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8:43
계산적인 절제
1986. 8. 29. 금새벽
본문:고린도전서 9장 22절∼27절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늦게 오는 사람들은 예배 시작했으니까 막 빨리 빨리 달려와요, 느렁느렁 그래 하지 말고. 빨리 빨리 달려오고 할 수 있는 대로 앞자리 앉을라고 애를 쓰고, 늘 고 자리 앉아서 죽지 말고. 요리도 자리 좀 바꿔 보고 저리도 하고 뭐 동작이 있어야 되지 항상 자기 자리 고 자리 가서 딱 앉아 가지고, 조금씩 자꾸 더 앞으로 나아가면 좋지. 물론 안 들려서 스피커 부근을 찾는 사람은 그럴 수 있겠습니다마는 그저 기둥 옆에 앉는 사람은 항상 기둥 옆에, 기둥 뒤에 숨는 사람은 항상 숨고, 또 일찍 와도 저 뒤에 앉는 제 자리 앉고 그래 하지 마. 그거 다 속에 못된 자기 본위의 요소가 그 짓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 지식이 어데까지 고상할지라도 어린 사람을 가르칠 때에는 자기가 어린 사람의 지식 정도까지 내려가서, 또 어린 지식을 가진 사람의 동무같이 되어 가지고 거게서부터 가르쳐서 살살 인도해서 올려야 되지 아무리 제가 고급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대로 어린 아이를 상대해서 그 지식을 가르치면 그 아이가 그 지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직 신앙이 어린 사람들, 또 세상에 빠져서 지금 벗어나지를 못한 그 어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구원의 방편상 내가 신앙에 어린 사람같이 돼 가지고 그 사람을 신앙의 동무 되어 가지고 인도하는 그런 일은 구원의 방편으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기의 본능은 아닌 그 일을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모에 사람 접촉을 그렇게 할수록 그 속에서는 더욱 더 하고 싶은 대로 못 하니까 자기 본능대로 하고 싶은, 신앙의 본능대로 하고 싶은 그 본능이 강하게 뜨겁게 역사하는 그런 일이 없으면 자신이 방편이 아니라, 구원 방편이 아니라 자기 구원 방편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방편 취하다가 자기가 속화돼서 나중에는 자기가 내려가기 쉽다 그거요. 그런 데 우리가 조심해야 됩니다.
예를 들면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면 그 사람에게 전도할 때에 ‘나는 제사를 지내는데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할 때에는 ‘제사를 지내면서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거는 방편상으로 그래 하는 것이지 우상 숭배를 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은 못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라면서 차차 예수 믿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지요.
그런 방편으로 우리가 사람을 인도할 때에는 자기는 우상 숭배가 어떻다는 걸, 인간을 망친다는, 그 우상 숭배가 얼마나 인생에게 적이 된다는 그것을 깨닫고 마음 가운데 깊이 뼈아프게 느끼면서 그 사람을 구원해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못 오게 그 관계를 끊지 안하고 신앙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는 속에 그 우상을 배격하는 강한 그런 역사가 자기 속에 없으면 그라다가 보면은 속화되기 쉽습니다.
대개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 인도와 믿음 어린 사람들을 접할 때에 그것이 없이 접촉을 하면은 ‘독선주의라, 교만이라’ 이래 가지고 그들과 잘 화합이 되지를 안 해서 전도가 되지를 안하는 그런 폐단들이 있고, 또 거게서 좀 상대방을 구원하고자 하는 간곡한 마음에서 방편상 그렇게 그 어린 사람들의 생활에 내가 뛰어 들어가 가지고 그렇게 그 사람을 구원해 내는 그런 일을 하는 그 사람은 사람을 많이 얻어서 사람을 많이 구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라다가 보면 그만 자기가 속화가 돼 가지고 타락되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어릴 때는 그렇게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아주 신앙이 어릴 때에는 콩은 콩 팥은 팥으로서 자기가 어데까지든지 제일 옳은 거, 바른 거, 곧은 거, 착한 거, 거룩하게 된 거, 그런 것을 자랑하고 그 면을 주장해 가지고 이렇게 나아가는 게 좋고, 자기가 그런 것을 다 초월해서 이제 모든 것을 다 넉넉히 조절할 수 있는 그런 장성한 단계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구원하기 위해서 방편상 후퇴의 작전을 하는 것도 할 수 있고, 여기 바울이 말하기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같이, 또 세상에 속하여 있는 자에게는 세상에 속해 있는 거같이, 세상을 완전히 등지고 달음질하는 자에게는 또 그런 자와 같이” 이렇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 것은 복음을 전도하는 그 방편상 그렇게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에 기록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마는 약한 사람이 이런 방편을 쓰다가는 자기가 속화돼 가지고 실패되기 쉬우니까 그런 방편을 안 쓰는 게 좋습니다.
그런 방편을 쓰는 것은 저절로 장성해지면은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런 방편을 쓸 수 있는 그런 능숙한 자가 자연히 되어지는 것이지 제가 되지도 못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그 방편상 그렇게 후퇴 작전, 그렇게 속화 작전, 속화하는 그런 것으로 전쟁하는 그 방법을 쓴다 그말이오. 속화 작전 그런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게 “복음에 참여코자 함이라”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그말은 자기가 뭐 예수님 믿는 사람인데 복음에 참여하고자 한다 하는 그말은 무슨 말인가? 자기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여기 복음에 참여하고자 한다 하는 말은, 이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는 구원을 가리켜서 여게는 복음이라 말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구원을 복음이라고 이렇게 나타냈는데, 사람 구원은 이 다음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면은 사람 구원한 것은 구원한 것을 전부 다 뭉쳐서 하나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 구원하는 구원은 하나가 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되고, 또 영원히 모든 피조물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고, 그 모든 것들에게 다 사모와 존대의 대상이 되어지는 이것이 하늘나라 영원한 영광인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지, 좀 간단하게 표시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데.
