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바다아래 세례

 

1986. 9. 28. 주일오전

 

본문: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사람을 인도하실 때에 어릴 때는 어린 것으로 인도하고 차차 장성해 감에 따라서 인도도 장성해 갑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그 역사하신 그 역사의 일이든지 역사하신 것이 그것으로써 끝마치는 일은 아니고 그 역사가 더 신령한 것과 큰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계시 역사로 이렇게 점점 충만해 가고 확대해 가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말할 수 없는 그 학살당하는 데에서 해방시켜서 구출해 내신 그것은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을 학살당하는 이 세상에서 해방시켜서 구출하시는 그 구출의 한 모형으로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창세기 때부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그 모든 인도는 차차 차차 사람을 인도해서 구원하시는 그 역사를 기록해 놓은 그것이니 그것은 외형은 다르고 또 그때에 이루어지는 그 모든 일들은 시대마다 각각 다르다 할지라도 거게 대한 내용과 이치는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인도하시고 인간이 실패한 그것이나, 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에 성공과 실패가 된 것이나, 오늘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성공과 실패되는 것이 속에 들어 있는 이치는 꼭 같습니다.

에덴동산을 크게 확대해 놓은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요 이스라엘을 크게 확대해 놓은 것이 신약 교회 이스라엘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의 종적을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을 인류 시조 에덴동산 생활에서 오늘 우리들의 신앙 생활의 그 방편과 길과 위험과 적과 실패와 성공을 거게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꼭 방편은 같습니다.

또 우리들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그 일을 그저 지나간 역사로만 보지 말고 그 역사가 곧 오늘 우리에게 당하는 일이요 그들의 실패가 오늘 우리들이 그와같이 하면 실패할 것이요 그들이 성공한 것을 우리들이 그와같이 하면 성공된다 하는 이치는 꼭 같습니다.

예를 들면 밤을 몇 개 몇 개 계수 하는 그 수학의 방편이나 사람을 계수하는 그 수학의 방편이나 이치는 꼭 같고 다만 그 종류마다 각각 그 형태만 다른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약에 있는 구원 도리를 구약 성경에서 깨닫게 되고 또 자기의 형편을 모든 구약 성도들의 그 형편에서 자기 형편을 잘 참고해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말씀에 6절에도 “그런 일이 우리의 거울이 되어” 거울이 됐다는 말은 면경, 낯을 보는 거는 면경이고 몸을 보는 거는 체경이라 하겠습니다. 거울.

그런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 그것을 보면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다 하는 말입니다. 6절에도 그렇게 말을 해 놓고, 그후 11절에도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한 모든 그 일들을 우리가 거울로 삼으면 좋습니다.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을 볼 수가 있고 또 체경을 보면 자기 몸통을 볼 수가 있는 것처럼 지나간 모든 성경에 기록한 성도들을 보면 ‘나는 아무것이와 같은 행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 반드시 내가 이 행동을 고치지 안하면 그 행동한 사람이 멸망 받았으니 나도 이 행동 고치지 안하면 멸망 받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른 생각이고 ‘그 사람들이 이 신앙 생활을 할 때에는 심히 어려움도 있었고 괴로움도 있었고 견디기 어려운 일도 있었지마는 그 결과는 큰 멸망을 피했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 그와같이 나도 오늘의 이 신앙 생활 할라 하면은 꼭 그와 같은 그 경로를 지내게 된다.’ 하는 그런 것을 생각하고, 성공자를 보고 자기도 그와같이 하면은 성공될 것을 아는 것이 바른 깨달음이요 멸망한 사람들을 보고 자기도 그와같이 하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성경은 우리가 사는 이치를 가르친 이 이치인 줄 알아야 되지, 그저 하나 역사면 역사, 형식이면 형식, 사건이면 사건 그런 것으로만 보고 지내보낸다는 것은 우리는 다 외식하는 사람이요 성경이 가르쳐 주는 구원 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 대해서, 이 본문에 그들이 당한 일이 우리가 앞으로 당할 일이요, 그들이 실패한 것이 우리가 실패할 길이요, 그들이 성공한 것이 우리가 성공할 길이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거울로 봐 가지고, 거울을 봐서 낯에 검정이 묻었으면 그걸 닦으면 됩니다. 또 자기에게 몰랐는데 어떤 상처가 있으면 또 그걸 보고서 치료를 하면 되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보아서 자기가 깨달아 자기 구원을 이루는, 멸망은 피하고 행복과 성공은 취하는 그런 사람이 우리가 돼야 되지 그저 그때 일은 그때 것으로, 성경에 기록한 것은 글로, 성경에 기록한 성경은 성경대로 두고 성경과 자기와의 관계를 맺는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이 성경이 주는 은혜를 받지를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1절로부터 본문에 있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형제들아” 이거는 우리 전부 믿는 사람을 통틀어 하는 말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지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성경은 성령이 기록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 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도리를 다 알아야 되지, 이 도리를 알아 깨닫지 못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은 참 탄식하십니다.

이것을 어짜든지 우리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듣고 할 때에 깨달음이 있어야 됩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 말은, ‘그것은 뭐라고 가르친다’ 하는 그걸 아는 걸 말하는 거 아닙니다. 깨달음이 있다 말은, 성경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나는 여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자기 할 일을 자기가 발견하는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자기 할 것은 발견하지 못하고 ‘이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자기와 상관 없는 지식을 가지는 것은 그것은 성경에 깨달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상관 없이 아는 게 아니고 ‘여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자기의 할 일, 자기의 방비할 일, 자기 준비할 일, 자기 죽음을 피하는 일, 자기 행복을 마련하는 일, 자기 죽음을 피하고 삶을 얻는 그 일을 깨닫는 것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거 아는 것이.

“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우리 조상들이” 그말은, 우리 육체의 조상은 뭐 한국 민족인데 우리 조상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통통 아주 무식했습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그 하나님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아닙니다.

그는 하나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네들 아는 대로의 이치를 ‘천은 이해라’ `하나님은 이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치는 만물에게 다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교는 범신론 종교라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바로 정확한 판단인 것입니다.

이 조상은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 그 믿음을 우리 오래 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었는데 그들이 믿은 거와 같이 우리도 믿는 사람이 되어서, 우리 육체의 조상으로 말하면 한국 민족이겠고, 또 믿음의 조상으로 말하면 이제 우리 나라에 선교한 사람들이 우리 믿음의 조상이요, 그 이상의 조상은 구약 때에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구약 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입니다. 그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또 십이 사도, 또 선지 모두 그런 사람들이 우리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여게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사백삼십 년을 거게서 양육받아 가지고, 시련받다가 사백삼십 년 만에 애굽에서 해방되어서 출애굽했습니다. 그들이 다 믿음으로는 우리 조상이라 그 말이오. 믿음으로는 우리 조상이라.

