈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으로는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 됐고 육적으로는 지금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 두고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이렇게 성경이 나타나 가지고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해 가지고 일곱 가지 구원을 온전하도록 이렇게 교육해 나간다.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교육해 나간다.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은 뭐할라고?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선한 일을 행하기에” 그러면 선한 일을 하고 하고 해서 모아서 온전하다 말이 아니고, 선한 일을 모은다는 말이 아니고, 선한 일을 자꾸 저축하고 자꾸 적립해 나가고 건설해 나간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실력을 이렇게 온전케 길러간다 그 말입니다.

사과를 기르는 게 아니고 사과가 여는 사과나무를 기른다는 말과 한가지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 중심 생활을 한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 생활을 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실력을 길러간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하나님 중심 생활하는 그 실력을 온전케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이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지혜라는 말은 이 세상 말에서는 지혜라는 것은 미래에 속한 지식을 가지는 것을 지혜라고 이래 말하는데 성경에는 단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혜라 말은 능력이라 말과 같은 말입니다. 능력과 지혜를 분리하지 안하고 지혜가 능력이요 능력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성은 전능성이요 전능성은 전지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속성이 여러 속성으로 나타났지마는 실은 그것이 단일성입니다. 왜? 하나님은 완전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이 속성과 저 속성이 배치되지를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이 속성과 저 속성이 배치되고 대립되지마는 하나님의 속성은 십이 속성으로 성경에 기록됐지마는 그 속성이 다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외부로 나타날 때에는 백으로도 나타나고, 천으로도 나타나고, 만으로도 나타나지마는 실은 그 속성이 들어가면은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일성이십니다.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오전에 제가 증거할라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 증거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까지 배운 걸 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또 그 서론을 하고 증거할라고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이 구원도, 구원에 대한 말이 다 전진성,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적인 말이고, 또 위로 자꾸 향해서 올라가는 향상적인 말이고, 또 점점 자라가서 커져가는 성장적인 그런 말로 우리에게 표현하는 것은 이 구원은 완성되어 있는 것인데 이 구원에 소망을 가지고 이루어 가는 우리 편에 있어서는, 우리 인간편 주관편에 있어서는 성장해야 되고 전진해야 되고 향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은 성경이 우리에게 자꾸 전진을 시키고 향상을 시키고 성장을 시키는데 성경이 뭘로 향상을 시키고 성장을 시키고 전진을 시키느냐? 구원과 믿음을 향상시키고 전진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은 이 성경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하는 이것을 가지고 우리의 일곱 가지 구원을 점점 양육해 나간다, 교육해 나간다, 이걸 자꾸 가르치고 길러 나간다.

그러면 길러 나가면 뭐이 되느냐? 길러 나가면 하나님의 사람 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온전해지고, 하나님처럼 온전함을 이룬 사람도 있고 그 온전의 억억만분의 일을 이뤄 가지고 간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함을 이루고 하나님 중심 생활하는 그 실력으로 온전케 하는 이 일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이렇게 성장한 것과 전진한 것과 향상된 것이 천층 만층 억만층도 더 된다. 사람을 세상에서 말하기를 ‘천층 만층 억만층이라’ 이렇게 말하지마는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은 부활한 자의 영광의 그 차이는 말할 수 없는 차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하나 표시하기를 그래 놨습니다. 형체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늘에 속한 형체는, 이 태양이 형체 아닙니까? 태양이 형체인데 땅에 속한 이 바닷가에 있는 모래알 그것도 한 형체 아닙니까? 그 모래알 한 개와 하늘에 있는 태양 한 개와 그 권위와 영광과 가치가 크기가 얼마나 차이 있는가? 그거는 억억억만 배도 더 됩니다. 그런 것으로서 차이 있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한자리에서 예수 믿지마는 이다음에 가면은 우리 전부가 다 똘똘 뭉쳐도 한 사람의 구원의 억만분의 일도 당하지 못할 수 있는 그런 것도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추론할 수 있고 추측할 수 있고 논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에 이 구원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진주를 샀다,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보화를 샀다 하는 것입니다.

여게 주일학교 반사들도 자기가 이것을 조금 발견한 사람은 돈 벌어 가지고 다른 재미 없어. 돈 벌어 가지고 어찌 됐든간에 주일학교 반사노릇 잘해 가지고 구원 하나 더 얻어서, 그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학생이 많으면은 또 분반시켜고 또 자꾸 이 일에 투자하고, 중간반 반사들도 처음에 들어올 때에는 그 모두 조그만한 새끼 사장이라도 사장이라요. ‘얼마나 수입인데 너는 사장이 됐노?’ 이라니까 `이제 시작인데 뭐 한 달에 한 육칠십만 원 수입됩니다.’ 이런 사장이다가 이제 그거 놔두고 떡 중간반 등용한다 하니까 그만 집어 던져 버리고 왔는데 그때는 육칠십만 원 수입을 다 버리고 오만 원 받았어.