그러기에 이 복음에는 아무것이의 복음 역사가 문지만치 들어 있다, 아무것이의 복음 역사가 콩알만치 들어 있다, 아무것이의 복음 역사가 주먹덩이만치 들어 있다, 아무것이의 복음 역사가 태산만치 들어 있다, 아무것이의 복음 역사는 이 뭉텅이의 십분지 일이 된다, 오분지 일이 된다.
아벨은 일찍 세상을 그는 순교로 떠났지마는 히브리서에 말하기를 “예수님의 대속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낫다” 아벨의 피와 예수님의 피를 비교한 거 보면은 이제까지의 모든 사람들이 흘린 피 중에는 아벨의 피가 제일 복음 운동에 많은 양을 점령하고 있는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예수 믿는 생활을 하는데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나타나는 그 권세나, 영광이나, 실력이나, 모든 피조물들에게 사모되는 대상이나 아 사모되면 좋지 안해요? 항상 미움의 대상되는 자도 있고 항상 사모의 대상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북에는 아마 뭐 사모의 대상이 김일성이가 될란지 모르지요.
아이들 벌써 뇌를 다 바꿔 버렸기 때문에 등신이 돼 가지고 그런지 모르지요.
그러나 영원 무궁토록 사모의, 제일 사모의 대상이 누구냐 하면은 예수님이 제일 사모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들이 다 주님을 주라 시인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사모의 대상의 양이나, 자기 공로 양, 자기의 실력 양, 모든 존귀 양, 다른 사람에게 필요있고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봉사의 양, 그런 양 그것을 가리켜서 여게 복음이라 이렇게 표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복음이라는 그 영광스럽고, 하늘나라에서 영광이나, 존귀나, 대우나, 사모나, 환영이나, 가치나, 모든 필요의 존재나, 모든 존재에게 많은 유익을 끼쳐 주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을 똘똘 뭉쳐서 한 말로 복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거 복음 돼 가지고 있는 거라.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 영광스러운, 우주도 영계도 이 복음이 차지하고, 모든 피조물도 복음이 차지하고, 이 창조주 하나님도 복음이 차지해. 하나님은 이 복음을 제일 좋아서, 제일 좋아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거기다가 다 쏟아 기울이고, 또 피조물들은 이 복음을 좋아서 바라보면서 거게 소망을 두고서 이라고.
이 복음의 영광스러운 뭉텅이가 있는데, 그 뭉텅이에 보니까 아무것이의 것, 그 복음에 아무것이의 것이 보니까, ‘보라, ○○○집사의 것이 거기 없나? 한번 좀 찾아보라’ 하니까 찾아봐야 자세히 모든 그 등록된 그것을 보니까 이름은 있기는 있는데 보니까, 저 보니 아주 똑 눈꼽재기만치 이거 문지만치 있습니다.
문지만치 있어. 자기는 뭐 좀 많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문지만치 있어.
또 어떤 사람은 보니까, 백 목사는 뭐이 많이 있는 줄로 이래 알고 ‘아마 내가 하늘에 가면은 그 복음에는 내것이 많을 것이다’ 이래 가 보니까 또 뭐 문지만침만 될란지, 콩알만치 될란지? 아마 ○집사님이 문지만치 되면은 나는 콩알만치는 될 것 같애요. 비교하면 말이지요.
거기 가서 또 어떤 사람은 보면 여게서 남이 모르는 사람이지마는 주먹덩이만치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집채 무더기만치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신앙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쓰여지는 것이요, 또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이요, 참으로 가식이 없고 외식이 없고 오산도 착각도 뭐 그런 것도 없고 정확하게 진실되게 인간 구원에 이바지한 그 실상이 그 안에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지금 크게 봉사하는지 모릅니다.
뭐 간판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인사 듣고 명예 가지고 이와 같이 칭찬이나 받고 하면서 하는 그런 사람도 가 보니까 아주 제일 좋은, 거게 복음에 아주 자기 모가치가 집채 무더기만치 태산 무더기만치 있을 줄 알았는데 가 보니까 전부 자기 명예 위해서, 자기 권위 위해서, 자기 행락 위해서, 또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서 뭐 그런 인정 위해서, 이런 거 때문에 다 했는가 요거 조거 전부 다 분석을 해 가지고 다 잡탱이를 다 떼 버리고 보니까 복음을 위해서 순전히 한 거는 한 내끼도 없을 수도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이렇게 하는 것은 목표를 항상 두고 해요 ‘내가 요라면 요것이ㅡ복음이라 말은 사람 구원이라 말인데ㅡ내가 요렇게 하면은 요거 사람 구원에 구원이 된 것이냐 안 된 것이냐?’
사람이 그렇게 뉘든지 다 그래요. 여게 보니까 또 자꾸 그런 사람들 대구서, 거창서, 교회에서 예수님의 은혜로 자기 경제병이 고침을 받았든지, 자기의 못된 인품의 병이 고침을 받았든지, 또 자기는 육체의 병을 고침을 받았든지 받았으면 하나님이, 지극히 크신 분이 나한테 와 가지고 나를 사랑하셔서 관심을 가지시고 착수를 해 가지고 그분이 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고침받은 그거보다도 그분이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한 그게 더 크다 그말이오! 이걸 잊어서는 안 돼요.
