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8:56
계약말씀은 노아홍수때에 방주
1988. 10. 11. 화새벽
본문: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기도합시다.
우리를 사랑하사 다시 또 하루를 영원의 준비의 날로 허락해 주시고 첫 시간 주님 앞에 나아와 은혜를 생각하며 또 세상을 생각하며 간구하고 찬송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께서 어떠한 고난과 희생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저들이 알았사옵고 실행해서 보았습니다. 주의 대속의 공로를 인하여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지극한 구원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생명에 속한 모든 것과, 실력에 속한 모든 것과, 우리의 소유에 속한 모든 것과, 쾌락에 속한 모든 것과, 영원한 처소에 대한 모든 것을 주께서 말씀으로 이렇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말씀으로 주신 것은 곧 주신 실상이었는데 저들은 여기에서 말씀만 껍데기로 가지고 실상임을 믿는 믿음이 심히 빈약합니다. 말씀을 실상임을 믿고 행한 자마다 다 실상으로 충만해진 것들을 저들이 듣고 봅니다.
이 시간에도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사 곧 말씀이 실상인데 말씀과 실상인 이 사이가 아직까지 우리 주관에는 경계가 되어 있고 하나되어 있지 못하는 여기에서 한없는 영광을 실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저희들입니다.
오늘도 간구합니다. 이 일은 주님의 피의 능력과 성령님과 진리의 능력만이 하실 수 있지 다른 힘으로는 절대 근방에 가지도 못하는 것을 압니다. 이날 아침에도 오늘 종일도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 안팎에 역사하사 주님이 주신 신구약 성경에 나타낸 이 모든 약속의 복음의 말씀은 온갖 실상임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말씀과 실상의 그 사이는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이건마는 저희들에게는 이 경계가 되어 있는 저희들이오니 이 경계를 꿰뚫을 수 있는 실행에 나아가는 이 일에 전심 전력 기울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훼방할라고 악령은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선포하신 이 말씀이 곧 영원한 실상인 것을 확실히 꿰뚫어 경험하고 체험하여 세상을 이기고 염려없는 평강 가운데서 지금 영생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고 천국에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구원입니다. 우리가 난 지 후부터가 아니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후부터가 아니고 하나님 홀로 계실 때에 이 구원을 일호로 당신이 작정하시고 작정하신 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도 하시고 창조도 하셨습니다. 오늘까지 영계나 물질계나 이 모든 것을 보존하시는 것도 이 구원 때문에요 또 이런 것을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이 관리하시고 섭리하시는 것도 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요, 또 그 섭리 가운데서 우리 개적으로 상상도 못할 그런 참 별별스러운 형편과 사정을 그렇게 당하게 한 그것도 조부라운 우리 생각으로서는 이해 못 해서 이런 형편은 불리하다, 이런 형편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또 이해되는 형편도 있고 이해 안 되는 그런 형편도 있고 또 우리들이 기뻐하는 그런 형편도 있고 원망 불평할 그런 형편도 많이 바꾸어집니다.
그런 그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인데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연결이 되어져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자체에 있는 모든 것과 또 당신이 역사하시는 모든 그 역사와 당신이 가지신 그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으로 다 주셨습니다. 주시고 당신이 말씀으로 나타냈습니다.
우리 사람은 말과 행함이 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말과 행위가 차이가 없습니다. 말하셨으면 곧 행하신 것이요 곧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생명에 관한 것, 그러면 영원히 사는 이 영생하는 생명에 관한 것, 또 우리들의 온갖 실력에 관한 것, 또 우리들의 그 소유에 관한 것, 또 우리들의 그 거처와 쾌락에 관한 것, 이런 것을 전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실상으로 주셨습니다.
