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뱀

 

1986. 7. 18. 금새벽

 

본문:마태복음 4장 1절∼11절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으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으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우리 인류 시조가 에덴 동산에서 패전한 것은 마귀가 와서 시험할 때에 그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시험에 졌습니다. 마귀는 아담을 이겼고 아담은 마귀의 시험에 유혹받아 가지고 그만 떨어졌습니다.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도 우리를 구원으로 인정받아야 되고 마귀에게서도 빼앗아야 됩니다. 그러면 마귀는 이겨서 마귀의 손에서 빼앗아야 하고 하나님에게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래서,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1절과 2절에 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그 인도를 받아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고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라고 광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갔습니다.

가 가지고 시험받기 전에 사십 일 동안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이신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지마는, 저 ○집사님 내가 예배 볼 때마다 조는데 그 조는 이유는 내가 보니까 좀 잘 믿어볼라고 애를 쓰는데 이 절제를 못 해 그래, 절제. 조절을 못 해서 저도 내가 그것을 회개를 했습니다. 조절 못 하는 것은, 사람은, 젊은 사람은 얼마든지 힘을 쓰면 힘이 나오고, 또 늙은 사람은 힘을 쓰면 힘이 줄어집니다. 늙은 사람은 힘을 자꾸 아껴야 되고, 절제해서 잘 조절해야 되고, 젊은 사람은 쓰기만 하면 자꾸 나옵니다. 왜? 그럴 때는 자랄 때고 어느 시간이 지나면은 그때는 자꾸 노쇠해서 줄어져 갈 때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허비를 안 해야 일이 되는데 허비하면 안 됩니다. 나는 욕심이 들어서 이 마귀의 유혹에 잘 들어갑니다.

어제 내가 탄식한 것이 꽃마을에 가 가지고, 어제 두 시간 여유가 있는데 두 시간 있는 여유를 그걸 그만 집에서 앉아 기도하든지 그리 안 하면 그만 그때 그만 꼭 누워서 좀 자든지 쉬어야 되는 것인데 그래도 두 시간 그게 아까와서 ‘어라, 꽃마을을 가자.’ 꽃마을 갔다 말이오. 가 가지고, 앉았기야 앉았지. 앉았기는 앉았지마는 기도가 됩니까? 이거는 기도도 아니고 자지도 못하고 공연히 그래 가지고서 시간을 허비하고 이라니까 두 시간 지내고 나니 몸은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고 기분도 피곤하고 전부 다 피곤해서 그만 패전입니다.

그 모양으로 우리가 꼭 절제라 하는 거는 절제라 하는 그거는 잘 조절이라 하는 것인데 조절해서 하지 안하면 안 돼요. 저 ○집사 늘 철야 하지? 철야하는 그거 안 해야 됩니다. 철야, 꼭 철야한다는 그것이 사람 아무짝도 못 쓰게 만들고 나중에 안 됩니다.

이러니까 뭐 삼층이나 그런 데서는 그저 잠을 많이 자는 것도 죄, 안 자는 것도 죄, 죄라 하는 것은 삐뚤어진 것이 죄인데 많이 자는 것도 죄 안 자는 것도 죄입니다. 딱 잘 때 딱 자고 딱 깰 때 깨 가지고서, 아무래도 우리는 늙으면 일 못 하고 죽으면 못 합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도 아주 보배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것이 없으면 둘째 아담에게 속한 것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딱 숨 떨어지면 그만 구원이라 하는 그거는 조금도 이루지 못하고 그거는 끝나 버렸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귀중한 것이니 이걸 잘 조절해서 써야 되지 육체의 힘을 조절하지 안하면은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위생을 둘을 해야 되는데, 위생 주의를 둘을 해야 되는데 육체의 위생을 못 하면 영의 위생을 못 합니다. 육체의 위생이 먼저요 영의 위생이 다음입니다.

그러기에, 이 먹는 것의 종이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어. 먹는 이게 어떻게 중요한지 이거 한 끼 잘못 먹으면 그만, 나는 지난 주 토요일날 설사했지, 토요일날 밤에 아무것도 못 하고 설사만 했지, 또 주일날 아침에는 또 먹지 않는다고 또 안 먹었지, 또 설사했지, 주일 종일 그랬지, 또 월요일날 설사했지, 이라니까 뭐 사람이 폭 녹아져 버려서, 그게 뭐냐 하면은 죄를 지어서 그래.

무슨 죄를 지어? 음식을 주님이 주실 때 ‘이거 먹어야 됩니까 안 먹어야 됩니까?’ 분명히 내가 똑똑히 묻고 이거 여게 독약이 있는지 여기 뭐 있는지 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니까 주님이 가르쳐 주셔야 되지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그리 안 하면 독한 것이면은 독한 것을 먹어도 상하지 않게 하신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이제 그 은혜를 받든지 뭐든지 주님하고 연결하면은 주님이 다 조절해 줄 터인데 그만 그냥 습관적으로, 뭐 기도야 물론 구비하게 하지요. 해도 내가 참으로 살아계시는 주님하고 이래 직접 대화 연결하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거게 삐뚤어졌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고장나고, 어데서 고장이 났는지 나 버렸어.

다른 사람들이,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쓰레기통이다 이래. 내가 쓰레기통이다. 왜 쓰레기통이냐 하면은 누가 말이요, 누가 권찰들에게 이거 귀하다고 떡 가져오면 ‘이거 귀하니까 이거 우리 지도자 하나님의 종에게 대접해야 되겠다’ 하면은 저거 집에 인제 마련해 가지고 대번 가져온 것도 있지만 또 와 가지고서 또 좀 시간 걸려 가지고 또 인제 대접하겠다 온다 말이오.

오면 또 이거 권찰들은 ‘이 좋은 걸 내가 먹을 게 아니라 이거 아무래도 목사님에게 대접을 해야 되겠다.’ 하고서 또 저거 집에 냉장고에 어데 좀 넣어 놓았다가 또 그래 온다 말이오. 또 와 가지고서 떡 가져오면 또 이게 내 입에 들어갈 때까지는 또 상당히 시일이 걸린다 말이오. 그러니까 전부 이거 뭐 썩은 거 그런 걸 가지고 와 가지고서 내가 먹어서 병드는 그런 게 많이 있다 그거요.

