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1986. 7. 2. 수새벽

 

본문:로마서 1장 16절∼17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복음이 첫째는 유대인이요 또 헬라인에게로다 하는 그 말씀은 이 복음은 첫째는 유대인들이 이 복음의 효력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이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이 복음의 효력을 입을 수 있다 하는 그 말씀을 한 것입니다.

복음은 어떤 것이 복음인고 하니 하나님이 사람되셔서 신인 양성 일위이신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구주가 오셔서 모든 택한 자들에 세 가지 대속을 베풀어서 아무 공로 없는 택한 자들이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공심판 대심판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로 그 대심판을 통과한, 통과케 하도록 대신해서 공로를 설정하신 그 공로를 입은 자들은 이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이 계약대로 순종하라. 그리하면 계약에 약속한 구원이 다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곧 복음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입은 의인들입니다. 제야 알든지 모르든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힌 사람들은 다 의인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어떤 사람들이 입었는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시는 이 공로를 예수님이 우리 대신 설정했기 때문에 택한 자들은 예수님의 사활로 다 사활의 공로를 다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런고로, 다 의인입니다. 제가 모르든지 알든지 의인입니다. 이 의인은 우리 행위로 된 의인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의인입니다.

그러면, 이 의인은 어느 정도의 의인인가?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하다 하는 그 인정으로 통과된 의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심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벌써 공심판은 통과가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무슨 심판이 있는고 하니 그리스도의 심판이라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창세 전부터 우리를 책임져서 우리를 선택할 때에, 예택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우리를 책임지신 이가 그리스도인데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가? 영원 전부터 자존하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순전히 인성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그때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우리를 하나님처럼 온전케 해서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이 모든 행동하는 거와 같은 꼭 같은 행동을 해서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과 꼭 같은 행동하고 꼭 같은 은혜를 베풀고 꼭 같은 영광과 존귀를 가진, 하나님은 원형이요 곧 택자들은 하나님과 꼭 같은 모형, 그거는 원형이라 모형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을 그것을 여러분들이 단어 같은 것도 자꾸 좀, 뭐 몇 번 들으면 아는 건데 한번만 들어도 알 건데 몇 번 들으면 알지 않습니까? 꽃도 생화라 하면은 참꽃 그 산 꽃 그것을 가리켜서 생화라고 하고 조화라고 하면은 생화와 같이 만들어 놓은 것을 가리켜서 조화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조화는 생화의 모형입니다. 생화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 것이지마는서도 그것은 생화와 같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원형이요, 하나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면서, 피조물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되어져서 꼭 같은 직책을 영원히 합니다.

이래서, 천상 천하에 모든 피조물을 지금은 하나님이 그런 것을 다 통치하시고 관리하시고 또 은혜를 베풀어서 이렇게 기르심같이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그리스도의 심판이 지난 그다음에는 택한 자들이 전부 하나님과 만물 사이에서 중보자가 돼 가지고 만물에게 하나님이 하신 거와 꼭 같이 그렇게 만물에게 대해서 온갖 은혜를 베풀고 온갖 통치를 하고 온갖 심판을 하고 이렇게 하는 그런 직책을 가지고 그런 실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흠 없이 그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담당하시는 거와 같이 우리들도 영원히 흠 없이 담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기독자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 말은 이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계약해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거룩하심과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과 같이 깨끗하라 하는 그런 일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같이 어찌 되겠습니까? 이것은 뭘로 되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의로 말미암아 된다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 그 말은 신구약 성경에 계약된 이 계약은 계약의 그 밑천이 뭐이냐? 계약이 무슨 권리를 가지고서 이 계약대로 된다 말이냐? 이 계약에는 뭐 하나님같이 된다는 것이 제일 큰 계약이요, 또 둘째로는 영생, 영원히 산다는 영생한다는 것이 이것이 둘째 큰 계약이요, 세째로는 하나님같이 전지 전능 온전을 가지고 모든 천상 천하에 피조물을 잘 살도록 통치하고 모든 것을 관리한다 하는 이것이 세째로 큰 계약인 것입니다.

이 계약을 우리가 어떻게 이룰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형해 가지고 사죄를 주셨고 대신 하나님 율법을 다 준행해 가지고 우리에게 의를 주셨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밀접한 화친을 주셔 가지고서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대신 이 공로를 베풀었는고로 이 공로로 인해서 우리는 이 어려운 지극히 큰 우리 소망이 다 이루어집니다. 소망이 달성됩니다.

그러기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이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성경에 로마서 3장에도 말씀했는데 여게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의인들이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 예수님의 대속하신 이 의로 인해서 택한 자들은 다 의인이 됐다 그말입니다. 의인이 됐다. 그러면 우리는 의인이 됐습니다.

