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8일 화새집회 

 

본문 :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 위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그에게 대해서  결론하시기를 '네가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줘라 그리하면  하늘에 네 보화가 많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는 그 부자가 자기가 돈이 많은 사람이라 예수님이 하늘의  보화가 많은 그 방편을 말씀을 하실 때에 기쁘지 안하고 도리어 근심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 뒤에 제자들을 보시고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때에 그 말을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서 고  토막은 끝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고 밑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요게  대해서 다른 사본에는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그렇게 번역되어 있는 사본들도 있는 것을 여기에 기록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에게 좀 더 참고가 됩니다.' 내나 이렇게 기록했든지  저렇게 기록했든지, 같은 뜻을 가지고 있기는 있지마는서도 밑에 고것을 참고해  보면 거기에 대해서 좀 뜻을 알기 쉽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정확 무오하다.' 이렇게 말씀하시 이  성경 말씀은 원본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을 감동 시켜서 직접  기록한 그 말씀이 원본인데 원본은 한 권뿐입니다. 그 원본을 보고 성경학자들이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베낀 붓으로 베낀 그 책을 가리켜서 사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원본은 한 권뿐이요 사본은 권수가 많습니다. 그 사본을 보고  또 베끼고 베껴서 우리에게 온 성경이 성경이요 또 많은 성경으로서 세상에  퍼졌습니나, 또 그 성경을 이 나라 말로 번역하고 저 나라 말로 번역해서 여러  나라에 그 나라 말로 번역을 해 가지고 전해서 온 세계에 지금 많은 성경책이  전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베낄 때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베끼고 저렇게 베낀, 서로 베낀 것이 같지  안하고 다른 그런 절수가 가끔 있습니다. 그 베낄 때에 그 학자들도 그게 그만  누가 착각을 했든지 착각을 해서 같지 않게, 베끼기는 베꼈으나 베낄 때에 뜻을  달리하지 안하고 뜻을 보고서 그렇게 베낀 사람도 있고, 또 자기는 문자에다가  중점을 두고 베낀 사람도 있고 그런 차이인지 어떻게 좀 차이가 있어서 다른  사본에는, '어떤 사본에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 이렇게 사본되어 있고 어떤 사본에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 이렇게 사본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둘 다  뜻은 같은 뜻입니다.

 그렇게 부자가 근심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 얼마나 어려운고 하니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 그렇게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부자들이 심히 근심하고  놀랐습니다. 놀란 그 이유는 약대로 말하면 이 큰 말 만한 짐승인데 그렇게 큰  짐승이 어떻게 그 바늘귀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바늘귀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거는 뭐 어려운게 아니라 아주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 하는 그 말씀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심히 놀라고 근심하면서 '그러면 구원 얻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렇게 모두 근심을 하고 놀랐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다시 말씀을 했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것은 사람으로는 절대 안 된다.'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는 절대 안  되지만 하나님으로는 할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밤에도 말씀한 거와 같이 이 한 부자가 주님에게 와 가지고 서로 대화를  했고, 또 대화 중에 이런 문제가 나와 가지고 말씀하게 됐고, 그런 가운데에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 우연히 그렇게 그런 말씀이 됐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이 주님이 하신 말씀을 다 기록하려고 하면 세상에도 그 책을 둘 만한  곳이 없는데 온 세상에도 다 둘 수 없을 만한 그런 많은 양 가운데에서 간추려서  이 신구약 육십 육 권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다른 이종교에서 기록한 그런 책은 사람들이 기록할 것이  없어서 지금 기록을 얼마 해 놓고 또 세월이 지나가면 그 기록을 좀 더 보태서  얼마 기록을 하고 또 이 사람이 나 가지고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을 기록하고 또  그 후에 저 사람이 나 가지고서 말하면, 그것을 또 기록하고 그렇게 해 놓은  것이 모든 이종교들의 그 경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다 기록할라 하면 온  세상에도 두지 못할 만한 그런 수많은 내용인데 그 내용 중에서 간추려서  하나님이 신구약 육십 육 권을 우리에게 기록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을 녹음했으면 녹음된 것이 그렇게 많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의 도리를, 그 도리 안에 들어 있는 참 그  수많고 복잡한 그 내용은 온 세상에도 다 두지 못한다. 그런 이 구속의 도리의  내용은 온 세상에만 못 둘 것이 아니라 이 우주에도 다 못 둡니다. 그러한  복잡하고 세밀한 진리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간단 명료하게 기록을 해서 육십  육 권에 간추려서 기록해 주시고, 육십 육 권 기록해 주신 요 말씀 안에  성령님이 내재하셔, 가지고서 영감이 그 안에 있는 것을 다, 이 성경을 읽고  듣고 확신을 가지고 알려고 하는 자에게는 이 성경 안에 내재해 있는 성신의  감화가 그 사람에게 깨닫게 해 주셔서 그 사람이 노력하는 대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대로 깨달음이 각각 달라 가지고서 어떤 사람은  예를 들면 이 신구약 성경 안에 들어 있는 양이 이 신구약 성경에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 문서의 양의 몇 배 깨닫는 사람도 있고 몇천 배 깨닫는 사람도  있고 뭐 몇만 배 깨닫는 사람도 있고 그 무한히 깨닫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가 논리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양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육십 육 권을 간추려서 기록해 주신 이  육십 육 권 안에 명문 되어 있는 이 말씀인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이 말씀을 볼 때에 이 말씀은 수많은 양 가운데서  우리에게 참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강령적으로 간추려서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말씀이라 하는 것도 기억을 해야 되고, 또 이 말씀을 보고 이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자기가 밝게 바로, 세밀히 깨닫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에게는 성신의 감화가 감동시켜서 이 안에 문서 안에 은밀히 들어 있는  하나님의 내재적 영감, 은밀 계시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러면, 우리 사람들의 그  심리 하나만 말해도 심히 복잡한데. 심히 복잡한, 그 입으로 다 표현 못할 만한  그렇게 많은 양이나 그 많은 양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세밀히 알려서 자기 구원을  다 이룰 수가 있다 하는 이 소망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에. 이 문서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신 문서 계시 안에는 우리가 측량  못할 무한한 영감 계시가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나타난 문서 계시의  이 입문을 통하지 안하고 다른 그 입문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영감 계시를 받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 문서로 계약되어 있는 이 문서 계시를 자기가 통해서 그  안에 있는 은밀한 그 영감 계시를 자기가 찾아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거기에 참  무한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무한자가 계시한 무한한 계시를 우리 유한자는 다  그것을 들어 알래야 알 수 없으나 우리에게 필요 있는 양은 다 모자람이 없이  깨달아서 자기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이 문서로 기록한  말씀으로 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문서로 기록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수많은 영감 계시를 내포한 이 계시로서 강령적으로 우리에게 기록한 계시요 또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사이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거리 먼 우리들로 하여금  접해서 하나님의 이 계시를 알기에 가장 쉽고 깨닫기 쉽도록 이 문서 계시는  우리에게 기록돼 가지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문서 계시를 듣든지 보든지 할 때에 이것으로서 다라고  만족을 가져서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고 이 문서 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고저 하시는 구원에 필요한 구원 도리는 문서 계시로 그 양을 말하면  비교 못할, 이 온 세상에 두어도 다 둘 수 없을 만한 그런 세밀한 계시의 내용이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기 쉽고 접하기 쉽고 또 이 문서 계시를 잡고  들어가면 무한한 그 계시를 향하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  들어갔든지 또 거기에서 끝이 나지 안하고 유한이 무한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어디까지 가도 또 새로 깨달을 것이 있고 또 알 것이 있고  이렇게 되어 있는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이 문서 계시에 대해서 궤휼을  부리면 안 됩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가 자기가 '하나님의 문서 계시인 이 율법으로서는 하나도 책망  받을 것이 없이 다 지켜 행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성경 말씀대로  실천 실행을 한 사람이요 또 말하기를 '내 마음에는 이것은 잘못됐다 마음에  가책되는 것은 하나도 없이 그렇게 깨끗하게 다 회개를 했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은 하나도 남겨 두지  안하고 다 회개해서 깨끗하게 회개를 했지만 내가 이만 하면 다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아주 참 그저 봉사와 같은 조경과 같은 그런 심령이 어두운 사람이기  때문에 어두운 심령으로서는 가책할 것이 없이 다 회개를 했지만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 가지고 심판을 받을 터이니까 내가 지금 깨닫지 못해서  회개하지 못하는 것은 심히 많은 줄을 안다.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그날까지 떨면서 주님이여 내가 지금 아직 고치지 못한 것 깨닫지 못한  것 이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까지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내가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하시고 알지 못한 것을 알게 해 주셔서 나로 하여금 주님의 심판  앞에 설 때에 남긴 것이 없이 회개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는 그런  간구의 그 떪으로 산 것을 성경 기록에 보면 볼 수가 있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마음에 눌리고 내가 깨닫지 못해서. 깨닫지 못한  것이 많다. 알지 못한 것이 많다. 고치지 못한 것이 많다. 내 지식으로 내  심령의 눈을 가지고 보는 데는 고치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이 아는 대로는 다  고쳤지만 나는 하나님이 아시는 데에 말할 때에 비교할 수도 없는 그것이요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 무한하심의 지혜를 가지고서 나를 심사하실  터이니까 내가 그때에 어떤 그 흠점이 드러날런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내  마음이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자꾸 눌리고 있다.'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짐은 짊어지면 처음에는 가볍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꾸 눌리는 것처럼 사도  바울이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갈수록 자꾸만 자기에게 어려운 문제가 오고 근심  걱정이 되어 지는 그 근심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커진다 하는 것을 말을  했습니다.

