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 구별 요령

 

1986. 11. 11. 새벽 (화)

 

본문:마태복음 7장 7절∼12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창세기 1장으로부터 계시록 끝장까지의 성경을 계속해서 그렇게 전체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 가운데에는 제일 벼릿줄과 같이 강령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제일 벼릿줄. 벼릿줄은 뭐 벼릿줄이냐 하면은 그물이 뭐 천고라도 벼릿줄에 다 달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벼릿줄이라 하는 것은 그물을 이래 모두 얽어 가지고 제일 굵은 줄 있지 안해요? 그걸 벼릿줄이라 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성구가 수많은 성구가 있어도 그 성구에 제일 주가 되는 그런 벼릿줄과 같은 중심되는 그런 성구들이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잘못하면, 성구 가운데에 그저 일반적으로 되어 있는 그런 성구도 있고 또 더 중한 성구도 있다 그거요. 잘못하면 일반적으로 되어 있는 그 성구를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거게다가 마음을 기울여 하다 보면은 중심되는 성구는 그만 모르기 쉽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그런 것을 보고서 간추려 가지고서 주님이 우리에게 또 주시는 것입니다. 간추려서 이렇게 주시니까 그 한 성구를 읽혀 가지고 그대로 할라고 하면 모든 성구들이 다 따라 올라올 수 있도록 그렇게 제일 좀 우리에게 더 중요하고 더 요긴한 그런 성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대개는 설교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성경 말씀을 가르친다 할지라도 더 중한 말씀을 가르칠 수도 있고 덜 중한 말씀을 가르칠 수도 있어. 있는데, 성경 말씀을 가르친다고 해 똑 같은 게 아니라 그거요.

잘못하면,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을 지키다가 보면 나중에 이제 제일 중요한 거 지키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둘째로 중요한 거 지키고, 또 셋째로 중요한 거 지키고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슬기로운 일이고 좋은 방편인데 잘못하면 제일 중요한 그 성구는 알지도 못하고 저 말단에 있는 성구만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도 쉽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어데 가서 뭘 배울 때에 그 사람 가르치는 것이 성경적이냐 성경이 아니냐 그것을 첫째는 살펴야 됩니다. 성경대로냐 성경대로가 아니냐 그것을 살펴서 성경대로가 아니라면 말할 것 없고 그거는 버려야 되고, ‘성경대로는 성경대로다. 성경대로 가르치기는 가르친다. 성경대로는 성경대로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또 여러분들이 그 다음에 가질 것은 뭐입니까? 성경대로는 성경대로 가르치는데 그러면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생각할 건 뭐입니까? 뭐이요? 내가 대답을 할 터이니까 자기네들도 그렇게 생각을 가졌는가 안 가졌는가 한번 시험해 보라 말이오. 제일 처음에는 성경대로 가르치느냐 아니냐 그거 살피고, 성경대로 가르친다 하면 성경대로 가르치는데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느냐 그렇게 덜 중요한 것을 가르치느냐 그것을 살펴야 할 것이라 그거요.

그래서, ‘내가 이제까지 배운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 예수 믿는 데에 제일 아주 요령이 되는 벼릿줄이 되는 것을 가르쳐서 이 하나만 지키면 다른 것 다 지키게 되는구나.’ 하는 그런 요긴한 것을 배우면 이제까지 내가 배우지 못한 더 요긴한 것을 가르쳐 주면 그 자리에서 배워야 될 자리라 그말이오.

또, 그라면 몇째지요? 몇째 가르쳤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째 내가 말했어? 몇째? 녜, 둘째 말했어, 둘째. 제일 처음에는 성경 말씀대로냐 성경 말씀을 떠나서냐? 떠나면 말할 것 없고, 성경 말씀대로 가르치면 ‘성경 말씀대로 가르치지 않느냐? 성경 말씀대로 가르치지 않느냐?’ 여호와의 증인이고 모든 이단들이 말할 때에 성경대로 말한다고 해서 자기가 받아들일 게 아니고 ‘성경대로 가르치기는 가르친다. 그런데, 내가 이제까지 배우고 깨달은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느냐 성경대로 가르치기는 가르치는데 그렇게 중요치 않는 걸 가르치느냐?’ 인제 중요가 어느 정도 중요하냐 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구별해서 살펴야 될 거라 그거요.

인제 셋째는, 내가 배우니까 예수 믿는 믿음이 뜨거워지는지 약해지는지, 그 믿음이 뜨거워지는지 약해지는지, 그러면 내가 예수 믿을 그 길이 환하게 보여지는지 흐미한지, 예수 믿는 길이 환하게 ‘거게 배운 것보다 예수 믿는 길이 더 환하게 보여진다’ 그러면 거기 좋은 곳이라 그말이오. 또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그 열심이 더 생겨진다’ 그 좋은 곳이라 말이오.

예수 믿는 열심은 뭐이냐? 두 가지. 하나는 잘못된 거 고침이 뜨거워지는 게 예수 믿는 그 믿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해야 될 것을 못 하고 있었는데 해야 될 것을 서둘러서 하게 되는 그것이 예수 믿는 일이 뜨거워지는 것이고 잘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거는 두 가지뿐이오. 잘못된 거 고치고 이제까지 하지 못하던 거 하고 그라면 되는 것이라.