오만 원 그것도 이제 사람 구원하는 이것이기 때문에 이 진주를 얻는 것이기 때문에 좋다고 했는데 엉뚱스럽게 가다가 “성령으로 시작해 가지고 육체로 마친다” 하는 대로 육체로 마쳐서 성령으로 시작한 그것이 다 없어져 버리고 지금은 육체의 사람이 됐기 때문에 내가 중간반 반사를 자꾸 박살을 내요. 중간반 반사를 자꾸 가치없다. 그전에는 막 이래 추켜 올려 주고 이라니까 권찰들이 이래 쌓기를 ‘중간반 반사만 자꾸 이래 추켜 올리니까 우리가 시기가 납니다’ 할 만치 그렇게 추켜 올렸어. 그때는 다 그리 걸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거 취하러 왔기 때문에 이랬는데 이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이거 자꾸 해 봐야 그러니까 ‘내가 공부나 해 가지고 내 실력을 길러야 되겠다.’ 이라니까 요런 꾀 저런 꾀 수단이나 배우고 뒤에 목회 나갈 터이니까 목회 나갈 그런 무슨 복술이나 배워. 복술 배우면 하나님이 그 복술에 속습니까? 안 속아. 그래 ‘다 나가라, 다 나가서 전부 개척 교회해라.’ 인제 지혜는 배워서 실력은 있으니까, 충성을 안 해요. 그러니까 ‘다 나가라. 다 나가서 개척 교회 해라.’ 내가 이렇게 말했어.

말했는데, ‘그라면 이 학생들 어떻게?’ 너거 다 나가도 하나님이 구원하면 다 된다, 뭐. 너거에게 매여 그런 줄 아나? 학생 오백 명이나 주면 나중에 한 오십 명만 남궈 놓고 사백오십 명은 다 죽여 버리고 다 이래 놓고 뭐 지금 뭐, ‘지금은 오십 명 받았는데 오십 명 그대로 안 있습니까?’ 오십 명 받았는데 받은 사람들은 다 죽여 버리고 이제 자꾸 심방 전도하러 가니까 ‘야 너 예수 안 믿을래?’ ‘예수 믿을랍니다' 이래 가지고 새로 전도해 가지고 구원 얻은 사람은 저 아니라도 와요. 다른 사람 통해 가지고도 온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하나님 앞에서 맡겨 줌 받은 사람은 다 이제 떨어뜨려 버렸어.

이래 놓으니까 지금 중간반 반사들이 ‘목사님이 자꾸 우리를 지금 이래 치고 이라니까 우리가 할 힘이 없다’ 그 깨어 가지고 ‘이러니까 이제 참 내가 헛일했다. 이제 한번 해 보자.’ 힘 내는 사람은 내고 죽는 거는 죽고, 햇볕이 쬐우지마는, 햇볕이 꼭 같이 쬐우지마는 초는 자꾸 물씬물씬하게 녹아서 물이 돼 버리고 이제 진흙은 땐땐하게 야물어집니다. 알겠습니까? 이거 모양으로 이제 이 진리 말씀을 듣는데 ‘주여, 옳습니다. 옳습니다.’ 이제 쇠돌덩이보다 더 강하게 견고한 자 되는 자도 있고, 턱 퍼드러져서 아이고 칭찬 안 하고 이라니까 퍼드러진다고 이래 가지고 퍼드러지는 자는 퍼드러지고, 초덩이는 퍼드러지고 인제 진흙덩이는 땐땐하게 야물어질 터이니까 그와 마찬가지다 그 말이오.

그런데, 그러면 이렇게 성경에서 이 구원을 우리가 점점 이루어 가는 구원에 도달하는 이 지혜를 있게 하고, 또 구원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인 믿음을 점점 성장하고 하니까 이 성경이 가치가 얼마나 있습니까? 이 성경이 여러분들 우리에게 우주만치 가치가 있습니까 세계 강대국만치 가치가 있습니까? 뭐만치 가치 있소? 강대국만치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이소. 이 우주보다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우주보다 가치가 커.

그러면 성경이 가치가 일등입니까 이등입니까 삼등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이 가치가 몇등이요? 일등, 또? 이등, 또? 삼등, 너는 왜 삼등이라? 삼등이야. 하나님이 일등, 또 구원 이등, 성경 삼등, 꼭 이래 가르쳐야 되지 여기는 보니까 손가락 이 서이 드네, 삼등이라고.