우리가 혹 생각할 때에 그만 그 습성이 돼서 순서를 통과치 안하고 ‘이 죄인이 왔습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성경에 바리새교인보다도 세리가 와 가지고 나는 죄인이다 이래 말할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앞에 더 인정을 받고 갔다 이런 말씀을 보고서 우리가 그만 거뜩하면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는 괴수 죄인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두 가지 뜻이 있기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의인으로 공심판에서 인정받아서 나는 의인된 자이지마는서도 나를 의인 만들어 주신 주님 앞에는 나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런 뜻으로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에 그 죄인이라고 해도 주님이 받아 주시고 들어 주시고 이렇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생각지 않고 잘못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 되시기까지 이렇게 큰 고난을 당하시고,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큰 고난을 당하시고, 또 창조주가 영원히 사람 입은 이 부활의 이 큰 고난 영원한 고난을 당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의를 입혀서 의인 만들어 주니까 항상 이거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됩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죄인이 왔습니다.’ 하는 이 말은 그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흉측한 죄인인데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나를 의인 만들어 주신, 의인 만들어 주셨는데 나는 이 의인으로 살지를 안하고 행위는 죄인 행위를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하는 그런 믿음으로 가지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말하든지, ‘주님이 나를 대속의 공로로 이렇게 하나님의 큰 의를 입혀 주신 나는 죄인입니다. 이 대속의 공로를 입혀 주셨기 때문에 성부에 대해서도 성령에 대해서도 모든 만물에 대해서도 나는 의인이지마는서도 나를 의인 만들어 주신 주님 앞에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그 순서를 믿으면서 ‘죄인이로소이다' 하면은 주님 앞에 관계가 끊어지지 안하고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편 외에는 자기가 예수 믿기 전에 내나 죄 짓던 그 죄, 죄를 짓고 자기가 보니까 뭐 날마다 죄 짓는 것밖에 없는데 죄 짓는 것밖에 없는 그런, 죄 짓는 그 죄를 가지고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면 예수님과 관계가 끊어져 버립니다. 예수님의 이 대속을 무시하는 일이 되고 멸시하는 일이 되고 부인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를 속되게 여기는 자가 정죄를 받는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님 앞에 ‘주님의 은혜로 의인된 내가 왔습니다.’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의인인 것을 알고, 의인으로 ‘주님 의인 왔습니다. 주님, 흠 없는 의인이 왔습니다.’ 흠과 점과 주름잡힘이 없는 완전한 의인이 지금 주님 앞에 무슨 도고나 감사나 이래 하는, 자기가 의인으로 인정하는 고것도 요 믿음을 가지고서 인정을 할 때에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기뻐하시고, 또 죄인으로 인정할 때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연결해 가지고 그래 죄인으로 이렇게 자기가 고백할 때에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지마는서도, 예수님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담당했습니다. 담당하셔서 하나님의 공심판까지 다 통과시켰는데 자기가 범죄하는 그 죄 그걸 가지고서 아직까지 그 죄가 그대로 있는 줄 알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라면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무시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거게서는 절망이지 아무런 하나님의 긍휼이 오지를 않습니다. 꼭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다음으로서만 은혜가 오고 하나님이 우리가 관계가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아버지가 돼지지.,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라고 우리라고 말한 것은, 내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는 복수 아닙니까? 하나는 ‘내’라고 말하고 ‘우리'라 할 때는 다른 거와 나와 뭐 합해 가지고서 여럿이 합했을 때에 우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첫째 예수님과 나와 하나된 그것을 가리켜서 복수고 또 예수님과 나와 하나될 뿐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한 모든 성도와 나와 하나돼서 이 삼합된 자기를 가리켜서 우리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삼합이 된 자기가 됐을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긍휼도 입을 수 있고 은총을 입을 수도 있고 온갖 걸 다 입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된 것을 항상 기억해야 됩니다.

여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데 우리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한 그 의인은 누군가 하니 우리입니다.

이래서, 의인이 하나님 앞에 뭐 구할 수 있고 의인이 하나님과 의논할 수 있고 의인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지 의인 아닌 자는 하나님 앞에 서면 즉사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일을 안 하고 하나님께서 지금 그저 즉시 즉시 예수님의 공로를 벗었을 때에는 하나님이 멀리 떠나 버리고 그만 이러니까 하나님 참 바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를 입지 안했을 때에는, 안 하고 뭐 그만 예수님의 공로를 잊어 버리고 공로를 입지 안하고 이렇게 하나님에게 나타날 때에는 하나님이 벌써, 그렇게 나타날 때에는 나타나기 전에 얼른 하나님이 피해 버려야 됩니다. 안 피하면 즉사를 합니다.

또,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에도 그저 ‘내 아버지, 내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이래 버리면 하나님이 얼른 피해야 되지 거기 있을 수 없습니다. 왜? 왜 있을 수 없습니까? 예수님의 피공로가 거기 함께 하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시면 대번 즉시 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하나님은 죄를 소멸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인들을 소멸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공로를 믿음으로 입고 부를 때에는 하나님이 ‘왜?’ 하면서 그 의논을 다 들어 줘야 되니까 얼른 와야 되지, 또 예수님의 공로를 잊어 버리고 또 이와같이 할 때는 하나님이 그거 죽이지 않기 위해서 얼른 피해야 되지 이라니까 뭐 우리의 행동에도 하나님이 얼른 피했다 왔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이거 뭐 이거 바쁩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하나님께서 심히 걱정하시고 노하시고 염려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의인인 거 기억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래서, 바울은 보면은 자기는 의인이라고 하는 걸 언제든지 먼저 말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이런 의를 입혀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고 난 다음에, ‘의인입니다’하고 난 다음에 `나는 과거에 이렇던 죄인인데 주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심을 감사합니다’ 의인부터 먼저 말해 놓고 과거 현재에 죄인을 말을 하지 죄인부터 바로 말하지 않습니다. 의인부터 먼저 말하고 합니다.

우리도 고걸 꼭 습성해서 ‘주님이여, 죄인 왔습니다.’ 이래 하지 말고 ‘주님이여, 주님의 대속으로 된 하나님의 의로써 의인된 의인 왔습니다.’ 고렇게 말을 하고 ‘의인 왔습니다' 그말 안 해도 `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의인된 자다’ 요것을 믿음으로 생각하면서 ‘주님' `아버지’ ‘성령님' 마음대로 우리가 교제할 수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흠이 없습니다. 뭐 죄 하나도 없지 율법 다 이행해서 완전한 의인됐지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되고 마귀하고 하나됐던 것이 하나님하고 밀접한 화친이 됐지, 우리가 성령으로 중생된 것이 그것이 하나님과 아주 밀접한 화친이 실상으로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네 가지 구원 얻은 것을 항상 기억해야 됩니다. 네 가지 구원.