그런데, 여러분들이 여게 저게서 잡탱이 그런 것을 들으면 큰일납니다. 여게서 가르치는 거는 여러분들이 좀 깨달아지면 달라지고, 다른 데서도 또 이 설교록을 보고 깨달은 사람들은 ‘하, 요거다.’ 잡고 뜁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다 성경 말씀 말하지마는 어떻게 하면 이 지름길로, 지름길은 가까운 길 걸어가는 게 지름길 아닙니까? 예를 들어서 비유하면, 활을 매는데, 활 알아요? 활 아는 사람 손 들어 봐요, 활 아는 사람? 활이야 이거 다 알겠지? 활을 이래 매지 않아요? 매면 이 대로 가지고 이래 쭉 매었으면 대는 꾸부정하게 이래 매고, 또 활 맨 데 그 줄은 곧아요 그건 굽어요? 쪽 곧아 있어요. 줄은 가리켜서, 어데를 가는데 줄과 같이 그렇게 곧고 가까운 데로 가는 것은 지름길이라 하고 또 저 굽은 데는 둘러간다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예수 믿는 데 가장 지름길로 곧고 빠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것만 거머쥐고 자꾸 힘을 쓰면 구원이 이루어져 가고 되는데 요것을 버리고 엉뚱한 짓을 하게 되면은 자기가 요 배워 가지고 요거라 하고 지금 자꾸 애를 써서 나가던 그게 그만 어두워지고 흐미해집니다.

이러니까, 마귀란 놈이 어짜든지 요 지름길을 가르치고 있는 요 도리를 요걸 떠나서 그저 일반 뭐 이상한 다른 말을 해 가지고 자기가 열심히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던 요것을 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 일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 도적을 안 맞아야 될 거라 그거요.

예수님의 죽고 사신, 예수님의 사활로 대속해 주신 사활의 대속은 내것, 나 위해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내것, 사활의 대속을 입은 나는 또 뭐입니까? 주님의 것. 매일 계속해서 말하라 그말이오.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은 내것, 감사합니다.’ 주님이 죽으시고, 하나님이 나 위해서 죽으시고 살으시기까지, 살았다 하면 좋은 것 같지만 산 게 좋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 입고 사니까 좋은 게 뭐 있습니까? 우리가 송장 입고 사는 거 한가지인데. 그렇츰 그보다도 비유할 수 없이 천해지는 것인데.

하나님이 말이요, 사람들이 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모두 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 가지고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제가 높아질라고 생각하고 있지 다른 사람을 인하여 제가 희생돼서 낮아지고 매장이 되어짐으로 다른 사람을 높일라 하는 사람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대사를 보내 보면은 나라를 위하는 것보다도 저 위할라 하다가 대사 노릇하는 것 다 헛일 하고 마요. 심부름도 뭐 일을 시키면 저 생각하느라고 자기 맡은 사명 감당하지 못하고 게을부리고 맙니다. 알겠습니까? 이런데, 주님이 사람으로 다시 살아서 영원히 살아, 하나님인데 뭐 하나님께 순종할 필요가 없는데 영감과 진리대로 영원히 주님이 신인양성일위로 순종하는 것은 나 대신해서 순종하는 것이라 그거요. 인간이 암만 잘 순종한다 할지라도 그 순종은 하나님의 또 심판대 앞에 가면은 전부 뭐 죄투성이뿐이지 아무것도 아니라. 이러니까 주님이 내 대신 영감과 진리대로의 생활하는 그 생활은 나를 줍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흠과 점이 없는 완전한 영감과 진리 생활을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거는 나에게 줘서 내것이 됐다 말이오. 내것 됐고, 그러면 그것을 입고 있는 나는 주님의 것 됐어.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우리가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것이 주님 대우하는 것인데 우리가 중생돼 가지고 영감과 진리대로 산다고 하는 것이 그게 주님의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것 노릇하는 것이오.

주님의 것 노릇하는 것. 뭐 왜 주님의 것 노릇해? 주님이 내 노릇했거든.

알아듣겠소? 주님이 내 노릇했어. 내가 아니면서 내 노릇했어. 주님이 내 노릇하셨으니까 나는 또 인제 주님 노릇해야 되겠다 말이오. 주님이 내 노릇한 거는 완전이오, 완전. 완전이오, 내가 주님 노릇하는 그거는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새김질하고, 그래서 뭐 급할 때나 언제든지, ‘주님이 사활하심으로 설정하신 대속의 공로는 내것이다, 내것이다.’ 자꾸 따진다 말이오. ‘내것이다, 내것이다. 주님의 사활의 대속 공로를 나는 입은 자이다.’ 입은 자이니까 하나님의 공심판에 문제가 뭐이요? 마귀에게 죄에게 사망에게 문제가 뭐이요? 마귀 제까짓 놈이 나한테 근방에 오지도 못합니다.

사망도 오지도 못합니다. 죄도 오지도 못합니다. 벗어 버리면 그만이라.

