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10. 22. 새벽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57절-5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줌을  앎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라' 뭣을 이긴다는  말인가? 그 위에 보면 죄가 있고 또 하나님의 율법의 판단이 있고 그로 인해서  사망하는 사망이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또 그 위에는 보면 우리가 홀연히  변화해서 부활하고, 일찍 세상을 떠서 있는 사람은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같이 오는, 부활이 있고 사망이 있고 죄가 있고 죄를 거머쥐고 죄를 무기로 삼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악령이 있는 것을 그 위에 내리 말했습니다.

 그러면 악령과 죄와 사망이 있고 또 부활이 있는데, 이 악령과 죄와 사망은 한  덩어리로서 그것이 합작해 가지고 사람들의 그 생활을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받아  사망하게 하는 것이 저희의 할 일입니다. 악령의 하는 일은 사람들로 이렇게  꼬우고 저렇게 꼬와서 어쨌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받아  가지고 영원히 멸망케 하려는 것이 마귀의 저의 하는 일이요 저의 목적입니다.

 이런데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공로가 있고 또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만 이길라고 하면 죄도 이길 수 있고 마귀도 이길 수 있고 사망도 이길 수  있고 부활할 때에 영광스러운 부활을 가질 수도 있는 우리들을 가리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런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는데,  우리가 힘을 쓰면 이기고 힘쓰지 안하면 그것들에게 져서 멸망받습니다.

 그런고로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해라' '견고해 라' '굳게  서라' 그 말은 이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아주 수치스러운  부활을 벗고 영광스러운 부활로, 마귀를 이기고 성령의 인도로, 죄를 이기고 그  반대의 의로. 사망을 이기고 영생으로 이렇게 자꾸 마련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이  우리에게 와 있으니까 우리가 힘만 쓰면 되고 힘 안 쓰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견고하며 굳게 서라'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부끄러운 영원을 이것을  벗는 이 일에 네가 굳게 서라 하는 말이요,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요동하면  안 됩니다. 요동하는 것은. 우리가 마귀를 잊어버리고 죄를 잊어버리고 사망을  잊어버리고 또 부활을 잊어버리고 영생을 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기는 이 일을 잊어버리고 그저 이렇게 살다가 저렇게 살다가 흔들리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은 꼭 일관의  생활이어야 되지 이랬다 저랬다가 흔들리는 사람은 아예 아무것도 성사하기를  바라지 말아야 됩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주의 일은 무엇이 주의 일인고 하니, 주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 가지고 전부를 기울여서 힘쓰신 그 일은 무슨 일을  그렇게 힘썼던가? 첫째는 보내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고, 둘째로는 우리 이 택한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에 전력 기울이셨는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곧 우리 택한 사람들은 멸망하지 안하고 다 구원에  이르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뜻이요 또 영광된 구원을 이루도록 하는 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러니까 주의 일은 그게 주의 일인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그러면, 우리가 힘쓸 일은 무슨 일인가? 주님이 원하시는 일 곧 구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원하시는 일, 주의 일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이며 주님이 우리에 대해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저 간단하게 말해서 구원입니다. 구원은  자기의 모든 행위가 구원되고, 또 자기의 모든 소유가 다 구원되고, 자체가  구원되고 이 세 가지 구원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면 자체가 하나님 형상대로  변화되는 것이며, 또 자기의 행위가 전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의가 되는  것이며. 자기의 또 모든 해 놓은 소유가 그것이 다 하늘에 쌓여지는 것입니다.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는 너희 수고가' 너희들의 수고하는 것이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 너희  수고하는 것이 이 멸망할 세상에서 보면 멸망할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멸망할  세상에는 저축이 안 된다. 멸망할 세상에는 성공이 안 된다. 멸망할 세상에는  부강이 안 된다. 멸망할 그 속에서 부강된 것은 그것은 멸망이 커진 것이요 또  거기에서 강해지는 것은 멸망이 강해지는 것이지마는 이거는, 예수님 안에서  되는 것은 이것은, 마치 노아 홍수 때에 방주 안에, 방주 안에 거기에 있는 것은  다 살았지마는 방주 밖의 것은 다 멸망을 받았는데, 그 방주 안의 것으로 네가  다 유익을 본다.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 방주 안의 것으로 네가 유익을 본다.

방주 밖의 것으로 유익 보면 암만 해도 그거 뭐 홍수 내렸을 때에 다 멸망을  받았는데 네가 멸망할 걸로 유익되지 안하고 멸망하지 안할 것으로 유익 된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힘을 써라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다.'  사람이 힘쓰는 것이 또 성경에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사람이 해 아래서 어떤 수고를 했든지. 자기가 무슨 뭐 물질의 물질을 대한  수고를 했든지, 권세를 대한 수고를 했든지, 지위를 대한 수고를 했든지 명예를  위한 수고를 했든지 어떤 수고를 했든지, 노아 홍수 때 그때 홍수에 멸망받은  사람들의 수고에 수고가, 수고에 수고가 얼마나 많으며 또 수고한 그것들이야  얼마나 세상에서 귀하게 평가받는 것들이겠습니까? 그러나 홍수 오니까 다  전멸당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늙으나 젊으나 한 번은 죽고 죽으면  자기 생활한 것을 다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서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 심판 받을 때 다 정죄받으면 헛일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수고가 다 헛된데. 모든 수고가 헛된 거, 자기가 무슨 일을  하든지 헛일과 헛일이 되지 안하는 참 영원한 일 일은 두 가지 뿐인데, 헛일을  얼마든지 사람들이 하기를 좋아하고 헛일은 열심히 하지마는 참 일은 하지  않습시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할 때에 이 일이 헛수고냐 참 수고냐.