첫째는 창조구원ㅡ이제 그라면 알지요?ㅡ또 둘째는 뭐이요? 대속구원. 또 세째는 뭐입니까? 중생구원. 또 네째는 뭐입니까? 성화구원. 성화구원을 우리가 법적으로 입고 있고 실상으로 조그마치라도 입었습니다. 성화구원은 믿음으로 되는 것인데 조그마치라도 순종해서 주일 지킨 것만 해도 그만침 성화구원이 우리가 됐습니다.

이런데, 의인은 뭐 때문에 의인됐느냐 하면은 네 가지 구원을 받아서 의인된 것입니다. 네 가지 구원을 받아서 의인된 것이오. 그러면 나는, 자기가 의인인 것을 알고, 의인인 것을 알고 주님 앞에 나타나는 것은 네 가지 구원 받은 자인 것을 알고 네 가지 구원 받은 자로 주님 앞에 나타나는데, 그러면 네 가지 이 구원을 받은 자가 실상으로 행동은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 그말이오. 인제, 의인을 만들어 줬는데 의인이 이렇게 내 생활 아닌 이 남의 생활, 옛사람의 생활 이 생활을 내가 하고 있는 그것을 통분히 여겨 가지고서 그것을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을 받도록 이렇게 해야 됩니다.

네 가지 구원 이 구원을 자꾸 우리가 연습하는 것입니다. 네 가지 구원을 자기가 받고 있는데, 내가 이 네 가지 구원을 참으로 받고 있기는 있는데, 네 가지 구원 가운데에 세 가지 구원은 이미 완전히 받았습니다. 이 세 가지 구원은 더 받을 것도 없고 완전히 받았어.

완전히 창조구원, 창조구원은 예택구원 창조구원 이래서 그것을 합해서 창조구원이라 하는데 이 구원도 우리가 완전히 받았습니다. 완전히 받았고, 또 대속 구원은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 구원도 우리가 완전히 받았습니다. 또 중생 구원도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 영이 살아났고 이 몸도 살아날 수 있는 이런, 법적인 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영은 실상 구원을 받았지마는서도 우리 심신은 실상구원을 받지 못했는데 이 심신은 중생된 영을 통해서 우리가 심신의 실상구원을 우리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실상구원을 마련하는 그 과정에 있어. 실상구원을 마련하는 중에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완전히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네 가지 구원 가운데 몇 가지를 완전구원 받았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완전구원 받은 거. 녜, 세 가지. 맞습니다.

세 가지 구원은 완전구원 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는 우리가 성화구원인데 이거는 지금 시작은 됐으나 완성이 안 됐기 때문에 날마다 이 성화구원을 완성할라고 우리가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성화구원은 곧 마음과 몸이 구원 얻는 것인데 이 구원은 시작은 됐지마는서도 아직까지 완전히 안 됐습니다. 그러면 완전히 되면 어찌 되는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몸에 그 기능이 형체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기본구원에 속해서 부활은 다 되지마는서도 기능은 우리가 지금 이 기능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기능구원을 받아야 되는데 기능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이 기능구원 받는 것인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가 된 것 고것은 이 육체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안 된 것은 받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구원은 언제 받는고? 현실에 받는데 현실에 자기 심신 기능이 이 세 가지, 피, 성령, 진리하고 하나가 되느냐 이 셋을 버리고 악령 악성 악습하고 하나가 되느냐? 요 둘이 현재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에 기다리고 있는데 요 현실에서 악령 악성 악습하고 하나가 되면 피와 성령과 진리는 나하고 관계가 끊어지고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가 되면은 악령 악성 악습은 나와 끊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악령 악성 악습은 이 세상을 가지고 있고, 또 피와 성령과 진리는 영원 무궁의 하늘나라와 다음으로 이 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세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는 하늘나라와 하늘나라 얻고 난 다음에 영원한 세상,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이 통일된 영원한 세상은 피와 성령과 진리를 가진 자들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래서, 요 현실에, 육체의 기능이 구원 얻는 피와 성령과 진리하고 하나가 될라 하면 그때 세상을 내가 내놔야 되고, 세상을 내놔야 되고, 이러니까 세상을 내놔야 되니까 세상 내놓기가 아까운 사람은 세상을 안 내놓을라면 악령 악성 악습을 배척하지 안해야 되기 때문에 악령 악성 악습하고 하나가 돼서 현실에 거석하면은 세상을 내놓지 안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를 내놨기 때문에 고 시간에서 고 시간에 해당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고 현실을 통해서 악령 악성 악습과 합작된 심신 기능이 됐고 피와 성령과 진리와 이별한 심신의 기능 됐기 때문에 고게서 영원히 사망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안 죽고 세상에 좋을라고 했는데,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살릴 권리가 없기 때문에 완전히 죽고 말았습니다.

고 현실에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하나될라고 하면은 이 세상을 내줘야 되니까, 믿음을 가지고 내주나 그게 내주는 게 아니고 그것이 완전히 자기 것 된다는 이 교훈을 받아 가지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너 그라면 이거 세상 뺏든다 뺏든다’ 이라며 뭐 위협도 주고 우리 육신의 생명도 뺏들고 그렇게 합니다.