옛날은 왕이 말이오. 왕이 손목을 한번 잡아 가지고, 왕이 자기 손목을 이래 한번 잡았다고 해서 그 손목을 항상 ‘왕이 내 손목을 잡았는데 내 손목을 누구든지 거머쥐도록 할 수가없고 이 손목을 아무데나 내놓고 다닐 수가 없다’ 해 가지고 평생 여기다가 이거 봉해 가지고 이래 띠를 띠어 가지고 그래 다닙니다. 그게 토시라.
토시인데 고만 이거 지금 인제 그만 방풍 토시가 되고 말았어. 이래 가지고 이래 봉으로 이래 딱 인봉을 해 가지고 이래 다니다가 이거 또 집어 가지고 이래 딱 이래 쓰고 다니고 이라다가 그게 자꾸 속화됐는데, 그렇게 하는데, 만유주의 하나님이 와 가지고 내게 착수하셔서 뭣을 고쳐 주셨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와서 이걸 손을 대 가지고 이래 고쳐 주셨다. 그저 이렇게 주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생각하니까 또 은혜되고 생각하니까 은혜되고.
왜? 그분이 작으면 생각하면, 생각하고 생각하고 나중에 생각하니까 여러번 생각하니까 밑천이 드러나겠소 안 나겠소? ○○○이, 밑천이 드러나겠어 안 나겠어? 응? 그분이 작으면 밑천이 드러나 버려요.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니까 아, 생각해 보니까 밑천이 그거뿐이거든.
이제 하나님은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더 크고, 또 생각하니까 더 크고, 더 크고, 더 크고, 그분이 무한히 크니까 자꾸 생각하니 무한이 자꾸 나오니까 그분이 자꾸 내게 한 것이 더 감사하고, 조그만한 사람이 해 준 거보다도 그 큰 위대한 분이 해 주셨으니까 더 감사하고, 자꾸 감사가 더 나오고, 힘이 더 나오고, 기쁨이 더 나오고, 믿음이 점점 더 생기요.
이러니까 병 하나 나은 그것도 자꾸 부려 먹고 써먹고 자꾸 이래 하면은 그 속에 생수가 나오고 능력이 나오는 것인데 고만 그것을 저버려 버리고 엉뚱한 짓 하면은 하나님께서 ‘네 이놈’하고서 한번 쥐박아서 더하게 만들어요.
더하게 만드는데, 처음에 ‘아이구, 내가 실수했습니다.’ 하고 나오면은 하나님께서 용서하는 면과 치료해 주는 그 속도가 차차 자꾸 그라면은 더뎌지겠습니까 빨라지겠습니까 ○○○씨? 뭐라 하노? 큰 소리해 봐요. 누가 그 소리 좀 큰 소리로 해 봐. 뭐라 해, 그거 말? ‘더뎌집니다!’ 이래야지. 좀 크게 해 봐, 뭐 다 듣구로. 더뎌지지.
나중에 자꾸 그라면 ‘밉상스러운 놈, 보자’ 좀 더 골탕을 쥐먹고 이제는 죽겠다고 그라면 ‘다시는 이제 재범하는 그런 행실 하지 안할래?’ 이래 따져 가지고 ‘안 하겠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고치지. 또 그라다가 나중에 심히 그라면 ‘너는 희망 없어. 던져 버려야, 너는 죽어야 되지 소용 없어. 안 돼.’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여기 대학 병원에, ○○○ 목사님이라 지금 인제. ○○○목사님 그 사람을 목사 만들라고 내가 애를 많이 썼는데, 이게 병이 들어 가지고, 그게 조절이라.
이거 병이 조금 나으면 고만 세상으로 기어 들어가 가지고 또 내가 또 이래 돼지고 이래 돼지고, 나중에는 뭐 주님 앞에 헌신 안 할라 하고 또 이래 나가고, 세상으로 나가고 자꾸 이짓 해서, 아 몇십 번 했는지 몰라, 몇십 번 했는지? 죽을 지경이면 또 그라고.
그라다가 한번은 여기 있으니까 대학 병원에서 ‘이제는 뭐 안 되겠습니다.
이제는 안 되겠으니까 한번 와서 기도나 한번 해 주이소’ ‘내가 가기는 가지마는 기도 안 해 준다 내가 갔다 말이오. 가니까 이제는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그저 손도 잘 흔들지도 못해. 이래 가지고 눈으로 신호해. 눈으로 신호를 해요, 눈으로.
그래 내가 있다가 ‘인제 ○○○씨는 인제는 죽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분개해서 이제는 죽음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죽어도 끝나는 것 아니니까 회개를 하고 가십시오. 그렇게 강퍅하고 교만하고 망령된 자가 어데 있습니까? 이제는 이 병으로 죽어야 됩니다’했어. 내가 그때 ‘죽어야 됩니다'했어.
처음에는 그라다가 나중에는 뒈져야 된다 했어. ‘이제는 이 병으로 뒈져야 합니다. 이제는 세상 인제 좀 실컷 살아보지! 이제는 뒈져야 돼. 뒈지는 게 마땅해. 나는 기도는 못 해 줘. 그런 인간 암만 기도해 봤자 또 그짓 하고 그짓 하는데 기도해 줄 수가 없어.’ 이라니까 말은 못 하고 눈물을 좔좔 흘리면서, ‘다시 그런 행실을 또 할 거냐?’하니까 안 한다는 거 눈으로 신호해. 눈으로 신호를 해요. 몸뚱이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밖에 움직이지 못해요.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래 이제는 다시 안 그렇다는 그런 표시를 해요.
그래 내가 있다가 ‘나는 하나님에게 그저 전달하는 거뿐이고 상고하는 거뿐인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 다시 안 그럴 수 있는 고런 회개를 하면 하나님이 여게서도 살려 주실란지 모르겠고 그렇지 않으면 헛일이다.’ 하도 가족들이 그래 쌓아서 ‘그라면 기도하자’ 이제 그걸 따지고 인제 기도를 했어.