이것이 헛된 길이냐 참된 길이냐 이것을 항상 구별 하면서 해야 되겠습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하나도 유익이 없다 말이오. 전부 헛일입니다.

 이런데, 전부 헛일인데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헛일이 되지 않는  이 일을 주셨으니 이 일은 뭐이냐? 사망을 이기는 것이요, 죄를 이기는 것이요,  마귀를 이기는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는 것이요, 다 부활 영생하는  그것들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해라. '이김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노니 너희들이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 수고는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다.' 그러면, 주의 일이 뭐인가? 주의 일은 곧 구원  이루는 일입니다. 자기 구원 남의 구원 구원 이루는 일인데, 그러면 이 일을 잘  하도록 힘을 써야 되겠는데,

 그러면, 힘이 있어야 힘을 쓰지요? 네, 그 힘은 무슨 힘인고 하니. 저 사람은  아주 그 가정이 그만 완전히 넘어졌는데, 그 가정이 넘어졌는데 그 가정이  일어섰다. 뭐로 일어섰느냐? 그 가정은 그 호주가 기술이 하나 있어서 그 기술  하나 가지고 그 가정이 일어섰다. 또 그 사람의 정권이 아주 그만 꺾어져서  절단났었는데 다시 그 정권이 세력을 잡고 일어섰다. 그러면 무슨 세력으로  일어섰는가? 그거 다 일으킨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술로 일어섰으면 그 기술을 배척하지 안하고 자꾸 그 기술을 쓰면은  자꾸 일어서서 더 커져 가는 것이지마는 저를 일어서게 한 기술을 배척하면 그만  자꾸 그거는 또 꺼꾸러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돈으로 일어선 그 사람은 돈을  자꾸 이용을 해야 되고 돈으로 힘을 써야 일어서게 되고. 기술로 일어선 사람은  기술을 자꾸 사용해야 자꾸 일어서서 커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죽었던 자인데 죽었던 자가  우리가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습니다.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난 것은 무슨 힘 무슨  힘인고 하니 세 가지 힘은 첫째가 예수님이 사죄 주시고. 칭의 주시고 화친의 이  공로를 베푸셔서 우리에게 이 세 가지 대속을 주신 이 세 가지 대속의 힘으로  우리가 살아났고, 또 이 대속의 힘을 인해서 우리가 진리의 힘으로 살아났고. 또  이 대속의 힘으로 인해서 영감의 힘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죽은 가운데서 살아난 원인은 뭐이냐? 살아난 원인은 예수님의  대속 하나로 살아났습니다. 대속 하나로 살아났는데 대속 하나로 살아났는데, 이  대속을 이바지해서, 이 대속을 이바지해서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아나는  그 면에 대속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것은 광대하고 측량 못 할 것으로  살아났는데, 이 대속으로 살아난 것이 구체적으로 또 살아난 것은 뭐로  살아났느냐? 영감으로 살아났고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대속으로 살아나지 안했으면 우리는 살아날 도리가 없습니다. 영감이  와도 우리를 못 살립니다. 진리가 와도 못 살립니다. 또 영감과 진리는 우리에게  오면 우리를, 진리는 우리를 율법이기 때문에 정죄하고 영감은 우리를 불로  소멸해 버립니다. 그 영감은 죄를 소멸하는 그런 능력을 가진 것이 영감입니다.

이런데, 예수님의 피공로로 살아난 자를 성령이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 살리고.

또 진리의 힘으로 살려 가지고, 피로 살아서 있는 그자를 활동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그 활동력으로 살린 것이 영감 활동을 하도록 살렸고 진리 법칙대로  살도록 살리는 그 역사를 해서 이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습니다.

 만일 영감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살아나고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나지를  안하면 우리가 어떻게 길을 걸어가야 될는지 모든 것을 구별하는 구별의 능력이  없는데. 진리로 살아나서 구별의 능력이 우리에게 생겨졌고, 또 주님의  대속으로만 살아나고 영감으로 살아나지 안했으면 대속은 법적으로 대속을 해  놨는데 하나님의 실질적인 그 능력이 우리를 와 가지고 연결시켜서 그 능력이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역사해 가지고 하는 그 능력이 없기 때문에 또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난 것은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우리가 살아난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힘을 쓰면은 어떻게 힘을 쓴다는 말인가? 이 세 가지 능력으로  힘을 써야 되지 디른 힘으로 써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공부를 했으니까  공부하는 그 지식 힘을 써도 헛일, 돈이 많으니까 돈을 써도 헛일, 또 자기가  권세가 있으니까 권세 힘을 써도 헛일, 자기에게 명철한 지혜와 총명이 있으니까  지혜와 총명 힘을 쓰면 되는가? 지혜와 총명 힘을 써도 헛일, 자기가 절제가  있고 아주 열심이 있으면 그 힘 가지고 되는가? 그 힘 가지고 써도 다  헛일입니다.