또 주님이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영감 진리 생활 나에게 줬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지마는 주님이 완전 생활하신 거, 하나님의 공심판을 완전히 통과한 것, 완전히 통과한 것, 죄와 사망과 마귀를 바싹 멸하고 거기서 해방시켜 완전한 자유를 준 거, 또 하나님을 향하여서 영감과 진리대로 완전 생애하는 거, 영원히 하고 계신다 말이오, 이거는 끝나는 게 아니고. 하고 계시는 거.

이 세 가지는 주님이 나 대신 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내것이라. 이 세 가지를 나에게 주시지 안했으면 큰소리 못 쳐요. 이 세 가지를 나에게 주시지 안했으면 하나님의 공심판에 떡 들어갈 때에 공심판에는 그는 하나님이 전지의 지혜로 입법해 놓은 입법을 다 완전히 이행한 사람이라야 되는데 그 이행을 누가 하겠습니까? 피조물은 이행할 자 없어. 천사도 이행 못 해요. 천사도 이행 못 해요. 우리만 이행하지요. 뭐 우리가 뭐 이행? 주님이 이행을 나 줬거든.

이러니까, 예를 들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공심판에 척 들어갈라고 하면은 ‘네가 뭐인데 지금 이 공심판에 들어갈라고 하고 있어? 조사해야 돼. 조사해야 돼.’ ‘나는 하나님의 공심판에 나는 죄가 없어. 하나님의 율법 완전 지켰어.

하나님하고 완전히 친밀해져 가지고서 상호 내주 하나가 됐어.’ 이라면 ‘네가 뭐인데?’ ‘주님이 이 세 가지 완전 이루신 것은 내것이야.' 이라기 때문에, “너희들이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은 생명길로”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은 생명길로 담대히” 어데 가라고? “담대히 뭐라” 했어, 성경에? “담대히” 뭐라 했어? “담대히 하나님에게 나아갈지니라” “담대히 하나님에게 나아갈지니라” 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뻔뻔스럽게 가겠어? ‘야야야 보자 보자 보자. 너 하나님의 율법 다 지켰어?’ ‘다 지켰어.' `너 죄가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어’ ‘네가 하나님하고 그래 친밀해?' `친밀하기를, 하나님은 내 안에 있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한 몸뚱이라. 하나님은 머리고 나는 그 몸이야.’ ‘네가 뭐인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심판 통과하신 것이 나 위해서 통과하셨기 때문에 내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심판을 완전 통과한 나, 완전 통과한 나, 나는, 완전 통과한 나는 뭐이요? 주님의 것.

알겠습니까? 마귀와 죄와 사망을 완전히 멸하고 거기에서 해방받아 자유하는 나라. 죄가 나를 간섭하지 못하고, 마귀가 간섭하지 못하고, 사망이 나를 침노하지 못해.

사망 이놈이 달라들어서 ‘뭐 어째? 한번 죽여 볼까?’ `죽여 봐.' 보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것, 예수님만 겁내는데 예수님이 행하신 것이 나를 대신 해서 내 모가치거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마귀와 죄와 사망을 완전히 멸하시고 거게서 해방시켜 자유케 해 주신 이 자유가,저 편집실에 있는 저 뭐꼬? 안경 쓴 저 선생 조네. 안 졸아? 안 졸아야 된다. 졸면 헛일이라. 싸움인데 지금 졸지 안하고 이래야 되지 뭐 짜다라 인간 까짓 게, 그까짓 거 암만 세 봤자 소용 없어. 주님 한 분이면 됐지 뭐 딴거 뭐 필요가 있어? 생각하면 나중에 막 목을 매대며 죽겠다고 지금 막 이래 쌓으면 ‘따라올라면 따라오라’ 이라고 가야 돼.

부부간에, 남편에게 아내에게 배척당하면 거기 막 들어붙을라고 오만 짓 다 하는, 예수면 제일이라 하고 예수 한 분이면 좋아서 그만 달라들면 막 그 뒤에 따라오면서 ‘아이구 나도 이제 예수 따라갈 터이니까 좀 같이 갑시다’ 같이 가자 할 때에 인제 이제까지 하도 시비해 쌓다가 내가 주님 앞으로 달아나니까 뒤에 따라오며 하니까 마음에 어리석은 자는 미련이 있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저래 쌓아니까 한번 돌아봐야 되겠다’ 살며시, 저 뒤에 따라오며 ‘같이 갑시다, 같이 갑시다.’ 자꾸 예수 믿고 빨리 달아나니까 같이 가자 하며 뒤에 따라와. 뭐 정신 없이 막 달아나니까 뭐 앞에 엎어지고 죽을 줄 모르고 따라와. 따라오는데 따라오면서 ‘좀 같이 갑시다’ 할 때에, `같이 가자 하니 좀 같이 가야 되겠다' 발을 조그매 이리 좀 더디 떼 놔. 더디 떼 놓으면 저것도 또 더디 떼놔. 그래 내가 ‘이거 좀 한번 돌아봐 줘야 되겠다.’ 요래 돌아보면 그거는 저리 돌아갑니다. 내가 다 돌아보면 저는 그만 돌아갑니다.