기도해도 내 마음에 ‘하나님이 용서하고 낫아 주실까?’ 기도하는 내게는 그렇게 믿음이 있지를 안해요. 믿어지지 안해,.괘씸해서 주먹으로 쥐박아서 그만 ‘이놈, 잘가거라. ’ 지옥은 안 가지마는 구원 다 헛일하고 이라면 싶으지, 괘씸해서.
그래 이래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어요. 기도하는 거는 지금 사람이 연약해 이런 거니까 용서해 달라고 이렇게 용서를, 기도를 하고서 이래 왔다 말이오.
오면서도 저거 뒈지지 살아나지는 못한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와 가지고 그 이튿날 아침에 연락이 왔어. ‘퇴원합니다’ 이래. ‘아, 그라면 인제 뭐 죽었는갑다, 아마 퇴원하는 거 보니까.’ `퇴원해요? 인제 뭐 아주 끝났습니까?’ 내가 이래 물었거든. ‘끝났습니까?' 이라니까 `예, 이제 어제 그때’ 내가 그때 조사 때던가 목사 때던가 모르겠어. 내가 목사됐을 때야 아마. ‘목사님 기도하고 가시고 난 다음에 완전히 나아서 지금 퇴원합니다’ 이래. 그라니까 소망이 생겨져 기뻐. ‘그라면 가지.' 그래 퇴원한다 해서 가니까 집에 퇴원해 나와 가지고 있어, 인제 방금 나왔다 하면서. 그래 내가 있다가 말하기를 ‘그러면 자기가 지금 하나님이 이래 긍휼히 여겼으니까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하겠다고. ‘그라면 저 약 치워 버리고 삼각산 내가 말하는 기도원에 가 가지고 집에도 오지 말고,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가지 말고, 약도 먹지 말고, 여기 자기 부인도, 가지 말고, 꼭 돈을 보내고, 또 음식 해 가지고 가거들랑 고 밑에 와서 딱 원장에게 전달만 하고 대면은 하지 말고, 그렇게 해서 내 허락받고 난 다음에 마누라도 대면하고, 허락받고 난 다음에 외출도 하고 그리 하기로 작정하겠느냐?’ 이라니까 ‘아, 예 그라겠습니다’ 이래. 그래 나온 그 날 갔습니다. 나온 그 날 삼각산 기도원으로 갔어.
기도원으로 갔는데, 그 부인이 가기는 갔지마는 대면은 못 했습니다. 대면 못 하고 고게서 와서 전달만 하고, 돈만 보내고, 그 처남들이 뭐 서울에 잘 살고 있지마는 나오지도 못하고 딱 그랬는데, 나중에 ‘이제는 건강이 다 회복됐으니까 혹 시내에 있는 친척들에게 한번 좀 외출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나중에 그 소식을 다 듣고 난 다음에 ‘인제 외출하되 가 가지고 몇 시간에 돌아오너라’ 고래 말했고, 고래 고래 해 가지고 나중에 나았습니다.
나았는데, 낫고 난 다음에 이제 나중에 가서 전도사가 됐습니다. 전도사가 되고 난 다음에 또 옛날 그놈이 나와 가지고 또 삐꿔 돌아가서, 뭐 가족이 사모님이 뭐 어쨌는가 그래 삐꿔서 그만 말도 안 하고 어데 가 숨었는지 안 나와요. 어데 가 숨었는지 나오지 안하고 그만 그래 놓으니까 뭐 사모님은 안달이 달아서 죽을 지경이고 뭐 어데 가 숨어 가지고 안 나와.
안 나와서 이래, 그래서 나도 위해서 기도하고 ‘어데든지 알거든 연락을 해라.
연락만 해라’ 그래 나중에 내가 어데 연락을 받아 가지고 전화를 해서 야단을 쳤어. ‘뒈지거라. 인제 아주 인제 뒈질라고 하느냐? 뒈지거라. 인제 뭐 너 같은 거는 필요가 없고 소용이 없다, 뒈지거라. 네가 그놈이 네 원수인 줄 모르고 그걸 죽이지 못하고, 그 속을 썩후지 못해서 뭐 누구한테다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하고 있느냐?’고 이래 놨더니마는 석달 만에 또 나타났어요. 석달 만에 나타나 가지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그짓 안 합니다. 안 하고 지금 인제 목사가 됐어.
목사가 돼서 제법 목사노릇 잘해요. 그래서 남해 지방 공회장이 됐어요.
근본 이 세상에서 안 믿는 사람으로서 인간 바탕이 있고 인품이 있는 사람은 전환만 해서 예수님을 구주로만 믿으면은 가속도로 구원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종교 믿는 그런 사람들, 이종교나 그런 데서 수양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은 그 수양받은 게 생명은 없지마는 밭은 돼, 밭. 밭은 좋은 옥토를 마련했기 때문에 씨만 심으면 늦게 심어도 무성하게 빨리 자란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혹 늦게 예수 믿어도 저게 잘되고 뭐이 될까 싶습니다. 나는 저○○○집사님 그전에, 호랑이같이 생겼어요. 어떻게 이 상다구리가 그런지? 요새 상다구리는 뭐 옛날 안 같지마는.
이랬는데, 저 뭐이 될란가 싶어 내가 생각하는데 어짜면 아마 교역자 될 거 같애.