그래도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된 자에게는 생명을 뺏들 자가 없다’ 하고서 피와 성령과 진리를 배반하지 안하고 피와 성령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되면 그때에 고 시간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영생이 돼 버렸습니다. 다시는 변동 없는 영생이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는 우리 심신의 기능이 피와 성령과 진리의 것으로 영원히 산 것이 되든지 또 이를 배반하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하나가 돼 가지고 영원한 사망하는 기능이 되든지 현실에서는, 현실에 해당된 고것만큼은 영생이 되든지 영멸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살아 있으면 고 시간에 해당된 것은 영생과 영멸로 결정됐지마는 아직까지 살아 있는 남은 것은 미결입니다. 고것은 또 현실을 닥치면 또 고게 됩니다. 현실 현실 현실을 닥쳐서 현실을 다 사용하고 나면, 자기에게 해당된 현실을 다 사용하고 자기에게 해당된 현실이 끝났으면 어찌 됩니까? 현실이 끝나면 어찌 됩니까? 그 사람은 현실이 없습니다.

현실이 끝났으면 그 사람은 어찌 됩니까? ○○○ 집사님, 자기에게 해당된 현실이 끝났으면 그 사람은 어찌 되지요? 그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현실을 다 써먹고 현실이 다 끝났습니다. 현실이 끝났으면 어찌 됩니까? 어찌 돼요? 현실이 끝났으면 육체의 생명이 끝났다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현실이 없는 사람은.

그러니까, 현실이 오늘 끝날란지 내일 끝날란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이 있는 동시만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지 현실이 없으면 그거 못 합니다. 현실에 끝난 것은, 육체의 생명이 끝난 것은 현실이 끝났다 하는 말이요 현실이 끝났다 하는 말은 다시 심신의 기능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다 이제 그거는 끝나 버렸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끝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현실은 많이 남아 있는 사람 있고 적게 남아 있는 사람 있고 각각 다릅니다. 그 현실은 그라면 아이가 많이 남아 있습니까,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많이 남아 있습니까? 누가 많이 남아 있습니까? 누가 많이 남아 있습니까? 아이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내가 많이 남아 있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뭐야?아이가 많이 남았는지 내가 많이 남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똑똑히 알기는, 인제 여러분들 심판에서 핑계 못 해. 요렇게 똑똑히 다 배워 놨기 때문에 핑계 못 한다 그거야.

알겠어? 모르지. 아이가 오늘 죽을란지 뭐 내가 내일까지 살란지 모른다 그거야.

또 내가 앞에 죽을란지 그것도 몰라.

그런데, 오늘 아침에 지금 말을 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자꾸 배운 걸 잊어 버리기 때문에 이 기본을 말하다 보니까 속에 진짜 알맹이 지금 오늘 아침에 말하는 설교는 할 시간이 없어. 배운 거는 잊어 버리지 안해야 돼요.

우리가 구원 몇 가지 받았어요, 손가락으로? 네 가지.

그러면 우리가 치료는 몇 가지 받아야 돼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치료는 몇 가지 받아야 돼요? 뭐이지? 치료는 뭐이지? 치료 네 가지 받아야 돼, 네 가지.

뭐이야? 영, 마음, 몸, 또 뭐이지? 사물. 네 가지 치료 받아야, 뭐 병들어서, 병이 들었으니까 이거 어짜든지 지금 치료받아야, 치료받으면 막 ‘우끈 우끈’ 막 힘이 세어서 말이오. 천하 물질이 다 내 물질이 되고서 권세가 다 내것 될 수 있어. 이거 어찌 됐든간에 받아야 돼요. 네 가지 치료 받아야 되고.

또, 복은 몇 가지 받아야 돼요? 손 가락으로 가리켜, 몇 가지? 네 가지 축복 받아야 돼요.

이래 가지고 뭐할라고? 네 가지 증인 돼야 돼요. 네 가지 증인. 네 가지. 예수님의 증인을 네 가지로 증인노릇해야 된다 말이오.

증인노릇은 예수교는, 예수교는 영의 축복받고, 영이 영생받고, 심신의 기능이, 마음의 기능이 영생받고 몸의 기능이 영생받고, 또 이 사물도 모든 천하에 있는 모든 것에 뛰어나는 이 사물에 형통, 일에는 형통 받고 물건에는 부자되고, 이거 부자 돼야 돼요. 네 가지 축복 받아야 돼요.

받아 가지고서, 네 가지 증인노릇해. ‘예수교는 영이 있는데 영이 다 영생하는 것이 예수교다. 마음의 기능도 다 이렇게 변화가 돼 가지고서 하나님처럼 온전한 마음이 되어진다. 몸뚱이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갖 치료받아 가지고서 그것은 의의 병기로만 쓰는 몸뚱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몸뚱이는 이렇게 됐다. 예수님의 마음은 이랬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관계인 그 영은 이랬었다. 예수님은 사물에 대해서 이랬었다.’ 예수님이 거지입니까 부자입니까? ○ 선생. 물질에 부자요 거지요? 그거 대답하기가 얼떨떨한 모양이로구만. 여우도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니까 가난하지요. 가난하지마는서도 또 뭐 오천 명이 와도 먹이고 뭐 사천 명이 와도 먹이고 억만 명이 오면 못 먹입니까? 얼마든지 가난한 자요 얼마든지 부요한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써 구원받는 이 구원이 두 가지 구원이 있는데 하나는 뭐인고 하니 썩어질 거 약한 거 욕된 거 모두, 그런 것이 우리에게 구원입니다. 처음에 구원은 혈육의 구원을 받습니다. 혈육의 구원.

혈육이 먼저요 신령한 것은 다음이라 이랬어.

뭐 썩을 것이 있어야 썩을 거 가지고서 썩지 안할 걸 바꾸지 약한 것이 있어야 약한 거 가지고서 강한 거 하고 바꾸지, 욕된 것이 있어야 영화로운 거 하고 바꾸지, 혈육의 것이 있어야 신령한 거 하고 바꾸지 이거 없으면 못 바꿔요. 이거 있어야 된다 말이오. 이거 있어야 되는데 이거부터 먼저 받아야 돼.