모두 성심 성의로 그러는데, 그게 성의를 가지고 그라고 참 아주 정성을 가지고 그라는데 실은 그런 게 많다 그거야. 주의 전을 위하여 간절한 것이 나를 삼켜 멸하게 한다 고 주님이 말씀하신 거와 마찬가지로 성의를 기울였지마는 그게 또 마음만 가지고 되는 거 아니야. 과학적이 아니면 안 돼.

이 말하자면 과학적이어야 되고 또 성령적이어야 돼. 성령적이어야 돼. 이거는 첫째 아담적이어야 되고 또 둘째 아담적이어야 돼. 둘째 아담만 돼도 치우쳐서 안 돼요. 첫째 아담적이어야 되고 둘째 아담적이어야 돼.

그래서, 아예 뭐든지 오는 걸랑은 받아들이지 마라. 이래도 또 이게 안 그란다 그말이오. 안 그라면 안 돼. 그러니까 이거 뭐 대접 안 받을라고 하는 것보다도, 그것도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이거 아무나따나 가져오면 이 사람 받고 저 사람 안 받을 수 없고 이라면 그걸 받아 가지고서 아무래도 그게 들어가기 때문에 그저 적게 먹어도 돈을 들여 가지고서 시장에 가서 사 가지고 그와 같이 해서 먹는 그게 좋지 사람들이 물건 가지고 온 거 뭐, 그거 인제 앞으로 물건 가지고 오면 내가 안 받을 거라. 못 받도록 해, 자꾸. 자꾸 못 받도록 해도 그래요.

이라면, 언제 한번 야자수라 하는 그거, 주먹같이 이래 생겻는데 그거 따면 그거 물이 나오고, 좋은 물이 나와 가지고 아주 귀한 물건이라. 야자수를 가져왔는데, 그 야자수 가져왔는데 가져 온 그것도 나도 그걸, 또 이거 얼마 있다가 또 나도 이걸 또 인제 야자수를 그 귀하다고 보고 있다 땄다 말이오. 그러니까 푹 썩어 못 먹는 거라. 너무 온 시간이 크다 말이오. 저게 귀해서 보냈지마는 배에 오며 얼마 걸렸고, 또 어데 얼마 걸렸고, 걸렸고 걸리고 걸리고 자꾸 이라니까 많이 걸렸다 그거요.

그러고, 또 시장에서도 파는 것도 그것도 ‘저 목사님은 전부 의심 더버기로구먼.’ 이러지마는 파는 것도 그래요. 파는 것도 나는 시장 볼 때 그래.

만날 한 군데만 단골되는 데 가 사지 마라. 여게도 사고 저게도 사고 이래 돌아다니면서 이래 사 가지고 먹어라.

왜? 사람은 몰라요. 사람은 조금 무엇을 일을 하면은 원수가 많이 생깁니다.

원수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원수가 어데서 어짤란지? 그러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렇게 악해지지는 일반으로는 안 됐지마는 우리가 여기 지금 수도물 먹는 것 이걸 뭐 중간에서 검사를 한다고 이라지마는 검사를 철저하게 안 해요. 안 하니까 이북에서는 뭐, 그런 일이라도 한다 그거요. 먼저 독가스를 뿌리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이 수도에 와 가지고서 그만 별로이 맛도 변하지 안하고 있는 그런 독약 넣어 버리면 모른다 그거요. 독약 넣으면 누가 압니까? 마셔 봐야 그렇게 그뭐 냄새가 다릅니까 뭐 뭣이 넘어 나옵니까? 이래도 먹으면 그만 얼마 안 가서 한 열흘 후에 죽으면 죽는 거 그런 약은 뭐 넣어 놓으면 아무 맛이 없어, 그만.

아무 표도 없어. 그러나 다 죽는다 말이오. 이러니까 평소에도 그걸 지킬 뿐 아니라 더우기 무슨 어려움이 있을 그런 원수가 있을 때는 그걸 잘 지켜야 돼요.

미국에서는 정권자들이, 우리가 볼 때에는 바보 같습니다. ‘그 정권자들이 이래 말하면 될 터인데 번연히 틀린 줄 알고 말을 못 하고 있는가?’ 그거는 원수를 안 맺을라고 그래. ‘우리 나라 같은 나라에서는 정권을 잡으면 그 정권을 장기 정권을 가질라고 애를 쓴다.’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안 가질래야, 가질라고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어. ○대통령이 다시는 출마 안 할라고 얼마나 애를 쓰고 가족들이 막 달라들고 자기도 안 할라고 애를 쓰지마는 이 밑에 사람들이 저거가 벌로 이제 못되게 해 놨으니까 각하가 이거 내려앉으면, 하야하는 날이면은 우리가 다 죽는다. 죽을라면 같이 죽자. 협박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말이오. 그 ○○○같은 그런 자는 울룩불룩한 아무 그거는 참 경호관도 되지 못하는 것 떡 그래 가지고서 자꾸 이라면 각하 우리가 죽을 터이니까 뭐 같이 죽자고 자꾸 하도 그래 쌓으니까 이거는 하기 싫은 대통령을 하니까 힘도 없고 하기도 싫고 억지로 이래 가지고 한다 말이오. 우리 나라는 요새도 정권 교체한다고서 자꾸 이라는데 이 정권을 교체하면 그다음에, 너무 저거가 나쁜 악질 했으니까 복수의 성이 많아. 복수성. 이 복수의 못된 행위가 많기 때문에 이거는 그 권세를 가지고 있어야 그 복수를 당해도 안 죽지 그리 안 하면 못 살 것이라 그렇게 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 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미국 나라만 안 그렇지 저 공산 국가는 전부 위대한 사람은 그 밑에 있는 제일 수제자가 죽였습니다.

수제자가 죽이고 제일 아주 그다음에 제이로 신임받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죽였다 말이오.