 왜? 그것들은 다 죽은 것입니다. 죽은 것이요. 죽은 것이니까 그 일은 죽은  일만 합니다. 죽은 것이니까 죽은 일만 하지, 여러분들. 세상에서 이십 세기의  과학이라 하는 것이 아주 힘이 있는데 그 과학이 다 죽은 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학은 죽은 것만 하고 죽이는 일만 하지 그거는 산 일은 하나도 못  합니다. 하나님의 이다음 심판에 과학이 해 놓은 일은 모조리 불타서 다  없어지지, 다만 그때에 심판을 이기고 죽지 안하고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이 세 가지 대속의 힘으로 한 것은 죽지 않습니다. 영생  합니다. 또 진리로 한 것은 죽지 않습니다. 영감으로 된 것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힘을 쓰면,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그러면 힘을 쓰면 무슨 힘으로  쓸 건가? 우리는 주님의 대속의 힘으로 힘을 써야 됩니다. 대속으로 우리가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 살아난 것이 대속으로 살아났으니까 우리는 대속의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대속의 힘이 우리 힘이요 또 진리의 힘이 우리 힘이요, 영감의  힘이 우리 힘이지 돈의 힘이나 권세의 힘이나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벌써 한, 여기 부산 내려와서도 한 이십여 년 전에 제가  힘에 대해서 언제 한번 설교한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힘은 이 세상이 말하는 그  힘이라 하는 그런 것은 힘이 하나도 아니다. 하나도 아니고. 그 힘은 다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진리와 영감만이 우리의 힘인데, 그러면 돈은 뭐이냐?  돈은 힘이 아니고 진리와 영감과 주님의 대속의 힘이 돈이라는 그 도구를 통해서  도구를 통해서 그 힘이 널리 나타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그  힘은 참힘에게 이용이 되어서 참힘이 그것을 이용해 가지고서 활동할 수 있고  역사할 수 있으나 그 참힘이 뚝 떠나 버리면 그것은 완전히 사망뿐이지 하나도  없다 그런 설교 그 제가 한 이십여 년 전에 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사람이 힘이 세다, 그 사람은 참 힘이 세다, 힘이 세니까  그 사람은 주의 일을 힘있게 할 것이고, 힘이 세면 그 힘은 무슨 나라의 힘인가?  하늘나라의 힘인데.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부활한 사람들은 다 부활은 했지마는  힘이 세고 약한 사람이 있으니 힘이 센 사람은 무슨 힘으로 힘이 센가? 이 세  가지 힘으로 힘센 사람이요, 하늘나라에는 무슨 힘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 힘  가지고서 하늘나라는 삽니다. 영생은, 영생하는 힘은 뭐인가? 이 세 가지  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힘이 세다, 그 사람이 참 실력이 있다.' '무슨  실력인가?' '그 사람은 아주 재력이 있다. 물질에 대한 물질의 힘이 있다.' '아,  그거는 죽은 힘이 있구나' 우리가 요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아, 그 사람은  세계의 정권을 자기 장중에 거머쥐고 다, 그 장중에 거머쥐고 좌우한다. 아주  정권적인 그런 능력이 있다.' '아, 죽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로구나.' '아, 그  사람은 아주 세상의 온갖 지식을 통달해서 최고의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그  사람은 지식의 힘을 가졌다.' '아, 그 사람은 죽은 힘을 가졌구나' 요걸 알아야  됩니다. 죽은 힘을 가졌으니까 죽은 힘으로서는, 죽은 힘으로서는 죽는 일과  죽이는 일밖에는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것을 구별해야 되는데  요걸 혼돈해 가지고 잘 구별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힘이 있다. 무슨 힘이 있는가? 그 사람은 진리의 힘이 있다.

진리의 힘이 있다 그러면 그 진리의 힘이 있으면 그 진리의 힘이 얼마나 있는가?  그거는 보니까 이제 돈이 와 가지고 그 진리의 힘을 꺾을라 해도 진리의 힘이  꺾어지지 안하고 돈의 힘을 이기더라. 그 사람이 또 온 나라가 그 사람의 진리를  꺾을라 해도 나라가 꺾어졌지 그 진리의 힘은 꺾어지지 안하더라. 또 사망이 와  가지고서 '이놈 너 죽인다' 해도 그 진리의 힘이 꺾어지지 안하고 그 진리의  힘이 그대로. 강하게 그대로 자유하고 나가더라. 그 사람은 진리의 힘이  강하더라. 아무도 세상이 그 사람의 진리의 힘을 꺾을 수가 없고, 또 그 사람은  뭐 어떻게 하느냐? 그 사람이. 그 사람이 행동했나? 그 사람이 행동했으면 그  사람은 진리의 힘으로 한다. 진리로 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의 하는 일은  심판에도 하나님이 심판에도 정죄받지 안하고 그것을 틀렸다 하는 사람은 틀렸다  하는 사람이 틀렸고 망한다 하는 사람은 망한다 하는 사람이 망하지 그거는  망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은 진리의 힘으로 살고 있고 진리의 힘으로 일하고  있다.

 또 그 사람은 영감의 힘이 세다. 영감의 힘이 세서 영감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영감의 능력으로 모든 취사 선택을 하고. 영감의 능력으로, 그 영감이  든 욕심, 영감이 주는 욕심이요, 영감이 주는 기쁨. 영감이 주는 기쁨이요,  영감의 힘으로써, 영감의 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니까 그 기쁨은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은 무슨 힘이냐? 그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힘이 있다. 아주 사죄받은 힘이 있고, 칭의받은 힘이 있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힘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힘이 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을 온 세상이 달라들어서 그 사이를 끊어 볼라고  해도 '환난이나 기근이나 핍박이나 위협이나 칼날이랴 무엇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말을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절 이하에 보면은 에베소 교회가 그렇게 위대한 일을 많이  했지마는,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네가 생각해서 다시 찾아 잇어라 너의 모든  한 일은 다 전부가 다 멸망받을 일이요 다 전부가 다 심판받을 일들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힘으로 자라가야 되는가? 진리의 힘으로 자라가고, 영감의 힘으로  자라가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힘으로 우리가 자라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힘쓰는  것도 이 세 가지로 힘씁니다. 이 세 가지 힘으로 힘씁니다.