 또 그라고 그가 젊을 때보다 사도로 지냈고 또 그분은 참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해서 사도들 중에도 아주 지혜로서는 뛰어난 그런 지혜를 가지고 실천한  사도인데 차차 나이가 많아 갈수록 자꾸 자기에게 고치지 못한 것과 아직도  얻어서 힘있게 강하게 되지 못한 그런 아직까지 미비된 점. 아직까지 부족한 점,  아직까지 고치지 못하고 삐뚤어진 점 그런 것이 많은 것을 가리켜서 갈수록 자꾸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다. 나는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자와 같이 참 아주  유약한 자이다.' 하는 것을 간증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고 하니 자기가 깨닫는 것이 이 종교 모양으로 끝이 난 것  같으면 하지만 끝이 나지 안하고 자기가 또 깨달으니 또 깨달음에서 새로  깨달음에서 보면 아직까지도 새로 고치지 못한 것이 있고 또 새로운 깨달음에서  보니까 아직까지 갖추지 못한, 구비 못한 것이 있고 또 아직 도 그 구비한 것도  양적으로 볼 때에 그 양이 부족한 것이 있고 이러기 때 무에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자와 같다 또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자꾸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신구약 성경 말씀은 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또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입니다. 영생. 이 성구는 이  영생을 주시고 저 성구는 저 영생을 주시고, 또 이 성구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고 저 성구는 하나님의 저 사랑을 주시고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신 그 사랑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또 하나님의 온갖 그 은혜가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하나님의 주시는 그 지혜가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능력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많이 아는 사람, 많이 알고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이렇게 복종하는 사람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많이 알고 많이 믿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요 영생을 많이  가진 사람이요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를 많이 얻은 사람이요 전능의 능력을 많이  얻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사랑과 지혜와 은혜와 능력이 얼마나 되는가? 무한합니다.

무한합니다. 무한한데. 그 무한한 그 지혜는 그는 완전한 지혜요 영원히  멸해지지 않는 지혜입니다. 완전한 지혜요 전지한 지혜요. 또 그 능력은 전능한  능력이요, 또 그 사랑은 영영한 사랑이요, 또 그 말씀이 주시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요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서 당신 혼자 계시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당신이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오늘까지  보존하시고 또 그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가감시키고 합하고 나누고 이렇게 조화를  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운영하시고 이렇게 계십니다.

 그러면, 모든 존재가 다 이 한 분 하나님에게서 다 나왔습니다. 또 모든  움직임이 또 이 하나님 한 분에게서 다 나왔습니다. 또 모든 지혜, 악한 지혜  선한 지혜, 또 의로운 것, 또 죄 모든 것 전부가 다 하나님 한 분의 그 창조로써  다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 혼자 계셨는데 하나님 혼자 계시는 이 한  분에게서 모든 것이 다 지음 받아 가지고서 생겨서 나온 것입니다.

 나온 것 가운데에는 하나님께서 두 가지로 해서. 이 나온 것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에게 따라서 움직여지는, 피동하는 그런 존재가 있도록 하나님이 섭리를  하시고, 또 하나 섭리는 이 자존자시요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고 모든  움직임의 근원이 되시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신 이분을 딿지 안하고 이분에게  속하지 안하고 이분이 지어 놓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향하는 그런 것들이 있게  하시고, 이 근본이신 이분을 향하여 거기에 따르고 거기에 속하게 하시고 하는  이 두 가지로서 하나님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 섭리하시고 관리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말씀을 들을 때에 그저 처음에 들으면 깨닫지 못하고  여러분들 속에 있는 것과 이 하나님의 도와 대립이 됩니다. 대립이 되어서 안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한 번 접한 자는 그 다음에 들으면 또 좀 달라지고  또 그 다음에 들으면 또 달라지고 이래서, 이 다음에는 언젠간가 어떤 사람이  이런 것을 증거 할 때에는 여러분들 속에 이미 증거 받은 그 증거가 속에 있기  때문에 이 증거를 받을 때에 과연, 아멘이 되고 그렇게 깨달아지는 것은, 자기가  이미 받아 가지고 자기 속에 그 도를 활용하지를 안하고 그 도에게 자기가  피동되지 안하고 했기 때문에 그 도를 자기가 잊어버린 그것 때문에 역사하지를  못하고 있다가 그 뒤에 다시 어떤 사람이 말하니까 깨달아져 가지고서  새로와지는 것이지 그것이 들을 때에 깨달아지지 안하고 한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의 말씀이요 전능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그 말씀을 전했으면 전한 그 말씀은 돌아가지를 않고 전해진데 그 안에서 지금  그 사람이야 알든지 모르든지 듣든지 말든지 그 속에서 이 말씀은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주관을 표준하기 때문에 자기 주관이 들어서  주관적 역사가 있으면 깨달았다 알았다 이라지만 주관적 역사가 없이 객관  역사가 와 가지고서 역사를 할 때에 주관은 전적 부인을 해서 반대를 해도 이  말씀의 능력은 더 크셔서 그 속에 들어가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좌우에 날선 검의 말씀이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거는 상대방이 환영을  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의 능력이 그를 찔러서 그 속에서 이 말씀의  능력으로 죽일 것은 죽이고 다 뽑을 것은 뽑고 그라고 나면 이제 그 사람의  주관이라 하는 것이 변화가 되어 가지고 그 말씀이 이해가 되고 그 말씀에  속하게 되고 그 말씀을 힘있게 되고 그 말씀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런 신앙  행위가 비로소 오래 후에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고 당신만 계시는 거기에서 당신이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다 만드셨습니다. 모든 것을 만드셨는데, 혹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좋은 것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나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시지 안 했다.' 이렇게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기독교 정통에서도 ' 하나님은 다 좋은 것을  만드셨다. 좋은 것을 만드셨다.'  '그러면, 죄는 누가 만들었느냐? 죄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 그러면.

모든 존재는 그 옳은 것 삐뚤어진 것, 좋은 것 나쁜 것 이것을 세상에서  갈라놓으면 반반은 안 될지라도 뚜렷이 둘이라고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 근원은 하나이냐 둘이냐 그 근원이 하나이냐 둘이냐 하는  것을 따지면 근원은 하나라 해서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하나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일원론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모든 근원 이 하나라 일원론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선은 하나님이 다 지으셨지만 죄, 아주 악하고 못 쓸 것 그런 것도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말이냐? 하나님이 짓지 안했다, 그러면 원인은 하나님 한  분이 아니고, 일원이 아니고 이원이라.' 그래 가지고서 이원론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래서. 일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통 신자들이요, 정통 학자들이요. 그런데.

일원을 주장을 하는 이 정통 신앙가들이오 학자들이 모순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나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시지 안했다. 그러면, 선의 원인과  악의 원인의 이원이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러나 일원은 일원이다. 일원은  일원이지만 악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시지 안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순된 그  정통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라면서 말하기를 '그저 우리는 성경 밖의 것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 하나님이 죄를 지으셨다 말씀하지 안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인류 시조의 타락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었느냐 안 들었느냐  하는 데에 가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신 것은 당신 단독이 주권 의지를  가지고서 모든 것을 다 혼자 예정하셨다. 그러면, 타락도 하나님이 예정을 하신  것이다.' 그러면 예정하신 것은 하나님이 예정만 하셨는데, 그 일을 그러면 만든  자가 책임 있고, 만든 이는 누가 만들었느냐?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주권  의지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그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 혼자 단독이  주권의 그 능력을 가지고서 모든 것을 다 성취 시키셨다.' 이렇게 결론을 지우는  것이 정통 신학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 문서로 되어 있는 이 문서만으로 전부를 생각하고,  문서만을 전부로 생각하고 '이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 문서 계시 외에는 믿을  수가 없고 문서 계시 외에는 우리는 연구할 필요도, 받을 필요도, 찾을 필요도.