“구름 아래 있고” 구름 아래 있다 말은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로 인도하셨습니다. 구름 아래에 있다 말은 하나님의 인도 아래 있었다 그말입니다. 구름 아래 있었다 말은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으로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로 인도하셨는데 하나님의 인도 아래 있었다 하는 그말을 “구름 아래에 있었고” 그렇게 말합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 말은 홍해 바다를 아무 배조각도 없이 그저 남자들은 힘 있는 대로 짐을 짊어지고 여자들은 또 아이를 아듬고 업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저 이 육로도 잘 걸어가지 못할 만한 그만치 모두 잔뜩잔뜩 한 짐을 진 사람들이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홍해 바다는, 이 세계에서 홍해 바다처럼 물결 센 바다가 별로 없습니다. 왜? 고게는 솔통목이 돼서 아주 물결이 조수에 따라서 싹 들어갔다 나갔다 이라기 때문에 물결이 심히 센 곳입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요게는 구렁텅이가 있으니까 요리 둘러가자. 요게는 가시덤불이 있으니까 저리 돌아가자.’ 이렇게 하지 안했습니다. 요걸 똑똑히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에 낮에는 구름기둥이 인도했고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했습니다. 요 이치를 자세히 듣고 문자적으로 알고 역사적으로 알고 난 다음에는 속에 알맹이 진리가 있습니다. 알맹이 진리 그거는 여러분들이 가서 기도하면 성령이 직접 가르쳐 주시는 그 알맹이 진리가 있습니다. 이 껍데기를 모르면 알맹이 진리를 모릅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목사가, 장로가 돼도 교회 가면은 제 비위에 맞고, 제 성질에 맞고, 제 지식에 맞고, 제 상식에 맞은 말만 듣고 상식에 안 맞은 이 성경 말씀은 ‘성경에 그렇단다’ 이렇게 이얘기 삼아 듣고, 그 속에 있는 자기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그 진리는 하나도 모르는 목사가 뭐 백분지 구십구는 됩니다, 여러분들. 백분지 구십구는 돼요.

이 설교록이 바깥에 나갈 것입니다. 나가면 그뭐 목사 쳐놓고 그저 성경을 하나의 지식으로도 보지 안하고 성경을 자기 세상 지식, 세상 상식에 맞는 것만 보고 또 맞도록만 기억하고, 그 속에 보이는 문서로 되어 있는 것을 그것만 외우고 기억했지 그 속에 참 우리를 살리고 죽이는 속에 신령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알라고도 하지 안하고 그런 사람들이 백의 구십구라 하면은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과연 이거 때문에 교회가 다 죽고 망하고 자꾸 타락해 나간다’ 하는 것을 심히 느껴서 마음에 참 상쾌감을 가지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 “구름 아래 있었고” 그말은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인도를 받았고 또 “바다 가운데로 지났고” 바다로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바다 가운데로 지났고.

그러면 여게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때에 인간의 생각대로 ‘요리 가면 좋다 저리 가면 좋다’ 그렇게, 바위가 있으면 둘러갔고, 덤불이 있으면 또 돌아가겠고, 또 물이 있으면 저리 상류로 돌아가야 되겠고,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를 했겠습니까 구름과 불기둥이 인도할 때에 그런 거 상관하지 안하고 쪽 이렇게 바로 인도했겠습니까? 어떻게 인도했을상바릅니까? 어떻게 인도를 했을상바릅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운데에 홍해가 닥치니까 이 홍해를 갈라면 저리 아주 많이 몇백 리를 둘러 가지고 그리 가야 된다고 그리 인도했습니까 바로 홍해로 인도했습니까? 바로 홍해로 인도했어. 이걸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인도하시는데, 세상에서 해방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나라에서 해방했지마는 우리는 세상에서 해방했는데,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는 것이 세상이요 악령 악성 악습이 주관하고 있는 것이 세상이니까 세상에서 우리를 해방했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죄에서 해방했다 말이요, 마귀에게서 해방했다 말이요, 자기 중심에서 해방을 했다 말이요, 자기 위주에서 해방을 했다 말이요, 모든 사망에서 해방을 했다 말입니다.

해방해 가지고, 이 멸망에서 해방해 가지고 가나안을 가는, 이 가나안을 들어가도록 인도할 때에 누가 인도했느냐 하면 구름기둥이 인도했고 불기둥이 인도했는데 오늘은 누가 인도하느냐? 오늘에는 성령이 인도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때 옛날에는 미개한 때이기 때문에 한 형식으로 한 외형적인 구원을 주시기 때문에 육의 구원이 중심이요 오늘에는 심령의 구원이 중심입니다. 그때 육의 구원이 중심이기 때문에 육이 그렇게 애굽에서 있다가 해방돼 가지고 인도함을 받아서 가나안을 들어가는 그 노정이나 그 모든 환경과 형편을 만든 것이 뭐 때문에 만들었느냐? 그들을, 영을 구원하는 한 방편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한 거울로 주시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만들어 가지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성경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신령한 이 진리가 있다, 신령한 그 이치가 있다 하는 그것을 깨닫고 신령한 것을 깨달을라고 애쓰지 못하는 사람은 다 헛일입니다. 건설구원은 안 돼요, 기본구원은 얻어 가지고 가지마는.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 그들이,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그들이 받았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는데, 그 인도를 받는 중에, 하나 예를 든다면은 홍해 바다로 인도해서 바다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았다 하는 것을 여기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이 말을 우리에게 뭐할라고 말하십니까? 그때 구름기둥이 인도하고 또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하는 그 인도받았다 하는, 그때 역사에 그 인도를 받았다 하는 그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역사 공부를 시키는 것입니까? 아니오. 여게서 깨달을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했는데 오늘은 뭘로 인도합니까? 그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오늘의 뭣을 모형해 가지고 보여 준 것입니까? 이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 뭐입니까? 오늘의 진리의 영감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들이 구름의 인도를 받았고, 인도를 받으니까 홍해 바다를 건너는 그 인도를 받았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오늘 진리와 영감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진리와 영감이 인도하다니? 우리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면서 그 현실에 우리가 영감대로, 영감을 따라 살고 진리를 따라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만들어 주는 그 현실은 영감과 진리를 따라 살라고 하면은 우리 만들어 주는 현실이 평탄한 현실입니까, 환난 있는 현실입니까, 평탄도 있고 환난도 있고 마구 섞여 있는 그 현실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현실을 주십니까? 그때에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강이 있으면 강으로 둘러가지 안해. 강이 있으면 강을 막 꿰뚫습니다. 알겠습니까? 강을 꿰뚫습니다. 또 거게 뭐 맹수가 있는 그런 아주 험악한 그런 아주 들, 산이 있으면 산으로 막 꿰뚫습니다. 인도를 받아서 가는 그 걸음이 강을 만나도 그들은 그 인도 따라서 가고, 또 산을 만나도 그 인도 따라 가고, 어떻게 험한 들 강을 만나도 두르는 법이 없고 그대로 인도따라 가고,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떻게 그것을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느냐?’ 인도해서 받은, 인도 받은 걸음을 지금도 다 도면이 있으니까 그려 보면 알아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건 언제든지 곧게 인도했지 이렇게 형편 따라 사정 따라서 그리 인도하지를 안해요.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는 죽음을 통과하는 것도 있고, 존귀를 통과하는 것도 있고, 별별 현실을 만나게 해 가지고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은 죽음을 자취하는 그 걸음이 되고, 또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은 모든 부요를 다 포기하는 걸음이 되고, 또 말씀대로 인도함을 받아서 가니까 죽었는데 살았고, 또 멸망 받았는데 살았고, 물에 빠졌는데 아무 상함 없이 걸어가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게서, 그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에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했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했으니 낮에는 사막 지방을 통과하다 보니까 되게 덥습니다. 낮으로는 한 사십여도, 지금 사십여도 되면 사람이 그뭐 못 견디지 않소? 사십여도, 밤에는 뭐 영하 한 칠팔도 이렇게 되어지니까 한서의 차이가 있으니까, 한서의 차이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낮에는 더워 죽고 밤에는 추워 죽고 이래 죽는 그 사막 지방을 통과해서 인도했습니다. 저리 가면 좋은 길 있고 사람 많이 살고 농사도 짓고 사먹을 것도 있고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사막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인도하니까 백성들이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니까 불기둥이 인도하는 그 불기둥의 혜택으로써 밤에는 얼어 죽지 안했지만, 그저 얼어 죽지 안할 정도라.

