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의 중요성

 

1986. 3. 10. 월새벽

 

본문: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여기 10절에는 성령의 사람이, 영감의 사람이 세상에서 양보하지 아니하고 영감대로 살면 그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느냐 하는 것을 일부 소개했습니다. 뭐 별별 일을 다 당하는데 꼭 이것을 한 성구를 외우지 못하면 안 됩니다. 산상 보훈에 말씀하시기를 ‘거짓 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상이 크니라’ 이랬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모든 뭐 별별 억울한 일 애매한 일 그런 것들이 많이 있으나 그럴 때에 첫째는 주님을 생각하고 또 두번째는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제가 희생하고 가만히 참고 있는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깨끗게 하기 위해서 고난당하는 그것은 회개의 고난이고 십자가는 자기를 깨끗게 고친 후에 다른 사람의 부정을 위해서 자기가 대신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는 고것이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나의 교훈과」 제일 처음에 교훈을 말했습니다. 이 교훈이 그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잘 감내합니다. 감내, 감당. 감내라 말은 견딜 내(耐)자 입니다.

감내를 합니다. 그러면 「나의 교훈과」 사도 바울 속에도 이 교훈이 자기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런 모든 환난을 당해도 잘 극복하고 소화도 잘하고 그래서 자타의 구원이 그 모든 환난을 통해서 잘 이루어지도록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속에 있지 안하면 평소에 잘 믿는 거같이 이렇지마는서도 그런 역경을 당하면 고만 사람이 변질돼 버립니다. 마치 구정물 통이 말가이 똑 참 깨끗한 정수 같지마는 고만 밑에 저으면 밑에 것이 올라오면 내나 구정물되는 것처럼 그 사람이 평소에는 무슨 예수를 믿는 거같이 잘 그렇지마는 어떤 환난이 닥치면 고만 속에 있는 옛사람이 다 올라와 가지고서 참 놀랠만치 완전히 변태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쨌던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속에 있어야 됩니다. 이 교훈이 자기 속에 없으면 안 돼요. 그러기에 구역 식구들도 구역장이 기를 때에 그 교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도록 하는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구역들은 그 식구들을 거느리고 자기가 또 가서 배운 바의 말씀을 새김질하는 것 좋고 또 그렇지 못하는 분들은 또 새김질하는 거보다는 오히려 재독하는 것이 거기에 오점이 없기 쉬우니 테이프를 어데 잘 구해가지고서 꼭 주일날 거석하면 또 인제 주일날 밤에 재독할 때에 챙겨 가지고 듣도록 하고 또 그 교인들을 모아 가지고 저 산에 가서 한적한 곳에 가 가지고 그 테이프로 가지고 재독을 하면서 말씀을 들리고 이렇게 노력하는 그런 분들은 갈수록 약속하신 대로, 이 말씀과 영감과 피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 간 데에 주의 피도 가고 영감도 가고 또 주님의 피를 사모하고 피가 가는 데에 영감도 진리도 같이 갑니다. 이 셋은 떨어지지 안하고 셋은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새김질하다 보면 그 사람이 영감도 받고 예수님의 피의 은혜도 받아 가지고 자꾸 사람이 이제는 원수 옛사람은 죽어지고 새사람은 자꾸 이렇게 변화가 돼져 가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그 사람이 자기와 같은 그런 심정을 가지고 그 구역에서 신앙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옆에 있는 식구들에게 본이 되고 덕이 되고 또 힘을 주고 이래 가지고 그러면 자꾸 구역도 부흥이 되고 또 혼자 하던 일을 여럿이 함께 어울러 하니까 수월하고 이래서 자꾸 그 구역이 바로 됩니다.

그러나 이 교훈을 위주로 하지 아니하고 그저 자기가 심방하고 전도하는 거 가지고서 사람들을 기를라고 생각하고 또 사람들에게 가 가지고 제 생각대로 요럴 때는 요 꾀를 부려야 되겠다 조럴 때는 조런 말을 해야 되겠다 그런 거 다 자율이요 그거 복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때는 마귀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죽이는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런 것 가지고 하는 사람 골만 빠지지 나중에 보면은 추수할 것이 없게 됩니다.

교역자들도, 이번에 총공회가 되면 그때에 말을 할 것입니다. 교역자도 어짜든지 그 교인을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칠라고 애를 쓰고 또 성경을 읽힐라고 애를 써서 그 교인들이 자기 아는 것을 다 알도록, 그러면 자기 아는 거 다 아니까 가르칠 게 없겠다 하지마는 그래도 교역자가 자기가 만일, 자기 아는 것 다 알았는데 자기 아는 거 교인들이 다 알고 있으니까 아는 것만 알릴라고 하면은 자기 교역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교회로 옮겨서 좀 어린 교회로 옮겨 가든지 해야 되지 자기는 그 교회는 소용이 없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알리기는 알렸는데 아직까지 그 교인들이 알기만 하지 믿지를 안한다면 자기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믿구로 만듭니다. 또 믿구로 만들어서 다 믿습니다.