알아야지? 늘 그 사람이 그 사람을 신실히 자기 수족같이 알고 뭐든지 그 사람이 통해서 먹으면 될 줄 알고 이랬는데, 목 말라서 물 달라 하니까 그 사람이 물을 주니까 의례히 먹을 줄 알고 둘러마시는데 벌써 약이라. ‘내가 이 약을 먹어서 나는 안 된다.’ 빨리 이거 지금 뭐 유언을 해야 되겠다고서 빨리 불러도 그 사람 불러 가지고서 간단한 유언만 하고, 유언도 못 하고 나를 독약을 먹인 사람은 이 사람이라 하는 그 사람이 내나 그 뒤에 후계가 돼 가지고서 정권을 이양받을 사람인데, 그래, 그러고, 이러니까 그런 적이 많으니까 식물 같으면 시장 같은데는 ‘저 사람이 보자 어느 시장에서 무엇을 사고 있는가, 어데서 늘 사는가?’ 그걸 오래 동안 이거 조사를 해 가지고서, 그 사람이 늘 다니는 거게다 조화를 부린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지혜 있는 사람은 시장도 한 군데 안 봅니다. 여게 저게, 왜? 적이 많은지 몰라. 자기가 뭐 악을 해서 적이 있는 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은 제일 적이 많아요. 왜 많으냐? “내가 세상에 온 것은 화평을 일으키러 온 게 아니고 불화를 일으키러 왔다” 애비와 자식이 불화를 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불화를 하고, 이래 아내와 남편이 불화하고, 다 형제끼리 불화하고 이래 불화하다 말이오. 말씀대로 살라 하면은 자연히 그거 마귀 욕심 하나님의 욕심 두 가지 있기 때문에 시비가 나는 것이라. 이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삼가야 돼.

이런데, 모든 거 절제 안 하면 조심 안 하면 헛일이오. 늘 철야기도 한다고 장 그러며 철야기도만 하면 될 줄 알고, 이거 뭐 사람이 자야 되는 건데 자꾸 이래 가지고 밤에 자며, 뭐 깼다가 잤다가 깼다가 잤다가 자꾸 이래 거석하니까 마귀란 놈이 요거는 일으키기를 ‘너 야 집에 자니 암만해도 철야해야 되지 않느냐? 가 철야 해라.’ 이거 또 성신 감화인 줄 알고 갔다 말이오. 마귀 그놈이, 왜? 그라면 저거 수입이 있거든.

철야하다 보니까 졸았다 말이지. 그거 그래도 자꾸 ‘깨어 기도해라, 기도해라.’ 이라니까 안 자고 자꾸 기도한다고 이래도 기도도 안 되고 잠도 안 자고 이라다가 예배 볼 때 되면 딱 졸게 딱 만들어. 예배 볼 때 졸고 하나님 말씀 못 들으면 그만 헛일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짓 하지 말아요.

그 철야 그거 하지 말고 오거들랑은 딱 내가 십 분이면 십 분, 한 시간이면 한 시간, 반 시간이면 반 시간, 그 기도하는 거 그저 삼십 분 기도하는 거 많이 정했습니다.

물론 사람이 눈감고 명상하는 거야 나중에 명상에 들어가면 뭐 하루도 이틀도 사흘도 며칠도 다른 생각 없이 들어가지마는 평소에 자꾸 그래 명상에 들어가는 거는 아니야.

이러니까 기도를 좀 절제해서 기도하고 예배 시간에 꼭 안 졸아야 됩니다. 예배 시간에 안 졸아야 그게 정상이고 성경 볼 때에 안 졸아야 정상이고, 성경 볼 때 졸아지거든 무엇인가 고장났습니다. 자기 뭐, 성령이 떠났든지 그리 안 하면 몸이 피곤하든지, 예배 볼 때 조는 것도 자기가 너무 과로가 됐든지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들어와서 벌써 붙들려 마귀에게 붙들려 있든지 뭐인가 있다 그거요.

여게 보면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것은 마귀하고 둘이 씨름을 붙여.

마귀하고 둘이 씨름을 붙이는데 누가 붙입니까? 성령님이 붙이요. 씨름을 붙여 가지고서 마귀가 이기면 예수님이 마귀의 종되고, 또 예수님이 이기면 마귀가 예수님의 종되고, 시험 없는 일은 없습니다. 시험 없이 통과되는 일은 없어요, 다. 언제든지 시험은 있어요. 시험 받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또 마귀로 더불어 대결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러니까 예수님도 기도 없이는 하나님이 시험을 받도록 이끄는 그 이끌음에서 그 시험에서 승리를 할 수가 없어.

그러면 꼭 시험 받는 것은 이끌기는 하나님이 이끌고 또 시험은 마귀가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 이랬습니다. 물론 시험하는 때도 있지마는 대개 시험은 마귀가 시험하고 하나님은 시험을 받도록 이끕니다.

그러면 시험을 받도록 이끄는 것이 뭐냐?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을 받도록 그렇게 우리를 이끕니다. 이끌면 마귀는 우리를 시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 받도록 이끈다.’ 우리를 이끄는데, 이끄는 걸 어떻게 이끕디까? 자, 이끄는 그런 것을 한번, 하나님이 시험받도록 인도하는 거 말이오. 시험 받도록, 이끈다 말은 인도라 말이오.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받아 본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인도함을 받아 본 사람 한번 손 들어 봐요. 이뿐입니까? 하나님이 마귀에게 우리를 시험받도록 인도하기를 어떻게 인도하는데? 예? 예, 여기 대답하기를 현실을 가지고 인도한다, 요 면을 마귀에게 시험받도록 할라 하면은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현실을 만듭니다. 알겠습니까? 요 계명을 마귀에게 시험받도록 할라 하면은 그 계명을 지켜야 할 그 현실을 만드십니다.

그러면 현실은 누가 만듭니까? 누가 만든다 했소? 주님이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또 이제는 저 계명을, 그라면 일계명이나 이계명이나 저 계명을 시험받도록 하자 하면은 그 계명을 지켜야 할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서 그 현실을 만들어서 그 현실에서 계명을 지키도록 그렇게 현실을 만듭니다.