받아 가지고서, ‘썩을 것으로 심으고’ 이 물질 다 이거 썩을 것 없어질 거 아니요? 없어질 것 아니요? 없어질 것 가지고 심어 가지고서 영원히 있을 것을 받아야 되는데, 물질 하나도 없는 것이 뭐 심을 게 있겠소? 이러니까 그것도 받아야 된다 말이오.

왜? 어떻게 받는가? 주님의 말씀대로 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고 했고 위에 있다 했고 머리된다 했고 꾸어 줄 것이고 꾸지 않는다고 했고 뭐 얼마든지 하면은 여러 배 백 배도 받는데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면은 손해가겠다 싶을때 그만 안 하는 통에 다, 손해가겠다 싶을 때 하니까 여러 백 배가 와 버렸어. 그거부터 받아야 돼요, 먼저. 육체의 이 세상 축복부터 받아야 된다 말이오. 세상 축복부터 받고.

그러면, 세상 축복 받아 가지고 뭐합니까? 뭣해요? 세상 축복 받아 가지고서 세상 부자노릇 해요? 세상 만일, 우리가 세상에 제일 부요한 제일 부자가 돼 가지고, 부자가 됐다고 하면은 우리는 그 부자 가지고 뭣합니까? 그 부자 가지고 뭣하요? 세상에 제일 부자가 돼 가지고 뭣해? 거지노릇 해. 알겠어요? 제일, 세상에 제일 큰 부자인데 거지노릇 해.

그 사람 이 한국에 제일 부자인데 가 보니까 거지노릇 합니다. 뭐 근근히 그저, 계산 따져 가면서 돈 좀 적게 들일라고 해 가지고서 자기 몸에 영양 부족하지 않고 영양에 충족하도록, 그저 옷도 자기 입고 있을 만치 입고 이라니까 제일 부자인데 가 보니까, 자기만 못한 도리어 거지 생활 하고 있어. 뭣하고? 그거 가지고 이제, 없어질 재물 그거 가지고서 영원히 있도록 심는다 그말이오.

그 사람 보니까 뭐 인간 구원하는 데에는, 인간 구원 하는 데에는 뭐 천만 원도 내고 뭐 일억도 내고 몇 억도 내고 이라면서 저 먹는 것은 시장 보는 걸 발발발발발 떨면서 좀 적게 볼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헐하게 보고 뭐 쉽게 볼라고 이렇게 자꾸 애를 쓴다 그거요. 그랄라고 부자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부자되는 것은, 부자가 돼야 이것을 가지고서, 심어야 되니까 부자가 돼야 이거 가지고 심어야 되니 심을 거 있어야지 심을 것이 없으면 뭐 소용이 있어야지? 씨를 받아야 되지. 그거 씨 받는 게 이거 축복이라 말이오. 씨 받는 게 축복이라. 씨 받고 양식 받아 가지고서 또 씨는 어짭니까? 또 심어.

그런데, 우리 교인들도 많이 배워서 다른 일은 다 돼 가지고 있는데 내가 보니까 물질 축복 못 받는 것은 일곱 가지 도적질을 하고 있어.

소유권 도적질은 다, 속은 그런지 안 그런지 모르지만 입술은 다 알고 있어요.

‘이거 다, 자기에 있는 것이나 모든 게 주님의 것이다’ 이라지마는서도, 이제, 헌물을 바치지 안해요.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지 안해요.

온전한 십일조는 세 가지인데, 헌물과 십일조인데, 헌물은 성경에 보면은 두 가지입니다. 머리 떼어 바치는 거 하고 감사하고, 그러니까, 우리 모든 가진 것을 다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고, 고다음에는 또 감사함으로 그걸 사용해. 주님이 나에게 주셨으니 감사함으로 사용하는데 감사가 없으면 병듭니다. 감사가 없으면 기쁨도 없고 고만 하나님 떠나 버려.

배척이니까.

실컷, 오면 ‘감사합니다.’ 막 ‘감사합니다’ 이렇게 할 줄 알고 오니까 뜅 해 가지고 있으니까, 그거 뭐이냐? 그렇게 많은 은혜 주신 거를 다 잊어 버리고 멸시한다 말이오. 은혜를 멸시하니까 당신 멸시하는 거라. 떠나 버려야 돼.

이렇게, 하나님의 소유권 도적질 하고 있지 아직까지도. 또 안 하는 사람은 안 하지마는서도. 또 이 감사함으로 모든 거 쓰는 거 이거 안 쓰고 있지, 또 머리 떼서 바치는 그거 안 하고 있지, 머리 떼 바치는 것은 많이 드는 것 아니오. 사과밭을 지금 만 평 사과밭 하는 사람이 사과 얼마나 많습니까? 머리 떼어 바치는 것을 ‘보자. 여게서 보자.

과일이 사과가 맺어서 인제 익는다.’ 익는데 보니까, 요 보니까 제일 처음에 익은 걸, 제일 처음 익은 거는 하나님께 갖다 바쳐야 되겠다 요래 생각했는데 처음에 익는 걸 보니까 처음에 익은 게 같이 익었다 말이오. 열 개가 같이 익었어. 열 개가 같이 익었으면은 열 개 다 바쳐야 됩니까 어째야 됩니까? 열 개가 같이 익었는데 ‘열 개가 같이 익었었기 때문에 열 개 다 바치자’ 그거 머리 떼어 바치는 게 아니라. 열 개가 같이 익었는데 보자, 요놈보다는 요놈이 낫고, 요놈보다는 요놈이 낫고, 요놈보다는 요놈이 낫고, 열 개를 보니까 거기 제일 좋고 품질 좋고 제일 좋은 거 있습니다. ‘요게 요게서는 첫째 익었고 일등이다’ 고걸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 말이오.