구할 필요도 없다 이 문서 계시라는 이 계시의 이 테두리 속에 있고 이 테두리  밖에 나갈 것이 없다.'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정통 학자들로서  일원론을 말하면서, 또 주권론을 말을 하면서 이 죄에 대해서는 또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아니라 이렇게 하는 이 모순 속에서 들어 있으니까  언젠간가 진실한 사람이라면 이 모순 속에는 번민이 생기는 것이고, 모순 속에는  반드시 논리적 투쟁이 생겨지는 것이고, 논리적 투쟁이 생겨진다면 그  가운데에서는 무엇인가 어느 것인가 둘이 싸움에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  터이니까 하나는 남아 있고 하나는 없어지는 그 결말이 나올 것인데, 그것이  언제 나오느냐? 벌써 나와서 그것을 다 결정 지운 사람들도 있고, 아직까지  그것을 그저 머뭇거리고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논쟁점을 생각지도 아니하고  그것은 그저 부인해서 이 면으로 보면 일원론을 주장하지 만 저 면으로 말하면  이원이 되어지고, 이 면으로 말하면 주권을 말하지만 실상 자기네들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또 그것은 모든 다원론을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모순 모순  가운데에서 지체하고 악령의 유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알아 들려집니까? 이번에는 좋은 기회요 좋은 기회입니다. 오늘 아침에 찬송할  때에 ○○○ 목사님이, 찬송할 때에 참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들으실 수  있는 찬송, 우리 찬송하는 것이 찬송 한 장 할라 하면 몇 분 걸립니까? 한장이?  나는 한 삼 분 걸리는가 했는데 오 분. 걸리는 그런 찬송도 있습니까? 네.

그러면 오 분, 오 분 동안인데 오 분 동안을 그 찬송 가사에 맞추어서 자기  마음과 뜻과 성품과 욕심과 지혜와 모든 것을 다 합해 가지고 찬송 뜻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기가 어렵다. '뭐 오 분 동안이야 암만 어려워도  그거야 못 할까?' 이래 가지고 사람들은 시뻐보지만 '오 분 동안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대단히 좀 바로 해 볼라고 한 사람의 말입니다.

 이런데 이제 이번 집회에는 특별히 염불 잘하는 사람들이 등록한 그 녹음을  가지고서 하는 일이 있으니까 그저 우리 마음이 절로 갔다가 여기 왔다가. 여기  왔다가 절로 갔다가 자꾸 이렇게 그저 왔다 갔다 분주하게 이래 가지고서 분주한  가운데에서 이번 집회에 주님도 만나지 못하고 진리도 듣지 못하고 그만  그렇게들 되기 쉬울 것이고, 여기에서 싸와서, 내가 얼마나 거짓부리인가?  하나님이 모든 일을 주시는 것은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시험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은 어린이 날이라고 해 가지고 그 축하한다고 해서 운동장과 모든  데에서 모두 그 축하하느라고 야단을 했는데, 그것도 우리 어린이 성도들이  얼마나 주일을 잘 지키며 또 그저 얼마나 세상에 붙들리고 끌려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이 시험을 하시려 해 가지고서 그렇게 하신 것인데, 다른 데는  몰라도 부산은 바로 우리 교회에서 한 사백 미터 되는 거기에서 아이들 걸음으로  뛰어가면 한 삼 분이나 사 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가까운 곳입니다.

거기에서 새벽부터 궁창거리고 이렇게 아주 뭐 떠들고 꽝꽝거리고 이러니까  아이들 마음들이 마구 그리 기울어지도록 이렇게 새벽부터 시작을 합니다.

시작을 하는데, 아마 오늘은 이학 생들이 지금 많이 그리 가고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가졌는데, 가보니까 제가 주일학교 반사회 때에 그 발표한 걸  보니까 전주보다 이백 이십 이 명이 더 나왔읍디다. 그래 더 나와서 이거는 참  아주 기쁘다 해 가지고서 박수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는 돌렸습니다.

 그런 것이 다 하나님이 예정 안 하신 순서가 없고, 뭐 불신자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이 자연이나 이 모든 전체의 이 역사 세계에 새로운 전개가 되는 것  새로운 전개가 되는 것은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하나님이 예정하시지 악한  그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것이 하나씩 둘씩 그  순서대로 다 이렇게 전개되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개돼 나오는데, 그 순서대로 그것을 만든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예정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예정도 하나님 혼자 예정하셨고 또 예정해 놓은 것을  이렇게 실상으로 이루어 만들어 내는 것도 하나님 혼자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조브라운 생각을 가치고 볼 때에는 '이것은 기독교 박멸  역사다. 기독교를 멸하는 역사다. 또 기독교의 대립 역사다.' 이렇게들 좁은  생각으로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공산 사상이 점점 점령을 해서 공산 치하에는  참된 기독교인들이 머물 수 없도록 복음의 전도가 되지 안하도록 이렇게 역사를  하고 있는 이런 것을 보면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이 복음 운동에 반대되는  것이다. 또 그것은 하나님에 반대하는 것이다. 마귀가 하는 것이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영과 마귀 영이 이건 서로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들 생각을 해  가지고서 보이는 고 세력이 커지고 보이는 면에서 교회 세력이 가라앉고 이라면  '이는 그 신이 하나님보다 더 크다.' 사람들은 거기까지 타락하는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브라운 인간 주관대로의 생각하는 것이요 성경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모든 예정을 무엇 때문에 예정했느냐? 그 예정을 무엇을 위해서 예정을  했는지, 뭣하려고 예정했는지, 그 예정한 것이 뭐 하려고 예정을 했는지, 그렇게  모든 순서를 예정한 것이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예정을 하셨는지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십시다. 아는 사람 다 손 드십시오.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이 요렇츰  적어? 아는 사람이 요렇즘 적습니까? 또 놓으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하실라고 그렇게 세밀한 예정, 요게 개미 한 마리가 요게서 나왔다가 꾸불  꾸불 거리다가 여기에서 말라 죽는 것. 하루 살이가 오늘 나와 가지고서 요렇게  꼬물 꼬물 거리다가 하루 동안에 또 그만 말라 죽는 것 그것도 하나도 빠지지  안했어,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데도 어떤 사람은 '대체적으로만' 예정을 하셨지  그런 것은 다 예정하시지 안했다.' 그러면 또 새끼 원인이 하나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새끼 원인이 하나 나오게 되는 것이오.

 하나님께서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당신이 다 예정하셨습니다. 예정에 들지  않는 지극히 작은 그 움직임도 있을 수 없고 존재도 있을 수 없고 또 생산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전부 다 하나님 혼자 예정을 하셨습니다. 이걸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이걸 믿어야 돼요. 그저 '믿사옵나이다.' 하고서. 아이들  교과서에 말하기를 코끼리를 보고 어떤 사람은 코끼리 다리만 하나 만지고 '이게  코끼리다.' 코만 하나 만지고 '코끼리다. 코끼리는 기둥 같다. 뱀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신앙도 요 체계적인 신앙을 가지지를 못하고 이래 가지고 하나  기형적 신앙 그것만 가지고 날뛰는 것은 자기 딴에는 다른 사람과 고 면을  가지고서 대조를 해 보니까, 비교해 보니까 그 사람보다 제것이 크고 실하고  강해지니까 제가 잘 믿는 줄로 이래 알지 만 모두 이리 저리 치우쳐서 기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눈이 어둡고 세상을 모릅니다. 모든 것을 들으나.

들으나 모르고 보나 모릅니다.

 우리가 그런 기형적인 신앙을 가지지 말고, 우리는, 신구약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들어가야 될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지혜, 무한하신 능력. 무한하신 사랑,  무한하신 생명, 무한하신 영광, 무한하신 기쁨 뭐 그 종류 만 말해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심히 많습니다. 그 무한하심에 들어가는 입문은 하나도 빠짐이 없이  전부 다 신구약 성경에다가 다 그 입문을 내놨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하심에 들어가는, 무한하심을 받는 그 시발점이요,  시발점이요, 입문이요, 또 그 무한하심의 움싹과 같은 것입니다. 움싹. 움싹  말이오, 조그만한 움싹이, 바늘만한 움싹이 났지만 그것이 뒤에 자라면 이런  여러 아름 되는 나무가 되지 않습니까? 이제 비유하는 말이오. 움싹과 같고, 그  시발과 같고, 입문과 같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이 성경의 말씀을 우리가 첫째로서는 입문의 그 종류대로 문서  계시를 우리가 알도록 노력해야 되고, 문서 계시를 우리가 그러면, 의례히  그거는 예사로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수많은  지식들이 있는데 그 지식을 크게 분류하면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 지식이 두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종류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러면, 우리는 유한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지식을 다 알아야 되느냐? 아 하나님의 지식도 다 알고  사람 지식도 다 알고 두 가지 지식을 다 알 만한 그런 여유 있는 시간을 가졌고  그 여유 있는 그런 총명의 실력을 가진 것이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아니라.

