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8:14
경건준비에 금물
1988. 10. 5. 수야
본문: 야고보서 1장 25절∼27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지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음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경건은,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모든 만물이 다 불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모든 비밀이 다 드러나고 지금 있는 모든 형상들이 다 없어져서 원소화됩니다. 처음에는 이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물심판이 있었고 마지막은 불심판이 있는 것으로 지금 있는 물질계는 완전히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다시 개조됩니다. 그럴 때에 어떤 준비로 불심판의 전멸되는 그 멸망을 피할 수 있는가? 피할 수 있는 방편을 몇 가지로 말씀했는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재림의 날을 바라보는 이것이 이 불심판을 면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경건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봉독했습니다. 경건은 두 가지에다가 중점 둔 것을 말씀하는데 하나는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을 말하고 하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성도의 생애 법도로 주신 이 법도대로 사는 그것을 경건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구속하신 하나님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법도대로 사는 그것이 경건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맞이하는 유일한 법칙이요 불심판을 면하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재림하실 때의 불심판은 노와 홍수 때의 물심판과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하나님이 예언하신, 선포하신 이 물심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그저 땅의 것만 소욕하고 소망하고 분주하다가 그날밤까지 분주하다가 멸망받았다. 그와같이 인자가 올 때도 그와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참 최종 완전히 판정이 되는 말씀인데 이 말씀에 대해서 너무 우리들이 자주 듣고 여러 번 듣다 보니까 그만 감동에 마비가 되고 면역성이 돼서 여게 대해서 별로이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는 이런 참 패역한 우리들로 점점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이래서, 경건을 이루는 데에는 단번에 경건이 되어지지 아니하고 경건은 하나님이 자유 하게 하는 율법을 지켜 행하는 가운데에서 점점 경건을 이루는 실력도 생겨지고 또 경건도 연단받고 그래서 잡된 것이 다 타지고 깨끗한 경건이 이루어지는 그 순위를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경건 준비는 자기 결심이나 각오만 가지고 되는 것 아니고 계속 연습을 하는 가운데에서 연성돼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26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이것이 경건을 이루는 데에 제일되는 병입니다. 경건 이루는 데에 제일 큰 병이 이것이 큰 병입니다.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그러면 우리가 경건한 사람이 되려고, 경건한 행위가 되려고 이렇게 애쓰는 것은 날마다 애를 써야 되지마는 자기의 경건에 관한 미비점, 또 부족점, 또 이 경건에 패해서 흠점 이런 것을 보는 것이 자기의 시각에 없어지는 것이 제일 큰 병입니다. 이 경건에 대해서 자기의 단점 보는 이것이 없고 자기의 좋은 장점 보는 그것이 경건에는 제일 큰 해독이 되는 병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첫째로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뭐 누구든지는 평신도나 은사교권에 있는 성직자들이나 어데까지 위대하고 또 어데까지 성자와 성녀가 됐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경건의 미비점, 미달점, 흠점, 또 갖추지 못한 불비점 이것이 그 마음을 사로잡고 있지 아니하고 경건에 대한 벌써 이루어졌다고 자기의 이루어진, 경건 이루어진 것만 보고 경건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그것은 보이지 아니하고, 경건한 것만 보이고 경건하지 못한 그것은 보이지 아니하면 그거 하나로 그 사람의 경건은 완전히 전멸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첫째로 우리에게 이 경건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이 노경이 돼 갈수록 괴수 죄인이라,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자와 같다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마음이 한 해 두 해 지나갈수록이 자꾸 더 눌린다 이라는 이것이 경건을 이루는 데에는 제일 좋은 요소입니다.