 힘이라는 것은 자꾸 쓰면 힘이 나고 안 쓰면 그만 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힘은 자라기를 그 힘이 어떻게 자라느냐? 그 힘은 힘을 씀으로만 자라는 힘이,  그 힘이 자라는 방편은 힘을 쓰는 그 방편으로만 자라지 다른 방편으로는 자라는  일이 없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낳아 놨는데 힘이 조그매 있는데 그 아이가  가만히 있으면, 벌써 움직이지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암만 몸뚱이는 커 가지고도  힘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아무리 커서 어북 한 국민학교 한 육학년쯤  됐다 할지라도 그 아이는 그저 눕혀 놓으면 누워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안하고  그저 가만히 누워서 요동치 안하고 있으면 그 아이는 사지의 힘은 없습니다.

그러나 젖을 주고 음식을 주면 자꾸 먹습니다. 그러면 먹는 힘은 자랍니다. 먹는  힘은 자꾸 쓰니까 자라지마는 다른 힘은 안 자란다 그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힘이 자라는 거는 힘을 써야만 힘이 자라는 것인데, 이렇게 세  가지 힘이 우리 힘인데,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 세 가지 힘으로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제 이 힘으로서 수고한 것은, 이 힘으로 해 놓은 것은 하나도 헛되지 안하다.

하나도 헛되지 않고 다 그리스도, 그리스도 밖에는 헛된다. 사망에서는 소용이  없지마는 생명 세계에서는 다 그것이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영원히 있다.

 그래서 빌립보 3장에는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 다 뺏겼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그리스도를 내가 얻을라고서 모든  것을 다 빼앗겼다. 모든 것을 다 뺏겨도, 그러면, 네가 생명을 뺏겨도 그러면  그리스도를 차지할라냐? 생명을 뺏겨도 그리스도를 차지할란다. 그것이 바울의  신앙 고백입니다. 또, 이렇게 하고.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무익하고  배설물로 여긴 것은, 무익한 것은, 내가 이제는 이해는 예수 안의 것으로서  이해를 작정했다. 세상 이해로 작정한게 아니라 세상에 유익하다 해가 된다  그것이 내 이해가 아니다. 예수 안에 있는 이해가 내 이해다. 예수 안에  유익되고 예수 안에 손해 가는 그게 내 손해고 유익이지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다 배설물로 다 버렸고  유익하던 것을 다 그것을 버렸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이해관이, 이롭고 해로운  이해관이 예수 밖에 있는 이해관을 내가 버렸다. 또 얻고 잃는 것은 세상의  것으로 얻고 잃는 것이 그거는 내 얻고 잃는게 아니라 옛사람이 얻고 잃는  것이기 때문에 내것 아니다. 나는 예수 안에서 얻고 잃는 그것이 내 실득이다.

내 실득은 예수 안의 실득이 내 실득이다. 그런고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밖의 것은 다 소용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발견은 언제? 영원 무궁세계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것만이 영원 무궁세계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만 내가 마련하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가 이 세 가지 힘으로  해 놓은 일은 이것은 다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힘쓰는 것은 세상에서 필요하지 안하고  하늘나라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이 세 가지를 힘쓰는 그것은 세상에  있으나 예수 안에 필요있는 것이고 예수 안의 것이지 예수 밖의 것은 아닙니다.

예수 밖의 사망의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힘쓰는 자, 우리 힘이 뭐인가? 우리 힘이  뭐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해서 구별해야 됩니다. 우리 힘. 자꾸  우리가 강건해진다, 장성해진다. 장성해지면 힘이 자라는 것이 장성해지는 것  아닙니까? 힘이 자라는 것이 장성해지는데, 우리 힘이 뭐로 자랄 건가? 우리  힘이 무엇으로 자라가는 게 우리 힘인가? 썩어진 힘으로 자라가지 말고 영생토록  있는 영생하는 완전한 힘으로 자라가라 그 말이오. 썩어지는 힘으로 자라가지  말고.

 이걸 깨달은 사람들이 다 바울과 같이 세상에 내가 유익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다 빼앗겼다, 빼앗겼다. 이거 얻을라 하니까  '그거 얻을라면 이거 내놔라' 하니까 다 내놓고 다 그걸 빼앗겨도 이거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빼앗겼다. 모든 것을 배설물, 똥오줌같이 배설물같이 여기는 것은  이것은 다 찌끼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것만이가 참된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세상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거 그리스도 안에 거 그것을 하나씩  둘씩 만들어 가고 만들어 가는 가운데에 이 세상 생활하는 그것은 다 찌끼라.