저 인제 좀 있으면 양성원에 입학하고 양성원에 입학만 하고 나면 내가 주먹으로 쥐박아요. 요새도 지금 좀 쥐박는데 양성원에 입학만 해서 진리만 깨닫고 나면 그까짓 거 뭐 땅에 있는 그게 뭐인데? 이 막 이렇게 추켜 올릴 때에는 그거 더 얻기 위해서, 얻기 위해서 ‘너 장관이 좋다, 너 뭣이 좋다, 너 시장이 좋다’ 이래 하는 것이지 그게 예수님께 비하면 까짓 거 뭐이야? 이래서, 제가 이 정권 때에 저를 장관, 다섯 장관의 부인들이 모여 가지고 ‘비행기 표를 보낼 터이니까 한 달에 한 번씩만 올라와 가지고 꼭 한 시간씩만 그 설교를 해 주시고 가시면 우리가 살겠고 우리가 거석하면 이 나라에 모든 정치가 그래 될 터이니까 해 달라’고 그 교섭을 얼마나 왔었습니다. 그때 국무총리 ○○○씨 부인이 저한테 몇 번이나 그래도 내가 안 갔어.
안 간 것은 ‘너거가 뭐 특수층이라고 그래 하고 있느냐? 너거한테 가면 평신도가 다섯이 합해 가지고 비행기 표 보내도 내가 가야 될 터인데 너거와 다른 사람이 다른 게 뭐이고? 나는 꼭 같이 보지 달리 보지 않는다’하는 데에서 그렇게 오라고 청해도 안 가고 말았습니다. 껍데기는 물렁한상발라도 속에는 다 뼉다구가, 굉장한 뼉다구가 있는 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 그말이오. 뼈가 없는 게 아니라.
이 복음에는 말이오. 복음에는 이렇게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3절에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이러니까 이 바울은 말이오, 늘 일하면서 ‘내가 오늘 하루 산 것이 문지만치 복음에 들어갔느냐 안 들어갔느냐, 내 모가치가 복음에 문지만한 것이 하나 들어갔느냐?’ 자기가 일 년 계산하고, ‘내가 일 년 동안 산 것이 요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깎고 삣고 씻고 닦고 막 해서 하나님의 오만 율법으로 심사, 이리 저리 뭐 종으로 횡으로 막 심사하고 심사하고 조사하고 해도 정금같이 타지 안하고 정죄받지 안하고 고때에 그리스도 심판을 통과해 가지고 이 복음 속에 내 모가치가 얼마나 들어 있느냐? 오늘 이 수입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고 수입을 자기 수입으로 생각하고 날마다 달음질하고 있습니다.
그저 땅에 있는 거 오늘 없어질 거, 이게 수입이 됐나 안 됐나 그렇게 그런 걸 수입으로 하지 안하고 그리스도의 심판 너머 복음에 자기 것이 얼마나 들어 있나 거게 참여하기 위해서 이렇게 전력을 기울이고 노력하고 있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목사 노릇을 하든지, 권찰 노릇을 하든지, 뭐 장로 노릇을 하든지, 전도사 노릇 하든지, 자기 한 것이 ‘사람에게 이렇게 어느 정도 인정받나, 환영받나, 인기가 있나 없나, 사람이 내 사람이 몇이 됐나?’ 그런 거보다도, 그것도 다, 그게 모여 가지고 그게 참이 되면은 그리스도의 심판 너머 복음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만 가지고는 복음에 참여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권찰을 하되 내가 이 사람을 구원하지만 이 구원하는 것이 방편상으로나,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모든 결과적으로나, 내 이 한 일이 과연 그리스도의 심판 너머 복음 속에 그 속에 어느 정도 참여하게 되느냐, 어느 정도 그 속에 양이 되어 있겠느냐? 고것을 보면서 하기 때문에 인간이 말하는 것은 극히 그거는 참 가치가 적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모든 사람의 여론을 그것을 매우 경한 것으로 여긴다”했습니다. 또 자기 양심이 요거야 됐다 싶은 그것도 상대하지 안한다 했습니다. 왜? 그분이 심사하고 심사해 가지고 그 심사에서 깨어지지 안하고 정죄 안 하고 남아 있는 고것만이가 알맹이기 때문에 고것을 바라보면서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을 불로 연단해서 없어질 금보다 더 보배라 말은 금은 불로 태우면은 잡철이 다 타 버리고 순금만 남는 거 그거보다도 우리를 연단시키는 것은 그것보다도 더 깨고 삣고 깎고 이래서 하나님의 모든 율법이 다 마구 그 전후 상하 앞뒤에서 마구 공격해 들어와도, 이 율법이 다 와도 어느 한 율법에라도 정죄받지 안하고 남아 있는 거 깨끗한 거 고것만이 옳은 것입니다.
고것을 푯대로 삼고서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외식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가 없어.
이런데 오늘 우리가 외식을 버리지 못하고 그저 껍데기 사람 상대해서, 설교하면 ‘사람들이 뭐 어째 감화를 받나 안 받나, 또 저 사람들이 나를 대우를 잘하나 안 하나?’ 구역장을 하는 것도 물론 고거 속에 알맹이가 있어야 돼요. ‘구역 식구가 하나 더 붇나 안 붇나?’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만 거 하지마는 고거는 껍데기인데, 껍데기인데 고거는 배설물이고 고 속에 복음 속에 참여할 수 있는 고 진짜가 고 속에 생겨져야 된다 그거요.
이 편집실 일하는 것도 그래요. 일하는 것도 그거 어떤 사람은 슬슬 시간이나 보내고, 또 돈이나 월급이나, 월급 생각하고 온 사람은 하나도 없어. 왜? 그거는 내가 없는 줄 아는 것이 다른 데서, 이 중간반도 그래요. 오십만 원 수입하던, 그 요새 사장이 많아서 전부 사장이라, 사장이 다 들어왔어. 사장이 들어와서 중간반 반사 됐어.