실상으로 주셨는데 이 실상을 우리들이 믿지를 못하고 이렇게 영생을 가졌지마는서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졌지마는서도 세상 피조물의 권세를 두려워하고 그것은 우리 자체가 하나님과 따로 떨어져 가지고서 그와같이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과 우리와가 하나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생이 우리 영생이요 하나님의 지능이 우리의 지능이요 하나님의 그 소유가 다 우리의 소유요 하나님의 쾌락이 우리의 쾌락인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말씀으로 주셨지마는 우리는 말과 실상이 다른 그 타락한 세계에서 오랫 동안 살아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과 실상이 다른 일이 없습니다. 다르면 막바로 그것이 죄입니다. 있다 했는데 없으면 죄요, 또 말씀으로 이것은 능력이라 했는데 능력이 실상이 없으면은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에 이 말씀으로 계시해 놓은 이 말씀, 곧 표현해 놓은 이 말씀 이는 실상인데 이 실상을 우리에게 주어서 다시는 악령의 유혹을 받지 아니하고 이렇게 영광된 자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자기 것을 삼아 가지고서 이것을 통치하고 관리하고 하나님 다음의 대리 주인으로 하나님의 대리로서 모든 피조물들의 주재로 이렇게 살도록, 하나님이 이걸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또 양성 일위가 되셨고 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이렇게 큰 힘 들여서 큰 자본 들여서 이렇게 하셨는데 우리가 거짓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가 말과 행동과 실상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말씀과 그 행하심과 실상이 다른 것으로 이렇게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 이 부패성,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 이 모든 삐뚤어진 성질, 죄악성, 죄악성이라면 삐뚤어진 성질 자기 중심의 성질을 말합니다. 이 모두 다 자기 중심의 성질이요 또 자기 주관대로의 행위지 하나님을 따라서 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실상은 가졌으나, 어제 아침에도 비유로 어떤 사람이 십만 원짜리 수표면 현금 십만 원이나 꼭 같은데 암만 같다 해도 인정을 안 해. 인정을 안 하다가 이게 음식을 사 먹었든지 물건을 샀든지 하고서 그것을 내 주니까 현금 내 준 거와 꼭 같이 가전을 내 주는 것을 보고서 그때사 그게 막바로 현금이로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이런 형편 저런 형편을 다 당하게 하시는 것은 형편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믿고 그 말씀하신 대로 사는 사람은 실상을 만나게 되고 살지 못하는 사람은 실상을 만나지 못 합니다.
암만 이것이 ‘바로 이게 돈이라, 네가 이것 가지고 물건을 가 사 봐라. 이것 가지고 네가 무슨 음식을 사 먹든지 사 먹어 봐라.’ 사 먹어 보니까 이게 바로 현금되는 직접 그 현금인 것인 것을 깨닫는 것처럼 그 수표가 그 정권하에서는, 그 정권 범위내에서는 그 수표나 현금이나 꼭 하나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존재를 창조하시고 지극히 크고 작은 것 전체 개별개별을 섭리하고 계시는 주권, 그분의 주권 세계 아래에서는 다 이것이 계약의 말씀이나 실상이나 꼭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은 이 계약으로 말하면 수표 같고 또 그 실상은 현금 같습니다.
비유하면은 말이지요. 이런데 이것을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갖다 주며 밥을 사 먹어 봐라. 또 내고 물건을 사 봐라. 또 네가 일을 시키고 품삯을 줘 봐라.’ 이래 써 보니까 사용해 보니까 이것이 곧 현금과 같은 것을, 현금과 한가지인 것을 꼭 같은 것인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써 봐라’ 써 봐라 하기 위해서 현실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전능과 연결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것은 전능 행위다, 범죄하지 않는 것은 사망하지 않는 것이다 하는 그것을 말을 해도 모르니까 하나님께서 ‘기도해라. 우상에게 절하지 말아라.’ 절하지 안하면 하나님과 연결되니 전능자와 연결되니까 전능의 행위요 영생자와 연결되니까 영생하는 행위라.