‘왜 어데? 나 자꾸 소리하고 지금 같이 가자 하더니만 왜 어디로 가노?’ 어디로 가노 하니까 ‘아, 듣기 싫다.' 돌아가는 거라. 붙잡으러 가니까 도망을 친다 말이오. 알겠소? 이게 인생의 비결입니다. 이게 부부의 비결이요 세상 모든 인간 관계의 비결이라. 다 경험하고 체험해 가지고 다 하는 말이야. 수천 번 수만 번 경험했어. 여러분들.

이제 주님의 죽으심으로써 나에게 마귀, 죄, 사망을 멸하고 나에게 해방과 자유 줬어. 나에게 완전 해방과 완전 자유 주셨으니 완전 해방 완전 자유는 내것, 완전 해방과 자유를 입은 나는 뭐입니까? 주님의 것. 이러니까 내가 주님의 것으로 산다고 살지마는 그까짓 거 몇닢푼치 됩니까? 이런데, 이러니까 살다 또 잘못 살았으면 ‘주님, 내가 주님의 것으로 살 터인데 살지 못했습니다’ 또 자복하고 말이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영감과 진리로 부활하셔 가지고서 대신 사시는 것은 내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주님의 죽으심에 같이 죽고”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요 세 가지를 자꾸 외워요. 주님의 사활의 세 가지 대속은 나의 것, 세 가지 대속을 입은 나는 주님의 것, 나는 뭘로 살 건가? 주님의 것으로 살아. 주님의 것으로 사니까 주님이 살고자 하시는 대로 살지.

살고자 하시는 대로 살지마는 주님이 살고자 하시는 대로 내가 백프로 삽니까 얼마나 삽니까? 한번 대답해 봐. 저 ○ 한번 대답해 봐. 얼마나 살아? 주님 나 위해 살았으니까 나도 주님 위해 살고 싶은데 살고 싶다고 해서 살면 얼마나 삽니까? 저 뭐꼬 ○ 뭣이가? 저 ○집사 한번 대답해 봐. 알마나 살아요? 주님이 나 위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살아 주셨으니까 나는 주님 위해서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주님의 것 됐으니까. 얼마나 살아? 주님의 것으로 살면 백분지 구십구나 살까 백의 백을 다 살까? 저 ○집사, 얼마나 살아? 주를 위해 살면 얼마나 살겠어? 백프로 살겠어? 억만분의 일이나 살겠어? 억만분의 일도 못 살아.

이러기에, 죽도록 충성하고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 결론이 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리 자꾸 생각할 때에 자꾸 내게는 새사람이 힘이 나 가지고 자꾸 새사람으로 참사람으로 점점 살게 돼.

이런데, 이걸랑 애쓰지 안하고 뭐 ‘냉장고에서 나왔어?’ 그놈 보다 보면은 헛일입니다. 어만 데 지금 가면 그만 헛일이라. 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나왔다, 뭐 어떠하다.’ 또 이래 떡 거석하기를 ‘지금 계시록에 이런데 아무 데 전쟁이 뭐이 나고 뭐이 나고 뭐이 나고 뭐이 나고’ 이리 쌓아면 ‘그 사람 유식하다. 어데 뭐이 나는고?’ 그게 무슨? 전쟁 나거나 안 나거나, 전쟁을 난다 소리, “난리와 난리 난다 소리를 들어도 너희들은” 뭐라 했어?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 이것만 생각하고 딴거 생각지 말라.” 했어. 있거나 말거나 나는 어데서든지 전쟁 속에서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만 믿고, 불이 타고 그것만 믿고 어데든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만 믿고 대속의 공로만 입고만 삽니다.

이거면 다 돼.

저 어데서 여기 ○○○집사님이 그 테이프를 가지고 와서 그 테이프를 내가 들었는데 테이프 들으니까 ‘이것은 좀 성경에 뭐 틀렸다 안 틀렸다 하는 것보다도 이 엉뚱한 것, 지금 중요한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안하고 지금 이라니까 이거 들으면 사람들이 엉뚱한 짓만 하고서 호기심만 자꾸 기르게 되지 이거 안 되겠다’ 이래서 그래 내가 그 강사를 알아 볼라고 내가 대구로 전화해서 대구가 그분이, 내가 아는 대로 근거지라면 대구가 근거지기 때문에 알아 보고 이래서 대구에 전화번호도 알고 또 서울에 있는 전화번호도 알았습니다. 전화번호를 나한테, 모두 뭐 물으니까 가르쳐 준다 해서 나한테 적어 놨어요. 적어 놓은 것은 아마 전화번호를 물으면 혹 강사로 청해 가지고 집회할란가 싶어서 거게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열심히 가르쳐 줘서 다 적어 놨어요.

적어 놓고 그래 내가 다 이래 해 봐도 몰랐는데 엊저녁에사 똑똑히 알았어.

엊저녁에 똑똑히 알았는데 왜 내가 몰랐느냐? 그분은 내가 한 팔십여 세가 될 것 같은데 일흔네 살이라 하기 때문에 ‘이 연령이 적다. 그분이 아닌가보다. 설교는 들으니까 그분 같은데.’ 이래서 엊저녁에 내가 이제 양사방 연락해 가지고 ○○목사 그 제자에게 물어보고 이라니까 마침 역부러 가 가지고 물었는데 ‘지금 팔십여 세가, 연세가 되지 않느냐?’ `아닙니다. 그래 안 됐습니다.’ 지금 칠십너인가 된다 해. 딱 들어맞았어. 알았어. 내가 그분 아는 분이오.