이러니까 오후에는 이제, 그러면 이 구원은 성장적이라, 전진적이라, 향상적이라, 진학적이라. 이 믿음도 다 이런 것이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구원이 자꾸 자라가고 일어가고 또 믿음이 자라가고 하는가? 이제 하는 것은 오전에 다 했으니까 이것만 해도 다 아는 사람은 알아요. 이 성경이 어떻게 하는가? 교훈으로 이렇게 길러가고, 지도로 길러가고, 책망으로 길러가고, 바르게 하는 걸로 길러가고 이래 가지고 일곱 가지 구원을 점점 성장케 해 가는데 그라면 어찌 되느냐? 온전한 사람되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라. 하나님 같은 온전한 자 되고 또 이렇게 모든 행위가 하나님이 하심같이 행위를 온전케 할 수 있는 행위 온전의 실력을 갖추어 간다 그거요.

그러면 오후에 이제 믿음과 이 구원이 점점 성장되고 향상되고 진보되고 전진돼 가는 것을 오후에 가르치겠습니다. 오후에 가르치요.

몰라요, 모르면 안 돼. 가르치니까, 오후에 가르치겠으니까 오후에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다 나와요. 오후에 가르칩니다. 시간이 돼서 인제 그만해야 되겠어요.

오후에 가르쳐야 되겠는데 오늘도 보니까 춥다고 저 튕 비었지. 다 돈이 좋거든.

직장이 좋거든. 하나님과 멀어지면 직장도 돈도 그거 사망이 되는 원인이 돼 버리고 말아요. 아무 소용 없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의 이 주시는 구원의 지극히 크심을 영감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이 구원을 받는 방편을 또 영감으로 알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을 받아서, 세상 미혹에 끌려 음행의 포도주에 도취되지 말고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르는 나그네 세상을 지낼 때에 두려움으로 영원을 준비하는, 자신을 온전케 하고 행위를 온전케 하고 자존자이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 전지의 입법에 걸리지 않는 이 자유를 완전히 이루어 가지고 주 앞에 서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 마귀로 말미암아 온갖 미혹의 욕심을 완전히 죽여버리고 성령의 소욕으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를 어두움에서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영원 전부터 주님의 것입니다. 어떻게 되든지 주님의 영광이 저희들에게 있사오니 저희들이 잘되면 주님에게 영광되고 잘못되면 영광과 복음이 가루어집니다. 주님이 장중에 잡으시고 하나하나를 세밀히 간섭하여 주사 날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광명을 이루어 나가며 멸망하는 세상에서 생명과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염려 없이 평강 가운데서 담대히 살아나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여 주시고, 모든 문제를 주님에게 의논할 때에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의논을 들어서 모든 것이 주와 의논하여 화평한 가운데서 승리와 성공으로 이루어 가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모든 시험에서 항상 건지시고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주를 사랑함이 점점 뜨거워지고 자신의 구원이 점점 온전해져 가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056 구원론-건설구원/ 누가복음 16장 10절/ 840920목새 선지자 2015.10.25
5055 구원론-설교록의 보존/ 갈라디아서 2장 15절-21절/ 870601월새 선지자 2015.10.25
5054 구원론-중생-옛사람/ 로마서 6장 4절-7절/ 871205토새 선지자 2015.10.25
5053 구원만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능력/ 에베소서 1장 3절-14절/ 870912토새 선지자 2015.10.25
5052 구원방편과 재료/ 누가복음 16장 10절-11절/ 880325금새 선지자 2015.10.25
5051 구원성으로 들어가는 법/ 이사야 26장 1절-7절/ 800106주후 선지자 2015.10.25
5050 구원으로 된 성/ 에베소서 1장 5절-23절/ 890803목새 선지자 2015.10.25
5049 원으로 된 성/ 이사야서 26장 1절-7절/ 1976년 6공과 선지자 2015.10.25
5048 구원의 15단계/ 요한복음 9장 35절-41절/ 800119토새 선지자 2015.10.25
» 구원의 가치/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870111주전 선지자 2015.10.25
5046 구원의 가치/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810809주후 선지자 2015.10.25
5045 구원의 가치-믿음 크는 방법/ 디모데후서 3장 15절/ 870111주새 선지자 2015.10.25
5044 구원의 근원/ 디모데후서 1장 3절-14절/ 801102주전 선지자 2015.10.25
5043 구원의 근원/ 에베소서 1장 3절-14절/ 811124화새 선지자 2015.10.25
5042 구원의 근원/ 요한일서 3장 3절/ 820205금새 선지자 2015.10.25
5041 구원의 근원/ 에베소서 1장 3절-12절/ 811123월새 선지자 2015.10.25
5040 구원의 길은 회개뿐/ 누가복음 13장 1절-9절/ 830320주전 선지자 2015.10.25
5039 구원의 길은 회개뿐/ 요한계시록 13장 1절-18정/ 821016토새 선지자 2015.10.25
5038 구원의 방편/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00806수야 선지자 2015.10.25
5037 구원의 방편/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00809토새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