현실을 만드는데, 마귀는 와서 뭐라고 시험합니까? 그 현실에서 계명을 지키지 못하도록 하는 그게 마귀의 시험입니다. 지키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은 그 현실을 만들어 요 현실을 만들어서 ‘요 현실에서 네가 요 계명 지키라’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데 현실마다 계명 지킬 계명이 따로 있습니까 언제든지 한 계명입니까? 그러면 현실이 바꿔지는 데 따라서 지킬 계명도 바꿔집니까? 이거 확신이 없으면 안 돼. 이러기 때문에, 내가 어제도, 어제 여기서 시간이 없고, 기운 있을 대로 다 빼 먹어 버렸는데, 다 했는데 또 이거는 뒷날 하자 이라다가 또 내가 생각날 때 해아 되지 뒷날 하면 안 된다. 이래서 양성원에 가 가지고서, 그거 자꾸 공부 시간에 가 가지고 내가 얘기할라 하는 것이 자꾸 늦어져서 공부 시간에 가지도 못하고 늦게 갔다 말이오.

가 가지고 거게서 이야기 하는 데에 내딴에는 진액이 많이 빠져버렸어.

그래 가지고 뭐 자꾸 과로에 그래 하니까 어제 기도도 못 하고, 백지 꽃마을에 가 앉아서, 앉아서 이래 가지고, 뭐 이래 가지고 눈만 감고 이래 가지고 앉았기는 앉았지. 다른 사람 보면 기도하는 척 하지. 이렇지마는 실은 기도할라 하면은 또, 기도할라 하면 또 딴데로 그만 그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서 뭐 그렇게 해 가지고 그래 누워 자. 그래 가지고 자는 거라. 그 헛일하고 왔어.

지금 예수님이 「성령으로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려고 현실을 이런 현실을 주시니까 내가 그 현실에 대한 계명 지켜야 되고, 또 저런 현실 주면은 저런 현실에 대한 계명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는 것은 현실을 가지고 이끄십니다.

현실을 가지고 이끄시는 것이 그때에 성령이 예수님을 이끄시는 거와 꼭 같다 말이오. 그러면 성령이 이끄시는 것이나 오늘 현실을 가지고서 우리를 이끄시는 것이나 그 이끄는 것이 내나 한 하나님이 이끄시는 거라.

그러면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하는 요 성구에 대해서, 말은 요거 뭐 요 모르는 단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요 모르는 단어가 있소 없소, 여게? 1절과 2절에 모르는 단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1절과 2절에 여게 말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다 알아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하시고, 원본을. 원본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영감으로 이렇게 사람을 통해서 기록해 주셨는데 그 원본은 책이 한 권입니까 두 권입니까? 한 권뿐이야. 원어 성경은 여러 수천 권도 넘고 수만 권도 넘어요.

이런데 이 원본을 기록해 주실라고 하나님께서 히브리어를 내셔 가지고서, 사람은 모르지마는 일찍부터 준비라 말이오. 그래 가지고 있다가 그게 많은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보급이 됐을 때에 그때 이 히브리어를 써 가지고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그 계시를 기록한 것입니다. 아주 쉬운 말로 기록했어.

쉬운 말로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 한국말로 번역된 것은 알기 쉽도록 번역한 게 아니라 학자들이 그저 원본을 자꾸 사람들이 이와 같이 베끼고 베껴 가지고서 그 사본이 많습니다. 사본이 많은데 또 사본을 또 이것을 자꾸 복사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나오는 것인데 그 꼭 같은 말로 나왔어. 신구약 성경을 쭉 읽어 보면 ‘이게 무슨 단어인고 모르겠다’ 단어 모르는 그런 단어가 몇 개 안 됩니다.

일반 무식한 이거 뭐 학교 안 가고 그냥 이래 뭐 공부 안 한 사람들도 그 말은 무슨 말인고 다 안다 그거야. 그렇게 하나님은 쉽게 우리에게 쉬운 말로 우리에게 가르쳐 줄라고 이렇게 했어.

이라는데, 어려워지기를 어데서 어려워졌느냐 하면은 어려워지기를, 아주 쉬운 말로 썼는데 이 학자들이 나서 가지고서, 쉬운 말을 썼는데 밥 벌어 먹을 게 없고 이거 자꾸 할 말이 없고 또 저거가 우쭐해 가지고 대가리라 해야 될 터이니까 이 말할 때에, 아주 성령님은 쉬운 말로 해 가지고 누구든지 알 수 있도록 이렇게 쉬운 말로 기록해 줬는데 기록해 준 걸 그 말을 그만, 그냥 아는데, 그냥 읽어보면 아는데, 그 뜻을 알리기를 ‘이 말의 뜻은 뭐냐 하면은 이거는 저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철학자가 이렇게 이 말을 사용해서, 철학자가 이 말을 이렇게 이렇게 사용했다, 이렇게 이렇게 사용했다, 철학자가 이렇게 사용해서 철학자가 열 가지로 사용했고, 불교자가 또 열 가지로 사용했고, 뭐 사용했고, 또 문학자가 이렇게 사용했고, 또 과학자가 이렇게 사용했고, 이 사용했기 때문에 이렇게 이렇게 사용했으니까 이 말을 이런 학자들이 이렇게 사용했으니 이 말의 뜻은 이런 뜻이기 때문에,’ 이거 전부 대학자들이 사용한 그것을 가져와 가지고서 ‘요 말의 뜻은 이런 뜻이다’ 이라면서, 이러기 때문에 성경의 이 뜻을 알라면은 이거는 제일 유력하게 사용한 사람이 불교 학자가 사용했기 때문에 불교 학자가 사용한 그것을 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불교 학자가 이렇게 사용했기 때문에 요 말의 뜻은 이런 것이라. 또 이거는 어떤 철학자가 사용했기 때문에 그 철학자가 사용한 그 말의 뜻은 이런 뜻이라.’ 이래 가지고 모든 학자들 다 말한 걸 와 가지고서 ‘이렇게 사용하기 때문에 이 말의 뜻은 이런 뜻이라’ 이렇게 말하니까 이거 그만 그거 공부한 사람이 그렇지 공부 안 한 사람들 무식한 사람들은 그걸 못 알아듣겠다 말이오.

성경 본문은 보니까 환하게 그만 무식해도 좔좔 알겠고 그 뜻을 알겠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이거 학자들이 이렇게 그만 해석을 해 가지고서 ‘어데서 뭐 어디서 사용했다’ 하는 그걸 가지고 오니까 암만 배워야 머리 들어가지도 안하고 모르겠다 그거요.