지금 그분이 가르치는 건 성경대로냐 성경대로 아니냐 하는데 성경대로를 가르쳐도 그전에 과거에 말하듯이 이 계시록에 이런 거 시대적으로 딱 꿰어 맞춥니다. 시대적으로 딱 꿰어 맞추고 지역적으로 딱 꿰어 맞추기 때문에 이거는 이치니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 이치가 들어맞고 이 이치를 이용해야 되는데 그걸 시대적으로 딱 한번 꿰어 맞춰 버리면 그때가 지나가면 그 다음에는 없는 거라. 아니야. 또 있고 또 있어.

요 이치니까, 이치를 가르치는데, 여러분들이 이치를 가르치는데 이치는 듣지 안하고 ‘요거는 아무 데 무슨 나라 뭐 됐다’ 그거는 그 나라만 되고, 그 나라도 되고 또 그 전에는 됐고 지금도 또 그렇게 된 것이 많이 있다 그거요.

이래서, 계시록을 시대적으로 국한시켜서, 지역적으로 국한시켜서, 역사적으로 국한시켜 ‘요거는 지나갔다’ 지나갔으면 다시 없을 것 이닙니까? 그 다음에 몇백 번이라도 있는 거라. 이치를 가르쳐, 이치. 구원 도리 이치를 가르쳐 놨어요.

그랬는데, 그런 것도 여러분들이 또 미혹을 받을 거라 그거요. 여러분들이 여게 가르쳐서 배우는 거 이것이 제일 예수 믿는 그 첩경입니다. 지름길이오. 이것만 거석하면 현재 여러분들에게 변화되는 걸 알 것이라 그거요.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하고 찾고 문 두드리는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소원이 여기 다 들었다 했습니다. 요 세 가지 속에는 우리 소원이 다 들었어. 그러면 이 소원 성취가 돼요 안 돼요? 소원 성취가 된다고, 하나님에게 구하면 이 소원 성취가 된다고 하지 안했어요? 되는데 얼마나 확실히 되는가? “너희들이 악할지라도 자식이 달라 하면 좋은 걸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거 주시지 않겠느냐?” 요렇게 딱 결부를 딱 시켜 놨다 말이오.

그러니까, 소원 성취하는 종류는 몇 가지 속에 들었습니까, 손가락으로? 소원 성취하는 종류는 몇 가지 속에 들었소? 이것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라. 이 셋 들어 봐요, 이 셋. 소원 성취하는 종류는 구하는 것, 찾는 것, 문 두드리는 것 이 세 가지 속에 다 들었어. 다 들었어. 그거 여러번 말, 얼마든지 말하지 안했어요? 다 들었어.

또 그런데, 이 세 가지를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얻는데 거게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도록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몇 가지로 가르쳤습니까? 손가락으로? 녜, 두 가지로 가르쳤어요. 부모와 자식이, 부모와 자식 둘 “떡 달라 하면 돌 주며 생선 달라 하면 배암 줄 자가 어데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시겠느냐?”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 아버지와 인간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와의 부자간과 인간끼리 부자간과 이걸 둘을 자꾸 비교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가르쳐 줬다 말이오. 그러면 확신이 있어요 없어요? 얼마나 믿으라고, 시지부지 말했습니까 확실히 믿으라고 확정을 지워서 말했습니까? 확정을 지워 말했다 말이오.

이런데, 우리가 다 구하기도 열심히 구해요. 또 믿기도 믿어요. 처음에 믿는 사람들은 믿고 열심히 구하는데 구하다가 말거든. 처음에는 열심히 구하는데 구하다가 만다 말이오.

이러니까, 열심히 막 예수님을 믿으면은 말하기를 ‘저거는 풋믿음이라 저렇다.

우리도 다 저래 풋믿음으로 믿을 때는 다 저래 믿었다. 저거는 장개비에 끓는 물이다.’ 뭐 이렇게 비방하면서 ‘자, 우리는.' `왜 장로님은 그렇게 열심이 없습니까?’ ‘우리는 노숙해서. 그거는 아직 풋믿음, 우리는 장성해.' 너는 늙어 뒈졌다. 장로야, 너는 늙어 뒈졌다. 네가 무슨 뭐뭐 믿음이 늙나? 믿음이 늙으면 영생은 어찌 하노? 믿음은 늙지 않는다. 모든 건 없어져도 믿음은 영원히 있다고 했다. 왜 믿음이 네 믿음은 왜 늙노? 장로 네 믿음은 왜 늙노? 목사 네 믿음은 왜 늙노? 그게 가짜 아닙니까? 믿음은 갈수록이 자꾸 더 강해집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뭐라고 말했어? 믿음은 뭘로 비유했소? 무거운 짐진 것 같다고 말했어, 무거운 짐진 것 같다고. 무거운 짐진 것 같다니? 무거운 짐, 무거운 짐은 갈수록이 자꾸 가벼워집니까 더 무거워집니까? 더 무거워져. 예수 믿는 일은 자꾸 잘 믿어 갈수록이 더 자꾸 뭐 책임이 중해지고 자꾸 필요성이 있고 더 가치 있기 때문에 죽자 살자 하고 더 달라듭니다.