하나님께 바치는데 고거 자기가 그걸 돈으로 ‘요거는 아마 얼마 될 것이다’ 만일 오백 원짜리 되는상바르면 ‘이거 육백 원 하면 내가 먹어도 된다’ 육백 원 하고서 자기가 먹고서 육백 원 갖다 연보해도 된다 그말이오.

또 그것을, 어떤 사람은 ‘이거 가지고 뭐 그랄 것 없이 하나님의 종에게, 하나님의 대리자니까, 하나님의 대리자니까 하나님 대리자에게 바쳐 놓으면 설마 그게 하나님에게 가겠지’ 하고 대리자에게 또 그거 또 사과 바치는 그래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것도 괜찮기는 괜찮아. 괜찮아도 첫째 것만 못해요.

이러니까, 고것을 자기가 먹으면 자기가 먹고 ‘요것은 사과 머리 뗀 돈입니다’ 하고서 갖다, 그냥 갖다 연보에 바쳐도 좋고 거기다가 봉투에는 ‘머리 연보라’ 이렇게 하고 고게 딱 기록을 하고 하면 더 똑똑하고 또 재미가 있다 그말이오.

이래서, 머리 떼서 바치고 감사함으로 하고 그 십분지 일 십일조 꼭꼭 내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뭣 하면 됩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 몇 가지 남았어? 몇 가지 남았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남았습니까? 몇 가지 남았어? ○○○ 권사님 몇 가지 남았어? 권사님도 몰라.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도 더 나아.

엉뚱한 생각하면 그만 헛일이오.

두 가지 남았어. 씨와 양식. 여게 제일 많이 걸려 가지고 있다 말이오. 십일조에 많이 걸려 가지고 있고 뭐, 또 씨는 심고 양식은 먹어야 되는데 거게 많이 걸렸어.

씨인데 씨 그걸 엉뚱한 데 지금, 뭐하고 뭐하고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부자되든지 어짜든지 자기로서 필요한 자기가 써야 될 거 고거 쓰고 나머지기 다 복음에 바쳐 보십시오. 그래야 씨를 심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은, 어떤 회사 사장하는 사람이 ‘요 회사가 지금 돼 나가는 데에는 암만 해도 요 회사, 투자는 얼마를 해야 되겠다. 지금 얼마 수입이 되었는데 이 수입 가운데서 자본으로 투자를 얼마는 해야 되겠다. 또 나머지기는 아무래도 우리 회사 직원들이 생활하는 데는 어떻게 생활 해야 되니까 얼마 들어야 되겠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ㅡ자기도 다 회사 직원이니까ㅡ그라고 난 다음에 나머지기는 요거 복음을 위해서 바쳐야 되겠다.’ 요래야 되니까 요 일이 십계명을 보고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성경 말씀을 보고 요대로 구별하는 사람도 있고 제일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 사람입니까? ○ 장로님. 십계명을 고렇게 딱 계산 대고 하나님 말씀 가지고 계산 대고 또 뭣 가지고 계산 대요? 뭐라 하노? 그래. 똑똑히 해야 되지. 영감 가지고 계산 대요.

영감 가지고.

이러니까, 고게 백분지 일이 맞으면 백분지 일 축복이 오고 백분지 십이 맞으면 백분지 십 축복이 오고 백의 백이 맞으면 백의 백이 축복이 다 온다 그말이오. 고 계산 맞은 대로.

그러니까, 고것도 계산도 ‘에, 뭐 씨를 심은다 하지마는서도 할 수 있는 대로는 내가 이 회사에 자본으로 투자하는 걸 좀 많이 해야 되겠다’ 요렇게 많이 하면은 고게 조금 삐뚤어졌다 말이오. 삐뚤어지면 축복이 덜 와요.

또, ‘이 복음을 위해서 바치는 거야 뭐 많이 바치는 거야 좋지 뭐. 많이 바쳐 보자.’ 다 바쳐서, 그거 양식은 뭐이냐 하면은 자기회사에 자본으로 넣어야 될 그게 다 양식인데 그거 안 하고 전부 다 심어 버렸습니다. 심어 버렸으면 축복 많이 받습니까? 어찌 돼요? 안 먹으면 죽어요 살아요? 저 ○ 집사. ○집사.

죽어요. 회사에 자본으로 투자해야 될 자본 투자 안 하면 회사가 망해 버려요.

이러니까, 예수 믿는 거는 모든 일이 다 이래 가지고 하면은 뭐, 우리의 몸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보십시오. 몸에 오만 여러 지체가 있는데, 요거는 요거만침 조거는 조거만침, 그거 조절이 돼서 강약과 권세와 또 그 필요성이 어떻게 다 골고루 균형이 돼 가지고 있는지, 이 눈썹 이것도 무시를 못 합니다. 눈썹 이것도 무시를 못 해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공평되게 했는지. 눈썹 이거 권세가 있거든.

‘무시할라면 나는 가 버릴란다.’ 이 눈썹 싹 가 버리는 날이면 탈이야.

그러니까 이거 자꾸 눈썹 이것도 대우를 해야 돼. 모두가 다 권세를 꼭 같이 가졌다 이랬어.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서 하면 우리가 당장에 이거 부자가 돼서 연보할 것이 많아 가지고 지금 이라겠는데 여게 삐끌어지고 저게 삐끌어지고 이러니까 그뭐, 복음은 많이 받았는데, 기도하면서 자꾸 그거 기도해요. 기도하러 가면 뭐하러 갑니까? 재독 듣는 것도, ‘보자, 일곱 가지 도적질, 오늘 아침에는 일곱 가지 도적질 여게 대해서 따져 보자.’ 이래 보면, 틀렸거든. ‘주님이여 요게 틀렸습니다. 요거 고치겠습니다.’ 그러면, 이 일곱 가지대로 이대로 하면은 회사 잘 됩니까 못 됩니까? 잘 돼요.