모르겠으니까, ‘그 사람들이 알아. 그 사람들은 바로 알고 우리는 몰라 그러니까 이거 아무래도 그걸 배워야 되겠다.’ 이라니까, 자, 그러면 철학에서, 성경에 있는 그 단어를, 단어는 말이지, ‘이 단어는 봐라, 네가 여기,’ 예를 들어서 “이끌려” 하면, 이끈다 그 말은, 소를 이끌었다 사람을 이끌었다 이끄는 거 그거 아니요? 그만 쉬운데, 이 이끌리어라 하는 이 말의 뜻은 이거 뭐냐 하면은 이 뜻은 철학에는 이렇게 사용했고, 과학에서는 이렇게 사용했고, 문학에는 이렇게 사용했고, 또 모든 종교 어떤 대 종교가는 이렇게 사용했고, 또 불교에서는 이렇게 사용했고 자꾸 이 사용했다고서 이라니까, 이끌리면 이끌린 건데, 이끌리면 이끌린 건데 이놈을 그걸 자꾸 말해 가지고서 말하니까 그래 가지고 ‘여게 성경에 이끌려 하는 이 뜻을 해석을 합니다.’ 해석을 하면은 그 해석이 세상의 모든 안 믿는 모든 학자들이 다 말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성경 해석이 하나님이 주신 그 해석대로겠습니까 사람들이 말해 놓은 사람들의 해석이 되겠습니까? 어떤 게 되겠소? 요거 신학자들이 요걸 아직까지 눈이 뜨이지 안했기 때문에 안된 소리를 자꾸 하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단어를 불교에서 사용한, 불교에서는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 단어는 이럴 때 사용했다 저럴 때 사용했다, 이래 사용했다. 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또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거, 히브리 사람은 히브리어를, 마귀란 놈은 미리부터 발등 더디라. 발등 더디라는 거는 먼저 선수쳤다 말이오.

선수를 쳐 가지고서 이 히브리어를 요렇게 사용하고 저렇게 사용해 가지고 이래 자꾸 이래 놓으니까 사람들은, 그래 놓고 ‘봐라. 네가 이 말의 뜻은 이끌리어라 하는 그게 소 끌듯이 그만 그런 건 줄 아나? 소 끌듯이 그래 끄는 건지 아나? 이 말의 뜻은 불교나 철학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뜻이 있다.’ 그걸 가지고 자꾸 해석을 하니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불교화시킵니까, 철학화시킵니까,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의 성령화시킵니까? 뭐요? 뭣 시켜? 뭣 시키지? 불교화시켜.

이러니까, 성경을 꼭 연구하는 법은, 성경을 연구할라면은, ‘이 성경 단어를 학자들이 어떻게 말했는가?’ 학자들 말하면 인간으로 들어가 버리고 헛일됩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요거 알면 여러분들이 성경 연구를 삐뚤어진 길로 가지를 안하고 바로 연구할 거라 그거야.

할 게 없으니까, 제가 목숨을 다 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대로 순종하면 저절로 알아지는데.

순종하면 성화되고, 성화되면 또 알아지고, 또 더 순종하면 또 더 성화되고 또 더 알아지고 자꾸 이래 알아야 되는데 그거는 하지 안하고 책상 위에서 자꾸 이거 다른 사람들, 연구할라 하면 아예 서적부터 사야 돼요. 연구할라면 서적부터 사 가지고 ‘다른 사람이 뭐라 하는고 보자’ 그 사람들 서적 사 가지고 와서 전부 인간 연구지.

이러니까 이것을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계시할 때에 말씀하시기를, 누가복음 19장에 보면은 모든 사람들이 다 이래 가는데 삭개오라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이 사람은 암만 가 봐야 뭐 헤치고 들어가 봐야 못 들어가지. 항상 사람 뒷꼭지나 보고, 사람 뒷꼭대기나 보고 사람 옆꼭대기나 보지 예수님은 못 만나 보겠다 말이오.

이라니까 ‘이거 안 됐다.’ 도망을 쳐 가지고 저 앞에 가서 뽕나무에 올라가 가지고서 떡 오는 걸 기다리고 있다 말이오. 위에서 떡 내려다 보고 있으니까 이제 예수님이 차차차 가까이 오는데 보니까 예수님이 그 보이거든.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뽕나무 밑에 오셔 가지고서 서 가지고 ‘삭개오야 빨리 내려오라.

내가 오늘 저녁에 너거 집에 자겠다. 천국이 너거 집에 이르렀다.’ 이러니까 삭개오는 세리장인 줄 아는데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 지금 봐라, 저거 성령이 충만하고 참 선지자 같으면 저 삭개오 저 순도둑놈인 것을 알 터인데 막 내려오라 가지고 오늘 저녁에 너거 집에 가 자겠다 이라고서 이렇게 하니,’ 그게 뭐입니까? 오늘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자꾸 사람 뒷꼭대기만 보고 따라간다 말이오. ‘자, 어떤 신학자가 말했다.’ 전부 그 몇 해 공부해야 ‘이 인간들이 뭐라 하느냐?’ 인간들의 학 그것만 자꾸 말해 가지고서 인간들 연구만 했지, 인간들 한 말만 연구했어. 예수님 만나보지 못하면.

예수님 만나보는 수는 뭐 있어?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면 성경 연구하는 방법은 그밖에 없어. 방편은 그 방편뿐이라. 이라면 쉬울 터인데 이거 공연한 자들이 이래 자꾸 어지럽게 한다 말이오.

여게는 이 말을 뭐 「그때에」 이거 모릅니까? ‘그때’ 하는 이거 모르는 말이요? 「그때에 예수께서」 이거 다 알지. 어린 아이도 다 안다 그말이오. 말 그저 그냥 이래 보통 어린 아이라도, 아이라도 말만 알면 이 말 다 알아요.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성령에게 이끌리어” 하는 이거는 뭐 일반인이면, 성령,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 받는다, 또 성령으로 거듭났다, 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라 하는 것은 그거는 얼마든지 배우지 안했습니까? 그거는 또 성경에 해 놨다 말이오.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러면, 이렇게 말한 이 말은 아는데, 말은 아는데 왜 이것을 기록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느냐? 주신 목적이 뭐꼬? 그러면 이 계시에 대해서는 내가 깨달을 것은 뭐인가? ‘내가 깨달은 것은 뭐인가?’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내가 깨달은 것은 뭐인가?’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이요? 예? 내 진리? 묘한 말 했는데 내 진리가 뭐이지? 내 진리, 내게 해당되는 진리. 그러면 내가 행할 진리라 말이지? 그래. 아주, 언제부터 이 교회 나와? 이 교회 나온 지 얼마 됐어? 일 년? 이 년? 이 년 됐는데도, 내 진리라니? 자기 진리가 따로 있는가? 어데서 그걸 배웠어? 내가 가르쳐 배웠어? 여기 배운 것 같애. 여게 배운 것 같애. 자기 진리. 자기 진리. 자기 진리는 자기가 행할 진리라 그말이오.