얼어 죽지 안할 정도로 막 볼볼볼 떨면서 밤을 지내고 나니까 이제 낮에는 또 햇빛이 돋우면, 햇빛이 돋아 오르니까, 밤에 깡깡 언 사람들이 햇빛이 돋아 오르니까 좋아서 그만 따뜻한, 해가 돋아 오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햇빛이 돌아와서 햇빛을 쏠라고 하니까 구름이 딱 막아 버립니다. 구름이 딱 막아서 또 따신 꼴 한 번도 보지 못하요. 따신 꼴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이제, 그러나, 암만 따신 꼴을 못 봐도, 못 봐도 낮에 그렇게 많은 열도 가운데 있다 보니까 아침에는 뭐 해를 가려 주니까, 햇빛을 가려 주니까, 이거 고통이고 원망 불평이 있었지마는 벌써 한나절이 지내가고 보면은 암만 가렸지마는 그래도 더워서 못 견딜 지경이라, 더워서 못 견딜 지경. 오후에는 더워서 헐떡헐떡해요, 암만 구름 밑에 있어도.

헐떡헐떡한데, 그랬는데 오후에 지금 더워서 못 견디는 지경인데 이제는 좀 시원하게 지낼라 하는데 이제 해가 스르르 넘어가 가지고 그 더운 열도가 좀 줄어지고 선선할라 하니까 좋아서 이스라엘이 이제는 살상바르다 말이오.

살상바른데 또 뭘로 줍니까? 살상바른데 뭘로 인도하요? 불로 인도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더워서 못 견디는데 이 더운 것을 겨우 면할 만하니까 또 불기둥이 와서 깡깡 들이 쬐우니까 죽을 지경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해서 낮에 구름기둥으로 인도할 때에 그분들이 불평과 원망이 있었겠소 없었겠소? 불평과 원망이 있었습니다. 또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니까 환하게 좋다 했습니까 그들에게 불만과 불평이 있었겠습니까? 불만과 불평이 있었습니다. 왜? 더운데 지금 해가 넘어 가니까 시원하게 좀 지낼라고 지금 하고 있으니까, 시원하게 지낼라고 하니까 시원함이 오기도 전에 얼른 불기둥이 와 가지고 뜻뜻하게 하니까 귀찮다 그거요. 오유월에 불 쬐이면 귀찮아 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라.

그러나 단편적으로 보면, 단편적으로 보면 실컷 만족히 서늘한 꼴을 보지 못해서 불평이고, 만족히 해 돋을 때 따뜻한 꼴을 보지 못하게 해서 불평이지마는 저희들이 보고 싶은 대로 따뜻한 꼴 다 보고 보고 싶은 대로 시원한 꼴 다 보면은 나중에 그 사람은 어찌 됩니까 어찌 됩니까? 시원한 꼴 많이 봤고 뜨신 꼴 많이 봤으니까, 만족 하도록 따뜻한 꼴 봤으니까 그 사람 병이 듭니까 안 듭니까? 병이 듭니까 안 듭니까?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죽습니다.

사막이라는 데에는 동물도 없고 곤충도 없고 식물도 없고 다 죽고 모래만 있습니다, 모래만. 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기 때문에 너무 한서 차이가 있으니까 이 식물들도 낮에 더우니까 더운 거 맞춰 가지고, 겨우 더움을 면해서 살아나갈 만하니까 갑자기 확 추워 버리니까 그만 죽어 버리고 그저 하루 이틀 지나가면 다 죽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그걸 아시기 때문에 이렇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서 이 사막을 지내서, 사막에서 오랫 동안 통과하고 이래 지냈지마는 거게서 아무 병들지 안하고 이스라엘이 무사히 지내갔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감으로 인도하고 진리로 인도하는데 예를 들면은 경제에 곤란해서, 경제에 곤란해서 못 견딜 때에 이 물질이 옵니다. 경제 고난을 당할 때에 물질의 은혜가 와서, 물질이 차차 차차 와 가지고 경제의 어려움을 면하게 합니다. 경제의 어려움이 면해서 그저 참 못 먹고 있다가 이 물질이 오니까 좋아서 먹고 이라는데, 먹고 이래 잘 좀 얼마 동안 지내니까, 경제의 어려움을 조금 면하게 되니까, 면하게 되니까, 아주 경제에 추워서 말이오. 추워서 못 견디는 거, 가난으로 못 견딜 때에 이제 햇빛이 돋는 거와 마찬가지로 경제의 어려움이 면해져서 조금 밥 먹고 지낼 만하고, 그저 근근히 살 만하니까 그때 추워서 못 견딜 지경인데 이제 해가 돋으니까 좀 따시니까 좋아서 이제 좀, 벌벌벌 떨면서 좀 좋아서 이라는데 구름기둥이 오니까 그들이 싫어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지금 경제의 어려움 와서 곤란을 당하고 있는데 이 경제의 문제가 좀 해결이 되니까 좋아서 좀 숨을 내쉬고 이제 좀 좋다 이라는데 뭣이 와 가지고 그 좋은 물질을 취하지 못하게 방해를 합니까? 뭣이 방해를 합니까? 추워서 못 견디는데 햇빛이 와 가지고 따뜻하게 하니까 좋아서, 웃으면서 ‘아이구, 아이 춥다 춥다. 아이구 인제 뜨뜻하니 좋다. 아이 뜨시다 뜨시다.’ 이렇게 할 때에 구름기둥이 떡 와 가지고 그 따신 햇빛을 쪼우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지 안하면 그 사람들이 죽는데, 오늘 우리에게 경제로 곤난당할 때에 경제의 문제가 좀 해결이 돼서 경제의 어려움이 좀 면해지고 나니까 뭣이 와 가지고 그 경제에, 햇빛을 더 많이 쐬지 못하게 하는 거처럼 경제로 더 풍성하게 이렇게 더 경제에 부요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방해하는 것이 뭐이 방해합니까? 뭐이 와 방해를 합니까? 여게는, 뭐이 방해합니까? 뭐이 방해를 하요? 좀 큰 소리 한번 해 보소, 여러분들. 해 봐도 부끄럽지 안해. 뭐이 방해를 합니까? 저 뒤에 뭐이 방해 합니까? 뭐이 방해하요? 자, 이거 좀 고함 소리 이거 좀 회개해야 되겠어. 인제 설교할 때 말이요, 설교할 때 자기 마음에 맞거들랑은 아멘 하십시오. 이거 너무 되지 못하고 양반이 돼서 못써. 쓰지 못할 더러운 놈의 양반이라. 이거 여러분들 이 보수파라고 이래 해 가지고 하는데, 양반 예수 믿는 데서 다 망했어.