 이래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질라고 해도 그저 이 문서 계시의 지식을, 이 입문,  입문을 다 알 정도의 시간과 총명을 가진 우리들이고, 또 인간 지식도 그것을 다  알라고 하면 그 지식도 그저 다 알기 어렵고 대층 알게 된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지식 가운데에 우리는 이런 자본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니까 두 가지 지식  가운데에 우리는 이런 자본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니까 두 가지 지식 가운데에  어떻게 알아야 되겠는가? 두 가지 지식 가운데에,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이 이렇게 둘이 함께 섞여 있는 것이 이 세상이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그 두 가지 지식을 이것도 저것도 다 알 만한 그런  자본을 가진 우리들이 아니고 한 가지 지식도 다 알지 못할 만한 그런 짧은 아주  제한된 자본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세상에 있는 인간 지식도 다 알고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수많은  사람이 제 마음대로 지걸거려 놨으니까, 수많은 사람이 무책임하게 제 생각나는  대로 마구 내 풀어 놨으니까 그 양이 굉장히 많으니 그 양도 다 알고 갈 자가  없고, 또 하나님의 지식도 다 알고 갈 자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자유한한  실력을 가진 유한한 자원을 가진 우리들의 지혜와 총명과 생명과 모든 힘을  가지고서 그러면 이 둘 중에 어느 지식을 알기에 우리가 전공을 할까? 어느  지식을 아는 데에 전공을 할까? 이것부터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네, 이것부터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좀 여러분들의 신앙이 장성해 졌는지, 하나님께서 때가  급하니까 지금 아주 급하게 서두르시는지 모르지만 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지  않는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애낌 없이 자꾸 내놔서 주시는데 이것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지식으로 가득 찬 세상인데, 우리는 한 가지 지식 만 해도  다 알 수 없는 그런 아주 소자본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니, 그러면 두 가지  지식 가운데에 이것 반 저것 반을 갖추어 가지고 갈까, 어느 것을 그러면 하나를  갖출까? 그러면 인간 지식을 내가 알아야 되겠으니까 인간 지식을 연구하는 데에  다 기울일까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에 다 기울일까 그러면 여기 저기 반반을  기울일까 어떻게 할까? 그 지식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잠을 자도 그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이요 자꾸 연구하는 것이요 자꾸 알아져 나가고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 지식을 알든지 지금 가만히 쉬고 있는 사람 없고 자꾸 알아서 연구해서  나가기는 나가고 있지 안 나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이 역사 세계에서 이런 것이 오늘 들린다, 귀에 들린다 보인다 접한다  하는 그런 것이 다 전부 두 가지 지식에 속한 것들입니다. 두 가지 지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자기는,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은' 뭐이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그 지식이, 자 한번 아는 대로 말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 그러면 사람의 지식은 죽은 지식. 왜? 사람의  지식에서는 영생이 안 나옵니다. 사람의 지식에서는 영생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의 지식에는 인간 구원이 안 나옵니다. 또, 자 하나님의 지식은 또  뭐입니까? 하나 나왔는데, 살리는 지식, 하나님의 지식은 살리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살리는 지식이오, 영을 살리고 육을 살리고 만물을 살리는  살리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 지식도 다 하나님의 예정에서 하나님의 창조에서 나왔지만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 이 말씀을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으로 말하고 하나님이  인간들을 통해서 만들어 놓은 그 신구약 성경 지식 외에는 인간 지식이라 이렇게  서로 분리를 해 가지고서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 신구약 성경  지식은 거기에서 다, 이 지식은 살리는 지식이요 산 지식인데,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지식은 두 가지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죽을 것이 살 것처럼 날뛰고 있는 그 죽은 것은 죽은 것으로서  판정을 지워서 죽은 것은 죽은 것으로서 결정을 지우고, 또 살릴 것은 산  것으로서 결정을 지우는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 속에는 죽이는 지식과 살리는 지식이 있어서 죽이는  것을 죽여 죽이는 것을 알게 해서 살리는 것을 살리고. 또 사는 것을 알게 해서  살릴 것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살리는 지식이요.

세상 지식은 암만 해도 그 지식에는 영생케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영생케 하는  것이 없소. 세상에서 사람이 다 죽는데 거기에 생명의 부활을 하게 하는, 생명  부활을 하게 하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 지식은 살리는 지식이 아니요 산  지식이 아니라 그렇게 말 하는 것입니다.

 또 이제 그러면 산 지식 죽은 지식, 살리는 지식 죽이는 지식. 또 뭐입니까? 자  또 삼호 한번 해 봅시다. 하나님의 지식은 신구약 성경 말씀은 또 뭐입니까?  영생, 영생하는 지식이 아니라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막바로 이 말씀이  영생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면 영생됩니다. 이 말씀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이 영생을 주실 바 영생이 반들 반들하여 아주, 사람들은 요새  보석을 좋아하니까 보석같이 그렇게 생겼는가? 하나님이 영생 주시는데 영생은  보석보다도 더 번쩍 번쩍하고 좋은가? 하나님이 영생을 주실 때에 그 영생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는데 이 말씀을 가지면 영생이  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입니다. 하나 하나 꼭꼭 믿어요! 믿어요 믿어. 이래야 돼진다  이거요.

 자 그러면. 셋째 삼호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영생이라, 신구 약 성경  말씀은 영생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말씀을 주시니 그 말씀이  뭐이 영생이라? 말씀을 주셨는데 그 밀씀이 내가 버리지 안하고 그 말씀하고  살고 그 말씀에게 속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따라서 움직이고 보니까 영생했습니다. 영생했소.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이라.

 또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데  사랑을 어떻게 주십니까? 등허리를 톡톡 두드려 주십니까? 어루만져 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 데는 어떻게 주십니까? 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시는데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말씀을 잡고 보니 사랑이요 이 말씀대로 살고 보니 사랑이요 이  말씀을 모시고 보니 사랑이요. 이 말씀을 떠나라고 할 때에, 아무리 세상이 그  말씀 버리라고 할 때에 이 말씀 버리지 안하고 이 말씀 모시고 있다 보니까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었습니다. 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또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요,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 이 말씀은 뭐 신구약 육십 육 권이면 몇 장  안 되는데 무슨 그 안에 전지가 있어? 네, 이 말씀은, 신구약 성경 문서 계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의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의  무엇이라고? (○○○선생, 뭐이라고 했지? 신구약 성경 문서 계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의 무엇이라고 말했지? 입문! 죽은 호랑이가 산 개만 못해. 자면  죽은 것이지 뭐 이야? 이 지식 다 통달 했나요? 졸면 안돼.)  이 신구약 성경 문서 계시는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지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주십시오' 하나님이 '전지한  지혜를 줬는데 무엇을 달라고 하느냐?' '전지한 지혜가 어디 있습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을 너희에게 준 그 성경 말씀이 전지한 지혜다.' '그거 몇 장 안  되는데요?' '그 전지한 지혜의 입문이기 때문에 그 말씀만 네가 가지고 그  말씀을 따라서 들어가면 무한의 지식이 그 안에 들어 있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

 또 뭐입니까. 이 말씀이? 하나님의 전능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하나님의 전능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 말씀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능을 주신 하나님의 전능입니다.

 또 자 이 말씀은, 이거 끝이 없지만 좀 더 해 봅시다. 이 말씀은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뭣 주신 것이지요? 뭐이지요? 영생, 아까 말했지? 네. 평강, 하나님이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쾌락, 평강,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평강,  쾌락. 영영 무궁한 평강과 쾌락, 이는 뭐 죽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무궁세계에서도 어떠한 복잡한 세계에서도 빼앗을 수 없고 조금도 구름끼게 할  수 없고 조금도 찌그러지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영 무한한 쾌락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쾌락입니다.

 자 그라면 또 뭐 있습니까? 또 한번 말해 보이소. 예? 하나님의, 자. 은혜,  하나님 은혜. 하나님께서 그 무한한 충만을 가지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무한한  것을 충만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분이 엿새 동안에 만든 것이 이 우주입니다. 이  우주, 요새 이십 세기의 과학이 '아이구 이 별에서 저 별에 갔다.' 아주 놀라고  손뼉 쳐 쌓는데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만든 곳을 다 돌아 다닐라고 하면 그런  것 지금, 그래 갈라고 말이지, 무슨 힘이지. 그게? 무슨 힘으로 그렇게 빨리  날아가요? 응? 무슨 힘으로 그렇게 빨리 날아가지? 원자라 하나? 원자로 그리  되는가? 네, 그런 속도 가지고 갈라 하면 인간 일생에 다 가도 그저 한 구석밖에  못 갑니다. 그렇게 이 우주는 크고 넓습니다.

 그런데, 고걸 발견하고 막 손뼉을 치고 '하나님 없다. 우리가 제일이다, 하는  것 보면 참 기가 찬다 그 말이오. 엿새 동안에 만들어 놓은 것의 억억억억  억억억억 억억억억 억억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고체를 가 놓고 '우리가  제일이다.' 쌓으니까 망령되고, 그게 망령이 되고 그게 참 자멸할라 하는 깜깜  어두움의 행동이라 그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엿새 동안에 모든 걸 만드셨는데  그 하나님이 가지신 것은 뭘 가졌는지 우리가, 무한하기 때문에 측량 못 해요.

무한한 것을 가지신 그 모든 것을 공짜배기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  공짜배기로 주시는 그 공짜배기로 주시는 그 주심이. 그 은혜가 뭐이냐?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입니다. 믿습니까  저 뒤에도 믿습니까!! 네. 믿는 자 되고 믿음 없는 자 되지 맙시다.

 믿는 자가 이 세상을 이깁니다. 믿는 자가 이 세상은 기이한 선물로 사  용합니다. 세상은 귀한 세상입니다. 참 믿는 자에게는, 믿는 자라면 마귀도  없어서는 안 되고, 사망도 없어서는 안 되고. 거짓도 없어서는 안 되고. 죄도  없어서는 안 되고 모든 것 있는 것 그것이 전부 믿는 자를 위해서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그런게 없으면 안 됩니다. 믿는 자는 그것은, 믿는 자는 그것들이  위하기만 위하지 믿는 자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에 하나도 없습니다. 믿는  자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하나도 없습니다. 믿는 자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하나도 끼어 있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이 광대한 신앙을 가집니까! 정말로 이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합니다.