경건에 대해서 경건에 대해서 흠점 있는 것욜, 흠점 있는 것이 자기에게 보이지 아니하고 잘 이루어진 그것만 보이는, 스스로 경건하다 하는 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는 이것이 병 중에 제일 큰 병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회개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강퍅과 완패 이 교만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당장에 자기가 자기의 미비점을 보고 고통이 되고, 오히려 장점을 보고 안심하고 있는 이것이 완전히 자기에게서 말살이 되고, 미비점으로 인해서 고통이 되는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이 하늘나라 갈 수 있는 사람이며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며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의로운 사람이며 희망이 있는 사람이요, 마치 식물로 말하면 연한 순 같이 자라가는 그런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스스로 자기 경건을 인정하고 만나면 자기 장점만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의 단점만 치고 자기 장점만 자랑하기 때문에 교파마다 전부 정통이요 개인마다 정통이요, 교회마다 다 이렇게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 너무 일반화돼서 그만 마치 독약 탱크에 들어가서 독약에 취해 가지고 정신 없는 거와같이 모든 사람들이, 기독자들이 이런 형편에 처해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왜정 말년 때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왜정 말년 그 신사참배의 시험에 다 범죄해서 그때까지 이루어 놓은 구원은 다, 행위구원은 완전히 불에 태워 버리고 그 다음부터 새로 구원 이루는 것이지 그전 거는 다 탔습니다. 그 후에도 그런 일들을, 6·25 때도 그런 시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경건은 주님의 심판을 면하고 주님을 만나는 데에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데, 하나는 거룩이고 하나는 경건인데 이 경건에 대해서 제일 우리가 회개할 것은 자기에게 경건되어 있는 그점이 보이는 이것이 자기 망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자기에게 경건에 대해서 미비점 또 흠점, 이 경건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있는 그 병점 이것을 보는 그 사람의 마음의 눈이 복있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 앞에 가면 칭찬받고 하나님이 인정 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의 단점을 찾는 그것이 없는 그때는 벌써 죽은 사람이오. 우리는 무한한 배경이 있고 소망이 있는 우리들입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도성인신하시고, 사활의 대속을 베푸시고, 성령으로 보증을 세워서 주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기의 흠점, 단점, 미비점을 찾아 가지고 이것을 주님 앞에 부르짖는 자는 다 온전을 이루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것이 없이, 좋은 것 있으면 자랑 안 해도 잠시 후면 다 나타날 터인데 자기 장점만 찾아 가지고 만나면 서로, 이 세상에서 정신없는 사람들이 자기 소개하고 자기 거석해 가지고 이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세상 사람들은 그래 하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그것은 우리가 아주 어리석은 죄 가운데 빠져 있는 것입니다.
마치 배암의 미혹을 받고 보니까 천상 천하에 아담 해와에게는 선악과보다 더 해독 있는 것이 없건마는 배암의 유혹받고 나니까 선악과보다 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로울 만치 이렇게 모두 탐스러운 거는 그것밖에 안 보였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의 장점을 보고 만족하고 자랑하고 이것으로써 안심하는 이것은 귀신이 들려서 그렇게 아주 정반대로 자기 망치는 것으로 그렇게 잘못 봐서 그런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자기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이것도 이 사람도 이 경건 준비는 헛일입니다. 자기 혀를, 재갈먹인다 말은 말을 재갈을 먹이면 말 입에다가 쇠줄을 집어 넣어서 말이 물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행투를 부리지도 못하고 뽈끈 단속해서 어린 아이가 거머쥐어도 그 큰 말이 꼼짝 못 하고 끌려오는, 이 혀를 꼼짝 못 하도록 하는 것이요, 말을 꼼짝 못 하도록 하는 것이오.
혀를 재갈먹인다 말은 자기 혀를 자기가 꼼짝 못 하도록 해서 자기가 영감, 진리, 양심으로 이렇게 움직이려고 해야 움직이지 혀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이거 혀를 단속하지 못하는 이 사람이면 구원 준비는 다 헛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걸 많이 봅니다. 일생 동안 아주 참 부절한 수고와 희생과 봉사를 베풀었다 할지라도 혀를 재갈먹이지 않아서 말 한 마디 잘못 함으로써 일생 동안 쌓아 놓은 공적이 당장에 모래탑같이 싹 무너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한 마디 잘못함으로 일생을 다 망치는 일 그런 것이 생명까지 끊긴 일도 있습니다.
이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혀를 단속하려고 애를 쓰는 이 노력이 없으면 예수 믿는 것 헛일입니다. 연보를 암만 하고 뭐 전도하고 해도, 전도야 이종교도 다 그렇게 전도하지 않소? 또 그 사람들도 다 저희대로는 연보합니다. 그저 여게 말하기를 경건은 혀를 재갈먹여야 되는데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면 그 경건은 다 헛것이라 이렇게 말했어,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혀를 단속하는 그 일에 주력해서 항상 '나는 또 오늘도 이 혀를 재갈먹이지 못했다. 아무것이하고 만날 때 또 혀를 재갈먹이지 못했다.