잘 믿든지 못 믿든지 다 믿으면, 믿는 마음을 가졌으면, 자기도 믿는 마음만 가진 거뿐이지 믿는 거뿐이지 딴게 없으면은 가야 됩니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또, 믿기는 믿지마는서도 그 사람들이 능력을 받지 못해 가지고서 실행을 하지를 안합니다. 행함을 하지 안해. 믿기는 믿지마는 실행을 하지는 안합니다. 실행을 안하면은 자기는 실행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실행을 안 하면은 자기는 거기 있으면서 할 일이 있습니다. 왜? 이제는 실행하는 일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실행하는 일을 시켰는데 자기도 실행하고 교인들도 실행하고 힘껏 지금 실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나 교인이나 뭐 실행하는 고게까지는 다 같이 있으니까 그 이상 없으면 자기는 그 교회를 사면하고 없는 교회로 가든지 해야 되겠습니다.

또, 실행을 했는데 아직까지 그 교인들이 그 말씀대로 사람이 자체가 변화되어져 가는, 자체가 그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져 가는 그 일을 교인이 할 줄 모르면 자기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자기는 그 말씀대로의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고 또 사람이 됐고 된 것도 많고 이러니까 그 교인들에게는 이제는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도록 이렇게 할라고 애를 써서 만일 그 교인들이 다 말씀대로의 사람이 다 돼 버렸다면은 그 사람들은, 자기는 거기서 할 일도 없고 그 사람들도 또 거게 있으면 안 됩니다. 온 교인들이 전부 다 나서 가지고서 교역자가 다 돼야 되겠고 목사가 다 돼야 되겠고 또 나서 가지고 다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처음이 이 하나님의 도리의 말씀을 알리는 이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교역자 중에서 이 설교록 이것을 사 가지고서 보면은 다 아니까 내가 설교할 때 뭐 설교 할 것도 없고 이거 모르는 걸 말해 줘야 인기가 있겠는데 아는 것 말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별 인기도 없고 또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티나 잡고 이라니까 이 설교록을 안 읽혀야 된다 이것이 교역자들이 모여 가지고서 공통이라 말이오. 여러분들 놀랠 일이지요? 놀랠 일. 그거 그럴까 싶은데 그렇다 그거야. 그것은 삯군이요 삯 받아 먹을라고 일하고 있는 사람이요 절도요 강도라.

양떼를 제 사람 만들라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라고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절도요 강도라 그거요.

그거 왜 그러냐? 자기가 가르치는 그거 가지고만 하고 다른 사람이 가르쳐서 배우는 것은 싫어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제것만 할라 하는 그런 시험에 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모두 보고가 들어오기를 다 진정은 그래 들어왔습니다. 저한테 들어온 것은 거의가 다 그만 정 안 되면 설교록을 그대로 좀 고대로 꼭 읽어만 주면 좋겠다고서 읽어만 주면 좋겠는데 읽어 주지도 안하고 가다가는 자기 생각대로의 말을, 처음에는 좀 읽다가 나중에는 자기 말대로의 나와서 고만 잡탱이가 나올 때는 사람이 못 견디겠다고서 그렇게 말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이 구역장들도 새김질할 때에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자기가 새김질을 해서 교인들이 은혜를 받아야 되지 재독을 해 가지고 그러면은 자기 인기가 거석하니까 자기가 좀 이렇게, 말씀을 새김질할라 하는 거 그거 좋습니다. 자기가 듣고 깨달아 가지고 고대로 새김질하는 거 얼마나, 그게 제일 좋습니다. 제일 좋은데 그라는 데에는 그 시험 드는 것이 뭐이 시험 드느냐 하면은 교인들이 예수 믿는 도리를 알되 자기를 통해서 아는 것만을 원하고 다른 누구를 통해서 아는 것을 싫어하고 시기하는 고런 시험에 들기가 쉽다 그말이오.

부흥사가 시기하기가 쉽습니다. 대개 부흥사들이 보면은 다른 건 다 초월해서 이겼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받는 그거는 시기해서 부흥사가 거게서 그만 시기심이 들면, 고것도 내나 마귀니까. 고게 들어와 가지고 조금씩 틈이 나 가지고 나중에 보면 부흥사가 마지막에는 쭉덩이가 되고 맙니다. 이러니까 쭉덩이가 되면은 그 부흥사가 부흥사노릇할 때에 속에서 영감의 진리는 나오지 안하고 과거와 같은 그 형식만 가지고 날뛰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보면은 꼭, 진정이 아니면서 무대에서 연극하는 배우와 같은 사람이 돼서 ‘그 사람은, 그 부흥사는 배우가 됐더구먼’ 배우가 됐더구먼 하는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속에 영감은 없고 속은 안 그러면서 겉어머리 행색만 자꾸 그렇게 날뛰는, 배우는 그거 진정은 아니지만 제가 울음도 안 나오는 것도 울고 또 뭐 전부 거짓부리로 꾸며 가지고 하는 게 그게 배우 아닙니까? 그와같이 된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쨌던지 자기가 맡은 교인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믿는 이치를 가르쳐 주신 이 교훈을 알리는 이 일에 주력을 해야 됩니다. 이 일에 주력을 해서 그저, 나중에는 그건 주력하지 안하고 제가 시키는 걸 주력한다 또 말이오. 제가 시키는 것을. 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제 시키는 말을 가지고서 말을 듣도록, 제 시키는 말을 듣도록 자꾸 요렇게 해 가지고 교인을 키우는 사람도 그 사람 불쌍한 사람이고 참 고통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데, 그렇게 하지 안하고 자꾸, 무슨 일 거석하면 ‘네가 성경에 뭐라 하더노, 성경에 뭐라 했노?’ 성경에 뭐라고 말했노 이렇게 하는 것이 좋고 또 지도할 때에 ‘너 설교들을 때에 뭐라고 들었노?’ 설교를 말하는 것이 내 말 들어라 하는 것보다 좋고 또 ‘설교를 뭐라고 하더냐?’ 하는 그것보다도 ‘성경이 뭐라고 말하더냐?’ 요렇게 해서 이제 성경에게 지도를 받도록 그래 하는 것이 최고 절정이요 그게 제일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말 듣도록 이래 할라 하면은 자기 말도 잘못 될 수도 많이 있고 그럴 때는 자기 말을 듣는데 성경대로 해도 다른 사람 말 듣는 거는 싫어합니다.