이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이렇게, 신앙을 가진다면 필연적으로 그 결과가 나올  것인데, 행함이 나올 것인데, 행함은 나오지 안하고 이러니까 진실한 성도는,  진실한 성도는, 이 사람도 만나니까 천사요 저 사람도 만나니까 천사요. 저  사람도 만나니까 신학자요 이 사람도 만나니까 신학자요, 저 사람도 만나니까  성자요 그 사람도 만나니까 성자인데 도무지 삭개오와 같은 사람은 '암만 이래  봤자 사람 구경만 하고 사람만 아는 것이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겠다.

하나님이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겠다.' 이러니까 도망을 쳐 가지고서 뛰어가서  뽕나무에 올라가 가지고 위에서 내려다보고 '주님이 어떤 분인가 보자' 하고  기다리는 그거, 인간의 뒤 꼭지만 보고 줄줄 따라다니는 그런 외식하고 거짓된,  진실 없는, 욕망 없는 죽은 욕망을 가지고서 이 모든 유전에 속해 가지고 있는  그런 신앙에서 탁월해서 주님을 직접 만나야 되겠다 하는 고 신앙을 주님이  아름답게 봐서 거기에 가셔 가지고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오늘밤에 모든 사람  다 두고 내가 너거 집에 가서 유하겠다. 너거 집에 구원이 오늘 이르렀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종교 말년이 되면 어떻게 이 인간들이 하나님은 내비두고  인간 지식에서 지식, 지식에서 지식으로 연구하고 또 꾀에서 꾀로 연구하고  이렇게 방편에서 방편을 연구해 가지고 물샐 틈 없이 어떻게 해 놨든지 이는 참  천국이요 이는 천사들이요 이는 굉장한데, 굉장한데, 눈을 자세히 뜨고 보니 다  사람 노름이요 이것만 가지고는 만족이 없다 무엇인가 인간이 할 수 없는  하늘에서 무슨 하나 이 표적이 오는 것을 구한다.

 이래서, '가르치는 선생님도 잘 가르치고 모든 걸 세밀히 말하지만 서도  서기관들도 제사장들도 그렇게 다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도무지  이것만 가지고는 만족이 없고 회의성이 있어서, 의심이 나서 지금 마음에 갈급이  나서 견디지 못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무슨 초자연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서  말을 하면 이제 안심하고 믿고 따라가려고 합니다. 하늘에서 오셨으면 하늘에서  오신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표적을 보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말을 하는  그 소원을 했습니다.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러니까, 그런 큰  선물을 받았어. 큰 선물을 받았어.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악 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표적을 구하는 것이 그것이 필연성입니다. (요거 좀 어려운  말인데)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지난밤에 공부했는데,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그러면. 이 세대의 알맹이는 뭐이라 말이지요? 여기 여반에 이 세대의 알맹이는  뭐이라요? 알맹이는 악, 이 세대의 알맹이는 악, 이 세대는 그러면 누구 누구가  세대입니까? 불신자들만 모인 것이 이 세대입니까 신자들만 모인 것이  세대입니까 평신도만 모인 것이 세대입니까 또 그 은사 교권의 모든 성직자들만  모인 것이 이 세대입니까 무엇이 이 세대입니까? 남반에, 전부 다 합해서 이  세대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대는 알맹이는 뭐이라고요? (악) 누가 이렇게 말씀했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판정이 틀렸을까요? 예수님의 판정이 틀렸겠습니까  바르겠습니까? 자 너무 지나쳤다고, 틀렸다고, 너무 과격하게 다 도매금했다고  그렇게 생각을 가지시는 분 있으면 손 한번 들어봅시다. 이 세대의 알맹이는  악이라. 알맹이는 악이라. 목사의 알맹이도 악이요 평신도의 알맹이도 악이요,  불신자의 알맹이도 악이요 전부는 다 악이라, 악이라. 전부는 다 자기중심이라.

이 악이 자기중심이 악인데, 이 성경에 악이라고 하는 이 성구를 달리 해석하면  성경이 다 모순되어서 디비지고 맞지 않습니다. 성경에 말한 '악인의 꾀를 좋지  아니하며' 하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하는 그런 것  아닙니다. 자기중심의 주장을 좇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이 세대의 알맹이는 다 자기중심이라. 자기중심이 이것이 무슨 죄지요?  자기중심이 무슨 죄입니까? 원죄입니다. 원죄. 원죄, 이 원죄를 이것을 예수님이  벗겨 주셨으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실상으로 원죄를 벗는 데에서만 성화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원죄를 현실에서, 자기 현실에서 원죄를 벗는 현실로 통과하는 그  사람도 있고, 현실에서 원죄로 통과하는 현실도 있으니 현실을 원죄를 벗어  버리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는 자로 통과한 것은, 그때에 관련된 심신은 다  영생을 가졌습니다. 영생. 우리가 중생은 영만 중생했지 우리의 심신은  아직까지, 우리의 심신은, 우리의 육은 죄 아래 있습니다.

 이 신학자들 가운데에 이분설도 있고 삼분설도 있는데, 이분설도 그 잘 못  깨달으면 다 헛일, 삼분설도 잘못 깨달으면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이 분설의  난제는 삼분설에 가 있고 삼분설의 난제는 이분설에 가 있습니다. (뭐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신학자들은 알아 듣겠지요.) 이분설의 난제는  삼분설에 있습니다. 이분설은 삼분설이 해결이 되어야 이 분설이 바로된  것입니다. 또 삼분설은, 삼분설은 이분설이 '아 그래, 이분설로 말하는 것이  옳겠다' 그것이 이해가 되어야 해결이 됩니다. 이분 설은 삼분설이 이해 안 되고  삼분설은 이분설이 이해 안 되고, 이분설은 삼분설을 공격하고 삼분설은  이분설을 공격하는 것은 아직까지 알대로 원만히 알지 안한, 원만한 그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다 이리 저리 치우쳐서 편벽된 쪼갱이 지식을 가졌다 그것이오.