이 혀가 들어서 참 이거 큰 화다.' 이래 가지고 혀를 깨물어서 피가 나고 하는 그렇게 애쓰는 그런 사람들이 그래도 나중에 가서 보면 경건 준비가 다소라도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 두 사람이 만나고 세 사람이 만나고 권찰끼리 만나고 집사끼리 만나고 또 교역자들끼리 만나고 장로들끼리 만나도 만나면 귀신놀음 하요. 만나면 그저 씨불씨불 이래 가지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 말해서, 그 하는 일은 뭐이냐? 항상 다른 사람 허는 것, 마귀에게 붙들렸으니까. 그게 제게 유익된 걸로 한다고 하지마는 이래 가지고 고라의 혀, 고라 모양으로 혀를 잘못 놀려 가지고 산 매장 당하듯이 그런 것, 또 그렇지 않으면 제 자랑하는 것, 전부 썩은 내음새만 피웁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저 제가 말하기를 동등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만나지 말아라, 이래서 금족령을 내걸 일이 많이 있습니다. 왜? 장로하고 장로하고 둘이 만나면 마귀놀음 하고 그 혀를 잘못 놀려 가지고 저 죽고 남 죽이는 일 하니까 동등 위치에서는 만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네게 은혜 입혀서 너보다 낮은 네게 소속한 양떼, 그리 안 하면 네 자녀 거게는 만날지라도 동등에는 만날 자격이 없다 내가 그렇게 말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들도 저거 교회 교인들 만나면 그래도 거게서 젖과 꿀이 나와서 양떼에 유익한 말 하지마는 목사 저거끼리 만나 놓으면 그만 귀신 노름 하요. 그만 혀를 재갈먹이지 않아요.
그러기 때문에 혀를 재갈먹이는 이것은 자기를 높여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는 혀 재갈먹이지를 절대 못 합니다. 혀를 재갈먹이라 말은 뭐 혀만 재갈먹이는 게 아니라 자기 중심을 바꾸라 말이오.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바꾸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가 안 되면 그 혀는 재갈 못 먹입니다.
어데서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주님의 또 노를 피하려고 그저 크나 작으나 주님 중심으로 주님 위주로 이 생각을 가지고 처세를 하는 사람은 자기 혀가 들어서 제일 원수요 세계 같은 악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의. 인간은 이 혀가 자기에게 가장 필요하고 요긴한 줄 알고 자꾸 말하는데 말하는 그것이 일생 동안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심판거리만 마련하고 마는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면, 혀를 단속하지 아니하면 혀를 재갈먹이지 않는 이 죄, 혀를 재갈먹이지 않는 이 죄를 회개해야 되지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그저 입술 나오는 대로 마음대로 이와같이 그 혀를 놀리는 그런 사람의 구원 준비는 연보 암만 많이 하고 뭐 전도하고 심방하고 구역장노릇 하고 뭐 해도 그것이 다 헛것이 되고 맙니다.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면 그 경건은 다 헛것이라 이랬어.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이래, 헛것이라.' 헛것이라 말은 신앙 생활 헛것이라 말 아니요?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면 자기는 어떤 모양으로 신앙 생활한다 해도 그 신앙 생활은 다 헛일입니다.
또 자기 마음을 속이는 죄 이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구원은 헛일입니다. 마음 속이는 건 뭐이 마음 속이는 건데? 마음 속이는 것은 자기 마음에 해야 될 것인 줄 자기 마음이 알고 있는데 안 하는 그게 마음 속이는 것이라. 마음에는 해야 된다 하는데 안 하는 그것이 마음 속이는 것이오. 또 마음에는 해서는 안 된다고 그 마음이 말하는데 안 된다는 것을 하는 것이 그것이 마음 속이는 것이오.
또 그래 가지고 모처럼 행동한다 할지라도 행동과 마음은 다릅니다. 행동은 보면 하는 것 같지마는 속마음은 달라. 행동과 마음이 일치되지 아니한 것은 다 마음 속이는 죄입니다. 마음에 하여야 될 줄 아는 것을 하지 아니하는 그것도, 마음 속이는 것이요,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요, 멸시하는 것이오.