이렇지마는서도 사람들이 부패성으로 인해서 믿지 못하고 안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형편을 만들어 가지고서 금하는 것을, 기도하니까, 기도하니까 사자구덩이 집어 던졌는데 사자구덩이에 집어 던져지고 난 다음에는 그 이튿날 아침에사 비로소 다른 사람들은 알았습니다. 다니엘은 미리부터 알았기 때문에 잡아서 사자구덩이에 넣는다 불미 속에 넣는다 하는 그런 것을 이 믿음의 사람들은 듣고서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왜 기뻐하고 즐거워했느냐?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 것과 어떻게 보호하고 계시는 것과 어떻게 그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것을 이렇게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됐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또 한 폭의 실상을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또 자기는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 보일 수 있고 이래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의 법도대로 지켜서 사자구덩이 들어가고 나니까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약속하신 대로 보호하셔 가지고서 사자가 해하지 못한 것을 봤고 불이 태우지 못하는 것을 봤고 이러니까 그제사 비로소, 본인은 미리 믿었지마는 믿은 것보다 더 확실하다. ‘과연 그렇구나, 과연. 말씀하신 대로 내가 믿은 대로 그대로 틀림이 없구나.’ 이렇게 믿어지게 되고 제 삼자들은 그것을 보고 ‘성경에 그렇게 말씀한 것이 그거 참말이로구나. 그 실상이 이루어지는구나. 그거 실상이로구나.’ 이런 것을 제 삼자들에게 증거해서 보여 줄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온갖 현실을 닥치는 것이 조부라운 우리 생각에는 이해 못할 것이나 그 현실에 해당되는 말씀대로 행해 보면 실상이 나타난다 말이오.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서 해를 받지 안한 것과, 불 속에서 해받는 거는 필연적으로 이것은 통계요 이것은 과학적인데 이 과학도 맞지 안하고 불에 들어갔는데도 타지 안한 그것이 하나님의 계약은 그대로 맞았고, 과학은 안 맞는 게 있어도 계약은 그대로 맞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하신 말씀은 실상과 그대로 맞는 것을 본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이해 못 하는 모든 현실을 주시는 것은 뭐이냐? 네가 믿나 안 믿나 하는 그것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믿은 자는 말씀대로 된 것을 볼 것이고 믿지 안한 자는 말씀대로 안 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우리에게 모든 형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신 그 실상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 둘을 이렇게 보이는데 그거 하나 보고 말씀대로 행하니까 전능의 보호가 된다, 또 네가 나와 내 도를 위해서 생명을 버린 자는 얻는다. 버려 보니까 얻어졌다 말이지요. 또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전토나 무엇이든지 손해 본 자는 여러 배 백 배를 하나님 앞에 얻는다. 이 허무한 계약 거짓말 같았는데 해 본 사람은 된다 말이오. 해 본 사람은 그래 버려 본 사람은 ‘과연 그렇구나’ 그게 처음에는 제가 못 믿으면 시험이라도 한번 해 보라 그말이요, 시험이라도. 되나 안 되나 참말로 그러나 안 그러나 시험이라도 해 본 자는 시험해 보고 난 다음에 ‘과연 그렇구나. 과연 그렇구나.’ 우리 ○○○목사님이 기도하면 과연 말을 잘 써요. 그 과연 말이 매력 있는 말인데 저거 믿음의 체험에서 저렇게 하는지 말쟁이로 저렇게 하는지 내가 모르기는 모르겠다마는서도 믿음의 체험에서 하면 그거 참 가치 있는 말이다. 해 보니까 과연 그렇거든. 우리 믿는 사람은 전부 과연이요. ‘아,’ 말씀대로 해 보니까 ‘과연 그러하구나.
과연 그러하구나.’ 말씀대로 산 사람은 그 말씀이 곧 실상인 것을 하나 하나 경험해서 자꾸 체험해서 나가게 되니까 점점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는 어길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백 세에 낳은 외동 아들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 하는, 번제로 드리는 것은 잡아서 불에 태워서 전부 가죽과 똥까지 전부 다 바싹 태워 재가 되도록 해 가지고서 드리는 것이 번제라 말이오. 그 아들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그 아브라함이 근심한 것이 아니라 그말 듣고 난 다음에 좋아서 못 견뎌서 지금 밤새도록 잠을 안 자고, 모리아 산에 가면 장작 많은데 거기 장작 있을 터인데 장작을 집에서 밤새도록 팬다고 툭탁 거리고 야단지깁니다.