이라니까, ‘뭐 설교 들을 때 거기는 아멘! 아멘!’ 아멘 이 흉을 보는 게 아니라 아멘이 옳다! 아멘 안 한 양반 신앙 생활 너는 죽는다! 네게는 기적이 없어!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 점점 망해가! 점점 속화되어 나가! 너거 인간들뿐이다! 하나님 안 계셔! 알겠소? 맞으면 아멘 해요. 맞으면 ‘아멘!’ 안 맞으면 어짤라요? 안 맞으면 어짤랍니까? 안 맞으면 ‘틀렸어!’ 맞으면 `아멘!' 틀렸으면 ‘틀렸어!’ 막 `틀렸어!' 이래야 강단에 있는 목사가 회개를 하고 고쳐야 될 터인데 맞아도 암말도 안 하고, 틀려도 암말도 안 하고, 마구 정금 같은 보배를 줘도 뭣을 주든지 암말도 안 하고, 죽이는 말을 해도 암말도 안 하고, 그런 거는 죽어야 되겠소 살아야 되겠소? 자, 죽어야 되겠소 살아야 되겠소? 죽어야 된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 저 뒤에는 안 든다. 죽어야 돼, 죽어야 돼.

자, 그들이 밤새껏 깡깡 얼어서 못 견디는 데 이제 날이 새서 해가 멀건이 뜨니까 뜨뜻해서 지금 좋아서 ‘아이구, 어 춥다, 어 춥다.’ 뜨뜻하니까 `아이 따시다, 아이 따시다, 햇빛 따시다. 여기가 따시나 저기가 따시나?’ 이래 쌓고 있는데 구름기둥이 와서 해를 떡 막아 버리니까 그들이 어째겠소? ‘히, 체, 지금 추워 죽겠는데 하필 왜 또 햇빛을 딱 구름이 막아 버리노?’ 뭐 원망 불평 꽉 찼었을 거라.

그래 안 하면 그들이 죽습니다. 그래 안 하면 이틀만 하면 죽어요. 그렇게 한서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루 근근히 지냈지만 그 이튿날 그만 병 들어 다 죽어 버려, 다 녹아 죽어 버려요. 그러기 때문에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사막은 춥고 더운 한서의 차이가 많이 있는 것이 사막인데, 사막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상징해서 하나님이 사막으로 인도했습니까 사막은 오늘의 무엇을 상징한 것입니까? 무엇을 상징한 것입니까? 뭘 상징한 것이요? 현실! 세상! 세상은 사막입니다. 알겠습니까? 세상은 사막인 줄 아십시오. 세상에는 더워서 죽고 추워서 죽는 것이 세상입니다. 알겠습니까? 세상에서 더워서 죽고 추워서 죽소.

너무 좋아서 너무 하잖해서 죽습니다.

이랬는데, 경제로 그렇게 겨우 좀 곤란 면할 만하니까 구름기둥이 와 가지고 싹 가려 버립니다. 경제 해결이 좀 돼 가지고 좀 넉넉히 조금 지낼 만하니까, 이스라엘은 구름기둥이 와서 가리워서 햇빛이 바로 쪼이지 못하도록 했는데, 오늘 우리는 뭘로 가지고 그 경제가 조금 해결이 돼 가지고 좀 지낼 만하니까 그 경제에 그 풍성함이 우리에게 오지 못하도록 뭣이 가리우고 방해합니까? 뭣이 가루고 방해하요? 뭣이 가루고 방해합니까? 요걸 깨달아야지. 저기, 뭣이 가루고 방해하요? 양심이 가루고 진리가 가루고 영감이 가룹니다.

그라니까 하나님이 현실을 딱 만들어 주시는데, 그 현실을 만들어 그 현실에는 진리를 지킬라 하는 날이면 눈 앞에 돈이 뭉텅하게 와 있는데도 진리 지킬라 하니까 그 현실에서 진리 지킬라 하면은 그 돈을 취하지 못하게 되겠고, 영감을 지킬라 하니까 취하지 못하겠고, 이러니까, 우리 사업하는 데에 돈벌이는 되고 뭣이 성공은 하고 취직도 하고 자꾸 출세해 올라가겠는데 요 성경의 진리가 딱딱 막아 가지고 안 돼. ‘진리 때문에 나는 망한다. 영감 때문에 망한다.’ 그런 거 느껴 본 사람 손들어 봅시다. 그런 거 느껴 본 사람? 예수 믿고 그런 거 느껴 본 사람 손들어요. 안 느껴 봤으면 껍데기야. 안 느껴 봤으면 껍데기라. 알겠습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그래, 이러면 하나님께서 그 현실을 딱 만들어 가지고 그 현실에 진리대로 지킬라 하니까 그만 그 사업이 딱 중단이 돼 버립니다. 영감대로 할라 하니까 그만 무더기로 한 무더기 거머닥칠 때 그만 그걸 거머닥치지 못 하겠습니다.

이라니까, 진리 때문에 부자 못 되고 영감 때문에 부자 못 되고, 또 자기가 그리 아니면 자기가 너무 자기 마음에 좋아서 그만 행복이 돼 가지고 못 견디게 되고 그만 행복이 자꾸 이래 오고 모든 것이 형통해졌는데, 진리가 가로막지 안하고 영감이 가로막지 못하면 실컷 취할 대로 실컷 취하고 성공할 대로 성공했을 터인데 진리와 영감이 가로막아서 그만 그 일을 하지 못하고 예수 믿기 때문에 못 했다 이게 이렇게 되어진 사람. 그것이 지나가고 보면 자기를 구원한 구원이 된다는 것을 그거 느끼고 깨달아야 됩니다.

여기 가까이 있는 사람 내가 하나 말하겠소. ○○○목사님이 은행에 이십 년 있었어. 그분이 재주가 비상한 분입니다. 이랬는데 아마 주일날 시험 치는 거 그만 시험만 쳤으면 벌써 은행, 어떤 큰 은행의 본점에 은행장이 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랬는데 주일날 시험치기 때문에 못 쳤어. 이 주일날이 원수라. 하필 주일날, 주일날 집어 떼내버리면 되겠는데.

주일 때문에 얼마든지 성공할 것 성공하지 못하고 이라니까 망하는 것 같았는데, 대은행장이 됐으면 지금 은행장 하다가 뭐 감옥에 갔는지 징역을 살란지 몰라요.

