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하나님의 사랑

 

1988. 4. 3. 주일오전

 

본문 : 요한복음 20장 19절-23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주일은 특별히 세계의 모든 기독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그  주일로 행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대속하신 구원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서 잘 알고는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의 실상을 받아 가진 자들은 희귀치 아니하냐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유래를 간추려 말하면 영원 홀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시지 아니하시고 또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만이 홀로 계실때에 하나님의 뜻으로  작정한 것이 있으니 곧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하시겠다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선택은 곧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이 선택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시고 이 선택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홀로  영원을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 홀로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요 또  단번에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그 방편과 과정들에 대한 영원한 예정을 하신  전지하신 하나님입니다.

 전지의 지혜로 예정하신 것을 홀로 이 일을 영원히 성취해 나가시는 전능을  가지신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보존하시고 섭리하시면서 이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우리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든 잘못의 값으로 영원히 멸망받는 이 멸망을 대신  받으셔서 우리의 멸망을 다 없이 해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이 정하신 이 공심판에 심판법인 하나님의 입법의 이  완전법을 우리가 행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이 어려움을 다 행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하나님 법을 다 지킨 자로 하나님의 공심판에 통과된 자로 이렇게  우리에게 칭의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원수의 문제를 당신이 친히 대신 화목의 제물이  되셔 가지고 우리들을 자존자이신 대주재자이신 하나님과 화친의 부자의 이  친교를 가지도록 해 주셨습니다.

 또, 이런 관계를 이런 배경을 만드시고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도록 완전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 우리를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셨습니다. 또 영원히 살되 범죄하지 안하고 진리로  하나님을 상대하여 영생하고 영감으로 하나님을 상대하여 영생하는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 이뿐 아니고 우리들에게 세 가지 영광된 직책을 주셨으며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영원한 중보로 하나님과 피조물의 그 화평한 화합의 중보의 역사를  우리에게 성직으로 주셨고, 또 모든 피조물을 복되게 하는 생명의 길을  피조물들에게 알려 주는 선지직을 주셨고, 모든 피조물들이 이 하나님에게  배치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일치되는 행동을 하게 하는 왕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온갖 구비한 이 영광된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인 이 무한한 배경이 있게 됐고, 또 우리는  영원히 정죄받지 아니할 이 진리로 영감으로 영생하는 이 생명을 가지게 됐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영계와 물질계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될 때에  거기에서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으로 이 영광스러운 직책, 모든 피조물 어느  하나도 불만하지 않을 수 있는 이런 영광스러운 이 직책을 우리에게 맡겨 주어서  이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지금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어떠하신 주님이라는 것을 이 시간에 여러모로  많이 증거를 했습니다. 이분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으로서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고 구비하고 온전한 이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써는, 이제  증거한 이것만으로써는 우리는 진정코 깊은 만족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것뿐이라면 우리는 진정한 깊은 만족을 가지고 아무런 깊은 속까지 그 쓴  뿌리의 둥치가 없는 안팎에 완전한 평강의 구원과 만족의 구원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비유가 될는지는 모르지마는 하나 비유를 한다고 하면 어떤 주인이 새장에다가  새를 기르는데 그 때에 대해서 온갖 정성을 다 들여서 사료를 구비해 주고 또 그  모든 거처할 곳을 다 편리하게 어떻게 자유롭게 구비하게 해 줘서 그것이 자연의  새로 공중에 날아다니면 일 년에 새끼를 한 번 밖에는 치지를 못하는 그 새라도  원청간 그 주인이 그 때에 대해서 정성을 들이고 모든 면이 부족함이 없이  그렇게 구비하게 풍부하게 해 주니까 새가 일 년에 사오 차례 그 새끼를 칩니다.

그러니까 자연으로 다니는 데 비해서 참 얼마나 그 만족할 수 있고 구비한 그  대접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새를 만일 주인이 새장에서 내어놓는다고 하면은 그 새는 날아갈  것이고 날아가는 그 새를 따라가서 아무리 오라고 할지라도가면 갈수록 달아나지  오지를 안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뭐인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만 들어도 악어라는 그  악어는 짐승 중에 모질고 독한 짐승입니다. 보기도 흉합니다. 저도 악어를  동물원에 가서 봤는데 아주 흉합니다. 그러고 얼마나 독한지 그 입에서는 불이  나옵니다. 만일 쇠덩이라도 삼키면 그 속에서 녹아져 버립니다. 그런 독한  악어니까 모든 동물들이, 다 싫어합니다. 이래도, 그 악어 새끼는 유순한  동물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도 유순한 동물들에게 가지 안하고 제 에미 그  악어에게로 가 가지고서 가장 만만하게 보금자리 치고 삽니다. 그 이유는  뭐인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에미 악어가 새끼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 그 모든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사랑 그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모든 데보다도  그 큰 에미 악어에게가 제일 좋고 평안하고 만족하기 때문에 그리 찾아가는  것입니다.