야단지기고 이러고 또, 아브라함이 사라에게는 그말 안 했어. 사라는 아브라함 믿음만 못해요. 못하니까 이 말해 주면 아이고 이 영감이 우리 아들 번제로 드릴라 한다고 어데 그런 하나님이 믿겠느냐 이래 가지고 인제 사고 낼 터이기 때문에 말을 안 했다 말이오. 말 안 하고 자꾸 밤새도록 장작 패고 또 장작을 패 놓고 난 다음에 뭐 이거 패 놓고 나서 보니까 요것보다 요게 깨끗하다. 요게 깨끗하다. 자꾸 장작도 패 놓고 깨끗한 것 가리고 지금 자꾸 야단이고 꼭 미친 사람 한가지라.
이래 가지고 떡 나귀에 싣고 이래 가지고 가더니마는서도 가다가 ‘하인들 너거는 여게 있거라. 우리 둘이 제사 드리고 올 터이니까 너거는 여게 있거라.’ 그거 데리고 가면 거게 가 가지고서 번제로 드릴라 하면 이 모르는 것들이 막 시비를 하고 이랄 터이니까 일이 방해가 되겠다 말이오. ‘너거는 여게 있거라’ 둘이 갔다 말이오.
둘이 가 가지고서 그 이삭에게 ‘네가 이렇고 이렇고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 하는데 그래 너를 매겠다.’ 또 이삭도 또 좋아한다 말이오. 이삭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은 좋은 줄 알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좋은 줄 알기 때문에 이삭도 지금 천한 것이 귀하게 되고 또 아브라함도 지금 백 세에 얻은 이삭은 귀한 아들인데 이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드리면 하나님께서 자손이 나게 한다고서 약속했기 때문에 그 번제가 재가 되면 자손이 못 날 거라 말이오. ‘이 재가 이제 다시 사람돼 가지고 아이 낳는 것 보겠다’ 이라니까 거게서 아브라함은 부활을 발견했어. 부활을 발견하고, ‘야, 기이한 일이 있다. 이러니까 이제 번제로 드리라 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 앞에 순종해서 안 되는 거 없었고 순종해 가지고 순종하기 전보다 못한 것 한번도 없었고 손종하고 난 다음에 순종을 통과해서는 굉장히 존귀해지니까 이 아브라함 ‘번제로 한번 드려 놓으면 굉장히 존귀해지겠다’ 이래 싶어 놓으니까 자기 혼자 좋아서 못 견디고 이삭도 좋아 못 견디고 이래 가지고서, 자기도 만일 그라다가서 나중에 잡을라 하면 그때 신경 작용으로서 발동할 터이니까 묶으라 하고 묶고 이래 가지고 제단에 놓고서 이제, 나무 놓고 나무 위에 이삭 놓고서 칼로 위에 때릴라고 이렇게 이래 하니까 하나님이 딱 손을 멈추면서 ‘아나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제사 드릴 그 제물은 네 뒤에 거기 있다.’ 뒤에 보니까 수양이 한 마리 와 가지고서 거게 있거든. 그 양을 제사를 드리고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제 이 독자 이삭까지 나에게 드리는 이걸 봐서 내가 말하는 건 너에게 전체 유익이지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네가 확실히 믿는 것이 나타났고, 또 이 독자보다도 나를 더 존귀히 여기는 것이 나타났고, 또 네가 독자 사랑보다 나를 더 사랑한 것이 나타났고, 내게 순종하는 것은 전체가 유익뿐이지 손해가 없고 내게 드리기 전보다도 훨씬 가치 있다는 걸 네가 확실히 믿는 것이 나타났으니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고 나를 믿는 것을 내가 알았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삭에게 축복을 해 줘서 뭐 번제 드리기 전 이삭과 번제로, 자기는 드렸으니까. 자기는 드린 것이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 이삭과 그거는 억억만 배도 더 됩니다. 그는 억억만 배도 더 됐어.