들어올 때는 그런 거 다 치우고 이래 오만 원 받고 이래 들어왔으니까 십분지 일 받고서 들어와 가지고 이래 했지마는 하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 자기도 모르게 돈 보고 하는 사람 되고 말았고, 또 외식으로 사람 눈을 보고 하는 사람 되고 말았고, 속에 들어올 때는 이랬지마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처음에 들어왔던 그 포부는 다 잊어 버리고 이제 변질이 돼 버렸어.
자,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 있는데 지금 변질되고 속화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다른 사람은 안 드네. 다 들어, 다 됐어. 다 된 줄 알고, 자기가 속화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속화가 안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속화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속화가 안 됐어. 속화됐다고 생각하고 속화하고 싸우는 사람은 지금 거석하지마는 그게 없을 때는 벌써 속화돼 가지고 죽었다 그거야. 편집실 직원들도 다 그래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내가 이거 본 것은 이겁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음질을 할지라도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자, 이등은 다 이겼습니까 진 사람입니까? 예? 예? 이등은 이긴 사람이요 진 사람이오? ○○이, 학교에서 제일 일등으로 졸업했다는데 뭐이야? 진 사람? 이등은 하나한테 졌지? 하나한테 졌다 하는 진 사람을 이등이라 하는 것이고, 하나한테도 지지 안한 사람은 일등이고, 삼등은 둘한테 진 사람이고, 사등은 서이한테 진 사람이고.
그러니까 요게 「달음질할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자는 하나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라면 이긴, 다 이긴 사람은 그렇다 그말이오.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어질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여기 절제라 하는 데 대해서 요거 내가 오늘 아침에 증거할라고 지금 시작을 했습니다. 절제라 말은 조절이라 말입니다, 조절. 이러니까 절제하기 전에 계산서가 있어야 됩니다. 사람은 계산을 해야 돼요. 사람이 계산 안 하면 조절할 수 있습니까? 계산을 대야 ‘아, 요게는 좀 너무 많이 들어왔다. 요게는 모자란다’ 절제라 말한 것은 고 모든 것을 잘 조절해 가지고 많이 들일 것은 많이 들이고, 적게 들일 거는 적게 들이고, ‘요거는 십분지 일만 들어가면 된다, 요거는 백분지 일만 들어가도 된다, 요게는 반이 들어가야 된다’ 고것을 다 계산하기 전에는 그거 모른다 말이오. 계산해야, 절제하는,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말은 ○○○씨 ‘모든 일에 계산하나니’ 그말이오, 모든 일에 계산하나니.
자기 생활을 다 계산을 해 봐야 돼. 계산 해 보면 ‘아, 이놈의 데 많이 들어갔구나’ 자기 살림살이 사는 것도 계산하면은 ‘우리가 월급 받아 가지고, 보자 월급 받아 가지고 이거 어떻게 자꾸 돈에 부다끼고 이러냐?’ 이거 절제하고자 하는 사람은 조절하면 성공을 하는 것인데 그랄라면 계산을 대 봐요. ‘돈이 보자, 어데 어데 쓰였노?’ 쓰인 종목을 다 해요. 쓰인 종목을 전부 다 빼놓고 ‘요게는 얼마 쓰였느냐, 요게는 얼마 쓰였느냐, 얼마 쓰였느냐?’ 다 이래 뭐 하면 다 나올 거 아닙니까? 이래 놓고 나서 계산을 대보니까 ‘아, 요거보다 요걸 적게 써야 되고, 요것보다 요걸 적게 써야 되고, 요거보다 요거 많이 써야 되고 다 조절해 보니까 엉뚱한 데 지금 십 배도 더 쓴 데가 있다 말이오. 또 어떤 데는 십분지 일도 안 써 버렸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 사람이 성공을 볼 수가 없는 거라, 살림살이 사는 데도.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뭘 봅니까? 시간을 계산해요. 아, 내가 시간 중에 몇 시간을, 한번 시간만 계산해요. 시간 계산해 가지고 내가 자는 데에 몇 시간, 밥 먹는데 몇 시간, 일하는 데 몇 시간, 기도하는 데 몇 시간, 성경 보는데 몇 시간, 항상 저 보기에는 ‘나는 성경만 보고 항상 기도만 하고 있다’ 이렇게 계산이 나왔는데 막상 따져 보니까, 따져 보니까 성경 본 시간은 조금밖에 안 되고, 기도한 시간도 조금밖에 안 되고, 전부 이러니 저러니 말하면서 노라리하는 시간, 전부 허비한 시간에 막 전부 막 다 들어가 버렸어. 노는 시간 허비하는 시간에 다 들어가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놈이, 도둑놈이로구나.’ 노는 거, 누가 오니까 한바탕 놀아 주고, 누가 오니까 또 한바탕 놀아 주고, 제가 또 가고 싶어 놀고 이래 가지고 쓸데 없는 거 이거 다 이거 노는 거 노라리하는 데에서 전부 시간 다 보냈어.
이러니까 ‘아, 안 됐다. 그러면 내가 사람들 만나 가지고 놀러다니는 건 시간 얼마 둘까? 놀러다니는 거는 영을 탁 치며 여기는 한 내끼도 투자할 게 없다, 노는 데에는 십 분도 투자할 게 없다, 노는 건 하나도 안 놀아도 된다, 십 분도 투자할 게 없다.’ 거기 다 확 깎아 버리고 이랬는데 나중에 가서 또 실지로 조사를 해 보니까 거게 두 시간도 들고, 세 시간도 들고, 네 시간도 들었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런 것을 다 조절하는 것입니다.
자, 시간에 대해서 한번 가 해 봐요. 시간에 대해서 그러면 어데는 몇 시간 들고, 어데는 몇 시간, 어데는 몇 시간 들고, 이것을 잘 계산해 가지고 해야 되겠다 말이오.