나중에 가서 가다 보면은 자기 말과 성경 말이 이래서 정반대가 돼서 어떤 구역장이든지 목사든지 이런 사람은 제 말 안 듣는다고, 내 말 안 듣는다고 그래 가지고서 해서 고만 실패를 시키기 쉽다 그말이오.

이번에도 각 교회에서 그런 뭐 진정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많이 들어와 있는데 전부 통틀어서 종합 결론을 지운다고 하면은 그 목사는 성경 말씀 가지고 지도하지 안하고 자꾸 자기 말 가지고 지도하기 때문에 이 말은 분명히 틀려 가지고 이래 있는데 자꾸 제 말 안 듣는다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이래 한다고 하며 제 말 말한 걸 다 기록해 보내 왔다 말이오. 모두 다 뭐 이 교회도 저 교회도 뭐 기록해 보내 왔어 기록해 보내 왔으니까 내가 볼 때에는 분명히 그말 하기를 기록해 보낸 걸 거짓말이 아니고 고 말 하고 남을 사람이라 말이오.

평소에 보면은. 그래 가지고 다 실패합니다.

목사도 자기 일생 동안 생활하는 데에 원수가 하나 들어 가지고서 실패하게 되고 또 권찰들도 원수가 들어 가지고 실패하게 되고 반사들도 원수가 들어서 실패하고 되고, 원수가 들어서 실패하게 되는데 원수 그놈을 원수인 줄 모르고 잡지 못하면 고만 헛일입니다. 그 원수가 누구입니까? 그 원수가 누구지요? 자기? 그 원수가 자기라? 그 원수가 자기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녜, 알기는 잘 아네. 인제 서부교회 교인들은 심판 많이 받아요. 알기는 아니까 핑계는 못 할 것이고, 핑계는 못 할 것이고 그대로 실행은 안 하니까 심판밖에 더 받겠습니까? 그래 자기라.

이 자기 그놈, 내라는 요놈 내가 들어서 전부 원수입니다. 내가 들어서 가는 곳곳마다, 말할 때도 내가 나오면 그만 그거 은혜 없습니다. 내가 나오면 그만 헛일이오. 내가 나오면 그만 헛일이라. 목회도 내가 나오면, 권찰도 내가 나오면, 또 뭐 주일학교도 내가 나오면 뭐 반사도 내가 나오면, 장로도내가 나오면, 전도사도 내가 나오면, 권사도 내가 나오면 그만 내가 나오면 대번 절단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도행전 8장에 보면은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참, 빌립을 따라다니고 베드로를 따라다니면서 아주 충성한 사람이고 그 사람은 유명한 사람이고 한데 그 사람이 사도와 집사, 빌립은 집사인데 그 집사들과 사도들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냐? 그 지방에서 신들렸다고 해 가지고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만 그 사람이 말하면 그 사람 말 안 들으면 벌받을 줄 알고, 점도 치고 하는 사람인데 그래 가지고 그 지방에서 대가리노릇을 했어.

대가리노릇을 했는데, 이 사람이 예수 믿는 도리를 가지고 와서 집사들과 사도들이 전하는데 이래 보니까 거게는 보니까 안수하니 병이 낫고 또 안수하니까 성령을 받고 이러니까 보니 그 권능은 참으로 실상 권능이고 자기가 해 나온 거는 거짓부리로 사람들을 속여 가지고서 이렇게 요래 속이고 조래 속이고 이거다 저거다 자꾸 요래 속였다 말이오.

속여 가지고서 이랬는데 거기는 보니까 속이지 안하고 진정 능력이 있거든 능력이 있으니까 따라다니며 ‘이거 내가 이거 좀 전환해 바꿔야 되겠다’ 하고서 ‘이제 이 능력을 내가 받아야 되지 과거에 그 능력 가지고는 안 되겠다’ 그 능력은 다 속이는 능력이기 때문에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 이라고 ○○○씨라고, 책이라고 숨은 보배라는 책 본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숨은 보배. 숨은 보배 읽어 본 사람. 하나도 안 읽었네. ○○○ 씨라 하는 사람이 지은 책이 숨은 보배인데 그 사람이 소경이요 점쟁이입니다. 점쟁이인데 뭐 가는 곳마다 사람을 거석해 가지고 돈을 굉장히 많이 벌었습니다. 전부 거짓말이오. 어떻게 머리가 명철하고 이라는지 가서 떡 보면은 그까짓 거 뭐 잠깐만 말 들어도 ‘이 가정은 분위가 이렇구나’ 하는 거 가지고서 그걸 딱 말하면은 ‘아이구, 참 어찌 그리 압니까?’ 고만 다 탄복을 하는 거라. 이래 가지고서 자기가 눈치, 들을 말 또 그 모든 분위기 이거 보고서 그거다 해도 어떻게 잘 짐작해서 딱딱 들어맞는다 그거야. 이래 가지고서 점치다가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숨은 보배라 하는 책을 써서 냈었습니다. 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이 점쟁이들이나 이 모든 눈치 있는 사람들은 이런 거 저런 거 가지고서 사람들을 지도합니다.