 또, 새장에 있는 새가 온갖 것을 구비하게 해 주지마는 그 속에 참으로  평가적인 아가페의 그 사랑이 없고 그것은 하나의 제 영리를 위한 기름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관상을 위해서 기름이지 그 새자신을 위해서 사랑하는  아가페적인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는 그 자리를 떠나고 그 주인에게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부활절로 지키는데 이 부활주일은 주님이 어떻게  크신 분으로서, 어떻게 그 존귀한 분으로서, 어떻게 부요한 분으로서, 어떻게  성결한 분으로서 우리 위해서 어떻게 희생했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  되심에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희생하셨고 그 희생은 우리들이 타락한  인간의 지식으로써 낮아지셨고 가난해지셨고 죽어 주셨으니까 그 사랑은 참 큰  희생이라 하는 것을 인정을 큰 희생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지마는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윈해서 영원한 피조물이 되셔서 피조물을 벗지 안하고 창조주가 영원히  피조물되어 우리와 영원히 동거 동행하는 이 사랑은 이해를 못 합니다.

 오히려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참 다행이다 행복이다, 예수님이 아주  행복을 취했다.’ 이렇게 생각하지 우리를 위해서 고난 받은 고난이라 하는 것을  느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더 큰 희생입니다.

 그러면, 우리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희생해 주셨고 또 우리 위해서 모든것을 다  투자해 주셨고 영원히 우리와 항상 동거 동행하시고 또 그분은 전지자시요  전능자시요 완전자시요 성결한 지극히 거룩한 자이십니다.

 이렇다 할지라도 그분에게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평강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분의 성결을 대할 때에 우리는 두렵고 떨리고 졸리기만 할 것이고, 그에게  전지를 우리가 상대할 때에 우리는 심히 조급해서 불안해서 살지를 못할 것이고,  그분의 능력을 우리가 상대하면 두려워서 억눌려서 견디지를 못할 것이고,  그분의 완전이 좋지마는 그분의 완전을 우리가 완전만 상대한다면 우리는  그분에게 견디지를 못할 그 자리가 가장 불안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이 구속이 참 구비하고 무한하고 영원하지마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다 하나의 새장 안에 들어  있는 그 새와 같이 우리에게는 고통만 되어지고 불안만 되어지고 억눌리기만  억눌려지지 우리에게 깊은 평강이나 즐거움이나 만족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행하신 일이 수없이 많고 구비하지마는  그중에 제일은 그분의 사랑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서 영원히 고난을 당해야 되겠고 불안을 받아야 되겠고  항상 웅키면서 고난 아닌 고난, 불안 아닌 불안, 형벌이 아닌 그 형벌 자리에서  살 수밖에 없는 구속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를 구속하신, 사활의 구속하신  것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이렇게 가난해지셨고 사람되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이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상 더 무엇을 요구할 것이 없는 만족한 대속의 구원을 우리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악어가 그 에미 악어를 가장 모든 존재보다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사랑의 능력이요 또 그 새끼 악어가 에미 악어의 사랑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랑을 가졌다 할지라도 믿지 못하면 거기에는  사망뿐이지 생명이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모든 동물들이나 식물들이 하나님이 주신 본능적인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랑이 끊쳐지기 전에는 그들은 그 자리에서 만족을 합니다.

 조그만한 뭐 이런 짐승 쥐새끼라도 그 쥐새끼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사랑이  끊쳐지기 전에는 그 쥐새끼는 어느 구멍보다도 에미의 그 품속이 가장 만족하게  됩니다. 아무리 흉악한 맹수라도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랑이 계속될 때에는 그의  가장 좋고 평안한 보금자리는 그 사랑을 가진 그 에미의 처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큰 사랑,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온갖 이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이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충만해지면 이 사랑이  끊어지기까지는 우리는 유일한 만족한 곳이 그리스도 안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구할 것이 많지마는, 구할 것이 많지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서 하나님의 사랑 속에 나로 하여금 머물고 살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이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뭐 참 소유로 차지할 것도  많고 필요한 것도 많고 영광도 많고 지위도 많고 존귀도 많습니다. 모든 것이  많지마는 그분의 사랑 없는 그곳이면 우리는 그곳이 하나의 지옥이요 하나의 그  무형의 감옥이 되고야 말지 우리에게 복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 내가 있지마는 서도 사랑속에 내가  있는 것을 모릅니다. 스스로 알 자가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속에 있는 것을 아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속에 내 자신으로 살게 해 달라는 기도와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무한하지마는 그 사랑을 알지 못하면 믿지 못하면 그  사랑이 내게 효력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에게 알게 해 달라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제일로 중요하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해 달라는 것이 둘째로 중요하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 수 있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을 구하는 것이 셋째로 중요한 줄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을 때에 우리에게는 더 원할 곳이 없고 더 찾을  것이 없이 우리는 만족에, 만족에 충만으로 우리는 행복을 누리고 행복을 가진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만물을 대할 때에, 만물을 대할 때에 그 만물을 우리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우리가 나와의 관계를 바로 가져 볼라고 애를 씁니다. 애를 쓰나  그들은 항상 계속해서 도피할라고만 애를 씁니다. 그것이 나를 찾아오지 안하고  나는 그를 따라다니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셔서 이 사랑으로 살게 한다면, 이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 아가폐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정욕적 사랑이나 그런  모든 사랑이 아니고 아가폐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어서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된다면 만물은 다 우리에게 와서 깃들일 것이요 보금자리 칠  것입니다.