자기 진리인데, 깨닫는 거는 뭐이냐 하면 자기 진리를 깨닫는 거라. 자기가 행할 거. 인제 그 높은 말 하니까 모르는데, 맞기는 맞았어. 그거 내가 하도 좀 이상해서 내가 또 물었어.

우리가 여게서 이걸 1절과 2절을 누구든지 말은 모르는 말이 없는데 이걸 뭣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느냐? 계시해 주신 목적이 뭐냐? 그러면 내가 왜 이 계시를 읽었느냐? 그러면 이 계시를 주님이 내게 주셨는데 내게 주신 목적이 뭐이냐? 여게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금 이 계시를 나에게 주셨느냐? 내가 깨달을 것, 깨닫는 것은 내가 행할 것을 내가 발견하는 것이 그것이 내가 깨달은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이 이래 말한다 하는 그거는 깨달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이런 뜻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 하는 그거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아는 것이지 내 깨달음은 아니라. 내 깨달음은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자기가 행할 것을 발견한 그것이 자기 깨달음입니다.

그러면 여게서 이 성구를 보고 ‘나는 여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요것을 모르면 깨달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깨달음이 보배라 하는 것은 거게 대해서, ‘요게 대해서 내가 행할 것이 뭐냐?’ 요것을 발견한 사람이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라.

그러면 여기, 뭐 시간 다 갔는데, 이러니까 하나 기억하고 있으면 뒤에 가르치기가 쉬운데.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도 시험을 받았구나, 시험을 치렀구나, 우리도 시험을 그러니까 치르는 것이 마땅하다.’ 요걸 깨달으라 말이오. 우리도 하나 하나 시험 치러 가지고 합격이 돼야 되지 그냥 그만 그리 밀고 나가는 거 아니라 그말이오. 우리도 시험을 치른다.

시험을 치를 때에 시험 치르도록 시험장으로 이끄는 이는 누가 이끄느냐? 하나님이 이끄신다. 예수님도 성령이 이끄셨으니 하나님이 이끌지 안했소? 우리도 하나님이 이끄신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이 이끄시다니?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이끄십니까? 자, 우리도 시험들 받으러 시험장으로, 시험장으로 이끄는 데에는, 이 시험 치르는 데, 장관 시험치는 데, 예를 들면은 대학 시험 치는 데, 또 고등학교 시험 치는 데, 이거 또 사원 시험 치는 데 그 시험장으로, 시험장으로 인도하는 그 인도하는 이는 누가 인도합니까? 자, 대답을 크게 해요, 모두. 알아들어야. 시험장으로 인도하는 이는 누가 인도합니까? 녜, 성령님이라 해도 되고 하나님이라 해도 됩니다. 성령님이라 해도 하나님이라 해도 다 한가지요.

한가지인데, 어떻게 인도합니까, 뭘로 인도합니까? 요런 현실 만들어 주는 것은 요 시험 치르라 말이고, 저런 현실 만들어 줄 때에는 저런 시험 치르라 하고, 왜? 그러면 현실마다 그러면 지킬 계명이 꼭 같습니까 현실마다 그 현실에 해당된 계명은 따로 있습니까? 따로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요 계명 시험 치르라고 할 때에는 요 현실 만들어 주시고 저 계명 시험 치르라 할 때는 저 현실 만들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 만날 때, ‘여게는 무슨 시험을 치를라고 지금 요 현실을 만들어 주셨는가? 요 현실에 여게 합격을 하면은 내가 쑥 올라가고, 또 한품 더, 시험에 합격되면은 과거보다도 훨씬 더 올라가고 더 커지고 유명해지고 유력해지는 것 아닙니까? 더 존귀해지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그렇게 요 현실마다 시험할라고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이끄신다 하는 그것을 알아야 된다 말이오. 그걸 여기 알라 하는 거라. 그거 알라 하는 거, 이 단어를 가지고 뭐 철학이니 뭐뭐 불교이니 불경이니 그 원어 어데가 쓰였다 그거 연구해 가지고 그게 나옵니까? 안 나온다 말이오.

그러면 이끌기는 하나님이 이끄셨다. 현실로 이끄셨다. 그러면 이끄실 때에 시험을 받기는 누구에게 받느냐? 누가 시험합니까? 마귀가 시험해. 현실을 주시는데 현실에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라고 애를 쓰는데, 계명대로 지킬라고 애를 쓰는데 마귀는 들어서 못 지키도록 자꾸 방해한다 말이오.

계명대로 지킬라 할 때에 못 지키게 하는 것이 몇 개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다 잊어버렸다, 또. 지킬라고 할 때에 못 지키게 하는 방해자가 몇이지요? 너이도 말하고 서이도 말한다. 서이라 해도 되고 너이라 해도 됩니다. 너이가 가리키는 데는 너이가 더 구비해.

악령, 악성, 악습, 세상, 이거 다 그 서이가 똘똘 뭉쳐 세상을 이용해 가지고 하고 있거든. 이 넷이 들어서 방해한다 그말이오. 넷이 이게 뭐입니까? 넷이 통틀어 말하면 합하면 뭐이요, 이게 다? 마귀, 너이를 통틀어 말하면 이거 마귀라 말이오.

알겠소? 내나 그때 그 시험이나 우리 시험이나 꼭 같다 말이오. 마귀 이게 시험할라고 달라들어.