이러니까,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심방하고, 이러니까 막 골케골케거리면서 있는 일단 정신을 다 기울여 가지고, 나는 일단 정신 기울여 가지고 지금 새벽기도, 오전 오후 예배, 금요일 수요일 예배 꼭 설교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안 맡길라고 그거 지금 내가 하고 있습니다. 내 힘은, 내 힘은, 있는 힘 전부는 성경 연구하는 것, 기도하는 것, 또 하나 말씀 증거하는 것 요 세 군데만 쓰기로 하나님 앞에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다른 사람이 있다가 ‘아이구, 뭐 그만 좀 쉬지’ 그래요. 은퇴해서 정년 퇴직하고 좀 쉬고 이라라고 하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지마는 암만 해 봤자 ‘해 봐라. 나는 절대 안 한다. 죽는 그 시간까지,’ 요거 생각하고 있습니다.

있는데, 다른 사람 누가 그래요, 여기 와 앉았는데. 지금 꼭 그리 설교를 그렇게 새벽, 저녁, 수요일 뭐 이거 다 설교한다 하니까 ‘정말로 그래요, 정말로 그래요?’ 하더래, ‘정말로 그래요?' 놀라더래요. 정말로 그러냐고. 내가 그래 하고 있지 안해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기도 많이 해야 돼요. 기도 많이 해서 요렇게 설교하다가, 설교하다가 그만 순교 딱 당하면 제일 좋고, 이렇게 설교하다가 또 늙어 죽어도 설교하다가 그만 죽으면 그거는 뭐 이등이라. 설교하다가 주님을 인해서 죽어야 되는데 주님 위해 죽는 거는 있는 힘 다하고 자꾸 준비하고 이라다가 죽으면 그것도 주님 위해 죽는 거라, 죽기는. 순생도.

우리가 구하기는 열심히 구합니다. 열심히 구하는데 왜 구하는 열심이 실실 식어집니까? 왜 구하는 열심이 식어집니까? 왜 믿음이 식어집니까? 자, 처음 믿는 사람 믿음이 좋습니까 이제 오랫 동안 나이 많은 사람 믿음이 좋습니까? 주일학교 학생들 믿음이 좋아. 어른들 믿음은 허무해. 왜 자꾸 믿음이 늙어지는지? 늙어지니까 죽을 수 있는 믿음이요 안 죽을 수 있는 믿음이요? 자, 늙어지는 믿음은 죽는 믿음입니까 영생하는 믿음입니까? 죽는 믿음이라, 죽는 믿음.

왜 이렇게 자꾸 믿음이 자꾸 식어지지? 해 보니까 안 되거든.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다 소원 성취 된다 했는데 믿고 그렇게 애써 보니까, ‘믿고 애쓰니까 되겠다 되겠다’ 하고서 해 보니까 안 돼. ‘한 번 더 해 보자. 설마 되겠지. 한번 더 해 보자.’ 또 안 돼. 또 안 돼, 또 안 돼.

해도 안 되니까 ‘공연히 성경은 거짓말뿐이로구먼’ 그라는데 어데 고장이 났습니까? 어데 고장이 났어? 요게 몇 가지 말했지요? 일호가, 일호가 몇 가지? 세 가지. 이호는? 두 가지. 또 삼호는? 한 가지. 한 가지 요게 없다 그말이오. 한 가지 요게 없어.

여게 12절 “그러므로” 그러므로는 거는 위에 말한 거라, 위에 말한.

“그러므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 어짜라 말입니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그러면 이 남은 누구겠지? 남은 누구겠지?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자녀입니까 동리 사람입니까 주님입니까 누구입니까? 다라.

마태복음 25장 40절에 보면은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제자 중에 제일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어. 왼편에 있는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나의 형제 중에 제일 작은 자에게 행치 안한 것이 곧 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라” 이랬어.

이러니까 하나님과 사람은 하나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츰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대접하는 사람은 사람 대접하는 게 하나님 대접이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뭐라 했소, 또? “볼 수 있는 그 형제를 사랑할 것이니라” “보는 형제를 사랑치 안하는 자는”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치 아니하는 자라” 그래 놨어. 그거 어데 있어요? 요한일서 4장 끝에 있는가 모르겠어, 끝절인가 모르겠어.

그래. 이러니까 내가 이렇게 하는데 기도도 열심히 하고 ‘믿습니다’ 뭐, 안 되니까 ‘믿사옵나이다, 믿었사옵나이다, 믿어 두었삽나이다, 믿어 통과했삽니이다.’ 막 믿음을 강하게 안 되니까 ‘믿사옵나이다' 오만 소리 다 하고, 구하기를 뭐 밥도 안 먹고 철야도 하고 또 산에 산기도도 가고 이래 쌓아도 안 된다 그말이오.