은행장은 다 탈 안 납니다? 이래 가지고 평생 자기가 뭐이 될란지 모르는데 그렇게 붙들고 붙드는 것이 오늘에 목사가 됐어. 알겠습니까? 여러분들 우리가 좋아 죽고 나빠 죽습니다. 우리가 안 됐어서 죽을 때에, 안 됐어서 죽을 때에, 안 됐어서 하잖해서 죽을 때서, 하잖해서 죽을 때에, 하잖해서 죽는 그 죽음에서, 말하자면 아주 하잖해서 죽는 죽음, 추워서 죽는 죽음 말이오.

하잖해서 죽는 죽음에, 추워서 죽을 지경인데 뭣이 와서 구원 했습니까? 추워서 죽을 때 뭣이 와서 구원했소? 불기둥이 와서 구원했어.

우리가 지금 추워서 죽을 때에, 환난이 와서, 우리가 환난을 만나 가지고 이 환난으로 말미암아 이제 나는 틀림 없이 망하게 될 때에, 그때 환난으로 망하게 될 때에 우리를 그 환난에서 구원하는 불기둥은 뭐입니까? 그 환난에 우리를 구원하는 불기둥은 뭐이요? 진리와 영감을 겪어 봤습니까? 그 환난으로 멸망을 받을 때에, 멸망을 받을 때에 그때에 이 진리를 지킬라 하고 영감대로 할라고 하니까, 그 환난 만날 때에 영감대로 진리대로 지킬라고 하니까 어찌 됩니까? 그 환난이 진리 지키고 영감대로 지킬라 하니까 그 환난 만난 자기에게 도움이 됩니까 더 환난을 더 만나게 하고 환난 만난 자기를 멸망케 합니까? 환난 만날 때에 우리에게 오는 영감과 진리는 우리 환난에 도움이 됩니까 우리 환난에서 우리를 망치게 합니까? 망치게 합니까 도움이 됩니까? 아니야. 망치게 해요. 공연히 거짓부리로 하는 거. 망치게 해. 망치게 했는데, 망치게 했는데, 망해도 나는 진리와 영감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나서 보니까, 그뒤에 지나가고 보니까 그게 구원이 됐습니다. 지나가고 보니 구원이 됐어.

요것이 여러분들이 가서 자꾸 생각해 보십시오.

왜 진리와 성령이 우리를 좋을라 할 때에 좋을라 할 때에 더 좋지 못하도록, 이 좋은 것을 조절해 가지고 좋지 못하도록 영감과 진리가 조절하고 또 우리가 환난 만났을 때에, 환난을 만났으면 그 환난에 나는 망해 들어갈 터인데 그 환난에서 영감과 진리가 ‘네가 이렇게 해라’ 영감과 진리대로 할라고 하니까 환난 만난 사람에게 더 환난이 됩니까 평안이 됩니까? 환난이 됩니까 평안이 됩니까? 자, 환난 만났을 때에 영감과 진리가 인도하는 그 인도는 더 환난이 됩니까 평안이 됩니까? 평안이 된다 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환난이 된다 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환난이 돼, 환난이 돼. 환난이 되니까 이제 이 영감 진리 때문에 나는 망한다 이래 싶으지마는, 더 환난이 되지마는 영감과 진리대로 하고 보니까 그 다음에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제자들이 배타고 가다가 풍랑 만내서 죽을 지경인데, 죽을 지경인데 그때 그 배타고 갈 때에 그 귀신, 물귀신 왔지요? 물귀신 안 왔습니까? 물귀신 왔지요? 물위로 떠뻑떠뻑 걸어 물귀신 오지 안했어요? 물귀신 오니까 제자들이 보고 뭐라 했어요? ‘유령이로다. 물귀신 왔다.’ 이제 죽는다고들 고함을 질렸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누구입니까? 주님이었어. 풍랑으로 지금 죽을 지경인 그들에게 예수님이, 구주 예수님이 오니까 그들이 보기에는 곧 자기를 망치는 물귀신이니까 ‘이제는 아주 우리는 죽었다’ 싶었는데 그분이 구주라.

이거 뭘 보입니까? 우리가 환난 만나 있을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 오실 때에는 우리 주관과 우리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 우리 생각대로 보면은 우리의 구원이 오는 그 구원은 나를 멸망케 하는 것으로 그렇게 꺼꾸로 보인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환난 만난 사람, 여러분들 권찰들이 가 가지고, 환난 만난 식구들에게 가 가지고 말하기를 ‘네가 이 환난 만났으니까 이렇게 해라.’ 환난 만난 사람을 진리와 영감으로 인도하면 그 사람이 좋아해요 싫어해요? 남의 말은 식은 죽먹듯이 한다고, 나는 지금 일을 당해 죽을 지경인데 그저 지내가는 말로 빛좋은 개살구로 떡 이렇게 말한다고. ‘그러면 지금 자기 권찰 말한 대로 하면 되겠소? 그래 하면 되겠소?’ ‘그래도 된다.' 나 아주 망해 죽으라고 하는구만. 망해 죽으라고 하는구만.’ 이래 가지고 그 인도를, 자, 권찰님들이 망하는 사람을 거게서 분명히 내가 보기에는 요렇게 해야 구원한다 싶어서 구원 얻는 그 참된 도리를 가르쳐 주면 그 사람이 이해를 합니까 안 합니까? 그 사람이 내게 대해 감사합니까 막 원수같이 반항을 합니까? 원수같이 반항합니다. 원수같이 반항해요. 제게는 이해가 안 되거든.

원수같이 반항 하나 그대로, 자기는 어두워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두워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진리로 판단한 대로 인도한 대로 순종하면 어찌 됩니까? 구원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을 인도할 때에, 인도할 때에 인도하는 방편이 둘입니다.

인도할 때에 ‘그리 가면 안 된다. 이리 가거라.’ 옳은 길로 인도할 때에 안 들으면 말고 들으면 듣고, 옳은 길로 인도하다가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만 하라 그 이상 인도하지 말아라. 옳은 거는 옳다 하고 아닌 거는 아니라고만 인도해라.” 그 인도가 있습니다. 그 인도가 있고, “그들은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자라 네가 인도하면 선지자를 돌로 쳐서 죽인다.

죽여도 끝까지 그들에게 바른 소리로 인도를 하라.”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그래만 인도하고 말아라.” “네가 죽어도 기여코 꼭 강하게 강력하게 인도를 해라.” 인도가 두 가지입니다. 알겠습니까? 인도가 두 가지인데, 이제 인도를 약하게 하라 그말은 그 사람을 바로 인도해 가지고 구출하기 위함입니까 바른 인도를 받지 안하고 가다가 코가 깨지든지 대가리가 깨지든지 깨져야 제가 깨닫고 경험할 것이기 때문에 이제 옳은 인도 받지 안하는 그것이 멸망이라 하는 것을, 멸망을 그 사람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인도하는 방편입니까 구원을 알리기 위해서 인도하는 방편입니까? 자,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고만 하라. 그 이상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은 구원 하기 위함입니까 멸망을 알리기 위한 인도입니까? 멸망을 알리기 위한 인도라. 그만치 해 냅둬요. 해 냅두면 뒤에 가다가 바싹 깨져 버리고, 대가리가 깨지든지 코가 깨지든지 그라면 엉엉 울면서, 아이구 엉엉 울면서, ‘아이구 왜 그러노?’ `아이구, 내가 목사님 말 안 듣다가 이랬습니다. 권찰 말 안 듣다가 안 그렇습니까’ 이제 인도를 안 듣다가 멸망했다 하는 것을 그때 멸망받고 난 다음에 아는 자입니다. 멸망받고 난 다음에 몇 번 알아야 인도를 받지 그리 안 하면 인도 안 받아요.