 이렇게 하나님의 이 말씀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주시는 은혜요 또 이 말씀을  타고 들어가면 영감을 만납니다. 또 영감을 타고 들어가면 자기의 하나님이  계시는 골방 안에 들어갑니다. 골방 안에 들어가면 거기에서 아버지가 계시는  것을 단독 유일하신. 자존하신,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적으로 근원 되시는  창조주, 모든 시은주, 모두 좋고 귀하고 능력 있는 것의 근본이 되신 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을 가리켜서 '골방 안에 들어가서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너희 아버지를 만나서 대면하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가지 지식이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온데 분류하니까  하나님의 지식 사람의 지식이 둘로서 나누어져 있고, 근본은 말하면 하나님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지식이 두 가지 역사를 이루니 하나는 이제 하나님의  지식은 생명과 모든 평강과 그 능력을 이루시고. 또 사람의 지식은 이것은 다  사는 것 과 죽는 것. 망하는 것. 다 무능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이 사람의  지식들의 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두 가지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온 세상인데 그 두 가지  지식이 나오기는 어디서 나왔느냐?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두 가지  지식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하나는 생명과 평강의 역사를 하고 있고 하나는  사망의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지식을 상대하는 우리들이 이 두 가지 지식을 다 통달  할만한 그만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극히  제한된 소자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을 향하는 자도 끝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지식을 향하는 것도 끝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하는 이 두 가지  지식을 향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을 내 소자본을 다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흡수해야 된다는 하나님의 지식 흡수에 소자본을 다 투자할  것인가, 혹은 인간 지식을 흡수하는 데에 투자할 것인가?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 둘을 겸해서 흡수하는 데에 투자를 할 것인가? 요것을 우리가 판정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흡수하는 데에 전부를 다  투자하는데, 투자하는 사람들이 두 종류 있습니다. 투자하는 사람들이 두 종류  있는데, 한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만을 '나는 있는 자본 다 투자해서 하나님의  지식만을 나는 흡수를 하겠다.' 흡수하는데 그 흡수하는 방편에 있어서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흡수하는 방편을 하나님의 지식을 문서 계시로  나타냈는데 나타난 이 문서 계시를 자기가 읽고 듣고 보고 이 하나님의 지식을  읽고 듣고 보고 아는 대로 자기는 하나씩 행해 나가는 것,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읽든지 듣든지 보든지 하고 아는 대로 하나 알면 하나 행하고 둘  알면 둘 행하고 이렇게 알고 행하고 알고 행하고 하는 이런 방편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얻어 갈라고 그렇게 방편을 쓰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한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을 알고 행하고 하는 이 일이 잘 안 되니까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에 좀 도움될 만한 것이 없느냐? 또 하나님의 지식을  알고 행하는 데에 좀 도움될 것이 있지 않느냐? 이래서, 거기에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에 보조 될 만한 것, 하나님의 지식대로 자기가 행하려고 할 때에 보조될  만한 그것을, 그 보조 지식을, 보조력을 자기가 겸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식을  연구하려고 하는 그 방편을 취해서 세상 사람의 지식, 사람의 힘들 이런 것을  연구해서, 사람의 지식을 연구해 가지고서 그 연구하는 동기가 뭐인고 하니  하나님의 지식을 알기 위한 동기요, 또 목적도 하나님의 지식을 알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중간에 가다가 탈선되어서 인간의 지식을 보니까 어떻게 그 음녀의  금잔에 든 술같이 굉장하게 매력 있고 아주 따끔따끔하고 아주 맛이 참 어떻게  사특한지 고만 이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서, 자기가 인간 지식을 처음에 동기나  목적은 하나님의 지식을 더 아는 그 보조가 될까 해 가지고서 그렇게 하다가  고만 그 인간 지식의 매력이 너무도 맛이 있고 아름다우니까 인간 지식의 매력에  고만 끌려 가지고서, 끌려가 가지고서 인간 지식으로 기울여져서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인간 지식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완전히 이별하고 세상과 자기와의 합작을  시킨 음행의 포도주가 된 그런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보조로 그것을, 동기와 목적이 보조로 이래 했는데, 그래  가지고 그 매력 있는 그 매력의 단계에 가도 매력에 끌리지 안하고 그 매력을  보고서는 더 '하! 야, 사람들이요 매력에는 끌리기 쉽겠다. 참 이렇게 매력이  있으니 이 인간 지식에 넘어가기 쉽겠다. 이것을 가리켜서 주님이 음행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셨구나. 또 인간 지식이 만들어 놓은 그 모든 화려한  것들이 우리를 하나님을 버리고 그리 마음과 모든 몸이 기울어져서 우리의 전  노력이 그리 기울어지게 할만큼 아름답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음녀라. 금과  보석으로, 자주 옷으로 꾸며놓은 음녀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로구나, 야 이  음녀에게 빠지기 쉽다. 음녀야 두렵다, 주님! 이 음녀에게 빠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세상 지식을 보조학으로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식을  연구하는 일에 많은 도움을 입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그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지식을 알고 행하는 그 지행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방편을 삼은 사람도 있고, 그 지행이 잘 안 되니까 세상  지식과 세상 것을 가미를 해 가지고서 이것의 보조를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식을 이렇게 연구해서 아는 사람들도 있고 하데 그 결산은 어떻게 됐느냐? 그  결산은, 그 결산은 뭐라 했습니까? 그 결산은, 하나님의 그 결산은 어떻게  결산했지요? 하나님이 그 결산을 보고서, 그 두 방편을 취한 결산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발표를 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장에 있지요? 고린도전서 1장 몇 절입니까?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 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면, 하나님이 결산을 해 본 그 결산은 어느 편이 많습니까? 두 가지 방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에 성공한 사람들이 어느 방편을 취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입으로만 하지 말고 성경을 보고 똑똑히 확정을 지우고  말해요!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면 다른 데는 많다 말이요 적다 말이오?  많은 것이 딴 데 있다 말이요 없다 말이오? 예? 이러니까 다 전부, 모두  외식이라. 외식.

 자.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육체를 표준 해 가지고서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안하니까 육체를 표준하지 안한 사람으로서는 지혜 있는  자가 많다 말이 아니오? 그 아닙니까? 여기에 많지 안하다, 많지 안하다 하는  것은 많은 것이 딴 데 있다 말이요 없다 말이오? 이거 확신이 있습니까? 이  거짓말 아닙니까, 틀림없습니까?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들이 확신을 가집니까? 가져야 돼요.

 이런 방편으로서는. 이게 다 그 방편 아닙니까? 이런 방편으로, 이건 다 세상  지식을 겸해 가지고서 하라는 그 방편이라 그 말이오, 그 방편 그 방편으로서는  많지 않다 이랬으니까 많은 것이 딴 데 있다 말이요 없다 말이오? 딴 데 있다  말이오. 확실하지 않습니까? 확실합니다. 확실해요. 오히려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는 일자 무식군이 하나님의 지식을 더듬 더듬 알아도 그 지식을 확신을  가지고 그 지식에 대해서 요동치 않습니다.

 이러니까,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전능의 보호를 네가 아나 모르나 입술로는 잘  말해서 천사같이 말하지만 죽음 앞에서 일자 무식 사람은, 다른 사람은 지금  유식한 사람들은 벌벌 떨어서 '와 벌벌 떠느냐?' '아, 전능하신 아버지가  지키시는데 와 그라십니까. 와 떠십니까?' 그 사람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평안합니다.

 내가 입으로는 많이 말했지만서도 참 내 지식이 되어 있어야지. 나에게  믿어지는 지식이 되어 있어야지. 나를 행하게 하는 죽음 앞에서 떨지 않게 하는  그런 지식이 내게 되어 있어야지. 죽음을 이기는 그 지식은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 말이오. 거짓부리 외식의 입으로만 말하는 지식을 가졌더라 그거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됩니다.

 여기에는 이런 방편은 그거 다 하나님의 지식을 알기 위해서 어떻게 가면  지름길로 갈까, 어떻게 하면 적은 자본을 가지고서 많이 얻으며 빨리 가고 많이  가고 많이 알고 이렇게 정확하게 능력 있게 알까 하는 그 방편에서,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한글만 알면 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다음에  어짭니까? 그대로 행하고, 알고 행하고 알고 행하고 알고 행하고, 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뭐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지혜지, 하나님의 능력이지. 하나님의 사랑이지. 하나님의  생명이지. 하나님의 은혜지. 하나님의 쾌락이지 하나님의 축복이지. 하나님의  안보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승리지. 좋은 거는 다 있다 말이오. 요걸  믿으니까, 믿고 말씀대로 행하니까 이 방편을 취한 사람 중에는 많이 있고, 이  방편을 취한 사람 가운데에서는 하나님의 지식을 안 사람들이 많고.

 이 왼쪽편으로서 이것을 하나님의 지식을 알기 위해서 보조로 이런 저런 모든  양념을 써서, 조미료를 써 가지고서 이렇게 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많지를  못하다. 사람들은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이나 이 길로 가는 사람들이나 같다고 볼  수 있고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볼 수 있는데 마지막에 결말에는 보니까  어디 가서 쳐져 버렸는지 다 쳐져 버리고 마지막에 가서 종착점에 가 보니까  거기에 온 사람은 수가 적더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모두 많이  출발은 많이 했는데 마지막에 그 종착점에 가보니까 종착점에 온 사람은 숫자가  적더라.

 그러면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습니까? 어디로 갔소. 예? 어디로  갔지요? 어디로 갔어 (저 뒤에 누가 말했는데. 어디로 갔어, 응? 어디로 갔어?  저 처음에 음녀로 갔다 한 사람 누가 그랬어?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말했나?  그사람 이 제일 먼저 말했소? ○○목사, 보증해? 응? 고게 어디서 말했어?  그러면 그 사람인가 보구만. 보자, 군인이가? 학생이가? 응? 공부는 어디까지  하고? 고졸, 아이구. 그 음행의 포도주에 안 빠진 것 보니까 장하다.)  다 음녀에게로 갔습니다. 시작은 좋은 뜻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그만 음녀의  매력에 다 빠져 버렸습니다. 음녀의 매력에 음녀의 매력에 빠져 가지고서,  하나님보다 음녀가 좋거든! 하나님보다 이 세상 문화가 좋거든.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가 권세가 좋거든! 이러니까, 그 사람이 국민한교 졸업 맡을  때와 중학 졸업 맡을 때가 다르고 고둥학교 졸업 맡을 때가 다르고 대학 졸업  맡을 때가 다르고 성년이 되어서 이 세상 모든 사회인이 되고 난 다음에  달라집니다. 다 그 사람들이 무슨 매력에 끌려 가서 하나님과 멀어졌습니까?  음녀의 매력에 끌려 가서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도 가슴을  치면서 얼마나 울어야 될런지 모릅니다.

 그렇게 쉽게 음녀를 음녀로 알고 '이 음녀가 나의 원수다. 나를 미워하는  원수다. 나에게는 음녀기 때문에 세상이 나의 원수다. 음녀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이것을 주를 위해서 이용하고 주님에게 받은 선물로 주의  명령대로 기뻐하신 대로 사용하면 세상은 나에게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 되겠는데  이것을 하나님 떼고 나가다 보니까 이것은 나에게 음녀가 되어 있다.' 음녀가  자기의 원수라는 것을 이것을 깨닫고 얼마나 울어야 거기에서 음녀가. 음녀가  미워서 음녀를 불에 사루고 아주 음녀를 발로 차고 음녀에 대해서 중오심을  강하게 가지고 난 다음에 음녀를 보기도 싫은 그 사람이 되는 고개를 넘어가고  난 다음에 '아, 이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라. 무엇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고, 이것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이루겠고,  이것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잘 사용하도록 보배로운 선물을 주님이  주셨구나.' 하는 것을 단제적으로 성장돼 나가는 것인데, 이것도 아니고 전부  초절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말이오, 초절적인 신앙.