시험할라고 달라드는데 우리도 반드시 현실 만나면 ‘오,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를 지금 한 층 더 올려 줄라고서 이제 시험장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면 이 시험장에 지금 시험을 치르는데 무슨 시험이냐? 요게 해당된 계명을 내가 지키는 요것이, 내가 지키라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이고, 시험을 마귀가 시험하는 것은 거게서 그 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한다 말이오. 못 하게 해서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내가 삐끌어지고 계명을 지키면 내가 승리했다 말이오.

마귀는 우리를 시험을 하는 걸 뭐 하느냐 하면은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것이 마귀가 나를 시험하는 것이라. 마귀의 시험이라 말이오.

불로 시험. 불 시험, 불시험이라, 불 시험.

사자구덩이 들어갔을 때에, 사자구덩이에 그와 같이 지금 하나님의 계명 지키지 못하도록 사자 가운데 집어 넣는다 하는 그거는, 사자 가운데 누가 집어 넣었소? 사자구덩이에 누가 집어 넣었소? 계명 지킨다고 사자구덩이 집어 넣어. 계명 지킨다고 지키지 못하도록 그 사자구덩이에 이렇게 넣었지. 다리오 왕, 그 모든 역사들, 힘센 사람들, 이래 가지고서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항복해라, 항복해라, 항복해라 하면 이거 계명 못 지키도록 하는 그게 다 마귀가 시험하는 거라. 그래, ‘지키겠습니다’ 하고, `지키겠습니다' 하니까 휙 던져 버렸다 말이오.

던져 버렸으니까 자, 다니엘은, 지키겠다고 했으니까 다니엘은 승리를 다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승리가 끝났소 안 끝났소? 다니엘 승리는 끝났습니까? 마귀의 패전은, 마귀는 꼭 그래도, ‘ 죽어도 나는 한참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렇게 하고 집어 던졌으니까, 집어 던졌으니까 마귀하고 이 다니엘하고 둘이 서로 싸우는, 격투하는 이 격투가 끝났습니까 아직까지 미결입니까? 끝났어? 왜 미결이라, 또? 끝났지, 뭐 집어 넣어 들어가서. 어째 미결인고? 예? 아직까지 미결인 것은 왜 미결이냐? 미결인 것은 그럴 때는 막상 그랬지마는 떡 집어 던지니까 사자가 어그르릉 오니까 ‘아이구’ 이제 그만 깽 그랬다 말이오. `아이구,' 그만 너무 기가 막혀 겁이 나 가지고서 그때 마음에 기도하겠다 하는 그 마음이 그때 가서도 변질될 수가 있어. 그때 가서 또 변질될 수가 있어. 끝까지 변질이 안 돼야 승리하는 것이지, 아직까지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완전 승리가 아니라. 미결이 있어. 생명이 있으니까. 생명이 있으니까 지금도 무슨 일이 날란지 알지 못하잖아? 또 마귀란 놈은 ‘그놈은 꼭 기도하겠다 하고 사자굴에 들어갔다. 이러니까 그만 그놈한테는 패전했다.’ 패전했다고 마귀가 가다립니까? 마귀는 인제 패전했다고 손 듭니까? 아니오. 지금이라도 가 가지고 안에서 지금 그만, 후회, 그만 기도한다 하는 거 후회가 됐다고서 마음이 변동되면 저거가 승리라 말이오. 그 끝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그 천로역정에 말하기를 마귀가 우리를 자꾸 꾀우고 이와같이 지금 무력을 가지고 이라다가 천국문을 열고 오른발 들여놓고, 그라면 그만 패전합니까? 낙심합니까? 낙심하고 그만 ‘아이구 이거 안 됐다’ 돌아갑니까? 안 돌아가. 왼발 다 들여놓고, 그라면 돌아갑니까? 지금이라도 혹 뭐이 될지 모르니까 왼발까지 다 들어가고 문 딱 닫고 문 찰칵 닫아 버리면 ‘아이쿠 헛일했다’ 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최후까지 승리를 해야 돼.

최후까지 승리 안 하면 안 돼. 이겼다고 벌로 덤비다가는 그만 나중에 가서 다 패전합니다. 최후까지.

이러니까 다니엘의 승리는 어데서 승리했느냐 하면 지금 왕이 가 가지고서 ‘다니엘아 살았느냐?’ 할 때에 `예, 살았습니다.' 하는 그것이 외부적으로 나타난 승리고, 속으로는 이제 사자가 암만 와서 응크려도 오히려 기쁘고 즐겁고 그 마음에 확정을 지워서 다시는 이 사람은 의심이나 낙심이나 두려움이나 염려나 그런 것은 가질 것이 하나도, 그런 희망성이 하나도 없이 완전히 그건 의심성이 없이 말이지요, 위험성이 하나도 없이 완전히 돼져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우리 승리는 그렇지 않으면 승리 못 해요. 거게 들어갔다고 승리한 게 아니라.

이러니까 이것을 여기서 보인다 말이오.

그러면, 여기 이렇게 글은 알기 쉽지마는 알기 어려운 거는 뭐냐 하면은 우리도 시험 받는다는 것을 지금 여게 ‘시험 받는다’ 우리도 시험 받아야 된다는 걸 가르치고 있다.

그거 가르치는 거 어째? 그러면 시험 받으면 끌기는 누가 끌고? 하나님이 끈다.

하나님이 어째 끌어? 현실을 주시는 것이 그게 끄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 시험은 누가? 마귀가 시험한다. 그 현실 줄 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되는데 마귀는 계명 못 지키게 하고 우리는 하나님 계명 지킬라 하는 그게 시험이다.

그러면 시험하는데 계명을 그만 마귀가 유혹도 시키고 또 협박도 놓고 이라니까 무력에 못 이기든지 간교에 못 이기든지 해 가지고서 그만 계명 못 지켰으면 시험에 졌소 이겼소? 시험 졌고, 암만 그래도 그 계명을 지키면 시험을 이긴 것이라 말이오.

그런데 이끌기도, 그때도 하나님이 이끌고 오늘도 하나님이 이끌고, 그때도 시험은 마귀가 하고 오늘도 시험은 마귀가 한다. 그러면 이 시험을 이길라면 우리가 어째야 됩니까? 시험을 이길라 하면 어째야 되지요? 뭐 가르치고 있어? 시험을 이길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어, 여게? 시험을 이길라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어? 사십 일 금식기도 했어. 기도해야 되요. 기도 안 하면 시험 못 이긴다 하는 걸 여기 가르치고 있다 말이오.