그라고 난 다음에 안 들어도, 안 들어도 낙망하지 마. “안 들어도 강력히 인도해라.” 안 들어도 강력히 인도하는 사람은 멸망을 보이기 위함입니까 구원을 보이기 위함입니까? 뭘 보이기 위함입니까? 구원 보이기 위함이요 멸망 보이기 위함이요? 멸망 보이기 위함이라고 생각 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구원을 보이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구원을 보이기 위함이라. 이 인도는 강력이 인도합니다. 인도하면 반대를 하면서, 막 반대를 하면서도 따라올 수 있으면 그래 하라 말이오.

반대를 하면서도 따라옵니다. 따라오면 나중에 가 그것이 구원이 되고 성공이 되고 난 다음에야 그뒤에 ‘참 감사합니다. 이거는 옳게 인도한 목사님의 혜택입니다, 권사님의 혜택입니다, 장로님의 혜택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게 그라고 난 다음에도 그 혜택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뭐 그리 될 때라 그렇지’ 뭐, 속으로 뭐, 겉어머리로는 `인도대로 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참 잘 인도해 준 혜택입니다.’ 이렇게 해도 속으로는 뭐 ‘그렇게 될 때라 그렇게 됐지 뭐 꼭 인도대로 그래 그러나?’ 겉어머리로는 듣기 좋으라고 이런 말 하지마는 속에는 딴놈이 들어앉았다 그 말이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그 다음에 그런 일이 닥치면 강력히 인도를 해야 돼요 인도하다가 안 들으면 냅둬야 돼요? 냅둬야 돼요. 사람이 성공으로만 성공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까 실패 한 자욱 성공 한 자욱 이래 두 발로 이렇게 바꿔, 엇바꿔 걸어가야 걸어가게 됩니까? 엇바꿔 걸어가야 걸어가게 돼요.

그런고로 오늘 오전에,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했을까? 낮에는, 더운 것은 좋을 걸 말했습니다, 좋은 거. 너무 좋아 죽어요.

세상은 너무 좋아 죽습니다, 너무 좋아 죽어. 또 너무 하잖해서 죽어. 너무 나빠서 죽어.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사막이라. 이러기에 세상은 사막이니까 세상에 자기에게 닥친 좋은 거 닥친다고 마구 꺼먹깨먹 꺼머먹으면 다 걸려 다 죽어요.

또 자기에게 하잖은 거 온다고, 하잖은 거 그것을 다 피하면 또 죽어요. 하잖을 때에, 하잖을 때에 더 하잖케 하는, 더 하잖케 하는 진리의 영감 인도를 받아야 됩니다. 추워서 죽을 지경인데 추워서 죽을 지경에는 뭐 인도 받았어요? 추워서 죽을 지경인데 뭐 더 춥게 하는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아야 돼요. 알겠습니까? 좋아서 죽을 지경일 때에는 뭐 인도를 받아야 돼요? 불기둥 인도를 받아야 돼요.

좋지 못하게 하는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야 돼요. 알겠습니까? 요거 맞소 안 맞소?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언뜻 들으면 몰라 여러분들 좀 오늘 가 좀 새김질을 해 봐요. 딱 맞아요.

이러니까 이 세상은 사막이라. 한서의 차이가 있어서 다 죽고 만다. 악령이 이 세상을 한서의 세상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사람은 너무 좋아서 좋은 것만 취하다가 죽고 또 하잖해 죽고 죽는 것인데, 좋은데 너무 좋지 말아라. 하잖은 데에 너무 하잖은 것을 너무 싹 피하지 말아라. 하잖은 것도 조절해라 좋은 것도 조절해라. 하잖고 좋은 거 조절해서 주는 것이 진리와 영감이다. 요대로 조절하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랬는데, 하나만 더 말하고 맙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내며 모세에게 속하여” “모세에게 속하여” 모세 인도를 따라, 모세가 뭐,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인도하니까, 모세는 불기둥과 구름기둥 따라가니까 모세에게 속해 가지고 지금 그를 따라갑니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 받았다, 이거 무슨 뜻이요?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 받았다 이거 무슨 뜻입니까?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무슨 뜻인지? 나는 여게 대해 주석을 못 봤어요. 가서 칼빈 주석 봐요. 여러분들이 박윤선 목사님 주석을, 박윤선 목사님 주석이 다 칼빈 주석 그런 걸 다 통과했기 때문에 권위 있는 주석입니다. 또 칼빈 주석 가 봐요. 여게 바다에서 세례 받았다, 구름 아래서 세례 받았다, 요 세례 받았다 말이 무슨 말인지? 세례를 뭐이라고 배웠습니까? 세례는 뭣하는 게 세례지요? 세레는 뭣이 세례입니까? 세례를 침례교에서는 침례로 합니다. 침례로 하는데, 로마서 6장에 세례 받는 것은 뭐이라 했습니까? 로마서 6장에 세례 받는 게 뭐이라 했지요? 죽고 사는 것이 세례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는 그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라 하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이오. 세례는 죽고 사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물을 찍어 이래 세례를 주는데 침례교에서는 물속에 담궜다가 살려요. 나는 지금 알궂게 주 매여 가지고 나는 세례 받는 사람이 됐고 세례 주는 사람이 됐어. 이랬는데 나는 세례보다 침례를 더 존경합니다. 더 실감으로 느낌니다. 이러나 내가 오늘 침례를 주장하면 세례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내가 침례를 주장을 못 해. 알겠습니까? 나는 침례가 더 좋다고 나는 평가하지마는 내가 지금 침례 하는 것을 실시하고 침례를 베풀고 침례를 주장하면 세례는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세례도 성경적이요 부정할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 이 부정을 못 해 그렇지 실지로 우리가 실감을 느끼는 데는, 효력을 느끼는 것은 침례가 더 좋아요. 침례.

이래서 침례교는 이 강단 앞에 이 물이 있습니다. 강단 앞에 소를 만들어 놨어요.

큰 우물을 만들어 놔서 거게 물을 쪽 빼고 또 새 물 넣고 이라는데, 침례 줄 때에는 침례 옷을 입혀요. 침례 옷을 입혀 가지고, 목사가 침례 받는 사람을 물속에 집어 넣어서, 물속에 들어가면, 물속에 폭 집어넣어서 안 보여요. 안 보이게 이래 폭 집어넣어 가지고 얼마 있으면 ‘숨 쉬지 마라’ 이래 놓고 폭 넣어. 숨 안 쉬고 이래 가지고 물 안 먹고 죽지 안할 만치 되면 들어올려요.