안 되는 고장이 어데 있습니까? 일호에 있습니까 이호에 있습니까 삼호에 있습니까? 삼호에 있어. “네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주님에게 내가 얻고자 하는 대로 내가 주님 대접해야 돼. 주님 대접하는 게 사람 대접하는 게 주님 대접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져야 된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에게 뭐 달라 하면 나도 주님에게 드려야지. 뭐 주님에게 드릴 게 뭐 있습니까? 다 주님에게 받은 것이지.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받을라면 주님을 내가 사랑해야 되겠고, 또 주님에게 뭐 얻을라면 주님에게 계약한 대로 약속한 대로 바쳐야 되겠고, 주님이 나를 도와 주시기를 바라면 나도 주님의 일을 도와야 되겠고, 주님의 일 도우면, 도우면 뭐 도울 수 있어? 그저 그래도 나로서 그 성의를 기울여야 된다 그거요.

내가 주님에게 대해서 이렇게 뭣을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고 이라거든, 주님에게 네가 대해서 이렇게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고 이렇게 애를 쓰는데 그라거든 너도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와 같이 하며 해라 그말이오. 하나님께 대해서는 뭐 뭐라 하든지 꼼짝도 안 하고 그래 변화되지 안하고 이래 있으면서 하면 안 돼.

사람에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 뭐 얻으러 가면, 그 사람이 얻으러 가면 줄 사람이 좋아해야 돼요 안 좋아해야 돼요? 좋아해야 돼요 안 좋아해야 돼요? 좋아해야 돼요.

그래 내가 비유를 하기를 그렇게 비유를 했어. 시골에서 말이오. 시골에 지금은 뭐 경운기가 있지마는 옛날은 소 가지고 갈지요. 소 아니면 못 갈아요. 사람들이 힘이 암만 세다 해도 갈 수가 있습니까? 이런데 가난한 사람은 소가 없어.

이러니까 부자들 집에 가서 인제 소를 얻어 와야 되는데, 그거 또 부자들은 그때는 ‘가난한 사람은 소 살 수 없고 먹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소가 있으면 빌려 줘야지 안 빌려 주면 안 된다’ 하는 그거 다 풍속이 돼 가지고 있어.

이러기 때문에 으례히 소를 놀리고 안 빌려 주면은 그 부자 망해 버리요. 또 어떤 사람은 자기 다 부리고 내 주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부리는 건 차라리 좀 뒤에 거석하고 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손 모아 가지고 뭐 할라 할 때는 자기가 못 부려도 준다 그거요. 그러면 그 동리에서 인심을 얻고 영광이 있어진다 말이오.

그래, 소 얻으러 갔어. 소 얻으러 갔는데 처음에 가서, 주인이 지금 소를 부리고 있는데 소 얻으러 가 가지고 ‘내가 먼저 왔습니다. 나를 줘야 됩니다, 나를 줘야 됩니다. 나를 줘야 됩니다 나를 줘야 됩니다.’ 하면서 삐식이 드러누웠습니다.

드러누워 좀 쉽니다, ‘나를 줘야 됩니다, 나를 줘야 됩니다.’ 하고. 그래 또 뒤에 한 사람이 또 왔어. 와 가지고 ‘소 좀 주시이소’ 이라니까, 그래 또 거석하기를 ‘자네가 먼저 왔나?’ ‘그러면 이 사람 부리고 내가 부려야 됩니다' 이리 쌓는다 말이오.

세번째 하나 또 얻으러 왔어. 얻으러 왔는데 세번째 얻으러 온 사람이 오더니마는 소 달라 소리도 안 하고 지금 보니까 소로 부리는 데는 논 구석에 조 빼쪽빼쪽하게 들어간 데는 여기는 후칭이도 안 되고 써레도 안 들어가거든.

괭이밖에 안 들어가요. 시골 농사 안 지어 본 사람은 그것도 몰라. 이 오더니마는 저 괭이를 가지고 그만 다리 둘둘 걷어 가지고 가 가지고 저 구석에 막 파서 자꾸 이래 다 이래 가지고 이라니까 훨씬 시간을, 일이 추어진다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냅두면 그놈 가지고서 다 이래 할라 하니까 나중에 그 시간이 걸리는데, 소 가지고 하면 시간이 걸리는데 이라니까 훨씬 일이 추어졌다 말이오.

자, 그라면, 주인이 소를 첫째 오는 일호에 먼저 주겠습니까 이호에 먼저 주겠습니까 삼호에 먼저 주겠습니까 몇 호에 먼저 주겠습니까? 일호에 먼저 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이호에 먼저 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손을 누가 저기 들고 있어? 삼호에 먼저 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다 아녜요. 이거라. 삼호에 먼저 줘. 그거라. 그걸 말하고 있는 거라, 여게.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네가 남을 대접하라” 이게 없기 때문에 안 된다 말이오. 주님에게 있는 거 전부 주님에게 뭐 생명이고 몸이고 전부 다 얻어야 되는데 나는 주님을 대접 안 하거든. 주님을 대우 안 한다 말이오.

주님에게 대접하면, 대접을 하면은 떼먹는다 했어요, 대접한 것만치 대접한다 했어요, 여러 배 몇백 배를 준다 했어요? 어째요? 여러 배 몇백 배를 준다 했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당신 섬기는 그것이 사는 길이기 때문에 섬기도록 하는 사람 만들기 위해서 우주를 만들어 놓고 우리에게 다 구원 위해서 만들어 주신 것인데 당신은 우리에게 길을 들여 가지고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분만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분에게 순종해 살라하는 그걸 지금 말하는 거라.