고 시몬이가 고랬어. 그래 가지고 그 지방에 왕이라. 이랬는데 베드로 뒤에 따라다니면서 실컷 수종 많이 들고 난 다음에 말하기를 베드로에게 와서 돈을 많이 짊어지고 와 가지고서 베드로에게 돈을 드리면서 ‘나도 선생님과같이 사람에게 안수하거들랑 성령을 받도록 해 주시고 또 안수하거든 기적이 나타나도록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간청했다 말이오. 이거 뭐 돈만 하면 모든 거 다 됐거든. 이제까지 돈만 가지고 뭐 오만 사람 돈만 주면 다 사교를 다 해 가지고서 그 지방에서 ‘이놈 네가 공연히 사람들을 사기해 먹고 있다. 협잡해 먹고 있다.’ 이라는 사람은 돈 뭉텅이만 한 뭉텅이만 갖다 주면 입을 딱 봉해 버리고 괜찮고 그래 해 나왔다 말이오. 이러니까 돈 가지고 되는 줄 알고 또 이래 했다 말이오.

이라니까, 베드로가 있다 말하기를 ‘네가 돈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살라고 하니 네가 돈과 같이 망하리라’ 고 말 또 하고 또 한 마디 말 한 게 뭐이냐 하면은 ‘네 속에 악이 가득 찼으니 이 도에는 받을 것도 없고 분깃도 없다’ ‘악이 가득 찼으니' 그거 뭐입니까? 악이 찼다 말이 뭐입니까? 뭐? 자기 중심이 꽉 찼다 말이오. 자기 중심이. 알겠습니까? 자기 중심.

이 악이라는, 성경에 있는 이 악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지금까지 다 바로 하지 못하고 이 세상이 악이라 하는 그걸로 하기 때문에 성경 해석에 다 틀린다 말이오. 악은 자기 중심이라고 딱 요렇게 깨닫고 하고 본 사람은 ‘그 속에 악이 가득 찼다’ 그러면 그 사람이 모든 골짝 사람들이 다 지방 사람들이 선하다 하는데 왜 그 사람을 악하다 해? 그 속에는, 모든 사람이 선하다 하지만 고 속에는 자기 중심인 자기 고놈이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 한 고것을 딱 드러내면서 ‘네가 혹 회개하면 하나님께 사함 받으리라.’ 만일 그 사람에 그랬으면 대번 직사해 버릴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직사했는데 그 사람이 얼른 ‘네 죄를 사해 주시고 날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거기서 죽음을 면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목사 노릇하는 것도 자기 중심으로 목사노릇한 사람 많고 또 장로 노릇하는 사람도 자기 중심으로 장로노릇한 사람 많고 구역장도 자기 중심으로 구역장노릇 잘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게, 사람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끝마치는 사람도 있고 육체로 시작하기는 시작했는데 나중에 회개해서 성령으로서 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이게 변동된다 그말이오. 변동이 돼.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에 차차차차 자기 중심으로 변해지고 또 처음에는 자기 중심으로 시작했던 것이 차차 하나님 말씀을 자꾸 듣고 하나님 말씀 듣는 가운데 회개해 가지고 나중에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완전히 바꾸어지는 그런 사람도 있다 그거요. 그런데,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 사람 그것이 자기의 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교훈하는데, 그런 사람 있습니다. 그때 ○조사님이라고, 거창서 인기를 끈 ○조사님이라고 있었는데 그 ○조사님이 한학자입니다. 아주 한문을 많이 해서 한학자요. 한학자인데 기분이 뭐 설교를 하면은 한문을 가지고서 들이대서 한문에 뭐 주역이니 중용이니 뭐 무엇이 명신록이니 이런데 보면 뭐 또 인제 그 여러 가지 한문책에 있는 묘한 교훈 유교의 교훈을 가지고서 강단에서 외칩니다. 그러면 유교의 교훈을 가지고서 외치면서 주먹을 뚜드려대고 이래 가지고 하는데 그 사람은 이 기독교의 도덕만을 말하니까, 유교의 도덕도 상당히 좋은 도덕이요 불교의 도덕도 상당히 좋은 도덕이요 모든 그 도덕 가지고 이래 말하니까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어떨떨하고 참 아주 설교 잘한다고 이래 가지고 뭐 그라면 한문의 어떤 좋은 문자나 좋은 그것을 들어서 말하면서 주먹을 때려대고 고함을 지르고 하면은 사람들은 다 그래 말하고 또 저 다른 데 안 믿는 사람들도, 그때는 지금으로부터 한 사십여 년 전이니까, 한 오십여 년 전이니까 그때만 해도 모두 한학들이 많은 때입니다. 그때 뭐 한학자들이 많은데 들어가서 설교를 척 들어 보고 ‘그 조사 참 유식하다. 들을 것이 있고 설교를 잘 한다.’ 성경만 가지고 하는 거는 순 무식쟁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게 그래 하고 있다고서 이렇게 했다 말이오. 유식하다 해요.