그라면 그 사람 이 세상에서는 죽었다 살아났소 그냥 살아 있소? 물속에 들어가 죽었다 살아난 거라. 요렇게 침례를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 세례의 뜻은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세례는 그렇게 말해 놨어.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왔다 하는데 그것도 뭐 물로 그라면 그릇에다 떠다 주지 뭐할라고 그 요단 강에, 저 물속에, 저 밑에 내려가 가지고 그래 했겠습니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에” “물이 많으므로 거기서 세례를 줬다” 하니까 그 세례가 뭐 침례겠소 물을 찍어 얹는 거겠소? 뭘로 보입니까? 뭘로 생각이 됩니까? “물이 많아서” 물 한 그릇만 해도 여러 수백 명도 줄 것인데.

과거에 물로 가지고 이 세례를, 군인 세례는 뭐 이 낱낱이 줄 수 없으니까 이래 가지고 이리 그만 확 이래 뿌렸어. 펌프로 뿌렸는지 모르겠어. 펌프로 뿌렸는지.

○○○목사님도 오천 명 세례 줬다 하데, 오천 명 세례. 많이 주는 게, 그때는 오천 명 군인들을 모아 놓고, 왜 세례 받아? 공산주의는 무신론자들이거든 기독자는 유신론자들이거든. 세례 받으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다.’ 유신론자를 만들기 위해서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그렇게 했더라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랬는데, 침례로 했다면은 그렇게 조작배기는 못 할 거라. 알겠습니까? 침례로 했다면은 물이 많은 데 가 가지고 하나 하나 집어넣어 담가다가 올라오고 했으면 그 많은 사람이 해도 좀 실감 있게 했을 터인데 물로 뿌리기 때문에 이래 했다, 이래서 나는 이 물로 뿌리는 것보다 이 침례 하는 것을 더 실감 있고 권위 있다고 나는 그리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례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오. 왜? 구약에 보면은 피를 이래 뿌려 가지고 거룩하게 속량했기 때문에 그 성구를 근거해 가지고 하니까, 그것도 성경이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상징하는 이거 물을 뿌려도 거룩해진다 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대로 합니다.

자, 따라합시다.

세례는! 죽고 사는 거! 세례는! 죽고 사는 거! 세례는! 죽은 후에 사는 것! 그게 세례입니다. 그게 세례.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에서 세례를 받았고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하니까 이제 구름과 바다에서 어쨌다는 말입니까? 구름과 바다에서 어쨌다는 말입니까? 한번 자, 해 보이소. 자, 같이 해 봐요. 같이 해 봅시다. 자, 같이 해 봐요, 그러면.

세례를 배웠으니까, 세례 받았으니까,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 받았다고 하지 안했어요? 이러니까 구름과 바다에서 이제 세례 받은 세례 해석을 해 가지고 여러분들이 같이 한번 말해 보자 말이오.

구름과 바다에서 죽고 살았다! 구름과 바다에서 죽고 살았다! 다 같이 따라 해요.

구름과 바다에서! 죽고 살았다! 구름과 바다에서! 죽고 살았다! 실감이 옵니까? 그때를 조금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이 인도할 때에 이렇게 구름기둥이 인도할 때 걸어서 가는데, 따라가는데 그들의 가는 걸음이 어떤 걸음이기 때문에 세례 받았다 했습니까? 죽고 산 걸음이라, 모두 다. 이제, 가는 걸음은 뭐 ‘이라면 아, 위험인데? 다치겠는데?’ 그게 아니라. 죽고 사는 것을 생각지를 못했어. 안 따라가면 죽기 때문에, 지금.

안 따라가면 죽기 때문에 그때 그들이, ‘이리 갔다가는 죽는다, 산다. 물에 빠진다. 들, 강에 훑겨진다. 이라면 수십 길 되는 반석 있는 데로 쭈욱 바로 끌고 가니까 여기 떨어지면 죽는다.’ 그 계산이 없어. 죽고 사는 것을 돌아보지 안하고 인도를 따른 인도입니다. 알겠습니까? 인도를 따른 인도요.

이랬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까 세례 받았어. 전부 ‘하이고, 저기서 죽었을 것인데 몇이나 죽었노, 야?’ ‘하나도 안 죽었다.' 다 죽었는데 살았어. 강물은, 그 강물은 벌써 여러 길인데 그 강물을 우리가 그냥 짊어지고 건너왔는데 그 강물 건너왔으니까 ‘그거 다 몇이나 빠져 죽었노?’ 다 물에 가면 다 죽지, 다 죽을 터인데 다 죽을 길을 통과 받았는데 나오고 보니까 다 살았어. 다 죽고 산 걸음이라. 성령이 인도하는 걸음은 다 죽고 산 걸음이라.

“바다에서 세례 받았다” 바다도 하나님께서 ‘어데로 가랍니까?’ 모세를 야단쳤어. ‘왜 네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가지 안하고 뭘 나한테 묻느냐? 나한테 묻기를 뭐하라고 묻느냐?’ 야단쳤다 말이오. 이라니까 모세가 불기둥이 인도하고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쭈욱 가니까 어데로 인도하느냐? 홍해 바다로 인도한다 말이오. 홍해 물이 철렁철렁하고 내려가는데 그리 인도했어.

인도하니까, 인도하니까 들어갈 때, 처음에 들어갈 때 길이 환하게 열려 들어갔겠소 이제 법궤를 메고 제사장은 앞에 서고 인도하니까 가야 돼. 죽어도 가야 되고 살아도 가야 되고, 죽어도 가야 되고, 살아도 가야 되고, 배고파도 가야 되고, 눈물 흘려도 가야 되고, 옥에 갇혀도 가야 되고 가야 되는 그 걸음이라.

이러니까, 그때 그분들이 애굽에서 인도함을 받았을 때에 그 이스라엘 백성들 왜 하나님 기뻐했느냐? 하나님 인도를 따를 때에 ‘이라면 죽겠다 살겠다’ 그걸 생각지 안해. 죽느냐 사는 것이 머리에 없었어. 죽고 사는 거 생각지 안했어.

죽든지 살든지 그거는 상관없이 인도에 떨어지지 안하고 따르기만을 원했어.

이러니까 홍해로 이래 들어가면, 거기 세례 받았다 하는 말은 이제 가니까, 바다로 가니까, 바다로 인도하면 이제, 이거 물이 이 모가지에 널럼널럼하는데 또 가니까, 차차 차차 가니까 아, 물이 얄궂어져 가지고, 물이 얄궂어서 오른쪽에는 물이 산같이 막 쿨렁쿨렁쿨렁하고, 물이 막 울렁울렁 막 물결을 치면서 산같이 물이 올라가지 왼쪽에도 물이 산같이 올라가지, 양쪽에는 파도가 막, 바람이, 바람이 불어 그랬어. 바람이 불어 이래 가지고 물이 오른편에도 태산이 쌓였고 왼쪽에도 태산이 쌓였고, 가운데는 길이 있고 그 길 걸어갈 때에 어때요? 걸어가기가 또 어때요? 살았다 싶어요 죽었다 싶어요? 다 죽었다 싶어, 다 죽었다 싶어. ‘에, 이제는.’ 뭐 살았다는 소망 하나도 없어요. ‘죽었다’ 이러나, 죽고 사는 거 다 그만, 죽는 거 사는 거, 죽는 거 생각하면 못 가요. 또 사는 거 생각해도 못 가요.