 또 많은 사람이 출발했는데 다 어디로 가 버리고 이렇게 마지막에는 오는  사람들이 적습니까? 어디 갔습니까? 저 ○ 장로님 모두 어디 갔습니까? 하나님의  지식을 알기 위해서 다 출발을 하기는 했는데, 국민학교에서는 다 잘 압니다.

하나님의 지식만 알라고 애를 씁니다. 이랬는데 음녀에게 꼬여서 음녀에게 끌려  가서 그만 거기 가 버리고 하나님의 종착점에 가 보니까 하나님의 지식 연구하는  데는 오지 안했어. 거기에는 가 보니까 안 왔어, 어디 가 떨어졌는지 그 떨어진  사람이 어디 떨어겼는가? 음녀에게로 다 끌려가 가 가지고서 음녀의 집에 가서  놀고 있다, 그걸 여러분들이 대답을 했습니다.

 또 그 나머지기는 어디로 갔을까? 예? 그 나머지기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종착점에 가서 보니까 하나님의 지식만을 알라고, 이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인 줄 알고 하나님의 지식을 알려고 출발을 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출발을 해 가지고서 다대수가 음녀의 미혹에 빠져 가지고서 하나님 배반하고  거기에 지금 재미 붙어 가지고서 있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다음에 다대수는  어디 가 있지요? 응? 악,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습니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어.

이걸 자꾸 들어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말해도 모르는데, 자기가 언제  그만 거기에 깊이 빠졌다 그 말이오. 무식해도 거기에 빠져요. 음행의 포도주에  빠졌어.

 이 세상 인간들의 지식의 그 매력에 끌려서 인간들의 지식이 많은데, 그게 그럴  듯하고 그게 꼭 그렇고. 자꾸 그 지식이 와서 그 지식을 인정을 하고 보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부정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지식과 그 지식이 서로 모순되어서  대립이 되어지니까 부득이 인간 지식을 취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멀리 내놓는 그  걸음을 걷는 자 된다 이거요. 다 거기에 빠졌어.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서 그만  하나님 말씀을 알라고 목적한 그 목적지에 가 보니까, 그 목적지 가 보니까 거기  온 사람들이 적어. 그 길로 간 사람들도 온 사람들이 적어.

 하나님 말씀 듣고 그저 자기에게 오는 지식, 하나님이 세상 지식도 주면 받고  안 주면 안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자연대로 해서, 억지로 주일을 범해서 공부를  하고 사기 횡령을 해서 학자를 하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해서 하는 그런 억지  쓰지 안하고, 하나님이 지식 주는 대로 그 지식이 많든지 적든지 그 지식 그걸  보조학으로 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 알면 하나 행하고 둘 알면 둘  행하고, 또 그거 몰라도 관계 없고. 그 세상 보조 지식이 하나도 없어도, 아는  대로 하나님의 지식 하나 알면 하나 행하고 둘 알면 둘 행하고 자꾸 이라면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아는 대로 행하니까 요거 가르쳐 주시고 고거  행하니까 요리 오시고 당신이 졸졸 끄니까, 전지전능자의 사랑의 주님이  인도하시니까 그 인도가 인간 지식을 통과해야 되는 그 통과만 못할까 그것이 더  지름길이 되고 더 첩경이 되어질까 어떻겠소?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인간 지식을  전적 부인하는 반지식론자는 아니지만 인간 지식을 정평 정가는 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인간 지식을 그것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 대신을 삼습니다. '아,  나는 목회하는데 아무것이는 국민학교도 안 나왔고 순전히 성경 지식밖에는 못  가지고 있지만 나는 대학을 나왔으니까 이 지식이 있으니 그 사람보다는 내가  목회를 낫게 하지.' '와?' '그 사람은 신구약 성경 그것밖에는 모르지만 나는  많은 지식을, 세상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낫지.' 이러니까, 자기는  그걸 가졌으니 목회에 유력하다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이래서, '나는  하나님의 지식 가졌고 인간 지식 가졌기 때문에 목회에 유력하다.' 이 한 사람은  '나는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대로 행하는 것 이거 둘밖에 가진 것은  없고 이 둘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 그거밖에는 없다, 이 둘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내가 받을라고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 둘을 가지고서 이렇게 목회를 하니 이 두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린다,'  이러니까 이쪽도 서이 저쪽도 셋입니다. 오른편도 셋이라 오른편에 뭣 뭣  셋이지? 하나님의 지식, 또 행하는 것, 또 하나님의 돕는 것. 세 가지 또  왼편에는 하나님의 지식. 인간 지식, 또, 인간 지식, 또 하나, 하나님의  도우시는 것. 그러면, 이 쪽에   세 가지와 이 쪽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오른편에 있는 것이 왼편에 없는 것이 뭐이요? 네, 행함이 없습니다. 왼편에  있는 것에 이 오른편에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 지식, 그러면 인간 지식과  행함과 어느 것이 비중이 높지요? 알면, 연구하면 다 알 수 있소. 환해. 환해.

썩어질 물질에 대한 과학도 이렇게 세밀하고 모든 것이 철두 철미한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 될, 하늘의 것과 땅을 것을 다 상속 받아서 하나님의 계대자 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것이, 그렇게 성글겠습니까? 만물을 통치하는 이 지식이  그렇게 성글겠습니까? 성글지 않습니다. 구비합니다. 구비한 걸 다 알려  주십니다.

 이래서, 이 세상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데 이 모든 것이 근본은 한 분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요. 이것이  지금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오.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인데, 하나는  천국을 이루고 있는 것이요 하나는 지옥을 이루고 있는 것이오. 그런데, 그  근원은 하나님이 다 예정도 하셨고 창조도 하셨고 섭리도 하셨고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하시는데, 하나님이 두 가지 일을 하십니다. 하나는 천국을 이루는 일을  하시고, 하나는 지옥을 이루는 일을 하십니다. 이런데, 이 세상은 천국을 이루는  일이 이루어 가고 있고 지옥을 이루는 일이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을 이루어 가는 일은 그 형태가 어떻습니까? 천국을 이루어 가는  일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 천국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그 방편을 주셔  가지고서 섭리하십니까? 천국을 이루어 가는 사람은 어떻게 움직입니까? 어떻게  행동합니까? 천국을 이루어 가는 것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천국이  이루어진다 어떻게 하는 것은 지옥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고 계시는지? 자 천국을 이루어 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뭘 보이십니까?  어떻게 하는 것은 천국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까? 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의 지하고 하나님에게만 복종하고,  다니엘이 하나님에게만 복종했는데 다리오 왕에게 가장 다리오 왕 말을 잘 들은  사람은 다니엘입니다. 다리오 왕 말을 다니엘이 아주 잘 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왕이 좋아서 총리 중에 하나로 세웠고 그 사람을 총리 중에도 제일  신임하고 사랑했습니다. 자기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자기 말을 잘 듣기 때문에,  그는 다리오 왕 말을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했지  다리오 왕에게 복종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에게만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다니? 그런 억설을 어디 하는가? 하나님에게만 복종하고  다른 것에게는 복종하지 안한 것이 확실히 증거가 나타났지. 다리오 왕이  하나님과 대립되는 명령을 했을 때에 다니엘이 복종을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어디까지 대항했옵니까 죽어도 안 했습니다. 죽어도 안했어.

 그러면, 그가 과거에 다리오 왕에게 그렇게 복종한 것은 어떤 복종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리오 왕을 통해서 자기에게 명령하시는 명령은 죽기까지 복종을  했지만 하나님에게 받은 명령이 아닌, 그로 말미암아 오지 안한 그 명령은  다니엘은 죽어도 복종 안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생애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두 가지 일을 하시는데,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이것으로써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것만했소. 예수님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으로서 모든 일을 다 성공했습니다.

 또 지옥은 뭐입니까? 지옥은 하나님 바라보는 대신 뭣 바라봅니까? 뭐  바라보지요? 뭐 바라봅니까? 한 말로 대답해요. 사람, 또 물질은? 한 말로  대답을 할라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피조물을 바라보지요. 피조물을 자 여기에 피조물을 하나님보다도  바라보는 사람 회개를 해요! 공연히 미련하게 그라고 있지 말고. 미련하게  그라면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어.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바라보는 것이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자기와 멀어지든지  어떻게 삐뚤어지든지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결과의 충동이 없는데 피조물이  피동될 때에는 환장을 하는데, 피조물이 변동이 될 때는 환장을 해. 낯이 새파래  죽을 지경이라. 이래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피조물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피조물을 바라보지요. 바라보지만 하나님이 바라보게 하시는 것만 바라보고  바라보게 할 때만 바라보지, 당신만 바라보기 때문에 당신이 바라 보라 하는 것  바라보지 안하면 당신 어기는 일 되기 때문에, 바라보라고 지시하시는 것  바라보지 안하면 당신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데에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과 연관되어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이것을  바라보라 할 때에 바라보지 하나님 떼 놓고는 피조물을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이거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을, 창조주 바라보던 것을, 하나님께 지음받은 그것을  모든 것을 지으신 그분보다 더 크게 여기고 바라보는 것이 인간의 멸망의 그  순서의 길입니다. 이것을 로마서에 말씀했습니다.