이랬는데, 그분이 저를 참 좋아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한 아마 여남은 살 더 먹는 사람인지 그랬는데, 한번 그분을 위해서 기도하니까 입에서 뭐 머리카락이 말이오. 머리카락 뭉텅이가 뭉텅뭉텅하이 자꾸 나와요. 뭉텅뭉텅 나오는데 머리카락 뭉텅이가 나오더니마는서도 교인들이 보니까 그 머리카락 뭉텅이를 다 받아 먹어요. 이거. 쭉 나오니까 다 받아 먹어. 이래서 이걸, 참 이상하다 생각다 생각다 이거 뭐인가 아무래도 이상한, 꿈은 꿈인데 영몽 같은데 이게 뭐인지 모르겠어.

그래 가지고 인제 그때부터는 유심히 그분을 뒤를 밝고 살핍니다. 제가. 그분이 어떤 사람인가? 입에서 나오는 거 보니 교훈은 교훈인데 뭐인고? 그래 가 보니까 나중에 물어 보니까 한학자고 또 그분이 뭐 말할 때 보니까 한문 문자를 써 넣으면서 말 잘하고 또 그분 설교하는 것을 그 뒤에 내가 살폈어요. 한번 들어 보니까 설교할 때 순전히 이거는 유교를 말하면서, 유교에 있는 그 문자를 쓰면서 뚜드려대면서 고함을 지르고 한번 호통을 치고 이래 한다 그말이오. 이래서 ‘이거로구나’ 그래서 제가 기도를 많이 하고 난 다음에 그 ○ 조사를 만났습니다. 만나 가지고 ‘내가 이렇게 이렇게 이거 뭐 벌꿈인지는 몰라도 나는 꿈을 잘 안 꾸는데 그런 꿈을 꾸여서 이렇게 이렇게 합디다. 그런데 내가 고민하다가 뒤에 가서 ○ 조사님의 대한 한번 설교를 듣고 이래 하니까 ○ 조사님이 신구악 성경 이 영생의 말씀을 전하지 안하고 유교에서 있는 그걸 가지고서 교훈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라니까 그분이 그만 안색이 변해져. 탁근거려요. 탁근거리면서 ‘뭐 내가 어데 성경 읽고 다 거석하는데 사람들이 다 뭐 그래 설교 어째 압니까? 이라는데 그때부터 나와 좀 이래 좀 성글어져요 벌어져요.

이랬는데, 그분이 그후에 그만 그라다가 자기가 가만히 자꾸 생각하니까 그게 자꾸 생각하니 내 구원이 절단나고 이거 안 됐다 이러니까 자기가 ○○교회 갔다 말이오. 잘 믿을라고 ○○교회 교인으로 왔어요. ○○교회 교인으로 와 가지고서 ○○교회 교인으로 와 가지고 들어보니까 들을 것이 없고 나중에 자기가 아무 은혜를 못 받고 자꾸 이라니까 나중에 가서 그 사람이 ○○교회 다니면서 ○○교회 앞에서 사주 책을 내놓고 사주를 봤습니다. 아마 ○○○ 권찰님은 알지 모르겠는데. 서산에서 목회하고 있는 ○ 조사라고 뚱뚱한 사람 그 사람 몰라요? 알아? 알아? 아는 사람 있고. 저 ○○교회 앞에서 사주 책 내놓고 사주 본 것도 알아요? 저 ○○교회 앞에 와 가지고서 나중에 사주책 보다가 마지막 죽고 말았어요.

그거 모양으로, 이래 교훈하는 거 보면은 각각 다릅니다. 한문을 많이 읽은 사람은 그거 가지고서 목회를 하기 쉽고 또 불교 믿던 사람이 오랫동안 이렇게 믿다가서 나중에 종교를 전환해 가지고, 개종을 해 가지고서 예수 믿는 도를 전하면 그 사람이, 불교 열심자가 개종해 가지고서 예수 믿는 사람이 됐으니까 이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독특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오. 그 속에 박힌 그것이 잘 그렇게 빠져나오지 안합니다.

그래서, 언제 그런 통지가 몇 번 왔었습니다. 이 불교인이 개종을 해 가지고서 예수 믿는 목사가 되고 강사가 됐는데 이래 가지고 불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니까 오라고서 말하고 뭐 광고를 많이 했읍디다. 광고를 많이 했는데 제가 좀 걱정한 것은 ‘이 사람이 불교라 하는 그것을 사람이라 하는 것은 쏙 빼내기가 어려운데 나중에 가르치다 보면은 그 껍데기는 기독교를 말하고 속에 알맹이 진수, 자기 속에 그 감정의 깊은 것은 불교를 말하지 안하느냐?’ 이래서 그것이 기독교를 주장하고 불교를 치고 이라니까 그 사람이 불교를 쳐서 기독교를 이렇게 세우는 사람이라고 보지마는서도 나중에 잘못하면 기독교에 들어와 가지고서 껍데기는 기독교를 세우고 껍데기는 불교를 치지마는서도 속으로는 기독교 속에다가 불교를 속에 집어 넣어 줄란지 모른다 그말이오. 이게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가 좀 염려했었고, 또 천주교의 신부가 ‘천주교는 그거는 아니다’ 천주교가 개혁교로 돌아와서 개종해 가지고서 그 책을 많이 냈습니다.