 다니엘이 그렇게 총총리가 됐으나 총총리 그 벼슬 그거는 배설물이고 총총리를  하는 그 속에서 이 세 가지 힘으로 해서 영원 무궁세계의 것이 되어지는 그거  마련했지, 그 사람이 총총리 그것을 제 수입으로 알고 그거 하는 거 같지마는  그거 하는 그 위치. 그 장소, 그 직책에서 썩지 안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그  소유를 수입하고 산 것이 그것이 다니엘입니다. 오늘도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힘과 힘을 구별해야 되겠고, 힘과 힘을 구별해야 되겠고  또 득실과 득실을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득 자는 얻을 득(得)자, 실 자는 잃을  실(失)자, 얻고 잃는 거, 얻고 잃는 것도 사망 안에서 얻는 것이 있고 사망에서  잃는 것이 있고, 생명 안에서 얻는 것이 있고 생명 안에서 잃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 안에서 잃는 것이 그것이 참 손해요 생명 안에서 얻는 것이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생명 안에서 실득이 있고 사망 안에서 실득이 있고 생명의  힘이 있고 사망의 힘이 있고 하니까 힘과 힘을 구별해야 되고 실득과 실득을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노력을 하는데, 우리가 수고를 해서 뭐이든지 수고를 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데, 일하는 그것이 이 생명 안의 일을 하는지 생명 밖의 일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우리가 잘 구별해서 해야 될 것입니다. 보면 생명 밖에 있는  거 사망 안에 있는 그 일이 큰일이라고. 그 수입이 큰 수입이라고, 그 권세가 큰  권세라고, 그 실력이 큰 실력이라고 이것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것을 빼앗기고, 계명을 어기고. 양심을 어기고. 하나님  앞에 자유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의 가치를 몰라 그렇다 말이오. 힘과 힘의  종류를 몰라 그렇고 실득의 종류를 몰라 그렇고, 자기의 노고하는 그 노고가  무엇을 건설하는지. 그 노고가 뭘 하고 있는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회가 모든 것이 구비했지마는 너는 소경이라  하나도 못 본다. 너는 소경이라. 나는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 하나 너는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도다. 네가 정말 네  부요는 그게 네 부요가 아니다. 그거는 마귀 부요요 세상 부요요 다 멸망의  뭉텅이가 커 가는 것을 가리켜서 부요라 하는 것이지 그 부요는 자꾸 멸망이  커지는 것이요 심판받아 정죄받을 것이 커 가는 것이지 예수 안의 것이 커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잘 구별해야 되지 구별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이름을 가리켜서 성도라, 구별하는 무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썩어진 것이라 그거요.

 그러면, 썩어진 것이면 필요가 없는가? 썩어진 거 속에서 두 가지 수입이  있습니다. 썩어진 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서 변화시키는게 있어. 썩을 거 썩지  안할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썩을 것을 심으면, 썩을 것을, 썩을 것을 썩지  안할 것을 위해서 투자를 하면은 이 썩은 것이 투자 돼 가지고서 이제 산 것이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썩은 것은 뭐이 필요하냐? 썩은 것은 그것을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살려낼 수 있기 때문에, 살려 낼 수 있는 그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게 필요하고, 또 썩어진 데에서 거기에서 산 것을 새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썩어진 것이 필요합니다. 썩어진 데에서 산 것이  자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이 생명과 영감과 진리의 생명 이 힘이  우리가 얻어서 움싹같이 눈이 터서 겨우 생긴 것이 우리 중생인데. 이 생긴 것이  어디서 자라나가는가? 자라는 것은 세상 이 죄악의 밭에서 자랍니다. 이 세상  죄악의 밭에서 자라요. 죄악의 밭에서 자라는데. 마치 겨자씨가 무엇이든지  땅에만 들어가면 썩습니다. 내가 오층에서 정원수를 가꾸며 보니까, 나무, 나는  그러니까 무슨 필요 없는 나무는 이만한 것도 베어서 없애 버립니다. 없애면  이걸 땅속에 묻습니다. 땅속에 묻어 놓으면 몇 해 지나고 나면 이놈이 썩어서  거름이 됩니다. 땅속에 뭐이든지 들어가면 썩는다 말이오. 그러나 생명 있는  겨자씨는 요 땅 속에 심겨지면. 아주 씨 중에 아주 썩 자라서 똑 골 자리 하는  고 씨와 같은 아주 고거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생명이 있기 때문에 심어  놓으면 자꾸 썩히는 땅을 잡아먹고 커다랗게 커지는 것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이 세상은 전부 죽이는 것이요 다 썩히는 것이요 모두 다 사망만 가득 찬 것이  세상인데.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우리가 살아났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살아난 이 생명은 그것들에게 삼켜지면 죽지마는 그것들에게 삼키지 안하고  그것을 자꾸 이기니까 조그만한 거 이겼다가 강한 거 이겼다가 큰 거 이겼다가  높은 것 이겼다가 자꾸 이겨 가지고서 우리가 자란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썩은  것이 없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토지의 가치를 말이지요, 토지의 가치를 뭐로 가지고 가치를  하느냐? 그 토지에는 썩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썩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그  땅은 생땅이라 아무짝도 못 쓸 토지요. 전부 그거는 뭐 흙이 썩어서, 썩어서  허물 허물하고 뭐이 들어가면 팍팍 썩히는 그런 땅이라야 거기에 생명 있는게  들어가면은 그것을 잡아먹고서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옥토라 그래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세상살이를 살면서 등따시고 배부르고 아주 아무 일 없이  오손도손 참 재미있는 것도 좋기는 좋습니다. 재미있는 거 좋지마는 그보다 더  좋은 거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 다른 사람들이 저주하고 멸시하고,  천대하고 아주 욕 얻어먹는데 자기 속으로서는 잘되는 그런 것이 있고 아주 참  일시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참 근심 걱정 고통 박해 압박 그런 것이 있으면  그것이 옥토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실은 앞으로 이제 제일 재미있고 아주 좋은 꽃, 색깔 좋고 좋은  열매 맺은 그런 좋은 아주 결실을 맺은 것이 소련에 있지 않나. 중공에 있지  않나 이북에 있지 않나. 저 월남에 있지 않나? 그 탄압 속에서 거기에서 날마다  죽인다고 하는 그 속에서 자란, 거기에서, 쓰레기통에 장미꽃이 피는 거와 같이  그렇게 되지 않나, 그래서, 주님께서 '이런 모든 어려운 시험을 네가 없기를  구하지 말아라. 없기를 구하지 말고, 시험은 무엇이든지 주십시오 하고 시험에  이기도록 기도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6·25는 안 됐는 것이고 왜정 말년에 핍박 있을 때는 안 됐는 것 같지마는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왜정 말년에 그 신사 참배 때문에 핍박이 있을 때에는  하루도 마음 놓고 살지를 못했어. 날마다 주님 앞에 기도해야 되고 그저 주님이  같이 하지 안하면 어떻게 신사 참배를 이깁니까? 그들이 자꾸 죽일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기에서 신사 참배를 부인하고 이길 수 있습니까? 들으면 쉽지마는  굉장한 거기에는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또 6·25때에 인민군들이 와 가지고  그렇게 만날 사형을 두고서 사형 선고를 내려놓고서 오늘 죽인다 내일 죽인다  하는 그 속에서 살면서 참 어떻게 평안하게 살겠습니까? 그러니까 깨어 있지  안하면 그때 평안하게 살 수 없으니까 고통 속에 있었지마는 속으로는 재미가  있었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요셉의 생활을 모두 다 아는 사람들은 부러워합니다. 요셉의  생활은 껍데기로 보면 요셉의 생활이 참 모두가 다 그렇츰 불행스럽고 그렇게  일생 동안이 모든 다 파란과 곡절로 가득 찬 계속이지마는 그 속에서 장미꽃은  폈더라 말이오. 그 속에서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은 점점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이 세 가지 힘이 내 힘이라는 걸, 요 세 가지 힘으로 내가  살아난 내라는 것을, 요 세 가지 힘으로 움직임이 내 움직임이요, 세 가지  힘으로 힘씀이 내 힘씀이요, 이 세 가지로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오. 중생된  내가 사는 것이기 때문에 요 생활로 사는 것은 영원히 죽지 안한다 했습니다.