안 해야 될 것을 알면서도 하는 그것이 마음 속이는 것이니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마음을 속이는 자의 경건은 헛것이라' 자기 보기에 경건이 눈에 보이면 헛것이라. 불경건만 자꾸 보여야 되지,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어데까지 가도 항상 불경건만 보였는데, 불경건은 보이지 아니하고 경건만 보여지고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네 구원 준비는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헛일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어떤 것이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경건이냐?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환난 중에 돌아보라 했으니까 환난이 없는 평범한 때는 더 돌아봐야 될 것 아닙니까? 이것은 자기보다 약한 자를,자기보다 못난 자를 자기보다 어리석은 자를, 자기보다 가난한 자를, 자기보다 더 죄인되어 있는 자를, 자기만 못한 자, 자기가 도울라면 다소라도 도울 수 있는 자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돕지 아니하면 그것도 다 그만 경건은 헛경건입니다. 헛경건. 하나님 앞에서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경건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생명까지 바쳐 주셨으니 나도 그분을 위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내가 그분에게 뭐 편지를 보낼라 해도 편지가 갈 수 있는가?, 그분에게 전화를 해야 전화가 가는가? 그분에게 예물을 보낼라 하니 그분에게 예물이 가는가? 그분이 말하기를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 소자 하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 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라,' 말씀했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형제에게 하고, 그분을 위하는 걸 형제에게 하고, 그분을 높여 섬기는 걸 형제에게 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형제에게 하는,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어데서든지, 내가 여게서 나는 여게서 뭘 도울까? 뭣을 좀 다른 사람을 좀 위할꼬? 나는 돈은 없어도 건강이 있으니까 건강으로 내가 좀 위하든지 물질로 위하든지 나는 건강도 뭣도 없지마는 진리를 그 사람보다 좀 더 알고 있으니까 내가 진리로 그 사람을 돕는다든지 어쩌든지 자기로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그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항상 도울 마음을 가지고,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요것이 없으면 경건이 헛일입니다.
어데서든지, 요거 반대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 반대는 남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건의 정반대요, 원수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하나님이 당신부터 생각하고 그 다음에 우리 생각한다면 우리는 심판에서 멸하지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이래서,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하는 말은 평소에는 으례히 어데든지 가면, 세상 사람은 그렇습니다. 어데 떡 모이면 내가 여게서 어떻게 발언을 해야 내게 유익이 될까, 어떻게 행동해야 이 사람들을 내가 누를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이용해서 내가 사다리를 삼아 가지고 내가 이 사람들을 밟고 올라갈까, 이렇게 되는 것이 이것이 세상 생애법칙이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데 가든지 어데 가 앉든지 눈감고 기도하기를 '주여 내가 여게서 주를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내가 여게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곧 주를 섬기는 일, 그것이 형제를 섬기는 일이라 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여게서 주를 기쁘시게 하고 섬길 일이 뭐입니까?' 여게서 내가 주의 마음으로 이 형제를 도울 것이 무엇이며 위할 것이 뭐이며 이 형제를 북돋울 것이 뭐이며 높일 것이 뭐인가? 이것을 생각하는 거기에서 경건이라 하는 불심판에 불타지 아니할 수 있는 그런 인격은 그런 신앙은 자라가는 것이지 그거 없이 제 욕심만 내는 거게서는 그런 인격은 자라가지 않습니다.
이래서, 환난 중에 돌아보라 그말은 의례히 자기에게 여유 있을 때야 돌아볼 수 있지마는 환난 중이라 말은 자기에게 여유가 없어. 자기도 돌아볼 수 없을 때에 자기보다 그를 돌아보고 돌아보고 돌아보고 나머지기 자기 돌아보고, 돌아보면, 그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니까, 내것 다 그거 돌아보는 데 다 들였으면 주님이 나 안 도와 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런 자를 주님이 도우십니다. 이래서 '네가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세상 전토나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네가 손해 봤을 때에는 여러 배 백 배를 내가 주겠다' 하나님께서 보증했습니다.