그 책을 요만한 책을 그걸 만들어서 천주교의 비를 말을 해서 뭐 우리 교회도 그때 한 이만침 왔지요? 그 뉘가 가지고 있습니까? 그 책 누가 가지고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참 보수자라 저 ○○○ 권사님하고 ○○○ 목사님하고 두 분은 가지고 있어. ○○○목사님은 내가 별명을 보수자로 시켜. 뭐 과거에 그런 거 내 버리지 안해 허툴히 하지 안해. 참 보수는 잘해요. 보수는 잘하는데 앞으로 이렇게 무슨 진보나 개량이나 여기 대해서는 좀 서툴어요.

그런 분들도 잘못하면 개혁교를 옹호하고 천주교를 치는 것 같지마는 그런 사람들이 들어와 가지고는 이 개혁교 가지고서 이래 자꾸 일하다가 보면은 나중에 개혁교를 천주교화시켜서 천주교와 개혁교와 이래 범벅을 시켜 가지고서 나중에 천추교 개혁교를 중매를 시키기 쉽다 말이오. 중매를 시키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개혁교도 아니요 천주교도 아니고 잡탱이 그것이 나오기 쉽다 말이오. 얼마나 우리가 이 세상은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래 가지고 또 어떤 사람은 일본에 오래 있다가 나와 가지고서 이렇게 목회하는 사람은 일본적 물이 들었습니다. 일본적인 도덕이 물이 들어 있고 일본적인 교훈이 물이 들어 있고 일본적인 사상이 물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자기는 아는 게 그거기 때문에 그걸 써먹기 쉽다 말이오. 그거 가지고서 사람을 지도도 하고 사람을 교훈도 하고 이러니까 대단히 매력 있고 민첩한 것 같지마는 순전히 복음이 아니고 그것은 일본 사람들이 처세하는, 일본서 이래 존경하는 도덕, 일본적 도덕 그 도덕을 가지고서 이제 그 사람들을 교훈하기 쉽다 말이오.

이러기에, 이것도 참 어렵습니다. 내가 그걸 여기 우리 몇 사람 알고 있어요.

‘그게 그거 그게 좀 안 됐는데’ 이래도 그 뚜렷히 안 됐는 게 있으면 ‘요게 안 됐다’ 말하지마는서도 그게 뚜렷하지는 안하지마는서도 고것이 들어서 사람을 만드니까 사람을 아주 매력 있게 만드는 것 같고 자기도 매력 있는 행위하지마는서도 순전히 기독교와는 조금 이질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재미가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거게 큰 능력이 역사하지를 안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훈이 중한 문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예 그런 이종교나 그런 데 물든 사람들은 그것을 뽑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꼭 내가 성경 말씀이 아니면 안 되겠다. 성경 말씀으로 사람을 지도하겠다. 또, 성경 말씀을 해석한 설교 말씀으로 지도를 하겠다. 요것을 꼭 힘을 써야 됩니다. 그리 안 하면 안 돼요.

그래서, ‘나의 교훈과’ 교훈이 이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교훈이 들어 있으니 뭐이냐? 교훈이 들어 있으니까 그 다음에는 행실이 나왔고, 교훈이 들어 있으니까 행실이 나왔고, 또 행실이 나오고 보니까 의향이라 하는 자기 의향. 자기의 계획의 지금 욕망이 어데, 목표가 어데냐? 의향이 나왔다 말이오. 그러니까 성경대로의 목표가 나왔다 말이오.

성경대로의 목표가 나왔는데 우리가 잘못하면 불교에 있던 사람들은 성경을 이용을 하고 시작은 했지마는서도 나중에 가 보면은 자기는 불교에 능숙하기 때문에 그 마지막에는 사람들을 자기는 모르게 불교의 소망, 불교 소망하는 거와 같은 그런 소망을 두고서 이렇게 나가기 쉽다 말이오. 영계 해석이나 또 영의 해석이나 그런 해석이 고만 그리 돼 버리고 만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거 모두 다 그런 잡탱이 가지고서 이와같이 설교하고 성경 연구하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그것을, 다는 아니지마는서도 거반이 다 그걸 부인한다 말이오. 부인하지마는서도 그게 뭐이냐 하면은 중생된 영을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중생됐지마는서도 자기 영이 어리니까, 어리니까 몰라. 이런데 아마 차차차차 좀 있어 가면은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 중생된 사람의 마음도 범죄하고 중생된 사람의 몸도 범죄하고 중생된 사람의 지식도 범죄하고, 중생된 자의 육은 범죄하지만 중생된 것은 영만이 중생됐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그것은 확고한 이제 교리로 설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이다음에는 퍼져 나가면은 차차차차 이것이 일반적으로 다 신앙하는 그 교리가 될 것입니다.