자꾸 이렇게 믿어서 이래 믿어 순종해 보니까 실상이 나오고 순종해 보니까 실상이 나오고 이것을 경험을 자꾸 했기 때문에 이삭을 독자를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좋아서 기뻐 못 견뎠지 섭섭해 하지를 안했다 말이오.
그러면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한 것은 애착심이 없어 그렇겠소 하나님께서 드리라 하니까 드리면 뭐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께 드리라 하니까 드려야지 그래 그렇겠습니까, 그거 왜 기뻐하고 즐거워했겠소? 그거는 어데서 나왔습니까? 순종해 보는 체험과 경험에서 나온 거라.
이러기 때문에, 순종해 본 자마다 어려운 순종이면 더 어려운 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이러니까 어려운 순종일수록이 좋아하고 실상받는 그것이나 순종받는 것이나 꼭 같아. 순종받는 그것이 순종할 수 있는 그 현실 받는 것이 바로 실상 받는 그것이기 때문에 실상으로 그냥 이래 받는 것보다도 순종해서 받으니까 자기 행함을 통해 받으니까 더 재미있다 그말이오. 제가 만든 것같이 재미가 더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믿는 자는 점점 더 믿게 됩니다.
이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현실에 온갖 천태만상의 이 현실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으로 선포해 놓은 이 계약은 실상이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실험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현실을 주실 때에 그때 현실에 해당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떡 행하니까 뭐이 나옵니까?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행하니까 뭐이 나옵니까? 자, 나오기를 뭐이 나오요? 저 우리 ○○○교회에 저 집사님? 필기하다 보니까 못 들은 모양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을 해 주셨는데 우리에게 현실을 주셔서 그 현실마다 거게 해당된 하나님의 약속이 따로 있거든.
현실마다 하나님의 약속한 약속이 따로 있는데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그대로 딱 실행을 하니까 뭐이 나옵니까? 실상이 나옵니다! {이제 아는 것 같아 내가 그랬어. 조거 희망이 있어. 그 동생도 언제 보니까 고거 좀 눈이 열렸는데 조금 그거는 좀 건방진 것 같아. 지금 와서 배우지 안해. 건방져. 그라면 그 소용없어. 그라면 나중에 삐끌어지고 말아요. 그래, 제가 그때 그 말한 그걸 아직까지 몰라, 제가 모르기를. 그런데,} 실상이 나와.
그러면 여러분들, 자, 순종하기 어려운 현실은 뭐이 나옵니까? 천한 실상이 나옵니까 더 귀한 실상이 나옵니까? 더 귀한 실상이 나와. 아주 최고로 순종하기 어려운 그 현실을 주실 때에는 그때는 거게는 순종하면 뭐이 나와요? 뭐이 나옵니까? 말을 해, 말을. 하는 그게 하나님 앞에서 약속이 되고 거게서 되는 거라요. 마귀란 놈은 자꾸 말하면 안 그렇다 이라는데 말해 놓은 게 달라. 말해 놓으면.
최고로 순종하기에 어려운 현실을 주실 때에 그 현실을 순종하면 뭐이 나옵니까? 최고의 현물이 나와. 최고의 실상이 나온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이삭 제사 드리라 하는 걸 막 좋아 기뻐했지. 아마 그게 그때 아브라함으로서는 최고의 순종하기 어려운 현실일 거라. 그러니까 ‘햐, 이제 이제까지 과거에 받지 못하던 최고의 것 받겠다.’ 이렇게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어려운 현실을 당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왜 기뻐하고 즐거워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했어. 왜 기뻐하고 즐거워해? 실상을 내가, 내나 거게 있는 실상은 실상이지마는서도 실상을 내가 만져보고 가져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봐라 말씀은 실상이다하는 것을 증거할 수 있는 그런 기회이기 때문에 저 좋고 남 좋고 하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거라.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저런 모든 현실을 만나 가지고서 걱정하고 근심하고 낙망하고 하는 것은, 왜정 말년 때 신사참배가 나오니까 아이고 우상 안 섬기면 안 되겠다 하는 그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실상을 못 만나 봤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으니까 온 천하가 다 달라들면 어짤 거냐?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하는 이 말씀을 그들은 모른다 그말이오.그 앞에서 ‘너거 신을 나에게 달라, 내가 불에 태울께.’ 이렇게 말해 본 사람은 ‘햐, 그 일본 나라를 불에 태우겠다고 그렇게 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니까 뺨도 한번 안 맞아.’ 그때는 뺨도 한번 안 맞았어. 뺨도 한번 안 맞았어. 발길로 한번 차이지도 안 했어.