 또 하나님 의지하던 것이 뭐 의지합니까? 자 하나님 의지하던 것이 이제는  무엇을 의지하는 것으로, 차차 그것을 의지하니까 하나님 의지가 차차 차차  하나님 의지는 차차 적어지고 약해지고 그거 의지는 점점 커집니다. 뭐  의지합니까? 피조물. '그거야 뭐 어린 아이, 어린 아이들 대답이니까 시쁘다'  이래서 피조물 하는 소리에 대해서 '피조물'(주: 힘없이 대답하는 표현을 하심)  또 '뭐 그 사람 대답했으면 됐지 뭐 또 대답할 게 뭐 있는가?' 아니오.

여러분들에게 아직까지도 성령의 능력이 안 왔습니다.

 자기 속으로, 말 안 해도 '하나님 의지하는 것이 변해서 피조물 의지로  바꾸어졌다. 주여! 피조물 의지로 바꾸어진 창기의 행동을 했습니다! 신앙  창기의 행동을 했습니다! 신앙 음행을 했습니다!' 요렇게 속으로 마음에  괘씸하고 분하고 원통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안하고 피조물 의지한 것이  마음에 참 가슴이 터질 만침 분개해서 구부는 일이 있고 있고 여기에서 차차  차차 변화가 되어지는 것이지 그렇게 쉽게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조물 의지로 바꾸어졌다고 해서 예사지. 자. 하나님보다 피조물 의지를 더  많이 의지하고 오늘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분들 양심 바르게 손듭시다. 네,  정직하기는 정직합니다. 아, 의지하는 것이 뭐 의지했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알리기 위해서 의지하던 것을 확 빼 버립니다. 작대기를  떡 의지하고서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이래 섰지' 작대기가 내게 붙기만 붙었지  내가 이 작대기를 의지하고 있지는 안합니다.' 할 때에 작대기를 왈칵 잡아 빼  버리면 툭 자빠져 버립니다. '이래도 네가 작지를 안 의지했다 말이가?'  이거 모양으로 자기에게 이런 저런 현실로 시험해서 '하나님만을 의지 하느냐  피조물을 의지하느냐? 냉정스럽게 네가 생각해서 자기를 심사해 가지고 판정을  지워라.' '자기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서 학정을 지워라' 그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또 13장 5절. 네, 딱 들어 맞았습니다.

 그래 우리가 자꾸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는 것이 사심판 준비입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는 공심판은 다 면해 왔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은  사심판입니다. 사심판은 이 사심판 준비하는 세상에서 자기가 자기를 심판 해  봅니다. '너희들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저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모든 선지자요 모든 율법이니라.' 말씀하신 것은 인간들에게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핑계 못 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의지하는 사람 또 피조물 의지하는 사람  이렇게 가르는 것이 그리스도 심판인데,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피조물 의지를  하나님 의지보다 더 의지한 것을 하나님이 심판에서 생명으로 통과를 시킵니까?  이런 것을 다 물리치십니까? 물리치시지 않소?  그래. 하나님께서, 자, 하나님 의지가 피조물 의지보다 더 견고한지, 피조물  의지가 하나님 의지보다 더 견고한지 의지의 어느 중량이 무거운지 무거운 데로  기울어지라. 무거운 데로 기울어지라 하시는 그 심판이 내리면 우리는 어디로  기울어질 것인지?  우리가 생각합시다. 우리는, 물론 단면적으로 몇 부분은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  의지가 더 크고 인간 의지가, 피조물 의지가 적지요. 또 피조물 의지하지 안하고  하나님 의지 하지요. 이 연단을 받아서 통과한 것은 그렇고. 그러나. 또 보니까  하나 더 깨닫고 들어가 보니까 하나님 의지는 하나도 없고 피조물 의지를 했더라  그거요. 또 거기에서 연단 받아 가지고 아닌 것을 깨닫고 또 새로 회개하고  회개하고 이라는 이것이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그  말은 나는 삐뚤어진 것 중에는 제일 삐뚤어진게 많은 죄인이라 하는 것을 간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옥은 마련하는 것이 두 가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 이것이 천국인데, 하나님 바라보는 것 반대로 피조물  바라보는 것 하나님 의지하는 것 반대로 피조물 의지,  하나 남았는데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 반대로 뭐 복종입니까? 자! 뒤에도, 저  뒤에도 함께 합시다. 피조물 복종!! 피조물 복종!! 저 뒤에도. 피조물 복종!!  돈이 찡그리라 하니까 상을 찡그리고, 돈이 웃으라 하니까 웃고. 물론 다 전부는  아니겠고 다른 것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보니까 뭐 그 사람이 아주 기뻐서 활개를  퍼칩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활개를 퍼칠까?' 이랬더니만 나중에 보니까  그 돈 의지 그것이 튼튼해지니까, 돈 바라보는게 튼튼해지니까, 그 사람은 그만  돈이 주일 범하라 하면 범하고, 돈이 가라 하면 가고. 어디 가느냐? 전부 돈이,  '오늘 아무 데 갑니다.' '누가 가라 해 가느냐? 하나님이 가라 해 가느냐?' 따져  보면 돈이 가라 해 갑니다. 분주하게 날뛰는 사람이 돈이 가라든지 어떤 인간이  가라든지 세상에 움직이는 운동의 사건들이 기라든지 전부 거기에 따라서  피동하지 하나님에게 따라서 피동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압니까? 오늘  말씀에 이것이 나올 터인데 지금 모든 기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재물을 의지하는 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어렵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랬는데, 우리가 쉽게, 지옥에 건설하는 방편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저 뒤에 손가락으로 지옥을 건설하는 그 방편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을 다 들고 가리켜요, 교만하지 말고. 이래 들어요, 이래. 다  신경통 걸렸습니까? 이래 들어 이래 들어. 자 한번 해 봐요 손가락으로. 자 이  지옥을 마련하는 방편은 몇 가지 입니까? 네 이래 세 가지, 다 모두 잘  알았습니다.

 또 천국을 건설하는 방편은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네, 여기에서 뼈가 녹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아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자기 마음에 이런 것을  마구 성신의 칼로 찍어서 마구 해부를 하고서 이래서 개조를 해도 어렵습니다.

이게 얼마나 어렵지요? 뭐 만침 어렵지요. 약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쉽게 생각지 맙시다. 쉽게 생각지 말아요.

 피조물 바라보는 것을 창조주 바라보는 것으로 바꾸고, 피조물 의지하는 것을  창조주 의지하는 것으로 바꾸고, 피조물에게 복종하는 것을 피동되는 것을  창조주에게 복종하고 피동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우냐?  약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러면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러나 낙망할 것 없습니다. 마지막에 결론을 짓기를 그렇게 지었읍니다.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될 자 많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먼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했는데, 이 사람은 먼저 이 세 가지를  갖추었는데 이 사람은 그 사람이 세 가지 갖출 때 자기는 실패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실패해서 이제 나중 된 사람입니다. 나중 된 사람인데, 실패했으니  '나는 이제 결심하고 이제 앞으로는 내가 이 소망과 의지와 복종의 원동을  능동을 내가 바꾸지 않겠다.' 해서 결심하면 일 차 실패한 자가 이 차에서는  앞서 갈 수가 있다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절대 불가능의 일을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그러면 하나님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무슨 상관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는 못 하고, 우리는 그 일을 하지 못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야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뭐 해결이 됩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지 우리는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난제만 되고 낙망만 되어지지 무슨 해결이 됩니까? 어떻게 해결이  됩니까?  네, 해결되는 길이 있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시기를 '내게 구하라 네가 못 하는  것 내게 구하라 내가 해 주마.' 계약을 했으니까, 그분은 계약을 어기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계약을 어기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구하는 자마다 얻을 것이라' 말씀했으니까, 자 당신에게 구 하면  당신이 하실 수 있는, 그 하실 수 있는. 그 하실 수 있는 그 능력이 내 기도로써  내것이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되어지는 것이 계약에 되어 있습니까?  없습니까? 계약이 되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 뒤에 계약되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낙망해야 되겠습니까 소망에 견고히 서야  되겠습니까? 소망에 견고히 서야 됩니다. 오늘까지 패전해도 오늘까지 패전한  사람이 오늘까지 승리한 사람보다 앞서 갈 수도 있습니다. 왜? 오늘까지 승리한  사람이 '됐다.' 하면 오늘까지 패전한 사람이 '해 보자' 하고서 달라드는 사람이  앞서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요 긍휼의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믿어야합니다! 믿지 안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죽이는 것입니다.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면 이것이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하나님 말씀 아는 대로 믿고 행하는 것, 아는 대로 행하면 됩니다! 아는 대로  행하는 것은, 아는 것은 가르침을 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아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에 연결되는 것이요 행하는 것은 전능의 능력에 연결되는 것이라.

전지에 연결되고 전능에 연결되면 전지전능의 하나님 아닌 피조물이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이 요것이 요 첩경이요, 비결이요 유일한 법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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