‘행실과 의향’ 목표가 나왔고 믿음이 나왔고. 이래 교훈이 들었으니까 하나님을 믿게 되고 그분의 모든 속성도 다 믿게 되고 또 능력도 믿게 되고 그 약속한 약속도 믿게 되고 ‘오래 참음과’ 이 교훈이 들어 있으니까 오래 참을 수 있다 말이오. 뭐 다른 사람이 억울한 소리를 해도 웃으며 지낼 수가 있다 말이오. 왜 웃으며 지낼 수 있어? ‘거짓 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상이 크니라’ ‘이제 받은 고난과 장차 얻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네가 오른편에 섰기 때문에 잘못 편에 선 사람들이 대적을 하는 것이니까 그 대적할 때에 ‘나는 저 사람하고 한 덩어리였는데 내가 저 사람과 정반대인 하나님 편에 섰으니 그 대적할수록 기쁘게 즐겁고 내나 어떻게 해서 이 편에 섰는가, 여게 속하게 됐는가, 어떻게 저 사람들과 정반대라고 그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게 됐는가?’ 이러니까 기쁘고 즐겁다 말이오.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얻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이렇게 로마인서 8장 18절에 말씀해 놨다 말이오.

「참음과 사랑과」 이 사랑은 하늘의 사랑이 나온다 말이오. 정욕 사랑, 또 동류 사랑, 혈육 사랑이 아니고 아가페 사랑, 평가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보내 가지고 인간들을 사죄, 칭의, 화친시키는 것이 이게 사랑이지 그외에는 사랑이 없어. 사람을 죄 없게 만드는 거 또 의롭게, 성령의 사람, 의롭게 만드는 거, 하나님 하고 딱 결합시키는 거 그외에는 사랑이 없다 말이오. 이거 할라 하면은 사랑이라고 하지 안하고 자꾸 미움이라고, 아내가 먼저 믿어 가지고 이렇게 남편에 이랄라 하면 ‘네가 돌아다니며 어데 연애하고 돌아다니지 나를 그전 같이 대우하지 안하네’ 안하는 것은, 과거에는 죽든지 살든지 남편을 자기 주로 삼았는데 남편도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라면 남편을 우상 삼으니까 남편 망하고 저 망할 줄 알기 때문에 이제는 그렇지 않다 말이오.

하나님을 주로 삼고 남편은 자기의 앞서 가는 사람, 자기 머리로 삼아라. 성경에 머리라 했다 말이오. 머리로 삼아서 자기보다 위의 사람이지마는 하나님보다는 밑에 사람이지, 하나님과 같이 섬겨 놓으면 남편 죽어 버리요, 고만. 믿는 사람들 과부가 많애. 과부가 많은 건 왜 그러냐 하면은 그 남편을 우상 만들고 있으니까 암만해도 그걸 떼기 전에는 안 돼.

내가 여기 ○○○ 집사님 왔어요? 손들어 봐요. 왔어? 예. ○○○ 집사님 내가 그 남편을 우상 만든 걸 내가 확실히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남편을 하나님께서 그만 저 이북으로 떼 보내 버렸어. 그래 가지고서 갈라져 가지고 그래 구원 얻었지 그리 아니면 구원 못 얻어요. 얼마나 애처가고 또 그렇게 해 놨던지 그 만날 어린양이나 하고 예배당에 갈때 짊어지고 갔대요. 아내를 짊어지고 갔어.

예배당에도 아내를 이래 짊어지고 이래, 여럿 보는데 이래 짊어지고 그렇게 가고 뭐 그래 놓으니까 떨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뭐 잠깐, 그때 뭐 들으니까, 나는 몰랐는데 그 젊을 때에 서울서 교수고 남편이 이런데 ○○○ 권찰님 말이오. 그 교수가 인물도 잘났고 인기 교수라 아주 권위 있었어. 그랬는데 또 ○○○ 권찰님도 그때는 참 굉장한 미인이더랍니다. 이래 놓으니까 서로 죽고 못 살고 이래 가니까 남편이 이북까지 가니까 이북까지 따라 가 가지고서, 이북까지 따라 갔어 고만.

따라 갔었는데 그래 자기 어머니가 가 가지고서 뭐 끌고 나올라 해도 암만 안 나올라 해서 참 가 가지고 보니까 그 이북에 가 보니 남편 바라서 가기는 갔는데 남편 만날 수가 없어. 있다고 이래 가끔 오다가 나중에 퍼뜩 오면은와 가지고 한 달도 못 만나고 두 달도 못 만나고 이라니까 여기 있어 봤자 소용없고 뭐 정치를 보니까 틀렸거든. 이라니까 어머니가 가자 하니까 그래 거기서 삼팔선 끊어지고 난 다음에 참 왔는데 어떻게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살려서 보내줬어요. 보내 줘서 그래 왔어요.

이 사랑도 그런 사랑은 다 아니라 그거요. 인내 참고 견디는 것도 있지 핍박도 받았지 고난도 받았지 또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와 루스드라에서는 뭐 굉장한 핍박을 받았다 말이오. 굉장한 핍박을 받았어. 이 엉뚱한 도 전한다고. 오늘도 예수 믿는 도를 바로 전하면 자꾸 욕을 얻어 먹고 자꾸 핍박을 당합니다. 앞으로 갈수록이 자꾸 더 그래요.