그러면 회사 직원들은, 직원들은 아주 호의호식합니까 굶어 죽습니까? 어떻게 해요? 한번 말해 보이소. 회사 사장 될 사람 말해 봐요. 인제 사장이 안 되지 뭐.

사장 그까짓 거 뭐 하구로 사장 돼? 저 ○○○ 집사님 한번 말해 봐요. 아주 잘 먹어야 됩니까 못 먹어야 됩니까? 그래 말해. 거기만 대답해. 잘 먹어야 돼? 잘 먹어야 된다, 그말 내가 똑똑히 모르겠다.

잘 먹는 거는 꼭 알맞게 적당하게 꼭 적당하게 먹는 것입니까 많이 먹는 것입니까? 잘 먹는 거 뭐입니까? 많이 먹는 것입니까 적당히 먹는 것입니까? 적당하게 먹는 거라. 그런데 너무 사원들만 잘 먹여도 또 안 된다 그말이오. 지금 이 구원과 바란스를 잘 맞춰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사원은 사원만치 잘 삽니다. 잘 사는 걸 어떻게 잘 사는 것인가? 잘 사는 것은 합당하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죽 먹을 때 죽 먹고 밥 먹을 때 밥 먹고 합당하게 사는 고게 잘 사는 거라. 많이 먹는 게 잘 사는 게 아니라.

과식하면 죽어요.

이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건 이런 거니까 기도하러 가면 자꾸 이걸 자꾸 생각해요.

이러니까, 자, 기도하러 가면은 부엌 설겆이 하는 사람이 부엌 설겆이가 잘 됩니까 부엌이 그만 엉망으로 그만 어지러워져 있습니까? 저 ○ 뭣이 어머니. 잘 되지.

기도하러 갔다가서, 산기도 기도하러 가니까 그 사람이 회사 사장인데, 회사 일이 밀립니까 잘 됩니까? 잘 돼야 돼. 밀리면 기도 잘 못 했어. 기도하면 모두 발라져.

‘아이구 이것도 잘못됐다. 이것도 잘못됐다.’ 막 그러니까, 안 되면 거기서 부득이 전화로 하든지, 기도하다 보니까 쫓아와. 와 가지고 이것도 저것도 이것도 저것도 다 고쳐 버리고 또 기도하러 가고.

이러니까, 기도하면은 회개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모든 범사에 잘못된 것을 고쳐서 바로 하는 이런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대해서도 바로 해, 사람에게 대해서도 바로 돼, 일에 대해서도 바로 돼, 물건에 대해서도 바로 돼, 가정에 대해서도 바로 돼, 자기에게 대해서도 바로 돼, 모두 다 바로 되니까 그러면 이 사람이 어떻습니까? 바쁩니까 수월합니까? 바쁩니까 수월합니까? 수월하다 말도 맞고 바쁘다 말도 맞습니다.

이라면은 우리가 과거에 못 하던 일 안 하던 일을 전부 챙겨서 해야 되니까 일은 더 많이 하지요. 바쁘지요. 바쁜데 어짭니까? 바쁘면, 뭐이냐? 과거에 놀면서 죄짓던 시간이 자꾸 없어지게 됩니다. 예수 믿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과거에 죄짓던 시간 놀던 시간, 이 사람 만나 가지고 중얼중얼거리다 보면 ‘아이고, 언제 한 시간 가 버렸네.’ 이래 테레비 보다 보면 `한 시간 가 버렸네’ 못쓰게 다, 못쓰게 죄 짓던 시간 삐뚤어진 그 시간이 자꾸 줄어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꾸 산기도하고 자꾸 예배 자꾸 참석하다 보니까 죽는 놈 뭐입니까? 죽는 놈은, 노는 시간 잘못된 시간이 다 죽어 버리고, 죄 짓던 일이 죽어 버리고 그거 전부 이용해 가지고, 그 폐물 이용, 악물 이용, 악물을 잘 이용을 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일은 몇 배나 더 하는 사람입니다.

산기도 가면은 그 사람이 살림도 더 잘 살고 일도 더 잘 하고 회사 일은 더 철저하고 모든 자기 직책은 잘하고 이러니까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형통해지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이라.

그래야 축복 되지. ‘뭐, 예수 믿으니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면 거름할 거 거름 안 해도 되지.’ 이거 안 된다 그거요.

어떤 사람이 이렇게 예수 잘못 믿었어. 잘못 믿고 떡 가서 가만히 보니까 보리 베러 가 보니까 보리가 그전에는 막 이삭이 이만침 기다랗고 했는데 이삭이 없거든. 혼자 있다가 ‘예수야 예수야 보리 대가리 다 어쨌노?’ 이라더라고.

그거 원망이라 말이오. 제가 안 해 놓고. 그런 예수는 소용 없어요. 꼭 바로 믿어야 됩니다.

이래서 어짜든지, 우리 축복 받는 거, 처음에 축복받는 거는 무슨 축복입니까? 담대히 말해요. 처음에 축복받는 거 무슨 축복입니까? 자신이 없다 말이오.

따라합시다. 처음에 받는 축복은! 세상 축복! 세상 축복을! 하늘나라 축복을 위하여! 투자해 가지고! 두번째로 받는 축복은! 하늘나라의 축복!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이라.