1절과 2절에 요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요 진리이니까 이 가르치는 거 이 단어, ‘여기 있는 단어 보자. 자,’ 성령' 이거는 세상에는 없는 거고 `그때’ 하는 이거는 세상이 말했으니 ‘그때' 그걸 연구하고, 그러면 `이끌리어' `마귀’ 또 ‘시험' 이 시험을 이걸 지금 뭐 불교 시험 무슨 시험 자꾸 끌어다가 자꾸 이 주 대 놓으면 이 전부 불교화되고 만다 말이오.

알기는 쉬운 말인데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나를 어떻게 하라고 지금 가르치느냐, 이 주신 목적은 뭐냐? 그러면 내가 이 계시에 대해서 내가 할 의무와 책임이 뭐냐? 이것을 여게서 깨닫는 것은 성령이 알게 해 주시는 것이라 말이오.

그거 알기가 어려워.

그걸 알기 어렵고, 그거 아는 것이 필요 있지 뭐 그거 백지 성경 단어에 무슨 학자는 뭐라 하고 무슨 학자는 뭐라 하고, 학자 그거 불교 학자 그까짓 거 불교 학자 뭐 불교자 될라고? 철학자, 철학자가 될라고.

이러니까 중세대에 이것을 혼돈해 가지고서 모두 다 철학과 혼합돼 가지고서 기독교를 다 철학화시켜 가지고서 완전히 이단화된 것이 많다 말이오. 그러기에 기독교 철학주의라 하는 게 이단이라 말이오. 그게 많이 나왔는데 그거 나온 것이 어데서 나왔는가? 지금도 또 이 신학자들이 이걸 발견 못 하고 있습니다! 이거 발견 못 하고 있는 것은 ‘단어 연구에서 이게 나왔다.’ 이거 단어는 쉬운 말로 했기 때문에 거게 성령이 가르쳐 주는 거 그거 받을라고 애를 쓸 것인데 그 연구하면 단어 연구해 가지고서 진리 알라고 단어 연구할라고서 어데 딴데 들어가서 자꾸 이런 것 파고 나가기 때문에, 그러면 나중에 기독교가 철학화, 이 세상화되고 말았다, 이종교화되고 말았다. 이걸 지금 발견해 가지고 말하는 학자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없으면 그거 말하지 안하는 거는 다 생명 없는 학자라. 알겠어요? 여러분들,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을 아주 알기 쉽게, 누구든지 신구약 성경 모르는 말 단어 몇 마디 없어요. 아는데, 모두 다 아는데, 모두 다 아는데 그 속에 꺼풀 들어가 가지고서 우리에게 뭣 때문에 이 말씀 주셨느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은 성령이 가르쳐 주지 성령이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안 돼.

성령이 가르쳐 주는 것은 배우는 방법이 뭐요?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그 가르쳐 주심을 배우는 방법은 뭐라? 저 뭐꼬, 의대 졸업한 사람, 저 뭐야? 예? 행하는 거.

고거 외에는, 아는 대로 행하는 게 순종이거든. 그라면은 가르쳐 주지만 그 외에는 가르쳐 주지 안해요. 알겠습니까? 그 외에는 가르쳐 주지 안하는데 책상에서, 행하지는 안하고 책상에서 자꾸 이래 가지고 이 서적 가지고, 막 그래 가지고서 서적 자랑이오. 그래 가지고 뭐 책이 뭐 몇십 점이 되고, 몇십 점이 되면 나는 그래 봅니다. 책이 몇십 점이 되면 ‘저 사람, 기독교를 뭐 온 세상화시켰구나.’ 불교 서적 뭐 ‘기독교를 저 사람은 불교화시켰구나.’ ‘저 사람은 기독교를,' 철학자는 철학 서적이 많이 있으면 ‘철학화시켰구나.’ 나는 그래 보니까 가치로 안 보는데 다른 사람은 그게 말하면 가치로 보지마는 영 깨닫는 각도가 아주 영 반대라 그말이오.

이거 아니면 가르칠 게 없거든. 가르칠 게 없으니까 자꾸 그래 가지고 자꾸 그라고 있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 그게 필요 없고 다만 알기 쉬운 말로 말해 놨는데 거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뭣 때문에 이 계시를 주셨느냐? 그러면 이 계시가 내게 뭐 필요하냐? 나는 이 계시에 대해서 내 의무와 책임은 나 할일은 뭐이냐? 그러면 이 계시에 대해서 어려움은 뭐이며 쉬움은 뭐이며 미혹은 뭐이며 내 할 거는 뭐냐? 요런 것을 아는 것은 그건 제가 믿어봐야 행해 봐야 그거 체험과 경험이라야 알게 된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 교만한 자는 다 절단나고 제일 이거 그 평범한 사람은 상대해서 하나님이 해 주셨다 그거요.

요것만 말고, 그러면 오늘 아침에 요거 배운 거 가만히 가 생각해요. 그 시험 이길라면 시험을 당할 때에, 시험당하는데 시험 준비는 뭘로 해야 돼요? 예? 기도. 시험 준비는 기도로 해야 돼. 시험 준비는 기도로. 이러니까 삼십 분 기도하라 하는 그거는 앞으로 지금 시험 있을 터이니까 시험 준비를 기도로 해야 된다, 삼십 분 기도해라 하는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십 분 기도하라 하면 뭐 기도 많이 하라는 게 아니고 앞으로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지 안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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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3 교회-하나님의 충만/ 에베소서 1장 15절-23절/ 870803월밤집회 선지자 2015.10.25
5102 교훈 구별 요령/ 마태복음 7장 7절-12절/ 861111화새 선지자 2015.10.25
5101 교훈의 중요성/ 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860310월새 선지자 2015.10.25
5100 교훈의 터/ 히브리서 6장 1절-2절/ 860526월새 선지자 2015.10.25
5099 교훈적 창기/ 요한복음 8장 31절-37절/ 861127목새 선지자 2015.10.25
5098 구름과 바다아래 세례/ 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860928주전 선지자 2015.10.25
5097 구별 할 것/ 고린도전서 15장 57절-58절/ 841022월새 선지자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