이러니까, 이단이라 이단이라 할 때에도 이단이라 이단이라 하는데 우리 ○○○ 목사님은 자꾸 가니까 백파라고 이단이라고 자꾸 하니까 여게도 예배당 지어 놓으니까 백파는 이단이라 하니 그만 자꾸 그라며 공격을 해재끼니까 못 있겠고 또 지금 딴데로 이사 갔는데 그기도 자꾸 공격을 해 가지고 못 있겠고 이라니까 그러니까 교회는 안 된다 그거야. 이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교파인데. 우리 총공회가 현재 행정으로서는 성경대로 행정해 나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아직 조그만한 하니까, 조그만하니까. 이것도 커지면 또 이거 뭐, 뭐이 될지 모르지마서도. 또 그라고 가르치는 이 진리도 진수입니다.

이 교인들은 다 알아요 ‘저 목사들이 지금 자꾸 이단이라고 하는 건 저거는 못 가구로 저렇게 하는 거다’ 이단이라고 이렇게 해 놓고 살며시 숨어서 와서 보면, 숨어서 와 보면은 저거 목사가 거기 턱 앉았거든. 저거 목사는 와서 앉았다 말이오. 앉아서 배우면서 이단이라고 가지 말라 해요. 요런 교인들은 ‘이거 가짜다’ 그래 가지고서 `왜 목사님은 가고 우리는 못 가구로 합니까? 이래 놓으니까 다시 못 가구로도 못 하고 이래 온 사람은 졸졸 와 보니까 여기가 옳다 하니까 와 가지고서 이 교인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습니다. 그래 모인 건 다, 이단이라 하는 그말 나 가지고서 전도가 돼서 모였어요. 그걸 알야 돼요.

이단이라는 그말 가지고서 전도가 돼서 모였다 그말이오. 모인 것이 다대수가.

여러분들이 전도한 것도 있지만 그래 가지고서 돌아 온 게 많아요.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이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이렇게 우겨싸지마는서도 하나님이 도우시는데 뭐 어짜겠습니까? 지금은 좋습니다. 그때는 모두 나한테 오는 목사들은 다 그래 위로하러 오요. 이거 참 너무 이렇게 공격이 심하고 이렇게 이러니까 혹 어찌 됐는가 싶어서 그래 찾아왔어. 우는가 모두 찾아왔어. 우는가 싶어서 찾아왔는데 찾아왔다가는 말씀을 듣고 기쁨을 가지고서 이라니까 왔다가는 사람이 변해져 가지고 가.

이랬지마는 지금은, 내가 얼마 전에도 ○○교파 에 있는 목사님들 다 만났습니다.

만났는데 다 내나 그래도 ○○ 교파가 제일 낫습니다. ○○ 교파가 다른 교파 중에는 ○○교파가 제일 나아요. 여기 ○○○한테 안 넘어간 것이 ○○ 교파요.

또 ○○○ 교파에 안 넘어간 것이 ○○교파요. 여기 ○○ 교파가 자리 하고 있기 때문에 ○○○ 씨가 여기 와 뭐 와서 하나 했다 하는데 와 봐야 안 됩니다.

○○○ 씨도 와서 봐야 안 돼요. 뭐 여기 있다가 지금 이 전도관 이거 사람 안 모이는갑데요.

이 핍박을 자꾸 하니까 자꾸 저 이단이라고 핍박을 하니까 교인들도 또 그렇게 단순하게 목사 말하면 다 듣는 줄 알아도 그것도 또 안 들어요. 여러분들도 내 말 다 안 들어요. 들을 턱이 있습니까? 들어 보고 또 이래 따져보고 난 다음에 반대도 하다가 성경적이면 턱 꺼꾸러지고 이렇지 그리 안 하면 안 그랄 거라 말이오. 이단이라고 핍박하니까 ‘보자 보자’ 그 소리 듣고는 `이단인가 가 보자’ ‘이단이라 하니 어떤 이단인가 가 보자' 와 보니까 그만 되고 되고 이래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자꾸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그거요. 거짓 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상급이 크다 그 말씀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이런데 공연히 억울하면 못 참고 애매하면 못 참고 공연히 억울하게 매장되면 못 참고 그러지 말라 그말이오. 어리석어.

‘주께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핍박을 받으리라' 이랬는데 로마인서 8장 18절에는 보면은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은 뭐라 했습니까? ○○○ 목사님, 뭐라고 말했지요.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우리 다 아는 거 아니요?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이제 이 세상에서 옳게 믿음으로 이 세상에게 핍박을 받는 그것이 하늘나라에 상급받을 증거요. 그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 하는데 이 세상에서 아무 대립이 없고 마찰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늘나라 상급이 없다 그말이오. 그 사람은 회색 분자기 때문에,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벽 기도 나와요. 어짜든지 이 진리를 지금 배워야 되겠는데 내일 아침에 또 이 말씀을 계속해서 그 다음에 이어서 할 것입니다. 자꾸 배우면은, 하나님 말씀 배우면은 예수 믿기 수월하지 참기 수월하지 어떻게 속 상하는 것도 다 없어져 버리지 기쁨이 있지 하나님 믿으니까 담력이 있지 이 세상에서 육신 축복하니까 잘 되지 영 축복하니까 잘 되지 모든 거 다 잘 되는데, 나를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전토나 뺏겨서 손해 본 사람은 몇 배 준다 했어요? 여러 배도 주고 백 배 준다 했어. 손해 갈 게 뭐입니까? 이거는 땅 짚고 헤엄하긴데. 손해 갈 거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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