요걸로 사는 것이 영원히 죽지 안하고.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죽어도  살아난다는 것은 영과 요 혼, 영과 혼, 영과 마음은 살아나서 이거는 영원히  사는 것이고, 이 고기덩어리는 이대로 살았지마는 일단 죽었으나 다시  부활합니다. 이 고기덩어리는 와 부활합니까? 부활해야 될 이유가 있어 이  마음은 산 그대로 영생되면 되지마는 이 고깃덩어리 이거는 암만 산 생활  했지다는서도 구멍 속에도 들어가지 못하지. 공중에 날아가지도 못하지.

공간에도 제한을 받지, 시간에도 제한을 받아서, 벌써 나는 일흔 다섯인데 일흔  다섯이라도 몸을 움직이지 못해. 이래 가지고서 비틀비틀 넘어갈까 싶어서 이래  의자에 앉아 가지고서 이래 설교한다 말이오.

 내가 처음에 여기 왔을 때에. 그러니까 사십 세이든가. 사십 세 이든가 서른  여덟 서른 일곱 살이든가 그랬는데, 그때는 뭐 어디 다니면서 그만 언간한  강단은 부러트려요. 그만 강단을 굴리고 이거 뛰고 이라면 강단이 버쩍 버쩍  부러지고 이럴 때인데 이제는 힘이 없어. 내가 마음에 탄식을 하면서도 '아,  모세 같은 그런 건강한 사람도 죽었다.'  ○○○ 목사님은 그때 호위 장병으로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있었는데, 경호,  경호대에 경호원으로 있었는데 그분은 사람들이 암만 몇 십 명 있어도 힘이 어찌  센지 어깨를, 어깨를 밟고 막 이래 돌아다니고 이렇게 힘이 있는데, 그때 칠십  몇 살인가 되니까 와 가지고 일어서지를 못해. 일어서면서 벌벌벌벌벌 떨면서  이래 작지를 집고 벌벌벌 떨어. 그래 내가 있다가,'아, 목사님, 그때 경호원으로  계실 때는 그렇게 힘셌지요?' '그래, 그래도 다 힘이 다 나갔어.' 그걸  생각합니다. 고만 이거 육체의 힘은 암만 해 봤자 그거, 만일 지금 뭐 안 죽고  삼백 년을 만일 내 생명을 거둬가지 않으신다면 나중에 가서 그거는 똥도 살  것이고 죽지는 안했으니까 뭐 이 될는지 모를 것이오. 이 육체의 힘이 없어  가지고. 이러기 때문에 '불가불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기 위해서 썩을  것을 벗어야 한다' 하는 것을 고린도전서 15장 53절 이하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이 육체는 같이 살아서 이것이 다 영생할 수 있는 모든 이력은  있지마는 이 생겨진 원료가 이것이 이대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원료를 다시  성화를 시켜야 되기 때문에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을 입기 위해서 불가불  벗어야 된다, 불가불 죽어야 된다. 혈과 육은 영원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피와  고기덩어리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이것이 신령한 것으로 개조돼야 된다.

개조되기 위해서 우리가 죽기 때문에, 죽어도 살고, 죽었으나 이제 이다음에  부활해서 신령한 것으로 살아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은 자는,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죽어도, 믿는  사람은 또 죽어도 살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힘과 힘을 구별합시다. 또 실득과 실득을 구별합시다.

또 나를 구별합시다.

 나는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서 이렇게 살고 있는 이게 나도 이놈이  죽었지마는 침노를 와서 하고, 이거는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니고 나를 죽인  원수인 나입니다. 진리와 성령과 공로로 살아난 이것이 참 나입니다. 이러니까,  가만히 과거의 생활을 생각할 때에 후회한 것이 많다 말이오, '아, 내가 그  생활을 한 것이 참 후회된다.' 후회가 되는데 후회가 되는 그 일을 한 그 일이  후회가 되지마는 그것은 새끼 후회요. 그까짓 거야 부스러기 후회라. 다시  말하면 그런 거는 차가 지나가는 데에 차가 지나가니까 먼지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은 이제 껍데기 진동으로 생겨진 그런 먼지와 같은 것이고,  전부 후회될 일을 한 걸 보니까 촐촐 추려서 따져 보니까 후회할 일은 나 아닌  나. 나를 죽인 나. 원수인 나 아닌 나 그놈이 들어서 그놈이 나인 줄 알고  착각하는 여기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 멸망을 했습니다. 그놈이 들어 그렇소.