 이래서, 요한1서 4장에 말씀하시기를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말씀했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그러기에, 땅 위에는 사랑이 많지마는 이 사랑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가적인  사랑이 아니고 다 자기에서 발원한 이기주의요. 사욕적이요 악이 중심된, 자기가  중심된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에서 다 불안을 가지고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또  그 사랑의 결과는 다 사망화되고야 맙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과 그 사랑을 믿는 그 믿음이  우리에게 우주와 모든 존재를 다 차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요 그것이 가장 자기가  부요 하게 행복되게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또, 우리가 모든 피조물에게 다 환영을 받고 사모의 대상이 되고 모든  피조물들이 다 나를 좋아하고 기뻐하고 서로 만족하고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살 수 있는 사랑의 존재가 되기를 우리는 기도하고 힘써 노력해서  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 이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것을 원합니다.

원하는데 위험성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쉬지 않는 악령이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사랑 속에 살고 사랑을 가진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는자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좋은 것만치  무서운 위험성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죄가 침입하면, 죄가 침투하면 다 그 사랑은 사망으로 변화되고  맙니다. 이 사랑에는 부절히 죄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사랑에서 죄를  방어하는 여기에 방어선을 단단히 두지 안하면 다 실패합니다. 나도 거기에서  많은 실패를 한 사람 중에 경험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의를 보존하지 못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만일 의를 보존하지 못하면  그 사랑은 즉시 무서운 사망화되고 맙니다. 죄를 용납하면 무서운 사망화되고  맙니다.

 거기에서 또 한 가지, 이 사랑으로 항상 하나님 한 분만을 상대하여 그 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면 그 사람이 있는 곳에는 만물에 평강이 있을 것이요 천국이  있을 것이오. 그것이 있는 곳은 전체가 다 평안이 있을 것이요 만족이 있을  것이요 다 안심하고 위로하고 기뻐하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는 이 시간에 아무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어야  하겠고, 아무래도 이 사랑을 가지고 만물을 상대해야 하겠고, 이 보배로운  생명이며 사랑인 여기에는 무서운 세 가지, 죄에 대한 방어력이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되겠고 항상 의를 고수하는 이 고수가 있어야 하겠고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이 원인자이신 그분에게 동해서 그분으로 동하고 정하는 이것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상관이 없고, 심판에 두려움이 없다  했습니다. 두려움을 내어 쫓아서 두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존재는 다  환영하고 사모의 대상이 되고 만족해서 나는 그로 더불어 만족하고 그들은 나로  더불어 만족할 수 있는 피조물로서 이렇게 존영스러운 영광의 참 생명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장 으뜸되는 영원히  하나밖에 없는 영생의 생명길을 창조하셨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우리를 경성시켜 주시고 참 주님이 주시는 생명과 평강의 만족의 천국을  알려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 안에서 살지 못해 항상  악령으로부터 오는 늘 불안과 사망에 억눌려 살고 있는 저희들입니다. 주님,  이제는 우리들에게 이 말씀 주셨사오니 깨어서, 사랑 없는 가정 사망이요, 사랑  없는 부부 사망이요, 사랑 없는 형제 사망이요, 사랑 없는 친구, 사랑 없는  교우, 사랑 없는 직장, 사랑 없는데는 다 이는 사망뿐이요 사랑은 생명과 평강이  되는 것을 주께서 말씀하였사오니 이 선물로 우리에게 가득 채워 주사 주님의  사랑을 앎이 자라가고 믿음이 자라가게 하사 이로 인해서 우리의 평강의  보금자리를 바로 찾아 살게 하시고 모든 피조물 이웃을 대할 때에 주님의 주신  이 사랑의 사람이 되어 살게 하사 어데서든지 평강의 천국을 이루며 모든 존재로  화친하여 하나 될 수 있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제는 사랑 없는 미움의  세계를 완전히 원수로 삼아서 이것을 완전히 파괴 파멸 완전히 뽑고 이제는 이  사랑으로 심고 건설하는 이 시간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처음으로 나온 사랑하는 형제들도 주님께서 저들에게 주의 사랑 깨닫게 하사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어데서든지 염려 없는 평강가운데 살 수 있는 이 좁은  생명길을 알아서 이 생명 세계에서 만족하고 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다시 주님 사랑 떠나 세상 모든 쓸쓸하고 이 사나운 거리에 나아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  뜨거움이 저희들 심장에서 항상 역사하여 부절히 뜨겁게 역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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