세상 사람은 세상 봅니까 하늘나라 봅니까? 세상 봐요. 세상 보니까, 이 세상 보니까 세상이 뭘 축복받아 잘 돼야 그 사람들이 ‘잘 되는갑다’ 하고서 예수 믿으러 오지 세상이 안 되는데 뭐 옵니까? 전도하러 가면 ‘여보시오. 당신이나 복 받으십시오.’ 양복 뻔들하게 입고 있으며, 그거 구질구질하게 이래 가지고 밥도 못 먹고 보니까 피부가 표가 나거든.

이러니까 ‘당신이나 복 많이 받고 좀 영양이나 실조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 옷이나 좀 사서 입고 다니십시오.’ 그러면 얼마나 코빵 맞았습니까? 헛일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 그런 것이 잘돼야 됩니다. 잘돼야 돼. 그러니까 이 세상 축복 받는다는 것을 주저주저 하지 말아요. 먼저 잘 믿으면 세상 축복 받아요.

그러면, 베드로가 제일 처음에 예수님 만나 순종해 가지고서 무슨 축복 받았습니까? 하늘나라 축복 받았소? 세상 축복 받았어. 세상 축복 받았는데, 말씀대로 하니까 세상 축복받고 보니까 ‘말씀대로 하면 되는구나’ 하는 요걸 깨닫고 보니까 이제 그 베드로의 욕심은 세상 축복에 있었소 하늘나라 축복에 있었소? 하늘나라 축복에 마음은 막 다 기울어졌다 말이오. 요게 예수 믿는 순서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증거할라 하는 걸 알맹이는 아직까지 증거를 못 했어. 그러니까 또 자꾸 와요. 오늘 저녁에 수요일날입니까? 오늘 저녁에 그라면 증거할까! 기도하는 거, 하루 삼십 분씩 기도하는 거 꼭 이거, 요거 삼십 분 기도 하는 거는 자기 미래를 위해서, 앞으로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독침을 가지고 ‘네 이놈 예수 믿으면 독침 찌른다’ 또 예수 믿는다고 막 뚜드려 팰 때 말이오. 고문과 고형으로 뚜드려 팰 때 그때 ‘아이구, 내가 그라면 예수 안 믿겠습니다.’ 그런 망령 부려서 일생 준비한 거 헛일하는 그런 사람 되지 안하고, 그럴수록이 말이오.

뚜드려 맞을 때에 ‘아야’ 하면 돼요 안 돼요? `아야' 하면 돼요 안 돼요? ‘아야’ 하면 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뚜드려 패고 막 이래 고문과 고형을 할 때 ‘아야’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돼요. `깽' 그러면 져 버려요. 알겠소? ‘깽’ 그러니까 고만 그만 져버려요.

그 큰 개가 이래 뭐 작은 거 막 물고 이래 흔들어요. 막 이래 흔들고 이라니까 ‘그놈 개 참 좋다. 힘 세다.’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판결 났습니다.’ 하니까 ‘그러면 저 큰 개가 이겼지요?' `아니 작은 개 저게 이겼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큰 개가 깽 그랬습니다.' 큰 개가 깽 그랬다 해. 깽 그라면 그만 진대요. 깽 그러니까 고만 나눠 버려요. 조그만 그게 물려 돌아다녔으나 깽 소리 안 하고 항복 안 했다 말이오. 저놈은 한번 무니까 그만 깽 거려 항복했다 말이오. 그만 져 버렸어.

예수 믿는 사람이 장기간 고문할 때에 할 때에 ‘아야’ 하면 헛일이라. 그때 따라 뭐라 해야 합니까? 주여! `아야' 하면 안돼. 아프거든 주여! 아프거든 주여! 주여! 주여! 이거는 암만 해도 괜찮아요. 주여! 주여! 그래야 돼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 구원론/ 로마서 1장 16절-17절/ 860702수새 선지자 2015.10.25
535 구원론/ 마태복음 13장 14절-16절/ 870609오후교역자회 선지자 2015.10.25
534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 요한복음 20장 19절-23절/ 880403주전 선지자 2015.10.25
533 구원과 율법과의 관계/ 마태복음 5장 17절-20절/ 890218토새 선지자 2015.10.25
532 구원과 승리 방편/ 마태복음 4장 5절-11절/ 860807목후집회 선지자 2015.10.25
531 구원과 멸망은 항상 언제 어디서나/ 누가복음 21장 34절-38절/ 830928수새 선지자 2015.10.25
530 구원과 멸망/ 베드로후서 1장 1절 / 840401주새 선지자 2015.10.25
529 구원, 두 신앙 노선/ 출애굽기 16장 21절-25절/ 830401금새 선지자 2015.10.25
528 구원, 두 신앙 노선/ 창세기13장 8절-13절/ 1983. 5. 3. 화새집회 선지자 2015.10.25
527 구원 잊어버리면 헛일/ 에베소서 6장 10절-20절/ 871118수새 선지자 2015.10.25
526 구원 이루는 방편/ 디모데전서 4장 1절-5절/ 1977년 4공과 선지자 2015.10.25
525 구원 역사의 근거/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1977년 48공과 선지자 2015.10.25
524 구원 순서/ 로마서 1장 16절-17절/ 860702수야 선지자 2015.10.25
523 구원 방편 2가지/ 시편 91장 2절-3절/ 880521토새 선지자 2015.10.25
522 구원 도리의 기준/ 로마서 1장 18절-23절/ 890425화새 선지자 2015.10.25
521 구원/ 베드로후서 1장 4절-11절/ 1980년 28 공과 선지자 2015.10.25
520 구원/ 베드로전서 1장 5절-7절/ 1980년 37 공과 선지자 2015.10.25
519 구원/ 베드로전서 3장 19절-22절/ 820122금야 선지자 2015.10.25
518 구원/ 베드로전서 3장 20절 -22절/ 801110월새 선지자 2015.10.25
517 구원/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810415수야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