이러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안한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안한 것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어.

우리가 벌써 하나님이 떡 볼 때에 사람에게 대해서 잔인하게 합니다. 사람에게 잔인한다 말이오. 있다고 자세를 부리요. 아주 좀 더 있다고 자세를 부리요.

자세를 부리면 하나님 마음에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빠요.

그래 그 뒤에 ‘하나님이여’ 이래 머리를 숙이며 ‘하나님이여 뭐 주십시오' 그라니까 하나님이 있다가 자세를 부립니다. 떡 자세를 부리고 안 주요. 그런면 그때 깨달아야 돼. ‘왜 하나님이 이거 자꾸 고자세하고 내게 안 주노?’ 가만히 생각하니까 ‘아, 내가 아무것이한테 고자세를 했구나. 고자세했구나. 주님이여, 내가 그런 고자세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하면은 하나님께서 입이 뻘쭘하이 좋아하셔 가지고 떡 그러며 ‘그래. 다시 그래 하지 마라.’ 이라며 또 주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기도에는 회개가 있어야 되지 회개 안 하고 자꾸 아무리 산에 가도 소용 없어. 가거들랑 꼭, 한꺼번에 가 가지고서 구하는 것도 구하지마는, 구하는 것은 너희들에게 구하기 전에 너희들에게 있어야 될 것인 줄 안다 했어. 그러니까 구하는 그거는 어느 정도만 구하면 돼요. 구하는 건 뭐 때문에? 구하지 안하고 주면 자연히 우연히 생겼다고 제 힘으로 됐다고 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 없애지도록 ‘주님께서 주셨다’ 요것만 아는 정도만 구하면 돼.

그러니까, 구하는 것보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되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되라. 그러니까 고치는 걸 힘을 써야 되지 안 고치고 암만 산에 가서 있어도 소용 없어. 고쳐야 되지.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네가 남을 대접하여라” 네가 하나님 앞에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고 이렇게 하는 것만침 네가 이제 하나님 보실 때에, 하나님 보실 때에 뭘 대접해요? 하나님 보실 때에, 하나님께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뭐, 하늘 보고 향해서 하는 겁니까? 하나님께 하는 것은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 알겠습니까? 하나님께 하는 건 사람에게 하는 것.

자, 따라합시다.사람에게 하는 것은!하나님에게 하는 것이라!사람을 멸시 천대하는 것은!하나님을 멸시 천대하는 것이라!하나님을 생각함으로!사람을 존귀히 여기고!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은! 뭐입니까? 하나님 대우라. 요걸 아십시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분 기도 후에 권찰회 모입니다.

어짜든지 새벽기도 빠지지 말아요. 오늘 아침에는 또 조금 적게 나왔네. 이렇츰 약해. 이렇츰 약해서, 약하니까 위해서 기도하고 하루 종일 애를 써요.

자, 새벽기도 나오는 것은 새벽에 준비해야 돼요 저녁에 잘 때 준비해야 돼요? 새벽기도 나오는 것은 저녁에 잘 때 준비해야 돼요 새벽에 준비해야 돼요? 새벽에 준비해야 돼요. 새벽에 준비해야 돼.

새벽기도 나오면 못 나오구로 하는 거 많습니다. 아이가 빽빽 울면서 못 나오구로 하지 남편이 또 새벽기도 못 나오구로 하지 또, 못 나오구로, 은혜 못 받구로 말이오. 주일날 은혜 못 받구로 하는 것은 남편이 늦게 와 가지고 잠도 못 자구로 애를 먹여 가지고서 이제 골탕을 쥐먹으니까 낮에 잠이 자꾸 와 쌓아니까 견뎌야지? 그럴 때 속으로 이래도, 그 말 하면 안 되지. 안 해도 ‘우리 남편이 지금 마귀 노릇한다. 마귀 노릇하기 때문에 오걸 단단히 이겨야 된다’ 요래 조래 어찌 됐든간에 연구를 해 가지고서 어짜든지 주일날 주일 예배 보는 데에 토요일날은 단단히 믿음 준비하도록 그렇게 미리 연구를 해요.

‘오늘 저녁에도 자꾸 이랄 터이니까 보자 저녁에 늦게 자면 안 될 터이니까 일찍 자야 되겠다’ 하는 데는 자꾸 다른 걸 막 쳐요. 쳐 가지고 저녁도 일찍 해서 먹고 자꾸 이래, 자꾸 이래 서둘러 놓으니까, 서둘러 놓으니까 할일 없으니까 인제 잘밖에는.

이렇게 다 해 놓고 일찍 자니까, 그만 열시에 자던 사람이 열시에 자서 새벽기도 못 나오거든 아홉시에 자면 그만 돼요. 아홉시 자서 새벽기도 못 나오는 사람 어찌 해야 돼요? 여덟시에 자요. 여덟시에 자도 새벽기도 못 나오는 사람은 밥도 먹지 말고 자요, 그만. 일찍 자는 데에서 새벽기도 할 수 있지 늦게 자면 안 돼요.

요 예수 믿는 이치를 배운 요대로 이치대로 해요. 이치대로 하면 되는데 이치대로 안 하고 뭐이 됩니까? 이치대로 하는 게 주님 대우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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