이러기에,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이렇게 이래 돌아보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무슨 자기가 의로운 일이나 지나치게 많이 했다고 생각을 하고 그만 잘못하면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는 데로 돌아가 가지고 망하기 쉽습니다. 네가 밭을 갈든지 양을 먹이든지 하다가서 집에 돌아오면 이제 내가 이만치 일하고 돌아왔으니까 앉아 먹어야 될 것 아니겠느냐 하겠느냐, 주인의 먹을 것 준비하고 띠띠고 주인 먹을 상까지 섬기다가 그래 나중에 와서 먹으라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난 다음에도 항상 자기의 부족점이 보여지지 아니한 거 '아 내가 조금만 그랬다면 이거 했을 건데 헛일했다, 헛일했다.' 이렇게 우리 눈에 자기의 부족점, 자기의 미비점, 자기의 단점, 자기의 흠점 요거 보이는 눈이 복 있는 눈이지 자기의 장점 보는 그거는 망할 배암의 눈입니다.
'자기를 지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자기를 지키는 것은, 자기를 지키는 거 어떻게 지켜? 안 죽도록 지키지. 안 죽도록 지켜. 죽다니? 자기 중심이면 죽지.
자기 중심이면 죽습니다. 자기 위주면 죽습니다. 자기 지키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안 되려고, 주를 위해서, 살아도 주를 위해서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주를 위해 사는 자 되려고 하는 것이지 뭐 자기 뭣을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자기를 지키는 것은 자기를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벗지 않도록, 자기 중심 위주인 그 악인이 되지 않도록, 악의 정의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악입니다.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가 악입니다. 선은 자존자 구속주 중심 그분 중심이 선이오, 이 선악에 대해서 정의가 오늘까지 신학계에서 이 정의가 바로 나오지를 안했어. 선도 세상이 말하는 선, 악도 세상이 말하는 악, 아니야. 악은 민족을 위하고 전 인류를 위해도 악입니다.
자존자 하나님 위하지 않는 건 전체가 악이오. 하나님을 위해서 인간도 민족도 애국도 할 일이지. 이래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세속은 세상 풍속이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일 하는 거, 우리가 세상에서 살지마는 주님으로 인해서, 주님에게 팔린 자요 주의 종이기 때문에 주님의 심부름으로 세상을 쥐고 놓고 관리하고 또 주님으로 인해서, 주님께서 나에게 시키시는 일이니까 이것 저것 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해야 되지 그만 주님 떼내 버리고 뭐 추석되면 추석의 사람 돼 버리고, 설되면 설 사람 돼 버리고, 88올림픽이 되니까 88올림픽 사람이 돼 버리고 그것이 창기의 행동이오. 그것이 세속에 물드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세상을 관리하고 취급하고 사랑하고 얼마든지 이렇게 다스리고 이렇게 하지마는 주님으로 인해서 해야 되지 주님 떡 떼놓고 그만 거기 물들어 가지고 그것이 돼 가지고 거게 감염돼서 이래 하는 것 주님이 노여워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밤에 마지막 결론으로 중심은 '스스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세상 풍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라.' 세상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세상에게 결말을 맺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하나님께 속한 이것을 세속화시키지, 세상에 속하지 말라 그말이오.
이거는 세속은 세상 풍속을 말하는 것인데 세상 풍속은 뭐이 세상 풍속인가? 하나님과 관련없는 세상 운동은 전부 세상 풍속입니다. 그러면 세상 풍속 우리가 가지지 못할까? 세상 풍속을 하나님과 연합해 가지고 세상 풍속을 내가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접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정절 부인이 자기 남편 두고 그 속 애정을 간부에게 기울이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사활하셔서 대속하셨는데 이 대속을 언제는 '주여 주여' 하다가 무슨 추석만 와도, 설만 와도, 88올림픽만 와도, 뭐 세상에 텔리비젼만 봐도 그만 거게 쏠려 가지고 완전히 그거 사람 돼 버렸고 주님은 잊어 버리고 완전히 안팎이 거게 물 들어 가지고 그 사람이 되어지는 요것이 세속에 물드는 것입니다. 요것이 창기 행위요, 요것이 종교적 인격적 음행 행위입니다. 이것을 오늘밤에 설교 하는 중심은 이것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아니해야 하는 것.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