그다음에는 또 뭐이요? 그다음에는 자기의 이 몸의 정욕에 대해서, 몸의 정욕에, 내 힘에 대해서 ‘보자, 내가 일하느라고 골이 빠졌다’ 똑똑히 대 봐요, 일하는 데 골이 바졌는지? 이거 절제라 하는 데는 이성면에 절제 안 하면 안 돼요. 내가 보니까, 청년들은 전부 보니까 ‘네 청년 정욕은 전부 그 구덩이에 솔빡 다 빠졌다, 그 구덩이에 솔빡 다 빠졌다.’ 다 빠지고 거기다 다 빠주어 버리고 나머지기 찌끄러기 가지고 뭐 일 한둥 만둥 이라니까 그게 성공 볼 수가 있어야지? 어떤 자는 자기 정력이 거게 다 빠져 버리고, 어떤 자는 또 공부하는 데 다 빠져 버리는데 이거는 그 성생활에 다 빠져 버렸다 말이오, 성생활에.
또 이제 그라면 우리의 정신을 보자. 정신을 보니까 정신이 요게도 빠졌고, 조게도 들어가고 들어갔는데, 정신들 데는 안 들이고 안 들일 데에 정신 다 들였다 말이오. 안 들일 데에 정신을 다 들였어.
그러면 내 감정은, 감정은 사모하는 게 감정인데, 내 감정은? 감정 조사를 떡 해 보니까 이 감정은 어만 거, 사모할 거는, 주님 사모할 거는 사모하지도 안하고 사모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사모했느냐? 사모한다고 ‘사모해야지’ 하고 보니까 나중에 보니까 딴거 사모하고 있어. 이러니까 사모를 조사해 보니까 이거 만판 이거는 참 지옥 가야 될 것이지 하나도 옳은 게 없어.
사모를 계산을 해 보고, 또 생각을 계산을 해 보고, 마음을 계산을 해 보고, 뜻을 계산을 해 보고, 성질을 계산을 해 보고, 욕심을 계산해 보니까 하나님께 대한 욕심은 없고 이 소용 없는 돈 욕심 뭐 이거 저거 명예 욕심 전부 썩을 욕심뿐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뭐 계산해 보면 기가 찰 거라 말이오. 계산해 보면 ‘내가 이러니 만판 그 답안은 뭐이냐? 답안은 멸망이다’ 이러니까, 계산을 해 가지고 고것을 잘 조절해서 ‘요게는 시간으로 말하면, 정력으로 말하면, 또 정신으로 말하면, 마음으로 말하면, 사모로 말하면, 욕심으로 말하면, 감정으로 말하면, 요게는 얼마 얼마?’ 그래 다 요렇게 딱 요게 멤바를 딱 짜 가지고 요래 가지고 딱 고대로 실행을 할라고 애를 써야만 승리를 하는 것이지 아무나따나 되는 대로 이렇게 마구잽이로 살아 가지고 이 영광스러운 구원이 승리가 될 줄 압니까? 안 됩니다.
녜. 새벽 기도 오늘 아침에도 어제 아침보다 조금 적게 나왔는가 모르겠는데 자꾸 심방을 해요. 오늘 아침에 전화로나 데리고 왔든지 새벽 기도 나오라고 그렇게 수고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회개해, 회개. 그래 가지고 어짤라고 그라고 있어? 자꾸 하지.
새벽에 전화 심방이든지 새벽 기도 나오라고 그래 한 사람들은 거짓말, 손 안 들면 한 사람이 안 했다고 거짓말하면 그거 거짓말이야. 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권사님 아까는 거짓말 하더마는 회개하는구만. 손 뻐뜩 들어, 했으면.
버뜩 들어. 한 사람 다 들어요. 앞으로는 다 해요.
저게 저 뭐꼬 ○ 뭣이고? ○선생 이름이 뭐이지? 저○선생 ○선생이면 손 들어 봐. 손 들어 봐, 퍼뜩. 선생질하며 오른 손 들지 왼손이 뭐이야? 오른손 들어 봐.
뻐뜩 들어 봐. 뻐뜩 더. 그래. 순종해야지. 그런데 저거 저 내가 한번 만나니까 ‘너 뭐이냐?’ ‘저는 시집 안 갈 겁니다. 나는 주를 위해서 여생을 살겠습니다.' 이래 떡 대답해.
그래 나는 그걸 참 소망을 가지고 ‘이게 그럴란가?’ 하고서 이게 어떻게 하면은 이거, 중간반에 여부장이 없어. 중간반 여부장을 둬야 되겠는데 여부장이 될까? 우리 딸애 ○○○선생이 여부장 하면 잘하겠는데 그만 그거는 ○목사하고 같이 가 버려서 그만 안 돼 버렸고, 시집 가 안 됐고, 시집 가면 안 되고 이러니까 그거 할란가 이랬더니마는 저 그때 한번 이거 반사 하라 하니까 아예 안 한다 해.
가정에 뭐 형편이 어짜고 하는 그런 뜻으로 가지고. 나중에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때는 내가 철이 없어서 그때 몰라 그래 대답했고 지금은 철이 있으니까’ ‘네가 잔뜩 철이 많이 있었구나. 지금은 그러니 거부로구나’ 그래 요번에 문답을 하라고 ‘이층에 이 공과 문답하라’ 이라니까 저는 못 한다고 살살 피해. 내가 야단을 치고 ‘하든지 못 하든지 나는 너한테 맡겼으니까 네가 그라면 다른 사람한테 맡기든지 해. 나는 너한테 맡겼어.’ 이랬더니마는 아, 하는 거 보니까 어떻게 야물게 잘 하는지.' 앞으로 여부장 희망이 있는데 저것도 시집이 가고 싶어서 안 돼요. 시집 가면 뭐이 제 자유가 없거든. 시집 가면 반은 저이지만 반은 제것 아니라요. 반은 남편이 주관해요. 그러니까 결혼하면, 결혼하면 남편 몸은 여자가 주관하고 여자의 몸은 남편이 주관하고 완전히 자기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그만 자기를 완전히 참 뺏겨 버리는 거라. 완전히 잊어 버리고 마는 거라. 박탈이라 그말은 뺏겨 버리고 말아요. 이라는데 아 문답을 잘 해.