어데 일본 나라에 천조대신이라 하는 그걸 그라기를 막 신사 신인데 ‘그 신을 내게 달라 내가 주면’ 가미다나라고 이거 종이로 이래 써 가지고 요래 가지고서 그 위패로 해 놓은 게 있어요. ‘그거 달라. 내가 너거 앞에서 불에 태우겠다.’ 국기를 말하기 때문에 ‘국기도 날 달라 내가 너거 앞에서 태울께. 태우면 태운 나 벌 받을 것 아니가? 벌을 받거들랑 그게 참으로 실상이고 벌 안 받거든 거짓부리인 줄 알아라.’ 일본 부장 순사들 꽉 있는데 내가 말했어. 그래도 그들이 나 뺨도 하나 못 때렸어. 하나님이 못 때리게 하면 못 때리는 거라.
그게 뭐이냐? 그래 보니까 ‘하,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면 그들에게 어떤 일 한다 해도 터러기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는구나.’ 나는 체험했소. 나는 체험했기 때문에 6.25 때도 예배드리는, 다른 데는 모르지마는 예배드리는데 인민군이 와 가지고 막 저 출입구에 와 가지고 총을 놓으면서 꽉 포위해 가지고서 예배드리지 말고 중단하고 나오라고 고함지르고 할 때 그때는 예배드리는 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뭐 의심할 게 없어. ‘예배드리는 데 무슨 소리야! 앉아!’ 고함을 지르니까 그만 퍽 주저 앉으며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츰 변해져 버려. 대번에 변해져요.
또 좀 있으니까 ○○○집사가 그때 수집사인데 뒤에서 하도 재촉을 하니까 기어 들어오는 모양이라. 아마 가서 데리고 나오라고 안 나오면 큰일 난다고. 아마 제 보기에는 뭐 이만기 집사 마음에는 안 나가면 큰일 나겠다 싶으니까 저기 어정어정 기어들어와.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막 고함을 질렀어. ‘어데 들어오노! 예배드리는 시간에! 안 나가나!’ 고함을 지르니까 나가버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또 푹 내려앉아 가지고서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배드립니다.’ 이래.
그래 가지고서 나중에 다 마치고, 가자 해. 앞세우고 가자 하기 때문에 그래 나는 기쁘고 즐거워서 덜렁덜렁 따라가. 인제 뭐, 그거야 벌써 두 달 동안이나 사형한다고 자꾸 그래 쌓았으니까 으례히 그런 줄 알지 뭐. 날마다 사형 밑에서 했어.
떡 따라 나가니까 사택에 가자 해. 사택에 가 가지고서 그래 좀 여기 좀 앉으라고.
내가 너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이렇게, 또 저거를 사람이니까 반가와한다 말이지.
이라니까 이상하거든. 이상하니까 또 가자고 또 저리 또 바깥으로 가자고 이래 가더니마는 또 내가 가면서도 뒤에 또 인제 얘기하고 뭐 이래 복음을 전하고 이라니까 이상하거든. 이라니까 가더니마는 ‘가이소. 순수한 예수를 믿으시이소.’ 그래 내가 있다가 `녜, 갑시다.’ 이라고 그래 인사하고 들어와. 인사하고 들어오니까 예배당에는 다 달아나고 그때 너인가 있어. 너이는 막 인제 조사 죽었다고 인제 막 대성통곡하고 울고 있고 다른 것들은 막 총 그래 퉁 거리니까 전부 창을 넘어서 다 도망 다 쳐 버렸어.