 이러니까, 우리는 무슨 잘못한 죄 그것은 주 앞에 고하면 없어지는데 그 죄를  가지고 끙끙 앓을게 아니라고 죄를 어떤 놈이 지었느냐, 고놈을 잡아 죽여야  되겠다 말이오. 고놈을 잡아 죽여야 돼, 그놈이 뭐이냐? 내나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나아닌 나. 내가 과거에 무슨 자꾸 여러 번 습관을, 자꾸 연습을  해서 술 먹는 습관을 들였다, 노름하는 습관을 들였다. 춤추는 습관을 들였다.

습관 그거는, 악습 그거는 내가 아닌데, 나를 죽인 그건데, 악습 그걸 나인 줄  안다 말이오. 악습 그걸 나인 줄 알고, 내 중심인 내 중심인 나는 내가 아니고  나를 죽인 그놈이라 말이오. 하나님 중심인 내가 내지 참 내지.

 이러기 때문에, 모든 후회되는 일은 나와 나를 구별하지 못한 데에서. 나 아닌  나. 그놈을 내인 줄 알고 내 마음이 모시고 내 몸이 모시니까 그놈은 와 가지고,  참 스파이인데, 간첩인데, 그놈은 내게 와 가지고 내 마음과 몸을 절단낼라고  왔는데 이 마음과 몸뚱이 이거는 어리석게 저를 죽여서 절단낼라고 온 원수를 제  주인 영인 줄 알고, 제 주인 영인 줄 알고, 그게 제인 줄 알고 그게 욕심내면  마음 이것도 제 욕심인 줄 알고 제 소원인 줄 알고 이래 가지고 살아 가지고  우리가 다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나와 나를 구별해 가지고 고놈을 원수로 삼아야 됩니다.

고놈을 원수로 삼아서. 이제까지 죄 짓던 고 습성이 있어 가지고서, 죄 짓던  습성이 있어 가지고, 죄 짓던 습성 죄 짓던 취미 죄 짓던 쾌락, 그러면 그것이  누구의 쾌락입니까? 중생된 우리의 쾌락인가? 아니오. 나 아닌 나를 죽인 원수인  옛사람 고놈의 쾌락이기 때문에,  고놈을 죽이는 데는 고놈의 소원 성취를 하나도 안 해 줘야 되고 고놈에게  양식을 먹여 주지 않으면 죽어요. 우리 마음과 몸이 그놈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면  그놈 할 수 없이 쫓겨 나가서 죽습니다. 쥐가 오는데 쥐를 암만 잡아 봤자 쥐가  뭐 끝이 없는데 그걸 멸할 수 없다 말이오. 그러나 쥐 먹을 것을 하나도 없애  버리면 쥐 그놈이 안 와요. 나중에 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으면 안 와요.

가끔가다 이놈이 밤에 들어와 봅니다. 이래 들어와 보고 먹을게 하나도 없으면.

한 번 와서, 한 달 만에 한 번 와 가지고서 봐서 먹을 거 없으면 또 한 달 동안  안 와요 이라다가 나중에 먹을 거 없으면 가 버리고, 아무것도 먹을 거 없으면  피식 피식 하다가 다 죽어 버려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옛사람의 그 소원 성취를 하나도 이루어 주지 안해야  됩니다. 그걸 원수인 줄 알아서 대결해서 싸우면 그것이 나중에 죽어지면 우리는  자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와 나 아닌 것을 똑똑히 구별할 것, 나와 나 아닌 것을  똑똑히 구별할 것, 산 힘과 죽은 힘을 구별할 것. 또 예수 안에 있는 취득과  예수 밖에 있는 취득을 구별할 것, 예수 밖에 있는 취득은 우리의 취득이  아니라. 예수 밖의 손해인 것은 암만 손해 봐 봤자 그거는 내 손해가 아니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어제 작정한 대로 기도 많이 합시다. 기도 많이 하고 어제 팔 백만 원  주고 전세로 얻은 그곳에 가서 어제 처음으로 예배 드렸는데, 이 백 이명? 이백  이십 명이 와 가지고서 거기서 예배를 드렸어. 자 오후 예배에 이백 이십 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그 일을 팔백 만원 전세를 얻어 가지고서 그렇게,  삼일도 주일 오후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가르치게 됐으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기뻐하는 일을 우리가 자꾸 하자 그  말이오. 기뻐하는 일만. 뭐 서로 왕 될라고 시비하고 네 교파가 정통이니 우리가  정통이니 그런 썩은 소리 하지 말고 또 제 자랑하지 말고. 어쩌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하는 것이 우리  일입니다.