죽고 사는 걸 생각지 안하고 뭐 물이 막 그래 있으니까 그뭐 가슴이 도근도근하지마는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다 생명 내놓고 갔어요, 다 생명 내놓고.

생명 내놓고 걸어간 그것이 홍해 바다를 건넌 것입니다.

오늘도 그때입니다. 오늘도 그때요. 오늘도 이 세상은 시온의 대로입니다. 이제 주님의 인도를 죽고 사는 걸 돌보지 안하고 주님의 인도만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시온의 대로라.

공산주의가 와도 상관이 없어. 인민군이 와도 상관이 없어. 신사참배가 와도 상관이 없어. 죽고 사는 것 상관하지 안하고 다 주님에게 맡겼고, 죽고 사는 거 생각지 안하고 ‘죽든지 살든지 주님의 인도만 따라가겠다’ 하고 따라가는 그 사람, 왜정 말년에 아무도 말 못했어. 아무도 안 했어.

‘너거 천조대신을 내 속에 쥐이라. 내가 너거 앞에 태울께. 너거 국기를 내 손에 쥐이라. 내가 너거 앞에 불에 태울께.’ 하는 그 말을 지금 돌아보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 사람이 보고를 못 했을 거라. 보고를 못 했어. 보고를 했으면 당장 그 사람 죽여 버릴 거라. 왜? ‘네 이놈아, 우리 일본 나라에 신을 불에 태운다 하는 그놈을 당장 죽여 버리지 그걸 죽이지 안하고 냅뒀어? 이 국기를 불에 태우겠다 하는 그놈을 당장 죽이지 죽이지 안하고 냅뒀어?’ 죽이지 안했으니까 ‘너같은 놈은 죽어야 돼. 너같은 놈은 우리 일본 나라 백성 아니라.’ 그 사람 죽였을 거라. 그 사람 죽기 싫어서 그때 그 보고를 안 한 것 같애, 내가 가만히 그 뒤에 생각하니까. 제가 죽지 안하기 위해서. 그거 죽을 말 아니요? 일본 나라 제일 신으로 보는 그 신을, ‘그 신은 아무 효력 없고 죽은 신이요 거짓 신이다.

네 손에 쥐이라. 내가 네 앞에서 불에 사를 께.’ 하면 그만 죽이고도 남은 그 죄가 몇백 배 있어요.

여러분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구름 아래에 있었다. 바다 가운데로 건넜다. 구름 아래로 걸었다 바다 가운데로 건넜다. 건넌 것을 가만히 명상해서 생각해 보고, 거게서 세례 받았다는 하는 것은 그들의 심정과 그들의 태도를 다 나타낸 말이라. 세례 받았다 다 죽고 살았다 말이오. 다 죽고 살았어. 벌써 다 죽고 살았어. 다 생명 다 내놓고 다 죽고, 이제 죽고, 생명 다 내놓고 죽었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 알아 듣겠습니까? 이것이 예수 믿는 신앙의 걸음입니다. 이게 예수 믿는 신앙의 걸음이라.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을 나올 때에도, 출애굽할 때에 하나님이 부탁했습니다. 다 일어서라! 허리에 띠를 띠라! 또 발에는 뭐라 했습니까? 신을 신어라! 또 지팡이를 짚어라! 또 무교병을 먹어라! 누룩을 하나도 없애라! 무교병은 뭐요? 누룩 없는 덩어리, 부풀기 전에 덩어리.

환난 중에서, 환난에서 모든 성도들이 다 우리가 돼야 됩니다. 우리가 돼야 돼.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내 개인 내가 아니라 대아라, 그 큰 나 대아. 이렇게 모든 사람과 나와의 그 사이가 벌어지지 안하고 너 나의 간격 없는 너 나가 하나 되어 있는 요 화목의 단일성을 가진 사람만 살립니다. 원수가 백도 열도 저만 좋고 모든 사람은 다 원수 되는 그 자는 하나님이 죽여 버려요. 알겠습니까? 누룩을 없애라. 누룩 없는 떡을 먹어라.

또 쓴나물을 먹어라. 쓴나물은 뭐이요? 쓴 나물은 뭐이요? 쓴나물을 뭘 가리켰지? 고난. 예수 믿는 걸음은 고난으로 걸어가는 겁니다. 압니까? 고난. 주의 걸음은 고난으로 걸었는데 걷고 보니까 뭐입니까? 평안이오. 걷고 보니까 평안이오.

죽음으로 걸었는데 걷고 보니까, 죽었는데 걷고 보니까 살았소 죽었소? 살았어.

양 고기 먹고 가거라. 우리는 뭐 먹으라 했습니까?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예수님의 대속하신, 나를 사죄, 칭의, 화친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되 한번도 당신을 위해서 하지 안했고 전체가 다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새기고 새기고 그 고난을 새기고 새김으로써 ‘나도!’ 하는 `나도!' 하는 요 힘이 예수 믿는 힘이요! 요 힘 가지고 갑니다! 다른 거 가지고 못 가요! 제 볼 일 다 보고, 제것 다 따지고 그래 가지고 나머지기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찌끄러기 그거 가지고 예수 믿어서 다 헛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요것을 깊이 가서 새기십시오. 다 구름 아래에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

구름 아래 있었다. 오늘 성령이 나를 인도하시는 인도는 나는 들 강이라고 안 가고, 구렁텅이라고 안 가고, 험하다고 안 가고, 좋은 것만 가니까 저는 제 마음대로 가는 것이 성령 인도입니까? 성령 인도는 절대로 우리에게 내 주관 형편에 맞게 인도하지 않습니다. 세상 이치에 맞게 인도하지 않습니다. 이런데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자는 살고 잃은 자는 다 얻고.

<기도> 주님, 무한하신 주님의 말씀이며, 죽은 자를 살리는 말씀이며, 모든 저주와 죄와 마귀 아래에 있는 것을 완전히 생명과 의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말씀이오니 이 말씀을 어떻게 저희 유한한 사람들이 들으며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순전히 전능하신 주의 피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무한하신 이 능력으로써만 우리들이 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실행을 하여 실상을 이룰 수가 있음을 압니다.

주께서 말씀 하시지 안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아버지의 성령으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주님이여! 약속하신 대로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믿습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무엇이든지 내가 시행하겠다고 약속 하신 것을 믿습니다.! 이 계약을 믿습니다! 주님이여! 이 무리들에게 주의 말씀을 들어 깨닫고 기억하고 현실에서 생각나게 하사 요 말씀대로 실상을 이루어 영원히 주님에게 영광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다시 기도합니다.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나기 전부터 다 하나님의 자녀이지마는 마귀가 이리 저리 홀고 붙들어서 자유하지 못하다가 이제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서 원수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사옴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자녀이오니 크고 작은 모든 일들과 나타나고 비밀을 다 주님이 의논하시고 책임지사 주님에게 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시고 의논하는 것을 다 도와 주셔서 평강 가운데서 염려 없이 세상을 이기고 의의 걸음을 걸어 영육이 축복받는 이 승리의 걸음을 끝까지 걸을 수 있는 축복을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하는 사랑한 종들에게 더욱이 사람을 취하는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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