그러니까, 왜정 때 그래 보니까 하나님이 그러니, 6.25 때 전쟁을 지금 사람을 자꾸 잡아다 죽이고 지금 뭐, 보도연맹이라 하는 거 보도연맹 여러분은 몰라요. 이 뺄갱이라고 해 가지고서 민주주의에서 잡아 죽인 사람들 그게 보도연맹에 죽은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이 나 있는 집 여게 앞에도 있고 옆에도 있고 앞뒤로 꽉 붙어 있어. 꽉 붙어 있는데 그뭐 거게서 만날 원수풀이 해 달라고 ‘저 친미파 저놈들이 들어 우리가 그렇기 때문에 원수풀이 해 달라고 장 그래. 그래 쌓아도 거게서 기쁘고 즐거움으로 살았어.
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는 피조물이 돕기만 하지 해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나는 실지로 체험을 했어. 여러분들, 이 계약의 말씀과 이 실상과 거리가 멀어요 하나라요? 하나라. 우리 눈이 어두워 안 보이지 하나라. 하나인데 하나인 것을 꿰뚫어 볼 사람은 뭘로 꿰뚫어 봐요? 뭘로 꿰뚫어 봐요? 뭘로 꿰뚫어 봐요? 실행으로 꿰뚫어 봐요, 실행으로! 주의 말씀대로 실행으로, 순종으로, 실행으로 꿰뚫어 봐요. 이런데 실행 없이 뭐이 돼! 예수 믿는 근방에도 안 갔어, 아직까지! 이러기 때문에 환난 오면 다 꺼꾸러지고 말아! 왜정 말년에 그렇츰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었지마는서도 예수 믿는 사람이 몇 사람 없었어. 개명교회 교인들은 신사참배 아이 하나도 안 했었어. 그거 뭐이야? 아이 하나도 안 했어. 거기는 신사참배 바람이 안 불었는가? 그 골짝이 제일 세게 불었어.
바로 개명교회 조사로 있는황보 유안 조사가 그때 싱가파 함락 때에, 나한테는 역부러 와 가지고 내일은 꼭 와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고 갔었는데, 그날 가 가지고서 강제로 붙들어 가지고서 막 붙들고 제주 먹이고 막 붙들고 신사참배 오만 짓 다 했어.
나는 그때는 가면 또 그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봐야 알지요. 봅시다.’ 이라고 난 다음에 나는 그날 그만 저 기도하러 가 버려. 기도하러 가니 그때 오니 어데 있는지 알아야지, 저거가 뭐? 어데 찾을 수가 있어야지?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사 감당케 하시고 또 시험당하기 전에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다 일으켜 주셔.
하나님은 살아 계셔! 알지 못하심이 없어요. 귀도 있고 눈도 있고 감정도 있고 다 이성 판단도 다 있어. 이런 하나님이시야. 하나님을 불교에서 똑 그저 흙덩이 돌덩이 나무덩어리 그와같이 믿기 때문에 그런 거라.
어데 어리석은 소리를 해? 인간의 언변이 암만 많아도 그거 다 똘똘 묶어서 다 유황불 구렁텅이 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그것만 남아 있어요! 앞으로 이 계약의 말씀만 남아 있어. 계약의 말씀대로의 사람, 계약의 말씀대로의 행위, 계약의 말씀대로의 지식, 계약의 말씀대로의 모든 소망 이것만 남아 있고 하나님의 계약 밖에 거는 다 불 타요. 하나님의 계약은 노아 홍수 때에 방주와 같은 것을 아십시오.
방주 안에는 생명이 있고 방주 밖에는 사망뿐이라. 이 말씀 계약 밖에는 전체 사망뿐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갑시다.
신앙은 일방적 신앙은 안 됩니다. 체계적 신앙이라야 돼. 신구약 성경이 전체가 다 하나이기 때문에 거게 다 맞아야 되지 여게는 맞은 게 저게는 안 맞고 저게 맞은 게 여게 안 맞으면 그거 다 가짜요, 거짓부리라. 진리는 하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