 이러니까, 이번에 우리가 연보를 해서. 분교 연보를 하되 기도를 많이 하고,  여기에, 사람이 돈을 써도 바로 쓰지 못할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돈을 가지고  쓸라고 해 보니까 바로 쓸 데가 없어요. 돈 가지고 쓸라 하니까 쓸 데가 없더라  하는 그것을 나는 두 번 체험했어 암만 해도. 고아원에 갖다 줄라 해도 조그매는  주지만 많이 주면 그것도 그 돈을 악용해 버리고 말지. 양로원에도 그렇지,  나환자원에도 그렇지, 또 뭐 가난한 사람에게 줘도 그 사람이 그걸로 인해서  도리어 그 사람 못 써지지 좋아질 것 아니지. 이 돈 쓰기가 얼마나 힘드는지  몰라. 돈을 참 옳게 쓰기가, 벌기는 쉬워요. 버는 거는 쉽지만 돈을 바로 쓴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바로 쓸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시지  않으면 한 푼도 못 써요. 바로 쓸 수 있는 하나님이 모든 조건을 해서 축복을 해  주셔야 바로 쓸 수가 있지.

 이런데, 연보해 가지고서 분교에 우리가 터를 사고 거기다 집을 짓고 이래  가지고 하면은 고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서, 자, 새벽으로도 와 가지고서  여기 멀리 못 오는 사람은 고 부근에서 기도도 하지, 또 거기에서 간단하게  자기가 하나님하고 의논할 것도 의논하지. 하나님에게 모두 축복 받을 그런 것도  또 간구해 축복도 받지, 또 하나님의 도리를 배워 가지고서 깨달아서 구원도  이루지, 점점 의인이 되어지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소.

여기에야 참으로 돈을 투자해서 쓰면 하나도, 부스러기도 하나도 허비되지  안하고 요는 온전히 다 쓰여질 수가 있다 그거요.

 그때 뭐꼬? 무슨 양복점이고? 여기에, 여기 국제시장에서 하던, 뭐이, 무슨  양복점이지요? ○뭐이지? 예? 예? ○뭐이요? ○○○? 그 양복점 이름이 뭐이지?  O○O씨 양복점이 있는데, 아주 그 사람 그때 기술이 좋아 돈 굉장히 잘  벌었습니다. 잘 벌었는데, 내가 가서 '너 암만 잘 벌어 봤자 썩은 거다. 나  시키는 대로 돈 한번 써 봐라. 너 저 남천 교회개척 교회 할 건데 한 달에 칠천  원씩만 보내면 되니까 네가 그거 부담해 가지고 할래?' 칠천 원 같으면 요새  돈으로 말하면 한, 상당히 많습니다. 요새 돈으로 말하면 한 오륙십만 원  될라나? 예? 육천 원입니까? 육천 원이면 요새 돈으로 얼마나 되지? 요새 돈으로  한 몇 십 만 원 될 겁니다. '그거 할래?' 그라니까 한다 했어. 여섯 달 하고  나니까 그쪽에서 그만 중단이라. 여섯 달 하고 나니까 '이제 우리는 더 필요  없습니다. 고만 할랍니다.' 그 남천 교회가 시작할 때부터 고렇게 깨끗하게 정신  차려 가지고서 시작 했어. 이래 가지고서, 여섯 달이니까 육 육은 삼십 육, 삼만  육천 원이라. 내가 그 뒤에 말하기를, 우리 교회 집사가 됐어요. '○집사, 너  일생 동안 벌어서 네 딴에는 뭐 착한 일 한다고 떠들어 쌓지만 일생 동안 벌어서  착한일 한 그 액수보다 요 삼만 육천 원 한 요것이 천천 배도 더 넘을 거다. 네  생활이 뭐이냐? 죽은 생활이지.' 요라고 내가 말했는데, 그 뒤에 여기에서 어째  이사할 형편이 돼서 이사를 갔는데 언제 한번 찾아왔습디다. 찾아 와서 그때 또  내가 말했어. 찾아와서, '하도 그리워서 그래 한번 만나봐라 하고 왔습니다.'  왔기 때문에 내가 말하기를, 인사하고 나서. 장로가 됐어. '○장로님이 쓴 삼만  육천 원은 지금 하늘나라에 그대로 쓰여 가지고 있습니다. 혹 ○장로님이 경제에  대해서 사용한 것이 그것보다 더 가치가 더 많게 하늘나라에 저축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라니까 그 감사를 하면서 '예, 감사합니다.' 이제 고때에 고것  들여서 써 보고. 그 교회 되는 거 보고, 내가 고때 하나님이 시켜서 고 말하는  거 보고 '아, 이제 여기에다가 저축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그 후부터는 그  사람이 있는 전부를 복음에 다 투자해요. 투자해 가지고 장로가 됐어요.

 정신 차려서 삽시다.

 어쩌든지 이번에 기도 많이 해 가지고서 있는 거 톨톨 한번 다 틀어 바치고  그래 안 하면 반을 바치든지 삼분의 일 바치든지 이래서, 어쩌든지 죽기 전에  우리가 자기 있는 거 다 한번 바쳐 봅시다. 다 바쳐 볼 거.

 저는 두 번 다 바쳐 봤어요. 처음에 예수 믿기 전에 있던 거 예수 믿기  시작하면서 다 없앴어. 그건 바친게 아니라 다 없애 버렸고. 일부러 다 없애  그건 더러운 재물이라고 다 없애 버리고. 두번째는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재물 그 재물은 교역자로 나서면서 전부 다 하나님께 다 바쳐  보고 그래 봤습니다. 지금은 뭐 그런 거는 통과했기 때문에 지금 내게 돈을  저축만 안 하면 된다해서 나는 저축은 하나도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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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0 교훈의 터/ 히브리서 6장 1절-2절/ 860526월새 선지자 2015.10.25
5099 교훈적 창기/ 요한복음 8장 31절-37절/ 861127목새 선지자 2015.10.25
5098 구름과 바다아래 세례/ 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860928주전 선지자 2015.10.25
» 구별 할 것/ 고린도전서 15장 57절-58절/ 841022월새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