그런데 이거 모두 다 보면 하나님이 쓸모있는 것은 전부 이 썩어질 세상, 눈이 어두워 가지고 거게 욕심을 부려 가지고 다 가고 또 세상에 쓰지 못할 내버린 거 그런 거는 나와 가지고 이제 복음에 헌신해.
저 금정산에서 ○목사님에게 물으니까 ‘아, 교회들 보니까 좀 쓸 만한 거는 전부 다 세상으로 뭐 과학 공부하러 나가고 제일 아들 중에 찌끄러기만 전부 교회에 바치니 이거 참 앞으로 교회에 대해서 걱정이 됩니다.’ 고런 말 해. ‘너는 어짤래?' 이라니까 `저도 하나님이 뭐 쓰신다면 하겠습니다’ 그 집에 제일 수지인제 바쳤어. 저거 앞으로 이제 큰 성공 할 거야. 그때 그말 하고 나서 그때부터 하나님께 헌신했지? ○목사님 저기 와 있네. 그때 그런 말 했어요? 했습니까? 녜. 저기 손 드네, 했다고. 그때 그리 약속했어요.
좀 계산을 따져요. 내가 오늘 아침에 지금 말하는 것은 모든 일에 절제하지 않으면 성공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계산을 따져 보라, 계산을 따져 봐요.
계산을 자꾸 따지고 따지고 하면 그만 자다 깨어나도 환해. 계산이 환하니까 ‘여게는 얼마밖에 바칠 가치가 없다. 이상 바칠 가치는 없다.’ 이것을 똑똑히 말하면 마귀에게 속지 안해. 마귀에게 어떤 자는 망할 거, 왕창 전체 망할 거 거게 계산 안 대 보기 때문에 거게다 막 들이 쏟고 있어, 평생을.
우리 교인들은 보면 어데다가 쏟느냐? 우리 주일학교 반사들은 다 성생활에 전부이 쏵 다 바쳐 버리고, 다 쏟아 버리고 하나님 앞에는, 그러니까 전부 다 절제 안 해. 그러니까 거기 아마 그 십분지 구는 거게 다 쏟아 버리고 허비하지 않는가 이렇게 싶어.
그까짓 거야 뭐 하나님께서 생산하라 할 때 생산만 하면 돼 버리지 별 게 없는데.
그거 공연히 이거 계산 따져 보지 안했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좀 계산 따지는 사람 돼요. 모두 다 죽어가는 거 그거 뭐이냐 하면 전부 그래 가지고 다 죽어가요.
믿음 없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내외 간에 똑 같이 안 믿으면 그거 혼자만 그랄라 하면 또 가정 파괴가 되기 때문에 복음이 또 가리워져. 이러니까 둘이 의논해 가지고, 할 수 있는 대로는 의논을 해 가지고 언제든지 기도할 시간을 작정하고 그렇게 해서 모든 일에 절제해라.
아, 위대한 사람들 최 성봉 목사님 내가 물이 봤어. ‘목사님, 일생 동안에 성생활을 어찌 했습니까?’ 이라니까 제일 긴 기간이 삼 년까지 해 봤대요. 둘이 부부에 의논하고 ‘자, 삼 년 동안 우리 거게 대해서 절제 생활 하자.’ 제일 길게 한 것이 삼 년 해 봤대요. 삼 년 해 보고, 또 인제 이 년도 하고, 일 년도 하고, 몇 달도 하는 그런 것은 많이 했다고.
이런데 혼자 독신된 사람 그런 사람들은 ‘내야 뭐 혼자 이혼한 지, 과부된 지 몇 해 동안 내가 그래 살았는데’ 그거는 다 소용 없어. 그거는 헛일이라. 그것도 좀 유익은 유익이지마는 마음과 생각은 딴데 다 가 있으면서 자꾸 그라면 무슨 소용있는가? 혼자 사는 사람들 봐야 그 전부 허비 낭비하니까 도리어 배나 지옥의 자식으로 하고 있다 말이오.
어쨌든지 여러분들 우리 전 생활의 전부 이걸 다 짜 가지고, 그 짜는 걸 뭐 짠다 하노, 그거? 뭐라 해? 메뉴라 하나, 뭐라 하나? 할 일 쭉 짜 놓은 거 그거 뭐이야? 뭐인가 나는 그런 건 몰라요, 나는. 그런데 그거 짜듯이 다 짜요. 내가 사는 생활은 필요한 게 뭐이냐? 필요한 걸 전부이 다 짜. ‘내가 이것도 필요하다’ 필요한 걸 전부이 다 해 놓고서 그걸 ‘요게는 내가 뭣을 얼마 바쳐야 되고, 얼마 바쳐야 되고’ 요 계산을 다 해 가지고 자꾸 읽어요, 계산을. 요래 요렇고 하니까.
요라면 ‘내가 이 성생활에는 하루 종일 정신도, 생각도, 그만 정력도, 다 거기다 기울일 가치가 있는가?’ 해서 그 모든 것을 해 가지고 깨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자기의 일생을 다 망쳐 버리고 말고 다 헛일하고 만다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